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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왜곡

신용하 교수의 반일 수사법

by FraisGout 2020. 8. 23.

  몇 년 전의 일이긴 하지만, 서울대 교수들의 일본 이해도 실은 이 정도 수준이었다. 말하
자면 일본이라는 타자에 대한 인식수준만을 본다면 지식인이나 일반인들이나 다를 바가 없
었던 셈이다. 그리고 거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런데 일문과를 먼저 설치하는 일을 '굴욕'이라 말한 신용하 교수야말로 경직된 모습의 
서울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예를 들면 쇠말뚝에 관해서는 "일본은 믿지 
않았지만, 좌절감을 심어주기 위해 이러한 정책을 취했다."고 단정했고, 대중문화 개방에도 
물론 반대했다. 말하자면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유발하는 발언을 통해 한국인의 반일의식
을 높이는 데 기여한 대표적 인물인 셈이다.
  
  1)식민지 지배의 '수탈'과 '근대화'
  그가 90년대에 중점적으로 주장한 것은 식민지 수탈론 이었고, 어업협상 및 독도문제와 
관련된 여러 발언도 세간의 주목을 모았다.
  먼저, 식민지 수탈론 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말하자면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한국을 수탈
한 것이었을 뿐 한국의 근대화에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이미 적지 않은 반론이 제기된 바 있다. 그 반론들에 덧붙인다면, 신 
교수의 논법은 처음부터 일본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근대화에 대해 논하고 있기 때문에 결
과적으로 근대화라고 하는 커다란 문제가 극히 단순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일상생활에서 한국인들에게 가해진 '수탈'과 핍박은 존재했을 것이고, 그것은 앞으로
도 충분히 연구, 조사되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일
제의 정책은 농민계층에 대해서는 수탈이었지만 지주계층에게는 오히려 시혜적인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제에 대한 저항도 계급 간에 다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수탈만
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계급간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를 보는 일이 더욱 생산적인 논의
가 아닐까.
  어쨌거나 일본의 식민지정책을 무조건 수탈로만 판단하는 것은 너무나도 일면적 발상이
다.
  기차의 예를 보자. 기차는 근대의 커다란 상징이었고,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속도
로 달리던 기차는 당시 사람들에게 '근대'의 경이 그 자체였다. 설령 그 이기를 누릴 수 있
는 것이 조선인의 극히 한정된 계층에 지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때 기차는 분명 '근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차는 한편으로 러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끌었고, 그 결과 한국의 식민지
화를 결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는 기차는 분명 수탈의 수단이었다. 
따라서 식민지 지배는 수탈이면서 근대화였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일본의 일부 우익들이 한국을 문명화했다고 주장하는 소리에는 수탈보다는 근대화만
을 보려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런 시각이 비판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어떤 경우에서
건 식민지화 자체는 긍정될 수 없는 것이니까. 더구나 근대화 자체가 선으로만 볼 수도 없
는 것이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문명의 이기의 유입 자체에 대한 부정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그런 논리들은 의식적(이 경우는 대부분 정치적 이유에서), 무의식적으로 '근대화'
의 양 측면을 보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일본측 논리와 다를 바 없다.
