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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2/철학

철학과 굴뚝청소부

by Frais Study 2020. 5. 28.

서론

포스트모던 시대정신

하나의 사상, 하나의 시대정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 이젠 너무도 분

명한 듯 보입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이런 선언을 아직도 들어 보지 못한 분이 있다면 시

대 조류에 매우 둔감한 분일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어디서나 거론되는 '포스트모더니

'이라는 사조는 하나의 사상이나 시대정신이 이젠 더 이상 세상을 지배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했습니다. 나아가 최근의 다양한 사회현상들을 '포스트

모던하다'라는 형용사로 특징짓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아직도 이런 시대 흐름

을 이해하지 못한 사조들, 예를 들면 맑스주의 같은 것들은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옛 이야기

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점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시대정신 속에서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포스

트모더니즘이 몰락한 낡은 사상들을 대신해서, 몰락한 맑스주의 혹은 진보의 이념을 대신해

서 일종의 새로운 시대정신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총체성에 대한 반대, 계몽

주의에 대한 반대, 합리주의에 대한 반대, 거대이론(Grand narrative)에 대한 반대 등. 하지

만 이는 그것을 시대정신의 종말을 선언하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분명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

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사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내용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새로운 정신은 대개 무엇-이전에 지배적이던 것이겠지요-에 대한 반대에 머물고 있기 때문

입니다.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생각, 정의 들이 주장하는 사람마다 다른

것은 이와 그리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론을 시작한다고 해서 제가 이 강의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반론

을 펴거나 포스트 모던한 비판에 대해서 '근대주의'를 옹호하려 한다고 받아들이진 말아 주

십시오. 저는, 그 방향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으나, 포스트모던하다고 지칭되는 현

상들, 혹은 모던한(근대적인) 이론에 대한 그 비판적 요소들을 무시하고 매도할 생각은 없습

니다. 다만 저는 포스트모던에 대한 화려하고 요란한 논의 속에서 오히려 질문되지 않은 채

잊혀진 문제들, 그러나 결코 사소하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게 어쩌

면 좀더 근본적인 건 아닐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포스트모던 혹은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할 때, 이것은 근대의 뒤에 오는-'포스트''무엇

의 뒤'라는 말이죠-어떠한 시대나 그 시대를 반영하는 어떠한 이념을 말하는 것입니다.

렇다면 근대란 도대체 무엇인가, '근대를 벗어난다'고 하는 의미에서의 '탈근대'란 무엇인가

(이것을 우리는 탈근대라는 말로 잠정적으로 규정합시다. 이후에 저는 탈근대 exmodern

포스트모던을 구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근대를 벗어난다고 하는 의미에서 포스트모던이라

고 말할 때, 이것은 지금 현재의 시대를 탈근대라고 부르는 서술적 정의(시대 규정), 아니면

근대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규범적 정의(당위), 나아가서 근대를 벗어나야 한다면 왜

벗어나야 하는가, 왜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되는가-이러한 문제들이 명확히 질문되지 않은

, 따라서 대답되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러한 것들을 묻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단지 포스트모던하다는 주장을 비판하거나 일축하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제기되고 있는 문제들을 좀더 근본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근대란 무엇인지, 탈근대란 무엇인지, 그리고 근대를 벗어난다 함은 무엇

을 뜻하는지, 만약 근대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타당하다면, '벗어남'을 위해선 무엇이 필

요한지, 즉 탈근대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요구되는지를 검토하는 게 좋을 것 같

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것이 이 여섯 번의 강의를 일관하고 있는 제 문제의식입니다.

조금 더 나아간다면, 이런 관점에서 근대성 자체를, 그리고 '맑스주의와 근대성'이란 주제

를 이런 사고의 기초 위에서 다시 검토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주제는 다음 기회를 빌려야 할 것 같습니다.

 

철학의 경계

저는 예전에 쓴 책(<상식 속의 철학 상식 밖의 철학>)에서 "철학은 의심하기에서 출발한

"고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철학이란 이런 방법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철학과 투쟁한다

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철학사는 전장(전쟁터)이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치고받는 이 투쟁을 통해 철학자들이 얻어내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때까지 지배

적이던 철학 밑에서 사고되지 못했던 것, 또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을 찾아내고 열어젖뜨

리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전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 지배적인 사

상 때문에 오히려 보이지 않고 사고되지 않게 된 것을 찾아내고 확보하는 투쟁이 바로 철학

인 셈입니다.(<논리 속의 철학 논리 밖의 철학>, 234).

사실 철학에선 자신이 다른 사상가들과 어떤 점에서 다르며 어떤 점에서 새롭다는 것을

입증하지 못하면 독자적인 사상가로 남아 있기 힘듭니다. 즉 다른 사상가와의 차이를 통해

서만 철학자들은 철학사에서 자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다른 사람들

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고 보편성을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보편성이 있으

면서도 남과는 뭔가 다른 사상이어야만 철학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결국 철학은 앞서 있던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런데 넘어서는 것에도, 무엇을 어떤 수

준에서 넘어서느냐에 따라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최소한 세 가지 수준

'넘어서기'를 구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당시에 지배적인 어떤 사상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 앞의 지배적인 철학과

자신의 철학 간의 차이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앞선 사상을 넘어선다고 할 때 최소한

의 필요조건인 셈입니다. 기존의 지배적인 사상 안에 머물거나 기존의 지배적 사상 안에서

그것을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새로운 사상을 형성해 내는 것이라면 최소한 자기의 앞선 시

대를 지배하던 사상을 넘어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칸트의 사상이 지배적이던 시대에

새로운 사고 영역을 개척하려는 사상은 칸트의 사상을 넘어서야 합니다. 즉 칸트의 것과는

다른 철학으로서 자신의 철학을 세우지 않는다면 새로운 사고 영역을 열었다고 하기는 힘들

겠지요.

물론 그렇다고 넘어선 그 사상이 칸트 것보다 나은 것이라거나 발전된 것이라거나 하는

식으로 평가하기는 곤란합니다. 여기서 '넘어선다'는 말이 어떤 '발전'이나 '진화'를 뜻하는

게 아님을 분명히 합시다(기존의 것에 가려져 안 보이던 새로운 사고 영역을 연다는 것이

반드시 발전은 아니며 그럴 필요도 없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어 헤겔의 사상이 칸트를 넘

어섰다고 해서(이건 사실이지요) 반드시 칸트 것보다 발전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떤 측면에선 정반대의 평가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과학에서와는 달리 철학에서

는 아직도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가 살아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몇몇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생각을 묶어 주는 '흐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륙의 '이성주의', 영국의 '경험주의'니 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생의 철학'이니, '

존주의''구조주의'니 하는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새로운 사상은 때론 이 같은 의미를 갖

는 하나의 흐름을 넘어섭니다. 즉 어떤 흐름을 특징짓는 전반적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이

지요.

이처럼 하나의 흐름을 넘어선다는 것은 당연하게도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예컨

대 로크가 데카르트를 넘어선다고 할 때, 이는 단지 한 철학자의 사상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사상을 열었다는 의미만 갖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다른 다수의 사상가들을 포괄할 새로

운 사조를,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냅니다. <과학혁명의 구조>로 유명한 토마스 쿤(Thomas

Kuhn)의 용어를 빌리면, 일종의 '패러다임 변혁'으로 비유할 수 있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

런 변혁을 통해 새로운 사고방식에 인간이 접근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이런 '

어서기' 역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고 경계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발전이나 진화,

진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과학과는 달리 얼마든지 역전될 수 있고, 얼마든지 반

전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의 시대를 지배하는 특정한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성주의

니 경험주의니 하는 것들은 모두 다 '근대 철학'으로 묶입니다. 이처럼 개개의 사상뿐만 아

니라 흐름들을 하나로 묶는 사고방식이 있을 수 있고, 철학이 무엇을 넘어선다고 할 때 가

장 넓은 차원에선 이런 시대적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중세 철학을 넘어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사상을 세웠다고 할 때, 우리는 이런 의미

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런 차원의 '넘어서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실 시대의 변화가 만들

어 내는 것이며, 그것이 철학자들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는 거대한 변화가 철학자들에게 지각됨으로써 나타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헤겔의 말대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 무렵에야 비로소 날개를 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철학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철학의 역사 안에 그어진 그 경계선들을 찾아내고, 그 경계선

마다 새겨진 의미를 읽어 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걸 통해서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다양

한 영역들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나아가 자신의, 그리고 인간의 사고를 '극한(limit)'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입니다. 이래서 알튀세(L. Althusser)의 말처럼 위대한 철학자는 "극한에서

사고하고 극한을 넘어서려고 감행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L'Unique tradition

materialiste" Ligne, n 18, Janvier 1993).

 

경계 읽기와 문제 설정

그렇다면 이 경계선들을 찾아내고 그 경계선의 의미를 읽어 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사실 이 문제는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철학자 자신이 자기 사상의 경계

선을 보여 주는 경우는 결코 없으며, 철학책 어디를 봐도 경계선을 보여 주는 표시는 없기

때문입니다.

원뿔을 밑에서 보면 원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보면 삼각형으로 보이는 것처럼, 모든 것은

보는 지점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마찬가집니다. 데카르트를 로크와 대비해 경계선을 찾으

려 할 때와, 칸트와 대비해 경계선을 찾으려할 때, 혹은 중세의 아우구스티누스와 대비해 경

계선을 그으려 할 때 경계선은 모두 다 달라질 것입니다. 또 철학사를 반복의 역사일 뿐이

라고 볼 때와 하나의 진화적 발전 과정이라고 볼 때, 혹은 상이한 사상의 대체 과정이라고

볼 때, 데카르트 철학의 경계나 그것의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철학에서 경계선을 찾아낸다는 것은 사실은 경계선을 그어서 그에게 되돌려 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경계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자의 사상이나 철학책 흐름

에 깔려 있는 사고방식 등을 파악할 개념적 도구가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저는 문제 설정

(problematique, 이는 원래 알튀세가 <맑스를 위하여>에서 사용했던 것입니다)이란 개념을

사용하려고 합니다.

일단 생소한 말일 테니 예를 들어 설명해 봅시다. 집 대문 앞에 아무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며칠 동안 계속 주차해 놓은 자동차 때문에 불편을 겪다가 화가 나서 그 얄미운 자동차

의 바퀴에 펑크를 내 버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바로 그때 마침 차 주인이 그걸 보고 달려왔

습니다. 그리곤 제게 당연히 항의하겠죠.

"아니, 차 좀 잠시 주차했다고 이렇게 펑크를 낼 수가 있소? 이건 명백히 불법 행위요.

신이 그 책임을 지고 배상해 주시오." 그러나 그 자동차로 인해 숱하게 불편을 겪은 저로

선 그 말에 순순히 응할 리 없을 겁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불법 행위'라는 명목으로 고소

하려 하겠지요. 그럼 저는 그 자동차 주인을 '불법 주차'로 맞고소해야겠지요? 그럼 이제

자동차에 펑크 낸 게 불법 행위인가 아닌가를 문제 삼게 될 것입니다. , 얘기는 이만 줄이

고 다시 철학으로 돌아갑시다.

여기서 문제가 어떻게 설정되었나를 봅시다. '불법 주차한 자동차에 펑크를 낸 행위가 불

법인가 적법인가?' 그런데 이렇게 문제를 설정하면 그에 대한 대답 역시 그 문제를 설정하

는 방식에 크게 좌우됩니다. 다시 말해 여기서는 제 행위가 법에 맞는가 아닌가만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봅시다. 자동차와 나, 자동차 주인과 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는 그 밖에도 많은 방법이 있습니다. 예컨대 왜 그 사람은 주차장이 아닌 남의 집 앞에

불편하게 주차해 두었나?-그건 주차장이 모자라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는 도시 교통 정책

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측면에서 접근한 거죠, 혹은 이럴 수도 있습니다.

나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자동차에 펑크를 냈나?-자동차는 없는 것도

서러운데, 남의 차 때문에 하루 종일 고생을 했으니 화가 나서 그랬다. 이는 심리적 측면에

서 접근한 거죠.

그러나 이런 대답은 불법인가 적법인가를 따지는 문제에선 결코 나올 수 없습니다. 그 같

은 문제에선, 불법 주차한 차에 손해를 입힌 게 불법인가 아닌가라는 법적 문제만이 대답이

될 수 있습니다. 결국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런 종류의 대답은 '대답'이 될 수

없게 되고, 아예 생각하기도 힘들게 됩니다. 대답뿐만이 아닙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문제를 설정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은

교통 정책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불법이니 아니니 하는 건 이 경우에는 끼어들 여지가 없습

니다. 심리적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그 해결 역시 심리적 차원에서만 가능합니다.

반면 법적인 차원에서 제기하면, 불법 행위를 한 사람이 배상을 해주어야 해결이 됩니다.

이 경우 법 자체가 정당한지 아닌지는 결코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이런 문제 설정으론 기존

법의 올바름은 당연시됩니다. 즉 법 자체를 다시 사고할 수 없는 문제 설정인 셈이지요.

이처럼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문제를 사고하고 처리하며 대답하는 방식은

전혀 달라집니다. 이런 이유에서 "문제가 제대로 제기되기만 하면 이미 반은 풀린 것이다"

라는 말도 하는 겁니다.

이건 과학에서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뉴턴의 이론이 나온 뒤에 다른 행성의 궤도는 다

그 이론에 따라 계산한 게 맞는데 오직 천왕성만은 안 맞았습니다. 이 경우 '이론을 반박하

는 사례가 나오면 그 이론을 포기해야 한다'는 실증주의나 반증주의(포퍼 K. Popper)의 입

장에선 "이론과 사실 둘 중 어느 것이 옳은가? 사실에 안 맞는 이론은 버려야 한다"는 문제

설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왕성 궤도를 잘못 계산한 뉴턴 이론은 거짓이라는 결론

에 이르러야 하는 거지요.

반면 뉴턴 이론의 지지자들은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들은 오히려 "다른 건 다 맞는데 오

직 천왕성만 안 맞는다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요인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일 거야. 그 요인

은 대체 무얼까?"라고 생각할 겁니다. 이렇게 문제를 설정하면 이젠 다른 요인들을 찾아 나

서게 될 겁니다. 망원경이 부실해서 그런가, 아니면 70여 년마다 그 근거에 접근하는 헬리혜

성 때문인가, 아니면 혹시 다른 별이 천왕성 근처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등등. 그리고 결국

엔 천왕성과 명왕성 사이에 해왕성이란 행성이 있기 때문이란 걸 발견하게 됩니다.

상이한 문제 설정은 이처럼 상이한 대답과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철학에서도 마찬가집니

. 예컨대 "참된 인식은 무엇인가"라고 문제를 설정하면, 당연히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생각

"참된 인식은 어떤 것이다"라는 식으로 됩니다. 거기에는 참된 인식/거짓 인식이란 대비

가 깔려 있으며, 참된 인식이 중요하고 그것이 철학이 추구해야 할 목표다 등과 같은 사고

방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대보름날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행동이나, "저 마지막 잎새

가 지면 나도 죽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오 헨리 소설의 주인공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 단지 어떤 중요성도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얼마나 많은 사

람들이 그런 식으로 살든 간에 말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데서 분명히 드러나듯이,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는 것은 그 문제를 가

지고 사고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제한합니다. 그 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도 포

함되어 있고, 그 중요한 것을 사고하는 데 기초가 되는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사고할 수 있는 것과 사고할 수 없는 것을 보여 주는 셈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

설정을 통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사고방식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것을 분석할 수 있습

니다. 우리가 문제 설정이란 도구를 통해 철학의 경계를 찾아내고, 그 경계의 의미를 읽어

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1장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1.데카르트-근대 철학의 출발점

중세 너머의 철학

이제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라는 주제로 들어가 봅시다. 근대 철학에 대해 얘기하려면 먼

'근대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사적 근대 전체에 대해 생

각할 수는 없습니다. 생각해야 할 범위를 철학으로 제한해서 문제를 다시 제기한다면, '철학

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혹은 '철학적 근대란 무엇인가'라고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기대에

못 미친다면 미안한 일이지만, 저는 지금 근대에 대한 어떤 심오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근대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중세와의 대비 속에서 중세와 구분 선을 그음으로써 정의

되는 시기입니다. 이 점에선 철학이나 역사나 마찬가지일 것 같습니다. 그러니 근대 철학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좋으나 싫으나 중세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합니다.

<신약성서> 중 한 권은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

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

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

니라."(<요한복음> 1) 중세는 신이 창조한 세상이었고 신의 손 안에 있던 시대였습니다.

그것은 신이 창조한 인간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신의 '말씀'이 세상을 지배하고 통치하던

시기였습니다. 따라서 신의 말씀을 연구하는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했습니다. 즉 신학이

신의 말씀이라면, 이 말씀이 곧 신 자신이기도 하다는 성경 말씀에 따라 성직자가 신을 대

신했던 겁니다. 신의 말씀을 대리하던 성직자가 학문은 물론 대중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습

니다.

이런 시대에 존재란 신의 창조물이며, 따라서 당연히 신이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태초에 신의 말씀이 있었는데, 그 말씀이야말로 다름 아닌 진리였으며, 인식()이란 그 말

씀의 계시에 도달하는 것과 동일했습니다. 결국 진리란 신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가 보장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 역시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의 말에 따라 생활해야 했

습니다. 이런 점에서 중세는 봉건 영주가 지배하는 시대였다는 말만큼이나 (신과) 성직자들

이 지배하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역사적으로도 성직자와 봉건 영주가 지배계

급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중세의 철학이나 과학은 어떠했을까요? 중세의 철학은 신에 대해서 제기되는 의

, 신학에 대해서 제기되는 질문, 그것도 중세 신학의 근본을 뒤흔드는 그러한 질문들에 대

해서 신의 작용과 신의 말씀을 이성을 통해 설득하기 위해 존재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철학은, 과학도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신학의 시녀'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야 한다'는 엄한 규칙과 규범이 있어도 거기서 삐딱하게 벗어나고 저항

하며 새로운 사고를 감행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입니다. 저는 여기서 브루노(G.

Bruno)라는 철학자에 관해 잠시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사람인 브루노는 일찌감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자신의 시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우주란 무수히 많은 태양과 별들로 가득 찬, 그러나

끝도 중심도 없이 운동만을 지속하고 있는 영원한 전체라고 보았습니다. 그가 보기에 신이

란 일체의 만물을 지배하며 거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며, 우주의 각 개체 속에 있는 동

시에 우주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신과 자연(우주)을 하나로 보는 이런 입장을 범신론이라고 합니다. 이는 중세적인 신의 개

, 기독교적인 신의 개념과 전혀 다른 것이었기에, 교회로서는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견해였

습니다. 이런 입장은 과학의 이름으로도 철학의 이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불경을 뜻하

는 것이었지요. 달리 말하면 브루노는 철학이 신학의 시녀이기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셈입니

.

뿐만 아니라 원래 도미니크 수도회에 가입해 있던 그는 자연에 대한 사랑과 과학적 지식

에 대한 진지함, 세속적인 지식에 대한 애착으로 인해 수도원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신과 교

회가 제공하는 안정을 포기하고 항상 쫓기는 방랑 생활을 했습니다. 유럽 전역을 돌며 강의

등을 하다가 어떤 베니스인의 초청으로 귀향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가 브루노를 밀고

함으로써 종교재판소의 법정에 서게 되지요.

갈릴레이와는 달리 브루노는 종교재판에서도 끝끝내 자신의 철학적 견해를 포기하지 않았

습니다. 이로 인해 그는 당시 교황청과 성직자들의 분노를 사서 7년간의 옥고를 치르고는,

16002월 로마의 한 광장에서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을 당했습니다. 한마디의 신음도 없이,

누군가가 던져 준 십자가를 내던지면서 그는 의연히 죽어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브루노는

너무나 일찍 중세가 허용할 수 있는 철학의 한계를 넘어서 버렸던 것입니다.

중세 철학의 한계라는 측면에서 보면, 중세에는 신학이 곧 철학의 한계였고, 신학이 허용

한 범위 안에서만 철학이 존재할 수 있었으며, 신 안에서만 철학적 사고가 허용되었습니다.

과학 또한 철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대와 마찬가지로 중세의 과학은 일종의 '자연

철학'이었습니다. 즉 자연현상을 나름의 원리에 따라 해석하는 학문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피시카(physica, 과학)와 메타피시카(metaphysica, 형이상학, 철학) 사이에 넘어설 수 없는

경계선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와 달리, 중세의 과학은 신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의 운행 법칙, 그 오묘하고

조화로운 세계의 운행 법칙을 인식하는 학문으로 존재했습니다. 철학이 그랬던 것처럼 말입

니다. 그것은 철학과 마찬가지로 신학의 그늘 아래 있어야 했으며, 그 안에서만 허용되는 것

이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신학의 전제를 거부하거나 뒤흔들면 안 되는, 그렇게 해서는 존

재할 수도 없고 존재해서도 안 되는 그런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세를 암흑의 세

계라고도 합니다. 갈릴레이의 유명한 사례는 중세라는 세계 속에서 과학자가 어떻게 해서는

'안 되는가'를 보여 주는 모범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를 근본에서부터 억압하고 제한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했는지도 모

릅니다. 언제 어디서나 반역하는 인간, 가공할만한 공포와 위협, 죽음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새로운 사고를 감행하는 인간은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예전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 알

겠지만, 소크라테스도 그러다가 죽었죠.

어쨌든 앞서 화형당했던 브루노나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투덜거렸던 갈릴레이 같은 사

람은 꼭 있게 마련입니다. 나아가 중세가 지속되는 동안 사람들의 지식이 성서와 교회의 벽

에 부딪히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사태를 막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사고의 발전과 지식

의 증가에 따라 성서를 이탈하는 이 모험적이고 반역적인 사람들의 말은 점점 설득의 기초

를 확장해 갔습니다. 어떻게 보면 중세적 사고의 중심을 향한,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일종의

'은폐된 공격'이 중세의 이면에서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공세는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사실 갈릴레이나 브루노의 예는 그 중에서 두드러지게 눈에 띄

는 공세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그러한 공세는 중세를 전복하는 효과를 갖게 되

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폐된 공세에 대항하기 위해서 신학자들은 언제나 새로운 형태의 철학으로 무장

하면서 신학을 위한 반론을 펴게 됩니다. 실질적으로는 신학의 반대자들, 정통적인 신학에서

벗어나는 사상가들과의 각축전은 사실은 불가피하게 신학 안에서, 신학적인 껍데기를 입고

많이 나타나게 됩니다. 10세기 이후에 그러한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데, 나중에 다시 이야

기하겠지만 로스켈리누스(Roscelinus)나 아벨라르두스(Abaelardus)에서 그 예를 볼 수 있습

니다. 이 사람들은 유명론(nominalism)이라 불리는 견해를 제출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개념은 단지 사람들이 붙인 이름일 뿐이라는 견해인데, 신학적 사고에서

는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에 대해 사상적으론 실재론(realism)이라는 반

박이 나오게 되는데, 이러한 대립과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리고 이 삐딱한 사람들에게 돌아간 결과는 파문이나 감금 등, 사상은 물론 생명까지도 위협

하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식으로 인간의 삶에서 문제가 되는 모든 주제들은 불로 막든 협박으로 막

든 어쩔 수 없이 다루어지고 논란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중세의 철학에서

도 예외가 아니었고, 따라서 철학적 논쟁은 심지어 교회 안에서 신학의 이름 아래서도 계속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중세가 단순히 정체된 '암흑의 시대'였다는 것은 일

면적이고 잘못된 견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가 뒤에 자세히 보게 될 데카르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데카르

트가 처음으로 쓴 논문은 <세계와 빛에 관한 논고>라는 소책자였는데, 발표 바로 직전에

갈릴레이의 종교재판 소식을 듣고는 논문 출판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쓴 것

<방법서설>이라는 논문인데, 여기에 '기상학''광학'에 대한 논문을 부록을 붙여 익명

으로 출판하게 됩니다. 이 책은 당시 유명한 과학자들과의 논쟁을 야기했을 뿐 아니라, 데카

르트가 극히 조심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갈등을 일으키게 됩니다. 후에 데카르트의 책자

들은 교황청에 의해 금서로 처분됩니다.

그러나 이미 그 시대는 데카르트가 정면에서 교회와 싸움을 벌이지 않는 한, 그의 책을

금서로 막기에는 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데카르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기-결정적으로

중세의 틈새가 벌어진 시기-에 자신이 차지한 위치에서 자신의 탁월한 사고의 힘을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는 '근대 철학의 비조'라는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

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사상이 재판당하고 화형당하는 희생이 있었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데카르트는 수많은 반역적 사고를 모아 중세를 '슬며시' 뒤집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두 개의 코기토

데카르트가 근대 철학을 열었으며, 따라서 '근대 철학의 비조'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데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근대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데카르

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데카르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시작

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데카르트에 대해 말하려면, 근대 철학을 연 '1원리'인 코기토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코기토(cogito)라는 말은 '생각하다'를 뜻하는 라틴어 cogitare1인칭 형태입니다. '

나는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cogitare는 영어에서 생각하는 것과 관련된 단어들, 예컨대

cognition, recognize의 어원이 되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철학에서 '코기토'라고 말할 때,

것은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가리키는데, 이 말은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이란

문장을 한 단어로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그 뜻은 알다시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입니다.

