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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제3의 물결

제2장 문명의 구조

by FraisGout 2020. 7. 27.

 300 년 전에 지구상에서는 대폭발이 일어났다. 지역에 따라서는 반세기 전후의 시간
적 차이는 있었지만 충격적인 파괴력을 가진 변동이 전세계에 파급되었다. 낡은 사회
들은 붕괴시키고 전혀 새로운 문명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 대폭발이 바로 산업혁명이
다. 그리고 이 혁명에 기인되는 거대한 해일, 즉 제2의 물결은 맹렬한 기세로 전세계
를 덮쳐서 과거의 모든 제도 및 관습과 충돌하면서 수백만이라는 인간의 생활방식을 
바꾸어 놓고 말았다.
 제1의 물결로 이루어진 문명이 지배하던 수천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은 두 개의 범주, 즉 '미개인'과 '문명인'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소수의 집단과 
부족을 이루어 채집, 수렵, 혹은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던 이른바 미개인족은 
농업혁명과는 관계없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것과는 대조적으로 '문명'세계라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토지를 경작해
서 생활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농업이 시작된 지역에는 어디나 문명이 뿌리를 내렸다.
 중국, 인도로부터 아프리카의 옛토후곡 베닌(Benin)이나 멕시코에 이르기까지, 또한 
그리스나 로마에서 여러 문명이 흥망성쇠를 되풀이하면서 끊임없이 다채로운 융합문명
을 만들었다.
 그러나 표면상의 차이는 있더라도 토지가 경제, 생활, 문화, 가족 구조 및 정치의 기
반을 이루고 있었다. 생활은 부락을 중심으로 영위되었다. 예외없이 간단한 분업이 행
해지고 몇 가지로 뚜렷하게 구분된 카스트(cast)의 계급이 출현했다. 
그것은 귀족, 승려, 무사, 농민, 농노 또는 노^36^예였다. 어느 곳에서도 권력은 엄격
한 독재주의였다. 가문의 인생의 지위를 결정했다. 그리고 어느 경우에나 경제는 지방
분권적이었고 각각의 공동체는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을 자급자족하고 있었다.
 역사는 단순하지는 않았으므로 예외도 있었다. 대양을 종횡으로 활약한 뱃사람들에 
의한 상업문화권도 있었고 거대한 관개시설을 중심으로 조직된 고도로 중앙집권화된 
왕국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얼핏 특수한 것처럼 보이는 문명
들은 같은 하나의 사회현상, 즉 제1의 물결에 의해 일반화된 농업문명의 특수한 경우
로 보아도 잘못은 아니다.
 농업문명의 지배적이었던 시대에도 간혹 장래를 예견케 하는 현상이 일어났을 때도 
있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는 대량생산공장들도 있었다. 그리스의 어느 섬에서는 
기원전 400 년에, 미얀마에서는 서기 100 년에 석유를 채굴하기 위해 시추를 했던 일
이 있다. 바빌로니아나 이집트에서는 광범위한 관료주의가 번창했다. 
아시아나 남아메리카에서는 거대한 도시들이 건설되었다. 화폐가 존재했고 교역도 행
해졌다. 중국에서 도버해협이 내려다 보이는 칼레(Calais)에 이르는 통상의 길은 사막
 바다와 산맥을 넘어 종횡으로 교차되어 있었다. 물론 성숙된 것은 아니었지만 자치단
체나 국가라는 개념도 존재했다. 알렉산드리아에는 놀랍게도 선구적인 증기기관까지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산업문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지구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방금 거론한 미래를 내다볼 만한 현상들은 시대적으로나 장소적으로나 여기저기 흩어
진 것에 불과해서 말하자면 역사의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것들은 결코 일관성
있는 체계를 이루지 못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었다. 따라서 1650 년까지는 완전히 제1
의 물결시대이고 보기에 따라서는 1750 년까지도 제1의 물결세계였다고 말할 수 있다.
 곳곳에 미래사회나 곧 도래하게 될 산업사회를 예견하게 하는 현상이 보이기는 했지
만 역시 농업문명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당연히 그러한 상태가 영속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산업혁명은 이 농업문명 속에서 시작되었고 제2의 물결을 일으킴으로써 전혀 미지의 
강력하고 열광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활력이 넘치는 문명, 그때까지의 문명과는 대조
적인 문명을 창조해 냈다. 산업주의란 단순히 공장굴뚝이나 조립라인만의 문제가 아니
었다. 그것은 강력하고 다방면에 걸쳐진 사회체계이며 인간생활 모든 면에 관계하고 
그때까지 지배적이었던 제1의 물결의 모든 특질에 도전했던 것이다. 산업주의는 다트
로이트 교외 윌로우 런에 거대한 공장군을 만들어 낸 것뿐만 아니라 농장에는 트랙터
를, 사무실에는 타이프라이터를, 부엌에는 냉장고를 등장시켰다. 일간신문이나 영화, 
지하철, DC3 항공기를 이 세상에 내놓았다. 회화의 세계에서는 큐비즘(cubism)을 음악
에는 12음계를 가져다 주었다. 
공업기술과 예술과의 결합을 목표로 하는 종합조형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의 건축, 
바르셀로나 양식의 의자, 연좌파업, 비타민제, 평균 수명의 연장^36,36^이것들은 모두
 산업주의의 산물이었다. 팔목시계와 선거를 보급시킨 것도 산업주의이다. 그러나 보
다 중요한 것은 산업주의자 이러한 별개의 현상들을 모아서 마치 부속품으로 기계를 
조립하는 것처럼 이것들을 조립하여 그때까지는 없었던 대단히 강력하고 일관된 광범
한 사회제도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제2의 물결이 가져온 문명인 것이다.
