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제3의 물결

제3장 보이지 않는 쐐기

by FraisGout 2020. 7. 27.

 제2의 물결은 마치 핵분열의 연쇄반응과 같이 종전에는 하나의 통합체였던 인간생활
을 격렬하게 양쪽으로 갈라 놓았다. 그 과정에서 제2의 물결은 우리들의 경제생활, 정
신구조, 나아가서 성적 자아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쐐기를 박
고 말았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보면 산업혁명은 아주 독특한 기술이나 사회제도 및 정보채널들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매우 종합적인 사회구조를 이루어 놓았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산업혁명은 사회의 내면적인 통일성을 깨고 우리 생활을 경제적 긴장, 사회적 대립, 
심리적 불안 등이 가득찬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제2의 물결시대를 통하여 이 보이지 
않는 쐐기가 우리 생활의 유형을 어떻게 변회시켰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 오늘날 우리
 생활을 재구축하려는 제3의 물결의 충격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물결은 우리 인간생활을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개의 극으로 갈라놓고 말았다. 
이를테면 우리는 현재 자기자신을 '생산자'와 '소비자'의 어느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어느 시대에나 적용된 것은 아니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인류가 자신의 손으로 생산한 식량이나 그 밖의 일용품, 또는 갖가
지 서비스의 대부분이 생산자 자신이나 그 가족 또는 자기를 위해 어떻게든 잉여물자
를 모을 수 있었던 극소수의 엘리트에 의해 소비되고 있었다.
 농업사회의 단계에서는 대개 인구의 대부분이 영세한 농민이며 그들은 겨우 외부와의
 교류도 별로 없이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식사를 하며 소
유주의 유복한 생활에 필요할 만큼만 경작을 하면서 최저수준의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농민이 농업기술을 개선하거나 생산을 늘리는 데에 적극적인 의지를 갖지 못한 이유
로서는 장기간 식량을 저장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고 또 먼 시장에 식량을 운반하기 
위한 도로도 없었다. 물론 아무리 생산을 늘린다 하더라도 노^36^예소요주나 봉건영주
에게 징수당하여 버린다는 사실을 농민들도 잘 알고 있었다.
 물론 상업도 존재했었다. 극소수의 두려움을 모르는 상인이 나타나 수레 또는 배에 
상품을 싣고 수천 마일의 먼 곳까지 운반했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또 도시의 발생
이 농촌지대에서 운반되는 식량공급에 의존했었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1
519 년 멕시코에 도착한 스페인 사람들은 틀라텔롤코(Tlatelolco)에서 수많은 주민들
이 갖가지 상품을 매매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보석, 귀금속, 노^36^예, 샌들, 포목, 
초콜릿, 로프, 짐승가죽, 칠면조, 야채, 토끼, 개, 각종 도기류와 같은 잡다한 것이 
매매되고 있었던 것이다. 16세기에서 17세기에 걸쳐 독일의 금융업자들을 위해 발행된
 민간통신 '더 푸거 뉴스레터: The Fugger Newsletter'를 보면 당시의 무역이 얼마나 
활발했던가를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코친(Cochin)에서 온 한 통의 편지는 후
추를 사들여 유럽으로 운반하기 위해 5척의 선단을 편성하여 인도로 온 한 유럽 상인
의 활동을 자세히 전하고 있다. '후추의 매매는 이익이 많은 장사이다. 그러나 그 장
사를 하려면 일에 대한 열의와 인내가 요청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 상인은 후추
 외에도 정향나무, 육두구, 밀가루, 육계피와 같은 약재 등을 싣고 유럽 시장으로 가
져갔다.
 그란 이와 같은 상업활동은 역사에 매우 미미한 흔적을 남겼을 뿐이며 당시의 생산품
은 그 대부분이 농토가 없는 노^36^예나 농노들 자신이 소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16세
기에 이르러 이 시대의 역사를 깊이 있게 연구한 페르난도 브로델에 따르면 서쪽은 프
랑스, 스페인에서 터키 국경에 이르는 지중해 연안 전역의 인구는 6000 만에서 7000 
만 정도였으며 시장에 팔기 위해 내놓은것은 극소수였다고 한다. 
