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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잘못된 과학 상식들

by Frais Study 2020. 5. 28.

잘못된 과학 상식들 (1)
 

우리에게 상식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과학에 관한 역사적 사실들  중에
는,실제와는 다르게 잘 못 알려져 있는 것들도 매우 많다. 과학자들의 업적
이 부풀려지고 너무 미화되기도 하고, 혹은 "후세에 교훈을 주기 위한" 목
적으로 의도적으로 왜곡되거나, 꾸며내어진 이야기들도 적지  않다. 이러한 
"오해 의 과학사" 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몇가지만  알아보기로 하겠
다.

1. "갈릴레이는 피사의 사탑에서 물체의 낙하실험을 하였다."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일컬어지는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업적은 매우  많으
나, 그중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가벼운 물체나  무거운 물체나 같은 
속도로 낙하" 한다는 사실을 밝혀서, 기존의 아리스토텔 레스의 "무서운 물
체가 먼저 떨어진다." 는 이론을 깨고, 근대적 역학법칙의  기초를 세운 것
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 기로, 갈릴레이는 그 유명한  피사의 
사탑에서 두 공의 낙하를  실제로 실험하여, 이것 을  증명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 알려진 과학사의 대표적 사례이다.  사실 피사의 
사탑은 갈릴레이가 생존했던  시대에도 이미 기울어져  있었다고 하니, 물 
체의 낙하 실험을 하기에 매우 좋은  장소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유감스
럽게도 갈릴 레이는 그곳에서 물체의 낙하실험을 한 적이 없다. (갈릴레이
의 업적을 후세에 널리 알리려다 보니 생겨난 이야기거나, 혹은 피사의 사
탑의 역사적 가치를 더욱 높이려고 이탈리아 관광당 국에서 퍼뜨린 것이거
나 ...) 갈릴레이는 물체의 낙하에 관하여 그의 대표적 저서 "두개의 새로운 
과학에 관한 대화" 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만약 무거운 물체 가 
먼저 땅에떨어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서로 연결해서 떨어뜨리는 경우를 고려해 본다면,  무거운 물체는 빨리 떨
어지려 하고 가벼운 물체는 그보다 늦게 떨어지려  할 것 이므로, 그 결과
는 처음의 무거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늦고, 가벼운 물체 하나만인 
경우보다는 빨리 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편 으로는 두 물체가 연결
되어 있으므로 전체 무게는 더욱 무거워 져서 더욱 빨리  떨어져야 옳다는 
결론도 나온다. 하나의 가정에서 이처럼 상반된 두 결론이 나왔으므 로, 그
것은 애초의 가정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무거운 물체나 가벼
운 물체나 동시에떨어져 야 옳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갈릴레이는 이
처럼, 실험에 앞서서 논리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중세의 역학이론을 
지배해 온 "무거운 물체일수록 빨리  떨어진다." 는 설이 명백한 잘못임을 
밝혔던 것 이다. 실제로 두 개의  납공을 떨어뜨려서 (그것도 피사의 사탑
이 아닌, 2층 창문에서) 실험한  인물은 시몬 스테판이라는 네덜란드인 인
데, 갈릴레이의 제자가 쓴 "갈릴레오전"에서, 저자가 스승의 업적을 찬양하
려는 나머지, 그만 다른 사람의 업적까지 혼동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2. "노벨은 자신이 발명한  다이너마이트가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되기
를 바랐으나, 인명살상용 군사 무기로 사용되는  것을 보고 크게 낙담하고 
가슴 아파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유산을 털어서 인류 평 화에 기여한 사람
에게 수여하라는 노벨상을 제정하였다." 

우리가 자주 들어 온 위의 이야기에는 중대한  오류가 두 가지나 있다. 째
는 "다이너마이트"가 군사무기로 이용되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노벨이 자신
의 발명품이 군사용 무기로 쓰이는 것을 반대한 것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
다.  알프레드 노벨(1833-1896)은 아버지대부터 화약의 생산에 종사했으며 
처음에는 액체폭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제조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조금만 
흔들어도 폭발하는 아주 위험한 것으 로서,  노벨의 공장에서도 몇차례 폭
발사고가 일어나서 그의 동생이 죽기도 하였고 세계 각국의 공장, 창고 등
에서도 심각한 폭발사고가 잇달았다. 안전한 폭약을 만들려고 노력하던 노
벨은 고심끝에 니트로글리세린을 규조토에 삼투시킨 폭약을 발명하여 1867
년에 특허를 취득하였다. 이것이  곧 다이너 마이트인데, 흔들거나  두들겨
도, 심지어 불을 붙여도 반응이 없고 뇌관을  쓰지 않으면 폭발시킬 수 없
다. 따라서 토목이나 건설, 광산 등지에서 널리 쓰여져 노벨은 곧  큰 부자
가 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둔감한  폭약"은 군사용 무기로 쓰기에는 매우 
부적절한 것이었다. 설사 쓴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인  인명살상보다는 포대, 
진지의 폭파 등에 제한적으로 이용되는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그리하
여 노벨은 적극적으로 군용화약의 개발에도 힘을 쏟았으며  1887년에 발명
한 무연화약은 총포, 기뢰, 폭탄 등에 쉽게  쓰일 수 있었다. 노벨은 이 우
수한 군용화약을 대량으로 생산하여 세계 각국에 널리 수출 까 지 하였다. 
물론 노벨 자신은 전쟁을 싫어한 "평화주의자" 였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
다. 그러나 납득하기 힘들겠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
무엇이든 모조리 부숴 버릴 가공한 힘을 가진 물질 이나 기계를 만들고 싶
다. 그것으로 적과 우군이 1초동안에 서로  상대방을 말살할 수 있게 된다
면, 모든 문명국들은 공포를 느낀 나머지  전쟁을 외면하고 군대를 해산할 
것이다." 마치 핵무기가 있기때문에 "무장평화"가 유지된다는 식처럼, 살상
효과가 큰 병기를 개발할수록 평화가 올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생각을 노벨
은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잘못된 과학 상식들 (2)
 

