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많은 소리, 하고 많은 말이 있지만 서로를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예리한 눈은 있지만 섬세한 감각의 섬광, 즉 사람을 놀라게 하고 기쁘게 하는,
사물의 밑바닥까지 통찰하는 눈은 드물다. 그리고 단순히 자기 자신을 보증하는
도장을 누르는 고전적 소박성을 가진 것은 가장 드물다.
- 라드브루흐(G.Radbruch)
1.서론
실정법학을 열심히 공부해도 법과대학을 졸업할 때가 되어서조차 '자연법'이
무엇인지 머리에 분명히 떠오르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실정법은 이해하고
암기하면 되지만 자연법은 발견하고 감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의
역사를 본다거나, 오늘날에도 고차원적인 법의 문제가 등장하면 '자연법'의
문제가 종종 등장한다. 법 내지 법학의 역사는 곧 자연법과 실정법의 긴장과
대립 혹은 자연법사상과 법실증주의(legal positivism, Rechtspositivismus)의
대립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연법과 실정법의
개념과 그 관계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2.실정법
실정법이란 특정한 시대와 특정한 사회에서 효력을 가지고 있는 법규범을
말한다. 실정법은 성문법이 보통이지만 예외적으로 관습법, 판례법, 조리법 등과
같은 불문법도 있다.
실정법의 법형식에는 성문법으로 헌법, 법률, 명령, 규칙 등이 있다. 헌법은
국가의 최고상위의 실정법으로서 기본권규정과 같이 자연법을 실정화한 규정들을
담고 있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되는 법규범이다. 법률은 헌법의 범위 안에서
제정되어야 하고 헌법에 위배되는 내용의 법률은 효력을 상실하게 된다. 법률은
국회에서 제정하고 개정하며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고 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명령에는 위임명령과 집행명령이 있다. 위임명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을 규정한 명령이며, 집행명령은 법률을 집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한 명령이다.(헌법 제75조) 명령에는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이 있다. 규칙에는 국회규칙, 대법원규칙,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
감사원규칙, 행정규칙 등이 있다. 대법원규칙은 법률보다는 하위이지만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소송에 관한 절차, 법원의 내부규율과 사무처리에
관한 것을 규정하여 명령에 우월하거나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하겠다.
행정규칙에는 행정각부의 규칙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정이 있다.
행정규칙은 법령의 범위 안에서 정하는 것이므로 명령보다도 하위의 규범이다.
이와 같이 국내법은 헌법을 정점으로 하야 법률, 명령, 규칙, 처분 등의
순서로 상하의 단계구조(Hierarchie)를 이루고 있다. 에에 대하여 자세히는
제5장의 법원에 관한 설명에서 언급하였다.
3.자연법
아무리 실정법의 체계가 거대하게 짜여져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당한
것인가 아닌가를 실정법 그 자체로 가늠할 수는 없다. 물론 실정법을 제정할
때에 그 주체인 인간이 지식과 가치를 기울여 되도록 정당한 법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하겠지만, 이 세상의 모든 법질서가 정당하다고는 말할 수 없고, 이 정당성
여부에 대한 평가의 기준은 그것을 초월한 어떤 영원한 객관적 질서에 의하여
행하지 않으면 아니될 것이다. 그 표현에는 무리가 있지만 그 기준을 법학에서는
자연법(natural law, Naturrecht)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자연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그것 또한 간단히 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국가가 만든 법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의 법이
준수하여야 할 법규범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자연법의 관념은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서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 등에서도 존재하였고, 그후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이론화하여 이른바 자연법론(Naturrechtslehre)을 구축하여
왔다. 자세히는 '법철학'에서 배울 것이겠지만, 대체로 보면 고대 그리스시대의
자연법은 삼라만상의 우주질서의 원리에서 연역된 개념이었고, 중세에는 신의
뜻에 따라 바르게 사는 원리라는 개념이 강하였다. 근세에 들어와 법학이
신학에서 분리되면서 자연법은 신과는 관계없이 인간의 본성과 이성에 기초한
합리적인 질서라는 사상으로 전개되었다. 이러한 생각은 현대에까지 확대되어
오늘날에도 일반적으로 자연법이라고 하면 인간의 본성(Natur des Menschen)과
사물의 본성(Natur der Sache)에 근거하여 시대와 민족, 국가와 사회를 초월하여
보편타당하게 적용되는 객관적 질서라고 의식되고 있다. 다만 현대의
자연법론자는 자연법의 영구불변성을 강조하면 융통성이 없는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오해될 것이라고 하여 역사성 혹은 '내용가변성'(R.Stammler), 구체성을
강조하여 여러 가지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그래서 자연법론은 자연법론자의 수만큼 각양각색의 내용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롬멘(Heinrich Rommen, 1897-)은 '자연법의 영원회귀'(Die
ewige Wiederkehr des Naturrechts)라는 책을 써서, 자연법론의 현대적 부활을
잘 지적하였고, 질송(Etienne Gilson, 1884-1978)도 "자연법론은 자기를
매장하려는 자를 매장시키고 만다"는 표현을 하여 자연법의 중요성을
환기시켰다. 독일의 법사상가 에릭 볼프(Erik Wolf, 1902-1977) 교수는
'자연'(Natur)이란 말과 '법'(Recht)이란 말이 각각 다양한 의미를 갖기 때문에
'자연법'(Naturrecht)이란 다음과 같이 수많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흥미있게
서술하고 있다.
