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제1절 법의 개념@]
법(ius, law, Recht, droit)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는 법학의 최초의 과제인 동시에 최후의 과제이다. 독일의 철학자 Kant가 “법학자들은 지금도 법의 개념에 대하여 확실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한 바와 같이 법의 정의를 설명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것이다. 학자에 따라 각기 학설이 다르며 오늘날에 있어서도 정설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주 1) 그러나 현재의 유력한 학설에 의하면 법은 “인간의 공동생활(사회생활)에 있어서 행위의 준칙으로서 국가에 의하여 강제되는 사회규범”이다. (주 2) 이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주 1: 이러한 사정은 우리 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나라에서 법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의 발달이 늦은 원인은 첫째로 조선조시대의 봉건쇄국과 일제 36년간 그리고 해방독립 후 근대사회로의 탈파혁신을 위해 급속도로 서구제국의 제도, 문물, 과학, 기술 등을 채용했던 점이다. 외국법의 계수도 그 일환이다. 법학자는 우선 계수된 개개의 실정법에 대한 기계적인 해석이나 개념구성 등의 당면한 연구에만 몰두되어 법의 본질을 탐구해 보려는 기초적 연구에 종사하는 여유가 없었다. 따라서 각 법역의 지도이념이나 법률질서 일반의 본질 등에 관한 연구는 거의 미개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이르러 약간의 번역서와 저서들이 출간되어 이 분야를 개척하고 또한 공헌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19세기 후반의 구주에 있어서의 법실증주의((83) III (6), (87)VI 참조)의 영향을 받은 결과도 들 수 있다.
* 주 2: 법에 해당하는 라틴어의 ius, 독일어의 Recht, 프랑스어의 droit는 모두 옳은 것이라는 듯을 가지며, 영어의 law는 정하여진 것이라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한자에서 법은 후세의 약자이고 고문자는 법이다. 법은 수와 위(채)와 거를 합한 문자로서, 수는 그 면이 평면이어서 공평의 의미이고, 위는 죄의 유무를 판정할 수 있다는 전설에 기인한 것이고, 거는 악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약자로서의 법은 수와 거를 합한 문자로서 치수를 의미하는 것이어서 다스림, 즉 질서의 의미를 나타낸다. 또한 예, 의, 율, 리, 칙 등의 용어도법을 의미한다. 한편 법이라는 용어는 법칙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영어의 law도 법학상 법이라는 의미와 법칙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독일어의 법은 Recht로 표시하나, 물리학상의 법칙은 Gesetz로 표시하여 용어상의 혼동을 피하고 있으며, 프랑스어의 droit는 법, loi는 법칙으로 구별하여 사용하고 있다. @p37
I. 법은 규범이다.
법이라 함은 사회질서를 유지할 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게 준수하도록 하는 규범이다. 규범은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항 사회의 구성원이 준수하여야 할 준칙, 즉 법칙을 의미하며, 법칙(rule, Regel)은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자연법칙(natural rule, Naturregel)과 인간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규범법칙(normative rule, Normregel)으로 구분된다. (주 3)
자연법칙은 인간의 사유나 행위와는 비교적 무관계하게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라거나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와 같이 기계적, 몰가치적이며 예외라고는 전혀 없는 필연적인 존재를 내용으로 하는 법칙, 즉 존재(sein)의 세계에 있어서의 법칙이다. 이와 같이 자연법칙은 존재의 법칙이고, 인과법칙의 관계이며, 필연성, 불가분성의 관계이다. 이에 반하여 규범법칙은 근본적으로 의식과 목적을 지닌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법은 규범법칙으로 ‘꾼 돈은 갚아야 한다’라거나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와 같이 인간의 사회생활에 일정한 목적 내지 이상을 세우고 이것을 실현하고자 하는 합리적, 가치적, 명령적인 것으로서 반드시 예외가 있을 것을 예상하고 있는 행위를 내용으로 하는 것, 즉 당위(sollen)의 세계에 있어서의 명제이다. 이와 같이 법규범은 당위의 법칙이고 명령적인 관계인 것이다.
자연법칙은 필연성, 불가분성 때문에 반칙이 없다. 그러나 목적의 세계, 자유선택의 세계인 인류사회에 시행되는 규범법칙은 반칙(반규범행위, 위법행위)의 가능성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이다. 반칙이 수반되는 법칙이라면 그것은 벌써 자연법칙으로서의 존재가치를 잃는 것이지만,
* 주 3: Kant는 자연과 사회의 이원론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존재와 당위라고 하는 두 개의 범주에 의하여 자연법칙과 규범법칙의 특수성을 구분하였다. @p38 사회의 규범법칙으로서의 법은 처음부터 예정하고 있으며, 위반되므로 인하여 그 존재가치가 더욱 확고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이 예외없이 준수되면 법의 규범성이 해소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규범은 일정한 당뒤성에 대한 윚배행위의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귀속시키는 것이다. 특히 켈젠(Kelsen)은 법규범을 일정한 요건(예: 범죄)에 일정한 효과(예: 형벌)를 귀속시키는 관계라고 하여 자연법칙과는 구별을 명확하게 하였다.
그리고 법은 항상 사회질서의 침해의 가능성을 예방하는 것이기 때문에 침해의 염려나 명령의 필요가 없는 사항에 대하여는 법은 관여하지 않는다. 예컨대 ‘먹어라’라거나 ‘잠자라’하고 명하는 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타방에 있어서는 법이 아무리 강제하고 명령하여도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준수될 가능성이 없는 무리한 당위를 요구하는 법은 그 존재가치가 약하다. 그러므로 법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그 기준을 삼아야 할 것이며, 그리고 그들이 준수할 수 있는 가능한 범위에서 당위를 강제하여야 할 것이므로 사회의 합목적적인 견지에서 사회생활을 강제하는 상대적 실천규범이다.
