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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중국 당대 학자산문의 예술적 특징

by Frais Study 2020. 5. 28.

  산문이라는 단어 앞에 학자라는 말을 붙인  것은 일종의 경향을 지칭하는 것이자  풍격을 
나타내는 것이다. 학자산문이란 따라서 꼭 학자가 쓴 것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물론 학자
가 쓴 산문은 자연스럽게 이런 특색을 지니게 되겠지만. 중국 고대의 학자산문은 그 고유한 
전통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특징은 차츰 사회적으로 널리 인정되기에  이르렀고, 
중국 현대산문이 탄생한 후에도 통상적인 개념으로 인정되면서 모든 사람이 익히 아는 어떤 
내용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5·4 이래 대부분의 학자산문은 이미 일반적인 작가산문과 
큰 차이가 없게 되었다. 이 점은  魯迅·郭沫若·茅盾·朱自淸·郁達夫 등의 작품에서 아주 
분명히 나타난다. 일종의 역사적 현상으로서 학자산문은 사실상 일정한 예술 문화적 풍격을 
갖추지는 못한 상태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학술 명칭이 되었다.
  1949년 이후 비록 葉聖陶·塞伯贊·李健吾 등 일단의 대학자들이 한 시대의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뛰어난 산문을 쓴 적이 있기는 했지만, 예술적인 측면에서 학자산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작품은 '자질이 탁월했던' 산문가  秦牧의 작품뿐이었다. 秦牧가 楊朔·劉白
羽와 더불어 사람들에게 '3대 산문가' 중 하나로 불렸던 것은, 최종적으로는 그의 작품이 사
상성·지식성·취미성을 하나로 녹여내어 서정산문·잡문·지식소품의 특징이 한데  녹아있
는 '학자'적 풍격을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周作人·林語堂·梁實秋를 떠올려보면 과거의 학
자산문이란 이른바 지식성·취미성 등이 그 중요한 또는 주된 기반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러나 이런 전통적인 관점을 신시기 -- 주로 1980년대 이래의 산문 창작이 이루어낸 새로운 
상황에 적용해본다면, 이제 이는 명백히  과거의 것이며 부정할 수 없는  그 자체의 한계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전혀 다른 이런 현상에 대해 있는 그대
로의 상황에서 출발하여 새로운 학술적 관점과 시각을 가지고서 거시적 개괄적으로  분석·
파악해보고자 한다.
  
      1
  
  중국 당대 학자산문의 진정한 예술 문화적 풍격은 도대체 무엇인가? 최근의 산문 작품으
로 볼 때 일단 나는  그것이 이성·지성·오성이라고 생각한다. 좀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말하자면 (1) 논리가 감정보다 승하다는 점에서 과학성 (2) 식견이 지식보다 강하다는 점에
서 지혜성 (3) 깨달음이 이해보다 앞선다는 점에서 감회성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하나의 총
체적 결과가 도출된다. 즉 문보다는 질이라는 점에서의 진중성이다. 여기서 질이란 내용·품
질을 말하며 문이란 형식·문채를 말한다.
  이성은 감성과 상대적인 것이다. 철학에서 이성이란  일종의 충분하고 성숙하고 추상적이
고 통체적인 과학적 인식을 가리킨다. 이성이란 인간이 세계를 인식할 때 갖는 그것의 본질
적인 법칙에 대한 파악으로, 이는 왕왕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사유 성과와 논리성이 풍부한 
이론적 형태로 표현된다. 즉 사물과 현상에 대한 모종의  결론적이고 통찰적인 해석과 이해
가 그것이다. 지성은 감성에서 이성으로 나아가는 중간적 존재로, 이 둘 사이의 다리요 나루
터다. 그것은 사물과 현상에 대한 인식으로서 인간 지혜의 탁월함의 소박한 형태다. 또는 과
학적 이성의 준비적 형태, 두뇌의 사유활동이 저급 단계에서  고급 단계로 나아가는 중간적
이고 과도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성과 비교해 볼 때 지성은 비록 논리적·추상적·이
론적·과학적인 층차에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지만, 인간의  삶에 대한 감수·체험·깨달음·
사고의 초보적 인식 성과로서 이성으로 나아가는 추향을 보여주고 또 그 자신의 감성적 인
상과 감성적 경험의 승화를 강조·구현해준다.  오성은 비교적 성숙한 또는  일정한 문화적 
수양을 갖춘 사람의 정신 활동 능력으로, 이러한 사람들이 외부 대상을 접촉·인식·파악할 
때 갖는 감회와 체득의 본령이다. 오성은 인간이 자신의  소박하고 단순한 사유활동으로 총
민하고 예민한 천부적 능력과 심리적인 기교에  힘입어 극히 찰나적인 내심의 활동  중에서 
획득한 외부세계의 갖가지 현상에 대한 인간의  정신적 감응·정신적 수확이다. 이성·지성
과 비교해 볼 때 오성은 상대적으로 자연성과 주관성이  강하다. 그렇지만 제 1보에 불과하
기는 해도 감성의 초월이란 면에서 이성·지성과 명백한 내재적 연관성 및 일치성을 가지고 
있다.
