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없는 법학은 출구 없는 미궁이다. -라이프니츠(G. W. Leibniz)
법사학은 사람들을 슬로건의 강제에서 해방시키며, 법학도를 기능공이나 숙련공으로
타락시키지 않도록 지켜준다. -미타이스(Heinrich Mitteis)
1. 기초법학이란 무엇인가?
기초법학이란 용어는 학술용어라기보다는 강학상 편의적인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
다. 즉
헌법학, 민법학, 형법학 등 이른바 실정법학에 대하여 어느 특정 법역에 국한되지 않
고
법학의 기초를 이루는 이론법학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기초법학 내지 이론법학에는 어
떤
분야가 내포되는가?
아래에서 상론하는 법철학(Rechtsphilosophie), 법사학(Rechtsgeschichte),
법사회학(Rechtssoziologie) 외에도 법인류학(Rechtsethnologie), 법민속학
(Rechtsvolkskunde),
법고고학(Rechtsarchaologie), 법심리학(Rechtspsychologie), 법경제학(law and econo
mics),
법언어학(Rechtssprachwissenschaft), 입법학(Gesetzgebungslehre), 법계량학(Jurimet
rik),
법신학(Rechtstheologie) 등의 헤아릴 수 없는 분야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연구역사가 일천하여 기초법학의 연구
가 매우
부족한 상태이며, 기초법학의 튼튼한 토대 위에서 건전한 실정법학이 발전될 수 있음
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2. 법철학
1. 법철학의 의의
법철학(legal philosophy, Rechtsphilosophie)은 법의 본질을 모색하고, 그 목적과
이념을
추구하며, 법학의 방법론을 확립할 것을 임무로 하는 기초법학의 대표적 분야이다. 원
래는
법리학(jurisprudence)이라 불렀으나 법률철학이라 하다가 오늘날에는 법철학이라고
부르고
있다.
법에 대하여 단편지식을 갖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지식을 바르게 종합하고 그것을 바
른
방향으로 쓰려면 법철학적 안목이 필요하다. 아니 그보다 법철학이 없으면 실정법학의
지식마저도 바르게 가질 수 없다. 법철학은 철학의 일부분이면서 동시에 법학의 일부
분이다.
그러므로 법철학을 파악하려면 법학의 지혜와 철학의 성찰을 동시에 갖고 노력하여야
한다.
2. 법철학의 임무
그러면 법철학이 하는 일, 즉 법철학의 임무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철학의 과제를
첫째로
존재대상의 본질을 파헤치는 '존재론적 과제', 둘째로 대상인식의 방법과 가능성을 탐
구하는
'인식론적 과제', 셋째로 삶과 세계의 의미와 목적가치를 포함한 일체의 '있어야 할
것'을
평가를 통해 얻으려는 '가치론적 과제', 그리고 역사 속에서 이 모든 과제의 생동적인
생성의
흐름을 고찰하는 '철학사적 과제'로 나눈다. 일반철학의 과제가 이렇다면 이에 따라
법철학의
과제도 밝혀진다. 즉 법철학은 일반철학이 해결해야 할 모든 과제를 그 특수한 탐구의
대상인 법적 근본문제들과 관련하여 수행해야 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법철학의 과제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심헌섭, '법철학 1'(법문사, 1
982),
18-20면.)
첫째,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법철학의 과제, 즉 법존재론(Rechtsontologie)이다.
여기에서는 법
그 자체의 '본질', 다시 말해서(효력이 있어야 할 법규범의 총체로서의) 그 특수한
존재형태에서의 법 그 자체의 모습을 파악한다. 즉 법의 개념적 징표들은 어떻게 규정
되어야
할까? 법은 어떠한 구성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것들의 상호관계는 어떠한가? 또
법은
어떻게 구분될 수 있는가? 법은 누구에 대해서 구속력을 갖는가?(법효력과 법의무의
문제)
등등..... 이 모든 문제들은 '법의 일반이론'(allgemeine Rechtslehre)과 '법이론'(Re
chtstherie)
법이론에 대해서는 배종대, 법이론연구, '고시계', 1988. 4, 5월호 참조.)의
일부에서 다루어진다. 다시 말하면 법 그 자체를 놓고 그 내면을 파헤치는 과제라 하
겠다.
둘째, 인식론적, 방법론적 차원에서의 법철학의 과제이다. 이는
법인식(Rechtserkennung)의
방법과 가능성, 즉 법사고(Rechtsdenken) 일반에 관한 과제이다. 주지하듯이 법적 사
고도
판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판단은 어떤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것의 중심
이
법규범이라면 이의 성질은 어떠하며(법과 진리의 문제) 또 이는 완결적인지(보완의 문
제),
그리고 그 내용은 어떻게 밝혀야 하는지(법해석의 문제), 그리고 그 적용의 과정과 구
조는
어떠한지(법논리학의 문제)? 이러한 문제들은 '법학방법론'(치펠리우스/김형배 역,
'법학방법론'(삼영사, 1976).)
(juristische Methodenlehre)
또는 '법논리학'(Rechtslogik)의 과제로 다루어진다.
셋째, 가치론적 차원에서의 법철학의 과제이다. 여기에서는 가치론적, 규범적 관점
에서
법과
법규범을 문제삼는다. 도대체 법질서의 존재는 어떻게 정당화되는 것인가? 법질서는
어떠한
목적가치에 이바지하여야 하는가? 그리고 정당한 법질서를 어떻게 형성하여야 할까?
이 모든
문제들은 '법이념론'(Rechtideenlehre) 또는 '정법론'(Lehre des richtigen Rechts)의
문제이다.(자세히는, 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 5판(삼영사, 1985), 56면; 칼
라렌츠//양창수 역,
'정당한 법의 원리'(박영사, 1986), 1-35면.)
넷째, 철학사적 차원에서의 법철학의 과제이다. 이상과 같은 (법)철학의 근본문제들
은
실질적으로 똑같은 것들은 아니지만 궁극적으로 따지고 들면 모두 상호관련되어 있고,
하나는 다른 하나에로 이끌어지고 따라서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
는
것이 (법)철학사이다. 법철학사는 법철학적 문제들의 역사적 관련을 그 정신적 발전과
정
속에서 밝혀주는 것이어서 그것은 무엇이 법철학인가를 가르쳐 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나의 역사적 전체'로서의 법철학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법철학사(Geschicht
e der
Rechtsphilosophie)의 과제라고도 할 수 있다.
3. 법철학의 역사
(1) 고대의 법철학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법학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은 로마
에서
비롯되었다. 게르만족에는 전문적인 법률가가 없었기 때문에 법학이 형성되지 않은 데
반해,
로마에서는 이미 공화정시대에도 법학자(jurisprudentes)들이 활발하게 활동하였고,
제정기에
들어서는 가이우스(Gaius), 파피니아누스(Papinianus), 울피아누스(Ulpianus) 등의 법
학자가
나타나 2세기 반 동안은 법학전성시대(klassische Zeit)라고 불리기까지 하였다.
법학(jurisprudentia에서 jurisprudentia로)이라는 개념도 로마에서 시작하였는데, 여
기서
prudentia라는 것은 '총명의 덕'을 일컬었고 실천을 위한 지식을 뜻하였다. 법학자도
법이론가라기보다는 실제가 내지 실천가였으며, 그들의 관심사는 학문적 체계가 아니
라
구체적 사건을 타당하게 해결하는 데 있었으므로, 오늘날의 실천법학 내지
해석법학(Rechtsdogmatik)의 시초가 되었다.
영국은 로마법을 계수하지는 않았으나 로마법의 정신은 받아들였으며, 한편으로는
불문법,
관습법적인 게르만법이 영국으로 흘러들어가 이 둘이 서로 조화되어 로마법학의 실제
장소는
오히려 영미법에 살아남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로마법 전체는 북이탈리아
볼로냐(Bologna)대학을 중심으로 하는 주석학파(Glossatoren)나
후기주석학파(Kommentatoren)의 연구를 통하여 유럽대륙의 여러 나라에 전파되어, 이
른바
계수(Rezeption)라는 형식으로 로마법학이 유럽을 지배하게 되었다.(자세히는 최종고,
'법학사'(경세원, 1986), 73-111면)
독일에서는 로마법이 보통법(das gemeines Recht)으로 되어 보통법학(판덱텐법학,
Pandektenwissenschaft)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나 개념적이고
추상적
경향으로 기울어 로마법의 실제적인 정신과는 상당히 동떨어져,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이라는 비난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로마법의 계수
가
민주의
요망에 따른 것이 아니라 당시의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해서 이루어졌다는 점과도 관련
이
있다. 그 뒤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휴머니즘운동의 영향을 받아 문예부흥정신에서 고전
로마법의 연구도 성행하고, 한편으로는 게르만 고유법을 강조하는 풍조도 일어났다. 1
9세기
후반에 이르러 기르케(Otto F. von Gierke, 1841-1921)(자세히는 최종고, "오토 폰 기
르케",
'위대한 법사상가들 1'(학연사, 1984), 215-260면.)를 위시한 이른바
게르마니스텐(Germanisten)들이 로마니스텐(Romanisten)들에 대항하여 게르만법의 연
구를
촉진하였다. 예링이 '로마법을 통하여 로마법 위로'(durch das romische Recht, uber
dasselbe
hinaus)라고 '로마법의 정신'(Der Geist des romischen Rechts)에서 부르짖은 것도 이
러한
이유에서 였다.
로마는 무력과 그리스도교와 법으로 세 번 세계를 지배하였다고 하는데, 이 로마법
내지
로마법학과 체계는 특히 민법의 영역에서 오늘날도 그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다.
그리스에서는 법학의 학문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철학에서 법의 문제와 정의의 문제가 심도깊게 다루어져 법철학의 모티브를 제공
하고
있다. '철학의 천재'인 그리스인의 철학적 개념들은 로마법에 영향을 주어 로마법학을
학문화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즉 결의론(Kasuistik)의 단계에 머물러 있던 법
학을
류와
종의 개념과 체계로 추상화시킴으로써 학문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2) 자연법론
1) 스콜라학파: 로마법에서는 인법(jus)과 신법(fas)을 갈라 놓았기 때문에 종교적
요소는
법학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것과 뚜렷하게 대조되는 것이 토마스 아퀴나스(Thom
as
Aquinas, 1235-1274)를 대표로 하는 유럽 중세의 스콜라학(Scholastik)이다. 토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가톨릭신학과 결부시켜 발전시켰다. 그에 따르면 영구법(lex
aeterna),
자연법(lex naturalis), 인정법(lex humana)은 서로 연관된 것이며, 인정법은 자연법
을
적용한
것이고, 자연법은 영구법에의 참가이다. 이 스콜라적 법학은 중세에 교회와 너무 밀착
하여
'신학의 시녀'로 전락하였지만, 중세의 토마스철학은 후세에까지 면면히 이어져 내려
왔다.