II. 법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의 규범이다.
사회규범이란 사회생활을 가능케 하는 규범이다. 따라서 사회있는 곳에는 언제나 법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회는 법 이외에도 도덕규범, 관습규범, 종교규범 등에 의하여 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규범만으로는 규율할 수 없는 여러 가지의 이해관계가 충돌되기도 하고, 사회질서를 해하는 반사회적 행위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리하여 사회는 정치적인 통일이나 규율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법은 이러한 대립이나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분쟁을 규율하고 반사회적인 행위를 제재하여 사회적 결합을 확보하고 강화하기 위한 규범이다. 이렇게 볼 때 도덕, 관습, 종교규범이 비정치사회에 존재한다고 하면 법은 정치적 조직사회에 성립한다고 하겠다. 오늘날 정치적 조직사회 중에서 가장 강력한 통일적 권력을 갖는 사회는 국가이다. 따라서 법은 국가라는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의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p39 법을 사회학적으로 탐구한 파운드(Pound)는 “법은 정치적으로 조직된 사회의 강제력의 체계적 적용에 의한 사회통제(social control)”라고 하였다.
물론 법은 반드시 국가권력에 의해서만 시행되는 것은 아니고, 국가 이외의 조직적 사회력에 의하여 가제되는 사회적 규범도 역시 법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국제사회의 조직적인 사회에서 적용되는 국제법이라든가 지방자치단체의 조례 또는 회사의 정관 등도 광의에 있어서 법이라고 할 수 있다.
III. 법은 국가에 의하여 인정된 규범이다.
법이 정치적으로 조직된 국가사회의 질서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한 당연히 그 국가사회에 의하여 공동생활에 있어서의 행위의 준칙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제법이건 관습법이건 당해 국가사회의 중심권력에 의하여 인정되어져야 한다. 이러한 인정에 의하여 비로소 법은 법으로서의 존재를 갖게 되며, 여기에 국가사회 구성원의 법적 인식 혹은 법적 확신이 가하여져 일반에 준수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법이 법으로서 존재한다는 사실만을 가지고 곧 그 법의 내용이 그 대의 사회구성원의 정의감이나 도덕심에 일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바꾸어 말하면 법이 정의를 목적으로 하는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으나 법이기 때문에 모두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령 법의 내용이 사회구성원의 정의감이나 도덕심에 배치된다 하더라도 그 법이 법으로서 국가가 인정하는 한 그것도 법임에는 틀림없다. 법사상으로 보더라도 잔혹한 형벌법을 흔히 볼 수 있으며, 소위 ‘악법도 법이다’(주 4)라는 명제가 성립되어 법으로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악법은 법이 아니다’라는 견해는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의 가치에 대한 판단은 사회구성원 각자의 개별적 판단이 아니고 정치적으로 조직된
* 주 4: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은 보통 소크라테스(Sokrates)를 생각하게 한다. 소크라테스가 악법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인 것은 실정법의 우위를 예정하였다고 하기보다는 소극적, 피동적 저항권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있다((45) II참조). @p40 국가권력에 의하여 행하여지는 가치판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의 역사는 악법과의 투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으므로 사회 전체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악법은 유동하여 나가는 법의 정류 중에서 점차 자취를 감추어 버리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고 하겠다.
IV. 법은 국가의 중심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규범이다.
법의 가장 전형적인 성격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규범인 점이다. 강제(Zwang, 또는 강행)라는 것은 법의 준수를 강요하여 위법행위가 있을 때에는 예정의 어느 결과가 실현되는 것을 말한다. 법이 국가권력에 의하여 실현되는 강제력을 갖지 못한다면 법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발휘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법은 이에 위반하는 자에 대하여는 권력적, 물리적 강제력을 발동함으로써 스스로의 목적을 실현할 수 있다. 이것이 법의 본질적 요소이자 다른 사회규범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강제에는 심리적인 것과 물리적인 것이 있다. 보통 법률은 심리적 강제에 의하여 그 준수, 복종이 담보되어지나, 위법자에 대하여는 물리적 강제, 즉 강제집행 혹은 형벌 등에 의하여 그 준수가 확보되어진다.
강제를 법의 요소로 하는 점에 대하여 헌법, 행정법, 국제법 등에서는 강제성이 구체적으로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이 있다. 그러나 법에 강제력이 있다는 것은 법일반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개개의 법규가 완벽한 강제력을 갖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꾸어 말하면 법에 있어서 강제적 수단의 유무로 법의 존재가치를 인정할 수만은 없는 것이고, 법규범체계의 전체로서 강제력이 인정되어 있거나 또는 이것이 기대되어 있으면 강제력이 있는 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여기서의 강제를 꼭 구체적 강제수단으로 해석하지 않고 광의로 사회실력 일반에 의한 강제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이해한다면 헌법, 행정법, 국제법도 특수한 형태이긴 하나 당연히 강제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주 5)
* 주 5: 홍성찬, 법학개론(제2 개정판), 박영사, 1988, 16면. @p41
그리하여 토마지우스(Thomasius)는 “도덕규범은 내부적 평화를 위한 것이므로 강제할 수 없는데 반하여, 법규범은 외부적 평화를 위한 것이므로 강제할 수 있다” 고 하였고, Kant는 “법과 강제기능은 동일하다”고 하였으며, Jhering은 “강제는 법의 절대적 기준이다. 법적 강제력이 없는 법은 그 자체가 모순이며 타지 않는 불, 밝지 않는 등불, 빛이 없는 광선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Kelsen은 법규범의 본질은 강제규범(Zwangsnorm)이라 하였고, Pound 역시 “법의 본질은 강제성에 있다”하고, 동시에 “법을 사회의 여러 이익 사이의 충돌은 조정하고 통제하는 기능이 있다”라고 하였다. 법사회학자인 에르리히(Ehrlich)도 법의 강제성을 전통적 법해석학에서 보다 넓게 생각하였고, 이른바 “살아있는 법(lebendes Recht), 즉 관습법에는 국가권력에 의하지 않는 강제력이 있다”라고 한 것은 의의 있는 말이라고 할 것이다.
