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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2/법학 통론

제3장:법과 사회규범

by Frais Study 2020. 5. 13.

인간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가운데 법 또는 국왕이 개입할 수 있고,

치료할 수 있는 부분이 얼마나 적은가! - 존슨(Dr.S.Johnson)

 

 

1.서론

법은 인간생활을 규율하는 하나의 규범(Norm)으로서 관습, 종교, 도덕과 같은

다른 사회규범들과 관련을 맺고 있다. 법만 동떨어져 인간과 사회를 규율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회규범들과 어떻게 다르며 또 서로 어떠한

관계를 갖는 것일까? 법은 이들 규범들과 어떻게 긴장, 갈등의 관개에 서며

어떻게 조화하여 나가는 것일까? 이 물음은 사회생활 속에서 법규범의 생생한

작용을 파악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법규범의 개념 자체를 이해하기 위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2.법과 관습

법과 관습(custom, Sitte, 혹은 Gewohnheit)을 개념적으로 구별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법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관습은 생성되어지는 것이라고 일단

구별할 수 있겠지만, 관습을 무시하고 법을 만들기는 매우 힘들고 위험한 일이며

관습법(customary law, Gewohnheitsrecht)이라는 중간 형태도 있다. 법학에서

관습법은 단순한 사실로서의 관습법으로서 존중되는 것이다. 또 법은 강제

가능한 것인 데 반하여 관습은 인간의 자유의사에 따라 이행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관습 역시 지키지 않으면 상당한 비난과 강제가 따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진정으로 관습을 지킬 줄 아는 자가 신사이다" 라는 속담이

이야기하듯, 관습 역시 법에 못지 않은 은근한 힘으로써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관습은 법과 개념적, 체계적으로 명확히 구분될 수는 없지만 역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법과 도덕이 채 분리되지 않은 전형태(Vorform)로서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이 표현하였듯이 '법과 도덕의

형태를 각각 다른 방형으로 출발시키는 미분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자선이라는 관습은 한편으로는 자비라는 도덕적 의무로도 발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빈민구제라는 법제도로 발전하기도 한다. 관습은 법과 도덕을

준비하고 그것을 가능케 한 연후에 법과 도덕에 흡수된다고 하는 것이 운명이다.

그렇다고 하며 법과 도덕을 분리한 연후에 관습의 사회적 기능이 없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이익사회(Gesellschaft) 속에도 항상 공동사회(Gemeinschaft)

수많은 편린들, 즉 관습들이 파괴되지 않고 통일성을 유지해 가고 있으며,

아직도 그 교육적 활동을 필요로 하는 사회계급들과 원시적 민족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원시사회나 미개사회에서는 습속이 법과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관습은 현실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발생하는 사회생활의 준칙이며 역사적

전통을 근간으로 하여 사실에 입각한 것으로, 이상이 아니라 평균이며 사실을

규범으로 높인 것이다. 관혼상제와 같은 것을 그 에로 들 수 잇다. 혼례의

관습이나 제례의 관습은 나라마다 다르고 지방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도 혼례

때 장롱을 신랑이 장만하느냐 신부가 장만하느냐에 관한 관습은 지방에 따라

다르다. 호남에서는 신부측에서 장롱을 장만하고 영남에서는 신랑측에서 장롱을

장만하기 때문에 호남신랑과 영남신부가 결혼하면 장롱은 아무도 안해 가게

된다. 이러한 관습을 위반한 경우에는 시가나 처가에서 두고두고 경멸을

당할지는 몰라도 법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사회의

강제가 따르느냐 국가의 강제가 따르느냐에 따라서 관습규범과 법규범을 구별할

수 있다. 독일에서는 신부의 부모에 대한 홍수 청구권을 인정한 일도 있었다.

사실혼도 관습과 관련이 있다. 한일합방 이전에는 부부로 되기 위해서 신고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의용민법에 따라 신고해야만 혼인의 그 성립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실상 혼인식만 올리고 동거하는 부부도 많다.

