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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2/가족 법론

제5장 법의 발전

by FraisGout 2020. 5. 10.

    @[(20) 제1절 서설@]
법은 사회발전의 소산이다. 원시사회의 미분화적 사회규범으로부터 싹튼 법은 문화의 발달에 따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여 왔다. 즉, 원시사회에서 성립된 사회적 규범은 부족사회에서 다시 수정, 확대되고, 부족사회에서의 사회규범은 고대국가로 넘어와 다시 변경되어 새로운 시대의 사회에 적합한 규범, 즉 법으로 전화하였다. Pound의 “법은 안정을 요구하나 정지됨을 허용하지 않는다.” 라는 말처럼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법의 발전은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사회가 있는 곳은 어느 곳이나 법은 존재하나, 법의 발달사는 주로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으므로 여기서도 이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21) 제2절 법의 생성@]
원시사회에서는 특별한 사회규범이 분화, 발달하지 못하고 있었으며, 당시의 사회를 규율한 규범은 신비한 영적인 힘에 의해 지배되는 종교적 성향이 짙은 습속이었다. ‘원시인은 습속의 노예’ 라고 말하여 지듯이, 습속은 원시사회생활을 규율하는 유일한 규범이었고, 오늘날과 같이 법, 관습, 도덕, 종교 등으로 분화된 순수한 형태가 아니라 서로 미분화된 상태에서의 혼합된 규범이었으며, 이를 원시적 규범이라고 한다. 사회학적 연구에 의하면 법의 생성은 주로 토템, 타부, 복수, 탈리오 등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p96
   I. 토템
토템은 본래 아메리카토인의 토어였던 것이 현재에 이르러서는 사회학상의 용어가 되었다. 원시사회에서는 특정한 조, 수, 초목과 같은 자연물 가운데 어떤 것을 그 사회에 속하는 사람들의 조상이라고 믿어 그것을 숭배하였다. 또 숭배의 대상물을 그들의 집단의 표상으로 하고, 또 그들은 그 동식물의 정령을 받고 있다고 믿었다. 이로써 그들은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정신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이러한 제도를 토템이즘(Totemism) 이라 하고, 그 동식물의 자연물을 토템(Totem) 이라고 한다. 토템이즘은 오늘날도 아프리카의 일부 미개인들에게서 볼 수 있다. 토템이즘사회에 속하는 동식물은 절대로 먹지 못하고 또 동일 토템에 속하는 남여는 결혼도 할 수 없다. 이러한 것은 오늘에 있어서 법령으로 동식물의 보호를 명한다든가 또는 근친혼을 금한다든가 등에 직, 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II. 타부
타부(Taboo) 란 원래 태평양군도의 폴리네시아(Polynesia) 족의 토어로서, 영어의 프로히비트(Prohibit, 금지한다) 라는 동사에 해당하는 말인데, 사람들이 손을 대어서는 안되는 신성한 또는 청정한 대상을 말한다. 원시사회에 있어서는 특정한 사람이나 사물과의 접촉이 금지되고, 만약 이러한 금지사항을 위반하면, 그 위반한 개인은 물론 종족이나 사회 전체에 초자연적인 힘의 제재에 의하여 질병, 불행, 죽음 등의 재앙이 온다고 믿었다. Taboo의 대표적인 대상은 나무, 존장의 신체와 거소, 임신중의 여성 등이었다. 예컨대 벌채해서는 안될 나무가 있으면 그것은 ‘타부나무’ 이다. @p97
그런데 원시인들은 ‘타부나무’ 를 잘라서는 안된다는 금지이유를 의식하지 못하고 또 의식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이것이 타부의 특징이다. 존장의 신체나 거소는 존장의 자기보존을 위하여 설정한 것이지만 원시사회에서는 존장에 대한 복종이 절대 필요하였기 때문에 타부가 되었다. 또 남녀관계가 자유방종적이면 그로 인하여 질투, 원한, 증오가 증대하여 그 사회를 구성하는 성원 서로를 응집하는 힘이 약화될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정력이 왕성한 독신남녀의 접촉을 금지코자 ‘양성상피의 타부’ 도 발생하였다. 이 외의 Taboo로는 사자, 월식, 산악, 존장의 소지품 등 여러 가지가 있으며 Taboo는 보통 존장의 선언 또는 표시로 결정하였다.