이 명제는 데카르트가 보기에 결코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다

시 말하겠지만, 이 명제는 ''라고 하는 주체가 존재하는 것은 바로 내가 생각한다는 것 때

문이라고 본 점에서. ''라는 존재를 신의 피조물로 본 중세적인 관점과 결정적으로 갈라서

는 것입니다. 그래서 흔히 코기토란 명제가 근대 철학을 연 것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상당히 당혹스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것은 중세를 연 철학자 아우구

스티누스가 철학(형이상학)의 제1원리라고 생각했던 명제가 바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였다는 것입니다. 즉 동일한 명제가, 서로 대비되고 대립됨으로써만 구별되는 근대와

중세를 열었다고 하는 매우 아이러니한 사실이 철학사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를 이해하려면 잠시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보아야 합니다.

중세 철학을 연 사람, 중세 전체를 통틀어서 가장 중요한 철학자는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중세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늘'이었고 근대 철학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늘을 벗어나

는 것'이라고 감히 말해도 될 정도이며, 그의 사고는 중세 철학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습

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과 기독교의 교리를 종합해서 믿음과 이성을 종합하려고 했으며,

이로써 중세 철학 전체의 기초를 세운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플라톤의 철학이란 완전

한 세계인 '이데아'가 있고, 실제 세계는 이 이데아의 그림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인식은 이 그림자인 감각 세계에서 이데아의 세계로 상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

누스의 주장은,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플라톤 철학의 '이데아' 자리에 ''을 놓고 플라톤의

철학을 따라 기독교의 교리를 전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로써 ''이란 개념에

입각한 철학이 만들어집니다.

이로 인해 중세 전반기에는 플라톤적인 철학이 지배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중세 후기에

들어와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획득하게 됩니다. 이는 새롭게 얻

어지는 지식이 증가하면서 기존의 플라톤적인 철학으론 그걸 감당하기 어려워진 데 따른 것

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개념의 도움을 받아 새롭게 중세 철학을 집대성한 사람이 바로 토

마스 아퀴나스입니다. 그가 체계화한 이 철학을 흔히 '스콜라철학'이라고 합니다. 그의 철학

은 자연에 대한 증가하는 지식을 신학의 틀 안으로 흡수하고 포섭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다시 언급할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인식의 목표는 신과 영혼이었습니다. 그에게 자연물의 인식이나 기타

유사한 지식은 그 자체로는 불필요한 것이었고, 오직 신학적인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필요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이성의 출발점은 '계시 진리'였습니다. 그래서 아우구스티

누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해하려면 믿어라'라는 것이었습니다(이는 뒤에 스콜라철학에

서는 '믿기 위해선 이해하라'는 명제로 바뀝니다). 따라서 그에게는 믿음을 위한 요구를 확

립하는 것이 바로 이성의 의무였습니다.

이를 위해서 그는 믿음을 겨냥해 제기되는 숱한 회의론을 반박하고 비판하려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활동하던 당시는 기독교의 지배가 아직 확립되지 않은 시기였고, 따라서

회의론은 기독교적 신앙과 이념이 지배적 위치를 확고히 하는 데 매우 불편한 걸림돌이었습

니다.

회의론자들은 감각에 주어진 것(감각소여, the given)에 대해 '믿을 수 없다'고 합니다.

를 들면, 저기 있는 화분의 이파리들을 누구는 파랗다고 하고, 누구는 초록이라 하며, 누구

는 연두색이라고 하며, 누구는 푸르스름하다고 합니다. 즉 보는 사람이나 보는 때에 따라 다

르게 보인다는 겁니다. 또한 이 말들의 경계 자체도 모호하여 뚜렷하지 안다고 합니다. 그렇

다면 우리의 감각은 확실한 것, 불변의 진리를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추리조

차도 믿을 수 없다고 회의를 합니다. 곧 이성의 사고를 믿을 수 없는데, 이성의 사고 규칙인

추리를 어떻게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죠. 추리를 믿는 것은 이성에 대한 믿음을 전제한 것

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으로 그들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확실한 것은, 진리는 없다고 합

니다.

그런데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들을 물리칠 묘안을 생각해 냅니다. 즉 회의론자들의 수많은

의심에도 불구하고 결코 의심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코기토, '

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사기를 당한다고 할 때, 사기를 당하는 ''가 없다면 사기를 당한다는 것

은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무엇을 생각할 때, 회의론자 말대로 내가 잘못 생각할 수

도 있고, 혹은 무엇을 생각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생각하고 있는 나'가 없다면

대체 생각한다는 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것도 마찬가지지요.

심하는 ''가 없다면 의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는 회의론자들이 의심한다

는 사실이야말로 '의심하는 사람(회의론자 자신)'이 존재함을 확실하게 보여 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것만큼은 회의론자들조차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확실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그는 자신의 철학의 '1원리'라고 합니다.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습니다. 그렇게 존재하는 '', 그리고 그렇게 존재하는 ''가 여

럿이 있는데, 그들이 모두 인정하는 지식, 예를 들면 2+2=4와 같은 수학적 지식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확실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이유로 모든 사람이 긍정하는 도덕적 지혜

-이 부분은 조금 설득력이 부족한데, 데카르트 같으면 이렇게 말하지는 않았겠지요-또한 확

실한 지식이며 진리라고 합니다.

그는 이제 "이 확실한 판단들은 대체 어떻게 가능한가", "진리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확실한 것'이 단지 나라는 개인 안에만 존재하는 거라면, 즉 개인적인 특성

에서 비롯되는 거라면 그것은 진리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확실한

-코기토, 수학적 진리, 도덕적 지혜 등-은 그것이 개인 아닌 다른 확실한 것에 의존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바로 이것이 그가 문제를 설정하는 지반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의

'문제 설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확실한 판단, 곧 진리는 초인간적인 것, 인간을 넘어서는 어떠한 근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내면적 교사인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즉 이 확실

한 지식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가르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코기토처럼 확실한 지

식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신이라는 확실하고 완전한 존재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코기토는 이처럼 신의 존재를 확증하고 증명하는 출발점이었

습니다. 이런 식으로 코기토는 중세 철학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데카르트의 문제 설정

데카르트에게도 확실한 지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에 따르면, 철학은 불확실한 지식에 확

실한 기초를 제공해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특히 과학적 지식이 확실한 기초에 서도록 도

와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철학 자신이 확실하지 못한 기초에 서 있다면 대체 이런 일을 어

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철학의 출발점은 더없이 자명하고 확실한 것이어야 했습니

.

하지만 이 자명한 기초는 당연히 어떤 의심과 질문에도 견뎌 낼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

? 바로 이런 이유에서 데카르트는 스스로 회의론자가 됩니다. 즉 확실한 것에 이르는 위

해 의심, 회의라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이것을 '방법적 회의'라고 합니다.

그는 모든 것을 의심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을 다 의심해도, 의심하는 내가 없다면 의심한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도달합니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른 건 없습니다. 다만 아우구스티누스는 회의론자를

반박해야 했지만, 데카르트는 스스로 회의론자가 되었다는 것말고는, 그러나 유심히 보면 이

미 출발하는 전제가 아우구스티누스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신에 대한 인식을

목표로 믿음을 공고히 하고자 했던 아우구스티누스와 달리, 그는 코기토를 통해서 신이 아

니라 확실한 지식에 이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이 확실한 출발점(코기

)을 그리스도 또는 신이 제공해 주었다는 사실이 가장 중요합니다. 반면 데카르트에게는

그걸 누가 주었는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이, ''라는 자아가

자신의 능력으로써 확실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며, 확실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

이 능력이 인간 자신에 내장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안에 있는, 이 확실한 지식에 이르는 능력을 그는 '타고난 관념', '본유관념(innate

idea)'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데카르트에게 중요한 것은 이 본유관념이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가 아니라, 그것이 인간의 이성 안에 내장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확실성을 보증해 주

는 이성의 능력이 바로 자연에 대한 확실한 지식의 원천입니다. 즉 이성은 자연을 비추어

주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똑같은 코기토가 아우구스티누스와는 정반대되는 역학을 하게 됩니다. 아우

구스티누스에게 그것은 신의 존재를 입증해 주는 확실한 출발점이었다면, 데카르트에게는 '

'라는 존재의 연원이 바로 내가 생각한다는 사실임을 확인해 주는 출발점이요, 그래서 나

혼자만의 힘으로 확실한 지식에 이를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었던 것입니다. 즉 전자에게

그것은 신학의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었다면, 후자에게 그것은 과학의 기초를 마련해 주

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상반되는 역할을 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맥락 속에 자리 잡고 있

느냐, 어떤 문제 설정 속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마치 똑

같은 사다리가 전봇대에 오르는 데 쓰이기도 하고, 불난 건물에서 빠져 나오는 데 쓰이기도

하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심할 수 없는 확실한 주체, ''라는 것이 신이 없어도 사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라는 주체는 신이 없어도 내장되어 있는 본유관념 때문에 확실하게 사

고할 수 있고, 확실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런 점에서 데카르트에게 '생각하

는 나'는 신으로부터 독립된 존재고, 신으로부터 독립된 '주체'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신으로부터의 독립 때문에 데카르트의 사고는 '중세에서 벗어나는 사고'라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이럼으로써 철학은 신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합니다.

따라서 '주체'라는 범주는 근대 철학에서 가장 중심적이며 근본적인 범주입니다. '주체'

없는 근대 철학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신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주체가 필요했던 것이고, 이 주체는 어떠한 이론적 명제도 이것에 근거를 두어야만

가능하게 되는 출발점이며, 그러한 명제를 구성하는 조직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여기서 말하는 '주체'는 확실한 지식에 이르기 위한 출발점을 뜻합니다. 그것

은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사고의 기초며, 지식을 가능하게 하는 지식의 기초입니다. 즉 모든

지식과 사고의 기초요 출발점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은, 이후의 근대

철학을 주체철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반드시 자기의 ''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체라는 말에는 언제나 '객체''대상'이라는 짝이 따라다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고하

는 주체'라는, 이 주체가 사고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먹는 내(주체)가 있다

면 먹히는 밥(대상, 객체)이 있어야 하듯이 말입니다.

결국 근대 철학의 출발점인 주체는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동시

, 다른 피조물인 자연 세계(대상)로부터 인간이 분리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이제 인간은

자연 세계와는 본질적으로 다른(왜냐하면 전자는 주체고, 후자는 대상이요 객체니까) 존재가

됩니다. 주체인 인간이 대상인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은 주체/대상의 이런 근대적인 분할

에 따른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다른 자연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로서 인간에 대한 이론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나중에는 인문과학으로 발전하게 되지요.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대상과 분리되고 주체가 대상으로부터

떨어졌을 때, (인식하는) 주체가 (인식되는) 대상과 일치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라는 문

제입니다. 다시 말해 벌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실제로 살아있는 벌과 일치하는지 아

닌지를 어떻게 보증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체가 대상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가라는 '인식론'의 문제가 대두됩니다.

이건 매우 중요한 문젭니다. 만약 대상에 일치하는 지식, 곧 올바른 인식에 도달할 수 없

다면, 이는 진리에 이를 수 없다는 말입니다. 즉 주체가 진리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 게 됩니

. 그런데 잘 생각해 보세요. 아까 주체가 신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던 건 ''라는 주체

가 진리에 이를 능력(이성)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막상 주체를 독립

시켰더니 진리에 이를 능력이 없다는 게 되면 얼마나 우스운 꼴이겠습니까? 결국 그건 독립

할 능력이나 자격도 없으면서 신에게서 도망친 꼴이 되는 셈이지요. 따라서 데카르트로선,

그리고 이후 근대 철학으로선 진리를 인식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게 가장 중요하고 절실한

문제가 됩니다. '진리'야말로 주체에서 출발했던 근대 철학이 어떻게든 도달해야 할 목표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주체라는 범주를 독립시키자마자 진리라는 범주가 중요하게 따라다니게 됩

니다. (인식)대상과 (인식)주관의 일치라는 뜻에서 진리라는 범주가 주체라는 범주와 쌍

둥이로 등장하게 됩니다.

요약하면 주체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요, 진리는 그 목표점입니다. 이 두 개의 범주는 근

대 철학 전체의 기초와 방향을 특징짓는 가장 근본적인 범주입니다. 또한 이것은 근대 철학

의 모든 질문 자체가 그것에 메일 수밖에 없었고, 그 대답 역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었던

지반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주체와 진리라는 범주로써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을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근대 철학의 경계는 이런 식으로 그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진리에 이르는 길

앞서 우리는 주체를 독립시키자마자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 잠시 언급했습니다. 이 문제는

데카르트에게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습니다. 그건 이중적인 의미에서 그런데, 우선 그의 철학

에선 매우 극명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심각했고, 다음으론 그 문제의 해결이 그의 철학이

확고한 자리를 잡는 데 극히 중요했다는 점에서 심각했습니다.

데카르트는 두 개의 실체가 있다고 가정합니다. '연장''사유'가 그것입니다. 일단 여기

'실체(substance)'라는 말에 대해 알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터미네이터 2>

영화를 못 보신 분은 별로 없겠지요? 거기 보면 어떠한 모습으로도 변형될 수 있는 '괴물'

같은 놈이 나옵니다. 이름은 T-1000이라고 하던가요? 미래의 세계에서 기계들이 보낸 터미

네이터지요. 이 친구의 모습은 아시다시피 자유자재로 바뀝니다. 그렇지만 이 친구가 주인공

의 어머니인 사라코너의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인공의 목숨을 노리는 터미네이터

인 건 변함없는 사실이죠. 이처럼 아무리 모습이 바뀌고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도 변함

없는 불변적인 본질(특징)이 바로 실체입니다. 이는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내지만, 다른 것에

의존하지는 않는 영원한 특징을 뜻합니다.

비유해서 말한다면 앞의 예에서 때로는 경찰관이 되기도 했다가, 때로는 간호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다쳐서 아들을 부르는 어머니가 되기도 하는 T-1000이란 친구의 '실체',

중에 인간들의 지도자가 되어 기계에 대항하는 소년을 살해하려는 터미네이터지요.

한편 데카르트는 좀더 일반적인 차원에서 실체를 찾으려고 합니다. 모든 사물에 공통적으

로 존재하는 실체란 무엇일까요? 그는 이것을 '연장''사유'라고 합니다. 연장은 물질,

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데, 어떤 공간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쉽게 말하면,

"모든 물체의 실체는 연장이다"는 말은 "모든 물체는 어떤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말입니

. 사유는 한마디로 생각하는 성질입니다. 이건 공간상의 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는다는 점

에서 연장이란 성질과 구분됩니다. 정신의 실체는 바로 사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데

카르트의 철학은 두 개의 실체를 가정하고 있다는 뜻에서 '이원론'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사유와 연장, 다시 말해 정신과 육체라는 두 실체가 결합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물론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듯이, 데카르트에게는 생

(사유)이 존재(연장)보다 우선합니다. 따라서 주체란 생각하는 나, 곧 정신과 동일한 것으

로 간주됩니다. 이처럼 정신이 육체나 물질보다 우선한다는 뜻에서 데카르트의 철학은 관념

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아까 말했던 문제가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정신과 육체가 이처럼 별

개의 실체라면, 따라서 인식하는 정신과 인식되는 대상이 완전히 별개라면 대개 이 양자는

어떻게 일치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컨대 육체라는 대상은 정신이란 주체에 의

해 규정된다고 합시다. 그러면 육체(연장)란 실체는 정신에 의존하게 되어, 실체는 원인이지

결과가 아니라는(즉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정의에 어긋나게 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따라서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가 아닌가, 즉 주체와 대상, 정신과 육체가 일

치하는가 아닌가는 데카르트로선 매우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면 데카르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했을까요? 여기선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이성의 타고난 완전성이란 테제입니다. 이성의 타고난 능력(본유관념)은 완전한 것

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에, 당연히 진리에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칠판에 원을 이렇게 그립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완전한 원은 하

나도 없습니다. 이걸 다섯 개, 열 개, 백 개, 이 백 개 그려도 마찬가질 겁니다. 그러나 저나

여러분 모두 원이 사실은 불완전하며 완전한 원은 존재하지도 않는데도, 그리고 우리가 볼

수 있는 거라곤 모두 불완전한 것들뿐인데도, 우리는 완전한 원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사물이나 감각 경험이 불완전하지만 인간의 이성은 완전한 것을 인식

할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영혼(이성)에 우위를 두는 관념론의

입장을 채택합니다.

도대체 이것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는 이 완전한 이성이라는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서 다시 신을 끌어들입니다. 완전한 개념은 불완전한 것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마치 무에서

유가 나올 수 없는 것처럼. 그것은 완전한 존재인 신이 준 것입니다. 하지만 이 때문에 "

우구스티누스와 뭐가 다른가" 하고 성급하게 비난하진 맙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서 신

을 증명하고 신에 대한 믿음으로 나아가는 데 반해, 데카르트는 신이 준 것은 바로 완전한

것을 사고할 수 있는 능력임을 강조합니다. 누가 준 거든 간에 인간이 완전한 것을 인식할

능력을 타고난다는 게 그에겐 중요합니다.

어떻게 보면 데카르트는 거꾸로 이성의 완전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신을 끌어들이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의 존재와 신앙을 위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이성의

능력을 끌어들이는 것이고요 따라서 그들 각자에게 중심축은 정반대되는 방향을 향하고 있

는 셈입니다. 이러한 차이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사고와 서로 다른 시대를 읽을 수 있습니

. 하지만 데카르트의 철학에 중세적인 세계관과 근대적인 세계관이 공존한다는 점을 부인

할 수는 없습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이 당시 신학적 사고에서 완전히 벗어난다는 게 얼마

나 어렵고 위험한 것이었겠습니까? 이러한 사정은 중세의 몰락이 거의 분명해진 그 뒤에도

마찬가지여서, 19세기 중반까지 지속됩니다. 헤겔 역시 신학적 사고 속에 자신의 철학을 세

웠고, 종교 비판을 감행했던 포이어바흐(L. Feuerbach)는 대학에서 쫓겨나 시골에서 은거해

야 했습니다. 따라서 데카르트가 갖고 있던 신학적 요소는 차라리 시대적 한계라고 해야 할

것인데, 분명한 것은 그러한 시대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공존 속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근대적 세계관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이탈리아의 철학자 네그리(A. Negri)는 절대왕정과 데카르트 철학을 비교

합니다. 절대왕정에 대한 고전적인 정의에 따르면 절대왕정은 봉건제 말기 그리고 근세 초

기에 봉건적인 귀족과 근대적인 부르주아 계급의 힘의 타협에 의해 만들어진 '균형 국가'

니다. 따라서 절대왕정에서는 두 반대되는 중세적 계급과 근대적 계급이 타협적으로 공존하

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데카르트는 절대왕정과 비슷한 위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이성 능력의 완전성을 기초로 해서 이성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테면 개념들, 수학에서의 원이란 개념은 우리가 지각(경험)하는 실제 원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카르트에게 이 완전한 원의 개념은 실재하는 수많

은 불완전한 원보다 훨씬 더 진리에 가까운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수학이야말로 확

실하고 완전한 지식, 즉 진리의 모델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둘째, 이성이란 주체의 완전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대상 세계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는

? 그는 이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합니다. 그 근거는 급속히 발전하고 있던 근대 과학입

니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대상적 진리, 즉 객관적인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서 데카르트의 동시대인이었던 갈릴레이가 철학적으로 갖는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

.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서 질량이 다른 두 물체를 떨어뜨려 보았다는 유명한 실험은 믿

을 수 없는 '신화'라고 합니다. 갈릴레이에게 중요했던 것은 오히려 실험보다는 자연과학(

시로선 물리학)을 수학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경험적인 사실은 그 자체만으론 극히

불확실한 것이어서, 그대로 둔다면 결코 진리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반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법칙으로 정식화해야 했고, 이것이 수학적인 형태로 요약될 수 있

어야 비로소 '참된 지식(진리)'이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

자연이란 수학적, 기하학적 기호들로 가득 찬 책"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근대 최고의 물리학자인 뉴턴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유인력의 법칙'(

'보편중력의 법칙'이 더 좋은 번역인데)을 서술한 그 유명한 책의 제목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였습니다.

데카르트 역시 이러한 작업을 통해 경험적 지식의 불명료함을 씻고 분명하고 뚜렷한

(clear et distincte) 판단-이 말을 흔히 '명석판명한 판단'이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우리말의

'명석하다(똑똑하다)' '판명되다(분명히 드러나다)'와 전혀 무관합니다. 이는 일본어를 그대

로 음독 번역해서 그런 것입니다-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데카르

트 자신도 수학적 작업에 무척 많이 시간을 쏟았습니다. 예를 들면 그는 기하학조차 좀더

분명하고 뚜렷한 것으로 바꾸려 했습니다. 기하학을 좀더 분명하고 뚜렷한 대수학으로 재구

성하려 합니다. 그는 x축과 y축 등으로 이루어지는 '데카르트 평면'이란 좌표 평면 위로 기

하학을 옮겨 놓습니다. 그냥 삼각형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만약

이것을 좌표 평면에 옮기면, 특정한 삼각형은 세 변의 길이가 어떻고 꼭지점이 어디 있고

하는 것들이 대수적으로 서술될 수 있는 도형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데카르트의 수학적인 면에서의 작업이었고, 철학적인 면에서 데카르트는 자연과학

을 수학화하는 것이 진리에 도달하는 길임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사실 갈릴레이는 자연과

학에 수학을 도입했지만, 이것이 어째서 옳은지는 증명하지 않았습니다(그는 과학자였으니

까요). 한편 데카르트는 갈릴레이의 이런 주장이 어째서 옳은 것인지를 증명하는 게 바로

(자신의)철학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데카르트에게 확실하고 완전한 개념의 모델은 수학이었습니다. 따라서 어

떤 지식을 수학적인 형태로 환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본유관념과 일치하는 지식, 즉 진리라

고 할 수 있습니다. '본유관념'이란 개념은 이래서 또 다른 중요성을 얻게 됩니다. 데카르트

는 바로 이런 방식으로 철학이 과학의 근거를 확실하게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

니다.

요컨대 과학을 통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은 데카르트 이래 근대 철학 전반을 사로잡

았던 일종의 '믿음'이었습니다. 이젠 오직 참된 지식만이 정당화될 수 있으며, 오직 과학적

지식만이 참된 지식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근대에는 어떤 지식도 자신이 과학적임을 입증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존재할

권리를 얻게 됩니다. 이런 사고방식을 한마디로 말해 과학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근대를

특징짓는 이 '과학주의'라는 사고방식은 이미 데카르트 철학에서 가장 중심적이고 주된 지

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정신과 육체의 일치(통일) 문제 혹은 윤리학의 문제입니다. 데카르트도 잘 알고 있

는 사실이지만, 인간의 육체나 감정, 정념(passion) 같은 것들은 이성과 달리 절제할 줄도

모르고 자제되어 있지도 않고 굉장히 불안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안정되게 만들거나

억제하기 위해서 이성을 동원하는데 그다지 잘되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억울하게 남한테

맞았을 때, 그리하여 머리 끝까지 화가 났을 때, 이성은 어디 있는지 꼬랑지도 보이지 않고,

많은 사람이 불안정하게 되지요. 즉 사람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가 바로 정신과 육체의 일치,

이성과 감정의 일치라는 문제로 제기되는 겁니다. 이걸 흔히 '가치론' '윤리학' '도덕론'

의 이름으로 부르지요.

데카르트 최고의 학문으로 도덕학을 제기하는 맥락도 이와 같습니다. 그는 학문을 커다란

나무에 비교합니다. 그 뿌리는 형이상학-'세계는 이렇다'고 밝혀 주는 핵심적인 원리-인데,

이 형이상학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로부터 나오는 철학적 원리들입니다.

리고 그 형이상학의 뿌리 위에 줄기가 나오는데, 그 줄기는 물리학입니다. 그리고 그 줄기에

서 뻗어나오는 가지들에서 의학, 역학, 도덕학과 같은 열매들이 맺힌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

덕학이 이러한 것들 중 최고의 열매라고 합니다.

데카르트에 의하면, 자연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알아야 하듯이, 우리가 우리 자신의

육체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육체에 작용을 미치고, 육체에서 파생하는 감정, 정념을

규제하고 그 힘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감정과 정념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

서 그는 <정념론>이라는 책을 씁니다.

그런데 바로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즉 신에게서 독립할 자격을 얻으려면, 신이나 성

직자가 없어도 인간(주체)이 올바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는데, 답답하게도 인간의 육체나 감

정은 제멋대로고, 이성과 같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성이 아무리 옳다고 하더라도 육체가

제멋대로라면 인간이 신으로부터 독립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당연히 제기되

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는 '어떻게 육체를 이성적으로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다루는 도덕론이 중요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데카르트의 도덕론이 서 있는 기초입니다. 그건 한마디로 말하면 감정과 정

, 욕망과 육체적 활동을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가진 이성이 통제하고 지

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성(정신)이나 육체나 각자가 독립적인 실체임은 아까 본 바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이성, 정신은 대체 육체나 육체적 욕망, 정념에 대해 어떻게 지

배력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요컨대 인간의 정신과 육체는 어떻게 (이성에 따라) 일치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에게는 정신과 육체가 만날, 그래서 육체가 정신의 말을 듣고 통제에 따라 줄 장

소가 필요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영혼 속에 정념을 불러일으키고, 무엇인가를 욕망하게

만들고 동시에 육체로 하여금 사물을 향하거나 피하게 만드는 장소가 있다는 것입니다.

