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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2/가족 법론

제1장 서설

by FraisGout 2020. 5. 10.

    @[(1) 제1절 인간과 사회, 그리고 법@]

   I 인간과 사회
인간은 사회에서 날마다 생활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를 떠나서는 생활할 수 없고, 사회로부터 고립된 인간은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각자의 필요성에 따라 서로 협력하고 타인과의 결합을 통하여 사회에서 정착을 하게 된다. 타인과의 관계없이 생활하는 인간은 단순하고 의제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으며, 개개인은 고립이 아닌 서로 밀접불가분한 관계에서 사회라는 테두리안에서 공동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eles)는 일찌기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하였으며, 이 명제는 사람은 하나의 생명체인 동시에 사회적 공동생활을 영위하는 사회적 조직체의 일원으로서 인간의 사회성을 말한 것이다. 동물세계에 있어서도 일종의 사회성을 볼 수 있으나, 그것은 한낱 동물의 본능적인 야생적 군집성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의 사회적 공동생활은 자유에 바탕을 둔 이성에 의하여 규율되는 공동체의식과 더욱 향상된 생활의 향유를 위한 목적의식에서 이루어진다는 데 그 특징과 가치가 있다.
따라서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격리된 인간은 물리적인 자연과학의 대상은 될 수 있으나 사회과학의 대상은 될 수 없는 것이며, 동시에 법적 분야에서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존재’를 의미하는 것이다.
@p22
이에 기르게(Gierke)의 “사람이 사람된 까닭은 사람과 사람과의 결합에 있다”거나, 하이데거 (Heidegger)의 “사람의 존재는 타인과의 공존에 있다”라든가, 순자의 “사람은 힘에 있어서 소를 당할 수 없고 뛰는 데 있어서 말을 당할 수 없지만, 소나 말이 사람에게 이용되는 까닭은 사람의 군집생활, 즉 사회생활에 있다”라고 한 것 등은 모두 인간과 사회와의 불가분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하겠다. 이처럼 인간이 사회생활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이다.
   II. 사회와 규범
이와 같이 인간은 사회를 형성하면서 공동생활을 한다. 그런데 사회(society)라는 것은 인간상호간의 사회관계의 복합체이다. 칸트(Kant)가 말헸듯이 사람은 사회적 본성(Geselligkeit)과 반사회적 본성(Ungeselligkeit)이라고 하는 모순된 본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특히 다종다양의 욕망 속에서 반사회적인 이기심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다라서 다수인의 사회에서는 필연적으로 각자의 이해가 충돌하게 되며, 이와 같은 이해의 충돌을 이른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만이 있어 사회의 질서와 기능이 마비되어 사회는 존립할 수 없고, 약육강식의 무정부상태에 빠져버리게 된다. 여기에 인간은 각종의 반사회적인 이기심을 억제하여야 하며, 동시에 인간이 준수하여야 할 사회규범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규범(Norm)은 인간이 사회생활에 있어서 ‘하여야 한다’ 또는 ‘하여서는 안된다’는 가치기준을 인위적으로 창출한 것이며 이러한 점에서 규범은 당위성(Sollen)을 갖는다.
사회규범에는 종교, 도덕, 관습, 법 등의 여러 가지가 있다. 개인의 자아의식이 희박하였던 고대사회에 있어서는 종교, 도덕, 관습 등과 같은 규범으로서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으나, 사회가 진보, 발달하여 그 규모가 확대되고 개인의식과 사회의식이 높아진 오늘날에 있어서는 단순한 사회규범이 아닌 법규범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법은 사회규범에서 분화하여 사회질서유지의 중심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p23 그리하여 법은 사회의 성립요건으로서 법이 없는 국가사회는 존재할 수 없고, 모든 사회에는 반드시 그 사회의 특유한 법이 존재하며, 또한 법을 떠나서 사회를 생각할 수 없다. 특히 현대국가는 법치주의를 기본원리로 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모든 행위는 모두 법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따라서 법과 사회는 필연적으로 불가분의 밀접한 관계에 있게 되어 “사회있는 곳에 법이 있고, 법있는 곳에 사회가 있다”는 명제가 성립된다. 예링(Jhering)이 말한 바와 같이 법이란 “사회의 생활조건이다.” 또한 괴테(Goethe)의 “지옥에도 역시 법은 있다”라는 말도 설득력을 갖는다.
