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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1/국어

고전문법 총정리

by FraisGout 2020. 4. 21.

國語特質

國語特質

음운상의 특질

국어의 자음체계는(특히 파열음 계열에서)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소리의 삼중 체계를 이루고 있다.

語頭에 오는 자음에 제약이 있다.(頭音法則)

音節末에는 7개의 자음(ㄱ ㄴ ㄷ ㄹ ㅁ ㅂ ㅇ)만이 실현된다.(음절 끝소리 규칙)

母音調和 현상이 있다.

同化作用이 있다.(모음동화모음 동화. 자음동화비음화, 설측음화)

音相의 차이로 의미가 달라진다. (주로 의성어, 의태어들이며<:빙빙-삥삥-핑핑> 낱말의 뜻을 분화시키기도 한다. <:뛰다[]튀다[]>)

모음 사이에 둘 이상의 자음이 올 수 없다.

모음 연접(hiatus)을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어휘상의 특질

한자어의 비중이 크다.

높임말이 발달되어 있다.

감각어가 발달되어 있다.(: 노랗다. 샛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누렇다. 느르끄레하다……)

상징어가 발달되어 있다.

고유어, 한자어, 외래어의 삼중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구문상의 특질

국어에는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조사와 어미가 다양하게 발달되어 있다.(이런 점에서 국어는 膠着語에 속한다.)

단어 형성법이 발달되어 있다.

국어의 문장은 대체로 주어-목적어-서술어의 어순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서술어의 어순은 주로 문장의 맨 뒤에 오지만, 다른 성분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위치를 바꿀 수 있다.

수식어가 피수식어 앞에 위치한다.

높임법이 발달해 있다.

명사에 성()의 구별과 수()의 개념이 없으며, 관계 대명사가 없고, 형용사에 비교급과 최상급이 없다.

문법 형태소(조사, 어미)가 반드시 후치한다.

주어나 목적어가 둘 이상 잇달아 나타나는 문장이 가능하다.

활용어미는 문장 또는 用言句 전체에도 가능하다.

文字體系

漢文定着借字表記法

借字表記法의 발달을 가져온 한자는 언제 유입되고 정착되었는가의 문제는 정음 창제 이전에 우리에게 한자 정착을 거부할 만한 고유 문자 체계가 있었던가 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지금은 전하지 않지만 그 동안 몇몇 학자들에 의해서 우리에게도 몇 종류의 고유 문자가 있었다는 주장이 있지만 문자 이전의 특수기호나 회의문자 정도로 추정될 뿐 정음 이전에 우리 민족에게 고유 문자가 없던 것으로 판단된다. 만약 고유 문자 체계가 있었다면 吏讀와 같은 차자표기법 자체가 생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한자의 전래는 고조선 말엽 기원전 3세기경부터 유입되기 시작하여 소위 漢四郡時代에 이르러 서서히 정착되어 한자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시기는 삼국이 성립된 이후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어와는 이질적인 언어를 사용해 온 우리 민족이 한문의 문법에 적응하여 자신의 언어 표현을 기록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며 이를 위해서는 다년간의 전문 교육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의 기회가 폭넓지 못한 대다수의 言衆은 한자를 이용하여 표기 욕구를 충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발달된 것이 借字表記法이다.

固有名詞 表記

借字表記法이란 한자의 을 빌어 우리말을 표기하는 방식으로 고유 문자가 없는 상황에서 언중의 표기 욕구에 따라 한자를 恣意的 이용하는 방법에서 비롯되었다. 三國史記의 지명인명관명 등의 고유명사들의 차자표기례를 살펴보면 적절히 借音借訓을 이용하였고, 借音時에도 一字一音節 표기의 원칙을 지키되 경우에 따라서는 借用 한자의 聲母(초성)韻尾(중성+종성)만을 취하기도 하였다. 이런 표기 방식은 古人들의 국어 음절에 대한 인식이 심화되면서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단어를 구성하는 音韻連鎖體를 음절 단위로 분석할 줄 아는 능력이 없이 一字一音節借字 원칙이 세워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誓記式 表記

서기식 표기란 소위 임신서기석에서 유래된 명칭으로 표기적 특징은 한자를 우리말 어순에 따라 배열하고 있다. 한자의 字義만 알고 있다면 누구나 우리말의 어순에 따라 그 뜻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 서기식 표기이다. 서기식 표기는 문장 단위의 국어를 표기해 보려는 언중의 강렬한 욕구와 함께 한문과 국어가 語順에서 큰 차이가 있다는 인식을 배경으로 하여 생성된 것으로 이두의 전 단계 표기로 보인다.

吏讀

이두의 기원에 대해서는 帝王韻紀를 비롯한 문헌들이 설총 제작설을 전하고 있으나 설총보다 앞선 시기에 건립된 慶州 南山 新城碑에서 이두식 표기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설총이 제작했다기 보다 집대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두란 서기식 표기에 제3류 형태소에 속하는 문법소(조사나 어미 따위)들을 보충한 표기 형태라 할 수 있다. 즉 한 문장에서 意味部에 해당하는 요소들은 한자의 字義를 살려 우리말 어순에 따라 배열하고 거기에 결여된 조사나 어미류의 形態部를 차자표기로 보완한 것이다. 이는 문장 단위의 서기식 표기와 고유명사 표기에서 터득된 차자표기법이 적절히 결합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이두식 표기는 膠着語로서의 국어의 문법소가 갖는 기능적 비중을 명확히 인식함으로써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口訣

구결은 우리말로 입겿이라 불리며 흔히 라고 하는 것이다. 구결은 한문의 文義를 정확히 파악하고 읊조리기 쉽도록 문장을 분절한 다음 그 사이사이에 삽입한 차자 형태의 조사나 어미류 따위의 문법소를 가리킨다. 구결은 한문 학습의 효율성을 높이고 한문 보급 확대를 꾀하려는 목적에서 차자표기법을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구결의 표기적 특징은 차자의 略體化에 있다. 書法上의 번거로움을 덜고 그것이 임을 보이기 위해 점차 略體化하였다. 이런 略字들은 多音節의 표기에서 合字의 형태로까지 발전하다가 정음 창제 이후 한글 로 대치되었다.

 

鄕札

향찰이란 향가 25수를 표기하는 방법을 지칭한 것으로 향가의 표기적 특징은 精密性에 있다. 이두와 같은 문장 단위의 표기를 지향하면서 形態部뿐만 아니라 意味部까지도 차자표기법을 이용하여 완전히 표기해 보려고 한 것이다. 그 예가 양주동이 지적한 末音添記法이다. 즉 한 단어를 표기하고자 할 때 앞쪽에 訓讀字를 위치시켜 語義를 규정한 다음 이어서 그 단어의 말음이나 말음절을 借音字添記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표기의 대상이 잘못 읽혀질 여지를 주지 않고 있는데 김완진은 이를 訓主音從의 원칙이라고 하였다. 결국 향찰식 표기는 국어 문장의 완전하고도 정밀한 표기 체계를 지향한 것으로 차자표기법의 완성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訓民正音

訓民正音 體系

初聲體系

훈민정음의 초성체계는 중국의 聲韻學에 영향을 받아 牙音, 舌音, 脣音, 齒音, 喉音, 半舌音, 半齒音, 全淸, 次淸, 全濁, 不淸不濁 등과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훈민정음 초성 17자의 制字原理象形의 원리와 加劃의 원리가 사용되었다.

 

五音

基本字

加劃字

異體字

牙音

舌音

ㄷ ㅌ

脣音

ㅂ ㅍ

 

齒音

ㅈ ㅊ

喉音

 

<초성 17>

 

牙音

舌音

脣音

齒音

喉音

半舌音

半齒音

全 淸

ㅈ ㅅ

 

 

次 淸

 

 

全 濁

ㅉ ㅆ

 

 

不淸不濁

 

<초성 23>

 

解例 制字解를 보면 초성의 기본자는 調音할 때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즉 아음은 혓뿌리가 목구멍을 막은 모양, 설음 은 혀가 윗 잇몸에 닿은 모양, 순음 은 입의 모양, 치음 은 이의 모양, 후음 은 목구멍의 모양을 각각 본뜬 것이다. 또한 설음, 순음, 후음에서 전청자를 기본자로 하지 않고 불청불탁자로 기본자를 삼은 이유는 그 소리가 가장 약하기 때문이다. 치음에서 ㅅ ㅈ은 모두 전청이지만 보다 소리가 약하기 때문에 기본자로 삼았다. 다만 아음에서 불청불탁자를 기본자로 삼지 않은 것은 그 소리가 후음의 과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나머지 초성자들은 기본자에 가획함으로써(加劃字), 또는 약간의 異體를 형성함으로써(異體字) 만들어졌다. 解例 用字例를 보면 후음의 이 제외되고 대신 순경음 이 들어 있다. ‘는 소위 東國正韻式 한자음 표기를 위한 것으로 이 당시 국어의 현실 音素이면서 제외된 것은 東國正韻에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여 진다.

초성 23자를 현대 음성학적인 체계에 맞추면 다음과 같다.

 

양순음

치경음

구개음

연구개음

성문음

오음

순음

설음

치음

아음

후음

파열음

예사소리

 

된소리

()

()

 

()

 

거센소리

 

 

파찰음

예사소리

 

 

 

 

된소리

 

 

 

 

거센소리

 

 

 

 

마찰음

무성음

 

 

 

유성음

 

 

 

 

된소리

 

 

 

유음

유성음

 

 

 

 

비음

유성음

 

 

전탁음 ㄲ ㄸ ㅃ은 원래 동국정운식 한자음의 有聲音 [gbd]를 표기하고자 만든 것이며 국어에서도 간혹 쓰인 예가 있지만 국어의 된소리 표기에는 주로    등이 쓰였다.

은 순수 국어에 사용되기는 했지만 의미 분화의 기능이 없으므로 異音韻에 불과하다.

은 형식적인 자음으로 현실 음운이 될 수 없다.

은 국어에서 많이 쓰인 현실 음운이지만 훈민정음 초성체계에서 제외된 이유는東國正韻에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中聲體系

훈민정음 중성체계는 초성체계가 중국의 성운학의 영향을 받은 것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만들어졌다. 해례 제자해에 의하면 중성의 세 기본자는 人 三才의 모양을 본떴다. 는 하늘의 둥근 모양을 는 땅의 평평한 모양을 는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각각 본뜬 것이다. 이러한 기본자를 바탕으로 나머지 중성자 8자는 기본자들의 합성으로 만들어졌는데 初出字 ㅗ ㅏ ㅜ ㅓ는 문자상의 합성일 뿐 음가상의 합성은 아니며, 再出字 ㅛ ㅑ ㅠ ㅕ는 음가의 측면에서 와의 합성으로 이루어진 이중 모음임을 알 수 있다. 또한 ’, ‘’, ‘’, ‘字形上 대립을 보여 주는데 ㅗ ㅏ ㅛ ㅑ이며, ‘ㅜ ㅓ ㅠ ㅕ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국어의 모음조화를 制字에 반영했음을 보여 준다. 이밖에 해례 중성해에서 二字合用字一字中聲相合字ㅢ ㅚ ㅐ ㅟ ㅔ ㆉ ㅒ 二字中聲相合字ㅙ ㅞ ᆅ ᆒ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 중에서 ᆅ ᆒ는 문헌에서 용례를 볼 수 없다.

終聲體系

훈민정음의 본문에서 초성과 중성에 대해서는 각각의 문자를 예시하고 그 발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반하여 종성에 대해서는 그와 같은 설명을 부가하지 않았다. 다만 終聲復用初聲이라는 설명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모든 초성자를 종성으로 다시 쓸 수 있다는 일종의 형태주의 받침 규정으로 1933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이 규정을 그대로 살리었다. 그러나 훈민정음 해례가 발견된 뒤로는 종성부용초성을 종성에 대한 원론으로서 종성을 위하여는 새로운 문자를 만들지 않고 초성 글자 중에서 필요한 것을 가져다 쓴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훈민정음 解例 終聲解ㄷ ㄴ ㅂ ㅁ ㅅ ㄹ 八字可足用也’(ㄷ ㄴ ㅂ ㅁ ㅅ ㄹ 8자면 가히 족히 쓸 수 있다는 음소주의 받침 규정)를 종성에 대한 구체적인 사용 규정으로 파악하였다.

한편, 초성에서와 같이 종성에서도 初聲合用則竝書 終聲同에 따라 합용병서자가 종성으로 쓰였다. 특히 合字解에서 二字三字合用으로 초성에서 合用竝書  ᄢ ᄣ등이 쓰인 것과 같이 종성에도 합용병서         등이 쓰였다.

결국 훈민정음의 종성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규정에 따라 쓰였음을 알 수 있다.

終聲復用初聲’ ‘ㄷ ㄴ ㅂ ㅁ ㅅ ㄹ 八字可足用也’ ‘初聲合用則竝書 終聲同

종성부용초성은龍飛御天歌月印千江之曲에서만 그 용례를 볼 수 있고 15세기 대부분의 문헌에서는 ㄷ ㄴ ㅂ ㅁ ㅅ ㄹ 八字可足用也가 쓰였다.

