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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중국 신화

by Frais Study 2020. 5. 28.

천지개벽(天地開闢)

   카오스와 개벽

   지금으로부터 약 이천년 전에 만들어진 <<회남자(淮南子)>> 21편   속에는 중
 국 고대의 신화적 자료가 무척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 천지  개벽에 관
 한구절을 들어보겠다.

   하늘과 땅이 형성되기에 앞서, 우주는 온통 허황되고 아득하고 걷잡을  수 없는
 무형의 상태였다. 이를 가리켜 태소(太昭)라고 이름했다.  그러자, 태소에서  허
 공이 생겨나고, 다시 허공에서 상하사방(上下四方)의 공간(空間)과 무한한  시간
 (時間)이 생겨났다. 즉,  이것이 우주(宇宙)다. 우(宇)는 공간이고, 주(宙)는  시
 간이다. 다시, 이  우주에서 온갖 만물의 기(氣)가 생겨났으며, 청양(淸陽)한  기
 는 엷게  퍼지어 위로 올라가 하늘(天)이  되었고, 중탁(重濁)한 기는 엉키고 쌓
 여 아래로 쳐져서 땅(地)이 되었다.
   위로 퍼진 청묘(淸妙)한 기는 쉽사리 합쳤으나,  아래로 쳐진 중탁한 기는 응
 고되기 어려웠다.  따라서 하늘이 먼저 되었고, 땅이 뒤늦게 자리잡히었다.
   또한, 천지간에 쌓이고 h였던  모든 정기(精氣)는  음(陰)과 양(陽)을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음과 양의 기가  합하여 춘. 하. 추.  동(春夏秋冬)의  사계절을
 이룩했으며, 그리고 다시  사계절의  기가 흩어져서 만물을   낳게 하였다. 즉,
 양(陽)만이 쌓인 열기(熱氣)로부터는 불이  나왔고, 그 화기(火氣)  중에서도 가
 장 세찬 것이 해(日)가 되었다. 한편,  음만이 쌓인 한기(寒氣)로부터는 물이 나
 왔고, 그 수기(水氣)중에서도 가장 맑은  것이 달이  되었다. 그리고, 해와 달에
 서 넘쳐 나온 정기들이 별들로 된 것이다. (淮南子 天文篇)

   우주 천지가 원래에는 혼돈(混沌)한 상태에서  점차로 분리되어 가지고, 청양한
 기는 위로 솟아 하늘이 되고, 중탁한 기가  엉기어 굳어 가지고 땅이 되었으며,
 또한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기가 음과 양으로 나뉘어, 서로  엉키고 배합되어
 가지고, 일.월.성을 비롯한 만물과  사시(四時)의  운행이 이룩되었다고 <<회남
 자>>에서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 천지 개벽의 과정(過程)을 <太
 昭->허간(虛間)->우(宇:空間)->주(宙:時間)->기(氣)->천->지->사시(四時)->
 만물(萬物)>의 순서로 잡아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혼돈에서 만물이 나왔다고 하는 발상은 비단  옛날의  한민족(漢民族)
 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리이스나 바빌로니아의  고대 신화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과연 이러한 혼돈설(混沌說)을 신화로만 볼 것이냐, 또는 원시적인 철학 사상
 으로 받아들일 것이냐 하는 문제는 있을 수 있다.
   오늘의 영국에서  씌어진 <<형성되고  있는 우주(Worlds  in  the  Making,
 R. Barnard Way>>의 구절도 또한 앞에 인용한 <<회남자>>의 신화적 발상과
 흡사한 데가 있다.

   구약성서 창세기에도 있듯이, 땅덩어리가 형성되지  않고  공허(空虛)했던 때
 에, 모든 만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에 대하여 생각해 본 일이 있는가?
 땅덩어리만이 아니라, 태양이나 달이나 별들도 형성되지 않고  허망한 것이었
 다. 오늘날 우리가 쳐다보는 많은 별들이 뿌려진 우주 전체가 그 때에는 형성되
 지 않고 허망한 것이었다.
   꿰뚫을 수 없는 두터운 어둠(暗黑)많이 온통 덮혀 있고, 단 하나의 존재도 있
 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 그러한 상태였다.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끔찍하다. 그러나, 분명히 태초에는 이러한 상태였던 것
 이다. 더욱이 천문학자들은 우리에게 그러한 상태였던 연대까지도 개산(槪算)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우주에 있던  큰 별에  비하면 미세한 먼지에 불과
 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어 없이 확고 부동하게 느껴지는 이 지구도,  태초에
 는 공간에 우왕좌왕 떠다니던 헝클어진 분자에 불과했다.

   여기 다시  에반스(I.O.  Evans)의  <<역사   개설(The Junior  Outline  of
 History>>에서 한 구절을 인용하겠다.

  지구는 애당초 불을 뿜으며 훨훨 타는 구름 같은 가스가 엉기어 팽이같이 돌
 고 있었을 뿐이었다. 돌고 있는 동안에 한  토막이 떨어져 나가서 달이 되었고,
 또한 점차로 구름 같은 가스가 냉각되어 엉기면서 액체가 되었고,  다시 냉각되
 어 표피(表皮)가 생기어 굳어졌다.
   그 후 지구의 표면이 냉각되고 굳어지기까지는 계속 열에 용해되었다가 다시
 냉각되었다 하면서 지구의 형태를 몇 번이고 바꾸어 가며 굳어갔던 것이다.
   또한, 지구는 그 속에 있는  열기에 의해 표피가 뚫리어  폭파되었고, 분화산
 (噴火山)이나 지진에 의해  변형되고 찢어지기도 했다.  한편, 끔찍한  폭풍우가
 땅 위를 스쳤고, 뜨거운 빗방울이나 증기가 하늘을 싸 덮기도 했었다.
   그 후 장구한 세월을 두고 지구가 계속하여 냉각돼  가자  땅의 표면에 물이
 고이고, 또한 고인 물이 강을 이루어 흘렀고,  모든 물들이 모여서 호수나 바다
 가 되었다.

   이상에서 우리는 우주 천지의 개벽이나 형성에 대하여, 과학과  철학과  신화
 가 쉽사리 엉킬 수 있음을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이 책의 본 취지가
 아니므로 다음으로  넘어가겠다.
   혼돈을 우주나 천지의 시초로 삼고자 했던 한민족의  신화적 전통은 노장(老.
 壯)에 와서는 그들 사상의 근원으로까지 전개되었다.
   <<장자(壯者)>>의 웅제왕편(雄帝王篇)에는 다음과 같은 우화가 있다.

   남해(南海)를 지배하는 제왕은  숙이고,  북해(北海)를  다스리는 제왕은
 홀(忽)이었다. 그들 중간에 혼돈(混沌)이라고 하는 제왕이 자리하고 있었다.
   마침, 남해의 숙과 북해의 홀이 혼돈의 나라에서 만나게 되었고, 중앙의 땅을
 다스리던 혼돈이 이들 두 왕을 융숭하고 극진하게 대접했다.
   이에 남과 북에서 온 숙과 홀은 서로 의논하여, 자기들을 후대해 준 혼돈에게
 보답하고자 했다.
   그리고 의논 끝에 말했다.
   "사람에게는 눈이 두 개, 귀와 콧구멍이  각각 두 개, 그리고 입이   하나, 모
 두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할 수가 있는데, 저 혼돈이란 임금
 은 통 구멍이 없이 흐리멍덩하니 우리 그에게 보답으로 구멍을 뚫어 줍시다."
   합의를 본 홀과 숙은 마침내 하루에 하나씩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 주었다. 그
 렇게 칠일이 지나, 일곱 개의 구멍이 다 뚫리자 혼돈은 그만 죽어  버리고 말았
 다.

   이 우화는 신화적 견지에서 풀이할  것이 아니라, 장자의 무위자연(無爲自然)
 의 사상을 바탕으로 음미해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의 대립적인 지배자를 숙이니
 홀(忽)이니 하는 이름으로 부른 그  자체가, 이미 순간적이라고 하는 뜻이다. 이
 에 비해 대립을 초월한  절대 존재인 중앙의 왕을 혼돈이라고  했던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순간적이다. 이 순간적인 생명에 사는 숙과  홀이 절대 존재자
 인 혼돈에게 일곱 개의 구멍을 뚫어 주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인간적 지각(지
 각)을 혼돈에게 주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혼돈은 절대 존재이자, 실상(實相)이
 며, 또한 모든 만물의 근원이 되는 실재(實在)이기도 하다. 따라서, 혼돈은 만물
 보다 먼저 있는 실재이며, 사람의 지각을 초월한 실재이다. 이 절대적 실재에게
 인간의 지각을 옮겨 주었으나 그 실재는 실재가 아니되고 바로 죽었던 것이다.
   여기서는 장자의 사상을 구명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물의 존재를 초
 월한 실재, 인간의 인식을 초월한 절대 존재를 혼돈으로 보고 있는 장자의 사상
 은 바로 우주 천지 개벽의 근원을 혼돈으로 보고자 한 한민족의 신화적 발상과
 맥이 통한다고 하겠다.
   즉, 우주 천지의 개벽은 너무나  묘망(渺茫)하다.  약 이천이백년 전의  충군
 애국(忠國 愛國)의 낭만 시인  굴원(屈原)은 <<천문(天門)>>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

   옛날 태초의 일을 누가 전하나?
   하늘과 땅이 없거늘 어찌 알 수 있으리?
   낮과 밤도 없이 아득하거늘 어찌 볼 수 있으리?
   허무하여 걷잡을 수 없거늘 어찌 지각할 수 있으리?

   결국 혼돈을 내세운 옛날의 한민족의 마음 속에는  <알 수가 없이, 아득하고
 망막하지만, 전체를 포괄하는 터무니없이 큰 조화>라고 하는 의상<意想>이 숨
 겨져 있었다고 하겠다.
   명확한 연대는 알 수가  없으나, 대략  전국 말(戰國末)에   만들어졌다고 하
 는 <<산해경(山海經)>>은 중국 고대의 가공적인 지리  책이라고 하겠고, 그 속에
 는 허다한  이풍괴속(異風怪俗)과 기물 변화(奇物變化)가 적혀있다.
   <<산해경>> 서산경(西山經)에 보면,  다음과  같은 혼돈(混沌)하여  면목(面
 目)을 가릴  수 없는 신조(神鳥)가 적혀 있다.

   서쪽 천산(天山)에는 금과 옥이 많다. 또   청웅(靑雄)과 황영(黃英)이라고 하
 는 강물이 흐르기 시작하여 서남쪽으로 내려가 탕곡(湯谷)에 들어간다.
   이 천산에는 신조(神鳥)가 있다. 모습은 노란 포대자루가 묽게 타는  것 같다.
 발이 여섯에다가 날개가 넷이 있으나, 혼돈하여 면목을 가릴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신조는 노래와 춤을 이해한다. 즉 제홍(帝鴻)이다.

   <<산해경>>에 주(註)를 단 필완(畢浣)은  제강(帝江)이 바로 제홍(帝鴻)이라
 고 했다. 홍(鴻)은 홍몽의 줄인 말이며, 홍몽은  천지가 미처 자라지 않은
 혼돈한 상태를 가리킨다. 동시에 이 홍몽은 동쪽 해가 뜨는 광대한 벌판을 가리
 키기도 한다. 즉 붉게 타는 노란 포대자루 같다는 것은 바로 화염(火焰)을 상징
 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태양도 아직 형성되지 않은 태초의  혼미한 시기의
 핵심을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 제홍의 아들이 불초자(不肖子)였다.  정의를 덮어 가리고  간악한
 짓을 하며 천하를 흐리게 하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이를 혼돈(混沌)이라고 불렀
 다고도 한다.
   여기서 우리는 혼돈이 천지 개벽 이전의 미분화(未分化) 상태 속에 있는 근원
 적인 어떠한 것을 가리키는 동시에 장자(壯者)같이 모든 실재의 근원으로  파악
 되었다가 다시 도덕적 의식의 혼란까지 번져 내려 왔음을 알 수가 있다.

 

천지창조(天地創造)

   때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오래 우주의 혼돈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천
 산에 신조가 살기 시작하여 불이 일자, 겹겹이 막히었던 어둠에  숨통이 뚫리고
 천지창조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삼국 시대 서정이 지은 <<삼오역기(三五曆記)>>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
 이 천지창조의 주인공 반고(盤古)에 관한 신화가 있다.

