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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5/문명의 충돌

1. 새로운 세계 정세

by FraisGout 2020. 7. 26.

  국기와 문화 정체성
  1992년 1월 3일 러시아와 미국의 학자들이 참석한 회의가 모스크바의 한 정부 기관 강당에서 열렸다. 두 주일 
전 소련은 해체되었고 러시아 연방이 독립국으로 출범하였다. 그 결과 이제까지 강당에 우뚝 서 있던 레닌의 
상은 사라지고 그 대신 러시아 연방기가 내걸리게 되었다. 한 미국인 학자가 관찰한 딱 하나의 문제는 기가 
거꾸로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이 점을 지적하자 러시아측은 첫번째 휴식 시간을 이용하여 소리없이 재빨리 
오류를 시정하였다.
  냉전이 끝나고 몇 년에 걸쳐 민족의 정체성과 그 정체성의 상징에 극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거꾸로 
걸린 깃발은 과도기의 징후였지만 국기가 점점 높고 바르게 걸리고, 러시아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국민들이 이런 
국기 혹은 고유한 문화 정체성의 새로운 상징물을 앞세워 행진을 벌이며 또 그것에 동원되고 있다.
  1994년 4월 18일 사라예보에서 2천여 명의 군중이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의 국기를 흔들며 집회를 가졌다. 
유엔, NATO, 미국의 깃발이 아닌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의 국기를 흔듦으로써 사라예보 시민들은 자기네가 
이슬람 세력과 연대하고 있음과 그들의 진정한 벗이 누구인지를 분명히 밝혔다.
  l994년 l0월 16일 로스앤젤레스에서 7만여 명의 군중이 불법 체류자와 그들의 자녀의 복지 혜택을 대폭 
박탈하는 주민 투표 제안 187호에 항의하면서 '멕시코 깃발의 바다' 아래 행진을 벌였다. 멕시코 국기를 들고 
거리를 활보하면서 미국에 무상 교육을 요구하는 것을 곱지 않게 본 사람들은 그들이 미국 국기를 흔들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두 주일 뒤 더욱 대규모의 시위대가 미국 국기를 거꾸로 든 채 거리를 행진하였다 이 국기시 
건은 제안 l87호의 확실한 승리를 뒷받침한 셈이었다 캘리포니아 주민의 59퍼센트가 여기에 찬성하였다
  탈냉전 시대에 들어오면서 깃발을 비롯하여 십자가, 초승달 같은 문화 정체성의 상징물이 중요해졌다 문화가 
중요해졌고, 문화 정체성이야말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 다 
사람들은, 새롭지만 대개는 해묵은 정체성을 발견하여, 새롭지만 대개는 해묵은 깃발 아래 행진을 벌이다가, 
새롭지만 대개는 해묵은 적수와 전쟁을 벌인다.
  딥딘(MichgeI Dibdin)의 소설 "죽은 못(Dead Lagoon)" 에 등장하는 베네치아의 민족주의적 선동가는 이 
새로운 시대의 음울한 세계관을 잘 표현하였다 '진정한 적수가 없으면 진정한 동지도 있을 수 없다_우리 아닌 
것을 미워하지 않는다면 우리 것을 사랑할 수 없다. 이것은 백 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온 감상적이고 위선적인 
표어가 물러간 자리에서 우리가 고통스럽게 다시 발견하고 있는 뿌리 깊은 진리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족. 정신적 유산, 문화, 타고난 권리, 스스로를 부정하는 셈이다! 이것은 사소하게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다.' 이 해묵은 명제에 담겨 있는 불행한 진실을 정치인과 학자는 묵과하고 넘어가서는 안된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성을 재창조하려는 민족에게는 적수가 반드시 필요하며, 잠재 적으로 가장 위험한 적대감은 
세계 주요 문명들 사이의 단층선에서 불거진다
  이 책의 핵심적인 명제는 가장 폭넓은 차원에서, 문명 정체성에 다름 아닌 문화 또는 문화 정체성이 탈냉전 
세계에서 전개되는 결집. 분열, 갈등 의 양상을 규정하는 것이다. 이 책을 구성하는 다섯 부분은 이러한 중심 
명제에서 정교하게 도출된 귀결물이다.
  1부: 사상 최초로 세계 정치가 다극화, 다문명화 되었다. 경제와 사회의 현대화는 의미를 지닌 보편 문명을 
낳지 못하고 비서구 사회를 서구화 하는데도 실패했다.
  2부: 서구의 상대적 영향력이 줄어들고, 아시아 문명의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이 확대되고 이슬람권의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이슬람 국가들과 그 인접 국가들의 세력 균형이 위협받게 되면서, 비서구 문명들 
은전반적으로 자기 고유문화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3부: 문명에 기반을 둔 세계 질서가 태동하고 있다. 문화적 친화력을 갖는 사회들은 서로 협조한다 한 사회를 
이 문명에서 저 문명으로 이전시키려는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국가들은 자기 문명권의 주도국 흑은 
핵심국(core state) 을 중심으로 뭉친다.
  4부: 보편성을 자처하는 서구의 자세는 다른 문명, 특히 이슬람, 중국 과 갈등을 빚고 있다. 국지적 차원에서는 
주로 이슬람권과 비이슬람권 사이의 단층선 분쟁에서 형제국들의 규합'을 통해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 이 
상존한다. 분쟁을 저지하려는 핵심국의 노력도 두드러진다
  5부: 서구의 생존은 미국이 자신의 서구적 정체성을 재인식하고 자기 문명을 보편이 아닌 특수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비서구 사회로부터 오는 위협에 맞서 힘을 합쳐 자신의 문명을 혁신하고 수호할 수 있느냐 없느냐 
에 달려 있다. 문명간의 대규모 전쟁을 피하려면 전 세계 지도자들이 세계 정치의 다문명적 본질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유지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세계의 다극화, 다문명화
  탈냉전 시대에 사상 최초로 세계 정치는 다극화, 다문명화되었다. 인류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문명과 
문명의 접촉은 간헐적으로 이루어졌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서기 1500년을 전후하여 근대가 시작되 
면서 세계 정치는 두 가지 차원에서 전개되었다. 400년 남짓 동안 서구의 국민 국가(nation state)' -영국 . 