  식민지화란 필연적으로 문명과 수탈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법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
했듯이, '식민지'란 그 자체가 어떤 의미에서 '근대의 실험실'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
근대화'의 이름으로 행해진 '수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식민지 수탈론은 그 자체가 문제로
서 성립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 식민지화란 분명 새삼스럽게 말한 필요도 없는 '악'이
다. 중요한 건 그것을 새삼스럽게 되살리며 증오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식민지화가 어떤 식
으로 '문명'의 얼굴을 하고 다가왔으며 그 문명이 내포한 문제는 어떤 것이었는가를 밝히는 
일이 아닐까. 그건 현재와 미래의, 또 다른 지배와 착취를 막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탈 식민지주의 국가의 권위주의와 민족주의적인 지적 엘리트 사이의 공범관계는 내셔널
한 문화의 본질주의와 배타성을 강화시키도록 작용하고 있다."[강상중,'오리엔탈리즘을 넘어
서', 이와나미쇼텐, 도쿄,1996]는 지적도 있지만, 신용하 교수의 담론은 그런 한 전형을 보
여주고 있다. 물론 이는 신 교수뿐 아니라 민족주의적 노선을 취하면서 실제로는 민중 쪽보
다는 국가 쪽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는 수많은 엘리트층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한국의 반일에 맞서 일본에서 90년대에 험한 분위기가 일었던 것에 대해 그는 "자기네들
의 치부가 드러나니까 부끄러워서 그러는 것"('신 일본패권주의와 한일관계' 김영
사,1993,339쪽)이라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비판에 대해 '왜'그런가를 들으려 하지 않고 무조
건 상대가 나쁘기 때문이라는 식으로만 해석하는 이런 식의 사고야말로 '대화'를 가로막는 
것이 아닐 수 없다.
  
  2)일본은 "매우 기뻐서..."식민지 수탈론 보다 잘 알려진 신 교수의 주장은 최근의 어업협
정 때의 담론일 것이다. 그는 이전부터도 독도문제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보여왔는데, 어업
협정 때도 곧바로 이 문제를 독도와 연관지으면서 문제삼았다. 독도문제는 아직 해결이 되
지 않은 상태니 만큼 논의 자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문제시하고 싶은 것은 어느 쪽 영토인가 자체보다도 독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우리의 전 
국민적 분노와 운동이 말하는 한국 민족주의의 지나친 열기 쪽이다. 우리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까지 만들어 전국적으로 보급시켰고 한국인이라면 독도문제를 모를 수 없도
록 되어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 외무성 당국자 등 소수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러한 무관심은 독도를 둘러싼 반응뿐 아니라 월드컵축구 유치 때도 마찬가
지였다. 우리나라처럼 전 국민이 하나의 모습으로 흥분하는 열광적 민족주의의 표출은 현대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우리는 곧잘 일제 시대 때 천황 제하의 일본이 전 국민적 
규모로 광분했다는 사실을 두고 비판하지만, 현대에 와서 그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은 오히려 
한국 쪽이다.
  그런 식의 전 국민적인 열기가 가능한 것은 물론 한국이 민족주의적 감정이 강하기 때문
이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식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드는 지식인들과 그 의
견을 무비판적으로 전달할 뿐 아니라 때로는 과장과 왜곡까지도 서슴지 않는 언론 때문이기
도 하다.
  한 매체에 기고한 신 교수의 주장을 보자. 
  [독도문제 확실히 하라]
  독도는 한국 고유영토이며...
  일본은 매우 기뻐서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일본측 제안 EEZ 경계선을 서변으로 하고...
  새 어협에서 한국 어민들의 분노가 일단락 되면 일본은 다음 단계에서 독도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 때 '중간 수역'안에 들어간 우리의 고유영토 독도는 폭풍 속에 휘말릴 것이
며, 이번 새 한일어업협정에서 노린 일본측 의도와 그에 동조한 한국 자문의 본질이 적나라
하게 드러날 것이다....
  이제는 우리의 국력과 우리 국민 및 정부의 강력한 의지만이 독도를 지킬 수 있게 되었
다...
  이번 새 한일 어협은 독도 영유권을 훼손하여 독도를 위험에 빠뜨렸다.(조선일보,99.4.19)
  이 글은 내용 자체도 불확실한 것이지만, 여기서 문제시하고 싶은 것은 내용의 설득력을 
위해 동원되는 수사법이다.