종성체계의 변천

初聲獨用八字

訓蒙字會(1527)凡例에 있는 규정으로 ㅈ ㅊ ㅋ ㅌ ㅍ ㅎ 8자는 초성에만 쓰고 종성에는 쓸 수 없다는 규정

初聲終聲通用八字

訓蒙字會凡例에 있는 규정으로 ㄱ ㄴ ㄷ ㄹ ㅁ ㅂ ㅅ 8자는 초성과 종성에 두루 쓸 수 있다는 규정

七終聲法

17세기부터 그 음가의 차가 애매하기 때문에 으로 대용하여 ㄱ ㄴ ㄹ ㅁ ㅂ ㅅ ’ 7자로 썼던 규정이다. 1933년 형태주의 표기 규정으로 다시 되돌아간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쓰였다.

竝書(쓰기)

본문 : 初聲合用則竝書 終聲同(초성을 어울려 쓰려면 나란히 써야 하니 종성도 같다)

해례 합자해 : 合用竝書 自左而右 初中終三聲皆同(합용병서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쓰는 것이 초종성이 다 같다)

둘 또는 세 자음자를 좌우로 결합하는 방법으로 동일문자를 결합하는 각자병서와 서로 다른 문자를 결합하는 합용병서가 있었다. 초성 각자병서에는 ㄲ ㄸ ㅃ ㅆ ㅉ ᅇ ᄔ등이 있었다. 이들 각자병서는 주로 동국정운식 한자음의 유성음 표기에 사용되었고 고유어 표기에서는 , 더니, , 일쯕 등과 같은 표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이 동명사 어미 ‘-아래에서 사용되었다.(: 갈낄, 볼띠니) 순수한 국어 단어의 어두음 표기에 사용된 것은 뿐이다. 다만 국어의 語中音 표기에 ᅇ ᄔ이 드물게 나타난다.(: , 다ᄔ니라) 각자병서는圓覺經諺解(1465)부터 전면적으로 폐지되었다. 그리하여 -’(), ‘-’(), ‘-’()도 각각 -’, ‘-’, ‘-’로 표기되었다. 16세기 들어 어두음 표기의 은 다시 부활되었으나 은 그렇지 못했다.

초성 합용병서자는 계에   등이 있고 계에    등이 있으며 계에 ᄢ ᄣ등이 있다. 이 밖에 매우 드문 예로 ’(:  소리 갓나소리)이 있고, 여진어 지명 표기에 ’(: )이 보인다. 합용병서는 글자의 모양대로 重子音으로 발음되었는지 단순한 된소리 표기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중성의 합용병서자는 해례 중성해에서 二字合用字一字中聲相合字ㅢ ㅚ ㅐ ㅟ ㅔ ㅛㅣ ㅒ 二字中聲相合字ㅙ ㅞ ᆅ ᆒ를 제시하고 있으나 이 중에서 ᆅ ᆒ는 문헌에서 용례를 볼 수 없다. 종성에서 쓰인 합용병서자는         등이 있다.

 

連書(쓰기)

본문 : 連書脣音之下 則爲脣輕音(을 입술소리 아래 이어 쓰면 입술 가벼운 소리가 된다)

해례 제자해 : 連書脣音之下 則爲脣輕音者 以輕音脣乍合而喉聲多也(글자를 입술소리 아래 이어 쓰면 입술 가벼운 소리 글자가 되는 것은 가벼운 소리로써 입술이 잠깐 닿았다가 바로 열어서 목구멍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해례 합자해 : 連書下 爲半舌輕音 舌乍附上月咢 (의 아래에 이어 써서 반설경음을 만들고 혀를 잠깐 웃잇몸에 닿도록 해서 발음한다)

순음 ㅁ ㅂ ㅍ ㅃ과 설음 아래 후음 을 상하로 결합하는 방법으로 순경음과 반설경음이 있다. 이 중에서 반설경음 은 실제로 사용되지 않은 이상음에 불과하며 순경음 중에서 ᄝ ᅗ ᄬ은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에만 사용되었고 만이 순수 국어 표기에 사용되었으나 東國正韻에서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성체계에서 제외되었다.

聲調(傍點)

중세국어에는 성조가 있었으며 방점으로 표기되었다. 平聲無點, 去聲一點, 上聲二點을 찍도록 하였고 入聲에 대해 일정한 방점을 마련하지 않은 것은 국어의 성조 체계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국어의 성조는 중국의 사성 체계를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으면서도 국어의 성조 체계를 정확히 파악하여 알맞은 방점법을 마련했던 것이다. 평성은 낮은 소리(低調,  소리), 거성은 높은 소리(高調, 소리), 상성은 처음이 낮고 나중이 높은 소리(先低後高調, 갑고 乃終이 노소리)3성조인 듯이 보이지만 상성은 복합 성조이기 때문에 결국은 2성조로 보아야 한다. 방점은 15세기 문헌에서 정연하게 쓰이다가 16세기 중엽 이후 흔들리기 시작하다가 16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성조의 소멸에 따라 평성과 거성은 짧은 소리로, 상성은 긴 소리로 변하였다. 그러나 방언에 따라서는 성조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현대 국어의 경상도 방언이나 함경도 방언의 일부에 아직 남아 있다. 성조는 적지 않은 단어들이 소리의 높이를 통해 단어의 뜻이 분별되었다.

(- (), () / (), () / (), () / (), 서리() )

國語特徵

국어 자음의 변천 과정

중세 국어의 자음 체계는 22자음이다. 22자음소는 현대음의 19자음소에 ,,의 세 음소가 더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두 자음군, ‘을 제외한 순경음, 후두 파열음 은 독립된 음소로 인정하지 않는다. 복합 자음인 어두 자음군은 15세기보다 앞선 시기에 형성되어 15세기까지 활발하게 쓰이다가 16세기에 접어들면서 어두 파열, 파찰음인 ,,,,등의 경음화와 함께 계로 통일되면서 경음화되기 시작하여 17세기말부터 18세기초에 이르러 완전히 경음화되었다. 각자병서인 ,,,,등의 경음 음소는 16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근대 국어의 자음 체계는 19자음이다. 이는 15세기의 22자음 음소 중 ,,의 세 음소가 없어지고 19음소만이 남게 되었으며, 복합 자음 음소는 된소리로 변하여 음소로서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현대 국어의 자음 체계는 근대 국어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 자음의 변천

고대 국어의 자음에는 안울림 소리에 예사소리(,,,)와 거센소리(,,,)의 두 계열이 존재하였으며, 아직 된소리 계열은 발달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세 국어에서는 자음의 된소리 계열이 새로이 등장하게 되어, 예사소리, 거센소리, 된소리의 세 계열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마찰음인 ’, ‘과 같은 자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이후 은 반모음 /로 바뀌었다. ‘>고와, , 등에서 그 변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쳐 소리값이 소멸하였다.

중세 국어에서는 현대 국어와는 달리 음절 첫 머리에 둘 이상의 자음이 올 수 있었다. ‘’,‘’,‘과 같이 두 개 자음이 놓인 경우와 ’,‘와 같이 세 개 자음이 오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소리들은 나중에 대부분 된소리로 바뀌었다.

국어 모음의 변천 과정

중세 국어의 모음 체계는 ,,를 기본자로 하여, 기본 음운 11, 2자 중성14, 3자 중성 4자로 모두 29자 체계로 되어 있다. 그러나 ,,,,,를 제외하고 실제 우리말에 쓰였던 모음 체계는 23자의 체계이다. 중세 국어 모음 연결 규칙 중에서 가장 현저하게 나타난 것은 모음조화였다.

근대 국어에 와서 단모음의 ,가 없어지고 긴장 반모음도 없어졌다. 또 하강적 이중모음 중 /aj,əj,oj,uj/는 단모음화하여 네 단모음이 새로 생겨났다. 그리고 하강적 이중모음 중 /ʌi//ʌ/가 없어짐과 동시에 없어지고, /ai/와 더불어 /ɛ/로 변하였다. 이러한 변화를 거쳐 근대 국어는 8단모음과 13중모음 조직으로 이루어졌는데, 모음 체계의 일대 변화는 18세기 말에서 19세기에 걸쳐 일어나게 된 것이다.

현대 국어의 모음 체계는 반모음 2개와 단모음 10, 그리고 중모음 12개로 구성되어 있다. 현대 국어의 모음의 변별적 자질은 세 가지로써 구분되는데, 혀의 최고점의 전, 후 위치와 간극의 고, , , 입술의 원, 평으로써 나눈다.

중세 국어의 특징

음운의 특징

자음 체계는 폐쇄음 계열에서 기음화와 후두화를 대립으로 하는 삼지적 상관속을 형성하였으며, 마찰음 계열에서는 후두화의 대립으로 이지적 상관속을 갖는다. 그러나, 15세기에는 후두긴장의 대립(경음화의 대립)은 거의 없다가 16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국어 어두 음소의 경음화 현상이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자음의 합용병서인 어두 자음군어는 본시는 각자 제 음가를 가졌던 것이 어중 모음이 탈락되면서 형성된 것으로, 이는 앞 시대의 음운 의식이 발휘되어 표기의 원칙만을 갖춘 의고적 표기 형태였으나, 16세기에 접어들면서 경음화 되기 시작하여 17세기말에는 , 계 모두 경음화로 완성되었다. 이는 어두 평음 ,,,,16세기부터 ,,,으로 표기되면서 경음화 된 시기와 일치하고 있다.

자음 각자병서 ,,,,등은 한자음을 표기하기 위한 유성음으로 보인다. (다만, ,은 고유어에도 표기된 몇 개의 예가 있다)

모음에 있어서도 ,,,,의 대립을 이루어 모음조화 현상이 뚜렷했으나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음소가 소실되면서 제 2음절 이하에서 주로 모음으로 변동되어 모음조화 현상이 그 체계의 균형을 잃게 되었다.

훈민정음 창제와 더불어 사용되었던 ,,등은 이후 곧 소멸되었으며, 16세기를 넘지 못해 점차 소멸되어 이후 차츰 쓰이지 않았다.

종성 표기는 훈민정음 초기에는 주로 8종성으로 쓰였으나 16세기를 넘으면서 어말 내파 작용이 일어나 이 중화되어 7개 종성으로 바뀌었다.

 

구개음화와 비음화 작용은 15세기말에 드물게 나타나다가 16세기를 지나면서 그 세력이 커졌으며, 두음법칙 현상도 17세기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이들은 모두 18세기에 이르러 보편화되었다.

사성 표기도 16세기를 넘으면서 점차 의미상 변별력을 상실하여 그 체계가 문란하여져 18세기 근대 국어 시기에 들어서면서 그 표기도 사라졌다.

문법의 특징

주격형 의 등장이다. 고대 국어에서는 만 존재하였던 것이 16세기 후반에 새로 나타난 17세기에 들어서서는 널리 확산되어 쓰였다.

고대 국어에서부터 나타났던 선어말 어미 ‘--/--’는 중세국어에서도 명사형 어미, 관형사형 어미와 주어 화자의 의도를 나타내는 등 그 사용이 비교적 정연하였다.

국어의 시제도 고대 국어부터 체계화 된 과거(-), 현재(-), 미래(-,-)가 널리 사용되었다. 다만 과거형으로 ‘-/-15세기에 형성되어 그 사용이 확대되어 갔다.

국어 존대법으로는 주체 존대와 객체 존대, 그리고 상대 존대가 있어 각각 ‘--,--(--,--),--로 대응되어 널리 쓰였다.

사동, 피동 형태인 ‘-,-,-,-등의 접미사가 근대, 현대 국어에서와 같이 큰 세력을 가지고 사용되었다.

부정문 표시에도 부정사가 본동사 앞에 오는 짧은 부정문과 고대 국어 후기에 생긴 ‘-디 아니형도 자연스럽게 쓰였다.

조어법의 특징

중세 국어의 조어법은 근대나 현대 국어와 거의 비슷하다. 합성어에는 통사적 합성어와 비통사적 합성어로 체계화되어 갔으며, 파생법으로는 접두 파생어와 접미 파생어로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명사형에는 ‘-이 가장 생산적이며, ‘-의 분포도 광범하였다. 다만 '-의 쓰임은 그 분포가 적었다.

복합 용언의 형성에 있어 선행 어간 다음에 오는 어간을 직접 결합하던 고대 국어의 조어법 방식에서 점차 두 어간 사이에 ‘-를 개입시키는 형태로 바뀌어 가면서 공존하고 있었다.

파생 접미사의 발달도 매우 생산적이어서 파생어 생산이 확대되어 갔다.

어휘의 의미 변화도 적지 않았으며, 의미의 확대, 분화 등 통시적으로 여러 가지 양상을 보였다.

어휘면에 있어서는 차용어 및 한자어의 쓰임은 매우 광범위하였고, 고유어까지 축출하는 현상도 적지 않았다.

