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Study 2/법학 통론

제 12장 법의 변동

by FraisGout 2020. 5. 13.

법은 안정되어야 하지만 결코 정지되어서는 안 된다. -파운드(R. Pound)

처음에 법철학의 변화가 있었고 나중에 혁명이 있었다. -라드브루흐(G. Radbruch)

1. 서론

지금까지 주로 법의 규범적 측면을 많이 논해왔지만, 법은 당위적 규범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작용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로서의 법은 여

가지 요인과 사정에 따라서 변화한다. 이러한 법의 변동(dynamics)의 면모, 즉 그 생

,

발전,

쇠퇴, 소멸의 과정에 사실적으로 접근하는 분야가 법사학, 법사회학 등이다. 이에 대

하여는

'기초법학'에서 상론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법의 변동에 큰 요인을 이루는 정치,

,

혁명, 발전의 문제를 요점중심으로 다루어 보자.

 

2. 법과 사회력

법규범은 일반적으로 고정적이고 보수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추상

적이고

일반적인 형식으로 제정되는 입법(법률)은 사회에 다소 변동이 생기더라도 충분히 이

대응할 수 있는 탄력성을 갖기 때문에 쉽사리 개폐되지 않는 지속성을 자체 안에 가지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법전'(1804)이 많은 수정을 받아가면서도 1세기 반의 생명

력을

유지해오고 있음이 좋은 예가 된다. 만약 법이 입법자의 자의로 '조령모개'된다면 법

관이나

일반인은 법을 준수할 수 없을 것이며 사회질서와 법적 안정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실정법의 규정은 사회경제 사정에 다소 변동이 생기더라도 곧 이에 따라 변경될 수는

없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법의 작용을 살리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법의 고정성이나 탄력성에도 한계가 있다. 사회의 새로운 진전에 적응하지

않는

낡은 법률도 법률도 법이기 때문에 지킬 것을 강요한다면, 그 결과는 사회생활을 해칠

아니라 법 자체의 권위를 떨어뜨리고 준법정신을 확보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 보통의

경우에는 일반적, 추상적인 법규는 법의 해석과정을 통하여 유동적인 사회현실에

맞추어 나갈 수 있으나, 법과 사회현실의 간격이 한층 확대되면 무리한 법규의 준수를

강요당하는 피치자쪽으로부터 당연히 저항을 받게 된다. 이와 같은 저항이 소극적으로

나타날 때에는 법의 경시나 탈법행위로 되고, 적극적으로 표현되면 극단적인 경우 법

체제

전체를 뒤엎는 혁명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물론 수 없는 비극과 희생을 지불하는 혁명

보다도

법질서 자체가 끊임없는 사회진화에 대응함으로써 언제나 정의와 구체적 타당성을 실

현해 갈

수 있다면 가장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

그러자면 지배자가 현명해야 한다거나 여론이 건전해야 하는 것 외에 무엇보다도 정

치체제

자체가 독재적인 자의나 부당한 이해에 의하여 왜곡되지 않는 공정성과 풍부한 탄력성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근대 민주주의의 정치기구, 특히 국민대표제에 입각한 입법부

법체제 전체의 탄력성을 될 수 있는 한 보장할 수 있도록 고안된 역사적 소산이다.

라서

근대법의 변동은 입법부의 활동에 의한 평화적 변천을 원칙으로 한다.

법의 변동을 가져 오게 하는 것은 무엇이며, 낡은 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법을 만드

원동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종전에는 시대정신(Zeitgeist)이라든가 사회적 요구라고

하는

막연한 이름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사회력'(social forces, soziale Mach

t)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층 더 깊이 분석하면 사회력이라고 하는 말의 내용을

일의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이 있다. 즉 어떤 경우에는 군사력이나 정치력

,

어떤 경우에는 사상의 힘이, 또 어떤 경우에는 경제력이 법의 변동을 촉구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따라서 법을 만들고 움직이고 파괴하는 원동력을 역사적으로

규정하고도 구체적 현실을 보지 않는 경우에는 독단적 편견에 빠질 위험이 있다. 그러

므로

법의 변동을 추진하는 것이나 법을 움직이는 것을 탐구하기 위하여는 역사적인 구체적

조건들을 분석하고 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법의 변동요인을 탐구하려면 정치, 경제, 사상 등의 여러 영역에 깊이 파고 들어가

안으면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법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방법, 나아가서는 세계

관과

역사관, 그리고 인생관의 차이에 의한 관찰방법에 따라 해석이 매우 다르게 나올 수

있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특정한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배제하고 구체적 조

건들을

역사적, 기능적으로 고찰하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에서 볼 때 법의 변동

일정한 역사적 조건 밑에서 정치, 경제, 사상 등의 요인들이 각기 특유한 역할을 하면

이루어져 나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법변동의 궁극적 원인(causa finalis)

탐구하기 위하여는 구체적 조건 밑에서 상호작용하는 여러가지 힘의 동태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아래에서는 법의 변동요인으로 가장 큰 정치, 경제, 혁명의

문제를

분석해 보고, 법과 발전의 문제를 고찰해 보고자 한다.

 

3. 법과 정치

법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정치생활도 규제한다. 즉 법은

정치와

함께 국민을 복종케 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시키려고 한다.

그런데 법과 정치 둘 중에 법이 우위에 있느냐 또는 정치가 우위에 있느냐 하는 문

제가

제기된다. 법의 우위를 주장하는 것이 법치주의인데, 이에 의하면 아무리 법이 정치에

발생하였다고 하더라도 정치는 그 법의 구속을 피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데 정치가

법에

구속된다는 것은 바로 국가도 구속된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이다. 여기에서 법치주의는

민주주의와 통하며, 치자와 피치자는 동일체가 된다. 법에 의하지 않는 정치는 불법이

,

법에 의하지 않는 권력은 폭력이 된다. 이에 반하여 정치주의에 의하면, 법은 어디까

지나

정치의 수단에 불과하여야 하고 정치가 법의 구속을 받아서는 안 되며, 법이 정치에

추종하여야 한다고 한다. 즉 이런 논리는 법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고, 정치의 만능을

믿어서

모든 것을 조작(manipulation)하면 된다는 독재주의 사상을 이끌어 내게 된다.

법이 정치의 우위에 있음으로써 정치가 법의 규범에 의하여 움직이는 질서있는 사회

아래서만 법과 정치가 일치될 것이며, 통일성과 안정성이 확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

므로

정치는 어디까지나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며, 법에 의하지 않는 정치란 그

것이

아무리 국민복지를 위한 선의의 정치라고 하더라도 진정한 민주정치라고는 할 수 없고

주권재민의 근본이념도 잘못 해석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정치와 법치는 본질적으로 긴장관계이면서, 서로 협력해야 할 관계하고

것이다. 정치에서는 또한 정치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한데, 라드브루흐가 1931년 독일

헌법기념일에 국회연설에서 말한 다음과 같은 표현은 깊은 시사를 주는 바 있다.

정치적 지도자란 그때그때의 상황을 편견없이, 경직한 강령의 깨어진 안경을 통하여

보지

아니하는 자를 말한다. 정치적 지도자란 누군가가 그에 대하여 "저 사람이 믿는 것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을 찾아야 하며,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너희들은 아직도 나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학의 정신'

,

4(종로서적, 1986), 55.)

 

4. 법과 경제

'법과 정치'에 못지 않게 '법과 경제'도 간단치 않은 문제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가지

접근방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하나는 역사적 유물론 내지 유물사관(materialistische Geschichtsauffassung,

historical materialism)이다. 우선 칼 마르크스의 말을 직접 들어보기로 한다.

