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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왜곡

'저질' 일본문화?

by FraisGout 2020. 8. 23.

  90년대는 이렇듯 정형적인 수사법이 동원되는 반일 담론이 우리 안에 깊숙이 자리잡은 시
기였다. 90년대 중반, 한 신문이 대학 1학년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식조사 결과, 그들이 한
국 문화의 장점으로 '고유문화'를 꼽고 있고 앞으로 경계해야 할 외래문화로 일본 문화(71
퍼센트)를 지목하고 있다고 전하는 것(조선일보,95.10.14)도 그 결과문의 하나다. 이 때 미국 
문화는 2퍼센트에 불과했다. 실제로 꼽는다면 유입된 미국 문화는 일본보다 많을 수 있는데
도 말이다.
  이 결과는 물론 우리의 의식이 '일본'을 유독 경계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경계의식은 
과거 그들에게 지배당한 체험 때문에 '일본' 문화가 우리를 '길들일'것을 두려워한 결과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그토록 반대가 강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문화개방이 해방 후 50년 이상이나 걸린 것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
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문화적 쇄국이 이 50년 동안 그들과의 교류를 더욱 어렵게 
해온 것도 사실이다. 오래도록 우리는 그들을 '직접' 접할 수가 없었고, 좋은 부분이건 나쁜 
부분이건 그것은 항상 얼마간의 '이미지'로만 과대 포장되어 우리 앞에 제시되었으니까.
  
  1)'저질' 일본 문화의 '문화 침략'?
  일본 문화 개방에 대한 토론이 아직 한창일 때 지배적이었던 것은 '저질문화가 대량으로 
유입되어 악영향을 끼칠 것', '국내 문화산업을 뿌리째 흔들 것',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일본 문화를 모방하는 청소년들이 걱정', '올바른 것을 선별 수용하는 수준이 되면...', '우리
에게는 훌륭한 문화가 얼마든지...', '가뜩이나 청소년범죄가 횡행하는 현실에서 만약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된다면 그 결과는 뻔한 것'(한국경제신문,95.1.1)이라는 식의 담론이었다.
  여기서도 일본 폄하의식과 경계의식과 '우리 정서'를 강조하는 민족주의적 배타의식이 보
인다. '우리'라는 말 자체가 실은 이미 배타적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 것이 있으니까 필요 없다는 논리처럼 불행한 시각도 없다. 그것
은 국산품 연필을 애용하자는 문구와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연필은 참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실은 아름답고 쓰기 편한 연필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정신적' 만족감을 주는 '문화'가 아
니던가?), 문화에 대한 욕구는 항상 '다른'것을 갈망하는 법이다.
  해마다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미국 영화를 미국 문화의 '침략'으로 특별히 의식하지 
않으면서 일본 영화의 유입은 '침략'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우리가 '일본'에 관한 한 피해의
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리고 그 피해의식이 오랫동안 우리를 자폐증 
어린아이처럼 만들고 있었다.
  서울 시내에서 당당히 일본 영화가 상영되고 있는 지금, 그들은 문화 '침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침략'이라는 말을 '의도'가 담긴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에 대한 대답은 '노'다.
  일본은 물론 팔고 싶기도 했겠지만, 우리 아니라도 그들에게는 전 세계에 무한한 시장이 
있었다. 그들이 일본 문화 개방을 '요구'했다느니 '침략'을 꾀했다느니 하는 소리는 정도 이
상의 경계의식이 빚어낸 피해의식의 발로였다. 물론 문화교류 차원에서의 요청은 있었을지 
모르겠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문을 닫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었으니까.
  그러나 설령 일본이 팔고 싶어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두고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가? 우
리 역시 우리 문화를 팔고 싶어하지 않는가? 우리 자신 우리 문화를 타국에 알리고 싶은 욕
구를 갖고 있으면서 일본만을 비난하는 것은 모순이다. 그런데도 일본이 잘하는 장사는 '팔
아먹는 솜씨'(조양욱, '천의 얼굴 일본, 일본, 일본', 청한,1990,218쪽)가 있어서 지만,  우리 
상품이 잘 팔리는 건 진취기상이 높아서 쯤으로 해석되는 경우는 아직도 많다. 여기서 '팔
아먹는 솜씨'란 발렌타인 데이의 초콜릿 판매를 비난하는 글에 나오는 말인데, 여기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톡톡히 초콜릿 맛을 본 장사아치들의 초롱초롱한 눈동자가 좌로 360도, 우로 360도 돌지 
않을 턱이 없다. 에스키모에게 냉장고를, 아프리카 토인들에게 담요를, 용의 귀를 가진 농아
에게 워크맨을 팔아먹는 솜씨가 녹슬리가 있는가?
  물론 판매를 위한 작전을 두고 상술로 싸잡아 비판하는 일은 쉽다. 하지만 그러려면 '소
비' 행위에 관한 조금은 성숙한 고찰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도 해
당되는 사항이 아니던가?
  