표기법의 특징

이 시기의 전기에는 대부분 연철 표기가 주로 되었으나, 월인천강지곡 등에서는 표의적 형태 위주의 표기를 하는 등 문법 의식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16세기를 넘어서면서 형태 의식과 표음성을 충족시키는 혼철 표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근대 국어에 들면서 분철 표기로 발달해 갔다.

맞춤법의 원리

15세기 맞춤법의 1차적 원리는 각 음소를 충실히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 音素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형태음소론적 교체가 표기상에 반영되었다. 가령 ’()의 곡용형은 갑시, 갑도, ‘-’()의 활용형은 기프니, 깁고등으로 표기되었다. 그러나 자음동화는 반영하지 않았다. 가령 믿는’()민는으로 표기하지 않았다. 이는 당시에 동화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걷너-/건너-’, ‘-/-’ 등이(복합어에만 해당) 共存한 것으로 보아 동화가 당시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훈민정음 해례 종성해가 ㄷ ㄴ ㅂ ㅁ ㅅ ㄹ 八字可足用也라 하여 八終聲만을 쓸 것을 규정한 것도 음소적 원리에 입각한 것이다. 이는 결국 음절말 위치에서 나는 자음의 중화현상을 인식한 것이다. 八終聲法<龍飛御天歌>(: , 깊고, 좇거늘, 닢 등)<月印千江之曲>(: , , , 맞나 등)에 예외가 있을 뿐, 1516세기의 모든 문헌에서 지켜졌다.

15세기 맞춤법의 2차적 원리는 각 음절이 충실히 표기되었던 音節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리는 명사와 조사, 또는 용언의 어간과 어미가 결합된 어형의 표기에도 적용된다. 가령 ’()의 곡용형은 , , , 로 표기되고, 용언어간 -’()의 활용형은 먹고, 먹더니, 머그니, 머거서로 표기되는 것이 그 예이다. 이는 곧 자음으로 끝나는 명사나 용언의 어간 뒤에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나 어미가 오면 앞의 종성이 다음 음절의 초성으로 연철 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문법형태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음절이 정확히 표기에 반영된 것이다. (<龍飛御天歌>, <月印千江之曲>에 나타난 예외 : 눈에, 몸앳, 일이시나, 안아, 담아 등) 다만, 음절 경계와 관련이 있는 종성의 , 은 두 가지 혼동된 표기를 보여 준다. 첫째, 종성의 은 다음 음절의 첫 음이 ㄱ ㄷ ㅂ ㅅ등일 때(, 초성 합용병서가 가능한 경우)에 한해서 내려쓰는 경우가 있었다. (: 닷가/(), 어엿브-/어여-) 둘째, ‘과 같이 초성으로 쓰이는 것이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원칙이었으나, 이 더 일반화되었다.

선초부터 반드시 분철한 경우

설측음에 해당하는 경우(/르 불규칙 용언)

() +달아 니르+닐어

받침 뒤의 이 탈락한 경우

() +거늘어늘 믈+믈와

받침 뒤의 이 탈락하여 변천한 경우

() 글왈 열열운 몰개몰애

탈락되는 용언+사동(피동)접미사의 경우

() ++일워

/로 끝난 명사의 곡용

() +이 여+

/로 끝난 명사의 곡용

() ()+놀이 시르()+실을

한자어에 조사를 붙일 때

() (中國)+귁에

16세기 표기법

위에서 설명한 표기법은 엄밀히 말하면 15세기 국어의 표기법이다. 16세기에 들면, 혼란과 변화가 표기법의 두 원리에 관련되어 모두 일어난다. 음소적 원리와 관련된 것으로는 종성 의 혼란이다. 16세기에 들면서 일부 종성이 으로 적히다가, 16세기 후반에 들면서는 의 구별이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 이것은 15세기 국어에서 구별되던 종성 (: () () / () () / () () ) 현대국어에서와 같이 중화된 결과로 인한 표기이다. 음절적 원리와 관련된 것은 분철이 나타나는 사실이다. 16세기 후반 교정청에서 편찬, 간행된 문헌에서는 분철이 연철보다 훨씬 우세하게 나타난다. 한편, 체언이나 용언 어간의 끝 자음이 모음으로 시작되는 조사나 어미 앞에서 이중으로 표기되는 일이 16세기 초반부터 나타난다. 예를 들면 +밥비라고 표기되는 것이다. 이를 중철이라 한다(혼철이라고도 한다). (: 문늬(), (), () ) 중철은 16세기 후반부터는 분철에 밀려 세력이 크게 줄어든다.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

東國正韻은 세종 30년 중국의洪武正韻의 영향을 받아 간행된 최초의 국어 음운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의 한자음을 동국정운식 한자음이라 하는데 이는 중국 원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한 것에 불과한 이상적 한자음이라 할 수 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의 특징은 初中終三聲合而成字라는 음절 이루기 규정에 의해 종성이 없는 경우에는 , 처럼 종성에 이나 이 쓰였고, 초성에는 처럼 각자병서와 , , 처럼   등이 사용되었다. 또한 받침 한자는 以影補來라 하여 처럼 원래 입성 한자음이 국어에서 로 유음화 되는 것을 입성으로 원음 복귀시키려는 표기가 쓰였고, ‘처럼 이상음 표기가 있었다.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는釋譜詳節,月印釋譜,訓民正音 諺解本등의 15세기 중기 문헌에서 잠깐 사용되었으나 15세기 후기 문헌부터는 보이지 않는다.

근대 국어의 특징

근대 국어 시기에 들어 음운 체계도 중세 국어에 비해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자음 체계에서는 어두 평음 ,,,,등의 경음화 현상이 완성되어 자음의 삼지형이 갖추어졌다. 또 경음의 표기면에 있어서도 어두 자음군이 경음화 되어 된소리 표기인 ,,,등의 된소리 표기가 각자 병서인 ,,,,등으로 19세기에 와서 바뀌어졌다. 모음 체계에 있어서도 의 소실과 더불어 /aj,əj,oj,uj/ 등의 단모음화 등으로 이는 국어 모음 체계로서는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셈이다. 근대 국어의 음운 현상의 특징으로는 ,의 구개음화, ‘,,+/j/ 중모음의 단모음화, 모음조화 파괴, 원순모음화, 움라우트 현상, 전설 모음화, 성조의 소멸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 현대 국어 시기에로 이어졌다. 또 근대 국어 시기에 있어서 문법은 중세 국어에 비해 간소화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형태와 통사 전반에 걸쳐 일어났는데, 고대 국어로부터 중세 국어에까지 쓰인 사이17세기부터 급격히 그 쓰임이 줄어들어, 18세기 이후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으며, ‘나모()’, ‘구무()’ 등 중세 국어에 이 보유되었던 이른바 곡용체언18세기로 오면서 거의 단순화된 어형으로 바뀌었다. 또 형식명사 이나 주격조사 등도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그 세력이 확산되어 근대 국어의 형태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선어말 어미인 ‘--/--’의 개입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격어미 체계는 중세 국어와 크게 다르지 않고 그대로 이어오고 있다. 이로 볼 때 근대 국어의 문법은 많이 간소화된 셈이다. 그러나 근대 국어에 있어서도 용언의 활용은 복잡하고 섬세하였다. 여러 가지 문법 기능을 나타내는 어말 어미와 선어말 어미, 조어법에 관계되는 전성 어미와 종결법, 연결법, 전성법 등의 활용 범주의 틀은 중세 국어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근대 국어의 시제 범주도 전대와 같이 현재, 과거, 미래로 구성된다. 시제 형태소는 중세 국어에 비해 다소 변화를 겪었을 뿐이다. 중세 국어에서 엄격히 세워졌던 주체, 객체, 상대에 대한 존대는 근대 국어에 오면서 객체 존대법이 흔들리게 되어 객체 존대의 기능을 담당하던 ‘--’이 그 기능을 상실하고, 상대 존대에 가세하여 쓰이게 되고 이후 주체 존대에도 관여하게 된다. 통사적인 문법 범주로는 피동, 사동이 있으나 중세 국어나 현대 국어와 구분되는 구조적인 문제는 없으나, 다만 피동의 경우 ‘-,-,-,-형 피동보다 ‘-/어지다형 피동과 사동에 있어도 사동 접미사보다는 ‘-게 하다형 사동이 더 생산적으로 쓰이는 추세였다. 한편 근대 국어의 어휘적 특성 가운데 두드러지는 것은 고유어가 한자어에 의해 약화되고 반면 한자어의 증가였으며, 조어법은 중세 국어와 크게 달라진 것은 없으나 앞에서 말한 선어말 어미 ‘--/--’의 쇠퇴로 ‘-/-’이 혼기되어 나타났으며, 동사 합성은 주로 부사형 어미 ‘-/-의 연결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향이 많았다. 어휘의 어형 변화는 주로 유추, 혼성, 음운 대용 등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여러 어휘 의미의 변화를 볼 수 있다. 근대 국어의 표기법은 ,,의 소멸과 더불어 야기되는 표기화의 문제, 된소리 표기인 어두 합용병서의 각자병서 표기, 종성 의 혼란 표기 등을 들 수 있다.

중세 국어

음운 변화

자음의 변화

’, ‘’, ‘의 소멸

음가 - 해례 제자해에서 脣乍合而喉聲多也’(입술이 잠깐 닿아 목구멍 소리가 많다)라고 설명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양순 유성 마찰음 [β]로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용례 및 분포 - ‘이 나타나는 환경은 모음과 모음 사이, ‘과 모음 사이였다.

(- , , 리 등)

변천 및 소실 - ‘은 일반적으로 로 변하였다. 다만 wi 또는 i로 변하였다.

>(wa)

: >글왈()

>(wə)

: >더워()

>wʌ>

: >()

>wɨ>

: 어려>어려운()

>, (wi)

: 갓가>갓가이(), >치위()

정리

이 간극이 큰 앞뒤의 소리에 동화되어서 변한 음이다. 그러므로 순 우리말에 있어서 은 어두에 나타나는 일이 없다. 그런데 이 동화 작용이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의 간극이 한층 더 커져서 완전히 모음에 가까운 간극을 가지게 되는데(>>/), 이 변화는 을 포함한 모든 말에 보편적으로 일어났다. 이리하여 은 우리말의 음소로는 완전히 없어지고 말았다. 은 용비어천가, 훈민정음, 월인천강지곡, 석보상절 등 정음 창제 당시의 문헌에 완전히 탈락되거나 /로 변하였다. 이런 점으로 보아 이 음소는 이미 1440년대에 동요하기 시작하여 1450-1460년 사이에 없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음가 - 연구개 무성 마찰음 [ˣ]

용례 - 국어에서는 앞에만 나타남(: )

변천

>: (點化)>켜다

>: (點化)>써다, >썰물

>: ()>도리여

소멸시기 - 1460년경 동요를 보이다가 1481년경 완전 소멸

을 강하게 발음하는 소리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대국어에서 이나 과 같은 단어의 을 세게 발음할 때 나는 [ˣ], [ç] 정도의 음가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된다. ‘의 변이음에 불과한 것으로 보이며 강조의 기능을 하는 표기상의 효과를 위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음소 기능은 하지 못했다.

 

음가 - 치경 유성 마찰음〔z〕

용례 및 분포 - ‘이 나타나는 환경은 이 나타나는 환경과 유사하다. 모음과 모음 사이, ‘ㄴ ㄹ과 모음 사이, 모음과 사이에 국한되어 있었다. (- (), (), (), (), () ) 한편 은 간혹 어두에 표기된 일도 있었는데 주로 의성어 및 중국어 차용어에 나타난다.(- , , )

변천 및 소실 - ‘의 소실 과정은 15세기 후반에서 16세기 전반에 걸친 것으로 추정된다. 먼저 앞에서 시작되었다. (- ()>, 어버()>어버이, 녀름지()>녀름지이) 한편 한자음에서도 앞에서의 소실 예들이 보인다. (-  , , ) ‘15세기 말 16세기초부터 동요를 보이기 시작하다가 16세기 말경 완전 소멸된 것으로 보인다.

정리

과 같이 이 유성음 사이에서 유성음화한 것이므로 우리말에서는 어두에 나타나는 일은 없다. 이는 앞 뒤의 간극이 큰 유성음에 완전히 동화되면 탈락되고 마는 것인데, 이 동화 작용은 을 포함한 모든 말에 보편적으로 일어났다. 그리하여 은 우리 음운 체계에서 완전히 소멸되고 만 것이다. 16세기 후반기에 동요되기 시작하여 임란 이전에는 이미 소멸된 것으로 생각된다.

