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시아에서 문화사업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적어도 이 지역을 대표하는 중국, 한국, 그리고 일본 세 나라의 상황을 각각으로, 또는 서로 비교하여 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나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다 어느 하나도 제대로 담지 못할 수도 있겠기에, 여기에서는 일단 비교적 외부에 그 사정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국의 경우에 한정키로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중국은 물론 신중국이다. 말하자면, 사회주의 건설의 역사적 과정과 함께 진행된 문화사업 지원의 실태가 관심 대상이 된다. 물론 여기에도 두 단계가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으로부터 문화대혁명 종결까지의 약 30년간이다. 이 단계에서 중국은 줄곧 사회주의 계획경제체제를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문화사업도 정부의 고도집중적인 통일계획과 행정관리 아래 놓여져 있었다.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 전시관, 대중예술관, 노동자문화궁, 소년아동문화궁; 극단, 악단, 가무단, 예술단, 잡기단; 예술대학, 예술학교, 예술연구기관, 문화예술적 사회단체; 출판사, 통신사, 신문사, 방송국, 텔레비전국, 영화촬영소 등의 전 문화기구와 문화단체는 국가가 통일관리하는 사업단체로서 중앙정부 또는 지방정부는 그것들에다 계획적으로 경비를 나누어주었다. 작가, 예술가, 배우, 기자, 편집자 등 여러 문화인은 모두 국가공무원으로서 국가가 일정한 조건과 표준에 입각하여 저들에게 급료를 지불하고, 나아가 주택의 무료배분과 공비의료 등의 복지도 누리게 했다. 공연, 경연, 축제일의 이벤트, 영화감상 또는 일상적인 문화오락 활동도 주로 정부 주최로 행해져 왔다. 이처럼 고도로 집중된 계획경제체제는 일정한 역사적 조건 아래서는 분명히 문화사업 발전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부가 이처럼 모든 것을 끌어안는 것에 의해 나라 쪽은 무거운 재정부담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되고, 문예단체로서는 국가경비에 기대는 의존의식이 양성되고, 일부에서는 균등주의와 ‘악평등’의 사상도 조장되었다. 이로 인해 문화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의 적극성과 창의성의 동원이 저해될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현재의 중국은 계획을 강조하고 시장의 요소를 무시하는 것이 문화예술사업의 발전에 불리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기에 개혁개방정책을 실시해온 이 십수년간은 앞서와는 다른 단계로 구분된다.
제2단계에서 계획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로 바뀌면서 중국의 정치, 경제와 사회구조는 일련의 중대한 변혁을 일으키고 있다. 이에 따라 문화사업의 관리체제도 국가의 고도집중 경영관리로부터 국가, 집단, 개인의 공동 경영관리로 전환되었다. 문화시장의 수급관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연구하지 않는 등 낡은 관념과 현상은 상품경제가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것과 연결되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보였다.
중국이 이처럼 신구사회체제의 교체시기에 이르러 시장경제체제도 차츰 확립되어 가면서, 상품경제의 마이너스 면이 문화산업에도 거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중국은 이제 대규모적인 기본건설을 추진해가면서 나라의 재정이 주로 경제 발전에 투입되고 문화사업에 대한 투자가 날로 줄어드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많은 문화예술단체, 특히 민족예술, 고급(중국인들은 이를 ‘高雅’라고 한다) 예술에 종사하는 단체는 차츰 경비가 여의치 못해 뒤를 잇지 못하고, 드디어 정체와 부진의 위기 상태에 직면하고 있다. 예컨대, 고급예술의 창작과 공연은 자금이 꽤 소요되지만 수익은 몹시 낮다. 한때 예술단체 사이에서는 “많이 공연할수록 손해도 크고, 적게 공연할수록 손해도 작다. 공연이 없으면 손해도 없다”(多演多損, 少演少損, 不演不損)는 말이 떠돌 지경이었다. 그런 중에 사회 각계 특히 실력과 전략적 식견을 두루 갖춘 기업이 문화사업에 대해 지원하기 시작했다.