   III. 사회와 법규범
법규범의 내용과 사회생활의 본질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으며, 사회생활의 변천은 법규범에 바로 반영되어야 한다. 예컨대 있는 자와 없는 자와의 대립, 갈등 속에 현행법의 고용 (민법 655조--663조), 전세와 임대법 (민법 303조--319조, 618조--654조)등의 규정으로는 이미 그 사회적 타당성을 잃게 되었으며, 이러한 것은 없는 자의 생존권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그리하여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법, 주택임대차보호법 등이 생기게 되었다. 법규범의 내용은 사회생활, 특히 경제적인 여러 조건에 상응하는 것이 아니면 안된다. 그런데 사회는 항상 진전하여 오늘의 사회는 이미 어제의 사회가 아니다. 그러나 법규범은 한번 제정되면 고정되고, 특히 거대한 법전이라면 그 개정은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법규범은 끊임없이 진전해 가는 사회생활의 현상을 쫒아갈 수 없을 뿐 아니라 그것을 후퇴시키는 반작용을 한다고 하는 비난이 일어나게 된다.
사회생활의 성격이 법규범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동시에 법규범이 사회생활의 성격에 맞는 내용을 가져야 한다는 요구이다. 사회생활의 실체가 변천하고 새로운 생활이 발생할 경우에는 법규범이 수정되고 혹은 새로운 법규범이 정립되지 않으면 실생활과의 사이에 갶(gap)이 생기게 되고, 이것이 커지면 법규범은 사회적 타당성을 잃게 된다. @p24 여기에서 주의하지 않으면 안되는 점은 법이 규율하는 사회생활의 실체에 알맞는 내용을 가져야 한다고 할지라도, 그 생활관계를 무조건으로 승인한다고 타당한 것이 아니고, 이성에 기하여 법의 목적인 정의의 견지로부터 판단하여, 역으로 그 생활관계를 지도하는 것이 아니면 안되는 점도 또한 간과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2) 제2절 법지식의 필요성@]
   I. 법학에의 반감
옛 그리스인은 철학을 발전시켰으나, 옛 로마인은 법학을 발전시켰다. 인류역사상 법학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법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매우 자랑스러운 일이며, 법학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존경도 받는다. 법학을 배운다는 것은 인간사회에서 바르게 사는 원리와 지식을 배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법학을 가리켜서 “정의의 학문”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법학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반감을 가지고 있다. 법학을 ‘빵을 위한 학문’이라고 비웃기도 하고, 법학을 공부하는 사람을 보고 ‘법학과 타산적 혼인을 한 자’라고 비웃기도 하며, 하이네(Heine)는 법학을 ‘가장 압제적 학문’이라 했고, 키르히만(Kirchmann)은 ‘법학은 학문으로서 가치가 없다’라고까지 말하였다.
그러나 이에 당황할 필요는 없다. 인간은 피안적 생을 영위하는 동안에 절대적인 것, 영원한 것 보다는 오히려 상대적인 것, 무상한 것에 강하게 지배되지 않을 수 없으며, 그 속에서나마 바른 것, 정의로운 것, 가치있는 것을 찾으려는 노력이 법을 향한 노력이고, 그것을 학문화한 것이 곧 법학이라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 없을 것이다. @p25 특히 20세기에 들어와서 법학연구에 있어서 사회학과 관련을 갖고 법학의 ‘과학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노력의 성과로 법학이 손색없는 사회과학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 법률가도 권위주의와 특권의식을 버리고, 정확한 법지식을 가지고 법을 운용하여 사회질서유지에 봉사한다는 임무를 충실히 다 함으로써 사회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볼프(Wolf)의 표현을 빌리면 법률가는 ‘사랑스럽지는 않으나, 없을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II. 법지식의 필요성
훌륭한 인격과 교양을 갖추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을 보고, 그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혹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은 법에 위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한다. 그러나 오늘의 복잡해진 산업사회에서는 훌륭한 인격자가 반드시 성실한 준법자라 할 수 없게 되었으며, 건전한 상식을 가진 자가 반드시 준법생활을 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법격언에 “ 법 위에서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라거나, “법의 부지는 용서받지 못한다”가 있는 바와 같이 우리 문화시민은 아무리 인격자 또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자라 하더라도 모두 기초교양의 일부로서 법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법의 정당한 보호의 혜택을 받아야 할 것이며, 법을 모르기 때문에 죄를 범하거나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에 대한 지식을 넓힌다는 것은 현대인으로서 필수불가결한 요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사회의 생활조건’인 법이 얼마나 이익이 있고 필요한가를 대략 보기로 한다.