1.볼프는 우선 '자연'이란 개념의 의미변화에 얼마나 다양한 자연법의 개념이
가능한가를 아래와 같은 열두가지 명제로 분류한다.(주1)
1)'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통약 불가능성(Inkommensurabilitat)내지
유일성(Einzigartigkeit) 혹은 양립 불가능성(inkompatibilitat), 따라서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것(Inkomparabilitat 혹은
Unvergleich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위에서 보면
'자연성'이란 개념은 하나의 법적 존재의 총체(ein Inbegriff rechtlicher
Existenz)로서 파악되어 개별성과 집단성, 종과 속, 유형과 예외의 자존의
법(Recht des Selbstseins von individualitat und Kollektivitat, Genus und
Species, Typus und Ausnahme), 다시 말하면 '존재법'(Dasein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2)'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시원성(Originalitat) 내지
원초성(Ursprunglichkeit) 혹은 역사성(Historizitat 혹은 Geschichtlichkeit)
아니면 유기성(Organitat) 내지 성장성(Gewachsenh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신화론적 법창설(mythologische
Rechtstiftung) 아니면 사회학적 법발전(soziologiche Rechtsentwicklung)으로
이해되는 하나의 원초질서(eine Ursprung), 말하자면
발전법(Entwicklung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3)'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순진성(Veritabilitat) 내지 순정성(Echtheit) 혹은
무결성(Integeritat) 내지 불타락성(Unverdorbenh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비인위적인 자연상태의 전 문명적
질서(die vorzivilisatorische Ordnung des status naturalis) 혹은 타락하지
않는 무결상태의 질서(die praelapsarische Ordnung des status incorruptus
sive integratitatis), 말하면 순정법(Echtheit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4)'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본능성(Instinktivitat) 내지
천부성(Angeborenheit)혹은 직관성(Intuitivitat) 내지
직접성(Unmittelbar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비반성적인, 직접적으로 인식되는 질서(eine
unreflektivierte, unmittelbar empfundene Oudnung) 말하자면
'직관법'(Intuition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5)'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인과성(Kausalitat) 내지 필연성(Notwendigkeit)
혹은 조건성(Konditionalitat) 내지 제약성(Bedingth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경험적인 체험법칙성(eine
empirische Erfahrungsgesetzlichkeit) 혹은 논리적인 사고법칙성(eine logische
Denkgesetzlichkeit)을 의미하는 '존재법칙성을 가진 어떤 것'(eins mit dem
Seinsgesetz)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6)'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목적성(Finalitat) 내지 합목적성(Zweckmabibkeit)
혹은 의도성(Intentionalitat) 내지 목표지향성(Zielgerichteth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목적론적
행위법칙성(eine teleologische Handlungsgesetzlichkeit)을 의미하는
'당위법칙을 가진 어떤 것'(eins mit dem Sollensgesetz)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7)'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합리성(Rationalitat) 내지 조리성(Vernunftigkeit)
혹은 지각성(Intelligibilitat) 내지
이해성(Verstandigkeit=Verstand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일상적 자명성(eine alltagliche
Selbstverstndlichkeit)의 생활지혜의 법(das Recht der Lebensklugheit),
말하자면 '인습법'(Konventions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8)'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이상성(Idealitat) 내지 정신성(Geistig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일종의 철학적
이상으로서, 절대적인 것의 법(das Recht des Absoluten) 내지
절대법(Absolutesrecht), 말하자면 '이상법'(Ideal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9)'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피조물성(kreaturlichkeit) 내지
피창조성(Geschoff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신학적 이론으로서, 타락한 자연의 상대적 법(das
relatve Recht der natura corruptia), 말하자면 '선린법'(Nachstenrecht)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10)'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현실성(Realitat) 내지 소여성(Gegebenheit) 혹은
즉물성(Sachlichkeit) 내지 대상성(Gegenstand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사물정의의 존재론적
발견(einontologischer Befund der Sachgerechtigkeit), 말하자면 '사물의
본성의 법'(Recht der Natur der Sache)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11)'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활력성(vitalitat) 내지
충동성(Triebnatur)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하나의 권력의지의 자기질서(eine Selbstordnung des
Machtwillens), 말하자면 '강자의 법'(Recht des Starkens)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12)'자연'은 존재하는 것의 자발성(Spontaneitat) 내지
자의성(Freiwilligkeit) 혹은 일시성(Monmentaneitat) 내지
순간성(Augenblicklichkeit)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자연'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이란 '비인습법인 혁명적 질서개선'(unkonventionel-revolutionare
Ordnungsbesserung) 내지 반전통적인 '정신의지'(antitraditionalistischer
Erneuerungswille)의 뜻을 갖게 된다.