오늘의 사회보장관계법에서는 사실상의 부부관계를 법적으로 인정하여 부부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규범 중에는 - 특히 가족법과 같이 - 관습의 영향을 많이 받은

영역이 존재한다. 관습을 무시하고는 법의 실효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1980년에

제정된 '가정의례에 관한 법률'이 허례허식을 금지하고 2대조까지만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지만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관습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생활질서이기 때문에 그 내용도 좋은 것들이

많으며, 따라서 '공서양속'이라는 이름으로 법체계 속에 포함되어 존중된다.

관습법은 실정법이 모자라는 경우에 그것을 보충해주는 효력을 갖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현대에도 법과 관습은 끊임없이 내용적 상호작용을 계속함으로써

법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유지해 나가고 있다고 볼 것이다. 이런 측면은 특히

법사회학과 법인류학, 법민속학 등의 연구과제이다.

 

 

3.법과 종교

영국의 법학자 메인(Henry Maine, 1822-1888)은 그의 '고대법'(The Ancient

Law, 1861)에서 고대법이 종교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원시인들은 금기(Taboo)라는 규범을 가졌는데, 그것은 한편으로는 종교적이며

한편으로는 법적 규범이었다. 예컨대 동리 밖 서낭당을 지나갈 때 침을 뱉고 돌

하나를 던지지 않으면, (종교적으로) 부정을 탄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동리

전체에 재앙을 몰고 온다고 하여 (법적으로) 비난하고 제재를 가하기도 했던

것이다. 고조선의 단군과 삼한의 천군, 신라의 고유한 왕호인 차차웅(자충)

실은 주술사나 무를 뜻했다. 신라의 금관은 시베리아계 샤만의 체모와 매우

비슷하다.모세의 십계명이나 신라의 세속오계는 종교규범이면서 법규범이었다.

또한 중세에서도 종교의 힘은 강력하여 법과 도덕의 거의 전부를 포괄하고

있었다. 중세에는 법학이 신학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고 정의는 오직 신의 뜻을

따르는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그 때까지는 법과 종교를 이원적으로 대립시켜

생각할 여지가 없었다. 신정일치가 행해져 종교가 국가, 사회를 지배하였다.

서양의 신성로마제국과 회교국가들, 동양의 유교국가나 불교국가가 대표적

예이다.

그러나 근세이래 세속화(Secularization)와 함께 정교분리가 이루어지고 법은

일단 국가법을 의미하고 교회법은 종교내부에만 적용되는 자치법으로서의 효력만

갖게 되었다. 이로써 이제 종교는 인간의 영적 문제를 다루고 그 밖의 것은 일체

법이 담당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종교는 유한한 인간이 무한절대자를

신앙함으로써 초월과 구원에 이르려는 노력이므로 그 자체는 선한 것이기

때문에, 세속적 법은 최대한 종교적 가치와 자유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오늘날에도 서독에서처럼 국가와 교회가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교회법이

적용되는 나라들이 있고, 이란과 같이 회교국가들도 있으며, 스페인, 이탈리아

등은 카톨릭교회가 사실상의 국교로 되어 잇고, 태국과 같은 불교국가도

있다.(1)

그래서 동서양의 종교는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근대국가들이 헌법과 법률을

통하여 종교의 자유와 정교관계를 규정하였다.(정교협약,Konkordat). 현대에서도

아무리 과학화와 세속화를 주장해도 종교의 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으며 법은

종교를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에 있다. 독일에서는 헌법학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교회법'(Sraatskirchenrecht)이 독립과목으로 법과대학에서 가르쳐지고

있다. 법과 종교의 속성은 어떤 권위(Autoritat)에 대한 복종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며, 법학과 신학은 절대적인 것의 추구와 독단적(dogmatic)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법률가는 '세속적 성직자'라는 표현도 있듯이 법의 이념을 추구하기 위하여