2) 신토마스주의: 자연법론에 대한 반발로서 19세기는 법실증주의가 풍미한 시대라
고
하겠는데 19세기 말에서 금세기초에 걸쳐 이른바 '자연법의 부활'이 일어났다. 카트
라인
(Victor
Carthrein, 1845-1931)은 신법(lex divina)에서 자연법을 끌어내고, 자연법을 실정법
의
기초라고
하여 반자연법적인 실정법은 무효라고 주장하였다. 주목할 것은 독일에서 나치스 폭정
을
경험한 이래 악법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자연법의 재생'이 크게 자극된 사실이다. 예컨
대
카우프만(Arthur Kaufmann, 1922)(자세히는 최종고, "아르투어 카우프만", '위대한
법사상가들 3'(학연사, 1985), 322-413면.)의 저항권에 관한 견해는 스승인 라드브루
흐의
상대주의를 넘어서 자연법사상에로 접근하였고, 흘러바흐(Alexander Hollerbach, 193
1)는
강력한 네오토미스트로 자연법을 주장하고 있다. 신토마스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다벵(J
ean
Dabin,
1889)과 같은 도덕적, 정치적 자연법의 존재는 인정하면서 법률적 자연법은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 리뻬르(Jeorges Ripert, 1800-1858)와 같이 카톨릭윤리를 강조하면서도
자연법론을 취하지 않았던 사람도 있다.
3) 합리주의적 자연법론: 중세가 신으로 특징지워진다고 한다면 근세는 인간의 이성
으로
특징지워진다. 이리하여 자연법도 근세에 이르러서는 신에서 분리된 인간의 이성에 바
탕을
두게 된다. 그 최초로 나타난 법사상가가 그로티우스(Hugo Grotius, 1583-1645)(자세
히는
최종고, 후고 "그로티우스", '위대한 법사상가들 1'(학연사, 1984), 36-64면.)이다.
그는 인간에는 사교적 본성(appetitus societatis)이 있고, 이 사교적 본성이 인간의
이성과
일치한다는 전제에서 자연법을 올바른 이성의 명령이라고 하였다.
이와 반대로 홉스(Thomas Hobbes, 1580-1679)는 그로티우스가 성선설의 견지에서 "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unt servanda)는 전제에 터잡아 지배자에 대한 인민의 절대적
복종의무를 사회계약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는 데 대하여, 성악설의 견지에서 '사람
은
사람에 대하여 이리'(homo homini lupus), '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bellum omnium co
ntra
omnes)이라는 자연상태를 상정하고, 여기서 사람을 보호하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강
력한
수단으로서 국가와 그 국가에 의한 법이 있다고 하여, 자연법을 객관적 질서의 면에서
보다
인간성에 따른 주관적 요구라는 면에서 고찰하였다. 또 그는 국가는 어디까지나 수단
이고
주권자에 대한 국민의 복종의무는 주권자가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진 한에
서
인정되는 것이라고 하여 공리주의의 관점에 서기도 하였다.
로크(John Locke, 1631-1704)는 플라톤, 데카르트, 스콜라학파를 부정하고, 지식의
근원을
감각적 경험에서 구함으로써 영국 경험주의철학의 대표자로 손꼽히게 되었으나,
정치적으로는 자연법론자였다. 그는 실정법으로 움직여지지 않는 자연법을 인정하고,
그
한에서는 중세적인 자연법의 관념을 부활시켰다고 하나, 그가 자연법이나 사회계약의
이론을
인정한 것은 인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홉스의 사상은 절대주의적 요소가 엿보
이는 데
대하여, 로크는 자연상태를 평화와 선의가 찬 것으로 상정하고 소유권 기타의 권리는
사회계약 이전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합리주의적 자연법론은 계몽사상을 통하여 근대헌법의 골격을 이루고 자연권적 인권
의
토대로서 현대적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하겠다.
4) 역사적 자연법론: 2차대전 후가 되면서 자연법을 역사성과 관련시켜 고찰하고자
하는
법철학이 대두하였다. 미타이스(Heinrich Mitteis, 1889-1952)(자세히는 최종고, "하
인리히
미타이스", '위대한 법사상가들 2'(학연사, 1985), 315-341면.)와 코잉(Helmut Coing,
1922)
(자세히는 최종고, "헬무트 코잉", '위대한 법사상가들 3'(학연사, 1985), 225-251면.
)이
그 대표적 인물로 손꼽힌다 나치스의 폭정을 경험한 카우프만의 저항권사상과
일맥상통하면서 그들의 자연법론은 권력의 자의적 지배에 대한 저항의 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의 자연법론의 핵심은 인권이다. 이 현대자연법론은 자연법과 실정법의 끊
임없는
대결 속에서 법이 발전되어 왔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는 것이 법사학의 과
제라고
한다.
이렇듯 그들은 자연법의 역사성을 인정함으로써 자연법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보편타당성을 부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요컨대 실정법을 실정법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더 근원적인 것을 인정하여 이것에 실정법을 보충, 수정하는 기
능을
인정하고자 한다. 이것은 슈탐러(R. Stammler)의 '가변적 내용의 자연법'(Naturrecht
mit
wechselndem Inhalt)을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사회의 역사적 발전 안에서
자연법의 객관적 실현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3) 관념주의 법철학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는 존재라는 것을 끝까지 좇아 '나는 생각한
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하여 주체적인 자아를 발견함으로써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에 대하여 칸트는 인간의 이성을 비판적이고 선험적으로 구명함으로써 인식론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하였다고 자처한다. 즉 대상이 처음부터 존재하여 이를 인식
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함으로써 인식대상이 가능해진다고 한다. 그의 법철학은 도덕적 형이
상학의
일부를 이루고 있으며, 자유가 도덕법칙의 존재근거이고, 도덕법칙은 자유의 인식근거
가
된다고 한다. 그는 법칙에 대한 존경이라는 의무의식이 동기가 되어 법칙에 일치하게
행위를
할 때에 도덕성(Moralitat)을 갖는 것이며, 단순히 법칙에 일치하게 행위를 할 때에는
합법성(Legalitat)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여 법과 도덕을 준별하는 관점을 취하였다.
칸트가
주장하는 법과 도덕의 구별, 각인의 자의(Willkur)의 긍정과 그 한계, 인격의 절대성,
죄형의
균형과 같은 여러 원리는 모두 오늘날 시민법원리와 부합되는 것이며, 시민사회의 출
현을
기반으로 하는 계몽사상은 칸트를 통해서 최고의 철학적 표현을 얻을 수 있었고, 칸트
철학이
이룩한 이론체계는 사회적 요청과 일치함으로써 많은 공명을 받았다. 그 뿐만 아니라
칸트철학은 그 후에 여러 갈래의 신칸트학파(Neo-Kantianismus)로 이어져 현대에서도
매우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다.
칸트가 확립한 독일관념철학은 그후 피히테(Johann G. Fichte, 1762-1814)를 거쳐
헤겔(Georg W. F. Hegel, 1770-1831)의 철학으로 발전하였다. 헤겔은 '법철학강요
'(Grundlinien
der Philosophie des Rechts, 1821)의 서문에서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고 말하였듯이, 모든 사상을 변증법적인 발전 속에서 파악한다. 이러한
그의
변증법철학은 법학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오늘날까지 신헤겔주의(Neo-Hegelianismus)
법철학을 형성하고 있다.(자세히는 최종고, '법사상사', 증보중판(박영사, 1990), 274
-284면.)
(4) 공리주의 법철학
영국 공리주의의 창설자로 꼽히는 사람은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12 이다. 그는 흄(David Hume, 1771-1776)으로부터
효용(utility)이라는 관념을이어 받아 효용의 분배에
'최대다수의 최대행복'(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 numbers)
이라는 원리를 내세웠다. 사상적으로 계몽주의의 바탕에 서면서,
이론적으로는 그의 학설에 입각한 입법학의 수립, 법전체의 체계화를
통하여 실제로 여러 나라의 입법에 직접. 간접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그의 공적의 하나라고 하겠다. 공리주의적 법사상은 독일에서는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1892)에게 영향을 미쳤고, 그를 통하여
현대의 여러 가지 법사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12 자세히는 최종고, "제레미 벤담,"(위대한 법사상가들1)(학연사,1984),
116-147면.
(5) 역사법학파
법을 역사적 관점에서, 다시 말하면 역사적 발전의 산물이라고 보고자
하는 학파가 역사법학파(historische Rechtsschule)이다. 위에서 본
역사적 자연법론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있으며 사회의 발전을
과학으로 조명하고자 한 진화론, 법을 계급투쟁의 산물로 보는 유물사관,
헤겔의 역사철학에서의 변증법적 발전의 파악방법을 계승한 신헤겔철학파나
'만능의 코올러'(aller Kohler)라고 불리우는 코올러(Joseph Kohler,
1849-1911)#13 의 비교민족학적인 고찰도 넓은 의미에서 역사법학파의
한 조류라고 볼 수 있다.
역사법학파의 창시자이자 대표자는 사비니(Friedrich Karl von Savigny,
1779-1861)이다. 이 학파가 형성된 것은 19세기 초 독일에서의
법전논쟁(Kodifikationsstreit)을 계기로 한다. 당시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
티보(Anton Friedrich Justus Thibau, 1772-1840)가 '독일에서 일반
민법전의 필요성에 관하여' 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이를 추진하려고 하자,
베를린대학 교수 사바니는 이것을 논박하는 '입법과 법학에 관한 우리시대의
사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였다. #14 이 논문은 역사법학파의 강령이
되었는데, 사비니는 법을 언어에 대비하여 민족에 고유한 성격을 갖는
민족공동의 확신이며 우연적.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다. 즉 법은 언어와 같이 민족과 더불어 성장하고 민족과 더불어
자기를 형성하며 그리고 민족이 특질을 잃을 때는 멸망한다고 하였다.
그는 법전편찬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베이컨(Francis Bacon,
1809-1888)의 이론을 원용하여 그것은 긴급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 한하고,
그것을 인정하는 경우에도 종래부터 있던 법을 특히 중시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독일의 역사법학파에는 로마니스텐과 게르마니스텐의 대립이 있었다.
사비니나 푸흐터(Georg F. Puchta, 1798-1846)는 로마니스텐이고, 이에
대하여 독일고유법의 연구를 추진한 게르마니스텐은 베젤러(Georg
Beseler, 1809-1888)와 기르케를 대표로 하였다. 로마니스텐은 로마법을
지나치게 존중하였다는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그 섬세한 논리적 분석은
후일의 개념법학의 터전을 닦았다고 할 수 있겠고, 게르마니스텐은
로마니스텐의 시민법적 사상을 사회학적 방법론을 통하여 사회법적
견지로 돌리는 것에 공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법학파로서 잊지 못할 학자로 영국의 메인(Henry Sumner Maine,
1882-1888)이 있다. 그는 영국 역사법학파의 태두이며, 저서 (고대법)
(The Ancient Law, 1861)은 고전적 의미를 갖고 있다. 그는 사비니,
예링, 다아윈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으면서 비교법적 연구를 바탕으로
하여 법의 역사적 진화를 설명하였다.