인간들이 영위하고 있는 사회적 생산에서 그들은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자기들의

의지와는

독립된 특정의 제관계 속에 들어간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한다. 이것이 실제적 기초인바, 이 기초 위에 하나의 법률적 및 정치적 상부구조

세워지고 또한 이 기초에 대응하여 일정한 제사회의식의 형태가 존재하게 된다. 물질

생활의 생산양식이 사회적, 정치적 및 정신적 생활과정 일반을 제약한다. 인간의 의식

규정하는 것이다. 사회의 물질적 생산제력이 일정한 발전단계에 이를 경우, 이 때의

생산제력은 기존의 생산제관계 및 그 법률적 표현에 불과한 소유관계 - 이것들은 다름

아닌

생산제력 내부에서 이제까지 운동해온 것이지만 - 와 모순되기에 이른다. 생산력의

발전형태들로부터 이러한 생산관계는 생산을 구속하는 질곡으로 변한다. 이리하여 하

나의

사회혁명의 시기가 도래한다. 경제적 기초의 변화와 더불어 거대한 상부구조 전체가

다소간

급격하게 변혁된다.(마르크스/김호균 역, "정치경제학 비판에 부쳐", '경제학노트'

(이론과

실천, 1988), 11.)

이처럼 마르크스는 경제에 우선적 의미를 부여하고, 법 자체를 본질적인 실체로 파

악하는

견해, 즉 법물신주의(fetishism of law)를 비판한다. "법은 종교와 같이 독자적인 역

사를

가지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방법은 오랫동안 경제결정론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는데, 마르크스의 참 의도는 물질적, 경제적 토대야말로 역사와 사회에 대한 객관

,

과학적 인식을 가능하게 하는 제1의 소재임을 밝히는 데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인간

은 그가

놓인 객관적 상황을 왜곡없이 똑바로 인식할 때 올바르게 실천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르크스는 인간의 주체성을 제대로 확보하기 위한 '과학적'전제로서 사적 유물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경제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겔스가

'반뒤링'(Anti-During)에서 사회주의 사회의 도래로 국가와 법은 고사하리라고 말한

것도

'선언'의 의미 이상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마르크스주의 법이론을 확립하는 일은 마

르크스

이후의 '후계자'들에게 맡겨졌고, 지금까지도 논란이 많다.(콜린즈/홍준형 역, '마르

크스주의와

'(한올, 1986) ; 양건, '법사회학'(민음사, 1986), 135-147

; 조성민 편역, '자본주의국가와 법이론'(태백, 1987) ; 케인헌트 편/ 민주주의법학

연구회역,

'맑스와 엥겔스는 법을 어떻게 보았는가?'(, 1991).)

 

오늘날까지의 역사와 현실은 법과 경제에 관한 마르크스의 명제에 몇 가지 한계가

있음을

밝혀 주었다. 토대/상부구조의 비유에는 그 메커니즘에 관한 상세한 논증이 부족하고,

미래에

대한 마르크스의 예측도 다소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는듯이 보인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우리들에게 일깨워준 교훈, 즉 법의 물질적 기초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 내지 근본성은

결코

버릴 수 없는 유산이다.

우리가 비록 사적 유물론의 모든 명제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삶이

물질적으로 조건지워져 있다는 역사인식과, 경제적 불평등은 극복되어져야 한다는 문

제제기

만은 늘 경청할 가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한 사회의 법과 경제의 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으로 사적 유물론을 채용하는 데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다만 그

한계를

바르게 인식하고 법의 기능에 대한 합당한 자리매김을 할 수 있으면 될 것이다.

생각건대 법과 경제 모두 인간의 사회생활에 필요하다. 사적 유물론이 재기한 경제

선차성에 대한 강조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법과 경제는 서로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발전한다고 파악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다른 하나의 접근방법은 미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법에 대한 경제학적

분석'(economics analysis of law)내지 법경제학이다.(Kuperberg & Beitz(ed.), Law,

Economics, and Philosophy: a Critical Introduction,

with Applications to the Law od Torts(Rowman & Allanheld, 1983); 폴린스키/송상현

정상조역,

; '법경제학입문'(경문사, 1984).)

 

이 방법의 창시자는 코어스(Ronald

H. Coase), 1960년에 발표된 '사회비용의 문제'(The Problem of Social Cost)는 법

에서

효율성(efficiency)의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논문이다. 여기서는 사적 유물론과는

다른

뜻에서 법의 독자적 의미가 과소평가된다.

예컨대 코어스의 공식(Coase's theorem)은 효율성을 가늠하는 데에 법이 관여할 영

역이

그리 크지 않음을 주장하고 있다. 이후 포스너(R. Posner)등에 의하여 발전한 법경제

학도 이

효율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법경제학을 둘러싼 논의의 핵심

효율이 과연 모든 법영역을 위하여 타당한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정의를

대신할만한 척도가 될 수 있는가로 모아지는 듯하다.(자세히는 박세일, 미국에서의 법

경제학의

연구동향, '법학', 252,3, 1984.)

 

5. 법과 혁명

혁명((revolution)이란 정치체제나 법질서가 실력에 의하여 급격하고 근본적인 변혁

하는

것을 말한다. 혁명은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않는 기본질서의 변혁으로서 보통 비합법

적인

폭력적 수단의 발동으로 행하여진다. 따라서 폭력을 행사하지 않고 적법하게 법을 개

혁하는

개혁(reform) 혹은 점진적 진보(evolution)와 의미를 달리한다.

본래의 혁명과 비슷하나 다른 것으로는 '쿠데타'(coup d'etat)가 있다. 쿠데타는

비합법적인

폭력수단에 의한 정치적 변혁인 점에서는 혁명과 유사하나, 정치체제 또는 지배권력

자체의 변혁이 아니고 지배층 내무에서의 권력의 상대적 이동에 그치는 점에서 본래의

혁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또 혁명은 피치자층에 의한, 밑으로부터의 지배관계나

통치체제의

변혁인 데 대하여, 쿠데타는 위로부터의 혁명이라고 불리우는 바와 같이 정치의

기본조직이나 체제에는 변함이 없이 통치기관이나 지배권자의 비합법적인 교체가 행하

여질

뿐이다.

혁명의 본래 유형은 법질서의 기본체제의 변혁으로서 법을 만들어내는

최고연원(헌법제정권력)의 변혁에서 구하여진다. 봉건적 신분지배나 절대군주제를 타

파한

근대 시민혁명이나 자본주의의 사적소유제도를 철폐한 현대의 사회주의혁명 등은 정치

사회의

기본조직과 헌법제정권의 소재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은 대표적인 혁명들이다.

혁명은 구법질서에 대한 가장 급격하고 극단적인 도전이요 파괴이다. 즉 제헌권이

지배자로부터 피치자에게로 서서히 이행하는 개량과는 달리 기존의 체제를 뿌리째 뒤

집어

놓은 것을 의미한다. 혁명에 성공한 세력은 전적으로 새로운 이념에 의하여 새로운 체

제를

구축하게 된다. 거기에는 구법질서의 철저한 파괴가 따른다. 무혈혁명이라 할지라도

실력에

의한 비합법적인 법의 파괴가 행하여지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따라서 혁명은 기존

법질서에 의한다면 위법성을 그 자체 속에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법을 파괴하는

비합법적인 힘은 기존 실정법의 관점에서는 불법, 혹은 위법의 낙인이 찍혀도 그것이

동시에

부정당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이다.

혁명은 대개 기성질서의 부패에 대하여 새로운 정의의 깃발을 들고 변혁을 단행한

.

