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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제3의 물결

제4장 규범의 내용

by FraisGout 2020. 7. 27.

 어떠한 문명이든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 그 문명 고유의 숨겨진 규범이 있다. 즉 그 
문명의 모든 활동의 저변에 흐르고 있는 일련의 법칙 혹은 원칙이 있다. 그것은 갖가
지 사례에서 모습을 나타내는 그 문명의 기본적인 구도와 같은 것이다. 
산업주의가 지구상을 휩쓸면서 그때까지는 표면에 나타나지 않았던 이 문명 특유의 기
본적 구도가 차츰 밝혀지게 되었다. 그것은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가진 6개의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6개 원칙이 오늘날까지 수백만이라는 인간의 행동을 규제해 왔다. 
이 원칙은 앞 장에서 서술한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파생된 것이며 우리 생활에서 볼
 수 있는 성, 스포츠, 노동, 전쟁 등 인간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늘날 학계나 기업계 또는 정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치열한 투쟁이 사실은 이 6개 원
칙을 둘러싼 싸움이다. 제2의 물결의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이 원칙들을 적용하여 자기
들의 문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 원칙을 고수하려 하고, 제3의 물결의 사람들은 그것
에 도전하여 원칙 자체에 공격을 가하고 있다. 그것은 이 책에서 서서히 밝혀지게 될 
것이다.
 
 표준화(standardization)
 제2의 물결을 뒷받침하고 있는 이들 원칙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표준화'이
다. 산업사회가 무수한 규격품을 생산하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수
행하는 역할이 커지면서 단순히 표준화되는 것은 코카콜라병, 백열전구, 자동차의 변
속장치 같은 종류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일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
지 않았다. 인간은 표준화의 원칙을 그 밖의 수많은 사물에 적용한 것이다. 이 사실의
 중요성을 최초로 이해한 사람은 시어도어 베일이었다. 
그는 금세기 초에 미국 전신전화회사(AT & T)를 설립하여 대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
다.
 1860 년대 말 철도우편 사무원으로 일하던 베일은 우편물의 수신인이 동일한 경우라
도 배달경로는 반드시 같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우편량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
지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곤 했는데 수주간이 걸리는 경우도 있으며 몇 개월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배달경로의 표준화를 도입하여 수신인이 동일한 편지는 
모두 동일한 경로로 배달되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써 우편사업의 혁명을 이룩했다. 
그뒤 그는 AT & T사를 창립했을 무렵에 이번에는 미국내의 가정용 전화기를 모두 흑색
 규격품으로 통일하여 버렸다.
 베일은 전화기를 비롯하여 모든 부품을 표준화했을 뿐 아니라 AT & T사의 업무절차, 
관리체계까지 표준화했다. 그는 1908 년에 몇몇의 중소전화회사들을 흡수합병했는데 
그 정당성을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표준화가 진행된 공장을 중앙에서 관리
함으로써 교환업무, 법률관계업무분야에서 경비를 절감할 수 있고 아울러 전선, 전선
관, 기타 시설의 건설비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교환업무와 요금계산이 단일
화되는 데서 파생되는 경비의 절감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제2의 물결세력에
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hardware)에 발맞추어 업무 절차라든가 관리업무 등의
 소프트웨어(software)를 모두 표준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이해하고 있었다.
 베일 이외에도 산업사회를 육성한 '위대한 표준화 추진자'는 수없이 많다. 또 하나의
 예는 미국의 발명가 프레데릭 윈슬로 테일러이다. 기계 수리공 출신의 개혁운동가인 
그는 노동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종사하는 일의 절차를 표준화함으로써 노동을 '과학적
'으로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20세기 초에 테일러는 각 작업을 수행하는 데는
 한 가지 최선의 방법이 있고 그 일을 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도구는 단 하나밖에 없
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의 순서나 도구는 그것에 맞추어 표준화해야 하며 또 그 일을 
완성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에 대해서도 표준화된 작업시간을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의 주장이었다.
 이러한 철학으로 이론무장을 한 테일러는 세계의 지도적인 경영관리의 거물이 되었다
. 그는 그때부터 프로이트, 프랭클린 등과 나란히 존경을 받았다. 
'능률전문가', '성과급제도', '초고능률지도자'라는 말과 더불어 테일러주의를 예찬한
 것은 노동자의 생산성을 마지막까지 짜내는 데 열의를 보이던 당시의 자본주의 사회
의 경영자들뿐만은 아니었다. 공산주의자들도 똑같이 테일러에 열광했던 것이다. 레닌
은 그의 방법을 사회주의적 생산에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러시아의 산업화를 제일의 목표로 공산주의자가 된 사람이지만 표준화의 열성
스런 신봉자라는 점에서는 남못지 않았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의 표준화뿐만 아니라 고용절차까지도 점차 표준화가 진행
되고 있었다. 특히 공무원의 경우 표준화된 시험에 의해서 일에 적합치 않다고 여겨지
는 사람을 확인하고 배제했다. 모든 산업을 통하여 임금기준이 결정되고 임금 이외의 
복리후생, 점심시간, 휴일, 불만처리절차 등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표준화가 진행되
었다. 젊은층을 노동시장으로 내보내기 위해 교육관계자는 표준화된 교과과정(curricu
lum)을 세우게 되었다. 터먼이나 비네와 같은 사람들은 표준화된 지능 테스트 방법을 
고안했다. 학교의 채점법, 입학시험 방법, 졸업자격에 관한 규정 등도 똑같이 표준화
되었다. OX식 시험도 완전히 일반화되었다.
