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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왜곡

'역사'인가 '소설'인가-이영희의 <노래하는 역사>

by FraisGout 2020. 8. 23.

  1993년은 세기말 한국의 민족주의 융성의 원년이라 할 만한 해였다. 이 해, 구독률 제1위
라는 조선일보는 일요판에 이영희의 <노래하는 역사>를 연재해 일요일 아침마다 한국인들
이 느긋한 마음으로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다지게 하는 데 공헌했고, 일본을 핵폭탄으로 응
징하는 김진명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일본에게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목청 높여 외치는 전여옥의 <일본은 없다>가 출간되었으니까.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
산 답사기>가 나온 것도, 또 인기를 끌었던 것도 물론 이런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다. 
  
  1) "민족의 우수성을 일본 문헌을 통해 입증하는 고독한 작업"
  <일본은 없다>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에 비하면 <노래하는 역사>의 인지도는 다
소 약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연재의 공헌이 얼마만큼 지대한 것이었는지는 다음과 같은 
사실만으로도 알 수 있다.
  94년 말 어느 날, 조선일보의 (사람들)난은 이 연재가 끝나고 단행본으로 나오면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대해 보도하고 있다.(94.11.24). 그에 따르면 이 출판기념회는 전직 여성 국회
의원 모임인 목연회가 주최, 조선일보의 후원 아래 각계 인사 3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
렸는데, 축하 인사자로 '전두환 전 대통령 내외'가 나섰고, '이기택 민주당 대표, 김윤환, 이
종찬, 장세동, 정해창' 등 당시의 거물급 정치인들이 다수 참석했다. 출판기념회로는 더할 
나위 없는 화려한 이벤트였던 셈이다.
  주최측 회장은 인삿말에서 이영희씨가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일본 문헌을 통해 입증하는 
작업을 고독하게 해왔다."면서 "이 책이야말로 전 국민이 읽어야 할 책"이라고 말하고 있고, 
조선일보 사장은 "이영희씨는 지난 일년 반 동안 조선일보에 <노래하는 역사>를 연재하면
서 2백만 독자로부터 절찬을 받아왔다."면서 "역사학, 언어학, 민속학에서 그 어떤 학자도 
시도하지 못한 한일 간의 새 장르에 도전한 선구자"라는 축하의 말을 보내고 있다. 
  이 모임이 이렇게까지 화려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 인삿말에 나타나 있다. 말하자면 
그것은 국회의원 출신이라는 저자 자신의 인맥을 잠시 제쳐놓는다면, 바로 '우리 민족의 우
수성'을 '입증'한 작업으로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모임은 이후 
높아져 가는 90년대 한국적 민족주의의 열풍을 상징하는 모임이기도 했다. 
  이 연재는, 간단히 말하자면 일본의 <만요슈>(주: 8세기경까지의 고대 시가 4천5백여 수
를 모아놓은 전 20권으로 구성된 시가집)가 실은 '한국어'로 해석된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일
보의 2백만 독자들이 정말로 '열광'했는지 어떤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 지면에는 일요일 
아침 신문의 지면으로서는 조금은 지나치다 싶은 야한 삽화가 적지 않게 게재되었고, 그것
도 인기의 이유와 관계가 없지는 않으리라. 
  어쨌거나 이영희에 따르면, 와카라고 불리는 일본의 고대 시가는 많은 부분이 한국어로 
해석 가능하다는 것이었는데, 그 해석의 결과는 와카=남녀의 섹스의 찬가, 음모와 모략의 
노래쯤으로 이해해도 될만한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성의 노래로서의 해석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음에 틀림없다. 
  결국, <노래하는 역사>의 연재는 일본어가 실은 모두 한국어라는 자긍심과 함께(물론 그
것은 설사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긍심의 확인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그들의 존재가 우리
의 존재 없이는 불가능했다는 사실은 한국인들의 우월감을 만족시켜주는 일이다.) '호색적인 
일본인상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하지 않았을까. 말하자면 <노래하는 역사>는 한국인들로 하
여금 일요일 아침마다, 일본에 대한 우월감과 함께(상스러운?) 그들의 침실을 엿보는 듯한 
야릇한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저자의 말처럼 우리 조상님 일 수 
있다는 대목은 잠시 잊은 채.
  그런데 <노래하는 역사>는 연재 도중 이미 한국 고대어를 연구한 일본인 연구자로부터 
거듭 비판받고 있었다. 하지만 저자로부터의 응답은 내가 알기로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중
에 일본어 번역판이 나온 후로는 논리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는 일본 쪽 반론이 적지 않았지
만, 일본 쪽에 그런 비판이 있다는 사실 역시 한국에는 거의 전해지지 않았다.