그것은 한편으로는 지배권력에 대한 신흥세력의 실력투쟁인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정당성을 둘러싼 이념의 투쟁이다. 구지배질서가 실정법의 내재적 정의에 비추어 법을

파괴하는 실력을 불법이라고 단속하며, 새로운 질서를 지향하는 혁명세력은 그 탄압을

실정법의 초월적 정의의 관점에서 부정이라고 비판할 것이다. 혁명은 단지 가치이념의

대립이나 이데올로기의 투쟁에 그치지 않고, 동시에 실력의 투쟁이다. 지배권력이나

실정법규의 처지에서는 혁명이 최대의 불법이요 반역이다. 권력이 가지고 있는 물리적

강제수단으로 이것을 탄압하는 것도 한편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권력의 위협과 억압에 눌려있는 혁명세력이 비합법적인 대항수단으로서 권력에 대항하

극한적인 무력투쟁을 기도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인간의 평등이나

피치자의 해방이 낡은 지배관계의 타파를 요구할 때 혁명은 새로운 건설을 의미한다.

자연법의 관점에서 혁명권을 인정하려는 견해는 고루한 지배질서를 타파하고 자유와

정의를

세우려는, 실정법을 초월한 자연권을 승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존 실정법의 견지에서 혁명을 단죄할 것인가, 미래사회의 관점에 비추어 혁명권

정당한

것으로 볼 것인가 하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혁명이 어떠한 조건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가 하는 문제이다. 혁명이 일어나는 것은 기존의 법질서가 구체적 타당성을

상실하고 그 정당성에 대한 밑으로부터의 인정이 없어진 때문이다. 법질서가 고루한

정화현상을 일으켜 그 부패에도 불구하고 밑으로부터의 비판이나 여론에 귀를 기울이

지 않고

오직 권력이나 억압에 의존하여 스스로를 유지하려고 할 때에 위기적인 조건이 가하여

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혁명이 간단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민의를 끊임없이

입법부에서 반영시키도록 조직된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탄력적인 기구들이 건전하게

움직여가는 한 혁명은 일어나기 어렵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민주적인 기구가 민의나

여론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때에는 법의 평화적 변천은 불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법과 혁명의 관계는 실로 한마디로 뭐라 하기 어려운 주제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지면 역적이요, 이기면 공신'이라는 말이 있듯이, 혁명에 실패하면 국

가전복

내지 내란의 죄이므로 중벌을 면치 못하지만, 혁명에 성공하면 새로운 법을 창조하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자세히는 심헌섭, "법과 힘", '법철학'(법문사, 1983), 137-162.)

 

7. 법의 발전

법은 발전하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리라고 대답할 것이다.

왜냐하면

소박하게나마 법을 인간의 사회생활을 규율하는 규범이라고 볼 때 고대나 중세, 근세

를 거쳐

인간이 만든 지혜의 결집으로서 뭔가 발전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추론되기 때문이다.

사실

법만큼 땅 위의 인간들이 꾸준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온 노력의 결정물

드물 것이다. 그러면서도 과연 법은 발전하는 것일까? 이렇게 되물어 본다면 우리는

무엇이

발전인가, 도대체 무엇을 법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어려운 문제점에 부딪치게 될 것

이다.

법도 혁명과 전쟁에 의하여 얼마든지 파괴되는데다, 이른바 악법처럼 인간들의 간악한

지혜의 산물을 발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발전(development)이니, 진보(progress), 진화(evolution), 성장(growth)이니,

근대화(modernization)니 하는 비슷비슷한 개념들을 줄잡아 생각한다 하더라도 법의

발전의

문제는 간단히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물음에 속한다고 아니할 수 없다. 그리고 '법과

발전'이냐 아니면 '(자체)의 발전'이냐 하는 문제가 근원적으로 제기되는데, 법과

발전의

문제에 대하여는 법학자뿐만 아니라 사회학자, 정치학자 등이 참여하여 광범하게 논의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법의 발전 자체에 대하여는 일차적으로는 법학자 자신이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는가 하는 문제가 해명되어져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는 법학에서 지금까지 법의 발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는 한 번 검토

보려고

한다. 그것도 엄격히 따지면 법철학적 이해, 법사회학적 이해, 법사학적 이해로 나누

논의해야겠지만, 여기서는 그런 엄격한 구별없이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분석해 보자.

(Robert B. Seidmann, "Law and Development: A General Model", Law and Society

Review 6(1972); Daved M. Trubek, "Toward a Social Theory of Law: an Essay on

the Study of Law and Development", Yale Law Journal 82, 1(1972); David M. Trubek

and Marc Galanter, "Scholars in Self-Estrangement; Some Reflections on the Crisi

s

in Law and Development Studies in the United States", Wisconsin Law Review(1974)

.

이 논문은 한인섭이철우 엮음, ', 국가, 저발전'(이성과 현실사, 1986), 123-174

에 번역

되어

있다: Lawrence M. Friedman, "On Legal Develoment", Rutgers Law Review 24, 14, 19

69;

최대권, '법과 사회개발'(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1983), 181면 이하.)

 

1. 막스 베버(M. Weber)의 견해

법의 발전문제에 가장 집중적으로 관심을 기울인 학자는 역시 막스 베버(1864-1920)

라고

것이다. 베버에게 법이란 강제할 수 있는 '현실적 인간행동의 사실적 결정근거의 복

'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법은 '흠없는 단계 사다리'를 이루어 관습이나 도덕 등 사회

질서와

결합되어 있다. 그런데 베버에 의하면 법은 역사 속에서 점차 합리성(Rationalitat)

의 증진을

통하여 발전되어 간다. 그에 의하면 법의 형식적 자질(Qualitat)은 원시적 법과정에서

마술적으로 제약된 형식주의와 계시적으로 제약된 비합리성의 결합 속에서 나타나고,

그것이

과도적으로는 실질적 혹은 가부장적으로 제약된 실질적 혹은 비형식적

목적합리성(Zweckrationalitat)의 우회로를 거쳐 점점 전문적으로 법률적, 논리적 합

리성과

체계성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외관적으로 본다면 법은 시간의 진전에 따라

논리적으로 순화되고 연역적으로 엄격화되며, 법과정은 합리적 기술이 강화되는 방향

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발전단계를 베버는 다음과 같이 좀더 자세한 '합리성의 이념형'

통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법은 다음 네 가지 합리성의 종류에 따라 서로 다른 법구조와 형태

취하는 것이다.(Max Weber, Rechtssoziologie, S. 70.)

 

1) 형식적 비합리성의 법: 여기서는 예컨대 주술이나 그와 비슷한 것들의 전적으로

비합리적인 통제수단이 지배한다.

2) 실질적 비합리성의 법: 개별적 경우의 구체적인 원리적, 감정적 혹은 정치적 평

가가

각각 지배한다. 여기서도 추상적 규율이 적용되지 않고 구체적인 합리성과 정의가 모

색될

뿐이다.

3) 형식적 합리성의 법: 여기서는 철저히 일의적인 구성요건과 기준이 요구된다.

것은

싸인이나 특정한 언어의 선택 혹은 상징적 행위같은 내용적 가시성을 통하여 나타낼

있고, 개념 체계화를 통하여 얻어진 일반 개념으로서 추상적인 의미해석의 논리적 일

반화를

통하여 나타낼 수도 있다.

4) 실질적 합리성의 법: 내용적으로 일반적인 명령, 예컨대 윤리적 혹은 공리적 명

제나

격률이 형식적 판단을 깨뜨리는 법체계를 말한다. 말하자면 형식적으로 합리적인 절차

밟지 않더라도 합리적 목적을 향하여 동원될 수 있는 법을 뜻한다. 베버는 예컨대 동

양의

전통법이 여기에 속한다고 보았다.