 한편 대중매체도 표준화된 이미지를 보급시켰다. 수많은 사람들이 같은 광고, 같은 
뉴스, 같은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다. 중앙정부에 의한 소수민족의 언어탄압에 매스컴
의 영향도 가세되어 웨일스어나 알사스어와 같은 한 지역의 사투리가 그의 사라지거나
 완전히 없어지기도 했다. 영어, 프랑스어라는 표준어가 비표준어를 밀어내 버렸다. 
이 점은 러시아어도 마찬가지였다. 전에는 여러가지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을 지역
이 어디를 가나 같은 주유소, 광고판, 흔해빠진 주택 따위밖에 볼 수 없게 되고 지방
색이 완전히 상실되어 버렸다. '표준화'의 원칙은 일상생활의 모든 면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좀더 상세히 이 점을 살펴보자. 산업문명은 중량이나 길이 등 도량형의 표준화를 필
요로 했다. 산업시대 이전의 유럽에서는 도량형이 제각기 달랐다. 프랑스의 산업주의 
시대가 개막된 대혁명 직후 각지에서 제각기 달랐던 도량형 대신에 새로이 미터법과 
태양력을 채택하는 법률이 공포된 것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에 의
해 통일된 도량형제도가 거의 전세계에 보급된 것이다.
 또 대량생산방식이 기계, 제품, 작업공저의 표준화를 필요로 하게 되자 확장을 계속
하던 시장도 거기에 대응하여 화폐의 표준화와 가격의 표준화까지 요구하기에 이르렀
다. 역사적으로 보면 화폐는 국왕은 물론이고 은행이나 개인에 의해서도 발행되고 있
었다. 미국에서는 지방에 따라 19세기에 와서도 개인이 발행한 화폐가 유통되고 있었
으며 캐나다에서는 1935 년까지도 그러한 상태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된 국가들은 차차 정부 이외의 화폐발행을 금지시켜 단일화된 표준통화
가 국내에 유통되도록 힘썼다.
 더구나 산업화된 국가들에서도 19세기 이전은 팔 사람과 살 사람이 거래 때마다 마치
 고대 이집트 카이로의 바자(bazaar)처럼 가격을 둘러싸고 흥정하는 것이 거의 보통이
었다. 1825 년의 일이다. A. T. 스튜어트라는 북아일랜드에서 이민 온 청년이 뉴욕에 
포목상을 내고 상품에 가격을 표시하여 고객과 경쟁업자들을 놀라게 했다. 이 '정가상
법'은 가격의 표준화뿐 아니라 이 상법 덕택에 스튜어트는 당시의 거상이 되었다. 동
시에 그의 방식은 대량유통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던 주요한 장애 하나를 제거하게 된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선구적인 사상가들은 여러가지 사고방식의 차이는 있었으나 표준화가 
능률적이라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되고 있었다. 인간생활의 여러 부문에서 제2의 물
결은 가차없이 표준화의 원칙을 적용했기 때문에 갖가지 특질과 차이점이 그 과정에서
 획일화되고 있었다.
 
 전문화(specialization)
 제2의 물결사회에 공통적으로 흐르고 있는 또하나의 대원칙은 '전문화'이다. 제2의 
물결이 진행됨에 따라 언어, 여가, 생활양식의 분야에서 다양성이 사라질수록 노동의 
영역에서는 다양성이 더욱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분업을 추진함으로써 제2의 물결은 
계절노동자와 같은 무엇이나 할 수 있는 농민을 대신해서 한정된 분야에서만 통용되는
 전문가와 테일러의 방식대로 오직 한 가지 알만을 날마다 되풀이하는 노동자를 등장
시킨 것이다.
 1720 년 어느 영국인에 의해서 '동인도 무역의 권장'이라는 보고서가 공표되었다. 
거기에는 이미 분업에 의해서 '노동시간과 노동손실의 경감'이 가능해진다고 지적되어
 있다. 이어 1776 년에는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을 공간하고 그는 그 서두에 자신을 
가지고 어렇게 서술했다. '생산력이 가장 큰 진보는 분업이 가져다 준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스미스는 이제 고전이 그의 저서에서 핀의 제조과정을 설명했다. 그의 서술에 따르면
 자기 혼자서 필요한 모든 작업공정을 해내는 옛날식의 직공이 하루에 만드는 핀의 양
은 고작해야 한 줌, 수로 따져 20개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스미
스는 자기가 전에 방문한 일이 있는 '공장'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거기서
는 하나의 핀을 만드는 데에 필요한 공정을 18개 부문으로 나누고 10 명의 전문직공을
 고용했다. 오직 한 가지 작업을 맡은 직공도 있으며 두세 작업을 담당하는 직공도 있
다. 이 방식에 따르면 하루에 10 명이 4 만 8000개, 1인당 4800개의 핀을 제조할 수 
있다."
 19세기경에는 더욱 많은 작업이 공장으로 옮겨지게 되고 이에 따라 핀 제조의 사례가
 점차 대규모로 확대되기에 이르렀다. 더욱이 전문화에 의한 인건비도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산업주의에 대한 비판자들의 논점은 고돌로 전문화된 반복노동이 노동자의 인
간성을 박탈했다는 것이었다.