  이 일본인 연구자는 후에 저서를 통해 이영희씨가 "고대 한국어에 관해 너무나도 무지"하
다고 지적하며 한국 학계에서도 "이 씨의 주장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고 있지 않다."고 말
한다. 또 이영희의 논거에 대한 자신의 반박과 함께 국어학자 강 길운의 비판도 인용해놓고 
있다[노히라 슌스이,<일본인이 쓴 반일 이야기>, 오늘예감] 실제로 언젠가 대면할 기회가 
있었던 강 박사는 "말도 안 되는 엉터리"라며 이영희 설을 일축하고 있었다.
  고대어에 대한 지식이 없는 내겐 이들의 주장을 판가름할 능력도 없고, 그 여부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다. 다만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반일적 담론들 특유의 수사법이 여기서
도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93년 5월 30일자 조선일보를 보면, <우리 옛말로 읊어진 일본의 과거>라는 제
목에 "만엽집 1천년 비사를 캔다/해학-섹스-권력투쟁 기록 가득"이라는 뽑은 글이 붙은 기
사가 눈에 띈다. 이미 읽은 이들은 알겠지만, 이 연재에는 야한 그림에 걸맞는 성적인 어휘
와 내용이 적지 않았다. 그런데 그 대상이 단순한 일본 문화였다면 '저질'로 한 마디로 일축
되었을 만한 표현들이 여기서는 웬일인지 '해학'으로 칭해진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배설에 
관한 이야기 같은 것도 여기서는 "지적 유희를 즐기는 고대인의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간주
되는 것이다. 그것이, 그 노래의 주인공들이 실은 한국인이었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임은 
물론이다. 
  물론 이 책이 증명하고자 한 것- 고대 일본어는 한국어로 이루어졌다- 자체에 문제가 있
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으며 
학술적으로 증명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노래하는 역사>가, 주최측이 "우
리 민족의 우수성을 입증"했다고 칭송한 것처럼 일본에 대한 우월감을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는 점이다. 저자가 특별히 그렇게 강조한 것도 아닌데도 읽는 이들이 그렇게 해석한 건, 물
론 한국과 일본의 유사성 혹은 동질성을 주장하는 일이 한국에서는 즉각 우월감으로 이어지
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해석에 대해 저자가 반박하지 않았다는 것은 저자 역시 그런 의
도가 있었다는 이야기리라. 
  실은 이영희의 논리는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영희는 구체적으로 언어의 유사성을 증
명해 보이려 한 것이지만, 일본어에 한국어가 어원인 듯한 것이 많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는 일이다. 우리가 늘상 자랑스러워했듯 일본의 문화 자체가 한국에서 건너간 것임은 이
미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어온 이야기고, 언어라고 해서 그 예외일 수는 없음은 물론이니까.
  
  2)친일 이데올로기에서 반일 이데올로기로 바뀐 일선동조론
  재미있는 것은 이런 주장이 한국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한국과 일본이 유사성
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일제 시대 때 거꾸로 일본 쪽이 적극적으로 주장하던 이야기였다. 
이른바 '일선동조론'이 그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일본은 일제 시대 초기에 한국과 일본이 언어가 같다든가 조상이 같다
고 주장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사실화하기 위해 교과서까지 동원했다. 그것은 한국을 저항 
없이 동화시키기 위해, 즉 한일합방이 정당한 것이라고 주입하기 위해서였다. 
  일선 동조론이란 간단하게 말하자면 한국과 일본은 같은 조상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하나
의 민족으로 '동화'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말하자면 일제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시
키기 위해 태어난 논리였다. 일선 동조론은 합방이 이루어지기 전부터 선보였고 합방이 이
루어진 시기에 가장 활발하게 주장되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어 보급의 필연성을 주장하기 
위해 나온 이론이었는데, 그 때의 주장이 말하던 것은 "일한 양국어가 동계'라는 점이었다. 