  2)일본 영화가 개방되고, 한국 영화가 약진한 1999년
  일본 문화 개방 여부를 두고 아직 논란이 일고 있을 때, 한 텔레비전 방송은 여론조사를 
뉴스시간에 실시한 후 부정적 결과를 제시하면서 "정부는 이러한 반응을 알아야 할 것"이라
고 비판적 도발을 하기도 했다. 이런 자세 역시 여론을 있는 그대로 전한다는 식의 '정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상은 여론을 오히려 그런 쪽으로 몰고 가는 발언에 지나지 않는다. 
앞서의 쇠말뚝에 관한 보도에서 이미 본 바지만, 다른 분야에 관해서도 한국의 텔레비전 뉴
스는 유독 그런 경향이 강한 듯하다. 
  이 무렵 일본이 과거에 불성실하니 문화개방은 필요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일본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적지 않은 부분이 오해인 경우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는 그들이 정말 '불성실'한지 어떤지도 단정할 수는 없는 문제다. 도 '성실'과 문화
를 맞바꾸자는 사고도 문제가 없지 않다. 또 문화개방은 한국만 '과거를 청산'하는 일이라면 
반대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문화개방이란 과거 '청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개방과는 상관없이, 한일 간에는 여전히 '과거'가 존재하고, 그것을 둘러싼 논의는 계
속되고 있다. '개방'이 '과거 청산'의 표시였다면, 가요와 영화 이외의 모든 분야에서 이미 '
개방'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때에 우리는 일본에 대해 '과거 청산'을 했다는 이야긴가? 아니
면 현재 일본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니 우리는 과거 '청산'을 한 셈이 되는가? 대중문화 개
방과 '과거 청산'은 실은 관계 지워질 일이 아니었다. 
  수많은 의견 중에서도 개방이 국내 문화산업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하는 보호무역적 
사고야말로 모두를 위협하기에 가장 설득력이 컸을 터인데, 다음과 같은 지적은 언론이 전
부가 부정적 역할만 하지는 않았음을 말해준다. 
  (사회경제적 충격이 문제라면) 문제의 핵심이 그것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위선 없이 정시
해야 한다. 문제의 본질은 우리에게 일본인들만큼의 상품화능력과 머리 굴리기 열의와 '노
하우'가 없다는 데 있다고 하는, 이 명백하고도 부인 못할 사실을 결코 '민족문화 보호' 운
운하며 거창하게 얼버무리지 말자는 것이다.(유근일 칼럼, 조선일보,94.2.5)
  외국 가수의 노래가 팔린다고 해서 한국 노래가 팔리지 않는 일은 없다. 마이클 잭슨이 
엄청나게 팔린다고 해서 조성모의 음반이 안 팔리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일본 영화
가 개방된 다음해인 1999년, 한국 영화가 유례 없이 약진했던 것을 기억하자. 그건 보호무역
적 사고가 보지 못한 것을 보여준 일이었다. 
  인간이란 자신과 '다른' 것, 새로운 것에 대한 욕구도 강하지만, '자기' 것에 대한 집착도 
강한 법이다. 뿐만 아니라 주위가 남의 것으로 둘러싸이면(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담론과 
함께) 자신의 것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는 법이다. 다른 문화가 들어온다고 해서 자기 문화
가 도태되는 일은 없다.
  외부의 문화충격에 맞서나갈 힘이 없는 문화라면(물론 산업도) 오히려 도태되는 편이 낫
다. 문화의 존재가치는 소수의 문화 생산자가 연명해가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나라
의 국민 전체의 지적, 감성적 수준을 높이고 만족시키는 데 있다. 그런 의미에서, 다양한 문
화 소비자를 폭넓게 흡수할 수 있는 저력을 지니지 못한 문화가 국가의 보호 아래 근근히 