 1908 년 헨리 포드가 포드 T형의 자동차제조를 개시했을 때에 1대의 자동차를 완성하
는 공정은 18개 공정이 아닌 7882개 공정으로 나뉘어 있었다. 뒷날 자서전에서 포드는
 이 7882개 공정으로 분할한 작업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주석을 달고 있다. "전공정 
중에서 949개 공정은 '신체가 튼튼한 숙련공, 육체적으로 장애가 없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 3338개의 공정은 '여성이나 어느 정도의 연령에 도달한 어린이'라도 작업이 가
능하다." 그리고 포드의 냉정한 분석은 다시 계속된다. 
"670개 공정는 두 발이 없는 노동자라도 충분하여 2637개 공정은 다리가 하나뿐인 노
동자라도 할 수 있다. 두 팔이 없는 직공이라도 할 수 있는 공정이 둘이 있고 715개 
공정은 팔이 하나뿐인 직공이라도 된다. 장님 직공 10 명으로 작업할 수 있는 공정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전문화된 노동은 종합적인 환 인간을 필요로 하지 않고 그 사람
의 한 부분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포드의 방법은 극단적인 전문화가 인간을 짐승처
럼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는 좋은 사례였다.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전문화를 자본주의의 고유한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
었으나 실제로는 사회주의 체제하의 산업사회에도 분명히 나타났다. 왜냐하면 자본주
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모든 제2의 물결 사회에 공통적으로 나타난 노동의 극단적
인 전문화는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철저한 전문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오늘날의 소련, 폴란드, 동독, 헝가리와 
같은 나라들의 공장도 미국이나 일본의 그것과 전혀 다른 데가 없다. 미국 노동성의 
통계에 따르면 1960 년 현재 분류할 수 있는 직종은 2 만종에 이르고 있다.
 더욱이 자본주의 산업국이나 사회주의 산업국에서도 전문직업화의 풍조가 고조되었다
. 전문화된 노동에 종사하는 집단이 어느 분야의 난해한 지식을 독점하고 신참자를 배
제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낼 때마다 그들은 정해 놓고 자기들의 일을 전문적 직업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2의 물결이 밀어닥침과 동시에 지식의 소유자와 그 지식을 구하는 
고객 사이에 시장이 개입하게 되었다. 전자가 생산자이며 후자가 소비자라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제2의 물결사회는 건강이라는 것도 자기자신의 지식이나 주의의 결과로 
누리게 되는 것(이것은 자체소비의 생산이지만)이라기 보다는 의사나 건강증진을 관장
하는 의료관료기구라 할 수 있는 것에 의해 제공되는 하나의 제품으로 간주하는 사고
방식이 지배하게 되었다. 교육도 결국 학교라는 시설에서 교사라는 생산자에 의해 '생
산'되고 학생이라는 소비자에 의해 '소비'되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었다.
 도선과의 사서에서 세일즈맨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직업집단이 자기들은 전문직
업인으로 불릴 자격이 있고 자기들의 작업규준, 가격, 신규참가자의 가입조건을 결정
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게 되었다. 미국 연방무역위원회 의장 마이클 퍼처크는 "현대
문화는 이제 우리 일반 시민을 '고객'이라 부르고 우리의 필요를 알려주는 전문직업인
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정치적인 선동행위까지도 하나의 전문직업으로 생각되었다. 
레닌이 대중은 전문가의 원조없이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고 주장한 것도 이런 의미이
다. 레닌에 따르면 '필요한 것은, 수가 한정되어 있던 직업적 혁명가를 대중으로까지 
확대하여 그들을 직업적 혁명가로 탈바꿈시키고 그들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제2의 물결에 의해 자본가, 경영자, 교육자, 성직자 또는 정치가들에게 공통의 정신
상태를 조장함으로써 분업을 더욱 더 세분화하고자 하는 충동을 일으켰다. 1851 년 세
계대박람회가 크리스탈궁(Crystal Palace)에서 개최되었을 때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인
 앨버트공은 '전문화야말로 문명을 추진하는 힘이다.'라고 말했는데 그 시대의 사람들
은 누구 한 사람 그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 없었다. 표준화와 전문화는 평행으로 진행
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화(synchronization)
 생산과 소비 사이의 균열이 커짐에 따라 제2의 물결의 인간들은 시간에 대한 태도에
도 변화를 가져왔다. 시장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자유경제이든 계획경제이든 시간은 
돈으로 환산된다. 값비싼 기계는 쉬게 할 수 없고 그 기계의 리듬에 따라 작동한다. 
이렇게 해서 산업문명의 제3원칙인 '동시화'가 발생한다.
 초기의 사회들에서도 노동에 있어 시간은 중요한 문제였다. 예를 들어 용사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전원이 일제히 작업에 임할 필요가 있었다. 어부가 배를 젓거나 그물
을 잡아당길 때도 같았다. 오래 전에 조지톰슨은 노동의 필요에 의해 얼마나 많은 노
래가 생겼는가를 밝혔다. 배젓는 사람에게 있어서 시간은 '오우^6,3^오프(O-op)'라는 
단순한 두 음절의 소리에 의해서 구획되고 있었다. 두 음절째의 '오프'는 준비시간을 
의미하고 있었다. 배를 끌어당기는 작업은 노를 젓는 일보다도 중노동이 의미하고 있
었다. 그래서 톰슨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추가하고 있다. "힘을 내는 방법을 정점으로
 가져 가기 위해 지르는 소리는 비교적 긴 간격을 두고 내게 된다. 예를 들면 아일랜
드의 배를 당기며 부르는 노래는 '홀^6,3^리^6,3^호^6,3^헙(Ho-li-ho-hup)'하는 식으
로 마지막 '헙'에서 힘을 결집할 때까지 준비기간이 다소 길게 잡혀 있다."