* 법과 유사한 용어
(1) 법률: 일반적으로 법과 법률은 같은 뜻으로 사용되고 있으나, 엄격한 의미에서 법과 법률은 서로 그 뜻이 다르다. 법과 법규범은 법 그 자체가 하나의 규범이므로 양자는 같은 뜻이라 하겠다. 법은 규범이고 규범 아닌 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은 넓은 의미에서는 법일반(law in general)을 말한다. 즉, 법률뿐만 아니라 법규범 전체, 예컨대 대통령, 국무총리, 행정각부의 장이 발하는 명령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서 제정되는 조레나 규칙 등과 판례, 관습법, 조리, 사적 단체의 규칙 등을 총칭하지만, 법률은 엄격한 의미에서 입법기관인 국회의 의결을 거쳐 대통령이 공포한 것만을 말한다((29) II 참조). (주 6)
(2) 법규: 법규(Rechtssatz)는 법규범의 의미로 쓰이는 수가 있으나, 직접 국민의 권리, 의무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법을 말한다. 때로는 성문법, 즉 제정법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3) 법질서: 법질서(legal order, Rechtsordnung)란 개인의 법규범 그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법규범이 통일적으로 하나의 질서체제를 이루고 잇는 상태를 말하며, 근대법질서 또는 사법질서라고 하는 수가 있다. 즉, 법질서는 통일적인 법질서의 체계를 의미한다.
(4) 법령: 법령은 법률과 명령을 말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성문법 전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 주 6: 종래에는 법률학, 법률학개론, 법률사회학, 법률철학 등의 용어가 많이 사용되었으나 법률은 협의의 연구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최근에는 법학, 법학개론, 법사회학, 법철학 등의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용어상의 문제가 아니고 학문상의 용어의 차이라고 보아야 하겠다. 오늘날 법률학과라고 하는 대학은 없고 모두 법학과라 하고 있다. @p42
(5) 법전: 법전(code, Gesetzbuch)은 체계적으로 편제조직된 성문법규의 전체를 말한다. 헌법, 민법, 형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사소송법 등의 6법전이 법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기본법이므로, 특히 이것들을 통틀어서 ‘6법’이라고 하며, 이들 법을 수록한 법전집을 보통 ‘6법전서’라고 한다. 그러나 6법전서로 불리는 법전집에는 6법 이외에도 다른 많은 법규들이 수록되어 있으므로 그저 ‘법전’이라 하기도 한다.
@[(5) 제2절 법의 구조@]
모든 국가사회의 법질서는 각각 그 논리적 성격을 달리하는 행위규범, 강제규범, 조직규범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검토함으로써 법의 본질은 보다 명확하게 된다. 모든 법규범이 예외없이 이 세가지 규범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보는 관점에 따라 행위규범 또는 강제규범으로 규정할 수 있는 복합구조의 관계에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법은 행위규범, 강제규범, 조직규범의 3형태로 이루어진 복합체로서, 서로 관련을 맺으면서 국가의 조직과 작용을 규정하고 법질서를 유지하고 있다.
법의 실현을 위한 법규범의 구조를 보면 먼저 인간에서 행위규범을 지킬 것을 요구하고, 만약 그것을 지키지 않을 때에는 비로소 강제규범이 발동하게 된다. 그러므로 양 규범을 비교해 보면 행위규범이 제1차적 규범이고, 강제규범은 행위규범을 보장하는 수단이므로 제2차적 규범이라고 한다. (주 7) 특히 법사회학의 입장에서는 행위규범의 존재에 관심을 갖는다. (주 8)
I. 행위규범(행위성)
법규범은 ‘책무를 이행해야 한다’라고 명령하며,
* 주 7: 그러나 kelsen은 법의 본질인 강제성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강제규범을 제1차적인 것으로 보고, 행위규범을 제2차적인 것으로 본다.
* 주 8: 장건학, 법학개론(제 5 개정판), 법문사, 1988, 44면.
@p43 ‘사람을 살해해서는 아니된다’라고 금지한다. 즉, ‘... 하여야 한다’, ‘... 하여서는 안된다’라고 명령하거나 금지한다. 이러한 면에서 법규범은 사회생활에서 인간이 행할 바를 명령하고 금지하는 것이므로 행위규범 (Handlungsnorm)이라고 한다. 이 행위규범은 행위의 기준을 정하는 법규이며 사회규범의 전형적 형태이다.
행위규범에 관한 한 법규범은 도덕규범이나 그 밖의 규범과 다름이 없다. 다만 도덕규범은 단순한 행위규범이며, 강제의 계기가 없을 뿐이다. 예컨대 ‘너희들은 살인하지 말라’ 하는 Moses의 십계는 도덕(내지는 종교)규범이다. 또한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라는 헌법 제23조 2항의 규정은 법적 행위규범의 예로서 같은 행위규범이다.
II. 강제규범(제재성, 제재규범)
법규범은 처음부터 강제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명령하고 금지하였다가 그 명령에 불복하거나 그 금지에 위반하는 때에 비로소 강제력을 발휘, 경우에 따라 책무불이행자에 대한 강제집행을 하며, 살인자에 대해 형벌을 가하게 된다. 예컨대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250조 1항)는 것은, ‘삶을 죽이지 말라’는 도덕적 행위규범을 전제로 하여, 이에 대한 위반행위가 있는 경우에는 형벌을 가한다는 강제규범이다. 이런 면에서 법규범은 강제규범의 성격을 가진다. 즉, 강제규범(Zwangsnorm)은 행위규범을 위반하는 행위에 대하여 일정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강제력으로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규범이다. 법규범에 의한 강제는 재판에 의하여 집행되므로 강제규범을 재판규범 (Entscheidungsnorm) 이라고도 한다. 이 규범의 특색은 일정한 법적 요건(예: 살인)이 충족되면 일정한 법적 효과(예: 살인, 징역)를 부여할 것을 선언한 가언적 명제라는 것과, 일정한 행위규범의 타당성을 당연히 전제한 것에 있다. 행위규범은 제재규범의 수반으로 인하여 강제규범의 특질이 뚜렷해지며, 또 제1차적인 규범인 도덕규범은 제재규범과 연결되므로 인하여 법규범화하게 되는 것이다.
