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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3/문화경제론

예술참가율 조사의 정책적 함의

by FraisGout 2020. 7. 11.

1.

 

근대라는 시점에서 볼 때, 예술창작은 여러 가지 인간활동 중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유해 왔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모든 직업들 중에서 최고의 것으로 자리매김하는가 하면, 많은 이들이 그것을 단순한 장사보다 위에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기에 경제학자들 중에는 그로부터 자신들의 더러운 손을 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다.

그러나 예술을 아무리 높게 평가한다 할지라도, 예술과 문화는 전반적으로 경제 안에서 작용하는 개인들과 집단들에 의해 생산되며, 따라서 그러한 물질 세계의 제약들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예컨대 어떤 극장이 배우들이나 무대기술자들을 고용할 경우, 그것은 노동시장 속에서 경쟁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시장, 또는 배우조합이 요구하는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된다. 티켓 가격을 결정할 때에도, 다른 유형의 여가활동이나 잠재관객의 취향 또는 수입에 의해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또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가 극장에 직접 간접으로 보조금을 지급할 경우, 그와 같은 지원은 다른 정부프로그램과 경쟁적인 예산과정을 통해 지급된다. 정부 자체도 납세자들이 개인적인 수요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수입을 소비하려는 욕구와 경쟁하지 않으면 그러한 재원을 확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예술 또는 문화경제학이라는 주제는 우선 예술과 문화가 전반적인 경제 속에서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많은 경우 예술을 소비 또는 생산하는 개인들과 단체들은 다른 재화나 용역의 소비자나 생산자들과 비슷하게 행동한다. 물론 그러한 행동양식들이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차이조차 실은 전통적인 경제학적 분석에 의해 제공되는 통찰에 의존해서 밝혀진다는 의미에서 이와 같은 접근은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유용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와 연관되는 산업의 역사적 성장과정이 밝혀져야 하고, 소비, 생산, 그리고 예술시장들의 기능, 재정적 문제들, 공공정책의 중요한 역할이 검토되어야 한다. 아울러 직업으로서의 예술, 예술이 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역할, 그리고 대중매체와 문화·예술의 상호관계들도 외면할 수 없다.

아울러 문제를 좀더 분명하게 규정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의 범위가 좀더 제한적이어야 한다. 여기에서는 주로 연극, 오페라, 교향악, 그리고 무용 등 실연예술(live performing arts)의 분야, 회화와 조각 등의 조형예술, 그리고 이와 연관된 미술관, 화랑, 그리고 화상 등의 제도들만이 고려될 것이다. 이 두 분야는 대체로 전통적으로 고급예술로 분리되어 온 동시에 대체로 비영리적이라는 성격을 지니면서,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체제 속에서 가장 많은 문제들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 두 분야는 대체로 현대사회에서 경제학적 접근을 가장 필요로 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이 두 분야는 1960년대 중반 이래 경제학자들이 주목해 온 영역이기도 하다. 199510, 필자가 책임 맡고 있던 서울대 예술문화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이 분야에 대한 개안작업에 기여한 뉴욕대학의 딕 네쳐 교수(세계문화경제학회 회장 역임)1978년에 출간한 지원받는 예술여신을 중간 정점으로 삼아, 1966년에 출판된 공연예술 : 경제학적 딜레마로부터 촉발된 이 분야의 연구는 날로 그 성과를 축적해 가고 있다. 통계에 의하자면, 1990년에만도 소비자들은 상업극과 비영리극을 비롯한 실연예술들의 관람을 위해 49,640억 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예술산업은 미국경제 전반과 연관해서 볼 때 상대적으로 작다. 바로 이것이 이와 같은 연구를 촉진시킨 원동력이 된다. 이 분야에서 최초로 완벽한 교과서적 업적을 일구어낸 제임스 헤일브룬과 찰스 그레이는 다음과 같이 단언한다. “이와 같은 연구는 그것이 경제학에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자화상을 위해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2.

 

미국의 경우, 1920년 이래 여러 예술들이 계속해서 성장세를 보이다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이른바 예술붐을 이루었다는 주장이 통해 왔지만, 이는 좀더 차분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그 뒤를 이어 예술활동의 성장 둔화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인용했듯이, 예술산업이란 한 국민의 자아상에서 결정적이기 때문에, 그 크기뿐만 아니라 그 성장률도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실연예술들은 그것들이 지닌 복합적인 성격 때문에 그 성장을 추적함에 있어서 특별한 주의를 요한다.

우선 연극, 교향악, 오페라, 그리고 무용으로 대표되는 실연예술은 예술일반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오락’(mere entertainment) 이상의 것이긴 해도, 관심을 가진 소비자들의 가계에서 볼 때, 다른 형태의 오락들과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은 끊임없는 기술공학적 개혁들과 맞서야 했던 바, 텔레비전을 통한 동화상(動畵像)으로부터 콤팩트 디스크와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에 이르기까지 상당 기간 동안 실연 오락산업들의 면모를 바꾸어 놓은 뉴미디어들과 경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지금 또한 그러하다.