외롭고 성스런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이것은 현대에서도 법은

여전히 종교적인 권위로까지 느껴질 때에 비로소 진정으로 법에 대한 복종심이

생긴다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종교는 법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개념이지만,

인간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영원과 초월을 향하여 몸부림치는 동안에는 법의

제약을 떨어버릴 수 없는, 종교와 이율배반하고 긴장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서로

조화하고 평화를 추구해야 할 요청을 받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데 영역은

법신학(Rechtstheologie)에서 다룬다.(2)

 

 

4.법과 도덕

종교에 비하면 부차적이고도 차안적인 법과 도덕의 상호관계는 설명하기가

더욱 어렵고 미묘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얼핏보면 법에는 도덕과 일치되는 것도

있고(예컨대 살인죄), 전혀 관계없는 것도 있다.(예컨대 교통법규). 법과 도덕은

도대체 구별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근본적인 두 관점이 있다.

자연법론(Naturrechtslehre)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만드는 법은 그보다 더

궁극적인 도덕에 기초하고 그에 합치되어야만 법으로서의 효력을 갖는 것이며,

'부정당한 법'(unjust law)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여 법과 도덕을 일원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설명해 보아도 이 세상에는 인간이 제정하는 실정법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며, 부정당한 법을 법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뒤따른다. 이 사실에 대하여 법실증주의의 입장에서는 법의

내용이 도덕에 반하더라도 법은 법이라고 보아 법과 도덕을 이원적으로

구별하려고 한다. 따라서 '악법도 법'(dura lex, sed lex)이기 때문에 아무리

사악한 법이라도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제정되기만 하면 법으로서의 효력을

가진다고 본다.

시민은 이 법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며, 다만 자기의 양심에 의하여 그 법을

지키지 않으려고 결단하는 것은 법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악법의 문제는 뒤에 다시 얘기하겠다.

 

1.법과 도덕의 구별

법과 도덕을 처음부터 동일시하면 개념의 혼동만 일으키게 되니, 자연법론이니

법실증주의니 하는 관점에 구애받지 말고 이 두 개념을 일단 다음과 같이 구별해

볼 수 있을 것이다.(3)

 

(1)관심방향에서의 구별

법은 외부적 형태에 관심을 두고 도덕은 내면적 형태에 관심을 둔다고 하겠다.

"사색에는 누구도 벌을 가할 수 없다"(Cognitationis poenam nemo patitur)

말이 있듯이, 법은 인간의 외부로 나타난 행동에만 관계한다는 것이다.

도덕에서는 '마음속의 간음'도 가능하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러한 구별도

절대적인 것은 될 수 없다.

법도 인간의 내면적 사항(예컨대 고의, 선의, 책임)을 적지 않게 참작할 뿐만

아니라 도덕도 마음 속으로만 갖고 있어서는 부족하고 외부적으로 적절히

표현되어야만 통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톨스토이(L.Tolstoi,

1828-1910)"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사랑없이 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는 것이 법률가의 죄악이다" 혹은 "법률가들은 인생에 있어서 동료와의

직접적인 관계가 필요하지 않은 상태가 존재하는 듯이 믿고 있다"라고

비판하였다.(4)

 

(2)목적주체에서의 구별

법은 타인을 지향한 규범이요, 도덕은 항상 자기 자신에 대한 규범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와 타인과의 관계란 상호적, 상대적이므로 법과 도덕을 그

어느 한쪽에만 국한하여 생각하면 잘못일 것이다.

 

(3)의무방식에서의 구별

법은 규정에 적합한 형태, 즉 합법성(Legalitat)으로 충족되지만, 도덕은

규범에 적합한 심정, 즉 도덕성(Moralitat)이 끝없이 요구된다. 이런 의미에서

도덕은 무한한 자기채무이지 남에게 권리로 요구할 수 없다. 그러나 도덕은 어느

정도 공통적인 기준과 상호교환성이 있어야지

'심정윤리'(Gesinnungsethik)로서만 이해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5)

 

(4)타당원천에서의 구별

법은 법복종자에 대하여 밖에서 의무지우는 타자의 의지,

타율성(Heteronomie)의 규범이고, 도덕은 고유한 인격을 통한

자율성(Autonomie)의 규범이다. 그러나 단순히 타자의 의지란 불가능하며

거기에서는 필연(Mussen)은 불러올 수 있지만 당위(Sollen)는 초래할 수 없다.

