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가설
II. 증거
III. 가설-연역적 방법
IV. 가설-연역적 방법의 복잡성
1) 부수적 가설
2) 대안적 가설
3) 귀납적 확증논변의 형식
4) 인과적 가설의 확증
V. 반확증
VI. 베이즈의 확증이론
VII. 요약
I. 가설
이 장에서 다루어질 주제는 가설(hypothesis)과 그 가설을 경험적으로 확인하는 방법에 관한 문제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주어진 경험적 증거를 넘어 지식을 확장시키고자 한다. 경험적 증거에 의하여 확인되는 것에만 우리의 지식을 국한시켜야 한다면 이 세계에 관하여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우리는 현재의 경험에 의하여 확인되지 않을지라도 과거 또는 미래에 관하여 추측을 하거나 예측을 하기도 한다. 추측과 예측을 할 수 있기에 인간의 경험은 그만큼 더 풍부해지고 또 자신과 세계에 대한 이해도 더 깊어질 수 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한 추측이나 예측이 모두 합리적 세계이해의 범주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 범주에 들려면 일단 최소한의 합리적 근거를 가져야 한다. 그 최소한의 합리적 근거가 바로 가설이다. 물론 가설도 또한 합리성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논의해 볼 수 없는 성질의 것도 '가설'이라는 이름을 못 붙일 이유야 없겠지만 이성적 논의의 대상에서는 제외된다. 이 말은 가설이 합리적인 가설이 되기 위해선 경험적 내용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든 원리적으로든 경험적으로 검증해 볼 수 있는 내용을 갖추어야 소위 '합리적' 또는 '과학적' 가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가설'이라는 말도 일상언어에서 여러 가지 다른 용도로 쓰인다. 때때로 그것은 어떤 경우가 맞을 것이라는 추측 또는 맞지 않겠나 하는 의심을 뜻하기도 한다. "나의 가설에 의하면 그 사람이 틀림없이 범인이야"라든지 "내일쯤에는 그가 나타날 것이라는 것이 나의 가설이야"같은 경우에 사용된 '가설'이 그러한 뜻으로 사용된 경우이다. 또 어떤 때는 아직 정당한 것으로 확인되지 않은 믿음을 가리키기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태양계에서 지구 아닌 다른 혹성에도 생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은 가설에 불과해"라고 할 때의 '가설'이 바로 그러한 용법으로 사용된 경우이다. 이 책에서 논의될 '가설'은 앞에서 말한 합리적 가설, 즉 그 가설에서 나온 예측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따라 진위에 대한 검증이 가능한 주장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겠다.
그렇다면 가설이 경험적 내용을 가진 가설이기 위해선 어떤 형태 또는 형식의 것이어야 하는가? 서양학문의 역사를 보면 학문이 다루는 주장 또는 명제들은 대개는 '보편적 일반화'(universal generalization)라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모든 가설이 이러한 형태를 취한다고 할 수는 물론 없다. 학문에 따라선 개별적인 것에 관한 주장이나 명제를 다루는 경우도 있겠고 또 학문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개별적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가설을 세우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별적인 것에 관한 가설이라도 경험적으로 검증 가능한 내용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따라서 보편적인 법칙을 찾거나 세우고자 하는 것이 학문의 일반적인 목표라고 해서 보편적 일반화만을 가설이 취할 수 있는 유일한 형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II. 증거
일반적으로 가설을 검사할 때 우리는 그 가설로부터 어떤 결론, 어떤 예측이 나올 수 있는지를 본 다음 실험을 하거나 관찰을 해봄으로써 그 결론의, 그 예측의 참 여부를 결정짓는다. 그러나 그러한 검사의 결과가 참인 것으로 판명된다고 해서 예측을 낳은 가설도 반드시 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예측된 바가 참이라면 가설도 참일 확률이 크다는 정도의 이야기는 할 수 있어도 결정적으로 참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말하자면 예측과 가설의 관계는 연역적인 관계가 아니라 귀납적인 관계이다. 이와 같이 검사의 결과에 근거하여 가설을 귀납적으로 지지 또는 지지해 주지 않는 것을 '확증'(confirm) 또는 '반(反) 확증'(disconfirm)이라 부른다. 이 장에서 우리가 다룰 문제는 귀납논리의 중요주제 중의 하나인 바로 이 확증의 논리이다.
따라서 확증의 논리에서 가설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증거(evidence)이다. 가설이 확증되고 안 되고는 결국 증거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증거란 무엇이며 어떤 것이 증거가 될 수 있을까? 증거란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것, 일반적으로 동의되고 있는 것이라고 이해해도 상식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겠으나, 철학적 관점에서는 그러한 상식적인 이해만 가지고서는 증거의 성격을 충분히 드러낼 수 없다. 철학적 관점에 서면 아무 문제도 없어 보이는 상식에도 사실은 적잖은 문제점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질 수 있다. 증거에 대한 상식적 견해에 어떤 문제점이 따르는지 잠시 살펴보기로 하자.
가설이란 일단 경험적 내용을 가진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자. 따라서 그러한 경험적 내용의 가설을 확증시켜 줄 증거 역시 경험적인 것이어야 할 것임은 물론이다. 다시 말하여 증거는 어떤 식으로든 경험에 호소하여 그 진위가 확인될 수 있는 성격의 진술로 표현되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이다. 그러한 진술은 확실한 것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그 진술이 관찰자의 직접적인 감각경험을 기술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철학자들의 입장은 대체로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한편으로 증거진술은 확실한 것이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직접적인 경험에 관한 진술이어야 한다는 입장이 있는가 하면 , 또 다른 한편으로는 증거진술이 확실한 것일 필요는 없고 다만 물리적 상태를 기술하는 것이면 족하다는 입장도 있다.
먼저 가설을 확증시켜줄 증거가 확실성을 가져야 하고 또 그 증거는 관찰자 자신의 직접적인 감각경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을 살펴보자. 이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가설의 확증이나 확률은 가설 자체만으로는 성립 안되고 오직 실제의 증거와 관련하여서만 의미를 가진다. 증거가 달라지면 가설이 확증되는 정도, 즉 확률도 변할 수 있다. 동일한 가설이라도 주어진 증거에 따라 상대적으로 그 확증도가 달라진다. 따라서 어떤 가설을 확증시켜줄 증거가 확실한 것이라면 그 가설의 확률도 그만큼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 반대로 주어진 증거가 확실한 것이 아니라면 가설에 대한 신빙도도 그만큼 약해질 것이다. 그러므로 가설이 믿을만한 것이 되려면 그것에 대한 증거가 확실한 것이어야 한다.