   천지가 개벽하기 전의 우주는 흡사 달걀 속 같았다. 두툼한 달걀껍질에 꽉 막
 힌 우주는 오직 칠흑과 같은 어둠과 혼돈이 범벅된 상태였다.
   반고는 바로 이 달걀 속에서 무의식의 혼수에 빠져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저
 자고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잠을 자며 자라고 있었다.
   어느덧 1만 8천년이 지났다. 반고는 마침내  홀연히 혼수 상태에서 깨어났다.
 어렴풋이 의식을 되찾은 그는 눈을 떴다. 그런,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혼미로웠던 의식이 말똥말똥해짐에 따라 그는  자기가 암흑 속에 갇히어  있고,
 또한 숨구멍 하나 없는 밀폐된 껍질 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둡고 답
 답할 뿐만이 아니었다. 숨통이 막힌다. 이대로 있다가는 질식해 죽을 것이다. 달
 걀 속에는 오직 암흑과 공포와 절망과 질식만이 걷잡을 수 없이 넘실거리며 반
 고의 의식과 몸을 조여들어 오고 있었다.
   그러나 천지창조의 신인 반고는 패배하지  않았다. 생명과 광명을 찾는  그의
 의지는 마침내 그를 떨치고 일어서게 하였다. 큰 도끼를 휘어잡은 그는
   "에잇"
 하고 분노의 고함과 함께 전신의 힘을 도끼날에 쏟아 달걀 껍질을 내려쳤다.
   꽝! 우루룽! 온 우주가 진동했다. 태산이 일시에  무너져 내리고, 바다가 온통
 뒤집히는 듯 굉연한 천둥 우레 소리가 고막을 멍하게 울렸다. 동시에 바늘 끝같
 이 예리하게 찔러 내리는 번갯불에 땅조각이 갈라지는 듯 싶었다.
   이윽고 육중하게 덮혀 막혔던 달걀 껍질이 깨어졌다. 반고는 움추렸던 고개와
 허리를 펴고 풀무짓하듯 한숨을 크게  내몰아 쉬었다. 어둠에 망막했던  눈앞이
 어슴프레 트이고, 달걀 속에 갇혔던 우주의 청명한 정기가 하늘로 훨훨 날아 오
 르고 있었다. 한편, 혼탁한 물체가 아래로 쳐져 내려갔다.
   이렇게 하여 우주는 점차로  하늘과 땅의  사이가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반고는 만족하지 않았다. 또다시, 하늘과 땅이 서로 합하고 엉키지나 않을까 두
 렵기만 했다.
   이에 반고는 머리 위로는 하늘을  이어 받치고, 두 발로는 대지를  눌러 딛고
 하늘과 땅이 다시는 마주 합치지  못하게 쐐기를 박았다. 하늘과 땅은  매일 한
 길씩 멀어졌다. 반고도 매일 한 길씩 몸을 뻗어 하늘과 땅 사이를 가로질렀다.
   이렇게 하기를 1만 8천년이  지났다. 하늘도 높을 만큼  놓아졌고, 땅도 굳을
 만큼 굳었으며, 하늘과 땅 사이도  벌어질 만큼 벌어졌다. 또한,  그만큼 반고의
 키도 자랐다. 대충 9만리의 길이로 추산되었다.
   거대한 반고는 오직 하늘과 땅이 다시는  혼돈과 암흑에 엉키고 묻히지 않게
 하고자 자기의 몸을 희생했던 것이다. 사명을 다한 반고는 만족했다. 그러나, 동
 시에 그는 더 없이 피곤했다. 1만 8천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안간힘을 써서
 하늘과 땅을 갈라 놓은 반고는 이제 푹 쉬고 싶었다. 위대한 천지의  창조자 반
 고는 마침내 9만리 키의 거대한 몸을  눕혔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운명(殞命)했
 던 것이다.
   한평생을 착하고 바르게, 할 일을 다한 사람이 뉘우침 없이 조용히 눈을 감고
 숨을 거두듯이, 반고도 만족하게 영원한 휴식 속에 들어갔던 것이다.
   희생 정신에 투철했던 반고는 죽어도 그의 육신을 그냥 썩혀버리지는 않았다.
 하늘과 땅을 갈라 놓고, 빛을 밝혀  준 그는 다시 자기의 온 육신과  온 정기와
 온 힘을 우주 천지의 만물로 바꾸어 놓았다.
   반고의 입김은 바람이나 구름이 되엇다. 그의  목소리는 뇌성으로 변했고, 왼
 쪽 눈은 태양, 바른쪽 눈은 달로 탈바꿈하여  천지를  비춰 주었다. 온 몸은 대
 지를 엎어 싸고, 그의 손발은 대지의 사극(四極)이자 다섯 개의  명산이 되었다.
 혈맥(血脈)은 하천으로 변해 흘렀고, 근육은 사방을 연결하는 도로로 트였고, 살
 은 기름진 전답으로 화했고, 머릿털이나 수염은 하늘의 뭇 별로 변했고, 피부의
 몸털은 온갓 화초나 수목으로 피어났고, 치아나 뼈들은 오색 영롱하게 반짝이는
 금은 보석으로 바뀌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그가  힘겨워 흘리던 땀방울마저 비
 나 이슬 방울로 대지를 축축히 적셔 주었다.
   한마디로 말하여, 반고는 죽어서도 온갖 세상을 풍부하고 아름답게 보살펴 주
 었던 것이다.

   반고의 신통력이나 변신(變身)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그가 흘린
 눈물이 강물이 되었고, 그가 토한 한숨이 바람을  일게 했고, 그가 외친 고함소
 리가 우레 소리가 되었으며, 그의 노한 눈초리가 번갯불로 빛났다고도 했다. 또
 한 그가 우울했을 때는 하늘도 흐렸고, 그가 유쾌했을 때는  날씨가 맑았다고도
 했다. 또한 낮은 그가 눈을 떴을 때이고, 밤은 그가 눈을 감았을 때라고도 했다.
   반고의 모습을 용두사신(龍頭蛇身)이라고도 한다. 즉, 머리는 용이고  몸은 뱀
 의 형태로 상상하고 있다. 이는 고대 중국의 신화적 시조(始祖)에 있어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산해경(山海經)>>에 있는 종산(鍾山)의 촉룡신(燭龍神)도
 인면사신(人面蛇身)이다. 즉, 얼굴은  사람이고 몸은 뱀이다.  이 촉룡신도 키가
 천리나 되고, 온 몸이 타는 불같이 붉으며, 그가 눈을 뜨면 세계가 환해지고, 눈
 을 감으면 어두워지며, 그의 입김에 따라 비. 바람. 눈 또는 추위나 더위를 내리
 게 한다고 전했다. 특히, 그는 언제나 입에 촛불 켜 물고서 북쪽에 있는 어둠의
 천문(天門)을 밝혀 주었다. 따라서, 그를 <<촉음(燭陰)>>이라고도 불렀다.
   촉룡신이 불을 밝히고, 만물을 생성(生成)한다는  신통력을 지닌 점에서는 반
 고와 비슷하다. 그러나, 천지 창조의 신이자 동시에 인류의 원조(元祖)라는 점에
 서는 오히려 중국 남쪽의 부족(部族)들이 자기네의 전설적 시조(始祖)라고 모시
 고 있는 반호(盤瓠)만 못하다.
   반고와 반호는 음이 통한다. 중국 남쪽의 요나 묘(苗)족들은 최근까지도 반왕
 (盤王)이라고 하여 이를 경건하게 모셨다.  특히 그들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해당하는 <<반왕의 글(盤王書)>>을 전해  내려오기도 했다. 다음에는 반호에 대
 한 신화를 풀겠다.

 

용견 반호(龍犬 盤瓠)

연대를 헤아릴 수 없는 옛날, 제곡 고신씨(高辛氏)의 나라는 먹을 것이 풍
족하고, 안팍으로 화목하여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황후 
마마의 귀가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가냘픈  황후가 혹심한 통증에 시달리다가 
못해 기절을 하고 자지러지는 것을 본  임금은 다급하게 신하들을 어전에 불러 
모으고 의논을 했다.
  이름 난 명의를 모조리 불러 보였다. 심산유곡을 두루 찾아 영특한 약초를 거
의 따다가 다려 바쳤다. 그래도 백방약이 무효요, 황후의 귀는 좋아지질 않았다. 
날과 달을 바꾸어 거듭하면서 조야가 들고 일어나 법석을 떨었으나,  통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한 채, 어느덧 삼년이 지났다. 그러자, 기적이 나타났다. 새벽 일
찍 잠에서 깨어난 황후 마마는 그 아프던 귓속에서  누에 같은 금빛 벌레 하나
를 끄집어 내고, 그 순간부터 그렇게 아프던 통증이 언제 있었느냐 싶게 말끔히 
가시고 말았다.
  황후 마마는 기뻤다. 게다가 금빛 벌레가 어찌나 귀엽고 광채가  영롱한지 그
녀는 소중하게 거두어 표주박 속에 넣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 금빛 벌레는 무럭무럭 자라더니 마침내 개로  탈바꿈을 했
다. 온 몸에 비단을 덮은 듯, 오색이 영롱한  털에 찬란한 빛이 번지고 있는 용
견(용견)이었다. 용견을 본 임금은 황후보다 더  기뻐하고, 몹시 사랑했다. 언제
나 신변 가까이에 두고 애육하고, 이름을 반호(盤瓠)라고 했다.
  고신씨의 나라에는 다시 평화와 안락이 넘쳤다.  그러나, 서북방에 있는 오랑
캐의 두목 방왕(房王)이란 자가 점차로 득세를 하더니, 마침내 반란을 일으켜가
지고 쳐들어 올 거라는 정보가 전해졌다.
  고신씨 나라의 임금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바야흐로 천하의 흥망을 가름할 위급한 때를 맞이했도다.  과인은 그대들 여
러 신하의 용기와 충성을 믿어 마지않는 바이니, 누구든지 오랑캐 땅에 들어가, 
역적 방왕의 목을 베어 오는 용사에게는 과인의 딸, 즉 공주와의 결혼을 허락하
겠노라."
  달같이 맑고 아름답고, 꽃같이 향기 드높은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는 
말에, 온 나라의 용사들은 귀가 솔깃했으나, 오랑캐 방왕의 막강한 무력과 잔인
하기 짝이 없는 포악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라,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를 못했
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넘어, 역적의 토벌을  자청해 나서는 용사가 없는 반
면에, 시시각각으로 오랑캐가 가까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조바심과 불안이 먹구
름 같이 임금의 가슴 속을 덮어 흐리게 하고 있었다.
  때마침 임금이 애지중지하던 용견 반호가 홀연  온데 간데 없이 종적이 묘연
했다. 대궐 안 사람들은 물론, 전국의 모든 사람에게 수소문하였으나, 아무도 반
호의 모습이나 종적에 대하여 아는 자가 없었다. 임금은 더욱 우울했고, 수심에 
쌓였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흉악한 오랑캐 방왕은 통쾌한  웃음을 터뜨리고, 독한 
술잔을 기울이며 외쳤다.
  "잘 됐어. 그 놈의 용견이 없어졌다고 하니, 제곡의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승리는 절대적이다."
  밤이 새도록 방왕은 술잔치를 벌이고 마구 들이마시며 지껄였다.
  한편, 고신씨의 궁중에서 자취를 감춘 반호는 이때에 이미 단신(單身)으로 오
랑캐 땅 깊숙히 들어가, 방왕 침대 밑에 숨어 가지고, 그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 
이윽고 방왕이 술에 만취하여 비틀거리며 돌아오더니 정신을 잃고 침대에 쓰러
졌다. 방왕의 목을 따기는  누워서 떡 먹이였다. 반호는  번갯불 같은 눈초리로 
역적 방왕을 노려보고 있었다가 돌연 덤벼들어 한 입에 그의 목을 따가지고, 질
풍과 같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반호가 오랑캐의 목을 물고 돌아온 것은 이튿날 새벽이었다. 밤새 잠도 못 자
고 걱정으로 머리가 무거웠던  임금 귀에, 반호의 짓는  소리가 들렸다. 임금이 
반가와 뛰어나가 보니, 반호는 임금 발 밑에 오랑캐 방왕의 목을 떨구어 보이는 
것이었다. 임금은 너무나 감격하여 제대로 말을 못 했다.
  "오, 반호야! 내가, 나를 위하여 역적을 쳤구나! 기특하도다!"
  충성스럽고 용맹한 반호의 소문이 온 나라 안에 퍼졌다. 임금은 더 없이 기뻐
했고, 크게 높여 자랑을 했다. 그러나 상대가 사람이 아닌 개라, 어떻게 상을 줄 
수도 없었고, 더욱이 약속한 대로 공주를 내려 짝을 지을 수도 없었다. 고작 반
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냥 먹여 줄 뿐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반호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구석에 맥없이 웅크
리고만 있었다. 임금이 손수 쓰다듬고, 음식을 손에  고여 주어도 꼬리만 몇 차
례 흔들 뿐 통 먹지를 않았다. 
  이렇게 사흘이 지났다. 마음씨가 착한 임금은 몹시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곰
곰히 생각해 봐도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오직 한 가지, 자기가 약속을 지
키지 못한 것도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임금은 반호에게 타일렀다.
  "반호야! 하기는 내가 방왕의 목을 베어 오면, 공주와 짝을 지어 준다고 했다
만, 너는 사람이 아니고 개인 걸 어떻게 하느냐?"
  임금의 말이 미처 끝나기가 무섭게, 반호는  반듯이 자세를 가다듬고, 놀라우
리만큼 또렷하게 사람의 음성으로 말했다.
  "폐하,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저를 금종(金鐘) 안에 밤낮 칠일 간만 묻어 주
시면 훌륭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단 칠일 이전에는 절대로 열어보지 마
십시오."
  미심쩍기는 했으나, 임금은  충성스런 반호의 청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즉시 
금종 속에 반호를 묻어 주고, 그 결과를 살피기로 했다.
  한편,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공주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기한 안에는 
절대로 열어 보지 말라는 분부를  지키노라고, 초조한 하루, 이틀,  사흘을 넘겼
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마음씨가 곱고 인자한  공주는 걱정스러웠다. 벌써 여러
날동안 한 모금의 물도, 한 줌의 먹이도  없이 지냈으니, 혹시 죽지나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에 사로잡혔다. 공주는 볓 번이고 옥수(玉手)를 내밀어 금종의 뚜껑
을 열까 말까 망설였다. 
  만 칠일 낮을 넘기고 한 밤만이 남았다. 줄곧 불안과 초조와 궁금증에 초췌하
게 여위기까지 한 공주는 자기도 모르게 뚜껑을 살며시 열었다.
  금종 속에서 반호는 무척이나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공주님, 이 밤만 무사히 넘겼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이상 더 사람의 몸으로  변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보시
다시피 전신은 다 사람의 몸으로  변신했습니다만, 머리만은 아직도 개의  모습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공주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내  죄책감에 사로잡힌 공주는 용
하게도 굳게 결심을 했다.
  "나라와 아버지의 생명을 구해 준 반호가 훌륭하게 사람으로 변신할 것을, 내
가 잘못하여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허물은 나에게 있으니, 내가 마땅히 반호에
게 시집을 가야 할 것이다. 그래야 임금이신 아버지도 언약을 지키실 수  가 있
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용감하고 충성스런 반호와 선량하고  희생적인 공주의 결혼을 충심
으로 축복했다.
  서애한 결혼식을 올린 이들 신혼  부부는 정이 든 대궐을  하직하고, 남산(南
山) 속 깊은 동굴로 가서 살았다.
  반호는 지칠 줄 모르고 사냥을 했고, 공주도 소박한 차림으로 반호의 뒤를 돌
봐주었다. 이들에게는 명예나  영화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이 사는 동굴에는 
오직 행복과 사랑의 훈훈한 기운이 넘칠 뿐이었다. 
  몇 해가 지나자, 이들 부부는 어느덧 삼남 일녀(三男一女)의 어엿한 어버이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임금은 손자 아이에게 저마다 성(姓)을 지어 주었다. 쟁
반에 낳았으므로 반(盤)이란 성을  내렸고, 둘째는 바구니  속에 낳았으므로 남
(藍)이라 불렀고, 막내 손자는 우레 칠 때  태어났으므로 뇌(雷)라 불렀다. 막내
둥이 손녀는 성장하여 씩씩한 병사를 사위로 맞이했으므로 종(鍾)이란성을 따르
게 했다. 이들 네 형제가 서로 성을 달리하여 저마다 한 집안을 이루었고, 후에
는 서로 통혼(通婚)함으로써 집안이 커졌고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다.
  
  중국 남쪽의 요(搖)나 묘(苗)족은 최근까지도 반왕(盤王)을 자기네 시조로  모
시고, 모든 사람의 생사(生死), 수복(壽福) 내지는 빈천(貧賤) 및 길흉(吉凶)까지
도 다 지배한다고 믿고 있다.  


