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udy 3/문화경제론

현대 문화경제학의 전개 양상

by FraisGout 2020. 7. 11.

현대의 문화경제학은 주로 미국을 중심으로 해서 발전되어 왔다. 따라서 이 장은 주로 미국의 경우를 살피게 되겠는데, 최근에 이르러 일본 역시 문화경제학회를 발족시키면서 이에 대한 관심을 키워가고 있으므로 일본의 경우도 잠시 참조하기로 한다.

 

1. 현대 문화경제학의 배경

 

미국에서 문화경제학에 대한 관심은 1960년대에 들어서서 본격적으로 표출되기 시작하였다. 유럽 대륙에서는 이미 1910년에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예컨대 독일의 국민경제지(Volkswirschaftliche Blter)의 특별호인 예술과 국민경제 : 경제학에서의 예술의 위치(Kunst und Volkswirtschaft : Die Stellung der Kunst in der Volkswirtschaft)를 통해 나타나기 시작했으나, 미국에서와 같은 절박한 정책적 필요성에 의한 것은 아니었다. , 유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술과 문화에 대한 국가의 재정 지원의 전통이 귀족 절대군주 중앙정부 등의 역사적 변동을 겪으면서 확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지원의 당위성을 입증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문화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이 요청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정부의 예술 문화에 대한 지원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로서 문화경제학이 필연적으로 요구되었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에는 정부 역할로서의 중요성이 미미하게 여겨졌던 교육, 의료보험 등의 분야에 대한 정부의 개입(intervention)이 확대되는 경향에 문화분야 역시 편승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자본주의체제 하에서의 시장원리,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수급의 균형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다는 믿음의 한계가 정부로 하여금 국민생활의 가장 기초적인 요구의 충족(주거, 의료, 교육 등)으로부터 정신적 욕구의 충족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비교적 급박한 생활 요구인 주거·의료·교육 등에 비해 문화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개입이나 지원은 뒤쳐질 수밖에 없었으며, 그 타당성의 근거도 미약하였다. 더구나 개인적인 자선(philantrophy) 차원의 후원에 더 많이 의지하고 있던 예술문화의 전통이 오히려 어떠한 국가 차원의 배려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경향이 농후하였다. 다른 분야들이 체계적인 경제이론을 이용하여 지원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문화예술 분야는 기껏해야 사회학적 근거(교육이나 소득 혹은 소속계급과 관련하여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를 설명하는 경우)에 국한되어 왔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예술문화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경제학자들의 연구가 1960년대에 와서 활발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화경제학의 발달은 또한 1960년 이후에 전개되는 정치 상황과 그 궤를 같이한다. 당시 미국에는 중앙정부(연방정부) 차원의 문화예술 전담기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몇몇 주정부만이 예술평의회를 두고 있었다.1) 그러나 이러한 주정부 차원의 예술평의회는 그 역할이나 자금(기금)의 지원이 지역적으로 국한되는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연방정부 차원의 좀더 포괄적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구가 요청되었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의 재임중에 설치된 예술자문회의(Advisory Council on the Arts)를 시발로 1965년에 드디어 전미예술 및 인문학재단(National Foundation on the Arts and Humanities)이 설립되었으며, 얼마 후에는 전미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s for the Arts)이 독립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66년에는 ‘20세기 재단의 지원 아래 최초의 문화경제학 저서인 보우몰과 보웬(Baumol and Bowen)공연예술 경제학적 딜레마(Performing Arts The Economical Dillemma)가 출판되었다. 이 저서는 문화경제학의 근대적 전환을 이룬 것으로서, 공연예술에 대한 최초의 포괄적인 분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1970년대는 NEA의 성장기로서, 그 기금의 규모 역시 상승세를 이어갔다. 학계에서는 1977년에 발간된 문화경제학지를 중심으로 미국, 영국 및 유럽, 그리고 오스트레일리아의 학자들까지 참여하는 가운데 예술과 문화에 대한 경제학적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 문화경제학지에 실린 글들은 단순히 예술문화에 대한 정부지원의 근거를 경제학적 입장에서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는, 좀더 포괄적인 것들이었다. 예컨대, 공연 및 예술작품의 가격 결정 요인의 분석이나 예술 경제적 가치분석, 그리고 욕구의 기저에 놓여 있는 개인별 취미(taste)에 대한 연구까지도 포함되었다.

1978년에 이르러서 문화경제학 역사상 좀더 체계적인 저서인 지원 받는 예술여신(The Subsidized Muse)이 출간되었다. 저자인 네쳐(Dick Netzer)는 여기에서 공공경제학의 여러 특성들을 예술문화적 산물에 적용하였다. 그는 보우몰과 보웬이 행했던 현상의 기술 공연예술이 처한 비용 위기(cost crisis) 에 대한 천착보다는 예술문화 재정지원의 현주소와 그 효과를 설명하고, 나아가 정책적 대안까지 제시하였다.

1980년 공화당의 레이건-부시 시대가 열리면서 이전까지 민주당이 강조하였던 복지사회의 이념은 우선순위를 상실하게 된다. 그 영향은 예술문화분야에까지 미쳐서 NEA 예산이 감축되는 결과를 빚는다. 게다가 역진적(regressive) 조세정책의 실시로 인해 개인의 후의에 크게 의존하였던 예술문화의 재원이 더욱 축소되었다.2)

이러한 정치권의 변화는 문화경제학의 몇몇 쟁점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정부의 예술지원 현황을 국가별로 비교하는 연구가 슈스터(Shuster), 캇츠(Katz) 등에 의해 행해졌다. 이러한 연구 중에는 미국의 간접지원(조세혜택을 이용한 예술문화의 지원)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부분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기도 하였다. 간접지원에 대한 관심은 위축된 정부의 재정지원을 대체할 수 있는 민간자본에 대한 관심과 병행되었다.

이 시기에는 또한 공연예술뿐만 아니라 조형예술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어 미술관의 경제학적 분석이나 예술품 시장분석도 행해졌다. 펠드스타인(M. Feldstein)은 편저 미술관의 경제학(The Economics of the Art Museum)에서 미술관의 경제, 재정, 경영을 포괄적으로 다루었다. 하일브룬(J. Heilbrun) 역시 현재까지의 공연예술과 미술관에 적용된 경제학적 연구를 종합하는 예술 및 문화경제학(Economics of Art and Culture)을 출판하였다.