Taboo를 위반하는 행위는 반사회적 행위로 되어 처벌되었다. 그 처벌은 법적인 것이 아닌 자연적으로 내려진다고 믿었다. 즉, 형법의 어떤 규정에 의하여 벌받는 것이 아니라, 질병 그 밖의 불측의 재난 등에 의하여 신벌을 받게 된다고 두려워하였다. 이리하여 Taboo가 하나의 사회규범으로서의 기능을 한 점을 부정할 수는 없다. 즉, Taboo 그 자체는 비합리적인 것이라고 하여도 엄연히 미개사회에서의 도덕적 규범으로서의 측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존장의 지배권이나 재산권을 옹호하기도 하고 또 남녀관계를 조절하는 기능도 하였던 것이다.
   III. 복수
타인으로부터의 침해에 대한 보복은 인간의 본능적 요구로서, 원시사회에 있어서는 개인적 복수 또는 혈족복수나 부락복수가 공공연하게 행해졌다. 어떤 개인 또는 집단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으로부터 침해를 받았을때, 피해자측은 가해자측에게 보복함으로써 그 침해에 대한 제재를 가하였다. 이러한 복수제도는 타인에게 가해를 하면 가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가 속한 혈족단체원 또는 부락원 전원이 보복을 당한다고 생각하여 서로 경계를 하였으므로 위하적 예방이 성립하게 되었다. 따라서 결과적으로 복수제도는 원시사회의 질서유지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복수에 나타난 응보의 관념은 오늘날 형법사상의 기원으로 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p98
   IV. 탈리오
탈리오(Talio) 란 ‘눈에는 눈을, 이에는 이를’ 이라는 법언이 말하듯이, 피해자가 입은 피해와 동일한 정도의 손해를 가해자에게 가하는 동해보복(대등보복) 을 말한다. 이것은 원시사회에 있어서 정의관념이 소박하게 표현된것으로서 무제한한 복수를 허용하던 단계에서 한걸음 발전한 문화적 발전단계에서 볼 수 있는 법칙이며, 형법상 응보사상의 가장 소박한 하나의 형태이기도 하다. 이것은 가해자의 가해와 피해자의 복수가 균형을 취하도록 하여 응보적 정의의 감정을 충족시킴으로써 사투를 금지케 하는 것이므로 여기에는 가해자의 재복수가 허용되지 아니한다. 이와 같은 Talio의 법칙은 고대 함무라비법전, 모세법전, 로마의 12표법 등에서 볼 수 있다.
   V. 도둔읍
원시사회에 있어서의 질서유지에는 토템, 타부, 복수, 탈리오 등의 규범들에 의하여 주로 이루어져 왔다. 그러나 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이들 규범들에 대한 일정한 제한이 가해지게 되었다. 일정한 제한에 대하여 특별한 역할을 한 대표적인 것으로 헤브라이(Hebrai) 법계에서 인정한 도둔읍(City of refuge) 을 들 수 있다. 이것은 구약성서(주 1) 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인데, 죄인이 그곳에 도망해 오면 제재를 면할 수 있는 피난처이다(주 2).
* 주 1: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선정하여 부지중 살해한 자를 도망케 하라.... 도망하는 자는 그 성읍 장노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피의 복수자가 그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지니,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여호수아 #20:2~9절 참조) 이 외에도 민수기 #35:9~12절, 신명기 #4:4, 동 #19:3~4절 등에서도 볼 수 있다.
* 주 2: 우리 나라에서도 삼한시대에 마한에서는 ‘소도’ 라 하여 천신을 제사하는 별읍이 있었는데 죄인이 이곳에 도망하여 오더라도 돌려 보내지 않았다고 하므로, ‘소도’ 가 일종의 도둔읍(도피 또는 도피처) 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정봉휘 신법학통론, 창문각, 1985, 198면). @p99
도둔읍은 가해자의 가해가 고의인가 과실인가에 따라 그 책임이 달라져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차별없이 보복 또는 복수하는 것의 불합리성을 시정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가해자를 이 피난처에서 보호할 것인가 아니할 것인가는 그 피난처의 장노가 결정했다. 이곳에서 주로 과실범을 옹호하였고, 이 제도에 의하여 재판의 시초가 되었으며, 나아가 법규범도 점차 구체적인 형태로 변화되어 갔다.