  인두(人類)의 창조신(創造神)[복희(伏羲)와 여와]
  
  인류의 탄생을 천지 사이에서 가장 맑고 신령(神靈)한 기가  뭉쳐진 것이라고 
보는 견해나, 또는 반고가 죽어서 만물과 더불어 사람이 나왔다고 하는 신화나, 
또는 충성된 용견(龍犬) 반호와 공주가 인류의 시조라고 하는 전설은 저마다 그
럴듯한 연유를 지니고는 있으나, 모두가 어딘지 모르게 인간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고, 우리 인간들의 정리(情理)에서 너무나 동떨어지는 흠이 있다.
  그러나, 복희(伏羲)와 여와를 주인공으로 한 설화는 자못 우리의 친근감을 불
러 일으켜 준다.
  한대(漢代)의 석각(石刻)이나 전화에서 볼 수 있는  복희와 여와는  인두사신
(人頭蛇身)의 부부(夫婦)이다. 둘이 다 상체는   인간의 모습 그대로다. 포자(두
루마기)를 입고, 관모(冠帽)를 쓰고  있는 품이 제법  예절을 의식한 시대의 상
(像)이라 하겠다. 그러나 아랫도리는 뱀이나, 용의 꼬리다.
  이들 둘은 상체는 서로  떨어져 있으나, 꼬리는 서로  엉키어 꽈붙이고 있다. 
즉 남성과 여성의 교합을 상징하고 있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그림도 있고, 반대로 보고 있는 화상도 있다. 남
자는 손에 곡척(曲尺)을 가지고 있고, 여자는 손에 콤파스를 들고  있다. 이것
은 남녀가 저마다의 기술과 직분을 지니고 있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다른 그
림에서는 남자가 두 손으로 태양을 받들고 있고, 태양 속에는 금까마귀(金烏)가 
한 마리 있다. 한편, 여자는 두 손으로 달을 고이고 있고, 달  속에는 방아를 찧
는 토끼와 옆에는 두꺼비가 엎드려 있기도 하다. 또 다른 화상에는 배경으로 구
름이 그려진 것도 있고, 또는 공중에 날개를 편 인두사신의 천사들이 나는 형상
도 있다.
  복희와 여와는 원래 오누이였다. 이들 오누이가 부부가 되어 자손을 보고, 후
손이 번창하게 되었다고 하는 이야기는 중국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의 신화. 전
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삼강오륜을 몹시 따지는 중국에
서 이러한  오누이의 결합으로 인류가 번식했다는  전설이 이어 내려오고 있다
는 것은 특이하다 하겠다.
  중국 서남(西南)에서 전해 오고 있는 이들에 엉킨 전설을 소개하겠다.
  
  지구 위에 아직도 인류가 생존하지  않고, 이따금 하늘나라에서 천인(天人)들
이 찾아 들던 때였다. 천인들에게는 단조로운 천국(天國)보다는 높은 산, 울창한 
숲, 맑은 강물과 검푸른 바다가 있는 지상(地上)이 더욱 좋았다.
  천인 중 용맹하기로 이름난 한  사나이가 변화 많고 아름다운  땅 한 구석을 
택하여, 별장을 지어 놓고 이따금씩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내려와 며칠씩 지
상의 풍경을 즐기곤 했다.
  무더운 여름 날이었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고 음산한 바람이  불고 
이따금 마른 천둥과 번개가 수선을 떨었다. 필시 폭풍우가 땅을 휩쓸 기세였다.
  용맹한 사나이는 다급히 어린 아이들을 집안에 넣고, 밖으로 나가 청태(靑苔)
를 따 가지고 지붕 위를 겹겹이 덮었다. 빗물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찍이 본 적이 없었던 폭우였다. 천지를 진
동할 듯 번개와 천둥이 뒤범벅이 되어 산과  들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한편, 폭
풍은 우렁찬 고함을 치며 숲과 바다를 뒤집어엎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폭풍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온 땅덩어리를 물에 몽땅 삼켜 버
릴 듯한 기세로 더욱 기승스럽게 쏟아져 내리고 후려치는 것이었다.
  공포에 달달 떠는 어린 것들을 달래고  있던 용감한 사나이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필경 뇌신(雷神)이 자기에게 도전을 해 온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보
다시피 그는 맨주먹이었다. 투구나 무기를 천국에 두고 지상에는 잡고  싸울 것
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뇌신이 이렇듯 흉포하게 덤벼들고 있었으니 어찌할 도
리가 없었다.
  사나이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뇌신을 맞아 싸우기로 했다. 즉시  쇠망태기 하
나를 탄탄하게 엮어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쇠갈퀴를 들고 대문을  열고 밖
으로 나가면서 우렁차게 외쳤다.
  "뇌신아!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자, 오너라!"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먹구름을 헤치고 뇌신이 쏜살같이 내려덮쳤다. 두 손
에 날카로운 도끼를 잡은 뇌신은 번갯불을  타고 사나이 가슴팍을 노리고 덤벼 
들면서, 눈뜰 사이도 없이 도끼를 내려쳤다.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사나이는 잽싸게 훌쩍 비켜 서면서 손에  들었던 쇠갈
퀴로 뇌신의 허리를 나꿔채기가 무섭게 다른  한 손에 들었던 쇠망태기 속으로 
몰어 넣고는 뚜껑을 굳게 닫았다.
  "뇌신아! 네가 비겁하게 나의  덜미를 잡으려고 불의의  역습을 해 왔다마는, 
도리어 내게 덜미를 잡히고 알았구나! 핫, 핫, 핫......"
  용감한 사나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 소리는 멀리 
산골짜기로 메아리쳐 번졌다. 한편, 그의 웃음소리가 미처 멎기도  전에, 그렇게
도 극성스러웠던 하늘은 씻은 듯이 말게 개였고 땅 위에는 다시 고요와 햇빛이 
찾아들었다.
  "잘 보아라. 이자가 바로 폭풍우를 몰고 와서 세상을 어지럽힌 뇌신이다."
  사나이는 아이들에게 쇠망태기 속에 갇혀진 뇌신을 보이고 말했다.
  "절대로 이 놈에게는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켵들여 단단히 주의를 주고, 사나이는 밖으로 일을 보러 나갔다.
  처음에는 퍽이나 괴상하고 험상궂게 보였던 뇌신도 차츰 시간이 지나고 눈에 
익으니깐 그다지 무섭지도 않게 느껴졌다. 아이들은 쇠망태기  곁에서 태연하게 
놀고 있었다.
  그러자, 뇌신은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린 
남매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목이 타서 죽겠다. 얘들아, 물 한 그릇만 떠다 다오"
  뇌신은 더욱 고통스럽다는 시늉을 하며 애처롭게 애걸을 했다. 
  "아버지가 절대로 물을 주지 말라고 그랬어요."
  윗 나이의 오빠가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거절했다. 그러나, 뇌신은 더욱 안달
스럽게 애걸했다.
  "한 그릇이 아니고, 한 모금이라도 좋다. 당장에 죽겠으니,  제발 목숨을 살려 
주는 셈치고 물 한 모금만 다오."
  "한 모금도 안돼요."
  오빠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옆에 서 있던 누이동생의 얼굴에는 측은
한 빛이 돌았다. 교활한 뇌신은 누이동생을 보고 더욱 애달픈  목소리로 애원했
다.
  "아가, 나를 살려 다오! 물을 못 주겠거든, 저 냄비를 닦는 털 끝에 물을 추켜 
, 그것으로 내 잎을 추겨다오"
  그리고 뇌신은 두 눈을 감고 입을 떡 벌리고 기다리는 시늉을 했다.
  마음이 약한 어린 누이동생은 오빠를 보고 말했다.
  "오빠! 털 끝에 물을 추켜 주는 것은  괜찮겠지? 너무나 불쌍한데, 그렇게 해
줄까?"
  오빠 생각에도 며칠째 물 한 모금 목에 넘기지 못한 뇌신이 너무나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리고, 털 끝에 물을 추겨서 입을 적셔 주는 것은 지장이 없을 거라
고 여겨졌다. 그는 동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이동생은 털 끝에 물을 추겨가지고, 뇌신의 바삭바삭 탄 입술을  적시어 주
었다. 그 순간이었다.
  "아! 참 고맙다. 너희들 덕택에 죽지 않고 살게 됐다. 자, 이제 내가 쇠망태기
를 부수고 나갈 테니, 너희들은 저쪽으로 비켜 서 있거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와르릉! 하는 천둥과  함께 번갯불을 번쩍! 하고 일어
나더니 뇌신은 쇠망태기를 부수고 훌쩍 뛰어나왔다. 그리고, 다급히 입 속에
서 이를 하나 뽑아 어린 남매에게 주며 말했다.
  "너희들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이 이빨을  땅에 묻으면, 싹이 나고 자라서 
커다란 열매가 영글 것이다. 앞으로 재난이 있거든 너희들은 그 열매 속에 들어
가 숨어라. 그러며는 너희들만이 살아 남을 것이다."
  다시 한번 요란스럽게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고 뇌신은  하늘 높이 사라지고 
말았다.
  용감한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어린것들은 넋을 잃은 듯  멍청하니 
부서진 쇠망태기를 가리켰다. 결국 털  끝에 물을 적셔 준 것으로  뇌신이 힘을 
다시 얻어 하늘로 올라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철부지 어린 것들을 꾸짖어
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미구에 닥쳐 올 뇌신의 대 역습에 대비를 해야 
했다. 시각을 다투어 그는 커다랗고 튼튼한 철선(鐵船)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편, 어린 남매는 뇌신이 준 이빨을 땅에 묻었다. 이튿날  아침에 나가 보니, 
파란 싹이 돋았고 다음날에는 꽃이 피었고,  또 다음 날에는 커다란 호로(葫蘆)
가 영글었다.
  그 무렵이었다. 또다시 하늘이 심상치 않게  설레이기 시작했다. 두터운 먹구
름이 완전히 태양을 가려 덮어 온 지구를 암흑 속에 몰아 넣었다.  이어 삽시에 
하늘이 갈라지며 바닷물을 엎어부은 듯 폭우가 쏟아졌고, 팔방에서 천둥과 번개
가 천지를 진동했다. 전번의 유가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산봉우리도 모조
리 물에 잠기고 말았다. 
  용감한 아버지는 철선을 띄우고 
  "얘들아! 어서 이 배를 타라. 지난 번의 뇌신이 복수하러 왔다."
하고 외쳤다.
  두 어린 남매는 광포한 비바람 속에  허우적거리며 아버지 앞으로 가려고 했
다. 그런, 억센 물결이 단숨에 그들을 멀리 흘려 떠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
까? 바로 눈앞에 커다란 호로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남매는 서
로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 끌며 호로 속으로 들어갔다. 
  지구 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물만이 들끓듯 술렁이고 있었으며, 그 위
에는 용감한 사나이가 탄 철선과 어린 남매가 탄 호로만이 사나운 파도에 까불
리고 있었다.
  철선을 탄 사나이는 이 괴변을 즉시  하늘 나라의 황제에게 보고하고자 천문
(천문)을 찾아 두들겼다.
  "어서 문을 열어 주시오. 황제 폐하에게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지상의 괴변을 전해 들은 황제는 즉시 여러 천신(天神)들을 시켜 뇌신의 횡포
를 멈처게 했다. 동시에  수신(水神)으로 하여금 당장에  천지 사이에 부풀었던 
물을 빠지게 했다. 
  이내 비와 바람이 멎고, 천도(天道)까지  부풀어 올랐던 물이 일시에  빠졌다. 
그 바람에 천문을 두드리던 아버지의 철선이 천길 높이의 허공으로부터 땅바닥
으로 곤두박질을 하고 떨어졌다.  한편, 아버지의 뒤를 쫓던  남매가 탄 호로도 
같이 떨어졌다. 그러나, 굳은 철선은 산산히 부서져  그 속에 탔던 용감한 사나
이는 죽었으나, 탄력 있고 말랑말랑한 호로는 약간 튕겼을 뿐 속에 탔던  두 남
매를 상처 하나 없이 안전하게 살아 남게 해주었다.
  다시 조용해진 지상에는 아름다움이 넘쳤다. 그러나,  이번 폭풍우에 온갖 생
물들이 훌치고 쏠리어, 오직 두 어린 남매만이 유일한 지상의 생존자로 남게 되
었다. 아버지를 닮아 용감한 이들은  슬픔을 잊고 밖으로 나가 집을  다시 짓고 
밭을 갈아 먹을 것을 장만했다. 그리고는 이따금 하늘에 올라가 천인(天人)이나 
천신(天神)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내 땅으로 되돌아왔다. 그만
큼 땅이 좋았고 땅 위의 생활에 마음이 끌리었다. 해와 달이 바뀌어  돌며 포근
한 빛과 청명한 밤을 주고 받는 사이, 어느덧 이들 어린 남매는  무럭무럭 자랐
다. 이제는 늠름한 젊은이요, 어엿한 처녀로 성장하고 말았다.
  이들은 클수록 저희들도 모르게 고독을 느꼈다.
  달같이 희맑은 누이동생의 아름다운 얼굴을 엿보며, 오라비는 몇 번이고 서로 
결혼하자고 졸랐다. 그러나, 누이는 매양 거절해 왔다.
  "같은 피를 받은 오누이가 어떻게 남과 남같이 결혼을 할 수가 있어요? 절대
로 안 됩니다."
  "그러나, 이 땅 위에는 오직 너와 나뿐이니 어찌 하니? 우리라도 결혼하여 후
손을 보아야 땅 위에 사람들이 번질 것이 아니냐?"
  오라비의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했다. 이대로 살다가 그냥  죽으면, 이 지
상에는 아무도 없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선뜻 결혼을 승낙할 수도 없었
다. 마침내 누이는 오라비에게 조건을 제시했다.
  "앞 서서 뛰는 나를 잡으면 결혼해요."
  오라비는 누이를 쫓아 큰 나무 둘레를 며칠을 두고 뛰었으나, 도저히 잡을 수
가 없었다. 그는 궁리 끝에 묘한 계략을 생각해 냈다. 즉, 누이의  뒤를 쫓는 척
하다가 후딱 뒤로 돌아 달렸다. 이에 그런 줄도 모르고 내닿던 누이는  왈칵 오
라비가 벌린 두 팔 속으로 정면으로 뛰어들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오누이는 결
혼을 하고 부부가 되고 말았다.
  얼마 후, 아내가 된 누이는 살덩이를 낳았다.  이들 부부는 이 살덩이를 소중
히 간직하여 천국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미처 하늘 나라에 도착하기에 앞서, 공
중에서 몹시 심한 바람을 만나, 아차 하는  사이에 그 살덩이를 날리고 말았다. 
살덩이는 바람에 불리어 사방으로 흩어진 채 땅 위로 떨어졌다. 다급히 뒤를 쫓
아 내려와 보니, 그  살덩이들은 사방에 흩어져 모두가  사람으로 변했다. 이에 
부부가 된 오누이는 저마다 성을 지어 주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떨어진 자에
게는 목(木)이라 불렀고, 잎에 떨어진 자에게는 엽(葉)이라 성을 지었으며, 나머
지 사람들은 너마다 떨어진 장소의 이름을 그대로 성을 삼도록 했다.
  이렇게 하여 지구 위에는 다시 인류가 번성하게 되었으며, 부부가  된 오누이
가 바로 인류의 시조라고 믿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 오누이는 호로(葫蘆)에 숨어서 살아 남았으므로 같은 뜻의 포희 또는 복
희(伏羲)라고 불리우게 되었으며, 후세에는 이들을 복희(伏羲)와 여와라고도  부
르게 되었다.
 