  (1) 실제 생활상의 이익
법의 실생활상의 필요도는 각자의 생활분야에 따라 다르다. 중앙이나 지방의 행정, 정치적 생활을 영위하는 자는 헌법, 행정법 등의 지식을 필요로 하고, 개인 상호간의 일상생활에는 민법의 지식이 필요하며, 경제계나 기업경영자는 상법, 민법, 경제법, 노동법 등이 특히 필요하다. @p26 그러나 우리는 누구를 막론하고 너무나 법을 모르고 있다. 회사원은 사회실무만 잘 하면 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큰 잘못이다. 상법, 민법도 알아야 함은 물론 노동법도 알아야 자기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또한 찾을 수도 있다. 일반시민도 마찬가지다. 일상생활을 해 나가는 데는 작게는 시장에 가서 식료품을 사는 것부터 혼인신고, 부동산매매, 전세, 저당, 상린관계, 채권채무, 사기, 횡령, 폭행 ...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날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법률문제는 많다. 사회생활을 하는 사회인이라면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최소한의 법지식은 알고 있어야 문화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가질 수 있고 실제 생활의 보탬이 되어주는 것은 물론 사회적 영달을 얻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주 1)
특히 오늘날의 생활은 생존경쟁시대로서 여성들의 활동이 크게 기대되고 있다. 과거의 여성들은 법을 너무나 등한시하여 가정생활에서나 사회생활에서나 불이익한 대우를 받아 왔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남녀평등, 부부협조 의무시대이다. 따라서 여성도 법지식을 넓혀 가정에서 또는 이웃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법률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바쁜 남편 대신 혼인신고, 전세계약 등을 할 줄 알고, 이웃과의 분쟁을 여성끼리 해결할 줄 알면 그 가정은 시간적, 경제적으로 얼마나 이익이며, 얼마나 법률문화가정이겠는가? 또한 남편으로부터, 이웃으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하고 얼마나 존경받겠는가! 최소한의 법지식은 특히 미혼시에 알아 둘 필요가 있다.
  (2) 정당한 권리행사를 하고 보호하기 위한 실익
현대국가는 법치주의를 기본원리로 하는 민주법치국가이기 때문에, 개인의 사회생활은 곧 법률관계로 되어 법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법률관계는 권리나 의무의 관계를 의미하기 때문에 개인이 권리를 행사하고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법지식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어떠한 권리가 주어져 있고 의무가 부여되어 있는가를 아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일반적으로 시민은 법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 주 1: 서양의 법언에 “유스티니아누스 (Justinianus)가 명예를 준다”는 말이 있는 데 이것은 바로 사회적 영달을 가리키는 것이다. @p27 법이 자기에게 부여한 권리, 의무를 잘 모르고 있다. 법은 법위에서 잠자는 사람을 보호하지 않으며, 더우기 법의 무지는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어서 언제나 무죄가 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법이 개인의 권리를 명백히 보장하고 있을지라도 그것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그 권리는 사장되고 만다. 자신의 권리를 외면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는 물론 사회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못하게 되어 민주시민으로서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법에 대한 이해는 곧 사회에 대한 이해를 의미하며 문화시민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라 하겠다. 따라서 우리는 법을 알고 이해하며 권리를 정당히 행사하고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는 시민이 되어야 하겠다.