2.볼프는 다시 '법'(Recht)이라는 개념의 의미변화에 따라 다음과 같은 열
가지의 자연법의 개념이 가능하다고 본다.
1)'법'은 사회적 존재의 객관적 질서(objektive Ordnung), 즉 자연스런 법(lex
naturae)이라는 의미를 가진다.(objektives Rech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자연법'이란 법적 혹은 관습적 방식의 기본질서(Grundordnung gesetzlicher
oder brauchlicher Art)로 이해되어 사회적 규범과 의무의 체계(ein System
soczialer Normen und Pflichten)를 의미한다.
2)'법'은 사회적 존재의 주관적 질서(subjektive Ordnung), 즉 자연스런
권리(ius naturae)라는 의미를 가진다(subjektives Rech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일반인적인 혹은 최고인격적인 방식의 기본적
요구(Grundanspruch allgemeinmenschlicher oder hochstenpersonlicher
Art)로 파악되어 기본권 혹은 인권의 카탈로그(ein Katalog von Grund-order
Menschenrecht)를 의미한다.
3)'법'은 사회적 존재의 공평적 질서(Kommutative Ordnung), 즉 형평(aequitas
혹은 ius aequiem)이라는 의미를 가진다(Billigk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정당한 것과 공정한 것의 기본적 확신(Grunduberzeugung von
Rechten und Billigen, consensus 혹은 omnium)으로 파악되어 전학문적인 대중적
법률관의 총체(ein Inbegriff von vorwissenschaftlicher popularer
Rechtsanschauung)을 의미한다.
4)'법'은 사회적 존재의 감정적 질서(emotionale Ordnung), 즉 법감정(sensus
juridicu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Richtsgefuhl).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일상사의 기본적 경험(Grunderlebnis des eninen
Jeglichen Zukommenden 혹은 Rechtsempfindung)으로 파악되어 개별적 호응
집단적인 권리상태와 권리소지의 감정적 전체(ein gefuhltes Ganzes
individuellen oder kollektiven Imrechtseins und Rechthabens)를 의미한다.
5)'법'은 사회적 존재에 있어서 이상적 질서(ideale Ordnung), 즉
정의(justitia)라는 의미를 가진다(Gerechtigk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실정법의 기초(Grundlegung des positiven Rechts, 즉
Rechtsidee)로 파악되어 사회질서를 위한 지시체계(ein System von Direktiven
fur die Sozialordnung)를 의미한다.
6)'법'은 사회적 존재의 유용한 질서(brauchbare Ordnung), 즉
유용성(util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Nutzlichk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하나의 목적질서(Zwecksordnung), 즉 행복을 위한
법(Recht auf Gluck)으로 파악되어 복지국가적 규율의 체계(ein System
wohlfahrtsstaatlicher Regelung)을 의미한다.
7)'법'은 사회적 존재의 보호적 질서(schutzende ordnung), 즉
안정성(secur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Sicherh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하나의 보호질서(Schutzordnung), 즉 안정을 위한 법(Recht auf
Sicherheit)으로 파악되어 법치국가적 보장의 체계(ein System
rechtsstaatlicher Garantie)를 의미한다.
8)'법'은 사회적 존재의 유지적 질서(bewahrende ordnung), 즉
유지력(prob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Bewahrth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유지되면서 스스로 유지하는 질서(bewahrte und bewahrende
Ordnung)로 파악되어 하나의 역사법(historisches Recht)을 의미한다.
9)'법'은 사회적 존재의 집단적 질서(gruppliche Ordnung), 즉
사회성(social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Typizita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인과적 혹은 목적적으로 결정된 사회질서(kausal oder final
determinierteGesellschaftsordnug), 즉 작용질서 내지 반사질서(Spiel-oder
Spiegelordnung)로 파악되어 하나의 사회학적 권력요소의 체계(ein System
soziologischer Machtfaktoren)를 의미한다.
10) '법'은 사회적 존재의 인간적 질서(humanitare Ordnung), 즉
인간성(humanitas)이라는 의미를 가진다(Menschlichkeit). 이러한 '법'의
의미에서 보면 '자연법'은 경험적, 인류학적 혹은 윤리적, 정치적
보장질서(empirisch-anthropologische oder ethisch-politische
Garantienordnung), 즉 자연적 기본권(naturliche Grundrechte)으로 파악되어
인권의 체계(ein System der Menschenrechte)를 의미한다.
3.이와 같이 자연법의 개념은 120가지의 의미변화로 구별되었지만 볼프는
자연법론에서 자연법이란 관념은 다음 세 가지 명제로 포괄할 수 있다고 본다.