문화경제학지를 통해서 재정지원의 대상이 아니라 사실상 영리추구의 성격을 지닌 예술문화 활동도 많이 연구되었다. 특히 이것은 기술의 발달로 공연이나 예술작품의 복제가 가능해지면서 대부분의 예술문화 활동이 어느 정도는 상업성을 띠게 되었고, 영리와 비영리 상호간의 수요와 공급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 결과이다.

이렇듯이 예술문화 활동에 내재되어 있는 경제학적 요소를 연구하는 것 외에 예술문화 활동이 여타 부문에 미치는 경제적 영향에 관한 연구도 존재하였다. <예술의 경제적 영향 연구>(Arts?Economic Impact Study)라고 불리는 일련의 연구가 뉴욕 - 뉴저지 항만청에 의해 시행되었고, 멀케이(K. Mulcahy), 헤일(R. Hale), 시맨(B. Seaman) 등에 의한 분석이 뒤따랐다. 이러한 연구의 요점은 예술문화에 대한 소비가(교통, 숙박, 요식 등) 다른 서비스 및 재화와 결합하여 이루어짐으로써 지역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과관계의 변수는 사실상 엄밀한 측정이 불가능하고 예술문화 활동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할 수가 있다는 비판과 더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미국 문화경제학의 발전사를 예술문화정책의 변화와 관련하여 개략적으로 기술해 보았다. 그러나 우리는 고작 이 분야에서 출판된 중요한 서적들이 정책적 조류와 우연히 일치된다는 것을 보였을 뿐이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문화경제학의 발전사에서 어떤 절대적인 경향으로 확정될 만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30년 남짓한 짧은 역사는 다방면의 주제를 폭넓게 다룸으로써 그 가능성을 모색한 시기라 보는 것이 더 합당할 것이다.

따라서 미국에서 문화경제학의 발전을 요구했던 미국내 정치적 상황을 중심으로 한 연대기적(순차적) 서술에 이어 공공경제학의 시장이론을 중심으로 미국에서 활발히 제기된 문화경제학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이 좀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으리라고 본다.

 

2. 문화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의 쟁점

 

1) 문화예술의 공공적 성격

문화경제학자들은 예술활동과 그 활동의 산출물(artistic goods and pro-ducts)이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시장구조 안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 어떤 화가의 그림이 사고 팔리는 행위라든지, 소비자가 여러 공연들 중에서 특정한 가격의 표를 구매하여 관람하는 행위 등이 그러한 예이다. 그런데, 예술은 여타 재화와는 구별되는 몇 가지 특징을 지닌 것으로 이야기된다.

첫째로, 일련의 학자들은 문화예술작품이 공공재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재화의 경우라면, 그것은 완전경쟁의 시장 기능만으로도 충분히 분배되고 소비된다. , 재화에 대해 일정한 가격을 지불하고 그것을 획득하여 그 자신이 배타적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재화가 공공재인 경우, 각각의 수요자는 그 재화에 대해 얼마를 지불할지를 밝힐 용의를 느끼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국가의 방위라든가 깨끗한 공기의 소비처럼 집단적 소비(collective consumption)가 이루어질 때, 수요자는 욕구를 은폐한 채 어느 정도까지는 타인의 비용에 무임편승(free ?ride)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쳐는 그의 저서 지원받는 예술여신에서 문화예술 영역 중, 비록 순수한 의미에서의 공공재는 많다고 할 수 없다 할지라도, 몇 가지 예를 제시한다. 예컨대 전체적으로 많은 분량의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미국의 공영방송(public broadcasting system)의 편성내용이라든지, 도시 건물의 벽화, 도시의 상징적인 건축물, 그리고 센트럴 파크의 공연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경우, 수요자는 무임편승자로서 소기의 이익, 즉 예술감상으로 인해 생겨나는 만족 등을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소비를 꼭 집단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이를테면 입장권을 구매하여 공연을 관람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을 문화예술이 부여하는 어떤 이익으로부터 제외시킬 수 있으며, 미술작품의 구매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에 대해 스로스비와 위더스는 수혜이익을 국가감정이익(national ?feeling benefit)과 사회비판이익(social ?criticism benefit)으로 정의하여 대응한다. 전자는 국가의 성원이 크게 성공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을 때 같은 국민으로서 느끼는 자부심을 지칭하며, 후자는 인간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하나의 특정한 견해만이 아니라 다양하고도 비판적인 의견을 표현하고픈 소망의 충족에서 오는 이익을 말한다.3) 이것은 프라이(Frey)와 폼메레네(Pommerehne)가 말하는 특권가치’(prestige value)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이런 광의의 수혜이익에 대한 정의와는 달리 샤나한(J. Shanahan)과 하일브룬은 개별적인 소비 각각에 대해 집단성을 부여한다. 샤나한은 문화예술작품(공연)은 개개의 청중에 의해 동시적으로 소비되며, 타인에 대한 동일한 상품의 공급에서 어떠한 물리적 손실도 입히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공연예술 뿐만 아니라 비영리 조형예술에도 이와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하일브룬은 미술관 전시회의 경우, 그 전시회가 극도로 붐비지 않는 한, 추가적인 인원의 관람이 타인들과 경쟁적이거나 배타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또한 관람에 대한 추가적 한계비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공공재로서의 성격이 농후하다고 보았다.

비슷한 맥락을 유지하지만 문화예술작품이 순수한 공공재라는 입장에서 다소 후퇴하여 혼합재’(mixed good)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보우몰과 보웬은 부분적으로는 사적이고 부분적으로는 공공적인 재화나 용역의 예로 교육을 들면서 문화예술을 이와 유사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를테면 어떤 한 사람이 교육을 받는 것은 그렇지 않을 때보다 그 자신의 복지를 더욱 증진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의 복지도 증진시키게 된다.