주13 자세히는 최종고, "요셉 코울러," (위대한 법사상가들 1)(학연사,
1984), 300-315면.
14 자세히는 최종고, (법사상사), 증보중판(박영사, 1986), 149-152면.
(6) 법실증주의
1) 독일보통법학과 프랑스주석학파
독일에서는 로마법을 계수하여 이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보통법학을 수립하였고, 특히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이른바
판덱텐법학으로 이론체계의 정교함을 자랑하게 되었다. 대표자로는
빈트샤이트(Bernhard Windscheid, 18187-1892)를 들 수 있는데, 그는
그로티우스의 자연법론을 버린 사비니, 사비니의 민족정신을 버린
푸흐타 등의 방법론으로 일관하여 입법에서 고려되는 윤리.정치.경제의
모든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판덱텐법학을 법실증주의(Rechtspositivismus)로서의
뚜렷한 모습을 갖게 하였다.
독일의 판덱텐법학에 대응하는 것이 프랑스의 주석학파이다. 이것은 프랑스
민법전(나폴레옹법전)이 공포된 1804년부터 19세기말까지
계속된 것으로 특히 그 중간 50년은 전성기었다. 이 학파는 중요한
법전의 주석을 하는 데 전력을 기울이고 성문법 특히 법률을 절대시하여
조문의 엄격한 해석을 위주로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관습법을 법원으로
보면 법적 안정성을 해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2) 분석법학과 순수법학
엄밀한 방법론적인 반성을 한 끝에 법실증주의의 견지에서 법학체계를
이룩한 것으로서 분석법학(analytical jurisprudence)과
순수법학(pure theory of law, Reine Rechtslehre)을 들 수 있다.
이 둘은 서로 계통을 달리하고 창도된 시기나 사회적 배경도 다르지만
많은 점에서 서로 부합되는 점이 있어 아직도 현대적 의의를 잃지 않고
있다.
분석법학의 창시자는 오스틴(John Austin, 1790-1859)이다. 그는 벤담의
문하로서 독일에 유학하여 사비니, 티보 등과 교우하여 독일 보통법학을
배웠다. 오스틴은 자연법을 배척하는 법실증주의 견지에서 법의 바탕을
주권자의 명령에서 구하고, 원래의 법을 명령(command),
제재(sanction), 의무(duty)에 의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그 중에서
'엄격하게 법이라고 불리우는 법'(law as strictly so called)이 실정법이며
이것이 법이학의 대상이 된다고 하여 실정법의 논리적 분석에 힘을
기울였다. 그의 학설은 현대 법실증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순수법학은 켈젠이 창도한 것이다. 켈젠은 신칸트학파인
코오헨(Hermann Cohen, 1842-1918)과 현상학파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의 영향을 받아, 법학에 대한 이데올로기나
정치의 혼입을 배척하는 동시에, 한편으로는 존재와 당위를 확연히 갈라놓는
견지에서 사화학적 방법을 거부함으로써 실정법 규범의 순수한 체계적
파악을 꾀하였다. 법단계설(Rechtliche Stufentheorie)도 그 체계의
일부분이다. 그를 중심으로 하여 오스트리아의 비인에 순수법학의
동조자들이 모였기 때문에 이를 빈학파(Wiener Schule)라고 한다. 그러나
순수법학은 법을 너무 당위(Sollen)로만 보고 존재(Sein)의 측면을 무시하여
법철학적으로 비판을 받게 되었다.
(7) 자유법론
법실증주의의 주류였던 독일 보통법학과 프랑스 주석학파에 대하여 예리은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enz)이라는 별명을 붙임으로써 개념법학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 때를 전후하여
자유법학(freie Jurisprudenz)의 사상을 주장한 사람은
오프너(Julius Ofner)이다. 그러나 법학을 개념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자유법론(Freirechtslehre) 또는 자유법운동을 정면으로 주장하고
나선 것은 금세기에 들어와 에를리히(Eugen Ehrlich,1862-1922),
칸토로비츠(Hermann Kantorowicz, 1877-1940), 푹스(Ernst Fuchs, 1859-1929)
등이다.
개념으로부터의 해방이라는 자유법운동의 주장은 그 자체로서는 소극적인
것이며, 적극적인 기준을 내세운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재판도 법관의
주관적.감정적인 것이 되어버리므로, 감정법학, 인정법학(Affektionsjurisprudenz)이
라는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개념법학의 고루함에 반항하는 운동으로서는 이해가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점을 안고 있으며, 이것은
다음의 법사회학이나 미국의 법현실주의(legal realism)에서, 그 학문적 결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8) 현상학적 법철학
실증주의 철학사상과 결별한 최초의 현대 철학사상으로서는 생의 철학(Lebensphilos
ophie)
과
함께 현상학이 꼽히고 있다. 이것은 브렌타노(L. Brentano)의 제자였던 후설이
제창하였고, 오늘날까지 상당한 후계자를 가지고 있다. 후설의 현상학은
다음 두 가지 점에서 19세기적 사유와 결별한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그것은 소여를 관념론과 같이 원리에서 직접 연역하든가 또는
실증주의와 같이 법칙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하지 않고 소여를 직접
기술하려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이와같이 경험의 직접적 기술을 강조하는
데에 현상학의 특색이 있다. 둘째, 현상학은 있는 그대로의 소여를 직접
기술함으로써 대상의 본질을 직관(Wesensanschau)하려고 한다.
현상학적 방법을 법학에 적용시켜 국가.조합.소유.가족 등 법적 현상을
설명하고 그 자체의 의미를 조명하려고 애쓴 학자는 에드문드 후설의
아들인 게르하르트 후설, 라이나흐(Adolf Reinach, 1883-1919) 등이다.
(9) 실질적 가치론 법철학
현상학은 데카르트에 까지 소급해 올라가 의식과 존재와의 관계를 엄밀하가게
검토함으로써 근대철학의 전제가 되어 있던 '존재에 대한 의식의 우위'를
근본적으로 반성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의식의 우위'를 떠나 '객관으로의 전향'을
꾀하였다. 그러나 그 객관은 주관과의 관계에서만 문제가 되었고, 따라서 존재는
의식에 대한 상관자로서의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은 비록 독일에서
관념론이 붕괴되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주관과의 대비 속에서만 개관은 문제될
수 있다고 생각하던 당시의 문제상황이 후설을 제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상학에서의 존재는 항상 의실에 대한 대응적 존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며, 그러한 점에서 여전히 관념론으서의 티를 벗어나지 못하였다는
비판이 가해졌던 것이다. 이리하여 현상학의 진영으로부터 현상학의 영역을
현실존재의 면에까지 확장하여 한층 더 존재론적인 경향에로 전향해보려는 노력이
생겨나게 되였다. 쉘러(Max Scheler, 1874-1928)의 실질적 가치론(materielle
Werttheorie)이
바로 이것이며, 하르트만(Nicolai Hartmann, 1882-1950)에 의하여
더욱 발전되어 갔다.
실질적 가치론을 법철학에 응용시켜서 이론화한 학자로는 벨첼(Hans Welzel, 1904-197
7)#15
코잉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주) #15 자세히는 최종고, "한스 벨첼," (위대한 법사상가들 3, 학연사, 1985), 65-
96면.
(10) 실존주의 법철학
고대 희랍시대에서부터 유럽의 전통으로 된 주지주의적 사고방식에서는 인간과
세계를 파악함에 있어서 우선 그것을 대상화하고, 그 속에서 일반적 원리와 본질을
찾아내려고 하였다. 아니면 주관에서부터 끌어낸 법칙을 가지고 대상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근대의 관념론이나 실증주의에서도 그 점은 다를 바 업다. 그런데
실존주의(Existenzialismus)는
이와 같이 본질이나 법칙으로서 인간과 세계를 파악하려는 데에 반대하고, 어디까지나
구체적.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본 인간의 현존재를 유일한 토대로 삼고서, 현대의
위기에 처하여 상실된 인간의 주체성을 회복하려고 하였다. 실존주의자들의 이론들이
다소 다르긴 하지만 일반성.본질 또는 법칙으로부터 인간을 파악하려 하지 않고 실존
적
체험에서부터 출발하여 현존재인 인간이 그때그때 '존재하고 있다는 것'(Dasein)을
중심문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고 할 수 있다.
후설이 '존재론에로의 전향'을 시작한 이래로 현대 철학은 쉘러의 철학적 인간학을 거
쳐
하르트만의 실재적 존재론으로 발전되어 갔다. 그러나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실존주의
는
쉘러, 하르트만의 노선을 계속 추진하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직접 후설에게로 돌아가,
여기에서 재출발하여 새로이 역사적 존재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새 길을 개척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로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야스퍼스(Karl Jaspers, 1873-1969),
사르트르(Jean Paul Sartrek, 1905-1977), 마르셀(Gerbriel Marcel, 1877-1975)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인간의 실존성을 강조하다보니 세계와 법제도에
대하여는 부차적인 의미밖에 부여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진지한 사상적 모색
을
토대로 하여 법철학에서도 이를 응용하여 실존주의 법사상의 경향이 대두하게 된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실존주의 법철학을 형성한 학자로는 코온(Georg Cohn),
페히너(Erich Fechner), 마이호퍼(Werner Maihofer) 등을 들 수 있다.#16
주16 Erich Fechner, Rechtsphilosophie, 1962 : W.Maihofer, Recht und Sein, 195
4.
(11) 실용주의 법철학
미국의 법철학은 대체로 판례법주의와 영국에서 이어받은 근대 초기의 자연법론 및
공리주의 철학 위에 성립한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미국이 독특한 철학을 기반으로
하는 실용주의 법철학.현실주의 법철학이 발전하였다.
실용주의(pragmatism)를 맨 먼저 법학에 채용하여 체계화한 사람은 파운드#17 인데,
그는 사회의 이익들의 조정이 법학의 임무라 하고, 법학을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이라 불렀다. 그의 법학지식은
매우 광범하며, 분석법학.사회심리학.역사법학 등의 영향을 받아 법의 역사적 발달의
유래를 존중하고, 사회적 사실에 나타나는 법현상의 연구를 중시하는 동시에 미래에
대한 법의 개선 또는 발달을 꾀할 필요를 역설하고 사실에 입각한 법의 목적론적
고찰을 꾀한 점에서 예링의 영향도 받고 있다.