  중국 당대 학자산문에서 이런 요소들은 모두 일반적인 것이다.
  이성은 일종의 창작태도이자 창작풍도이다.  신시기의 학자산문에서 그것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표현된다. (1) 역사와 현실에 대해 극히 냉철한 태도를 취하면서, 현대적 시각·
현대적 의식·현대적 관념에 주의하며 현재적 사상의 층차에서 삶을 살피고 역사를  되돌아
본다. (2) 의식적으로 심오하고 복잡한 인생의 감수와 체험을 상대적으로 성숙한 추상적 사
유의 성과로 제고시키면서, 동시에 이로써 스스로를 성찰하고 삶을 반추하고 사회와 시대를 
관찰한다. (3) 엄격한 비판적 태도로 자신을 검토하고  역사를 반성하는데, 한편으로는 끊임
없이 성실한 자기 반성을 행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냉정하게 역사적 윤회의 매듭을 찾으면서 
그 교훈을 도출하여 미래의 경고로 삼는다. 1980년대 이후  고적 답사·옛일 추억·역사 반
추·인물 회고 등의 산문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온 것은, 아마도 이러한 현대적 이성이 즉각
적으로 발휘되고 증명되기를 기대했던 데서 초래된 외형적인 현상이었을 것이다. 특히 주목
해야 할 것은 그 작품들 속에서 직접적으로 표현되었거나 또는 그 배후에 숨겨져 있던 작가
들의 주관적인 태도와 사상적인 경향이다. 고적 답사는 옛것에  대한 정회를 읊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족적에 대한 회고를 통해서 현재를 사고하자는 것이다. 옛일 추억 역시 단순
히 과거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옛일을 되새겨보면서 그러한 되새김을 통해 깊이 사색해 보
아야 할 역사와 인간이 남겨놓은 흔적을 살펴보자는 것이다.  역사 반추는 지식을 늘어놓기 
위해서나 옛일을 들어 지금을 풍자하자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인식과 풍도로 문화적 사
고 특히 냉정하고 이지적인 역사적 사변을 시도하는 것이다.  인물 회고는 과거처럼 인물의 
행적을 서술한다거나 감명을 술회하는 데 중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냉철하게 그 인격을 분
석하고 남을 미루어 자신을  생각해보고, 더 나아가서 진중하고  엄격하게 자아를 반성하고 
민족과 시대의 흔적을 살피고 인간의 미덕과 인성의 결함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지성은 일종의 인식특징이자 인식풍격이다.  신시기의 학자산문에서 그것은  다음과 같이 
주로 표현된다. 현상보다는 체득을 중시하고, 지식보다는 식견을 중시하며, 서술보다는 분석
을 중시하고, 현시보다는 사변을 중시한다. 산문은 예술이지 과학이 아니다. 따라서 첫째, 작
가가 자기 자신의 참된 정감에 대한 서술 가운데 수많은 추상적인 사유의 성과를 이끌어낼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둘째, 소위 순수 이성적인 것은 일종의 인식의 결
과이므로, 형상적 사유가 주체가 되는 창작 활동 중에서 그것이 충분히 발휘된다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셋째, 만일 꼭 현실화하려면 그 모든 것은 순수 논리적인 문체에 기댈 수
밖에 없는데, 그것은 문학 산문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에 따라  신시기의 
상당수 학자형 작가들은 묵시적으로 다음과 같은 창작 전략을 택하게 되었다. (1) 기준을 낮
추어 이성을 지성으로 바꾸었다. (2) 전통산문의 틀을 외형으로 삼되 지성적인 내용을 투입
하여 질적 변화를 꾀했다. (3) 개인의 독특하고  선명하고 심도 있고 강렬한 감수와 체험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승화에 주의함으로써, 구체적인 작업에서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의미와 
명제를 포함하기에 힘썼다. 1980년대 이후  대량으로 탄생된 철리·영물·기행·서사산문이 
곧 이 길을 택했으며, 이로써 새로운 문체를 창조하고 옛모습을 일신함과 동시에 중국 당대 
학자산문의 지성 추구를 실현함으로써, 이러한 '준 이성'이  각기 상이한 체제·양식에 광범
