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팔만대장경 이야기

교행 육 년의 인연

by Frais Study 2020. 6. 24.

  불심이 깊어 계율을 잘 지키며 선정을 베푼 한  국왕이 있었다. 백성들은 인자한 국왕 덕에 태평성세
를 구가하였다. 그때 한 수행자가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산속에 살면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걸식을 하러 나왔다가 몹시 목이 말라 연못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연못 속에 연꽃이 여러 송이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수행자는 이내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차, 내가 잘못을 저질렀구나. 연못 주인이 연꽃을  심어 기른 후 부처님에게 공양하려고 했을 터인
데, 내가 주인에게는 한마디 말도 없이 연꽃이 취할 물을 마시고 말았구나.  도둑질한 죄를 지으면 내생
에 축생으로 태어나 갖은 고생을 다할 것이고, 사람으로  태어난다 해도 노비가 되어 등이 휘어지게 일
을 해야 할 것이다. 정말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구나. 당장 죄를 자백하고 용서를 구해 내생에 그와 같
은 과보를 받지 않아야겠구나.'
  이렇게 생각한 수행자는 서둘러 국왕을 만나러 갔다.
  "대왕이시여, 저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쳤으니 법대로 처벌해주십시오. 저는 이  세상에서 그 죄의 
대가를 치름으로써 내세에는 또다시 죄과를 받지 않으려 합니다."
  국왕은 자리에 앉아 수행자가 하는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듣고 나서 박장대소하며 말했다.
  "수행자여, 당신은 왜 그렇게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이오?  당신이 마신 물은 하늘이 준 자연의 물이
오. 그리고 그것은 보물도 아니니 죄를 범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오."
  "대왕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집 안에 있는 우물이나 밭에 있는 채소를 그 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마
시거나 먹는 것이 바로 도둑질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부디 저를 처벌해주십시오."
  "지금은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바쁘니, 정녕 그대의 뜻이 그러하다면 후원에 가서 기다리고  있
으시오. 내가 사람을 보내 다시 부르리다."
  그러자 옆에 있던 태자가 왕의 말에 따라 그 수행자를 데리고 후원으로 안내했다.
  그런데 국왕은 국사가 너무 바쁜 바람에  수행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
다. 그러다가 칠일째 되는 날 아침 국왕은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나서 곁에 있던 신하에게 급히 물었다.
  "그 수행자가 아직도 후원에 있는가? 있다면 어서 데리고 오도록 하라."
  수행자는 후원에서 육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왕이 다시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국왕
을 다시 만나게 된 수행자는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서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국왕은 자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모든 게 나의 잘못이다."
  국왕은 곧 신하들에게 명하여 그 수행자에게 진수성찬을 대접했다. 그러고는 수행자에게 고개를 숙여 
참회했다.
  "나는 일국의 왕이오. 백성이 굶주리면 나도  밥이 넘어가지 않고, 또 백성이 헐벗고  있으면 나 또한 
마음이 편치 못한 법이오. 그런데도 지금  나는 악행을 저질러 수행자를 괴롭게  만들었소. 내가 이전에 
아무리 좋은 일을 했다고 해도 이 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오. 국가가 평안하고 백성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왕의 덕행에 기인하는 것이오. 주인에게 알리지 않고 물 한 모금 마신 것이 죄가 된
다면, 내가 수행자를 기다리게 한 것은 더욱 중한 죄임에 틀림없소. 수행자여, 당신의 죄는 내가 용서할 
테니 앞으로 그 일은 잊어버리도록 하시오."
  "대왕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수행해서 대왕의 은덕에 보답하겠습니다."
  수행자는 말을 끝내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수행에 더욱 힘썼다.
  그 이후 국왕은 생사의 바다를 윤회하면서 끊임없이 계속 불도를 닦은 덕에 마침내 깨달음을 얻었다. 
그러나 그 옛날 수행자를 육일 동안 고생시킨 죄과로 육 년 동안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수행의 
과정을 치르고 나서야 성불할 수 있었다.
  <육도집경>

'기타 > 팔만대장경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생사의 비유  (0) 2020.06.24
착한 사람  (0) 2020.06.24
여우가 비웃다  (0) 2020.06.24
독을 쓰는 집안  (0) 2020.06.24
꼭두각시  (0) 2020.06.2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