이와 같은 주장의 밑바닥에는 토대가 되는(foundational) 믿음 또는 지식이론이 전제되어 있다. 지식이론에서 토대주의란 간단히 말하여 지식이 지식으로 정당화되기 위해선 궁극적인 토대가 있어야 하고 이 토대는 그 자체로 정당화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이론을 가설에 적용시키면 가설에 대한 경험적 증거는 그 자체가 또 다른 가설의 성격을 띠어서는 안되고 다른 데 의존하지 않고 그 자체로서 확실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토대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그 문제란 과연 어떤 것이 그러한 성격을 가진, 즉 그 자체로서도 정당화되는, 또는 그 자체로서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있는지 하는 문제이다. 일상적으로 접하는 중간 크기의 사물들을 기술하는 진술이 그러한 성격의 증거가 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고, 물리적 사물에 대한 진술은 언제나 틀릴 가능성을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또 하나의 가설에 불과하다는 이유로 최종적인 증거의 역할을 할 수 없고 오로지 지금 여기에서 내가 직접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에 관한 진술만이 그러한 토대로서의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직접적인 감각경험에 관한 진술이 과연 그 정당성을 더 물을 수 없는 최종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이 있어 왔다. 이러한 논란과 연관하여 아예 토대주의의 입장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견해도 있다. 위에서 말한 두 번째 입장이 바로 이러한 견해를 취한다. 이 견해에 의하면 직접적인 경험에 관한 것이든 물리적 사물에 관한 것이든 도대체 절대적으로 확실한 토대가 되는 진술을 찾겠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가설을 확증시켜줄 증거란 물리적 사물에 관한 것이면 족하다는 것이다. "이 막대는 5 미터이다", "리트머스 시험지가 붉게 변했다" 등과 같은 관찰에 근거한 '물리주의적' 진술(observational or physicalistic statement)이면 충분히 증거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입장에도 문제는 따른다. 이 입장은 무엇보다 먼저 증거로 여길 수 있는 진술과 그렇게 여길 수 없는 진술간에 분명한 구분이 어렵다는 문제를 일으킨다. 증거가 될 수 있는 진술은 물리적 사물에 관하여 직접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것들에 관한 진술이라고 하였지만 '직접적으로 '관찰 가능한'이라는 개념부터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증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진술과 그렇지 못한 진술을 명확히 가려낼 수 있는 척도가 되지 못한다. 어떤 경우가 관찰 가능한 경우고 또 어떤 경우가 관찰 가능하지 않은 지부터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증거 진술과 증거 진술이 아닌 것을 구별해 주는 명확한 척도가 없다면 증거와 가설간의 구분도 모호해진다. 어떤 진술을 증거로 보아야 할 것인지 아니면 가설로 보아야 할 것인지는 자의적인(arbitrary) 문제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되면 가설을 확증하는 절차도 자의적인 것이 되 버리고, 따라서 과학활동 자체의 존립근거도 위태로워진다.
III. 가설-연역적 방법
가설을 확증하는 논리적 방법을 보통 '가설-연역적 방법'(hypothetico-deductive method)이라고도 부른다. 이 방법이 사용되는 영역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과학의 영역에서는 특히 많이 사용된다.
가설-연역적 방법이란 위에서 말한 대로이다. 간단하게 다시 말하자면 그 절차는 다음과 같다. 어떤 가설이 참인지 아닌지를 알기 위하여 그 가설로부터 어떤 예측이 나올 수 있는지를 알아본다. 만약 그 예측이 참인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 가설이 확증되었다고 할 수 있고 거짓으로 판명된다면 확증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가설-연역적 방법을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것으로서 과학자들이 하는 실제 추론과는 거리가 있을 수 있다.
역사적인 예를 한 가지 들어보자. 갈릴레오는 지구와 다른 위성들이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가설에 근거한 어떤 예측이 참인지 아닌지를 점검하기 위하여 망원경을 사용하였다. 망원경이 발명된 1609년 이전에 프톨레미(Ptolemy),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브라헤(Tycho Brahe) 등의 세 가지 천체 이론이 있었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을 발견하지는 않았지만 동일한 해에 스스로 망원경을 고안하여 천체를 관측하는 데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그가 이 도구를 고안한 직후에 그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만약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옳다면 태양과 지구 사이에 있는 금성도 우리에게 달과 유사한 모양의 변화(전부 다 보이는 상태로부터 전혀 보이지 않는 상태까지)를 겪는 것으로 비치지 않겠느냐는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러한 제안을 확인해보기 위하여 갈릴레오는 몇 달 동안 금성을 관찰해 보았다. 그 결과 그는 금성도 달과 같이 시기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화를 겪는다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다. 이 관찰적 자료를 그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옳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하였다.
가설-연역적 방법을 이해하기 위한 첫 걸음으로서 위의 갈릴레오의 추리를 다음과 같은 논변 형식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겠다. 그의 가설은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옳다"가 되겠다. 이 가설에 근거하여 그는 관찰에 의하여 검증될 수 있는 "금성도 여러 가지로 변화된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라는 예측을 도출하였다. 따라서 그의 논변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만약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옳다면 금성은 여러 가지로 변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금성은 여러 가지로 변화된 모습을 보인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은 옳다.
이 논변에서 첫 번째 전제는 조건문이다. 이 조건문의 전건(antecedent)은 가설이고 후건(consequent)은 예측이다. 두 번째 전제는 그 예측이 사실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결론은 가설이 참임을 주장하고 있다. 이 논변을 일반화시킨다면 다음과 같다.
만약 그 가설이 참이라면 그 예측도 참이다.
그 예측은 참이다.
따라서 그 가설은 참이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의 논변에는 문제가 하나 따른다. 형식상으로만 보자면 명백히 후건 긍정(affirming the consequent)의 오류를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다음과 같다. 위의 논변이 형식상의 오류에 해당된다는 지적은 그것이 연역논변이라는 전제 하에서이다. 실제로 그 형식은 연역논변의 형식으로 보인다. 형식이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논변의 이름에도 '연역'이라는 말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사실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다시피 이 논변을 연역논변으로 볼 수는 없다. 논변을 하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는 논리 외적인 문제라 따지기 어렵겠지만 실제 과학적 추리를 하고 그것에 근거하여 어떤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그러한 논변으로 의도하는 바는 연역적이기보다는 귀납적인 경우가 더 많다. 따라서 위의 논변이 그 형식으로 보아서는 연역논변 같아 보이더라도 내용상으로는 귀납논변으로 보아야 합당하다. 엄밀하게 말한다면 위의 논변 형식에서 결론이 '그 가설은 참이다'가 아니라 '그 가설은 확증되었다'로 바뀌어져야 할 것이고, 그렇게 바뀌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가설은 참이다'라는 결론을 '그 가설은 확증되었다'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처럼 확증이란 진리의 절대적 보장이 아니라 긍정적인 귀납적 지지를, 그리고 반 확증은 부정적인 귀납적 지지를 뜻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가설-연역적 방법은 기본적으로 연역법과는 다르다.
그러나 여하튼 부당한 연역논변의 형식을 가진 논변을 귀납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어쩐지 좀 이상해 보일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비단 위의 형식의 연역논변뿐만 아니라 모든 부당한 형식의 연역논변이 다 귀납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해 보이든 아니든 이 문제에 관해서는 여기서 더 이상 신경을 쓸 필요는 없겠다. 가설을 확증하기 위하여 실제로 사용되는 추론형식은 사실은 단순한 후건 긍정의 형식을 가진 논변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제 확증논리가 어떤 복잡성을 갖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IV. 가설-연역적 방법의 복잡성
가설-연역적 방법에서 연역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은 그 논변의 전체적인 구조가 아니라 가설과 그 가설로부터 연역되는 관찰 가능한 예측간의 연결부분이다. 가설과 예측간의 연결을 연역적이라 함은 전건(가설)이 참이라면 후건(예측)이 거짓일 수 없음을 뜻한다. 이 조건문장이 바로 확증논변의 전제가 된다.
1) 부수적 가설
갈릴레오의 가설을 검증할 때 그 가설을 예측과 연역적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가정이 요구된다. '부수적 가설'(auxiliary hypothesis)이라 불리는 이 가정은 예측이 가설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려면 참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추가적인 가정은 겉으로 진술되지 않고 생략되는 것이 보통이다. 진술되지 않는 이유는 그러한 가정은 관찰이나 실험의 조건에 관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론적 배경의 한 부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수적 가설은 원래의 가설을 검증하는 맥락에선 보통 참인 것으로 여겨지지만 다른 맥락에선 그 자체도 검증을 받아야 할 경우도 있다. 갈릴레오의 실험에서 가정된 부수적 가설 중의 하나는 "금성은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다"는 것이었다. "망원경은 천체를 관측하는 데 믿을만한 도구다"라는 것도 부수적 가설이다. 이 부수적 가설들이 생략되지 않고 진술된다면 갈릴레오의 논변의 전제는 다음과 같은 조건문장으로 표현된다.
만약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옳고 망원경이 믿을만한 관찰도구이며 금성이 지구 와 태양 사이에 있다면 금성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 다.