둘째로, 문화예술은 긍정적인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를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일반재화와 다르다. 네쳐는 네 가지 점을 들어 문화예술에는 외부효과가 존재한다고 본다. 우선 그는 어떤 종류의 예술장르들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점, 즉 오페라, 무용공연, 연주회 등은 모두 음악적 형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러한 장르들간에는 필연적으로 서로 물자의 이동이나 상호적인 고용기회의 제공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들 중 어떤 한 장르에 속하는 예술의 소비자는 번성일로에 있는 다른 장르의 예술에서도 어느 정도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다음으로, 문화예술을 보존하는 데에서 외부경제가 생긴다. 즉 현재의 문화예술은 잘 보존·전승됨으로써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재정지원이 필수적이지만 후손들까지도 거기에서 이익을 취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서, 예술의 실험적 특성에서 외부효과가 발생한다. 예술은 과학실험에서와 같이 실험성을 지닌다. 예술가나 예술단체들은 모험적인 시도를 하기 때문에 실패의 확률이 크며, 또한 이러한 실패를 통해서 많은 것을 얻기도 한다. 때로는 투입된 물질적 가치로는 환산할 수 없는 성공을 얻기도 한다. 이러한 외부효과가 바로 공적 지원이 요구되는 근거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문화예술은 몇몇 도시들에서는 경제활동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보우몰과 보웬이 지적한 것과 같이 문화예술은, 특히 공연예술의 경우, 다수의 방문객들을 특정한 도시로 유인하며, 공연관람에 따라 부속적으로 소비되는 서비스 호텔업, 식음료업, 교통업 등 부문의 수입 증대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렇듯이 문화예술은 그 상품을 소비하는 당사자의 이익과 아울러 폭넓은 외부효과를 발생시킨다. 이러한 점에서 사회는 소비가 많을수록 이로운 재화, 즉 가치재(merit good)인 예술의 공급이 적정수준으로 유지되도록 재정지원을 실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추상적인 네쳐의 외부효과에 대한 설명과는 달리 돈 풀러톤(Don Fullerton)의 경우에는 더욱 구체적이다. 그는 지금까지의 문화예술이 갖는 외부효과에 대한 설명이 분석적이거나 경험적이지 못했던 것을 지적하면서, 외부효과의 수치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그는 기존의 외부효과 이론을 역으로 전개하여 재정지원(구체적으로는 문화예술분야의 재정을 염두에 둔 과세)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외부효과의 수혜자는 이유를 불문하고 다른 사람들의 예술문화 행사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이런 사람들은 문화예술이 자기에게 유익한것과 마찬가지로 타인에게도 유익한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어떤 경제적 이익이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그러한 외부효과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즉 그 근원이 무엇인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만 재정지원에 의한 문화예술 활동을 보기 위해서라면 얼마간의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로부터 어떤 이익을 취한다면, 그리고 이들과 비슷한 개인들이 타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기부를 이용하여 무임편승할 수 있다면, 결국 아무도 문화예술의 지원을 위해 돈을 지불할 만한 만족스러운 동기를 찾을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문화예술에의 참여를 가치있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과세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경제적 상태를 더욱 호전시키고 그 자금으로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것이 정부로서는 잠재적으로 가능해진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덧붙여, 그는 지역경제나 국가경제에 대한 문화예술 활동의 영향을 그 모호성에 근거하여 반박하고, 또한 미래의 후손이 결코 현재에 일어나고 있는 예술참여에 의한 외부효과의 수혜자가 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네쳐와는 조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예술이라는 재화의 경우, 시장 실패의 위험이 거의 항상 존재한다. 이처럼 시장의 기능이 재화의 적절한 생산과 소비를 달성하지 못할 때, 정부는 그러한 시장에 개입하게 된다. 요컨대 문화예술 역시 그 재화가 지니는 공공재적 측면과 외부성 때문에 국가의 개입, 즉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 문화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재정지원은 과연 어떠한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타당한가? 예컨대 공해방지를 목적으로 할 경우, 공해방지 시설을 생산하는 쪽에 재정을 지원하여 이를 좀더 낮은 가격으로 다량 보급하도록 하는 방법과, 공해방지 시설을 사용하는 쪽에 재정을 지원하는 방법 중 어느 편을 선택하느냐의 문제가 있다. 문화예술도 이와 유사한 원리로 예술문화 상품을 공급하는 쪽에 대한 지원과 그것을 소비하는 쪽에 대한 지원의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공급하는 쪽은 그 나름대로 재정지원의 요구가 있으며, 소비하는 쪽도 그 나름대로의 요구가 있게 마련이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예술 상품의 공급과 수요의 양 측면에서 시장에서의 실패요인을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2) 문화예술의 생산 및 공급에 대한 분석

문화예술에 대한 엄밀하고도 직관적인 경제학적 분석의 정수는 역시 보우몰과 보웬의 공연예술 경제적 딜레마이다. 이 저서는 공연예술 단체들이 갖는 재정적 문제점을 설명하고, 이러한 문제점들이 미국의 향후 예술에 대해 갖는 함축적 의미를 탐구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었다. 책의 일부에서는 분석 대상이 되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예술단체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이와 더불어 청중과 공연자, 작곡가, 극작가, 예술감독(안무가) 등의 사회 경제적 환경을 분석한다.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1950년대 이후 소득의 증가와 더불어 문화예술의 소비도 급격히 상승했으며(이른바 문화 붐’), 문화예술 부문 자체도 매우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보우몰과 보웬의 저서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바로 이 책의 제2부가 문화예술의 생산자인 공연예술 단체의 기술(tech-nology)을 분석했다는 데에 있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이라는 상품을 생산·공급하는 데 있어서 소요되는 비용의 문제를 다루고, 그것이 필연적으로 봉착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밝혔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정부의 재정지원을 공급자 쪽에 대한 것과 수요자 쪽에 대한 것으로 양분해서 볼 때, 이들의 연구는 그러한 지원이 문화예술을 공급하는 생산자 쪽에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암암리에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생산비용에 있어 어떤 문제점이 존재하기에 재정지원이 있어야만 하는가?

첫째로, 문화예술 부문에서는 다른 부문에서와 같이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의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조명이나 무대장치와 같은 주변적 영역에서는 기술진보가 혜택을 주기도 했지만, 공연 자체의 기본 성격에는 변함이 없다. 오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의 작품을 연주하는 데에는 똑같은 양의 시간이 소요되며, 똑같은 수의 단원이 필요하다. 이렇게 기술의 발달이 생산성의 대체물이 될 수 없는 것은 연주자의 노동이 그 자체로서 하나의 목적이지 어떤 상품 생산의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공연자의 노동 자체가 바로 청중이 구매하는 최종단계의 생산물인 것이다.

둘째로, 이러한 생산성의 향상은 경쟁적 힘에 의해 점차적인 실제임금의 상승을 불러일으키는데, 문화예술 부문은 이러한 현상에 적응하지 못한다. 만일 어느 제조업이 4퍼센트의 임금인상을 요구한다면, 그 산업은 단위당 노동비용에는 변화 없이 총생산을 늘릴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 부문은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노동력의 유출(임금정체로 인해 다른 부문으로 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을 겪거나, 다른 부문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 상승을 감내해야 한다. 그 어느 쪽이건 간에 궁극적으로 임금의 상승은 그에 대응되는 만큼의 비용의 증대를 의미한다.

