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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3/문화경제론

국제메세나회의

by Frais Study 2020. 7. 11.

일본의 기업메세나 협의회는 1995년에 창립5주년을 기념하여 <국제 메세나회의 ’95>를 개최하였다. 세계 27개국으로부터 참가자가 모인 이 회의의 주제는 <예술·문화와 기업메세나>였으나 부제인 <21세기의 전망>이 보여주듯이 세기말을 맞이하면서 위기에 직면한 메세나 운동의 타개책을 광범위하게 논의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 경제불황이 세계 여러 나라에서 메세나를 위협하고 있는 데다가 신질서를 모색하는 국제관계도 불안정하여 각국의 문화정책과 메세나의 하부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면서도 혁명과 전쟁의 20세기를 넘어서서 평화와 문화의 21세기를 구축하려면 메세나와 문화위기의 문제를 세계적인 관점에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식 또한 뚜렷하였다. 아울러 아시아의 시대로 예측되기도 하는 21세기의 서양과 비서양의 문화교류·교차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됨직한가 하는 문제도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이런 관점에서 국제적인 메세나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도 이 회의가 겨냥하는 주요 목표들 속에 들어 있었다.

첫날, 522(), 이 모임을 공동주최한 아사히 신문의 아사히 홀에서 개최된 국제문화회의는 일본 메세나협의회의 회장인 니시오 신이치 제일생명보험 회장의 개회인사와 토야마 아츠꼬 문화청장관의 축사, 그리고 평론가 가토 수이치 집행위원의 인사로 구성된 개회행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5주년 기념 강연들이 계속되었는데, 연사로는 시인이자 문예평론가인 오오카 마코토(일본), 사회학자이자 국립학제연구센터의 소장을 지낸 에드가 모랭(프랑스), 에드워드 사이드(미국 컬럼비아대학 교수), 영화감독 시 진(중국), 그리고 문화부장관을 역임한 이어령 교수(한국)가 초청되었다. 사회주의의 붕괴에 의한 <역사의 종언>, 그리고 미디어의 발달에 의해 정보가 즉시로 국제사회에서 공유되고 서양문명과 다른 문화가 융합하는 <지리의 종언> 이와 같은 종언과 더불어 새로이 시작하는 21세기에, 여러 나라와 지역에 고유한 문화는 어떻게 대립 또는 공존할 것인지가 이 기념강연들의 기조를 이룬 셈이다. 오오카 시인은 일본어의 <구루마>라는 말을 예로 들어 자기중심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를 피력했는가 하면, 이어령 교수는 21세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 한국의 <장구> 소리를 상징삼아 이질적인 요소들의 공존가능성을 설명하여 청중의 공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시진 감독은 일본의 남경사건을 거론하여 객석을 침묵케 하기도 했다. 모랭 교수는 우리 나라에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대단한 인물로 칭송받고 있는데, 그의 강연 다음 세계의 문화적 일치와 대립은 명성에 비해 내용이 별로 없어 실망을 안겨주었다. 이에 반해 문화들의 충돌인가, 정의(定義)들의 충돌인가를 논한 사이드 교수는 헌팅턴 등의 문명충돌을 냉전주의를 옹호하는 사고로 해석하는 입장을 선명하게 밝혀주어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러나 서울대학교의 서남 석좌강좌에 초청되어 강연키로 되어 있는 일정을 아는 필자로서는 그가 똑같은 제목의 강연을 일본에서 미리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착잡한 심정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다.

첫날 오후 5시 이후의 일정은 문화지원을 둘러싼 세계 각지의 상황보고로 채워졌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동아시아·일본 : 네모토 초베이(일본, 기업메세나협의회 전무이사)

서구 : 콜린 트위디(유럽 CEREC 부회장·영국 ABSA 사무국장)

동구 : 이온 카라미트루(루마니아, 연출가·배우)

동남아시아 : 니카노르 G. 티옹손(필리핀, 전 국립문화센터 부관장, 예술감독)

 