위하게 나타나고 작품의 구조·언어 속에 보편적으로 침투되도록 하여 사람들에게 전혀  새
롭고 신선한 느낌을 부여해 주었다. 철리산문에서의 상징  함축, 영물산문에서의 생명 탐색, 
기행산문에서의 주관 필치, 서사산문에서의 세밀한 관찰 등등은 이제  자주 보아 익숙한 것
이 되었으니 곧 이러한 지성이 문학의 영역에 침투한  그 확실한 현상이다. 체득·식견·분
석·사변 등을 통해서 분명히 드러나는 작가의  주체성은 이제 더욱 농후해진 정도에  그친 
것이 아니라 전통산문 중의 서사·묘사·서정·의론의 주관성에 비해 볼 때 또 하나의 새로
운 세계이자 취향이 되었다.
  오성은 작가 자신의 주체적 자질을 실현할 수 있으며 또 작품 자체의 심미적이고 사상적
인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적인 특징을 표현할 수 있다.  신시기의 학자산문에서 그것의 기본
적인 표현 형태는 다음과 같다.  (1) 영혼 독백의 방식으로 인생·사회·역사·현실에  대한 
정신적 이해를 드러낸다. (2) 창작 중의 예술적 연상의 공간 구성을 도와 소환 구조를 형성
하여 독자의 비자각적인 '추수'를 불러일으키고  자극함으로써, 수용자로서의 심미적 주체가 
자연스럽게 읽기와 사색의 적극성을 갖도록 하면서 공감과 이해를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에 
이르도록 만든다. 오성은 신시기 학자산문 특히 상대적으로 서정성이 강한 예술산문(미문)에
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이에 따라 오성은 일반적인  현상, 보편적인 경향이 되었다. 소
수의 순수 학자 신분의 산문작가를 제외하고도 시인이나 소설가적 기질이 상대적으로  뚜렷
한 사람들의 학자산문(이 또한 그것이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예술산문과  구별되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중에 이러한 상황이 가장 많이 나타난다. 이런 유의 산문 작품에서는 일반적으로 
일부 전통 예술산문의 창작 형식도 나타나며, 심지어는 경물  묘사 과정에서 정감을 전달하
고 생각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전통 예술산문과 공통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중요
한 것은 그것의 내핵인 바, 전통 예술산문의 창작 취향과는 대단히 다르며 심지어는 근본적
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직접적인 목적 외에도 이들 작품도 일반적으로 감성적 인상·경
험·표현·형식에서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표피적이고 부박하며 단순하고 명확한 감성적 현
상과 체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작품이 기술하고 묘사한 삶과 심리적 이미지를 통해 사
물과 현상의 의미를 탐구·음미·암시·체험하고자  노력하면서, 감수와 체험을  마음 속에 
내재해 있는 것으로 만들고, 또 지성과 이성을 향해  약진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이며 풍부하
고 복잡하며 튼실하고 깊이 있는 심리적 침적물로 바꾸어놓음으로써, 작품에서 표현된 주체
적 의념을 일종의 진중하고 사색적인 상태로  응결·표현시킨다. 그리고 이로써 시시각각으
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람들에게 일말의 또는 확실한 깨달음의 느낌을 제공해준다.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중국 당대  학자산문이 이러한 오성을 그 중요한  예술 풍격으로 삼게된 
원인은 작가의 주체의식의 회복·발산·구현이며, 이는 작가가  겪은 바 경력·이력의 복잡
함과 풍부함이 가져온 감수·체험의 심후함과 삶에 대한 깨달음·인식의 심도에서 기인하는 
것이지, 일반적인 독서 지식·이성적 사유 그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
렇지만 그것은 또 생활을 표현하고 감정을 전달하는 방면에서 전체적으로 보아  전통산문의 
감성적 색채를 이미 어느 정도 초월했기 때문에, 일종의 독특하고  참신한 산문 예술 및 문
화 풍격으로서 그 의의와 가치는 앞서 말한 이성·지성과 공통적인 것이다.