   VI. 공권력에 의한 제재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그 사회의 조직이 강화되고, 사회단체의 중심권력에 의하여 강행되는 법이 일반의 습속으로부터 분화, 발달하였다. 이에 따라 법은 단순한 사회규범으로부터 탈피하여 공권력에 의하여 강제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국가라는 정치단체가 출현하게 되면서 종래의 토템, 타부, 탈리오, 복수 또는 도둔읍의 형식으로 존재하던 사적 제재가 국가가 발동하는 공권력에 의한 형벌 및 배상제도를 확립시켰고, 이것은 형사법, 민사법으로 발전되었다. 이와 같이 법은 원시사회에서의 사적 제대가 시대의 변천을 거쳐 국가권력에 의한 제재, 재판으로 공권력화 하여 점차로 국가사회생활에서의 법규범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22) 제3절 법의 발전@]
법은 오랜 역사 속에서 많은 변천을 겪으면서 발전, 형성된 것이다. 과거에도 고대의 법에 관한 연구가 많았지만, 특히 법의 역사적 변천과정이 체계적인 연구의 대상이 된 것은 19세기 초, 역사법학파((83) III 5, (87) IV 참조) 가 나타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법은 사회에서 조직적인 정치권력을 갖는 통치단체가 등장하면서 다른 사회규범으로부터 분화하여 그 독자적 영역을 갖기 시작하였다. 즉, 원시사회가 고대사회로 접어들면서 법의 분화가 이루어져, 이후의 중세사회, 근대사회, 현대사회로의 사회적 변천과 함께 법의 발전이 이루어진 것이다. @p100
   I. 고대사회의 법
  (1) 법의 분화: 원시사회에서 고대사회로 접어들면서 정치권력을 지닌 통치단체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의 사회생활은 대체로 맹목적인 종교상의 신앙에 의하여 질서가 유지되었다. 그렇지만 인간의 욕망이 점차 증대되고 또한 개인의식이 각성됨과 함께 사회생활관계는 더욱 복잡하게 되고 개인과 개인, 계급과 계급사이의 이해의 대립이 격화되자 명백한 규범의식을 기초로 하는 사회생활상의 규율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종교, 관습 등으로부터 법의 분화현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 있어서 법의 일반적인 특색은 법의 내용에 종교적, 관습적, 도덕적 요소가 많이 혼합되어 있는 점이었다. 따라서 엄밀한 의미에서는 법과 다른 규범이 불완전한 분화의 상태로 사회를 규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법은 주로 관습법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었지만 성문법이 제정되기도 하였으며, 시대의 발전에 따라 대규모의 법전이 편찬되기도 하였다. 이 당시의 성문법들 가운데서는 세계 최고의 법인 함무라비법전(Code of Hammurabi) (주 3), 고대인도의 마누법전(Code of Manu) (주 4), 모세의 계율(Decalogue of Mose) 등이 유명하다.
* 주 3: 함무라비 법전: 이 법전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왕 때(B. C. 1728~1688) 제정된 법전으로서 높이 2.25m의 석주에 계형문자로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샤마슈신으로부터 법전을 받는 그림이 조각되어 있으며, 이것은 고대법의 특징인 법신수사상을 의미한다. 이 법전은 282개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계급적 법제도, 신판, 동해형 등의 고대적 잔재가 있지만, 농경사회의 법 외에 운송이나 중개 혹은 내해항행의 상사규정을 정하고 있고, 실체적 규정 특히 사법규정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절차적 규정과 종교적 색채의 규정이 적은 것이 특색이다.