은 환경에 따라 두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소극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語頭音이 모음임을 표시하거나 語中에서 두 모음 사이에 사용되거나 음절 이루기 규정에 따라 글자의 모습을 갖추기 위하여 쓴 것으로, 특별한 소리값이 없다. (- , (), ())

둘째는 보다 적극적 기능을 가진 것으로 가령 -’()의 활용형 알어늘, 알오‘*알거늘, *알고등으로부터 변화인데, 15세기 맞춤법의 규칙으로 보아 로 하여금 종성의 위치에 머물러 있도록 막고 있는 힘은 이 하나의 자음인 데서 생기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는 후두 유성 마찰음 [ɦ]으로 추정할 수 있다. (- 달아, , 소리오. 만약 이들이 아무런 음가가 없다면 다라, , 소리요로 적어야 한다)

용례 및 분포 - ‘‘y, , 과 모음 사이에만 나타난다. (- , 몰애, 멀위, ) ‘y, , 과 모음 사이에서 이 약화된 결과였다.

소실 - ‘의 소실은 먼저 에서 일어났다. 15세기의 , 등이 16세기 문헌에 , 등으로 나타난다. 한편 ㄹㅇ몰애(), 놀애()’ 등 명사에 있어서는 16세기 말까지 변함이 없었으나, 동사 활용에 있어서는 ㄹㄹ로 변한 예들이 보인다. 16세기 말의 올라(), 달름()’의 예는 15세기에 올아, 달옴등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한자

초성 : ,

종성 : ,

국어

초성 : (), ()

종성 : (), ()

국어에서는 어두로 쓰인 일이 없으며 일종의 조음소라 하겠다.

 

경상도 방언에 남아 있는 몰개(), 멀귀()가 몰애, 멀위를 거쳐 서울 방언에서 모래, 머루로 되었는데, 의 약화되는 과정에 생겨나는 음운이라 하겠다. (몰개>>몰애>모래)

의 자형과 음가는 일찍부터 혼란하였다.

자형 : >

음가 : 초성 //, 종성/ɳ/

은 초성에서는 16세기 초기 이전까지, 종성에서는 16세기 말기까지 쓰였다.

음가 - ‘  등을 되게 발음하라는 일종의 시각적 부호일 뿐 음소 기능은 없다.

소멸시기 - ‘과 같음

용례 - 주로 피동사동 접사 축약형에 쓰임(: , , )

ᅇ은 피동형을 표기하는 데 주로 사용하였고, 가끔 사동형도 있다.

-,-,-는 결국 음운 표기의 기교에 불과하다 하겠다.

유일한 사동형인 의 변천 : >>여곰>여곰>야곰>하여금

음가 - 성문 파열음 [ʔ]으로 은 서로 통해 썼는데 의식적이 아닌 이상 발음이 어렵다.

용례 - 국어에서 은 사잇소리(:  )와 관형사형 어미에만(: , ,  미니라) 쓰였고 한자음에서는 동국정운식 한자음 표기인 以影補來에 사용되었다.(: )

소멸시기 - 반포 후 약 60년간 사용

은 국어에서 어두와 어중에서 단독으로 사용된 예가 없는 것으로 음소 기능은 없다.

한자음

초성 : ,

종성 : ,

국어 (사잇소리와 관형사형 어미에 사용)

사잇소리 :  , 나래, 先考,

관형사형 : ,

ᅙ이 소멸되면서 후행음절 초성이 경음화 된다.

 +>+: >갈낄

 +>+: 홀띠니라

 +>+

 +>+: 홀 싸

 +>+

에 대해서는 훈민정음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은 용언의 활용형에서 발견되는데 이 경우 어간은 을 종성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들이다.(: 디ᄔ 소리, 다ᄔ니라, 슬ᄔ니) 이들은 -, -, -’ 등의 종성 이 뒤에 오는 을 만나 우선 으로 변하고, 에 의해 동화된 것이다. ‘슬ᄔ니의 경우는 의 발음이 확실하지 않지만 디ᄔ이나 다ᄔ니라등의 경우에는, ‘, 니라와 동일한 발음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ᄔ으로 일종의 자음의 역행동화현상이다.

니라>니라(), 니라>니라()

 

어두 자음군의 변천

계 어두 자음군의 변천

중세 국어에서 계로 표기된 어두 자음군은 16세기를 기점으로 표기의 변화가 일어났다. 16세기에서부터 17세기에 걸쳐 표기의 동요 시대를 지나 18세기에는 계로 바뀌면서 경음화가 완성되었다.

변천 시기

>: 18세기부터 완전히 으로 바뀌면서 경음화되었다.

>: 17세기까지는 ,,으로 혼용되다가 18세기를 계기로 하여 으로 바뀌면서 경음화되어 이 병존하다가 19세기에 완전히 으로 바뀌었다.

>: 18세기부터 완전히 으로 바뀌면서 경음화 되었다.

>: 18세기부터 완전히 아 탈락되고 으로 바뀌었다.

계 어두 자음군의 변천

계 어두 자음군은 16세기 초기부터 경음으로 동요하기 시작하여 17세기 초에는 대부분 경음화 되기 시작하여 이후에 완성된 것이다.

계 어두 자음군의 변천

계는 17세기 문헌에서는 ᄢ,ᄣ이 완전히 유지되어 있음이 드믈고, 16세기 이후는 이 생략된 어형과 이 생략된 어형의 두 갈래가 나타난다. 계는 16세기부터 동요하기 시작하여 17세기에는 된소리로 변한 것도 있고, 계와 합류한 것도 있어서 결국 계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고 보겠다.

어두 평음 ,,,,의 경음화

,,,,의 경음화는 16세기부터 이루어져 17세기에 완성되었다. 이는 계와 계의 어두 자음군이 경음화 된 시기와 일치한다.

격음화 현상

어두 격음화는 격음 음소 형성과 더불어 후기 고대 국어 시기부터 중세 국어에 와서 확대되어 16세기를 지나면서 광범위해졌다. 또한 사이의 기능으로 인하여 복합어의 경우에 다음 말의 평음을 격음화 시키고 있다.

유성음화

중세 국어에서도 현대 국어에서 일어나는 유성음화 현상이 그대로 일어났다. 유성음화는 자음을 탈락시키기도 하였고, 폐쇄음과 마찰음 /p,t,k,ts/는 유성음 사이에서 각각 /b,d,g,dz/로 유성음화 되어 나타난다. (셔블()>>셔울, ()>)

자음탈락

조사 ‘-는 모음과 밑에서는 ‘-로 나타난다. (입시울 엄과 니 다 됴)

강세의 조사 : >( 이시면>우리 계우면)

의 뜻을 가진 조사 : >( 니라>므를  五百 디위 길이더시니)

어미 첫머리의 은 다음과 같은 말 밑에서 탈락한다.

어간의 끝소리가 인 경우 (일어늘, 할어늘)

어간의 끝소리가 /j/인 경우 (외어늘, 외어늘)

서술격 조사 ‘-이다와 지정사 아니다에 연결될 때 (하늘히어늘, 리어늘)

미래 시상을 표시하는 에 연결될 때 (이시리어늘, 업스리어늘)

디다는 자동사와 타동사에 두루 쓰이는데, 자동사의 경우에는 밑에 연결되는 어미의 이 탈락되지 않으나 타동사의 경우는 이 탈락된다.

자동사 : 디고, 디거든

타동사 : 果實을 디오, 미 돌디오

합성어를 구성함에 있어서도 이 탈락된다. (들그믈>들으믈, 가티>)

의 축약 내지 약화 탈락 ((其處)>그어긔>거기)

이 유성음 사이에서 탈락 (일홈>이름, 가히>)

구개음화

국어의 구개음화 현상은 중세 국어 시대에서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하여 18세기인 근대 국어 시기에 완성되었다. 15세기에는 경구개음은 거의 없고 혀끝 소리만이 나타나다가 18세기초에 이르러 ,/i,j/ 앞에서 구개음화 하여 ,으로 변하고, 18세기 말에서 19세기초에 걸쳐 ,의 주변 이음이 경구개로 옮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15세기에도 극히 드물지만 구개음화한 예를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츠기 너겨 모마라 줋디라도)

중세 국어에서는 구개음은 의미 분화의 변별력을 가지고 있는 예들로도 나타난다.

티다() : 치다(), 디다() : 지다(), () : ()

() : (), () : ()

한편 이 시기에 마듸(), 잔듸(), 어드(何處), 드듸다()’ 등은 구개음화 조건이 이루어지지 않아 변화를 받지 않다가 뒤에 단모음으로 바뀌어 마디, 잔디, 어디, 디디다로 된 형태가 오늘날까지 쓰이고 있다.

두음법칙

어두에 자음군이나 ,등 특정한 음이 오는 것을 기피하는 이른바 두음법칙 현상은 알타이어에서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중세 국어에서는 철저히 지켜지지 않았다. 어두에 이 올 수 없는 것은 고대 국어 이래로 오늘날까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으나, 어두 은 중세 국어의 고유어나 한자어에서 적잖이 보이고 있다.

자음동화

한 음소가 동일어 내의 다른 음소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그와 같은 소리로 변하거나, 혹은 그와 비슷하게 되는 것을 음의 동화라 한다. 객체 존대의 (,,) 아래서 으로 실현되는 것이나, ‘>손조의 변화는 모두 인접음 간에서 일어나는 동화이다.

자음의 이러한 변화는 처음에는 일부에서 임의적으로 일어나던 것이 일반화되면서 나중에는 음운론적인 필수 규칙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자음동화는 15세기 이전에 이미 일부에서 변화가 시작되었지만 16세기 이후에 크게 확대되었다. 반면에 하나의 언어나 음절안에서 비슷한 음운이 다른 음운으로 바뀌는 이화작용도 이 시기에 일어난 간난()>가난등과 같은 변화의 예도 나타나고 있다.

, 의 호전

중세 국어의 어휘들 가운데 일부에서는 이 서로 넘나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行爲)>, 듣다()>드리우다(), ()>바다, 불다()>붇채()

변칙동사에서의 >: 걷다(), 묻다()

모음 아래서 서술형 ‘--’나 미래형 ‘--’, 그리고 어미 ‘--’가 유음화하여 로 바뀌는 현상 : -이다>-이라, -이더라>-이러라, -리다>-리라

설측음화

국어에서 유음 은 설측음 ‘l’과 설단음 ‘r’의 음성적인 음가를 가지고 있다. ‘r’음이 ‘l’음으로 발음되는 설측음화 현상은 이미 15세기에 나타나고 있다.

(-+->달아(), 므르-(退)+->믈러, 벌에()>벌레, 머리()>멀리)

자음, 모음 충돌회피 현상

둘 이상의 형태소가 결합할 때 자음끼리 또는 모음끼리 연접되는 경우에 서로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이 충돌을 회피하기 위하여 나타나는 음운변화 현상이 자음, 모음 충돌회피 현상이다.

 

자음 충돌회피

매개모음 개입 : ()++>-매개모음 삽입

자음탈락 : ()+>- 종성 탈락

혼음 : ()+>됴타 -+ㄷ→ㅌ

모음 충돌회피

매개자음 개입 : ()+j++>외욤 - 매개자음 ‘j’ 삽입

모음탈락 : 더으()++>더움 - ‘탈락

모음축약 : ()>, ()++>

동음 생략

동일 자음생략 : 니다()니다, 간난(艱難)>가난

동일 모음생략 : 수울>(), 괴요()>고요

종성 탈락 : 거우룰()>거우루, >, 니를다()>니르다

15세기 자음 체계

평 음

유기음

 

 

된소리

 

유성마찰음

 

 

 

비 음

 

 

 

유 음

 

 

 

 

 

모음의 변화

단모음 체계

훈민정음 해례 제자해의 중성에 관한 설명은 15세기 국어에 ㅡ ㅣ ㅗ ㅏ ㅜ ㅓ7개 단모음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제자해에서는 먼저 기본 3모음에 대하여 혀의 모양, 소리의 깊이 등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舌縮而聲深 舌小縮而聲不深不淺 舌不縮而聲淺

그리고 나머지 4모음에 대하여 위의 3모음과 관련지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同而口蹙 其形則合而成

同而口張 其形則合而成

同而口蹙 其形則合而成

同而口張 其形則合而成

그런데 이 설명에 사용된 술어들은 혀에 대한 舌縮, 舌小縮, 舌不縮’, 입에 대한 口張, 口蹙에 대한 해석이 학자마다 달랐다. ‘舌縮, 舌小縮, 舌不縮의 해석에는 後舌, 中舌, 前舌을 가리킨다는 견해와 舌縮後舌低母音, ‘舌不縮前舌高母音, ‘舌小縮中舌中母音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고, ‘口張, 口蹙張脣, 圓脣을 의미한다는 견해와 開口度大小를 가리킨다는 견해가 있다.

모음체계의 수립은 각 모음의 정확한 음가 결정을 전제로 한다. 이 음가 결정에 가장 적합한 자료로서 국어를 외국 문자로 轉寫한 것(朝鮮館譯語), 외국어를 정음 문자로 表寫한 것을 들 수 있다(: 홍무정운 역훈, 사성통해, 이로파).