부수적 가설에는 두 가지 주요 유형이 있다. 한 유형은 적합한 검증조건(proper testing condition)에 관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 유형의 부수적 가설은 검증에서 사용될 모든 장비나 재료들이 적절하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검증의 결과를 관찰하는 사람이 그 결과를 올바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인지 하는 문제에 관련된다.
또 다른 유형의 부수적 가설은 이론적 배경지식(theoretical background knowledge)에 관한 것이다. 대개의 가설검증은 참이라고 가정된 다른 주장의 배경에 반대하여 수행된다. 의약품들의 치유력에 관한 가설들을 검증할 때 생리학과 분자생물학의 어떤 이론들이 참이라고 가정된다. 광학이론은 현미경이나 망원경을 사용하는 검증에선 어디에서나 중요한 배경적 역할을 한다. 이론적 지식이 그 자체 검증되지 않고 다른 가설을 검증하는 데에 참이라고 가정된다면 이 가정은 바로 부수적 가설의 한 유형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망원경을 사용한 갈릴레오의 실험에서 망원경이 과연 믿을만한 도구인지에 대한 의문, 즉 그가 사용한 부수 가설 자체에 대한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실제로 갈릴레오의 발견에 이러한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많았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갈릴레오는 카톨릭 교회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다. 이 논쟁에서 갈릴레오는 금성의 변화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목성을 도는 위성, 그리고 달 표면에 있는 많은 산까지도 관찰할 수 있었던 망원경을 실지로 비판자에게 내보이면서 한번 들여다보라는 권고를 하였다. 그러나 많은 비판자들은 무엇이 정말 있는지 없는지를 망원경만 믿고서는 결정할 수 없다는 이유, 즉 망원경을 통하여 보여지는 것은 진정한 관찰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한번 들여다보기도 거절하였다.
갈릴레오가 살았던 시대에 망원경에 대해 제기되었던 물음들은 대개 이론적인 것들이었다. 다시 말하여 망원경의 관찰도구로서의 적합성뿐만 아니라 망원경 제작을 가능하게 하였던 광학 원리들 자체도 당시의 주도적 학자들에게 의문시되었다. 볼록렌즈로 사물을 보면 사물의 제 모습이 안보이고 어떤 형태로든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이는데 그 볼록렌즈를 두개씩이나 겹쳐 만들어진 망원경이 어떻게 멀리 있는 것까지도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인지가 그들의 의문이었다. 널리 유포되어 있는 믿음이 새로운 검증에 의하여 뒤집어지려 할 때 그 검증의 부수적 가설이 의심을 사는 경우가 많다.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옳다고 믿었던 사람들과 옳지 않다고 믿었던 사람들 간의 논쟁에서 가정으로 사용된 부수적 가설들이 옳은지 아닌지는 어느 쪽에서도 의문시되지 않았다. 예컨대 어느 누구도 금성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다는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 가설은 당시의 모든 이론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이 확증논리에서 부수적 가설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무시될 수 없기에 이에 따라 앞에서 소개한 가설-연역적 추론의 가장 단순한 형식은 이제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바뀌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만약 H이고 A1,.....,An이라면 P이다.
P는 참이다.
따라서 H와 A1,......,An은 참이다.
H는 검증될 가설을, A1,......,An은 부수적 가설들을, 그리고 P는 관찰 가능한 예측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형식의 논변도 역시 연역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또 다른 개선이 필요하다.
2) 대안적 가설
부수적 가설을 첨가한 형태의 논변도 가설논리의 복잡성을 충분히 반영해 주지 못한다. 그 주된 이유는 대안적 가설(alternative hypothesis)의 중요성을 설명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안적 가설이란 부수적 가설과 더불어 원래의 가설에서 나올 수 있는 바와 정확하게 동일한 관찰적 예측을 낳을 수 있는 가설을 말한다.
갈릴레오의 시대에 당시의 주도적 과학자들에 의하여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세 개의 천체이론들이 제안되었다. 프톨레미의 이론과는 달랐던 티코의 이론은 금성의 모습변화에 대하여 갈릴레오가 관찰한 바와 동일한 예측을 하였다. 티코의 이론은 당시의 망원경을 사용하여 확보될 수 있는 모든 점에서 코페르니쿠스의 이론과 일치하였다. 앞에서 소개된 확증논리는 거기에 부수적 가설을 첨가하더라도 동일한 예측을 낳는, 그러면서도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설이 있다면 그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지에 대해선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티코의 이론도 또 코페르니쿠스의 이론도 모두 금성의 모습변화에 대한 동일한 예측을 하였는데 두 이론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문제를 더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인간이 언제 처음으로 아메리카대륙을 밟았는지는 쉽게 답을 찾기 힘든 질문 중의 하나이다. 베링 해협을 건너 아시아로부터 왔으리라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것이 언제부터인가? 약 만 이천 년 전 베링 해협의 양쪽 대륙 곳곳에 인간들이 흩어져 살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는 많다. 아마도 소수의 아시아인들이 건너와 오랜 기간을 통해 전 북미대륙으로 퍼졌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만 이천 년 이전에는 북미대륙 어느 곳에도 인간이 살았음을 가리키는 증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몇 십 년 전 두 명의 고고학자가 "인간들이 이만 칠 천 년 전 알래스카에 살았다"는 가설을 확증해주는 중요한 발견을 하였다. 그들은 인간들에 의하여 도구로 사용되었으리라고 여겨지는 매머드의 뼈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매머드의 뼈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쉽게 부러지는 상태로 변하기 때문에 인간들이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였다면 적어도 매머드가 살았던 시대에 인간들도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 도구화된 뼈들을 과학적으로 면밀히 조사한 결과 매머드가 대략 이만 칠 천 년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많은 고고학자들은 이 뼈의 발견을 인간들이 이만 칠 천년 전에 북미 대륙에 살았다는 가설을 확증해 줄 증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은 다른 대안적 가설도 유효하다고 지적하였다. 즉 그 뼈가 이만 칠 천년 전에 죽은 동물 의 것이긴 하지만 그것이 툰드라 지방에서 약 만 오 천 년 가량 얼어 있었다는 가설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약 만 이 천년 전 그것이 새로 이주한 인간들에 의하여 발견되어 도구로 만들어졌으리라는 추론도 또한 가능해진다. 매머드의 뼈가 부서지기 쉽지만 얼은 상태에서 보관되면 상당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도구화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이 대안적 가설이 언뜻 보아 좀 지나친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최근 오랫동안 얼어 있었던 매머드들이 시베리아 대륙에서 발굴된 적이 있다. 그 살은 식용화 되었고 그 상아들은 시장에서 팔렸다. 또 매머드들이 어떤 먹이를 먹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하여 위가 검사되었고 뼈는 도구로 만들어졌다. 따라서 만 이 천년 전에도 이 지역에 인간들이 살았다는 가설을 지지해 줄 증거가 사라진 셈이다. 고고학자들은 매머드 뼈들이 도구화되기 이전에 만 오 천년 동안 얼어 있었다는 가설이 이 지역에 이만 칠 천 년 전부터 인간들이 살았다는 가설보다 더 그럴듯하다고 믿게 되었다.
다시 원래의 문제로 되돌아 가보자. 위의 예 대로라면 다른 가설들로부터 동일한 예측이 나올 때 검증이 이루어지기 이전에 더 그럴듯해 보이는(또는 더 높은 선확률 prior probability을 가진) 가설이 확증된 가설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선(先) 확률(가설이 그것에 대한 검증을 고려하기 이전에 참일 확률)이 확증논리에서 하는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선 확률은 여러 개의 대안적 가설들 중에서 어떤 것이 검증에 의하여 확증될지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줄뿐만 아니라 어떤 가설이 검증해 볼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하는 데에도 도움을 준다. 만약 어떤 가설의 선 확률이 매우 낮다면 과학자들은 애써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여가며 그 가설을 검증해 볼 필요를 못 느낀다. 반대로 어떤 가설의 선 확률이 높다면 설혹 검증이 성공을 못하더라도 부수 가설들을 첨가하면서 그 '가설의 구제'(save the hypothesis)를 위하여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태양중심 이론지지자들과 지구중심 이론지지자들 간의 논쟁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이 처음으로 출간된 이후 근 100년 간이나 계속되었다. 그 대부분 기간동안 선 확률은 지구중심 가설을 지지하였다. 그러나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과 운동법칙이 나와 지구중심 가설에 치명타를 입혔다. 지구중심 이론에서 요구되는 운동은 불가능함을 증명한 이 법칙들은 거의 모든 과학자들에 의하여 받아들여졌다.