* 주 4: 마누법전: 이 법전은 법률 종교율, 도덕율, 의예율을 포함하는 인도 고대의 계율집으로서 기원전 200년경에 편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법전도 신이 법전을 Manu에게 전하고 또 Manu가 이것을 사람들에게 전하였다는 뜻을 기록하고 있으므로 법신수사상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인도신화에 의하면 법의 전수자 Manu는 최초의 인간이며 인류의 조상이라고 한다. 이 법전은 시가체로 쓰여져 있으며, 전 12장 중 8장, 9장에 법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p101
  (2) 고대로마법
초기의 로마법은 관습법으로 발달하였으며, 이것을 성문법으로 제정한것이 12표법(Law 12 of Table) (주 5)이다. 그리고 농업국시대의 고유한 시민법(ius civile) (주 6 ) 과 그 후 지중해제국을 건설하여 상업국시대의 만민법(ius gentium) (주 7)이 있다. 이들 법은 종교, 관습, 도덕 등의 규범으로부터 불완전 하게나마 분화되어 그 자체가 사회를 통제하는 기능을 하였다. 제정시대에는 포고의 형식으로 성문법이 제정되었고, 특히 하드리아누스 (Hadrianus)대제는 법학자의 학설을 해답권(ius respondendi) 이라 하여 법과 동일한 효력을 인정함으로써 법학의 많은 발전을 가져왔다. 그 후 유스티니아누스 (Justinianus) 황제는 당시의 학설법,제칙법 등을 통일, 정리하여 유스티니아누스법전 (Corpus Iuris Civils) (주 8) 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로마에 있어서 법이 발달한 정점을 이루었으며 오늘날 대륙법계의 사법의 기초가 되었다. Jhering은 로마는 세계를 세 번이나 지배하였다고 하였는데 “처음에는 무력에 의하여, 두 번째는 종교에 의하여, 세 번째는 법률에 의하여 재배하였다”고 비유함으로써 로마법을 찬양하였다. 고대로마법은 오늘날 특히 대륙법계에 속한 법제에 있어서 영향을 받지 아니한 국가가 없을 정도로 법문화 발달에 큰 공헌을 하였다. 로마법은 대체로 강한 개인주의적 성향을 띠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 주 5: 12표법: 12표법은 기원전 약 450년 경에 편찬된 로마 최초의 법전으로 12장의 목판에 기록되었다. 12표법은 당시의 귀족과 평민사이의 계급투쟁의 산물로서 평민의 법적 지위를 보장하였다. 12표법은 주로 기존의 관습법을 성문화한 것으로서 로마법의 기초가 되었으며, 소송법, 사법, 형법, 신법 등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소송법에 있어서 엄격형식주의를 취하고 있고, 사법에 있어서는 상린관계 기타 토지를 둘러싼 법율관계에 관하여 많은 규정을 두고 있으며, 형법에 있어서는 탈리오의 법칙을 채택하고 있다.
* 주 6: 시민법: 시민법은 로마의 관습 및 법학자의 해석으로 이루어진 법으로서 로마 시민에게만 적용되었다. 그 내용은 주로 신분법에 관한 것이었고 엄격형식주의에 기초하였다.
* 주 7: 만민법: 만민법은 로마가 농업 위주에서 지중해제국을 건설하여 상업국시대에 들어서자 로마 시민뿐 아니라 로마 시민권이 없는 외인에게도 적용시키기 위하여 제정된 법이다. 만민법은 신의의 사상을 기초로 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주로 거래법으로서 자유로운 비형식주의의 경향을 띠고 있으며, 세계적인 의의를 가지는 로마채권법의 중심을 형성 하였다.
* 주 8: 유스티니아누스법전: 이 법전은 유스티니아누스제가 533년부터 565년에 걸쳐 편찬, 발표한 모든 법령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후대에 로마법대전(Corpus Iuris Civilis)으로 불리웠다. 이 법전은 학설을 집성한 학설휘찬(Digesta), 법의 원리를 논한 법학제요 (Institutions), 칙법을 종합한 칙법휘찬(Codex), 법전의 완성 후 대제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공포된 칙법을 모은 신칙법(Novellae) 등 4 부의 약 900종으로 구성되었으며, 후세 각국의 법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p102
  (3) 고대 게르만법
고대 게르만인은 오랫동안 씨족사회, 부족국가사회를 유지하면서 주로 농경생활을 하였다. 따라서 법은 씨족단체 중심의 전통적인 관습법이 전부였다. 고대 게르만법은 농업법으로 특징지울 수 있으며, 단체주의적 성향이 강하였다.