베버는 한편으로 법이 마르크시즘에서 주장하듯이 순전히 경제적으로 제약되는 상부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다른 한편 슈탐러(R. Stammler, 1856-1938)가 생각하

였듯이

경제적 내용을 담는 단순한 형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하

,

이처럼 법이 합리성에로 발전하는 것은 법기술에 의존한다는 점을 논증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법기술의 형식은 매우 간접적으로만 경제적 발전에 의존한다는 것을 강조하려

하였다. 이것을 검증하기 위하여 그는 에를리히(E. Ehrlich, 1862-1922)와 마찬가지로

주로

'경제적으로 적합한 법'인 사법에 연구를 집중하였고 그 결과로서 위에 제시한 법발전

유형들을 끌어낸 것이다. 그런데 베버가 생각한 합리적 법의 발달은 자본주의의 발달

과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데에 문제점이 있다. 베버가 생각한 네 가지 합리서의 이념형에

불구하고 그의 머리 속에는 당시 독일 법학계를 풍미하던 개념법학(Begriffsjurisprud

enz)

개념화 지상주의적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것은 지적되는 사실이다.(M.

레빈더/이영희최종고 역, '법사회학'(법문사, 1981), 140.)

과연

비유럽적 법을 일률적으로 개념법학적 합리성의 척도에 의해서만 발전의 여부를 평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가 여기에서 생긴다. 어떻게 보면 베버가 그렇게 법과 사회를 연결시

생각하면서도 법의 발전의 문제를 너무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취급하지 않았나 생각

된다.

2. 라드브루흐(G. Radbruch)의 견해

형법학자요 법철학자인 라드브루흐는 주저 '법철학'(Rechtsphilosophie, 1932)에서

법의

발전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상당히 시사성있는 언급을

하고

있다. 라드브루흐는 법을 '법이념에 봉사하는 의미있는 현실'(die Wirklichkeit, die

den

Sinn

hat, der zu dienen)이라고 파악하고, 근본적으로 법은 하나의 문화개념이라고

본다.(라드브루흐/최종고 역, '법철학'(삼영사, 1975), 126.)

따라서

그것은 현실 속에서 이념이 실현화되어가는 과정 속의 산물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법의

범주론적 개념은 법의 실재적 문화형식 속에서 현실로서 표현된다. 이러한 법의 개념

가지고 라드브루흐는 법의 역사철학 내지 법사(Rechtsgeschichte)의 철학에 관한 문제

대하여 사려깊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역사철학의 주제는 가치실현의 관점에서 본 역

,

가치에서 멀어지는 길로서의 역사를 뜻하는데, 그 때문에 법의 역사철학 내지 법사의

철학의

임무는 법의 개념과 이념 및 효력이 현실의 역사적 사건 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가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파악된다. 여기에서 그는 법의 소재와 형식의 관계, 즉 법형식의

형성력과

법소재의 저항력에 관한 여러 가지 평가가 생긴다고 한다.

자연법론은 소재의 이념에 대한 저항력을 '제로'(Null)와 같이 놓을 수 있다고 믿는

관점이다. 즉 그것은 법이념의 자료로서 일정한 역사적 상태인 자연상태를 생각하고,

자연상태는 사회적인 관계가 아니라 오히려 고립된 개인의 병존이라고 설명하여,

개인

사이에 현존하는 사회학적인 구속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따로따로 사회관계를 창출하는

것이

법이념의 임무라고 한다. 또 자연법론은 역사학적, 사회학적 소재의 저항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법이념의 가변성을 부정한다. 이러한 법형식의 전능을 주장하는 자연법론을 극

복한

것이 역사법학파(Historische Rechtsschule)이다. 여기서는 민족정신(Volksgeist)이라

소여가 이성의 형성력을 희생시켜가면서 까지도 강조된다. 실제로 소재의 저항력이 제

로와

같은 것으로 생각될 수 없다고 하는 것은 사회에 결정적인 운동들은 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잠깐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법질서는 오직 개개인에 대해서만

명령하며,

사회적 현상에 대하여는 개인을 통한다고 하는 우로로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

영향은 매우 제한된다. 예컨대 군중심리적인 현상은 법질서에 의하여는 지배되지 않는

.

법질서는 자연현상에 대하여는 어떠한 작용도 미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자연현상인

동시에

사회현상이며 기술인 동시에 경제(Wirtschaft)는 본질적으로는 법에 영향받기보다는

반대로 법에 대하여 작용하는 데 적합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법형식의 전능론과 무능

론이

대립하게 된다. 라드브루흐는 법형식은 법소재의 현상형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는 극

단적인

견해로 또 유물사관을 든다. 법은 유물사관에서는 형성적 형식이 아니라 피형성적 형

식이고,

소재가 그 가운데 들어박히는 형식이 아니라 소재가 채용하는 한 형식이며, 또 핵심적

본질이 아니라 외부적 현상이다. 법은 철저히 역사학적, 사회학적으로 제약되며, 보편

타당한

형식적 구성부분을 조금도 가지지 않는다. 마르크스는 "법은 종교와 마찬가지로 독자

적인

역사를 가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처럼 극단적으로 법형식

만을

주장하는 자연법론과 법소재의 면을 강조하는 역사법학파와 유물사관을 소개하고,

라드브루흐는 법의 발전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한다.

역사 속에서 법이념이 실현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다시 말하면 법은 두

가지

방법으로 발전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어떤 세계관과 정당이 가진 법이념에서 출발하여 역사가 어느 정도까지 그들

이념의 실현에 봉사하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다. 즉 어떤 세계관과 정당의 이념의 역사

속에서

법의 이념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 자유주의적 역사철학의 예로서는 칸트의 세계시민

의도에서 출발한 보편사의 이념을, 사회주의적 역사철학의 예로서는 공산당선언을,

초개인주의적 역사철학의 예로서는 랑케(L. von Ranke)가 바이에른왕 막스(Max von

Bayern) 앞에서 행한 연설과 정치문답을, 또 마지막으로 초인격적 역사철학의 예로서

는 야콥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의 세계사적 고찰을 들 수 있다.

두번째 방법은 일반적으로 이념 특히 법이념이 어떠한 방법으로 역사에 영향을 주는

,

그것이 개개인의 의식적인 목적설정이라고 하는 형태로인가 아니면 무의식적인

사회과정이라고 하는 형식으로인가 하는 문제를 추구한다. 이 두번째 문제는 이미 헤

겔과

사비니(F. C. von Savigny)와의 대립의 기초가 되고 있는 것이지만, 라드브루흐는 이

에 대한

대답은 법이념은 끊임없이 점점 더 의식적으로 되고 더 목적적으로 되는 역사상 하나

추진력으로 되어왔다는 사실이라고 한다. 라드브루흐는 이러한 법의 발전은 여러 가지

표어로 나타낼 수 있다고 하면서, 민족정신에서 국가의지에로의 발전이라든가, 관습법

에서

제정법에로의 발전이라든가, 유기적인 법의 성장에서 법에 있어서 목적 및 '권리를 위

투쟁'(Jhering)에로의 발전이라든가, 혹은 규범을 정립하는 사회구조를 생각하는 경우

에는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Tonnies)에로의 발전이라든가, 혹은 개개인의 법적 지위의 형

성을

생각하는 경우에는 신분에서 계약으로(H. Maine)의 발전이라든가 상당히 개방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라드브루흐는 충동적 행위 대신에 하는 목적설정이라는 것도 반드시 절대적인 목적

이념에

일치될 수는 없고 순전히 이기적이며 자의적인 것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

충동적 행위와 마찬가지로 의식적으로 이기적인 목적정립도 보편타당한 목적이념의

무의식적인 도구로 되는 수가 종종 있다고 본다. 심리학자 분트(W. Wundt, 1832-1910)

이것을 '목적의 변질'(Heterogeine des Zwecks)이라 하였고, 헤겔은 '이성의 교지'(Li

st

der Vernunft)라고 설명하였다. 그래서 충동적 법형성에서 목적적 법형성에로의, 또는

비합리적 법형성에서 목적합리적 법형성에로의 불가피한 발전은 서로 다른 가치판단

아래

놓일 수 있다고 라드브루흐는 말한다. 사물들과 관계들이 가지는 이성이 모든 개인 이

성보다

높은 것이라고 하는 견해는 필연적으로 문화비관주의적 태도를 가지고 이 자연필연적

발전에 답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그는 말한다. 다른 한편 이에 반하여 사물들과 관계

들 속에

존재하는 이성은 모두 이성적인 개인이 그것에 부여한 것이라고 하는 견해는 이

자연필연적인 발전 속에 역사를 통한 이성의 개선행진, 즉 무한한 진보의 존재를

문화낙관주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확립하

여야

하는 것은 공동사회의 위대한 이론가는 공동사회에서 이익사회에로의 부단한 발전에서

문화비관주의적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없다고 하는 점이다.