브로델은 '지중해 연안 지역의 전생산물 중 60--70 퍼센트까지는 결코 시장경제에 유
입되는 일이 없었다.'고 기술하고 잇다. 지중해 연안 지역까지도 그러했었다면 북유럽
의 경우는 도저히 시장이라고 할 만한 정도의 것이 아니었음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메마른 토지와 긴 겨울 때문에 영세한 농민들이 잉여생산물을 얻어내기는 더
욱 곤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제3의 물결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업혁명 이전의 제1의 물결경제가 두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두는 것이 바람직하다. 첫째 부문에서는 자가소비를 위해
 생산활동이 이루어진다. 둘째 부문에서는 팔거나 교환하기 위해 생산활동을 하게 된
다. 제1의 물결경제에서는 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매우 크고 후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극히 작은 것이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생산과 소비는 단순한 생활유
지기능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양자가 완전히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리스인이나 로
마인, 중세 유럽인들은 생산과 소비를 구별하지 못했다. '소비자'라는 말조차 없었다.
 제1의 물결시대를 통해서 시장경제에 생활의 터전을 두고 있었던 것은 전인구 중 극
히 적은 부분이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장과는 상관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역사가 
R.H. 토니는 "금전거래는 자연경제의 세계에서는 주변적이고 2차적인 행위였다."라고 
말하고 있다.
 제2의 물결은 이러한 상황을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그때까지 기본적으로 자급자족을
 하는 사람들과 자급자족의 사회를 대신하여 역사상 처음으로 대량의 식량, 일용품, 
서비스란 것이 모두 판매나 물물교환을 목적으로 생산되고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제2
의 물결에 의해서 생산자 자신과 그 가족이 자가소비를 위해서만 물건을 만드는 경우
는 사실상 없어져 버렸다. 이미 거의 자급자족으로 사는 사람이 없는 문명, 농민까지
도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문명을 창조하게 되었던 것이다. 
모두가 다른 사람이 생산한 식량이나 일용품, 서비스에 의존하여 생활하게 되었다.
 요컨대 산업주의는 하나였던 생산과 소비를 분열시켜 생산자와 소비자로 갈라 놓았다
. 이렇게 해서 제1의 물결시대의 생산과 소비가 융합된 경제는 양자가 분리된 제2의 
물결경제로 변모되었다.
 
 시장의 의미
 생산과 소비의 분열은 매우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짐나 그 의미는 오늘날까지도 잘 이
해되지 않고 있다. 먼저 시장은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기 이전은 그다지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는 시장을 중심으로 하는 생활이 전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즉 
경제가 시장을 중심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산업화도니 사회라면 자본주의
 경제나 사회주의 경제에서 공통적으로 일어났다.
 서구의 경제학자들은 시장을 순전히 자본주의적 생활실태만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
어 이 말을 '이윤추구형 경제'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교환, 또는 시장은 이윤보다 먼저 발생된 것이다. 왜냐하면 시장이란 정확히 말
해서 재화나 서비스가 마치 메시지처럼 각기 적당한 목적지로 송달되는 교환조직 또는
 문자 그대로 교환대에 불과한 것으로서 자본주의적인 것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사실
 시장이라는 교환대는 이윤추구형의 산업주의뿐만 아니라 사회주의적 산업사회에도 필
요불가결한 것이다.
 요컨대 제2의 물결이 몰아닥쳐 생산의 목적이 자가소비에서 교환으로 바뀐 사회에서
는 그 교환을 하는 기구가 존재해야 했다. 다시 말해서 시장의 존재가 필요했다. 그러
나 시장이란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경제사가 칼 폴라니는 초기의 사회에서는 사회적 
또는 종교문화적인 목적에 종속되어 있던 시장이 산업사회가 되자 반대로 사회의 목적
을 설정하는 존재로 변모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산업사회에서는 인구의 대부분이 화폐경제 속에 짜여지게 되었다. 상업적인 가치가 중
시되기에 이르고 시장규모로 측정할 수 있는 경제성장이 자본주의 국가이든 사회주의 
국가이든 정부으 제일 목표가 된 것이다.
 시장이 커지게 된 배경에는 원래 시장의 성격이 확대를 목표로 꾸준히 자신을 강화하
여 가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이다. 초기의 분업이 상업을 발달시켰던 것과 같이 이번에
는 시장이라는 교환대의 존재 자체가 다시 노동의 세분화를 촉진하고 그 결과 생산성
의 급상승을 가져오게 되었다. 즉 노동의 분화와 시장이 서로 상대방의 활동을 촉진하
면서 확대되어 간다는 자체증폭의 과정이 시작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장의 폭발적인 확장은 생활수준의 전례없는 비약적 상승을 가져왔다.