이상의 것을 참고로 한 15세기 모음체계는 다음과 같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후기 중세국어의 단모음체계> <전기 중세국어의 단모음체계>

 

 

 

 

 

 

 

 

 

 

 

 

 

 

 

 

 

이 모음체계는 전기 중세국어의 모음체계가 14세기경에 겪었을 모음추이를 반영한 것이다. 이 변화로 인하여 성립된 위의 모음체계는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모음 의 단계적 소실로 이어진다. ‘의 소실은 2단계로 나타나는데, 1단계는 비어두음절에서의 주로 >로의 소실로 15세기에 시작되어 16세기에 완성되었다. 2단계 소실은 18세기에 일어났다.

이중모음 체계

후기 중세국어는 풍부한 이중모음 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상향 이중모음과 하향 이중모음이 있었다. 상향 이중모음으로 y가 앞선 (ya), (yə), (yo), (yu)’가 있었다. 이론적으로는 yʌ, yɨ도 있을 수 있는데, 이들에 대한 문자가 만들어지지 않았음은 당시의 중앙어에 이런 이중모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해례 합자해에 聲 於國語無用 兒童之語 或有之 當合二字而用 如기기之類”(음이 앞에 와서 음이나 음과 결합된 음은 국어에서 쓰이지 않으나 아이들 말이나 변두리 시골말에 간혹 있으니 마땅히 두 글자를 합하여 써서 기기따위와 같이 한다.)

w가 앞선 상향 이중모음으로는 (wa), (wə), (wi)(15세기에 가 변한 것)’가 있었다. 하향 이중모음에 y로 끝난 (yʌ), (ay), (əy), (oy), (uy), (ɨy)’가 있었다.

의 동요

음은 중세 국어에서부터 소리값에 동요가 생겨 음을 가진 음절에 음운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여 16세기 말경에는 그 1차적 변화로 >로서 치다()>르치다, ()>, ()>말믜와 같이 제 2음절 하에서 주로 진행되었다. 1음절에서 >또는 다른 모음으로 바뀌어진 제 2차 변화는 18세기에 이루어졌다. 2차 변화는 주로 어간이나 체언에서 일어난 변화이기 때문에 모음조화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될 수 없었다. 이로 보아서 15세기부터 다소 동요되기 시작하여 17세기에는 그 동요가 매우 심하게 일어나 18세기에 이르러 소멸되었다고 본다.

한자 : , , 使

국어

명사 : (), (), ()

대명사 : ()

수사 : (), (), (四十)

동사 : 리다(), 토다(), 리다()

형용사 : (), (), ()

부사 : (), (滿), ()

변천

>: (), (), (), ()

(예외 : (), (), (), (), (), ())

>: (), (), () (예외 : (), (), ())

>: (), (), () (예외 : (), ())

>: (), ()

>: (), ()

>: (), ()

>탈락 : 올로(), (), 디다()

모음조화

중세국어의 모음 연결 규칙 중에서 가장 현저한 것은 모음조화였다. ‘ㅏ ㅗ는 양성모음, ‘ㅡ ㅓ ㅜ는 음성모음, ‘는 중성모음이다. 원칙적으로 양성모음은 양성모음끼리, 음성모음은 음성모음끼리 어울리고, 중성모음은 어느 것과도 연결될 수가 있었으나, 음성모음과 어울리는 경향이 강하다. 모음조화 규칙은 어느 경우나 엄격하게 적용된 것은 아니었으나,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조사나 어미들이 그 규칙에 따라 연결되었다.

양성모음

: ㅗ ㅏ(ㅛ ㅑ ㅚ ㅐ)

음성모음

: ㅡ ㅜ ㅓ(ㅠ ㅕ ㅢ ㅟ ㅔ)

중성모음

:

중세국어의 모음조화 규칙은 대체로 두 가지 양상을 띠고 있었다. 한 형태소 내부에서는 이 규칙이 비교적 엄격하게 지켜졌으나, 형태소 경계, 즉 어간과 어미(조사 포함) 사이에서는 이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았다.

<모음조화 규칙이 지켜진 예>

<모음조화 규칙이 지켜지지 않은 예>

보조사 : //

호격조사 :

목적격조사 : //

복수접미사 : -

부사격조사(처소) : /(/)

접속조사 : /

관형격조사 : /

현재시제 선어말어미 : --

부사격조사(도구) : /으로

과거시제 선어말어미 : --, --

선어말어미 : -/-

감탄형 어미 : -도다

부사형어미 : -/-

객체높임 선어말어미 : --, --, --

매개모음 : -/-

 

원순모음화

비후설모음으로 평순모음인 ,,등 순음 아래에서 원순모음 로 조음되는 현상이 15세기에 들어 나타난다. ‘브르다()>부르다, 픔다()>품다, 어듭다()>어둡다등의 예가 보인다. 그러므로 원순모음화의 시작은 15세기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원순모음화가 생산적으로 일어난 것은 17세기말을 거쳐 18세기 초 무렵이라 할 수 있다. 17세기 중반까지의 문헌에서는 간혹 몇 개의 예가 보일 뿐 ,,의 표기가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원순모음화는 근대 국어 시기에 와서 크게 활발해졌다.

간음화 현상

중세 국어 시기에 이르러 단모음으로 된 두 개의 음절이 축약되어 복모음의 한 음절로 되는 간음화 현상이 일부에서 일어났다. (막다히()>막대, ()>, (君子)+>)

모음 역행동화

뒤에 오는 모음의 영향을 받아 모음동화를 일으키는 움라우트 현상도 15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겨시다()>계시다, 이다(使)>이다와 같이 이러한 모음 역행동화는 근대 국어 시기에 더욱 확대되었다. 또한 모음 역행동화와 같이 이웃하는 모음끼리 조음위치를 가깝게 하려는 모음의 동화는 누록()>누룩과 같은 변화를 이루었고, 비슷한 음운이 다른 음으로 바뀌는 이화 작용은 ()>나그내와 같은 변화를 가져왔다.

 

문법

형태

사잇소리

현대국어에서 사이시옷이라 불리는 것으로 합성명사에서 유성 어말자음의 선행 체언이 후행 체언 사이에 삽입되는 자음으로 관형격조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

구 분

사 용 조 건

용 례

선행체언의 끝소리

사잇소리

후행체언의 첫소리

한자어

안울림소리



쾡ᅙ

울림소리

울림소리

世子

고유어

울림소리

안울림소리

엄쏘리, 긔별

울림소리

울림소리

,

 

체언의 형태 바꿈

표음적 표기에 의한 바꿈

8종성이 아닌 받침으로 체언이 바뀌는 것, 겹받침을 가진 체언이 교체하는 것이다. 현대 맞춤법에서는 이런 교체를 표기상에 반영하지 않으나, 중세국어세는 소리대로 표기하였다.

()

/곳과 비/빗과 니페/닙과

 

밧긔/밧 알/앏과 붓기/붓과

종성 체언의 형태 바꿈(곡용어)

을 종성으로 가진 체언이 단독형이나 실질 형태소와 결합할 때는 이 나타나지 않으나 조사와 결합할 때 이 나타난다. 즉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는 이 나타나고, ‘ㄱ ㄷ등으로 시작하는 조사와 결합할 때는 ㄱ ㅋ등이 된다. 이와 같은 곡용을 보이는 체언은 대체로 80여 단어가 있다.

<‘종성 체언의 예>

(), (), (), (), 나라(), 나조(), (), (), (), 니마(), (), (), 드르(), (), (), 바다(), (), (俗人), (), 시내(), (), (), (), (), (), (), (), (), (), (), (-), (), (), (), (), (), 스믈(二十), (), (), (今年), ()

이와 같은 종성 체언의 곡용은 16세기 말까지의 문헌에서는 15세기 문헌과 별 차이가 없었는데 근대국어에서 종성 의 소실로 차차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15세기의 문헌에서도 일부 명사에서는 이 소실된 곡용이 보이기도 한다. (: , , )

모음 탈락에 의한 형태 바꿈

, 의 형태 바꿈

명사의 어말음절이 /’(), ‘’() 등은 단독형이나 자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 로 나타나지만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명사의 어말음절 모음이 탈락되면서 은 앞음절의 종성이 된다.

 

/의 형태 바꿈

명사의 어말음절이 /(), (), (), 시르()’ 등의 명사가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명사의 어말음절 /가 탈락하고 은 앞음절의 종성이 된다.(‘ㄹㅇ형태) 한편 (), ()’ 등의 명사는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명사의 어말음절 /가 탈락하고 은 앞음절의 종성이 되며 이 덧생긴다. (‘ㄹㄹ형태)

곡용어

어말모음의 명사 가운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는 명사의 어말음절 모음이 탈락하고 이 덧생기며, ‘어말자음 가운데 모음으로 시작하는 조사 앞에서 이 덧생긴다.

 

조사

단독형

주격

목적격

보조사

관형격

부사격(처소)

접속조사

서술격

///

///

/

/(/)

/

이라

곡용어

나모()

남기

 

나모와

남기라

구무()

굼기

굼글

굼근

굼긔

구무와

굼기라

녀느(他人)

년기

년글

년근

년긔

녀느와

년기라

()

밧기

밧긔

밧과

밧기라

곡용어

나라()

나라히

나라

나라

나라

나라해

나라콰

나라히라

()

우히

우흘

우흔

우희

우희

우콰

우히라

()







히라

()

길히

길흘

길흔

길희

길헤

길콰

길히라

/곡용

()







 

이라

()

이라

/곡용

(‘ㄹㅇ형태)

()





 





이라

()









이라

()

놀이

 

놀이라

시르()

실이

실을

실은

 

실의

시르와

실이라

/곡용

(‘ㄹㄹ형태)

(一日)





 





리라

()









리라

대명사의 쓰임

인칭 대명사

1인칭 :

2인칭 : , 그듸

3인칭 : , , 아모

통 칭 : 녀느, , ,

지시 대명사 : (근칭), (중칭), (원칭)

의문 대명사 : 므스, 어느, 어듸

조사

주격 조사

체언의 어말음이 자음일 때 : -

()

기픈 므른

 

어린 니르고져

체언의 어말음이 ‘i, y’ 모음으로 끝날 때 : zero주격

()

불휘 기픈 남 

 

 미라와 더으고

 

체언의 어말음이 ‘i, y’ 모음 이외의 모음일 때 : -

()

目連려 니

 

니르고져 이셔도

서술격 조사도 마찬가지이다.

목적격 조사

어말 자음의 체언이 양성모음일 때 : -

()

열희  히 달애시니

 

 발자쵤 바다

어말 자음의 체언이 음성모음일 때 : -

()

帝業 여르시니

 



어말 모음의 체언이 양성모음일 때 : -

()

겨집 사시니

 

天下 시릴

어말 모음의 체언이 음성모음일 때 : -

()

부텨를 와 듣오라

 

몸앳 필 뫼화 그르세 담아 男女 

관형격 조사

양성모음의 有情체언일 때 : -

()

 들 거스디 아니노라

음성모음의 有情체언일 때 : -

()

거부븨 터리와 톳긔  거니

관형격 조사 /가 유정체언이나 平稱체언에 결합되는 관형격 조사임에 반하여 無情체언이나 높임의 유정체언에 결합되는 관형격 조사이다.

()

부텻 모미 여러 가짓 

 

나랏

처소의 부사격 조사

양성모음의 체언일 때 : -

()

님금 리샤 精舍 안잿더시니

음성모음의 체언일 때 : -

()

몸앳 필 뫼화 그르세 담아

체언의 어말모음이 ‘i, y’일 때 : -

()

狄人서리예 가샤

 

귀예 듣논가 너기쇼셔

다음과 같은 일부 명사는 보편적인 처소의 부사격 조사 //와 결합하지 않고 관형격 조사의 형태인 /와 결합하는 특수 명사가 있다. (격조사 /가 관형격 조사인지 처소의 부사격 조사인지의 여부는 선행 체언의 의미에 따라 결정된다. 즉 유정체언이면 관형격 조사이며, 무정체언이면 /는 처소의 부사격 조사인 것이다.)

<‘-를 취하는 특수 명사의 예>

(), (), (), (), (), (), (), (), 나모(), 나조(), (), (), (), (), (), ()

<‘-를 취하는 특수 명사의 예>

(), (), (), (), (), (), (), (), (), 터럭(), (), ()

()

새벼리

 

새 닢 나니

 

우희 차 두퍼 잇니라

 

수미산 밧긔 닐굽 산이 둘어 잇

어미

중세국어에서도 어미를 어말어미와 선어말어미로 나눌 수 있다.

선어말어미

높임 선어말어미

객체높임 선어말어미

어간의 끝소리

형태

용 례

ㄱ ㅅ ㅂ ㅎ

--

거늘 돕

ㅈ ㄷ ㅊ ㅌ

--

게 얻

ㄴ ㄹ ㅁ 모음

--



‘--, --, --’은 매개모음을 취하는 어미나 모음 어미 앞에서 ‘--, --, --’으로 교체된다. 객체높임 선어말어미는 다른 선어말어미에 가장 앞서 어간에 연결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주체높임 선어말어미

‘-()-’는 모음 어미 앞에서는 ‘-()-’로 교체되는데, 이때 모음 어미는 탈락된다. , 어미 ‘-/’, ‘-/ ’, ‘-/과 결합된 활용형은 ‘-, -, -으로 나타난다.