주어진 권리를 국가나 개인으로부터 침해받아도 우리는 구제받지 못하고 가만히 있어야 할 것인가? 우리는 마땅히 보호, 구제받을 수 있는 민사소송, 형사소송, 행정소송 등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침해를 감수하는 사회는 민주주의의 기반이 확고해질 수 없을 것이다. 예링(Jhering)의 말처럼 “권리의 행사가 자기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사회공공에 대한 의무”라고 한다면 권리의 침해에 대한 구제도 마찬가지로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권리를 보호, 행사하고 또한 구제받기 위해서도 우리는 법을 알아야 하겠다.
  (3) 인격을 함양하는 데의 실익
예는 인간이 지닌 공경심을 자율적으로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한다면, 법은 인간이 지닌 사심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이 사심은 순전히 주관적인 자기 본위의 목적에서 이루어질 때가 많다. 이것은 결국 인간의 감각적인 이목과 이성적인 심관을 잃는 것이 되고(맹자), 사회생활의 입장에서 보면 정의 또는 공공복리가 무시되는 경우가 된다.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기 위하여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의 법은 정의, 형평 또는 사실의 자연적 성질에 적합한 것을 사고하는 이지력과 정당하다고 확신하는 것을 주장하여 굴하지 않는 의지력 등의 인간의 인격을 함양하는 것이다.
@p28
  (4) 사회개량에의 실익
인간은 자기 자신의 인격완성을 위하여 노력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사회일반의 개량을 위해서도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는데도 법은 적합한 방법을 제시해 준다. 즉, 사회의 개혁이 혁명이나 쿠테타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민법에 의한 법률적 개량 또는 법률해석에 의하여 사회적 폐단을 시정하여 이상적 사회를 이룰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일정한 시기와 장소에 있어서의 정적인 사회생태만을 본다면 그다지 명백하게 나타나지 않으나, 상당한 장기간을 통하여 사회상태의 변천을 관찰한다면 법률제도의 개혁이 사회상태의 개량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를 알 수 있다.
  (5) 사회질서 유지에의 실익
우리는 법없이는 하루도 편안히 생활할 수 없다. 이것은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도 같다. 그런데 인간은 절대로 준수해야 하는 법을 악용하여 사회질서를 어지럽히기도 한다.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것이 법의 가치이고 목적이다. 러시아계 영국의 법제사가 비노그라도프(Vinogradoff)는 “두 어린 아이가 놀 때, 서로 지켜야 할 규칙이 없이 제각기 제마음대로 행동한다면, 두 아이는 노는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하였다. 잠시동안 두 아이가 함께 노는 관계에 있어서도 질서유지를 위해 규칙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사회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서는 질서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질서가 필요없는 사회’는 생각할 수 없으며, 이러한 사회는 사회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Goethe의 “무질서한 것보다는 오히려 불평등한 것이 낫다”라는 말은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질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시사하는 것이다. 여하간 질서는 법의 생명이기 때문에 우리는 법을 알고 질서유지에 노력하여 건전한 사회를 이룩해야 하겠다.
@p29
  (6) 각종 병폐의 근원과 이에 대한 대책을 찾는 데의 실익
본래 학문으로서의 법학은 우선 처음에는 사회의 구조와 그 존재원리를 연구하고, 다음에 그러한 사회 속에서 각종 범죄, 불법행위 등의 병적 현상이 생겨나는 원리를 연구하며, 그러한 사회적, 병적 현상에 대한 예방책을 강구한다. 동시에 법은 도덕이나 종교 등이 생활질서의 사전적인 형성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주로 사후적인 구제에 그 주안점을 두고 있다. 따라서 법지식의 필요성은 인간사회의 본질을 이해하고 동시에 사회 속에서 생기는 각종 병폐의 근원과 그것에 대한 대책을 세우며 나아가 사전적 보장이나 예방을 하는 데 도움을 준다.