 
 폭력적 해결
 제2의 물결이 여러 사회로 밀어닥침에 따라 농업사회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도래하고 
있는 산업사회를 옹호하는 사람들 사이에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은 마침내 정면충돌을 일으켜 양자의 격돌현장에 있던 구시대
의 사람들은 구석으로 밀려나거나 때로는 대량살육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미국에서의 이 충돌은 농업에 의한 제1의 물결문명을 확립하려고 하는 유럽인이 이주
해 옴으로써 시작되었다. 백인에 의한 농업문명의 조류는 사정없이 서쪽으로 밀려 가
서 인디언들을 내쫓고 멀리 태평양에 이르기까지 농장과 농촌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냈
다.
 그러나 농민들의 뒤를 이어 앞으로 오게 될 제2의 물결시대의 첨병이라고도 할 수 있
는 초기 산업인들도 도착했다. 뉴잉글랜드와 대성야 연안 중부 여러 주에는 공장과 도
시들이 급격히 출현하게 되었다. 19세기 중반까지 동북부는 공업지대로서 급속한 발전
을 계속하여 무기, 시계, 농기구, 섬유제품, 재봉틀 등의 제품을 생산해 냈다. 반면 
그 외의 지역에서는 아직 농업세력이 지배적이었다.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 사이에
는 경제적, 사회적 긴장이 고조되어 드디어 1861 년에는 무력투쟁으로 발전되고 말았
다.
 남북전쟁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노^36^예제도를 둘러싼 도덕적 논쟁
이나 관세문제라는 협소한 경제적 대립만이 원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전쟁이 결말
지으려 하는 것은 훨씬 중요한 문제 때문이었다. 즉, 풍요한 이 신대륙을 농민이 지배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산업가들이 지배할 것인가, 제1의 물결세력에 굴복하는가 아
니면 제2의 물결세력이 승리하는가, 그것이 전재의 진실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미래의
 미국 사회가 기본적으로 농업형 사회로 되느냐 산업형 사회로 되는냐의 분수령이었다
. 북군이 승리하으로써 주사위는 던져졌다. 미국의 산업화가 확정된 것이다. 그때 이
후부터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면에서 농업은 후퇴를 계속하고 공업이 
융성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제1의 물결은 후퇴하고 제2의 물결이 밀려들게 되었다.
 비슷한 두 문명의 충돌은 다른 나라에서도 일어났다. 1868 년에 시작된 일본의 메이
지유신 역시 과거의 농업시대와 미래의 산업시대와의 싸움을 똑같이 재연한 것이었다.
 1876 년에 실시하게 된 사족의 기록을 폐지함으로써 봉건제도가 종말을 고하고, 1877
 년에 일어난 사쓰마항의 반란 때문에 일어나 세이난의 전쟁, 1889 년에 서구형 헌법
의 공포, 이런 것들은 모두 일본에 있어서의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의 충돌을 반영
하는 사건이며 일본이 세계 제1급의 산업국으로 전진하는 첫걸음이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도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의 세력 사이에 이같은 충돌이 일어났다. 
1917 년의 러시아혁명은 남북전쟁의 러시아판이었다. 표면상의 중요한 쟁점은 공산주
의 체제를 취하느냐 아니냐처럼 보였지만 실은 여기서도 문제의 중심은 산업화에 있었
다. 볼셰비키는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농노제도와 봉건영주의 전제정치에 종지부를 찍
어 농업은 뒷전으로 제쳐 놓고 의식적으로 산업화를 촉진시켰다. 볼셰비키 역시 제2의
 물결 편에 들어온 정당이 된 것이다.
 여러 나라에서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이 계속 충돌하면서 정치적 위기, 동란, 파업
, 반란, 쿠데타, 전쟁 등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20세기 중반까지 제1의 물결세력은 완
전히 붕괴되고 제2의 물결문명이 지구를 지배했던 것이다.
 오늘날 산업주의 사회는 지구상의 북위 25 도선과 65 도선 사이에서 형성되고 있다. 
북미대륙에서는 약 2억 5000 만의 인구가 산업화된 생활양식에 따라 살고 있다. 서유
럽에서는 스칸디나비아의 남쪽에서 이탈리아에 이르는 지역에 역시 2억 5000 만 정도
의 인구가 산업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사회를 형성하고 있다. 동쪽으로 향하면 유라시
아(Eurasia) 공업지대, 즉 동유럽과 소련의 서부가 산업주의 문명권이며 여기에도 2억
 5000 만의 인구가 산업사회 특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리고 끝으로 아시아의 
산업지역인 일본, 홍콩, 싱가포르, 대만, 호주, 뉴질랜드, 한국, 중국본토의 일부를 
포함하는 지역의 2억 5000 만의 산업화된 인구가 있다. 결국 산업문명에 속하는 인간
은 약 10억에 이르고 이것은 지구 전체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한다.
 이 나라들은 분명 다른 언아, 문화, 역사, 정치형태를 가지고 있어서의 그 뿌리깊은 
차이점 때문에 전쟁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의 물결에 속해 
있는 사회에는 여러가지 공통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누구나가 알고 있는 그 차이점
의 배후에는 유사성이라는 공통의 기반암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체제와 충돌을 되풀이하고 있는 사회변화의 물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 사회의 공통적 구조, 즉 표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제2의 물결이 이루어 놓은 문
명의 구조를 확실하게 알아두지 않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다름아닌 이 산업사회의 기
본구조 그 자체가 지금 붕괴되려 하기 때문이다.