()

海東六龍

 

目連려 니

 

샤매

시제 선어말어미 ‘--, --’와의 배열이 뒤바뀌는 현상이 이미 15세기 국어에 나타나지만 ‘-시거-, -시더-’로 굳어진 것은 근대국어에서의 일이다.

상대높임 선어말어미

상대높임 선어말어미는 평서형 어미 ‘-앞에서는 ‘--’로 나타나고, 의문형 어미 ‘-, -앞에서는 ‘--’으로 나타난다.

()

그딋  맛고져

 

디 엇더

상대높임 선어말어미는 현대국어에서 문어체의 하나이다, 하리이다등과 같이 쓰이고 있으나 구어체에서는 ‘-()니다. -()니까, -()십시오가 쓰인다.

시제 선어말어미

현재시제 선어말어미

선어말어미 ‘--’는 현재시제를 표시하는데, 선어말어미 ‘--’와 결합하면 노라와 같이 ‘--’로 바뀐다.(는 선어말어미 ‘--’‘--’의 결합형)

 

회상 선어말어미

‘--’는 회상의 선어말어미인데, 서술격 조사와 미래시제 선어말어미 ‘--’ 뒤에서는 ‘--’로 교체되고, 선어말어미 ‘--’와 결합하면 ‘--’로 교체된다.

()

님그미 나갯시니

 

 디 업니 엇뎨어뇨

 

부텻나히 셜흔 세히시니

미래시제 선어말어미

‘-()-’는 미래시제의 선어말어미인데, 관형사형에서는 ‘-로 실현된다.

 

평서형 ‘-

의문형 ‘-

연결어미 ‘-

관형사형 ‘-

--









--

더라

더녀

더니

--

리라

리니

 

시간 표현

1. 현재 시제

네 이제 <월인석보 23, 97> - 직설법

내 오無情호라 <월인석보 21, 219>

위 문장의 밑줄 그은 부분은 현재 시제이다. 동사에서는 선어말 어미 ‘--’에 기대어 현재 시제가 표시된다. ‘無情호라는 형용사 無情에 선어말 어미 ‘--’가 붙은 것인데 회상법 無情다라와 비교하면 현재 시제임이 분명해진다. 더욱이 이 문장에는 발화시 관련의 시간부사 이 사용되어 있다. 그러나 형용사는 현재 시제를 표시하는 특별한 형태가 없다.

2. 과거시제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악장가사, 청산별곡>

네 아비 주그니<월인석보 17, 21>

(세존)……舍利佛須達이 조차 가라 시다 <석보상절 6, 22>

위의 밑줄 그은 부분은 과거, 또는 그와 비슷한 상황을 표시한다. ‘주그니라는 동사에 보수적인 평서형 어미 ‘-으니라가 붙은 것인데 니라, 죽더니라와 계열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과거관련의 시간부사 가 동반되어 있으므로 과거시제이다. ‘시다는 현대국어의 소설 지문 하였다에 해당한다.

3. 회상법

(須達)…… 그딋  맛고져 더이다 <석보상절 6, 15>

롱담다라 <석보상절 6, 24>

데 몯 마이리 다 외더라 <월인석보 10, 30>

위 문장의 밑줄 그은 부분은 과거 회상이나 그와 관련된 의미를 표시한다. ‘--’‘--’에 선어말 어미 ‘--’가 결합된 것이다. ‘롱담다라는 현대국어에서 화자가 주어로 등장하는 문장에서는 ‘--’가 쓰이지 않는 일이 많다.

4. 추측법

聖神이 니샤도 敬天勤民더욱 구드시리 <용가 125>

위의 문장은 미래 시제가 실현되어 있다. 여기에는 추측의 의미도 함께 파악된다.

5. 확인법과 주관적 믿음

중세 국어에서는 믿음이나 느낌과 같은 화자의 태도를 표시하는 형태가 확인된다. 다음 문장에서는 화자의 주관적 믿음을 파악할 수 있다.

衆生거다 <석보상절 23, 28> - 자동사에 ‘--’

崔九의 집 알몃 디윌 드러뇨 <두시언해 16, 52> - 타동사에 ‘--’

내 이제 훤히 즐겁과라 <법화경 언해 2, 137> - ‘--’에 선어말 어미 ‘--’

마 비 오려다 <월인석보 10, 85> - 미래 시제의 ‘--’‘--’

‘--/--’가 동사 어간에 바로 붙으면, 믿음의 의미에 부수화여 현재 완료적인 의미가 파악된다.

6. 동작상

 이 넷 니라 <두시언해 8, 36>

보조적 연결 어미와 보조 형용사 잇다가 결합된 것인데, 완료의 의미를 표시한다. 중세 국어에서는 이런 표현이 널리 쓰인다.

현대국어는 없는 특수한 선어말어미

선어말어미 ‘--’

‘--’는 평서형, 연결형어미 ‘-’, 관형사형에서 주로 나타난다. ‘--’는 선행음절의 조건에 따라 교체되는데, 선행음절이 자음으로 끝나면 모음조화에 따라 ‘-/-’로 교체하나 선행음절이 모음어간이면 복잡하다. 모음어간이 이면 선어말어미 ‘-/-’는 원칙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어간모음이 , 이면 그 어간모음이 탈락된다. 어간모음이 ‘i, y’로 끝나면 ‘-/-’가 나타난다. 서술격 조사 뒤에서는 ‘--’로 나타나며, 선어말어미 ‘--’, ‘-/-’에 연결되면 ‘--, -/-, -/-’가 된다.

 

()

世尊리니

 

내 어저가짓

 

두듥우희 급난일즉 디내

 

 로 니

 

자히 건너시니

 

날로 便安고져

 

이제 나가난호미라 아니

 

 아디 몯

 

 

호라(), 호니(), ()’ 등에서와 같이 ‘--’가 없는 어형이 존재할 때만 ‘--’는 형태소로 분석되고 한 형태소의 자격이 있다. 같은 ‘--’ 계통의 어미라 하더라도 비교되는 어형이 없는 경우는 형태소가 될 수 없다. ‘-, -‘-’, ‘가 단독으로 나타나는 일이 없으므로, 형태소의 일부분일 뿐이다.

선어말어미 ‘--’의 문법기능

󰊱 1인칭 활용

주어가 화자 자신(1인칭)일 때 이에 일치하여 서술어에 ‘--’가 나타난다. ‘--, --’‘--’가 결합된 ‘--, --’는 거의 화자 주어와 일치한다.

()

百年올로 올오라

 

스믈여듧 노니

 

이제 分明히 너닐오리라

 

岐王집 안해 샹녜 보다니

 

곳 디時節맛보과라

󰊲 의도법

주어 명사가 청자(2인칭)일 때에도 ‘--’가 쓰이는 일이 있다.

()

다시 모안조端正호리라

 

長者디 몯야셔 몬져 먹디 마로리니

󰊳 대상활용(목적격 활용)

관형사형에 나타나는 ‘--’는 꾸밈을 받는 명사가 꾸미는 말의 의미상의 목적어일 때에 쓰이는 경우가 있다.

()

얻논 이 므스것고(약을 먹다)

 

아논 으로(을 알다)

믿음느낌의 선어말어미 ‘--, --, --’

‘--’

주관적 믿음을 표시하는 선어말어미에 ‘-/-’(--탈락형)가 있다. 이 어미는 자동사 -’() 뒤에서는 ‘--’, 타동사 뒤에서 어말어미의 종류에 따라 ‘-/-’로 교체된다. 한편 이들 어미에 선어말어미 ‘-/-’가 결합되면 ‘-/-’, ‘--’로 교체된다.

 

()

울워리 업시다

 

狄人

 

수울 어드라 가더니 다 도라 오

 

 

太子구쳐

 

히 저퓌우

 

眞實宮中에 사니와

 

내 이제 훤히 즐겁

 

내 너교滅度애 시러 나를라 타니

‘--’

객관적 믿음을 표시하는 ‘--’는 어떤 동작이나 상태를 객관적으로 확인하여 말할 경우에 사용된다. ‘--’는 상대높임 선어말어미 ‘--’에 선행하나 다른 선어말어미에 언제나 후행하고 그 분포도 매우 제한되어 있어서 종결어미 앞에만 나타난다.

()

곶 됴코 여름 하

 

녀느 쉰 아도 다 出家

 

내야 주라

‘--’

느낌 선어말어미는 ‘-도다, -도소니, -도소등의 ‘--, --’이다. ‘도소, 도소녀, 에서 ‘--’ 다음의 매개모음 가 동화에 의해 로 바뀐 것이다. 이 어미는 미래시제 선어말어미 ‘--’와 서술격 조사 뒤에서는 ‘--, --’으로 교체되고 이밖에 ‘--, --’이 있다. (‘-놋다, -닷다, -샷다‘--’은 각각 선어말어미 ‘--, --, --’와 어말어미 ‘-사이에 ‘--’이 결합한 형태이다.)

()

나그내 시르믈 로미 잇

 

동산 태산이 어야 놉던고

 

걸요미  알리

 

장 혜면 아  로소

 

一切 부텨 시니 업스

선어말어미의 배열순서

선어말어미들의 배열순서는 더시니, 시니, 리로소등과 같이 객체높임 선어말어미과거시제 선어말어미주체높임 선어말어미현재시제 선어말어미선어말어미 ‘-/-’미래시제 선어말어미느낌 선어말어미상대높임 선어말어미으로 공식화할 수 있다.

어말어미

중세국어의 어말어미도 현대국어와 같이 종결어미와 비종결어미로 나눌 수 있고, 비종결어미는 다시 연결어미와 전성어미로, 연결어미는 대등적, 종속적, 보조적인 것으로, 전성어미는 명사형과 관형사형으로 나누어진다.

종결어미

평서형어미

라체의 평서형어미는 ‘-이다. 야쎠체는 ’, 쇼셔체는 ‘-이다. ‘-는 선어말어미 ‘--, --, --, --, --’ 및 서술격 조사 뒤에서는 ‘-로 교체된다. ‘-니라‘-보다 약간 보수성을 띠고 있다.

()

舍利弗須達이 조차가라

 

 眷屬이라 니라

 

敬天勤民더욱 구드시리

의문형어미

라체의 의문형어미는 ‘-이다. 야쎠체는 ‘-닛가’, 쇼셔체는 ‘-이다. ‘-는 현대국어의 의문형어미 ‘-의 소급형이고, 주어가 1인칭과 3인칭일 때 쓰인다. ‘-, ‘- 2인칭 의문형이고, ‘-, - 는 간접 의문형어미이다. 13인칭 의문형어미와 간접 의문형어미는 물음말과 사용될 때에(설명의문문) ‘-, -, -, - 로 바뀐다.

()

功德이 하 져그

 

하나빌 미드

 

네 엇뎨 안다

 

네 엇던 혜로 나

 

妙法을 닐오려

 

그 므리 엇더

명령형어미

라체의 명령형어미는 ‘-이다. 야쎠체는 ‘-어쎠’, 쇼셔체는 ‘-쇼셔이다.

()

어울워 디면 

 

내 보아져 

 

님금하 아쇼셔

청유형어미

라체의 청유형어미는 ‘-이다. 야쎠체는 문증되지 않으며, 쇼셔체는 ‘-이다.

()

일후므란 賢劫이라

 

淨土 가 나

상대높임법에 따른 종결어미의 체계

 

라체(아주낮춤)

야쎠체(예사높임)

쇼셔체(아주높임)

평서형

-

-

-

의문형

-

-닛가

-

명령형

-

-어쎠

-쇼셔

청유형

-

 

-

연결어미

대등적 연결어미 : -, -, -며셔, -, -건마, -거나 ……

종속적 연결어미 : -, -, -, -, -거든, -거늘, -고져, -……

보조적 연결어미 : -/, -/, -, -

전성어미

명사형 어미

명사형어미 ‘-은 음성모음으로 된 어간 아래에서는 ‘-으로 교체되고 서술격 조사 아래에서는 ‘-이 된다. ‘-는 그리 흔하지 않았고 ‘-‘-와 비슷한 기능을 한다.

()

날로 便安고져

 

工夫가지 

 

글 스와 갈 호니

 

내 겨지비라 가져 가 어려

관형사형 어미

관형사형 어미는 현대국어와 큰 차이가 없다.

()

불휘 기픈  매 아니 뮐

 

리예  넌즈시 치시니

 

니르고져 배 이셔도

관형사형 어미가 명사적으로 쓰이는 일이 간혹 있었다.