하나의 가설이 가진 선 확률이 어느 정도인지는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그 전의 연구나 검증까지도 어떤 가설의 확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미 잘 확립되어 있는 과학이론과 양립 가능한 가설의 선 확률은 그렇지 않은 가설의 선 확률보다 높다. 믿을만한 '권위'에 의하여 제안된 가설은 보통사람들에 의하여 제안된 가설보다 더 큰 선 확률을 가진다. 선 확률의 측정은 대체적으로 밖에 할 수 없는 경우가 있고 양적으로 정확한 수치로 나오는 경우도 있다.
3) 귀납적 확증논변의 형식
이제 가설확증에 사용되는 추론의 구조가 어떠한지 알아보자. 그것은 확증논변을 단순한 조건논변으로 취급한 초기의 가설-연역적 형식과 같이 그렇게 단순하지는 않다. 새로운 형식은 조건적 논변이 가설에 관한 추론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가설확증논변이 전체적으로는 귀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음도 드러내 줄 것이다.
가설확증논변의 구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1. 애초에 가설이 그럴법하다(어느 정도의 선 확률을 가지고 있다).
2. 가설과 그 부수적 가설이 모두 참이라면 관찰 가능한 예측도 참이다.
3. 관찰 가능한 예측이 참이다.
4. 원래의 가설보다 더 높은 선 확률을 가진 어떤 다른 대안적 가설도 없다.
5. 따라서, 그 가설은 참이다.
이러한 형식의 확증논변에서 전제는 4개이다. 첫째 전제는 검증되어야 할 가설의 선 확률을 진술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전제들은 단순 조건논변에서의 전제들과 동일하다. 네 번째 전제 역시 선 확률에 관한 진술이다. 즉 만약 다수의 대안적 가설들이 검증된다면 가장 높은 확률을 가진 것으로 드러나는 가설이 가장 잘 확증된 가설이다. 다수의 가설들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예측은 그 각각의 가설들을 모두 확증한다. 그러나 검증하기 전에 가장 확률이 높았던 가설이 검증 후에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남는다. 확률의 이 서열이 변화되는 유일한 경우는 부정적(반증) 증거가 나올 경우뿐이다. 이 점에 관해서는 V절에서 자세하게 다루겠다.
"그 가설은 참이다"라는 것이 확증논변의 결론일지라도 확증논변이 귀납논변이므로 전제가 결론을 지지해 주는 강도가 다양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검증되어야 할 가설보다 약간 낮은 선 확률을 가진 다른 대안적 가설들이 있을 경우 원래 가설이 참임을 보이는 논변은 그렇게 강하지 못하다. 이 경우 그 가설은 검증된 후 검증되기 이전 보다 약간 더 지지도를 높였을 뿐이다. 다른 대안 가설이 분명히 없을 경우에는 그러한 논변은 강하다고 할 수 있다.
확증논변으로 어떤 가설이 얼마나 강하게 지지를 받는지의 문제와 관련하여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사항은 가설 자체의 성격이다. "부엌에 쥐가 한 마리 있다"와 같은 낮은 차원의 경험적 가설은 몇 가지 간단한 증거만으로도 강하게 지지될 수 있다. 그러나 코페르니쿠스의 가설과 같은 이론적인 가설은 몇몇의 관찰만으로는 강하게 확증되지 않는다. 증거의 유형, 증거의 양과 질 등이 복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즉 가설의 성격이 어떠하냐에 따라서는 이미 확증된 가설이라 할지라도 차후에 새로운 증거의 추가로 인하여 그 가설의 확증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귀납논변은 그 성격상 새로운 증거의 추가로 인하여 더 강해질 수도 더 약해질 수도 있다.
4) 인과적 가설의 확증
우두의 공격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된다는 가설의 확증은 의학사에서 유명하다. 수세기 동안 의사들은 천연두를 막을 길을 찾아 왔다. 이 병은 전염성이 매우 강해 20세기 이전까지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대유행하였고 불과 몇 년 전 까지도 세계의 많은 곳에서 이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콜럼버스를 따라 미 대륙으로 온 사람들 중에서 이 병을 가지고 온 사람들이 있어 그 병에 한번도 걸려 본 적이 없었던 인디언들이 수없이 죽었다. 이제는 이 병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졌지만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었었다. 이 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사람은 평생 면역력이 생긴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선 이병이 가볍게 지나간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 우유 농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이 병과 비슷하지만 훨씬 더 약한 병에 걸렸다. 이 새 병은 사람 뿐 아니라 소도 걸리기 때문에 '우두'라 명명되었다. 그 지방에 살았던 의사 Jenner는 우두의 공격이 그 병의 재발은 물론 천연두까지도 면역시켜준다는 그 지역사람들의 믿음을 알게 되었다. Jenner는 이 믿음(가설)을 검증해 보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우두에 걸린 한 소년에게 천연두 접종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그 소년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았다. 천연두에 대한 면역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가설은 확증되었다.
앞에서 말한 확증논리의 형식에 따라 Jenner의 논변을 재구성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1. "우두의 공격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생기게 한다"는 가설은 그럴 법하다(어느 정도의 선 확률을 가지고 있다.)
2. 만약 이 가설이 옳다면 그 소년에게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있을 것이다.
3. 그 예측, 즉 그 소년에게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이 있을 것이라는 예측은 참이다.
4. 이 가설보다 더 높은 선 확률을 가진 어떤 대안적 가설도 없다.
5. 따라서 우두의 공격은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을 생기게 한다.
Jenner의 이 가설은 인과적 가설이다. 우두의 공격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력 생성의 원인이다. 그런데 인과적 가설은 검증하기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어떤 사건에 대해선 보통 가능한 여러 가지의 원인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천연두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은 자연적으로 면역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검사 대상이었던 그 소년도 그러한 사람에 해당되기에 면역력이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 소년은 천연두에 대한 자연적인 면역력을 가지고 있다"는 또 다른 인과적 가설도 원래의 가설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예측을 낳는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대안적 가설도 가능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이 가설은 원래의 인과적 가설보다는 훨씬 낮은 선 확률을 가진다는 데 있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이 병과 관련하여 자연적 면역은 비교적 드물다고 알려져 있다.
연습문제 1
다음의 각각에서
(1) 가설들을 확인해라.
(2) 가설로부터 따라나오는 어떤 관찰 예측을 진술해라. 당신의 예측을 위해 요구되는 보조 가설들을 확인해라.
(3) 관찰된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대안 가설을 형식화해라.
(4) 원래의 가설과 당신이 제안한 대안 가설 사이의 (개략적으로, 비수치적으로) 선행 확률을 비교해라. 당신의 확률 할당이 근거하는 것들을 지적해라. (예를 들면, 당신은 H가 확립된 과학 이론과 정합적이기 때문에 그 가설에 높은 선행 확률을 할당할 수 있다. 혹은 당신은 H와 유사한 종류의 가설들에 대한 과거의 경험을 근거로 하여 H에 낮은 선행 확률을 할당 할 수 있다.)
1. 의학자들은 최근 젊은이와 중년의 사람에게 나타나는 심각한 심장 발작 발병률이 세계의 어떤 지역보다도 핀란드의 특정한 작은 지역에서 훨씬 크다는 것에 주목했다. 이 지역 사람들 대부분은 벌목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의 음식은 많은 양의 고기와, 계란과, 크림과 케이크로 -이것들은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이다- 이루어져 있다. 의학자들은 높은 심장 발작 발병률의 원인이 음식이라고 믿는다.