것을 데카르트는 '송과선'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통해 정신과 육체가 만나거나 교감할 수 있

을 것이며, 이로써 양자가 일치할 수 있으리라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송과선은 뇌의 한

복판에 있다고 하는데, 어떠한 해부학자도 아직 이것을 찾아내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하나의

문제가 다시 남는데, 그것은 이 송과선은 도대체 어떠한 실체인가 하는 것입니다. '송과선은

사유하는 실체인가, 연장을 가진 실체인가, 즉 송과선은 정신인가 아니면 육체인가' 하는 문

제입니다.

아무튼 데카르트는 송과선까지 발명하면서 이 정념론을 기초로 '잠정적인' 도덕 이론을

제시합니다. 그는 우리의 욕망에는 '도달할 수 있는 것''도달할 수 없는 것'이 있다고 합

니다. 그리고 도달할 수 없는 것은 욕망하지 말고 포기하려고 합니다. 결국 가급적 이성에

의해 통제되는 상태를 위해서 제멋대로인 육체를 통제하고 욕망을 억제하라는 것이 그의 도

덕론의 요체였던 것이고, 이는 사실 이성 또는 영혼으로 세계를 파악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그의 본래의 이상에 맞는 도덕론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데카르트는 이미 대중의 무지를

일깨우고, 이성에 따라 행동하도록 하라는 윤리학적 계몽주의 선구자였던 셈입니다.

 

근대 철학의 딜레마

지금까지 근대 철학은 주체라는 범주를 신으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대상으로부터 분리시

킴으로써 성립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리와 동시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

.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일치, 혹은 정신과 육체의 일치라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대상에 일치하는 인식을 '진리'라고 했으며, '진리'가 바로 근대 철학이 도달해야

할 목표였음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만들어지자마자 곧 딜레마(벗어날

수 없는 곤란)에 빠지게 됩니다. 즉 주체가 인식한 것이 대상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다시 말

해 진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보증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이해하

기 쉽지 않으므로 조금 우회하도록 합시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 얼굴을 모르는 분 있습니까? 예상대로 아무도 없군요. 그럼 다시 하

나 질문을 하지요. 여러분들 중에 혹시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이 있습니까? 역시 아무

도 없군요. 그런데 아무도 자기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다면서, 어떻게 모두 다 자기 얼굴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마 여러분은 거울이나 수면에 비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거울에서 본 게 자기 얼굴인지 어떻게 알지

? 그게 자기 얼굴이라고 판단하려면, 이미 자기 얼굴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즉 자기 얼굴이 어떤지 미리 알고 있

지 못합니다. 만약 거울을 처음 본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거울에 대고 말을 걸었을 게 틀

림없습니다. 그게 자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나 자신은 거울에 비치

는 대상입니다. 거울은 그 대상을 비추는 주체지요. 거울에 비치는 대상()과 그걸 비추는

거울(주체)이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나와 거울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

가 옆에서 보고는, "거울에 비친 모습하고 네 얼굴하고 똑같다"하고 말이라도 해준다면 모

를까.

결국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이란 두 개의 항만으로는 인식한 게 대상과 일치하는

지 아닌지, 진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는 주체가 확인하고 보증할 수

있는 게 아니며, 그렇다고 대상이 확인하고 보증해 줄 수 있는 건 더욱 아니란 말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옵니다. 굴뚝 청소부

가 두 명 있었습니다. 그 두 명이 각각 굴뚝 청소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굴뚝 하나는

깨끗했고 다른 하나는 더러웠기 때문인지, 한 명의 얼굴은 까맣고 다른 사람의 얼굴은 하얗

습니다. , 그러면 누가 얼굴을 씻으러 갈까요? 다 아시겠지만, 더럽고 검은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아니라 깨끗하고 흰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얼굴을 씻으러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상대편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난점이 무언지 좀더 분명해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인식주체/대상)만으

로는 내 얼굴이 어떻다는 판단과 실제 내 얼굴의 상태가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

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더럽다는 판단을 한 게 사실과 정반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위 두 가지 이야기는 똑같은 딜레마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딜레마는 인식주체와 인식

대상을 나누고, 양자가 일치하는 게 진리라고 한다면, 어떤 지식이나 인식이 진리인지 아닌

지는 결코 확인할 수도 없고 보증할 수도 없다는 난점을 가리킵니다. 그게 일치하는지 아닌

지 확인해 주는 제3-예를 들면 신-가 없다면 근대 철학으로선 이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가 없습니다. 주체가 신에게서 벗어남으로써 발생한 근대 철학의 원죄인 셈입니다.

이 딜레마는 근대 철학에 고유하게 나타납니다. 중세에는 그러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습니

.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이것은 <창조론>이 설명해 줍니

.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은 성서 혹은 계시진리를 따라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

, 이를 전하는 교회와 성직자의 말에 따르면 충분했습니다. 이것이 곧 진리를 실천하는 것

이었지요.

그런데 데카르트의 '주체'가 선악과를 따먹은 겁니다. 신으로부터 독립한 거죠. 그렇다면

독립된 ''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 새로이 대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분과를 만들어 냅니다. 또한 예전에는 신의 계시에 의해 보증되었던 주체와 객체의

일치가, 신으로부터 독립함과 동시에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게 됩니다. 이제 철학은 주체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지, 인간의 인식 능력이 어디까지인지를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

인식론'이라는 분과가 성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의 유일한 잣대였던 신의 계시 대신에 인

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재는 잣대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치론' 혹은 '

리학(도덕론)'입니다.

이리하여 데카르트 이래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이라는 세 가진의 근대 철학의 분과가 성

립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인식론의 문제이고 진리의 문제였습니다. 왜냐

하면 신으로부터 독립해도 좋은 것인지, 그러한 능력이 인간에게 있는 것인지를 입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주체가 신에게서 독립하려면, 그럴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 즉 진

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신에게서 독립하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짓이 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근대 철학에서 중심적인 문제

는 대개 인식론적인 형태로 제기되며, 인식론이 가장 발전하게 됩니다. 즉 근대 철학의 중심

에는 이러한 인식론이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에게서 독립하려는 이 근대 철학자들에겐 등대불 같은 하나의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것

은 갈릴레이에 의해 본격적으로 급진전되고 있던 '과학혁명'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의 얘기를

보니 '세상은 이렇다'는 성경의 말씀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신의 말씀

이 아니라, 실제 세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신학 없는 철학, 신에게서 벗어난 주체(인간)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 과학이었습

니다. 이 때문에 근대 철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과학주의'가 되었다는 것은 차라리 자연

스런 것 같습니다. 철학자들은 모두 스스로가 과학자가 되려고 했으며, 모든 지식은 과학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즉 근대 철학은 과학이란 위성을 가지고 주체/진리란 범주의 주위를 빙

글빙글 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주의가 근대 철학의 딜레마를 해결해 주진 못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이 도달해

야 할 목표점이 진리라면, 어떤 지식이 과학인지 아닌지는 과학 자신이 확인하고 보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과학이란 지식 역시 주체/진리라는 범주가 야기한 근대 철학의

딜레마에 빠져들어 가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진리를 판단해 줄 어떤 절대적 존재로서 제3

가 없다면 양자의 일치(진리)를 보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제3자 역시 진리의 보

증자가 되려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절대적 재판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결국 다시 신을 끌어들인 셈입니다. 나중에 보게 될 버클리(G. Berkeley)

헤겔도 다시 일종의 ''을 끌어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근대 철학이라는 문제

설정, 주체와 대상을 나누고 양자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이러한 철학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해결해야하지만 그 안에서는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그러한 문제였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근대

철학의 딜레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근대 철학이 부닥칠 또 하나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유아론의 딜

레마'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자리에 100명 정도의 사람이 있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다수의 주체들이 모여서 동일한 것에 대해 상이한 판

단을 했을 때,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가, 그리고 그것을 누가 보증하느냐 하는 것에 대한 것

입니다.

이것은 첫번째 딜레마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극단적으로는 유아론 즉 '

가 알고 잇는 것만이 진리이고 진리는 주관적이다'라는 견해로 나가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

면 데카르트가 주체를 신에게서 떼어 내었을 때와의 생각과는 달라지는 것이죠. 이는 사실

대상과 일치하는 진리를 하나로 확정하지 못한다는 딜레마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 딜레마

의 이면인 셈입니다.

이후 근대 철학은 이 문제(일치의 문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보여 줍니다.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바로 이 딜레마로 인해 매우 다양한 인간의 사고 영역이 개척되게 됩니

. 근대 철학은 이 딜레마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는 기차였던 셈입니다.

 

2.스피노자-근대 너머의 근대 철학자

데카르트와 스피노자

스피노자는 근대 철학을 통틀어서 가장 독특하고 '변종' 같은 철학을 세웠습니다. 그는 데

카르트의 영향 아래 철학을 연구했고, 데카르트 철학에 대한 나름의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

했습니다. 나중에 보겠지만, 대부분의 근대 철학자가 데카르트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비판의 근본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게 바로 데카르트와 거의 동시대

에 살았던 스피노자였음은 상당히 역설적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갖는 특징,

아가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이 갖는 중요한 특징에 대해 좀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

. 따라서 스피노자에 대해 다소 상세하게 얘기하는 것은 그런 대로 이유를 찾을 수 있는

셈입니다.

스피노자의 문제의식은 명시적으로 데카르트의 철학이 갖는 중요한 전제와 관련되어 있습

니다. 이는 이 두 사람의 철학자 사이의 상호관계를 보여 주기도 합니다. 일단 여기서는 데

카르트의 중요한 전제에 대한 스피노자의 비판을 보면서 시작하기로 합시다. 이를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살펴봅시다.

첫째는 '존재론'이라고 부른 것과 관련됩니다. 앞서 말했듯이, 데카르트는 신에게서 사고,

행동의 중심인 주체를 떼어 내는데, 그로 말미암아 주체는 불가피하게 대상 세계와도 분리

되게 됩니다. 그런데 데카르트가 '주체'라고 할 때, 그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이고,

연의 다른 생물과는 다르게 사고하는 힘이 있고 그걸 이용해 자연 세계를 지배하는 힘을 갖

고 있음을 뜻합니다. 반면 '대상'인 자연 세계는 조용히 주체의 처분만 기다리는 정적이고

수동적인 게 됩니다.

이제 신을 대신해서 '주체'라는 이름표를 단 인간이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연은 이 주체가 정복하고 지배하며 이용해야 할 세계가 됩니다. 자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은

여기에 필요한 정보를 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반자연주의'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요즘 목소리를 키워 가고 있는 환경

주의자나 생태론자의 입장에서 보면, 데카르트야말로 자연을 이토록 파괴한 원흉이라고 생

각할 것 같습니다.

스피노자가 데카르트와 자신의 경계를 정하는 지점 중 하나는 바로 이곳입니다. 그가 보

기에 자연은 잔지 수동적인 것인 동시에 능동적이고 활기 있는 것임을 주장하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 이것이 스피노자가 설정한 중요한 문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두번째는 주체와 분리된 대상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진리에 도달할 수 있

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으로서 '과학주의'가 등장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문제는 스피노자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두 개의 실체를 가정하는

데카르트를 비판하고, 실패는 오직 하나만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개념이나 지식

과 실제 대상은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양자가 일치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취합니

. 한마디로 "개라는 개념은 젖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양자는 단일한 실체의 속

성이어서, 애초부터 일치할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또한 어떤 판단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알려면 진리를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는 역설 또한 지적합니다. "진리가 진리와

허위의 기준이다"라는 것이지요.

세번째로 윤리학에 관한 것입니다. 데카르트나 스피노자에게 '윤리학'이란 말은 지금 사용

하는 것보다 훨씬 범위가 넓습니다. 단지 도덕에 대한 사고만이 아니라 육체적 정신적 존재

로서 인간에 대한 이론을 포함하고 있지요. 아시다시피 데카르트가 보기에 인간에게는 자연

적인 요소가 남아 있는데-육체가 그것이지요-이 때문에 인간은 결코 이성적이지만은 않게

됩니다. 따라서 데카르트는 인간의 이러한 성격을 이성으로 억제하고 통제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게 그의 도덕론의 원칙이지요. 이러한 의미에서 데카르트의 윤리학은 계몽주

의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 요소를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특징 역시 스피노자로선 경계선을 긋는 또 하나의 지점입니다. 그는 감정이나 욕망,

정념 등을 이성으로 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옳은 것도 아니

라고 봅니다. 오히려 스피노자는 인간은 자연과 다른 어떠한 것이 아닌 자연의 일부임을 분

명히 합니다(이러한 자연주의는 첫번째로 말했던 존재론에서부터 일관됩니다). 따라서 스피

노자는 계몽주의적인 윤리학과는 애초부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이제 이 점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봅시다.

 

스피노자의 자연주의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스피노자의 철학은 '실체(substantia)''양태(modus)'라는 두 개념

으로 요약됩니다. 실체란 개념에 대해선 앞서 말씀 드린 바 있지요. 물론 사상가마다 그 개

념에 부여하는 내용에 차이는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둡시다.

실체와 양태에 대해 다시 한번 <터미네이터 2>란 영화의 예에 비유해서 생각해 봅시다.

자유자재로 변하는 T-1000을 예로 들었지요? T-1000이란 친구를 전체 세계라고 가정합

시다. 그러면 실체는 '터미네이터'로서 수행할 임무인데, 이 친구가 숱하게 자유자재로 모습

을 바꾸지만 그래도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거꾸로 그러한 바꿈(변화)의 원

인이기도 합니다. 즉 그가 그처럼 수없이 모습을 바꾸는 것은 오직 터미네이터로서의 임무

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지요. 물론 영화에선 이 임무를 미래의 컴퓨터가 입력한 것이지만,

단 이 T-1000 친구를 전체로 가정하면 터미네이터란 임무는 변화의 원인이며, 그 변화에

의존하지 않는 요인입니다. 또 그것은 무한히 다른 모습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

한 특징을 갖습니다. 이래서 '무한자'라고 하지요.

한편 이런 변화들을 스피노자는 '변용(modification, 변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변화

된 모습 각각을 '양태'라고 합니다. 예컨대 때에 따라선 경찰관, 때에 따라선 어머니의 모습

등 각각을 양태라고 하는 겁니다. 이는 다른 것(타자)에 의존합니다. 즉 잡음 없이 검문을

통과해야 할 때는 경찰관의 모습을 취했다가, 주인공을 유인해 잡으려고 할 때는 그의 어머

니 모습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각각의 양태(경찰관, 어머니)는 이런 상황에, 좀더 근본

적으로는 실체에 의존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변화하는 존재로서, 자연 혹은 우주를 스피노자는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우주

전체를 포괄하고 있으며, 그것의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바로 실체입니다. 이 실체는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기에, 다른 것들을 원인으로 갖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바로 자기 자신의

원인입니다. 이래서 자기 원인이라고 하지요. 이걸 스피노자는 ''이라고 부릅니다. 스피노

자에 따르면 실체, 신은 바로 자연(우주) 밖에서 그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연 안에 있는,

모든 변화의 원인을 가리킵니다. 이건 자연 자체를 뜻하지요. 이런 뜻에서 '자연은 실체'

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볼 때, 스피노자의 신이란 개념은 종교적인 절대자가 아니라 바로 자연

안에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내는 요인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걸 흔히 '범신론'이라

고 합니다.

다른 한편 자연은 변화하는 각각의 개체들로 이루어집니다. 예컨대 태어나고 늙어 가는

인간에서 흐르는 물과 변화하는 계절에 이르기까지 극히 다양하고 가변적인 것들의 집합이

바로 자연이지요. 이처럼 변화하는 개체들 각각을 양태라고 한 셈인데, 이런 뜻에서 '자연은

양태'락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실체는 양태로 '표현'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스피노자에게 이 '

'이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데, 여기서는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실체는 양태

로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G. Deleuze, Spinoza et la Probleme de l'expression). 다시 말

해 양태는 실체가 변용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경찰관이든 어머니의 모습이든,

호사의 모습이든 복도 바닥의 모습이든 어떤 모습을 갖지 않고는 T-1000이란 친구는 존재

할 수 없음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입니다. 때론 손이 칼이 되기도 하고, 몽둥이로

되기도 하는데, 이 역시 마찬가지로 양태라고 할 수 있지요.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들은 이처럼 양태로서 존재합니다. 즉 변용된 모습인 양태로

말입니다. 이래서 "개체의 본질은 양태다"라고 스피노자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 양태들,

개체들 전체를 싸안고 있으며, 그것들 전체를 만들어 내는 원인이 바로 실체인 거지요. 따라

서 스피노자가 보기엔 실체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점에서 스피노자는 라이프니츠(G.W.Leibniz)와 상반됩니다. 라이프니츠는 "개체의 본질

은 실체"라고 합니다. 즉 모든 개체 각각이 실체이며 그 내부에 고유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개체 각각에 존재하는 실체를 라이프니츠는 '단자(monad)'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라이프니츠의 경우에는 모든 개체가 곧 실체인 데 반해, 스피노자의 경우에는

개체란 실체의 변형된 모습이고 양태입니다. 따라서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하나임에 반해 라

이프니츠에게는 모든 것이 다 실체이기에, 실체는 무한히 많이 있는 것입니다.

스피노자에게 실체는 자기 원인이라고, 즉 그 자체의 원인에 의해 존재한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실체는 자연 안에 있는 "무언가를 스스로 만들어 내는 힘"을 가리킬 따름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연 안의 생산적인 힘이 바로 실체지요. 자연은 이 생산적인 힘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연은 그 외부에 있는 무엇에 의해 창조된 게 아니라 자연 스

스로가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는 견해에 스피노자는 정

면으로 맞서고 있는 셈입니다. 덕분에 거듭 쫓겨나서 고생을 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스스로 자신을 만들어 가는 힘이란 뜻에서 그는 자연을 '산출하는 자연'(natura

naturans, '능산적 자연'이라고 흔히 번역합니다)이라고 합니다.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자연

이라는 뜻이지요. 동시에 자연이라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체들, 양태라고 부르는 것들의 집합

입니다. 그렇다면 자연은 당연히 양태들로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데, 양태는 아까도 이야기

했듯이 실체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수동적인 것입니다. 이런 뜻에서 그는 또 자연을 '

산출되는 자연'(natura naturata, '소산적 자연'이라고 흔히 번역합니다)이라고 합니다.

결국 '산출하는 자연''산출되는 자연'이란 자연이 갖고 있는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측

면과 수동적이고 산출물 같은 측면을 동시에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은 이렇게 만들

어지는 자연이면서 동시에 만들어 가는 자연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연이란 능동적인 힘과

수동적인 힘의 결합체라는 말입니다. 자연에 공존하는 이 두 가지 상반되는 힘을 통해 스피

노자는 자연을 '생성'으로 파악하려고 합니다. 즉 인간이나 자연이나 하들 구별되는 것이 아

니며, 오히려 인간은 이런 자연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스피노자의 관점은 자연이, 주체가 통제하는 대로 내맡겨진 정적인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능동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점에서 스피노자의 주장은, 자연은 수동적이고 피동적인 대상이며 과학으로 무장한 인간에

의해 지배될 대상이라고 보는 근대적인 '반자연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며, 오히려 들뢰즈

(G.Deleuze)'자연주의'라고 부를 수 있었던 그러한 관점이기도 합니다. 이는 또한 데카르

트가 자연에서 주체를 떼어 내면서 함께 떼어 내었던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측면을 스피노자

는 다시 자연에 돌려주려고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진리와 정의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보면 스피노자의 논의는 '실체' '속성'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됩니다.

그는 데카르트처럼 두 개의 실체를 가정한다면 독립적인 두 개의 실체가 서로 일치할 수 있

는지 없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사유' '연장', 혹은 물질과 정신이라는 것을 실체의 속성이라고 합니다. 즉 실체는 많은 속

성을 갖는데, 그 중에 연장과 사유는 인간이 알고 있는 두 가지 속성이라는 겁니다.

잠시 여기서 사유와 연장이 실체의 속성이라는 점에 주목합시다. 스피노자가 ''이라고

불렀던 실체는 기독교적 관념과는 달리 정신적 존재가 아니라 사유와 연장을 모두 갖고 있

는 물질적 존재입니다. 따라서 신이란 영원하고 완전한 그래서 오직 말씀으로서만 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 공간 안에 자리를 잡고 있는, 즉 연장을 가지고 있는 자연 그 자체인 것

입니다.

실체는 이 속성들을 통해서 '표현'된다고 합니다. 아까 실체가 양태로 '표현된다'는 말은

실체가 양태로 '존재한다'는 말이었죠. 여기서 실체가 속성들로 표현된다는 말은 실체가 속

성을 통해서 '인식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즉 이 두 가지 속성 모두가 실체가 갖는 본질을 '

표현'하기에, 그것을 통해 우리는 실체를 인식할 수 있다는 겁니다(들뢰즈, 앞의 책).

이럼으로써 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부닥쳤던 '일치'의 문제를 피해갑니다. 아니 좀더 정확

히 말하자면, 정신과 육체, 사유와 연장이 일치하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하는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생각해 봅시다. 반지름이 5인 원이 있다고 합시다. 이 원의 '실체'를 어떻게 표

현할 수 있을까요? 우선 "이 원의 면적은 25파이이다"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는 둘 다 그 원의 가장 중요한 속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즉 동일한 원의 본질을 다른

속성(면적/길이)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서 이 두 명제는 서로 다른 내용을 담고 있습니

. 다른 속성(차원)의 것인 만큼 동일할 수 없으며 결코 동일해서도 안 됩니다. 같다면 두

개로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죠. 같다면 그 두 가지가 서로 다른 속성이 될 리도 없는 것이

고요.

따라서 이 두 명제는 동일하지 않는 서로 다른 명제인 건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그 두 명제가 하나의 '동일한 원'-이걸 실체에 비유했지요-의 본질을 표현한다는 것입니

. 단지 두 명제는 동일한 실체를 다른 측면, 다른 차원에서 표현한 것입니다. 즉 하나는

면적이라는 속성에서 원을 파악한 것이고, 또 하나는 길이라는 측면에서 원을 파악한 것입

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양자는 서로 다른 명제인 건 분명하지만, 그것만큼이나 동일한 실체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일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즉 그 양자가 동일한 것을 표

현하는 한 그 본질에서는 당연히 일치하기 때문에, 데카르트를 당혹케 한 문제가 스피노자

에게는 아예 발생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개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말은 이런 맥락에서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겁니

. 연장이라는 측면에서 본 개(현실적인 개)아 사유라는 측면에서 본 개(''라는 개념),

아까 원의 면적과 길이에서 보았듯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개는 짖지만 ''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양자가 다르다고 해서 서로 아무 상관없는 것이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양자는 근본에서는 서로 일치합니다. 개라는 동물에 결합되어 있는 질서

''라는 개념에 요약되어 있는 질서는 일치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즉 양자 모두 동일한

실체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는 스피노자가 '진리'란 당연히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

는 극히 낙관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제가 생깁니다. 예컨대 반지름이 5인 원의 면적이 "25파이이다

" 혹은 "27파이이다"라는 상이한 판단이 있을 때, 즉 하나의 속성에 대해 상이한 판단이 있

을 때, 어떤 것이 대상과 일치하는가 하는 문제는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였습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에티카>2부에서 "진리가 진리의 허위의 기준이다"라는 정리를 제

출합니다. 비유하면, '빛이 빛과 어두움의 기준이다'라는 말을 합니다. 빛과 어두움은 빛이 '

있다' '없다'는 식으로 구별되지, 빛과 어두움 외부에 있는 제3자에 의해 구별되는 게 아니

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무엇이 있다/없다 역시 존재가 '부재'함으로써 정의되는 것입니

. 그래서 존재와 무의 기준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리가 진리 자체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약간 우회하여 생각해 봅시다. 앞에서 거울 얘기를 했었지요? 여러분이 거울에 비친 모습

을 보면 그걸 자기 얼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입니다. 그때 하나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게

자기 얼굴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그런 판단을 하려면 이미 자기 얼굴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다른 경우도 마찬가집니다. "존 레논은 위대한 예술가다"라는 판단을 하려면 이미 위대한

예술가란 무언지 알고 있어야 합니다. 즉 훌륭한 예술가는 어떤 사람이다 하는 기준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합니다. 저 창 밖에 있는 나무를 보고 "포플러"라고 말하려면, 그리고 그게 참

인지 아닌지 알려면 포플러가 뭔지 이미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진리는 대상을 인식해서 얻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따라서 '진리'라는 기준이 먼저 있

는 게 아니라면, 진리를 보증하는 문제가 당장 발생합니다.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예를 들어

여러 개의 돌 가운데 진짜 보석을 가려 내야 한다고 합시다. "여섯번째 것이 진짜 다이아몬

드고 나머지는 가짜다"라고 제가 말했다고 합시다. 그 판단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누가 알겠

습니까? 얼마든지 틀릴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보석 감정사를 데려왔다고 합시다. 제가 골라

낸 것을 보고 그가 "이건 유리 조각이군"이라고 했다 합시다. 그럼 제 말은 거짓임이 판명

나겠지요. 그러나 저는 이의를 제기할 겁니다. "당신 말을 어떻게 믿느냐, 가짜 보석 감정사

가 아니란 보장이 있느냐". 그럼 그 사람은 자기를 보증해 줄 사람(보석 감정사 자격증을

발행한 사람)을 보증인으로 내세우겠지요. 그러나 그 보증인이 가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겠습니까? 그럼 보증인은 또 다른 보증인을 내세워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 보증인의 보증인

이 진짜인지를 알려면 역시 또 다른 보증인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정말 확실한 보증인을 마

련하기 위해 무한히 소급해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스피노자는 이것처럼 허망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거슬러올라가도 끝이

없기 때문이지요. 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이 같은 무한 소급을 멈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을 끌어들인다고-그는 여기서 자신이 무신론자라는 것을 슬쩍 드러냅니다-비판합니다.

