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어떤 사내가 검은 말을 타고 전쟁터에 나갔다. 그러나 그 사내는 워낙 겁이 많았다. 적군이 두
려워 감히 싸워볼 엄두가 나지 않아 얼굴에 다른 사람의 피를 바르고 죽은 시늉을 한 채 시체더미속에
누워 있었다. 그가 타고 갔던 말은 적군이 전리품으로 챙겨가 버렸다.
적군이 철수하자 그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겁쟁이라는
말을 듣기는 싫어 근처에 있던 죽은 말의 꼬리를 베어냈다. 자신이 타고 온 말과는 다른 흰 말의 꼬리
라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서는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자 마을 사람들이 물었다.
"자네가 타고 갔던 말은 어찌하고 걸어서 돌아왔는가?"
그러자 그 사내가 대답했다.
"내 말은 용감히 싸우다가 죽었소. 그걸 기념하기 위해 이렇게 말꼬리를 베어온 것이오."
"자네가 타고 갔던 말은 검은 말이었는데, 어떻게 그 말꼬리는 희단 말인가?"
사내는 할 말을 잃고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다. 이에 마을 사람들은 그 사내를 손가락질하며 비웃었다.
<백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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