최근 수년래 중국의 사회 각계, 주로 기업계, 또는 홍콩, 마카오, 대만의 화교와 외국의 친구 및 우호단체 등에 의한 문화사업 지원은 그야말로 우후죽순격으로 발흥하여 중국 문화사업의 번영과 발전을 촉진하고 있다. 기업의 동기에서 본다면, 사회적 책임감일까, 스스로의 문화이미지를 높인달까, 아니면 기업의 지명도를 높이기 위한달까 의식적으로 문화단체와 문화활동에 자금과 물질의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특히 1995년부터 문화사업에 대한 지원은 주로 다음의 방식을 취해 왔다.
(1) 장기 무상찬조
이는 기업이 특정한 문화단체에 장기적으로 정액의 경비를 찬조하는 것이다. 예컨대, 상해 증권교역소는 중앙악단에 매년 250만 유엔(元) 이상의 자금을 제공하여, 그 사업발전에 사용케 한다. 또 북경 동력제빙설비회사는 중앙 희극학원에 매년 100만 유엔의 자금을 무상으로 제공하여 교육자금 부족에 보조한다. 또한 당산 부호실업총회사는 5년간에 300만 유엔의 자금을 중앙가극원에 제공하여 가극사업에 사용한다.
(2) 특정원조
이는 기업이 어떤 대형 문화이벤트 또는 문화단체에서 행한 특정한 문화활동에 찬조하는 것이다. 예컨대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예술제, 기념활동, 축전, 스포츠대회 등을 개최할 때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원조한다. 중국에 있는 캐나다 다국적회사 북방전심회사는 1995년부터 1996년까지 1년간 25만 달러의 자금을 내어 중앙악단의 훈련과 연주회를 위해 외국의 유명한 지휘자 초빙에 사용할 것을 계획했다. 최근 이 자금으로 독일 지휘자 한스 프림 풀그라드씨를 두 차례 초청하여 고전명곡연주회를 개최, 호평을 받았다. 또 중국 가덕 국제옥션주식회사는 북경성 건축 3,040주년 기념 활동과 문물복구를 위해 북경시 문물국에 50만 유엔의 자금을 무상으로 원조했다.
(3) 문화단체와 기업의 평등호혜관계
이는 기업이 문화단체를 찬조하고, 그 대신 문화단체가 기업에 공연으로 보답하는 것이다. 예컨대 호북성공상 은행은 1992년 이래, 매년 예술창작자금으로 호북성가무단에 10만 유엔의 자금을 원조해왔다. 이에 대해 가무단은 당 은행에 소속된 지국 직원에 대한 위문으로서 매해 8회에서 12회까지 무료공연을 한다. 이에 의해 가무단의 자금부족을 해결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기업직원의 문화생활도 풍부해진다. 상해 용휘실업유한회사는 북경 경극원과 협력하여 매란방경극단을 성립시켰다. 회사는 매년 극단에 40만 유엔의 자금을 원조하여 극단의 일상운영자금을 보증하고 있다. 그 조건으로서 극단은 매년 매란방 유파의 경극을 적어도 100회 이상 공연하지 않으면 안된다. 상해 신아약업회사는 상해 아동예술극원과 함께 <중국 복리회 아동예술극원 신아약업 아동극단>을 창립했다. 이를 위해 신아약업콘스는 매년 극원에 30만 유엔의 자금을 지원했다. 그 대신에 새로 창단된 신아약업 아동극단이 매해 이 이름으로 최소한 100회 이상의 공연과 한 개의 새로운 레파토리를 상연키로 규정되어 있다.