  (7) 정의를 실현하는 데의 실익
인간의 이성에 의한 공동생활의 예지가 정의를 찾고, 이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으로서 법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정의를 추구하는 본성이 있다. 그러나 정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법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과의 차이가 있다. 사회가 제 멋대로(?) 흘러갈 때 법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바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는가를 묻는다. 정치가가 ‘어서 가자’고 하면 법률가는 ‘실수 없이 가자’고 한다. 이러한 면에서 라드브루흐(Radbruch)는 “법학도의 고민은 젊은 신학도만이 이해할 수 있는 고민이다”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우리 모든 인간은 법을 알고 이해하여 사회질서유지는 물론 사회정의의 실현에도 앞장서야 하겠다. 그러므로써 우리는 행복을 누리고 복지국가를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8) 학문상의 실익
사회과학을 광범위한 지반위에서 종합적으로 고찰하기 위해서는 법학이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은 물론, 법학 이외의 개개의 사회과학, 즉 경영학, 경제학, 회계학, 무역학, 정치학 등을 연구하는 데도, 더 나아가서는 인문과학,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데도 법학 지식은 필요하다. 원래 여러 사회과학 중 가장 오래 전부터 발달하고, 가장 상세, 엄밀하게 연구된 것은 법학이다. (주 2) @p30 함무라비법전(Code of Hammurabi) 이래 로마시대에 법 및 법학이 현저하게 발달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또 중세에 있어서 종교법으로서 독자적인 법학이 발달되었다. 이 시대의 법학은 모든 사회과학을 포함하고 있었으나 근세에 이르러 법학으로부터 독립되어 경영학, 경제학, 정치학, 사회학 등이 발달되었다. 그러나 사회현상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종합적인 고찰이 필요하고 각 사회과학의 상호간을 관련지워 고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세인들은 법학을 무미건조하고 비정서적이라고들 한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법학은 십자가를 진 예수나 석가의 고행처럼 인간사회의 참된 무명과 질서를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될 경건한 학문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인류사회는 권력이나 황금에 의해서 밝아진 것이 아니고 의인들의 ‘의로운 목소리’에 의하여 밝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범인이 견디지 못하는 법학자의 고행의 생애에 경의를 표하는 이유가 있다.
  (9) 인간의 사고를 논리적으로 단련하는 데의 실익
법학은 이론적, 체계적인 학문이다. 다라서 법학은 수학과 더불어 학습자의 두뇌를 논리적으로 단련한다. 법학공부는 처음 하는 자는 주로 기억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으나, 법학 학습의 중심은 추리력에 있으므로 그 추리를 논리적으로 전개하고 이를 반복, 계속함으로써 학습자의 두뇌를 논리적으로 호라동시켜 준다. 따라서 법을 알면 어느 사건이 발생할 경우 그 원인을 분석하고, 그 다음에 결과를 내릴 줄 안다. 그래서 어느 돌발적인 사건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고 논리적인 해결방법을 모색한다. 고래로부터 유명한 외교관은 법학을 공부한 사람이 많다. 그것은 외교담판에 있어서 논리정연한 주장으로 상대자를 설복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주 2: 법학은 신학, 의학과 함께 가장 일찍부터 학문으로 정립되어 대학에서 교육되었다. 오늘날까지 목사(혹은 신부), 법률가, 의사는 가운을 입고 있으며, 가운을 입는 직업을 일종의 성직으로 보고 있다. 특히 목사의 성복과 판사의 법복이 매우 비슷하며 이러한 면에서 법률가를 ‘세속적 성직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최종고, 법학통론(전정판), 박영사, 1988. 6면).
@p31
  (10) 교양으로서의 실익
로마의 키케로(Cicero)는 소년시절에 12표법을 필창가로서 암송했고 모든 규정을 초등교육부터 배웠다고 한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의 대륙법계 국가, 영국, 미국과 같은 영미법계 국가 등 세계 각국은 대학교양학부에서 법학을 개설하고 있다. 우리 나라도 예외없이 각 대학에서 교양으로서의 ‘법학개론(혹은 법학통론)’ 과목을 설강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경상계에서는 민법, 상법도 설강하고 있고, 공학, 농학, 의학계열에서도 그들 계열에 필요한 법학과목을 설강하고 있다. 또 여성학의 발전과 더불어 여학생에게는 여성학의 일환으로 여성법률이 개설되고, 2년제 대학에서도 교양으로서 법학강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각 대학에서 법학과목의 개설이 증가해가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은 사회생활에 있어서 법학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법학지식의 필요성은 남녀를 불문하고 현실로 사회생활을 해 보아야 절실히 느끼게 된다. 사회생활은 곧 법률생활이므로 이제는 법학이 법학도만의 것이 아닌 모든 사람의 교양으로서의 법학이 된 것이다. 각종 신문, 라디오 등에서 법률상담을 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또는 각종 사회단체에서 법률상담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법이 사회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해 주고 있다 할 것이다.