 
 육체노동에 의존하고 있던 동력
 새로운 문명이건 낡은 문명이건간에 모든 문명의 전제조건은 에너지이다. 제1의 물결
사회에서의 에너지원은 인간이나 동물의 근육의 힘인 '생물에 의한 동력원', 태양열, 
풍력 등 자연의 힘에 의존하고 있었다. 취사나 난방을 위해서 삼림이 벌채되었다. 물
레방아도 있었다. 논이나 밭에서는 관개용 풍차가 찌극찌극 소리내며 돌고 있었다. 가
축은 쟁기를 끌고 있었다. 프랑스혁명 당시만 해도 유럽에는 에너지원으로 1400 만 필
의 말과 2억 400 만 두의 소가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것은 제1의 물결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이용된 모든 에너지원은 재생가능한 에너지였
다는 것을 의미한다. 삼림은 자연이 회복시켜 주었고 배를 달리게 해주는 바람도, 기
선의 외륜을 돌려주는 강물의 흐름도 자연의 힘으로 해서 순환되었다. 
에너지원으로서 혹사당하던 가축이나 인간도 교체요원은 얼마든지 있었다.
 여기에 비해서 제2의 물겨이 만들어 낸 사회는 모두가 석탄이나 가스, 석유 등 한번 
소비해 버리면 재생불가능한 화석연료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1712 년 영국
의 기술자 토머스 뉴코먼에 의해서 실용적인 증기기관이 발명된 이래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유사 이래 처음으로 단순하게 자연이 만들어 내는 이자만으로 인간문명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축적해 둔 자본을 잠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구가 축적해 두었던 에너지를 조금씩 뜯어 먹는 것은 산업문명을 성립시키는데 있
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보조금의 역할을 했다. 이것으로 해서 산업문명은 대단히 급속
한 경제성장을 실현했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온 나라에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나 값싼 화석연료를 언제든지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거대한 과학기술의 
체계와 경제기구를 수립했다. 자본주의 사회이건 사회주의 사회이건, 그리고 동서양을
 불문하고 분명히 같은 전환이 일어났다. 즉 어디에서도 구할 수 있는 에너지에서 특
정한 장소에 집중하고 있는 에너지로, 재생가능한 것에서 재생불능의 것으로, 잡다한 
종류의 자원이나 연료에서 소수의 연료로 전환하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이다. 화석연료
는 제2의 물결에 속하는 모든 사회의 에너지 기반이 되었던 것이다.
 
 기술의 요람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의 도약은 과학기술의 거대한 진보와 발전을 가져왔다. 
제1의 물결이 가져온 사회는 2000 년 전에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말했던 것처
럼 '문명의 발달에 필수불가결한 발명'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크랭크, 쐐기, 노
포, 포도짜는 기구, 지렛대, 기중기 등 초기에 발명된 기계는 주로 인간이나 동물의 
근육의 힘을 증폭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제2의 물결은 과학기술을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모터, 벨트, 호스, 
베어링, 볼트 등이 하나가 되어 규칙적인 운동을 계속하면서 톱니바퀴를 물고 돌아가
는 거대한 전기기계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기계는 단순히 근육의 힘을 증
강시키는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산업문명은 인간보다 정확한 시각, 청각, 촉각을 
갖는 기계를 만들어 과학기술에게 감각기관을 대행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산업문명은 또 새로운 기계를 만들기 위한 공작기계를 끊임없이 계속적으로 만들어 냈
다. 이렇게 함으로써 기술에 요람을 제공해 준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산업문명이 
여러가지 기계를 한 지붕 밑에 모아 놓고 상호연관된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라
하여 공장이 만들어지고 나아가서 공장 내부에 조립라인 작업체제가 확립되었다.
 이 기술적 기반 위에 서서 많은 산업이 급격하게 일어나 제2의 물결이 이루어 내는 
문명의 특질을 명확하게 했다. 맨처음 발달한 것이 석탄산업, 섬유산업, 철도산업이고
 철강, 자동차산업, 알루미늄, 화학제품, 항공기산업이 그 뒤를 이었다. 
거대한 공업도시가 각지에 출현했다. 섬유산업이 성황을 이룬 프랑스 북부의 릴, 영국
 북서부의 맨체스터, 미국의 자동차산업 도시인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 철강도시인 
서독의 에센, 소련 서부에 있는 마그니토고르스크 등 수백개가 넘는 공업도시가 태어
났다.
 이 공업중시지에서 내의, 구두, 자동차, 시계, 장난감, 비뉴, 샴푸, 카메라, 기관총,
 전동기 등 동일한 제품들이 수없이 생산되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 체계로 가동되기 
시작한 새로운 과학기술이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던 것이다.
 
 붉은 탑
 그러나 대량생산이 되었다 해도 유통체제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제1의 물결사회에서 상품은 보통 손으로 만들고 있었기 때문
에 제품은 주문에 따라 하나씩 만들고 있었다. 유통도 이러한 생산과 비슷했다.
 서구에서는 낡은 봉건적 질서의 균열이 넓어짐에 따라 상인들은 규모가 크고 복잡한 
조직을 가진 무역회사를 만들어 낸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회사들이 상선대나 낙타로 
운반하는 대상을 조직하여 전세계에 무역로를 개척했다. 그리고 이들은 유리, 종이, 
명주, 차, 포도주, 양털, 인디고(indigo), 메이스(mace) 등을 판매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품의 대부분은 소규모의 점포 또는 시골 구석까지 짐을 지고 가거나
 수레를 끌고 가서 판매하는 행상인을 통해서 소비자에게 전달되었다. 조잡한 통신사
정과 원시적인 수송수단이 판매시장을 결정적으로 한정시켜 놓았던 것이다. 