답:
(1) 콜레스테롤이 높은 음식이 그 지역 사람들의 높은 심장병 발병률의 원인이다.
(2) 관찰 가능한 예측 : 이 지역 사람들의 콜레스테롤이 낮은 음식으로의 대체는 심장 발병률의 감소를 가져올 것이다.
보조 가설 : (음식의 어떤 다른 요소보다) 콜레스테롤이 심장 발작과 관련되어 있다.
(3) 대안 가설 : 심한 노동이 높은 심장 발작 발병률의 원인이다.
(4) 현재의 의학은 원래의 가설에 높은 확률을 부여한다.
3. S. J. Gould의 책 The Mismeasure of Man의 "The Real Error of Cyril Burt"라는 제목을 가진 장에서, Gould는 "지능 검사"를 개발한 어떤 연구자의 견해를 논의하고 있다. Burt의 가설에 대한 질문에 답해라.
[Burt]는 유태인의 지적 성취에 대해 놀라면서, 부분적으로 그것이 운동장으로부터 그들을 떨어지게 하고, 회계 책에 집중하도록 만드는 유전적인 근시안에 부분적으로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한다.
답:
(1) 유태인의 지적 성취는 (부분적으로) 유전된 근시안에 의해 야기된다.
(2) 관찰 가능한 예측 : 무작위로 선택된 근시안인 비-유태인들로 구성된 샘플은 근시안이 아닌 비-유태인들의 대조되는 샘플보다 더 높은 지적인 사람들을 포함할 것이다.
보조 가설 : 스포츠에 적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적인 연구에 관심을 기울인다.
(3) 대안 가설 : 높은 지적 성취는 평균 이상의 지적 능력에 의해서, 그리고 지적 성취에 높은 가치를 두는 환경에 의해서 야기된다.
(4) 원래의 가설은 낮은 선행 확률을 가진다. 이 주제에 대한 Burt의 이론은 "괴짜 crank"의 가장자리에 있고, 어떤 다른 증거도 그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
연습문제 2
1. 다음의 Martin Gardner의 Fads and Fallacies로부터 발췌된 예에서,
a. 문제되는 가설을 확인해라.
b. 추론에서의 어떤 잘못을 확인해라.
스미스는 감기에 걸려 오랫동안 앓고 있었다. 그는 전에 들은 적이 있는 새 의사를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 의사의 방법은 정통적인 것이 아니지만, 누가 강력하게 추천했다. 그 의사는 스미스의 감기가 자신의 처방에 따르면 나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의사의 처방은 스미스가 그의 신발과 양말을 벗고, 10분 동안 그의 다리에 적외선을 비추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매번 15불의 비용으로 몇 번의 치료를 받았다. 약 일주일 후, 스미스의 감기는 사라졌고, 그는 그 의사의 치료 효과를 선전하는 사람이 되었다.
V. 반 확증
과학적인 가설은 증명(prove)될 수 없고 오직 반증(disprove)만 될 수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통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가설을 확증하려 하기보다는 반증(falsify)이나 반 확증(disconfirm)을 시도하는 것이 좋다는 것도 통설이다.
프톨레미의 이론에 의하면 금성은 그 변화하는 모습 전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금성은 그 이론에 따르면 항상 기우러진 모양만 가진다. 갈릴레오는 "프톨레미의 이론이 옳다"는 가설을 반 확증시키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논변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이 가설로부터 연역적으로 나오는 예측은 "금성은 그 변화하는 모습 전체를 드러내지 않는다"이다.
만약 프톨레미의 이론이 옳다면 금성은 그 변화하는 모습 전체를 드러내지 않는다.
금성은 그 변화하는 모습 전체를 드러낸다.
따라서 프톨레미의 이론은 옳지 않다.
이 논변은 첫째 전제의 후건을 부정하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형식의 논변이다. 따라서 가설을 확증하는 경우와 반 확증하는 경우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즉 후자는 연역적으로 타당한 논변이지만 전자는 귀납에 의존해야 한다. 바로 이 차이점 때문에 과학자들은 반 확증의 방법에 더 많은 관심을 두어 왔다. 이 방법은 특히 어떤 가설들은 분명하게 옳지 않음을 연역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에 옳지 않은 가설들이 이러한 방식으로 제거되고 나면 옳은 가설이 최종적으로 남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해준다는 점에서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예컨대 지구중심 가설이 연역적으로 거부된다면 태양중심 가설이 자동적으로 실격승하게 된다. 그러나 이미 살펴 보았듯이 어떤 가설의 제안자는 불리한 예측으로부터 그 가설을 방어하고자 생긴 부수적 가설들만 거부함으로써 원래의 가설은 '구제'(save)시키고자 한 경우를 우리는 역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프톨레미의 이론이 지금은 천문학자들에 의하여 거부되지만 갈릴레오가 살았던 당시에는 그 이론의 선 확률이 너무나 높아 천체망원경에 의한 관찰의 결과에도 잘 무너지지 않았다. 이를 다음과 같은 논변으로 나타낼 수 있다.
만약 프톨레미의 이론이 옳고, 천체망원경이 믿을만한 관찰도구라면, 그리고 금 성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다면, 금성은 그 변화하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 이다.
금성은 그 변화하는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프톨레미의 이론이 옳지 않거나 천체망원경이 믿을 수 없거나 아니면 금 성이 지구와 태양 사이에 있지 않다.
이 논변의 결론에 대하여 대부분의 갈릴레오 시대 사람들은 프톨레미의 이론보다는 천체망원경의 신뢰성을 거부하고자 하였다.
위 논변의 일반적 형식은 다음과 같다.
만약 H이고, 또 A1.....An이라면 P이다.
P는 거짓이다.
따라서 H가 거짓이든지 A1......An이 거짓이든 지이다.
이 형식의 논변에서 결론이 연역적으로 타당하게 도출되었다. 그러나 그 결론은 가설을 단순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에서 주장되는 바는 가설이 거짓이든지 아니면 부수적 가설들 중의 어느 것이 거짓이든 지이다.
실제 과학에서 단순히 '가설을 구제하기 위해서' 어떤 부수적 가설을 부인하는 것은 적합한 일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것이 보통이다. 가설이 좋아서 단순히 그것을 건드리지 않기 위하여 부수적 가설을 임의로 거부 또는 첨가하는 것은 '애드 혹 추론'(ad hoc reasoning)이라는 이름의 오류로 간주된다. 그러나 어떤 경우가 '임의적'인지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갈릴레오는 그의 반대자들이 천체망원경을 들여다보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그들이 임의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반대자들은 그들이 굴곡된 렌즈가 상을 왜곡시킨다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따라서 천체망원경을 통하여 보더라도 그것이 갈릴레오의 주장을 지지해주지는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이 임의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부수적 가설이 문제시되고 검증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은 물론이지만 원래의 가설이 그런 것처럼 그것 하나만 독립해서 검증될 수는 없다. 다른 부수적 가설들과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가설의 거부도 그것을 입증하는 것만큼이나 단순하지 않다.
부수적 가설들이 받아들여졌다 하더라도 틀린 가설들을 제거함으로써 옳은 가설을 연역적으로 확실하게 도출하는 일이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제거되어야 할 가능한 거짓가설들의 수는 이론적으로 무한하다. 물론 우리가 실지로 검증해 볼만하다고 생각하는 가설들이야 그렇게 많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꼭 검증될 필요가 있는 가설들을 간과하거나 알지 못하고 지나칠 수가 있다. 있을 법한 가설이 꼭 두 개뿐이어서 그 중의 하나를 거부하게되면 자연히 다른 하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란 극히 드물다. 예컨대 설혹 갈릴레오가 프톨레미의 가설을 거부하는 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바로 그럼으로써 코페르니쿠스의 가설이 입증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지구 중심적인 티코의 가설도 금성의 모습변화와 양립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습문제
다음의 문제들에서 반증되는 가설을 확인하고, 초기 확률과 반증하는 관찰, 대안적 가설을 언급하는 반증 논증을 재구성하라.
