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udy 3/문화경제론

기업의 문화적 공헌과 과제

by FraisGout 2020. 7. 11.

기업문화의 두 가지 구별

기업문화를 무엇이라고 보느냐는 사람에 따라 일정하지 않다. 이 장에서 필자는 일단 일본 교토대학의 이케가미쥰(池上淳) 교수의 견해로부터 시작하고자 한다. 그를 택한 이유는, 일본 안에서 기업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던 중에 19923월 문화경제학회 일본이 결성되었는데, 이케가미 교수는 부회장이라는 형식적인 직위에서 뿐만 아니라, 이 학회의 실질적인 업무추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일본에 있는 동안 창립회원으로 가입한 이 학회는 세계문화경제학회의 일원으로서, 기업문화에 대한 세계적인 이해와도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케가미 교수가 쓴 문화경제학의 권장(池上淳, 文化經濟學のすすめ, 東京, 1991)이라는 작은 책자가 19914월에 출판되자마자 한 달만에 2쇄를 찍는 등 제법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도 일단 그를 안내역으로 삼은 이유 중의 하나다. 다시 말해서, 이케가미 교수의 견해는 일단 세계와 호흡하면서 형성되고 있는 일본에서의 기업문화에 대한 이해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일본의 경제가 발전하는 중에 사기업(私企業), 즉 영리를 첫째 목적으로 행동하는 비즈니스를 위한 주식회사 조직들은 예술문화와 그 관련사업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른바 코포레이트 아이덴티티가 비즈니스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이 시작되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거인 셈이다. 1987년에 도쿄도가 실시한 조사에 의한다면, 대상으로 한 555회사 중 약 절반에 이르는 47%의 기업이 무엇인가 문화활동을 하고 있고, 그 중 5%가 이른바 기업의 이름을 단 관() 공연 등의 전문적인 예술공연을 주최하고 있다. 가장 많은 것이 문화이벤트의 실시와 지원인데, 지역교류 이벤트, 연구지원 육성사업 등 사회캠페인, 출판활동, 스포츠진흥사업 등이 이에 이어진다. 문화이벤트는 콘서트나 미술전시회 등이 주가 되지만, 연극이나 뮤지컬 등도 약간 포함되어 있다. 민간조사에 의하면 기부 이외에도 광고비, 판매촉진비, 홍보비 등의 형태를 가진 사기업의 예술문화 관계 지출은 같은 해에 776억 엔에 이르렀다.

이런 각도에서 보면 기업문화는 곧 사기업이 예술문화 관련사업에 참가하는 활동을 말하게 되는데, 그 활동의 내용에서는 다시금 뚜렷하게 구별될 수 있는 두 가지 전략적인 자리매김이 가능해진다.

 

비즈니스로서의 기업문화

첫째는 비즈니스로서의 기업문화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직접적으로 판매를 촉진하고, CI 등에 의해 소비자나 고객에게 기업이미지를 인상지어주고, 예술문화를 새로운 투자영역의 비즈니스로서 자리매김하는 경우이다. 이 모든 활동은 기업이 소비자의 욕구수준이나 문화수준의 상승에 대응하면서 이윤을 추구하려고 할 때, 피할 수 없는 경영전략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고도 대중소비 사회에서 좀더 편리하고 질이 높은 상품을 찾는 소비자 욕구의 고도화는 하나의 피할 수 없는 경향으로서, 각 기업에 대해 전략변경을 촉구한다. 말하자면 높은 부가가치를 지닌 상품이나 고도의 서비스가 요구되고, 디자인 등의 복제와 대량보급이 가능해진 가운데 색채, 형상, 인상, 영상 등의 다양한 요소가 기업이미지에 영향을 주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환경에 적합한 제품을 만들고 있는가의 여부, 또는 소비자의 문화적인 생활에 대한 이해를 나타내고 있는가의 여부가 기업평가의 주요 항목으로 자리잡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는 사기업이 문화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것이다.

 

본래적인 기업문화

다른 하나는 본래적인 기업문화라고 할 만한 것으로서, 예술문화의 창조나 보급에 대한 순수한 후원자(patronage)나 직접적인 영리목적을 도외시하는 봉사 또는 사회적 공헌(philanthropy)이다. ‘필란스로피란 라틴어의 Philanthropia로부터 온 말로서, 본래의 뜻은 인류를 사랑한다이다. 특히 인간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라는 뜻으로 사용된 경우가 많은 단어이다. 영국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어 온 필란스로피의 의미는 두 가지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진다. 예컨대 1934년에 초판이 나온 엘리자베스 맥카담의 새로운 필란스로피라는 책에 의하면, 그것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지닌다.