법에도 스스로의 의욕(Wollen)이 배제될 수 없는 것이다.

법과 도덕의 관계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이 나타내 볼 수 있을 것이다.

(41쪽의 그림을 생략하고 설명으로 대신합니다.- 법과 도덕이 같은 상태, 법과

도덕이 완전히 분리된 상태, 법이 도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상태, 도덕이 법의

테두리 안에 있는 상태 - 이상 4가지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법과 도덕은 일단 구별될 수 있으면서도 성질을 판이하게

달리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다. 그래서 혹자는 법을 도덕의 최소한(Georg

Jellinek)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오히려 도덕의 최대한(G.Schmoller)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법과 도덕은 분리(Trennung)될 수는 없고 다만

구별(Sonderung)될 수 있다고 하겠다. 도덕은 법의 타당근거이기도 하고 동시에

그 목적과 이상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법은 항상 윤리성을

띠어야만 법으로서의 효력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며, 라드브루흐가 말한 '법의

도덕의 왕국에로의 귀화''도덕의 법의 왕국에로의 귀화'가 다아나믹하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2.법과 도덕과 상황

법과 도덕이 각기 성격이 다른 사회규범이라고 하여 양자가 무관계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사회생활에서 양자는 다른 성격과 기능을 가지면서도 서로

밀접한 교섭관계를 가지고 있다.

내용적으로 본다면 이 두 규범의 내용은 중복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살인하지 말라"는 규범은 도덕규범인 동시에 법규범이다. 그러나 그 규정형식이

다르다. 도덕규범은 "사람을 죽이지 말라"고 하고 있는 데 대하여 법규범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규정하고(형법 제 250) 있어 행위규범으로서가 아니라 강제규범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 법과 도덕이 내용적으로 겹쳐있는 분야에서는 법은 도덕규범을

강제하는 기능을 한다. 헌법에서 범죄행위로 되어 있는 행위는 모두가

도덕적으로도 악으로 되어 있는 행위이다. 또 민법의 영역에서 공서양속이나

신의성실의 원칙 등에도 도덕적 요소가 들어 있음이 명백하다. 또 과거에 도덕의

영역에서만 문제가 되었을 뿐 법이 직접 간섭하지 않았던 것도 새로이 법의

내용으로 되는 수가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도덕과 내용적으로 중복되어 있는 법의 준수는 법과 도덕의 협동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하겠다. 형법에서 범죄행위는 도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행위이며,

민법의 신분에 관한 법분야에서도 내용적으로 도덕과 중복되는 것이 많다.

그러나 행정법이나 상법에서는 도덕적으로 무색한 기술적인 성격의 법이 많다.

내용적으로는 도덕과 무관한 이러한 기술적 법도 그것이 일단 제정되고 나면

지키지 않으면 안된다는 도덕의식 - 준법의식 - 이 생김으로써 법의 실효성이

유지된다. 예를 들어 교통법규는 교통도덕에 의하여 지탱되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널리 인정된 도덕에 명백히 모순되는 법이

제정되었다고 한다면 그러한 법은 실생활에서는 사회규범으로서 효력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법과 도덕의 이론상의 이동은 이와 간다 하더라도 우리가 일상생활과 입법에서

부딪치는 문제는 더욱 복잡하고 미묘하다. 삼강오륜과 같은 것은 주로 인간의

내심을 규율하는 규범이다. 부모에게 효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윤리규범이요,