  복희와 여와를 오누이로부터 부부로 바꾸어 인류의 시조로 삼은 이 신화는 <
노아의 홍수>나 <아담과 이브>를 연상시켜준다. 한편,  윤리적으로는 용납되지 
않을 오누이의 결혼을 그대로 밀고 나간 이 신화는  인류의 시조를 남과 여 위
의 하나의 근원을 설정하고자 했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기독교적 신화라면 유일
무이(唯一無二)한 하나님이라고 할 존재를 용감한  사나이, 즉 아버지에 비기고
자 한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는 지나친 추측일지도 모른다. 대체로 고대의 중
국인들은 이러한 절대신(絶對神)에 대한 생각이 희박했다.

 

지구와 인간
  
  뇌신의 아들 복희
  태고 때의 부족은 저마다 자기네의 시조나  자기들이 살고 있는 고장의 명산
대천, 또는 해나 달 기타  동식물의 정령(精靈)에 얽힌 신화나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중국의 경우도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강력한 중화문화에 의해 일찍
부터 통합되기 시작한 중국의 경우,  주변 부족들의 전설이나 신화도  통합되어 
이른바 삼황오제(삼황오제)와 같은 역사적 기록으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으며, 
따라서 원래의 여러 부족들 사이에 전해  오던 신화나 전설이 점차로 퇴색했거
나 구석에 몰리게 되었다. 
  후한(後漢)의 뛰어난 학자 정현(鄭玄)은 삼황(三皇)을 신농(神農).복희(伏羲).여
와로 꼽았다. 그러나, 이른바 삼황에 대한 이야기는 유가적 사상의 냄새가 짙게 
풍긴다. 역시 원래의 모습은 주변 부족 사이에 전해 내려온 이야기 속에 다분히 
남겨져 있다. 
  원래 복희와 여와는 오누이도 부부도 아니었다. 진(秦)이나 한대(漢代) 이전의 
기록에는 별개의 존재로 기술되어 있다. 우선 복희에 대한 이야기를  추려 보겠
다.
  
  복희는 화서(華胥)라는 나라에서 태어났다.
  화서는 오직 안락과  평화만이 넘치는  극락세계다. <<열자(列子)>>에 보면 
황제(黃帝)가 화서국에 노는 꿈을 꾸고 비로소 천하를 잘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
다. 황제가 꿈에서 본 화서국은 이른바 <나라>라고 하는 기구 조직도 없고, 임
금이니 신하니 하는 계급 차별도 없고, 자연 그대로였다. 사람들도 기호(嗜好)나 
욕망을 갖지 않을뿐더러, 아예 삶과 죽음, 또는 남과 나에 대한 구분 한계도 못 
느끼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사랑이니  미움이니 하는 감정에 사로잡히는  일 
없이, 허공을 땅 딛듯 마구 달리고, 어둠을 낮같이 여기고,  천둥 우레에도 겁내
지 않고 유유자적 영원한 세월을 하루같이 살고  있었다. 바로 노자(老子)나 장
자(壯者)가 주장한 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유토피아였다.
  여기 사는 사람들은 엄격히 따지자면 사람과 신의 중간을 차지하며, 지상에서 
말하는 신선(神仙)이라 하겠다.
  이들 신선 중에 화서씨(華胥氏)라고 불리우는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동쪽으로 구경을 나갔다. 얼마만큼 가자  숲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늪에  이르렀
다. 그녀는 절묘한 경치에 도취되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종종걸음
을 옮겼다. 그러자, 뇌택(雷澤)이라는 늪가에  홀연 거인(巨人)의 발자국이 찍힌 
것을 발견했다. 너무나 신기로운 발자국을 본 그녀는 놀랍고 또한  호기심에 찼
다. 그녀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어머나! 어쩌면 이렇게 큰 발자국이 있을까?"
  저도 모르게 끌리는 듯, 그녀는 자기의 가냘프고 어여쁜 발을 큰 발자국 속에 
맞추어 디뎠다. 그러는 순간이었다. 그녀 가슴에 덜컥 마치는 듯한 충격이 느껴
졌다. 
  이렇게 하여 그녀는 잉태하고, 마침내 알찬 옥동자를 낳았다. 이가 바로 복희
였다.  

  뇌택(雷澤)의 발자국이 누구의 것인지 옛 기록에서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뇌
택을 주재하는 신은 문자를 통해 보더라도 뇌신(雷神)일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
다. 또한 전하는 말에 의하면 뇌신 역시 사람의 머리와 용의 몸을  가진 인면용
신(人面龍身)이라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인면사신(人面蛇身) 또는 인두용신(人
頭龍身)이라고 전해진 복희가 뇌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아마도 복희의 어
머니 화서씨가 감응(感應)한 발자국은  바로 뇌신의 것이라고 단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앞에서 본  바, 복희와 여와가 오누이로,  그의 용감한 아버지가 
뇌신과 싸왔다는 신화와는 상치된다. 그러기에 넓은 중국 땅에서 제멋대로 전해
져 내려온 신화, 전설의 묘미가 한층 더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기는 오누이의 아버지도 역시 뇌신이었는지 모른다. 그러기에  그가 잽싸게 
홍수로 지구를 덮친 나쁜 뇌신을 일격에 생포할 수가 있었다고 덧붙일 수도 있
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게 앞뒤를 꼭 맞춘 신화는 전하지 않고 있다.
  천신(天神)의 감응으로 태어난 복희는 여러 가지 신통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그가 하늘사다리(天梯)를 타고 하늘에 내왕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의 말로 부른 하늘사다리는 실은  높은 산이나 신목(神木)이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 수 없는 자연의 조화인 높은 산과 신목을 타야 하늘로 오를 수 있
었다. 구름이나 안개를 타고 하늘로 오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발  한 발 걸
어서 하늘에 오르락내리락 했다는 발상은 소박하고 정직한 옛 사람들의 생활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었다.
  단, 걷는다고 아무나 하늘에 오를 수는 없었다.  우선 하늘에 통하는 길을 알 
수가 없었다. 다음으로는 높은 산이나 신목을 타고 오를 기술이  비범하지 않으
면 안 되었다. 예를 들어 말하면,  곤륜산(崑崙山)이 땅 위에서 가장 높은  산이
며, 동시에 천제(天帝)가 땅 위에  내려왔을 때 묵는 이승의 도읍(都邑)이  있는 
곳이며, 이 곳을 통하여 모든 천신(天神)들이  땅과 하늘을 내왕한다는 것을 알 
수는 있었다. 그러나, 막상 곤륜산에 오르려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상한 신통
력이 있어야 했다.
  곤륜산이란 이름부터가 애매하여 혼돈(混沌)에  통했다. 대략 서쪽의 영산(靈
山)이고, 서왕모(西王母)가 사는 것이며, 또한 해나 달이  들어가 잠자는 어둠의 
보금자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뿐, 정확하게 지리를 점칠  수가 없었
다. 곤륜산의 높이가 2천  5백여리가 되지만, 그 주위에는  수많은 산과 계곡이 
있고, 특히 곤륜산을 둘라 싸고 약수(弱水)라고 하는 깊은 강물이  흐르고, 다시 
그 밖으로는 불기둥마저 솟고 있다고 전했다. 따라서, 이 곤륜산을 타고 하늘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신인(神人), 선인(仙人) 그리고 무사(巫師)뿐이었던 것이다. 
  그 후, 하늘과의 왕래가  빈번해지자, 곤륜산 이외로  화산(華山)이나 조산(肇
山) 또는 등보산도 하늘  사다리로 씌었으며, 또한  높이 솟아난  신목(神木)을 
타고 오를 수도 있게 했다고 한다. 그 대표적인  신목은 서남쪽에 있는 도광(都
廣)이라는 벌에 있는 건목(建木)이었다. 이 벌에는 신녀(神女) 소녀(素女)가있었
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자라고, 난조(鸞鳥)나 봉황(鳳凰)등이 날고,  겨울에도 꽃
이 만발하는 낙원(樂園)의 벌이었다.
  이 벌에 살던 신녀 소녀(素女)는  복희가 창안(創案)한 슬(瑟)이라고 하는  큰 
거문고를 켰으며, 특히 복희가 작곡한 가변이라는 곡조를 연주하여 온갖 신이나 
사람 내지는 짐승들을 감동시켰다. 음악  소리가 너무나 감격적임을 안  복희는 
줄이  50개였던 슬을 반으로 줄여  25현(絃)의  슬만을 소녀에게 연주케  했다. 
오늘의 거문고의 줄이 25현을 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연유여서 지나치게 사람
을 감동시키게 하지 못하도록 안배한 것이라고 한다.
  다른 신화나 전설에는 복희는 동방(東方)을 주재하는 상제(上帝)이며, 그를 보
좌하는 목신(木神)과 구망(句芒)을 거느리고 있다고 했다.
  구망은 손에 그림쇠(規矩)를 들고 동쪽 하늘을 측정하고 동시에  봄을 관리하
고 있었다. 그의 얼굴 모습은  사람의 탈이었으나, 몸은 날새의  틀이었으며, 흰 
옷을 걸치고 노상 두 마리의 용(龍)을 부리고 있었다. 원래 구망(句芒)이라는 이
름은 봄철에 초목이  싹돋음한다는 뜻으로, 구맹(句萌)과  통한다. 따라서, 봄의 
상징인 생명과 소생을 암시하는 이름이기도 하다.
  구망이 상제(上帝)인 복희의 명을 받고 진(秦)나라 목공(穆公)의 수명을  19년
이나 늘여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목공은 슬기로운 인재를 잘 높여 등용했다. 
대표적인 예가 백리해(百里奚)를 초(楚)나라로부터  양피(羊皮) 다섯 장을  주고 
사가지고 높이 등용하여, 재상으로 앉혔으며, 7년  후에는  목공이 일대의 패권
을 잡게 되었다. 또한 백성을 아꼈던 목공은 일찍이 도망갔던 자기의 말을 잡아 
먹은 기하(岐下) 고을의 야인(野人)들 3백 명을 너그럽게  용서해 준 일이 있었
다. 후에 이들의 도움으로 목공은 진(晋)나라의 왕 이오(夷吾)를 사로잡고, 진의 
군대를  격파할 수가 있었다.
  처음에는 오누이였다가 후에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다고 하는 복희와 여와는 
인류의 남성과 여성의 시조이기도 했다. 
  그러나, 후에는 남존여비(男尊女卑)의 동양적 사상이 가미되어 복희(伏羲)만을 
내세워 음양(陰陽)의 원리적인 팔괘(八卦)를 창안했다고 높였다.  팔괘는 건(乾:
天), 곤(坤:地), 감(坎:水), 이(離:火), 간(艮:山),  진(震:雷), 손(巽:風), 태(兌:澤) 
여덟 개의 기호다. 이 기호는  천지 만물의 생성과 변화의 모든  원리와 형상을 
포괄하여 알려 주는 것이며, 후에 주역(周易)의 바탕이 된 것이다.
  역사적 전설로는 복희가 새끼로  어망을 엮어 백성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 주었고, 그의 신하인 구망이 새망으로 날새를 잡는 법을 알려 줌으로써 사
람의 생활을 풍족하게 해 주었다고도 한다.
  복희가 인류에게 끼친 가장 위대한 공헌은 역시 불의 사용법을 가르쳐 준 것
이라 하겠다. 사람들은 불을 피워 동식물을 익혀서 먹음으로써 생식했을 때보다 
훨신 배탈도 덜하고, 더욱 건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
  <<사기(史記)>> 삼황기(三皇記)에는 신농(神農)이 나와서 백성들에게 농업과 
불 쓰는 법과 약초를 알려 주었다고 했다. 신농은 소의 머리와 사람의  몸을 가
졌으며 불을 다스렸으므로 염제(炎帝)라고도 했다.  그는 나무로 따비를 만들어 
농사 짓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또한 약초를 가지고 병을 고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또 오현슬(五絃瑟)을 만들었고, 또한  낮에 저자에 나와 교역(交易)하는 
법도 알려 주었고, 더욱이  팔괘(八卦)를 곱하여 64효(爻)로 전개시켰다고  한
다. 즉, 그는 화덕(火德)의 왕이자, 농신(農神)이며, 동시에  의약(醫藥)을 위시한 
이른바 문화적 생활의 길을 터준  성황(聖皇)이다. 따라서, 삼황(三皇) 중에서도 
그를 가장 높이어 신농. 복희. 여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역(易)에서는 신
농을 복희 다음에 나타난 성인으로 친다.
  
  한편, 불의 발명에 대해서는 수인(燧人)이라고 하는 제왕(帝王)을  내세우기도 
한다. 즉, 수인이 나무로 뚫어 비벼서 불을 피웠다고 한다.  수인에게 얽힌 신화
가 있다.

  지구의 서쪽 끝발치에 수명국(遂明國)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다. 이 곳에는 
태양이나 달의 빛이 전연 미치지 않아 노상 어둡기만 했다. 물론 낮이다 밤이다 
하는 시간적 분별도 있을 수가 없었다. 오직  영겁(永劫)의 어둠만이 덮쳐 흐르
고 있었다.
  이 나라에는 수목(遂木)이라고 하는 신비로운 거목(巨木)이 있었다.  어두워서 
정확히 재어 볼 수는 없었으나, 대략 만경(萬頃) 넓이의 따을 가지와 잎이 가려 
덮고 있을 거라고 했다.
 때마침 견문이 넓고 총명한 탐험가가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던 끝에 이 나라에 
왔다. 그로서도 난생 처음 이렇듯이  칠흑 속에  잠기게 된  것이었다. 먹통 속 
같이 어둡고 답답하고 앞이 캄캄하여 동서남북도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는 별
도리 없이, 거대한 수목에 기대어 앉아 장차의  방도를 찾고자 했다. 비록 어둠 
속이었으나, 그는 예사롭게 눈을 지긋이 감고 한참 동안 궁리를 했다.
  그러자, 눈을 뜬 그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온통 나무둘레가 희한하게 
아름다운 빛으로 번쩍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혹시나 환상이 아닌가 하고 눈을 
거듭 비비고 보았으나 분명히 나무 그루나 가지에 별이 총총히 매어 달린 듯이, 
진기한 보석의 영롱한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이에 총명한 탐험가는 그 빛의 내원을 밝히고자 여러 모로 조사를 했다. 알고 
보니, 그것은 독수리같이 생긴 커다란 새가 나무 그루나 가지에  앉아서 송곳같
이 뾰족하고 단단한 부리로 나무의  표피를 쪼아 그 속에  있는 버러지를 잡아 
먹을 때마다 번뜩번뜩 일어나는 불이었다. 영리한 탐험가는 문득 터득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즉시 수목의 나뭇가지를 두 개 꺼었다. 그리고,  새가 부리로 나무
를 쪼듯 한쪽 가지 끝으로  다른 포피에 날카롭게 조여 박았다.  과연 번뜩하고 
불꽃이 번졌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불길이나 불씨를 얻을 수가 없었다. 그는 다
른 나무에 조그마한 구멍을 깊이  뚫어 그 속에 굳은  나뭇가지를 넣고 세차게 
비비었다. 마침내 푸시시 연기와 더불어 불이 살아  일고, 불씨로 쓸 수가 있게 
되었다. 
  어둠의 나라 수명국에서 불을 일으키는 방법을  터득하고 돌아온 그는 온 따
위의 사람들에게 전해 주었다. 그러부터 사람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불에
서나 간신히 얻을 수 있었던  불씨를 수시로 필요한 때에  자기 손으로 일으킬 
수가 있게되었다. 
  불을 발명하여 사람에게 불을 쓰게  해 준 이 탐험가가 바로  수인(燧人)이었
다. 수인이란 글자의 뜻을 풀이하면 <불을 일으킨 사람>이 된다.