()

업슨 긴  오놋다

 

이여 이라 라 오소

불규칙 활용

어간이 바뀌는 것

불규칙 활용 : 받침을 가진 용언 가운데 이 모음 어미 앞에서 으로 바뀌는 것

불규칙 용언 : 긋다, 낫다(), 닛다, (), 웃다, 젓다, 줏다

규칙 용언 : 밧다(), 벗다, 빗다, 솟다, 싯다

짓고, , cf. 벗고, , 벗디

, , cf. 버서, 버스니

불규칙 활용 : 받침을 가진 용언 가운데 이 모음 어미 앞에서 으로 바뀌는 것

불규칙 용언 : 갓갑다, 곱다, 굽다(), 눕다, 돕다, 쉽다

규칙 용언 : 곱다(,), 굽다(), 넙다, 잡다, 좁다

덥고, 덥더니 cf. 잡고,

, cf. 자바,

불규칙 용언은 월인석보(1459)까지만 으로 교체되고 그 이후는 /로 바뀌었다.

불규칙 활용 : 받침을 가진 용언 가운데 모음 어미 앞에서 로 바뀌는 것

불규칙 용언 : 걷다, , , 횯다()

규칙 용언 : 갇다(), 굳다, 돋다, 믿다, 얻다

긷고, 긷더니 cf. 얻고져,

기러, 기르다 cf. 어드니라, 어더

개별 어휘의 어간이 바뀌는 것

자음 어미 앞에서는 시므-’였던 것이 모음 어미 앞에서는 -’으로 바뀌는 예

(심거, 심군, 심곰 cf. 시므, 시므고)

모음 어미 앞에서는 이시-’로 나타나지만 자음 어미 앞에서는 -’으로 바뀌는 예

(잇다, 잇고, 잇더니 cf. 이셔, 이쇼니, 이시며, 이시나)

모음 어미 앞에서는 -’였던 것이 로 된 어미와 결합하면 -’로 바뀌는 예

(니시거든, 니거늘 cf. , (보니), 녀실(씨라))

어미의 교체

계통의 어미 ‘-,--,-,-다가와 같은 어미가 서술격 조사와 선어말 어미 ‘--’ 뒤에서 계통의 어미 ‘-,--,--,-라가로 교체된다. ‘-,--,--,-라가는 서술격 조사와 선어말 어미 ‘--’ 뒤에서 실현되는 ‘-,--,--,-다가의 형태론적으로 제약된 이형태인 것이다.

(리러니, 이리로다, 리라, 리러니 cf. 외다, 오도다, , 더니)

계통의 어미 ‘-거늘,-등의 어미가 받침 및 모음 ‘i,y’, 서술격 조사, 선어말 어미 ‘--’ 뒤에서 후두유성마찰음 [ɦ]’으로 바뀌었다.

(알어늘, 외오, 히어늘 cf. 가거늘, 가고)

계통의 어미나 선어말 어미 ‘-/-’가 서술격 조사 뒤에서 계통의 어미로 바뀌었다. ‘이름, 이로/로 시작하는 어미가 로 바뀐 것이고, ‘이로라, 이론은 선어말 어미 ‘-/-’‘--’로 바뀐 것이다.

(이롬, 이로, 이로라, 이론 cf. 닷곰, 닷고, 닷고라, 닷곤)

타동사에 나타나는 /가 자동사와 오다()’ 뒤에서 ,로 바뀌었다.

(거늘, 거다 ; 오나, 오나다 cf. 바다, 바다다 ; 머거늘, 머거다)

현대 국어의 불규칙 활용의 소급형으로 양성 모음으로 끝난 어간에 붙는 연결어미 ‘-,-아셔-아도가 동사 -’ 뒤에서 ‘-,-야셔,-야도로 바뀜을 보인 것이다. ‘,파셔,파도,아셔,아도에서 가 탈락된 것인데 이것과 비교하면 ,하셔,하도가 되어야 할 것이나 로 교체되었다.

(, 야셔, 야도 cf. , 파셔, 파도)

문장의 짜임새

문장 성분

관형어의 특수성

의미상의 주어가 관형어로 나타남

迦葉信受호믈 讚歎시니라 <월인석보 13,57>

관형격 조사 앞에서 유정 명사의 모음은 탈락되는 것이 원칙이나, 절의 주어일 때에는 가 유지될 수 있다.

諸子아비의 便安히 안  알오 <법화경 언해 2,138>

처소의 부사격과 관형격 이 결합되어 체언을 관형어가 되게 함

前生앳 이릐 젼 因錄이라 <월인석보 1,11>

관형사형의 나열 (현대 국어에서는 대등적 연결 어미 ‘-로 연결)

늘근  미 잇<월인석보 13,23>

부사의 특수성

낙착점 처소의 부사가 동작이 이루어지는 처소 표시

셤 안해 자<용비어천가 67>

주격 조사와 형태가 같은 가 동등 비교의 부사격으로 쓰임

海東 六龍古聖同符시니 <용비어천가 1>

독립어의 특수성

상대방의 신분이 낮을 때

文殊아 아라라 <석보상절 13,26>

상대방의 신분이 높을 때

님금하 아쇼셔 <용비어천가 125>

겹문장의 짜임새

안은 문장

명사절로 안김 (-/-, -)

부톄 授記샤미 글 쑤미 <월인석보 8,96>

내 겨지비라 가져가디 어려 <월인석보 1,13>

서술절로 안김

大愛道 디 하시며 <월인석보 10,19>

관형절로 안김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용비어천가 2>

부사절로 안김

돈 업시 帝里예 살오 <두시언해 20,37>

직접 인용 <)

比丘ㅣ … 닐오내 너희 업시우디 아니노니 너희히 다 부톄 외리라더니 <석보상절 19,37>

간접 인용 (대명사와 상대 높임법으로 분간)

如來 녜 우리리라시니<월인석보 13,32>

이어진 문장

대등하게 이어진 문장 (-(<-), -)

리오 孫子<월인석보 1,7>

玉女虛空애셔 온가짓 풍류 며 굴근 강이 고 흐르디 아니<월인석보 2,32>

종속적으로 이어진 문장 (-, -)

이스른 오조차  이 녯  니라 <두시언해 8,36>

불휘 기픈 남 매 아니 뮐곶 됴코 여름 하<용비어천가 2>

연결 어미가 주절의 문장 종결법에 제약을 줌

연결 어미 ‘-가 선어말 어미 ‘--’를 앞세우면 뒷 절에 의문형이 일치

아래 가신 八婇女도 니거시니 므스기 <월인석보 8,93>

연결 어미 ‘--’가 앞절에 쓰이면 앞에 물음말이 쓰이고, 뒷 절은 의문형으로 일치

니미 엇던 사미시관쥬벼느로 이 여르시<월인석보 23,84>

연결 어미 ‘-이 오면, 뒷 절에 의문형

야 가 법 듣게 혼 공덕도 이러말다修行호미<월인석보 17,53~54>

연결 어미 ‘-가 오면, 뒷 절에 부정 표현

比丘디녀 잇거든 比丘尼正法호디업시우믈 말 씨오 <월인석보 10,20>

이야기

중세 국어에는 이야기로 설명해야 할 현상이 현대 국어보다 더 많다.

큰 문장의 짜임새

 

나랏 말中國에 달아 文字와로 서르 아니 이런 젼로 어린 百姓이 니르고져 배 이셔도 내 제 들 시러 펴디 몯 노미 하니라 <훈민정음 언해>

 

위의 문장이 현대 국어라면 두 문장으로 끊어질 수 있는 큰 문장이다. , ‘아니는 뒤에 지시 표현이 따르기 때문에 아니리라와 같은 종결형으로 바꿀 수 있다. 중세 국어에서는 이런 문장이 매우 많다. 경우에 따라서는 한 문장이 3,4장에 걸쳐 이어지는 일도 있다. 그 속에는 대화가 여러 개 끼여드는 일도 많다. 이런 글들은 문장이라기보다 이야기라고 하는 편이 좋다.

성분의 생략

중세 국어의 시가 작품 가운데에는 배경 설화를 고려하지 않고서 주어나 목적어 등의 생략된 성분을 가려 내기 어려운 것이 많다.

 

 軍馬이길  믈리조치샤 모딘 도 믈리시니. <용가 35>

 

위의 노래만 가지고는 주어를 찾을 수 없다. 배경 설화를 고려하면 이길의 주어는 원나라 장수 나하추이고, 뒤의 높임의 활용형들은 그 주어가 이성계이다.

중세 국어도 대화에서 주어가 생략되는 일이 많다.

 

구이 : 므스게 시리?

선혜 : 부텻긔 받리라 <월인석보 1, 10>

 

석가모니의 전신인 선혜와 그의 부인 야수의 전신인 구이가 주고받는 말이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를 참고하면, ‘그듸가 각각 나타나야 한다.

보조사와 보조동사의 쓰임새

중세 국어의 보조사도 현대 국어에 미루어 체계를 세울 수 있다.

 

(단독), (특수), (지적), (여운), /(의문)

 

이들은 현대 국어에는 보이지 않는 보조사이다. 중섹 국어의 보조사도 전제된 생각이나 함축된 의미와 관련시켜 설명할 수 있다.

 

뒤헤 모딘 도 어드길헤 업던 번게를 하기시니 <용가 30>

와란 녀긔 브텨쓰라 <훈민정음 언해>

늘거 가매 외 잇도다 <두시언해 14, 14>

각시 내 얻니논 매 맛도다 <석보상절 6, 14>

 

위의 문장에서 보조사 /이 대조의 의미를, ‘이 지적의 의미를, ‘은 단독의 의미를 는 특수의 의미를 각각 표시한다.

지시어의 기능

중세 국어의 지시어도 현대 국어와 비슷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야 어엿비 너겨 <훈민정음 언해> - 전술 언급의 기능

 

위의 문장에서 는 앞선 문장의 내용, 곧 백성들이 마음대로 자기들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사실을 가리킨다.

* 지시어의 체계

대명사/관형사

대명사

형용사

부사

, ,

이러

이리

, ,

그러

그리

어긔, ,

뎌러

뎌리

의미의 변천

의미의 확대

의미가 변화하여 그 적용되는 영역이 원래 영역보다 넓어지게 된 것이 의미의 확대인데, 그 예는 무수히 많다. 단어가 다의성을 가지게 되는 것은 대개 의미의 확대에 해당한다. ‘다리()’가 애초에는 사람이나 짐승의 다리만을 가리키는 것이었을 텐데 책상이나 지게의 다리 같은 무생물에까지 적용된 것이라든가, ‘먹다라는 동사가 음식물을 섭취하는 동작만을 가리켰을 것인데 욕을 먹다, 마음을 먹다, 겁을 먹다등에까지 적용된 것도 의미가 확대된 결과이다.

좀더 구체적인 것으로는 영감(令監)’같은 말을 들 수가 있다. 이 말은 옛날에는 당상관(정삼품 이상 종이품)에 해당하는 벼슬을 지낸 사람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지금은 남자 노인을 가리키게 되었다. 오늘날 아무에게나 사장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예이다.

세수(洗手)하다는 말도 원래는 손만을 씻는 동작을 가리키는 뜻이었으나, 얼굴을 씻는 행위까지 포함하게 되어 의미가 확대된 것이다. ‘방석(方席)’은 원래 네모난 모양의 깔개만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둥근 것까지도 가리키게 되어 의미가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라는 말도 원래는 열매의 씨를 보호하는 속껍데기를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사물의 중심이 되는 알맹이라든가, ‘원자의 핵등으로 확대되어 사용되고 있다.

의미의 축소

앞의 경우와는 반대로, 의미가 변화하되 그 적용되는 영역이 원래 영역보다 좁아지게 되면 의미의 축소가 일어난다. 그 대표적인 예로는 짐승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은 원래 (衆生)’에서 온 말로서, 유정물 전체를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던 것이지만 지금은 인간을 제외한 동물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축소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예로는 , 계집같은 말이 있다. 이 말들은 원래 일반적인 남자,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던 것인데, 지금은 그 사용 범위가 축소되어 욕하는 뜻으로만 사용되었다.

의미의 이동

한편, 의미의 확대도 아니고 축소도 아닌 단순한 이동으로 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가령, ‘어리다라는 말은 중세에는 어리석다는 뜻이었는데 나이가 어리다는 뜻으로 의미가 이동한 것이다. , ‘싁싁하다는 말은 원래 엄하다는 뜻이었는데 지금은 씩씩하다는 뜻으로 바뀌었다. 이것도 의미의 이동에 해당한다. 이러한 예로는 어엿브다같은 말이 있다.

현대 국어에 이르는 동안 원래와는 완전히 반대의 뜻을 가지게 된 단어도 있다. ‘는 원래 명사 과 형용사 가 합성된 용언이었다. ‘값어치의 뜻을, ‘값이 나가다의 뜻을 가졌었는데, 후대에 비싸다는 하나의 단어로서 원래의 뜻을 그대로 유지한 반면, ‘싸다는 그 반대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예로는 엉터리에누리를 더 들 수 있다. ‘엉터리는 원래 대강 갖추어진 틀을 뜻했고, ‘에누리는 원래 값을 더 얹어서 부르는 일을 뜻했다.