이들 소규모 점포의 경영자와 행상인들이 제공하는 상품의 종류는 극히 한정되어 있었
고 게다가 상품이 품절되는 상태가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이나 이어지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제2의 물결은 시대에 뒤떨어져서 수요를 충당하지 못하고 있는 이 유통체계에도 변혁
을 가져왔다. 유통상의 변혁은 생산부문의 변혁 못지 않게 근본적인 변혁이었다. 철도
와 고속도로, 운하가 오지까지 개발시켰다. 그리고 산업주의와 더불어 상업의 전당인 
최초의 백화저머이 출현했다. 중개인, 도매업자, 대리점, 그리고 제조업자의 대표들 
사이에 복잡한 조직망이 만들어지고 1871 년에는 조지 헌팅턴 하트포드가 대량판매망
을 확립했다. 나중에 헨리 포드가 공장에서 실현하게 된 대량 생산을 그는 유통면에서
 일찍이 실현하였던 것이다. 뉴욕에 진출한 하트포드의 최초의 상점은 붉은 건물과 중
국의 탑 모양을 본뜬 독특한 매장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세계 최초의 거대한 체인점(c
hain store) 조직인 '대서양, 태평양 차 회사(The Great Atlantic and Pacific Tea Co
mpany)'를 창립함으로써 유통산업을 기존의 것과는 전혀 새로운 차원으로 올려 놓았다
.
 특정의 단골손님만을 상대로 하던 유통이 기계와 마찬가지로 모든 산업사회에 공통적
이고 핵심적인 요소가 된 대량유통과 대량판매에 밀려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검토해 온 모든 변화를 만일 일관해서 표현한다면 '기술영역'의 변화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미개사회나 농업사회, 혹은 산업사회를 불문하고 모든 사회는 
에너지를 소비하여 물건을 만들고 그것을 유통시킨다. 어떠한 사회에서도 에너지 체계
와 생산체계, 유통체계는 상호간에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다 전체적인 하나의 
체계를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보다 전체적인 체계가 기술영역이다. 이 기술영역은 사회
의 발전단계에 따라 각기 특징적인 형태를 갖는다.
 지구상에 제2의 물결이 파급됨에 따라 농업사회의 기술영역은 산업사호의 기술영역으
로 바뀌어졌다. 재생불가능한 에너지가 대량생산체계에 직결되고 그 대량생산체계는 
고도로 발달한 대량유통체계에서 상품을 건네주게 되었다.
 
 유선형 가족
 그러나 제2의 물결의 기술영역은 획기적이고 혁명적인 사회영역이 필요했다. 즉, 기
술이 산업사회라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사회조직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산업혁명 이전의 가족형태는 지역에 따라 여러가지로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농업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어디나 백부, 백모(혹은 숙부, 숙모), 장인, 장모(혹은 시부모),
 조부모, 사촌 등 여러 세대의 가족이 한 지붕 밑에서 생활했고 경제적으로도 모두가 
하나의 생산단위로서 함께 일하는 대가족주의가 일반적이었다. 
인도의 가부장제에 대한 대가족(joint family), 발칸반도의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었
던 가족공동체 (zadruga), 서유럽에서 일반적이었언 수세대를 포함하는 종의 복합가족
인 확대가족 (extended family) 등의 예를 들 수가 있다. 그리고 가족은 이동하지 않
고 토지에 뿌리를 박고 살았다.
 제2의 물결이 제1의 물결사회를 휩쓸게 되자 가족은 변화를 강요당하게 되었다. 
각 가정 내부에서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이 충돌하면서 가정내의 분쟁, 가부장의 권
위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가 변했고 예의범절에 대한 새로운 
사고방식이 생겨났다. 경제적인 생산의 장소가 농토에서 공장으로 바뀌어지자 가족은 
이제 하나의 생산 단위로서 함께 일하지 않게 되었다. 집안의 일꾼을 공장노동으로 보
냄으로써 가족의 중요한 기능은 각각 전문적 기관들이 분담하게 된 것이다. 아이들의 
교육은 학교에 맡겨졌다. 노인에 대해서는 구호시설이나 양호시설에 맡겨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징적인 것은 새로운 사회에서는 필요에 따라 이곳저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노동자들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노부모, 병자, 신체장애자, 그리고 많은 자녀들을 부양하고 있는 확대가족은 도저히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여러가지 비극을 일으키면서 가정의 구조가 점차로 변화
하기 시작했다. 도시로의 이주로 이별하게 되고 경제적인 폭풍에 휩쓸리기도 하면서 
가족은 불필요한 친족을 떨쳐버리고 이제는 보다 작고 이동성이 큰 새로운 기술영역에
 적응해 나아갔던 것이다.
 성가신 친족들은 떼어내 버리고 부모와 두셋의 자녀들만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핵가족
이 자본주의 사회건 사회주의 사회건 할 것 없이 모든 산업사회에서의 표준적인 '근대
적' 가족의 모델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게 되었다. 조상숭배에 의해서 가부장제도가 중
요한 역할을 하고 있던 일본에서마저도 핵가족이 성행하게 되었다. 
단결심이 강한 대가족이 제2의 물결의 도래와 더불어 붕괴하기 시작했고 점점 핵가족
이 늘어났던 것이다. 요컨대 석탄이나 석유 등 화학연료, 제철소, 체인점 등이 제2의 
물결를 제1의 물결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시켰던 것처럼, 핵가족은 제2의 물결사회와 
제1의 물결사회를 확연히 구분짓는 요인이 된 것이다.