지어 이렇게 거슬러올라갈 때조차도 '이게 다이아몬드인지 유리인지'를 판단하려면 이미 어

떤 건 다이아몬드고 어떤 건 유리라는 진리의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는 사실 과학의 역사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뉴턴 시대에 누가 "운동하는 물체의

속도가 빨라지면 그 질량이 늘어난다"고 말했다면, 그 말은 거짓이요, 그 사람은 물리학의

ABC도 모르는 사람으로 간주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질량은 변하지 않는다'

것이 진리였기 때문입니다. 이 진리가 "속도가 빨라지면 질량이 늘어난다"는 말이 참인지

거짓인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 겁니다. 상대성이론이 새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

대라면 사정은 정반대가 되겠지요.

요컨대 사유와 연장이 실체의 속성이라는 스피노자의 주장은 데카르트적인 문제, 즉 근대

철학의 중심이 되는 문제를 애초부터 피해 갑니다. 즉 그런 문제는 스피노자에게는 제기되

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근대적인 문제 설정과 큰 거리를 두고 있는 셈입니다.

한편 그는 역설적으로 인식을 통해 진리에 이르려는 근대적인 주체에게, 그건 목표가 아니

라 오히려 출발점임을 가르쳐 줍니다. 즉 인식에 이르려면 이미 진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 말입니다.

이는 어떤 인식도 진리라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하는 후기 비트겐슈

타인(L.Wittgenstein)의 입장과 비교됩니다. 이런 맥락에서 <에티카>의 각 부가 '정의''

공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단지 기하학적 형식을 유추해서 쓴 거라기보다는 자기가 참이라

고 간주하고 있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고 있음을 인정하는 형식이라고도 하겠습니다.

결국 이런 점에서 그는 근대 철학이 시작되자마자 거기서 벗어난, 근대 철학 최초의 반항

자요 근대 최초의 '탈근대적' 철학자였던 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무의식의 윤리학

그 다음에 스피노자의 윤리학을 보겠습니다. 스피노자에게 윤리학은 독특한 자리를 차지

합니다. 스피노자에게 그것은 한마디로 '인간의 문제'를 다루는 영역이었습니다. 스피노자는

인간이 어떻게 작동해서 어떻게 대상을 파악하고, 어떻게 오류를 범하고, 어떻게 감정을 갖

게 되고, 감정에 매이게 되고, 또 인간이 그 안에 매이면서도 어떻게 욕망이라는 것이 생기

는지, 나아가서 그 욕망을 어떻게 해야 하고, 욕망을 가진 존재인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연구하려고 합니다. 이런 관심을 다루는 것이 윤리학이지요. 스피노자는 이것을 가

장 중요한 주제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의 가장 중요한 책 제목이 '윤리학'이란 뜻의 <

에티카>인 것을 보면 이는 상당히 설득력을 갖습니다. 사실 스피노자의 문제 설정에서는,

근대 철학의 꽃이었던 인식론이 따로 독립되어 있다고 하기조차 어렵습니다.

또한 스피노자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급진적인 사람이었고, 그래서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매우 근본적인 형태로 주장하던 급진적인 정치철학 책을 쓰기도 했습니다(<신학 정치학 논

>). 따라서 그가 정치철학, 인간의 삶에 대해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그가 윤리학을 중심으로 사고한 것과 무관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윤리학에서 스피노자의 기본 사상을 요약하자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육체와 영혼으로 나

뉘며, 이 양자는 서로 합일적(통일적)이라는 것입니다. 육체는 라틴어로 코르푸스(corpus),

영혼은 멘스(mens)락 합니다. 앞의 말은 영어나 프랑스어에서 육체, 신체를 뜻하는 corps

어원이고, 뒤의 말은 mental, mentality(mentalit)처럼 정신, 영혼과 관련된 말의 어원이지요.

알튀세는 멘스란 말은 영혼이나 정신으로 흔히 번역되지만 그런 식을 번역될 수 있는 말이

아니라고 하면서, 코르푸스와 마찬가지로 일종의 '(fortitudo)'이라고 합니다.(알튀세, 앞의

).

실제로 <에티카>를 보면 육체와 정신을 모두 힘으로 정의하고 있으며, ''을 가장 중

요한 원리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들뢰즈에 따르면, 여기서도 아까 이야기했듯이 '표현'이라

는 말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실체가 자신을 양태들로 '표현한다'고 할 때, '표현한다

'는 말은 여기선 '활동한다' '산출한다'는 뜻입니다. (들뢰즈, 앞의 책).

스피노자가 윤리학을 연구하는 기본 원리는 '육체는 정신과 합일적이다'라는 명제입니다.

즉 육체와 정신의 결합체로서 인간에게는 양자를 합일(통일)하려는 '코나투스(conatus)'라는

것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어떤 상태를 '지속하려는 힘'이라고 합니다. 이 힘은 인간에게

만이 아니라 실체의 양태인 모든 것들, 즉 모든 개체들에 다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멈춰 있

던 것들, 즉 모든 개체들에 다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멈춰 있던 것은 멈춘 상태에 두려고

하는 것, 운동하는 것은 계속 운동하려는 상태에 두려고 하는 것-'관성'이 이런 힘의 대표

적인 것이지요-을 코나투스라고 합니다(국역본에서는 '노력'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강영계

옮김, <에티카>, 서광사), 이는 의식적인 활동이란 의미가 강하게 포함되어 있어서 적당하

지 않습니다). 예컨대 관성처럼 의식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어떤 힘을 가리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육체와 영혼을 일치(합일)하려는 힘이, 즉 코나투스가 있다고 합니

. 도식적인 예를 빌리면, 제가 넥타이를 매고 강단에 섰을 때와 운동화를 신고 공을 하나

들고 운동장에 섰을 때의 정신적 힘(mens)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시에 출근

해 공장에서 기계에 맞춰 일을 하는 사람과 유치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사람의 맨탤리티

역시 달라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정신적 힘은 육체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맞추어 변하며, 반대로 정신적 상태에

따라 육체가 변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육체와 정신을 합일하고 일치시키는 무의식

적인 힘이 바로 '코나투스'지요.

이 코나투스가 정신과 관련되면 '의지'라고 불리고, 육체와 정신에 동시에 관련되면 '욕망

'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예컨대 빠삐용처럼 갇힌 상태를 벗어나려는 강렬하고 끝없는 의

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 의지는 육체를 움직여 냅니다. 계속 잡히고, 잡히는 횟수가

늘 때마다 신체에 대한 구속과 고통은 더해 가는데도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지요. 욕망이라

면 얼른 떠오르는 것은 성욕, 식욕이지요. 이는 일단 정신적으로 성욕이나 식욕을 채우려는

힘이 발생하지요. 이처럼 육체와 정신을 합일하려는 힘(코나투스)을 중심으로 스피노자는 윤

리학의 문제를 연구합니다(이러한 코나투스 개념은 동양 철학에서 말하는 기란 개념을 서

양 철학의 언어로 이해하는 데 가장 근사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따라서 데카르트라면 당연히 이성의 통제 아래 두려고 할 이 욕망이 스피노자에겐 바로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게 됩니다. 육체와 정신을 합일하려는 힘으로서 코나투스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말하는 셈이니 말입니다. 따라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처럼 그것을 억누르거나

통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억제하거나 통제하려는 것은 어쩌면 소용없는 것인지도 모

릅니다. 프로이트가 이 점에 관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얘기를 하고 있지요.

한편 스피노자는 이 욕망이라는 것이 타자에 의존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욕망 역시

하나의 '양태'로서 타자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유한양태'

는 개념을 사용해야 합니다. 스피노자에게 유한하다는 것은 다른 것에 의존한다는 것과 동

일합니다. 그리고 양태들 각각은 모두 유한한 양태(유한양태)입니다. 즉 어떤 개체가 취하는

모습(양태)은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것에 의존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제 식으로 해석하면, 인간의 욕망은 다른 인간과의 특정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망이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는 말은 인간의 욕망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처럼 이성에 의해 욕망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게 아니라,

인간관계를 바꿈으로써, 즉 욕망을 만들어 내는 조건을 바꿈으로써 욕망 자체를 전환하는

게 훨씬 더 현실적으로 중요하게 됩니다. 즉 인간간의 관계를 바꿈으로써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윤리학적 계몽주의와는 전혀 상반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의미를 종합해 볼 때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란 일종의 '무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를 저는 정신-육체의 합일 속에서 파악된 새로운 무의식 개념으로 이

해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는 프로이트가 말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것으로, 제 식으로 말하

자면 일종의 생체무의식이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꿈에 대한 스피노자의 이야기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에 따르

면 내가 꿈을 꾼다는 것은 내 의식과는 무관하게 내 육체와 정신의 상태 속에서 나오는 것

이고, 내가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내 안에서 작동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이후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건 대개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의 윤리학은 무의식 개념에 의해 인간의 행동과 정서, 욕망

과 정신 등을 사고하려 했던, 결코 근대적이지 않은 사고를 보여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스피노자의 탈근대적 이탈

이상에서 본 것처럼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영향 아래 철학적 사고를 시작했지만, 데카르

트가 열었던 근대적 문제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명시적으로 보여 주

었던, 그리고 과학에 대한 신뢰 뒤편에 자리 잡고 있던 근대적인 반 자연주의에 대해 스피

노자는 명확하게 반대의 깃발을 내건 셈입니다. 또한 주체를 대상에서 분리해내며, 그 주체

를 사고와 판단의 중심으로, 나아가 세계의 중심으로 삼으려고 했던 '주체철학적인' 문제 설

정에서 애시당초 벗어난다는 것도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럼으로써 주체-객체(대상)의 일치라는 문제 자체가 스피노자에겐 제기되지 않으며,

아가 인식이 진리를 제공하리라는 근대 철학적 신념과 달리, 차라리 진리가 인식에 앞서,

단에 앞서 존재해야 한다는 역설을 지적함으로써 근대적 인식론에서 완전히 이탈합니다.

나아가 인간의 육체적 힘과 정신적 힘을 통일하는 코나투스란 개념을 통해, 그리하여 의

식으로 파악하지 않는 무의식적 힘을 통해 인간의 삶과 욕망 등 윤리학의 문제를 파악합니

. 이런 독특한 방식은, ''란 곧 '생각하는 나', 즉 의식과 동일시되는 ''를 뜻하던 데

카르트의 사고와는 매우 다른 것이며, 이후 보겠지만 근대적 사고 전반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비한다면, 스피노자가 욕망이나 정념에 대한 통제를 뜻하는 윤

리학적 계몽주의와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스피노자는 근대 철학이 낳은 근대 철학 최초의 이탈자요 반항자인 셈입니

. 스피노자는 근대 최초의 '탈근대인'이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특징은 이후 다른 근대 철

학자들의 사상을 살펴보면 더욱 두드러질 것입니다.

이후 스피노자가 근대 철학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독창적이고 탁월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는 근대 철학자들로부터 이른바 죽은 개 취급을 당

합니다. 그런데 그의 철학이 갖는 이러한 탈근대적 성격을 생각해 볼 때, 더구나 그게 근대

철학의 독립이 성취된 직후의 일이었음을 생각해 볼 때,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일이었는지

도 모르겠습니다. 네그리의 말처럼 스피노자는 근대적 문제 설정 안에서는 결코 이해될 수

없는 하나의 '변종(anomalie)'이었던 것입니다(L'Anomalie Sauvage).

물론 나중에 스피노자주의자임을 자처하고 나선 사람들의 있어서 스피노자가 다시 철학의

중심으로 진입하기는 합니다. 그건 특히 셸링(F.Schelling)이나 헤겔에 의해 그렇게 되는데,

이를 위해 스피노자의 철학은 근대적인 형태로 전환되고 자신이 가장 반대했던 목적론으로

바뀌는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즉 실체와 속성이란 개념은 주체/객체의 동일성을 입증하

는 개념적 수단이 되고, 실체와 양태는 절대정신과 그것의 외화(소외)라는 개념으로 변형됩

니다(이에 대해선 헤겔을 다루면서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결국 스피노자가 근대 철학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자신이 처음부터 분명히 벗어났

던 근대적 철학으로 변형됨으로써 가능했던 것입니다. 반면 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

속에서 성립된 탈근대적 철학자들이 스피노자에게서 그 중요한 자원을 발견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보면 오히려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유명론과 경험주의-근대 철학의 동요와 위기 1. 유명론과 경험주의

실제론과 유명론

근대 철학의 다음 장은 경험주의라고 불리는 철학적 흐름입니다. 이는 주로 영국에서 발

달했고, 지금까지도 영국과 미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사

고방식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식주체의 경험이 지식의 연원이자 진리의 근거'라는 것입니

.

철학사에서 이 경험주의의 중요한 사상가로 꼽히는 사람은 아시다시피 베이컨과 로크,

클리와 흄(D.Hume)입니다. 그러나 경험의 중요성을 얘기한 것으로 경험주의 사상가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면, 베이컨은 흔히 알고 있는 이 사상가들이 반열에 오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러셀(B.Russell)조차도 베이컨은 자신이 과학에 대해 그토록 강조했으면서도 당신

의 가장 중요하고 일반적인 과학적 지식도 알지 못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반명 <리바이

어던 Leviathan>으로 유명한 정치 사상가 홉스T.Hobbes는 경험주의의 철학적 전통을 만들

어 내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는 경험주의의 모태인 유명론과 관계된 것입니

.) 여기서 경험주의의 주장을 단순히 요약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차라

리 경험주의를 이전의 철학적 전통과의 연관 속에서 다루고, 그것이 데카르트가 세운 근대

철학적 문제 설정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검토하는 게 유용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저

는 경험주의 철학을 '유명론'과 근대 철학의 긴장 관계 속에서 다루려고 합니다.

유명론은 영어로 nominalism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nom은 이름이란 뜻입니다. 이름을 뜻

하는 라틴어의 nomen/nominis에서 나온 말인데, 영어에서 명사를 가리키는 noum이나 이름

이란 뜻의 프랑스어인 nom이 라틴어의 이 말에서 나온 것입니다. nominal'명목적인'

란 의미고요, 그래서 nomialism'명목론' 혹은 '유명론'이라고 번역하지요.

유명론이란 한마디로 말해 '오직 이름일 뿐'이란 뜻입니다. 무엇이 '오직 이름일 뿐'인가,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인데, '보편적인 것(the general)'은 오직 이름뿐이란 주장입니다. 예를

들어 '인간'이란 말을 생각해 봅시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신 분 가운데 '인간'이 아닌 분 있

으면 손들어 보세요. 아무도 없군요. 그렇다면 지금 이 자리에는 '인간'들이 100명 남짓 있

는 것입니다. 그 중 저도 인간이고, 저기 있는 저분도 인간이고, 저 뒤에 있는 저분들 역시

인간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강의실에 '인간'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우 어리석은 질문 같습니다만, 철학자들은 대개 이렇듯 어리석어 보이고 당연해 보이는 걸

붙들고 늘어지고 때론 논쟁하기도 하지요.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특히나 중세

의 수도원에서 연구하던 중세의 신학자나 철학자들에겐 말입니다. 그들 가운데 한 부류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인간'이란 존재는 없다. 다만 김XX, XX, XX라는

개인들만 있을 뿐이다. '인간'이란 그 개인들에 붙인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반대로 말합니다. "여기 있는 모든 개인이 바로 인간 아닌가? 그렇다면 이 자리에

인간이 있다는 사실을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인간'이라는 보편자(보편

적인 것)는 분명히 존재한다." 여기서 전자는 보편적인 것(예컨대 '인간')은 오직 이름일

뿐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유명론'이라 하고, 후자는 보편이 실재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

실재론'이라고 합니다. 이들 두 입장은 중세 후기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데, 나중에 중세 철

학에서 가장 중요한 논쟁의 하나가 됩니다(주의할 것은, 근대에 와서 물질이 실재한다는 주

장 역시 유물론 혹은 '실재론'이라고 불리는데, 이것과 혼동하지 않는 거입니다). 그럼 이런

주장이 왜 문제가 될까요? 여기서 잠시 상상력을 동원해 봅시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랑스에 어떤 미련스럽게 우직한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당시 중세 철학의 가장 큰 논쟁

인 실재론과 유명론 간의 논쟁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지요. 그는 '보편이란 게 실재한다'

실재론자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했어요. 그래서 그것을 예증하려고 했지요. 그는 악마를 찾아

내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일단 어디 가야 찾을 수 있는지 알아야겠기에 도시의 수도원을 찾

아가 신부들에게 물었지요. 악마는 대체 어디 있느냐고, 또 어떻게 생겼느냐고요. 그걸 잡으

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도 말입니다.

두 부류의 수도사가 있었다더군요. 진지하게 자기가 본 악마의 모습을 설명해 주면서,

걸 잡으려면 손바닥에 꼭 맞는 검은 십자가와 마늘 두 쪽이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던 사

람이 한 부류를 대표했지요. 다른 한 부류는 그건 하늘나라에 있으니 당신이 찾을 순 없을

거라고 하더라는 거예요.

우직한 철학자는 악마가 인간이 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에 존재하는

악을 설명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실제로 악마를 찾아 나섰다더군요. 음습한 늪지를 돌

아다니기도 하고 한없이 깊은 동굴을 찾아 다니기도 했으나 결국 악마를 찾지 못했다는 거

예요.

늙어서 힘도 빠지고 먹을 게 없어 굶주린 그는 어느 마을의 한 부짓집을 찾아갔지요.

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때까지 좀 먹고 쉬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그 집 주인은 늙고

병든 걸인이라 생각해서 물을 끼얹으면서 내쫓았다더군요. 그때 그는 발견했던 겁니다. 바로

악마의 모습을. 급하게 검은 십자가와 마늘 두 쪽을 꺼내 들고는 악마를 향해 저주의 주문

을 외웠지요. 그러나 그의 눈앞에는 굳게 닫힌 대문만 있었을 뿐이었지요. 동네를 돌며 떠들

고 다녔지만, 그 집 주인이 악마라는 말을 누구도 믿어 주지 않았어요. 어쩔 수 없이 그는

젖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그 마을의 수도원을 찾았지요. 다행히 수도원에서 쫓겨나진 않

았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는 수도원에서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 어떤 수녀를 능욕하는 악마의 모습을 보았

던 거에요. 그러나 그때는 십자가와 마늘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소리를 질렀다더군요. "악마

!"라고. 모든 사람이 한밤중에 뛰쳐나왔지요. 그러나 그것은 악마가 아니라 어여쁜 수녀와

데이트를 하던 바람난 신부였지요. 그 당시 수도원에선 흔히 있는 일이었으나, 공개되면 창

피를 당하게 될까 우려한 수도원측은 새로이 악마를 보내어 그를 달래더군요. 많은 돈을 주

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악마를 수도원장이라고 부르더라는 거에요.

결국 그는 크게 깨닫고 악마 찾는 일을 중단한 채 고향으로 돌아오고 말았지요. 악마는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깊숙이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입니다. 악마라

고 불리는 존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단지 여러 개인들 속에 존재하는 공통된 특징을 묶

어서 가리키는 이름임을 깨달았던 거지요. 그래서 그는 그 뒤 유명한 유명론자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 결과 교회에서 파문당하고 말았지만, 그것이 그의 신념을 꺾어 놓진 못했

다고 해요.

 

보편 논쟁

이렇듯 보편 개념을 단지 이름 뿐이라고 보는 것이 유명론이고, 그것이 실재한다고 보는

것이 실재론입니다. 이 이견의 뿌리는 고대 철학까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로 거슬

러올라갑니다. 실재론적 입장은 플라톤 이래 철학의 주된 흐름이었습니다. 플라톤은 '이데아

'의 세계가 실재하고, 인간의 지식이란 그 세계에 대한 기억이며, 따라서 진리란 그 '기억'

을 되살려 이데아 세계에 다시 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이데아라는 보편

개념은 실재하며, 모든 보편 개념은 이데아 세계에 근거를 두고 있기에 역시 실재하는 것으

로 생각되었지요. 이런 점에서 플라톤은 강력한 실재론을 견지했던 셈입니다.

반면 유명론이란 이름에 걸맞은 입장은 분명하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다만 아리스토텔레

스 이래 플라톤의 강한 실재론에 대해 의문이란 형태로 그 단서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문을 요약하여 다시 제기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포르피리오스(Porphyrios)인데,

이 사람은 신플라톤주의자인 프로티노스(Platinos)의 제자입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

범주론>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유나 종에 대해서 과연 이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머리속에서만 존재하는지, 나아

가 존재한다면 정신적인 것인지 물질적인 것인지, 또는 감각적인 사물과 별개의 것인지 아

니면 감각적인 존재에 부수적인 것인지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다. 이것은 굉장히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데, 나는 문제 제기만 하고 정리는 못 하겠다(민음사에서 펴낸 와인버그

<중세 철학사>에서 재인용).

포르피리오스의 이 책은 보에티우스(A.M.S.Boethius)의 번역본을 통해 중세 사회에 알려

졌는데-이것이 그 이후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거기서 보에티우스는 보편자가 더 한층 현

실적이라고 보는 입장을 '실재론'이라고 하고, 반대로 개별자만이 현실적이고 보편자는 우리

의 지적 능력 속에만 존재하는 명목적인 것이라고 보는 입장을 '유명론'이라고 합니다.

중세 철학은 앞서 말했듯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특히 중반기까지 그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었지요. 아우구스티누스의 철학이 신플라톤주의에 입각한 것이었고,

이데아의 자리에 신의 개념을 대신 갖다 놓은 것임도 앞서 말했지요. 그러니 중세 철학의

전반기를 지배한 것은 플라톤 철학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실재론이 지배적인

경향이었습니다. 사실 신학적 사고방식에서는 유명론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자칫하면 신이

란 존재를 '오직 이름뿐인 것'으로 간주할 위험마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지식이 성장함에 따라 플라톤식의 논리를 빌린 신학으로는 감당하기 어려

운 것들이 점점 나타나게 됩니다. 자연에 대한 관찰이나 지식을 성서와 신학의 체계 안에서

새로이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힘을 준 게 바로 아리스토

텔레스의 철학이었습니다. 거기서는 플라톤과 달리 이데아 세계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모

든 사물 속에 들어 있다(형상)고 합니다. 이런 사고를 빌려 '스콜라철학'이 탄생하게 됩니

. 토마스 아퀴나스는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지요. 여하튼 이런 새로운 조류가

만들어지면서 보편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나타나게 되고, 이것이 후에 유명론

으로 이어집니다.

'보편 논쟁'이라 불리는 논쟁을 통해 유명론은 비로소 자기 이름을 얻게 됩니다. 이 논쟁

은 짐작하다시피, 실재론자와 유명론자들이 싸운 것입니다. 실재론자들은 말할 것도 없이 대

부분의 신학자들에게 해당하는데, (보편자)이 세상을 창조한 것이며, 개별자들은 신에 의

해서 만들어지고 죽으면 신에게로 다시 돌아간다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라틴어로

"universalis ante res" 즉 보편이 앞선다(보편이 먼저다)라고 말합니다. 에우리게나

(Eurigena), 안셀무스(Anselmus)와 기욤 드샹포(Guillaum de Champeaux)라는 사람이 대표

적인 실재론자지요.

안셀무스는 신의 본체론적 증명으로 유명한 사람인데, 그는 "신은 '완전한 존재'. 존재

라는 속성이 없다면 그건 불완전한 것이다. 따라서 완전한 존재는 존재를 속성으로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완전한 존재인 신은 존재를 속성으로 갖는다. 따라서 신은 존재한다"고 논증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신을 증명하는 것을 '본체론적 증명'(ontological proof, 혹은 존재론

적 증명)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완전한 존재'라는 개념 정의에서

신의 존재를 끄집어낼 정도로 강한 실재론자였습니다.

기욤 드 샹포는 좀더 극단적입니다. 그에 따르면 보편적인 실재인 '인간다움'이 먼저 존재

하는 것이며, 이것이 개개의 실재에 내재하게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인간다움을 생각하지

않고서 신이 어떻게 사람을 창조할 수 있었겠느냐는 거지요.

반대로 유명론자들은 매우 소수의 사람들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는 무엇보다도 유명론

이 교회가 허용하기 곤란한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주장은 한마디로 "universalis

post res" 즉 보편이 뒤따른다(보편이 나중이다)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로스켈

리누스와 아벨라르두스가 있습니다.

로스켈리누스는 유명론을 본격적으로 주장하다가 매우 고생한 사람입니다. 그에 따르면

예컨대 '흰 것' (보편)이 있다는 것은 흰 박스, 흰 테이블 등등 개개의 개체가 있다는 것이

, 흰 박스나 흰 테이블 등과 별도로 '흰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진 그럭저럭 괜찮았지요. 하지만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이런 견해를 ''하고

'삼위일체'에까지 적용합니다. 그는 "신이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세 가지 신적 존재-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결합인데, 사실은 이 세 가지 신적 존재의 공통된 특징에 이름을 붙인 것이

"라고 주장합니다. 한마디로 신이란 이름에 불과하다는 얘기니, 중세에, 그것도 수도원에

서 이런 주장을 하고도 살아 남으려면 목이 몇 개 있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게다가 그는 "

신이란 이름일 뿐이고, 실상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이란 세 명의 신이 있는 것이다"라고 합

니다. 중세에 이런 이야기를 했으니 교황청에서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그 뒤에 가두어지고

쫓겨나고 도망다니고... 그래도 즉각 화형당하지 않은 건 정말 신의 은총이었을 겁니다.