그 밖에 30년간 재판관을 지낸 '위대한 반대의견자'(the great dissenter)로서
진보적 법해석을 내린 호움즈(O.W.Holmes, 1841-1935),
법은 현실에 타협해야 한다고 주장한 카도조(B.N.Cardozo, 1870-1938) 등도
그 주장자들이다. 호움즈는 자연법론에 반대하고, 실정법의 근거를 법원의 판결에서
구하면서,
법은 판사가 법정에서 말하는 것이라 하여 법례언설을 주장하였다.
주저 (보통법)(Common Law, 1881)에서 "법의 생명은 논리가 아니고 경험에 있다."고
하였다.
미국에서 '호움즈숭배'(Holmesworship)는 거의 신앙에 가까울 정도인데,
그의 드물게 보는 성품은 귀족적 품성에다가 용기와 모험심이 잘 결합된 데
그 매력이 있다.#18 그는 의회의 입법을
신뢰하고, 새로운 사회적 입법이 절대적 자연권을 침해한다는 이유에서 위헌성을 주장
한
법원의 다수설과 대립하여 위헌이 아니라 하는 소수의견을 주장하였다. 카도조도
호움즈 및 파운드와 같은 계통의 프라그마티즘 법철학의 법률가이며, "법은 현실과
타협할 것이며, 진보를 방해하는 때에는 법적 논리도 선례도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
다.
그의 저서는 오랜 변호사 및 법관생활을 통한 경험이 풍부하게 채용되어 법사상이
전개되었기 때문에 높이 평가받고 있다.
주17 자세히는 최종고, "로스코 파운드," (위대한 법사상가들 1, 학연사,1984),
447-469면
양승두, "로스코 파운드의 법사상," (법률연구, 연세대) 제 3집, 1984.
주18 자세히는 최종고, "올리버 W. 호움즈," (위대한 법사상가들 1, 학연사, 1984),
261-299면.
(12) 법현실주의
실용주의법학을 다시 진전시킨 것은 르웰린(K. Llewellyn, 1893-1962),
프랑크(Jerome Frank, 1889-1957) 등을 대표로 하는 법현실주의였다.
법현실주의가 나오게 된 동기는 1930년대에 경제부흥과 복지증진정챙을 담은
뉴딜(New Deal)입법이 최고재판소에서 계속 위헌이라는 판결이 내려진데 있다.
단지 위헌판결을
내렸다는 것뿐이 아니라, 대개가 5대 4의 매우 긴박한 의견대립을 보이면서 결정되었
기
때문이다. 이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어째서 같은 사건에 대하여 같은 법, 같은 논리
를
가지고 적용할 법관이 이처럼 전혀 상반된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일까, 만약 소수의
견이
잘못이라면 그런 잘못을 법관 중의 법관인 대법원의 반수에 가까운 법관이 옳다고 믿
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거기에는 어떤 잘못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래서 법현실주의자들은 종래의 기계적 법적용설에 대하여 의문을 갖고, 객관적으로
명확하고 확실한 법규범의 존재에 대하여 회의를 품게 되었다. 프랑크는
프로이트(S.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학(Psychoanalysis)을
법학에 도입하여 법적 안정성에 회의를 표명하면서 기존 법학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꾀했다. 그는 어른들이 법의 확실성을 믿는 것은, 아이들이 부모의
전지 전능의 권위를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터무니 없는 신화라고 말했다. 프랑크는 법
및 재판의 불확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형사사건 중 36개의 오판례를 들어서 오판의
원인을 분석.해설하였다. 특히 사실인정에 공정을 기하기 어려운 점을 지적하면서 미
국의
배심제도를 비판한 것은 주목된다.#19
로델(F. Rodell, 1907-80)은 오늘의 법률가는 고대의 주술사와 같다고 했고,#20
아놀드(T. Arnold, 1891-1969)는 자본주의가 신화라
하여, 모두 기존의 법학을 비판하며 새로운 법학의 길을 모색하였다.
실용주의법학과 현실주의법학은 매우 실증적인 태도를 표방하여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시켰으나, 실제로는 불가지론.회의론의 심연에 빠져버린 채 학문의 체계로서는 아
직
미완성 상태에 있다.
근대 초기 자연법사상의 영향은 미국독립선언에서 뚜렷이 표시되었다. 이러한 전통
을
계승한 것이 미국의 이상주의 법철학이다. 헤이스팅스대학의 홀(Jerome Hallm, 1901-
),
하버드대학의 론 풀러(Lon Fuller, 1902-73), 뉴욕대학의 에드몬드 칸(Edmond Cahn)
등이
대표자로 알려지고 있다. 홀 교수는
(민주사회의 살아있는 법, Living Law of Democratic Society, 1946)#21에서
통합법학(Integrative Jurisprudence)의 이론을
전개하였고, 풀러는 (법의 도덕성, The Morality of Law, 1964)#22 에서
'법의 내면적 도덕'(internal morality of law)에 관한 이론을 전개하였으며,
칸은 그의 (도덕적 판결, Moral Decision)에서 법과 도덕의 중복을 주장하면서
미국의 판결이 상업주의에 물들고 있음을 비판하였다. 롤즈의
(정의론, A Theotry of Justice, 1971)#23 도 역시 미국 이상주의 법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주19 Jerome Frank의 저서로 Law and Modern Mind(1930), Not Guilty(1957) 등이 있
다.
주20 로델(박홍규 역, 저주받으리라 법률가여, 물레, 1986).
주21 장경학 역, (민주사회의 법, 민중서관, 1957)
주22 강구진 역, (법의 도덕성, 법문사, 1972)
주23 한국에는 황경식 역, (사회정의론, 서광사, 1986) 으로 번역되어 있다.
롤즈의 논문을 묶은 책으로는 황경식 편역, (공정으로서의 정의, 서광사, 1985) ,
연구서로는 황경식, (사회주의 철학적 기초, 문학과 지성사, 1987)
(13) 비판이론과 비판철학
현대 서구사회철학에서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kritische Theorie)은 네오 마
르크시
즘을 전제로 하여, 칼 포퍼(Karl Popper, 1902-), 한스 알베르트(Hans Albert, 1921-)
가
주도하는 비판적 합리주의(critical rationalism)와 논쟁을 거듭하면서 주목을 끌고
있다.
비판이론이라는 명칭은 호르크하이머(Marx Horkheimer, 1895-1973)의
논문 (전통적 이론과 비판적 이론, Traditionelle und Kritische Theorie, 1937)에서
비롯하였다.
대표자로서는 호르크하이머 외에 아도르노(Theodor Adorno, 1903-1969),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3-1980), 하버마스 등이 있다.
비판이론은 변증법(Dialektik)을 기초로 과학의 해방적 관심(emanzipatorische Intere
sse)에
의한 지도를 주장한다. 비판이론은 분석과학과 정신과학의 불완전성을 변증법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 개별현상을 총체성에서 파악하고 기술적 인식관심과 실천적
인식관심을 해방적 인식관심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지양(Aufhebung)하려고 한다.
호르크하이머에 의하면,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적 '이론(theoria)'은 이세상의
불변하는 것, 영원히 회귀하는 것만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하여
비판이론은 반대로 가변적인 것, 일회적인 것, 그리고 이론적 과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 것까지도 해명하려고 한다. 비판이론은 하나의
전문과학이 아니라 전체성을 추구하는 하나의 철학, 더 적절히 표현하면,
역사철학이다. 전체(das Ganze)는 그 전체를 고찰하는 주체까지도 포함하지 않으면
전체가 아니다. 그 때문에 지금까지의 전통적 이론은 단순히 순수이론,
즉 단순한 가상(Schein)에 지나지 않고 전체를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참된
자연존재론이 아니다. 그리고 전통적 이론은 가능했던 존재의 관조(Schau)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회고적 관조에 그칠 뿐이며 예견적 관조(Vorschau)까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관조하는 자의 생활을 뛰어넘어 실천적
앙가쥬망(사회참여)에 의하여 성취되어야 할 것에 대한 고찰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비판이론의 기능은 '사회전체의 변혁'(Transformation des gesellschaftlichen Ganze
n)이며,
그 목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한 생활'과 같다.
행복한 생활은 사회 속에서 실천되지 않으면 안 된다. 노동에 의하여 의하여
우리가 자연을 의사에 복종시킬 수 있는
영역은 확대된다. 비판이론도 노동과정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이
노동과정은 자유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그 자유는 우리의 안과 밖에 있는
자연을 지배함을 의미한다.
비판이론이 마르크시즘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것을
추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르쿠제는 마르크스가 주장한 착취자와
피착취자의 생산관계가 사회구조와 경제구조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고 기술과
과학이, 즉 기술관료주의가 사회적 존재 전체를 규정한다고 하여, 현대
사회구조에서 기술은 새로운 형태의 지배와 인간통제를 시도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와 권리 및 인간성을 억압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상태는 혁명으로만 해결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비판이론에 관하여는 미카엘 토이니센(Michael Theunissen)이 간단하지만 함축적인 논
문을
통하여 비판하고 있다.#24 그러나 비판이론은 그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발전.전개되어 가고 있는데, 이는 부정변증법 그 자체의 논리이기도
하다. 사회체제 내에서의 인간 해방의 정당화에 주력하는 비판이론은
해석학(Hermeneutik)을 중요시함으로써 법철학과 법이론을 서로 접합 시키는 계기를
형성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비판이론에 입각한 법이론 내지 법사상은
아직도 분명히 형성된 것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무어라 더 이상 말할 수
없는 단계이지만 이 관점에 선 대표적 법철학자로는 뵐러를 들 수 있다.
1977년 미국에서 발족된 비판법학회의(Conference on Critical Leral Studies)를 공식
적
출발점으로 삼는 비판법학운동은 미국법학의 주류를 이루는 기존의 자유주의적 법관념
들을
근본에서부터 비판하고 '탈신화화'함으로써 여러 가지의 법적 문제들의
참된 모습을 드러내 보여주는 일을 기본과제로 삼고 있다.#25
비판법학은 법적 추론의 궁극적 불확정성, 가치선택에서 나타나는
'근본적 모순' 등을 지적함으로써 기존 자유주의 법관념을 비판한다. 이에
터잡아 본 법의 참모습은 기존의 질서를 정당화하는 수단이다. 비판법학은
'사회적 우연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대하여도 비판적이다.
비판법학은 아직 발전단계에 있는 이론이고 미국의 법적 상황을 나름대로
반영하고 있지만 우리가 음미해볼 대목도 적지 않다.
주24 M. Theunissen, Gesellschaft und Geschichte, Zur Kritik der kritischen
Theorie(Berlin).
주25 자세한 것은 양건, (법사회학, 민음사, 1986), 147-157면, 비판법학자들로는
던칸 케네디(Duncan Kennedy), 호르비츠(Morton Horwits), 웅거(Roberto Unger),
가벨(Peter Gabel), 클레어(Karl Klare), 고든(Robert Gorden), 튀슈넷(Mark Tushnet)
등이 있다.