첫번째 명제는, 우선 자연법에 있어서 '자연개념은 다의적이다'(Der
Naturbegriff ist mehrdeutig)는 것이다. 모든 세계관의 시대적, 객관적 혹은
실천적, 이론적 형식화(Formulierung)는 사상가들의 사고방식의 무한한 가능성에
의존하지 않을 우 없다. 어떤 자연법사상을 구상한 사람은 동시에 결합할 수
없는 이론적 대립물 혹은 실천적 배타적인 목적설정에 서게 되지 않으면 안
되며, 따라서 스스로 그 변증법의 역설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성(Problematik)에 대한 인식이 없이는 자연법의 참다운 이해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자연법개념의 양극적 혹은 선동적
오용을 낳는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두번째 명제는, 그러나 '자연법사상의 기능은 일의적이다'(Die Funktion des
Naturrechtsdenkens ist eindeutig)는 것이다. 자연법은 두 가지 방향의 기능을
가지는데, 그 하나는 모든 실정법의 정당화의 기초(legitimierender Grund 혹은
Rechtfertigungsgrund)로서의 기능이요, 하나는 모든 경험적, 역사적 법의
규범화의 표준(normierendes RichtmaB 혹은 Regulativ)으로서의 기능이다.
자연법사상의 이러한 이중적 기능은 한편으로는 보수적, 한편으로는 혁명적
성격을 띠게 하고, 한편으로는 제도론적, 한편으로는 실존론적 성격을 띠게
한다. 그러나 자연법이 이처럼 사회적 목적에 구속된다는 사실은 이러한
목적논리(Teleologik)로서만은 자연법의 더 깊은 의미가 파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리켜 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연법의 진정한 임무를 플라톤이
말한 의미의 파수꾼(Wachter)의 역할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것은 단순히 기술적,
실천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 되고 사변적, 이론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된다.
자연법 사상은 현실적으로 실천화될 수도 없고 환상적으로 발견될 수도 없으며,
다만 주의깊게 경계되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자연법론은 언제나 법을
지키는 일을 자기의 본질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법 사상은 궁극에서 오직
하나의 요구(그리고 무제한의 진지성을 가진!)를 가지고 잇는데, 그것은 법이
'거기'(da) 있어야 할 지속적인 준비성(dauernde Bereitschaft)에 대한
의무이다. 이것은 참으로 '법을 위한 투쟁'(Kampf fur das Recht!)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법이 '거기' 있어야 할 근거를 묻는 법사고는
근본적으로 신학적이지 낳을 수 없다고 그는 생각한다. 그에 의하면
자연법사상은 특수한 신학적 문제로서 그의 법신학(Rechtstheologie)의 주장은
구성하는 것이다.
세번째 명제는, '자연법론은 존재의 근본문제를 추구한다'(Die
Naturrechtslehre folgt den Grundfragen des Seins)는 것이다. 즉 볼프에
의하면 존재론적 자연법(ontologisches)은 법(현실법)에 관한 존재성(Dasein
von Recht)을 묻는다. 윤리적 자연법(ethisches Naturrecht)은 법(현실법)에
관한 당위성(Gesolltsein von Recht)을 묻는다. 이론적 자연법(logisches
Naturrecht)은 법(개념법)에 관한 의식(BewuBtsein von Recht)을 묻는다.
형이상학적 자연법(metaphysisches Naturrecht)은 법(이상법)에 관한
정당성(Gerechtfertigtsein von Recht)을 묻는다.
위에서 서양의 자연법개념을 분석하였는데, 이러한 다소 '혼란을 야기시키는
지나치게 분석적인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주2)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에게는
'자연법'사상은 간직하고 있다고 하겠다. 우리는 조상대대로 나쁜짓을 하는
사람을 보고 '하늘이 무섭지 않느냐?'고 하였고, '경위'를 존중하였으며,
'나쁜법'(악법)에 대하여는 참을 수 없는 의분심을 가져왔다. 이러한 사상은
춘향전과 같은 문학작품을 통하여서도 나타났다.(주3) 다만 이러한
'자연법'사상을 서양에서처럼 법제도와 법학과 관련지어 보다 이론화하고
실천해야 할 과제를 크게 안고 있다고 하겠다.
4.악법의 문제
자연법 혹은 정당한 법에 관한 논의를 할 때마다 그에 위배되는 이른바 악법에
관하여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악법이란 무엇이며, 악법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악법이란 말을 많이 쓰면서도 우리는 그 개념을 정확히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엄격히 서양에 '악법'이란 말은 없고 Unrecht란 말은 그대로
옮기면 '불법'이다. 동양에는 좋은법, 나쁜법의 개념, 즉 량법과 악법이란
개념이 서양의 정법(Recht), 불법(Unrecht)의 개념보다 친밀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악법이란 말을 즐겨(?) 사용하는 것같다. 다소 감정적이고 주관적,
심정적인 뉘앙스가 섞여 악법이란 말은 종종 오해를 불러올 수 있기도 하다.