프랑스 . 스페인 .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 독일 미국 등 는 서구 문명 안에서 다극적 국제 체제를 형성하여 서로 
어울리고 겨루며 전쟁을 벌였다. 동시에 서구 국민 국가들은 다른 모 든 문명으로 진출하여 그것들을 정복하고 
식민화하고 결정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지도1.1}) 냉전 기간 동안 세계 정치는 양극화되었고 세계는 세 
부분으로 갈라졌다. 미국이 주도하는 가장 풍족하고 민주적인 사회들은 소견과 연결되어 있거나 소련이 이끄는 
다소 여유롭지 못한 공산주의 진영과 이념적으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때로는 군사적으로 광범위한 경쟁을 
벌였다. 분쟁의 상당수는, 이 두 진영의 바깥에 있으며 빈곤하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하고 최근에 독럽하여 비동맹 
노선을 추구하던 제3세계에서 일어났다. (지도1.2)
  1980년대 말 공산 세계가 무너지면서 냉전 체제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탈냉전 세계에서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다. 바로 문화다. 민족과 국민은 우리가 누구인가 하는, 
인간이 직면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에 답하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가 지금까지 그런 질문 
앞에서 내놓았던 전통적인 방식으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대상에 관 심을 
기울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조상, 종교, 언어, 역사 가치관 관습 제도를 가지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들은 
부족, 민족 집단, 신앙 공동체, 국민. 가장 포괄적인 차원에서는 문명이라고 하는 문화적 집단에 자신을 
귀속시킨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데도 정치를 이용한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이 아닌지를 알 때만. 아니 자신의 적수가 누구인지를 알 때만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다    
  국민 국가는 세계 정치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국민 국가의 활동은 예나 지금이나 권력과 부의 추구로 
규정하지만, 한편으로는 문화적 선호, 동질성, 이질성 따위로 규정하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국가군은 더 이상 
냉전 시대의 세 블록이 아니라 세계의 일곱 내지 여덟 개에 이르는 주요 문명이다.(지도 1 .3) 비서구 사회, 특히 
동아시아는 경제력을 키우면 서, 군사력과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아가고 있다 힘 과 
자신감이 축적되면서 비서구 사회들은 점차로 자신의 문화적 가치를 주장하고 서구에 의해 '강요된' 가치를 
거부하고 있다. 키신저(Henry A Kissinger)는 '2l세기의 국제 체제는 ...최소한 여섯 개의 열강-미국, 유럽. 중국. 
일본, 러시아. 아마도 인도 과 다수의 중진국 및 소국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고 지적한 바 있다." 키신저가 
언급한 6대 열강은 다섯 개의 아주 상이한 문명에 속해 있다. 이 밖에도 전략적 위치, 방대한 인구 석유 자원을 
등에 업고 세계 정치에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주요 이슬람 국가들이 있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지역 정치는 
민족성의 정치학이며 세계 정치는 문명의 정치학이다. 강대국의 경쟁은 문명의 층돌로 바뀐다
  세계 정치는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전파력이 크며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갈등은 사회적 계급 빈부, 경제적으로 정의되는 집단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 
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종족 전쟁이나 민족 분쟁은 한 문명 안에서도 여전히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폭력은 이들 문명에 소속된 여타 국가나 집단이 자기네 친족국(kin country) 
을 돕기 위해 결집하면서 확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잠재력을 늘 지니고 있다 소말리아에서 벌어지는 씨족간의 
유혈 충돌은 광범위한 분쟁으로 치달을 소지가 없다. 르완다에서 벌어지는 부족간의 유혈 층돌은 기껏해야 
우간다, 자이르, 부룬디에 영향을 미칠 뿐이다. 그러나 보스니 아, 코카서스, 중앙아시아, 캐슈미르에서 벌어지는 
문명간의 유혈 충돌은 더 큰 전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유고슬라비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세르비 아를 외교적으로 
지원하고 사우디아라비아, 터키, 이란, 리비아는 보스니 아를 경제적, 군사적으로 지원하였다. 그것은 이념이나 
정치적 역학 관계 경제적 이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문화적 동질성에서 우러나온 조치였다 
  하벨(Vaclav Havel) 이 통찰하였듯이 문화적 갈등이 지금보다 더 악화되고 위험스러운 상황에 놓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들로르(Jacque Delors)도 미래의 갈등은 경제나 이념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에 의해 촉발될 
것이라며 비슷한 견해를 표명하였다. 가장 위험한 문화적 분쟁은 문명과 문명이 만나는 단층선에서 발생한다.
  탈냉전 세계에서 문화는 분열과 통합의 양면으로 위력을 발휘한다. 문화적으로 통합되어 있지만 이념적으로 
갈라져 있던 민족이 다시 뭉치고 있다. 이념이나 역사적 상황으로는 통합되어 있지만 이질적 문명으로 구성되어 
있던 사회는 소련, 유고슬라비아, 보스니아처럼 다시 갈라지거나 우크라이나, 나이지리아, 수단, 인도, 
스리랑카처럼 극심한 긴장을 겪고 있다 문화적으로 비슷한 나라들은 경제적, 정치적으로도 협력한다 유럽 
연합처럼 문화적 동질성을 가진 국가들에 토대를 둔 국제 기구가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야 하는 국제 기구보다 
훨씬 원활하게 굴러간다. 45년 동안 철의 장막은 유럽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경제선이었다. 그 선은 이제 
동쪽으로 몇백 마일 옮겨졌다. 그것은 서구 크리스트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정교세계를 구분하는 경계선이 
되었다.