1. 한 학생이 선생님에게 시험치는 기간에 가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여행이 있다고 말한다. 그 학생은 시험 치러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은 그 학생이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고 추측했다. 그리고 시험이 끝난 직후, 그 선생님은 학생회관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그 학생을 보았다.
답:
가설: 그 학생은 가족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여행을 떠나서, 그 시험을 보러 나오지 않았다.
(선행적인 개연성을 가진다. 그 학생의 말과 참을 말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라는 보조 가설 위에서 이 가설은 그를 듯하다.)
반증하는 관찰: 그 학생이 학생회관에서 목격되었다.
대안 가설: 그 학생은 시험 칠 준비가 되지 않았다.
3. 뜸은 회저병에 대한 유일하게 알려진 치료였다; 가끔 그 병의 환자는 뜸에 의해 나았고, 때때로 회색 종기가 다시 나타났다. 대부분의 외과의사들은 병원의 회저병과 다른 패혈증성 질병의 원인에 대해 추적하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 병들을 피할 수 없는 재앙으로 여겼다. 그러나 Young Lister는 [Joseph Lister, 1827-1912, 그는 방부제를 도입하는 것에 의해 외과 수술을 혁신적으로 개혁했다] 뜸 치료의 결과를 조사하여, 그 병의 원인이라고 대부분의 의사들이 추측한 공기중의 산소에 모든 환자들이 노출되었지만, 어떤 환자는 회복되었고 어떤 다른 환자는 회복되지 않았다면, 산소는 원인일 수 없다고 추론했다.
- A. Young, The Men Who Made Surgery
답:
가설: 공기 중의 산소는 회저병을 치료하기 위한 뜸이 실패하는 원인이었다.
(뜸 치료 후 회저병이 재발하는 모든 경우에 산소의 노출이 있었기 때문에 이 가설은 개연성을 가진다.)
반증하는 관찰 : 산소는 항상 있었지만, 어떤 경우 회저병은 치료되었고, 다른 어떤 경우에는 치료되지 않았다.
대안 가설 : 산소와 다른 어떤 것이 회저병을 재발하도록 야기했다.
4. 연구자들은, 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B형 간염 백신이 면역 결핍 증후군과 관련 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지난 7월 일반적으로 이용 가능하게 된 그 백신은 간염의 한 공통된 유형 - 간 염증을 야기하는 바이러스 전염 - 을 막는다.
그 백신이 투약된 200,000 명 이상의 사람들 중, 단지 118명이 병에 걸렸다. 병에 걸린 그 사람들 중 56명은 그 백신과 관련이 없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단지 6명만이 심하게 아팠다고 보고되었다.
연구자들은 7월 이후로 백신을 맞은 사람들 중 어떤 사람도 면역 결핍이 나타나지 않았고, 연구 처음에 그리고 백신을 맞는 기간 동안에 동성 연애를 한 두 남자의 경우에만 면역 결핍증이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1981년에 처음으로 허가된 B형 간염 백신은 B형 간염을 가진 기증자(그들 대부분은 동성연애자이다)의 혈장으로 만들어진다. 기증자의 대부분이 동성연애자이기 때문에, 그 백신이 면역 결핍증과 연결될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그 연구자들은 보고했다.
7. 1678년에, 네덜란드 물리학자 Christian Huyghens는 [빛이 입자로 구성되어 있다는 공인된 이론과 반대로] 빛이 작은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제안했다. 만약 빛이 파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빛이 공기 속보다 굴절되는 매질에서 이동 속도가 더 늦다면, 굴절 매질을 통한 빛의 다양한 굴절 양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 굴절양은 파동의 진폭에 따라 변할 것이다: 파장이 짧으면 짧을수록 굴절은 클 것이다. 이것은 (가장 잘 굴절되는) 보라 빛이 푸른 빛 보다, 푸른빛은 녹색 빛보다 더 짧은 파장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이 색깔을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파장의 차이 때문이다. 그리고 물론 빛이 파동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두 개의 광선은 어려움 없이 겹칠 수 있을 것이다. (음파와, 물결 파는 그것들의 동일함을 잃지 않고 겹칠 수 있다.)
그러나 호이겐스의 파동 이론이 매우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왜 빛이 직선으로 이동하고, 분명한 그림자를 던지고, 물결 파와 음파가 하듯이 장애물을 돌아갈 수 없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더군다나, 빛이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빛이 태양과 별들로부터 우주 공간을 통해 우리에게 오듯이, 어떻게 진공을 여행할 수 있는가? 어떤 매질을 통해 빛은 이동하는가?
-I. Asimov, The Intelligent Man's Guide to the Physical Sciences
VI 베이즈의 확증이론
확증논변과 반 확증 논변이 선 확률에 대한 고려가 추가되고, 또 필요한 확률들이 양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면 베이즈의 정리(Bayes's Theorem) - 확률의 수학적 계산에 관 한 정리 - 가 확증과 반 확증 논변에 대한 형식적 모형을 제공해 준다.
1. 베이즈의 정리
확률계산은 이미 알려진 확률에 근거하여 아직 안 알려진 확률을 계산하는 데 사용된다. 예컨대 개별 연언지(連言肢)의 확률이 알려져 있을 때 연언명제에 대한 확률을 계산하기 위하여 소위 '곱셈규칙'(multiplication rule)을 사용할 수 있다.
Pr(h1 and h2/e) = Pr(h1/e) x Pr(h2/e and h1)
이미 정해진 정보를 갖고 아직 나오자 않은 결과의 확률이 얼마나 될지가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예컨대 카드놀이에서 에이스가 나올 확률을 알고 싶어 할 경우), 결과를 이미 관찰하고 난 후에 어떤 정해진 틀에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를 알고 싶어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동전을 네 번 던져 모두 머리 쪽이 나왔다면 우리는 그 동전이 정상적인 동전인지 궁금해한다. 베이즈의 정리는 이러한 경우에 사용된다. 즉 이미 어떤 확률들이 알려져 있을 경우 소위 "역"(inverse) 또는 "시행후"(post-trial) 확률을 계산하는 데 사용된다.
따라서 베이즈의 정리가 사용될 수 있기 위해선 선 확률이 먼저 알려져 있어야 한다. 위의 예에서 우리는 그 동전이 정상적일 선 확률과 비정상적일 선 확률을 알 필요가 있다.(비정상적이라 함은 동전이 편편하지 않고 어느 쪽으로 약간 구부러져 있어 던졌을 경우 일정한 쪽이 쉽게 나올 수 있도록 되어 있음을 말한다). 이러한 선 확률은 계산에 의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배경지식에 의하여 부여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를테면 그 동전이 은행에서 거스름으로 받은 것이라면 정상적인 동전일 선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고, 동전치기 하는 노름꾼으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정상적일 선 확률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볼 수 있다. 그 동전이 노름꾼에서 얻은 것이어서 정상적인 동전일 선 확률이 0.1밖에 안 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 동전이 정상적이든지 비정상적이든지 둘 중의 하나이므로 비정상적일 선 확률은 0.9가 되는 셈이다.