그리고 사법시험을 비롯하여 외무시험, 각종의 채용행정고시는 물론, 회계사, 평가사, 자동차면허시험에 이르기까지 법학과목이 있으며, 그 밖의 각 회사의 입사시험에서도 법학과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따라서 대학생의 경우 대학졸업 후 사회진출의 관문을 뚫기 위해서도, 비법학도라도 마땅히 법학을 공부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학도는 최소한 교양교육(liberal education)으로서의 법학을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게 된다.
@p32

    @[(3) 제3절 법학의 안내자 (법학개론, 법학입문)@]
   I. 법학개론의 의의
법학개론(outline of science of law, Rechtsenzyklopadie, einfuhrung in die Rechtswissenschaft)이란 법학 (또는 법률학) 전반에 관한 일반적, 기초적 지식을 말한다. 사회생활은 모두 규범생활로서 좋든 싫든 법규범을 의식하게 되는 것이고 법학에 대한 기초지식을 요하게 된다. 이러한 기초지식을 담은 법학개론은 법학통론, 법학원론, 법학입문 등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모두 비슷한 것이다. (주 3) 법학(jurisprudence, Rechtswissenschaft)은 사회과학의 일분야로서 법에 관하여 이론적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학문이다. 또한 법률이라고 할 때 헌법, 형법, 민법, 상법, 형사소송법, 민사소송법 등 여러 종류로 구분할 수 있으나, 이러한 모든 법률은 인간과 인간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어떻게 하라, 어떻게 하여야 한다, 하여야 한다, 하여서는 안된다”라는 등, 생활관계를 규율함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법학개론이라고 하면 헌법, 형법, 민법 등의 여러 법률에 대항 하나 하나를 구체적,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법학 전반에 관하여 연구하는 데 필요한 준비지식이나 기초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분야라고 할 수 있다.
   II. 법학개론의 사명
법학이라는 학문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한 과목 안에 모두 함축하여야 한다고 하면, 개별문제에 대하여 자세히 들어갈 여유가 없어지고,
* 주 3: 1905년 유성준(유길준의 동생) 선생의 법학통론이 한국 최초의 법학개론서이고, 해방 후에는 1947년 전봉덕박사의 법학통론이다(최종고, 현대법학의 이해,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7, 58면 참조). 그 후 현재까지 60여종의 관련서적들이 있다. @p33 반대로 한 문제 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들어가면 그 분량이 너무 많아 하나의 교과서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가 어렵게 된다. 그래서 법학개론은 교과서에서나 강의에서나 이러한 양면을 잘 조정하여 피상적이 아니면서도 간단, 명료하게 안내하고 전체적인 이해를 하도록 도와주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할 것이다. (주 4) 특히 법학개론에서 중요한 것은 법학의 각 분야에서 쓰이는 법률용어들을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다. 또한 법학개론은 법철학의 기초 위에 서는 것이므로 ‘법학개론’을 통하여 법적으로 사물을 생각하는 정신(legal mind)이 다져질 때 법학을 공부하는 바른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III. 법학을 공부하는 방법
일반사람들은 법학을 딱딱하고 무미건조하다고 한다. 법학은 논리성과 체계성이 있어 그렇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법학은 반복, 학습할수록 오히려 맛이 우러나는 학문이다. 법학에서 어느 한 가지 사실의 배후에는 수십, 수백의 인간에 관한 사실과 진실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법학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질수록 더욱 묘미를 느끼게 된다. 법학자들은 이러한 묘미속에서 법학의 긍지를 느끼며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다.