  문명마다 철학적 전제, 밑바탕에 깔린 가치관,사회 관계. 관습. 삶을 바라보는 총체적 전망은 크게 다르다. 세계 
전역에서 불고 있는 종교의 부홍 바람은 이런 문화적 차이를 더욱 조장하고 있다. 문화는 달라질 수 있고 문화가 
정치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의 성격도 시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 나 문명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정치 경제적 
발전의 중요한 차이는 상이한 문화에 명백히 뿌리를 두고 있다. 동아시아의 경제적 성공은 동아시아 문 화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동아시아 사회가 안정된 민주 정치 체제를 이룩하는 데서 직면하는 어려움 역시 그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슬람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민주주의의 좌절 현상은 대체로 이슬람 
문화의 울타리 안에서 그 원인을 설명할 수 있다 동유럽과 옛 소련처럼 과거 공산주의 체제를 겪었던 사회의 
발전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명 적 정체성의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서구 크리스트교의 전통 아래 있는 
나라들은 경제 발전과 민주 체제의 확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반면, 정교권에 속한 나라들의 정치 경제적 
발전은 불투명하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정치 경제적 장래는 어둡다.
  서구는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도 당분간은 가장 강력한 문명의 위치를 고수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문명들과 
비교했을 때 서구 문명의 상대적 힘 은 줄어들고 있다. 서구가 자신의 가치관을 주장하고 자신의 이익을 수호 
하기 위해 나설 때 비서구 사회들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어떤 나라들은 서구를 모방하여 서구에 합류하거나 
변승(bandwagon)'하려고 한다. 유교와 이슬람 국가들은 자신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확대해서 서구에 맞서고 
서구를 '견제(balance)'하려고 한다. 탈냉전 세계 정치의 중심축은 따라서 힘과 문화의 차원에서 전개되는 서구 
문명과 비서구 문명의 상호 작용이 라는 양상으로 나타날 것이다.
  요약하면, 탈냉전 세계는 일곱 내지 여덟 개의 주요 문명으로 이루어지는 세계다. 문화적 동질성과 이질성은 
국가들의 이익, 대결, 협력 양상을 규정한다. 세계에서 가장 힘있는 국가들은 놀라우리만큼 판이한 문명들에서 
유래하였다. 확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국지적 분쟁은 판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이나 국가간의 
층돌이다. 정치 경제적 발전의 지배적 양상은 문명과 문명마다 다르다. 국제 문제에서 중요한 사안에는 문명 의 
차이도 들어간다. 장기간 주도권을 행사해 온 서구 문명으로부터 비서구 문명으로 힘의 무게 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세계 정치는 다극화, 다문명화되었다 
  다른 세계상?
  지도와 페러다임: 탈냉전 시대의 세계 정세를 다양한 문화적 요인들과 상이한 문명에 속한 국가와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묘사하는 이러한 그림 은 너무도 단순한 것이다. 이것은 많은 사태를 누락시키고 적잖은 사태를 
왜곡하거나 모호하게 처리한다. 하지만 세계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그 안에서 효과적으로 행동하려면 현실을 어느 
정도 추상적으로 처리한 지도라고나 할까 이론, 개념, 모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그러한 지적 구성물이 없다면 
제임스(William James) 가 말한 대로 지독한 소음에 휩싸인 혼돈만 있을 뿐이다. 쿤(Thomas Kuhn)이 
'과학혁명의 구조(The Structure cf Scientific Revolutions)' 에서 지적한 것처럼 지적, 과학적 진보는 새로운 사 
실이나 새롭게 발견된 사실을 설명하는 데 그 힘을 점차 잃어 가고 있는 어떤 패러다임으로부터 좀더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쿤은 한 이론이 패러다임으로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경쟁 이론들보다 뛰어나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론이 자기 앞에 펼쳐진 모든 
사실을 남김없이 설명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못한다.' 고했다 " 개디스(John Lewis 
Gaddis) 는 다음의 탁월한 통찰을 보여 준다. '낯선 땅에서 길을 찾아가려면 대체로 지도가 필요하다. 지도 
제작은 인간의 인지 과정이 그러하듯 우리가 지금 어디 있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알게 해 주는 필수 
불가결한 단순화이다.' 트루먼(Harry Truman)이 처음으로 제시한, 초강대국이 각축을 벌이는 냉전 시대의 
세계상은 바로 그런 모델의 하나였다 그것은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용어로 국제 정세를 묘사하는 정치 
지도였으며, 그 지도를 토대로 좀더 정교한 견제 전략 방안이 마련되어 즉시 실천에 옮겨졌다.세계관과 인과적 
설명은 국제 정세의 필수 불가결한 길잡이다.
  40년 동안 국제 관계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일선에서 뛰는 전문가들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유용한 세계상, 곧 
냉전 패러다임을 통해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이 패러다임은 세계 정치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을 설명할 수 는 
없었다. 쿤의 용어를 빌리자면 적지 않은 변칙(anomaly)이 있었으며, 때로 그 패러다임은 중국과 소련의 결렬 
같은 중대한 사태 앞에서 학자와 정치가의 판단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러나 세계 정치의 간단한 모델로서 냉전 
패러다임은 그 어떤 경쟁 모델보다도 중요한 현상을 많이 설명했다. 그것은 국제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출발점이 되어 거의 보편적으로 수용되었으며 두 세대 동안 세계 정치의 이해 방식을 규정하였다. 간결한 
패러다임이나 지도는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서 빼놓을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이론이나 모델을 명쾌하게 수립하여 미래의 행동 지침으로서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반면 
이런 지침의 필요성을 부정하면서 우리 는 특정한 '객관적' 사실에만 의존하여 행동해야 하며 개별 사건의 
'진가' 를 파악해야 한다는 입장이 나올 수 있다 만일 그런 입장을 취한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기만하는 셈이다.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는 현실을 지각하고 사실을 바라보며 그 사실의 중요성과 의미를 판단하는 데 항상 결정적 
인 영향을 미치는 숨겨진 가정 편견, 선입관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의 이유에서 우리에게는 명시적이건 
암시적이건 하나의 모델이 필요하다. 
  l.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고 현실을 일반화한다
  2. 현상들 사이의 인과 관계를 이해한다
  3. 미래의 사태 발전을 전망하고 운만 따른다면 예측도 한다
  4.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한다.