악법이란 내용적으로 악한 법인가, 악한 사람이 만든 법인가, 악한 절차로 만든
법인가?
법적 안정성을 강조하고 자연법을 부정하는 법실증주의의 관점에서는 정당한
절차만 밟아서 제정된 젖이면 악법도 법이라고 본다. 그러나 법적 안정성이라는
형식적 이념이 내용적 이념인 정의보다 우위에 설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된다.
자연법론의 관점에서 보면 정의의 원리에 반하는 법은 법이 될 수 없고
악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치스의 악법을 경험한
라드브루흐가 생생한 증언으로서의 주장을 제공한다. 그는 종래 정의, 합목적성,
법적 안정성을 동렬의 법이념으로 설명하였던 태도를 바꾸어 만년에는 정의를
상위의 이념으로 설명하였다. 즉 법이 정의를 부정하면 '법률의 모습을 띄고
있으나 불법'(gesetzliches Unrecht)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오늘날 학자들이
'라드브루흐 공식'(Radbruch-Formel)(주4)이라고 부르는 악법에 대한 그의
표현은 이러하다. "법률적 불법(악법)의 경우와 부정당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효력을 가진 법률 사이에 예리한 선을 긋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다른 경계를
예민하게 다음과 같이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즉 정의가 한번도 추구되지 않는
곳, 정의의 핵심을 이루는 평등이 실정법의 제정에서 의식적으로 거부되는
곳에서는 그 법률은 단지 '부정의로운 법'(unrichtiges Recht)만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법적 성격을 결여하고 있는 것이다."(주5) 이렇게 본다면
라드브루흐에게는 정당한 법률, 부정당하지만 효력을 갖고 있는 법률, 그리고
법적 성격을 갖지 못하는 법(즉 악법)의 세 가지 개념이 설정되고 있다.첫번째과
두번째는 법으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저항권의 대상은
아니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악법은 객관적으로 내용적으로
정의를 표기하고 절차적으로 불평등하게 제정된 법률을 말하기 때문에
주관적으로 "나쁜 법"이라는 생각만으로는 규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당한
요소, 즉 몇 가지 독소조항들이 들었다고 해서 한꺼번에 악법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악법이란 용어의 지나친 확장과 남용이라고 할 것이다. 부정당한 법은
저항이 아니라 비판으로서 일단은 준수해주면서 국회 등 입법기관을 통하여
정당한 절차를 밟아 개선해나가면 되는 것이다.
라드브루흐의 악법공식의 인용에서는 나타나지 낳았지만, 그의 만년의 사상의
강조점으로 보아 악법은 또한 인권과 전통적 가치(민주주의, 자유, 평등,
박애)를 부정하는 법률임을 시사하였다. 헌법학자들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헌법과
법률, 즉 인간을 차별하여 생명, 재산, 자유를 박탈하여 언론, 출판의 자유를
탄압하는 법률을 악법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이러한 '악법'의 정의는 처음부터
분명하게 공표되는 것이 아니고 비판과 저항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개념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악법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기는 힘들다. 어떤 통치자나
입법가가 처음부터 악법을 제정하려고 하겠는가. 오히려 법의 시행과정이 정의와
평등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부정의의 방향으로 몰고갈 때 악법이 '형서'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악법도 법"이라는 대전제도 서서히
저항권에 의해 부정되는 것이다.
[악법, 불법, 비법, 위법, 탈법]
바른 법에 위배되고 부정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악법, 불법, 비법, 위법,
탈법 등의 표현들이 분명한 구별없이 사용되고 있다. 서양의 unrichtiges
Recht(unjust law)나 Unrecht(lawlessnss)같은 표현보다 동양의 한자식 표현이
편리하게 이런 말들을 창조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서양의 법이론을 그대로 빌려쓸
수는 없지만 대체로 다음과 같이 이런 개념들을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악법: 법 자체가 법적 성격과 권위를 갖지 못하고 오히려 불법적 결과를 끼칠
잘못된 법을 말한다.(이하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
불법: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법이 아닌 것이지만 법적이지 못한 행위와 결과를
말한다. 민법에서 불법행위를 연상해 보자.
비법: 표현도 문자 그대로 하면 법이 아닌 것이지만 법에 거슬리는 잘못된
행위와 결과를 말한다.
위법: 어떤 법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에 위반되는 행위와 결과를 말한다.'
탈법: 정당한 법의 존재를 전제로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교묘히
빠져나가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한다.