이렇게 라드부르흐는 역사 속에서의 법의 발전에 대한 의미해석에 개방적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자신은 법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는 것

만년의 저서 '법철학입문'(Vorschule der Rechtsphilosophie)에서 은연 중에 드러난

. 그는

"법은 역사현상에 관한 완전한 지배를 요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모든 새로운 법률상

태는

종전의 법률상태로부터 법적인 방법으로 스스로 발전하여야 할 것이며, 역사의 과정에

결코 법의 중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정통성(Legitimitat)이라는 표어의 의미

이다"

(라드브루흐/엄민영서돈각 역, '법철학입문'(육법사, 1982), 173.)고 말한다.

역사의 다이나믹한 성질은 파국들(Katastrophe)에 따른 법의 파괴에 의한 법의 끊임

없는

새로운 재발생(자연발생)으로 발전한다고 라드브루흐는 말한다. 이것이 곧 옐리네크(

G.

Jellinek)가 말한 '사실적인 것의 규범력'(Normativitat des Faktischen)이라는 말의

의미라고

라드브루흐는 설명한다. 그러나 법의 완전지배는 역사에서 그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한편으로는 전쟁과 다른 한편으로는 혁명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역사의 불연

속성에

대하여 법이 역사의 완전한 지배를 요구하면 평온한 시대는 몇번이고 원하지 않는 것

으로서

받아들이게 된다고 라드부르흐는 말한다. 몰트케(Moltke)는 영원한 평화를 "하나의 꿈

이다.

결코 아름다운 꿈은 아니다" 라고 말하였고, 니체(F. W. Nietzsche, 1844-1900)는 오

히려

'위험한 생활'(das gefahrliche Leben)을 찬양하였던 것이다. 라드브루흐가 시사하는

것은

역사의 불연속적인 사건들 속에서도 발전은 있으며, 그에 대응하여 법의 발전도

불연속적이나마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라드브루흐의 설명은 법의 발전에 대한

사실과학적인 설명이라기보다는 법의 역사철학 내지 법사의 철학이기 때문에 매우

추상적이지만, 역사라는 것 자체가 무엇이라고 사실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이라

한다면, 깊은 의미를 깨우쳐 준다.

 

3. 델 베키오(Del Vecchio)의 견해

이탈리아의 로마대학 총장을 지낸 법철학자 튷지오 델 베키오(1878-1970)는 법의 발

내지

진화에 대하여 상당히 관심을 가졌다. 그는 근본적으로 법의 진보를 인정하고 있으며,

다만

그것이 목적의식으로 인한 독단적 견해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그 유기적 발달에 포함된 종국목적의 전개로 보아야 한다.

간의

정신에는 단계적으로만 나타나는 소질과 능력이 내재한다. 법의 영역에서도 인간적 인

격의

본질적 특성이 개인에서와 마찬가지로 각 민족의 경우에도 시대의 경과 속에서 비로소

전개하며, 점차적으로 인정되고 실현된다. 더욱이 이성이 발달된 정도에 따라 실현된

.

이것이 법의 진화를 나타낸다.(G. Del Vecchio, Lehrbuch der Rechtphilosophie, S. 4

29.)

이렇게 근본적으로 법의 발달 내지 진보를 긍정적으로 전제하고, 베키오는 법의 발

달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법은 무의식적인 것에서 의식적인 것으로 발전한다. 법은 직접적이고 비사유

적인

법형성으로부터 사유적이며 자각적인 완성에로 발전한다. 관습과 같은 포괄적 사회규

범 속에

들어있던 법이 사회의 진보와 함께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통하여 성문화의 방향으로

나아가는데, 이 때 법을 지지하는 힘은 개인의 양심에 기초하는 '공통의 확신'이다.

둘째, 법은 특수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것으로 발전하다. 원시적 법은 특정국민의 역

사적

운명에 크게 제약되지만 점점 하나의 보편성을 향하여 구심적 경향을 나타낸다. 여기

에는

전쟁과 거래같은 외부적 원인도 있고, 보편성을 지향하는 인간적 정신의 내부적 원인

있다.

셋째, 법은 열등한 심리적 동기에서 우등한 심리적 동기로 발전한다. 베키오는 법이

처음에는 불가지의 공포, 공동방위의 필요, 개인종족의 보호 등 본능적 충동에서 발생

했으나

차차로 공동생활의 다른 동기, 자유의 요구 등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설명한다. 그는

이와

같이 법의 발전을 심리적 면에서 보기 때문에 역사적 유물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유물주의는 경제적 숙명주의이므로, 법은 외부적이고 피상적인 파생물로서 부수현상으

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넷째, 법은 강제적 결합에서 임의적 결합으로 발전한다. 초기에는 개인의 자유로운

결정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역사적 발전으로 개인의 재산이 인정되면서 책임이 개별화되고 신

분이

파괴되었다.

이것이 베키오의 법발달의 특징에 관한 서술인데, 그러면서도 이러한 변화를 초월하

항상

불변하는 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법이 다수 인격자의 행위의 객관적 조절이라는

데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첫째는 인격의 보장이고, 둘째는 개인의 자의의 금지라고

한다.

(G. del Vecchio, a.a.O., S. 414.)

 

4. 갈란터(M. Galanter)의 견해

시카고대학과 스탠포드대학에서 비교법학을 가르쳤고, 특히 인도와 남아시아 법에

관하여

깊이 연구한 마르크 갈란터 교수는 법의 근대화에 관하여 매우 흥미있는 명제를 제시

하였다.

(Myron Wiener, Modernization; The Dynamics of Growth(1966), 차기벽 외 역,

'근대사'(세계사, 1967), 195-209.)

즉 그는 근대 법체제에 공통되는 현저한 특색으로서 다음 몇 가지를 지적하고 있다.

우선

법규의 종류에 대해서 보면,

첫째, 근대법은 그 적용에 있어 균일하고 일정불변한 법으로서 구성된다. 이러한 법

적용은 대인적이라기보다는 지역적이다. 즉 같은 법이 온갖 종교, 종적, 계급, 카스

,

지역의

성원과 남녀 양성에게 적용된다. 법적으로 인정되는 개인간의 차이는 귀족과 농노,

브라만과 하부 카스트간의 차이와 같은 고유한 종류나 속성의 차이가 아니라 세속적인

직업에서의 기능과 조건 및 업적의 차이이다.

둘째, 근대법은 거래로 성립된다. 권리와 의무는 그것들이 특정거래 이외의 결정요

때문에

법주체에 수반하는 불변하는 연속적 결정으로서 집계하기보다는 당사자간의 거래에 연

유하기

때문에 배당된다. 즉 법적 권리와 의무는 특정거래와는 상관없는 연령, 계급, 종교성

과 같은

요인들에 의하여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존재하는 권리와 의무의 이와 같은 결정화된

지위는

선천적인 가치나 신성한 명예보다는 세속적인 기능이나 조건(예컨대 고용주, 기업가)

터잡고 있다.