  한국의 잘못된(잘못됐다고 신 교수가 생각하는)결정을 '일본은 매우 기뻐'했다고, 그는 마
치 일본의 속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처럼 단정한다. 어업협정에서 '노린'이라는 표현 
역시 김진명이나 풍수학자들의 수사법에서 이미 본 표현이다. 말하자면 교활하고 간교한 책
략가로서의 일본의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표현인데, 이런 식의 수사법이 그의 글에서도 빠지
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일어업협정이 독도 영유권과 무관하다고 해명하는 외교통상부
에 대해 반론을 펴면서, 거기서도 '굴욕외교의 표본', '일본의 독도 침탈 장기전략', (일본
의)전략에 한국 외교통상부가 말려든 것'(한국경제신문'다산칼럼',98.12.14)이라고, 읽는 사
람들을 자극하는 단정적 표현을 쓰고 있다. 당시 사람들은 어업협정문제를 두고 흥분했고 
김선길 해양수산장관을 해임시키기까지 했는데, 사람들이 사태를 충분히 알지 못하는 채로 
흥분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같은 담론들의 영향력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때 협정 당사자들, 혹은 전문가들로부터는 적지 않은 이의제기가 있었다는 건 
우리가 이미 아는 바와 같다. 예를 들면, 한 당사자는 한일어업협정은 "독도와 무관"하고 "
새로운 한일어업협정으로 인하여 독도와 그 주변 12해리 영해가 영향을 받는 것도 없으며 
일본에 내준 바다도 없"으며 "어업협정 체결 여부와 상관없이 독도 주변에는 우리의 EEZ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최승호 외교통상부 조약국장, 한국경제신문,98.12.10)고 강조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글도 볼 수 있었다.
  신 교수는 협정이 양국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 적용된다는 규정을 보고 이것이 EEZ
을 다루는 협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협정이 적용되는 장소적 범위와 협정이 다루
는 문제, 즉 물적 대상은 별개라는 법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 이 협정은 EEZ
이라는 장소적 범위 내에서 일어나는 어업문제를 다루는 협상이다.(정해웅 외교통상부 국제
법규과장, 조선일보,99.4.24)
  그는 또 신 교수가 "중간수역의 외곽선을 중간선으로 오인"한 것이고, 이번 협정에서는 "
중간선도, EEZ기점도, EEZ경계선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해에서 양국 간 거리가 좁은 해역
에서는 연안으로부터 3해리 이내의 수역을 각기 연안국의 EEZ으로 간주하여 어업질서를 구
축한 것이기 때문에 어떤 중간선도 협정에 나타나지 않는다. EEZ경계 확정을 미결로 두고 
체결한 협정에서 EEZ경계 획정의 논리를 찾으려는 것부터가 잘못된 것"이라고도 지적했다.
  또 다른 이는 "한일어업협정에 관한 찬반논쟁은 한 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며 "사실까지 
왜곡하면서 여론을 오도하는 것을 보다 못해 국내의 국제법계 중진 20여 명이 작년 말 7개
항의 의견서를 발표했다."고 말한다. 그도 협정이 "어업에 국한"된 것이고 "독도 영유권 문
제와는 별개"이며 "EEZ경계협정이 아니라 그 수역 내의 어업분야만을 잠정적으로 합의"했
다고 말한다. 그리고 "어업에 관한 협정에 독도에 관한 문제는 왜 들고 나왔는지, 그리고 그
것이 독도문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개탄스러
운 일"이라며 "우리의 입장을 노출시키는 논쟁을 무분별하게 벌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인
가?"(박춘호 국제해양법 재판소 재판관, 조선일보,99.4.4)고 묻는다.
  그러나 신 교수의 수사법은 그의 의도가 바로 이 '국민감정을 자극'하는 데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실제로 국민여론은 해양수산부 장관을 사임시켰으니, 장관은 말하자면 이 '국
민감정 자극'의 여파로 사임한 셈이라 해야 할까. 그가 실제로 일을 잘 했는지 못 했는지를 
떠나 이간의 과정은 가히 마녀사냥을 방불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장관은 그만두면서 중요한 지적을 했다. "한국은 1년 총 어획량 중 5퍼센트도 안 
되는 양을 일본 수역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며, 쌍끌이어업의 주 어장은 제주도 서부고, 일본
에서의 어획량은 2퍼센트 미만"('한일어업, 나도 할 말 있다', 조선일보,99.3.25)이라는 것이
다.