4. 결론
법철학이란 어떤 완결된 이론으로 암기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법을
실천해나가면서 끈임없이 바른 법의 원리와 이론을 분석해 나가는 것이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동양인에게는 서양적 의미의 법집행이 낳는
여러 가지 문제점 때문에, 동양적 법철학, 한국적 법철학의 수립이 큰
과제로 대두된다.
3. 법사학
법사학(legal history, Rechtsgeschichte)은 인간생활을 법적측면에서 사실적,역사
적으로
고찰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법사학은 한편으로 법학의 한 분야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역사학의
한 분야를 이룬다. 이런 면에서 두 학문영역에 속하는 종합과학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지만, 그러면서도 법학이나 역사학의 광범한 영역들
가운데서 하나의 독립된 특수한 연구분야를 이룬다고 하겠다.#26
주) #26 최종고, (법사와 법사상, 박영사, 1981), 31-40면.
1. 법학으로서의 법사학
법사학은 우선 법의 현상을 사실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본래의 과제로 삼는
학문으로서 법학의 한 분야를 이룬다. 다시 말하면 한 국가 혹은 민족의
법질서와 법사상이 어떻게 생성.발전.소멸되어 왔는가를 역사적.사실적으로
분석.파악함으로써 현재의 법질서와 법사상을 입체적.동적으로 이해하고,
나아가서 미래적인 전망까지 가늠해보는 것이 법사학의 내용이요 과제이다.
법사학은 역사에서 법의 변동이 어떠한 동인에 의하여 발전적 방향으로
이끌어져 왔는가를 궁극적으로 구명하려고 한다. 따라서 법사학은 법을
살아있는 발전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보여주며, 법을 단순히
존재한 것(Gewesenes)으로서가 아니라 생성한 것(Gewordenes)으로서 파악한다.
이런점에서 법사학은 법규범학(Rechtsdogmatik)과 법정책학(Rechtspolitik) 및
기타의 밥사실학(Rechtstatsachenforschung)과 함께 법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초학문이다.
2. 역사학으로서의 법사학
광범한 역사학의 연구분야 가운데서 법사학은 한 특수사학의 장르로서
정치사.경제사.사회사.문화사.사상사 등의 분야들과 구별되면서도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독일의 법사학자 미타이스(Heinrich Mitteis)의 말을 빌면,
법사학의 방법은 역사학의 다른 분야들보다도 역사적 상호연관성을 더욱 예리하게
느끼게 한다.
법사학이란 역사적 현상으로서의 법적 기초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실제에
있어 법이라는 시각에서 본 역사학인 것이다. 미타이스는 역사학으로서의
법사학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법사학은 어떠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조건 밑에서 법규들이 생성되었는가,
그 법규가 어떻게 다시 역사적 흐름에서 반작용하였는가, 또 역사라는 것이
얼마나 자주 법의 실현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는가를 밝혀준다. 위대한
역사적 사실은 대부분이 동시에 법적 사실이기도 하다. 법사학은 어떻게
권력이 법으로 통제되는가를 가르쳐 주고, 법 그 자체는 어떠한 사람이라도
벌을 받지 않고는 거역할 수 없는 하나의 정신력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
법사학은 개인생활과 민족생활에서 작용하는 법이념의 인식을 추구하고,
그 법이념이 역사를 통하여 어떠한 걸음을 걸어 왔는가를 가르쳐 주는
동시에 개인 인격과 공동체 사이의 상호제약적 관계를 밝혀주는 것이다.#27
그러므로 법사학은 단순한 법제도만 기술하는 것이 아니고 법의 이념이
역사 속에서 실현되어 가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다룬다.
법사학이 이처럼 한편으로는 법학이요, 한편으로는 역사학이라는 양면성
내지 이중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역사학에 관심을 갖는 법학도에게는
매력적인 학문분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실제로 이러한 요구에 적합한
법사학자를 배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법학은 복잡한 법생활에
대처하기 위하여 백화난만의 실정법 분야들로 갈기갈기 나누어져 있고,
각 분야마다 유능한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고 있는데, 법학적 사고와
법률적 기술을 넘어서 역사가로서의 무장까지 요구하는 이 분야를 기피하는
열성있는 법학도를 누가 비난하겠는가! 그러나 법학이 학문으로서의 양심을
수호해 나가기 위해서는 소수라도 법사학의 성역을 지켜야 할 것이고,
그들이 법과 법학의 바른 견해오아 자세를 법학도들에게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28
주27 Mitteis, Lieberich, Deutsch Rechtsgeschichte, 12. Aufl. (1971), S. 2.
주28 Karl S. Bader, Aufgaben und Methoden des Rechtshistorikers(법사학자의 과
제와
방법), 최종고,김상용 편저, (법사학입문, 법문사, 1985), 98-116면.
3. 법사학의 연구분야
법사학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연구분야를 포괄하는 학문이다.
(1) 헌정기초의 연구
법사학의 연구대상은 첫째로 민족 및 국가의 기초적 생활질서인 헌정(Verfassung)의
역사이다. 국가의 형식을 통하여 비로소 한 민족은 형태를 취하고 충분한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법사의 측면을 연구하는 분야로
헌정사(Verfassungsgeschichte), 관제사(Beamtentumgeschichte), 그리고 합하여
공법사라고 부르는 장르들이 있다.
(2) 경제적.사회적 기초의 연구
국가의 질서는 그 자체가 또한 경제적.사회적 기초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초의 법적 형성이 결코 경제의 종속적 기능이 아니라 경제의
규범(Norm)이요, 규준이라고 보는 점에서 경제사(Wirtschaftsgeschichte)와 구별되는
법사의 관점이 있다. 경제는 원시적 수요공급의 단계를 넘어서는 한, 항상 법적으로
규제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경제와 법은 끊임없는 교호작용의 관계에
선다. 여기에서 사법사(Privatrechtsgeschichte), 즉 민법사(Zivilrechtsgeschichte),
상법사(Handelsrechtsgeschichte)와 사회법사(Sozialrechtsgeschichte)의 고유한 연구
분야가
형성된다.
(3) 사법과 형벌제도의 연구
국가의 여러 활동 가운데서 사법(Justiz)의 활동이 법사학자의 특별한 주목을 끄는
것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위법행위에 대하여는 개인이나 전체의 반응이
법의 보호의 형태로 나타난다. 여기에 형법사(Strafrachtsgeschichte) 또는
형사소송법사의 임무가 있다. 이들 소재는 단순히 법적 기술의 요소가 아니라 한
문화현상이며, 따라서 각 시대의 고유한 의미와 현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와
함께 법적 정의를 실현하는 담당기관의 제도적 변천, 즉 사법사(Rechtspflegengeschic
hte),
변호사사(Geschichte des Anwaltstandes), 공증인사(Geschichte der Notariat) 등도
빼놓을 수 없는 법사학의 연구분야이다.
(4) 법의 정신적 기초에 관한 연구
법은 제도만이 아니라, 인간의 이념이며, '가치관계적'(G. Radbruch)사항이므로, 법
사학
또한 법제도만이 아니라 법사상사(Geschichte der Rechtsgedanken)도 포함한다.
법사상사는 법철학사(Geschichte der Rechtsphilosophie)와도 관련이 있으나, 그보다
광범하게 각 시대의 법체제와 법학의 정신적 배경을 추구하는 학문영역이다.
따라서 법학사(Geschichte der Rechtswissenschaft)와 종교학사
(Religionsrechtsgeschichte)-서양에서는 교회법사(Kirchenrechtsgeschichte)-의
강한 지원을 받는다.
이상과 같이 법사학은 실정법 분야와도 직접 연결되는 각 연구분야를 갖고
있는 광범한 연구영역이다. 법사학적 방법이 정립되어야 각 실정법 분야들이
토착화되고 학문적으로 성숙되는 것이다.
4. 서양법사와 동양법사
법사학의 영역에서는 예컨대 법철학이나 법사학의 영역에서 보다 더 예리하게
서양법사니 동양법사니 하는 구분이 생기게 되는데, 그것은 물론 한학자의
역량이나 강학의 편의를 위하여 생긴 개념이다. 물론 엄격히 말하자면
법철학에서도 서양법철학이 구별되어야 하겠지만 그보다 법사학의 영역에서
더욱 분명히 구별되는 것은 사실과학으로서의 역사학의 본질에서 나오는
당연한 귀결이라 하겠다.
그러나 서양법사와 동양법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어쩔 수 없이 서양이나
동양의 지역적 제한에 종속되는 이상 양자 중 어느 한쪽을 주로 하고
다른 한쪽을 보조로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주니 보조니 하는 것도
현실적인 편의개념이요, 궁극적으로 학문의 지평에서는 공평히 지적 추구의
대상이 됨은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독일의 법사학자 바아더(Karl S. Bader) 교수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적절하다 하겠다.
모든 학문은 다른 분야에 대하여 보조학문으로 될 수 있다. 학문은 모름지기
다른 학문으로부터 요구할 뿐만 아니라 또한 스스로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학문의 본질에 속한다고 믿는다.#29
우리나라에는 법과대학 강의과목에 서양법제사.동양법제사.한국법제사가
있고, 법사상사도 서양법사상사.동양법사상사.한국법사상사로 서서히
전문화되어 가는 단계에 있다. 종래에는 법학교육이 시험위주의 실정법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제 근대법학이 수용된지 근 1세기, 해방 후
40년에 이른 단계에서 학문으로서의 법학도 성숙의 단계로 발돋움하고 있는
현상의 하나라고 하겠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법사학을 포함한 기초법학의
분야에는 연구인구와 전문학자가 현저히 부족한 실정이며, 젊은 학도들의
학문적 정열을 기대하는 미개척지로 남아 있다고 함이 솔직한 관찰일
것이다.
주29 칼 바아더, "법사학자의 과제와 방법," 최종고,김상용 편저, (법사학입문),
98-116면.