  5.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를 결정한다
  모든 모델이나 지도는 추상화이며 저마다 고유한 쓰임새를 갖고 있다 도로 지도를 보면 A에서 B로 가는 길을 
알 수 있지만, 만일 우리가 비행기를 조종한다면 도로 지도는 쓸모가 없다. 그 경우 도로 지도보다는 비행 장 
무선 표지, 비행 경로,지형을 선명하게 강조한 지도가 필요할 것이다 지도가 없으면 우리는 길을 잃기 십상이다 
정교한 지도일수록 현실을 완 전에 가깝게 반영한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자세한 지도는 대체로 쓸모가 없다. 
만일 우리가 넓은 고속도로를 타고 대도시에서 다른 대도시로 갈 작정이라면 자동차 운전과 관련이 없는 정보가 
수두룩하게 실려 있고 복잡한 샛길이 잔뜩 묘사되어 있어 눈만 핑핑 돌게 만드는 지도는 별 도움이 안 될 
젓이다. 반면 고속도로 하나만 묘사되어 있는 지도는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시켜 만일 사고로 고속 도로가 
막혔다든지 했을 때 국도로 빠져나갈 수 있는 탈출구를 전혀 제시하지 못한다. 요컨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에 가장 알맞게 현실을 그리면서도 현실을 어느 정도 간추린 지도라 할 수 있다. 냉전이 끝나자 세계 
정치를 그린 여러 종류의 지도 또는 패러다임이 등장하였다.
  한세계: 환희와 조화
  냉전의 종식과 함께 세계 정치에는 중요한 갈등이 사라졌으며 상대적으로 조화로운 세계가 출현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패러다임이 폭넓게 언급되고 있다. 이런 모델 중에서도 가장 널리 논의되는 것이 
후쿠야마(Francis Fukuyam;r) 가 내놓은 '역사의 종말' 이라는 명제다. 후쿠야마는 주장한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 다음과 같은 역사의 종말이다. 다시 말해서 인류의 이념적 진화가 종착점에 이르렀고 인간이 만든 
정치 체제의 최종 형태로서 서구의 자유 민주주의가 보편화되었다는 것이다  분명히 지금도 제3세계에서는 
약간의 분쟁이 발생하고 있음을 후쿠야마도 인정하지만 유럽에서뿐 아니라 세계적 규모의 분쟁은 이제 막을 
내렸다. 대대적 변화가 일어난 곳은 바로 비유럽 세계 그 중에서도 특히 중국과 소련이다. 하지만 이념 전쟁은 
끝났다. '마나과, 평양, 케임브리지 같은 곳에 여전히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자유 민주주의는 승리를 거두었다. 미래의 세계 는 이념을 두고 벌여 온 홍미진진한 싸움판을 거두고 무미 
건조한 경제적.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골몰할 것이다. 그 세계는 살기에 다소 따분할 것이다.' 고 그는 약간 
서글픈 듯이 결론짓는다.
  조화의 전망은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정계와 학계의 유력 인사들이 비슷한 견해를 세련되게 가다듬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면서 유엔의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었고 냉전 시대의 적수들은 
동반자로서 대형 거래를 맺어 평화 유지와 평화 조성이 일상의 질서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전망이었다.세계를 
주도하는 나라의 대통령은 '새로운 세계 질서'를 외쳤으며, 세게 유수의 대학 총장은 필요성이 사라졌다 는 
이유로 안보 연구 교수의 임용을 승인하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 "만세! 전쟁이 사라졌기에 우리는 더 이상 
전쟁을 연구하지 않는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찾아온 환희는 조화의 환상을 낳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것은 말 그대로 환상임이 
밝혀졌다 1990년대 초반의 세계는 달라졌지만 예전보다 평화로워졌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변화는 불가피하였다. 
그러나 발전은 찾아오지 않았다.가장 규모가 컸던 1, 2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무렵에도 비슷한 환상들이 잠시 
만발하였다. l차 대전은 '전쟁을 종식시키는 전쟁'이었고 세계의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는 전쟁이었다. 2차 대전은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의 표현으로는 '일방적 행동 체제 배타적 동맹, 군사적 긴장, 그 밖의 몇 세기 
동안 시도하였으나 번번히 실패를 거듭해 온 펀법들을 종식시키는' 전쟁이었다. 평화를 애호하는 국가들로 
이루어진 세계 기구와 평화의 영구 불변한 구조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l차 대전은 
공산주의,파시즘을 낳았고 민주주의를 향한 한 세기 동안의 흐름을 되돌려 놓았다. 2차 대전은 세계적 규모의 
진짜 냉 전을 낳았다. 민족 분쟁과 '민족 청소(ethnlc cleansing)' 의 급증, 법과 질서 의 붕괴, 국가간에 새롭게 
나타난 동맹과 분쟁의 양상, 네오코뮤니즘과 네오파시즘 운동의 부활, 원리주의 종파의 대두, 러시아와 서방의 
관계를 특징지웠던 미소 외교와 순응 정책의 종식, 국지적 유혈 분쟁을 막지 못하는 유엔과 미국의 무능력, 점점 
부상하는 중국의 자기 주장으로 냉전의 종식 과 얼마 안 가서 산산조각 났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 5년 
동안 '대량 학살'이라는 단어가 함께 찾아온 환상은 과거 냉전 시대의 그 어떤 5년 동안보다도 훨씬 자주 
들렸다.조화로운 단일 세계의 패러다임은 탈냉 전 세계의 쓸모 있는 길잡이가 되기에는 현실로부터 너무 벗어나 
있다 
  두 세계: 우리와 그들
  조화로운 단일 세계의 기대는 대규모 전쟁이 끝났을 때 나타나지만 세계를 양분하여 이해하려는 태도는 
인간의 역사에서 줄곧 나타난다. 사람들은 우리와 그네들, 동아리의 안과 밖, 문명인과 야만인으로 구분하려는 
유혹에 거듭 빠진다. 학자들은 동양과 서양, 남과 북, 중심부와 주변부라는 용어로 세계를 분석하여 왔다. 이슬람 
교도들은 전통적으로 세계를 '다르 알 이슬람(Dar al-Islam)' 곧 평화의 땅과 '다르 알 하르브(Dar aI_Harb)' 곧 
전쟁의 땅으로 나누었다. 이 구별은 냉전 이후 의 세계를 '평화권`과 '소요권'으로 나누는 미국 학자들의 의식에 
거꾸로 반영되었다. 평화권에는 세계 인구의 15퍼센트를 차지하는 서구와 일본이 들어가고 소요권은 그 나머지가 
포함된다.