  여기서 명확해지는 것은 우리 모두가 전 국민의 문제인 것처럼 흥분했던 어업문제가 실은 
'어민'들의 문제였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총 어획량 중 '5퍼센트도 안 되는'양, 그리고 '2
퍼센트 미만'의 쌍끌이어업에 관계된 어민들의 경제권을 둘러싼 쟁탈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영화인들을 살리기 위해 영화쿼터제를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로 우리는 어
업문제를 놓고 전 국민적으로 흥분했던 셈이다. 90년대 초반에 우르과이 협정을 놓고 맹렬
한 반대운동을('신토불이'라는 말을 유행어로 만들면서)벌였던 것과 마찬가지 구조를 어업
문제가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 반대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주장한 것은, 한국이 '농업국가'이며 다른 것도 아닌 '
토지'의 생산물을 희생시킬 수 없다는 논리였다. 이는 가히 '토지'중심주의라 할 만한 것이
었고 민족주의가 자신의 존재근거로 삼는 것이기도 하지만, 실은 모든 분야에서 민족주의는 
고개를 드는 법이다. 그래서 영화인들도 만화인 들도 '우리'의 '문화'를 죽여서는 안 된다고 
모두를 협박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물며 그것이 농민이며 어민이 되면 '고향'의 이미지에 
약해질 수밖에 없는 우리의 정서는 더욱 강력히 반응할 수밖에 없었다. 
  전체의 일이 아니라 한 분야의 일이니 무관심해도 좋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업협정문제가 실은 해당 구역의 어민들의 경제권을 둘러싼 싸움이었다는 점까지도 '아는'
일이다. 사건의 본질을 우선 이해해야 적절한 대처가 가능할 것 아닌가. 
  일본은 우리가 IMF에 처했을 때 가장 많이 도와준 나라기도 하다. 물론 그러니까 대신 
어민들을 희생시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한 분야의 대립 때문에(그렇다
고는 알지 못한 채로)국가 전체가 대립하는 사태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점이다. 
일본 역시 어민들과 관계 있는 지역 사람들이, 즉 선거를 의식한 강경파들이 어민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구실 하에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 강경한 주장을 펴고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렇다면 그것은 당사자들이 나서서 시간을 두고 대화를 통해 슬기롭게 해결하면 될 일이
다. 그것을 일본 전체의 문제로 간주하고 전 국민이 하나가 되어 대립하는 일은 소모일 뿐
이다.
  
  3)일본 어업협정 담당자의 발언
  그런데 이런 문제를 보면서도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 일본 쪽 어민들을 취재한 기자들은 
없었던 것 같다. 언론은 우리 쪽 배가 '나포'당한 사실만을 크게 보도할 뿐 '왜' 그런 사태
가 되었는지 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눈앞에 있는 한일 간의 갈등이 과연 무엇 때문인지, 대립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를 밝히고 전달하려는 노력보다는 한국 측 어민에 대한 동정심을 유발하는 보도만을 하고 
있었다. 일본측 어민을 취재한 기사가 혹은 어딘가에 있었을까? 그러나 대부분의 언론들은 
연일 '나포'나 '구타'등의 선정적 문고를 강조하는 일로 국민들의 반일감정을 고조시키고 
있었을 뿐이다. 
  예를 들면 일본이 한국과의 어업협정을 파기한 이후, 텔레비전은 곧잘 일본 연해에서 조
업하는 한국 어선을 일본 어선이 '위협'하고 있다면서 여러 척의 일본 배가 한국 배 한 척
을 에워싼, 한국민 이라면 적의와 분노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을 방영하곤 했다. 