5.저항권의 문제
우선 저항권의 역사를 살펴보면 사상적으로는 맹자의 역성혁명론, 중세에의
폭군방벌론(Monarchomachie), 근세의 사회계약론에서 찾아볼 수 있고,
실정헌법상의 규정으로는 18세기에 들어와 1776-1784년 사이에 시민권리선언의
형식으로 나타난 미국의 각주 헌법(버지니아, 펜실베니아, 매사추세츠, 버몬트,
뉴햄프셔), 1793년의 프랑스의 쟈코방헌법, 제2차대전 후에는 1946년 프랑스의
헌법초안(국민투표에서 부결), 서독 헤센주헌법, 1947년 서독 브레멘주헌법,
1950년 서독 베를린헌법, 1968년 서독연방기본법(Grundgesetz)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규정의 표현을 보면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 현저하게 침해될 때에는
모든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베를린헌법 23조 3항) 라는 것이 있고,
미국독립선언에는 "어떤 정부라도 생명, 자유, 행복추구의 권리를 보장하는
목적을 훼손하기에 이를 경우 인민은 이를 변경하거나 폐지하고..."라는 것이
있다.
그렇다면 저항권(Widerstandsrecht)이란 무엇이며, 언제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가? 자연법과 악법의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저항권은 자연법에 위배되어 잘못된 권력행사에 의해 헌법적 가치질서가
완전히 무너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예비적 헌법보호수단(주6)이라고 설명된다.
다시 말하면 국가권력에 의한 헌법침해에 대한 최후적, 초실정법적 보호
수단이다.(주7) 저항권은 이처럼 기본권적 성격과 헌법보호 수단으로서의 성격을
함께 가지고 있어 이른바 양면적인 것이다. 저항권을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초실정법적인 저항권을 인정하는 것인가의 문제와 저항권의 행사요건에 관한
문제이다.
1.저항권의 초실정법성
홉스와 칸트가 초실정법적 저항권을 부인한 이후 법실증주의에서는 이른바
'자연법적'저항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홉스는 인간의 성악설에서 출발하여
국가란 인간 각자가 타인에 대한 자기보호의 필요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간은
국가를 통해서만 보호된다는 국가철학을 가졌기 때문에 국가에 대한 저항권은
처음부터 생각할 수 없다. 칸트는 인간의 이성(Vernunft)을 강조하여 성선설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국가는 마땅히 법치국가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저항권이란
무용한 것이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낙관적 인간상을 가진 로크(John Locke,1632-1704)가
저항권을 인정한 것처럼 저항권의 문제는 인간성에 대한 세계관과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로크는 '국가를 통한 보호' 외에 '국가에 대한
보호'(Schutz vor dem Staat)를 강조하였던 것이다. 어쨌든
초실정법적(자연법적) 저항권을 부인하는 논리의 저변에는 저항권행사의 정당성
여부에 대한 권위적 심사기관이 없는 한 저항권을 인정한다면 결국 무질서를
초래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러나 초실정법적(자연법적) 저항권을 인정하는 통설적 견해에 따르면
권위적인 심사기관을 상정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예비성, 최후수단성에 의해
상징되는 저항권의 특징이며, 실정법을 따라서 자연법적으로 저항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이 자연적 견해에 의하면
저항권은 본질적으로 초실정법적으로만 인정될 수 있는 것이며, 저항권을 헌법전
속에 실정법화하는 것은 규범화될 수 없는 것을 규범화시키는 무리한 시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자유로운 인간양심의 결정을 법조문이 명령할 수 없는 것처럼
국가의 대한 저항권의 행사도 국가가 헌법조문으로 이래라 저래라 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고 한다.
저항권을 반드시 어떤 힘의 행사와 결부시키지 않고, 독일의 법철학자
카우프만(Arthur Kaufmann)처럼 저항권을 정신적 영역으로 끌어들여 일종의
국가권력에 대한 '복종의자세'(staatsburgerliche Haltung)로 이해하는 경우에도
자연법적 저항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저항권의 행사란 화산의 폭발과
같은 것은 아니고 국가권력에 임하는 일정한 자세를 뜻하는 것으로서, 권력에
대한 회의적 자세, 공공연히 비판할 수 있는 용기, 결국 권력에 대한 '비판적
복종'(kritischer Gehorsam)을 통해서 권력행사를 수시로 통제하는 것이
저항권의 행사라 볼 때에는 그것은 혁명권과는 구별된다. 이와 같은 의미의
저항권도 실정법상의 규정 유무를 떠나서 모든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연법적 권리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2.저항권의 행사요건
저항권을 언제 행사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주로 저항권을 힘의 행사와
결부시켜 그것을 일시적인 현상으로 파악하는 전통적 관점에서 자주 논의되어
왔다. 독일 기본법 제20조 4항 "헌법에 규정된 기본권이 현저하게 침해될 때에는
모든 국민은 저항할 권리가 있다"처럼 저항권을 실정법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는 저항권의 행사가 일정한 전제조건 아래서만 가능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실정법적인 행사요건의 해석문제로 논의되게 마련이다.