(1) 선의에 근거한 기부금이 전체 지역사회에 편익을 가져오도록 사용되는 경우, 도서관과 미술관 등 예술문화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필란스로피가 이에 해당한다.

(2) 건강, 교육, 주택, 구빈(救貧) 등의 분야에서 주로 유산계급의 기부가 저소득층을 향하는 경우이다. 이런 영역은 정부 및 자치체가 행하는 여러 가지 사회 서비스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왔다.

인간복지에 예술문화의 영역과 사회 서비스의 영역을 함께 포함시키고 있다는 지적은 대단히 흥미깊은 것으로서, “사람답게 산다는 말의 뜻을 잘 말해 준다고 할 것이다.

요컨대 후자, 즉 여기에서 본래적인 기업문화라고 해석된 활동은 사기업이 사회사업에 참가함으로써 국민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다한다는 뜻을 갖게 된다. 물론 필란스로피라고 해도 긴 안목에서 보면 사기업에의 신뢰감이나 지위를 높여 이윤의 극대화나 시장점유율의 확대에 플러스가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란스로피가 기업이윤에 제공하는 공헌이란 어디까지나 직접적인 효과가 아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예술문화의 창조와 향수능력의 향상을 지원하고, 이에 의해 공익에 공헌한다는 평가기준에 충실해야 한다. 공공적인 입장에서 문화정책이 대상으로 삼는 것은 이와 같은 의미에서 본래적인 기업문화라고 이케가미 교수는 못박고 있다.

 

본래적인 기업문화와 세제

필란스로피의 형태는 다양하지만, 전형적인 방식은 공익법인 등과 같이 공적으로 인가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단체 또는 지방자치단체나 정부의 기부로서, 미국을 비롯한 고도 소비사회에서는 그것이 이윤으로부터 나가는 지출일지라도 일정한 한도 내에서 이를 기업의 경비로 인정하고, 결과적으로 감세 대상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예컨대 정부나 자치단체가 조세를 출자금으로 지출하여 예술문화진흥기금을 설치하고 이에 공익법인의 자격을 인정했다고 하자. 나아가 이 기금에 대해 다수의 사기업이 면세에 따른 기부를 하고, 스스로를 정부와 함께 후원자의 위치에 놓았다고 하자. 그 경우 이 기금의 운영은 예술문화의 전문가와 각 영역의 단체로부터 추천되어 정부나 재단에 의해 임명되는 위원회에 맡겨진다. 이처럼 면세조치에 따른 사기업으로부터의 기부금은, 면세조치가 없었다면 조세로서 국고로 들어갔어야 할 돈을, 면세라는 인센티브에 의해 문화진흥을 위한 공익 법인으로 끌어들인 셈이다.

이렇게 끌려든 돈은 본래 조세가 되었어야 할 것이었기에 공익법인은 미리부터 지정된 목적(예컨대, 문화사업에의 지원) 이외에는 지출할 수 없다. 정부는 면세조치로써 재단에 문화사업을 위임한 것과 마찬가지 결과가 된다. 돈이 공익재단에 의해 교향악단이나 극단의 보조금으로 배분되었다고 한다면, 이는 정부로부터 나온 보조금에 의한 지출과 기본적인 차이가 없다. 사기업은 법인세 등의 조세를 지불한다는 방법뿐 아니라 면세에 따른 공익법인에의 기부로써 지역사회나 예술문화계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다한 것이 된다. 바꾸어 말한다면, 사기업의 사회적 책임수행을 위해 국민이나 지역사회는 두 가지 방법을 제시한 셈이 된다.