@p44 그런데 제재규범은 한편으로는 일정한 행위를 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판을 통하여 강제한다고 하는 행위규범과 강제규범의 복합체로 구성되어 있어서 이를 ‘법규범의 복합구조’라고도 한다. 이와 같이 법이 이중적 구조를 갖는 이유는 법의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을 의미하는 동시에, 어떠한 행위를 하거나 또는 하지 않는 자는 일정한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고함으로써 일반인의 예측가능성과 안전성을 보장하여 주는 데 있다.
III. 조직규범(조직성)
조직규범은 법규범의 제정, 적용, 집행을 담당하는 기관(예: 국회, 법원, 행정관청)의 조직과 권한에 관한 규범이다. 조직규범은 국민일반의 사회생활을 규율하는 것이 아니므로 행위규범과 구별되며, 또 위반행위에 대하여 직접 강제효과를 귀속시키지 아니하므로 강제규범과도 구별된다. 물론 국가, 지방 자치단체 등의 조직은 강제질서이며, 법원에서는 이에 의거하여 재판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는 조직규범도 강제규범과 같다고 할 수 있으나, 조직규범은 일반 국민에게 의무를 명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규율대상이 국가기관이라는 점에서 재판규범과 다르다.
그러면 조직규범은 다른 두 법규범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 Kelsen이 지적하였듯이 국가법질서는 상호병존하는 것이 아니라 상하의 위계질서를 이루고 있으며, 헌법은 다른 법률의 전제가 되므로, 헌법, 자치법 등의 조직규범이 있으므로 행위규범이 있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재판규범 내지 강제규범도 있게 된다. 요컨대, 조직규범은 행위규범 및 강제규범과 결합하여 법규범 전체의 질서를 이루는 기본적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므로 법규범의 구조는 결국 조직규범, 행위규범, 강제규범의 삼중구조를 이룬다.
* 법의 구성
법의 구성이란 법의 형식상의 구성을 말한다. 여기서의 법은 모든 성문법을 의미하며, 일반적으로 법은 전문, 본칙, 부칙의 3부분으로 구성된다.
@p45
I. 전문
법의 전문(preamble, Vorrede)이란 법의 본칙 앞에 있는 서문으로서 법의 한 구성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헌법에는 전문이 있지만, 법률, 명령, 규칙 등에는 전문이 없는 것이 보통이다. 전문의 내용은 법마다 다르며 통일되어 있는 것은 아니나, 일반적으로 법의 제정유래, 제정취지, 기본목적, 기본원칙 등을 선언하고 있다.
II. 본칙
본칙이란 법의 실질적 구성부분으로, 그 법의 본질적 내용을 규정한 부분을 말한다. 법의 구성부분 가운데 전분과 부칙을 제외한 부분이 본칙에 해당한다. 전문이 없는 법은 있어도 본칙이 없는 법은 없다. 본칙은 또 다음과 같이 나누어진다.
(1) 편, 장, 절, 관, 항: 많은 조문으로 구성된 본칙은 공통된 내용의 조항을 묶어 몇 개의 편으로 구성하고, 다시 그 편 안에서 공통된 조항을 묶어 장으로 표시하고, 장을 다시 세분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절로, 절은 다시 관으로, 관은 다시 항을 설치한다. 그러나 내용이 간단한 경우는 이들을 구별하지 않아도 무방하다. (주 9) 이들에게는 그 내용에 따라 제목을 붙인다.
(2) 조, 항, 호: (가) 본칙의 규정은 그 내용을 간명하게 표시하기 위하여 조라는 기본단위를 사용하며, 제1조부터 시작한다. 법의 내용이 지극히 간단한 경우는 조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예: 연호에 관한 법률, 실화책임에 관한 법률, 노동자의 날 제정에 관한 법률, 한글전용에 관한 법률 등).
(나) 항은 조의 하위단위로서 #1 #2 #3... 으로 표시한다. 모든 조가 항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아니며 내용이 간명한 조는 항으로 구분되지 않는다(예: 민법 제1조는 항이 없으나 제2조는 2개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 호는 조 또는 항에서 사용되는 조 또는 항의 하위단위이며, 항만의 하위단위가 아니다(예: 헌법 제89조는 항없이 17개호가 규정되어 있으며 동법 제111조는 1항에는 5개호가 규정되어 있으나 2항--4항에는 호가 규정되어 있지 않다).
(라) 호를 다시 세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가 나 다... 로 표시한다(예: 가사심판법 2조, 하도급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2조, 외자도입법 2조 등).
(마) 조에는 괄호 안에 표제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예: 민법, 형법 등에는 표제가 붙어 있으나 헌법에는 없다). 항의 경우는 부칙의 항에는 표제를 붙이는 경우가 있으나 본칙의 항에는 붙이지 않는다. 호의 경우는 어느 경우에나 붙이지 않는다.
* 주 9: 민법, 상법과 민사소송법 등은 편, 장, 절, 관으로, 형법과 형사소송법 등은 편, 장, 절로 구성되어 있다. 한편 헌법은 장, 절, 관으로 구성되어 있고, 기타 특별법에는 조로만 구성되어 있는 경우도 많이 있다(예: 특수교육진흥법, 농지담보법, 주택건설촉진법, 즉결심판에 관한 절차법 등).