셋째, 근대 법규범은 보편주의적이다. 규제를 위한 실례들은 독특하고 직관적인 것

표시하기보다는 일반적 적용의 타당한 기준을 예증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이리하여

법의

적용은 재현할 수 있고 예견할 수 있다. 카디(이슬람의 법관) 재판적 정의(Kadi-Justi

z)

칸트의 지상명령에 의해 대치되었다.

그러면 이러한 법을 집행하기 위한 제도적인 조처와 기술은 어떠한가?

넷째, 그 제도는 계층적이다. 이 법을 적용하기 위한 제1심 재판소의 정규적인 망상

조직이

있고, 그리고 지방적 소송이 전국적 기준에 부합하도록 보장하기 위한 항소와 재심의

일정한

상층구조가 있다. 이는 그 제도로 하여금 일률적이며 예측할 수 있게 한다. 하부기관

에 대해

실질적인 감독을 하는 이런 종류의 계층제도는 부여된 권한 안에서 완전한 자유재량을

향유하는 하부기관에게 기능을 위임하고 있는 계층제도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다섯째, 그 제도는 관료제적으로 조직되어 있다. 통일성을 이룩하기 위하여 그 제도

는 각

소송마다 정해진 절차에 따르며 각 소송을 성문법에 부합하도록 판결하면서 공평무사

하게

운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재심을 가능케 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의 성문기록이 각

소송마다 보존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섯째, 그 제도는 합리적이다. 그 소송절하는 특수한 비합리적 자질없이도 배울 수

있고

전해질 수 있는 기술에 의해서 성문화된 자료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법은 그 공식적

인 속성

때문이라기보다는 의식적으로 선택된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서의 그 수단적 효용성

때문에

가치가 부여된다. 예를 들면 증거의 영역에서 신학적이며 형식주의적인 기술은 기능적

기술에 의해 대치되었다.

일곱째, 그 제도는 전문가들에 의해 운용된다. 세속적인 자격시험을 통해 선택된 사

람들이

그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들은 이 일에 가끔 종사하거나 부업으로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전시간 종사하는 전문직업인이다. 그들의 자격은 특수한 자질이나 재능의 소유에서거

인생의 어떤 다른 영역에서의 탁월성에서가 아니라 법체계 그 자체에 관한 기술습득에

오고 있다. 영주나 종교적 고위성직자는 훈련된 직업적 법률전문가, 경찰, 증인, 신문

인 및

기타 법률집행 전문가에 의해 대치된다.

여덟째, 그 제도가 더욱 전문적이고 복잡하게 됨에 따라 법원과 그리고 법원과 거래

해야

하는 사람들간에 전문화된 직업적인 중개자가 나타난다. 변호사가 단순한 비전문적인

중개인을 대치하게 된다.

아홉째, 그 제도는 개정할 수 있다. 그 제도에는 신성한 불변성은 없다. 그것은 변

하는

필요에 대응하거나 변하는 선호를 표시하기 위해 법과 절차를 명시적으로 개정하는

일정하고도 공공연한 방법을 포함하고 있다. 이리하여 특수한 목적의 달성을 위해

신중하고도 사려깊은 혁신이 가능하다.

끝으로 법과 정치적 권위와의 관계에서 보면,

열번째, 그 제도는 정치적이다. 법이 국가와 밀접히 관련되고 있으므로 국가는 그

관할권

내의 쟁의에 대한 독점권을 누리고 있다. 종교재판소나 동업조합과 같은 쟁의해결을

위한

다른 재판소는 오직 국가의 묵인 아래서만 또는 국가의 짜여진 틀에서만 운영되며 자

칫하면

국가의 감독을 받기 쉽다.

열한번째, 구체적 소송사건에 해당하는 법률을 찾아내어 그것을 적용하는 일은 다른

통치기능과 직원 및 기술에서 구별된다.

갈란터에 의하면 법의 근대화는 이상의 열한 가지 특징들의 발전 또는 그런 특징들

지향하는 끊임없는 움직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유럽에서는 11세기에 시작된

로마법의 계수에서부터 알 수 있으나, 본격적으로 18세기 말에 활기를 띠어 19세기 초

유럽의 대부분지역으로 퍼져나갔다. 비유럽국가들에서 근대화는 유럽법의 도입과 밀접

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이런 종류의 근대화는 오늘날 신구를 막론하고 모든 나라에서 진행

되고

있다고 본다.

 

5. 레빈더(M. Rehbinder)의 견해

스위스 츄리히대학의 법사회학 교수 만프레드 레빈더는 그의

'법사회학'(Rechtssoziologie)에서 현대사회에서 법의 발전경향을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M. 레빈더/이영희최종고 역, '법사회학'(법문사, 1981), 123-142.)

여기서 그는 법의 변화현상을 서술할 뿐 발전의 의미를

논하지는 않고 있지만, 현대법의 발전추세를 가리켜주는 흥미있는 진단이라 여겨진다.

첫째, 법의 통일화 경향을 들 수 있다. 교통의 발달, 매스 미디어의 보급에 따라 공

간적,

시간적으로 축소된 세계 속에서 법은 점점 통일화되고 있다. 미국의 통일 상법전(Unif

orm

Commercial Code), 독일의 보통거래약관(Allgemine Geschaftsbeeingungen, AGBG)

연방공화국에서 연방에 대한 강력한 입법권의 부여 등 법통일화의 경향은 현저하게 나

타나고

있다. 이것은 국내법에서만이 아니라 국제조약을 통한 국제화로까지 전개되고 있고,

국가들이 외국법의 수용(Rezeption)과 법비교(Rechtsvergleichung)의 방향으로 나아가

있는데서도 드러난다.

둘째, 법의 사회화 경향을 들 수 있다. 19세기의 시민법 질서가 보장한 사적자치의

원리(Prinzip der Privatautonomie)는 실질적으로는 불평등과 부자유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사실적 불평등은 사법에 종사하는 전문가들의 맨탈리티에 의하여(본의 아니게) 강화되

이른바 계급사법(Klassenjustiz)의 문제가 대두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상황에서 법

라드브루흐가 적절히 표현한 바와 같이 '개인주의법에서 사회법에로'(vom

individualistischen

zum sozialen Recht)의 경향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는 국가가

복지국가(Wohlfahrtsstaat)의 이념을 내걸고 더욱 적극적으로 국민의

생존배려(Daseinsvorsorge)에 의하여 법을 제정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그리

하여

노동법, 경제법, 사회보장법 등 이른바 사회법(Sozialrecht)의 법역을 대표로 하여 나

아가

경영참가 및 환경보호 등 광범하게 법의 사회화가 추진되고 있다.

셋째, 법자료의 증대화 경향이다. 국가임무의 확대, 사회생활의 복잡화, 관료화는

법률의

폭발 혹은 법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사회발전 법칙에 따라 법은 고사한

다느니,

법은 되도록 단순해야 한다느니 하는 주장은 사회적 낭만주의자(Sozialromantiker)

이나

하는 소리로 되어버렸다. 법자료의 증대로 문화는 침체되는 것이라고 볼 것이 아니라

개인과

사회의 활동이 법의 수단을 통하여 더욱 진보되는 것으로 파악되어져야 할 것이다.

쨋든

지나친 법증대는 혼란을 야기하는 수도 있으므로 현대에서 '입법의 소명'에 대하여 논

란이

계속되고 있다.

넷째, 법기관의 전문화와 관료화 경향을 들 수 있다. 권력분립은 국민의 자유를 보

장하기

위하여 서로 견제와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 대명제이지만, 법의 문제는 전문가가

아니면

다룰 수 없는 사항으로 취급되고 있다. 판사, 검사, 공증인, 행정법률가, 경제법률가

그리고

법무사에 이르기까지 법률가들이 전문적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

독일의 경우 법원제도는 일곱 가지의 서로 다른 체계를 이루어 전문화되고 있다(헌법

재판소,

보통재판소, 노동재판소, 재정재판소, 사회재판소, 특허재판소). 또 보통재판제도 속

에도

민사와 형사의 구별은 물론 각종 분과(후견과, 등기과, 증명과)가 있고,

특별위원회(상사위원회, 토지위원회)나 심의회(카르텔심의회, 저작권심의회)들이 있

.