  부분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두 세계의 그림은 현실과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 가장 일반적인 구분은, 
호칭이야 다양하지만 나라들을 부국(현대국, 선진국)과 빈국(전통국, 미개발국 또는 개발 도상국)으로 나누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경제적 구분에 상응하는 것이 서양과 동양이라는 문화적 구분이다. 후자에는 
경제력보다는 철학, 가치관, 인생관의 차이에 더 강조점이 놓인다. 이런 그림 하나하나는 현실의 일부 요소를 
반영하지만 역시 한계가 있다 부유한 현대국들은 가난한 전통국들과 구분되는 특성을 공유하고 있으며 전통국들 
역시 그들 나름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경제력의 차이는 나라와 나라의 분쟁을 낳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그러한 분쟁은 부유하고 힘센 나라가 가난하고 약한 나라를 정복하고 식민지로 삼으려고 할 때 우선적으로 
일어난다. 서구는 지난 400여 년 동안 그런 정복 행위를 하였다. 종주국에 반기를 들고 해방 전쟁을 벌이는 
식민지들이 차츰 나타났고, 제국주의 국가들은 싸울 힘을 차츰 잃어 갔다 탈식민화는 이제 완료된 상태이며 
식민지에서 벌어지던 해방 전쟁은 해방된 사람들끼리의 분쟁으로 바뀌었다
  좀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보면, 부곡과 빈국의 분쟁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일어나기 어렵다. 빈국은 
부국에 맞설 만한 정치적 통합성, 경제력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의 
경제발전은 가진 나라와 못 가진 나라의 단순한 이분법을 모호하게 만든다 잘사는 나라끼리도 무역 전쟁을 벌일 
수 있고 못사는 나라끼리도 피비린 내 나는 전쟁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남쪽의 빈국과 북쪽의 부국 사이에서 
펼쳐지는 국제적 계급 전쟁은 조화롭고 행복한 단일 세계상만큼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발상일 수밖에 없다.
  문화를 기준으로 세계를 양분하는 것은 더더욱 쓸모가 없다.서구는 어느 수준까지는 하나의 실체다. 하지만 
비서구 사회는 서구가 아니라는 사실 말고 그 어떤 공통성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일본, 중국, 인도, 이슬람, 
아프리카 문명은 종교, 사회 구조, 제도, 지배적 가치관에서 거의 공통점이 없다. 비서구 세계의 통일성과 동서 
양분론은 서구가 창안한 신화다. 이 신화는 사이드(Edward Said) 가 낯익은 것(유럽, 서구, '우리' )과 낯선 것 
(오리엔트, 동양, 그들)의 차이를 조장하고 후자에 대한 전자의 우위를 암암리에 가정한다고 비판하였던 
오리엔털리즘(orientalisrm)의 결함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 냉전 기간 동안 세계는 이념의 스팩트럼을 따라 상당 
수 준 양극화되었다. 그러나 문화의 스팩트럼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동과 서를 양극화하는 것은 유럽 
문명을 서구 문명이라고 부르는 불행한 관습의 또다른 귀결이라고 볼 수 있다. '동양과 서양'이라고 부르지 말 
고 '서양과 나머지'라고 부르는 것이 수많은 비서구 사회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차라리 적절하다. 
경제적으로 남과 북으로 가른다거나 문 화적으로 동과 서로 갈라서 어떤 유용한 패러다임을 낳기에는 세계는 너 
무나 복잡하다.
  184개 국가들
  탈냉전 세계를 묘사하는 세번째 지도는 흔히 국제 관계의 '현실주의' 이론이라고 부르는 입장에서 유래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가는 세계 문제에서 유일 무이한 주연 배우이며 국가간의 관계는 일종의 무정부 상태이므로 
생존과 안보를 위해 국가는 자신의 힘을 극대화하려고 늘 고심한다. 한 국가가 어떤 국가의 세력 증대로 
위기감을 느낄 경우 그 국가는 자신의 힘을 강화하거나 다른 국가들과 동맹을 맺어 안보를 유지하려고 한다 
탈냉전 세계를 이루는 184개 안팎 국가들의 이해 관계와 활동은 이런 가정들로부터 예측할 수 있다.
  이런 '현실주의' 세계상은 국제 문제를 분석하는 데 대단히 유용한 출발점이 되며 대다수 국가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다. 국가는 세계 문제를 주도하는 실체이며 앞으로도 그런 역할의 변화는 없을 것이다. 국가는 군 
대를 유지하고 외교를 벌이며 조약을 협상하고 전쟁을 하며 국제 기구를 통제하고 생산과 교역에 영향을 미치고 
그 내용을 상당 부분 규정한다. 국가를 이끄는 정부는 자기 나라의 대외 안보를 굳건히 하는데 주안점을 둔 
다.(내부의 위협을 제거하는 데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전반적으로 이 국가 단위의 
패러다임은 한 세계나 두 세계의 패러다임보다는 세계 정치를 더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대한 한계가 있다.