 제2의 물결에 의해서 기계가 도입되고 노동가가 불리지 않게 되기까지 이러한 작업의
 동시화는 자연발생적이며 유기적인 것이었다. 그것은 계절의 리듬, 생리적인 반응, 
지구의 자전, 심장의 고동 등에서 흉내낸 것이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그
와 대조적으로 기계의 고동에 맞추어 움직였다.
 공업생산이 일반화되자 기계 그 자체의 비싼 비용과 노동의 높은 상호의존성이라는 
두 요인에 의해서 동시화가 한층 정밀히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공장에서 어떤 작업공정을 담당하는 노동자 그룹의 작업이 지연되면 그 다음 공정에서
는 더욱 더 지연된다. 이렇게 해서 농경사회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던 시간엄수라
는 것이 사회적 필수사항이 되고 각종 시계가 보급되었다. 1790 년대의 영구에서는 이
미 시계가 진귀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역사학자 E.P.톰슨에 의하면 시계는 '산업혁
명에 의해 더욱 대규모적인 노동의 동시화가 요구된 바로 그 시점에서 보급된 것'이라
는 것이다.
 산업문화 속에서 자란 어린이가 어릴 때부터 시계 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학교의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늦지 않도록 등교하는 습관을 익히는 것
은 나중에 사이렌에 맞추어 정확히 공장이나 사무실에 출근시키기 위한 것이다. 일은 
시간으로 계산되고 초단위로 세밀히 측정되게 되었다.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가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근무시간의 원칙이 되었다.
 동시화가 진행된 것은 직장생활만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이윤아니 정치
적 배려와는 상관없이 사회생활을 모두 시계로 규제하고 기계의 요구에 맞추어지게 되
엇다. 여가시간까지 미리 결정되고 있었다. 작업시간 속에 표준적인 휴가와 휴일, 휴
식시간의 길이가 설정되었다.
 아무튼 어린이의 취학과 졸업연령이 통일되었다. 병원도 환자를 일제히 기상시켜 아
침식사를 들게 한다. 이렇게 해서 러시 아워가 발생하고 교통체계가 위태로워진다. 방
송국은 한정된 시간대에 오락 프로그램을 편성하여 골든 아워(golden hour)가 생기게 
된다. 원료제공자나 판매담당자의 형편에 따라 모든 일에 그 일 특유의 피크타임이나 
성수기가 생기게 되었다. 또 공장의 생산촉진계, 선표작성자에서 교통순경, 나아가서
는 표준작업시간의 연구자에 이르는 동시화에 대한 전문가들이 나타났다.
 반대로 새로운 산업사회의 시간체계에 저항하는 사람들도 생겼다. 그리고 여기서는 
남녀의 차이가 문제로 되었다. 제2의 물결 밑에서 노동에 종사한 사람들은 그 대부분
이 남자들인데 그들은 가장 시간의 움직임에 얽매였다.
 제2의 물결사회에서는 세상의 남편들이 언제나 이런 불만을 털어놓고 있다. 
아내는 태연히 사라마을 기다리게 하고 시간 감각이 없다. 언제까지고 옷차려 입기에 
정신을 빼앗겨 약속시간에 늘 늦는다고 투덜댄다. 대부분의 여성은 가사라는 상호의존
성이 적은 일을 하기 때문에 남성만큼 기계적인 리듬에 영향받지 않고 일해 왔다. 이
와같은 이유에서 도시인들은 시골사람을 느리고 믿을 수 없다고 깔보는 경향이 있었다
. "그 친구들은 늘 약속시간에 오지 않는다. 도대체 약속을 지킬 생각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이런 불만이 나오는 것도 원인을 따지면 고도로 상호의존이 
필요한 제2의 물결의 노동과 논밭이나 집에서 이루어지는 제1의 물결의 노동에서 생기
는 차이 때문인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제2의 물결이 지배하게 되자 가장 사사로운 일상적인 잔일까지도 일정한 시간체
계 속에 짜여져 버렸다. 전체문명이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의 원칙을 채용함에 따라 
미국, 소련, 싱가폴, 스웨덴, 프랑스, 덴마트, 독일, 일본 등 모든 나라의 가정이 같
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하고 출근한다. 일하는 시간도 집에 돌아가는
 시간도 같고 침실에 들어가서 잠이 드는 것도 같고 게다가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일
까지도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비슷한 시간에 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집중화(concentration)
 시장의 등장과 함께 제2의 물결문명의 또 다른 원칙 즉, '집중화'가 발생했다.
