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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2/법학 통론

제2장: 법의 개념

by Frais Study 2020. 5. 13.

하나의 정의에로 이르는 것은 아름다우나 때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아직도

법률가는 그들의 법의 개념에 관한 하나의 정의를 찾고 있다. - 칸트(I.Kant)

이념을 회피하는 자는 결국 개념도 파악할 수 없다. - 괴테(J.Goethe)

 

 

1.서론

법의 개념이란 법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이다. 얼핏 생각하면 법이란 법전에

실려있는 법규 그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법전에 쓰여 있지 않으면 법이 아닌가

하는 물음도 제기된다. 따라서 법의 개념 내지 본질에 관한 물음에 대답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으며 어쩌면 법학의 알파와 오메가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모든

학문에서 그것이 출발점으로 삼는 문제가 가장 궁극적인 문제요, 마지막 물음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깊이 이야기하려면 법철학의

심오한 이론을 벌어 논의해야겠지만, 법학통론에서는 그렇게까지 깊이 들어갈

필요는 없고 대체로 법이라는 것이 어떠한 규범인가를 이해하면 충분하다.

 

 

2.법은 하나의 사회규범이다

일찍이 법격언(Rechtssprichwort, legalmaxim)"사회있는 곳에 법이

있다"(Ubi societas, ibi ius.)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사회가 있으면 법이 있기

마련이라는 의미도 되고, 법은 사회에만 있다는 의미도 된다. 법이란 자연의

필연의 법칙(Gesetz)과는 달리 어디까지나 인간의 사회생활에 관한

규범(Norm)이다. 그렇게 때문에 법학에서 말하는 법은 처음부터 '해는 동에서 떠

서로 진다'거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등의 존재(Sein)

필연 (Mussen)의 법칙과는 다른 당위로서의 규범(Sollensnorm)을 의미한다.

기르케(Otto von Gierke, 1841-1921)는 인간의 인간됨은 서로 관계를 맺고 사는

데에 있다고 하였고, 여류문학가 마리 폰 에브너, 에쉔바흐(Marie von

Ebner-Eschenbach)"아무도 타인에 대하여 공정할 수 있을만큼 고고하게 살

수는 없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인간사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이라는 사회규범이

필요한 것이다.

 

 

3.법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의 강제성을 띤 규범이다

법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 즉 국가 속에서 스스로를 관철시키기 위하여

강제(Zwang)라는 수단을 뒷받침으로 갖고 있는 규범이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의

법학자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92)"강제가 없는 법은 타지않는 불꽃

같다"고 표현하였고, 현대의 법학자 켈젠(Hans Kelsen, 1881-1973) 역시 법에서

강제는 본질적 속성이라고 보았다.

법은 자기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제재(Sanktion)를 가한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적 규범들, 예컨대 도덕이나 종교 또는 관습과 성격을 달리한다(이에

대해 뒤에 상론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커피숍에 앉아 나는 하이데거

철학이 좋다, 나는 야스퍼스가 마음에 든다고 한담할 수는 있지만 법이라 한번

제정되면 좋으나 싫으나 그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에서 법규범의

강력함과 권위, 따라서 그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생기게 된다.

 

 

4.법은 정의라는 법이념을 향한 문화규범이다

우선 법은 하나의 문화개념(Kulturbegriff)이라는 사실부터 설명하겠다.

세상은 현실과 가치, 존재와 당위의 세계로 나뉘어져 있는데, 인간은 현실에

발을 딛고 살면서도 항상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나은 현실, 즉 가치를 향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끊어진다면 인간 존재의 인간됨은

그치는 것이라고 하겠다. 인간이 현실에서 가치를 향하여 노력하는 가운데서

생성되는 업적 내지 산물을 우리는 문화 혹은 작품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면

인간이 미라는 가치를 향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이룬 작품을 우리는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이 예술은 미 자체는 아닌 것으로 그 속에는 마만이

아니라 불미 내지 추악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미를 향하여

노력한다는 의미(Sinn)를 안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예술로서 평가되고

정당화된다. 학문도 진리 그 자체는 아니지만 진리를 하야하여 노력하고 있다는

데에서 학문성을 갖는다.