  이 패러다임은 오든 국가가 동일한 방식으로 이해 관계를 깨닫고 동일한 방식으로 행위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힘이 전부라고 하는 단순한 전제는 국가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심층적 
파악의 길로 우리를 이끌지 못한다. 국가는 자신의 이해 관계를 힘으로 정의하지만 그 밖의 다른 것으로도 
얼마든지 정의한다. 국가는 물론 세력 균 형을 위해 노력하지만 만일 그것이 국가가 하는 일의 전부라고 한다면 
서 유럽 국가들은 l940년대 말에 미국에 대항하여 소련과 유착하였을 것이 다. 국가는 감지된 위협에 일차적으로 
반응하는데 그 당시의 서유럽 국가들은 정치적, 이념적, 군사적 위협이 동쪽에 있다고 보았다. 그들은 고전적 
현실주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자신의 이해관계를 파악하였다. 가치관, 문화, 제도는 
국가가 스스로의 이익을 정의하는 데 폭넓은 영향을 미친다. 국가의 이익은 또한 국내의 가치나 제도만이 아니라 
국제적 기준과 제도에 의해서도 규정된다. 안보에 대한 일차적인 관심을 예외 없이 가지고 있지만 상이한 유형의 
국가들은 자신들의 국익을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다. 비슷한 문화와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이익 또한 공통된 
내용으로 파악할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과 동질성을 갖고 있으므로 서로 싸우지 않는다. 
캐나다는 미국의 침투를 저지하기 위하여 다른 나라와 동맹을 맺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근본적 차원에서 보면 국가 단위 패러다임의 전제는 역사적 조건 속에서만 타당하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전제는 냉전 이전과 냉전 이후 의 세계 정치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를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안 된 
다. 두 시기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국가는 자신의 이익을 역사적 시기에 따라 다르게 추구한다. 탈냉전 
세계에 들어와 국가들은 점차 자신의 이익을 문명적 용어로 정의하고 있다 공통되거나 유사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끼리는 동맹을 맺거나 협력을 하고 상이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분쟁으로 치닫곤 한다. 국가는 위협을 
다른 국가의 의도를 통해 정의하며, 그러한 의도와 그 의도가 어떻게 받아들여지는가는 문화적 고려에 의해 
강하게 규정된다.국민과 정치인은 언어,종교, 가치관,제도, 문화를 공유하고 있어 신뢰하고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집단으로부터는 별다른 위협 을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문화가 달라서 잘 이해할 수도 신뢰할 수도 없다고 믿는 
국가로부터는 쉽게 위협을 느낀다.
  마르크스레닌주의 체제의 소련이 더 이상 자유 세계에 위협을 가하지 못하고 미국이 더 이상 공산세계를 겨눈 
위협자 역할을 하지 않게 된 지금 양 진영에 속해 있던 나라들은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사회로부터 오는 위협을 
점차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 국가는 세계 문제에서 일차적 주역으로 여전히 남아 있지만 국가의 주권, 기능, 힘은 
약화되는 추세에 있다. 국제 기구는 국가가 자국 영토에서 벌이는 행위를 결정하고 제지할 수 있는 권리를 
고집하고 있다. 유럽에서 특히 현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국제 기구는 이제까지 국가가 수행한 중요한 
기능을 떠맡고 나섰으며 개별 시민에게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막강한 국제 관료 조직이 탄생하였다. 
세계적으로 보아도 중앙 정부는 하위 수준의 지역, 지방 자치 단체에게 권력을 이양하는 추세에 있다 중앙 
정부는 자기 나라 안팎에서 유입되고 유출되는 자금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기능을 상당 부분 잃었으며 사상, 
기술, 상품, 노동력의 흐름 을 통제하는 데도 차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 한마디로 국경선은 점차 허술해지고 
있다. 이 모든 사태 발전을 감안할 때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 (신성 로마 제국의 구질서를 와해시키고 군주 
국가 증심의 새로운 국제 질서를 낳은 조약으로, 스페인-네덜란드 전쟁과 독일의 30년 전쟁이 끝난 뒤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참여한 가운데 체결되었다:옮긴이) 이후 세계 정치의 기준틀이 되었던 견고한 '당구공(billiard 
ball)' 국가는 서서히 사라지고 중세와 비슷한 다양하고 복잡하며 중층적인 국제 질서가 등장하리라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예상이다
  혼란 그 자체
  국가의 약화와 '실패한 국가' 의 등장은 무정부주의 상태 의 세계라고 하는 네 번째 그림을 낳는 데 
기여하였다. 이 패러다임은 정 부 권위의 와해, 국가의 분열, 부족.인종.종교 분쟁의 악화, 국제 마피아 집단의 
등장, 수천만 명에 이르며 지금도 계속 불어나는 난민, 핵을 비롯한 대량 파괴 무기의 확산, 테러리즘의 창궐, 
학살과 민족 청소의 만연을 강조한다 이 혼돈의 세계상은 1993년에 간행된 두 권의 통찰력 있는 저서 곧 
브레진스키(Zbigniew Brzezinski)의 '통제 불능(Out of Control)과 모이니헌(Daniel Patrick Moynihan)의 
'복마전(Pandaemonium)에서 설득력있게 요약 소개되고 있다.
  국가 패러다임과 마찬가지로 혼돈 패러다임도 현실에 근접해 있다. 그것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대부분을 
정교하고 생생하게 묘사하며 국가 패러다임과는 달리 냉전의 종식과 함께 발생한 세계 정치 차원의 증요 한 
변화를 강조한다 가령 l993년 현재 전 세계에서 모두 약 48건의 민족 분쟁이 벌어지고 있다. 옛 소련에서만 
l64건의 국경선을 둘러싼 영토 민족 갈등이 불거졌으며 이 증 50건은 무력 분쟁의 양상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에 지나치게 근접해 있다는 점에서 국가 패러다임보다 심한 맹점을 안고 있다. 세계는 혼돈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질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보편적이며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무정부관은 세계를 
이해하고 사건에 질서를 부여하여 그 증요성을 평가하고 무정부 상태의 저변에 깔린 조류를 예측하고 혼돈의 
유형과 그 각각의 원인 및 예상 가능한 결과를 분류하고 정부 정책 입안가들을 위한 지침을 개발하는 데 거의 
기여를 하지 못한다.