  
      2
  
  이성·지성·오성 이 셋은 모두 삶을 관찰·인식·파악하는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 바,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파악할 때의 인식 노선과 인식  방법의 성격을 나타내고 구현한다. 
동시에 오성에서 지성으로 다시 이성으로 가는 것은 객관적·논리적·자연적인 사물 인식의 
과정이다. 따라서 그 상호 간의 필연적인 연계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중국 당대 학자산문
에서 그것들이 동시에 존재하고 나타난다는 것은 이 시대 삶과 인간 자체가 이룬 사상 인식 
발전의 산물이다. 최근 산문 창작의  한 새로운 현상으로서 그것은 또  산문 자체의 예술적 
진보의 확실한 표현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학자산문에서 이성·지성·오성의  요소가 
각기 달리 존재하는 상황, 즉 구체적으로  어떤 작가나 작품에서 이 셋 중  대체 어느 것에 
더 무게의 중점이 있는가 또는 동시 병존 시에 어느  것이 주도적인가 하는 상황은, 이러한 
학자산문의 학자적 풍격과 학자적 기질의 차이를 반영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는 
물론 일괄적으로 논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예술적 특색만을 두고  말할 때 그 공통점은 분
명하다.
  기존의 중국 현대산문관에서는 문학산문을 서사성 산문, 서정성 산문, 의론성 산문 등  크
게 세 부류로 나누어 왔다. 그렇기는 하지만 산문 창작의 최종적인 임무가 '참된 정감'을 표
현하는 것이라는 데 대해서는 모두 동의해왔다. 그중 가장 권위 있는 설명은  이렇다. "산문
창작은 내심 체험의 표출과 내심 정감의 술회에 치중하는  문학 양식이다. 그것의 객관적인 
사회 생활이나 자연 풍경에 대한 재현도 왕왕 주관 감정에 대한 표현 중에서 투사되거나 용
해된다. 그것은 주로 내심 심처로부터 토로해내는 참된 감정을 가지고서 독자를 감동시키는 
것이다."(林非, 〈散文創作的昨日和明日〉) 이러한  설명은 산문에 대한  대륙의 산문학자가 
지닌 공통적인 견해를 대표하는 것이자 현재 가장 일반적이고 정통적인 산문관이다. 정감으
로서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그래서 어떤 의미에서는 시와 구조는 다르지만 질적으로는  동일
한 이러한 산문 관념에서 출발함으로써, 산문은 자유롭고 진실하고 예민하고 작가의 개성과 
인격을 가장 잘 내보일 수 있는 문학 장르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상당수 사람들은 또 좋은 
산문 작품은 내심을 직서해야 된다고 주장·강조하기도 한다. 일종의 역사적 현상으로서 이
러한 견해는 확실히 기왕의  산문 창작 실천으로부터  귀납·총괄·종합·추론해낸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신시기 이전의 중국 현대산문 발전의 실제 상황과 거의 전적으로 부합될 뿐
만 아니라 말할 나위도 없이 일정한 과학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중국 당대 학자산문의 
출현은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이런 관념에  심각한 도전이 되었다. 이 도전은  주로 두 가지 
측면에서 오는 것이다. 한 가지는 새로운 실천이고, 한 가지는 산문가의 새로운 추구와 실천 
및 그들이 오랜 기간 산문 창작에 대해 모색하고 사색하는 중에 형성된 이론적인 관점이다. 
(후자에 관해서는 타이완·홍콩 및 해외 화교 산문계가  대륙보다 1,20년 정도 훨씬 앞선다
고 생각되는데, 다른 글에서 집중적으로 이를 다루기로 하고 여기서는 더 논하지 않겠다.)