5. 법사와 사관의 문제
우리는 법사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일반적으로 역사를 보는 눈 혹은
방법을 사관이라고 부른가. 사관(conception of history, Geschichtsanschauung 혹은
Geschichtsauffassung)이란 말은 역사에 대한 견해.해석.관념.사상
등의 의미를 갖고, 때로는 역사철학 혹은 역사이론까지를 포함하며, 막연히
'역사를 보는 눈', 역사에 대한 식견 혹은 역사의식이란 광범한 의미로
사용된다.#30 역사주의사관, 실증주의사관, 식민주의사관, 기독교사관,
유물사관 등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는 안목과 방법은 수없이 많이 있고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사관들에서 볼 때 법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며, 하나의 법사철학(Philosophie der Rechtsgeschichte)을
이룬다 하겠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사관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사관 자체가 객관적 타당성을 갖는가 하는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사관이란 마치 사진기의 뷰 파인더(view-finder)와 같이 자체로서 완결되
어
있는 하나의 테두리이며 들여다 보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시야를 결정해주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사관은 주관적이며 자기 폐쇄적이다. 만일 사관이
건전한 수준과 조직적 체계를 유지하려면 타당성과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사관은 역사연구의 범위를 벗어난다. 사관은 수립자가 의도하든 않든간에
역사철학 분야에서 점차 벗어나 종교나 윤리에 관한 설교 혹은
형이상학이나 세계관의 문제 또는 정치적 선전이나 구호의 역할로
떨어지고마는 경향이 있다. 이 중에서도 특히 특정사관이 정치적
선전수단으로 쓰이게 되는 것은 정치가들이 그 야심을 합리화하는 데
역사를 차용하려고 한 경우로서 그 해독은 매우 컸다. 슈펭글러(O. Spengler, 1880-19
36)는
나치즘의 대두를 스스로 합리화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사관은 전체주의를
위한 선전용으로 이용되었고, 헤르더(J. g. Herder, 1744-1803)의 민족문화관은 히틀
러와
로젠베르크(A. Rosenberg)의 극단적인 국수주의와 인종주의를 부채질했던 것이다.
이처럼 사관은 역사 이행에 중요하면서도 경험론적 기초가 약하기 때문에 사변적이
고
추상적인 하나의 사유형식으로 되고 말 위험이 있다.
우리는 법사를 이해하는 데에 미리 어떤 사관을 전제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역사 속에서 법의 모습, 그것이 인류문화에-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어떤
측면으로 작용하는 생생한 구실을 직시하고 분석.서술하면 되는 것이다.
바람직한 것은 법사의 흐름들을 있는 그대로, 생성되는 것 그대로 보고,
여기에서 출발하여 우리 나름대로 일반화를 하여 이해해 나가는 태도이다.
어차피 역사가는 특수한 것들로부터 일반화(generalization)의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많은 탁월한 역사가들은 어떤 고정관념이나 역사관같은 것을 갖지
않은 채 훌륭한 업적을 산출해 낸다. 오히려 분석과 종합에서 일관성있고
체계적으로 되려고만 애쓰면서 자신의-어쩌면 자신만이 아는-독특한
역사성을 갖게 된다. 역사가 랑케(L. Ranke)는 역사 연구의 방법은 일차적으로는
'진실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며 궁극적으로는 외부적 현상에 끝나지 않고
본질(Wesen)과 내용(Inhalt)같은 정신적 단위(geistige Einheiten)들을 파악하는데 있
다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역사적 사건의 외적 양상들의 배후에는 하나의
전체성, 즉 통합된 정신적 실상이 있다는 것이다. 법사에서도 각국마다 시대마다
수많은 법제들이 있다가 사라지고 다시 복구되고 하는 명멸이 있다. 그렇지만 법사를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이러한 법제의 배후에 움직이는 법사의 본질과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학생들은 법사의 본질이나
눈에 보이는 확증같은 것을 너무 성급히 기대할 필요가 없으며, 착실히
공부하여 나가면 될 것이다.
주30 차하순 편, (사관이란 무엇인가, 청람사, 1984) 9면.
6. 비교법사학의 방법
위의 설명이 너무 독일법사학적인 용어와 서술을 면치 못하였지만,
궁극적으로 법사학에서 비교법사학의 사명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오늘날
법사학에서 비교법적 방법이 크게 대두되고 있음은 법사학자 코잉(Helmut Coing)이
프랑크푸르트대학 학술회에서 발표한 '법사학자의 과제'
(Aufgaben des Rechtshistoikers)#31라는 강연에서
잘 지적하고 있다. 사실 법사학에서 비교법적 방법은 자칫하면 각국의
특수한 역사적 전개를 무시하거나 단순화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1950년대까지만 해도 상당한 조심성을 보여 왔다. 레펠트(Bernhard Rehfeldt)만해도
법사학적 연구에서 비교법적 방법의 한계성을 지적했던 것이다. 그러나 바아더는
주장하기를,법사학적 비교는 스스로 커다란 위험, 즉 각 민족마다 상이한 성격의
생활로 충만한 개념들을 일반화시켜 버린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들
지적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이들은 너무 생물학적 기초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같다. 평행으로 발전하는 법제도들을 신중하게 설명함으로써 가장
가치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논란의 여지도 없다고 하였고, 미타이스
와 퀸스
베르크도 비교법사학적 방법으로 높은 성과를
이룬 학자로 꼽히고 있다. 이에 앞서 라벨이나 코올러 같은 선구적 업적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역사학의 의의와 기능은 다양하지만, 현대 역사학의
강력한 방법과 기능으로 비교법사학적인 경향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비교법사학은 사실 다른 분야, 예컨대 미술사(Kunstgeschichte)같은 분야에서 보다는
비교적 용이하고 가능성이 가능성이 넓은 분야라고 하겠다. 예를 들면
매매계약이나 소송에서의 증거제도 같은 것을 법사학적으로 각국의 법사를
비교하면 상당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여 사학적으로 큰 성과를 얻는
것이 될뿐만 아니라 현대 비교법학과도 연결되는 것이다.
라벨(Ernst Rabel, 1874-1955)#32이 이미 이런 역사적
법비교(historische Rechtsvergleichung)를 현행법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코잉은 이런 방법을 문제해결적 비교라고 부른다.
테오 마이어-말리(Theo Mayer-Maly)도 이러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비교에는 개별화적 비교(individualisierendes Vergleich)와 종합화적 비교
(synthetisches Vergleich)가 있다. 개별화적 특수성을 무시한
종합화와 일반화는 항상 무리한 오류를 가져온다. 따라서 비교법사학에서
법제도와 법현상의 평등성과 유사성은 그 원인(Ursache)과 차이(Variante)를
면밀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각 국가의 법제도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크게 세 가지 모델이 있을 수 있다. 첫째는 완전히 별개로 평행적으로
발전된 모델(Pararellentwicklung)이요, 둘째는 동일한
원인(gemeinsamer Ursprung)에 의하여 각각 발전한 모델이요, 셋째는 한 법체계가
다른 법체계에 수용된 모델이다. 이 비교의 폭이 넓을수록 비교는 힘들고
복잡해진다.
사실 유럽 법사학자들은 게르만법사.로마법사.프랑스법사.영국법사.독일법사
상호간에 상당한 양의 비교법사적 연구를 이룩해 놓았다. 언어적으로도 라틴어라는 공
동재를
소유함으로써 별반 어려움없이 행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법사 이외의 법사와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느냐 하는 아직 커다란
과제가 거의 황무지로 남아있다. 이 과제는 우선 언어문제에서 장애를 받게
되는데, 동양어를 배운 서양학자의 수가 적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법세계에
별반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결국 세계법문화의 공동과제와 학문의 세계성을
의식한 동양학자가 자기의 법전통을 존중하고 서양어로 소개하는 수밖에
없는데, 동양법률가 치고 또 이러한 관심이 있는 전문가도 많지는 않은 것같다.
서양법률서 심지어 비교법에 관한 서적에서도 한국법에 관한 언급은 눈을
닦고 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극소하거나 몇 군데 언급이 있더라도 잘못
설명하고들 있는데, 이것은 서양학자들에게 책임을 돌리기 이전에 한국
학자들이 한국법을 서양어로 발표하여 바르게 전달해야 해결될 문제이다.
주31 최종고, 김상용 편저, (법사학입문, 법문사, 1983), 117-162면.
주32 자세히는 최종고, "에른스트 라벨," (위대한 법사상가들 3, 학연사, 1985),
9-19면.
7. 법사상사의 방법
법이란 가치와 관념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는 실체이다. 따라서 법은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문화의 모든
생활관계가 일정한 규범의미로 표현된 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또한
그 사회 구성원의 규범의식을 일반적으로 법사상이라고 부른다면, 법은
법사상에 의하여 지지 혹은 비판됨으로써 발전.변동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현실의 법형서에 작용하는 법사상은 법학자나
법철학자의 법학설이나 법철학의 이론 그 자체가 아니라 그러한
법학설.법철학의 이론이 법의 형성.진화.소멸에 영향을 미치는 사상으로
구실할 때에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라고 하겠다.
법사상사란 법을 형성발전 또는 파괴시키는 사상을 역사적으로 고찰하는
법학의 한 분야이다. 따라서 그것은 법학사(Geschichte der Rechtswissenschaft)나
법철학사(Geschichte der Rechtsphilosophie)와도 다르고,
법제사(institution Rechtsgeschichte)와도 다르다.
법사상사야말로 법철학과 법사학의 접경학문으로 그만큼
미묘하면서도 중대한 사명과 매력을 가진 부야라고 할 수 있겠다.#33
법사상은 각 시대에 살아있는 법의 진정한 모습을 탐구하여야 한다. 인간의
의식을 통하여 형성되면서도 외부로 객관적으로 표현되어 시대관념으로서
법질서의 한 요인을 이루는 법사상을 그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정태적인
제도사가 되어서도 안 되고, 법철학사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양면으로의
경계는 법사상사의 연구를 실제 상당히 어렵게 만드는 면도 있다. 법학자의
학설의 배경이나 법철학자의 법철학을 법사상으로 평가하려고 해도 학설
자체의 사상성 혹은 법철학의 배경과 이념성을 정확히 구명한다는 일이
여간 어렵지 아니하다. 법사상은 법철학적 혹은 법학적 사유나 이론체계
이전의 것이므로 풍부한 역사 지식을 갖고 사료를 정확히 다룸으로써만
어느 정도 수준의 법사상에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34
주33 자세히는 최종고, (법사상사, 증보중판, 박여사, 1989), 2-11면.
주34 법사상사의 연구문헌에 관하여는 최종고, 김상용 편저,
(법사학입문, 법문사, 1984), 293-323면.
4. 법사회학
1. 법사회학의 의의
법사회학(sociology of law, Rechtssoziologie)은 법현상을 사회학적으로
연구하는 법학 내지 사회과학이다.
