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국왕이 잠결에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두 사람의 내관이 소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중
한 내관이 말했다.
"내가 오늘날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모두 왕의 은혜 덕분이다."
그러자 다른 내관이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모두 자기의 운명에 따른 것이다."
국왕은 이 말을 듣고 왕의 은혜 덕분으로 산다는 내관에게 상을 내리고자 생각했다. 그러고는 왕후에
게 사람을 보내 알렸다.
"내관 한 사람을 보낼 테니, 그가 오면 금은보화와 좋은 옷을 주도록 하시오."
이렇게 지시한 왕은 그 내관을 불러들여 함께 술을 마시다가 반쯤 남은 술잔을 건네며 왕후에게 갖다
주라고 시켰다. 왕후가 있는 곳으로 가던 내관은 갑자기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았다. 마침 자기 운명으
로 산다고 말했던 내관이 지나가기에 자기 대신 그 술잔을 왕후에게 갖다주라고 부탁했다.
왕후는 한 내관이 술잔을 갖고 오자 왕이 내린 명령에 따라 그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상을 받은 내
관은 왕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국왕은 그 말을 듣고 깜짝놀라며 원래 술잔을 맡겼던 내관을 불러 물
었다.
"어찌된 일인가? 내가 그대에게 왕후에게 가보라고 했거늘 왜 가지 않았는가?"
"갔었습니다. 그런데 도중에 코피가 흘러 멈추지 않았습니다. 저는 왕후께서 그 모습을 보면 놀라실까
봐 다른 내관에게 대신 술잔을 왕후에게 갖다드리라고 부탁했습니다."
전후사정을 알게 된 국왕은 깊게 탄식하며 말했다.
"부처님 말씀이 틀리지 않구나!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법이라고 하시더니... 이것은 결코 변할 수
없는 법칙임을 이제야 분명히 알겠노라."
<잡보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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