그 다음 그 동전이 정상적일 때 관찰된 결과(네 번 다 머리가 나왔다는 결과)가 나올 확률과 그 동전이 비정상적일 때 그러한 결과가 나올 확률도 알 필요가 있다. 그 동전이 정상적이라면 네 번 연달아 머리가 나올 확률은 (1/2)4, 즉 0.0625가 된다. 반면에 그 동전이 던져서 머리 쪽이 쉽게 나올 수 있도록 휘어져 있다면 연달아 머리 쪽이 나올 확률은 1이다. 머리 쪽이 나오도록 휘어져 있다는 가설에서 네 번 다 머리 쪽이 나왔다는 결과가 연역적으로 도출된다면 그 확률은 1이 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또 하나 그 가설이 참인지 아닌 지와 무관하게 그 관찰된 결과가 일어날 확률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확률을 일컬어 결과에 대한 '전체적 확률'(total probability)이라 한다. 예컨대 두개의 바구니 (h1)과 (h2) 중에서 눈을 감고 공을 꺼냈을 경우 그 공이 흰 공일(e) 확률을 알고자 한다고 하자. 각 바구니가 선택될 확률은 각각 1/2로서 동일하다. (h1에 대한 선 확률은 h2에 대한 선 확률과 같다) 그러나 h1에는 50개의 흰 공과 50개의 검은 공이 들어 있고 h2에는 75개의 흰 공과 25개의 검은 공이 있다고 해보자. 꺼낸 공이 h1에서였다면 그 공이 흰 공일 확률은 1/2이지만 h2에서였다면 그 확률은 3/4가 된다. 따라서 어느 바구니에서 꺼냈는지와는 상관없이 흰 공이 나올 전체적 확률은
<Pr(h1) x Pr(e/h1)> + <Pr(h2) x Pr(e/h2)>
즉 이 경우 <1/2 x 1/2> + <1/2 x 3/4> = 5/8이다.
마지막으로 베이즈의 정리는 문제되는 가설의 선 확률이 0보다는 클 때만 적용될 수 있다. 베이즈 정리의 수학적 공식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노름꾼으로부터 얻은 동전이 정상적인 것인지 아닌 지의 문제로 돌아가자. h를 "그 동전은 정상적이다"라는 가설을 가리키고 e를 "네 번 연달아 머리 쪽이 나왔다"는 증거를 가리킨다고 하자. 따라서 Pr(h)는 h가 참일 선 확률이고 Pr(-h)는 -h가 참일 선 확률이다. 또 Pr(e/h)는 그 동전이 정상적인 것일 경우 네 번 다 머리 쪽이 나올 확률이고 Pr(e/-h)는 그 동전이 정상적인 것이 아닐 경우 네 번 모두 머리 쪽이 나올 확률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Pr(h/e)는 우리가 계산해내고자 하는 역(逆) 확률, 즉 네 번 모두 머리 쪽이 나왔을 경우 그 동전이 정상적인 것일 확률을 말한다.
베이즈의 정리. Pr(h)가 0이 아니라고 가정하고
Pr(h) x Pr(e/h)
Pr(h/e) = --------------------------------------------
<Pr(h) x Pr(e/h)> + <Pr(-h) x Pr(e/-h)>
(이 식에서 분자에 나타난 확률은 e에 대한 전체적 확률이다. 즉 어느 가설이 참인 지와는 관계없이 네 번 다 머리 쪽이 나올 확률이다.)
이 등식에다 앞에서 부여된 수치들을 대입하면
0.1 x 0.0625
Pr(h/e) = -------------------------------- = 0.0068
<0.1 x 0.0625> + <0.9 x 1>
0.0068은 h의 후(後) 확률(posterior probability)인데 이는 그 가설의 선 확률인 0.1보다 훨씬 낮다. 다시 말하여 네 번 던져 네 번 다 머리 쪽이 나왔다는 증거가 있기 전에는 h의 확률이 0.1이던 것이 그 증거가 있고 난 후에는 0.0068로 대폭 낮아져버렸다. 이는 즉 그 동전이 정상적인 동전일 것이라는 가설을 반 확증한 셈이다.
연습문제 1
1. 어떤 대학에 다니는 300명의 신입생 중, 100명은 서울 거주자가 아니고, 200명은 서울 거주자이다. 비-서울 거주자의 50명이 차를 가지고 있고, 서울 거주자의 50명도 차를 가지고 있다.
a. 한 학생이 무작위로 선택된다면(즉, 각각의 학생이 선택될 동일한 확률을 가진다면), 다음의 확률을 알아내라:
(1) 차가 없는 비-서울 거주자를 선택할 확률.
답 : 100/300 × 50/100 = 1/6
(2) 차가 없는 서울 거주자를 선택할 확률
답 : 200/300 × 150/200 = 1/2
(3) 차가 있는 학생을 선택할 확률
답 : 1/3
b. 무작위로 선택된 한 학생이 차가 있다면, 다음의 확률을 구하라.
(1) 그 학생이 비-서울 거주자일 확률
답: 1/3 × 1/2 1
---------------------------- = ----
(1/3 × 1/2) + (2/3 × 1/4) 2
(2) 그 학생이 서울 거주자일 확률.
답 2/3 × 1/4 1
--------------------------- = ----
(2/3 × 1/4) + (1/3 × 1/2) 2
3. 게임의 목적은 각각 100개의 공을 포함한 2개의 항아리 중 하나로부터 흰 공을 꺼내는 것이다. 그 한 항아리는 75개의 흰 공과 25개의 검은 공을 포함하고 있다. 다른 항아리는 25개의 흰 공과 75개의 검은 공을 가지고 있다. 공정한 주사위를 던져서 나오는 결과가 그 공을 어느 항아리에서 꺼내는지를 결정한다. 만약 그 주사위를 던져 나온 결과가 6이라면, 75개의 흰 공을 포함한 항아리에서 공을 꺼낸다. 만약 6이외의 다른 결과가 나온다면, 25개의 흰 공을 포함한 항아리로부터 공을 꺼낸다. 당신이 그 게임을 하기로 했다고 가정하자.
a. 당신이 75개의 흰 공을 포함한 항아리로부터 공을 꺼낼 선행 확률은 얼마인가?
1/6
b. 단지 25개의 흰 공을 포함한 항아리로부터 공을 꺼낼 선행 확률은 얼마인가?
5/6
c. 만약 당신이 75개의 흰 공을 포함한 항아리로부터 꺼낸다면, 흰 공을 꺼낼 가능성은 얼마인가?
3/4
d. 만약 당신이 단지 25개의 흰 공을 포함한 항아리로부터 꺼낸다면, 흰 공을 꺼낼 가능성은 얼마인가?
1/4
e. 당신이 흰 공을 꺼낼 총 확률(어떤 항아리가 선택되든지 상관없이 흰 공을 꺼낼 확률)은 얼마인가?
1/6 × 3/4 + 5/6 × 1/4 = 1/3
f 당신이 이 게임을 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 이 게임을 했고, 검은 공을 꺼내어서 잃었다고 가정하자. 그 사람의 공이 75개의 흰 공들과 25개의 검은 공들을 포함한 항아리로부터 나왔을 확률은 얼마인가?
1/6 × 1/4 1
-------------------------------- = ------
(1/6 × 1/4) + (5/6 × 3/4) 16
연습문제 2
1. 20명의 미국 여성들 중 약 1명 꼴로 50세 이전에 유방암이 발생한다. 어머니가 유방암에 걸린 여성들은 그 위험이 더 높아진다(10명중 1명 꼴). 초기 발견이 사망을 방지하는 데 중요하다. 의사가 비싸지 않고, "해롭지 않은" 초기 경고 스크린 테스트를 고안했다고 가정하자(이 테스트는 X-선이나 어떤 외과수술 기법을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테스트의 신뢰성이 매우 높은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20퍼센트의 거짓인 결과를 산출했다. 테스트가 긍정적일 때, 환자는 X-선을 포함한 더 많은 테스트를 받도록 권고된다. 50세의 그리펜 부인은 어떤 증상도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가족 중 유방암을 가진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스크린 테스트를 고려하고 있다.
a. 그리펜 부인이 유방암을 가질 선행 확률은 얼마인가?
답 : 0.05
b. 그리펜 부인이 그 테스트를 받았고,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다고 가정하자. 그녀가 유방암을 가질 후행 확률은 얼마인가?