명맥을 유지해나가는 모습은 문화 생산자들을 위해서나 소비자를 위해서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인간의 자유로운 정신을 표현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문화'가 관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정확히 말하자면 '관'이 보호하는 문화는 진정한 '문화'의 본질을 벗어
난 것이기도 하다.
  단선적인 시각으로 당장의 위기를 두려워하기만 했다면 우리는 언제까지고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문화를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외부로부터의 문화적 충격을 두려
움 없이 받아들이려 한 시점에서 비로소 다음 세대에 꽃필 수 있는 새로운 문화 창조의 가
능성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외래문화가 아무리 고급하다 해도 그 때문에 국내문화가 전멸하는 일이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이른바 '일정한 문화시장'을 확보하지 못할 때 사라지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 '민족언어'나 '민족문화'가 아니라, 고품질 문화에 대항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 저품질 문화(예를 들면 '표절'로 대표되는, 문화 생산자로서의 최소한의 직업정신조차 
갖추지 못한 안이한 문화 생산자)일 뿐이다. 비록 소량일지라도 그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살아남는 문화를 키워나가는 쪽이 나라 전체로 볼 때는 훨씬 생산적이다.
  문화뿐 아니라 한 분야에 대한 무조건적 보호는 단기간의 이익을 보장할지 모르지만 장기
적으로는 힘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예를 들면 기업을 위한 무역규제는 관민유착이 일어나는 
원인이기도 하며 결국은 정당한 설비기술투자로가 아니라 정치가들의 호주머니로 돈이 들어
가는 어리석은 결과를 낳는다.
  물론 갑작스런 세계화 물결은 폭력일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때 그때의 상황이 필연적인, 
혹은 납득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일방적인 폭력인지를 판단하면서 대처하는 일이다. 무조건
적인 개방도 무조건적인 보호도 아닌, 타국인들도 납득할 만한 대처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강한 피해의식에 기반을 둔 국수주의와 민족주의 때문에 우리는 이미 충분히 오랜 기간 
동안 문화를 차단 당하고 있었다. 문화의 차단이라는, 그야말로 '비문화'적 사고가 우리 사
회에서는 오랫동안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90년대 초, 세계가 공유하는 영화와 음악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면서(일본의 영화가 한 해에 세 개씩이나 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했을 
때 우리는 그것을 동시대적으로 볼 수 없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 우리는 분명 문화 후진국이었고, 그런 식으로 우리의 문화적 
고립은 바깥에서 보면 북한과 크게 다른 것이 아니었다. 
  당신은 '일본' 문화 따위야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생
각하는 사이에, 말하자면 우리가 눈 가리고 귀 막는 사이에 일본 문화는 세계가 인정하는 
보편적 '세계' 문화로 성큼 자라 있었다.
  현대의 경제동향은 이미 자기 나라만 상대할 수 없는 상황에 와 있다. 문화란 정신적 고
양을 가져다주는 것이지만 '상품'으로서 유통된다. 상품으로서의 문화 수출로 이어지는 우리 
문화의 도약을 위해서도 문화개방은 필연적인 일이었다. 일본의 문화가 현재와 같은 수준에 
도달하게 된 것도 오랜 세월에 걸친 적극적 문화 수용의 결과다. 
  