   III. 중세사회의 법
  (1) 교회법 등
중세는 게르만 부족국가시대로부터 중앙집권적 군주국가의 형성기에 이르는 시대로서 게르만인이 유럽 각지로 이동을 한 후 부족단체를 형성하면서 게르만부족법(주 9)이 성립되었다.
또한 이 시대는 봉건제도가 성립됨에 따라 엄격한 신분관계를 규율하는 봉건법(Lehnrecht) (주 10) 이 발달하였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특히 기독교의 세력이 강하여 교회법(Canon law) (주 11) 이 세속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교회법은 사회의 거래관계를 규율하기에는 적당치 않아 상인단체의 자치법규가 제정되었다. 특히 지중해, 대서양, 북해 등의 항구를 중심으로 상사 및 해상에 관한 관습법이 발달하였으며, 그리고 이탈리아 등의 도시에서는 자치법규로서 도시법(Stadtrecht) (주 12) 이 제정 되었다.
* 주 9: 게르만부족법: 중세초기 프랑크시대에 있어서의 게르만 제부족법으로, 당해 부족에게만 적용되는 속인법이다. 이 법은 고대게르만법의 전통을 보유하는 동시에 로마법이나 기독교회의 고전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5세기에서 9세기까지 성행하였다. 이 법의 내용은 속죄금에 관한 형사규정과 소송법의 규정이 많다.
* 주 10: 봉건법: 8, 9세기경에 봉건제도가 성립되면서 종래의 전통적인 부족법과는 달리 봉건군주와 봉신간 또는 봉신 상호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이다. 이 법은 10세기에서 12세기 까지에 걸쳐 융성하였으며, 엄격한 신분관계를 유지하였다.
* 주 11: 교회법: 크리스트교가 크게 보급됨에 따라 로마법왕의 교서와 종무협의회의 결의에 의거한 법으로서, 교회의 조직과 활동을 규율한다. 교회법에는 교회의 내부에서 자주적으로 정립되어 교회의 조직이나, 교회와 신도와의 관계를 규율하는 것(내부적 또는 고유의 교회법) 과 국가에 의하여 정립되어 국가와 교회와의 관계를 규율하는 것(외부적 또는 국가적 교회법)이 있다. 내부적 교회법에는 이자금지 등의 규정이 포함되어 있다.
* 주 12: 도시법: 13세기 이래 경제발전과 함께 많은 도시들이 봉건귀족의 지배를 이탈하여 독립된 정치단체로서 성립되고 그 도시에서만 적용되는 특별법이다. 이 법의 법원은 도시의 영주로부터 부여된 특허장이나 도시의 자주적 입법인 조례 등이었다. 이 법은 순수 재산법의 확립에 기여한 바가 크며, 공, 사법을 막론하고 근대법의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p103
  (2) 로마법의 계수
서로마제국이 멸망하자 로마법은 지방적 관습법 속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초에 걸쳐 주석학파 (Glossatoren) 의 로마법 연구를 출발로 하여 로마법은 새로운 인식이 이루어졌다. 특히 후기주석학파 (Postglossatoren) 의 체계적 주석에 의해 로마법은 실용화되었다 ((86) III 참조). 이러한 로마법은 독일에 계수되어 보통법 (gemeines Recht) 을 이루었으며, 보통법은 게르만고유법과 공존하여 1900년 1월 1일에 독일민법전이 시행될 때까지 적용되었다. 한편 프랑스의 경우는 개별적 계수가 있었으며, 1804년 나폴레옹법전 제정시 대폭 채용하였다. 이러한 로마법의 계수는 중앙집권적 근대국가나 자본주의적 경제의 생성발전과 함께 하는 것이며, 문예부흥, 종교개혁과 더불어 중세 말기의 정신사적 운동의 일환을 이룬, 실로 세계사적인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3) 보통법과 형평법
영국에서는 11세기 윌리엄 1세가 노르만왕조를 수립하여 법을 통일하기까지 대륙의 속인주의적인 게르만 부족법의 영향을 받았다. 그 후 보통법재판소(court common law) 에 의해 판례법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보통법이라고 한다. 보통법은 그 강인성으로 말미암아 점차 탄력성을 잃게 되어 시대의 요청에 적응하지 못하여 형평법이 나타났다((25) II (1) 참조).