  중국의 저명 작가이자 학자인 孫犁는  "나는 이즈음 산문·잡문을 많이  쓴다. 내 생각에 
이는 늙은이에게 적합한 문체다.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칠 필요 없이 이성만 가지고도 쓸 수 
있다. 젊은이는 문학을 좋아하고, 늙은이는 철학을 좋아하는 법이다."(〈澹定集·答吳泰昌〉)
라고 말한 바 있다. 여기서 산문이 '늙은이에게 적합한 문체'로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칠 필
요 없이 이성만 가지고도 쓸 수 있고' '철학을 좋아한다'라고 한 것은, 그저 소박한 표현이기 
때문에 비록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로 보아 최근에 성행하게 된 중국 당대 학자
산문의 기본적인 일부 특징을  나타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필자가 앞에서 언급한  바 이
성·지성·오성 및 산문작품에서의 그 구체적 구현은 孫犁의 이 말과 의미면에서  상통하는 
것이다. 그 중 핵심적인 것은, 이렇게 새롭게 대두된 당대 학자산문이 전통 산문 예술과  문
화풍격 상에서 근본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으로, 내가 보기에는 어쨌든 전자가 '이치로써 사람
들을 깨우친다'는 것을 중시한다면 후자는 '정감으로써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을 강조한다. 
달리 말하자면, 하나는 '감정의 억제'를 특징적 경향으로 삼고, 다른  하나는 '감정의 고양'을 
최고 명제로 삼는다는 것이다. 중국 당대 학자산문의 창작 자체를 두고 말하자면,  서사성·
서정성·의론성의 이 세 부류 산문 작품에서 '이치로써 사람들을 깨우친다' 또는 '감정을 억
제한다'는 식의 현상이 상당히 뚜렷한 것이다.
  서사성 산문 창작의 중심 고리는 경물의  서술·묘사다. 전통산문의 분류에서는 기행산문
과 영물산문(어떤 일을 쓰거나 사람을 추억하는 것은 별도로 논함)이 서사성 산문의 기본적
이고 주된 양식이다. 신시기 이래  중국 당대 학자산문의 상황으로 볼  때 그것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기행산문은 왕왕 관광의 구체적 과정에 대한 기
록을 생략한다. 더구나 과거처럼 상당한 분량으로  자연경물이나 명승고적의 객관적 특징에 
대한 묘사에 공을 들이거나 집중하지 않는다. 영물산문 역시 대상에 대해 이전의 동종 산문
에서 익히 보듯이 순수 지식적인  소개나 식별을 행하지 않으며, 또한  형상화나 서술 등에 
대해서도 모두 그럴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 그 공통적인 창작의 추향은,  경물풍광·산천초
목·자연현상·화조충어 등등에 대한 작가의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체험과 인식을 강화하고, 
철학적인 감수와 체험의 서술을 중시하고, 역사에 대한 심도  있는 되돌아보기와 삶에 대한 
치열한 사색을 그 중에 용해하는 것이다. 전 우주에 시선이  미치고 온 인류에 생각이 미치
며, 전심전력으로 자연과 사회 생활 중의 모든 생명 현상의 의미를 탐색·탐구하면서, 그 속
에서 깨달음을 추구하고 철학적 분위기를 창조해내고 동서를 종횡하고 고금을 녹여내고  이
성적 사고의 문화 풍격을 구현해낸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서정성 산문 속의 서정성은 과거에는 대부분 어떤 일을 쓰거나 사람
을 회고하는 것에서 나타났다. 옛일에 대한 회고를 통해  세간에 대한 감회를 펼쳐낸다거나 
어떤 인물에 대한 이런 저런 일을  쓰면서 지인이나 고인을 그리워함을 집어넣거나  그들에 
대한 존경·사랑·아쉬움·비탄 따위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 전통 서정문에서 자주 보이는 
틀거리다. 朱自淸·氷心·徐志摩에서 魯迅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중국  현대 산문 대가 또는 
명가가 된 것은 바로 이 점과 관계가 있다.(단 魯迅의 《野草》는 예외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처럼 감상·처연함·아쉬움·연연함과 섬세함을 그 정감의 기조와 문체의 풍격으로  삼으
면서 일상 생활·신변 잡사로부터 나타나는 성정에 주목하는 서정산문의 고전적 틀을  창조
해냈기 때문이다. 신시기 이래 일을 쓰거나 사람을 추억하는 글은, 필자가 중국 당대 학자산
문의 범주 속에 넣은 산문작품만을 두고 말할  때, 그런 것과는 그 취향이 크게 다르다.  첫
째, 서사가 대폭 감소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작가 자신이나 지인·고인의 인생  경력·조우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은 생략한다. 둘째,  감정을 감추거나 절제하는데, 슬픔·비애·완곡·연