@p46
(3) 본문과 단서: 하나의 조, 항 중의 문장이 구분되는 경우에 후단의 문장이 ‘그러나(또는 ’다만‘)’로 시작되어 전단의 문장에 대한 예외를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우 ‘그러나’ 이하를 단서라 하고 전단의 규정을 본문이라고 한다(예: 민법 제112조는 조에 단서가 있고 민법 제119조에는 항에 단서가 있다).
III. 부칙
부칙은 본칙에 부수하여 법의 일부를 구성한다. 부칙에는 일반적으로 그 법령의 시행일, 경과조치(예: 민법부칙 10조, 1987년 개정 형사소송법부칙 2항), 그 법령의 시행에 따라서 필요로 하는 다른 법령의 개폐조치(예: 형법부칙 10조, 민사소송법 9조,)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다.
부칙의 내용이 많은 경우에는 이를 조로 구성하며(예: 헌법, 형법, 민법 등),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항으로 구성한다(예: 정부조직법, 변호사법 등). 부칙의 조나 항의 경우 표제를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제3절 법과 다른 사회규범@]
사회를 규율하는 사회규범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 법, 도덕, 종교, 관습 등의 여러 규범들이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사회생활의 규범으로서의 법은 이들 사회규범들과 더불어 사회적 존재성을 가지고 문화적 기능을 영위하기 때문에 법이 이러한 사회규범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를 고찰하는 것은 법의 본질을 더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6) 제 1 법과 도덕@]
법과 도덕은 가장 가깝고 비슷한 상호관계를 가진 사회규범이다. 예컨대 ‘사람을 살해해서는 아니된다’라든가, ‘부부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 등은 법이 요구하는 바이며 동시에 도덕도 요구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처럼 양자는 상호의존하는 밀접한 관계에 있으면서도 그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때로는 대립이 생기고 모순이 나타나기도 한다. @p47 따라서 법과 도덕의 관계를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문제이다. 이것은 ‘법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와 더불어 법철학상의 근본문제의 하나이다. Jhering은 이 문제를 ‘법철학에 있어서의 케이프 혼(Cape Horn der Rechtsphilosophie)’이라 하여, 이 문제의 어려움을 지적한 바 있다. 법의 개념을 명확히 파악하기 위하여 법과 도덕의 차이와 법과 도덕은 어떠한 관계에 있는가를 고찰해 보기로 한다.
I. 법과 도덕의 구별
고대에 있어서는 도덕도 종교와 같이 법과의 관념적 분화가 없었으며 종교적 관념과 혼동되었었다. 그러나 사회의 공동생활이 복잡화, 다양화 됨에 따라 법은 도덕에서 분화되었다. 특히 국가 및 사회질서유지를 위해 절대적 기능을 담당하게 되자 법의 존재가 더욱 중요시되어 법과 도덕의 구별은 뚜렷하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하여 견해의 대립을 보이고 있다.
(1) 구별부인설
로마시대에는 법과 도덕이 분리되었으나 울피아누스(Ulpianus)는 ‘법은 정의에서 나온 정과 선의 기술’이라 하여 양자의 관계를 혼동하였다. 그후 자연법론자들은 ‘자연법은 실정법을 초월한 영구불변의 인륜의 대도’라고 보기 때문에 법과 도덕의 구별을 부인한다. 현실계의 실정법은 이상계의 자연법이 반영된 것으로 보는 자연법론자의 입장에서 법은 자연법을 의미하고, 자연법은 도덕과 일치하는 것으로 본다. 자연법론자인 베키오(Vechio)는 법과 도덕의 동일성을 강하게 주장하였다((88) VI (1)참조). 이와 같이 자연법론자들은 법과 도덕의 구별을 부인한다.
@P48
(2) 구별인정설
Thomasius는 도덕적 선과 법적 정과를 대립시켜 논리는 선에 관한 것이고, 법은 정에 관한 것이며, 정은 선에 속하지 않는 것이라 하여 논리학과 법학을 구별하였다. 그리고 그는 법은 인간의 외적 생활을 규제하는 것이고 도덕은 인간의 내면적 심정을 규율하는 것이라 하여 법과 도덕을 구별하였다((87) II (1) (라) 참조). 그 후 Kant는 자연법자이면서도 이 사상을 이어받아 개인주의적 논리관을 배경으로 하여 외면적인 합법성(Legalitat)과 내면적인 도덕성(Moralitat)의 대립에 의하여 법과 도덕을 구별하였다((87) III (1) 참조). 또 영국의 분석법학자 오스틴(Austin), 독일의 일반법학자 메르켈(Merkel), 순수법학자 Kelsen 등으로 대표되는 법실증주의학파((83) III (6) 참조)에서는 법을 실정법에 국한하여 자연법의 존재를 부정하고 법과 도덕을 엄격히 구별하였다. 이와 같이 법실증주의자들은 법과 도덕을 구별한다.
(3) 법과 도덕의 재결합
19세기 이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있어서의 노사의 대립, 민주주의 정치체제에 있어서의 다수의 횡포, 형식적 법치주의국가에 있어서의 정치의 독재 등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어 감에 따라 많은 학자들이 기존의 법질서와 법률관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신사상주의법학에 속하는 독일의 법철학자 슈타믈러(Stammler), Radbruch 등과 신자연법론자에 속하는 프랑스의 사법학자 샤르몽(Charmont) 등은 새로이 법과 도덕의 내적 관계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법과 도덕의 내적 관련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법과 도덕의 재결합을 시도하였다.