법학공부를 처음 시작하는 학생들의 가장 큰 관심은 효과적인 공부방법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알맞은 방법은 없다고 본다. 다만 선학의 공부방법은 하나의 타산지석이 된다고 보아, 독일의 괴팅겐(Gottingen) 대학의 민법교수인 우베 디이데릭센(Uwe Diederichsen)의 저서 ‘초학자를 위한 민법총칙’에 있는 법학공부를 위한 12가지 수칙을 간단히 소개하기로 한다. (주 5)
* 주 4: 여기에 교과서의 편집과 강의에 대한 방법론이 문제된다. 대부분의 교과서는 총론이나 각론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법학과의 경우 각론분야는 앞으로 배울 것이므로 총론의 기초부분에 중점을 두어 강의하고, 각론에서는 각 실정법을 하나씩 소개하면서 중요한 문제들을 간단히 강의하면 될 것이다. 비법학과의 경우는 일반 교양으로서의 필요한 지식을 주는 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한 학기를 반으로 나누어 기초분야와 각 실정법을 강의하며, 특히 각론에서는 교양으로서의 생활법률 강의가 더 필요할 것이다. 강의는 일반적으로 초심자를 상대해야 하므로 알기 쉽게 할 필요가 있고 담당교수는 오랜 연구와 강의 경험이 있는 분이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주 5: 자세한 것은 최종고, 전게서, 10--12면 참조.
@p34
제1칙; 지금부터 공부를 시작하라.
제2칙; 한꺼번에 너무 많이 공부하려고 하지 말아라. 규칙적인 학습태도를 길러야 한다.
제3칙: 학습계획(Arbeitsprogram)을 세워서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제4칙; 법은 가치의 실현이다. 그러므로 법규의 의미(법규의 목적)를 탐구하여야 한다.
제5칙; 읽기와 듣기(수강) 만으로 공부가 끝난 것이 아니고 학습성과를 점검하여야 한다.
제6칙; 이해되지 않는 부분은 참고문헌을 참조하거나 선배, 저자, 교수 등에게 질문하여 의문을 풀어야 한다. 질문하기를 싫어해서는 안된다.
제7칙; 판례를 읽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제8칙; 여러 교과서 중 최량의 하나(이것은 바로 기본서 역할을 한다)를 선택하여 반복하여 읽어야 한다.
제9칙; 기본서 이외의 저서에서 중요한 내용은 기본서의 해당 페이지에 써넣는다.
제10칙; 개념규정, 정의를 낱말 하나까지 암기하여야 한다.
제11칙; 배운 것을 기억하기 위해서는 계속 반복하여 공부하여야 한다.
제12칙; 동료, 선배들과 공부그룹 (Arbeitsgruppe)을 조직하여 정기적으로 토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에 든 12수칙 이외에도 헌법학자인 문홍계박사는 법학의 기초이론은 ‘민법총칙’에 있다고 말하고, 민법총칙을 되풀이하여 읽을 것을 권장하고 있다. (주 6) 이와 같이 ‘계속 읽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며 특히 법조문과 판례의 공부를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실정법학은 대체로 해석법학인 것이다. 따라서 조문없이 해석법학이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판결의 근거 내지 이유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살아있는 법학’에 접근도 해야 한다. 언제나 “무슨 뜻인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경우를 말하는가, 왜 그리하여야 하는가, 왜 그곳에 위치하여야 하는가”등을 스스로 생각하여 이해하여야 한다.
* 주 6: 문홍계, “처음 법학을 공부하는 분에게,” 월간고시, 1984년 4월호(통권 123호), 11면 참조.
@p35
 이상을 참고하여 각자 자기의 적성에 맞는 공부방법을 개발하여, 사례연구와 전반적인 법학의 정립을 항상 스스로 연구하여 정진해야 한다. 각자가 끊임없는 학문에의 정진을 통하여 자기 자신의 학습방법을 개발하여 학습능률과 성과를 계속 올려나가면 틀림없이 성공하는 날이 올것이다.
‘법은 빛이다’라는 말과 같이 항상 열심히 공부하며, 법의 정신을 생각하면 진실로 법은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ff @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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