앞의 두 가지 원인에 기인한 생산비용의 끝없는 증가는 공연예술 입장료의 점차적인 상승을 유도한다. 이것은 또다시 소득수준이 낮거나 보통인 계층을 관객화시키는 데에 하나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접근 장벽’(access barrier)이야말로 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이 지니는 공평성(equity)의 추구를 위협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공연예술단체로서는 생산비용의 상승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일반적인 인플레이션의 비율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입장료를 인상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며, 그렇기 때문에 수입 격차(income gap)를 여러 종류의 재정지원을 통해 해소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문화예술 활동이 모든 면에서 생산성의 정체를 보인다고 말할 수만은 없다. 보우몰과 보웬은 그 예외적인 것으로서 공연예술이 갖는 규모의 경제적인 성격을 손꼽는다. 이는 마치 자동차 생산의 경우처럼 일정한 규모의 자본투여가 이루어진 후에야 생산의 증가가 유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공연예술 역시 어느 정도 큰 규모로 기간을 연장시켜 공연할 경우, 한 공연당 드는 비용의 절감과 공연횟수의 증가, 즉 생산의 확대를 이룰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이것은 생산의 확대, 다시 말해, 공연횟수의 증가라는 맹목적인 생산성의 성장을 위해 그 결과물 자체를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후에 다시 보우몰과 보웬, 그리고 피콕에 의해 문제시된다.4) 이를테면 비용 절감을 위해 좀더 적은 수의 레파토리를 더 오래 무대에 올림으로써 다양한 예술을 제공할 수 있는 폭을 좁힌다거나(리허설 시간의 단축으로 오는 경제적 이익의 취득),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고 리허설 비용이 더 많이 소요되는 신곡 및 현대작품을 기피하게 만드는 것이 그러한 예가 된다.

랑게와 루크제티히5) 역시 규모의 경제가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효율성(efficiency)을 증대시키지 못함을 증명하였고, 블라우와 쉬바르츠는 공연예술 내에서도 장르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다르게 나타난다고 보고 있다.6) 즉 공연에 필요한 노동력의 동질성이 어느 정도인가의 여부(연주단체인 경우 다수의 전문적 연주자, 오페라나 연극의 경우는 허드렛일로부터 전문적 예술가 및 공연의 운영을 책임지는 전문적 행정가까지)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효율적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기념비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보우몰과 보웬의 저서가 문화예술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예컨대 네쳐는 생산성의 정체가 새로운 기술의 이용뿐만 아니라, 기존의 기술을 적절히 이용할 경우에도 어느 정도 극복될 수 있음을 몇 가지 예로써 주장한다. 브로드웨이 극장들의 영구적 조명기기의 설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건물 내 의상창고의 확보로 인한 의상 수송비의 절감, 음향기술의 발달로 인한 공연장의 증가 등이 그것이다.

또한 풀러톤은 기술의 진보가 협의의 생산성이 아니라, 좀더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예술의 생산을 증대시켰다고 본다. 몇몇 예술가들은 진보한 기술을 이용하여 의도했던 효과를 더 빠른 시간에 성취할 수 있으며, 큐레이터와 같은 사람들 역시 그러한 기술로써 작품들을 더 잘 보존할 수 있다. 더 정밀한 음색의 컴팩트 디스크를 들을 수도 있고, 복제기술의 발달로 예술작품들을 비싸지 않은 프린트로 자주 접할 수 있게 되거나, 순회전시 때 발생하는 안전도의 문제도 많이 해결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기술의 발달이 유독 문화예술 분야에만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다는 의견에 의문을 제기한다. 더 나아가, 비록 어떤 이유에서든 생산비용의 증가가 생길지라도 그것이 정부의 재정지원을 정당화하는 요건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크위(D. Cwi)는 비용의 증가를 입장료 인상을 통해 예술의 수요자에게 떠넘기게 됨으로써 우려되는 저소득층과 중간소득계층의 소비 감소가 필연적이 아님을 주장한다. 오히려 소비자의 수요는 가격상승에 미미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문화예술의 소비는 주로 소득계층의 상층에 편중된 형편이기 때문에, 가격의 등락에 크게 영향받지는 않는다.

보우몰과 보웬의 공연예술에 대한 경제학적 통찰은 그들의 주된 관심사였던 고질적 비용’(cost desease)의 문제나 수지 격차에 대한 것 외의 다른 측면에 대한 관심도 자극하였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위에서 제기된 수요의 가격탄력성에 대한 연구이고, 이것을 알기 위해서 선행되어야만 하는 개인소득과 문화예술비의 지출 관계도 활발히 고찰되었다. 후자는 수요의 소득에 대한 탄력성을 알아보는 것으로서, 분배의 공평성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고려 대상인 수요의 가격탄력성에 대해 보우몰과 보웬과는 다른 입장의 연구가 다수 있다. 보우몰의 이론은 생산비용의 증가가 공연관람료의 인상을 초래함으로써 참여도가 점진적으로 낮아질 것이라고 추론했는데, 이것은 그가 묵시적으로 수요가 가격탄력적이라는 입장에 서 있음을 드러내 준다.

이에 반하여 1980년 이후 호주에서는 경제학자 위더스와 스로스비7) 등이, 그리고 미국에서는 터치스톤,8) 랑게와 루크제티히9) 등이 공연예술의 수요가 가격에 대하여 비탄력적이라는 연구 논문을 문화경제학지에 다수 발표하였다. 네쳐나 피콕은 이에 앞서 특별히 오케스트라를 지목하여 그러한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다른 일반재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적당히 탄력적임을 밝힌 바 있다.