 
 내면적인 교육계획
 노동의 장소가 농토나 가정에서 벗어나 공장으로 이행함에 따라 자녀들은 공장노동에
 적합한 교육을 받을 필요가 생겨났다. '일단 사춘기를 지낸 사람들은 농업에서 전업
한 경우거나 수공에서 전업한 경우거나 간에 공장의 유능한 일꾼이 되기는 어려웠다.'
라고 1835 년에 앤드루 우어가 쓰고 있지만 산업화한 영국에서는 초기의 광산이나 공
장경영자가 먼저 그 사실을 알았다. 젊은 연령층을 미리 산업주의 체제에 적합하게 양
육하면 나중에 산업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훈련을 받을 때 직면하게 되는 곤란을 크
게 완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과 출현한 것이 모든 제2의 물결사회에 공통적인
 또 하나의 중요한 구조 즉 대중교육이다.
 공장을 모델로 해서 설립된 대중교육은 초보적인 읽기와 쓰기, 산수를 주체로 하고 
역사나 기타의 과목도 간단하게 가르쳤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교육계획이었다. 
사실에 있어서 그 배후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교육계획이 있었고 이것이 산
업사회에는 근본적으로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이 교육계획은 세 개의 과목으로 성립
되어 있었다. 물론 대개의 산업주의 국가에서는 현재도 이 세 개의 도덕과목이 존재해
 있다. 그것은 첫째, 시간 엄수이다. 둘째가 복종, 셋째가 기계적인 반복작업의 습관
화이다. 공장노동자에게 먼저 요구되는 것은 정해진 시간에 출근하는 일이다. 특히 조
립 라인의 근무자인 경우가 그러했다. 그리고 상사의 명령에 절대 복종하는 노동자여
야 했다. 또한 남자든 여자든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완전히 기계적인 반복작업을 싫증
도 내지 않고 꾸준히 일할 수 있는 인내력의 양성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19세기 중반 이후 제2의 물결이 밀어닥친 나라에서는 교육제도가 지나칠
 정도로 발달해 갔다. 취학연령은 점점 나아지고 재학생수는 늘어날 뿐이었다. (미국
에서는 1878 년에서 1956 년사이에 35 퍼센트가 늘어났다.) 그리고 의무교육 연한도 
당연히 연장되었다.
 공립학교에서의 대중교육은 분명히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진전이었다. 
1829 년 뉴욕의 어느 기계공과 직공 그룹이 선언한 것처럼 '교육은 생명과 자유 다음
으로 인류에게 주어진 축복이다.'라고 간주되고 있었다. 그러나 제2의 물결이 도래한 
이후의 학교는 몇 세대에 걸쳐서 젊은 사람들을 규격화하고 전기기계와 조립 라인에 
알맞은 획일적인 노동자를 양성해 왔다.
 핵가족제도와 공장노동자를 위한 교육제도는 젊은 사람들이 산업사회에서 유능한 역
할을 다하기 위한 종합적인 준비체제의 일부로서 기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도 제2의 
물결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건 공산주의 사회건 북이건 남이건 모두 비슷했다.
 
 법인이라는 이름의 불사조
 제2의 물결에 의해서 태어난 모든 사회에는 핵가족 및 대중교육과 함께 이러한 사회
적 영향력을 더 한층 강력하게 하는 제3의 제도가 대두되었다. 그것은 주식회사라는 
조직의 발명이었다. 그 이전의 기업에서는 보통 개인 또는 가족이 소유하고 있거나 몇
몇 사람의 공동경영이었다. 주식회사도 있기는 했지만 극히 소수의 존재에 지나지 않
았다.
 미국 독립혁명 당시만 해도 공동경영이나 개인경영을 대신해서 주식회사가 기업으로
서의 주요한 조직으로 되리라는 것은 경세사가 아더 듀잉이 말했던 것처럼 '누구도 분
명하게 말할 수 없었다.'였다. 1800 년이 되어서도 미국 전토에 있는 주식회사는 불과
 335개사에 불과했는데 그것마저도 대부분은 운하건설이나 유료도로를 경영하는 공영
에 가까운 사업체였다.
 대량생산의 개시는 이러한 상태를 일변시키고 말았다. 제2의 물결이 가져온 과학기술
은 방대한 자본의 축적을 필요로 했다. 이제는 개인이나 소수의 집단이 출자하는 한도
를 넘고 있었다. 투자할 때마다 자기개인의 전재산을 잃게 되는 위험을 각오해야 한다
면 기업의 소유자 또는 공동경영자는 위험이 수반되는 대사업에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
게 된다. 그래서 이들의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서 유한책임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만일 회사가 망하더라도 투자자는 투자한 재산만 잃을 뿐이며 그 이상의 피해는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혁신적 제도는 투자의 급격한 증대를 가져왔다.