도덕규범이다. 이러한 윤리규범, 도덕규범에 위반하는 경우에도 처벌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그것이 윤리규범이나 도덕규범 자체로서가 아니라 법규범화하였을 때

처벌된다. 우리 형법은 존속살인죄 및 존속상해죄(형법 제251)를 규정하여,

비속인 아들이나 며느리가 아버지나 어머니를 살해했거나 상해한 경우에

일반인을 살해했거나 상해한 경우보다도 중벌로 다스리고 있다. 일본에서는

1973년에 이것이 위헌이라 하여 존속살인이란 법적 개념이 없어졌다. 법과

도덕의 판단에 관하여 다음 사례들을 들어 고찰해 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의 옷을 벗기고 상처를 입혀 거의 죽게 된 것을 버려두고 갔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 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해 지나갔다.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해 지나갔다. 그런자 한

사마리아인이 그 길로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감람유와 포도주를 붓고 싸맨 후에 자기 짐승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봐주었다. 다음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주인에게 주며 '

사람을 돌봐주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소'라고

말했다."(신약성서 누가복음 1030-33)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조해 주어도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구조하지 않은 자는 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360프랑

이상 15,000프랑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프랑스 형법 제632)

첫번째 인용문은 성서의 누가복음에 나타난 사례인데, 현대에도 위난을 당해

구조를 필요로 하고 있는 사람을 구조해주지 않을 때 이를 도덕적으로 비난만 할

것인가 아니면 법적으로 처벌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문명사회일수록 대낮에 행길에서 강도를 당해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구조해주기는 커녕 경찰에(증인으로 소환될까봐 귀찮아서) 신고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에 대하여 서양의 국가들은 이른바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the Good Samaritan Clause)을 형법 속에 신설하였다.(6) 이것이 법의

새로운 윤리화(neue Ethisierung des Rechts)의 현상이라 하겠다. 그리하여

이러한 구조불이행자에 대하여는 벌금(핀란드, 터키), 3개월 이하의

구류(덴마크, 이탈리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6개월 이하의

구류(체코, 에티오피아), 1년 이하의 징역(독일, 그리스, 헝가리, 유고), 최고

5년 이하의 징역(프랑스) 등의 형벌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형법은 1960년에 제정되어 개정논의 제기되고 있지만 이런 조항은 두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이라 한다면 이런 조항이 필요할까,

필요없을까? 필요없다면 현대사회의 몰인정, 비인간화의 현상을 무엇으로 막을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하여 간통죄의 문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형법 제241조에 따르면

"배우자 있는 자가 간통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에 대하여

법이 윤리문제에 개입하는 것은 월권이라 하여 간통죄 조항을 없애자는 주장이

있다. 외국에는 이런 조항이 없는 형법이 대부분이고, 서양에서는 가톨릭교가

강한 나라와 이슬람국가와 유교국가 등 종교적, 윤리적 전통이 강한 나라에서만

존속하고 있다.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볼 때 이 문제를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안락사(Euthanasia)에 대하여 어떻게 평가할 수 있으며, 환자에게 의사가

안심을 시키기 위하여 거짓말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모두 어려운

문제들이다.

법과 윤리의 판단을 함에 또 하나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은 상황이다.

윤리학에서 이른바 상황윤리(Situation ethics)의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된 바

있는데, 한마디로 상황윤리는 실용주의(pragmatism), 상대주의(relativism),

실증주의(positivism), 인격주의(personalism)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결의론(neo-casuistry)을 이루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고, 상황 중심적이며

구체적이란 면에선 옛 결의론과 같으나 윤리적 결단을 관례적으로 행할 수

없다는 점에서 옛 것과 다르다고 하겠다.(7) 여기에선 '이웃을 위한 사랑'

명령성(the imperative)'상황의 상대적 사실'의 자발성(the indecative)

합쳐서 하나의 규범성(the normative)을 형성한다고 본다. 상황윤리는

근본적으로 아래와 같은 여섯 개의 원리에 기초한다고 볼 수 있다.