최근 들어 이 주제와 관련된 연구 중 펠턴(M. Felton)은 공연예술에 대한 취미가 후천적으로 획득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공연예술을 더 많이 접할수록 그에 대한 취미가 강화되어 여타 종류의 대체재에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결국 입장료의 가격과는 상관 없이 그것을 즐기게 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취미가 발달되지 못한 사람은 공연예술은 지루한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에 단지 입장료가 싸다는 이유만으로 청중이 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공연예술부문 전체는 가격 비탄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탄력성은 대체재의 획득 가능성이 상승함에 따라 커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한 예술분야에서 하나의 예술단체가 지역적인 독점체제를 구가하지 않는 이상 개별적 단체들의 가격탄력성은 탄력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초기에 문화경제학이 다루던 대상이 주로 공연예술에 치우쳐 있었던 것과는 달리, 80년대 이후로는 기존의 분석을 전시예술(미술관, 박물관)에도 적용하는 시도가 눈에 띤다. 하일브룬, 펠드스타인 등이 그 예인데, 펠드스타인은 미술관에 적용될 수 있는 경제 원리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연구를 편집한 책을 발간하였다.10) 하일브룬은 예술 전반에 걸친 경제학적 분석과 정부 및 민간의 재정지원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11) 이들 중 특히 하일브룬은, 보우몰이 공연예술에 대해 그러했던 것처럼, 미술관이 운영되는 원리도 규모의 경제라는 성격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미술관의 경우 매일매일의 개장()시 소요되는 기본적 비용(난방, 조명, 건물유지, 보험, 사무직 노동, 그리고 보안 서비스 등)이 일단 발생하고 나면 관람객의 증가 단위당의 비용은 점차 감소하게 되며, 관람자에 의해 부과되는 부가적인 보안, 청결유지 등의 단위당 한계비용도 어느 정도 단기간 내에서는 ‘0’에 가까와진다. 또한 기본적 비용과 한계비용을 더한 그래프 이 두 비용의 합이 사실상 미술관 운영에 소요되는 경비 인 일일평균 운영비용(ADOC) 곡선이 한계비용의 곡선 위에 존재하므로 경쟁시장에서와 같은 가격을 책정하면 복지규정(welfare rule)에 어긋나게 된다. 그러므로 수요와 한계비용 곡선이 만나는 점의 가격을 받아들여 복지 손실(welfare loss)을 막고 여분에 대해서는 어떠한 형태로든 재정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공연예술의 비용문제나 수요의 가격탄력성 문제는 대체적으로 문화예술을 공급하는 쪽에서 부딪치는 경제적 문제를 다룬 것이다. 그러므로 이럴 경우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은 문화예술이라는 재화의 공급자(생산자)에 대한 재정지원으로 귀결된다. 공급자에 대한 재정지원이 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이 좀더 효율적으로 생산될 수 있도록 기여할 수는 있으나, 그 재화가 얼만큼 공평하게 분배될 수 있는가에 대한 보장책은 될 수 없다. 그래서 수요적 측면에 대한 경제적 분석, 즉 예술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수혜자에 대한 연구가 문화경제학의 또다른 하나의 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3) 소비자 및 수요측면에서의 분석

문화예술은 그 공공재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이익 수혜의 정도가 소비자 간에 차이가 많은 것으로 인식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일반적인 사적 재화보다도 더 심한 소비의 편차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문화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분배의 공평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서는 수요측이 지니는 경제적 특성을 분석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것은 문화예술의 효율적인 생산을 돕기 위해서 공급자측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이 불가결한 것과 같은 원리이다.

미국에서 문화경제학이 수요의 측면, 즉 소비의 측면에 대해 행하는 연구는 대체로 두 방향으로 수렴된다. 넓게는 한 개인이 처한 사회·경제적 조건이 문화예술의 수요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로부터, 좁게는 문화예술상품의 가격에 소비자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연구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정책 상의 효과를 가늠하는 것으로서 소비자측에 대한 작금의 재정지원이 문화혜택을 얼마나 공평하게 분배하고 있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요컨대 전자는 수요가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한 기술인 반면, 후자는 분배적 평등을 달성하기 위한 제도의 분석 및 모색이라 하겠다.

문화예술의 소비자에 대한 사회 경제적인 프로필에 대한 연구가 문화경제학의 태동에도 전무했던 것은 아니었다. 보우몰과 보웬도 이미 그들의 저작에서 청중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청중에 대한 단순한 인구센서스와 같은 단계의 나열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조금 더 발전된 방법을 이용하여 문화예술에 대한 참여와 개인소득의 상관관계나, 교육정도와의 상관관계 등을 고찰한 예로서는 싱거(L. Singer)와 린치(G. Lynch)<소득()이 예술소비에 미치는 영향>(Wealth Effect in the Consumption Art)이라는 논문이나, 펠턴의 <오케스트라 입장권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들>(Major Influences on the Demand of Orchestra Tickets), 그리고 네쳐의 <미국 무용계가 직면한 경제적인 변화동향> (Changing Economic Fortunes of Dance in the U.S.)을 들 수 있다. 예술에 대한 수요는 물론 각 장르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다음과 양상을 띠는 것으로 종합된다. , 예술에 대한 수요는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조기부터 예술에 대한 접촉이 있을수록,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크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소득수준은 낮아도 높은 교육수준이나 조기에 형성된 예술에의 친밀성 때문에 높은 수요를 보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지나친 단순화는 곤란하다.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가 그것을 조건지울 만한 요소들에 의해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는 탄력성의 계산을 통해 정확히 알 수 있다. 가장 자주 인용되는 것이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소득탄력성이다.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공급자 측면의 분석에서도 논의된 바 있으나, 탄력성에 대한 연구결과는 그 용도에서 차이가 난다. 여기에서는 문화예술 상품의 가격변동에 따른 수요가 어떤 폭으로 변하는지, 단순히 그것만을 보도록 한다. 수요의 소득탄력성에 대해서 하일브룬은 전통적인 견해를 지지하면서도 무어(T.G. Moore)의 이색적인 견해를 소개한다. 전통적으로 볼 때, 공연예술의 수요는 소득에 대해 탄력적이며, 소득수준이 높아지거나 생활수준이 높아질수록 예술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기 때문에 탄력성이 1.0보다 커진다. 이에 대해 게일(Gale)은 소득이 자신의 시간에 부여하는 가치가 커지기 때문에 적은 시간만이 필요한 활동이 많은 시간을 소요하는 활동을 대체한다. 그러므로 순수한 소득효과는 소극적인 시간비용 효과(negative time cost effect)에 의해 부분적으로 상쇄된다고 보는데, 하일브룬 역시 이에 타당성을 부여한다.