 그러나 정치면에서는 제2의 물결에 휩싸인 여러 나라의 정부들이 생산과 소비의 분리
로 생겨난 새로운 대립에 의해 차츰 분열이 심화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중시하는 계급투쟁이라는 사고 방식은 고임금, 고이윤을 추구하는
 생산자(노동과 경영자의 쌍방을 포함한다.)의 요구와 반대로 가격인하를 추구하는 소
비자(마찬가지로 노동자와 경영자 쌍방을 포함한다.)의 요구 사이에 생긴 보다 크고 
보다 심각한 대립을 불명확하게 만들어 버렸다. 경제정책은 이 대립을 받침대로 해서 
어느 쪽의 요구에 역점을 두느냐에 따라 시소와 같이 변동해 왔다.
 미국에서의 소비자 운동의 증대, 폴란드에서의 공정가격인상에 반대하는 폭동, 물가
와 임금정책을 둘러싸고 영국에서 쉬지 않고 계속되는 논쟁, 또 소련에 있어서의 중공
업과 소비재 공업의 우선순위를 둘러싼 끝없는 이데올로기 투쟁, 이런 것들은 모두 자
본주의나 사회주의를 불문하고 생산과 소비의 분리가 사회내부에서 일으킨 심각한 대
립의 구체적인 예이다.
 정치뿐 아니라 문화도 또한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의해서 변모되었다. 왜냐하면 이 
분리에 의해 금전만능, 이익추구형의 상업본위적이고 극히 타산적인 문화가 역사에 출
현했기 때문이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 가족의 유대, 사랑, 우정, 이웃이나 지역공동
체와의 유대는 모두 상업주의적 이기심에 물들어 타락해 버렸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공산당 선언'에서 '새로운 사회에는 노골적인 사리, 가차없는 
현금거래 이외에 사람과 사람을 묶어둘 고삐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사라마과 사라마의 인간적인 유대가 상실되었다는 지적은 옳았지만 마르크
스가 그 책임을 자본주의에 떠넘긴 것은 옳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집필했을 당시에 관찰할 수 있었던 유일한 산업사회는 자본주의 형태였다. 
사회주의, 적어도 국가사회주의에 기반을 두고 산업사회가 성립된 지 반세기 이상이 
경과된 현재 약탈적인 이윤추구, 상업적 부패, 인간관계를 차가운 경제관계로의 격하 
등은 결코 이윤추구를 노린 자본주의 사회만의 독점물은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금전, 재화, 물질에 뒤따르는 끈질긴 관심은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라는 체제와는 관계
없이 산업주의의 반영이다.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시장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그 때문에 이런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누구나가 생활필수품을 얻기 위해 자기의 생산 기술보다는 시장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
을 수 없다.
 시장이 중심적 역할을 하는 산업사회에서는 정치체제와는 관계없이 제품뿐 아니라 노
동, 아이디어, 예술, 영혼까지도 모두 거래나 교환의 대상이 된다. 이를테면 구미에는
 부정한 커미션을 착복하는 구매담당자가 있으며 소련에는 책을 출간해 주는 대신에 
저자로부터 뇌물을 받는 편집자나 의뢰받은 일을 하기 위해 요금 이외의 보드카를 1병
 요구하는 연관공이 있기도 하다. 프랑스나 영국, 미국에는 돈만을 위해서 일을 하는 
작가나 화가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소련의 별장, 보너스, 새 자동차의 구입권과 
같은 여러가지 경제적 특전을 얻기 위해 창작상의 자유를 포기하는 작가나 화가, 극작
가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패나 타락은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 수반하여 발생한 것이다. 
소비자와 생산자를 다시 연결하여 생산된 상품을 소비자에게 도달케 하기 위한 교환대
로서의 시장이 꼭 필요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시장을 지배하는 사람들이 어떤 논법으
로 그 권력을 정당화하려고 하는가는 별도로 하고도 지나친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모든 산업사회, 즉 제2의 물결사회의 특징을 이루는 이 생산과 소비의 분리는 인간서
에 관한 우리의 퍼스낼리티에 대한 전제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인간의 행동을 일련의 
'거래행위'로서 간주하게 된 것이다. 우정, 혈연관계 혹은 부족의 장이나 영주에 대한
 충성에 바탕을 두는 사회를 대신하여 제2의 물결으 도래와 함께 실질적 또는 암묵적
인 계약관계에 기반을 두는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부부 사이까지
도 계약결혼이라는 말이 오르내리는 시대인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라는 두 역할의 분리는 또한 이중적인 퍼스낼리티를 만들어 냈다. 