이러한

과정 속에서 증거력을 갖기 위하여 모든 판결절차는 문서화되고 광범하게 형식화된다.

이렇게 본다면 현대인은 법치국가(Rechtsstaat)속에 살고 있다기보다도

법수단국가(Rechtsmittelstaat)에 살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으며,

그러면서도

법은 더욱 지켜지지 않고 무규율화로서의 아노미(Anomie)현상이 일어난다고 하겠다.

다섯째, 법의 과학화 경향을 지적할 수 있다. 현대사회는

집단다원주의(Gruppenpluralismus)에 입각한 사회로서 관용(Toleranz)의 원리와 다수

결의

원리를 불가피하게 신봉하고 있다. 또 사회적 집단화와 그에 따른 수단의 합목적성은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헌법에 맞추어 다수에 의하여 결정함으로써 정당화된다(합법성에

의한

정당성, Legitimation durch Legalitat). 그러나 이러한 다수결에 의한 법규범의 의미

목적에

대하여도 질문은 광범하게 제기된다. 즉 다수에 의해 결정되었다 하더라도 사실적 작

용력을

얻으려면 규범을 받는자들(Normenadressaten)에게 수긍이 가도록 보여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속화된 사회에서 가장 신빙할만한 기준은 과학이며, 법기관은 점점 더 과학

정보들을 필요로 하고 있다. 막스 베버가 분석한 대로 법에서 합리성의 요청은 더 높

아가고,

이를 위한 과학화의 작업은 많은 시간과 예산을 들여서 이뤄지고 있다. 국회, 정부,

법원에서

행하는 각종계획(Planung)과 자료처리(Datenverarbeitung), 사무의 프로그래밍(예컨대

컴퓨터로 처리된 입법, 판결의 문서처리, 기계적 조세결정, 행정의 자료은행,

토지등기부에서부터 공증인서류까지의 전산화) 등이 이것을 말하여 준다. 앞으로는 법

정에

판사를 대신해서 컴퓨터가 앉을 것이라는 미래학적인 예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

지만

상당한 영역에까지 과학의 손길이 확대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

으로는

그렇게 됨으로써 법률 당사자는 법률경과(소송)를 몰이해하고, 법에 대한 인식과 존경

갖지

못하여, 권리를 남용하게 될 부작용도 따른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학적 발전을 규제하

법의

영역이 대두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예컨대 자료보호법).

 

6. 노네(P. Nonet)와 젤츠닉(P. Selznick)의 견해

버클리대학의 필립 노네 교수와 필립 젤츠닉 교수는 공저 '전환 속의 법과 사회'

,

법은

억압적 법(repressive law)의 단계에서 자율적 법(autonomous law)의 단계로, 자율적

법의

단계에서 대응적 법(responsive law)3단계로 발전한다고 설명한다.(P. Nonet & P.

Selznick, Law and Society in Transition; Toward Responsive

Law(Harper & Row, 1978), p. 15; 정동호신영호 공역, '법과 사회변동'(나남, 1986).)

첫째, 억압적 법의 단계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1. 법제도들은 직접적으로 정치권력에 밀착되어 있다. 법은 국가와 동일시되고 국

가의

목적(raison d'etat) 아래 놓여있다.

#2. 권위의 유지는 법적 관청에 선점되어 있다. '공식적 관점'들이 지배하고, 의문

이 있을

체제 측에 유리하게 판단이 이루어지며, 행정적 편의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3. 경찰과 같은 전문통제기관들이 권력의 독립적 중심을 이룬다. 그것들은 중재적

이고

사회적 사정에서 유리되고 정치적 권위에 저항할 수 없게 된다.

#4. '이중적 법'(dual law)의 체제가 사회적 복종의 패턴을 강화하고 정당화함으로

계급적

정의를 제도화한다.

#5. 형법전은 지배적인 습속(mores)을 반영한다. 그리고 법적 도덕주의(legal moral

ism)

풍미한다.

둘째, 자율적 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법은 정치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특히 체제는 사법의 독립성을 선언하고 입법과

사법기능 사이에 뚜렷한 경계를 설정한다.

#2. 법질서는 '규율의 고정된 모델'(model of rules)을 신봉한다. 공식적 예견가능

성의

정도를

증대시키는 데 규율의 초점이 놓여있다. 동시에 그것은 법제도의 창조성과 정치영역으

로의

침투위험을 제약한다.

#3. 절차가 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실질적 정의(substantive justice)가 아닌

규칙성(regrlarity)과 공정성(fairness)이 법질서 제일의 목적이고 주된 권능이다.

#4. '법에 대한 충실'(fidelity to law)은 실정법의 규율에 대한 엄격한 복종으로

이해된다.

기존의 법에 대한 비판은 정치적 과정을 거쳐야 한다.

셋째, 대응적 법의 특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1. 법적 발전의 다이나믹스는 법적 추론에서 목적의 권위를 증대시킨다.

#2. 목적은 법적 의무를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

그럼으로써 복종에 대한 법의 요구를 완화하고 공공질서에 대하여 덜 엄격하고 더 시

민적인

관념을 개방한다.

#3. 법의 개방성과 신축성을 획득함에 따라 법적 주장은 정치적 차원을 띠게 되며

법제도를

교정하고 변화하는 데 공헌할 힘을 산출해내지만, 제도의 고결성을 동요하게끔 위협한

.

#4. '압력의 환경'(environment of pressure) 속에서 법적 자치의 지속적 권위와 법

질서의

고결성은 더 적절한 법제도에 대한 구상(design)에 의존한다.

이러한 3단계 법발전의 특징을 다시 한번 요약해보면 표와 같은 도식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노네와 젤츠닉의 삼단계적 법발전의 특징

#1. 목적

1)억압적 법: 질서

2)자율적 법: 정당성

3)대응적 법: 권능

#2. 정당성의 근거

1)억압적 법: 사회방위, 국가이성

2)자율적 법: 절차적 공정성

3)대응적 법: 실질적 정의

#3. 규율의 성격

1)억압적 법: 조야하고 자세함, 다만 법정립주체에 대한 구속력은 약하다.

2)자율적 법: 정련되어 있고, 피치자와 마찬가지로 치자도 구속하도록 되어있다.

3)대응적 법: 원칙과 정책에 복종

#4. 법적 추론

1)억압적 법: 수시로 편의에 좌우되며 개별적(특수주의적)

2)자율적 법: 법적 권위에 엄격히 결속(집착), 형식주의와 법률주의로 되기 쉽다.

3)대응적 법: 목적지향적, 인식권능

#5. 재량

1)억압적 법: 기회에 따라서 널리 행해진다.

2)자율적 법: 규율에 의해 제약됨, 위임의 여지는 좁다.

3)대응적 법: 널리 행해지지만 목적에 대해 책임이 있다.

#6. 억압

1)억압적 법: 널리 행해지며 그에 대한 규제는 약하다.

2)자율적 법: 법적 규제에 의해 통제된다.

3)대응적 법: 그것을 대치할 수 있는 대안에 대한 적극적 추구, 예컨대 인센티브,

의무의

자기 지지적 체계

#7. 도덕성

1)억압적 법: 공동체적 도덕성, 법도덕주의, 억제의 도덕성

2)자율적 법: 제도적 도덕성, 예컨대 법적 절차의 통합성에 크게 선점

3)대응적 법: 시민적 도덕성, 협동의 도덕성

#8. 정치

1)억압적 법: 법이 권력, 정치에 종속

2)자율적 법: 법이 정치로부터 독립, 권력의 분립

3)대응적 법: 법적 지향성과 정치적 지향성의 통합, 권력의 융합

#9. 복종에 대한 기대

1)억압적 법: 무조건적 불복종은 그 자체 도전으로 간주되어 처벌된다.