본격적인 문화예술의 소비자 및 수요자 측에 대한 연구는 역시 문화정책의 이익 분배효과가 이익 수혜자에게 얼마나 공평하게 나타나는가를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수혜이익의 개념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수혜이익(benefit)은 두 가지 의미에서 설명 가능하다. 첫째는 문화예술 상품을 소비하고자 하는 사람이 정부로부터 받는 수혜이익이다. 피콕은 이것을 간접적인 것과 직접적인 것으로 나누는데, 이를 다른 용어로 표현한다면, 직접재정지원과 간접재정지원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예술의 소비자가 상품의 소비를 통해 얻게 되는 수혜이익이므로, 네쳐의 주장처럼 직접적인 혜택(객관적으로 측정 가능한 관람 횟수에서부터 주관적인 만족까지)과 간접적 혜택(외부효과의 여러 가지 예들)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므로 분배의 공평성을 실현하고자 하는 여러 문화예술정책과 이익수혜자간의 관계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은 피콕이 의미하는 직접적인 재정지원의 효과와 네쳐가 의미하는 수혜이익의 분배적 관계를 따져보는 것이다.

피콕은 일찌기 1969년부터 재정지원의 대상이 공급자(생산자)측과 수요자(소비자)측 중 어느 쪽에 주어져야 하는지를 연구했다.12) 그는 두 가지 논점을 제시하여 공급자측에 대한 재정지원을 반대한다. 영국을 예로 들어 볼 경우, 일정한 규모를 넘어선 다수의 공연예술단체들은 주로 대도시에 밀집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예술단체들이 더 많은 지방 순회연주를 하지 않고 제자리에서만 공연을 펼칠 경우, 이것은 결국 일인당 소득수준이 지방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은 관객들에게만 저렴한 가격으로(왜냐하면 공연단체가 받은 재정지원은 입장료 인상을 억제하는 기능을 갖기 때문에) 봉사하는 것밖에 안된다. 그러므로 이 방식은 소득계층에 따른 문화혜택의 분산을 성취하지 못한다. 다른 하나의 논거는 재정지원이 공급자측에 주어질 경우, 정부가 주체가 되어 누가 재정지원을 받을 것인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소비자주권의 원리(doctrine of consumer sovereignty)를 약화시키고 문화적 독점(cultural monopoly)에 대한 경계를 늦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수요측에 대한 재정지원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이를테면 문화상품권’(cultural voucher)이라는 지원방식의 도입을 제창한다. 이것을 이용하게 되면 공연예술단체들은 시장가격을 입장료로 책정하되 일정 비율과 좌석은 규정된 집단에게 획득 가능하도록 하며, 입장료 대신 받은 문화상품권을 후에 재정지원기관에서 현금화할 수 있다. 그는 이 방식이 저소득층에게 문화제공의 기회를 좀더 확실히 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제도가 과연 얼마만큼의 실효성을 가진 것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아직까지 이러한 상품권 체제(voucher system)를 어떤 국가도 광범위하게 실시해 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콕 자신이 지적하듯이 몇 가지 암초적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상품권의 혜택을 받게 되는 집단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의 문제는 복잡하며, 문화상품권의 소유자가 이를 불법적으로 매매하는 행위가 발생할 소지도 크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전통적 방식의 수요자에 대한 재정지원은 조세제도에 의한 것이다. 거의 모든 국가에서 이를 시행하지만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세율이 역진적일 경우에는, 문화예술 상품 소비의 특성상 세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고소득층의 소비가 세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저소득층의 지원(보조)을 받게 되는 셈이 된다.

네쳐는 이 분야에 대한 실증적인 연구를 통해서 문화예술에 있어서 소득의 재분배가 고소득층에서 중간소득층으로 이루어짐을 주장하였다.13) 그의 분석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조세혜택의 분배적 효과에 관한 부분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비중의 예술지원에 대한 광범위한 조세감면혜택을 실시하는 나라이다. 문화예술 단체에 대한 기부금에 소득공제 및 조세감면의 혜택을 주는 것은 사실 공급자와 수요자 양측을 모두 지원하는 이중적 효과가 있다. 왜냐하면 기부금을 받는 측으로서는 일종의 생산을 위한 재정지원을 받는 셈이며, 기부하는 측으로서는 조세혜택으로 인해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의 증가 뿐만 아니라 기부하는 데에서 얻어지는 여러 가지의 비물질적 혜택 기부받은 측의 융숭한 대우, 대외적 이미지의 제고 등 까지 받는다. 네쳐는 여기에서 소득계층별로 구분된 개별 수요자(소비자)에 대한 조세혜택으로 발생한 기부의 소득 재분배적 효과가 저소득층에 의한 고소득층으로의 수혜이익의 확대라고 본다.

유사한 연구가 펠드, 오헤어, 쉬스터,14) 그리고 웨일15)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조세원리와 현재의 조세혜택제도가 문화예술상품의 구매력(특히 저소득계층의)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하지 못하며 공평한 분배의 효과도 이루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더구나 일정금액의 기부에 대한 조세혜택은 결국 조세지출과 다름 없고, 그러한 조세지출은 결국에 가서는 다른 재원에 의해 메워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적으로는 조세지출분을 메우는 멍에를 다수의 보다 낮은 소득계층들이 짊어짐으로써 예술에 대한 관심도가 높고 그러한 재화의 소비가 가장 왕성한 고소득층을 지원하는 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우몰과 보웬의 공연예술에 관한 연구를 효시로 하는 문화경제학은, 경제학적 시점에서 문화·예술을 분석하고, 경제학적 분석 요구를 문화·예술의 영역에 적용하려는 학문분야이다. 따라서, 문화경제학에서는 문화·예술의 수요, 공급, 시장균형, 시장의 실패, 그리고 정부 개입의 시비나 개입방식이 자원배분의 효율성이나 소득분배의 공평성 같은 관점에서 분석된다.

보우몰과 보웬의 연구 이후, 4반세기의 역사를 가진 구미제국에서의 문화경제학의 연구성과는 앞에서 설명한 문제들을 포함해 다음과 같은 영역에서 확인된다.16)

 