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1960년대 초부터 미국의 문화관찰자들 사이에서는 문화붐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국가의 문화적 상황에 대해 점차 자의식적으로 되어 가고, 고급예술과 문화에 대해 기여자 내지 최소한도 담당자로 여겨질 것을 희망했다는 징조인 셈이다. 그러나 예술의 성장률이란 도대체 어떻게 측정될 수 있으며, 언제 예술이 붐을 누렸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경제학에서는 산업들의 성장률을 전체로서의 경제 성장률과 비교함으로써 결정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다. 그러한 비교는 예컨대 미국사회 안에서 예술이 차지하는 지위를 평가함에 있어서 유용할 것이다. 예술분야가 경제에 비해 좀더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미국인들에게 좀더 중요한 것이 되고 있다는 신호라 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 모두는 아마도 미국 안에서 문화가 실제로 붐을 일으키고 있다는 데 동의할 것이다. 반면에, 만일 예술분야가 절대적인 의미에서는 성장하고 있지만, 경제 전체만큼 빠르지 않다면, 붐이 일고 있다는 결론은 있을 수 없다.

개인의 가처분소득(disposable personal income, DPI) 개념이 그와 같은 비교를 위해 유용하게 활용되어 왔다. 예컨대 1929년을 100으로 할 경우, 공연예술들, 영화, 그리고 스포츠 관람에 지출된 비용은 1947년에 이르러 1929년의 71.6%에 해당한다는 비교수치가 나와 있다. 다시 말해서, 미국의 소비자들은 1947년에 1929년에 비해 공연예술들의 입장에 자신들의 수입 중 좀더 작은 비율을 소비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공연예술들의 입장을 위한 소비의 내역을 좀더 자세하게 분석해 보면, 소비자들은 1929년에 실연예술들에 대해 DPI100달러 당 16센트를 지불했음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말하자면, 공연예술 분야 안에서도 영화만이 신장세를 보였다는 말이 된다. 텔레비전의 도입이 사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미국에서 TV방송이 막 시작된 1947년에 소비자들은 영화를 보기 위해 DPI 100달러 당 94센트를 소비했음에 반해, 미국 가정의 97%가 적어도 1대씩 TV세트를 구비했던 1975년에는 영화를 위한 비용지출은 100달러 당 19센트에 불과하다. 무려 5분의 1로 떨어진 것이다. 그 사이 실연예술을 위한 지출이 DPI 100달러 당 11센트에서 7센트로 떨어졌으나, 영화관람이 너무나도 현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실연예술의 몫은 9센트에서 18센트로 두 배가 되었다는 수치가 가능하다. 영화나 TV가 아무리 발전해도 그것들이 공연예술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는 미학적인 근거로 인해 실연예술들이 영화보다 TV와의 경쟁에서 좀더 유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연예술의 생동성이 텔레비전과의 경쟁에서 그것들을 보호해 주었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다. 아울러 기술적 발전을 거듭하는 방송매체들을 염두에 둘 때, 현대는 가위 실연예술의 위기시대라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3.

 

우리는 앞에서 미국 내에서의 실연예술의 상황을 보여주는 극히 단편적인 예를 들어보았으나, 이와 같은 방식은 그 후의 상황을 설명하는 데도 아주 유효하다. 경제학적인 접근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예술을 둘러싼 환경의 변화가 좀더 정확하게 파악될 뿐 아니라, 막연하게 마치 사실인 듯이 통용되어 온 주장들의 실상이 밝혀질 수 있게 된다. 즉 미국에서 1929년 이후 상대적인 하강의 시대가 40년간이나 계속되었음이 좀더 객관적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물론 1960년대에 들어서서 증가된 공적·사적 지원의 결합이 예술로 하여금 이전에는 아무런 서비스도 받지 못했던 관객들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게 함으로써, 새로운 단체들과 새로운 활동들을 뒷받침해 주면서 전환점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쯤에는 몇몇 예술분야들의 성장이 둔화되거나 정지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1990년에는 절대적으로 아직 매우 작기는 해도, 소비자들이 실연예술에 소비한 수입 부분이 1975년 수준을 80%나 넘어서게 되었지만, 1990년대 초의 경기침체는 공적 지원에서의 예기치 못한 하락을 동반하면서 많은 예술단체들을 거리로 내몰고 만다.

요컨대 우리로서는 1929년 이후 미국의 경제생활 전체에 비추어 예술, 특히 실연예술이 보인 성장둔화 현상을 하나의 예증 삼아 문화경제학적 접근의 효용을 확인해 보았거니와, 1929년이 바로 그와 같은 비교 고찰을 근원적으로 가능케 한 통계가 처음으로 확보 가능했던 해라는 사실을 통해 문화경제학적 접근에서는 무엇보다도 통계적인 방법이 하나의 기초를 이룬다는 것 또한 확인한 셈이다. 후에 기회가 닿는 대로 이와 같은 통계학적 접근이 갖는 한계에 대해 논의하게 되겠지만, 여기에서는 우선 문화와 경제의 상호관계를 좀더 객관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기초자료들의 확보가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점만을 새삼스럽지만 강조해 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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