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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왜곡

일본은 남북통일을 바라지 않는다?

by FraisGout 2020. 8. 23.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일본이 한국의 통일을 바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씩 실시되
는 여론조사에서도 그것은 드러나지만, 이는 지식인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문장.
  통일을 결코 원하지 않으면서 이를 적절히 조정하여 양쪽에서 이득을 얻고자 하는 '경제
대국에서 이미 정치군사대국으로 이미 나아간' 일본의 음흉하고 노골적인 대공세 앞에서 긴
급하기만 한 민족통일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다짐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주강현, '민
족생활풍습과 일제 잔재', '일제 잔재 19가지'.196쪽)
  이 글은 일본이 "결코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고 단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음흉하고 노골
적인 대공세"을 마치 사실처럼 강조하고 있다. 이 역시도 앞에서 본 식의, 일본인=교활한 민
족이라는 이미지를 보강하는 글이다. 당연히 그 귀결도 '민족통일에 대한 입장을 다시 한 
번 다짐' 하자는 내용이다. 
  그런데 일본은 정말 우리의 통일을 원하지 않는 걸까?
  90년대 중반만 해도,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한일 의식구조 조사를 보면 일본은 한국의 통
일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한국 사람이 '그다지'까지 합하면 97퍼센트였다(한국경제
신문,95.1.1). 한국인의 대부분이 그렇게 믿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같은 조사에서 일본인들은 80.8퍼센트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통일이) 필
요하다'고 말한다. 또 일본이 핵무기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도 77.7퍼센트
다.
  실제로는, 일본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독도문제처럼) 무관심하다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오히려 2년 전의 북한 미사일 사건 이후 통일을 원하는 일본인은 늘었다. 그래야만 북한의 

위협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테니 당연한 일이다. 
  
  1)일본과 한국의 '국가라는 구심체'
  그런데도 일본은 우리의 통일을 원하지 않고 핵무장을 꾀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들의 침략
에의 야욕을 의심한다. 무엇이 그렇게 의심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통일 후의 한국이 힘이 막강해져서 일본을 위협할 만한 대국이 될 것이고, 그것을 
일본이 싫어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통일 이후의 한국이 어떤 모습이 될
지는 통일의 방법과 그에 따르는 여러 가지 정책이 결정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막연히 생각
하는 것처럼 두 나라가 합치면 두 배의 국력이 생긴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순진한 발상이
다. 더구나 북한의 자원과 싼 노동력이 한국의 경제를 뒷받침해줄 것이라는 생각도 북한을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생각하는 무책임하고도 이기적인 발상이다. 또 다른 지역차별의 발생
을 예상케 하는 발상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한국이 강대국이 된다는 환상을 품으면서 일본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것'으
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일본을 적으로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점이다. 21세기를 맞아 
표면적으로는 동반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시대로 접어들었지만, 그런 의식들
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일 간의 불협화음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일본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하는 법을 제정했을 대, 한 신문이 "이 
법안의 최대 의미는, 패전 후 의식적으로 외면해온 '국가'라는 구심체를 일본인에게 던져주
었다는 점"이라고 부정적인 뉘앙스로 쓴 것도 이런 경계의식의 소산임은 물론이다. 하지만 
일본 신문들이 스스로에게 한 소리를 옮겨 쓴 것에 불과한 이런 소리는, 실은 한국이 할 수 
있는 소리는 아니다. 왜냐 하면, '국가라는 구심체'를 중심으로 뭉쳐 있는 것은 실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이니까. 다시 말해서 국가를 중심으로 뭉치는 일의 문제점을 한 번도 생각해보
지 않은 채로 '구심점'을 굳건히 하는 데 힘쓰고 있는 나라가, 과거에 그것을 한 번 버렸던 
다른 나라가 그것을 되찾겠다고 나섰다 해서 왈가왈부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말이다. 한국
에서는 아직껏 '국가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지 않은가? 우리의 '구심
점'을 정립하자며 단군상을 건립하려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일본에서 이런 발언이 나오는 건 그들이 이미 '국가'라는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나름대로 충분히 거쳤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국가'를 중심으로 맹목적으로 뭉쳤던 
경험이 어떤 쓰라린 결과를 가져다주었는지를 피부로 알고 있는 '일본' 인들이기에 할 수 
있는 소리다. 또한 그런 발언은 무엇보다도 '국가'를 중심으로 뭉치려 하는 움직임을 일본인
들 자신이 우려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국가'를 중심으로 뭉치는 일의 주체가 일본일 경우에는, 김진명의 민족주의 소설
에 환호하는 한국 자신의 '국가' 의식은 잊어버린 채로, 그것은 곧바로 군국주의적 국가주의
로 비판된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도 일본이 하면 무조건 단죄되는 묘한 현상이 여
기서도 보이는 것이다.
  