1.본질적으로 선한 것은 사랑뿐이다. 따라서 다른 모든 도덕적 덕성은

명목적이지 실재적이 아닌, 비본질적인(extrinsical) 것이다.

2.사랑만이 유일한 규범(norm)이다. 따라서 사랑과 율법이 모순될 때에는

율법을 버리고 사랑을 따라야 한다.

3.사랑과 정의는 같다. 따라서 이 둘 사이를 구별함은 잘못이요, 그렇게 되면

사랑은 감상적인 것이 되고, 정의는 비인간화된다. 상황윤리는 '사랑 중심의

공리주의'(agape-utilitatrianism)로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최대다수의

최대사랑'으로 바꾼 관점이다.

4.사랑(love)은 감정적 좋아함(liking)과는 다르다. 따라서 느낌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며, 바꾸어 말하면 사랑은 의지라는 뜻이다. 그러기에

낭만적 사랑은 명령이 될 수 없으나 아가페의 사랑은 명령이 된다고 한 칸트의

말은 수긍된다.

5.사랑은 수단을 정당화한다. 사랑이라고 하는 목적만 확정되면 그 목적의

실형을 위해 수단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목적과 수단은

상관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의미에서 "용감하게 죄를 지어라"(pecca

fortiteri)고 한 루터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

6.사랑의 결단은 상황적이지 관례적이 아니다.

 

이상과 같은 출발점에서 미국의 상황윤리학자인 플레쳐(Joseph Fletcher)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서 말한다.(8) 베를린이 소련군에게 점령되기 직전

독일의 어느 여인이 두 아이를 데리고 간첩으로 오인되어 강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헤어졌던 두 아이는 고아원에 있다가 종전으로 군대에서 돌아온

남편과 같이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이 수용소에서 나가는 길은 오직 두 가지

사유, 즉 중병이 걸리거나 임신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여인은 감시병에게

간청하여 성관계를 맺음으로써 임신을 하여 남편과 아이들에게 돌아갔다.

남편에게 돌아온 여인은 그 동안의 경과 이야기를 하고 아이를 낳자 그를

입적시켜 평화스럽게 살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되는 것은 남편과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간음하지 말라"는 율법의 모순이다. 이럴 때 사랑을 위하여는 율법을

범해도 좋다는 것이 상황윤리의 관점이기 때문에 이 여인의 행동은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의 예를 들면 미국에서 어느 여인이 인디언의 습격을 받고 세

어린아이와 함께 숲 속에 숨었다. 인디언이 옆을 지나갈 무렵 그중 제일 갓난

아이가 울기 시작하였다. 인디언에게 들키면 전부 몰살을 당한다. 이럴 때

갓난아이의 입을 막아 죽이면 어떨까? 플레쳐는 아이를 죽인 어머니의 행동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갓난아이를 살리려다 네 명이 다 죽는

것보다 한 아이를 죽이고 세 명이 사는 것이 '최대다수의 최대사랑'이란 원리에

적합한 것이고 이와 꼭같은 근거에서 술취한 정신이상자에게 강간당한 처녀가

낙태수술을 하는 것은 정당화된다고 플레쳐는 주장한다.

플레쳐를 중심으로 한 상황윤리의 주장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논의할 점이

있지만, 법과 도덕의 관계의 관점에서 볼 때, 가장 먼저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주장들이 법에 대한 예외의 경우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성격에도 법에 대하여 예외적인 태도가 여러 군데에 발견되긴 하지만,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를 통상적인 것으로 주장할 수 없다고 생각된다. 또 윤리적으로

비난받지 않는다고 하여 법적 책임을 모면할 수은 없는 것이다. 어쨌든 법과

도덕과 상황의 관계는 어려운 주제임에 틀림없다.(9)

 

 

5.법과 예

서양에서는 법과 도덕을 일원론, 이원론으로 설명하면 충분하겠지만,

동양에서는 법과 도덕 사이에 예라고 하는 독특한 규범이 발달하였다. 이를

도식화해보면 그림과 같다.(46쪽 그림 생략 - 법과 도덕이 겹치는 부분에 예가

들어있다.)