(4) 결어
위와 같이 법과 도덕의 구별에 관한 여러 견해가 있으나 어느 것에 의하든 완전한 것은 없다. 다만 20세기에 이르러 법철학자들은 법과 도덕, 양자의 존립기반과 궁극적 목표를 달리함으로써 개념상 구분하고 있다. 다만 법과 도덕의 내적 관련을 중요시하여 양자의 상호의존성을 고찰하는 데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주 10)
* 주 10: 법과 도덕의 재결합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성문법에 이를 명시한 입법례도 있다(독일 민법 266조, 스위스 민법 2조 참조).
@p49
II. 법과 도덕의 차이
위와 같이 사회규범으로서의 법과 도덕을 개념상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양자는 가치기준이 상이하여 그 내용상의 차이에 관하여 많은 견해가 있다. 중요한 견해를 보면 다음과 같다.
(1) 내용상의 차이
(가) 법은 사회생활규범이고 도덕은 개인생활규범이다. 이 설은 실천규범을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으로 나누어 법의 목적은 사회생활의 질서유지이나, 도덕의 목적은 개인의 인격완성에 있다는 것이다.
(나) 법이 규율하는 대상은 외부적 행동이지만 도덕은 내부적 행동, 즉 심정 혹은 정조를 대상으로 한다. 이 설은 법률의 지배영역은 외계에 나타난 사람의 행동인 것이나, 도덕은 외계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의 양심의 문제라고 하는 것으로, 이른바 법률의 외면성 (Ausserlichkeit), 도덕의 내면성 (Innerlichkeit)을 주장함으로써 양자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인정코자 하는 설이다. (주 11) 이 설의 대표자는 Stammler이다.
(다) 법의 요청은 행위의 합법성이며, 도덕은 행위의 도덕성을 요구한다. 이 설은 Kant가 Stammler의 수정론으로 제시한 것으로서 도덕은 규범에 적합한 심정 (die normgemasse Gesinnung)까지 요구하는 데 반하여, 법은 규정에 적합한 행동 (vorschriftmassiges Verhaiten)만을 요구하는 데 그친다.
(라) 법은 타율성(Heternomie)을 가지는데 반하여, 도덕은 자율성(Autonomie)을 가진다고 한다. 이 설은 Kant가 인간의 의사는 자유라는 개인주의적 도덕철학을 전제로 구별한 것으로서, 법은 외부로부터 강요당하기 때문에 지키는 데 반하여, 도덕은 외부에서 강요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자각하여 실천하는 규범이라는 것이다.
* 주 11: Radbruch는 이 설을 수정하여 법의 외면성과 도덕의 내면성의 대립을 관심의 방향(Interessenrichtung)으로 파악하여, 법은 내면적인 것이 문제될 때도 그 관심의 방향은 주로 외부에 두고, 도덕은 외면적인 행위가 문제될 때도 그 관심의 방향이 주로 내면에 집중된다고 하였다. @p50
(마) 법은 경험적, 상대적 규범이며, 도덕은 초경험적, 절대적 규범이다. 이 설은 법은 특정한 입법자의 제정이나 혹은 사회적 습관 등의 경험적 사회사실에 기한 실증적 규범임에 반하여, 도덕은 초경험적, 초사회적으로 존재하는 것으로 실증적 성격을 가지지 않는다고 한다.
(바) 법은 권리, 의무의 양면성 (Zweiseitigkeit)을 가지나, 도덕은 의무의 일면성 (Einseitigkeit)만을 가진다. 이 설은 법적 의무에는 이에 대응하는 권리가 있으나, 도덕적 의무에는 이에 대응하는 권리가 없다는 것이다.
(사) 법은 법률, 명령의 형식으로 문자로 표시하는 데 반하여, 도덕은 그러한 형식으로 표시되지 아니한다는 견해도 있다.
(아) 법은 현실을 바탕으로 하여 전체 사회구성원에게 행해지는 규범이므로 사회일반평균인을 대상으로 하여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를 요구한다. 이에 대하여 도덕은 현실사회의 높은 이상화를 지향하는 규범이므로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실천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것이라고 한다. 예컨대 ‘원수를 사랑하라’는 도덕규범은 보통 사람이 실천하기 어려운 규범이므로 법과 도덕의 대상을 평균적 사회인을 기준으로 하여 구별한다.
(2) 기능상의 차이
이상의 여러 설을 보건데 법과 도덕의 차이점을 찾는 데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고, 서로 중복하여 일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양자의 차이점을 이상과 같은 내용면에서 찾는 것보다 다음과 같은 기능적 측면에서 찾는 것이 보다 타당할 것이다.
(가) 양자의 타당영역을 볼 때 선, 악의 대립을 무한히 추구하는 도덕은 인간의 제1차적 사회라 할 수 있는 공동사회의 구성규범으로서 공동이해관계자 사이에 한하여 타당한 규범이다. 그러나 법은 일정한 입장에서 정, 부정의 대립을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를 달리하여 상호 대립하는 자의 관계에 대하여 평등하게 타당하는 규범이다.
(나) 강행방법에서 볼 때 법은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는 반면에, 도덕은 그 준수를 개인의 양심과 양식에 맡기고 있는 것이다. @p51 Thomasius는 법은 강제 가능하고, 도덕은 인간의 내면적 심정을 규율하므로 양자는 차이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법에 위반하면 국가의 제재력에 의하여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물리적 강제가 행하여지고, 도덕에 위반하면 사회적으로 비난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언정 처벌은 받지 않는다((4) IV 참조). (주 12)
III. 법과 도덕과의 관계
법과 도덕의 관계를 옐리네크(Jellinek)는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 하여, 도덕 중에서 그 실현을 강제할 필요가 있는 것을 택하여 법으로 삼는다 하였다. 이와 반대로 슈물러(Schmoller)는 ‘법은 최대한도의 도덕’이라 하여, 도덕규범 중 꼭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것은 법으로 정립되어 강제성을 띠게 되므로 도덕은 최대한도로 유효성을 발휘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것은 법과 도덕의 관계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나, 모두 양자의 관계를 말한 것이다. 이를 다음과 같이 고찰해 보기로 한다.