 제1의 물결사회는 갖가지 에너지원에 의존하여 성립된 사회였다. 그러나 제2의 물결
사회는 석유, 석탄, 천연가스라는 고도로 집중화된 화석연료에 에너지원을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나 집중화가 진행된 것은 에너지만이 아니었다. 제2의 물결은 인간의 집중화를 
촉진했다. 농촌에서 사람들을 끌어내어 거대한 도시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뿐 아니라 노동까지 집중화했다.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을 가정이나 마을, 들판
, 등 어디서나 이루어졌던 데 비해 제2의 물결의 노동은 대부분이 수천명의 노동자가 
한 지붕 밑에서 일하는 공장 안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에너지나 노동만이 아니다. 영국의 사회과학잡지 '뉴 소사이어티(New Sociely)'에서 
스탠리 코헨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산업혁명 이전의 사회에서는 다소의 예외
는 있으나 가난한 사람은 자기 집에 있든가 친척들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 죄인은 벌
금을 내게 되거나 곤장을 맞거나 혹은 이 시설에서 저 시설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또 정신병자는 집에 갇히고 집이 가난한 경우에는 지역사회가 보살펴 주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서 이와같은 집단은 특정한 장소에 집중하지 않고 지역사회 여기저기에 산
재해 있었다.
 산업주의는 이러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19세기 초는 대투옥 시대라 일컬어
지고 있다. 그 시대에는 죄인은 일망타진되어 감옥에 감금되고 정신병자는 정신병원에
, 어린이는 학교로 각각 끌려나오듯이 모이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노동자들은 공장에 
수용되었다.
 집중화는 자본의 흐름에도 나타났다. 그 결과 제2의 물결문명은 거대기업을 낳고 더 
나아가 트러스트(trust)나 독점을 만들어 냈다. 1960 년대 중반에는 제너럴 모터스사,
 포드사, 크라이슬러사라는 미국의 3 대 자동차 회사가 전 미국 자동차의 94퍼센트를 
생산하고 있었다. 서독에서는 폴크스바겐사, 벤츠사, 오펠(GM)사, 포드 베르케사의 4
개 회사가 91 퍼센트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프랑스에서는 사실상 르노사, 시트로엠사, 
생카사, 푸조사의 4개 회사에서 100 퍼센트를, 이탈리아에서는 피아트사 한 곳에서 90
 퍼센트의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는 알루미늄, 맥주, 담배, 아침식사용 시품과 같은 상품의 80 퍼
센트 이상이 각 분야의 4--5개 회사에 의해서 생산되고 있었다. 서독에서는 플라스터
보드(plasterboard)와 염료생산의 92 퍼센트, 사진필름의 98 퍼센트, 산업용 재봉틀의
 91 퍼센트가 각 분야의 4개 회사 이내의 기업에 의해 독점생산되었다. 이런 종류의 
고도의 집중화가 진행된 기업은 이루 다 열거할 수 없다.
 사회주의의 입장에 있는 경영자들도 생산의 집중화가 능률적이라는 점은 인정하고 있
었다. 사실은 자본주의 국가에 사는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도 자본주의 국가에서 산업
의 집중화가 진행되는 것을 사회주의로의 이행에 필요한 과정으로서 환영하고 있었다.
 완전히 집중화된 산업은 궁극적으로 국가가 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레닌은 "노든 시민은 단 하나의 거대한 기업합동체인 국가라는 기업의 노동자, 즉 국
가의 종업원으로 변모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그 반세기 후에 소련의 경제학자 N. 렐
류키나는 '보프로시 예코노미키: Voprosy Ekonomiki'지에 "소련은 세계에서 가장 집중
화된 산업을 보유하고 있다."라고 서술하기에 이르렀다.
 제2의 물결문명에서 볼 수 있는 집중화의 원칙은 모스크바와 서방 여러 나라 사이에 
가로놓인 온갖 이데올로기상의 대립을 초월하여 모든 분야에 깊숙히 침투하고 있었다.
 그것은 에너지원, 인구의 분포, 노동형태, 교육방법, 기업과 같은 경제조직에까지 영
향을 미치고 있었다.
 
 극대화(maximization)
 생산과 소비 사이에 균열이 생김으로써 제2의 물결사회에는 대개 '큰 것이 좋은 것'
이라는 '극대화 편집광'이라고 할 수 있는 중심이 나타났다. 그것은 큰 것을 좋아하는
 텍사스인들처럼 쓸데없이 크기와 성장을 추구하는 경향이다. 공장의 작업시간이 길어
져서 생산량이 많아지면 단위생산원가는 저렴해진다. 이 사고방식이 옳다고 한다면 같
은 논법으로 규모를 크게 하면 절약을 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 나타나는 것도 무리
가 아니다. 그 결과 '크다'는 말이 '능률적'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되고 '극대화'는 제
2의 물결시대를 해명하는 제5의 열쇠가 되었다.
 국가나 도시는 저마다 세계최고의 초고층 빌딩이 있다. 세계 최대의 댐이 있다고 자
랑하게 되고 결국에는 세계 최대의 축소형 골프장이 있다고 서로 겨루는 사태까지 출
현했다. 원래 큰 것은 성장이 가져다 준 결과였기 때문에 산업화가 진행된 국가의 대
부분은 정부나 기업, 그밖의 모든 기관이 홀린듯이 성장이라는 이상을 추구하기 시작
했다.
 일본의 마쓰시타사에서는 매일 아침 종업원과 관리직이 다 같이 모여 사가를 합창한
다.

 새 일본의 건설에
 힘을 합하고 마음을 합쳐
 생산에 부지런히 힘쓰자.
 세계 속으로 우리는 나아간다.
 샘물이 콸콸
 끊임없이 솟아나듯이
 산업진흥 산업진흥
 화친일치의 마쓰시타전기!

 1960 년이라는 해는 미국이 전통적 산업주의를 완성의 영역으로 제고시킴과 동시에 
변혁을 강요하는 제3의 물결의 영향을 최초로 느낀 해이기도 했다. 이 해에 전미국 50
위까지의 대기업은 평균종업원 8 만 명이라는 규모로 성장해 있었다. 