  (4) 엄격법시대
중세사회의 법은 법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그 내용이 신분적, 고정적이어서 탄력성을 잃었으며, Pound가 지적한 바와 같이 고정적이어서 엄격법(strict law) 시대를 이루었다.
   III. 근대사회의 법
14세기에서 16세기 까지에 걸친 르네상스 (Renaissance) 와 종교개혁운동을 통하여 싹튼 개인의 자각과 상공업의 비약적인 발달에 따른 시민의 지위향상은 사상적으로 개인주의, 자유주의 이성주의를 불러 일으켰다. @p104
이러한 사상의 영향으로 봉건사회제도는 붕괴되고 근대적인 시민사회가 성립하였다(주 13). 시민사회는 만인의 평등을 기조로 하여 각인의 자유와 권리의 보장을 기본적인 조직이념으로 하였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원칙으로 하여 성립,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이들 개인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등의 이념은 근대국가의 성립과 발전의 이론적 근거가 되었다. 근대국가의 법은 국민에 의하여 정립되게 되었고, 법은 개인을 자유, 평등한 권리능력자로 하는 시민법으로서의 성격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사상적, 사회적 배경 아래 근대국가는 국가의 입법권에 의하여 성문법화하고 법치주의의 원리가 근대법질서를 지배하였다. 대표적인 성문법으로는 1628년, 1689년의 영국의 권리청원 (Petition of Right) 과 권리장전 (Bill of Right), 1776년 미국 버지니아헌법, 1787년 미합중국헌법, 1791년 프랑스헌법, 1794년 프로이센 일반란트법 (Allgemeines Landrecht) (주 14),1804년 프랑스민법 (나폴레옹 민법전) (주 15), 1896년 독일민법전 (주 16) 등이 있다.
* 주 13: 시민사회는 처음에는 중앙집권적 절대왕권국가와 병존하였으나, 점차 절대주권의 타도를 위한 투쟁과정 속에서 시민사회의 변모가 이루어졌으며, 나아가 현대의 자유민주주의 사회건설의 기초가 되었다.
* 주 14: 프로이센 일반란트법: 이 법은 민법적인 규정이 많은 편이나 공, 사법을 망라하여 2편 43장 17,000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실생활의 세부까지 규정하여 재판관에게 재량권을 인정치 않았다. 이 법은 로마법에서 해방된 최초의 체계적인 법전으로서 용어 사용에 있어서 민족적이었고, 18세기의 절대왕제를 대표하는 법전이라 할 수 있으며, 독일민법전이 제정될 때까지 시행되었다.
* 주 15: 나폴레옹법전: 나폴레옹법전은 프랑스민법전이라고도 하며, 인, 물권, 재산취득 등의 3편 2281조로 구성되고, 자유, 평등의 사상으로 일관되어 근대자유주의입법의 선구로서, 다수 국가의 민법의 모범이 되었다. 지금까지 100회 이상의 개정을 거쳐 현재도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전면적 개정의 준비작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런데 이 법전의 문장은 프랑스문장의 모범으로, 프랑스의 저명한 작가 아나톨프랑스는 집필하기 전에 반드시 프랑스민법전을 읽으면서 그의 문장 표현연습을 하였다고 한다.
