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국의 국왕이 하루는 찌는 듯이 날씨가 무덥자 높은 누각에서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진귀한 약
을 궁녀를 시켜 자신의 몸에 바르게 했다. 그 일을 담당한 궁녀의 팔에는 형형색색의 팔찌가 끼워져 있
었다. 그녀가 국왕의 몸에 약을 바르기 시작하자 팔찌들이 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서로 부딪혀 시
끄러운 소리를 냈다. 국왕은 그 소리가 너무나 듣기 싫어 궁녀에게 차고 있는 팔찌들을 모조리 바닥에
내려놓으라고 했다.
그 팔찌들은 모두 금이나 옥으로 만든 것이라 바닥에 하나씩 내려놓을 때마다 소리가 났다. 그런데
궁녀가 마지막 옥팔찌를 바닥에 내려놓을 때에는 신기하게도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 옥팔찌도 본래 바닥과 부딪히면 소리가 나야 하는 법인데, 뜻밖에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구나.
조정의 신하와 만 백성 그리고 궁녀들도 평소에 불편한 심정을 가질 수 있는데, 그들이 할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게 한다면 옥팔찌가 소리나야 하는 원리를 억지로 막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 않는가?"
국왕은 생각하면 할수록 미묘한 이치를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 홀로 앉아 사색에 잠겼다. 그러고 있
는 사이 국왕의 머리카락이 어느새 모두 빠지고, 입고 있던 옷은 풀로 변해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어
느새 국왕은 누각에서 내려와 있었는데 온몸에서는 힘이 철철 넘쳐흘렀다. 국왕은 내친 김에 궁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
그때 아직 부처님이 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기에 홀로 출가수도한 국왕은 '벽지불'이 되었다. 그 당시
수행하는데 적합한 신심을 갖춘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때는 부
처님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때였기에 그렇게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사람들은 모두
'벽지불'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좌선삼매경>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