하나는, 기업과세에 의한 세금을 정부로 하여금 거두어들이게 하고, 그 사용을 정부에 맡기는 경우이다. 정치가나 관료가 믿을 만하고, 자금의 용도에 대해 방황의 여지가 없을 만큼 확정된 규칙이 있다면, 이 방법이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치가는 이권을, 관료는 기득권을 고집하는 것이 상례임은 딱히 일본사회에서뿐만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예상될 경우, 기업이 법인의 이윤에 대해 과세되는 법인세를 지불하여 그 처분을 정부에 맡겨 버리든가, 그렇지 않으면 필란스로피로의 지출을 기업경비로서 간주하고, 과세대상이 되는 금액(법인의 이윤)에서 공제하는 것을 세무서가 인정하는 제도를 정비하여 필란스로피로의 지출을 늘리든가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배려가 요청된다. 이 경우, 문화나 복지의 영역으로서는 정부기관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 것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공적 자금을 문화나 복지에 우선적으로 배분하는 결과가 된다.

 

법인세냐, 필란스로피냐

말하자면 기업은 법인세 지불이냐, 필란스로피로의 지출이냐를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 서게 된다. 필란스로피에 의해 충실을 기대할 수 있는 영역은 반드시 예술문화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 비해 예술문화 부분이 현재로서는 상당히 열악한 환경 속에 놓여 있고, 특히 공연예술의 경우,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생존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으므로 음악가, 교향악단, 배우, 극단 등의 단체나 개인의 창조활동을 강화하려는 큐레이터 내지 프로모터들은 공익법인이나 기금의 유효적절한 운영에 큰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상대적으로 공익법인이나 기금 쪽에서는 큐레이터의 전문성을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우수한 평가시스템을 갖추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이상적으로 말해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경쟁적으로 문화예술의 큐레이터를 지원한다고 할 경우, 이는 국민들에게 몇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한다.

하나는 문화영역에의 공공서비스 시스템을 개선하여 관료적인 경직화를 방지하고, 행정의 문화관계 수요에 대한 유연하고 적절한 대응을 추진하게 될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필란스로피로서의 기업문화의 충실을 면세조치에 의해 뒷받침함으로써 문화정책의 구성요소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런 제도가 정비되면 문화정책에 대한 사기업의 공헌 뿐만 아니라, 개인의 기부나 출자도 마찬가지 기능을 다할 것이 기대된다. 여기에는 문화를 애호하는 개인이 기업의 협력을 얻으면서 문화재단이나 문화관계자 협동조합을 설립했을 경우, 가계로부터 기부나 출자를 위한 지출이 사기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과세대상 금액에서 공제가 인정된다면, 개인 기부가 문화관계기금 등으로 비약적으로 증대되리라는 기대가 표현되어 있다. 국민의 영세한 기부를 정부가 세제로 지원하여 만들어내는 문화예술 진흥기금이야말로 장기적이고 안정된 예술문화 지원기금이 되리라고 보는 이케가미 교수의 견해는 기본적으로 문화향수자의 협동조직과 큐레이터의 협동조직의 공정한 계약관계를 주장한 러스킨의 문화경제론에 맞닿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상론은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하고, 예술문화의 영역에서 볼 때 조세제도나 공익법인 등의 설립인가에서 일본의 현행세제에 개혁의 여지가 많다는 그의 주장 쪽으로 시도를 옮겨보도록 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 일본에서는 문화예술 관계의 공익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출자해도 그것이 이익의 처분으로 취급되어 결과적으로 면세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발족시의 기금액도 1억 엔 이상인 경우가 많아 이해 내지 동조하는 사람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고, 기업의 지출액에도 과세당국으로부터 비용으로 인정되어 과세대상에서 공제될 수 있는 금액이 상당히 엄격하게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일본에서는 개인이 가계 중에서 문화나 예술관련 공익법인이나 기금, 또는 협동조합에 기부한다든지 출자한다든지 해도 이 지출금액을 연말조정이나 신고납세에 있어 연간 과세대상 소득에서 공제하고 면세조치를 받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문화에 우선순위를 두어 사회자원을 우선적으로 배분하려면 해마다 국가예산 편성에서 문화영역의 예산배분을 늘림과 동시에 기업이나 가계로부터의 필란스로피를 장려하여 국민 스스로가 문화를 지탱한다는 긍지와 자신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환기에 선 문화정책