1. "소년 와트(J. Watt)는 수증기로 인하여 물주전자의 뚜껑이 움직이는 것
을 보고서 증기기관의 발명 을 착상하였다." 

제임스 와트(1736-1819)의 증기기관은 산업혁명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주
역으로서, 기술 발달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와트가 증기기관
을 "최초로" 발명한 것은 아님을,  필자의 이전글 (과학사 의  X파일 6편- 
"2천년전의 증기기관")에서 밝힌 바 있다.  토머스 뉴커멘(1663-1729)이 발
명한 증기기관 은 와트의 증기기관이 나오기 50년 전부터 영국의 탄광에서 
지하수를 퍼올리는데 널리 쓰이고 있었다.  위의 와트의 소년시절의 "주전
자 일화"는 우리도 어린시절에 누구나 다 한번씩 들었을 것이다. (어린시절
에 와트소년처럼 관찰력을 가지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친절한 가르침과 
함께...) 그러나, 이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와트의 어린시절에서 50년 이
상 지난 뒤였다. 그것도, 와트가 주전자뚜껑을 유심히 관찰하여  무엇을 구
상한 것이 아니라, 그냥 주전자 뚜껑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고모에게 꾸
중을 들었던 것이다. 어느날 밤, 소년 와트는 미혼인 고모 뮤어헤드양과 차
를 마셨는데, 고모는 소년 와트를  이렇게 야단쳤다고 한다. "제임스야, 너
처럼 게으른 아이도 처음 보겠구나. 어쩌자고  한시간 동안이나 주전자 뚜
껑만 들었다 놓았다 하니?  그런 일로 시간을  낭비하다니, 부끄럽지도 않
니? 책을 읽던가 아니면 다른 쓸모있는  일을 해야지... " 어린시절 와트의 
이 기억이 먼 훗날 증기기관을 제작하는 데 어떤 영감을 주었는지, 확언하
기는 힘들지 모르나, 이것을 계기로 증기기관을  발명했다는 것은 너무 과
장되고 터무니없이 비약된 것이 아닐 수 없다. 와트가 증기기관에 손을 댄 
것은 1763년 글래스고우 대학에 있던 뉴커맨의 증기기관 모형이 고장난 것
을 수리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곧 고장을 수리했고, 
이후 흥미를 가지고 좀더 효율적인 증기기관을 만들려고 노력한 끝에 성능
이 우수 한 증기기관을 제작하여 널리 보급함으로써 산업혁명에 크게 기여
했던 것이다. 소년시절의 단순한 호기심이 나중에  큰 업적을 낳게 되었다
는 설명은 어린학생들에게 교육적인 효과는  클지 몰라도 그다 지  사실과 
부합되는 해석은 아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와트보다 앞선  시대의 증기
기관연구의 선구자 인 우스터 후작2세(1601-1667)와  토머스 뉴커멘에게도 
위와 똑같은 일화가 있다는 일이다. 

 

2. "뉴튼은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힌트를 얻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너무도 유명한 이 이야기에도 과학사학자들간에 무척 논란이 많다. 사과떨
어지는 것을 보고 물리법 칙을 세웠다면,  누군들 못했겠냐고 일축해 버리
는 사람들도 무척 많다. 다만, "사과와 만유인력" 의 상관관계를 어느 정도 
인정하더라도 이것만으로는 너무 불충분하다. 물체가  떨어지는 것이 지구
인력의 작용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전에도 많이  있었다. 더욱 중요한 것
은 "지구의 인력으로 사과가 떨어졌 다." 고 생각한데에 그친 것이 아니라, 
"사과를 떨어지게 한 지구의 인력이 하늘에 떠 있는 달의  운동 에도 영향
을 미친다." 고 설명한 것이다. 즉 뉴튼 이전에는 "하늘나라의  역학(力學)" 
과 "땅위의 역학"은 전혀 다른 별개의 것으로 보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뉴
튼은 지구와 행성들의 공전, 달의 공전, 물체의 낙하와 운동 등, 천상의 운
동과 지상의 운동이 똑같은 물리법칙에 의해서 설명된다는  것을 밝힘으로
써 기존의 역학이론을 종합, 완성하고 고전물리학의 완결된 토대를 만들었
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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