이후 유명론은 오랫동안 크게 대두하지 못합니다.

아벨라르두스 역시 유명한 유명론잡니다. 엘로이즈와의 연애 사건으로 유명한 사람이죠.

엘로이즈는 파리 어느 주교의 조카딸인데, 그는 이 여자를 유혹해서 도주했다가, 그 여자 집

안의 무사들에게 잡혀 손목을 잘리고 수도원에서 은둔 생활을 하다 죽었지요. 낭만적인 프

랑스인들은 그가 죽은 지 700년이 지나고 나서 다시 엘로이즈와 합장해 주었다고 합니다.

아벨라르두스는 원래 실재론자인 샹포와 유명론자인 로스켈리누스 모두에게서 배웠습니

. 그러다 보니 그는 두 주장의 강점과 약점을 다 알게 되었고, 따라서 두 가지를 다 넘어

설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가 보기에 샹포와 로스켈리누스 모두 잘못되

었다고 합니다. 샹포의 말처럼 인간다움이 실재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로스켈리누스처

럼 인단다움이란 없다는 주장도 지나친 것이라고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기 있는 모든 사

람을 지칭하면서 쓰는 인간다움이란 말에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universalis in rebus" 즉 보편은 개별 속에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이때 보편

자는 어떤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라 개념일 뿐이며, 개별적인 사물이 갖는 특이한 요인을 생

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그것은 어떤 사물이 아니라, 생략과 추상에 의해 성

립된 개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분명 유명론자에 속합니다.

 

아퀴나스와 오컴

보편 논쟁은 유명론자들을 억압함으로써 종식되었습니다. 실재론자가 승리한 것입니다.

시로선 당연한 결과인지 모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논쟁에서 제기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억압되고 은폐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논쟁이나 문제가 억압한

다고 해서 없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입니다. 논쟁은 뒤에 가서 다시 나타납니다.

중세 후기에 유명론과 관련해 새로운 주장들이 다시 나타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윌리

엄 오컴(William of Ockham)이 두 개의 대비되는 입장을 대표합니다. 유명론과 관계된 토

마스 아퀴나스의 주장은 '중용적 실재론'이라고도 불립니다. 반면 오컴은 유명론의 입장을

명확하게 했지요.

토마스 아퀴나스는 당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대한 번역 및 주석의 대가였던 알베르투

스 마그누스(Albertus Magnus)의 제자입니다. 이 사람은 신학을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입

각해서 재구성하려고 시도했는데, 사실은 아퀴나스가 이 사람보다 훨씬 탁월했습니다. 말 그

대로 청출어람이었던 거지요. 그 선생조차 '교회의 빛'이라는 말로 제자를 존중해 줄 정도였

습니다.

스콜라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현실과 자연 속에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었습

니다. 아퀴나스는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아까 이야기했던 안셀무스의 '본체론적 증명'

비판합니다. 그것은 개념적인 증명일 뿐이며, 신을 실제적이고 자연적인 상태에서 증명한 것

이 아니라는 거지요.

아퀴나스는 다섯 가지 방법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아리

스토텔레스가 말하는 '부동의 동자'(움직이지 않는 운동자)를 이용한 것입니다. 모든 피조

, 예컨대 여러분이 존재하려면 여러분의 부모가 있고, 또 그 위에 부모(여러분의 조부모)

가 있고 그 위에는..., 이런 식으로 거슬러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운동하고 존재하는

사물들, 개체들은 누군가에 의해서 태어나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을 만들어 낸 것 역시 또

다른 것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런 식으로 거슬러올라가면 다른 것을 만들어 낸 원인이

지만 다른 것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있어야 한다. 자신은 움직이지 않지만 다른 것

을 움직이게 하는 최초의 원인이 바로 신이다." 결국 '부동의 동자'란 바로 창조주란 말이

지요. 이 창조주의 은총의 빛, 즉 신의 빛이 인간의 이성을 완성하며, 이성적 진리와 종교적

진리는 신으로 귀착되기 때문에 동일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성이 인식할 수 있는 '신의

'가 중요해지고, 이 진리를 이성이 인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철학자들의 과업이 됩니다.

이제 "믿기 위해선 이해하라"는 슬로건이 나오며, 철학은 이런 과업에 봉사할 임무를, '

신학의 시녀'라는 임무를 공식적으로 부여받게 됩니다. 이것이 스콜라철학의 기본 모토지요

(이런 식을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 입각해서 신과 자연 세계를 통일시켜 이해

하려고 했습니다. 신학과 철학, 이성적인 세계와 신적인 세계, 신학적인 멘탤리티와 철학적

인 멘탤리티의 통일이야말로 스콜라철학의 기초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형상''질료'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으로 자연계를 설명합니다. 형상

과 질료라는 개념을 잠깐 살펴봅시다. 예를 들어 이 나무 탁자의 질료는 나무입니다. 질료는

재로가 되는 소재, 이러한 것을 뜻하지요. 그러나 나무만 가지고는 탁자가 되지 않습니다.

나무가 탁자가 되려면 설계도라 할 수 있는 형상이 있어야 합니다. 넓은 널빤지와 네 개의

, 그리고 몇 개의 버팀목이 있을 때 비로소 탁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런 식으로 설계도인

형상과 질료(재료)인 나무가 있어야 이 같은 나무 탁자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뜻에

서 질료와 형상이 결합해서 사물을 이룬다고 말합니다.

아퀴나스도 이러한 관점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재료들과 신이 만들어 준 구조, 형상 같

은 것들이 모든 개체에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이른바 '중용적 실재론'이라는 입장에

서는 것도 이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보편적인 것'은 개별 내부에 형상으로서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탁자, 저 탁

자 모두에 공통된 형상이 포함되어 있듯이 말입니다. 소크라테스에게도 인간이란 형상이 있

, 강의하는 제게도 인간이란 형상이 있듯이 말입니다. 즉 모든 개별적인 사물 내부에 보편

자의 그림, 형상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퀴나스는 보편자가 형상이라는 형

태로 개별 '내부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한편 추상 개념, 예를 들어 '인간다움'이라는 개념은 여러 사람들이 가진 공통된 속성을

추출해 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개별적인 사람들보다 먼저 존재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추상적인 개념으로서의 보편은 개별 '뒤에' 존재한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신이 갖고 있는 관

, '이데아'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인간의 모습에 대한 관념을 신이 갖고 있지

않다면 인간을 창조할 수 없는 것처럼, 신이 갖는 관념은 모든 개별적인 사물이 존재하기 '

전에' 존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결국 아퀴나스는 세 가지 얘기를 다 하는 셈입니다. "형상으로서 보편은 개별 속에 존재

한다. 또 추상적 개념으로서 보편은 개별 뒤에 존재한다, 그리고 신의 관념으로서 보편은 개

별보다 먼저 존재한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름일 뿐인 보편자(추상적 개념)가 있음

을 인정하는 것이지만, 사실은 그걸 제외하면 보편자는 실재한다는 주장입니다. 즉 보편 개

념만 이름이고, 다른 보편자는 실재한다는 실재론의 입장입니다. 어찌 보면 (추상) 개념만이

개념(이름)이고 다른 보편자는 실재라는 주장이며 근본적인 보편자(중세의 '이데아')는 개별

보다 앞서 존재한다는 주장입니다.

반대로 윌리엄 오컴이라는 사람은 당신의 유명론자로 가장 유명합니다. 그는 "보편 개념

은 기호다. 이 기호에 상응하는 실재는 없다. 사물에 앞서는 보편자는 신의 정신 속에도 없

"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추상적인 '언제' '어디' 같은 것은 실재하지 않으며, 오직 구체적

인 장소와 구체적인 시간만이 실재한다고 합니다. 관련된 사물들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것

을 떠난 '관계'라는 추상적인 존재란 없으며, 1, 2, 3 등 숫자들은 실재하지만 일반적인 ''

라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결국 보편 개념은 이름일 뿐이지 실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컴은 이런 논리가 기독교 교리에까지 적용한다면, 신학적 교의 자체가 붕괴할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자신이 교리 자체의 처참한 붕괴를 피하려고 그랬는지 아니면

자신에게 가해질 교회의 탄압을 피하려고 그랬는지, 이러한 주장을 오직 이성이 작용하는

영역에만 한정해 버렸습니다. 이성과 달리 "믿음은 불합리한 것이고(credo quia absurdum)",

믿음의 영역인 신학에는 앞서와 같은 이성의 논리가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나옵니다. 개별적인 대상을 경험하는 데서 말입니다.

그런데 "신에 대한 경험은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신에 대한 고유한 지식 역시 불가능하

, 따라서 믿음은 불합리하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오컴은 신학을 합리적 이성으로부터 떼

어내고, 철학과 신학을 분리합니다. 이럼으로써 그는 신학적 원리에 따라 철학을 통해 신의

섭리를 이해시켜야 한다는 스콜라철학을 해체하고 철학과 신학을 분할하려고 합니다.

이미 후기에 이르러서인지 아니면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인지, 이런 주장 정도는 논란은 되

었을망정 그로 인해 화를 당할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신학과 이성이란 영역이 서로 별개라면 교회는 정치에 개입하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리고 그 당시 교황이 세속 정치에 굉장히 깊이 관여하고 있었는데, 오컴은 이것까지 비판합

니다. 이 때문에 그는 투옥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해서 당시 교황과 다투고 있던 바이에른 주

의 루트비히 왕 밑에서 은신합니다. 오컴은 이때 "당신이 칼로써 나를 지켜 주면 나는 펜으

로써 당신을 지켜 주겠다"고 하여 또 하나의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유명론과 경험주의

지금까지 우리는 중세 철학에서 유명론과 실재론의 대립을 살펴보았습니다. 근대 철학,

히 경험주의를 다루는 자리에서 이토록 장황하게 중세 철학을 얘기하는 게 어찌 보면 뜬금

없어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유명론과 경험주의의 관계를 본다면 이런 장황함은 용

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명론은 중세 전체를 지배한 실재론에 대한 반대로서 제기되었습니다. 그것은 이데아와

유사한 보편자가 세계를 만들어 내고 세계를 움직인다는 사고에 대한 반대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데아와 같은 관념으로 세계를 설명하려는 관념론에 대한 비판으로 기능했던 것입

니다. 이러한 반대는 주로 개별적인 사물이나 현실에 대한 지식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제시

되었습니다. 즉 하늘에 떠다니는 이데아나 관념에다 사물을 꿰어 맞추는 게 아니라, 땅 위에

있는 다양한 사물들을 올바로 관찰하고 그것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인식함으로써 올바른

지식은 만들어지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유명론자들이 개별적인 사실에 대해 정확하게 관찰하고 경험하는 걸 강조하는 것

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경험적 연구나 관찰과는 무관하게 이미 알려진 사실들을 신학적 원

리에 따라 해석하고 꿰어 맞추는 스콜라철학과는 반대로, 개별 사실들을 강조하고 그것이

원리에서 벗어난다면 벗어나는 대로 있는 그대로 인식하자는 견해가 생겨 나오는 것은 바로

이 유명론적 전통 속에서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명론이 어떤 관념이나 보편 원리로써 전

체를 다 설명하려는 경향에 대해 해체적이고 비판적인 효과를 갖는다는 건 분명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예전에는 신학적 원리나 신의 말씀에 맞는 한에서만 사실이나 경험이

유의미했다면, 이제는 종종 그 원리로는 설명되지 않으며 때론 정면 충돌하기도 하는 '사실'

들에 일차적인 중요성을 두자는 것입니다. 사실 유명론이 가능했던 것도 신학적 원리에서

벗어나는 '사실'들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초기의 신플라톤주의적 철학이 후기의 아리스토

텔레스적 철학으로 바뀐 것 자체가 그런 요소들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유명론이 점점 목소리를 키워 가고 있다는 사실은 경험이나 경험적 지식에 대한

개방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구체적으로 접하고 경험하는 구체적 사물, 구체적

지식에 대한 개방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경험주의'라고 부르는 흐름에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은 대개 다 알고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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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로크-유명론과 근대 철학

로크의 입지점

알다시피 로크는 경험주의를 하나의 시조로, 흐름으로 만들어 낸 사람입니다. 그의 철학을

떠받치고 있는 두 개의 지반이 있습니다. 하나는 데카르트가 새로운 장을 열었던 근대 철학

의 문제 설정입니다. 즉 신에게서 독립한 주체, 그래서 존재와 인식, 가치의 새로운 중심이

되었던 근대적 주체가 로크 철학에서도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지반이 됩니다. 진리라는

인식의 목표 역시 마찬가지지요.

다른 한편 갈릴레이와 뉴턴, 호이겐스(C.Huygens) 등이 이룩한 과학혁명의 획기적 효과

속에서 그는 사고했습니다. 즉 근대 초의 과학혁명이 로크의 사상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제 과학은 진리에 이르는 가장 커다란 길, 암묵적으로는 유일한 길로 간주됩니다.

데카르트가 기초를 닦은 과학주의가 탁월한 과학자들의 성공적인 작업으로 인해 반석 같은

위치에 서게 됩니다.

따라서 로크는 과학 발전을 가로막는 허구적인 원리나 개념, 사고 등을 제거하는 '청소부'

역할을 자임합니다. 이런 관점에 선 그에게는 경험과 관찰만이 과학에 이르는 유일한 길로

보였습니다. 경험과 관찰이야말로 과학에 이르는 왕도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

식이 흔히 '경험주의'라고 부르는 것이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미 철학에선 주류를 이루는

입장입니다.

이처럼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입장은 같은 과학주의라 해도 데카르트의 그것과는 크게

다릅니다. 데카르트는 경험과 관찰의 불확실성을 지적하면서, 오히려 이성에 내재해 있는 본

유관념과 그것에 의거한 연역적인(예컨대 수학적인) 지식이 우리로 하여금 진리에 이르게

하리라고 생각했지요.

반면 로크의 생각은 경험이나 관찰에 의하지 않은 지식이나 개념, 예컨대 신학적인 우주

론은 오히려 올바른 관찰에 입각한 과학적 지식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

에선 데카르트의 본유관념 역시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그런데 앞서 우리가 유명론과 연관해

서 얘기했던 것을 생각해 본다면, 경험과 관찰을 중시하는 로크의 입장은 분명 유명론적 전

통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유명론자 오컴 역시 영국 출신이었습니다).

요컨대 로크는 유명론적 전통에 따르면서 데카르트와는 전혀 다른 고유한 흐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렇지만 로크의 철학은 데카르트가 마련해 놓은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 위에

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즉 독립적인 인식주체를 축으로 해서 신학적 사고에서 벗어났으며,

과학이란 이름의 진리를 목표로 삼아 추구하고 있는 근대적 철학입니다. 이런 점에서 중세

적 유명론과는 근대적 문제 설정의 결합을 통해 중세적 유명론과도, 데카르트적 근대 철학

과도 다른 독자적인 흐름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본유관념 없는 진리를 위하여

데카르트가 진리의 근거를 이성과 이성의 본유관념에서 찾았다는 것은 앞서 거듭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크가 보기에 본유관념이란 중세적이고 스콜라철학적인 잔재였습니다.

크가 지금 있다면 이런 식으로 예를 들 것 같습니다.

<불을 찾아서>란 영화가 있지요. 불을 사용하던 원시인들은 불씨가 꺼지자, 불을 찾아오

라고 몇 사람의 대표를 보내고, 그들은 고생 끝에 불을 찾아오지요. 그러나 원시인들은 너무

기쁜 나머지 물에 빠뜨려 불을 꺼뜨리고 맙니다. 이때 주인공은 불을 찾는 동안 배운 방법

을 써서 불을 피우려고 하지요. 그런데 잘 안 되어 그에게 불 피우는 법을 가르쳐 준 여자

가 대신 피워 주지요.

불을 피울 줄 몰랐던 원시인은 어디엔가 있는 불을 찾아 쓸 줄만 알았고, 그러니 불이란

누가 준 선물처럼 생각했을 겁니다.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 몰래 가져다 준 선물이 바로 불

이었다는 식의 신화가 보여 주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들에게

불이란 신이 우리에게 준 선물(본유관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이 나는 과정을 자세

히 살펴보고 경험함으로써 배운 것입니다.

좀더 정확한 예를 들어 봅시다. 제가 들은 바로는 부시맨은 수를 8까지밖에 세지 못한다

고 합니다. 그걸 넘는 수는 그냥 '많음'인 거지요. 부시맨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을 겁니다. 숫자가 만들어지고 그것을 써서 수학적 계산을 하기 시작한 것은 길

게 잡아야 지금부터 약 5000년 전입니다. 그럼 그 이전에는 어땠겠습니까? 있어 봐야 '적다

/많다' 아니면 '하나/다수' 정도였겠지요(이게 지금까지 언어에 남아 단수/복수라는 형태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산수와 같은 매우 자명해 보이는 수학적 지식 역시 타고난 것이라고 하기는 힘

들다는 게 로크의 생각입니다. 따라서 어떠한 본유관념도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는 어린

아이나 야만족의 경우를 생각하면 쉽게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반면 우리의 지식은 모두 경

험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만약 데카르트처럼 경험 이전에 이성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건 틀

림없이 '백지(tabula rasa)'일 거라고 합니다.

로크가 보기에 데카르트가 생각하는 '완전한 개념'은 신이 준 것도, 타고난 것도 아닙니

. 오히려 그것은 경험에서 추출된 것이며, 불완전한 모습들을 관찰하여 불완전성을 제거하

고 완전한 모습을 그려 낸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편은 개별에서 추상된 것

이며, 그 공통된 특징에 붙인 이름일 뿐이라는 유명론의 논지와 유사함을 쉽게 알 수 있습

니다.

더 나아가 로크는 모든 보편 개념(일반 개념)은 우리의 사고가 만들어 낸 것이며, 다만 이

름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라고 합니다. 그는 단순관념과 복합관념을 나누는데, 단순관념은

저 누런 금속을 보고 ''이라고 판단하거나 '노랗다'고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복합관념

은 우리의 사고가 이 단순관념들을 결합해서 만듭니다. ''이라는 단순관념과 ''이라는

단순관념을 결합해 '황금산'이란 관념을 만드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단순관념은 사물에 의한

자극으로 만들어집니다. 반면 복합관념은 단순관념들을 오성(understanding)이 결합해서 만

듭니다. 신이나 인간과 같은 보편 개념은 모두 복합관념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오성

(깨닫는 능력)이 만들어 내는 것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닌 명목적인 것입니다.

보다시피 로크는 데카르트의 본유관념과 이성/진리 개념, 보편 개념에 대해 유명론의 입

장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박을 통해 로크는 본유관념을 끌어들이지 않고도 진리에

도달할 수 있음을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경험과 관찰에 입각한 지식이 바로 그것이지요.

 

로크의 딜레마

그런데 로크는 곧 딜레마에 빠집니다. 이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실체

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리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로 실체에 관한 것을 봅시다. 로크는 우리의 감각이 경험을 통해 대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로크가 환각이나 착각에 의한 경험을 생각하는 게 아니기 때문

, 경험을 통해 ''를 자극하는 요인이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내가 어떤 사물을 보고

'빨갛다'고 지각했다면, 나로 하여금 빨갛다고 생각게 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나는 착각한 거거나 꿈을 꾸고 있는 거겠지요.

물론 경험이나 관찰한 것이 잘못되어 나중에 수정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또는 그

게 원래 빨간 건지, 아니면 다른 건데 우리가 그렇게 감각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태양이 무

슨 색인지 모르지만 대개는 노란색으로, 때로는 주홍색으로 보이듯이 말입니다. 내가 노랗다

고 하건 벌겋다고 하건 간에 태양이 있음엔 분명하다는 겁니다.

이처럼 로크는 '빨갛다' '노랗다' 같은 단순관념을 야기하는 것을 '물질적 실체'라고 합니

. 이 물질적 실체(예를 들면 태양)가 우리(주체)의 감각을 자극해서 단순관념('빨갛다' '

랗다')이 생기도록 한다는 거지요. 물론 이 물질적 실체는 우리가 어떻게 경험하든 불변인

채로 있을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경험으로 불변인 채로 있을 것입니다. 아른 말로 하면

경험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며, 우리의 감각적 경험 외부에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태양을 보면 언제나 태양으로 인식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같은 걸 보고서 언

제는 태양이라고 했다가 언제는 찐빵이라 하고 또 언제는 농구공이라고 해서는 올바른 인식

이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인식의 불변적인 주체를 로크는 또 하나의 실체라고

합니다. 이건 '정신적 실체'지요.

결국 로크는 물질과 정신이라는 두 개의 실체를 받아들입니다. 이 두 개가 없으면 어떠한

올바른 지식도, 진리도, 과학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같은 걸 보고 언제는

태양이라고 했다가 언제는 찐빵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진리나 과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 물질적 실체(태양)가 없는데, 마치 있는 것처럼 노랗다고 하거나 빨갛다고 한다면, 꿈과

과학(진리) 간에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나누는 근대 철학 안에

, 로크처럼 진리로서 과학을 추구하려 하는 한, 물질적 실체를 끌어들이는 것은 불가피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 결과 데카르트 비판에서 시작한 로크는 아이러니하게도 데카르트의 주

장으로 되돌아온 겁니다. '실체'와 같은 보편 개념은 오직 이름일 뿐이라는 유명론에서 시작

해서 '실체'가 없어선 안 된다며 두 개의 실체(물질과 정신)가 있다는 '반유명론적인' 주장

으로 되돌아온 겁니다.

둘째로 진리에 관한 것, '1성질'에 관한 것입니다. 예컨대 태양의 수가 몇 개인가 생

각해 봅시다. 제가 면밀히 관찰한 바에 따르면 태양은 하납니다. 혹시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

있나요? 여기에는 없는 것 같군요. 그럼 지금 이 강의실의 온도는 어떤가요? 저는 따뜻하다

'경험'합니다. 저분은 추워 보이는군요. 다른 분은 춥진 않지만 썰렁하다고 느낄 수도 있

을 겁니다. 혹시 덥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즉 이 강의실의 온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춥다고 경험한다 해서 그를 비웃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태양이 두 개라고 경험하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가 농담을 하고 있거

나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태양의 숫자를 경험하는 것이나 이 방의 온도를

경험하는 것이나 '경험'하기는 마찬가진데, 왜 이토록 달라지는 걸까요? 이에 대해 로크는

말합니다. 이 방의 온도는 그걸 느끼는 주체에 따라 달라지는 성질이지만, 태양의 숫자는 주

체와 상관없는 성질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이처럼 주체에 따라 다르게 경험하는 성질을 '

2성질'이라고 하고, 주체와 상관없는 성질,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느끼는 성질을 '1성질'

이라고 합니다. 2성질은 경험 안에 있지만, 1성질은 물체 자체에 속하는 성질이라고 합

니다. 진리가 가능한 것은 바로 이 제1성질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인식과 대상은 일치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인 진리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봅시다. 1성질은 어떻게 해서 진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걸까요?

리가 제1성질을 동일하게 경험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로크에 따르면, 그건 사물에 속하

는 성질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즉 사물들은 그런 성질을 타고난다는 겁니다. 따라서 제1

질은 사물이 갖는 일종의 '본유성질(타고난 성질)'인 셈입니다.

로크는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을 유명론의 입장에서 비판하면서 주체에게서 본유관념을 떼

어 냅니다. 그러나 진리가 가능하다는 걸 주장하기 위해서 그는 그 성질(타고난 성질)을 사

물들에게 돌려줍니다. 1성질인 '본유성질'을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비록 뒤집힌 형

태로지만, 다시 데카르트의 주장으로 되돌아오는 것입니다. 유명론에 반하는 주장으로 말입

니다.

 

유명론의 근대화

앞서 우리는 로크의 경험주의가 두 개의 지반 위에 서 있다고 말했습니다. 표면상으로 그

것은 근대 철학과 과학주의였지만, 사실상은 근대 철학과 유명론이었음을 보았습니다.

중세에 유명론은 보편 개념이 실재한다는 주장의 반론으로 제출되었고, 실재하는 것은 개

별자라는, 말하자면 '존재론적' 성격의 사상이었습니다(중세에 존재론이 별도로 있었던 건

아니라는 의미에서, 그렇지만 그 성격은 존재론이라고 나중에 불리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

서 따옴표를 쳐 '존재론적'이라고 한 것입니다). 보편자에 대한 개별자의 우위를 주장하는 '

존재론'이었지요. 그것은 신학적 문제 설정 속에 있었으나, 본질적으로 신학과는 화해하기

힘든 것이어서 끊임없이 신학과 충돌하고 억압받기도 했습니다.