저항권을 일시적인 힘의 행사로 이해하려는 전통적인 관념에 따르거나
실정법이 저항권을 규정하는 경우에는 대체로 저항권의 행사요건으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를 든다. 저항권의 보충성(예비성), 최후 수단성, 성공가능성
요청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저항권은 다른 모든 헌법적 수단을 총동원해서도
국가권력에 의한 헌법침해를 막을 길이 없는 경우에 보충적, 예비적으로만
행사되어야 하고, 저항권의 행사는 헌법적 자치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초기에는 허용되어서는 안 되고 최후 순간까지 기다려보고 헌법적 가치질서가
완전히 무너지지 직전에 그것을 구제하기 위한 최후수단으로 허용돼야 한다고
한다. 또 저항권의 행사는 성공의 가능성(Erfolgsaussicht)이 있는 경우에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저항권의
행사는 결국 부정당한 저항권의 행사로 간주되게 된다.
저항권을 위헌적인 권력행사에 대한 힘의 도전이라고 이해하는 경우에는
저항권의 남용에 의한 무질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그 행사요건을 되도록
엄격하게 정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카우프만이 지적한 것처럼 이
세 가지 요건이 전부 충족될 수 있는 저항권의 행사란 사실상 무의미하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저항권의 행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부분 헌법침해의
초기에 시작되어야 될 것이지만 이 단계에서는 아직 최후 수단성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로 최후 수단성의 요건이 충족될 때에는 이미
불법권력이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기 때문에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게 될 것이다.
저항권을 국가권력에 대한 비판적 복종의 자세로 인식하고 이를 수시적이고
계속적인 현상이라고 이해하려는 의도는 여기에 있다 하겠다.
그러나 저항권을 예방적인 기본권 보장 또는 편의적인 기본권 보장의 방법으로
행사하여서는 안된다. 또 저항권은 정치적 선전과 선동의 도구로 악용되어서도
아니된다. 저항권이 기본권을 포함한 헌법적 가치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국민의
최후 수단적 자구수단(Nothilfe des Burgers)으로서의 궤도를 이탈해서, 이른바
'인간의 생존' 내지 '인류의 적'에 대한 정당방위적 수단으로 탈바꿈하는
경우에는 대의민주적 정책결정의 메커니즘은 중대한 위협을 받게 된다.
기술문명의 발달을 추진시키고 이를 인간생활에 유익하게 활용하려는 정부의
미래지향적 정책결정에 반대하며 '자연보호', '핵공포로부터의 해방',
'무기경쟁의 중단', '미사일배치 반대' 등 각종 구호를 외치며 언필칭
'저항권'을 들고 나오는 경우 대의민주주의에 입각한 정책결정은 마침내 설 땅이
없게 될 것이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일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참여와 복종의
메커니즘에 바탕을 두 통치질서이다. 정책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채널이 헌법상(주8) 개방되어 있는 겨우 이 채널을 통해 정책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의사표시를 하고 일정한 정책결정이 내려진 후에는 좋든 싫든 그에
복종해야만 민주주의는 그 명맥을 유지해나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책결정에 반대하는 수단으로서 저항권을 내세우는 것은 저항권의 중대한
궤도이탈이라고 해석된다.(주9)
저항권을 힘의 행사로 이해하는 전통적인 학설에 따르는 한 저항권을 아무리
평화적 방법으로 행사되더라도 공공의 안녕질서를 보장하기 위한 실정법과
충돌이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행사요건의 충족여부에 대한 심각한
의견대립이 생기고 심지어 국가권력에 의해 불법적 행위로 낙인찍히게 될
것이다. 바로 여기에 힘의 행사로서의 저항권 행사의 현실적 딜레마가 있다.
"성공하지 못한 저항권의 행사는 저항권이 아니고 범죄이다"라는 표현이 그것을
말한다. 따라서 저항권을 '힘의 행사'로만 이해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계속적인 저항, 즉 비판적 복종의 자세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시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일상생활에서 정치적 의사표시를 최대한으로 보장함으로써 언로의 경색
때문에 쌓여가는 불만과 폭발 가능성을 줄여가는 정치인의 슬기는 기본권의
보장뿐 아니라 저항권의 순화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6.양심의 문제
행해진 저항의 합헌성 여부는 후일 법원에서 판정한다. 따라서 저항 자체가
급박한 결정의 압박 밑에서 이루어졌던 것과는 달리 법원이 차후적으로 상황판
단을 하는 위험도 있다. 따라서 저항시 수반되는 위험은 저항하는 자에게
위험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 용기, 즉 앙가쥬망(Engagement)을 요구한다.
여기에서 양심의 자유(Gewissensfreiheit)가 저항권의 마지막 근거로 다시
등장한 게 된다. 문제는 양심의 자유를 근거로 자기에게만 어떤 법률의 적용의
예외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지, 아니면 더 나아가 자기의 양심과
상충되는 법률의 개정을 목적으로 여론에 영향을 끼치는 행위까지도 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이에 대해 부정적 견해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법에 대한
준수를 거부하는 것도 개인적 허용과 금지의 일이지 법의 일반적 유효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한다.(주10) 양심에 의한 준법 거부는 개인적
사항이고 정치적 헌법의 가치관념과는 무관하다고 설명되기도 하고, 모순을
지적하기 위한 목적의 수단이 아니고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다수설에 대해 양심의 자유를 개인적 양심의 결정의 침해에 대한 방어뿐만
아니라 양심에 위배되는 법의 개정을 위해 동조자를 얻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행위까지도 보호되어야 한다고 보는 소수설도 있다.