답 :
0.05 × 0.80 0.04
----------------------------- = ----- = 0.17
(0.05 × 0.80) + (0.95 × 0.20) 0.23
2. 당신은 당신의 차와 같은 모형의 모든 차들이 차체 현가 장치 문제를 고치기 위해 리콜이 실시된다는 발표를 들었다고 가정하자. 이 모형의 차들은 두 공장에서 생산되었다: X와 Y. 당신은 당신의 차를 생산한 공장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공장 X는 그 모형의 약 80퍼센트의 차들을 생산하고, 공장 Y는 단지 20 퍼센트만을 생산한다. 그 자동차 회사는 공장 Y에서 생산된 차들의 약 90퍼센트가 차체 현가 장치의 문제를 가지고 있지만, 공장 X에서 생산한 차들의 약 50퍼센트가 이 문제를 가진다고 추정하였다.
a. 당신이 가진 차의 차체 현가 장치에 문제가 검출될 확률은 얼마인가?
(0.8 × 0.5) + (0.2 × 0.90) = 0.58
b. 당신의 차가 테스트되기 위해 입고되었고, 차체 현가 장치 문제가 있다는 것이 발견되었다고 가정하자. 당신의 차가 공장 X에 의해 생산되었을 확률은 얼마인가?
(0.8 × 0.5)
------------------------ = 0.69
(0.8 × 0.5) + (0.2 × 0.9)
3. 최근의 통계에 의하면, 전원에 사는 흡연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0.00065이다. 도시에 사는 흡연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0.00085이다. 도시 지역의 비-흡연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0.00015이다; 반면에, 전원의 비-흡연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0.00001이다. 전 인구의 약 70퍼센트가 도시에 살고, 약 30퍼센트가 전원에 산다. 도시 거주자의 20퍼센트가 흡연자이고, 전원 거주자의 10퍼센트가 흡연자라고 가정하자.
a. 도시 거주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얼마인가?
(0.2 × 0.00085) + (0.8 × 0.00015)
b. 전원 거주자가 폐암으로 사망할 확률은 얼마인가?
(0.1 × 0.00065) + (0.9 × 0.00001)
c. 어떤 사람이 폐암으로 죽었다는 정보만이 주어졌을 때, 이 사람이 도시 거주자일 확률은 얼마인가?
0.7 ×
d. 한 도시 거주자가 폐암으로 죽었다는 정보만이 주어졌을 때, 이 사람이 흡연자일 확률은 얼마인가?
4. 살인이 행해졌고, 경찰은 정황 증거에 의해 두 명의 용의자를 지목했다. 그 두 명의 용의자는 외모에서 유사하지만, 한 사람은 빨간 머리카락을, 다른 사람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 경찰은 그 두 용의자들 중 한 명이 거의 확실히 살인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전과 기록을 가진 빨간 머리카락의 사람이 유죄일 가능성이 높다고(80퍼센트) 추측한다. 범죄 현장으로부터 달아나는 사람을 본 목격자는 그 사람이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법정에 서게 되었다. 변호사는 그 목격자의 신뢰성을 위해 테스트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따라서 테스트가 시행되었다. 범죄가 발생한 상황과 유사한 상황에서 그 목격자는 갈색과 빨간색을 구별하는 데 약 90퍼센트 옳았다.
a. 목격자의 그 테스트를 고려하고 경찰에 의해 주어진 선행 확률을 받아들일 때, 그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유죄일 확률은 얼마인가?
답: 9/13
b. 만약 그 목격자가 테스트에서 갈색과 빨간색을 구별하는 데 50퍼센트 옳았다고 한다면, 그 갈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유죄일 후행 확률은 얼마인가?
답 : 1/5 = 0.2
VII 요약
이 장의 주제는 확증논리였다. 확증논리의 방법론은 직접적 관찰로 확인될 수 없는 주장은 그 주장에 기초하여 내려진 관찰 가능한 예측이 참인지 거짓인지 따져봄으로써 귀납적으로 지지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거부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다. 확증은 과학적 추론에서도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확증은 귀납논변 뿐만 아니라 연역논변도 이용할 때가 있지만 그 전체적인 구조는 귀납적인 것이다. 귀납적 추론의 형식에 의하여 도달된 결론은 그 전제들이 모두 참이라도 거짓일 수 있다. 관찰한 바에 근거하여 관찰되지 않은 것에 관한 주장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매우 확증도가 높다고 생각되는 주장도 미래의 관찰에 의하여 무너질 수 있다. 가설-연역적 확증법에 관한 몇 가지 공식들이 고려되었으나 이것들이 건전한 과학적 실천을 반영하려면 추가적으로 선 확률과 대안가설의 역할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III에서 비형식적으로 논의되었고 VI에서는 형식적으로 고찰된 베이즈의 확증모형이 바로 그러한 추가적인 점까지 고려된 가설-연역적 확증법의 한 예이다.
이 장에서 논의된 주요개념들에 대하여 간략한 정의를 내리자면 다음과 같다.
애드홐 추리(ad hoc reasoning): 단순히 선호하는 가설을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부수적 가설을 임의로 배제하거나 추가할 때 생기는 오류.
대안가설(alternative hypothesis): 검증될 문제의 가설과는 구별되나 문제의 가설과 동일한 예측을 낳는 가설.
부수적 가설(auxiliary hypothesis): 어떤 가설을 검증하는 맥락에서 참이라고 추정되는 (진술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주장. 부수적 가설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하나는 실험이나 관찰의 조건들이 정상적이라는 주장이고 둘은 배경이론이 참이라고 가정하는 이론적 부수 가설이다.
베이즈의 확증법(Bayesian Confirmation): 가설-연역법과 마찬가지로 가설과 부수적 가설로부터 도출되는 예측들을 고려하는 확증법. 베이즈의 확증법은 또 문제의 가설뿐만 아니라 대안 가설들의 선확률들도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문제의 가설이 대안가설들 보다 더 높은 선확률을 가진다면 그 가설은 참인 예측에 의하여 확증된다. 확률에 일정한 수치가 부여될 수 있을 때 베이즈의 정리는 베이즈의 확증에 대한 양적 모형을 제공해 준다.
확증(confirmation): 가설에 대한 귀납적 지지. '확증'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점진적인(incremental) 의미와 절대적인(absolute) 의미가 그것이다. 검증에 의하여 그 가설의 확률이 높여질 때 사용되는 '확증'은 점진적인 의미를 가진다. 반면 어떤 가설에 대한 반대 증거가 전혀 발견되지 않고 따라서 그 가설에 대한 지지가 매우 강할 때의 확증은 절대적인 의미의 확증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의미로 확증된 가설이 거짓으로 판명될 가능성은 항상 있다.
결정적 검증(crucial test): 두 개의 그럴법한 그러나 서로 양립 불가능한 가설 중의 하나를 확증해주거나 반확증해주는 검증.
반확증(disconfirmation): 가설의 거부에 대한 귀납적 지지. '확증'과 마찬가지로 '반확증'도 점진적인 의미와 절대적인 의미 두 가지로 사용된다.
가설: 그것으로부터 어떤 예측이 가능한지 또 그 예측이 참인지 아닌지를 고려함에 의하여 검증되어야 할 문장.
가설-연역적 방법(hypothetico-deductive method): 어떤 가설로부터 관찰 가능한 예측을 도출해냄으로써 그 가설을 검증하는 방법. 이 방법의 가장 단순한 형태에 의하면 만약 예측이 참이라면 가설이 확증되고 반대로 예측이 거짓이라면 가설은 반확증된다. 현실적으로 사용되는 과학적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그 가설이 애초에 어느 정도 있을 법한 것인지도 고려하고 또 그 가설 말고도 다른 가설도 동일한 예측을 낳는다는 점등을 고려함으로써 단순한 형태의 방법이 보충되어야 한다.
후확률(posterior probability): 어떤 가설을 검증한 결과까지 고려한 후 그 가설이 참일 확률.
선확률(prior probability): 검증을 해보기 이전에 가설이 가지는 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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