(1)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

연극, 오케스트라, 오페라 등의 공연예술 분야에서는 연일 초만원으로 롱런을 계속하는 공연도 있고, 객석을 메우지 못해 초연 후 일찌감치 중단하는 공연도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은 영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의 전시, 전람회, 박람회 등에서도 볼 수가 있다. 여기에서 문화경제학의 관점에서 분석 대상이 되는 것은 문화·예술에의 수요가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측면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수요는, 실질적으로 문화예술이라는 재화를 소비하기 위해 수반되는 비용(입장료나 교통비의 직접비용과 문화·예술의 소비를 선택하는 대신 다른 활동을 한다면 얻을 수 있었을 이익이나 효용에 의하여 평가되는 기회비용) 및 개인의 소득이나 교육수준 등의 속성에 의해 결정될 수 있다. 즉 비용이 높아지면 수요는 감소하고, 소득이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 수요는 증대한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은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실증연구의 예로서, 1929년부터 1973년에 걸친 미국에서의 공연예술 감상횟수를 분석한 G. A. 위더스의 수요함수의 추정에 관한 연구17)가 있다. 이에 따르자면 수요의 소득탄력성은 2.7이고, 1인당 가처분소득의 1% 상승은 공연예술 감상횟수를 2.7% 증가시킨다. 또한 수요의 가격탄력성은 마이너스 0.7로서, 평균 입장요금의 1% 상승은 공연예술 감상횟수를 0.7%로 감소시킨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의 문화·예술시설에 대한 수요에 관한 분석으로서는, 관람자수나 체재시간을 피설명변수로 하고, 입장요금, 이동비용, 시간비용, 전시내용에 관한 정보의 입수비용, 전시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육수준 등을 설명변수로 하는 모델을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분석의 하나로서, 네덜란드의 로테르담에 있는 4개의 미술관을 대상으로 입장요금 인상에 따른 감상활동의 변화를 분석한 연구가 있다.18)

그들의 분석에 의하면, 입장요금의 인상이 체재시간의 증가, 시즌티켓 구입자 비율의 증가, 단체입장자의 증가, 원거리에서 방문하는 관람객의 증가를 가져 왔다는 것이 검증되고 있다. , 입장요금을 올린 데 대하여, 관람자는 할인이 되는 시즌티켓이나 단체할인을 이용하고, 체재시간을 연장하여 단위시간당의 직접비용을 감소시키도록 반응한다. 또한 입장요금에 대하여 시간의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원거리로부터의 관람자 수가 증가한다는 것이 시사되어 있다.

 

(2) 예술가의 소득구조

일반적으로 문화·예술의 공급자인 예술가의 소득은 낮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많은 저명한 예술가는 고액의 수입을 갖고 있어 모든 예술가가 다 가난한 것은 아니다. 예컨대 1985년의 화폐가치로 환산한다면, 셰익스피어의 연간 수입은 57만 파운드에 달하고, 괴테는 관료로서의 연봉 10만 마르크에 작가로서의 연간 수입 13만 마르크가 더해져 연간 수입이 23만 마르크가 된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또한 피카소는 2억 달러의 자산을 남겨 놓고 있다.

예술이라는 전문 직업 전반을 대상으로 예술가들의 경제적 상황을 파악하는 경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 하나는 예술가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각국에서 국세조사가 행해지고 있지만, 나라에 따라서 예술가의 정의가 상이하다. 또 예술가의 소득구조를 파악할 때 수입의 확정 문제도 생긴다. 왜냐하면 예술가는 부업으로는 비예술적인 직업에 종사하는 등 상이한 수입원을 복수로 갖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 실업상태에 있는가, 아닌가도 소득에 영향을 미친다. 더구나 실업의 정의는 국가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이와 같은 장애가 있으나, 각국에서 예술가의 경제상태에 관한 실태조사가 시도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1979년 조사결과와 캐나다의 1981년 조사결과를 비교해 볼 때, 시장에 강하게 의존하는 미국에 비해, 예술에의 정부 관여 정도가 강한 캐나다에서는 분야간의 소득격차가 낮다.

한편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소득함수를 추정한 미국에서의 실증연구 결과에 의하면,19) 1980년의 비예술관련 고용자의 평균소득은 13,750 달러인데 비해, 예술관련 고용자의 그것은 12,500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반적으로 예술관련 고용자의 평균소득이 비예술관련 고용자의 평균소득보다 낮음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이 예술적 직업에 종사하는 것일까? 이 점을 밝히려면 비금전적 소득에 더하여 생애소득의 관점에서 예술가와 비예술가의 소득구조를 분석해 가는 것이 필요해질 것이다. 또 예술가 소득의 국제비교에서는 구매력 평가로의 환산 등의 조작도 필요해진다.

 

(3) 문화·예술조직의 행동

경제학에서는 생산자의 행동이 이윤극대화 가설에 바탕하여 모델화되지만, 문화·예술분야에서는 국립극장이나 공립미술관 등과 같이 공적 원조 아래 생산이 행해지는 사례가 많다. , 문화·예술의 공급조직의 형태로서는, 원칙적으로 공적 원조를 받지 않는 이윤추구형 조직과 공적 보조를 받아서 경영되는 정부원조형 조직이 고려될 수 있다.

. 이윤추구형 조직

이윤추구형 조직이 존재하려면, 예컨대 공연예술의 경우, 다음의 네 가지 수단을 생각할 수 있다.

연출·연습·장치·의상·극장의 유지관리 등 고정경비를 줄인다.

관객동원수를 늘린다.

가격차별에 의해 소비자의 여유를 흡수한다.

TV 등 매체에의 판매, 프로그램이나 로고 상품의 판매, 레스토랑 등 관련사업의 경영에서 수입을 얻는다.

그리고 이 수단들을 유효하게 살릴 수 있도록 공연장소, 시기, 내용, 횟수, 입장요금을 설정한다. 또한 생산량과 총비용을 관련짓는 비용함수를 추정하는 시도가 문화·예술분야에서 행해지고 있는데, 공연예술에는 규모의 경제가 존재한다는 것은 이미 밝힌 바 있다. 캐나다의 33개 교향악단과 27개 극장을 대상으로 추정된 비용함수에서, 교향악단은 115회의 공연, 극장은 210회의 공연을 할 때 평균비용이 최소화된다고 밝혀진 바 있다.20)

또 상대가격의 변화에 의한 자본(무대장치 등)과 노동(출연자수)의 대체나 공연내용의 변화에 관한 분석도 행해지고 있다.

. 정부원조형 조직

구미 중에서도 특히 유럽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극장, 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발레 등의 공연예술에 대한 공적 원조의 비율이 매우 높은 수준에 있다. 이러한 공적 원조는 조직의 행동양식을 변화시키는 유인효과를 주고 있다. 공적 원조의 유형은 크게 넷으로 분류할 수가 있으나, 그것들이 조직의 행동양식에 미치는 효과를 요약한다면 다음과 같다.

정액 정부보조. 조직의 존재방식으로서 활동내용과는 관계없이 부여되고 이익이 발생한 경우에는 단절된다. 따라서 정액 정부원조는 공연의 양과 질에는 아무런 효과도 갖지 못한다.