저항하는 자가 저항하기 전에 실질적으로 저항권의 구성요건이 충족되었는가를
법원에 묻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따라서 언제 어떻게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지는 저항자 스스로 양심에 의해 결정할 수밖에 없다. 이에 반해 저항의
합헌성 여부판단은 객관적 기준에 따라 행해지기 때문에 개인적 책임이 없이
위헌적인 저항권을 행사할 경우를 예상해볼 수 있다. 예컨대 저항을 정당화하는
상황의 존재여부를 명확하게 확정할 수 없는 경우이다. 여기에 한 질문이 남게
되는데, 즉 가만히 있음으로써 상황에 따라서는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의 침해를
방관하는 것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위헌적인 저항까지도 감수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양자택일의
결정은 개인적 양심의 문제로서 어느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견에 따라 운영되는 국가영역이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와 민주주의
원칙의 충돌은 '실천적 조화의 원칙'(der Grundsatz der praktischen
Konkordanz)에 따라 해결할 수 있다.(주11) 이 원칙을 적용하면 양심의 자유는
국가영역에서는 단지 부수적이고 사소한 문제에 한해서만 인정될 뿐이고
원칙적으로 민주주의의 원칙이 양심의 자유보다 우선한다고 볼 것이다.
어쨌든 저항권에 대한 최근의 한계론은 혼란과 무질서로 헌정 자체를 파괴할
염려가 잇다는 점에 집중된다. 현재로는 명문으로 규정하지 않는 것이 상례인데,
그 이유는 초기의 권리조항에서 요청된 바와 같은 자유민주적 정치체제가
실현되었다는 점이고, 그 밖에도 본질상 실정법으로 제도화하기가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국가가 저항을 받아야 할 법과 정치체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근원적으로 요청된다 할 것이다.
[참고문헌]
베키오, 마리땡/장광수 역, '인권과 자연법, 정의의 문제', 양영각, 1983
최종고, 에릭 볼프의 자연법사상, '법사와 법사상', 박영사, 1983
오경웅/서돈각 역, '정의와 원천: 자연법의 연구', 박영사, 1980
이태종, '법철학사와 자연법론', 법문사, 1984
전월배, "악법의 법리", '법학'(서울대), 11권 1호, 1969
마틴 크릴레/국순옥 역, '민주적 헌정국가의 역사적 발전', 종로서적, 1983
마틴 골딩/장영민 역, '법철학', 제일출판사, 1982
박은정, '자연법사상', 민음사, 1987
Erik Wolf, Das Problem der Naturrechtslehre, Karlsruhe, 1952
Hans Welzel, Naturrecht und materielle Gerechtigkeit, 1963
[주석]
주1: Erik Wolf, Das Problem der Naturrechtslehre, Karlsruhe, 1952
주2: 자세히는 박은정, '자연법사상'(민음사, 1987)
주3:장경학, '법률춘향전'(을유문화사, 1970)
주4: 라드브루흐 공식에 관하여는 Bjorn Schumacher, Rezeption und kritik
der Radbruchschen Formel, Gottingen, 1985: Walter Ott, Die Radbruch'sche
Formel:Pro und Contra, Zeitchrift fur Schweizerisches Recht, Bd.107, 1988
주5: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89), 290면
주6: 아래의 설명은 주로 허여, '헌법이론과 헌법(상)'(박영사, 1985),
119면 이하: 같은 책(중, 1986, 중판, 169-71면 이하 참조
주7: 자세히는 A.Kaufmann(hrsg.), Widerstandsrecht, Darmstatt, 1972:
J.Igsensee, Das legalisierte Widerstandsrecht, 1969: H.Schneider,
Widerstand im Rechtstaat, 1969
주8: 기본권보장의 최후수단으로서 저항권을 인정할 것인지에 대해 국내학자의
의견은 일치되지 않고 있다. 명시적으로 인정하는 학자는 권영성, 허영 등이고,
명시적으로 부정하는 학자는 문홍주, 박일경 등이다.
주9: J.Isensee, Das legalisierte Widerstandsrecht, S.32
주10: Preub, Politische Verantwortung und Burgerloyalitat, 1984, S.34
주11: K.Hesse, Grundzuge des Verfassungsrecht der Bundesrepublik
Deutschland, 1980, 계희열 역, '서독헌법원론'삼영사, 1985)
[연습문제]
1.'자연법'이란 무엇인가?
2.자연법과 실정법의 관계를 논하라.
3.'자연법의 영원회귀'란 무슨 뜻인가?
4.실정법주의의 기능과 한계를 논하라.
5.악법도 지켜야 하는가?
6.저항권의 근거와 한계를 설명하여라.
7.우리는 언제 법을 지키고, 언제 저항해야 하는가?
@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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