동양 전통사회에서 법은 도덕이나 예규범의 실천을 위한 보조물로 생각되었다.

법은 도덕규범이나 예규범의 위반을 처벌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도덕이나 법의

실천을 담보하는 강제장치에 불과했다. '예주법종'이나 '덕주형보'의 사상은

법과 도덕의 관계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동양사회의 예를 서양에서는 자연법으로 보려는 견해도 있다. 예는 관습,

습속, 의식 및 협약의 복합체라고도 할 수 잇는데, 니이담(J.Needham)은 이를

일종의 자연법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10) 예가 사전에 국민을 선도하여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주는 역할을 한 데 대하여, 법은 이미 이루어진

악행에 대하여 사후에 그것을 처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다만 법을 인간이

만든 것으로 본 것에 대하야, 인의예지와 같은 것은 인간의 본성에서 나온

것이요, 실정법에 우월한 것으로 본 점에서는 자연법의 기능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그 뒤 법가에 의하여 법의 중요성이 강조되었으며, 유교사상에서도 예와

법의 분화가 이루어져 법의 필요성이 인정되었다. 당대에 와서는 율령격식과

같은 실정법이 중요시되었으나 여전히 법형은 서민계급을 다스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요, 지배계급에게는 예와 덕에 의한 훈도가 더욱 중요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유학이 국가 이데올로기화하여 지배하면서

후반기에 이를수록 예가 발달하였다. 법학이나 윤리학이 발달하기보다도 수많은

예학자와 예학서가 나왔다. 예만 지키면 어느 정도 법을 지키는 것이고, 예만

지키면 어느 정도 도덕을 충족하는 것이 되었다. 그래서 예가 완충지대와 같은

매개 역할을 했기 때문에 법은 법대로 발달하지 못했고, 도덕은 도덕대로

자율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고 생각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유학은 송나라의

성리학과 주자가례에 입각하여 공자, 맹자의 송례보다는 관혼상제의 사례

중심으로 발전하였다.(11) 이것을 반성하고 비판한 것이 정약용(1762-1836)

예론 이었다. 서양법을 수용하여 법치주의를 실시하고 있는 오늘날에도 예의

기능은 적지 않게 계속되고 있다고 보겠다. 법치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예를

어떻게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발전시키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하겠다.(12)

 

 

6.결론

관습, 종교, 도덕, 법의 규범은 인간의 차안적 공동생활을 규율함에 있어서

각각의 독특한 이념과 특성, 존재양태를 가지면서도 서로 밀접한 관련성을 갖고

작용한다고 보겠다. 법규범은 관습, 종교, 도덕의 다른 사회규범이 갖는

일반적인 규범으로서의 건전성을 지녀야 법규범 자체의 고유한 이념과 목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법이 가능한 한 관습을 존중하고, 도덕을 그 타당성의 기초와 목적으로

실현하도록 노력하며, 이 세상에서 종교적 초월 - 즉 사랑과 자비의 높은 이상

을 바라보며 부단히 자신의 무본질성(Wesenlosigkeit)'궁극적 본질' 사이에서

긴장하며 자기를 갱신해 가는 사이에서 법규범과 사회규범의 갈등은 은연 중

조화와 타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최종고, '법과 종교와 인간', 삼영사, 1981

한국종교법학회 편, '법과 종교', 홍성사, 1983

최종고, '국가와 종교', 현대사상사, 1983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편, '한국의 규범문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라드브루흐, '법철학', 삼영사, 1975:

Joseph Fletcher, Situation Ethics, 이희숙 역, '상황논리', 종로서적 1989

Lon Fuller, The Morality of Law, 강구진 역, '법의 도덕성', 법문사, 1972

다나카 고타로/정종휴 역, '법과 종교와 사회생활', 교육과학사, 1990

C.그레고리 외/최종고 역, '착한 사마리아인 법', 교육과학사, 1990

H.하멜 외/최종고 역, '서양인이 본 한국법속', 교육과학사, 1990

정해창,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하여, '법철학과 사회철학' 창간호, 1991

랄프 드라히어, 독일에서의 법과 도덕의 관계에 관한 논의 동향, '법철학과

사회철학' 창간호, 1991

차용석, 윤리와의 관계에서의 형벌과 한계, '법철학과 형법', 법문사, 1979

최종고, '법과 윤리', 경세원 1992

Erik Wolf, Das Recht des Nachsten, 1986

Sallg F.Moore, Law as process:An Antropological Approach, Boston, 1978

 

[주석]

1: 최종고, '법과 종교와 인간', 3(삼영사, 1989):문화부, '외국의

종교제도' (문화부, 1989)

2: 한국종교법학회 편, '법과 종교'(홍성사, 1984)

3: 이하의 설명은 라드브루흐, '법철학', 중판(삼영사, 1989), 70-79

4: L,Tolstoi, Das Gesetz der Gewalt und das Gesetz der Liebe(1906),

S.102: Boris Sapir, Dostoevsky und Tolstoi uber Probleme des Rechts(1932)

5: Max Weber는 윤리를 개인적 심정윤리와 사회적

책임윤리(Verantwortungsethik)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Max Weber, Politik als

Beruf,S.54

6:자세히는 C.그레고리 외/최종고 역, '착한 사마리아인 법:법과

윤리'(법학교양총서6)(교육과학사, 1990) 참조

7: 결의론(Kasuistik)은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 개별적인 해결책을 찾는

사고방식인데, 법학의 출발인 로마법학을 비롯하여 모든 법학적 사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법학의 발달은 개념에 의하여 결의론적 사고를

지양하는 데에 있었다. 자세히는 최종고,'법학사'(경세원 1986), 34, 80

8: J.Fletcher, Situation Ethics: 플레쳐/이희숙 역, '상황윤리'(종로서적,

1989)

9: 자세히는 최종고, "법과 도덕", '법과 종교와 인간'(삼영사, 1984),

41-74

10: J.Needham, Science and Civilization in China, vol.2, p.616 이하

11: 자세히는 최종고, "한국전통사회에 있어서 법, 도덕, ", '한국의

규범문화'(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3): 동인, '한국법사상사', 서울대출판부,

1989

12: 전병재 편, '현대사회와 예'(을유문화사, 1989)

 

[연습문제]

1.법과 관습은 어떤 관계인가?

2.법과 종교의 관계를 논하라.

3.법과 도덕의 관계를 노하라.

4.법과 예와 도덕의 관계를 논하라.

5.법적 판단과 윤리적 판단의 관계를 논하라.

6."악법도 법이다"는 생각은 어떤 법사상에 기초하는가?

7.법과 도덕을 구별함으로써 행위규범으로서의 법은 어떤 특징을 갖는가?

8.실정법의 체계는 여러 법분야에 걸쳐 있는데, 도덕과 관련이 깊은 분야는

어느 것인가? 반대로 도덕과 관련이 적은 분야는 어느 것인가?

9.취재원을 밝히지 않는 것이 신문기자의 도덕적 의무라고 말해지는데,

법정에서 증인으로 그것을 밝히라고 할 경우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10.The Good Samaritan Clause를 우리나라 형법에도 규정하는 것이 좋을까?

11.존속살해죄(형법 제251)의 가중처벌은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

12."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간 기타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간은 서로 부양의

의무가 있다"(민법 제974)는 규정은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필요한 규정인가?

13.국가보안법 제10조에서 규정한 불고지죄를 법과 도덕의 관점에서 논평하라.

14.계약불이행이나 불법행위(민법 제750)를 이유로 자식이 친부모에 대하여

소송할 수 있는가?

@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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