 게다가 회사는 사법기관에 의해서 절대로 '죽지 않는 존재=법인'으로 취급되게 되었
다. 즉, 최초의 투자자가 사망하여도 법인을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기업의 입
장에서 본다면 장기적인 사업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여 전에는 생각지
도 못했던 거대한 사업에 착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01 년에는 세계 최초의 10억 달러 규모의 기업인 유나이티드 스테이츠스틸(United 
States Steel)사가 등장했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자본의 집중이었
다. 1919 년에는 이러한 거대 기업이 6개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거대기업은 모든 산업국가의 경제생활에 공통되는 특징을 이루게 되었던 것
이다. 이런 점은 사회주의 사회나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기업의 형태는 
자본주의 사회의 그것과는 상이했지만 조직면에서 보았을 때 그 본질은 대단히 비슷했
다. 핵가족, 공장식의 대중교육, 그리고 거대 기업이라고 하는 3개의 조직이 제2의 물
결에 의해서 태어난 사회에는 예외없이 출현해서 그 사회를 특징짓는 제도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본, 스위스, 영국, 폴란드, 미국, 소련 등 제2의 물결세계에서는 국민의 
대부분이 규격화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즉 핵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하여 공장노동에 
순응하기 위해 집단으로 학교교육을 받았으며 사기업이건 공영기업이건간에 대기업으
로 들어가서 일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 것이다. 개개인의 생활방식이 모든 면에서
 제2의 물결사회를 성립시키고 있는 사회제도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음악공장
 지금까지 논술해 온 가족, 학교, 기업이라고 하는 세 가지 핵심적 제도들을 중심으로
 그 밖의 여러가지 무수한 조직이 생겨났다. 정부의 각 부서, 스포츠 단체, 교회, 상
공회의소, 노동조합, 변화사회나 의사회 등의 전문기관, 정당, 독서 클럽, 미국에 많
은 인종이나 문화, 종교 등을 공통으로 하는 인종단체, 기타 수많은 단체들이 제2의 
물결과 함께 출현했다. 각 단체들은 서로 원조하거나 원조를 받거나 하는 관계 외에 
대등의 관계, 세력의 균형관계 등 실로 복잡한 조직상태가 조성되었다.
 그저 보기에는 이러한 다수의 단체들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어서 혼돈상태처럼 느껴
진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이들 잡다한 단체에도 표면에는 나타나지 않는 하나
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오면 어느 나라에서건 사회적
 제도를 발명하려는 사람들은 모두 공장이야말로 가장 진보된 능률적인 생산조직이라
고 믿는 나모지 공장 이외의 조직에도 그 원리를 적용하려고 했다. 
학교, 병원, 형무소, 정부의 관료기구 및 그 외의 조직, 분업, 위계구조, 금속처럼 냉
랭한 비인간성 등 여러 면에서 공장과 공통적인 특징을 갖게 된 것은 이것 때문이었다
.
 예술의 분야도 어떤 면에서 본다면 공장의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 오랜 농업문명시대
의 예술가는 후원자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연주가나 작곡가, 화가, 작가
들은 점차 시장원리에 좌우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술가들까지 이름도 없는 소비자들을
 위해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제2의 물결이 밀려온 나라의 여기저기에서 이
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자 예술작품의 구조 그 자체도 변하게 되었다.
 음악이 그 좋은 예이다. 런던, 파리, 비인 등 여러 도시에 콘서트 홀이 출현한 것은 
제2의 물결이 도래한 시대였다. 이와 함께 매표소가 생겨났고 예술제작에 투자하여 문
화소비자에게 표를 판매하는 흥행주라는 이름의 사업가가 나타난 것이다.
 표가 팔리면 팔리수록 당연히 흥행주의 주머니에는 보다 많은 돈이 모이게 되었다. 
그 때문에 홀의 객석수는 점점 늘어났다. 그러나 콘서트 홀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큰
 소리로 연주해야 했다. 맨 뒷좌석에서도 음악소리가 잘 들릴 수 있어야 했다. 그 결
과 음악은 실내악에서 교향악으로 그 형식이 바뀌게 되었다.
 독일에서 태어나고 후에 미국으로 귀화한 유명한 음악학자 쿠르트 작스는 그의 저서 
'악기의 역사'에서 '18세기 중에 귀족적 문화에서 민주적 문화로 이행함에 따라 음악
회장은 작은 살롱에서 거대한 콘서트 홀로 변했고 홀이 크면 클수록 한층 더 음량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라고 쓰고 있다. 당시는 이런 음량을 높이는 기술이 없었으므로 
필요한 음량을 내기 위해 점차로 악기와 연주자의 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 결
과 태어난 것이 근대의 관현악이고 베토벤이나 멘델스존, 슈베르트, 브람스 등이 웅장
한 교향곡을 쓴 것도 이러한 산업사회의 조직 때문이었다.
 관현악단은 그 내부구조에 있어서도 몇 가지 공장의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처음에 관현악단에는 지휘자가 없었다. 연주자들이 수시로 돌아가면서 지휘를 맡고 있
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연주자들은 공장이나 관료조직이 잘 정비된 사무실에서 일하
는 근로자처럼 부문별(악기별 섹션)로 나누어지고 한 사람 한 사람이 전체의 생산(음
악)에 기여하면서 매니저(지휘자)나 때에 따라서는 관리자의 계급조직에서 본다면 훨
씬 하급의 장(콘서트 마스터나 악기부의 장)에 의해 조정되게 되었다. 
그리고 악단이라는 조직이 그 제품을 대중시장에 판매한 것이다. 결국에는 음악이라는
 생산에 레코드라는 제품이 첨가하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음악의 제조공장이 탄생하
게 된 것이다.
 제2의 물결의 사회영역은 가족, 학교, 기업 등 세 가지의 핵심조직과 함께 여러 분야
의 조직이 제각기 산업기술영역의 필요에 따라 그것에 적합한 형태로 발생함으로써 성
립된다. 오케스트라의 역사는 그 사실을 명확하게 나타내는 하나의 예에 지나지 않는
다. 그러나 문명이라는 것이 단순히 기술영역과 거기에 대응하는 사회영역만으로 성립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문명에는 정보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전달하는 이른바 '정보
영역'이 필요한 것이고 이러한 점에서도 제2의 물결이 가져온 변화는 괄목할 만한 것
이었다.