법사회학은 실정법 질서의 '규범'내용을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법해석과는
달리 '사실'의 문제를 다룬다. 다시 말해 같은 법현향을 인식대상으로
할지라도 법사회학에서 바라보는 법현상은 누구에게 권리가 있고 누구에게
의무가 있으며 그 권리.의무의 내용은 무엇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는
그러한 법현상이 나타나게 된 사회적 배경이나 또는 그 법현상이 사회관계에
미치는 영향 등에 주로 관심을 기울인다. 예를 들면 주택임대차라는 법현상에
대하여 법해석학은 임차인과 임대인 사이의 권리.의무관계나 주택의 소유권이
이전하는 경우 임차인의 법적 지위 등이 주된 관심사 이지만, 법사회학에서는
주택임대차의 사회적 실태나 임차인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이유, 또는
주택임대차에 관계되는 법규정이 현실적으로 어떠한 적용을 하고 있는지,
법규정 이외에 현실적으로 임대차에 관한 관습 등이 주된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또한 법사회학은 해석법학과 달리 경험과학의 일부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법사회학은 규범질서 그 자체의 인식보다는 그 규범이 사회질서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느냐에 주목하며, 다시 말해
'법전 속의 법'(law-in-book) 보다는 '현실 속의 법'(law-in-action)에 주목하며,
인식방법으로 경험과학적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므로 법사회학의 색채는 사회과학적이라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법현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법학의 일부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결국 법사회학은 법현상을 '법과 사회의 상호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연구하는
법학과 사회학의 중간분야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과학이
반드시 사회학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법사회학이라는 명칭이 마치
사회학이어야 할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학 이외에도 인류학.정치학.심리학.경제학
등의 사회과학의 여러 분야가 포괄될 수 있다. 그러므로 넓은 의미의
법사회학의 테두리 안에는 법인류학.법심리학.법정치학.법경제학 등을 포함
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학문의 경향은 점점 이런 분야들로
특수화.전문화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법사회학은 다른 기초법학의 분야에 비해 비교적 최근대에 체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기원으로 보자면 몽테스키외(Montesquieu)의 (법의 정신)을 꼽을 수
있겠으나 체계화된 오늘날의 법사회학의 모습은 뒤르깽(E. Durkheim)과
베버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법사회학은 시작은 유럽대륙이었으나 꽃을 피운 것은
미국에서였다. 1950년대 이후의 미국에서는 사회학의 발전과 미국전통의
법현실주의 운동을 토대로 하여 전세계 법사회학을 이끌어 나가게 되었다. 현재는
영미법적 또는 대륙법적 전통을 가졌느냐에 관계없이 법현상을 바라보는데 필수적
시각의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80년대에 들어 법사회학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본격적인
논의로 들어간 것은 90년대에 들어서면서였다.#35 그러나 아직은 법학내부의
인식부족과 연구인력의 부족 등으로 걸음마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볼 수 있다.
학문적으로 세계학계와 대화하기 위하여 한국의 법사회학의 필요성이
고조되고, 학생들도 법해석학만이 아니라 법사회학적 시각을 갖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35 최종고, (한국법학사, 박영사, 1991).
2. 법사회학의 경향
꽁트(A.Comte) 이후 사회학의 관심과 방법이 다양하게 발전하여 왔듯이 법사회학도
상당한 변화를 겪어 왔다. 법사회학의 접근방식이나 태도를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주의할 것은 아래의 구분은 전체적인 경향만을 파악한
것이며, 하나의 법사회학자는 대개는 한두 가지 이상의 여러 경향을 보이고
있다.#36
주36 자세히는 양건, (법사회학, 민음사, 1986).
(1) 역사주의적 경향
역사주의(historcism)적 경향은 법사상이나 법제도의 역사적 기원의 추구를
강조한다든지, 법의 진화를 역사적 산물로 보는 입장이다. 법의 발달 또는 진화는
사회세력들의 작용(예컨대 사회의 발달 또는 진화)의 결과이지 계획의 산물은
아니라는 무언의 전제를 가지고 있다. 메인(H. Maine)의 (고대법, Ancient Law),
홈즈의 (보통법,Common Law),
뒤르깽의 (사회분업론, Division of Labor in Society))에서 보여준 사회진화와
법분류의 관련성, 베버가 (법사회학, Rechtssoziologie)에서 보여준 역사적
설명 등이 그 예이다. 유물사관의 입장에서
마르크스가 법현상에 관하여 설명한 방법도 역사주의적 입장일 것이다.
그리고 사회형태와 관련 속에서 파악된 관습법(Customary or interactional law),
관료 또는 규제법(bureaucratic or regulatory law), 법질서
또는 법체계(legal system)가 각각 등장하게 된
역사적 조건 특히 서양 근대법의 등장의
역사적 조건을 논하는 웅거(R. Unger)의 이론도 역사주의적 경향으로
볼 수 있다.#37
주37 자세히는 최종고, (법사상사, 박영사, 1992).
(2) 법의 수단성을 강조하는 경향
법의 목적에 대한 수단으로서 기능을 중시하여 법은 일정한 사회적 목적에
비추어 평가할 것을 주장한 벤담과 예링 그리고 파운드의 입장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수단론의 입장에서는 법은 실제로 무엇이며 무엇을 하는지를 살피게
되고, 나아가 사회적 지식을 '법'에 주입시킨다. 왜냐하면 법이 수단이라면
변화하는 사회사정에 비추어 해석하고 개정도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프록레타리아 독재나 공산사회의 건설을 위한 법의
수단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경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제 3세계에 속하는 나라의 근대화나 경제개발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예외없이
법을 그러한 목적을 위한 중요한 수단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고, 나아가
계획된 사회변화(planned social change)를 말하는 사람들도
거의가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3) 반형식주의적 경향
반형식주의(antiformalism)의 경향은 전통적인 법학이 중시하는 형식적인
법규정이나 원칙이
가지게 마련인 비현실성.비실제성에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법규범이란 결국 사람이 시행하는 까닭에 법과 현실 사이에는 틈이
존재하게 마련인데, 전통적 법학은 이 틈을 설명해 주는 역사적.사회적.문화적
요인을 보지 못한다. 그러한 까닭에 현실을 왜곡하고 법에 대하여 지나친
권위를 부여하며 나아가 사회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반형식주의적 경향은 형식적 법제도와는 별개로 생동하는 사회적 세력과
사회조직에 눈을 돌린다. 반형식주의의 대표적인 예는 에를리히의
'살아 있는 법'(das lebende Recht)에 대한 논의와 미국의 법현실주의자들을
들 수 있으나
대개의 법사회학자들은 이러한 경향을 거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38
주38 E. 에를리히, 장경학 역, (법률사회학의 기초이론, 원기사, 1955).
(4) 다원주의적 경향
다원주의(Pluralism)의 경향은 국가가 제정한 법에 대한 일정한 회의와 함께 법의
궁극적인 연원을 사회에서 찾는 특징을 보여 준다. 법은 국가에 의해서만
생성되는 것이 아니고 관습과 사회조직 속의 어디에나 존재하며, 따라서
단체생활의 규칙성 속에서 '살아 있는 법'을 발견한다. 에를리히에 따르면
법전의 법은 재판규범에 불과하고, '살아 있는 법'은 단체의 내부질서 속에
존재한다.이러한 경향은 기르케(O. Gierke)의 단체법(Genossenschaftsrecht)의
연구에도 어느 정도 드러난다. 이같은
다원주의적 경향은 법인류학자들 사이에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보하나(Bohannan)의
'이중제도화'(double institutionalization), 포스피실(Pospisil)의
'법률적 수준과 법체계의 다층성' 등의 논의가
그것이다.#39
주39 L. 포스피실, 이문용 역, (법인류학, 민음사, 1992).
3. 법사회학의 연구방법
다른 사회과학의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법현상에 관한 사회과학으로서의
법사회학 역시 그 연구방법이 다양하다. 법사회학의 연구방법은 우선 일반적인
이론연구와 개별적인 조사연구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종래 주류를 이루던
것은 개별적인 조사연구였으나 1970년대 이후에는 일반적인 이론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40
법사회학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방식은 일반적인 사회학과 마찬가지로
경험주의적 방법론에 따른다. 즉 경험에 근거하여 여러 사실을 관찰하고
관찰된 사실을 정리, 여기에 기초하여 경험적 사실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가설을 설정하고 이를 경험적 사실을 통해 검증하며, 이러한 절차를 통해서
보편적인 경험법칠을 발견해 가는 것이다. 법사회학 연구의 주류를 차지하는
경험주의적인 개별적 조사연구의 방법은
'법사실조사'(Rechtstatsachenforschung)라고 불리기도 한다.
법사실조사 가운데에서도 특히 법규범과 법현실 사이의 괴리에 주목하여
법현실에 대한 경험적 조사를 행하는 것이 법사회학 연구의 대명사처럼
불리어진다. 구체적인 법사실조사의 방법에는 면접, 설문지에 의한 조사,
참여관찰.비참여관찰, 문서분석, 사례조사, 통계조사 등이 있다. 개개의
방법은 각자의 장점과 한계가 있기 때문에 조사하려는 법현실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하여 거기에 알맞은 방법으로 조사에 임해야 한다.
최근에는 경험주의적 방법론에 대한 비판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법사회학 연구가 법규범과 법현실의 괴리현상만을 드러내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조건지우는 사회경제적.문화적.이데올로기적 요인과의 관련을
함께 고찰해야 한다는 반성에서 비롯된다. 특히 법과 사회의 역사적
상화에까지 분석을 심화해야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경향은 자칫 미시적인 법현상의 관찰.분석에 매몰되기 쉬운 경험주의적
방법론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며, 미시적 고찰의 토대 위에서
거시이론의 형성을 시도할 수 있게 해준다. 반대로 거시이론을 부분적으로
증명하는 데 경험주의적인 미시적 관찰이 효과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
주40 자세히는 양건, (법사회학, 민음사, 1986).
4. 법의 사회학적 인식
법사회학은 전통적인 법학(해석법학)과는 달리 법을 사회적 문맥(social context)에
서
파악한다. 법을 사회적 문맥에서 파악할 때, 무엇이 법으로 파악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법은 여러 '사회관계' 가운데에서 어떻게 표현되는가?
이 문제는 법현상이 어떠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느냐를 보는 것으로
법사회학의 인식대상이 되는 법현상이 무엇을 말하느냐의 문제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법의 표현방식은 성문법규이다. 그러나
법사회학은 반드시 성문법규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의 구성원이 실제로
'법'이라고 인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관심을 기울인다.
우리가 한 문화의 법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데에는 세 가지의 주요한 길이
있다.
첫째로 '추상적인 규칙'으로서의 법으로, 오늘날 법전 편찬, 즉 성문법규의
주된 내용을 이루고 있다. 추상적인 규칙이 반드시 문자로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 문자를 갖지 않은 사회(그러므로 성문법규를 가질 수 없는
사회)에서도 지식이 있는 사람들의 마음 속 창고에는 일련의 말로서 나타낼
수 있는 전범(ideals)이 발견되고 있다. 이 전범은 개개의 사건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추상적인 규칙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한다"라는
것으로 표현된다.
둘째로 한 사회의 구성원들이 실제적인 행위의 유형들로 파악된 법이다.
