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 론
특정지역을 지목하면서 문화상품을 논의하는 것은 일단 그 지역 발전을 위해 문화 및 매체산업들이 지닌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것을 하나의 전제로 삼고 있음을 뜻한다. 좀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러한 논의에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담겨져야 한다.
○ 문화 및 매체산업들에 대한 지역 차원의 실태 파악.
○ 문화지향적 지역 발전을 위한 문화 및 매체산업들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
○ 광역뿐 아니라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기초 자치단체 및 그보다 하위구조가 지닌 잠재력의 파악.
○ 지역의 ‘문화 환경’ 조성을 둘러싼 좀더 광범한 논의와 함께 문화 및 매체산업을 주도하는 기업들의 요구사항.
○ 문화 및 매체산업들과 직업의 질화(qualification)에 관한 토의 및 문화와 매체산업을 위해 타당성을 지닌 지역 내 공교육 체제의 교과에 대한 기초 조사.
○ 지역과 이를 포괄하는 좀더 넓은 단위의 권역들 안에서의 발전경향들에 대한 기초적 분석과 이를 위해 활용가능한 자금에 대한 조사.
○ 지역 내 발전을 위한 문화 및 매체산업의 내발적 잠재가능성의 활용을 추진할 방안.
그러나 이와 같은 논의들을 전개해 나가자면 무엇보다도 문화산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합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2. 문화 및 매체산업의 정의
여기에서 기술, 분석, 그리고 평가의 대상으로 삼고자 하는 문화산업은 종종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 경제단위들의 다면적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많은 경우, 그것들은 하나의 단순하고 분명한 양적 또는 통계적 관찰방식으로는 파악되지 않는다. 경제 통계들은 좀더 산업적으로 정향된 과거의 생산사회적 구조들에 짜맞춰져 있다. 따라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서의 광범한 서비스산업들과 새로운 생산부문들의 급격한 성장에는 아주 제한된 정도로 밖에는 적용 가능하지 않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문화 및 매체산업은 오늘날 생산과 서비스 산업의 다양한 문화 내지 문화적으로 합당한 영역들을 포괄한다. 오늘날 ‘문화 및 매체산업’을 정의함에 있어서 중심되는 기준으로서 “즐거움을 주려는 목적”이 은연중에 작용하고 있고, 이에 따라 문화 및 매체산업은 그러한 활동들중 ‘사경제적 부문’에 속하는 것만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당화되는 경향이 있다(이에 따라 예컨대 독일과 같은 경우 문화 및 매체산업에는 공공적인 지원을 받는 문화기관들이 포함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자영적인 예술가들과 문화생산자들이 중·소 그리고 대규모의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문화 및 매체산업의 한 부분을 이룬다. 같은 이유로 자영적인 프리랜서 예술가들은 민간부문 안에 고용된 예술가들과 꼭 마찬가지로 문화경제의 한 부분을 이룬다.
문화 및 매체산업은 모터산업과 같은 다른 경제분야들에서 발견되는, 긴밀하게 짜여진 집단 및 단체들과 비교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정의에 따른다면, 문학과 책 시장은 문화산업의 한 분야로서, 독립적인 작가들을 하나의 하위집단으로 포괄한다. 그러나 동시에 출판사, 인쇄소, 제책소 그리고 서점을 포함한다. 그러나 종이 생산과 기계설비에 포함된 좀더 원초적인 산업들은 포함시키지 않는 것이 상례이다. 일반적인 정의를 요약하자면, 대체로 다음과 같다.
‘문화 및 매체 산업’이라는 말은 종종 밀접하게 연관된 경제부문들의 고도로 차별화된 집단을 기술한다. 그것이 지니고 있는 협의의, 광의의, 그리고 보완적인 의미들은 예술적 생산을 준비하고, 창조하고, 보존 또는 보호하거나 매체를 통한 문화의 보급 내지 출판, 그리고 제품생산과 시장생산을 목적으로 수행 또는 작동하는 모든 상업적 기업활동과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포괄한다.