제너럴 모터스사만도 59 만 5000 명의 종업원을 고용했으며 앞서 언급한 데오도어 베
일이 창립한 공익사업 AT & T사는 남녀를 합하여 73 만 6000 명의 종업원을 고용하고 
있었다. 이 해에 미국의 평균가족수가 3.3 명이었으므로 200 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AT
 & T라는 한 기업이 지불하는 급여로 생활하고 있었던 셈이 된다. 
다시 말하면 해밀턴이나 조지 워싱턴이 미국을 하나의 국가로 수립하려고 했던 시대의
 미국 전인구 중 반수에 해당하는 집단이 AT & T사에 의존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
1960 년 이후에도 AT & T는 흡수합병을 계속하여 더욱 더 커졌다. 
1970 년에 이 회사는 95 만 6000 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불과 1 년 동안에 13 만 6000
 명을 증원했다.)
 AT & T사의 예는 특수한 사례지만 미국인에게는 특히 큰 것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극대화 편집광은 미국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1963 년 프랑스에서는 숫자상으로는 전체 기업의 불과 0.25 퍼센트에 지나지 않는 140
0개 기업이 전체 노동인구의 39 퍼센트를 차지한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서독, 영국, 그 밖의 나라에서도 정부는 적극적으로 기업합병을 권장했다. 그렇게 함
으로써 기업의 규모가 커지고 미국의 거대기업과의 경쟁력이 강화된다고 믿었기 때문
이다.
 기업규모의 극대화는 단순히 이윤의 극대화만을 반영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마르크
스는 '사업체의 규모확대'를 사업체의 '물질적 힘의 확장'과 관련시켜서 생각하고 있
었다. 이에 대해 레닌은 '거대기업, 트러스트, 기업합병은 대량생산의 기술을 최고수
준으로까지 끌어 올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 혁명 후에 레닌이 경제활동에 관
하여 내린 지령은 러시안인의 경제생활을 정리통합하여 기업체의 수를 최소한으로 정
리하고 가급적 규모가 큰 생산단위로 만든다는 것이었다. 스탈린은 규모의 극대화를 
더욱 추진하여 몇몇의 커다란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마크니코고르스크와 자포로즈스탈의 철강단지, 발하슈의 동제련소, 하르코프와 스탙린
그라드의 트랙터 공장이 그것이다. 스탈린은 곧잘 미국의 이런저런 공장설비의 규모를
 묻고 그 이상의 큰 공장을 세우라고 명령했었다.
 레온 M. 허먼박사는 그의 저서 "소비에트 경제계획에 있어서의 거대신앙"에서 '소련 
각지에서 지방정치가가 세계최대의 사업을 유치하는 경쟁에 말려들고 있었다.'고 기술
하고 있다. 이미 1938 년에 이같은 '거대광'에 대하여 경고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오늘날도 여전히 소련이나 동유럽 공산당지도자들은 허먼 박사가 말하는 '거대화 중독
증'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규모에 대한 이러한 단순한 신앙은 '능률'이라는 것을 제2의 물결의 좁은 시야에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산업주의의 극대화 편집광은 공장에만 머무르지 않
았다. 예를 들면 이른바 GNP(국민총생산)를 통계지표로 삼는 사고방식에도 나타나 잇
다. GNP란 한 나라에서 생산된 재화와 서비스의 가치를 총계한 것으로,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데이터가 들어 있다. 이를테면 GNP라는 관점에서 보는 한 경제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 식료품이든 교육이나 건강에 관한 서비스이든 혹은 군수품이든 그런 것
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옥을 건축하는 데에 고용이 되든 반대로 집을 헐어버
리는 데에 고용이 되든 그들이 받은 임금은 모두 GNP에 가산된다. 한쪽의 행위는 주택
의 숫자를 늘이는 것에 기여하고 다른 한쪽은 그 숫자를 줄이는 것이지만 모두 생산으
로 보는 것이다. GNP는 시장활동이나 상품거래만을 계측의 대상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이를테면 육아나 가사노동과 같은 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 생산을 기반으로 하는 생
명유지에 매우 중요한 부분을 모두 경시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러한 결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시대의 각종 정부들은 세계 곳곳에서 어
떻게든 GNP를 상승스키려고 경쟁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희
생하고 고도성장을 위해서는 생태계의 파괴나 사회적 파멸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풍조
를 낳았다. 이같은 극대화 편집광적 원칙은 산업주의 시대 사람들의 정신에 깊이 침투
하여 이 이상 더 합리적인 원칙은 없다고 인정하게 되었다. 
극대화는 표준화, 전문화등 산업사회를 뒷받침하는 기본적인 몇몇 원칙들과 더불어 동
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중앙집권화
 산업화가 진행되자 모든 산업국가들은 중앙집권화를 예술작품의 영역으로까지 발전시
켰다. 교회를 시작으로 하는 제1의 물결의 지배자도 권력을 중앙으로 집중하는 방법은
 잘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대처한 것은 현대와 비교하면 훨씬 단순한 사회
였다. 또 오늘날의 산업사회를 밑바닥부터 중앙집권화된 사람에 비하면 제1의 물결의 
지배자들은 미숙한 아마추어와 같은 존재였다.