* 주 16: 독일민법전: 1814년 티보(Thibaut) 가 “독일에 있어서 일반민법전의 필요성에 관하여” 라는 논문에서 통일민법전의 편찬을 역설하였으나, 사비니(Savigny) 는 ‘입법 및 법학에 대한 현대의 사명’ 에서 이를 반대하였다.((87) IV (1) 참조). 그 후 1874년 민법전기초위원회에서 제 1초안이 나오고, 다시 제 2초안이 1896년에 공포되어 1900년 1월 1일부터 이 법이 시행되었다. 이 법은 총칙, 채무법, 물권법, 친족법, 상속법 등의 5편 2385조의 대법전이며, 용어가 세련되고 논리가 치밀하여 소위 19세기 독일법학의 집대성으로서 법문화사상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 그것은 개인주의사상을 기조로 함과 동시에 한편에서 독일고유법인 게르만법의 사상, 타면에서는 새로운 사회사상인 단체주의사상을 채용하였다. 이 법전은 20세기 초 여러 나라의 민법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었다. 일본민법은 독일민법 제1초안을 많이 참고하였고, 우리 민법은 일본보다 더 많이 독일민법전에서 여러 제도를 채용하였다. @p105
  (1) 근대법의 특색
 근대법의 특색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가) 통일적 성문법화: 종래의 지방법이나 관습법은 국가법으로 통일되어 각종의 법전이 제정되었다. 이러한 통일적 성문법화를 촉진시킨 배경은 (i) 봉건적인 체제가 붕괴되고 중앙집권적 근대국가가 건설됨에 따라, 법질서의 통일을 기할 필요에서 종래의 지방입법이나 관습법을 정비함에는 성문법체제가 적합하였고, (ii) 근대에 이르러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개혁을 추진하기 위하여는 종래의 관습법보다 성문법에 의하는 것이 합리적이었고, (iii) 국가의 모든 작용은 법에 의거하여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요청 등을 들 수 있다.
 (나) 법치주의원리의 지배: 국정 전반, 그 중에서 특히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관한 것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 의해 제정된 법률에 준거해야 한다는 법치주의의 원리가 기본적으로 근대법질서를 지배하였다.
 (다) 자연법론의 융성: 인간이성 자체에 근거하여 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절대불변의 법이 모든 법질서의 기반이라고 하는 자연법론(특히 자유주의적 자연법론, (87) II 참조) 이 융성하였다. 국가계약이론 국민기본권의 천부인권성, 국민의 저항권사상 등은 모두 자연법론에 근거하는 것이다.
 (라) 의무본위에서 권리본위로: 고대, 중세사회에 있어서는 특권계급에 대한 복종의식으로 일관되고, 개인의 권리에 대한 자각이 없었기 때문에 법제도도 의무본위일 수밖에 없었다(주 17).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서는 자아의 각성과 함께 법사상도 권리본위로 이행하였다. 동시에 국가본위의 법으로부터 개인본위의 법으로 변천하였다.
 (마) 신분에서 계약으로: 봉건사회의 구조는 일정한 신분을 기초로 하는 계급에 의하고 있었기 때문에, 법제도도 신분관계를 전제로 하여 존립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서는 개인주의, 자유주의사상의 영향 아래 법적 관계는 개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평등한 계약에 의하여 규율되기에 이르렀다. 영국의 유명한 법학자인 메인(Maine) 은 이러한 변천과정을 ‘신분으로부터 계약으로’ 라고 설명하였다.
* 주 17: 종래의 법질서는 주로 ‘...하여서는 안되다’, ‘...하여야 한다’ 라는 형식의 의무본위로 규정되었다. 그러나 근대법은 이와 반대로 ‘...할 수 있다’ 라는 형식의 권리본위로 규정되어 각인의 권리보장이 법의 임무임을 표현하게 되었다. @p106
 (바) 자유, 평등권의 보장: 근대시민사회는 만인의 평등을 기조로 하여 각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15), (16) 참조).
  (2) 근대법의 기본원칙
근대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사회로서, 근대시민법의 기본원칙은 소유권절대의 원칙, 계약자유의 원칙, 과실책임의 원칙 등 세 가지를 들고 있다.