  세계상의 비교: 현실성,경제성.예측성
  이 네 가지 패러다임은 현실성과 경제성 면에서 조금씩 차이가 나기는하지만 저마다 한계점과 결점을 안고 
있다. 혹자는 이런 패러다임들을 결합하여 가령 세계는 분열과 통합의 동시적 진행과정에 있다고 가정함으로써 
난관을 돌파할 수 있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두 가지 조류가 엄존하는 것은 사실이며 좀더 복잡한 모델은 
단순한 모델보다 현실을 잘 반영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성을 위해 경제성을 희생시키는 방식이다. 이 
방식을 더욱 밀고 나가면 결국 모든 패러다임과 이론을 거부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상반된 조류를 동시에 
껴안는 분열-통합 모델은 어떤 상황에서 한 조류가 득세하고 어떤 상황에서 다른 조류가 득세하는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우리 앞에 던져진 과제는 비슷한 지적 추상화의 수준에서 다른 패러다임들보다 세계 정치의 
조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증요한 사건을 설명해 주는 패러다임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 네 패러다임은 또한 서로 양립하기 어렵다 세계가 하나이면서도 동시에 근본적으로 동과 서, 혹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있을 수는 없다.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내전으로 갈갈이 찢겨 나가는 국민 국가가 국제 문 제 
이해의 단단한 초석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세계는 하나든가 둘이든 가 I84개국이든가. 아니면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수의 종족, 민족 집단, 국민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 이들 패러다임의 주장이다.
  세계를 일곱 개나 여려 개의 문명으로 이해하면 이런 난점의 상당수를 피할 수 있다. 이것은 단일 세계나 양분 
세계의 패러다임처럼 경제성을 위해 현실성을 희생시키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국가 패러다임이나 혼돈 
패러다임처럼 현실성을 위해 경제성을 희생시키는 방식도 아니다. 문명 패러다임은 증첩된 갈등들 중에서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가려내어 미래의 사태 발전을 예측하고 정책 입안가들에게 필요한 지침을 
제공함으로써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쉽고 지혜로운 분석틀을 내놓는다. 이것은 다른 패러다임들의 요소를 
받아들이는 데도 인색하지 않다. 다른 패러다임들과의 양립 가능성도 남달리 뛰어나다. 문명 패러다임이 주장하 
는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 세계에는 통합력이 현실로 존재하고 있으며 바로 그것이 문화적 자기 주장과 문명적 자기 의식의
저항력을 낳고 있다.
  * 세계는 어떤 의미에서는 양분되어 있지만, 그 중요한 구분선은 지금까지 주도권을 행사해 온 서구와,
자기들끼리의 공통성을 거의 갖지 않은 나머지가 세계를 가로지르고 있다. 간단히 말해서 세계는 하나의 서구와 
다수의 비서구로 나뉘어져 있다.
  * 국민 국가는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세계 문제에서 가장 증요한 배역을 맡겠지만, 국민 국가의 이해 관계 
결속, 갈등은 점차 문화적, 문명적 요인에 의해 규정된다.
  * 세계는 실제로 부족 갈등과 민족 갈등으로 점철된 무정부 상태에 있지만, 안정을 저해하는 가장 큰 위협을 
낳는 갈등은 상이한 문명에 속한 국가나 집단간의 분쟁이다 
  이처럼 문명 패러다임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비교적 간단하지만 지나치게 
단순하지는 않은 지도를 보여 준다. 가령 1993년 초반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48건의 분쟁 가운데 절반에 
조금 못 미치는 수가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들 사이의 갈등이다. 문명 패러다임을 받아들일 때 유엔 사무 
총장과 미국 국무 장관은 다른 분쟁보다 화전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한결 높은 분쟁에 평화 정착 노력을 
집중시킬 수 있을 것이다. 패러다임은 예측을 낳으며, 한 패러다임의 타당성과 유용성을 판가름하는 결정적 
잣대는 거기서 나오는 예측이 다른 경쟁 패러다임들의 예측보다 얼마나 정확한가 하는 것이다. 가령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사이에는 안보를 둘러싼 경쟁이 촉발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조성되어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처럼 허술한 국경선을 길게 맞대고 있는 강국들은 안보 불안에서 
긴장으로 치닫곤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이런 갈등 구조를 극복하고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도 있겠지만,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대단히 보기 드문 예가 될 것이다. "고 점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국가 패러다임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문명 패러다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긴밀한 문화적. 
민족적, 역사적 고리와 양국 국민의 어울림을 강조하면서, 동부 우크라이나의 정교권과 서부 우크라이나의 
연합동방카톨릭 (그리스 정교의 전례와 관습을 따르되 로마 교황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종파: 옮긴이) 사이의 
문명 단층선에 초점을 맞춘다. 미어샤이머는 장구한 뿌리를 갖는 이 중대한 역사적 사실을 통합된 단일 
실체로서의 '현실주의' 국가 패러다임을 따르다 보니 전적으로 무시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가 패러다임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가능성을 강조하는 반면 문명 패러다임은 그런 가능성을 희박하게 보고 오히려 
우크라이나의 분리 가능성을 점치며 문 화적 요인을 감안할 때 그 갈등의 양상은 체코슬로바키아보다는 
심각하겠지만 유고슬라비이처럼 유헐 분쟁으로 치닫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한다. 이런 상이한 전망은 다시 
상이한 정책을 낳는다. 미어샤이머는 국가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전쟁이 터지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점령할 
공산이 크다고 보았기 때문에 우크라이나의 핵무기 소유를 지지하는 입장을 취한다. 문명 패러다임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협력을 강조하면서 우크라이나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하고 우크라이나의 통합성과 독립성을 
견지할 수 있는 조치와 실질적인 경제 지원방안을 모색하도록 권유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붕괴에 대비한 
수습책 마련에 부심한다.