 복잡한 사회는 예외없이 중앙집권적 기능과 탈중앙집권적 기능의 공존을 필요로 한다
. 제1의 물결경제는 기본적으로 지방분권적이며 자급자족을 원칙으로 한다. 
지방색이 뚜렷한 경제였다. 이러한 특징을 갖춘 경제가 종합적 국민경제인 제2의 물결
경제로 이행함에 따라 전연 새로운 권력의 중앙집권화 방법이 나타났다. 이 새로운 유
형의 중앙집권화 방법은 개별기업과 산업, 그리고 전체경제의 차원에서 구체화되어 갔
다.
 이러한 이행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초기의 철도산업이다. 당시는 다른 산업과 
비교하면 거대한 규모였다. 1850 년의 미국에서 자본금 25 만 달러 이상의 공장은 41
개 업체에 불과했다. 그것과 대조적으로 뉴욕 센트럴철도회사는 이미 1860 년에 3000 
만 달러의 자본금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와같은 거대기업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영방법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초기의 철도회사 경영자는 오늘날로 말하면 우주계획관리자들처럼 새로운 경
영기법을 개발할 필요가 절실했다. 그들은 기술, 운임, 운행시간을 표준화하고 수백 
마일에 이르는 열차운행을 동시화하고 새로운 업무를 부서별로 전문화했다. 
자본, 에너지, 인력의 집중화가 이루어지고 철도망 규모의 극대화를 위해 노력을 기울
였다. 그리고 이상의 모든 것을 잘 통합하기 위해 정보와 지휘계통의 중앙집권화에 기
반을 둔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냈다.
 종업원은 '라인(line)'과 '스태프(staff)'로 나뉘어졌다. 차량운행, 적재량, 파손, 
화물분실, 수리, 운행거리 등에 관하여 자료의 제출이 요구되었다. 이들 모든 정보는 
중앙집권화된 명령계통을 통하여 상부로 올라가 총지배인에게 도달하고 거기서 결정이
 내려져서 라인을 통해 하부로 명령을 전하는 구조로 되어 있었다.
 철도산업은 기업사가 알프레드 챈들러가 지적했듯이 이윽고 다른 대규모 조직체들의 
모델이 되었다. 그리고 중앙집권적 경영은 제2의 물결의 여러 국가들에서 선진적이고 
세련된 경영수법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정치분야에서도 제2의 물결은 중앙집권화를 촉진시켰다. 미국에서는 이미 1780 년대 
후반에 탈중앙집권적인 '13개주 헌법'을 중앙집권적인 미합중국 헌법으로 만들려는 투
쟁 속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분명히 싹트고 있다. 일반적으로 제1의 물결의 색채를 띤 
지방세력은 중앙정부로 권력이 집중하는 데에 저항한 반면에 헤밀턴이 이끄는 제2의 
물결의 상업세력은 그들의 기관지 "더 패더럴리스트: The Federalist" 등을 통하여 강
력한 중앙정부는 군사, 외교상의 이유뿐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주
장했다.
 그 결과로서 1787 년에 연방헌법이 태어났는데 그것은 교묘한 타협의 산물이었다. 
제1의 물결을 대표하는 세력도 여전히 강력했기 때문에 이 헌법을 중요한 여러 권한을
 중앙정부에 넘겨주지 않고 종전대로 각 주에 남겨 두었다. 지나치게 강력한 중앙정부
의 출현을 막기 위해 입법, 행정, 사법의 3권분립이라는 독특한 제도를 채택했다. 그
러나 헌법 속에는 어떻게도 해석할 수 있는 탄력적인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그것에 의
해 연방정부는 매사에 권한을 확장하고 있었다.
 산업화로 인해 정치체제가 더욱 중앙집권화함에 따라 워싱턴의 연방정부가 갖는 권한
과 책임은 점차 커지고 전국적 차원의 경책결정은 더욱 더 중앙정부의 독점물로 되어 
갔다. 한편 연방정부내의 권력은 외화나 법원으로부터 3부 중에서도 가장 중앙집권기
능이 강한 행정부로 이행하게 되었다. 닉슨 행정부에 와서는 한때 열성스런 중앙집권
주의자였던 역사학자 아더 슐레진저조차도 '황제와 같은 대통령의 지위'라고 공격할 
정도가 되었다.
 정치의 중앙집권화를 촉진하는 힘은 미국 이외의 나라들에서 더욱 강력히 적용했다. 
스웨덴, 일본, 영국 혹은 프랑스 등의 제도는 얼핏 보기에도 미국보다 훨씬 중앙집권
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에도 미국보다 훨씬 중앙집권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나 예수가 없었다면: Without Marx or Jesus"
의 저자 장 프랑소와 르벨은 이 점에 관하여 정치적 항의에 대한 각국 정부의 반응방
법의 차이를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프랑스에서 데모가 금지될 경
우 누가 그것을 금지시켰느냐에 대하여는 의문의 여지가 전혀 없다. 만일 그것이 정치
문제에 관한 데모라면 이를 금지시킨 것은 중앙정부임이 틀림없다. 미국에서 데모가 
금지되었다고 하자. 이럴 경우 미국인이 먼저 제기하는 의문은 누가 데모를 금지시켰
느냐 하는 것이다.' 라고 르벨은 지적하고 잇다. 그는 미국의 경우 데모를 금지하는 
세력은 자치권을 가진 지방행정당국일 경우가 많다고 말하고 있다.