2)자율적 법: 법적으로 정당화된 규율의 일탈, 예컨대 법률과 명령의 유무효를 심사

3)대응적 법: 실질적으로 해가 되는가에 따라 불복종을 평가, 정당성에 대한 논쟁을

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됨

#10. 참여

1)억압적 법: 맹종, 비판은 불충으로 간주된다.

2)자율적 법: 기존절차에 의해 접근도 제한되어 있다. 법적 비판의 대두

3)대응적 법: 법적 주장과 사회적 주장의 통합에 의해 접근이 확장된다.

노네와 젤츠닉은 이 3단계는 법의 분명한 유형(distinct types of law)일 뿐만 아

니라

어느

정도 법과 정치적, 사회적 질서와의 관계에서 진화의 단계(stages of evolution in th

e

relation

of law to the political and social order)라고 주장한다. 여기서 진화의 단계란 말

썼지만,

그것은 곧 발전의 모델(development model)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이 그 다음

설명에서 곧 드러난다. 이들은 발전이란 말이 19세기 진화주의(evolutionism)가 시들

어짐과

함께 비판을 받아 왔다고 지적하면서, 그러면서도 제도사를 이해하기 위하여는

방향성(directionality), 성장(growth)과 패망(decay)을 파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

장한다.

법학에서도 어떤 법분야는 다른 법분야보다 더 발전되었다거나 법적 변화가 성장의 패

턴을

보여주거나 패망의 패턴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로스코

파운드(Roscoe Pound, 1870-1964)를 법의 성숙도(maturity)에 따라 법의 발전의 정도

생각하는 것이 편리하다고 생각한 학자라고 지적한다. 노네와 젤츠닉은 발전이론에 대

비판은 지성적으로 너무 나갈 수 있으며, 오히려 발전이론의 근본관점이 결실을 거둘

있고 심지어 불가피한 것이라고 한다.

이상에서 법의 발전에 관한 베버, 라드브루흐, 델 베키오, 갈란터, 레빈더 그리고

노네와

젤츠닉의 견해들을 살펴보았는데, 물론 이로써 이 방면의 학문적 업적을 골고루 소개

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법의 발전을 "신분에서 계약으로" 라고 표현한 고대법 연구가 헨리

메인(Henry S. Maine, 1822-1888)에서부터, (Robert Redield, "Maine's Ancient Law i

n the

Light of Primitive Societies",

Western Political Quarterly, vol.3(1950), p. 57.)

최초의 첨단실험을 통하여 인간의 법의식

발달도를 측정하려 했던 로렌스 코올베르크(Lawrence Kohlberg, 1927-1987) (

) Jane Tapp & L. Kohlberg, "Developing Sense of Law and Legal Justice", Journal

of Social Issues, vol. 27, no. 2(1971), p.65; L. 코올버그/김민남 역, '도덕발달

의 철학

', 교육과학사, 1990.)까지

추가돼야 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또 좀더 시야를 넓히면 형사적 법(repressive

law)에서 회복적 법(restitutive law)에로의 발전을 생각한 에밀 뒤르깽(Emil

Durkheim)이나,

(Leon S. Sheleff, From Restitutive Law to Repressive Law; Durkheim's Division

of Labour in Society Revistited, Archives Europeenes de Sociologie, 16, no. 1(19

75),

p. 16; Richard D. Schwartz & James Miller, "Legal Evolution and Social Complexit

y",

American Journal of Sociology, 70(1964), p. 1599.)

 

생산수단으로서 경제구조의 발전 속에서 법의 발전문제를 생각한 마르크스와 그 추종

자들도

포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은 학자들의 이론 그 자체를 배우려기보다도 법의 발전이란 무엇

인가를

알아보는 데에 있는 것이다.

법의 발전을 이야기할 때 법을 무엇으로 보는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된다고

서론에서

비쳤듯이, 법의 발전에 관하여 수 많은 학자들의 관심영역에 따라 ()철학적으로,

()사회학적으로, ()역사학적으로 각양각색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체로 법에서 발전의 계기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법에서도 양적인 증가냐 질적인 발전이냐 하는 문제가 되풀이되어 물어질 수 있다.

법사학자들은 법의 양적 증가의 추세를 분석하고 그것을 발전이라고 보는가 하면,

법철학자는 법의 내용적 단절에도 불구하고 법이념의 창조적 발전의 계기를 긍정적으

받아들이는 법의 역사철학을 전개한다. 사실 이러한 논의는 모두 역사 속에서의 법이

라고

하는 피제약적 현실에 관한 논의로서, 역사란 것 자체가 신비한 것인 한 불완전한 논

의에

불과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아무리 현대의 법이라 하더라도 그 현실과 적용에서 고대

단순한 법만큼 '발전'의 질을 못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법은 한편으로는 제도요 기술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상과 정신의 산물

로서

무엇보다도 그 체계성과 합리성, 보편성과 문화성을 강하게 추구하는 규범이다. 이러

한 법의

발전을 긍정적으로 전제함은 어쩌면 역사 속에서 인간이 더 낫게 살려는, 아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역사적 책임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은 역사

학자

아돌프 라우프스(Adolf Laufs, 1935-) (dolf Laufs, Rechtsentwicklungen in

Deutschland(Berlin, 1978).)

가 지적한 바와 같이 경제적 성장, 종교적 충동,

정신적 또는 문화적 자극, 정치적 목적 등 다양한 요인의 복합에 의하여 발전하는 것

사실이다. 이 발전의 사실을 어떻게 이론적으로 정리하는가 하는 문제가 남아있는 것

이다.

 

참고문헌

라드브루흐/엄민영서돈각 역, '법철학입문', 육법사, 1983

A. M. 폴린스키/송상현정상조 역,

'법경제학입문', 경문사, 1984

L. 프리드만/박남규 역, '법과 사회', 법문사, 1984

켈젠/장경학 역, '공산주의 법이론', 명지사, 1984

휴 콜린즈/홍준형 역, '마르크스주의와 법',

한울, 1986

한인섭이철우 엮음, '법국가저발전', 이성과 현실사, 1986

조성민 편역, '자본주의국가와 법이론', 태백, 1987

등전용/이경주 역, '마르크스주의 법학입문', 이성과

현실, 1990

모린 케인알란 헌트 편저/민주주의법학연구회 역, '맑스와 엥겔스는 법을

어떻게

보았는가', , 1991

최대권, '법과 사회', 서울대출판부, 1992

러셀 겔로웨이/안경환 역,

'법은 누구 편인가', 교육과학사, 1992.

Harold J. Berman, Law and Revolution: The Formation of Western Legal

Tradition, Harvard Univ. Press, 1983 ; Paul Hirst, On Law and Ideology, Humaniti

es

Press, 1979 ; R. Stammler, Wirtschsft und Recht nach msterialistischer

Geschictsauffassung, 1896.

 

연습문제

1. 법의 변동요인을 논하라.

2. 법과 정치의 관계를 논하라.

3. 법과 경제의 관계를 논하라.

4. 법과 혁명의 관계를 논하라.

5. 유물사관적 법이해를 논하라.

6. 법은 발전하는가?

7. 저개발국가에서의 법과 사회변동을 논하라.

@ff

'Study 2 > 법학 통론'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 14장 기초법학  (0) 2020.05.13
제 13장 국가와 법치주의  (0) 2020.05.13
제 11장 권리의무와 법률관계  (0) 2020.05.13
제 10장 법계와 법문화  (0) 2020.05.13
제 9장 법의 적용과 해석  (0) 2020.05.13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