(1) 내용상의 관계
내용면에 있어서 법과 도덕은 서로 중복된다. 형법상의 살인, 상해, 사기, 강도 등의 대부분의 범죄는 동시에 도덕적으로 시인할 수 없는 반윤리적인 행위이다. 또 민법상의 신의성실의 원칙(민법 2조 1항), 공서양속의 규정(민법 103조) 등은 도덕적 의무를 그대로 법의 내용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도덕이 법으로서 성립할 수는 없고, 또 법으로서 강행하는 것이 적당하지 아니할 경우도 있다. 예컨대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라고 하는 도덕률은 법에 의해 국가권력으로 강행하는 데는 적당하지 아니하므로 법으로 되어 있지 아니한다.
또 법의 내용이 도덕으로 전화한 것도 없지 않다. 본래 도덕과는 거리가 먼 기술적 법규가 오랫동안 준수되어 생활화된 결과 사회생활상의 도덕으로 전화한 것이다.
* 주 12: 그러나 법에도 강제성을 수반하지 않는 프로그램(program)적 규정의 법(예: 각종의 사회, 경제입법)과 강제를 행사할 수 없는 경우(예: 민법상의 자연채무)도 있다. @p52
예컨대 도시의 교통, 보건상의 법규가 사회생활 속에 생활화되어 도덕교통으로 전화된 것을 볼 수 있다. Radbruch는 이것을 ‘도덕의 왕국에의 법의 귀화’라고 하였다.
(2) 효력상의 관계
효력면에 있어서 도덕은 개인의 양심 혹은 사회적 비난에 의하여 그 실효성이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나 법은 국가의 중심권력에 의한 외부적 강제가 실효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법에서 아무리 엄벌한다고 규정한다 하더라도 법규가 잘 준수되지 않는 이유는 국민의 도덕적 준수정신이 불건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이 강제력만 가진다고 하더라도 법의 실효성은 보장되지 못하며, 항상 도덕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3) 결어
법과 도덕은 다같이 인간의 공동생활에 관한 사회규범으로서 공공의 질서와 선량한 풍속을 유지한다는 공통된 목적과 사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양자는 서로 의존, 보완하여 올바른 사회적 가치의 실현에 이바지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Jellink 또는 Schmoller가 위에서 한 말은 의의있다고 하겠다. (주 13)
@[(7) 제 2 법과 종교@]
종교는 초인간적인 신을 대상으로 하고 이에 대한 개인적인 중심적 신앙을 기초로 하여 절대자에게 귀의하기 위하여 성립하는 규범이다. (주 14) 종교와 법이 분화되어 있지 아니한 고대사회에서는 제정일치라는 것이 인정되어
* 주 13: 그러나 도덕은 법을 통하여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나, 반드시 도덕성이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도덕에 반하여 도덕을 해칠 경우도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Radbruch는 “법은 도덕을 실현할 가능성과 동시에 부도덕을 실현할 가능성을 지닌다”고 지적하였다.
* 주 14: 원래 종교규범은 신에 인간의 의무를 정하는 것으로서 신적 봉사의 의미를 갖는 것이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의무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종교규범은 순수히 신에 대한 직접적인 의무를 정하는 것(예: 출애굽기 15장 21절, 20장 3절, 20장 8절 등)과 인간에 대한 의무의 이행이 곧 신에 대한 의무의 이행으로 되는 간접적인 의무를 정하는 것(예: 출애굽기 20장 12절, 13절, 마태복음 25장 34절--40절 등)으로 나누어진다. @p53
종교적인 금기(taboo)가 동시에 법적 규범으로 되었다. 특히 중세 서구에서는 기독교와 법이 혼합되어 종교가 최고권위의 가치기준이어서 평등사상, 이자금지, 혼인 등에 관한 종교적 계율이 교회법(canon law)이라는 이름으로 일반사회를 규율하였다. 그러나 사회의 조직력의 발전, 특히 국가권력의 형성에 따라 법적 규범과 종교적 규범의 분화가 점차로 명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정교분리가 이루어지고, (주 15) 법은 일단 국가법을 의미하고, 교회법은 종교 내부에서만 적용되는 자치법으로서의 효력을 갖게 되었다. (주 16) 그러나 종교의 가치는 점차 고조되고 있으며 법은 종교를 최대한으로 존중하고 있다(헌법 11조 1항 및 20조 참조).
I. 법과 종교의 차이
법과 종교는 그 속성이 어떤 권위(Autoritat)에 대한 복종이 공통적이며 법학과 신학은 절대적인 가치의 추구와 독단적(dogmatic)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매우 유사하다. (주 17) 그러나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1) 법은 조직화된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행되는데 반하여, 종교는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지 아니하고 종교를 믿는 각 개인의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성립하고 존속하는 점에 있다.
(2) 법은 그 적용범위가 모든 국민에게 미치나, 종교는 신자들에게만 미친다.
(3) 법은 인간의 외부적 행위를 규율하는데, 종교는 도덕과 같이 내부적 의사를 규율하는 것이다.
(4) 법은 보통 의무 있는 곳에 권리가 있으므로 양면성을 가지나, 종교는 초인간적인 신을 대상으로 하여 이에 봉사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므로 종교상의 의무라고 하는 일면성만을 가진다.
* 주 15: 우리 나라도 헌법 제20조 2항에서 ‘국가는 인정치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 주 16: 그러나 오늘날도 서구와 같이 국가와 교회가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교회법이 적용되는 나라가 있고, 아예 종교국가도 있다. 예컨대 이란은 회교국가이고, 스페인, 이태리 등은 카톨릭교가 사실상의 국교로 되어 있고, 태국은 불교국가이다.