동일인물이 생산자로서는 가정에서나 학교, 직장의 상사로부터도 개인적인 만족은 뒤
로 미루고 규율이나 통제에 복종하며 모든 것에 소극적이고 순종하며 팀의 일원으로서
 행동하도록 교육받는 한편, 소비자로서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만족감을 충족하고 신
중히 행동하기보다는 쾌락에 사로잡혀 규율 따위와는 상관없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즐겨움을 추구하려고 애쓴다. 다시 말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을 요구받았다. 
특히 서구에서는 소비자에 대한 광고기술이 교묘해져서 소비자에게 돈을 빌려서라도 
충동구매를 하게 하고, '먼저 하늘의 여행을 즐기십시오. 지불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라는 팬 아메리카의 광고처럼 경제의 수레바퀴를 계속 돌아가게 함으로써 국가발전에
 공헌하자는 것이다.
 
 남녀의 역할분리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시킨 제2의 물결사회의 거대한 쐐기는 노동 또한 두 종류로 
나누어 놓았다. 이 사실은 가정생활, 남녀의 역할 및 개인의 내면생활에도 커다란 충
격을 주었다.
 산업사회에 가장 일반적인 남녀에 대한 고정관념의 하나는 남자는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하여 '객관적'이며 여자는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만일 남녀의 차이에 관하여 이런
 견해에 진실의 핵심이 들어 있다면 그것은 생물학적 실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쐐기에 의한 심리적인 영향일 것이다.
 제1의 물결사회에서는 노동의 대부분이 논밭이나 가정에서 이루어졌고 가족전체가 하
나의 경제단위로서 일하며 생산된 물품은 대부분 촌락이나 장원에서 소비되고 있었다.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이 하나로 융합되어 있었다. 촌락에서는 어디서나 자급자족이 일
반적인 사실이었기 때문에 일정지역의 농민이 많은 수확을 올리느냐 못 올리느냐는 다
른 지역의 풍작, 흉작과는 관계가 없었다. 하나의 생산단위 속에서도 사람들은 계절이
나 질병이나 기호에 따라서 자기역할을 바꾸거나 타인과 일을 교환하면서 여러 종류의
 일을 했다. 산업주의 이전의 분업은 매우 원시적인 것이었다. 제1의 물결에 속하는 
농업사회의 노동은 상호간의 의존도가 낮은 것이 특징이었다.
 영국, 프랑스, 독일, 기타 국가들에 밀려든 제2의 물결은 노동의 장소를 농토와 가정
에서 공자으로 옮기고 노동의 상호의존도를 비약적으로 높였다. 노동은 이제 집단작업
이 되고 분업, 조정, 각종 기술의 통합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일을 잘 되기 위해서는
 작지에서 모인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신중히 계획된 협동작
업에 의존하도록 되었다. 대형 제철소나 유리공장에서 자동차공장에 필요한 제품이 원
만히 흘러가지 않으면 경우게 따라서는 산업계나 지역경제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상호의존도가 높은 노동과 낮은 노동이 서로 충돌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분담, 책임, 
또는 보수에 대한 격렬한 분쟁이 생기게 되었다. 예를 들면 초기의 공장경영자는 종업
원의 책임감 결여로 고민했다. 공장 전체의 능률에는 전연 관심이 없고 가장 분주한 
시기에 낚시를 가거나 소란을 떨거나 술에 취해 나타나기가 보통이라고 불평했다. 사
실 초기의 공장노동자 대부분은 농민 출신이고 상호의존도가 낮은 일만 해 왔기 때문
에 생산공정 전체 속에서의 자기역할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족하여 자기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공장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능률저하나 경영의 파탄과 직결된다는 사실을 이해
하지 못했다. 게다가 임금이 비참할 정도로 낮았기 때문에 일할 의욕이 희박했다는 면
도 무시할 수 없다.
 상호의존도가 높은 노동과 낮은 노동이라는 두 노동형태가 충돌한 결과 새로 태어난 
노동형태의 우위는 명백해졌다. 생산이 차츰 대규모 공장과 사무실에 집중되기에 이르
고 농촌인구는 흡수되고 있었다. 수많은 노동자들이 상호의존도가 높은 조직의 구성원
으로 짜여졌다. 제2의 물결이 만들어 낸 노동은 이렇게 해서 제1의 물결과 관련된 과
거의 낡은 노동형태를 완전히 압도하고 말았다.
 그러나 상호의존적인 노동이 자급자족의 노동으로 완전히 대치된 것은 아니었다. 