  2)보이지 않는 '야욕'과 보이는 '왜곡'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일본도 90년대 이후 실제로 민족주의적이고 국가주의적인 움직임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전쟁을 할 수 없었던 법을 할 수 있도록 개정하고 히노마루와'기미
가요'를 부활시킨 것도 사실이다. '국가'니 '국민' 의식이 강조된 것은 그런 맥락에서의 일
이다. 또 그 과정에서 군사적으로 막강한 힘을 갖추게 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군사력이
란 대개 경제력과 비례하는 법이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최대가 아닌가. 경제력 2위인 일
본이 군사력이 두 번째쯤 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본의 국가주의화나 군사대국화에 문제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그런 그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되, '왜' 그들이 그러는지, 또 그런 움직임이 일본을 대표하는 
움직임인지까지 보려는 복합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90년대 초 걸프 전쟁 이후, 미국은 일본에게 끈질긴 '군사'적 협력을 요청하고 있다. 현재
까지 일본은 헌법 제9조-전쟁을 해서는 안 된다, 즉 군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에 근거해 후
방에서의 조력만 해왔지만, 실은 일본은, 법을 핑계로 많은 선진국 군인들이 피를 흘리고 싸
우고 있을 때 자신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이 없는 일만을 하고 있지 않느냐는 비판을 외국으
로부터 받기도 했다. 
  그런 비판을 우리라면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한 마디로 일축하기 어려운 문제다. '피'를 
흘리지 않는 것을 이기적이라고만 생각하는 것도 문제지만, 그런 비난 앞에서 할 수 있는 
말도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물론 그렇다고 전쟁이라는 폭력을 긍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문제가 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반도는 전쟁
의 위험성이 팽배한 지역이었고, 만약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경우 일본은 미국을 도와 한
국전에 어떤 형태로든 참가해야 할 입장이었다. 말하자면 유사시에 미국과의 협력을 위해 
자위대가 출동할 수 있는 기반을 그들은 만든 셈이다. 실제로 긴급상황 발생 때 한일 군 당
국이 신속히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한일 사이에는 '군 핫라인'이 가동되었다고도 한다
(조선일보,99.5.5). 한국과 일본이 적으로서 대치한다는 발상은 이러한 현실의 움직임을 보지 
못한 결과다. 군사대국화문제는, '군대'를 필요로 하는 '국가' 시스템 자체를 넘어서지 않는 
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모든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경계와 비난 이전에 상대방이 처해 있는 '입장'까지도 보는 일
이 필요하다. 적어도 그들의 군사대국화를 복합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그것을 곧장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는 처사라고 단정하는 우는 범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내가 아는 일본은 다시 전쟁을 일으키고 타국을 식민지화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다. 과거
의 오류와 고통을 통해 항상 더 나은 자신의 모습으로 거듭나려 하는 것이 그들이니까. 예
를 들면 지진과 화산의 재앙을 통해 그들이 지진과 화산 연구에서 세계적 수준의 국가가 된 
것처럼, 설사 내부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과거의 오류를 다시 범하지는 않으
리라는 게 일본에 관해 공부해온 내, 아직까지의 이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인식되기보다는 아직도 "일본은 여전히 기회만 있으면 
주변국에 대한 정복의 야욕을 접지 않고 있다."거나 "일본은 우리의 이웃에 있으면서도 우
리가 생각하는 그런 이웃은 아닌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들의 '섬나라 근성'을 가슴에 
품은 채 우리의 감시와 견제가 소홀하게 되면 우리에게 공격해올 수 있는 준비를 항상 철저
히 하고 있는 것이다."(이승영, 김승일 공저, '한국인이 모르는 일본, 일본인이 모르는 한국
', 무한,1999)라는 식으로 일본의 '야욕'을 강조하는 일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문제시되어야 할 것은, 그들의 보이지 않는 '야욕'이 아니라 우리의 보이는 '왜곡' 쪽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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