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udy 3/문화경제론

문화예술의 공공재적 성격

by FraisGout 2020. 7. 11.

1. 공공재의 기본성격

 

외부적 또는 집단적인 이익을 갖는 재화나 서비스는 경제학자들이 공공재’(public goods)라고 부르는 성격을 갖는다. 이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마련이다. 첫째로 그것은 여러 사람들이 공동으로 소비(joint con-sumption)한다. 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이 향유할 총량을 감소시키지 않고 그것을 소비할 수 있음을 말한다. 국방, 대기오염 통제, 공중보건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그러한 사례에 속한다. 공동 소비는 분명히 일상적인 사유재’(private goods)와 특징을 달리한다. 두 사람이 동시에 똑같은 한 켤레의 구두를 신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 공공재는 소비자를 개별적으로 배제(exclusion)할 수 없다. 이는 일단 재화가 존재하면, 설혹 어떤 사람이 혜택을 위한 지불을 거절할지라도, 그것으로부터 이득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할 길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사람에게나 그것을 소비하는 혜택을 위해 특별한 지출을 강요할 수 없는 까닭에, 공공재는 일상적인 재화처럼 시장가격에 의해 사적인 생산자로부터 공급받을 수 없다. 그 대신 반드시 공적 부문에 의해 생산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공공에 의해 지불되어야 하기 때문에 공공재라고 불린다.

예술에 의해 생산되는 외부적 편익들은 순수한 공공재의 특색을 갖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공동 소비라는 특성에는 해당되지만 배제라는 특성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예술작품들이 후손을 위해 보존되어 옴으로써 예컨대 사람의 딸이 30년간 누릴 이익이 그 사람의 아들이 같은 원천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감소시키지는 않을 것이며, 자녀들로 하여금 그것을 소비하지 못하도록 배제함으로써 예상되는 이익을 위한 지불을 부모에게 강요할 수도 없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배제는 불가능하다.

주지하다시피 일상적인 재화의 경우에는 경쟁의 원리에 의해 소비자의 선호에 따라 생산이 자동적으로 조절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공공재가 시장에서 판매될 수 없다면, 사회는 어떻게 그것들이 소비자들을 만족시킬 수 있도록 적정량으로 생산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가? 이론적으로 보면, 시민들이 공공재의 대안을 위해 지불할 용의를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를 찾아내기 위한 조사를 정부가 추진해야 한다. 그리고 추가적인 단위를 지불할 용의가 있는 시민들의 한계비용(marginal cost)을 충당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을 준비해야 한다.

예컨대 미국의 경찰서비스는, 지역적으로 마련되는 공공재이다. 만일 어떤 도시가 어느 정도의 경찰력을 마련할 것인지를 결정코자 한다면, 당국은 개별 시민들에게 최초의 경찰관과 제 2, 3 등등의 경찰관을 파견하는 데 얼마를 낼 용의가 있는지를 물을 것이다. 각각의 양으로 표시된 총계가 경찰력이라고 불리는 집합적 재화를 위한 공적 수요곡선상의 한 지점이 될 것이다. 마련해야 할 최적량(optimum quantity)은 이 수요곡선과 경찰관을 위한 노동시장 공급곡선간의 교차지점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2. 지불용의성의 이념과 현실

 

예술과 문화가 지닌 외부성(externalities)을 고려한 경우에는 최적생산량을 계산해 낼 물리적 단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에 대하여 최종결정을 내려야 할 공중이 예술과 문화로부터 어떤 외부적 편익들이 존재한다고 믿는지, 또 믿는다면 그것들을 위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얼마나 있는지 하는 것은 찾아내자면 찾아낼 수도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시의 주민을 대상으로 한 위와 같은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예술과 문화가 공공적 이익에 기여한다는 믿음을 분명히 갖게 한다.

물론 이와 같은 적극적인 반응이 반드시 문화예술의 지원을 위해 세금을 지불할 용의가 있는지에 대한 설문에 대해서도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다. 이른바 무임승차(free?ider)의 문제가 있다. , “나 말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충분한 공급을 위해 기여하겠지하는 태도를 말한다. 그뿐 아니라 지불 동의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반드시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는 말을 들었다면, 개인적인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좀더 많은 공급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면서 공공재를 위한 자신들의 선호를 기꺼이 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불 용의에 대한 몇몇 조사결과 대체로 문화예술에 대한 세금 징수가 현재보다는 상향조절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와 예술에 대한 공공적 지원을 정당화하는 가장 그럴듯한 근거는 이미 언급했던 대로 대부분의 공공적 성격의 문화기관이나 활동들의 가격이 평균비용과 동등하게 매겨진다면, 그것이 한계비용보다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가 바로 시장실패의 한 형식으로 나타나는 바, 이는 곧 한계비용과 동등한 가격을 매긴다는 규범이 깨어지는 것을 뜻한다. 이때 방문객들은 그와 같은 가격을 지불하고 입장할 것을 거부할 가능성도 있다.