* 주 17: 법과 종교는 사회주의와 평화의 실현을 위한다는 점에서 궤도를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협력하고 그 조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p54
(5) 법과 종교와의 차이는 그 내용에서 보면 상호 교착하여 하등 본질적인 특질이 없다. 따라서 도덕의 경우와 같이 그 차이를 양자의 타당영역과 강행방법에서 구하는 수밖에 없다. 즉, (i) 기능적 측면에 있어 종교는 성속의 가치대립을 통하여 그 대립을 초극하고 현실긍정의 기능을 포장함에 반하여, 법은 일정한 입장에서 정, 부정의 대립을 무한히 추구하는 것이다. (ii) 종교는 궁극에 있어 신이라는 절대자에 귀의한다는 일종의 신비적인 세계에의 몰입을 논하나, 법은 국가중심권력을 통하여 현실적으로 강행되어진다.
III. 법과 종교와의 관계
(1) 내용상의 관계
내용면에 있어서 법과 종교는 서로 중복된다. 이는 발생적 측면에서 법은 본래 도덕 및 종교규범에서 분화되었고, 이후 법의 진화, 발전에 부단히 종교규범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 그리고 종교의 정의관과 법에 있어서의 정의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한다는 점 등에서 연유한다. 예컨대 모세(Mose)의 10계명에 나오는 ‘네 부모를 공경 부양하라’든가 ‘간음하지 말찌니라’ 또는 ‘도적질하지 말찌니라’라는 등의 규범은 법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러한 규범의 내용은 양자에게 공통하므로 종교규범이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제되면 그것은 동시에 법으로 된다.
(2) 효력상의 관계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는 국교를 부인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므로, 한 국가에 있어서 종교규범의 체계가 통일되어 있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그러나 저어도 공통된 종교규범체계 위에서는 종교의 지지를 받는 법은 그 효력이 강하고 준법도 확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법은 그 존립과 실효성의 기반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종교적 신조 내지 신앙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강하므로 종교규범과 일치하는 법규범은 그 준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하겠다. @p55
@[(8) 제 3 법과 관습@]
관습은 일정한 행위가 특정한 범위의 다수인의 사이에 반복하여 행하여지는 데에서 성립한다. 따라서 관습(custom)은 습관(habit)과 구별된다. 습관은 반복하여 행하려는 행위가 개인적인 것이고, 각 개인에 따라 여러가지로 다르겠으나, 관습은 사회적인 것이고, 각 개인에 따라 여러가지로 다르겠으나, 관습은 사회적인 행위이고 이를 지키고 따라야 한다는 사회공통의 의식이 사회구성원 중에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관습에 위반하면 사회적 비난을 받는다. 이리하여 관습은 규범성을 띠게 되고 이른바 관습규범으로 된다.
원시사회에 있어서의 관습은 원시규범으로서 전면적으로 사회규제의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도덕, 종교, 법 등은 미분화상태로 관습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회규모가 점차로 복잡하여짐에 따라 단순한 관습만으로서는 도저히 사회생활의 질서를 유지해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 관습의 분화작용의 계기가 마련되게 된 것이다. 관습의 분화는 내면적 측면에서 인격적 도덕성이 되고, 외면적 측면에서 법규범의 형태를 가지게 된 것이다.
I. 법과 관습의 차이
(1) 법과 관습과의 구별은 Stammler와 같이 자주성을 그 구별의 표준으로 하여 법은 복종자의 동의의 유무를 묻지 않으나, 관습은 임의의 자발적 복종에 기하여 효력을 갖는다고 하는 설이 있다. 그러나 Radbruch가 지적한 바와 같이 관습도 법에 못지 않게 자주적이므로 양자는 구별되지 않는다. 또한 법과 관습의 관련은 관습이 법률의 내용을 형성하거나 또 그 기초나 소재를 형성하는 수가 있으며, 법의 연원의 하나인 관습법은 관습을 실체로 하여 성립하는 것이고, 또 법은 어떤 때에는 관습에 의한 것을 규정하거나 혹은 관습을 고려하여 법률관계를 정할 것을 법규 중에 규정지우고 있는 것이다. @p56
(2) 따라서 법과 관습과를 그 내용에 있어 구별하는 것은 곤란하며, 도덕, 종교의 경우와 같이 기능적 방면에서 그 구별을 하여야 할 것이다. 즉, (i) 타당영역에서 고찰할 때 법은 국가사회의 규범이나, 관습은 부분사회에 한하여 각각 관행으로서 성립하고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다. (ii) 강행성에서 보더라도 관습이 구속력을 가지는 것은 일정한 행동이 기왕에 있어 오랫동안 관행되어진 사실에 유래하는 것이며,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그 사회에 속하는 자의 비난이 될 뿐 아무런 법률상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이에 반하여 법은 현실적으로 국가의 중심권력에 의하여 강행되어지는 것이다.
II. 법과 관습과의 관계
Radbruch가 지적한 바와 같이 관습도 법에 못지 않게 자주적이므로 관습이 사회생활의 질서유지에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 확신된 때에는 법의 내용으로 흡수되어 조직적, 사회적인 힘에 의하여 강행된다. 관습이 발전하여 법적 가치에 일치될 때 불문율인 관습법이 생성되고 법과 관습은 융화된다. 따라서 관습이라 하더라도 국가권력에 의하여 강행되면 관습법이라는 법의 일종이 되고(주 18) 법률행위 해석의 기준이 된다(민법 106조).
* 주 18: 혼인신고가 있어야 법률상 부부이나, 혼인신고없이 사실상 혼인생활을 하는 사실혼도 관습과 관련이 있다. 민법에서는 사실혼을 법률혼으로 인정하지 않으나 판례 (대법원 1970, 4, 28, 69 므 37 집 18권 1집 민 359면)나 노동기준법시행령,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시행령, 사립학교교원연금법, 선원법시행령 등의 특별법에서는 배우자로 인정하고 있다.
@ff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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