반면 로크에 이르러 유명론은 근대적 문제 설정에 포섭되게 됩니다. 즉 인식주체가 신에

게서 독립해 있고 '이 주체가 진리에 이르는 길은 무엇인가'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유명론은

개별적 사실들에 대한 관찰과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유명론은 '인식론'적 성격의 사상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크의 철학을 '유명론의 근대화

' 혹은 '근대화한 유명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경험주의란 바로 근대화

한 유명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명론이 중세에는 신학과 충돌했다면, 이제는 근대 철학의 과학주의와 충돌하게

됩니다. 로크는 근대적 문제 설정 속에서 근대 과학의 기초를 유명론을 통해 마련하려 했습

니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로크 역시 (인식)주체에서 출발하여 진리에 도달하려는 근대적

문제 설정 안에 서 있었고, 거기서 과학이란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임을 보증할 수 있었습

니다. 이러기 위해서는 물질과 정신이란 실체를 다시 끌어들여야 했고, 진리가 가능함을 보

증하기 위해 제1성질을 만들어 내야 했습니다. 이러한 실체와 제1성질이 유명론의 사고방식

과 정면으로 충돌한다는 것은 앞서도 말한 바입니다.

이는 결국 근대적 문제 설정(특히 과학주의)과 유명론 사이의 갈등과 대립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로크오선 어느 것 하나를 취할 수 없게 만드는 딜레마의 정체였습니다. 다시 말해

로크가 처한 딜레마의 요체는 유명론과 근대적 문제 설정(과학주의) 간의 긴장에서 비롯되

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유명론이 근대적 문제 설정 속에 포섭됨으로써 생기는, '근대화한 유

명론'의 내적 긴장이요 '모순'이기도 합니다. 이 모순은 이후 버클리와 흄을 통해 경험주의

사상이 발전하면서 더욱 증폭됩니다.

 

버클리-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버클리는 로크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고유한 입론을 세웁니다. 그의 로크 비판은 일단 두

가지로 나누어 얘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실체 개념에 대한 비판입니다. 로크는 모든 복합관념은 오성(정신)이 결합한 것이고

명목적인 것일 뿐이지만, '실체'만은 예외로 한다고 합니다. 즉 물질과 정신이라는 실체는 '

예외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버클리는 이런 예외 조항을 인정할 수 없

다고 합니다.

둘째, '1성질'에 대한 비판입니다. 로크는 대상의 성질은 모두 인식주체가 경험한 것이

요 주관적이라고 하면서 오직 제1성질만은 예외로 둔다는 것입니다. 즉 제1성질만 유독 물

질 그 자체에 속하는 객관적 성질이라고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버클리가 보기엔 경험

되지 않는 성질이란 알 수 없는 성질이요, 알 수 없는 성질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안

다고 하는 말처럼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판을 통해 버클리가 도달한 곳은 근대 철학의 밑바닥입니다. 즉 물질적 실체를 가

정하면, 이것이 지식과 일치하는가라는 확인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이는 앞

서 근대 철학의 딜레마를 다루면서 이미 확인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미연에 방지

하려면 '물질적 실체', '물질'이란 개념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버클리

"물질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지각된 것뿐이다"라고 말합니다. 이제

내 책상은 내가 연구실 문을 닫고 나서는 순간 '존재했던 것'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

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것을 지각하지 않기 때문이죠.

버클리가 이토록 과감하게 나갈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과학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주

교였다는 사실 때문인 것 같습니다. 즉 근대적 문제 설정에서 물질을 부정하자마자 과학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 로크로 하여금 '예외'들을 만들게 했던 것인데, 버클리는 과학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그런 예외를 두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곧 다른 문제가 생겨납니다. 예컨대 누군가가 버클리에게 물었습니다. "당신 부인

은 지금 안 보이는데(지각되지 않는데), 그럼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멀쩡한 마누라를 죽었

다고 할 수야 있겠습니까? 생각 끝에 버클리가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각해 주

시기 때문에 우리 집사람은 존재하고 있다오." 정말 주교다운 대답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각하고 계시다면, 네스 호의 괴물도, 무시무시한 공룡도, 아담과 이브가 놀던

패러다이스도 어딘가에 존재하지 않을까요? 다시 말해 이름 붙일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존

재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데아'라는 보편자 역시 하나님이 계신데 존재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주 기묘한 방식으로 유명론은 자신의 반대물(실재론)로 바뀌고

마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버클리는 '물질'이란 실체를 제거하지만, 정신에 대해선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지각하는 정신이 없다면 대체 경험이 어떻게 가능하겠으며, 지각이 어떻게 가능하겠습

니까? 요컨대 정신이란 실체만 존재하며, 이 실체가 지각하는 것만이 존재하게 됩니다. 결국

'정신'이란 실체 앞에서 버클리는 유명론에 일종의 유보 조항을 달고 있는 셈입니다. 자기가

비판했던 로크와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따라서 버클리의 주장은 유명론에서 관념론으로 나아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세

의 유명론은 실재론에 대항하는, 반관념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성격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런 뜻에서 흔히 유명론을 중세의 유물론이라고도 하지요. 로크의 유명론 역시 이런 성격은

분명했습니다. 그것은 데카르트 철학의 관념론적 성격에 대한 비판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이

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근대적 문제 설정 안에서 딜레마에 처한다 해도 말입니다.

반면 버클리에 와서 유명론은 정반대의 성격을 띠게 됩니다. 그는 로크가 남겨 두었던 물

질이란 실체를 제거합니다. 이는 사실 개체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이었음을 상기하면, 버클

리의 이 작업은 양면성을 갖는 셈입니다. 모든 보편 개념이 이름일 뿐이라면, 개체만이 실재

한다고 할 때 '실재성' 역시 보편 개념이므로 제거되어야 합니다. 이런 점에선 유명론의 연

속성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론이 본래 개체의 실재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면, 그래서

신학에 대항하는 적극적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면, 개체의 실재성을 제거하는 버클리의 주

장은 유명론의 부정이기도 합니다.

사실 이런 식의 부정을 거치면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존재한다' '지각

한다'는 말조차 보편성을 갖기 때문에 제거되어야 하기 때문이지요. 이는 버클리 자신이 정

신이란 실체를 예외로 남겨 둘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거꾸로 확인됩니다. 이는 유명론과

근대 철학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곤란을 드러내는 방식의 하나일 것입니다.

어쨌든 버클리는 '물질'이란 개념을 제거함으로써 정신과 그 정신이 지각한 것만을 세상

에 남겨 두었고, 그 결과 유명론은 관념론으로 전환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측

면에서 보면 이는 근대적 문제 설정 안에서 유명론의 논리를 끝까지 밀고 가려면 어쩔 수

없이 거쳐야만 하는 불가피한 행로인지도 모릅니다.

 

3.-근대 철학의 극한

과학주의에서 회의주의로

근대 철학을 그 극한까지 몰고 갔던 사람은 누구보다 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흄

의 철학은 '회의주의'로 불리는데, 대개는 회의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그의 사상에 대한 평가

를 일축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추구한 근대 철학에서 그러한 회의주의가 나타난 것은 무엇

때문이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는 근대 철학 전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역설적인 중

요성을 갖습니다.

흄의 출발점은 로크와 비슷합니다. 그 역시 엄격한 과학적 지식을 추구합니다. 그에 따르

"자연과학의 성과를 빌려서 인간학을 구성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는 과학의 일종으로

간주되던 심리학을 기초로 '경험적 인간학'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여기서 경험과 관찰이 일

차적 위치를 차지함을 물론입니다. 이런 점에서 흄이 경험주의의 전통에서 출발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 역시 불확실한 것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확실한 과학을

구성해야 한다는 근대적 과학주의를 공유한 셈입니다.

흄은 여러 가지 관계들을 구분해서 그 중 과학이란 이름에 걸맞은 확실한 무언가를 찾아

나섭니다.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그에 따르면 철학에는 일곱 가지 관계가 있는데,

이 중 '유사관계' '양적 관계' '질적 관계(성질의 등급)' '반대관계'는 확실하지만, '동일 관

' '시간/공간상의 관계' '인과관계'는 확실하지 않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쌍둥이가 서로

닮았다는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똑같이 생겼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는 것입

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게 인과관계입니다. 인과관계는 손을 비비면 따뜻해진다든지, 나무를 비

벼 대면 연기가 마녀 불이 붙는다든지, 물건을 놓치면 떨어진다든지 하는 것처럼 두 개의

현상이 연속해서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앞의 것을 원인, 뒤의 것을 결과라고 하지

.

그러나 흄은 인과관계란 "연접한,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붙어 있는 두 인상(현상)의 관

계에 대한 습관적인 판단"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 것은 그런 경우

를 자주 보다 보니 생긴 습관이라는 겁니다. 그렇지만 언제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영화 <불을 찾아서>를 보면 주인공이 나무를 맞대 세워 비벼 대지만 불은 붙지 않

습니다. 그를 따라온 여인이 비비자 불은 다시 붙지만, 어쨌거나 나무를 비비면 불이 붙는다

는 건 언제나 반드시 타당한 결론은 아니라는 겁니다. 다만 자주 일어나는 일이라서 불이

붙을 것이란 판단을 하는 습관이 형성되어 있을 뿐이라는 거지요.

따라서 그는 확실한 네 가지 관계는 과학에 합당하지만 인과관계를 비롯한 나머지 세 가

지는 과학을 구성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모든 법칙은 인과관계에 의해 표시됩니다.

과성 없이는 어떠한 법칙도 생각할 수 없으며, 법칙 없이는 어떠한 과학도 생각할 수 없습

니다. 결국 그는 애초의 뜻과는 반대로 과학의 불가능성, 진리의 불가능성을 입증하고 만 것

입니다. 이로써 근대 철학의 목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회의

주의'란 이러한 도달 불가능성을 표현하는 말인 셈입니다.

 

주체의 해체, 주체철학의 해체

흄은 버클리가 남겨 둔 유보 조항을 비판하면서 경험주의를 좀더 극단으로 밀고 갑니다.

버클리는 지각된 것을 관념이라 하고 지각하는 것을 정신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물건

을 보고 '사과'로 지각한다면, '사과'는 관념이고 그걸 지각한 것은 정신이라는 겁니다.

런데 알다시피 버클리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된 것이다"라고 하며, 지각되지 않은 것은 존

재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지각하는 정신만은 지각되는 게 아니지만 존재한다

고 합니다. 즉 지각하는 '주체', 인식하는 주체(데카르트)'정신'이란 이름으로 그대로 남

아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흄은 이런 예외조차 인정하지 않습니다. 흄은 사물을 보고 생긴 것은 인상이요,

인상의 기억이나 결합으로 만들어진 게 관념이라고 합니다. 사과가 지금 앞에 없지만 예전

에 본 사과를 떠올리거나 '사과밭'이란 말을 만든다면 그건 관념인 거지요. 이 양자간의 차

이는 사고로 눈을 잃은 장님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선천적인 장님은 사과란 말은 들

어도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합니다. 그는 인상도 관념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사고로 눈을

잃은 장님은 사과란 말을 듣고 빨간색의 먹음직스런 과일을 떠올릴 수 있지요. 그는 인상은

갖지 못해도 관념은 가질 수 있습니다.

인상은 직접적인 것이고 관념은 한 번 거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둘 사이에 본질

적인 차이는 없다고 합니다. 그저 우리의 감각을 자극하는 강도의 차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흄에 따르면 정신이 딸 있는 게 아니라 관념과 인상의 다발만이 있을 뿐이라고 합니다.

떤 때는 슬픈 감정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서움이 나타나기도 하고 또 어떤 때는

동그란 컵에 대한 관념이 나타나기도 하는, 이러한 것들의 스치고 지나가는, 그리고 그것들

이 묶여 있는 집합으로밖에 정의할 수 없다고 합니다. '' '주체' '자아' '정신'이란 말로

불리던 것에 대해서는 그것이 인상과 관념의 묶음, 지각의 다발일 뿐이라고 합니다. 그건 다

만 인상이나 관념이 번갈아 스쳐 가는 극장, 그것도 무대조차 없는 극장 같은 거지요. 결국

''라는 게, '정신'이라는 게 따로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토탈 리콜>이란 영화를 보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뇌에 주입함으로써 화성

총독의 친구인 주인공이 총독의 권력에 대항하는 반란자가 됩니다.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거

지요. 동일한 사람이 인상과 관념, 그 기억의 다발이 바뀜에 따라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 거

지요. 그렇다면 ''라는 항구적인 주체가 과연 있느냐는 질문이 당연히 제기되지 않겠습니

? 이리하여 흄은 '정신'이나 '주체'라는 범주를 해체하게 됩니다. 데카르트는 물론이고,

로크나 버클리도 자명한 것으로 간주했던 근대 철학의 출발점을 말입니다. 이 같은 흄의 주

장은 어떤 실체도 인정하지 않는 버클리식의 유명론을 '정신'이나 '주체'에 대해서까지 적

용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근대적 문제 설정 속에서 유명론을 끝까지 밀고 나간 결과,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란 범주를 해체하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대 철학의 전복

위에서 본 것처럼 흄은 근대 철학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진리' 혹은 '과학'의 불가능성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아가 근대 철학의 입지점인 '주체' 자체가 결코 안정적이거나 자명한 것

이 아님을 보여 주었습니다. 근대의 과학주의는 물론, 주체철학 자체가 어떤 근본적인 곤란

에 처해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이는 근대적인 문제 설정이 안고 있던 딜레마를 폭발적으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흄이 다다른 곳은 근대 철학의 '극한'이요 '한계 지점' 이었습니다. 이로써 근대적 문

제 설정은 해체되며 근대 철학의 '위기'라는 사태가 초래됩니다. 그래서 그 이후의 대다수

철학자가 이 위기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노력을 하게 되고 이런 노력이 근대

철학을 새롭게 발전시키게 됩니다.

어쨌든 흄의 주장은 모든 것을 의심하는, 급기야 '생각하는 나' (정신, 주체)까지도 의심하

는 극단적인 회의주의였습니다. 이 같은 흄의 회의주의는 '한계선에 선 근대 철학'의 다른

이름이었고, 그러한 의미에서 흄은 근대 철학의 '한계인'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근대적 문제 설정의 한계 '안에' 있었습니다. 처음에 본 것처럼, 그는

인간에 대한 과학을 구성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고, 참된 지식, 확실한 지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엄밀하게 검토하다 보니, 인과적인 과학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었

지요. 그런 점에서 흄의 문제 설정 자체는 근대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 흄은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에서 출발했고,

유명론적 사고의 해체 효과를 그 내부에서 최대한 작동시켰으며, 그 결과 근대 철학의 한계

선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 한계선이란 출발점과 이어져 있는 것인데, 결국은 원을 한 바퀴

그리면서 출발점에 다시 도착한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서 출발점 자체를 근대 철학의 내부

에서 해체해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근대의 한계 안에 있던 흄으로서는 자신이 드러낸 근대 철학 자체의 근본적 딜레

마 앞에서 당혹해하고 난감해합니다. <인성론>의 결론에서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앞

에 놓여 있는 선택지는 잘못된 이성, 아니면 무이성뿐이다. 나로서는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일반적인 이성이 할 수 있는, 즉 이러한 난관이 거의,

아니 전혀 주목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두 페이지쯤

뒤에서 "인간의 동일성, 나라는 주체의 동일성에 대한 견해를 엄밀히 검토한 결과, 나는 완

전히 미궁에 빠져서 어떻게 그 견해들을 수정해야 할지 또 어떻게 그것들을 일관되게 만들

수 있을지 솔직히 알 수 없다"고 하면서 책을 끝내고 있습니다.

 

탈출도 귀환도 아닌

흄이 수행한 근대 철학의 해체는 분명 근대적 문제 설정의 경계 내부에 있는 것이었습니

. 그렇지만 그가 단지 그 안에만 머물러 있었다는 게 정확한 평가는 아닐 것 같습니다.

로 그는 그 경계선 밖으로 넘어갑니다. 여기서 두드러진 것은 '믿음'에 대한 이론입니다.

에게 인과관계는 습관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인상이나 관념을 결합하여 어떤 지식

을 형성합니다. 이 지식은 '법칙'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즉 참된 지식, 진리 대신에 믿음이

란 개념이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는 믿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현재의 인상과 관련이 있는, 혹은 그 인상들이 결합하고

연합해 있는 생생한(살아 있는) 원리"라고 말입니다. 믿음은 힘을 가지며 생생하게 살아 있

어서 그것을 믿는 사람에게 실제적인 효과를 갖습니다. 또한 그것은 견고하고 확실하고 안

정감이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 개개인에게 확실한 지식이라는 ''을 주고 그것에 입

각해서 행동하게 만든다고 합니다. 흄에 따르면 믿음은 '허구'와 다르며, 심지어 허구가 아

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믿음과 허구는 어떻게 다를까요? 두 가지 점에서 다르다고 합니다.

첫째로 '느낌이 다르다', 둘째로 '파악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느낌이 다르다는 것

, '확실하고 안정감이 있다' 혹은 '옳다'고 느끼는 것이 믿음이 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믿

음이 못 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두 사람이 <레 미제라블>을 읽는다고 합시다. 한 사람은

돈키호테 같아서 거기 나오는 얘기를 역사적 사실로 읽었다고 합시다. 다른 한 사람은 단지

소설 속의 얘기로만 읽었고 말입니다.

그 사람들은 동일한 순서(책에 나와 있는 순서)로 동일한 '관념'을 얻게 되지만, 그 얘기

를 역사적 사실로 믿은 사람은 이것을 참이다, 실제로 있었다고 생각할 것이고, 거기서 시사

하는 가치가 있다면 그것을 믿고 따를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허구)로 읽은 사람은 '이럴 수

도 있지'라는 식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 경우 하나의 소설이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영

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상이한 '효과'를 갖는 것이지요.

여기서 이러한 개념이 매우 불충분하고 모호하다는 것을 물고 늘어지지는 맙시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흄이 믿음의 개념이 갖는 영향력의 문제, 효과의 문제를 포착하려 한다는 점입

니다.

근대 철학에서 믿음을 다루는 전형적인 방식은 그것을 허구, 허위, 비진리로 다루는 것입

니다. 데카르트가 그랬듯이, 믿음이란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을 가로막는 장애물일 뿐입니

. 그것은 넘어서야 할 허구의 세계일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에 대한 흄의 견해는 그것을

다루는 극히 새로운 사고법을 보여 줍니다. 흄은 어떤 지식이 진리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게

아니라-이것은 근대적인 물음이지요-이 지식이 그걸 믿는 사람에게 어떤 효과를 갖는가를

질문하는 것입니다. 즉 진리의 문제 설정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당연해 보입니다. 왜냐하면 흄이 보기에 진리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에서 믿음에 대한 흄의 논의는 참된 지식의 가능성을 검토하는 것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에 대한 철저한 해체에 이르러 얻은 새로운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진리)

아니지만 사람들이 참으로 믿고 있는 그러한 관념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그것이

어떻게 작용하는가라는, 결코 근대적이지 않은 질문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흄은 이제 근대적

한계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 멈추고 다시 근대 안으로 회귀합니다. 앞서 그가 난감해하는 모습도

보았지만, 여기서도 그는 "믿음이고 추론이고 다 거부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진리

를 찾아야 하는데 결국은 '진리는 없다'라고 판단했던 셈이고, 진리를 찾고 싶은데 진리가

아닌 것만 있다는 이야기밖에 못 했으니 이런 논의를 자기는 다 거부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결국 그는 근대의 외부로 나가자마자 다시 내부로 회귀하고 마는 것입니다.

 

4.근대 철학의 위기

유명론과 경험론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로크, 버클리, 흄의 사상을 유명론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결론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유명론은 로크에 의해 근대적인 문제 설정으로 포섭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것이 가

지고 있었던 반관념론적인 성격은 근대 철학 내부에서 딜레마를 드러내고, 결국 그것을 극

한으로 밀고 가게 됩니다. 버클리와 흄의 작업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유명

론은 관념론 혹은 회의주의로 전환되었지요. 경험적 지식에 대한 신뢰에서 출발한 경험주의

는 그 반대물로, 즉 경험이라는 것은 도대체 믿을 수 없고 진리를 형성할 수 없다는 반대물

로 전화되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함으로써 근대 철학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회의주의

는 극한에선 근대 철학, 극한에 선 유명론의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아까 흄은 근대의 한계선에, 그 경계선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근대적인 문제

설정 안에서 유명론적 관점을 극한까지 밀고 나감으로써 근대적 문제 설정의 끝에 도달합니

. 그런데 그곳은 바로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었습니다. 흄은 거기서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

결코 자명하거나 확실한 게 아니라 취약하고 불확실하다는 것을 절감하면서 이것을 폭발적

으로 드러냅니다. 그리고 거기서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라는 개념, 진리라는 개념을

해체해 버립니다. 이로써 근대 철학 전반의 기초를 뒤흔드는 위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흄 자

신조차 그로 인해 당황하게 되고 난감하게 되는 이 위기가 이후 근대 철학을 규정합니다.

스피노자와는 달리 흄이 근대 철학의 위기를 야기했으며,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쉽사리

그가 제기한 문제와 대결하게 만들었던 것은, 흄이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에서 출발했고 여

전히 그 안에 머물면서 근대 철학의 딜레마를 드러내는 곳에서 멈추어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스피노자는 근대적인 문제 설정 자체를 비껴 가고 애초부터 그 외부에 섰기 때문에 대

다수의 근대 철학자들로부터 이해받지 못했고, 외면당했던 것입니다.

셋째, 흄은 주체를 관념의 다발로 보며, 그 다발이 믿음을 형성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믿음은 그걸 믿는 '주체에겐 생생하고 안정적인 사실로 간주되며, 따라서 그에게 실질적

인 효과를 갖습니다. 이는 지식이나 관념을 다루는 근대적인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습니

. 이는 개인들의 사고와 행동을 규정하는 표상체계(예컨대 이데올로기나 담론)의 이론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요소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흄에게 믿음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일 따름이었습니다. 이 믿음이 어떠한 사회

역사적 조건에서 형성되며,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개인들을 포섭하고 움직이는가를 사고하

기에는 흄의 탈근대적 요소는 너무나 미약했습니다. 믿음을 형성하는 사회 역사적 조건에

대한 이론 역시 아직은 사고하기 힘들었음은 물론입니다.

반면 믿음을 주체인 개인이 갖고 있는 관념이라고 본 점에서 그는 여전히 근대 철학의 내

부에 머물고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결국 흄이 근대 철학의 외부로 나가면서 찾아냈던 탈

근대적 요소는 근대적 문제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개인들이 가진 관념에 머물고 마

는 것입니다.

 

3. 독일의 고전철학-근대 철학의 재건과 발전 1.칸트-근대 철학의 재건

근대 철학의 위기와 칸트 철학

앞서 말했듯이 '근대 철학의 비조'라는, 지금까지도 데카르트가 누리고 있는 이 영광은 신

학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 신의 지배 아래 있던 인간을 신학과 신으로부터 독립시킴으로써

근대적 사고를 가능케하는 근대적 문제 설정의 기초를 세우고 방향을 제시했다는 공적에 기

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카르트로선 자명하고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생각하는 나', 인식

주체가 매우 불확실하며, 진리 역시 극히 취약한 기초를 갖고 있음이 흄으로 인해 드러났습

니다. 진리는커녕 인과법칙조차도 있다고 할 수 없으며, 주체가 있는 게 아니라 다만 지각의

묶음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데카르트가 마련한 근대 철학의 전제가, 그 출발점과 목표가 붕괴된 것을 의미하며,

따라서 근대적 문제 설정 자체가 위기에 처하게 되었음을 뜻한다는 것은 앞서 말했습니다.

칸트가 자기의 철학적 작업을 시작하는 곳은 바로 이 붕괴와 해체의 지점입니다.

애초에 칸트가 발을 딛고 있던 곳은 이성주의 철학이었습니다. 즉 이성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칸트는 주체 자체가

이성의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며, 그것은 진리에 이르기에는 지극히 취약한 기초라는 흄의

비판을 받아들입니다. 그는 "흄의 비판을 통해 독단주의의 잠에서 깨어났다"고 말합니다.

시 말해 자명한 것으로 가정된 '주체'라는 출발점이나,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주체'의 능

력이 사실은 근거 없는 독단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칸트는 처음부터 질문을 다시 던져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한마디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합니다. 즉 인간-이전에는 '주체'라고 했는

, 칸트는 '인간'이라고 표현합니다-에 대해,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해서 다루

고 있는 게 <순수이성 비판>입니다. 둘째 질문인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인간의

행동, 당위, 도덕 등의 문제인데, 이것을 다루고 있는 게 <실천이성 비판>이지요. 셋째 질문

'인간이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 인간의 목적 개념에 대한 질문인데, 이것을 다루고 있는

것이 <판단력 비판>입니다.

결국 이 세 가지 질문은 인식-행동-목적이라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세 가지 활동이 이성

에 의해, 즉 인간이란 주체 자신에 의해 근거 지어질 수 있는가를 다시 묻는 것이었습니다.

칸트는 이렇게 함으로써 '주체'라는 지반에 새로이 기초공사를 하려고 합니다. 근대적 문제

설정에서 보건대, 주체가, 신에게서 독립한 '인간'이 진리를 인식할 수 없다면 '철학'이나

과학은 불가능한 것이었지요.

따라서 동요하고 깨져 버린 주체를 어떻게 위기에서 구해 낼 것인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된 참된 지식, 진리를 어떻게 새로운 기초 위에 올려 놓을 것인가 하는 문제가 근대 철학자

칸트가 보기엔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였던 것입니다. 근대적 주체로서 인간과 진리를

확고하게 재건함으로써 근대적 사고의 기반을 다시 다지고 근대 철학을 위기에서 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제 칸트는 주체가 출발점이 될 자격이 있는지, 자격이 있으면 무엇 때문인지, 주체가 참

된 지식에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연구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 칸트는 주체를, 이성을

피고로서 법정에 세워 보자고 합니다. 그래서 그 피고인 이성이 무엇을 알 수 있는지, 어디

까지 알 수 있는지, 나아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고 합니다. 이것이 칸트의 '

성 비판'이라는 계획입니다.