 가장 극단적으로 정치의 중앙집권화가 진행된 것은 물론 마르크스주의적 산업국가들
이다. 1850 년에 마르크스는 '국가에 의한 권력의 결정적 중앙집권화'의 필요성을 주
장한 바 있다. 엥겔스도 해밀턴과 마찬가지로 탈중앙집권적 연방제에 의한 정치형태를
 '가장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라고 비판하고 잇다. 뒷날 소련은 산업화의 촉진에 엄중
한 나머지 정치, 경제의 양면에서 가장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구조의 국가를 건설하게 
되고 생산에 관한 결정은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중앙계획당국의 손을 빌리게 되었다.

 전에는 탈중앙집권적이었던 경제가 단계적으로 중앙집권화한 데에는 중앙은행이라는 
그 명칭부터가 중앙집권적 의도가 명백히 드러나는 기관의 출현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
다.
 1694 년이라면 아직 산업화의 여명기로서 뉴코먼이 증기기관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무
렵인데 이 해에 윌리엄 패터슨이 처음으로 잉글랜드 은행을 창설했다. 
그리고 이 은행은 모든 제2의 물결에 속하는 여러 나라에서 중앙집권기능을 갖는 같은
 기관의 원형이 되었다. 통화와 신용의 중앙집권적 관리를 목적으로 한 중앙은해이라
는 기관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한 나라의 제2의 물결의 발전단계는 완전한 것이 되었다
고 할 수 있다.
 패터슨이 설립한 중앙은행은 정부발행의 국채를 팔고 정부보증의 통화를 발행했다. 
한편 나중에는 다른 시중은행의 대출업무도 규제하게 되었다. 결국 이 은행은 통화공
급의 중앙관리라는 오늘날의 모든 중앙은행이 갖는 본질적 기능을 떠맡게 되었다. 180
0 년에는 이와같은 목적을 가진 프랑스 중앙은행이 설립되었고 1875 년에는 독일 연방
은행 라이히방크(Reichlsbank)가 설립되었다.
 미국에서는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 간의 충돌이 헌법제정 직후에 중앙은행의 설립
을 둘러싼 대규모으 대립으로 나타났다. 제2의 물결정책의 대표적 주창자인 해밀턴은 
영국식 중앙은행의 설립을 강력히 주장했다. 남부와 아직 국경을 넓혀가고 있던 서부
는 농업중심의 입장을 버리지 못하고 해밀턴에 반대했다. 하지만 산업화 과정에 있던 
북동부의 지지를 얻은 해밀터은 미국의 연방은행 설립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연방은행이 오늘날의 연방준비제도의 전신이다.
 그 역할은 정부를 대신하여 시장활동의 수준과 속도를 규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
서 중앙은행들은 자본주의 경제 내부에 일정한도의 비공식적인 단기계획을 도입했다.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제2의 물결사회의 모든 동맥에 통화라는 혈액이 흐르
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가 모두 중앙집권화된 통화공급기관을 필요
로 했고 그 결과 중앙은행이라는 조직이 만들어졌다. 
중앙은행과 중앙정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나아가게 되었다. 이렇듯 중앙집권화도 또한
 제2의 물결문명의 지배적 원리의 하나였다.

 지금까지 살펴본 6가지 지도원리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도느 제2의 물결국가들로
부터 한결같이 작용하고 있는 하나의 퍼로그램을 이루고 있다. 
'표준화', '전문화', '동시화', '집중화', '극대화', '중앙집권화'라는 6가지 원리들
은 자본주의 국가건 사회주의 국가건 모든 산업사회에 적용되었다. 왜냐하면 이 6가지
 원리들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결정적인 분리와 시장기능의 계속적 확대에 의해서 필연
적으로 발생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원리들은 상화간에 상승작용을 계속하였는데 그 결과 생겨난 것이 비인간적
인 관료제도였다.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했던 거대하고 경직되고 강력한 관료조
직이 출현하여 각 개인은 거대조직이 지배하는 카프카(Kafka)적 세계에서 갈길을 몰라
 방황을 계속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만일 오늘날 우리가 이 거대조직들에 짓눌리고
 압도당하고 있다면 우리는 이 문제의 근원을 제2의 물결문명을 프로그램화한 숨겨진 
규범에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규범을 형성하고 있는 6가지 원리들은 제2의 물결문명에 뚜렷한 특징을 제공해 왔
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곧 밝혀지듯이 이 6가지 원리들은 어느 것이나 제3의 물결의 
공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위기는 기업, 금융, 노사관계, 정부, 교육, 언론 등의 분야에서 오늘날도 
여전히 이 원리들을 자기의 행동원리로 적용하고 있는 제2의 물결사회의 엘리트에 대
해서도 말할 수 있다. 새로 태어난 문명은 낡은 문명의 모든 기득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규칙을 만드는 일에 익숙해 있던 산업사회의 엘리트들은 앞으로 전개될 격
동 속에서 과거의 봉건귀족이 겪었던 것과 같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엘리트들 중 일
부는 낙오될 것이고 일부는 권좌에서 추방당할 것이다. 일부는 무능력자로 전락하거나
 구차스런 체면유지에 급급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지성과 적응력을 갖춘 일부 엘리트들
만이 변신하여 제3의 물결문명의 지도자로 부상하게 될 것이다.
 제3의 물결문명이 지배하는 가까운 장래에는 누가 지배자의 자리에 앉게 될까? 그것
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오늘날의 사회를 누가 지배하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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