그러나, 그 때 일본의 입장은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내가 알기로는 거의 보도된 적이 
없다. 
  어업협정이 타결되었을 때의 한 일본 신문을 보면[일한 어업조건 합의]라는 제목 하에 '
신 어업협정', '대게 저자망 금지', '자원을 관리', '일본은 환영'이라는 부제가 보인다(요미
우리  신문,99.2.6). 그리고 기사의 대부분은 조업방법이나 배 숫자 등, '자원관리'를 둘러싼 
협정이 '최대의 현안'이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리고 이 합의를 "한국선에 의한 저자망 등
의 전면 금지를 요청해 온 일본국 어업협동조합연합회가 환영했다."고도 전한다. 
  그런가 하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 한일어업협정에 관한 재협상을 제안한 일본의 한 
담당자는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가 일방적으로 어업협정을 파기했으니, 한국 배가 우리측에 와서 조업을 한다 해도 
할 말은 없지요. 하지만 우리가 하고 싶었던 건, 한국측이 너무나 그물코 크기가 작은 그물
로 조업한다고 하는 사실에 대한 항의였습니다. 고기를 잡아가는 것까지는 할 수 없다 해도, 
그런 식으로 고기를 잡으면, 치어들 까지도 모조리 잡혀버려서 조만 간에 바다의 자원이 고
갈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지요. 그런데 아무리 말을 해도 한국은 들은 척도 안 해요. 우
린 무엇보다도 그런 문제 등을 포함해서 의견을 나누고 싶은 겁니다. 
  이런 내용들은 우리가 실은 도대체 무엇이 문제되고 있었는지를 잘 모르는 채 흥분부터 
했다는 것을 새삼 가르쳐 준다.
  한국에서의 일본에 관한 보도, 특히 양국이 대립하고 있는 문제에 대한 보도는, 거의가 이
런 식의 은폐와 왜곡으로 점철되어 왔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말하자면 한국인들의 '감정'
에 호소할 뿐 '이성'적 판단을 가할 여지는 남겨놓지 않는 어조를 언론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사용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우리는 이제까지 해방 이후 50
년 동안 실제 쏟아야 될 분량 이상의 에너지를 '반일'에 쏟아온 셈이다.
  독도문제는 이직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지금은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양국 
다 조심하는 모습이지만, 행사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불거질 수도 있다. 최근엔 정부의 독도

문제에 대한 자세가 비판되고 있지만, 이 역시 무조건적인 성토나 비난보다 그들의 주장도 
들어가며 대화할 필요가 있다.
  일본이 그들의 영토로 주장하는 주 근거는 1905년에 먼저 시마네 현에 귀속시켰다는 사실
이다. 자신들의 영토임을 의심하지 않는 시마네 현 사람들은 시마네 현 면적도 돌도 면적을 
넣어 계산한다. 1905년이라면, 우리가 합방되기 5년 전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아직 세상물정
에 어두웠을 때 먼저 눈을 뜬 그들이 독도를 '법적으로' 그들의 것으로 만든 셈이다. 그런 
점에서 이 문제는 '법'의 '공정성'과 '횡포', 윤리와 규범, 지방견제와 국가경제 문제 등 섬
세한 잣대로 재면서 풀어야 할, 쉽지 않은 문제다. 되풀이하지만 그 때 중요한 건, 독도문제
나 어업문제가 동해지역 어민과 시마네 현 어민들의 갈등이 국가 간의 대리전으로 표출된 
사안이라는 이해다.
  전쟁은 실은 국가와 국가의 전면적인 대립이 아니라 지역분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작은 공동체의 각기의 이익을 둘러싼 분쟁에 그들이 속한 '국가'가 개입하게 되는 
셈이다. 그리고 수많은 생명이 실은 누구를 위한 싸움인지 모르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한 
투쟁으로 착각하고 꽃 같은 목숨을 던진다. 그러한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
제 지혜와 사려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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