흔히 '관습'이나 '살아 있는 법'으로 불리어지는 것을 말한다. 살아 있는
법이 의미 있는 것은 사회구성원이 성문법규를 무시하고 자기 집단의
행동규칙을 따를 때이다. 경우에 따라 사회구성원은 살아 있는 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셋째로는 집단 안에서의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내려진 법적인 권위자들의
결정으로부터 추출된 원리들로 파악된 법이다. 분쟁이 하나하나 해결되면서
개개의 분쟁해결의 결과가 있게 되는데, 그 결정이 법적 권위자에 의해서
내려진 것이라면 지난번 분쟁과 유사한 분쟁에서는 그 권위자는 같은 결론을
내리려고 할 것이다. 이렇게 분쟁과 결정이 반복되면서 이러한 분쟁은
이렇게 해결된다는 식의 원리가 추출되고 사회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영미의
보통법이 바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오늘날의 법체계를 이룩하였다.
그리고 대륙법적 전통에서도 판례법의 형성이 이러한 과정을 거친다.
대부분의 법사회학자 또는 사회과학자들은 이러한 세 가지의 방식으로
법의 형식을 파악한다. 물론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은 법의 표현(또는 형식)을 파악하는 세 가지의
가능한 길이라고 할 수 있다.
5. 법과 사회의 상호작용
(1) 사회변화와 법의 변화
법사회학의 가장 중요한 연구대상은 법이 사회의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일이다. 사회변화(social change)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농촌사회에서
도시사회로,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신분사회에서 평등사회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법현상도 크게는 사회현상의 일부분이라고 본다면 사회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보는 것은 사회변화를 독립변수로 보고 법을
종속변수로 보는 입장이다. 그러므로 법의 변화(legal change)는
사회변화에 종속해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전통적인
농촌사회의 법과 오늘날의 현대화.도시화.산업화된 사회의 법과 분명히 다르게 파악될
것이다.
사회변화의 종속변수로 법을 바라볼 때, 중요한 것은 사회변화에 법이
어떠한 영향을 받았느냐가 될 것이다. 특히 전근대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변화에서 법이 어떠한 변화를 보이느냐가 주된 탐구대상이 된다. 베버가
말하는 실질적 합리적인 법에서 형식적 합리적인 법으로의 변화, 뒤르깽이
말하는 기계적 연대에서 유기적 연대로의 변화,노네-셀즈닉(Nonet and Selznick)이 말
하는
억압적 법에서 자율적 법, 그리고 응답적 법에로의 변화 등이 이러한 논의의
중요한 예가 될 것이다.#41
법을 사회변하의 종속되는 현상으로 보게 되면, 법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회현상을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는 명제가 도출된다. 그러므로
그 사회에서 법이 자리잡고 있는 독특한 현상인
'법문화'(legal culture, Rechtskultur)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법문화에 대
한
이해는 똑같은 법이 각 사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해 준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고유법이 아니라
외국법(특히 독일법)을 계수하여 법체계를 형성하고 있는 경우에는 법문화의
고려가 법의 해석.적용과 법제도의 운영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된다.#42 어떤 특정한 법제도는 그것이 형성된 사회의 독특한 법문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서양사회 나름의 사회.문화적인 배경이 제거된 채
우리나라에 법규정만 도입한다고 할 때, 배후에서 작용하는 법문화는
서양의 그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법문화가 작용하게 될 것이므로 그
법제도가 원래 의도하는 결과가 현실적으로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법문화에 대한 이해는 비교문화론적 시각을 넘어서
수용된 법제도가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43
주41 자세히는 본서 제 12장 (법의 변동), 161-186면 참조.
주42 최종고, (한국의 서양법수용사, 박영사, 1981).
주43 E. Hirsch, Rezeption als sozialer Prozeb, Berlin, 1981.
(2) 법을 통한 사회변화
법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파악할 때, 법을 독립변수로 사회현상을 종속변수로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는 시각은 법제도로 인해서 어떠한 사회변화가
일어나느냐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다. 법이 사회변화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특히 근대화론과 같이 법에 대하여 수단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강조되고 있다. 법을 사회변화의 단순한 부산물이 아니라 사회변화에 영향을
주고 나아가 사회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고 보기도 한다.
흔히 개혁이나 변혁을 주장하는 사회세력이 무엇보다도 법의 변화를 먼저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위체계로서의 법체계가 전체 사회체계에 대하여 미치는 영향 또는 작용을
법의 사회적 기능이라 부를 수 있다. 이것은 법체계가 사회의 요구에 응하여
낳는 개개의 산출들을 일반적으로 총칭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법의 기능은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로 사회통제(social control)의 기능이다. 사회통제란 개인이나
하위집단이 상위집단의
기대에 일치하는 행동을 하도록 영향받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회통제의 수단에는 여러 유형이 있으며 법은 그 중에 하나인데, 법이
사회통제의 수단으로서 가지는 특징은 제재(sanction)를 수반한다는 데 있다.
형법규정을 집행하는 과정이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나 법의 사회통제 기능은
반드시 법의 집행을 통한 경우에 국한되지 않으며, 일정한 규범에 따르도록
설득하고 교육하는 기능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예컨대 법정에 끌려온
절도범은 단지 법의 집행을 통하여 통제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둘째, 분쟁해결(dispute settlement)의 기능이다. 사회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갈등이나 분쟁에
대하여 법체계는 최종적이고 종국적인 해결을 내린다. 법에 의한 분쟁해결이
종국적인 것은 법체계에 의한 결정은 그 실현이 국가에 의해서 강제되고
분쟁당사자나 국가가 그 결정을 법이 예정하고 있는 예외가 아닌 이상
임의로 뒤집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재판에 의한 분쟁해결이 법에 의한
분쟁해결의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44 그러나 사회의 갈등.분쟁이
반드시 법체계를 통한 해결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재판제도가 가지는
단점(가령 오랜 시간, 많은 비용, yes or no식의 문제해결) 때문에, 최근에
와서는 조정(conciliation)이나 중재(arbitration)와 같은 재판 이외의
분쟁해결(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또는 협상(negotiation)과 같은
분쟁해결 방식이 주목되고 있다.#45
셋째, 한 사회에서의 여러 가치를 분배하는 배분적 기능이다. 특히 이러한
가치배분이 일정한 사회변화의 도구로서 작용할 때 이를 혁신적(innovative)
기능이라 부르기도 한다. 법의 가치배분적 기능은 사회통제나 분쟁해결과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바로 사회통제, 분쟁해결 그것을 통해 수행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법의 여러 가지 사회기능들을 한마디 줄인다면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의
기능이라 부를 수 있다. 사회학자들은 여러가지로 사회통합을 설명하지만
법의 기능을 빼고 사회통합을 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44 황승흠, 우리 사회의 분쟁해결에 있어 법의 기능 : 의료분쟁을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법학석사학위논문(1992).
주45 Linda Lewis, Disputes, 1989 ; 린다 루이스, 박찬우 역, 갈등해결의 제도,
(한국의 정치갈등, 한배호, 박찬욱 공편, 법문사, 1992), 135-158면).
6. 법사회학과 비교법학
어느 사회의 법을 법사회학적으로 생생하고 바르게 파악하기 위하여는 다른
사회와 법체계와의 비교를 행하여야 함은 자연스런 일이다. 비교법학은
150년 전 포이엘바흐(A. Feruerbach)에서부터 시작하여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현대에는 법해석과의 관련에서만이 아니라 법사회학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발전되고
있다.#46 비교법학은 독자적 학문영역이라기보다는 법학연구의 방법이라고
파악되고 있다. 각 분야에 걸친 비교법학적 안목으로 새로운 법학연구가
전세계적 스케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 법하계의 현상이라고
하겠다.#47
(세계 비교법백과 사전,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Comparative Law0)이
1983년부터 17권으로 계획되어 출간되고 있다. 비교법학에서는 수용된 법제도라 하더
라도
점점 당해 사회에서 토착화(indegenization)되고 생황화(contextualization)되는
사실을 중요시항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법사회학적 연구의 대상이 되고, 비교법학이
법사회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 필요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비교에는 미시적
법비교
(Mikrovergleichung)와 거시적 법비교(Makrovergleichung)가 있다. 미크로
법비교는 각국법에서의 제도들(계약.혼인.형벌 등)을 비교하는데, 마크로는
법의 정치적.윤리적.종교적.사회문화적 배경을 감안하여 보다 폭넓은
법문화의 비교를 지향한다. 비교에도 형식적 비교, 기능적 비교,
해석학적 비교, 입법적 비교, 체계적 비교, 역사적 비교들이 있다. 이 모든
방법들이 법사회학 연구에 도움을 준다.
주46 M. Rehbinder, V.Drobnig(Hrg.), Rechtssoziologie und
Rechtsvergleichung, (1985).
주47 R. Schlesinger, Comparative Law, 5th ed. (1988) ; K. Zweigert,
H. Kotz, Einfuhrung in die Rechtsvergleichung, (1971).
7. 법사회학의 응용
사실 따지고 보면 법사회학이란 그렇게 고답적이거나 추상적인 이론연구가
아니고 사회현상을 생동감 있게 접근하여 조사하는 연구방법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법사회학에 관심있는 사람은 책상 앞에
앉아 이론을 캐기보다는 발로 뛰고 현장을 사랑하여야 한다. 이렇게 얻은
산 지식이야말로 자칫 도그마화한 법이론이 가진 허구성을 폭로하고
법갱신의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법사회학적 연구의 토대 위에서 바른
입법이 가능하고, 법해석과 판결이 정당한 방향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회를 살면서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법사회학적 안목을 가지는 만큼 바르게 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충청도와 어느 지방에서는 향약을 현대화하여 실시하고 있다는
신문ⅷ도가 났느데, 법사회학적 관심을 가진 학생이라면 방학 때나 주말을
이용하여 직접 그 마을에 가서 현대사회에 왜 향약을 다시 재현시키는지,
그 결과가 어떤 긍정적.부정적 현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조사해 보아야 할
것이다. 법률가들은 대체로 이처럼 현장에 뛰어다니기를 싫어하고 모든
것을 머리로 판단하려 하는 버릇이 있지만, 법사회학은 결코 안이한
자세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피와 힘과 시간, 돈이 투입되어야만
결과가 나오는 연구이다. 개인이 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기관이나
단체가 행해야 할 면도 있고, 이를 위해 국가예산이나 기업체의 지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48 아무리 서양식 법제도와 법이론을 실시하려 해도
한국인의 법의식과 법문화를 바르게 파악하지 않으면 '모래 위에 집짓기'가
되고 말 것이다.
주48 근년 한국법제연구원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에서 행한 국번법의식조사와
각종 법률관계 여론조사 등이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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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문제)
1. 기초법학이란 무엇인가?
2. 법철학은 어떤 학문이며 왜 필요한가?
3. 법사학의 내용은 무엇인가?
4. 법제사와 법사상사의 방법을 논하라.
5. 법사회학의 방법은 어떠한 것인가?
6. 기초법학과 실정법학의 관계를 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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