 
 종이바람
 모든 인간집단은 원시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 대 인간의 직접적인 의사
전달에 의존해 왔다. 그러므로 메시지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헤서 보낼 수 있는 제도도
 필요했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외치는 보초대'라 불리는 탑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큰 음성을 낼 수 있는 사람을 올라가게 하여 이 탑에서 저 탑으로 필요한 메세지를 육
성으로 중계하도록 했다고 한다. 로마인들은 쿠르수스 푸블리쿠스(cursus publicus)라
 불리는 광범위한 메신저(messenger) 서비스망을 두고 있었다. 1305 년에서 1800 년대
초까지 이탈리아의 탁시스(Taxis)일가에서는 유럽 전체에 망아지를 이용한 일종의 우
편 서비스망을 운영하고 있었다. '탁시스 우편'이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이 우편제도
는 1628 년 당시만 해도 2 만명에 달하는 사람이 고용되어 있었다. 이 회사의 배달부
는 청색과 은색의 제복을 입고 황태자, 장군, 상인, 금융업자들 사이에서 왕래되는 메
시지를 가지고 유럽대륙을 종횡으로 뛰어다녔던 것이다.
 제1의 물결문명시대에는 이러한 정보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부자나 권력층
에 한했다. 일반대중은 이용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역사가 로린 질리아쿠스가 말한 것
처럼 '이와 다른 방법을 사용해서 편지를 보내려는 시도는 권력자에게 의심을 받거나 
결국은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즉 사람과 사람간의 정보교환은 모든 사람에게 허가된
 데 비해 가족이나 마을을 넘어서는 정보전달의 보다 새로운 체제는 본질적으로 공공
적 서비스가 아니라 사회적 혹은 정치적으로 대중을 관리하는 목적으로 이용된 데 불
과했다. 실제로 이 제도는 엘리트의 무기였던 것이다.
 제2의 물결이 여러나라로 파급되는 과정에서 대중 전달의 점유체제는 하나하나 타파
되었다. 이것은 부유계급이나 권력층이 갑자기 서민의 이익을 생각해서 그렇게 된 것
이 아니라 제2의 물결이 가져온 과학기술과 공장에서의 대량생산이 낡은 제도로는 도
저히 수용할 수 없는 정보의 '대중화'를 필연으로 했기 때문이었다.
 원시사회와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경제적인 생산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비교적 단순
한 것이어서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얻는 정보로도 충분했다. 대부분은 언어나 
몸짓에 의한 정보였다. 이것에 비해 제2의 물결경제는 다수의 장소에서 행해지는 작업
의 엄격한 조정을 필요로 했다. 대량의 정보를 낳아서 원료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그 정보를 각 방면에 유통시켜야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해서 제2의 물결이 본격화되자 모든 나라가 앞을 다투어 우편제도를 
확립하게 되엇다. 우체국이라는 것은 솜을 다루는 기계나 방적기와 마찬가지로 그 이
전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참으로 창의적이고도 사회적으로 유익한 발명이었다. 오늘
날에는 보통의 흔한 기계로 되어 버렸지만 그 당시에는 사람들은 매우 기쁘게 한 물건
들이었다. 미국의 정치가이며 명연설가로서 유명했던 에드워드 에버레트는 "우체국이
야말로 기독교와 함께 우리들의 근대 문명을 뒷받침해 주는 큰 힘이라고 생각하지 않
을 수 없다."고 말했다.
 우체국에 의해서 처음으로 산업화 시대의 대중전달회로가 열렸던 것이다. 1837 년에 
영국의 체산성은 엘리트층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1 년에 약 8800 만 통의 편지를 취급
했다. 당시의 수준에서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정보의 홍수현상이라고 할 정도의 규모였
다. 산업화 시대가 거의 절정에 이르러 제3의 물결이 일어나기 시작한 1960 년대에는 
연간 우편물취급 건수가 100억 통에 달했다. 같은 해에 미국의 우정국은 어린이까지 
포함하여 전국민 한 사람당 355 통의 국내 우편물을 배달했다.
 산업혁명과 동시에 일어났던 우편물의 홍수는 제2의 물결에 따라 밀려오기 시작한 방
대한 정보와 비교하면 그것은 극히 작은 하나의 전조에 지나지 않았다. 대규모 조직체
 내부에서는 우편물을 훨씬 능가하는 정보가 이른바 마이크로 우편제도라는 기구를 통
해서 계속 흘러가고 있었다. 회사 내부의 문서는 공공의 커뮤니케이션 회로에는 나타
나지 않지만 이 역시 편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제2의 물결이 절정에 달했
던 1955 년 후버 위원회(Hoover Commission)가 3 대 기업의 서류철 내용을 감사했다. 
그 결과 3사는 각각 종업원 한 사람당 3 만 4000건, 5 만 6000건, 6 만 4000건의 서류
나 연락문서를 철해 두고 있음이 드러났다.
 더욱이 산업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급격한 정보의 필요성은 문서만으로는 도저히 대처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19세기가 되자 전화와 전보가 발명되어 언제나 팽창일로에 있
는 대중정보의 일부를 분담하게 되었다. 1960 년의 미국내에서의 1일 통화량은 약 2억
 5000 만 건, 연간 930억 건에 이르러 세계에서 가장 발달된 전화망과 최신식의 장치
를 가지고 있으며서도 여전히 부족한 상태였다.