오늘날 메세나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고 있으나, 거기에 어떤 국제적인 합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말은 아무런 반대급부도 바라지 않는 기부에서부터 마케팅적 요소가 강한 협찬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형태를 포함한 예술문화지원 전반을 의미하는 상태인데, 영어로는 스폰서쉽이나 필란스로피라는 말이 더 자주 사용되는 편이다. 일본 기업메세나협의회는 이 모임을 위해 세계 각국 각지역의 예술문화지원의 최신상황을 망라한 자료집을 출간한 바 있는데, 각국 대표의 <문화지원을 둘러싼 세계 각지의 상황보고>는 이 자료집을 근거로 한 일종의 대표적인 사례보고인 셈이다. 물론 보고서의 집필자가 반드시 보고자로 나선 것은 아니지만, 그 내용상 대동소이하고, 많은 집필자들이 참가자로서 이 모임에 참여하여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실감케 해주었다. 이번 모임의 의의가 가장 두드러진 대목이라면, 이와 같은 네트워크 확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노력과 실력을 실감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가능하다면 이 보고서는 한국어로도 번역·소개됨직하다. 참고로 이 보고서에 수록된 국가들을 나열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유럽 :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그리스, 아일랜드, 네델란드, 스페인, 스웨덴, 영국, 러시아.

북미 및 대양주 :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아시아 :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한국, 말레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타일랜드, 베트남.

 

한국과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를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대체로 일본의 해외공관요원 내지 국제교류기금요원을 비롯한 해외관계 전문가들이 상황보고를 집필했다는 것이 흥미로운데, 동남아가 일본의 앞마당이라는 일반적인 지적이 실감되기도 한다. 중국은 별도로 자체보고서를 배분하였는데, 사회주의 경제체제 이후의 상황이 비교적 소상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일본의 상황> 역시 별도의 팜플렛으로 보고되어 있다. 네모토 교수의

<일본형 메세나의 특징과 과제 예술문화의 복권을 중심으로>라는 글과 <1993년 일본에서의 기업메세나의 현상 : ‘메세나백서 1994’로부터>라는 글, 그리고 <메세나대상 ’94>라는 수상기업 소개가 수록되어 있다. 네모토교수는 19945, 한국 기업메세나협의회 창립 기념 국제회의에도 참여한 바 있는데, 일본 기업메세나협의회의 기관지 메세나19호에는 김치곤씨(한국 기업메세나협의회 사무처장)와의 대담이 아시아의 예술과 문화지원의 현황을 중심으로 한 특집의 일환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특집에는 또한 한국을 대상으로 한 케이스 스터디도 수록되어 있다. 네모토 교수가 발표에서 한국 기업메세나협의회의 활동을 상대적으로 자세하게 소개할 수 있었던 것도 이와 같은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고 볼 때, 새삼스럽지만 국제적인 네트워크의 필요성이 느껴졌다.

이틀째인 523일은 하루종일 게이오플라자 호텔의 세 회의실에서 메세나가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를 둘러싼 세 개의 분과회와 종합토론이 이루어졌다.

1분과는 <기업경영에 있어서 메세나란?> 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기업은 본래 경제합리성을 추구하는 집단이지만, 근대적 합리주의 자체가 막다른 곳에 다다른 오늘날, 예술가와의 교류는 기업에 새로운 관점과 가치관을 가져다줄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이 핵심을 이룬다. 여기에서는, <기업의 또 하나의 사명 : 기업메세나가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기업문화의 가능성 : 메세나가 기업에 가져오는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예술에서 본 기업상> 등의 제목으로 각각 3명의 발표와 패널토의가 있었다. 필자가 참관한 제1분과에서는 정희자 대우개발 회장이 초대되어 한국에서의 메세나에 관한 역사적 회고와 대우의 메세나 활동에 대한 발표와 함께 세제를 둘러싼 문제를 제기했다. 대우는 아직 한국 기업메세나협의회에 가입하지 않았으나, 실무자로서는 이를 계기로 공동작업을 기대하는 듯하다.

2분과는 <사회와 예술 : 다문화 사회의 메세나는?>이라는 주제를 내세웠다. 기술진보를 배경으로 한 문명과, 개개 나라의 역사와 전통과 깊은 연관을 가진 문화는, 정보의 즉시화·세계의 무경계화가 급속히 진행하는 중에 여러 가지 문화들이 서로 유익하고 평화로운 공존을 즐길 수 있을지를 예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문제의식이 중심을 이룬다. , 날로 증가하는 다문화사회들의 출현을 앞에 두고 예술지원의 새로운 가능성들을 개척해 보자는 취지이다. 여기에서는 <예술은 퍼블릭 인터레스트인가?>, <다문화 사회화에의 대응>, 그리고 <금후의 문화정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등의 제목으로 각각 3명의 발표와 패널토의가 이루어졌다.