이케가미 교수는 일본이 지금 종래의 수출 제일주의 산업정책에 대한 국내외로부터의 압력 때문에 내수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려 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높은 질의 예술문화를 창조하고 그것을 향수할 수 있는 국민을 만들어 내는 일에 국내자금을 활용할 것인가, 아니면 높은 토지대금과 무계획한 빌딩이 빼곡 찬 도시와 지역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고 보면서 이케가미 교수는 당연히 전자를 권장한다. 중심지에 쾌적한 문화 하부구조가 완성되고, 국제적으로 많은 예술가와 젊은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창조를 위한 약동에 의해 새롭고도 높은 삶의 질을 찾는 욕구가 높아졌다고 하면, 그것은 소비자의 문화 향수능력의 고양을 매개로 자연환경과 조화되는 생활양식 뿐만 아니라, 주택의 질을 바꾸고, 도시의 설계를 바꾸며, 모든 제품과 서비스와 사회체제를 개선하려는 열의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꿈꾸는 이 재정학 교수는 그것들이 내수 확대를 위해 유력한 자극이 될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한다. 여기에는 문화적인 공개공간과 개인생활의 교류가 급기야는 신기업이나 관청의 사무실이나 공장의 시스템 및 시설에도 새로운 문화를 끌어들여 인간이 쾌적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들고자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작용하고 있다. 그는 그때야말로 필란스로피로서의 기업문화가 비즈니스로서의 기업문화와 새롭게 교류하고 비즈니스 자체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인다.

이쯤에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예술문화 진흥과 관계된 일본의 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이를 우리의 세제와 비교하면서 문화정책의 한 단면을 세련시킬 수 있는 작업에 들어서야 할 것이나, 앞에서 이미 일본의 세제 소개는 이루어졌으므로 생략하기로 한다. 다만, 세제개혁은 하나의 필요조건일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일 수는 없다는 결론만을 덧붙이기로 한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세제개혁이 참으로 문화예술 진흥을 통한 삶의 질향상에 도움이 되려면 문화예술이 추구하는 가치, 곧 인간적 가치에 대한 존중이 국가 사회의 진정한 관심사가 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되면서 대통령직을 사임한 바츨라프 하벨의 입장은 참으로 괄목할 만하다.

그는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요소를 문화라는 총체적 개념 속에서 파악하면서, 사회 전반의 문화향상을 그의 정치이념으로 삼는다. 필자는 인간존엄성의 실현은 단순히 경제발전을 통해서가 아니라 총체적인 문화운동으로서만 가능하다는 그의 진단에 동의하면서, 다만 이와 같은 문화운동에 기여하자면 문화예술 역시 단순한 만을 목적으로 삼는 수준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라는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가 활용한 문화운동이라는 개념이 그의 의도와는 달리 공산주의를 폭력혁명에 의해 실현시키고자 했던 집단에 의해 오염되고 말았던 반면, 그러한 폭력혁명에 동조하는 선동·선전의 도전은 바로 를 목표로 한 전통미학으로부터 그 구실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일본 기업의 문화공헌

필자는 이제 앞에서 이루어진 설명을 바탕으로 주로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볼 수 있는 기업의 문화적 공헌이 갖는 의의와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전반적인 상황을 최근의 자료를 활용하여 다시 한번 요약해 보기로 한다.

일본 총리부가 발표하는 계속적인 통계에 따르자면 마음의 풍요를 중시하는 비율1970년대 후반부터 상승했는데, 이와 같은 국민의 잠재적 문화적 필요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바로 일본 기업이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유통 및 식품기업에 의한 문화이벤트와 음악을 주제로 한 무대예술 원조가 성행했다. 이른바 기업명을 내건 관() 콘서트였다.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기업 재단의 설립이 연이어지고, 지원형 재단의 횡적인 조직도 문화청의 지도로 마련되었다. 일본 사람들은 이를 조성형(助成型) 재단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기업의 선전으로부터 거리를 취한다. 이와 동시에 기업이 물주가 된 극장·홀 등의 건설도 이루어지면서 홀이 자주사업 뿐만 아니라 특정한 문화예술 단체와 수년간에 걸친 계약을 체결, 계속적인 활동을 행하는 경우도 출현했다. 이를 일본에서는 프랜차이즈(franchise) 제도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는 미국에서는 주로 개인 또는 회사에 주는 특허나 특권을 뜻한다. 나아가 사업 기반의 안전성과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복수의 기업을 연계하는 오피셜 서플라이어 조직 등의 새로운 고안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과 예술의 상호관계를 살피려 함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기업메세나협의회의 결성인데, 이는 정부의 예술문화 진흥기금이 설립된 것과 같은 해인 1990년의 일이다. 문화옹호 메세나 이념의 보급, 원조를 필요로 하는 예술문화단체의 정보 수집 및 기업제공, 조사·연구 등을 행하며, 정회원과 준회원을 합해 215 회사단체(1992년 현재)가 가맹하고 있다. 거기에서 발행한 메세나백서 ’92(1992. 8.)라는 책자를 살펴보면, 일본에서의 기업문화 활동의 실체가 좀더 뚜렷하게 눈에 들어오는데 그 개요를 적어보기로 한다.