(4) 기업의 문화단체 경영 내지 관리에의 참여
기업에 의해 문화기구와 예술단체가 경영되면서도, 정부에 속하는 전문예술단체적 성질은 변하지 않고 있다. 예컨대, 해남성 삼아시 가무단, 잡기단, 예의작법표연단 등 7개 전문 예술단체가 각각 대남, 홍콩, 마카오 투자집단, 대동해 여류센터, 해남시 연초총회사, 기린대주점, 야금삼아 리조트촌 등 6개의 경영실력을 갖춘 기업에 의해 경영되고, 삼아시 문화국에 의해 협조관리되고 있다. 이로써 예술단체는 ‘기업경영, 정부관리’라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심천중달회사는 광주시 문화예술가연맹과 계약해서 1993년부터 연맹에 속하는 《광주문예》라는 월간잡지의 경영을 인수, 모든 비용을 담당, 잡지의 총체적 정책결정부터 구체적 경영까지 장기적이고 실질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강한 경제적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광주문예》는 일류 순수문학잡지를 만들자는 목표를 달성, 원고료를 폭넓게 인상시키면서 질도 크게 향상됐다.
(5) 예술기금의 설립
이는 고급예술의 발전을 장려, 지지할 목적으로 기업이 자금을 지출해서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예컨대, 상해 보산철강회사는 뛰어난 예술품을 만든 예술가들을 포상하기 위해, 1,000만 유엔의 자금을 지출해서 고급예술 장려기금을 설립했다. 1994년 2월, 제1회 수상식때 180만 유엔의 금액으로, 연극, 영화, 음악, 춤 등 예술분야에서 걸출한 인물과 우수한 예술작품을 장려했다. 사천성 자공시에 있는 33개의 기업은 48만 유엔의 자금을 공동지출, <자공시 문화예술 창작발전 기금회>를 설립했다. 이는 중국의 기업에 의해 창설된 최초의 문화사업 지원단체이다. 이 기금은 주로 중점적 레파토리의 창작과 공연을 지원하고, 뛰어난 공헌을 한 예술단체, 개인, 그리고 작품을 장려한다. 기금회 성립 이래, “기업은 예술의 번영에 협력하고, 문화는 기업 발전을 촉진한다”는 취지에서 현지 문화사업의 발전에 일련의 탁월한 성과를 얻어, 각 방면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 기금의 최대 투자는 천극(川劇) <중국의 황녀 두란염>의 창작과 공연이었다. 이 극은 전문가에 의해 높게 평가되었으며, 1994년에 중국 소백화월극 예술제에 출연, 2개의 금메달과 2개의 은메달, 그리고 한 개의 동메달을 수상했다.
이처럼 엉성하게 정리된 사정만으로 보더라도, 기업의 문화사업에 대한 지지는 적극적이며 성과도 얻고 있다. 그것은 문화사정의 번영과 발전을 크게 촉진했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는 항상 적극적으로 지지, 격려하는 자세를 취했다. 강택민 주석은 몇 번씩, “사회는 고급예술을 필요로 하는 만큼 사회 각계가 이에 지지를 보낸다”고 강조했다. 1994년 말 강택민 주석은 매란방, 주신방 양인의 탄생 100주년 기념행사에서 예술가들과 좌담회를 가졌다. 여기에서 강주석은 “사회 각 방면의 민족예술 창작과 공연의 지지를 제창해야 한다. 지금은 문화체제개혁의 발전과 사회의 지지에 의해 민족예술의 발전을 위한 편하고 좋은 환경과 조건을 만드는 일을 좋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부장 유충덕도 1994년 상해 증권교역소와 중앙악단의 지원 계약조인식에 출석, 정부의 지지와 승인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좀더 향상된 협력관계를 위해서는 첫째, 관계법규를 제정하고, 기업의 문화사업에 대한 지원활동을 법률화하는 관리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현재로는 <중화인민공화국 기업소득세 잠정조례> 중에 “세납인의 공익, 구제적 기부는 연도내 납세해야 할 금액의 3% 이내의 부분을 과세하지 않는다”라는 규정이 있을 뿐이다. 둘째로, 기업문화사업 지원협회, 기금회의 창립이다. 중국에는 사단법인 기업메세나협의회와 같은 조직이 아직 없다.
요컨대 중국은 사회주의 건설 단계에서 이룩된 토대 위에 개혁개방정책에 힘입어 성장하는 기업이 문화사업에 제대로만 투자한다면, 상품경제와 시장체제가 조화되어 새로운 기상으로 문화사업의 발전에 활력을 주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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