연 등에 대해서는 대부분 세밀하고 깊이 있는 묘사 없이 이를 서술한다. 셋째, 사고와  분석
을 강화했는데, 서정의 대상인 인물됨·품덕·정신적 인격에  대한 이성적인 인식과 단계적
인 분석 가운데 참된 앎을 밝히고 인성을 긍정하며 사회 역사와 시대 생활에 대한 심도  있
는 체험과 확고한 인식을 표현하면서, 이로부터 지성적인 창작 풍모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의론성 산문의 명제는 곧 이치를 말하고 '뜻'을 밝히는  것이다. 이 방면에서 독특한 풍모
를 지닌 잡문(이  글에서는 논하지 않겠다)  외에도 영사산문·서발문·문화수필·지식소품 
또는 과학소품 등등 기타 양식이 있다. 그렇지만 秦牧 식의 사상성·지식성·취미성이 하나
로 용해되어 있고 서정산문·잡문·지식소품적 특징이 한데 녹아있는 전통적인 틀은 근자에
는 이미 성행하지 않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로 뛰어난 영사산문·서발문·문화수필 등이 날
로 성행하면서 개성이 선명해지고 있다. 대체로 말해서 이런  글들은 그 창작 목표·요구·
동기·취향 등은 불일치하지만 서로 간에 일련의 명확한 공통점을 갖추고 있다. 예를  들면, 
대부분 논의 대상에 대한 미시적 분석은 생략하고, 그로부터  왕왕 비교적 모호하고 추상적
인 착상과 명제를 파생·도출해내면서 이에 대해서 거시적이고 역사적이며 통체적인 관조와 
표현을 진행한다. 또 왕왕 단편적인 지식성 즉 일반적인 생활 지식과 서면 지식의 나열·열
거는 생략하고, 간단하고 표피적인 사상 해설과 과시는 취하지 않는다. 대신에 사회과학  각 
분야의 종합적 고찰에 주목하여 문화적 분위기가 상당히 농후한 이성적 사변을 행함에 주중
한다. 동시에 대상 즉 각각의 사회 및 자연현상에 대한  주관적 인식의 통찰력을 극력 강화
하고, 왕왕 이것저것 종횡으로 의론을 펼치면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는 것을 회피하여,  이
로써 철학적인 느낌·대가적 풍모·오성의 추구가 충만하다. 그러나 이런 의론성 산문은 동
시에 또 종종 특수한 방식으로 작품 자체의 문채를 강화함으로써 전통적인 의론문이 보이는 
메마른 모습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3
  
  중국 당대 학자산문에서 이성·지성·오성의 강조는 산발적이고 고립적인 현상도  아니고 
일종의 창작태도나 주관적인 추구도 아니다. 작가의 주체 의식과  작품의 객관 형태로 보아 
중국 당대 학자산문은 그 자신의 예술적 속성을 포기하거나  경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는 이성·지성·오성의 추구가 실제로 산문 자체의 심미적 건설과 형식적 탐색을  방해하거
나 저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적 감각과  참신한 기운을 갖춘 산문의 창
작이라는 예술적 추구 속에서, 그것은 전통 산문의 고유한  틀에서 벗어나서 이를 돌파·초
월하는 가운데 변혁을 실천하고 창조를 이룩함으로써, 이제 대체로 자신만의 독특하고 분명
한 창작 풍도를 갖추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중국 당대 학자산문은 첫째로 거의 모두 폐쇄와 개방이 상호 통일된 사
유 구조를 가지고 있다. 소위 폐쇄란, 이러한 산문이 대부분 삶에 대해 일종의 사색적  태도
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거의 모두가 이러한 사색이 내심에  침잠된 상태로 표출되며, 
모든 감수·체험이 일종의 정신 활동으로서 개인의 정신 세계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가리
킨다. 소위 개방이란, 이러한 사고의 내용과 성격이 극히 광활하고 심원할 뿐만 아니라 거의 
무한하게 외부로 발산·확장되어, 외부세계와 인류역사의 모든 것이 이러한 사고의 시야 속
에 들어올 수 있고 또 들어오게 된다는 것을 가리킨다. 둘째로, 이러한 산문에서는 그  어떤 
제재·주제·체재·양식의 작품이든 간에 거의 모두가 일종의 탐구와 연계라는 정신적 지향
을 가지고 있다. 탐구는 일종의 과학적 진리에 대한 탐구를 말하며, 왕왕 사고의 확장·역사
적 되돌아보기 속에서 진행된다. 연계란  생활에 대해 거시적이고 전체적인  파악의 경향과 
특징으로 표출되는데, 작가들이 역사와 현실을 사고할 때 언제나 그 속에 포함된 객관적 법
칙을 가진 것들을 발견하고 제시함으로써, 눈앞에 직면하고 있는 현상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자 노력하고 있으며, 기존의 통설을 고수하면서 그것에 대한  간단하고 표피적인 설명을 행