  복희를 뇌신(雷神)의 아들이며 불을 주재한다고 한 것은 자연  복희가 사람에
게 불을 주었다고 하는 전설과 연결된다. 즉,  번개나 우레가 봄에 돋아난 나무
에 떨어져 불을 일게 해 주면, 긴 겨울 추위에 떨던 사람들이 불씨를 얻은 것이
다. 이때의 고마운 존재가 바로 봄을 주재하는 뇌신의 아들 복희라 여겨졌을 것
이다. 따라서 복희(伏羲)를 포희라고도 했다. 즉,  동물의 고기를 불에 태운다는 
뜻이다.
  복희의 자손은 후에 파국(巴國)의  시조가 되었으며, 복희의  어여쁜 딸 복비
(宓妃)가 낙수(落水)를 건너다 물에 빠져 낙수(落水)의 여신이 되었다고 한다.
 
  인류의 어머니 여와
  복희와 여와를 문자를  풀이하여 건장한  미남자와 뱀의  요정(妖精)이라고도  
한다. 복희는 포희라고도 하며, <쌀포(包)>자는 밖으로  싸 덮는 큰  물건을 뜻
한다. 은(殷)나라 초기에는 그들의 추장의  이름을 포을(包乙), 포병(包丙), 포정
(包丁)이라고 불렀다. 이 때의 포(包)는 <위대한  대 추장>의 뜻이었다. 희(牛+
羲)자는 희생으로 쓸 수 있는 품위 높은 소의 뜻이다. 결국 포희는 품격이 좋고 
위대한 남성을 상징하는 명칭이다. 한편, 여와의   와는 <움  와>나 <물  돌아  
 
흐를 와>와 같은 계열의 글자로서, 여성이나 뱀을 상징하고 있다. 옛날의  그림
에 인면사신(人面蛇身)으로 그려진  것이나 이름이 일치한다고  하겠다. 이렇듯 
인류의 원조를 뱀(蛇)와 연결지은 것은 역시  파충류 시대의 잔영(殘影)이라 하
겠다.
  결국 태고 때의 원시인이 파충류와  엉키어 살았으며, 노상 지상을  흽쓸었던 
폭풍우나 홍수에서 살아 남은 위대한 남자를  포희라 했고 서로 돕고 어울렸던 
아름다운 여자를 뱀의 요정 여와라 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여성인 여와는 
인류의 어머니이자 자비롭게 만물을 화육(化育)하는 여신이기도 했다.

  어둡고 혼돈하던 우주 속에서 지구가 차츰 굳어지고 하늘과 땅이  갈라져, 이
른바 천지가 개벽했다. 대지 위에는 산이 솟고 들이 퍼지고 숲이 우거지고 동물
이 뛰고 풀과 꽃 사이로 벌레들이 우짖게 되었다. 황량하기 짝이 없던 땅  위에 
제법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늘에서 굽어 보는 천신(天神) 여와는 아
직도 외로왔다. 땅 위에 천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들이 없는 것이 퍽이나 한스러
웠다. 여와는 마침내 결심을 하였다.
  "천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어 가지고 땅의 주인이 되게 하자."
  지상으로 내려온 여와는 여러 모로 궁리를 했다. 마침 그녀가 내린 곳이 황하
(黃河) 근처인 황토(黃土) 지대였다. 이윽고 여와는 진흙을 빚어 천신의  모양을 
한 인현을 만들었다. 그리고, 땅에 세워 놓자 그 인형은 <으앙,  으앙> 산아 같
은 울음을 터뜨리며 즐거운 듯이 살아 뛰었다.
  여와는 만족했다. 자기가 흙을 빚어 만들어 낸 인간들은 다른  어느 동물보다
도 천신의 모습에 흡사했을 뿐만이 아니라, 가장 영묘(靈妙)하고 영특했다. 여와
는 계속해서 사람을 만들어 생명을 주었다. 남자도 만들고 여자도 만들었다. 어
느덧 자기 둘레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 놀고 있었다.
  그러나, 넓은 땅에 고루 자기 손으로 만든 아들 딸을 퍼뜨리기에는 너무나 사
람의 수가 모자랐다. 뿐만 아니라, 손수 하나  하나 빚어 만들자니 너무나 시간
이 지루했고, 또한 품이 들어 피곤했다. 여와로서는  이왕 착수한 일을 어서 완
성하고 싶었다. 한 시라도 빨리 발랄하게 뛰고 즐겁게 담소하는  사람들을 지상
에 퍼뜨리고 싶었다. 여와는 하늘 나라로부터 새끼줄 같은 넝쿨 가지를 베어 가
지고 내려왔다. 그리고 그것을 진흙에 흠뻑 적시어 높은 산에 올라가 넓은 벌을 
향하여 훨훨 내둘렀다. 넝쿨 가지에  배였던 진흙들이 사방으로 알알이  방울져 
흩어 떨어지며, 그 모두가 사람으로  변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자,  드디어 땅 
위에는 쓸쓸치 않을 만큼 사람들이 들어찼다.
  하기는 사람의 수가 많고 보니,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의  차이가 생겼
다. 그것은 여와가 손수 빚어 만든 사람과 넝쿨 가지로 뿌린 자들의 차이라고도 
전한다. 그러나 자비로운 여와가 애당초부터 사람을 창조하면서  빈부의 차이를 
계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시 빈부의  차이는 인간들의 책임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하늘에서는 영원히 삶을 누릴 수가 있으나, 땅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 
절대 진리이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여와는 어떻게 하면 자기가  만든 귀엽고 
영특한 사람들이 끝남이 없이 땅을  지배하고 더욱 번성할 것인가를  궁리했다. 
언제까지나 일일이 자기 손으로 만들어 퍼뜨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무한한 고심 끝에 창안해 낸 것이 결혼이었다. 남녀가 서로 결혼을 하여 자손을 
퍼뜨리면, 비록 자기가 만든 일대(一代)가  죽어도, 지구 위에는 사람들이  대대 
손손 번성할 것이었다. 이에 여와는 인류의 번성을 위하여 혼인  제도를 창안해 
냈고, 남녀를 짝지어 주었으며, 나아가서는 어린  아기들의 성장을 보살펴 주는 
자비(慈悲)를 베풀게 되었던 것이다.

  후세에서 여화를 혼인의 신이자, 중매(仲媒)의 신으로 모시는 연유를 알 수가 
있다. 여와야말로 인류의 산모(産母)이자 자손의 번식을 위해 혼인과 양육을 뒷
바라지해 준 자모(慈母)였다. 따라서, 오늘에도 어느 지방에서는 매년 이른 봄에 
넓은 들에 신묘(神廟)를 차려 여와를 모시고,  소와 돼지와 양을 함께 희생물로 
바치는 가장 큰 태로의 예를  드린다. 그리고는 온 고장의 남녀가  모여 축제를 
지내고 어울려 가무를 즐기다가 서로 짝을 짓고, 그 밤으로 달과  별의  축복을 
받으며, 대지의 푸른 풀을 보금자리로 삼는  풍습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른바 
<하늘이 지어주는 짝(天作之合)>이다.
  한편, 결혼하고도 자손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여와를 모신 신묘(神廟)에 빌
게 마련이다. 이 신묘는 지방마다 풍취가 다르다. 송(宋)나라는 상림(桑林)에 모
셨고, 초(楚)나라는 운몽(雲夢)에 모셨다. 그러나, 저마다 가장  두드러진 명승지
를 골라 모시게 마련이다. 그리고, 신단(神壇) 앞에 우뚝하게 큰  돌을 세워놓고 
있다. 이렇게 큰 돌을 세워 놓은 상세한  뜻은 모르겠으나, 원시 시대의 사람들
이 숭배했던 남성적인 상징일 것이다.
  인류를 낳고, 남녀의 혼인을 창안했고, 또한 자손의 번식과 양육을 주재한 자
비로운 여와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절대적인 공헌을  해 주었다. 즉, 인류가 잘 
살고 번식하고 발전할 수 있게, 지구를 바로잡아 안정되게 해 주었던 것이다.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끝 없이 되풀이되고, 또 그때마다 주동자와  명분이 다
르듯이, 우리의 지구와 인류의 창조기에도 뜻하지 않았던 시련이 겹겹이 물결쳐
왔다. 원래 땅이 안정된 것을  보고, 여와가 사람을 퍼뜨렸던  것이다. 그런, 땅 
위에 사람들이 즐겁게 살며 평화와 행복과 번영을 누리게 되자, 하늘에 있는 수
신(水神)인 공공(共工)과 화신(火神) 축융(祝融)이 난데없이 싸움을 시작하여, 그 
재앙을 지상에 치게 했던 것이다.
  공공(共工)은 수신(水神)이었으나, 하늘에서도 배척을 받을 만큼 성미가  사납
고 행실이 나빴다.  그 모습은 인면사신(人面蛇身)이며,  머리털이 붉었다. 그의 
부하인 상류(相柳)도 같은 인면사신이었으나, 전신이 퍼렇고, 머리가  아홉 개나 
달렸으며, 흉악무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같은 부하 부유도 악한이었다. 이 자
는 죽어서 붉은 곰으로 변신하여 진(晋)나라 평공(平公) 집에 침입하여 병풍 뒤
에서 염탐을 했고, 이로 인해 평공이 병을  앓게 되었다고 한다. 공공의 아들도 
망난이였다. 그는 동지(冬至)날에 죽어, 마귀가 되어서 사람들을 괴롭혔다. 따라
서, 사람들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녹두 죽을  쑤어 그를  쫓았다고 한다. 오직 
수(脩)라고 하는 아들만은  착했다. 그러기에 그는  악한 주위의 사람들을 피하
여 노상 명산 대천(名山大川)을 찾아 각지를 유람을 일삼았다. 오늘의 여행가들
이 모시는 조도(祖道)는 바로 수(脩)라고도 하며, 착했던 길손인 그의  신령에게 
평안 무사한 여행을 비는 것이다.
  수신(水神)인 공공(共工)의 무리가 화신(火神)인 축융(祝融)과  최후의 결전을 
벌인 것도, 바로 착한 아들 수(脩)가 여행을   나갔을 때였다. 따라서, 공공측으
로서는 오직 잔인무도한 일당들이 총동원하여 온갖 횡포와 악행을 자행했다. 그
러지 않아도 물과 불은 상극이다. 공공과 축융의 극한적이고 치열한  싸움의 불
티는 땅 위의 평화와 안락마저 파괴하게 되었다.
  수신인 공공은 방대한 뗏목을 타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 산더미 같은 파도를 
솟구치며 악한 부하들과 합세하여 사납게 덤벼들었다. 한편,  화신(火神)인 축융
은 높이 구름수레(雲車)를 타고  두 마리의 용(龍)을 몰아  자유 자재로 허공을 
날으며 뜨거운 불기로가 눈을 멀게 하는 검은 연기를 내뿜으며 맞서 싸웠다.
  사람들의 싸움에서도 종국적으로는 선(善)한 정의가 이기게 마련이다. 하물며, 
하늘 나라에 있어서는 군말을 곁들일 여지가 없이, 승패는 애초부터  분명한 것
이었다. 문자 그대로 정의의 불길이  솟아 오르는  곳에 악덕한 무리들은  맥도 
못 쓰고 쓰러져 나갔다. 하늘과 땅을  덮어 흐리던 전운(戰雲)이 가시고,  다시 
포근하고 맑은 햇살이 사람들의 머리 위를 축복이나 하는  듯 비쳐 주고  있었
다. 바야흐로 지구는 다시 영원한 평화와 안락을 되찾는 듯했다. 그러나, 승리의 
영광 뒤에는 패배의 오뇌가 따르게 마련이다.
  하늘은 물론 땅 위에 있던 온갖 물들을 모조리  훑어 수만리 높이 하늘로 치
솟아 일격을 겨누던 수신 공공은 처참하게 패배하자, 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
하고, 일시에 왈카닥 공중재비를 돌며 사정없이  떨어져 내렸다. 육중한 무게는 
중력의 가족을 더해 맹렬한 위세로 땅을 향해 엄습해 떨어졌다. 그러나, 지구는 
전같이 무방비 상태는 아니었다. 굳은 암석의 높은 산들이 우뚝우뚝  솟아서 떨
어져 내리는 엄습자를 막아  주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높은 부주산(不周山)이 
가장 격심하게 급전 직하하는 공공 일당의 타격을  받아 냈다. <쾅!>하고 부딪
치는 소리와 충격은 바로 지구를 송두리째 으스러뜨리는 듯 싶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었다. 하늘에서의 공공와 축융의 처절하던 결
투의 화를 이렇듯 땅이 당해야 했다. 우선 하늘을 떠받치고 있던 부주산의 허리
가 부러져 하늘이 기울게 되었고, 땅 한쪽이 움푹 파졌다.  한편, 산림에는 불길
이 솟아 타기 시작했고, 웅덩이나 골짜기에는  물이 넘치기 시작했다. 평탄하고 
아늑하던 땅은 생지옥으로 화했다.
  자비와 사랑의 여신(女神)인 여와는 몹시  상심했다. 귀엽고 활발하던 자기의 
아들 딸들이 저렇듯 험악한  땅에서 어찌 살 것이냐?  이미 노쇠한 여와이기는 
했으나, 마지막으로 한 가지 큰 일을 이룩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엉망이 된 땅을 
바로잡아, 인류가 편히 살고 번영할 수 있는 보금자리로 만들어 주고자 했다.  
  여와는 강물 속에서 오색의 돌을 골라 불에 녹혀  가지고 아교 같은 풀을 만
들었다. 그리고, 구멍난 하늘을 풀로 땜질해 막았다. 이에 큰 거북을 잡아 네 다
리를 삐어가지고 허리가 잘라진 부주산 대신 하늘을 떠받칠  천주(天柱)로 삼았
다.
  자손들의 행복을 염원하는 인류의 어머니  여와의 마음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인류를 해치는 모든 맹수나 유조(幽鳥)를 추방하고자 했다. 그중에도 가
장 흉악을 털치던 흑룡을 잡아 죽임으로써 일벌백계의 번을 세웠다. 한편, 불에 
탄 산림에서 재를 긁어 내려, 강이나 둑을 보수 하여 물난리에 대비했다.
  한 마디로 파멸에 직면했던 인류에게 다시  삶의 길을 터주고 아울러 지구를 
오늘과 같은 보금자리로 만들어 준 시조의 신이 바로 자애로운 여와였다.