우리가 문화의 의미를 잃게 이해한다면, 법은 정의 자체는 아니지만 정의라는

가치(법이념)를 향하여 노력하고 있는 하나의 문화개념이라는 점이 어렵지 않게

이해될 것이다. 법은 정의를 지향하지만 정의 그 자체는 아니다. 이 세상의

법에는 정의의 법만이 아니라 부정의로운 법도 얼마든지 있다. 우리는 그것을

부르기 쉽게 악법 혹은 불법이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법이 법인 것은 그것이

정의 그 자체는 아니지만 무엇보다도 정의를 향하여 강하게 노력하고 있는

규범이라는 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라드브루흐는 법을 다음과 같이

적절히 정의하였다. "법은 법이념에 봉사하는 의미 있는 현실(die Wirklichkeit,

die den Sinn hat, der Rechtsidee zu dienen)이다" 라고 했다.(1)

 

 

5.법은 존재와 당위 사이의 '사물의 본성'으로서의 규범이다

법이 하나의 문화개념이라는 사실은 법이 현실과 가치의 어느 한쪽에만 속하는

것이 아닌 존재와 당위의 연결에서 나오는 규범이라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철학적으로 존재와 당위의 상관문제는 매우 어려운 테마이지만 법은 단순히

당위적 규범에만 속할 수 없는 것이다.

일찍이 켈젠은 이른바 순수법학(Reine Rechtslehre, pure theory of law)

주창하여 법을 오로지 당위의 순수한 규범으로만 파악하고 일체의 존재 사실과는

무관한 것으로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당위는 당위에서만 도출될 수 있다고

하여 존재와 당위를 엄격하게 구별하는 방법이원주의(Methodendualismus)

수립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법이 법으로서의 효력을 갖는 것은 더 상위의

법으로부터의 당위적 효력을 위임받기 때문이라는 법단계설(Stufentheorie)

전개하였다. 즉 다음과 간이 법은 위계질서의 피라미드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근본규범 - 헌법 - 법률 - 명령 - 규칙

다시 말하면 명령, 규칙이라는 최하위 법규범은 더 상위의 법률에서 효력을

부여받고, 법률은 다시 최상위의 헌법에서 효력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최상위의 헌법을 법으로서 효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켈젠은

실정법(positive law, positives Recht)으로서 헌법 위에는 어떠한 법도

존재하지 않으며, 헌법에 효력을 부여해주는 것은 근본규범(Grundnorm, basic

norm)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근본규범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무엇에서부터도 연역되지 않는,

스스로 규범으로서의 효력을 갖고 있는 무엇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켈젠이 그렇게 강조하는 당위로서의 규범이 아니라 이미 존재인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켈젠의 법단계설은 근본규범이라는 가설 때문에 자기모순에 따지고 만다.

이러한 자기모순은 처음부터 법을 존재와는 상관없는 순수한 당위의

규범체계로만 이해하려고 출발했던 데에서 비롯된다. 그보다도 오히려 법을

존재와 당위 사이에 있는 사물의 본선(Natur der Sache, nature of things) 내지

질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모든 당위적 규범은 그것이 마땅히 그래야만 하기

때문에, 즉 존재적으로 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당위적으로 그렇게 해주기를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법의 이해에서 엄격한 방법이원주의를

취하기 보다는 사물의 본성을 통하여 방법일원주의(Methodenmonismus),

존재와 당위를 연결하는 방향을 취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이 문제는

뒷날 '법철학' 과목을 배우면 더 깊이 이해될 것이다.(2)

이제 우리가 사용하는 ''이란 말을 한번 생각해 보자. 이 글자는 물과

해태치가 간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중국의 묘족이 신의재판을 할 때 해태를

재판석 앞에 내세우면 해태는 반드시 죄지은 자에게로 가서 뿔로 떠받는다는

고사가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도 중국의 법복에는 해태의 석상을 즐겨 해

세웠다. 즉 해태는 동양적 정의의 상징이다.(3) 따라서 법이란 말은 물과 같이

공평하게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뜻하는 좋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법은 한자어인데, 순수하게 우리 한글로 법에 해당하는 말이 있을까? 그것은

아마 ''이라는 말이 아닐까 생각된다. 즉 김현배님이 어법, 산법을 말본,

셈본이라 했듯이, '본보기', '본때가 있다 없다' 할 때의 그 ''이다. 즉 본은

지상에 있으되 꼭 있어야 할 모습대로 있는 상태, 그래서 남의 모범이 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것을 서양식으로 표현하면 존재이되 당위적으로 있는

상태, 즉 당위적 존재(Sollendes Sein)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좋은 말의 뜻을 갈고 닦아 학문화시켜야 할 것이다.(4)

 

 

6.법은 상대적이면서도 절대적인 규범이다.

이 명제는 다소 문학적인 표현처럼 들릴 수도 있는데, 상대적이니 절대적이니

하는 말 자체가 매우 유동적인 개념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상대주의자라고

강력히 주장하면 은연 중 절대적으로 되기 마련이고, 진정으로 상대적이 되려면

자기의 주장 자체를 상대화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

는 뜻은 법이라는 규범은 존재만도 아니며 당위만도 아니기 때문에 따라서 존재

로서의 시간적, 공간적 제약을 받는 상대적 규범이면서, 그러면서도 거기에만 집

착하지 않고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지향하는 절대적 규범이라는 점이다.