언어적으로 "조선은 동생, 일본은 형"이며, 인종도 풍속도 습관도 '동계'라는 주장이 그럴 
듯하게 펼쳐졌다. 언어학자 가나자와 쇼자브로는 <일선동조론>(1929)이라는 책을 쓰기도 했
는데, 그 속에서 그는 일본의 조상신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도래했다며 양 민족이 같은 조상
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선 총독이었던 고이소 구니아키는 조상신 아마테라스오미카미
의 동생 수사노미코토의 자손이 오늘의 조선 민족이라고 했다[김광림, <일선동조론>, 후지
제록스 고바야시 세쓰타로 기념기금 1995년도 연구조성논문, 도쿄]. 그런가 하면 일제는 수
사노미코토가 단군이라는, 즉 그가 신라에 강림, 혹은 단군이 일본에 가서 아마테라스오미카
미와 형제의 언약을 나누었다고 하는 설을 한국 역사교과서에 등장시키기도 했다[호사카 유
지, <일제의 동화정책에 이용된 신화>, <일어 일문학 연구> 제 35집, 문학/일본학편, 한국
일어일문학회, 1999.12].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알 수 있다. 정치란 필요하면 신화 건 언어 건 자신의 입지 
확보를 위해 이용하는 것이 그 생리라는 사실이다. 이 당시 한국인들이 전쟁에 나가 싸우기 
위해서는 '나라'를 위해 몸 바친다는 자기환상이 필요한 만큼, 일본과 한국은 같은 조상의 
후손이라는 식의 믿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했을 것이다. 서정주 시인을 비롯해 지금까지도 '
친일파'라는 죄목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이 많지만, 그들은 이런 논리에 현혹된 것은 아
니었을까. 그런 의미에서는 그들을 '고발'하고 단죄하는 일보다도 그들이 '왜' '친일'을 했
는지를 보기 위한 관심이 더 필요하다. 우리 근대의 한 시점에서 과오를 범하고 만 그들의 
심리구조와 상황은 '그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기도 하니까.
  일본에 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그들의 제국주의와 과오에 대한 논리적 비판은 
물론 필요하지만, 단순한 지탄-그들이 '했다'거나 '어떻게'했는가에 치중하는-을 넘어서서, 
'왜' 그렇게 했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여성교육에서의 김활란 박사나 문학에서의 이광
수처럼 각각의 분야에서 근대화를 이룬 공적이 '친일'을 바탕으로 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우리의 딜레마를 지혜롭게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한편, 당시 한국인들은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 한국과 일본이 동화될 수 없는 필연성으로
서 얼마만큼 '다른' 민족인가를 강조했다. 그 때는 '다름'이 독립의 근거였고, '다르'다는 차
이의 확인이야말로 동화에 대한 저항을 뒷받침해주는 요소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흐른 1990년대, 이번에는 그들과 우리가 실은 '같다'고 하는 사실이 우
리의 '우월감'을 보장해주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조선일보사 사장이 말하는 대로 <노래
하는 역사>에 2백만 독자가 열광했다면, 그것은 물론 그들의 뿌리가 우리에게 있다는, 즉 
우리가 아니고서는 그들의 존재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우월감에 의해서다. 그들에게 문화를 
전수해주었다는 사실보다도 더, 그것은 '언어' 자체였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더 한국인 아니
면 아무 것도 아닌 존재고, 따라서 그들이 우리와 같은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우월감이 
커지는 구조다.
  이처럼, 똑같은 사실-동조론-도 그 사실을 강조하는 주체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에 따라 
다르게 이용된다. 합방 때는 '동화'의 근거로서, 친일 이데올로기로 이용되던 일선 동조론이 
독립 후의 한국에서는 우월감을 보장하는 반일 이데올로기로 이용되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노래하는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도대체 한 집안이면 어떻고 같은 민족이면 어떻다는 것일까. 그것을 말하는 일 자
체야 그것이 순수한 학구적 호기심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그것이 정치적 이데올로기
를 내포한 것일 때는 그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하고 위험한 발상일 뿐이
다. 
  
  3) '타자'없는 타자론
  그로부터 6년, 새 세기를 맞고도, 그리고 기존의 비판에 굴하는 일없이, <노래하는 역사>
는 다시 연재되기 시작했으니 민족주의의 '노래'는 역시 생명이 강한 듯하다.
  이전에도 보였던 설 중에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일본의 천황이 되었다는 '추정'아닌 '단정
'이 있다. 그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한 번 하면서 이영희는 이렇게 쓰고 있다.
  백제가 멸망한 것은 660년. 당시 백제 분국이었던 왜는 국력을 기울여 지원군을 보냄으로
써 조국 부흥을 도모한다. 그러나 세 부족이었다. 지원군이 나당연합군에 참패한 것은...(생
략)
  총력전에서 완패한 왜는 패닉 상태였다. 그간 왜 정권 장악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왔던 
연개소문으로서는 결코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조선일보, 2000.5.24)
  '왜'라는 표현의 의도에 관해 언급하는 일은 잠시 놔두자. 이전의 연재에서는 "그 무렵 왜
는 백제의 분국이나 다름없었다."는 표현이 보였는데, 여기서는 "분국이었다."고 사뭇 단정적
이다.