  3)일본이 멀기만 한 나라였던 까닭
  우리에게 일본이 멀기만 한 나라였던 것은 '일본'이라는 나라가 갑자기 졸부가 된 경제대
국쯤으로, 혹은 과거에 우리를 괴롭힌 나라로만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몇 십 년 
동안이나 그들을 우리와 똑같이 피가 통하고 살이 통하는 인간으로서 인식할 기회-문화 수
용만이 그 역할을 한다-로 부터 우리가 차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화란, 타국에 대한 이해를 돕는 최상의 매체다. 그 중에서도 영화와 음악은, 그 표현이 

직접적이고 대중적이라는 의미에서 일반인들에 대한 영향력이 가장 크다. 미국이나 프랑스
에 관한 책 한 권 안 읽고도, 가보지 않고도 우리가 어렴풋이나마 그들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나라의 영화와 음악의 공적이기도 했다.
  일본 문화가 차단되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그들이 과거에 우리를 침략한 나라였다는 사실
에 근거하지만, 오히려 거꾸로, 그러한 관계였다면 더더욱 그들을 아는 노력을 해야 했고, 
문화는 그 자료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그들을 보고 이해하는 것은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
가 되어 주기도 했을 것이다. 일본 문화 수용은, 그들을 알기 위해서 뿐 아니라, 우리 자신
을 알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일본은 일찍부터 한국의 가요와 영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었고(대표적인 케이스를 
든다면'서편제'와 조용필), 그런 매체들이 일반인들의 한국에 관한 이해와 긍정적 시선을 
기르는 데 기여한 바는 적지 않다. 개방 때 '왜 우리만?'이라는 목소리도 강했지만 실제로 '
일방적'으로 문을 닫고 있었던 것은 오히려 우리 쪽이었다.
  '8월의 크리스마스'니 '쉬리'가 호평리에 상영되었고, 일본에서도 심은하와 한석규의 
팬은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심은하나 한석규가 '한국'의 스타라는 것은 그들에게는 큰 의미
가 없다. 팬들은 그냥 자신의 감성에 맞는 것을 '좋아'하는 것일 뿐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교류야말로 타자에 대한 맹목적 반감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준다. 대중문
화 개방이 의미가 있는 것은 바로 그 점이다. 문화적 교류와 인적 교류를 통한 상호간의 이
해는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는 정치적 문제(반일, 혐한 등)의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말하자면 상대방을 '민족'으로서가 아니라 '개인'으로서 좋아하게 되는 길이야
말로 모든 관계의 시작인 것이다. 덧붙여 말한다면 '쉬리'의 성공을 부담 없이 기뻐 할 수 
있는 것도 일본 문화를 개방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4)인류 문명은 '이동'과 '교류'의 '잡식성' 문화에서
  일본 문화의 수입이 한국의 '고유성'을 훼손시킨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풍요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가 사람들이 '이동'하고 '교류'하는 곳이었다. 다시 말
하면 그들의 문화는 고유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잡식성' 문화였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
하는 것일까. 이는 문화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고유'한 것도 아니고 그 '순수'
성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며, 실은 다양한 형식의 만남과 그 자극에 의해 더욱 풍요로운 문
화를 꽃 피우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문화'란, 특히 세계적 보편성을 지닌 문화란 결코 폐쇄된 울타리 안에서 홀로 생산될 수 
없는 법이다. 설령 소재가 우리 특유의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이 낡은 것이
어서는 우리 문화의 세계화는 요원할 뿐이다. 폐쇄 속에서 유지되는 '우리 문화', 세계로 나
아가지 못하는 그러한 자족적 지속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 수 있을까. 지금 전 세계에
서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라. 거기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에 걸친 적극적 문
화 수용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다.
  후대에 20세기 말의 대일 정책에 관한 평가가 내려지는 날-아마도 이는 한일 양국이 진
정으로 과거를 극복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했을 때의 일일 텐데-김대중 대통령의 과감
한 문화개방은 20세기 말의 악화 일로로 치닫던 한일관계를 크게 선회시켜놓은 것으로서 평
가받게 될 것이다.
  제도는 의식을 바꾼다. 살아 있는 일본의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까지 굳어 있
던 대일 이미지가 개선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제까지의 경직된 반감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
다면, 그것만으로도 문화 개방의 의미는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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