  이상의 여와보천의 고사는 <<회남자(淮南子)>>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는 
중국의 지형을 암암리에 풀이하고 있다.  죽, 부주산(不周山)이 공공(共工)의 충
격으로 무너져 기울게  되었으므로, 하늘이 동남쯕으로  기울어 처졌고, 따라서 
서북쪽이 높아져 해, 달, 별들이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길을 잡아 나가게 되었
다. 또한 동남쪽이 움푹 파져 모든 강물이 흘러내렸고, 바다를 이루게 되었다. 
  여와가 생명을 걸고 하늘을 보수하고, 땅을 다지고, 재앙의 씨를 제거해 줌으
로써, 인류는 다시 지상에서 편히 살 수 있게 되었다. 대지 위에는  다시 봄, 여
름, 가을, 겨울의 네 계절이  고르게 뒤바뀌면서 만물의 생육과  번성을 도왔고, 
들짐승이나 날새 또는 물고기들도 사람에게 차츰 길들어 같이 어울려 살게까지 
되었다.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충분히 양식을 구해 배를 불리고, 짐승의 털이나 
가죽으로 추위를 막을 수가 있었다. 호랑이  같은 짐승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연 
속에서 먹이를 충분히 얻을 수가 있었으므로,  사람을 보고도 해치지를 않았고, 
도리어 어린아이들에게 제 꼬리를  잡히어도 서로 끌고  당기며 어울려 희롱을 
했다. 한 마디로 고대  한민족이 이상으로 삼고  있던 삼황(三皇)의 황금시대가 
펼쳐진 것이다.
  자기가 손수 만들어 낸 인류들이 이제는  자연과 잘 어울려 평화롭고 안락하
게 살며, 저들끼리 어울려 짝을 맺고 다시 자손을 번식시키고 있는 현황을 굽어 
본 여와는 적이 만족하며 가슴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만하면 
물러나도 좋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여와는 인류에게 마지막으로  평화의 즐거운 선물을  하나 더해 주기로 
작정을 했다. 그것은 생황(笙簧)이라는 악기였다.  생황은 봉황새 꼬리 같은  열 
세 개의 대롱을 엮어 만든 악기였다. 이것을 사람들에게 주어 특히 달밤에 남녀
들이 이 악기 소리를 들으며, 더욱 즐거운 심정으로 서로가 사랑에 도취하게 유
도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여와는 음악의 여신이기도 했다.
 
  오늘에도 중국의 서남쪽에 사는 묘족(苗族)이나  동족은 노생(蘆笙)이라고 하
는 악기를 남녀를 위한 달밤의 모임에서 분다고 한다. 매년 봄철 복숭아꽃이 피
어 번질 무렵 특히 활짝 개인 달밤에 월장(月場)이라고 하는 넓은  뜰에서 사방
에서 모인 남녀들이 이 음악 소리에 맞추어 같이  노래도 하고 짝지어 춤을 추
기도 한다. 이 때의 춤을 조월이라고 한다. 이 춤이 끝나면, 남자들이 각자 노생
(蘆笙)을 가지고 저마다의 좋아하는 가락을 불어 대고, 그의 짝이 될 여자는 그 
가락 소리를 찾아 허리에 찬  방울 소리를 울리며 남자 곁으로  간다. 그리하여 
서로 짝이 되어, 손을 잡고 계속하여 춤을 추면서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춘다고 
한다. 바로 결혼의 신 여와의 인도로 사랑의 짝을 맺는 것이리라.
  자비로운 여와는 인류를 위해 많은 공헌을 남기고 갔다. 하늘의  신인 그녀로
서는 하늘에 돌아가 길이 쉬는 것이고, 우리로서는 죽는다고 할 것이다. 최후에 
있어서도 여와는 반고와 같이 자기의 시체를 그냥  썩히지 않았다. 그의 장(腸)
을 신인(神人)으로 변신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천신인 여와는 뇌차(雷車)를 타
고, 비룡(飛龍)을 시켜 끓게 하고 뭉게뭉게  일어나는 노란 구름을 뚫고 하늘로 
올라갔다.
  천제(天帝)는 그녀의 공로를 장히 칭찬하고 표양했다. 그러나,  여와는 겸손하
여 모든 공로를 대자연의  덕으로 돌리고 스스로  자랑하거나 자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렇듯 겸손하고 자애로운 여와,  위대한 인류의 어머니에게 모
든 사람들은 끝 없는 감사를 보내고 있다. 

 

바다의 신선

  옛 사람들에게는 오밀조밀 만물이 들어차 있는 대지보다도 끝 없이 허무하기
만한 푸른 하늘과 한결같이 펼쳐진 푸른 바다가 더욱 신비로왔을  것이다. 엄연
히 눈앞에 보이는 한 줄기 수평선, 그 선에가 닫고자 앞으로 나가면  그만큼 더 
뒤로 물러나가 있는 수평선, 끝내 이르지도 못하겠고, 대 보지도 못할 수평선을 
가늠줄로 삼고 밀착되어 있는 하늘과 바다, 찬란한 해가 수평선에서  솟아 오르
면 푸른 하늘과 바다는 다  같이 포근하고 안온하게 대지와 만물을  감싸 주고, 
하루의 여정에 피곤한 태양이 서산으로 들어가 쉬며는 어둠을 밀어내듯 희멀건 
둥근 달과 총총히 빛나는 뭇 별들이 하늘과 바다에서 동시에 꿈을 안겨다 주기
도 하며, 반대로 사납게 노하면  낮밤을 가리지 않고 하늘과 바다가  미친 듯이 
엉키어 폭풍우와 치솟는 파도가 고함치며 육지를 위협하고 사람들을 공포에 떨
게 한다. 이러한 하늘과 바다가 옛 사람들의 신화에 큰 몫을 차지했으리라는 것
은 쉽사리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중국에 있어, 바다는 동남쪽에 끝 없이 펼쳐져 있고, 그 이유는  싸움에서 패
한 공공(共工)의 일당이 떨어져 부주산(不周山)에 부딪쳤기 때문이라고 했다.
  끝 없이 망연하게 펼쳐진 푸른 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환상을 끝없이 불러 일
으켜준다. 하늘의 기색이나, 표정 즉 구름이나 안개 또는 비바람에 따라 각양각
색으로 변하는 바다는 무척 아름다우면서도  일면 까닭 모르게 두렵기도  하다. 
결국 옛 사람들에게는 신비만을 자아내는 존재였다. 도시 그 속에  어떠한 주재
자가 살고 있는 것일까? 속  깊이 들어가 볼 수도 없는  바다에는 얼마나 많은 
기이한 생물들이 있은 것일까?
  옛 사람들은 마침내 용궁(龍宮)이 있고, 해룡왕(海龍王)이 바다를 지배하고 모
든 바다의 생물들이 이른바 백관(百官)이나 백성들일 거라는 가상을  하게 되었
다. 특히, 용(龍)은 바다에서도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했고, 남성인 경우는 용왕
(龍王), 여성인 경우는 정용녀(精龍女)가 되었으며,  파충류의 대표인 뱀은 바다
에서도 제법 부지런히 등장했다. 그리고, 소라나 거북은 주로 바다에만 엉킨 신
화적 주인공이었다. 그럼, 여기서 큰 게에 엉킨 옛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겠다.

  옛날에는 바닷속에 큰 게가 살고 있었다. 게의 등 길이만도  천리가 넘는다고 
하니, 사람의 눈으로는 게의 전체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치 하
나의 섬이라고 하는 편이 납득이 잘 갈 것이다.
  한 장수가 바다 건너 물건을  팔고자 배를 타고 며칠 동안  항행을 계속했다. 
망망대해에 지친 장수의 눈앞에 난데없이 섬이 우뚝 솟아 보였다.  푸른 수목마
저 울창한 아름다운 섬이었다. 장수는 크게 기뻐하고,  즉시 배를 섬에 갖다 대
고 뭍으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를 꺽어 땔감으로 불을 피우고  밥을 짓
기 시작했다. 한참, 밥이 끓을 무렵이었다. 이게 웬일일까? 갑자기 섬이 꿈틀 하
고 움직이며, 훨훨 타던 불과 밥솥이 물에  잠기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장수는 
이내 배로 뛰어 옮아 탔다. 잘 보니 그것은  섬이 아니라 큰 게였다. 등에는 불
이 그을린 자욱이 보였다. 

  당(唐)나라 이태백(李太白)의 시에 <백발의 길이가 삼천 길(白髮三千丈)>이라
고 했다. 그보다 아득한 옛날이라 큰 게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장자(壯者)
도 몇 천리 크기의 곤(鯤) 또는 붕(鵬)이 있었다고 했다. 
  안데르센의 동화에 나오는  인어(人魚)는 중국에도 있었다.  육지에 인면사신
(人面蛇身)의 신화적 주인공들이 있었듯이 바다에는 인면어신(人面魚身)의 인어
들이 있었다.
  인어를 능어(陵魚)라고도 불렀다. 능(陵)은 뭍이란 뜻이다. 죽,  중국에서 능어
라고 불리우던 인어는 날씬한 물고기 체구에 손 발이 있어 육지에서도 살 수가 
있었다. 인어에 대한 토막 전설을 몇 개 적겠다.

  남쪽 바다에 교인(鮫人)이라고 불리우는 인어가 있었다. 그는 바닷물 속에 집
을 지니고, 노상 베틀에 앉아  베를 짜고 있었다. 간혹  고요한 밤 깊이 바다의 
물결도 일지 않고 잔잔할 때에는 남모르게 바닷가 백사장에 올라와, 창백하리만
큼 희고 아름다운 자세로 서서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헤아리기도  했다. 때로
는 애조(哀調)에 찬 노래를  조용히 읊으며 두 눈에서  진주(珍珠)알 같은 방울 
눈물을 흘려 떨구기도 했다. 조용한 바다를 지나는 뱃사공들은 이따금  깊은 바
닷속에서 쓱싹 쓱싹!하고 교인들이 베를 짜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고 전한다. 

  교인의 교(鮫)자는 상어라는 뜻이다. 상어를 이렇듯 다정 다감한 인어로 그린 
것은 옛 중국인의 동심(童心)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전설이자 동화다.

  바다에 살고 있는 인어(人魚)의 생김새는 사람과 똑같다. 얼굴에는 눈, 코, 입, 
귀는 물론 눈썹까지 있으며, 몸매는 남자나 여자를 가릴 것 없이 한결같이 늘씬
하고 예쁘다. 특히, 살결은 옥돌같이 희고 고우며, 늘어진 머리카락은 말꼬리 같
이 탐스럽게 길다. 
  가볍게 잔 술을 들면,  온 몸이 춘삼월 복숭아꽃처럼  연분홍으로 물들며, 그 
요염한 품은 비할 바가 없이 아름답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으로 젊은 홀아비나  과수댁은 남모르게 인어를 잡아다가 
뒤뜰 연못에 키우고 정을 나눈다고도 전한다. 

  인어가 달빛에 외로운 바닷가의 미녀로 등장하기는 동양과 서양이 다를 바가
없다. 공자(孔子)는 냇가에서 흐르는 물을 보고 한탄한 바 있다.
  "이렇듯이 모든 것은 가기만 하는구나! 밤낮 없이 쉬지 않고 가는구나!"
  물론 공자는 끝 없이 흘러내리는 물 자체를 한탄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
었다. 그러나, 옛 사람들은 순간도 쉬지 않고 일방적으로 마구 흘러내리기만 하
는 강물을 보고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늘에서 한 없이 쏟아져 내리고, 
사방으로부터 동남쪽으로 도도히 흘러내리는 강물들이 모두 바다로 모여든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옛 사람들은 크게 걱정했던  것이다. 아무리 바다가 한량 없
이 크다고 한들, 언제인가는 가득 찰 것이 아닌가? 찬 다음에는 넘칠 것이 아닌
가? 그렇게 되면, 육지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다음 같은 전설을 믿고자 했다. 
  
  땅 위의 온갖 강물이 흐르고 흘러  끝나는 곳, 발해(渤海)의 동쪽에 수억만리
를 넘는 넓이의 끝 없이 깊은 골짜기가 파져 있다. 이름을 귀허(歸虛)라고 하며 
바닥이 무한정 깊다. 따라서, 백천(百千)과 해양(海洋)의 물들이 아무리 쏟아 넣
어도 그 골짜기는 차는 일이 없다. 

  불가지(不可知)의 골짜기 귀허에는 여러 가지 신비가 수반되지 않을 수 없다. 

  귀허에는 신산(神山)이 다섯 개가 있다.  이름을 대여(貸與), 원교, 방호(方壺), 
영주, 봉래(蓬萊)라고 한다. 이들 신산은 저마다 높이와 둘레가 삼만리를 넘으며 
산과 산의 사이는 대략  칠만리를 넘고, 모든 산정(山頂)에는 약 구천리 넓이의 
평지가 하나씩 있다. 
  이 평지에는 신선(神仙)들이 찬란하게 눈부신  황금으로 궁전을 짓고, 고귀한 
백옥(白玉)으로 울타리를 둘러 치고 살고 있다. 그  곳에는 일년 내내 울긋불긋 
각종의 꽃이 영글어 매달렸다. 이들 열매의 맛이 희한할 뿐만이 아니라, 하나만 
따 먹어도 언제까지나 젊고 아름다움을 간직하며 수명 장수 할 수가 있다.
  신선들은 백설(白雪)같이 흰 옷을 걸쳤고, 등에 조그만한 날개가 있어 새같이 
자유 자재로 푸른 하늘과 바다 위를 날을 수가 있다. 또한 다섯 개의 섬을 서로 
왕래하며 친척이나 친구들과 즐거움을 나누기도  한다. 이들 다섯 개의  신산은 
바로 인류가 동경하는 극락의 선경(仙境)이다. 