1992년도 판을 위한 조사대상은 상장기업과 주요한 외자계기업 등 모두 2,623사로서, 협의회는 455통의 회답을 얻어냈다. 메세나 활동을 실시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대해 전체 응답회사의 56.3%, 256개사가 그렇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전년도 조사의 42.7%에 비해 2할 이상 증가한 것이다. 이를 경리이익과 관련시켜 보면 경리이익이 높아질수록 메세나 활동을 실시하는 기업이 증가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이와 같이 메세나 활동을 실시한다고 대답한 회사 중에 구체적인 지원기준이 있다는 회사는 불과 57개사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없다는 회사 143개에 비하면 아주 떨어진다. 다시 말해, 전체적으로 볼 때 지원이 아직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지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메세나 활동의 담당부서에 관한 질문과도 연결되는데, “전임부서는 없으나 담당부서는 정해져 있다40.2%이고, “담당부서가 복수이다32.4%, “전임부서가 있다19.9%이다. 체계적인 지원이 가능해지려면 책임 있는 전임부서가 있는 쪽이 바람직할텐데, 그렇지 못한 실정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메세나 활동을 주도하는 사람도 사장(38.3%)이나 회장(13.7%), 또는 담당임원(16.8%)일 경우가 더 많다. 담당부서가 결정하는 경우는 41.0%로서 이에 못미친다. 그러나 이는 전년도에 사장이 수위를 차지했던 것과 비교한다면, 다소간 전문성을 높여 가는 경향이 증가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가장 높은 공연예술 지원

지원활동의 내용은 음악·뮤지컬로부터 미술, 출판에 이르기까지, 또한 문화강연 심포지엄으로부터 조사·연구에 이르기까지 극히 다양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음악·뮤지컬이 450여 건으로 가장 많은데, 여기에다 연극·인형극, 발레·무용, 민족예능, 그리고 영화와 비디오까지 합하면 공연예술과 연관된 부분이 단연 압도적이다.

음악·뮤지컬의 경우 그 내용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오케스트라(162), 오페라(49), 실내악(87), 독주회·독창회(57), 합창(40), 뮤지컬(25)의 순서다. 이것들을 장르별로 분석해 보면 클래식(264), 현대음악(34), 국악(8), 민요(8), 동요(19), 민족음악(7), 그리고 재즈··뉴뮤직·샹송·가요곡 등 대중음악으로 되어 있다.

지원대상 또는 목적에 따라 나누어 본다면, 기성예술가 지원(125)이 청년예술가 지원(78)보다 단연 많다. 단지 아마추어 지원(57)이나 청소년육성(54)까지 합친다면,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혀졌다고 말할 수 있겠는데, 이 밖에도 감상자의 계발(104)을 위한 지원도 적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이와 같은 지원활동을 위해 지출된 액수는 회답기업의 합계가 253억 엔 정도이다. 한 회사가 평균적으로 1.4억 엔을 지출한 셈인데, 실제로는 1천만 엔에서 5천만 엔 미만이 제일 많고, 그 다음이 1천만 엔 미만이다. 따라서 1억 엔에서 5억 엔 미만이라는 고액 지원은 순서상 제일 떨어진다. 일본 전체로는 약 600800억 엔이 기업의 문화지원 활동에 소요된 것으로 추정하는 통계도 있다.

이와 같은 액수의 지출마저 예산이 특별히 정해지지 않은 상태(57%)에서 지출되는데, 이는 조직적인 차원에서의 체계미비와 맞물려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전회의 조사와 비교하면 예산이 결정되어 있다”(40.3%)는 쪽이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메세나 활동비의 재원으로는 선전광고비가 제일 많아 49.2%를 차지하고 있다. 그 밖에는 기부금 46.9%, 홍보비 18.4%, 일반관리비 16.0%, 문화사업비와 재단조성금이 각각 12.9%로 되어 있다.