일찍이 파스칼은 '팡세(Pensee)'에서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정의()가 저

쪽에서는 부정의(불법)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법의 상대적 운명을 예리하게

갈파한 표현이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 이쪽이나 저쪽이나 인간이 사는 곳이라면

언젠가는 서로 연합하여 일치된 정의를 추구하는 법을 발견할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는 처음부터 배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백 사람이 함께 일하고,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한 삶이 혼자 죽어간다"(Wir arbeiten zu Hunderten

zusammen, wir lieben zu zweit, wir sterben allein.)고 할 수 있겠지만,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도 우리는 서로 의지하고 협력하면서 절대적인 것을 추구해 나가

야 하는 운명일 것이다.

[.법률.법전.법규]

''과 관련하여 비슷한 응용된 용어들이 있다.

법률(Gesetz, law 혹은 statute)은 실질적 의미에서는 법과 동일한 뜻으로 사

용하지만, 형식적 의미에서는 국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 공포하는 법을

가리킨다. ''은 보다 포괄적, 추상적이며, 법률은 구체적, 가시적인 개념이다.

부정당한 법'(unrichtiges Recht)이란 형용모순이지만 '부정당한

법률'(unrichtiges Gesetz)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자세히는 '악법론'에 관한

설명 참조.

법전(code, Geseztbuch)은 헌법, 법률, 명령, 규칙과 같은 실정법을

체계적으로 편별한 조직적 성문법규집의 전체를 가리킨다. 단행법전도 있지만,

'육법전서' 혹은 '법전'이라 하여 포괄적인 법전과 중소법전들이 있다. 보이는

것은 제정법률 등이며, 그 속에 ''이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법규(Rechtssatz)는 넓게는 법규범 일반의 준말이고, 좁게는 성문의 법령을

의미한다.

법령은 법률과 명령을 함께 부르는 말인데, 넓은 뜻으로는 법률이나 법 전체를

가리킬 때도 있다. 법전을 법령집이라 부를 때도 있다.

 

 

7.결론

이상에서 우리는 법을 몇 가지 측면에서 조명하여 그 개념을 파악하려고

시도하였다. 법철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이해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지만,

법철학 자체에서 법이 무엇인지 속시원히 해결될 것은 아니다.

법의 개념 내지 본질의 문제를 두고 앞으로 이야기할 자연법론자들과

법실증주의자들의 날카로운 이론대립이 법학의 역사를 이루어 왔으면서도 이

문제는 아직도 우리에게 미해결의 장으로 남아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호움즈(O.W. Holmes, 1841-1935,판사)'법은 법원에서 말해지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고 보았는가 하면, 소련의 민법을 초안한

고이히바르(Goikhbarg)'법은 종교보다 더 강한 아편이다'고까지 하였다.

그러나 법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하여 모든 것이 법이라고 할 수는 없다.

불가지와 회의를 건전한 비판주의로 구사하느냐, 파괴적 허무주의로

전락시키느냐는 우리들 판단자 자신의 교양과 윤리의 문제인 것이다. 홈즈는

자신의 첫번째 신념을 의심하는 것이 문명인의 특징이라고 하였는데, 인습과

선입견, 주관적 가치관의 정신적 노예에서 벗어나 냉정한 인식의 판단 위에서

법적인 것을 찾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엄격히 법철학적으로 다소 불명확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대체로 법이 이 땅 위의 삶 속에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규범인가는 밝혀졌으리라 생각한다.

 

[참고문헌]

심헌섭, '법철학1', 법문사, 1981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삼영사, 1975(초판), 1989(6)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과 예술', 열화당, 1980

A.카우프만/심헌섭 역, '현대법철학의 근본문제', 박영문고, 1974

김병규, '법철학의 근본문제', 법문사, 1988

최종고 편, '법격언집', 교육과학사, 1989

H.켈젠/심헌섭 편역, '켈젠법리론선집', 법문사, 1990

Lon Fuller, The Law in Quest of Itself, 1940

R.Zippelius, Das Wesen des Rechts, 3.Aufl., 1973

H.Kantorowicz, The Definition of Law, 1958

H.L.A.Hart, The Concept of Law, 1961

 

[주석]

1: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91), 62

2: 자세히는 심헌섭, '법철학1' (법문사, 1982), 177-220

3: 최종고, '정의의 상을 찾아서', 서울대출판부 1944: 정의의 상징 해태상.

'월간미술' 199411월호:법과 정의의 상징에 관한 연구, '저스타스' 271,

1994

4: 최종고, "법과언어", '법과 종교와 인간'(삼영사, 1992)

 

[연습문제]

1.법이란 무엇인가?

2.법개념은 왜 문화개념인가?

3.법과 정의의 관계를 논하라.

4.방법이원주의와 방법일원주의를 논하라.

5.법의 존재적 측면과 당위적 측면을 논하라.

6.법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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