이것은 흄이 극한적 형태로 제기했던 문제를 다시 근대적 틍 안으로 끌어들이면서 근대적

으로 재배치하려 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칸트는 근대적 문제 설정을 '진리를 인식

할 수 있는 주체가 어떻게 가능한가'란 질문을 통해 다른 형태로 전환하려는 것입니다.

카르트가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고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들을, 그게 어째서 출발점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연구하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칸트는 경험들, 지각경험들, 이러한 것들의 선

험적 기초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선험적 주체'가 무엇인지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확실한 주체를 재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칸트의 이 계획 속에서 주체(인간)는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중심의 자

라로 복귀하게 됩니다. 이것이 칸트 철학이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철학

사에서 칸트가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는 이처럼 '근대 철학의 위기'속에서 이해될 수 있습

니다. 즉 그는 위기에 처한 근대 철학을 구해 낸 튼튼한 기초 위에 재건함으로써 근대적인

사고의 기반을 확고하게 했던 것입니다.

 

근대적 문제 설정의 재건

그러면 이제 칸트가 어떤 식으로 근대 철학의 기포를 재건하는지 살펴봅시다. 크게 세 가

지로 나누어 얘기하는 게 유용할 것 같습니다.

1) 진리 개념의 전환과 재건

아시다시피 흄은 귀납론과 인과법칙을 부정했습니다. 즉 귀납론을 빌려 "이제까지 본 모

든 까마귀가 다 까맸다. 따라서 모든 까마귀는 까맣다"고 한다 합시다. 그러나 이후에 갈색

까마귀나 회색 까마귀가 안 나온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고, 혹시라도 그런 까마귀가 한 마리

라도 발견되는 날이면, 앞서 한 말은 거짓이 됩니다. 또 인과관계란 관찰한 사람이 갖는 습

관적인 추론이라고 했지요. 이렇게 되면 경험적 지식은 어떤 확실한 지식, 참된 지식을 줄

수 없습니다. 즉 진리는 경험을 통해 얻어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게 칸트가 받아들인 흄의

비관적인 결론이었지요.

또한 칸트는 '()물 자체(Ding an sich)''현상'을 구별합니다. 반점이 찍힌 거울에는

산소 같은 여자를 비추어도 곰보처럼 보입니다. 뭐든지 찌그러져 보이게 비추는 거울에는

늘씬한 슈퍼모델을 비추어도 숏다리 뚱보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사물을 눈이나 귀 같은 감

각기관을 통해 받아들이는데, 이 감각기관이 우리 인식에서 일종의 거울 같은 역할을 하지

. 우리는 이 거울을 통해 사물을 인식합니다. 이 거울에 비친 사물의 모습을 칸트는 '현상

'이라 하고, 거울에 비추기 전의 사물을 '사물 자체(물 자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감각기관도 마찬가집니다. 그것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기관인지 구

부려 비추는 기관인지 우리 자신은 알 수 없습니다. 마치 거울이 자신이 어떤 식으로 비추

는지 알지 못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사물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 눈에 비친 대로지요.

현상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눈에 비치지 않은 사물을, 즉 사물 자체를 안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 눈에 비치지 않은 것을 본다는 말처럼 형용모순(어불성설)이라는 겁니다.

칸트는 사물 자체를 인식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 사물 자체와 일치하는 지식이라고 한다면 진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와 유사한 어려움은 버클리나 흄 또한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근대 철학의 목표가 와해되어 버린 것이지요.

따라서 칸트는 진리라는 개념을 이렇게 두었다간 '진리'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진리의 개념을 아예 다른 식으로 정의할 수는 없을까?

이 질문을 통해 칸트는 진리를 재건하려고 합니다. 칸트가 보기에 이제까지 진리를 대상에

서 구하려는 노력은 방금 말한 것처럼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의 눈이 사물 자체를

비출 수 없는데, 대체 사물 자체의 법칙을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그러나 어차피 알 수 없는

게 사물 자체라면, 아무리 날고 뛴들 사물 자체에 대한 지식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지

식은 모두 '현상'에 대한 것이지요. 즉 인식대상은 현상이고, 이는 인식하는 주체가 만드는

것이란 겁니다.

한마디로 원래는 어떤지 모르지만 모든 이의 눈에 '곰보'처럼 비친다면 그게 곧 참일 거

라는 거지요.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 눈에 비친 '곰보''사물 자체'와 일치하냐 아니냐를

두고 고민할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그걸 '곰보'로 판단하게 하는 방식(이를 '판단형식'

라고 합니다)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즉 진리를 대상에서 찾을 게 아니라 대상을 만

드는 우리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거지요.

이처럼 대상이 인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인식이 대상을 만든다는 생각, 진리는 대상에서

가 아니라 주관(주체)의 판단형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이전의 생각을 크게 뒤바꿔 놓

은 것입니다. 이를 두고 칸트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는 지구를 우주

의 중심에 두고 태양을 비롯한 모든 별이 그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다가, 코페르니쿠스에 이

르러 우주의 중심은 다른 데(태양)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던 것인데, 칸트는

자기가 행한 발상의 전환을 여기에다 비유한 것입니다.

칸트 철학에 단골로 등장하는 '선험적 종합판단'이니 '아 프리오리(a priori, 선천적)'니 하

는 말들이 중요한 건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선험적'이란 말은 '경험적'이란 말과 대칭

됩니다. '경험적인 것'이란 인간이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 '선험적인 것'

이란 경험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모든 미인은 예쁘다"가 그렇습니다.

'분석판단'은 주어에 이미 술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모든 미인은 예쁘다"라는 명

제는 분석판단입니다. 왜냐하면 '미인'이란 주어에 이미 '예쁘다'라는 술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종합판단'은 주어에 술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미

인은 키가 크다"는 명제가 그렇습니다. '미인'이란 주어를 아무리 분석해도 '키가 크다'라는

건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여기서도 보듯이 분석판단은 선험적입니다. '미인'이란 주어에 이미 '예쁘다'라는 술어가

포함되어 있으니,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거지요. 따라서 이는 언제나 타당하고 확실합

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 아무런 지식도 추가해 주지 않지요. '미인은 예쁜 여자다'라고 정의

해 놓고는 "모든 미인은 예쁘다"락 하는 것이니, 대체 뭐 새로운 게 있겠습니까? 이런 걸

흔히 '동어반복(tautology)'이라고 하지요.

반면 종합판단 대개 경험적이고 후천적입니다. 미인들을 많이 보지 않고서는 '모든 미인

은 키가 크다'고 할 순 없는 일이니 말입니다. 주어에 없는 걸 얘기하려면 대개 경험을 통

해야 하지요. 따라서 주어에 없는 지식을 우리에게 추가해 주지요. 대신 언제나 타당하지도,

확실하지도 않습니다. 미인이지만 키가 작은 여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에게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면서도 언제나 확실하고 타당한 판단은 없을까?

이게 바로 칸트가 고민한 핵심 질문입니다. 즉 선험적 명제처럼 언제나 확실하고, 종합판단

처럼 새로운 걸 추가해 주는 판단은 있을 수 없는가? 이걸 칸트는 "선험적 종합판단은 가능

한가"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가 내린 대답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180도다"라는 판단이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명제는 유클리드 기하학에선 언제나 타당하지요. 삼각형을 많이 그려 보고 각을 재 보지 않

아도 이 명제는 언제나 타당합니다. 그런데 삼각형이란 주어를 분석한다고 '내각의 합이

180'라는 결론은 나오지 않습니다. 즉 이 명제는 우리에게 삼각형의 성질에 대해서, '삼각

'이란 주어에는 없는 내용을 새로이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종합판단이지요.

이 같은 선험적 종합판단이야말로 인간이 진리에 도달하게 해주는 판단형식이라고 합니

. 즉 진리를 밖에서 찾는 게 아니라, 언제나 올바르면서도 새로운 지식을 추가해 주는 판

단형식에서, 즉 선험적 종합판단에서 찾는 겁니다. 이것이 발상의 전환을 통해 칸트가 새로

얻은, 진리에 이르는 길입니다. 이로써 흄이 철저히 해체했던 진리의 개념을 새로이 재건하

는 것입니다.

2) 근대적 주체의 재건

근대 철학의 확실한 기초이자 출발점이었던 주체는 흄의 비판을 통해 '지각의 다발' '

념의 다발'로 해체되어 버렸습니다. 진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에 더해 이젠 아예 인식하는 주

체조차 불가능하다는, 극히 부담스런 결론에서 칸트는 시작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어디든 찾

는 자에겐 길이 있기 마련입니다. 칸트는 죽음 직전의 위기에서 근대적 '주체'를 살려 냅니

. 어떻게 살려 낼까요? 칸트가 보기에 인간의 인식은 경험과 더불어 시작됩니다. 물론 흄

이 지적한 것처럼 경험적 인식은 매우 불확실해서 진리가 되기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

데 누구나 경험을 통해 인식한다면 인간이 동일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건 무엇

일까요? 약간 어려우니 돌아갑시다. 비유해서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선

누구나 물건을 갖고 싶으면 살 수 있습니다. 경험이 다양하듯이 우리가 살 수 있는 물건도

다양합니다. 그러나 물건을 사는 사람이면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있습니다. 한마디로 돈

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건 누가 무엇을 사든 꼭 필요한 겁니다.

경험도 그렇습니다. 눈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귀가 없으면 듣지 못하듯이 ~이 없으면 경

험이 불가능한 게 있습니다. ~에 무엇이 들어가야 합니다? 이게 칸트가 낸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데카르트라면 쉽게 대답했을 것입니다. '주체'라고요. 즉 주체가 없으면 어떤 경

험도 불가능하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흄의 말대로 이 '주체'란 여러 가지 관념과 감각 등으

로 이루어진 복합체입니다. 여기에 항구적이고 항상적인 게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라서 칸트는 다르게 대답합니다.

그것은 경험보다 먼저 존재해야 합니다. 물건이야 외상으로 사고 돈은 나중에 갚을 수 있

지만, 경험이나 인식에는 외상이 안 통하기 때문이지요.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은 경험이

나 인식에는 외상이 안 통하기 때문이지요. 물건이야 외상으로 사고 돈은 나중에 갚을 수

있지만, 경험이나 인식에는 외상이 안 통하기 때문이지요. 경험을 가능케 하는 조건은 경험

보다 먼저 있어야지요. 이런 걸 칸트는 '선험적 조건'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앞서 본 것처럼

이것은 경험에 좌우되지 않는 확실성을 가져야 합니다. 다음으로 그건 모든 인간들이 반드

시 가져야 하며, 동일한 형태(형식)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달러냐 마르크냐 하는 구별 이전

''이라는 공통된 형식을 말입니다.

, 또 하나, 우리가 어떻게 인식에 이르는지 칸트를 따라가 봅시다. 언덕길에 돈키호테와

그의 종 산초가 있습니다. 언덕빼기에 있는 물체를 바라보며 돈키호테가 외칩니다. "저기 팔

이 넷 달린 거인이 있다!" 그 옆에서 산초가 말합니다. "주인님, 저건 거인이 아니라 풍차인

데요." 두 사람의 판단은 이처럼 크게 다를 수 있습니다. 칸트 용어로 말하면 '현상'은 이

처럼 다르게 경험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키호테나 산초가 각자 인식을 하려면 일단 감각

기관을 통해 언덕빼기의 물체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커다란 몸집에 팔 네 개가 돌아가는 물

체를 말입니다. 이처럼 대상(물체)를 받아들이는 기관을 칸트는 '감성(Sinnlichkeit)'이라고

합니다. 어떤 인식도 감성을 통해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대상을 받아들이는 데는 반드시 필요한 게 있다고 합니다. 풍차든 거인이

'있다'는 건 반드시 어딘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즉 거인이 있는지 없는

, 그게 거인인지 풍차인지를 '공간' 안에서 감지하는 거지요. 공간이라는 형식이 없다면,

저게 무언지를 떠나,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없지요. 또한 공간은 보거나 듣는 게 아니며,

따라서 경험되는 게 아닙니다. 반면 보거나 듣거나 느끼는 경험이 가능하려면 공간이 꼭 있

어야 하며,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합니다. 이래서 칸트는 '공간'이란 감성을 통해 대상을 받

아들이는 데 필수적이며 모든 인간이 경험보다 앞서 가지고 있는 형식이라고 합니다. 이걸

칸트식으로 표현하면 '선험적 감성형식'이라고 하지요.

'시간'도 마찬가집니다. 거인이나 풍차가 '있다' '없다'는 건 어느 시점에 있다 없다지요.

즉 시간이 없다면 있다 없다를 지각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이것 역시 경험보다 선행하며 경

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감성의 형식이지요. 이래서 칸트는 시간과 공간은 경험에 선행하며

모든 인간의 인식에 필수적인, 그리고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감성' 수준에서, 앞의 ~에 들어갈 말이 바로 시간과 공간이라는 '선험적 감성형식'이지요.

다음, 감성을 통해 받아들인 물체가 하나인지 둘인지, 큰 건지 작은 건지, 또 언제나 팔이

돌고 있는 건지 아니면 우연히 돌게 된 건지를 판단하게 됩니다. 바람이 불어서 팔이 도는

건지, 아니면 팔을 돌려서 바람을 일으키는 건지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물체를 죽이는

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도 판단합니다. 이처럼 받아들인 물체를 분별해내고 그 물체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을 하는 기관을 칸트는 '오성(Verstand)'이라고 합니다.

딸기가 수박보다 작다는 판단이 가능하려면 '크다' '작다'라는 범주가 먼저 있어야 합니

. 나무를 비비면 불이 난다는 판단이 가능하려면 그런 경우를 많이 경험해야 하지만, 그것

만으론 부족합니다. '나무를 비빈다'는 경험과 '불이 난다'는 경험을 결합해서 "나무를 비비

면 불이 난다"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두 현상(경험)의 관계가 필연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필연성/우연성'이란 범주가 바로 이 경우에 필요합니다.

'오성'이란 분별하는 능력(분별력)입니다. 즉 크다 작다, 하나다 다수다, 필연적이다 우연

적이다 등의 범주를 통해 대상의 성질을 구별해내고 그것들을 결합해서 "나무를 비비면 불

이 난다"는 판단을 만들어 내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이런 능력이 활동할 수 있으려면, 그래

서 경험에서 어떤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으려면, 최소한 범주가 있어야 한다는 게 칸트의

생각입니다. 이 범주가 없다면 사물을 비교하는 것도, 사물들의 연관(필연적이다 우연적이다

등등)을 찾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따라서 '범주'는 경험보다 먼저 있어야 하며,

경험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경험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판단하는 데 필수적인 최소

한의 범주를 칸트는 12개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습니다(다음 절 참조).

바로 이 범주로 인해 인간은 법칙을 인식하고 사물들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합니

. 이것은 언제나 있는 것이며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공통되기 때문에 인간은

공통된 판단, 공통된 인식에 도달할 수 있으며 이로 인해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합니다.

래서 칸트는 범주를 '선험적인 오성형식'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오성의 수준에서는 범주야말

~에 들어갈 말인 셈입니다.

감성만으로는 느낄 순 있어도 판단할 순 없습니다. 오성만으로는 인식할 자료가 없기 때

문에 느끼지도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이래서 칸트는 "오성 없는 감성은 맹목적이고, 감성

없는 오성은 공허하다"고 말합니다. 즉 감성과 오성이 결합해야 인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인식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감성을 통해 시작한 인식은 오성을 통해 '이성'

다다릅니다. 이때 이성은 인간의 이성이란 말이나 이성주의라는 말과는 달리 '하나의 원리

로 통일하는 능력'이란 뜻을 갖습니다. 이는 칸트만의 고유한 개념입니다.

이성은 경험을 넘어서, 하나의 원리로 다양한 경험들을 통일하여 파악하려는 욕구를 갖고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근본적인 데까지 밀고 나가는 성질'을 갖고 있는 겁니다. 예컨대 인

간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으려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았다는 것만으론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누가 낳았고, 그들은 또 누가 낳았고... 결국 근본

적으로 모든 인간을 낳은 궁극적인 원인이나 ''이란 존재를 통해 다양한 모든 것을 낳은

원인을 만들어 낸다는 거지요. 생명의 신비함과 소중함을 깨달은 사람은 나무나 돌뿐 아니

라 세상 모든 것에 생명이 있다는 식으로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을 확대하고, 그것을

통해 모든 것을 통일적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이게 바로 '이성'이 하는 일이지요.

그런데 언제나 끝을 탖아 나서다 보면 사고가 나게 마련이지요. 이성 역시 그렇습니다. '

원인'이든 '생명'이든, 하나의 원리로 모든 것 통일하려다 보니 당연히 경험하지 못한 데까

지 나아갑니다. 경험하지 못한 것을 둑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 하니 서로 상충되는 주장이

나타나며, 양쪽 다 옳다고 증명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예를 들면 "시간과 공간은 끝이 있다""끝이 없다"는 두 개의 주장이 다 증명될 수 있

습니다. 어디선가 시작한 시점이 없다면 시간을 말하고 시간을 재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습

니까? 따라서 시간에는 시작하는 점()이 있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 어디엔가 시

간이 시작하는 점이 있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시점 이전에는 시간이 없다고 할 수 있겠습

니까? 시간 이전에 시간과 다른 어떤 것이 시간 대신 있었다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따라서

그 시점 이전에도 시간은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시간은 끝이 없다고 하는 것도 옳은 것으

로 증명됩니다.

이처럼 서로 상반되는 주장이 둘 다 옳다고 증명되는 경우를 칸트는 '이율배반'이라고 합

니다. 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이율배반의 예를 여러 가지 들고 있는데, 예컨대 물질의

더 쪼갤 수 없는 작은 단위는 있다/없다 등이 그것입니다. 이처럼 이성이 이율배반에 빠지

는 것은 이성이 경험을 넘어서 하나의 원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점에서 이는 인간 이성(넓은 의미)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어떤 경험이나 인식도 피해갈 수 없으며, 또한 확

실하고 선험적이라는 미덕을 갖고 있는 것들을 찾아낸 셈입니다. 선험적 감성, 선험적 오성

이 그것인데, 이런 능력을 합해서 '선험적 주체'라고 부릅니다. 이는 관념이나 감각의 다발

에 불과한 경험적 주체와 달리, 모든 주체에 공통되며, 경험이나 감각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좌우하며, 확실하고 항구적이라는 특징을 갖습니다. 따라서 그것은 어쩌면 경험적인

개인을 넘어서 있다는 뜻에서 '객관적 주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로써 칸트는 흄에 의해 해체되어 버린 근대적 주체를 '선험적 주체'라는 확고하고 튼틑

한 것으로 되살려 낸 것입니다.

3) 근대적 윤리학의 확립

칸트가 윤리학 혹은 도덕철학의 문제에 대해 논한 책은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실천이성

비판>입니다. 이 책은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대상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칸트가 던지

는 도덕철학의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의 의지(와 행동)는 이성

의 힘만으로 규제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다른 말로 바꿔 표현하면 인간의 의지와 행동을

규제하는 원리가 인간의 이성 안에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모든 인간이 따라야 할 보편적

인 원리가 있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근대적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간의 이성이 신에

게서 독립해 존재하고 인식하며 행동할 수 있는가가 근대 철학의 독립을 확보하기 위한 질

문이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지를 규제할 보편적인 원리가 이성의 내부에 있다고

하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실천적 자율성이 원리적으로 확보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는 어쩌면 이성이 확보할 수 있는 '최종적' 자율성인지도 모릅니다.

이를 위해 칸트는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보편타당한 윤리 원칙'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유명한 말을 하지요. "너는 언제나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인 입법 원리로서

타당하게 행동하라"고 말입니다. 즉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는 너의 의지가 법으로 제정되어

도 좋을 만큼 보편적인 거라면 그것대로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남이 내게 해주

길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라는 속담과 유사한 말입니다.

이런 원칙에서 칸트는 '자유'의 개념을 새로이 정의합니다. 의지의 자유, 행동의 자유란

다음과 같은 원칙에 따르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해야 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도덕 원칙이란 본질적으로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정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따라 사는 것만이 칸트가 보기에는 올바른 윤리적 삶이고 인간으로서 자신의 자율성과 자존

을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겁니다. 따라서 자유란 '해야 한다'는 원칙, 의무에 따라 사는

것과 동일한 뜻을 갖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 칸트는 선/악의 개념도 이런 관점에서 정의합니다. 그는 흔히 생각하듯이 '선한

'에서 도덕이나 행동의 기준이 나오는 게 아니라, 거꾸로 '' 자체가 도덕 법칙에서,

바른 행동의 기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도덕 법칙을 따르는 것이 ''

라는 겁니다.

이런 점에서 칸트의 윤리학은 극도로 계몽주의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인간 개개인이 갖는

욕망이나 의지는 '보편적인 입법 원리'가 될 수 있는 한에서만 받아들여지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자율성과 자존을 위해 억제되고 통제되어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입법 원

리에서 어긋나는 의지나 욕망, 법에서 벗어나는 행동은 인간의 자율성을 포기한, 한마디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것인 셈입니다. 따라서 그런 원리에 따르도록 훈련되지 못한 대중은 일

깨워지고 계몽되어 이 도덕적 원리를 충실히 따르는 인간으로 새로이 '갱생'해야 하는 것입

니다. 계몽주의 시기의 도덕철학은 이런 실질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던 셈입니다.

보시다시피 칸트의 도덕철학에서 두드러진 것은 ''적인 개념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보편

적인 도덕 원칙도 입법 원리로 정의되었고, 자유나 선 역시 도덕 법칙에 의해 정의되었습니

. 이는 공화주의자로서 프랑스혁명에 의해 고무되었던 칸트로선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혈연과 무력, 종교가 지배하던 중세와 달리 법을 통해 지배를 확립하려고 했던 부르주

아지의 관점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은 어떻게 될까요? 칸트는 <순수이성 비판>에서 신을 증명하려 한 기

존의 모든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고, 진리를 추구하는 순수이성의 영역에서 신은 증명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로써 칸트는 데카르트도 쫓아내지 못했던 신을 이론적인 이성의 영역에

서 쫓아냅니다.

실천적인 이성의 영역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리를 보편적인 도덕원칙이 차지함으로써 신

이 개념적으로 들어설 자리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을 보편적으로 가치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데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도덕철학적인 필요에 의해 실천

이성이 신의 존재를 '요청'한다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도덕 행위란 신에 대한 실천적 긍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의 존재가 실천이성의 요청에 의한 것이란 점입니다. 즉 이

성의 필요에 의해 신의 존재가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이성이란 신의 피조물이요 그것을 인

식하는 수단이었던 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전환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과감하게 말하자

, 신이 이제 이성의 필요에 의해 존재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신이 이제는 이성에 의해 포

섭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종교 자체가 근대적인 윤리학을 위해 봉사하는 도덕철학이 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근대적 윤리학을 확립한 사람이요 완성한 사람임에 틀림없으

, 칸트 철학은 '근대 철학의 승리'를 선언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새로운 난점들-영광의 그늘

칸트는 흄에 의해 전면화된 근대 철학의 위기 속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는 위기 속에서 붕

괴된 근대 철학의 지반을 복구하려고 했습니다. 그것은 근대적 문제 설정을 형성하고 유지

하는 기둥으로서 '진리''주체'를 새로운 형태로 재구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한 칸트의 전략을 크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진리의 주관화입니

. 즉 진리를 외부의 사물이나 대상에서 찾을 게 아니라 주체 내부에서 찾자는 것이지요.

둘째는 주체(주관)의 객관화입니다. 즉 모든 주체가 선험적으로 갖고 있으며, 경험이나 인식

의 기초가 되는 필수적인 형식을 주체 내부에서 찾아냄으로써 그것이 모든 주체에 공통된

것임을, 따라서 객관적인 것임을 보여 주려고 했습니다.

이 두 과정의 복합으로 인해 진리는 주관화되면서 동시에 주관적인 데 머물지 않을 수 있

었습니다. 이는 어떤 의미에선 주간가 객관, 주체와 대상의 통일을 이루기 위한 칸트적 길이

었던 셈입니다. 어쨌거나 칸트는 이런 방식으로 주체와 진리를 되살려 내는 데 성공했습니

. 이로써 근대 철학의 위기를 극복하고, 근대 철학으로 확고한 지반 위에서 새로이 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칸트 철학이 철학사에서 '영광'을 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로써 칸트 철학은 근대적 문제 설정의 딜레마를 해소하고 위기의 요인을 근본적으로 제

거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어렵고 뿌리깊은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해결은 새로운 방식으로 훨씬 어렵고 뿌리깊은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해결은 새로운 방식으

로 문제를 생성하거나 '전이'합니다. 칸트 철학 자체에 이미 새로운 위기의 요소들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앞서처럼 세 가지 차원에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진리에 관한 문제입니다. 이는 진리를 주관화하는 전략과 관련된 것입니다. 칸트는

현상이란 우리가 지각하고 인식한 것이고, 따라서 주관 안에 있는 것이라고 하지요. 대신 주

관 밖에는 '사물 자체'를 남겨 두고 말입니다. 사물 자체는 알 수 없는 것으로 남겨 두고,

우리의 인식을, 진리를 단지 현상에 관련된 것으로 제한합니다.