   IV. 현대사회의 법
근대의 법은 국가권력으로부터 개인의 자유, 평등을 보호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절대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와 함께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동안 인류역사에서 일찌기 경험치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으니, 그것은 곧 근대물질문명과 근대문화의 발달이다. 이와 같은 사회, 경제, 문화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법사상은 시민적 경쟁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자유, 평등이라는 추상적 이념만을 추구하였고, 인간의 구체적 가치의 실현에는 등한시하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즉, 사람 개개인을 구체적으로 사회생활의 현실에서 파악할 때에는 결코  누구나 자유, 평등하지 않고, 사회, 경제적으로 큰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법이 사람(Mensch) 을 어디까지나 추상적으로 자유, 평등한 인격자(Person) 로 파악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그리고 국민주권주의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하여 사람을 추상적인 인격자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인 인간(Mensch) 으로 파악하려는 생각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Radbruch는 이러한 흐름을 가리켜 ‘인격에서 인간으로’ (von Person in Mensch) 의 전환이라 일컬었다. 자본가인가, 근로자인가, 부자인가, 가난한 자인가 등의 구체적인 인간을 파악하여 실질적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인간다운 생존’(menschenwurdiges Dasein) 을 확보하여 주려는 사회적 정의의 관념이 배후의 사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p107
그리고 과거와는 달리 국가 사이의 교류도 활발해지게 되면서 국제사법분야도 점차 다양해졌다. 또한 세계의 곳곳에서 발생한 수 많은 전쟁은 인류의 생존에 혹심한 피해를 안겨 주게 되었다. 따라서 현대법은 전쟁으로부터 인류의 생존과 문명을 지키려는 사조가 늘어나면서 침략적 전쟁을 부인하고 나아가 국제평화유지를 위해 많은 국제조약과 국제기구들을 창출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배경 아래서 현대법은 성립, 발전되었다. 현대법으로서의 모범적인 모델로서 보통 1919년의 Weimar 헌법을 든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나라 법질서도 현대법의 전형으로서의 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1) 현대법의 특색
현대법의 특색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가) 국민주권논의 완성: 근대 입헌주의국가는 반드시 국민주권주의를 그 이론적 전제로 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군주주권론을 한편으로 인정하고 한편으로 시민의 지위를 보장하기 위해 군주권력을 제한하고자 한 타협적 형태이었다. 그러나 미합중국 건국을 시초로 각국은 군주권력을 완전히 타도하여 결국 국민주권국가를 건설하게 되었으며,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이를 취하여 국민주권주의가 헌법에 선언되고 있다.
  (나) 생존권의 보장과 사회법의 대두: 근대 입헌주의국가 헌법에 있어서 기본권보장은 자유권을 중심으로 하였다. 현대에 와서 각국 헌법은 사회적, 경제적 약자보호를 위하여 ‘인간다운 생활’ 의 보장을 이념으로 하는 이른바 생존권을 규정, 보장하고 있다((18) 참조). 이는 전기 Weimar헌법을 효시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적 법률관계에 공적 통제를 가하여 실질적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소위 사회법((35) IV 참조) 이 많이 대두되었다.
  (다) 복지국가의 실현: 현대국가는 국민에게 ‘인간다운 생활’ 을 할 권리를 보장하고 실제로 인간다운 생활을 하도록 보장하기 위하여 여러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실현시키려고 한다. @p108
즉, 현대국가는 복지국가로서 독점기업 횡포에 대해 제동을 가하고, 소비자를 보호하고(경제법의 발전), 사회보장의 증진에 노력하여 생활능력이 없는 빈곤한 국민을 특별히 보호하며, 국민의 보건을 증진시키고(사회보장제도의 발전),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거나 여자와 소년의 근로를 특별히 보호하는(사회법의 발전) 등 각종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또한 국가는 복지국가를 실현하기 위하여 종래의 자유주의적인 법은 국가로부터 필요에 따라 통제를 받게 함으로써, 개인본위의 법에서 사회본위, 단체본위의 법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법의 기본원리도 수정이 가해지게 되었으며 행정권의 강화도 가져오게 되었다.
  (라) 국제평화주의 추구: 현대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모두 헌법 속에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한 많은 국제조약, 국제기구, 헌장 등이 채택되고 있다.
  (마) 사회주의 법질서의 등장: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자유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국가중앙권력에 의한 계획경제를 실시하는 사회주의법질서가 일부국가에 의해 채택되었다. 이는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법질서인 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가 무시된 실질적 평등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2) 근대법의 기본원칙의 수정
앞에서 본 바와 같은 특색을 갖는 현대법 아래에서 근대법의 기본 9삼원칙은 수정을 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소유권절대의 원칙은 사회공공복리를 위해 제한할 수 있고, 그 행사도 공공복리에 적합하게 해야 한다는 제한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계약자유의 원칙은 국가가 간섭할 수 있다는 제한을 받게 되었으며, 과실책임의 원칙은 무과실책임의 인정이라는 제한을 받게 되었다. 결국 현대법의 최고원리는 자유인격의 원칙과 공공복리의 원칙이라고 말할 수 있다.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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