이상은 일본 기업메세나협의회의 백서 ’92를 요약해 본 것이지만, 일본에서의 문화이벤트 정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 피아종합연구소가 펴낸 문화이벤트 데이터 파일도 비슷한 결과를 알려주고 있다. 이에 따르자면, 1992년의 수도권(16)에서 개최된 음악 이벤트는 약 7,500, 연 수용인 수 1,500만 명 규모이고, 연극이벤트는 약 2,800, 연 수용인 수 1,300만 명 규모로 행해지고 있다. 티켓대금에서 본 시장규모는 양자 합해서 약 1,800억 엔 규모이다. 그런데 91년과 92년의 음악 및 연극의 공연활동 변화를 보면, 공연건수 및 공연횟수는 늘어났지만 연 수용인 수 및 흥행규모는 그것에 비교해 낮다. 그것은 경기가 떨어진 것을 반영하면서 대규모적인 공연이 감소한 것과 연관이 깊다. 그중에서 관() 행사건수는 전체 1할 정도 적어졌다. 특히 음악 이벤트에서 대폭적인 감소가 지적되는데, 그렇다고 해서 기업의 문화활동의 관여가 전체적으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메세나 정착을 위한 과제들

기업 자체의 개성적인 측면이 평가되는 한편, 전문적인 원조 창구가 조직적으로 자리잡은 기업은 드물고, 유명한 예술가에 치우쳐 있다는 등의 평가가 있는가 하면, 광고 냄새가 강하다든지, 내용에 손을 댄다든지 하는 비판도 들린다. 그러나 광고에 대해서는 일본의 세제가 민간 기부에 대한 손금산입의 틀을 낮게 설정한 결과, 경비로 떼어낼 수 있는 광고선전비를 재원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업의 이념을 어지럽게 하는 이유가 된다.

다른 한편, 기업이 무대예술 등 문화를 원조하는 일 자체에 대해서도 그것보다는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는 편이 좀더 바람직하다느니, 그만큼의 이익이 생겼다면 주식에 돌려야 마땅하다느니 하는 의견도 없지 않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국민의 문화적 필요에 재빠르게 대응하면서 특히 무대예술의 공연활동을 활발하게 해준 것은(특히 음악 부문에서의) 기업의 원조였다. 그러나 기업이 선택하는 예술문화라는 것들이 결국은 현실 긍정적인 풍조를 만들고 말지 않는가라는 의문의 소리도 들린다. 예술문화란 본질적으로 이와 같은 회의와 무관한 것이 아니지만 예술이 기업의 잠재적 요구와 완전히 절연하기 어려운 것도 숨김없는 현실이다.

앞에서도 부분적으로 언급되었지만 메세나를 정착시키기 위한 과제로는 메세나에 관한 기업의 사고방식을 확립하는 것, 톱 주도형에서 전임·담당부서에 의한 예산을 가진 조직으로서의 활동으로 발전하는 것, 금전 뿐만 아니라 사람·장소라고 하는 경영자원을 유효적절하게 활용하는 것, 금전의 다과를 막론하고 계속성을 갖는 것 등이 지적되고 있다. 이 외에도 지원하는 쪽과 지원받는 쪽의 상호이해를 깊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이와 같은 과제해결을 위한 방안은 여러 가지로 모색될 수 있지만, 필자에게는 문화 내지 예술경영학의 체계화가 매우 중요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에 관계된 사항들을 살펴보기로 한다.

 

예술경영의 여러 문제들

일본에서 예술경영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일게 된 배경에는 서두에서 말한 대로 일본이 무역수지를 가리키는 수치상 특출한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는 풍요를 실감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다. 이에 따라 효과추구와 경제일변도의 시대조류에 대한 반성이 촉구되었던 것인데, 돈을 모으는 일과 반드시 연결되어 있지 않은 풍요의 실감을 위해 사회공동자산으로서 문화 하부구조를 구축해야 한다는 요구가 그 중 대표적이다. 다시 말해, 예술이야말로 그러한 상태를 만들 수 있는 중요한 구성요소라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예술이 일상생활 속에서 친숙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경영시스템에 알맞는 체계적인 경영론이 요청된다. 이런 각도에서 예술경영학의 체계화에 대한 관심이 제고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오늘날 일본의 경우 사람들이 기능과 감성, 문화와 경제 등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분리하기 힘들 정도로 결합되면서 새로운 발상과 가치관 그리고 상품을 만들어내는 복합(coupling)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이질적인 것으로서 서로 넘나들기 어려웠던 예술과 경영도 그와 같이 생각될 수 있다. 개성적인 창조를 특징으로 하는 예술과 보편성을 동반하는 경영이 결합되는 것은 복합시대의 소산이라고 자리매김될 수 있다.