예술 및 문화 연관적 산업들의 다소간 복합적인 분야를 위한 약어인 ‘문화산업’이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음악산업’, ‘문학 및 책 시장’, ‘미술 시장’, ‘영화와 텔레비전산업’, 그리고 ‘공연예술들과 오락’을 포함한다. 오늘날 새로운 매체들의 도입과 함께 흔히 영상매체 내지 산업만을 주목하는 경향이 농후한데, 이와 같은 관점은 지극히 편협하고, 불완전하며, 심지어 유해하기조차 하다. 더군다나 그와 같은 산업의 하드웨어적인 측면만을 마치 문화산업의 전부로 착각할 때, 이른바 문화침탈 현상은 거의 불가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이와 같은 정의가 공공적 목적에 의해 지탱되는 문화생활의 요소들과 공공적인 지원을 받는 문화적 설비들을 제외하고 있긴 하지만, 민간부문과 공공부문간의 공통적인 관심과 상호작용의 존재 자체가 어쨌든 순수히 경제적인 전망을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 문화생활 및 그것의 하부구조적 전제와 문화 및 매체산업은 많은 방면에서 보충적이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나 그것은 종종 주장되듯이 직접적인 경쟁관계에 들어서서는 안된다.
흔히들 ‘문화의 경제적 효과’라는 말을 쓰곤 하는데, 이 역시 상당히 조심스러운 표현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용적으로 문화에 대한 공공적 지출을 경제적으로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바, 그와 같은 지출이 반드시 경제적인 의의만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은 문화에 대한 정당한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오늘날 무시할 수 없는 비중을 차지한다. 따라서 이와 같은 정황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우리는 잠시 “문화는 돈이 든다”는 통설을 다소간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기로 한다.
3. “문화는 돈이 든다?”
문화는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도 그것이 자극하는 창조적, 개혁적, 그리고 생산적 효과들이 제대로 관찰되는 경우가 드물다. 이는 예술·문화와 급속하게 성장하는 문화 및 매체산업과의 상호작용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비슷하게 오늘날의 사회 속에서 문화 및 매체산업이 지역 경제구조 안에서 중핵적인 요소가 될 수 있고, 어떤 방식으로나 여타의 미래정향적 경제부문들에 대해 부차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사실이 망각된다. 문화 및 매체산업은 다음과 같은 의의를 지닌 것으로 확인된다.
○ 지식집중적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특히 고도의 질적 수준을 요청한다.
○ 노동집약적이고 제한적인 정도에서만 합리화(기계화)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그것들은 보통 수준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해낸다(그리고 그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높지 않은 임금으로 가능하다).
○ 보통 중·소규모의 기업에 의해 특징지워진다(물론 대규모의 매체재벌은 예외적이다). 다시 말해서, 상당한 정도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지역경제의 사이클 속에 자리잡고 있다.
○ 밀접하게 짜여진, 그러면서도 유연한 생산 및 서비스 체제들의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해 경제적 위기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다.
4. 결 론
문화상품을 단순히 관광기념품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이 글에서 짐짓 문화 및 매체산업이라는 좀더 넓은 범위의 문제를 거론하였다. 물론 여기에서 다루지 못한 관광산업 역시 중요한 문화산업들 중 하나로 간주될 수 있고, 필자는 그것이 지닌 문화적 의의를 강조하기 위해 ‘문화관광’을 강조해 왔다. 최근 관광진흥 10개년계획이 발표된 바 있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논의되었다는 점에서 언론으로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관광이란 궁극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이곳으로 오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이질적으로 보이는 문화경험을 통해 오히려 인간과 세계에 대한 증폭된 이해를 가능케 하자는 데 그 궁극적인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도 공감할 수 있는 볼거리, 먹을거리, 그리고 살거리를 어떻게 마련하며, 그들이 우리들과의 접촉에서 인정을 느낌으로써 이를 두고두고 즐거운 추억거리로 삼거나 다시 찾아오게 할 수 있는 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 때 우리것만을 강조하는 일방통행식 강요는 될 수 있는 한 기피되어야 한다. 우리 자신이 객지에 가서 지치면 우리 입맛을 살린 먹을거리를 찾듯이, 그들이 이국적인 문물들 속에서도 자신의 고유한 문물을 찾아낼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이와 같이 폭넓은 전망을 가질 때에야 비로소 서울을 오래도록 추억하게 할 문화상품이 가능해질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서울이라는 세계도시가 문화 및 매체산업의 의의를 일상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진흥코자 하는 용의를 제대로 갖춘 때에라야 서울은 비로소 세계적인 문화도시의 반열에 들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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