하는 데 만족하지도 않고, 사물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표면에만 머무르면서 고립적이고 정
태적으로 일반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데 만족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셋째로,  문체 
추구의 명확성과 전통 문체 한계의 돌파 역시 공통된 상황이다. 대륙의 신시기  학자산문은, 
산문 자체의 특성과 창작 법칙에 대한 인식·파악·탐색 면에서,  타이완·홍콩 및 해외 화
교 산문계의 창작에서 대두된 새로운 현대 지성산문이 가진 그러한 이론적인  냉철함·자각
성 및 충분한 준비에는 훨씬 못미친다. 이에 따라 5·4 이래 중국 현대산문의 전체 전통 및 
그것의 폐단(예컨대 감정과다·시의화·연성 등의 문제)에 대한 반성이라는 토대 위에서 후
자만큼 멀리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은 아직 없다. 그렇지만 신시기에 중국 당대산문의 발전 
및 그 유행 이론과 명백한 결함(예컨대 '형태는 산만, 정신은 불산만形散神不散'이라든가 단
조로움·협애함·천박함·정형화·도식화 등등)에 대해 국부적인 반성 및 심지어 대담한 부
정을 행하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현대산문의 성격·기능·창작 법칙  및 방법에 대한 실천
적인 모색 면에서 비교적 강렬하고  집중적인 주체 의식을 갖추게 되었고,  이는 산문 창작 
자체에 대해 산문 문체의 재창조를 추구하는 것으로 집약되어  나타났다. 따라서 일종의 새
로운 그리고 많든 적든 간에 모호한 반역  의식 또는 명확한 초월 의식을 지니고서 이러한 
창조를 실천했고, 이로써 전통산문 범위 내에서의 부동한 체제·양식간의 문체적 한계의 타
파와 형식 기교 면에서의 교차·혼융 및 상호 차용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이런 방면에서 이
제 우리가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통상적 작법을 살펴 볼 때, 상당수 당대 학자산문 속에서
는 우리가 과거에 옳다고 여겼던 서사성 산문·서정성 산문·의론성 산문 사이에서의  상대
적으로 명확했던 구분이 이미 상당한  정도로 그리 명확하지 않게 되었다.  거의 모든 이런 
부류의 산문작품은 일종의 '이치를 말하는' 추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치를 말하는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작가의 주관적 논의를 서술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
다. 이 점 역시 중국 당대 학자산문이 전통산문과는 다른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다.  전통산
문 역시 사상을 중시했거나 심지어 강조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상은 첫째, 작가 개
인의 독자적인 사고의 흔적은 아주 적었으며, 둘째, 왕왕 논의나 설명적인 언어를 통해 그것
의 명백하게 깊이 없는 내함이 직접적으로 표출되었다. 그렇지만  중국 당대 학자산문은 이 
점에 있어서 전통산문에 비해 더욱 풍부한 예술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것은 주로 산문작품 속의 이성·지성·오성의 예술  및 문화 풍격을 빌어 구현되는  것이
다. 그리고 중국 당대 학자산문은 예컨대 전체적으로 보아  전통산문과 비교해 본다면 적어
도 다음 세 가지 방면의 특징과 장점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1) 사상의 수준과 인식의 심도
  '이치를 말하는 것'이 일종의 추향이 되고, 사상과 인식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것이 자연스
레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는 것은,  성숙하고 충분한 사고가 가져
온 당대의 수준과 끈질기고 파고드는 탐구가 낳은 깊이인 것이다. 중국 당대 학자산문은 왕
왕 일을 빌어 '이치를 말하고', 경물에 기대어 '이치를 말하고', 감정을 빌어 '이치를 말하고', 
사물에 기대어 '이치를 말하고'는 한다. 특히 대상을 음미하는 것을 좋아하며, 이러한 음미적
인 인식과 사유의 확산에 주중한다. 즉, 구체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미시적인 것에서 
거시적인 것으로, 현실적인 것에서 역사적인 것으로, 국부적인  것에서 전체적인 것으로, 개
별적인 것에서 집체적인 것으로, 개인적인 것에서 인류적인 것으로, 생존 상태에서 생활  환
경으로 다시 일반적이고 공통적이며 보편적인 생명현상으로의 확산이다.