낡은 노동형태가 완고하게 고수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바로 가정이 그러한 곳이었
다.
 가정은 여전히 아기를 낳는다는 생물학적인 재생산을 하면서 육아와 문화의 전승에 
종사하는 독립된 하나의 단위였다. 어는 가정이 출산이나 육아에 실패하거나 자녀를 
장래의 노동형태에 잘 적응시키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반드시 이웃의 출산이나
 육아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말해서 가정내의 노동은 상호의존도가 낮
은 활동이었다.
 이런 상황하에서도 주부는 여전히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해왔다. 그것은 바로 출산과
 육아, 기타 가사노동이다. 주부가 하는 일도 '생산'이었다. 그러나 그 생산은 자기의
 가정을 위한 것이지 시장에 내놓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남편은 직접적인 경제활동에 진출하고 있었던 데 비해 주부들은 가정에 
남아 간접적인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는 역사적으로 보다 진보된 
형태의 노동을 분담하고 여자는 뒤쳐져서 더욱 뒤떨어진 형태의 노동을 맡았다. 남자
는 이른바 미래를 향해 전진한데 비해 여자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려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남녀의 역할분담은 사람들의 인격과 내면생활에서도 분열을 야기시켰다. 
공장이나 사무실은 본래 수많은 사람이 모이는 공공장소이며 조정이나 통합을 필요로 
하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래서 공장노동이나 사무노동이 일반화되자 객관적인 분석
이나 객관적인 인간관계가 강조되게 되었다. 남자는 어린 시절부터 장차 상호의존적인
 세계에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길러지고 '개관적'인 사람이 되도록 기대되었다. 이에 
비해 태어날 때부터 사회적으로는 상당히 고립되어 출산, 육아 그 밖의 여러가지 단조
로운 가사를 분담하도록 훈련된 여자는 '주관적'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여성은 대
부분의 경우 합리적이고 분석적인 사고는 어렵다고 생각되어 왔다. 왜냐하면 합리적인
 사고나 분석적 사고는 본시 객관성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이렇게 생각해 보면 비교적 고립되기 쉬운 가사노동에서 벗어나 타인과 관계가 깊은 
상호의존적 생산에 종사하는 여성이 여자답지 않고 냉철하고 거칠어졌다고 비난받는 
일은 당연했다. 요컨대 그러한 여성은 '객관적'으로 되게 마련인 것이다.
 남녀의 차이나 그 역할에 관한 고정관념이 사실은 남자도 소비활동을 하고 여자도 생
산활동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생산에만 종사하고 여자는 소비만을 한다는 
그릇된 사고방식에 의해서 더욱 강조되어 갔다. 즉 제2의 물결이 지구상을 휩쓸기 훨
씬 이전부터 여성은 억압된 존재였지만 현대의 '남녀의 투쟁'은 거시적으로 보면 두 
노동형태의 대립과 함께 시작되고 특히 생산과 소비의 분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생
산과 소비가 분리된 경제는 남녀의 분열에도 박차를 가한 것이다.

 여기까지 밝혀 온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쐐기가 박혀 생산자와 소비자가 분리되자 
그 뒤에 여러가지 중요한 변화가 연이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시장이 형성
되고 확대되어 생산자와 소비자를 결부시키는 새로운 정치적, 사회적인 대립이 생기고
 남녀의 새로운 역할이 정해지기도 했다. 그러나 생산과 소비가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이 정도의 의미만으로는 그치지 않았다. 제2의 물결사회는 모두 같은 방법으로 운영되
고 특정한 기본적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다. 생산의 목적이 이윤이든 아니든, '생산수
단'이 공공의 것이든 사유이든, 또 시장이 '자유경제'이든 '계획경제'이든, 자본주의
이든 사회주의이든 이 점에 대해서는 똑같다.
 생산이 자급자족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교환을 위한 것이라면 생산물을 경제적인 교
환대나 시장을 통하여 유통시키는 한 제2의 물결 특유의 원리는 준수되어야 했다.
 일단 이러한 원칙의 존재가 확인되면 모든 산업사회의 숨겨진 역할관계가 밝혀지게 
된다. 제2의 물결시대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사고방식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이 제2의 물결문명의 기본법칙, 즉 사람들의 행동규범서를 형
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타 > 제3의 물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장 권력의 전문가  (0) 2020.07.27
제4장 규범의 내용  (0) 2020.07.27
제2장 문명의 구조  (0) 2020.07.27
제1장 내일에의 대투쟁  (0) 2020.07.27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