한편, 의미의 이동이 일어난 흥미로운 예로는 주착없다, 엉터리없다같은 말도 있다. 이 말들은 원래 부정 표현이 개입되어 있어 주착이다, 엉터리이다등과 같은 긍정 표현은 반대의 의미로 사용되어야 할 것이나, 실제로는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는 부정 표현과 긍정 표현 사이에 의미의 이동이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흔히 우연하게라고 말해야 할 자리에 사용되고 있는 우연치 않게와 같은 경우도 의미의 이동이 나타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예라 할 수 있다.

어떤 단어의 의미 변화 과정을 잘 조사해 보면, 의미의 확대와 축소가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가령, ‘수술(手術)’과 같은 단어를 보면 원래 손으로 하는 기술이나 재주정도의 뜻이었지만, 의미가 축소되어 의학 용어로 사용되다가, 여기서 다시 고치기 어려운 사회 병리 현상이나 폐단을 고친다는 뜻으로 확대 사용되기도 한다.

근대 국어

음운 변화

자음의 변화

경음화

국어 어두 파찰마찰음인 ,,,,16세기부터 경음화로 동요되기 시작하여 17세기말부터는 거의 경음화가 완성되어 18세기 이후 근대 국어 시기에는 ,,,,으로 계 된소리 표기로 사용되었다. 이는 또 19세기 이후인 현대 국어 시기에 와서는 ,,,,의 각자병서로 그 표기가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 중세 국어 문헌에서 복잡하게 쓰였던 어두 자음군도 16세기부터 동요되어 경음화되기 시작하여 그 표기가 계로 합류되면서 그 범위가 확대되어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경음화되어 모두 ,,,,으로 표기되다가 19세기 이후부터 현대 국어 시기에 와서는 모두 각자병서 표기체계로 경음표기는 바뀌었다. 결국 근대 국어 시기는 우리 국어의 경음화 현상이 그 자리매김을 완전히 확립하여 통일된 표기체계로 사용된 시기이다.

격음화

국어 어두 격음 음소는 고대 후기 국어 시기에 독립음소로 형성되어 15-17세기에 들어 어두, 어중에서 격음화 현상이 상당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 (), ()’ 등과 같은 예들은 15세기에서도 아직 어두 격음화가 되지 않은 것들이다. 이들이 격음으로 나타난 시기는 17세기 이후에서이다. 사이을 가진 말들이 다음에 오는 자음과 연결되면서 격음화가 일어났는데 근대 국어 시기에 와서는 어중이나 어두 평음에서도 격음화는 완성되었다.

,의 구개음화

근대국어에서 음운변화의 가장 현저한 예는 口蓋音化(palatalization)였다. 구개음화란 i, y앞에서 ㄷ ㅌ ㄸ이나 ㄱ ㅋ ㄲㅈ ㅊ ㅉ으로 으로 변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이런 변화는 남부방언에서 일어나 북상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말의 구개음화는 倭語類解(18세기 초), 同文類解(1748)에 많이 나타난다.(: -[蒸了]>, 딕희다[守了]>직히다, 고디식[老實]>고지식, 텨로>좀쳐로 등) 이러한 사실로 보아 구개음화는 17세기와 18세기의 교체기에 완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이와 같은 구개음화로 중세국어에서 대립을 이루었던 :, :, :, :, ::, :, :, :, :등이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에 , 등에서 >로 변화하는 과정을 거쳐 다시 이들 결합이 나타나게 되었다.(: 견듸->견디-(), 어듸>어디(何處), >>(), 느틔나모>느티나모>느티나무)

구개음화는 파찰음 ㅈ ㅊ등의 구개음화를 전제로 한다. ‘ㅈ ㅊ자체가 구개음으로 변한 뒤에야 비로소 ㄷ ㅌ등이 i, y 앞에서 구개음 ㅈ ㅊ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국어의 ㅈ ㅊ등은 본래 치음([ts][tsh])이었는데, 이들이 i, y 앞에서 구개음으로 변하였다. 17세기 후반에는 ㅈ ㅊ등은 i, y 앞에서는 구개음으로, 다른 모음 앞에서는 중세국어에서처럼 치음으로 발음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다가 ㅈ ㅊ자체가 완전히 구개음으로 정착하게 되어 , , , , , , ’, ‘, , , , , , 등의 대립이 중화되었다. 따라서 중세국어의 [] : (), [] : [], [] : []’ 등의 대립이 없어지게 되었다. 또한, 어두에 있어서의 i, y에 선행한 어두의 의 탈락은 구개음화와 관련된 현상이다. ‘탈락의 시기는 구개음화가 17세기와 18세기의 교체기에 일어난 것에 비하여 다소 늦은 18세기 후반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때의 문헌(十九史略諺解(1772),倫音(1782, 1783))에서 어두의 로 표기된 예가 나타나며(: 님금>임금, 니름>일음이라, 니르히>이르히 등) ‘의 탈락은 19세기에 이르면 일반적인 현상이어서 이러한 변화가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개음화는 중세 국어 시기에 일어나기 시작하여 근대 국어 시기에 매우 활발하게 진행되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현대 국어에까지 이어져 국어 음절 구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하겠다.

모음의 변화

의 소멸

의 소실은 두 단계로 나뉘어 나타나는데 이미 16세기에 첫 단계의 소실인 비어두음절에서 주로 >의 변화를 겪었고 18세기 후반에 와서 둘째 단계인 어두음절에서 주로 >의 변화를 겪고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aj/,/əj/,/oj/,/uj/의 단모음화

의 소실로 제1음절의 이중모음 로 변했는데, 그 얼마 뒤에 ’[ai], ‘’[əi]는 각각 [ɛ][e]로 단모음화하였다. 이 단모음화를 의 소실 이후로 보는 이유는 제1음절의 와 마찬가지로 [ɛ]로 변한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또한 이 단모음화가 일어난 증거로는 움라우트(umlaut) 현상을 들 수 있다. (: 앗기-[]>, -[]>리고, 머기-[]>메긴 등) 뒷음절의 i의 동화로 앞음절의 aɛ, əe로 변화한 이 현상은 대체로 18세기와 19세기의 교체기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이중모음의 단모음화로 ɛe가 확립된 뒤에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중모음 ㅐ ㅔ의 단모음화는 18세기 후반에 일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에는 아직 ㅚ ㅟ의 단모음화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원순모음화

근대국어에서 일어난 주목할 만한 모음변화의 하나가 脣音 ㅁ ㅂ ㅍ 아래에서 모음 로 변하는 원순모음화이다. 이 변화로 중세국어에서 서로 대립을 이루고 있었던 , , , , , , 등의 대립이 없어지게 되었다. 원순모음화는 17세기 후반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이와 같은 대립에 의하여 각각 다른 어휘로 나뉘어졌던 단어들이 외형상으로는 동음이의어를 이루게 되었다. (: []>, []>, 븟다>붓다, >, >)

모음 역행동화

모음 역행동화는 18세기 이후 근대 국어 시기에 활발히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전설모음화

처음 ,,아래에서 중설모음인 가 전설모음인 로 변하는 현상을 전설모음화라 한다. 이러한 현상은 근대 국어 시기인 19세기에 들어오면서 더욱 활발하게 나타났다. 그리하여 현대 국어에서는 한자어에서도 이 변화를 입은 예가 많다.

모음조화 파괴

모음조화 현상은 용비어천가의 표기에서는 가장 규칙적이고, 그 후의 문헌에서부터는 차츰 파괴되기 시작함을 볼 수 있으니, 처음에는 형태부(조사, 어미)의 첫머리의 모음교체에 나타나는 조화현상이 파괴되기 시작한 것인데, 이러한 파괴작용은 후기에 이를수록 더욱 심하여져서 나중에는 나모>나무와 같이 형태 내부의 조화작용마저 파괴되기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 파괴작용은 어느 한 시기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조선조 5백년 동안을 통해서 서서히 일어난 것으로 현대어에 있어서도 이 모음조화 현상은 일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이 급격히 파괴되기 시작한 시기는 근대 국어 시기에 와서이다.

치음+/j/ 중모음의 단모음화

,,에 이어 나는 /j/ 중모음은 다음에서만 약간의 명맥을 유지하고 다른 경우에는 모두 단모음으로 변하여, 이 자리에서는 단모음과 /j/ 중모음과는 변별적으로 가능할 수 없게 되는데, 이 치음 다음의 // 중모음의 단모음화는 대체로 18세기말에서 19세기 초기에 걸쳐 일어난 사실로 보인다.

성조의 소멸

국어의 성조는 15세기 문헌에서는 엄격하게 지켜졌으나, 16세기에 들어 혼란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성조의 변별력은 16세기 중엽으로 오면서 더욱 약화되고 후반에 들어서는 그 표기체계가 극도로 문란해 지면서 변별 기능을 잃게 되었다. 유희의 언문지에서 사성의 불필요성을 주장한 기록을 보면 17세기에는 거의 없어지고, 18세기말 이후에는 국어의 성조는 장단으로 변하였다.

* 성조의 변천

성조는 소리의 높이를 통해 단어의 뜻을 분별하는 말소리의 특질이다.

중세 국어에서 성조는 방점으로 표시했는데, 평성은 점이 없으며, 거성은 한 점, 상성은 두 점으로 표시되었다. 평성은 낮은 소리이고, 거성은 높은 소리였다. 그리고 상성은 처음은 낮고 나중은 높은 소리였다.

성조는 16세기 중엽 이후 흔들리기 시작하다가 16세기 말엽 문헌에서는 성조가 표시되지 않게 되었다. 성조는 적어도 16세기 후반에 소멸하였는데, 평성과 거성은 짧은 소리로, 상성은 긴 소리로 바뀌어, 소리의 높이가 소리의 길이로 바뀌어 현대 국어로 이어졌다. 그러나 방언에 따라서는 성조가 완전히 소멸하지 않아서 현대 국어의 경상도 방언이나 함경도 방언의 일부에 아직 남아 있다.

음운체계

자음체계

근대국어의 자음체계는 이미 17세기에 다음과 같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 음

유기음

 

 

된소리

비 음

 

 

 

유 음

 

 

 

 

 

(다만 의 된소리는 17세기에만 존재)

 

모음체계

모음체계는 의 소실과 ㅐ ㅔ의 단모음화를 거쳐 19세기 초기에 다음과 같은 8모음체계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i

 

ɨ

 

u

e

 

ə

 

o

ɛ

 

a

 

 

現代國語

子音體系

현대국어의 자음체계는 구개음화가 일어난 뒤인 1819세기의 자음체계와 대체로 다름이 없는 듯하며 몇 가지 특징을 들면 다음과 같다.

파열음, 파찰음에 평음 ㅂ ㄷ ㅈ ㄱ’, 유기음 ㅍ ㅌ ㅊ ㅋ’, 된소리 ㅃ ㄸ ㅉ ㄲ3계열이 있지만 마찰음에는 평음 과 된소리 만이 있다. 파열음, 파찰음의 평음은 유성적 환경에서 유성음으로 실현되지만 마찰음의 평음 은 유성적 환경에서도 유성화하지 않고 무성음으로 실현된다.

비음 과 유음 은 어두에 오지 않으며 비음 도 어두에서 i, y 앞에 오지 않는다. (예외 : 냠냠, 녀석, 라디오)

모든 자음은 음절말 또는 어말에서 반드시 未破音으로 실현된다. 그리하여 파열음 ㄷ ㅌ’, 파찰음 ㅈ ㅊ과 마찰음 ㅅ ㅆ은 한결같이 [t]로 실현되어 모두 中和된다.

유음 은 모음 사이에서는 [r]로 실현되며, 음절말 또는 어말에서는 [l]로 실현되는데 이 [l]未破化의 결과이다.

현대국어에서는 어두자음군이 허용되지 않는다.

 

母音體系

현대국어의 모음체계는 전설 원순모음을 가진 점이 근대국어의 모음체계와 다르다. 현재 서울말에서 , 의 발음은 세대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 ‘’[]와 같이 어두에 올 때는 [we], [wi]로 발음되나, 자음 뒤, 특히 치음이나 구개음 뒤 (: , , , 쥐 등)에서는 [], []로 발음되고 있다. 이들 전설 원순모음을 인정한다면, 현대국어의 모음체계는 다음과 같다.

i

ɨ

u

e

ə

o

ɛ

 

a

 

현대국어의 모음체계는 에 해당하는 소리가 [ə][ʌ] 두 가지로 발음되며 전설모음 ’[ɛ]’[e]의 구별이 흐려져 가고 있다. 또한 ɨi로 해석하여 wa, ya 등과 같은 상향 이중모음으로 보기도 하고, ɨy로 해석하여 중세국어의 하향 이중모음의 최후의 잔재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실제 발음에서는 그 어느 것도 존재하지 않고 어두에서는 [ɨ](또는 [i]), 비어두에서는 [i]로 발음되며, 속격어미에서는 [e]로 발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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