  
  (2) 시공의 폭과 삶의 두께
  중국 당대 학자산문은 '일을 가지고서  일을 논하는 것'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것은 왕왕 
극히 광활한 사유·연상·예술 공간을 추구하고 창조해낸다. 바로 이 때문에 작품에는 협애
하고 단조로운 시간과 공간의 제한이 적다. 탐구와 연계를 강조하기 때문에 역사와 현실, 개
인과 사회의 병존은 시간과 공간의 범위가 급격하고 대폭적으로 확장되도록 만든다. 동시에 
중국 당대 학자산문이 특별히 중시하는 것은 생활에 대한 감수와 체험의 깊이 그리고 복잡
하고 풍부한 경력과 독서에서 얻은 학식의  집적이다. 따라서 연계·비교·인신·발휘 과정
에서 기왕의 생활 경험과 지식의 집적은, 작가가 자신의  사고는 표출하면서 개인의 감정을 
토로하지는 않는 튼실하고도 심후한 토대가 되곤  한다. 이성·지성·오성의 구현은 그리하
여 시공의 폭과 생활의 두께를 특징으로 하는 전례 없는 삶의 근거를 갖게 된다. 이와 동시
에 행운유수와 같은 필치, 자유분방한  문풍 역시 이러한 형식적 특징  면에서 산문 예술의 
중요한 내용이 된다.
  
  (3) 정보의 밀도와 언어의 역량
  우선 정보가 극도로 풍부하다. 전에 비해 훨씬 풍부한 생활  및 지식의 내용을 가지고 있
을 뿐만 아니라 사상과 예술의 용량 역시 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특히 학식이 심화된 것은 
거의 전례 없는 현상이다. 전통적인 산문은 개인 정감의 토로  또는 기성 사상의 설명에 한
정되었기 때문에 그 입지가 약하고  착상이 협소했다. 더구나 동태적인  사고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작가의 정신이 충분하고 전면적이며 자유롭고 깊이 있게 발휘되기가 어려웠다. 그렇
지만 중국 당대 학자산문은 상대적으로 참으로 철저하게 심신을 해방시키고 문체를  해방시
켰으므로, 자유·진정·개성·인격·사상·정신·감수·체험 등등이 모두  거침없이 전개되
고 전면적으로 발양되며 깊이 있게 구현되는 조건을 구비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각종 정보
의 밀도가 확대되는 것 역시  순리적이고 자연스럽게 실현되었다. 이러한  요구에 순응하고 
또 이에 수반된 것은 언어의 역량으로,  이 역시 명확하고 심대하게 증대되었다. 중국  당대 
학자산문에서 언어의 운용은 어휘가 풍부하고 구법이 민활하며 수사 수법의 사용이  자유롭
고 다양할 뿐만 아니라,  특히 서술 묘사의  형상성과 함축의 농축성을  갖추어서 암시·쌍
관·은유·상징·대체 및 충분한 웅변성·철학감·논설색채 등등이 더욱 자주 나타난다. 그 
집중적인 형태는 곧 아주 쉽사리 사고와 연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이 또한 그것의 이성·지성·오성의 추구와 밀접하게 관련되는 필연적인 현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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