이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공공지원이 시도하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이다. 예컨대 박물관의 입장요금을 한계비용가격들로 책정하고 이에 따른 적자를 매년 공공지원이 충당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적자를 메워주는 세금은 예컨대 경제의 다른 부분에서도 한계비용과 가격 사이에 쐐기를 박는 등 바람직하지 않은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와 같은 입장에 서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개인들의 자선적인 기부와 회원권 제도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이는 멀리 있는 제3자에게까지 세금의 형식으로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장점이 있어 보이긴 하지만, 국가재정과 지방재정간에 차이를 두어야 실효성이 있다.

후자의 경우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적어도 지원을 받는 서비스의 잠재적 사용자인 까닭이다. 또한 개인들의 자선적인 기부를 좀더 원활하게 할 수 있는 조세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요청 또한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3. 정보의 결핍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적 지원의 정당성을 시장 실패의 원인과 묶어 고찰할 때, 정보의 결핍 문제도 결코 그 비중이 가볍지 않다.

시장은 모든 참가자들이 판매되고 있는 상품과 서비스에 관한 충실한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 완전하게 기능할 수 없다. 소비자들은 예컨대 제대로 된 선택을 위해 모든 가능한 선택권(option)을 잘 알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시장 실패의 원인 중 하나는 소비자들에 대한 소홀이다. 예술이 획득된취미라는 것은 바른 말이다. 다시 말해서, 소비자가 예술을 즐길 수 있으려면 그것과 친숙해야 하고, 일단 식견을 가지게 되면 그들의 요구는 두드러지게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만일 예술에 관한 정보가 결핍되어 있다면, 취미를 획득할 위치에 있지 못하게 된다. 이 때 정보란 단순히 사실들뿐만 아니라, 시실 자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까지 포함하는 넓은 뜻을 지닌다.

예술과 문화의 영역 안에서는 정보의 결핍으로 인해 두 가지 나쁜 영향이 초래될 수 있다. 첫째로 많은 소비들이 잠재적인 유용성을 상실할 것이다. 예술을 알 수 없기에 그것을 소홀히 할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욕구가 위축됨에 따라 많은 예술사업들이 성장하기도 어렵고, 규모의 경제를 성취하는 데도 지장을 받는다. 바꾸어 말하면, 욕구가 낮아질 경우 생산의 단위비용도 더 높아지는 경향이 있다.

일반적인 상업활동도 같은 문제에 직면하지만, 이를 광고나 판촉에 의해 다룰 수 있다. 그러기에 광고를 낭비적이라고 하는 비판에 대해 규모의 경제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반론이 광고 옹호의 근거로 통용된다. 그러나 필자의 초청에 따라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 네쳐 교수는 이와 같은 해결이 예술사업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예술형식들을 위한 시장들은 세분화, 특화되어 있고, 대중 광고 캠페인이 이윤을 가져올 만한 정도로 크지 못하다는 것이 그 이유로 제시된다. 그는 광범한 예술생산을 격려해주는 정부 지원이야말로 소비자들에게 일차적인 예술경험을 제공함으로써 공중에 대한 소홀을 극복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정당화된다고 결론짓는다.

끝으로 생산성 지체(productivity lag)가 공연예술들의 실제비용을 증가시키는 장기적 원인이 된다는 가정을 살펴보도록 한다.

정부지원금이 없다면, 티켓 가격이 끊임없이 오를 것이고 이로 인해 새로운 관객을 모을 수 있다는 희망도 끝날 것이다. 결국 많은 공연예술단체들은 문을 닫게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생산성 지체 자체가 정부보조를 위한 정당화를 마련하지 못한다는 주장도 녹녹치 않다.

생산성 지체란 기술적으로 비진보적인 많은 산업에서 단위비용을 상승케 하는 시장과정이다. 그러나 단순히 기술적으로 비진보적이라 해서 산업을 보조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것의 실제비용들이 더 많은 진보적 산업들에서의 실제비용들보다 상대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면, 실제비용에서의 상승을 반영하도록 그 가격을 올리는 것이 최선이다. 시장이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한, 더 높아진 비용은 경제에 의해 흡수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의 초점이 지체냐 아니냐보다는, 시장실패의 일부 형식이나 수입의 배분에 놓여져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까지는 주로 예술의 공공적 지원을 위한 효율성’(efficiency) 문제를 주로 다뤄 왔는데, 수입 배분에서의 공정성(equity) 문제 역시 고려되지 않으면 안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