  물론 분국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다는 건가? 그런 의미라면 중국도 얼마
든지 한국은 중국의 '분국'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중국은 우리나 일본에 대
해 말하지 않는 일을 우리는 자주, 그리고 언제까지나 항상 일본에 대해 말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여기서의 서술을 믿는다면 우리의 연개소문은 "왜 권력 장악의 기회를 호시탐탐 
노려왔던" 침략자라는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이 기사의 제목은 '큰 사내 연개소문의 야망'
이다. 이런 논리라면, 일본의 제국주의도 '야망'의 실천이라고 그들이 주장한다 해도 할 말
이 없지 않은가? 실제로 제국주의 일본은 당시, '야망'과 '모험'이라는 단어를 통해 사람들
에게 식민지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고 식민지로의 이주를 권장했다. 
  내용을 조금 더 보자. 내용인즉, 고구려의 장군 연개소문이 일본이 약해지자 일본을 장악
해 40대 왕 덴무 천황이 되었고, 38대 왕 덴치 천황(이도 백제의 왕자로 해석되고 있다.)과 
몇 년 동안 두 정권으로 존재했다는 이야기고, 그 두 사람이 한 여자와 관계했다는 이야기
다. 
  이 날의 삽화는 세 명의 남녀가 관계하는, 웬만한 에로물 이상 가는 수준이어서 놀라울 
정도다. 한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자처하는 조선일보를 볼 청소년들에 대한 영향은 여기서
는 무시되고 있는 듯하다. 아니면 거기서 밝혀지는 사실이 그런 것은 상관하지 않아도 될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 걸까.
  앞으로 더 나아가면 다음과 같은 글도 보인다.
  <일본서기>야말로 거짓 투성이 책이다. 그러나 '정직하게 거짓말한 역사책'이라 할 수 있
다. 구조적으로 거짓말을 일삼고는 있지만, 말단 부분은 놀랄 만큼 구체적이요, 정확한 기록
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역사는 물론 날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거짓 투성이"니 "구조적
으로 거짓말을 일삼고"있다는 표현은, 한 외국이 소중히 생각하는 그들의 역사서에 대한 표
현으로서는 너무나 난폭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 해괴한 기록"이니, "일본서기는 이같이 참으로 충격적인 사실을 간단한 
연호로만 슬쩍 표시해놓았다.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진실을 일러주고 있는 셈이다. 
정녕 무서운 역사책이 아닌가."라며, 이 책이 '의도적'인 왜곡을 저지르고 있다는 식으로 일
본의 간교성을 강조한다. 그런 끝의 결론은 "<일본서기>를 우리 손으로 연구하자."다.
  한국의 엘리트층이 일본으로 넘어갔으리라는 이야기에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 호
족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지배계층이 되었다는 설에도 나는 공감하는 바니까. 
  그러나 거듭 말하지만, 여기에는 '타자'가 없다. 걱정되는 것은 야한 그림의 자극 이상으
로 클, 청소년들에 미칠 영향이다. 그들이 만들어 갈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한일 고대사를 
'바로잡'기 위해 쓰여졌다는 이 책이 허황된 자부심을 키워주는 일로 미래사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흥분했다는 이들의 "우리 조상들이 일본국에서 벌인 호
방한 행적들을 더 자세히 서술해달라"(조선일보, 2000.6.14, 섹스와 음모는 '호방한' 일인가?)
는 요구에 본격적으로 부응하기 위해선지, <노래하는 역사>는 8회 째부터는 '팩션'이라는 
조어를 사용, 그간의 주장이 '사실'에 '근거'한 '허구'임을 인정하고 드디어 본격적인 '소설'
쓰기에 나섰다.
  이렇게 해서, 노래하는 '역사'는 자진해서 '역사'의 간판을 내린걸까. 하지만 실은 그렇지
도 않다는 것이 다음과 같은 말에서 곧바로 드러난다. 저자는 "우리 고대사와 한일교류사의 
참모습 속에 동북아시아의 오늘과 내일 모습도 드러날 것"이라며 "기성의 모든 역사관의 '
낡은 옷'을 벗어버리고 '누드'로 읽어주"(위와 같음)기를 요청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누구도 몰랐던 '한일 교류사'의 '참모습'이라는 것이 실은 연개소문의 참으로 노
골적인 강간 이야기니, 당혹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고대인의 글자 그대
로의 야사가, 사뭇 대단한 '역사'로 기록되는 현장 앞에서 이제 우리는 '역사' 서술이란 무
엇인가부터 물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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