 이상의 예를 든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는 일정한 시간에 개인과 개인이 정보를 전달하
는 체제다. 그라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발달한 사회에서는 대중에게 메시지를 전달
하는 수단, 즉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보낼 수 잇는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했다. 소수
의 고용자를 두고 필요할 때는 그 고용인의 자택도 방문할 수 있었던 산업혁명 이전의
 고용주와는 달리 산업사회에서의 고용주는 수많은 근로자와 1 대 1의 방식으로 커뮤
니케이션을 갖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더욱이 대중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판
매업자로서는 고객의 한 사람 한 사람과 의사소통을 꾀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었다. 제2의 물결사회는 같은 메시지를 많은 사람들에게 싼 값으로 또한 단 시간내에 
틀림없이 전달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으며 또 실제로 그러한 수단을 발명했
다.
 우편은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수백만이라는 사람에게 전달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시
간이 걸렸다. 전화는 메시지를 신속하게 전달할 수 있었지만 동시에 수백만이라는 사
람에게 전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 간격을 메우게 된 것이 대중매체였다.
 오늘날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모든 산업국가들에는 예외없이 대량의 발행부수를 자랑
하는 신문과 잡지가 일상생활의 일부로 정착되어 오히려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그러나 국내 전역을 대상으로 한 인쇄물의 발행이 활발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 새로
운 산업문명적 기술과 사회형태의 급격한 결과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쇄물을 가능케 한 원인을 장 루이 세르방 슈레베르는 다음과 같은 요인이 겹
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발행한 인쇄물을 하루에(유럽 정도의 넓이) 국내 모든 곳에
 운반할 수 있는 철도, 몇 시간만에 수천만 부를 인쇄할 수 있는 윤전기, 전보와 전화
망, 그리고 무엇보다도 의무교육에 의해 글을 해득하게 된 대중과 제품의 대량판매를 
필요로 하는 산업들의 결합 때문이다.'
 신문이나 라디오로부터 영화나 텔레비전에 이르는 대중매체에도 역시 공장의 기본적 
원리가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매체는 마치 공장이 수백만의 가정에
서 사용되는 물건을 찍어 내듯이 수백만이라는 사라들의 머릿속에 같은 내용의 메시지
를 보내는 것이다. 대량생산된 표준화 제품과 마찬가지로 대량생산된 '사실'이 집중화
도니 소수의 이미지 공장에서 수백만의 소비자에게 흘러간다. 이 엄청나게 강대한 정
보유통의 체계가 없었더라면 산업문명은 형성되지 못했을 것이고 확실하게 기능을 발
휘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여 모든 산업사회에서는 자본주의 사회건 사회주의 사회건간에 주도면밀한 
'정보영역', 즉 커뮤니케이션 루트가 발생했으나 개인적인 메시지나 대중 상대의 메시
지도 모두 이 루트에 의해 제품이나 원료처럼 효율적으로 분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정보영역은 기술영역과 사회영역에 결합되어 그것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경제적 제품
과 개인의 소비활동을 연결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이 세 가지 영역들은 그것들을 통합한 보다 큰 체계 속에서 각기 주요한 역할을 했으
며 어느 것이나 개별적으로 존재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었다. 기술영역은 부를 생산하
여 그것을 개인에게 분배했고 사회영역은 서로 관련을 갖는 무수한 조직을 통해서 개
인에게 체계내에서의 역할을 분담했다. 그리고 정보영역은 체제 전체가 작동하는 데에
 필요한 정보를 배정했다. 이 세 가지 영역이 일체가 되어 사회의 기본구조를 형성한 
것이다.
 이상이 제2의 물결에 의해 이루어진 모든 사회에 공통되는 구조의 윤곽이다. 
그것은 문화적 또는 풍토적인 차이나 인종적, 종교적 유산을 초월하여 스스로가 자본
주의를 표방하건 사회주의를 표방하건 상관없이 공통의 구조를 찾게 되는 것이다.
 서독이나 프랑스, 캐나다뿐만 아니라 소련이나 헝가리에서도 비슷한 이들 기본구조는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가 표현되는 한계를 설정해 주었다. 어느 나라에서는 낡
은 제1의 물결구조를 지키려는 사람들과 그 낡은 문명의 고통스러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문명 뿐이라는 인식을 가진 사람들간의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인 격심한 투쟁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이러한 공통의 사회구조가 출현되었던 것이다
.
 제2의 물결의 도래와 함께 인류의 희망은 상상을 넘을 정도로 커졌다. 인류역사상 처
음으로 빈곤과 기아, 질병이나 전제정치를 추방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18세기 영국의 평등사상가 아베 모렐리나 공상사회주의자 로버트 오웬, 프랑스의 사회
과학자 생시몽, 사회개혁가 푸리에, 사회주의자 프루동, 루이 블랑, 미국의 소설가 에
드워드 벨라미 등 수많은 유토피아 작가나 철학자들은 눈앞에 전개되기 시작한 산업문
명 속에서 평화와 화합의 도래, 실업문제의 해소, 부화 기회균등, 족벌에 의한 특권의
 종언, 기타 수십만년 동안의 원시생활, 수천년 동안의 농경문명 속에서 절대로 변화
하지 않고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믿어오고 있던 일의 상황에 종지부를 찍을 가능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오늘날에 만일 산업문명이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제로는 가
혹하고 황량하며 상태학적으로도 위험에 처해 있고 전쟁과 연결되기 쉽고 인간의 심리
를 억압하고 있는 것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제2의 물결을 살아가는 정신구조를 서로 적대적인 두 부분으로 분열시
키는 거대한 쐐기가 무엇인가를 살펴볼 때 우리는 처음으로 이 문제에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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