개발부분에 해당하는 예술의 발신원은 예술가 자신의 정신이자 감각이며 비전이다. 그러나 제조업계를 예로 들 때, 개발부분만 장대하고 영업부문은 허약하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개념을 기초로 한 좋은 상품이 생산된다 해도 그것이 시민생활에 보탬이 되지 못한다. 같은 맥락에서 예술가가 아무리 훌륭한 작품을 만들어 발신을 시도한다 해도 시장과의 관계가 부드럽게 진행되지 못한다면, 일반사람들은 그 작품을 일상생활 속에서 제대로 향유하지 못할 것이다. 예술이 시장에 정착, 시민들로 항여금 이를 향유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경영학이 필요하게 된 배경을 일본의 경우를 들어 좀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대강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술경영학의 수요증대 배경

첫째로, 행정 쪽에서 본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에 걸쳐 일본 전국 각지에 예술문화에 친숙해질 수 있는 장소로서 무대예술공연을 위한 홀 등이 차례로 만들어졌는데, 전국 공립문화시설 협의회의 가맹관이 1975년에는 450개였던 것이 19933월 말 현재 약 1,600개가 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시설은 일본의 새로운 예술문화를 기르고, 전통 있는 예술문화를 소개하고, 해외예술가의 공연을 실현시키는 등 지역주민에게 크게 공헌하고 있다. 이때 자주사업을 기획·실시할 인재가 많을 수록 홀 운영이 좀더 효과적으로 가능해질 것임은 너무나도 분명한 사실이다. 지역에서의 예술문화의 진흥, 장기적인 시야에 기초한 문화회관 내지 미술관 등 문화시설의 운영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행정에도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평가능력을 지닌 담당자의 육성이 필요해질 수밖에 없다.

둘째로, 예술단체 쪽에서 본다면, 지금보다 더욱 적극적인 마케팅 대책을 실시하는 것이 요망되고 있다. 거기에는 현재 중요하게 여겨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현장에서 깨닫는 경험에 덧붙여, 예술단체가 조직적으로 경영실무를 쌓아 운영할 수 있는 체제의 확립이 필요하다. 즉 예술가가 안심하고 창작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영에 체계적인 교육시스템을 도입하여 단체 자체의 인적 기반을 좀더 공고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셋째로, 소비자(일반시민) 쪽에서 보더라도, 상품가치란 소비자의 참여가 있어 비로소 생겨나고 길러진다는 점에서 현대사회에서는 예술도 소비자와 함께 생성할 수밖에 없다. 많은 예술가가 다양한 모습으로 길러지기 위해서도 소비자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치관이 대단히 중요하고 예술문화의 향수능력을 몸에 익히는 일이 필요하다. 이에 예술경영학을 통해 예술이 왜 필요한가, 그것을 어떻게 친숙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가 등 예술을 향수하는 쪽도 범주 삼아 소비자 쪽에 서서 건전한 시장을 구축할 필요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필요에 부응하여 일본에서는 지금 예술경영 내지 문화행정 교육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고, 드디어 3년 전부터 게이오대학에는 미학과에 이를 전공하는 과정이 창설되어 많은 호응 중에 운영되고 있다. 일본의 사례가 반드시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 나름대로 현황에 대한 분석과 미래에 대한 조망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 사회도 아직 충분치는 않다고 하겠지만, 특히 지난 30년 간 이른바 경제건설에 매달리면서 정신적인 피폐가 눈에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바, 그 주역을 담당했던 정부와 기업으로서는 문화예술진흥에 기여한다는 것을 일종의 의무처럼 여겨야 한다. 이때 적은 비용으로 최대효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좀더 전문적인 접근방식이 요청되는데, 이 글이 그러한 관심 촉구에 조금이라도 기여했다면 그보다 다행한 일은 없을 것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