감면세 조치를 통한 보조. 이는 비영리적 조직에의 기부를 상대로 행해지는 소득세 공제로서, 특히 개인은 총소득의 50%까지, 법인은 과세대상 이익의 10%까지가 공제되는 미국에서 중요한 공적 원조수단이 된다. 감면세 조치 대상으로서의 자격을 얻기 위해, 저액의 사회적 요금을 설정하여 이익을 회피하려고 한다든지, 과잉의 지불을 통하여 이익을 내지 않도록 하려는 인센티브가 작용한다.

티켓에 대한 보조금과 과세. 입장자수에 따라 일정한 보조가 주어진다든지, 입장료 수입의 일정 비율의 보조가 주어진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매상에 따라 보조는 커녕 반대로 과세되는 일이 많다.

적자 보전. 보조금은 예상되는 적자액에 따라 사정되기 때문에, 적자보조형의 공적 원조는 균형가격을 하회하는 입장요금이나 군형가격을 상회하는 출연료에 의한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을 가져오게 된다.

이와 같이 문화·예술의 공급조직을 이윤추구형과 정부원조형으로 대별함으로써, 공적 원조의 존재방식이 조직행동에 미치는 효과의 비교검토가 가능해진다. 다만, 여기에서는 문화·예술활동의 생산물인 공연내용의 질적 평가가 곤란하다는 문제가 생긴다.

 

(4) 문화·예술의 가격과 투자수익성

경제학에서 가격은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고 설명된다. 그렇다면, 문화·예술의 가격, 즉 미술작품의 가격이나 공연에술의 입장료는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대표적인 현대미술가 100명의 작품의 가격(시장가격과 전문가에 의한 평가가격)에 관한 연구21)에 따르면, 수요 측에서는 매수인의 소득, 작품의 가격, 대체적인 투자의 수익률, 전문가에 의한 미적 평가 등에 의해 작품에의 수요가 정해진다. 공급 측에서 볼 때 현존 미술가에 의한 작품의 공급은 제작가격과 장래 작품의 예상가격에 의해 정해진다고 가정하고 있다. 이러한 가정 아래 1971년부터 1981년에 걸친 자료에 바탕을 두고, 행해진 미술작품의 평가가격함수와 시장가격함수의 추정결과를 볼 때, 공급 측에서는 제작가격이 높은 조각이 제작가격이 낮은 회화나 그래픽아트보다는 가격이 높아, 소재의 가격이나 작품의 크기도 가격에 반영된다는 것을 드러낸다. 수요 측에서는 소득수준·미적 평가·주식이나 채권의 실질수익률이 가격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인플레 경향의 시기에는 현대미술작품이 투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예술에의 투자, 특히 회화에의 투자는 크게 수익을 낳는다고 생각되고 있다. 예컨대 198711월에 539십만 달러로 경매된 고호의 아이리스(창포 붓꽃)’1947년에 구입되었을 때 가격은 84천 달러(1987년의 화폐가치로 환산하여 약 50만 달러)이고, ‘아이리스에의 투자의 실질수익률은 연간 12%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1635년부터 1987년에 걸친 약 350년간 2,396점의 회화 경매낙찰가격 데이터를 분석한 연구에서 평균 실질수익률은 1.5%로 나타났다. 동기간의 금융투자의 실질수익률이 3%였던 것과 비교하면, 회화에의 투자는 그다지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이다. 물론, 회화에의 투자는 감상에 의한 편익이나 전시효과도 가져오지만, 보관비용이나 보험비용 등을 고려하면 수익률은 훨씬 낮아진다. 더구나 경매에 붙일 수 없는 작품을 고려한다면, 회화 일반에의 투자는 더욱 불리한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5) 문화·예술에의 공적 원조

무엇을 가지고 문화·예술에 대한 지출이라고 정의하는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공표 데이터에 따른 구미 여러 나라의 중앙정부 레벨에서의 지출에 관한 조사·연구의 성과에 의하면, 정부가 다액의 보조금을 문화·예술에 지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공적 원조가 행해지는 것은 문화·예술에는 시장에 의한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저해하는 다음 다섯 가지의 외부효과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택가치(option value). 현재는 소비하지 않고 있지만, 공급을 계속하면 언젠가는 소비된다는 데서 생기는 가치.

존재가치(existence value). 문화·예술이 공급되고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생기는 가치.

유증(遺贈)가치(bequest value). 다음 세대에 문화·예술을 전한다는 데서 생기는 가치.

위광(威光)가치(prestige value). 문화·예술의 존재가 시민에게 주는 일종의 자랑스런 감정에서 생기는 가치.

교육가치(education value). 문화·예술활동이 창조성, 수용력, 심미력 등을 배양한다는 데서 생기는 가치.

오스트리아나 캐나다에서 실시된 앙케이트 조사에 의한 분석에 의하면, 일반 시민은 이들 외부효과의 존재를 충분히 인식하고 있고, 문화·예술에 의하여 생겨나는 한계사회적 편익은, 그것을 위한 한계사회적 비용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정부가 예술분야에 관여하는 타당성이 일반 시민으로부터 인정받는다 할지라도, 이것이 반드시 현재 정부의 문화·예술에의 관여방식이 적절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공적 보조가 외부효과의 생산을 위해 제공되는 것이라면 보조를 받는 극장이나 오페라하우스는, 아직 이름이 나지 않은 공연의 경비가 입장료 수입만으로는 지탱되지 않는 현대의 극작가나 작곡가의 작품을 공연하고, 인기 있는 고전은 상연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인기 있는 고전은 관객동원력이 높고, 정부로부터의 보조금 없이도 공연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페라하우스에의 공적 원조를 예로 든다면, 공적 원조에 크게 의존하는 구서독의 오페라하우스와 직접적인 공적 보조에 의존하지 않는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감면세 보조금 형태로의 공적 원조는 있다)의 상연내용에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사실에서 공연예술에 대한 현행의 정부 원조방식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 앞에서 말했듯이 교향악단이나 극장의 공연에는 규모의 경제성이 있기 때문에, 새롭게 설립된 조직의 육성에 보조금을 지출하기보다는 중규모의 교향악단이나 극장의 순회공연의 횟수를 늘리는 쪽이 효율적이라는 것도 시사되고 있다.

여하튼 공적 원조에 관한 문제는 그 범위와 수준, 그리고 방법이 소득 분배 면에서의 영향이나 지역경제에 미치는 효과 등의 측면을 포함하여 폭넓은 분석이 필요하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