  오직 안락과 행복만이 넘치는 신산이기는 했으나, 공통된 걱정거리가 하나 있
었다. 그것은 이들 다섯 개의 신산이  끝 없이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기 
때문에, 어쩌다 바다에  풍랑이 일면, 같이  출렁이고 또한 표류하는  일이었다.  
지난 달만 해도 동쪽으로 몇 만리를 날으면 거기서 선녀(仙女)를 만날 수가 있
었는데, 이번에는 그 자리에 다른 신산이 옮아 와 있으므로 다시 이쪽 저쪽으로 
긴 여정을 날아 헤매고 찾아야했다. 여간 수고롭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서로 모여서 궁리와 의논을 거듭한 나머지, 각 신산에서  대표를 뽑
아 천제(天帝)에게 파견하여 그들의 실정을 호소하기로 했다.
  천제는 그들의 고충을 잘 이해했다. 뿐만이 아니라, 만약의 경우 심한 풍랑에 
한두 개의 신산이 북극(北極)으로 떠내려가 나락(奈落)으로 아주 떨어져 침몰이
나 하게 되는 날에는 큰일이라고 근심까지 했다. 그리하여 천제는 즉시 북해(北
海)의 해신(海神)인 우강에게  명하여 신선들이  사는 신산을 고정시키게 
했다. 
  해신 우강은 천제의 적손(嫡孫)으로 풍신(風神)도 겸하고 있었다. 그가 풍신으
로 우주에 군림하고 나설 때에는 인면조신(人面鳥身)의 모습을 짓고, 양쪽 귀에 
푸른 뱀을 늘어뜨리고 두 발도 푸른 팸을 눌러 딛고 있다. 보기에도  사나운 풍
채를 한 그가 한바탕 두 날개쭉지를 펼쳐 사납게 퍼덕이면 맹렬한 바람이 하늘
과 바다로 불어 제친다. 특히, 성났을 때의 바람은 독기가 찼고 많은 병균을 옮
겨 주므로, 어떠한 생물이든 살짝 스치기만 해도 병들어 죽고  만다. 한편, 그가 
해신(海神)의 탈을 쓰고 나타날 때는 곱상한 능어(陵魚)같이 온화하고, 두  마리
의 용을 부린다.
  풍신과 해신을 겸한 우강은 본래가 북쪽 바다에 있던 곤(鯤)이라고 하는 물고
기가 붕(鵬)이라고 하는 날새로 변시한 겹치기 천신(天神)이었다.
  곤은 본시 조그만 알이었다. 그러나, 일단 부화하여 물고기로 성장하면 그 크
기가 수천 리를 넘었다. 그리고, 다시  변하여 널새 붕(鵬)으로 화하면 또한  그 
크기는 몇 천리가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이 붕새가 한바탕 날면, 그 두 날개는 먹구름 같이 하늘을 가려 덮고, 서서히
펄럭이는 날개바람은 땅과 바다를 휩쓸어 제쳤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북해에 깊이 묻혀  있던 곤어는 붕새로 탈바꿈하여 남해
로 날아 옮았다. 그 때에 북쪽 바다는 끓는 물같이 온통 뒤집히고 회오리바람의 
기둥줄이 빳빳이 서 오른다. 즉, 붕새가 날기 위한 부력을  얻고자 해서다. 그리
고 바다 위를 삼천리나 내닫고 나서  비로소 공중에 떠오르며, 이윽고는  구만
리 높이로 여섯 달을 날아 목적지인 남해에 가 버렸다. 
  이렇듯 거물급의 풍신(風神)과 해신(海神)을  겸한 우강이 천제의  영을 
받고 다섯 개의 신산을 고정시키고자 나섰던 것이다.
  해신인 우강은 다급히 큰 검정 거북(黑龜)  다섯 마리를 귀허(歸虛)에 파견하
여 저마다 하나씩 신산을 등에 엎게 하였다. 아무리 하늘에서 내려온 흑귀신(黑
龜神)이라 하더라도 수만 리 크기의 신산을  등에 지고 있다는 것은 고역이 아
닐 수 없었다. 게다가 교체는 육만 년이 지나야 하게 마련이었다. 
  거북은 원래가 귀갑 밖으로 짤막하게 사지나 목을 내밀고 절름거리는 습성이 
있다. 무거운 짐을 지고 6만년을 꼼짝 않고 바다에 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어려
운 노릇이었다. 그러므로 신산들도 절대적인 안정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
나, 전같이 크게 자리 바꿈을 한다거나 크게 동요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신선들
도 마냥 마음을 놓고 안락하고 행복한 생활을 보낼 수가 있었다.
  천신의 세계에도 인간의 사회처럼 영원한 평화는 지속되기  어려웠다. 신산에 
안정이 깃든 지 몇만년이 지날 무렵, 뜻하지 않았던 교란자가 나타났다. 곤륜산
(崑崙山)의 사람들은 모두가 용(龍)의  족속이고, 몸집이 거대했으므로  용백(龍
伯)이라고 불렀다.
  항구적인 안정은 무료감을 주게 마련이다. 용백국에 살던 두 명의 장난꾸러기 
거인들은 하품과 기지개를 연거푸하다 지쳤다. 무심코 내려다본 것이 바로 귀허
에 떠 있는 다섯 개의 신산들이었다. 지구로부터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이 파랗
듯이, 하늘 위에서 지구를 내려다봐도 역시 파랗기만 할 것이다. 구름 한 점 없
는 푸른 하늘에 흰 갈매기가 날 듯, 망망대해에 두둥실 떠 있는 흰색의 다섯 개
의 신산은 마치 물 속에 유영하는 인어 같았을 것이다. 이에 장난꾸러니 용백들
은 무심코 낚싯줄을 드리워 건드려 보고자 했다. 무론 나꾸어  잡아 올리겠다는 
사심은 눈꼽만큼도 없었다. 따라서, 용백은 낚시바늘  끝에 가장 진미로운 미끼
를 달아 먹여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밑에 있던 검정 거북에게는  사정이 달랐다. 몇 만년을  시달리고, 또 
굶주렸던 판에 뜻밖에 맛있는 천국의  진미가 눈앞으로 내려오므로, 환장을  할 
수밖에. 자기에게 주어진 신성하고 중대한 사명도 잊고 왈칵 달려들어  한 입에 
삼키어 넘겼다. 한편, 놀란 용백국의 낚시군은 반사적으로 낚시를 제쳤다. 이 통
에 거북의 등에 엎였던 신산은 아! 하는 사이에 뒤집혀 끝 없는 바닷속으로 침
몰해 버렸던 것이다. 
  용백국의 장난꾸러기가 두 명이었다는 것은 불행 중에도 다행이었다. 다섯 개
의 신산 중,  대여(貸與)와 원교는 영영  사라졌으나, 방호(方壺), 영주, 봉래(蓬
萊)의 셋은 무사할 수가 있었다.
  뒤 늦게 이 참사를 보고 받은 천제는 천지를 진동하며  노발대발하였다. 그는 
신통력을 부려, 용백국의 영토를 좁혔고, 그 곳의 사람들의 체구를 축소할 대로 
축소하여 다시는 남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엄하게 벌을 내렸다.
  한편, 요행하게도 참변을 면한 나머지 신산을 책임진 흑귀들도 더욱 긴장하여 
임무에 충실하였다. 따라서, 이들 세 개의 신산은 거의 완벽할 정도로 안정되었
다. 동시에 지구 위에 있던 이들 신선(神仙)이  사는 신산이 하늘나라에까지 명
성을 떨치게 되었다. 더욱이 천제가 용백국에게 전례 없이 혹독한  엄벌을 내리
면서 귀허에 있는 이들 신산을 보호하고자 한 이유의 하나는 그것에 있는 불로
장생(不老長生)의 열매 탓이라는 말까지 퍼지게 되었다.
  이에 하늘나라는 물론, 하늘나라의 지배를 받는 육지의  사람들까지도 신비로
운 신산을 찾고자 했으며, 더욱이 한 알만 먹어도 영원히 젋고 아름다울  수 있
다는 열매를 구하고자 갈방하게 되었다.
  확실 여부는 가릴 수 없으나, 육지에는 다음 같은 소문마저 퍼졌다. 바닷가에 
살던 젊은 부부가 고기잡이로 바다에 나갔다가 심한 풍랑에 밀려 며칠 동안 표
류하던 끝에 하얀 옷을 입은 신선만이 사는 섬에 가 닿았다. 신선들이 이들에게 
정중히 대접하고 이내 선풍(仙風)을 불어 일으켜,  이들 부부가 탄 배를 순식간
에 육지로 보내 주었다.
  실지로 가 본 사람이 있다고 하는 소문이 퍼지자 육지의 사람들은 더욱 들뜨
게 되었다. 고생 투성이뿐인 이승에서 벗어나 극락의 선경(仙境)에서 안락을 마
냥 누리고 싶다는 욕구도 강했으나 그보다도 한 알만 먹으면 영원토록 늙지 않
고 죽지 않는다는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열매를 얻고자  안달스럽게 집착했다. 
특히 온갖 권세와 영화를 마음껏 누리던 육지의 황제(皇帝)나  임금들의 안달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영광과 환락의 극치를 다 맛본 그들에게 오직 불로장수
의 선약(仙藥)만이 최후에 남아진 선망의 대상이었다. 산더미나  노도(怒濤)같이 
덮쳐듣는 십만대적(十萬大敵)도 무서울 게 없다.  천하를 평정하여 권좌를 굳게 
다진 이상, 하늘의 노여움도 그리 겁낼 게 못 된다. 허나,  오직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접촉 할 수도 없는 죽음의 신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데는 딱
히 질색이다. 꼼짝 못 하고 공포의 구렁이로  끌려들고 만다. 이 공포의 사신을 
퇴치할 선약이 있다니, 어찌 구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하여 역대의 많은 패왕들은 국력을 기울이고 재물을 탕진하고 인재를 
총 동원하여 선약을 찾고자 했다. 우선 그들은 금, 은, 보배를 물 쓰듯 낭비하여 
수십 척의 큰 배를 건조하고 몇  달을 지탱할 수 있는 양식을  실었다. 그리고
는 동남쪽 귀허 바다에 있다는 나머지 세  계의 신산을 찾을 수  있은 도사(道
士)나 방사(方士)를 시켜 선약을 찾아 오도록 명령했다.
  한 번 항해에 씌어진 재물은 막대했다. 후세의 인류는 적을 서로 죽이는 전쟁
에 막대한 재물을 쏟아 넣었으나, 옛날의 중국의 제왕들은 오직  주검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한 알의 선약을 찾기 위하여 미친 듯이 국력과 인력을 허비했다.
  전국(戰國)시대의 제(濟)나라의 선왕(宣王), 위왕(威王), 연(燕)나라의  소왕(昭
王) 진나라의 시황(始皇)에 이르러서는 극에 달했고, 뒤를 이어 한(漢)나라의 기
틀을 세운 무제(武帝)도 말년에 가서는 적이 신선(神仙)이 되겠다고 미쳤다. 
  그러나, 그 아무도 목적을  이룩한 자는 없었다. 몇  차례에 걸쳐 대대적으로 
파견된 수십 척의 선단이나, 큰  소리로 장담하던 영통했다던 도사나  방사들도 
거의가 다 떠난 채로 살아 돌아오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이들을 파견했던 제
왕들도 기다리다 지쳐 저마다 예외 없이 죽어 갔던 것이다.
  후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어쩌다가 살아 돌아온 도사나  방사도 있었
다. 그들의 말로는 대부분의 경우는  도중에서 심한 폭풍우에 휩쓸려  침몰됐거
나, 그렇지 않으면 끝내 선경을 찾지 못한 도사나 방사가 빈 손으로 되돌아왔다
가 임금의 노여움을 받고 복을 잘리울까 두려워, 많은 재물을 배에 실은  채 먼 
고장에 숨어 살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자기는 무사히 신선들이 사는 신산을 
발견했고, 또한 근처까지 가까이 접근했다. 그들의 섬은 어떻고,  황금으로 지은 
궁전의 모양이 어떻고, 수목이 우거진 사이에 잘은 보이지 않으나  지주 알같이 
번쩍이는 것이 바로 선약이 아니었겠느냐고 한다.  그러나, 선산에 사는 신선들
이 바람을 일으켜 쫓는 통에 아무리 배를 그쪽으로 접근시키려 해도 접근할 도
리가 없었다. 도리어 뒤로 밀리어 쫓기기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 신선이 
일으키는 바람에 맞설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신통력을  닦아 가지고  새로 떠나
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면, 그럴 듯하고, 정리에 맞는 말이다. 불로장생의 선약을 지키는 신
선은 우리들 사람의 접근을 원하지 않고  오직 멀리서 선망만 하게 내보이기만 
하는 지 모를 일이다. 어찌되었든 오늘까지 귀허 바다에 있는 신산의 열매를 따 
왔다는 사람은 없고, 다만 그 전설만이 길게 전하고 있다. 