필자는 스코트 샌더스(미국 NEA 전미예술기금 부이사장), 오타 쇼코(극작가, 후지사화쇼난다이 문화센터 시민극장 예술감독), 그리고 미카노르 티옹손(필리핀)이 발표하고 토론한 제2분과를 참관했는데, 티옹손의 발언이 특히 흥미로웠다. 그는 필리핀의 민주화운동에 가담했던 경력을 배경으로 사회적 유익’(social benefit)을 판가름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날카롭게 따져 묻기도 했다. 또한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였던 역사와 여러 언어와 종족으로 흩어져 있는 필리핀의 현실 속에서 국민문화내지 국민적 정체성의 확립 문제를 의미있게 제기하였다. 오타는 <물의 정거장>이라는 작품으로 한국에서 공연을 가지기도 했고, 바로 1주일 전에는 김아라가 주도하는 한국의 극단(무천)을 자신의 극장에 초청하기도 했던 인연으로 필자에게는 구면이었다. 그의 발언에서는 그러나 대체로 예술을 사회와 연관시키지 않으려는 경향이 좀더 강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제3분과는 <멀티미디어시대의 예술>을 주제로 내세웠다. 여기에서는 <예술과 기술: 멀티미디어시대의 예술작품>, <멀티미디어가 예술문화에 가져오는 변용>, 그리고 <멀티미디어 사회에서의 기업과 예술>로 각각 2, 3명의 발표와 패널토의가 있었다. 특히 주제에 어울리게 각종 시청각 매체가 활용되어 이해를 도왔다. 점심이 다소 길어져 마지막 분과의 홍정국씨(일본 IBM 도쿄 기초연구소 네트워크 멀티미디어 및 매니지먼트 담당 차장)의 발표를 듣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IBM은 일본 국내에서도 여러가지 프로젝트에 손을 대고 있다는 것을 익히 들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으로 1986년부터 국립 민족박물관과 공동으로 수행해 오고 있는 세계의 민족문화의 종합적 데이터 베이스화가 있다. 이는 과거의 조사 수집으로 축적된 막대한 표본, 사진, 영상, 음성, 노트, 문헌 등의 여러 자료를 통합하는 멀티미디어 데이터 베이스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동화상의 취급이 최대의 포인트인데, 디지탈화하면 정보량이 정지화상의 수십 배, 수백 배라는 동화상을 어떻게 입력하고, 어떤 방법으로 데이터로서의 검색성을 높일까 여기에서 개발된 것이, 동화상의 자동인텍싱이다. , 장면(커트)의 차이를 컴퓨터가 자동검출하여 각 씬의 대표적 프레임(콤머)을 등록한다고 하는 이 방법에 의해 장면의 검색이 순식간에 가능케 된 것이다. 이 기술에 의해 동화도 정지화도 같은 모양으로 상호작용적인 데이터 베이스가 된 것이다.

메세나라는 개념이 아직 세상에 정착되지도 않았던 시대로부터 인류의 유산이라고 할 만한 문화재를 차세대에 전하는 국가차원의 계획에 기여해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은 이 기관을 대표하는 홍정국씨는 언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 자신을 포함하여, 아직 이공계의 발상으로 컴퓨터를 쓰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부터는 컴퓨터가 일반사람과 예술가들에 의해서도 조작 가능하고, 간단하고도 유연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탐구해볼 만하다.” 가까운 장래에 인터넷과 같은 국제적인 통신망이 일반 가정에까지 보급될 시대가 올 것인데,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쉬운 컴퓨터가 추구될 만하다는 것이다.

3분과의 각 발표자 발언요지가 인쇄물로 준비되어 있지 않아 참관하지 못한 부분에서의 내용이 자못 궁금하다. 종합토의 내지 보고의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대체로 상식적인 선에서 발언들이 이루어진 듯 싶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임의 의의가 축소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협의회를 출범시킨 지 1년여밖에 안되는 한국으로서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메세나 운동단체들의 대표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 얼굴을 익히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는 것은 후일의 활동을 위해서도 대단한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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