  냉전 종식 이후에 전개된 수많은 사태들은 문명 패러다임에 부합되며 그 패러다임으로부터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하다. 여기에는 소련과 유고슬 라비아의 붕괴, 이들 지역에서 벌어지는 전쟁,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왼 
리주의 종파의 부상,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러시아, 터키, 멕시코의 안간힘, 미국과 일본의 격화되는 무역 
분쟁, 서구의 이라크와 리비아 침공에 대한 이슬람 국가들의 반발, 핵무기와 핵무기 제조 수단을 입수하기 위해 
부심하는 이슬람 및 동아시아 국가들의 노력, 이단적 강대국으로서의 중국의 지속적인 역할, 일부 국가의 새로운 
민주 체제 정착 사례와 일부국가의 실괘 사례, 동아시아에서 확산되고 있는 군비 경쟁 등이 포함된다.
  새롭게 태동하는 세계를 문명 패러다임이 명쾌히 분석한다고 하는 사실 은 1993년의 6개월 동안 벌어진 
사건들을 반추해 보아도 알 수 있다 
  * 옛 유고슬라비아 지역에서 크로아티아계 이슬람계, 세르비아계가 벌이는 격화 일로의 전투
  * 보스니아 이슬람 교도에게 의미 있는 지원을 못 하고 세르비아의 야만 행위를 비난하엿던 것처럼 
크로아티아의 야만 행위를 비난하지 못하는 서방의 무능력
  * 크로아티아 내 세르비아계와 크로아티아 정부의 평화 협정을 촉구하는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안에 
동참하기를 거부하는 러시아와, 보스니아 이슬람 교도를 보호하고자 1만 8천 명의 병력을 제공한 이란을 비롯한 
이슬람국가들
  *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의 분쟁 격화와 아르메니아의 점령 지역 철수를 요구하는 터키와 이란, 
아제르바이잔 국경 지대에 투입된 터키 병력과 이란 병력, 이란의 행동은 분쟁을 악화시켜 분쟁을 국제전이라는 
위험 수위로 몰아넣고 있다는 러시아측의 경고
  * 증앙아시아에서 여전히 계속되는 러시아 군대와 무자헤딘(mujahedeen) 게릴라 사이의 전투
  * 문화 상대주의를 비난한 크리스토퍼(Warren Christopher) 미 국무 장관이 이끈 서방과 서구 보편주의를 
맹공한 이슬람, 유교 국가들의 빈 인권 회담장에서의 격돌
  * 남쪽으로부터의 위협에 대해 새로운 경각심을 갖게 된 러시아와 NAT0의 군사 전문가
  * 2000년 을림픽을 베이징이 아니라 시드니로 결정한, 거의 문명의 단층선을 경계로 양분된 표결 내용
  * 증국의 대 파키스탄 미사일 부품 판매와 잇따른 미국의 증국 제재, 핵 기술을 이란에 제공했는가의 여부를 
들러싸고 증국과 미국이 벌인 설전
  * 미국의 강력한 항의를 무시하고 김행된 증국의 핵무기 실험과 북한의 독자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 협상 거부 
  * 미국 국무부가 이란과 이라크 양국을 겨냥하여 이증 봉쇄(double contain-ment) 정책을 추구한다는 보도
  * 북한과 이란 혹은 이라크를 겨냥하여 두 개의 '중요한 지역 분쟁'에 동시 대처하는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겠다는 미국 국무부의 발표. 
  * '국제 문제에서 강력한 발언권을 보유할 수 있도록' 증국과 인도에 단결을 요청한 이란 대통령의 호소
  * 망명자의 자격 요건을 대폭 강화한 독일의 새로운 헌법 
  * 발트 해 함대의 배치와 기타 현안에 대한 옐친(Boris Yeltsin) 러시아 대통령과 크라프추크(Leonid 
Kravchuk)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합의
  * 미국의 바그다드 침공에 대한 서방의 사실상 전폭적인 지지와 서방의 '이중 잣대'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라며 분개한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들
  * 수단을 테러 국가 명단에 올리고 라만(Sheik Omarr Abdel Rahman, 미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지도자 
옮긴이)과 그 추종자들이 '미국을 겨냥한 도시 테러전' 을 획책하였다고 규정한 미국의 판단
  * 한층 높아진 폴란드, 헝가리, 체코, 슬로바키아의 NAT0 합류 가능성
  * 러시아가 서방에 합류해야 하는지 서방에 맞서야 하는지를 놓고 아직도 일반 국민과 엘리트가 확신을 못 
가진 '분열된' 나라임을 보여 준 러시아 의회 선거 
  냉전 초기에 캐나다의 정치가 피어슨(Lester Pearson)은 비서구 사회의 약동과 부상에 대해 통찰력 있는 
지적을 한 바 있다 '동양에서 태동하고 있는 이 새로운 정치 사회가 우리 서구인에게 낯익은 정치 형태의 
복사판이라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명 사이의 각축은 새로운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국제 관계는 '수세기 동안' 유럽 국가들 사이의 관계였다고 지적하면서 그는 가장 파급력이 큰 문제는 
단일 문명 안의 국가들 사이에서가 아니라 문명과 문명 사이에서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냉전의 양극 
구조가 장기화되면서 피어슨이 예견한 사태는 지연되었다. 냉전의 종식과 함께 그가 1950년대에 간파한 문화와 
문명의 위력이 표출되자 수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이 세계 정치에서 이런 요인들이 차지하는 새로운 역할에 
주목하고 그것을 강조하였다."' 여기서 브로델(Fernand Braudel)의 지혜로운 경고에 귀 기울여 보자. '오늘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특히 그 안에서 행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세계 지도를 펴놓고 오늘날 
어떤 문명들이 존재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고 그리하여 그 문명들의 경계선, 중심부와 주변부, 세력권과 그 안의 
분위기, 그 문명들 안에 존재하며 긴밀하게 연결된 일반적이거나 특수한 형태를 정의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오판이 생길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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