 

생존의 지혜

태양의 신인 신농(神農)

<<역경(易經)>>에 다음과 같이 씌어있다.
<포희(包犧)>가 죽자, 신농(神農)이 나타났다. 나무를  깎아서 따비날을 만들었
고, 나무를 휘어가지고 따비를 만들었고 밭갈이하는 기술을 천하 사람들에게 가
르쳐 주었다. 또, 정오에  시장을 세우고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물산을 가지고 
와서 온갖 천하의 물산과 서로 바꾸어 가게 했다.>
  즉 신농(神農)은 인류에게 농기구와 농경법과 교역법(交易法)을 전수해 준 신
화적 인물이다. 이 세가지는 오늘의 말로 하면, 기계와 기술과 무역이다. 따라서 
신농이야말로 인류에게 과학적 기술과 기계와 제반 물자의 교역을 처음으로 알
려 준 위대한 신이라 하겠다.
  종래에는 대체로 중국을 비롯하여  모든 동양의 여러  나라가 정신이나 윤리 
도덕은 지나치도록 높이는 반면에, 과학이나 기술을 경시해 온 흠이 있었다. 그
러나, 고대의 한민족(漢民族)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들은 과학적  기술과 기계와 
물자의 교류가 얼마나 인간들의  생활을 편리하게 발달시키고  또한 살지게 해 
주는가를 잘 인식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신농을 농업의 신이자, 과학과 교
역의 신으로 받를었던 것이다.
  <<사기(史記)>>에는 이상에서 언급한 외에도 대략 다음 같은 기록이 첨가되
어 있다.
  <유교씨(有敎氏)의 딸 여등(女燈)이 신룡(神龍)의 감응을  받아 염제(炎帝)(炎
帝)를 낳았다. 염제(炎帝)의 모습은 몸은 사람의 몸이지만 머리는 소의 머리, 즉 
인신우수(人身牛首)다. 강수(姜水)에서 자랐으므로 성을 강(姜)이라고 했다. 불의 
덕(德)을 사람에게 베풀어 준 왕이었으므로,  염제(炎帝)(炎帝)라고 했으며 모든 
사람에게 농경(農耕)을 알려  주었으므로, 신농씨(神農氏)라고도 한다.  또 그는 
의약(醫藥)도 다스렸고, 교역도 알려 주었고, 아울러 오현슬(五絃瑟)이란 악기도 
만들어 주었고, 복희(伏羲)가 만든 팔괘(八卦)를  다시 육십사효(六十四爻)로 전
개시켰다. 120년 동안 임금으로 있다가 죽었고, 장사(長沙)에 매장되었다.>
  즉, 신농(神農)은 바로 화덕(火德)의 신 염제(炎帝)(炎帝)다. 그리고, 그는 사람
에게 불 쓰는 법과 농사 짓는 법만을 알려  준 것이 아니고, 더욱이 의약(醫藥)
까지 알게 해 주었다. 한마디로 인간 생활의 과학화를 이룩했다고 하겠다. 그의 
업적은 바로 오늘의 원자 과학과 맞먹는다고 하면 좀 지나칠까?
  염제(炎帝)(炎帝)는 바로 태양신(太陽神)이다. 태양의 빛과  열이 바로 성장과 
건강의 근원이다. 따라서, 옛 사람들은 염제(炎帝)가 바로  신농이라고 일치시켰
다고도 하겠다. 
  태양신인 염제(炎帝)는 화신(火神) 축융(祝融)과 같이  남쪽을 다스렸다. 그는 
옛날 중국에서 가장 높이  치던 오제(五帝)의 으뜸인  황제(黃帝)와는 동모이부
(同母異父)의 형제였다. 고대의 중국은 푸나루아 가족제도였다. 따라서, 염제(炎
帝)와 황제는 동모이부의 형제라 하겠다. 이들은 후에 천하를 반으로 나누어 다
스렸다고도 한다.
  어떠한 신화에는 황제는 성군(聖君)으로 인도(仁道)를 펴고 덕치(德治)했으나, 
염제(炎帝)가 이를 반대했으므로, 이들은 탁록이라는  벌에서 일대 격전을 벌였
고,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었는지, 전장에는 피가 강물을 이루고, 낭아
봉(낭아봉)이라고 하는 그 당시의 무기들이  둥둥 떴었다고도 했다. 허나,  이런 
설화는 신빙성이 희박하다. 황제와 탁록의 결전에 대해서는 뒤에서 상세희 서술
하겠다.
  태양의 신인 염제(炎帝)이며 바로 농업의 신인 신농은 더 없이 사람에게 고마
운 공헌을 해주었다. 여와의 덕으로 지상에 인류가 번창하게 되자, 먹을 식량이 
문제가 되었다. 이 때에 태양의  에너지를 활용하여 곡식을 재배해서  충족하게 
먹게 했다는 것은 인류 생활에 일대 혁신이 아닐 수 없다. 양식뿐만 아니라, 의
류(衣類)의 문제도 사람의 손으로  해결했었을 것이다. 신농을 우두인신(牛頭人
身)이라고 하는 것도, 농사에 가장 이바지를 하는 소를 관념에 두고 한 말일 것
이다. 신농에 대한 신화는 토막으로 몇 개가 있다. 

  염제(炎帝)이자 신농이 갓 태어났을 때는 별로 힘을 쓰지 않고도 논밭에 물을 
eof 수가 있었다. 땅 위에는 모두 아홉 개의 우물이 있었으며, 물이 스스로 솟아 
넘쳐 흘렀다. 또한, 한 우물을 푸면 나머지 여덟 개의 우물의 물도 자연히 나오
게 마련이었다.
  신농이 오곡(五穀)을 키우고자 생각하자 하늘로부터 오곡의 씨가 쏟아져 내려
왔다. 신농이 그것들을 평평히 갈고 물을 댄 논이나 밭에다 심자, 이내 자라 싹
이 돋았고, 얼마 후에는 영글었다.
  특히, 벼의 경우는 각별했다.  새빨간 새가 입에 파란  모종을 물고 하늘에서 
날라와 신농 앞에 떨구었다. 그 모종에는 벼이삭이 아홉 개나 달렸었다. 신농은 
즉시 이를 논에 심었고 얼마 후에는 희고 맛좋은 쌀을 털어 낼 수가 있었다. 그 
당시의 쌀은 배를 채우고 몸을 보해 줄 뿐만 아니라, 장생 불로(長生不老)의 곡
식으로도 알려졌었다.

  모든 성정의 근원이자 건강의 원천인 태양의 신인 염제(炎帝)이자  농업의 신
인 신농은 의약을 개발하여 모든 사람들을 건강하게 해 주었다.

  신농은 자편이라고 하는 신통한 회초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것으로 모든 
약초의 성분이나 독성 또는 약효를 가려내 가지고, 사람들의 병을 치유했다. 

  다른 전설로는 신농이 하루에 칠십 가지 이상의 약초를 직접 입에 대고 약효
를 시험해 보았다고 한다.
  어떤 지방에서는 오늘에도 사람들이 울타리나 담장  밑에 노란 꽃이 피는 넝
쿨이 엉켜 있는 것을 보면 조심을 한다고 한다. 그것은 옛날에 신농이  이 꽃나
무의 독성을 시험해 보다가, 너무나 독성이 강해서 장을 버리고  죽었다는 전설 
때문이라고 한다. 산서(山西) 태원(太原) 부강(釜岡)이라는  곳에는 신농이 약을 
달였다는 솥이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성양산(成陽山)에는 신농이 회초리
로 약을 쳤다고 하는 신농원 약초산(神農原藥草山)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 정오를 기해 시장에 모여 서로  교역하게 알려준 신농도 역시 태
양과 관계가 깊다.

  신농의 덕택으로 사람들은 먹을 것, 입을 것도 충족했고 또한  약초의 효험을 
얻어 건강했다. 신농은 각 지방이 산물이 고르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고 이들
을 서로 교류시키기로 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해가 가장 높이 뜨
는 정오를 기해 서로 자기네 산물을 가지고 와서  피차 교환해 남는 것을 덜고 
부족을 메꾸게 했다.

  이때에도 농업의 신인 신농과 태양의 신인 염제(炎帝)가 하나가  되어서 사람
들에게 생활의 지혜와 편리를 전수해 준 것이다.
  태양의 신인 신농의 업적은 자못 큰데도, 그에  대한 신화가 별로 많지 않다. 
아마도 신농을 역사적 기록에서 취급한 탓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자손들에 대
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몇 개 있다. 

  태양의 신 염제(炎帝)의 손자로 백능(伯陵)이라고 하는 천신이 있었다. 그에게
는 인간들이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마침내 그는 하늘에서 내려와 오권(吳權)
이라는 사람의 처 아녀연부(阿女緣婦)와 연애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절세 미인
이었다. 이들의 사랑은 이내 불같이 타올랐고, 3년 후에는 세  쌍둥이를 낳았다. 
이들의 이름은 수, 고(鼓), 연(延)이었다.
  수는 자라서 활과 살 및  표적을 만들었고, 고(鼓)와 연(延)은 종이라고  하는 
악기와 여러 가곡(歌曲)을 지어냈다. 이들에 의해 음악이 한층 발전됐고 보급이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호인국(互人國)에 내려와서 살던 인면어신(人面魚身)의 
천신들이라고도 한다. 그들은 구름을 타고 비를 몰며 자유 자재로 하늘과 땅 사
이를 왕래했다.
  태양신 염제(炎帝)의 후손이 사람과 결합되었고,  신과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세 아들 중에 둘이 음악을 발전시켰고, 하나가 무기를 제작했다고 하는 것은 매
우 풍자적이다. 하늘과 인간의 결합은 전쟁보다도 평화를 사랑하게 마련인가 보
다. 
  염제(炎帝)의 자손으로 화신(火神) 축융(祝融), 수신(水神) 공공(共工), 토신(土
神) 후토(后土)등이 있었다.

  염제(炎帝)에게는 딸이 셋 있었다. 이름을 남기지 않은 이들은 저마다 특이한 
신화를 남겨 놓고 있다. 

  하늘을 다스리는 염제(炎帝) 밑에서 비를  관장하는 적송자(赤松子)라고 하는 
선인(仙人)이 있었다.
  그는 원래 수옥(水玉), 즉 수정(水晶)과 같은 진귀한 약을 복용하여 몸을 단련
하고 있었다. 충분히 몸을 단련한 그는 자신  만만하게 불 속에 뛰어들어, 자기
의 육신을 훨훨타게 했다. 시뻘겋게 타오르는 화염 속에서 그는  불길이나 연기
와 같이 자유 자재로 오르락내리락하더니, 드디어 환골탈태(換骨奪胎)하여 선인
이 되었다.
  선인이 된 그는 곤륜산(崑崙山)으로 가서, 옛날에 서왕모(西王母)가 살고 있던 
석실(석실)에 살았다. 그리고는 비바람 치는 날이면 언제나 안개나 구름을 타고 
곤륜산의 절벽을 오르내리었다. 이 소식을 들은 염제(炎帝)의 딸 하나가 적송자
같이 선인이 되려고, 그를 찾아 곤륜산으로 와, 그의 가름침대로 약을 복용하고 
몸을 단련한 끝에, 선인이 되었다. 그 후 이들 한 쌍의 선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염제(炎帝)의 딸 하나를 사람들은 요희(妖姬)라고 불렀다. 그녀는  방금이라도 
활짝 피어날 듯한 꽃다운 나이에 시집도 가지 못하고 애처롭게 요절했다.
  예쁘고 정열적인 요희는 죽었으나, 한 많은 그녀의 넋은 그대로 시들 수가 없
었다. 그녀의 정혼(精魂)은 고요산(姑瑤山)으로 올라가  한 뿌리의 요초(瑤草)로 
변했다. 요초는 겹겹이 푸른 잎으로 덮인 복판에서 산뜻한 노란  꽃을 피어냈고 
얼마 후에는 진주알 같은 열매를 맺었다.
  사람들은 이 열매를 요희의 눈물의 결정이라고도 하고, 또는 한의 응고라고도 
했다. 그러나, 이 열매를 먹은 사람은 누구에게나 사랑을 무한히 받는다고 서로
들 찾았다.
  천제(天帝)도 그녀의 애절한 죽음을 몹시 슬퍼하여, 그녀의 넋을 무산(巫山)의 
운우신(雲雨神)으로 봉했다. 그녀는 아침에는 서기(瑞氣)  어린 자운(紫雲)이 되
어 산령(山嶺)이나 협곡(峽谷) 사이를 마음껏 누비었고, 저녁에는 축축히 내리는 
이슬비로 변하여 자기의 서글픔을 마냥 무산(巫山)과 협곡을 흐르는  강물에 쏟
아 적시었다.
  전국(戰國) 시대 말년에 초(楚)나라의 회왕(懷王)이 운몽(雲夢)이라는 곳에 유
람차 갔다가 고당(高唐)이라는 별장에 묵었다. 이 때에 정열적이었다 요희가 생
전에 풀지 못했던 사랑의 낭만을 흠뻑 안고서 고당으로 찾아가, 남잠을 자고 있
던 회왕의 꿈 속에  나타나, 회왕으로부터 극진한 총애를  받았다. 후에 잠에서 
깨어난 회왕은 감동된 바 컸다. 고당 옆에  묘(廟)를 세워, 조운(朝雲)이라 현판
을 써 붙였다.
  회왕의 아들, 초나라의 양왕(襄王)이 등극한 후, 이 곳을 찾아  요희의 혼백을 
찾았으나, 끝내 꿈에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하며, 궁중시인(宮中詩人) 송옥(宋玉)
만이 두 번이나 꿈속에 현신한  애염(哀艶)한 그녀를 보고 감동하여, 고당부(高
唐賦)와 신녀부(神女賦)를 지었다고 한다.

  염제(炎帝)의 셋째 딸을 여와라 했다. 그녀도 어려서  많은 한을 가슴에 품고 
요절했다.
  여와는 끝 없이 넓고 짓푸른 동해(東海) 바다를  몹시 사랑했다. 바다에는 영
원한 평화와 행복이 넘실거리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변덕스러운 바다는 어린 
여와의 기대를 저버리고, 세차고 사나운 풍랑을 일으켜 몰인정하게 그녀를 침몰 
시키고 말았다.
  그녀의 영혼은 즉시 새로 변했다.  사람들은 그 새를 정위(精衛)라고  불렀다. 
새털은 얼룩지고, 부리가 희고, 발이 빨갛고, 항상 발구산(發鳩山)에만 살았다고 
전했다.
  여와의 변신인 정위새는 자기를 무참하게 침몰시킨 동해를  원망하고, 마침내 
동해 바다를 메워 버리겠다고 결심을 했다. 가냘프기 짝이 없는  정위새는 서산
(西山)으로부터 작은 돌과 나뭇가지를 물어다가는 하나하나 바다에 떨구기 시작
했다. 참으로 비장한 거동이  아닐 수 었었다. 얼마나  원한이 뼈에 사무쳤기에 
그랬을까? 누구나 정위새를 애민(哀憫)하면서 한편으로 그녀의 굳은 의지에  경
탄했다고 전한다. 과연 태양의 신 염제(炎帝)의 딸답게 의연한 기상을 지녔다고 
하겠다.

  여와에 대한 애절한 신화는 아침에 떠오르는 새벽 빛같이 후련하고 날카로운
맛이 있다. 진(晋)대의 유명한 시인 도연명도 그녀를 다음과 같이 읊은 바 있다. 
  
  정위새가 작은 나뭇가지를 물어다가,
  푸른 동해를 메우고자 했노라.
  
  짧은 싯귀지만 그 속에 충분히 애도(哀悼)와 경탄(敬嘆)을 표현하고 있다.  정
위새에 대하여는 후일담이 있다.
  정위새는 바닷가에서 해연(海燕)을 만나, 서로 짝을 맺었다. 이들이 낳은 새끼
는 수컷은 정위를 닮았고, 암컷은 해연을 닮았다.
  정위새는 마음이 굳었다. 자기를 침몰시킨 동해의 바닷물을 절대로 안 마시겠
다고 맹세를 했고, 이를 죽는 날까지 잘  지켰다. 따라서, 서조(誓鳥) 또는 지조
(志鳥)라고도 하며, 사람에 따라서는 원금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는 여와의 출신을 감안하여 제녀작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염제(炎帝)이자 신농이며 그들의 자손들은 위대하고 혁혁한 존재자로  전하고 
있으나, 여식(女息)들이 한결같이 애수(哀愁)에  젖게 마련인 것도 역시  동양적 
페이소스의 산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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