그럼 우리가 인식하는 '현상''사물 자체'는 어떤 관계를 가질까요? 물론 칸트는 그건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이게 바로 근대 철학의 딜레마지요). 따라서 현상에 대한 지식은 사

물 자체와 어떤 연관을 갖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진리란 오직 주관의 형식으로만 정의됩니

. 그렇다면 우리가 진리라고 간주하는 지식(예컨대 선험적 종합판단)은 어떻게 정당화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경험하기 이전부터 '누구든 오인하는' 선험적 허위, 선험적 허구일 가

능성은 없을까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선험적 허위'라며 그것 역시 진리로 간주되어도

좋을까요? 그건 마치 고대에는 모든 사람이 해가 도는 것을 옳다고 생각했으니 천동설이

진리라고 말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을까요? 이 문제에 적절한 예를 우리는 앞서 본 칸트의

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삼각형의 세 내각의 합은 180도라는 명제가 그렇습니다.

이건 칸트에 따르면 선험적 종합판단입니다. 즉 선험적으로 타당한 진리입니다. 그러나 지구

위에서 그려지는 어떤 삼각형도 세 내각의 합은 180도보다 큽니다. 지구의를 생각해 봅시다.

여기 적도와 두 개의 경선으로 이루어진 삼각형이 있습니다. 적도와 경도는 직각으로 만나

지요? 그렇다면 삼각형의 내강의 합은 180(90+90)보다 북극에서 만나는 각만큼 큽니

. 따라서 칸트가 선험적 진리라고 생각했던 명제가 사실은 지구 위에선 맞지 않는 거짓인

것입니다.

예전에는 주체와 대상 간에 일치를 확인할 수 없다는 문제로 인해 진리의 개념이 딜레마

에 빠지고 위기에 처했다면, 이제는 사물 자체와 현상, 사물 자체와 선험적 주체 사이에서

또다시 딜레마에 빠지고 위기에 처하는 것입니다.

둘째, 선험적 주체에 관한 문제입니다. 흔히 지적되는 순수이성의 추상성이나 비역사성은

일단 그냥 넘어갑시다(이는 피히테 J.G.Frichte나 헤겔, 뒤에는 딜타이 W.Dilthey 등에 의해

집중적으로 지적됩니다). 근본적인 난점은 '선험적 형식' 자체에 있습니다.

먼저 오성의 선험적 형식인 '범주'를 봅시다. 칸트의 12개 범주는 사실 아리스토텔레스의

12범주를 약간 변형한 것인데, 여기서도 보이듯 선험적 형식인 범주를 철학자마다 다르게

설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범주가 모든 판단의 전제가 되는 '선험적 형식'

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범주 이전에 범주를 나누는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며, 그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는 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에 따라 칸트와 아리

스토텔레스의 범주는 다르게 설정된 것이라고 해야지요.

다음으로 선험적 감성형식인 '시간과 공간'입니다. 사실 칸트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건 뉴턴의 물리학 덕분이었습니다. 칸트의 철학은 뉴턴의 물리학에 기초를 두고 있었고,

걸 통해 (물리학을 포함한) 과학의 기초를 확고히 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전에 데카르트가

갈릴레이에 기초를 두고 그것을 확고히 하려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그런데 알다

시피 뉴턴 물리학에서 시간과 공간은 절대시간이요 절대공간입니다. 마치 다양한 물체의 길

이를 재는 자의 눈금처럼 그 자체는 불변적이고 절대적이며, 다른 것의 변화를 재는 기준이

바로 시간과 공간입니다. 그것은 경험에 의해 달라지거나 변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이론은 20세기 들어와서는 유지되지 못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그것을 해체한 장본인인데, 그에 따르면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빨리 운동하는 비행체

안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갑니다. 그래서 그런 우주선을 타고 오랫동안 여행한 비행사는 지

구에 사는 그의 아들보다 젊은 모습으로 우주선에서 내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시간이란 이

처럼 조건에 따라 다르게 '경험되는' 것입니다. 공간도 그렇습니다. 그것은 균질적으로 텅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중력이 강한 곳에서는 구부러져 있다고 합니다. 즉 중력장에 의해 다

르게 만들어지고 '경험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을 선험적 형식이라고 하기는

불가능해집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칸트 사후 100여년이 필요했지만 말입니다. 어쨌거나

근대적 주체에 기초를 둔 칸트의 선험적 주체 역시 또 다른 위기의 요소를 이미 포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셋째, 순수이성과 실천이성의 분리에 따른 문제입니다. 칸트에게 실천적인 판단을 하는 이

성은 이론적인 판단을 하는 이성과 전혀 별개입니다. 심지어 이론적인 이성의 영역에선 신

을 쫓아내도 실천이성의 영역에선 필요에 의해 다시 불러들이기도 할 정도로 따로 놉니다.

여기서 순수이성은 '선험적 형식'이라는 이유로, 진리를 기초짓는 확실한 근거로서 정당화됩

니다. 그러나 실천이성은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다시 말해 '보편 입법의 원리'라는

도덕철학은 무엇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습니까? 여기서 다시 진리를 끌어들일 수는 없습니

. 왜냐하면 실천이성은 순수이성과 전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이고, 칸트에게 행동이나 의

지는 진리와 전혀 별개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보편적 윤리학의 근거는 무엇입니

? 실천이성 자신이 스스로를 근거짓습니다. 바로 여기서 칸트의 비판철학은 '독단론'으로

전환됩니다. 개인들의 의지와 욕망을 오직 보편적 입법 원리에 끼워 맞추려는 독단론이,

유를 해야할 것(의무)에 따르는 것으로 정의하는 독단론이, 그리고 선을 (자신이 설정한)

덕 법칙으로 정의하는 독단론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2.피히테-근대 철학과 자아

자아의 복권

피히테는 오직 12개의 범주만을 가지고 있는 칸트의 선험적 주체가 확실한 만큼이나 공허

하다고 생각하며, 주체(피히테 용어로는 '자아')의 활동과 무관하게 정의되어 있다고 비판합

니다. 오히려 판단의 범주나 원리는 자아(주체) 활동 과정의 산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특

히 그가 주목하는 지점은 칸트 철학의 인식론적 문제점입니다. 그것은 '사물 자체''선험

적 주체'라는 칸트의 개념에 관련된 것입니다.

피히테는 일단 사물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봅니다. 칸트에 따르면 사물 자

체는 '있기는 있으되 인식되지 않는 무엇'입니다. 그러나 사물 자체가 인식되지 않는 무엇이

라면 사물 자체가 있다는 건 어떻게 인식했는가 하고 반문합니다. 무언가가 있는데, 그걸 인

식할 수는 없다는 말은 "맛이 있긴 있는데 맛을 알 수는 없어"라는 말처럼 부당하다는 것입

니다. 즉 인식할 수 없는 것이라면 말을 할 수도 없을 거라는 겁니다.

이로 인해 칸트 체계의 부정합성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체계를 만들어 가는 논리는 서로

배타적인 것을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법인데, 칸트의 경우에는 사물 자체와 현상이라는, 서로

배타적인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부정합성과 모순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나아가 이론적

으로도, 칸트가 해결하려고 했던 진리의 문제를, 다시 말해 대상과 주체의 동일성이란 문제

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봅니다. 사물 자체와 현상 산의 심연은 결코 메워질 수 없기 때문입니

.

다른 한편 선험적 주체의 개념 역시 근본적이지 못하며 불철저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선험적 주체에 대해 무언가 말할 수 있다는 건, 선험적 주체에 대해서 인식하고 판단하며

말하는 또 다른 주체가 먼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선험적 주체에 대해 인식하고

말하는 칸트는 선험적 주체보다 앞선 주체가 됩니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것은 설명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그렇다면 피히테로선 두 가지 문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셈입니다. 하나는 사물 자체와 현

, 대상과 주체를 어떻게 하면 통일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피히테 자신

의 용어를 쓰면 자아와 비아를 어떻게 통일적으로 설명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른 하

나는 선험적 주체보다 더 근본적인 것, 다시 말해 경험적인 조건에 전혀 제약되지 않기에

(무제약적이기에) 설명될 수 없는 '자아'를 어떻게 얘기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피히테는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합니다. 그것은 어찌 보

면 매우 간단합니다. 자아와 비아를, 주체와 대상을 연관짓고 통일하는 원리를 '자아'로서

정립하는 것입니다. 직접적으론 경험되지도 않고 인식되지도 않으나 주체와 대상을 연관지

어 주는 활동, 그리고 그 활동의 결과를 통해서만 스스로를 드러낼 뿐인 이 원리를 피히테

'자아'라고 합니다(이때 '자아'는 비아와 함께 짝을 이루는 자아와 다릅니다. 이는 일종

의 절대자입니다. '자아'를 절대적 자아라고 합시다).

그리고 바로 이 자아의 활동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지식 연구의 핵심이며, 이런 점에서 '

지식학'이란 "자신의 본질적인 통일성 안에서 자기 스스로를 서술하는 지"라고 합니다. 피히

테에게 철학이란 바로 이 '지식학'을 말합니다.

 

피히테의 철학적 테제

피히테의 철학 전체를 특징짓는 세 가지 테제가 있습니다. 그 각각은 테제, 안티테제,

테제란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는 흔히 변증법을 요약할 때 등장하는 단어들이지요. 이 세

개의 테제를 통해 피히테는 지식학을 구성하려고 합니다.

첫째 테제는 "경험 등 모든 사실의 설명에 근거가 되는 이 자아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자아 자신 안에 정립되어 있어야 한다"입니다. 이는 '자아의 정립'이라고 요약됩니다.

피히테에게 '자아'는 모든 정신적 활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절대적인 근거입니다. 경험이나

인식의 절대적인 출발점이자 근거를 이룬다는 점에서 절대적 자아인 거지요. 이러한 절대적

자아가 정립되어 있지 않으면 어떤 인식도 경험도 불가능합니다. 마치 인식하는 내가 없이

는 어떤 인식도 불가능하듯이 말입니다. 이 자아를 존재하게 하는 다른 근거(예를 들면 '

는 생각한다'와 같은)는 필요 없습니다. AA인 것에 다른 이유가 필요 없듯이 말입니다.

단지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합니다. "자아는 존재한다. 그리고 자아는 자신의 단순한 '존재함

'에 의하여 자신의 존재를 정립한다", "나는 존재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셈이

지요. 이 절대적 자아는 연관들을 정립하는 판단작용이며 정신의 활동입니다.

둘째 테제는 "자아는 비아를 반정립한다. 나아가 자아는 비아를 자기 안에서 반정립한다"

입니다. 자아는 비아를 자기와는 대립되는 것으로 세운다(반정립)는 말입니다. 이는 흔히 '

자아의 부정-비아의 정립'이라고 요약합니다. 자아는 정신적 활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활동도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비유하자면, 먹는다는 활동은 음식이란 대상이 있어야

하고, 땅을 파는 활동은 팔 땅이 있어야 하며, 대화라는 활동은 상대가 있어야 합니다. 인식

도 마찬가지지요.

그런데 어떤 대상을 정립하려면 나는 이미 그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게 음식이 되는

지 아닌지, 이게 파야 할 땅인지 아닌지, 이게 내가 말하려는 상대인지 아닌지를 먼저 알아

야 한다는 겁니다. 이를 피히테는 대상이 자아 안에 이미 놓여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는 자아의 부정이라는 성격을 갖기에 '비아'라고 합니다. 즉 자아가 비아를 정립하는 겁니

.

셋째 테제는 "자아는 자아 안에서 가분적 자아에 대해 가분적 자아를 반정립한다"입니다.

좀 어려워 보이지요? 하지만 겁낼 건 없습니다. 애초에 자아는 스스로를 정립했지요? 그리

고 자아는 활동이기 때문에 비아를 자기 안에 정립해야 했고요. 그럼 이제 절대적 자아는

자아와 비아로 나뉘게 되었지요? 애초의 자아는 자아만으로 있었는데, 이제는 자아와 비아

로 나뉘어 존재하게 된 겁니다.

이처럼 나누어질 수 있는 자아(가분적 자아)와 비아가 서로 대립하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

, 먹는 자아와 먹을 음식인 비아가, 말할 자아와 말상대인 비아가 서로 마주 서게 된 것입

니다. 경험하는 의식을 얘기할 수 있는 건 바로 여기서부터지요. 경험이란 경험하는 자아와

그 대상이 있어야 하니 말입니다.

이 세번째 테제는 마주 서 있는(반정립된) 자아와 비아의 종합(Synthese)을 표현합니다.

이 대립에 의해 자아도 비아도 구별을 획득합니다. 자아도 대상(비아)도 이 구별을 통해 내

용을 획득합니다. 활동하는 자아가 먹는 나인지, 땅을 파는 나인지, 아니면 대화하는 나인지

는 이 대립을 통해서 정해지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비아는 대상이 갖는 다양성을 대변합니

. 반대로 자아는 그것들을 하나로 묶어서 나와 관계를 맺게 하기에 통일성을 대변합니다.

결국 피히테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 절대적 자아란 활동을 통해 자아와 비아를 동시에 정립

하는 '자아'입니다. 이런 뜻에서 피히테는 자아와 비아의 종합만이 절대적이라고 하지요.

요약하면, 피히테는 칸트처럼 선험적 철학을 발전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선험적 주체가

아닌 자아에서 출발합니다. 이 자아는 자기 안에 자아를 정립하고, 또한 비아를 정립합니다.

피히테에게 인식의 대상이란 비아일 뿐입니다. 자아 외부에 있는 어떤 것도 그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칸트가 말하는 사물 자체 역시 마찬가집니다. 모든 대상은 자아 안에 있고, 자아

와 통일되어 있습니다. 이 통일만이 절대적이라고 그는 말하지요. 자아는 비아와의 관계 속

에서 정의되는 것이기에 비아에 의해 제약됩니다. 따라서 자아가 사용하는 범주나 원리는

칸트의 생각처럼 초역사적이고 추상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것이 됩니다.

이런 철학적 관점에서 피히테는 자아의 무제한적인 자유를 강조합니다. '자아는 무한을

향한 행동자'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극도로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태도를 보여 줍니

. 그는 도덕적 질서는 완전성을 추구하는 자아의 노력 속에 있으며, 이 도덕적인 질서야말

로 신적인 질서라고 합니다. 칸트가 신적 질서를 도덕적 질서로 환원했다면, 피히테는 다시

도덕적 질서를 자아의 노력으로 환원합니다. 하지만 이런 견해는 자유주의가 갖고 있는 근

본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즉 무한한 자아들이 서로 부딪치고 상충하게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이에 대해 그는 국가주의적인 또는 '사회'주의-오늘날 말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사회'

에 의한 통제의 이념-적인 견해를 제출합니다. 즉 자아들의 상충과 충돌을 방치하는 게 아

니라 전체가 조화로울 수 있도록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그는 심

지어 '개체의 소멸'까지 주장합니다.

 

자아철학의 봉쇄 장치

지금까지 본 것처럼 피히테는 선험적 주체를 발견하려는 칸트의 기획을 좀더 근원으로 밀

고 가려고 했습니다. 즉 선험적 기획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는 칸트의 선험적 자아보다

더 근원적인 무규정적 자아에서 출발합니다. 칸트적인 선험적 주체조차 거기에 의존해야 하

는 자아의 존재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피히테는 근대 철학적 출발점으로 되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있음 그 자체가 '

자명한', 존재로서의 자아로 말입니다. 이 자아가 활동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아는 존재하고

있음이 자명하다고 합니다. "(자아)가 존재하는 것은 활동하기 때문이다(Ich bin, da ich

handle)"라는 것이죠. 비록 이 자아를, 데카르트처럼 사유한다는 사실에서 도출하는 게 아니

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 자아는 주체와 대상을 연관짓는 행동입니다. 즉 주체와 대상을 자기 안에 포괄하고 있

는 전체입니다. 이런 점에서 절대적 자아라고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결국 피히테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자아)'를 절대화하여 절대자의 자리를 부여합니다. 예전에 신이 차

지하고 있던 자리를 이젠 자아가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점에서 보면 피히테는 이 근

대적 자아를 신의 자리로 밀어 올림으로써 칸트에 의해 재건된 근대 철학이 이젠 완전히 승

리를 거두었음을 선언하는 셈입니다. 이로써 근대적 주체철학은 새로이 '자아의 신학'을 구

성하기 시작합니다. 자아라는 절대자를 신의 자리에 옮겨 놓은 학문을 말입니다. 이 신학 안

에서 모든 것은 자아의 소산이며 자아 활동의 결과물입니다. 자아라는 이름의 주체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이래서 피히테의 철학을 흔히 '주관적 관념론'이라

고 합니다.

다른 한편 모든 대상은 자아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자아 내부에 있습니다. 자아에서 벗

어나 있는 사물 자체는 없다고 합니다. 나아가 주체와 대상 모두가 자아 안에 통일되어 있

기 때문에, 주체와 대상의 일치를 어떻게 보증하느냐 하는 문제는 아예 생기지 않는다고 봅

니다. 그건 항상-이미 자아 안에서 통일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피히테에게 이 통일성은 '

대적'입니다.

이로써 사물 자체가 일으키는 난점은 물론, 근대 철학이 언제나 부딪혀야 했던 주체와 대

상의 일치를 어떻게 확인하고 보증할 수 있는가라는 난문은 해소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냐하면 일치는 자아에 의해 처음부터 항상-이미 절대적으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아 안에서 자아에 의해 비아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 비아(대상)를 자아가 올바

로 인식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문제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먹는 활동으로서 '자아'

가 먹는 자아와 먹히는 비아(음식)를 자기 내부에서 반정립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무얼 먹는

지 모르는 경우가 얼마나 허다합니까? 그걸 아무리 '음식'으로서 이미 판단하고 먹기 시작

한다 해도 말입니다. 광인이 똥을 잼(음식)으로 '자기 안에 정립하고' 먹는다 해서 그게 똥

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라고 할 순 없을 테니 말입니다.

나아가 그걸 똥이란 대상으로 정립하는 자아와 잼이란 대상으로 정립하는 자아가 있다면,

이 두 자아 모두가 옳은 것을 인정될 수 있겠습니까? 피히테에 따르면 인정될 수 있다고 해

야 합니다. 하나는 그것 똥이란 대상으로 반정립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것 잼이란 대상으

로 반정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 많은 자아들 모두가 자기의 대상을 반정립하고 그

걸 진리라고 부를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누구는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하

, 누구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하는 게 모두 다 진리가 될 수 있는 혁명적 방법인

셈입니다. 이는 진리를 확인할 수 없다는 근대 철학의 딜레마가 다른 형태로 변형되어 나타

난 것입니다.

그러나 피히테가 진리의 문제를 '절대적으로' 해결하는 데서 뚫고 나가야 할 근원적인 장

애는 차라리 '차이' '불일치'를 사고할 수 없는 점에 있습니다. 피히테가 보기에 주체와 대

상은 자아 안에서 절대적으로 일치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차이와 불일치를 사고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일치를 사고할 수 없다면 새로운 것을 사고할 수 없다는 것입니

. 새로운 것은 기존의 판단과 '다른'(불일치하는) 사실이나 대상을 주목함으로써 비로소

인식될 수 있다는 데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피히테의 철학은 다수 지식의 대립과 충돌, 그것을 통한 새로운 사실의 발견,

그 결과로서 새로운 지식의 출현이라는 중요한 사태를 이해하기 곤란해집니다. 즉 진리를

아예 처음부터 절대적으로 보장하려다 보니 실제 역사 속에서 진행되는 지식의 변화와 발전

을 이해할 여지를 스스로 봉쇄해 버린 것입니다. 딜레마가 '해결'된 대신 사상적인 봉쇄가

나타난 것입니다.

 

3.헤겔-정점에 선 근대 철학

비판철학과 헤겔

헤겔은 '변증법'이란 이름이 살아 있는 한 그 이름을 잊기는 어려울 정도로 변증법적 사

고를 체계화한 철학자로 유명합니다. 특히 헤겔의 제자임을 자처했던 맑스를 통해서, 그리고

맑스주의 내의 유수한 철학자들을 통해서 헤겔은 헤겔 철학의 영역 밖으로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해 왔습니다. 20세기 중반까지, 그리고 일부 지역에선 지금까지도 헤겔은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한 사람입니다. 헤겔의 사상은 매우 복잡하고 난해하며 걸쳐 있는 범위가

방대해서 지금과 같은 자리에서 제대로 요약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 다루

고 있는 주제와 관련해서 헤겔의 입론을 가능한 한 간략히 검토해 보겠습니다.

근대 철학과 헤겔의 연관을 얘기하기 위해선, 피히테의 경우에도 그랬듯이 칸트 철학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헤겔은 칸트의 비판철학을 비판함으로써, 그리고 그 뒤를 이은 피히테와

셸링의 철학을 비판적으로 섭취함으로써 자기 고유의 문제 설정을 세웁니다. 여기선 일단

비판철학에 대한 헤겔의 비판을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봅시다.

첫째, 사물 자체라는 현실과 인식주체를 분리한다는 것입니다. 이때 현실은 주체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것이 되고, 인식이란 서로 분리된 양자를 사후적으로 이어 주는 과정으로 나

타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사물 자체란 인식을 통해 표상되어야 할 어떤 것이 되지만,

그 표상이 올바른지 그렇지 않은지를 (주체의) 의식 외부에선 확인할 수 없다는 난점이 발

생한다고 합니다. 불가지론에 빠지는 거지요. 그렇다고 피히테처럼 자아 안에 양자를 끌어넣

음으로써 해결하는 주관주의 역시 대안이 아니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주관주의에 빠지지 않

으면서 현실(객관)과 주체를 통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둘째, 칸트는 진리의 기초를 확보하기 위해 '인식 이전의 인식 능력(선험적 능력)'에 대한

연구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헤겔은 '인식 이전의 능력'을 연구하는 것은 물에 들어가지

않고 수영을 배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곤란하다고 봅니다. 인식 능력을 연구한다는 것 자

체가 하나의 인식이기 때문에, 지금 가지고 있는 인식에서 벗어나 인식 능력을 연구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인식, 참된 인식의 기초나 기준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을 가지고 헤겔은 자기의 고유한 길을 찾

아 냅니다.

 

절대정신의 변증법

헤겔 역시 사물 자체와 주관, 현실과 주체를 분리하지 않기 위해선 근원적인 통일을 처음

부터 설정해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피히테는 이 근원적인 통일을 자아를 절대화해서 만들

어 냈지요. 그렇지만 헤겔이 주목하는 곳은 오히려 친구였던 셸링의 방법입니다.

셸링 역시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절대자'라고 생각하며, 그런 절대자에서 출발해야 한

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피히테의 생각처럼 자아가 비아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며, 반대

로 비아가 자아를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피히테와는 달리 자연과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아를 근거로 자연을 도출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비판합니다. 오히려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선 자연을 주체화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이 곧 주체요 정신이라고 보자는 겁니다.

셸링이 보기에 자연은 정신이자, 자연 안에 있는 정신 자체의 산물인 물질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자연은 자신을 객체로 정립하는 주체로 간주됩니다. 자연은 곧 무한한 활동이지요.

주체-객체가 통일된 절대자란 바로 이 자연을 두고 하는 말이라고 봅니다. 개개의 현상들은

이 절대자가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하지요. 이 현상들은 나름대로 하나의 '계열

(series)'을 이루는데, 실재적인 게 우위를 차지하는 계열과 관념적인 게 우위를 점하는 계열

이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좁은 의미의 '자연'이 전자에 속하고, 정신이나 역사는 후자에 속

합니다.

헤겔이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이러한 셸링의 발상법에 빚지고 있습니

. 즉 그 자체가 객체기도 한 주체를 설정하는 것입니다. 헤겔도 이를 절대자, 절대정신이

라고 합니다. 절대'정신'인 것은 그 전체의 본성이 활동적이고 산출적이라는 점에서 주체로

서의 정신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헤겔과 셸링의 사상의 동일성 때문에 그 차이를 놓쳐선 곤란합니다. 셸링의 경

우 정신을 자연과 직접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라 자연의 변화와 법칙 속에

서 정신의 운동을 발견하는 '자연철학'이 중요해집니다.

반면 헤겔에게 절대자는 무엇보다도 '정신'입니다. 이 정신은 스스로를 외화(소외)하여 자

연이나 사회, 역사 등의 객체(대상)가 됩니다. 자연이나 역사는 이 정신의 '표현'인 셈이지

. 여기서 특히 중요한 것은 자연이 아니라 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사회나

역사입니다. 이 때문에, 비록 헤겔에게도 자연철학이 없는 건 아니지만 사회를 다루는 법철

학이나 역사를 다루는 역사철학에 비하면 매우 부차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첫번째 주저가 <정신현상학>이었음은 이런 점에서 시사적입니다.

이처럼 사회나 역사로 전환된(외화된) 절대정신은 역사의 발전 과정을 통해, 그리고 그 속

에서 자기 발전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에 도달합니다. 이로써 절대정신은 다시

자기에게로 복귀('자기 내 복귀)'하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는 절대정신의 실현이란

목적을 향해 발전하는 '목적론적 과정'이라고 합니다.

알다시피 정신에서 대상으로, 그리고 다시 정신으로 돌아가는 이 원환 운동, 그러나 끝날

때는 좀더 높은 단계로 고양되는 이 원환 운동을 흔히 '부정의 부정'이란 말로 요약하지요.

이것은 정신과 대상의 변증법, 절대자의 변증법을 집약하고 있는 것이며, 헤겔의 체계 전체

를 특징짓는 '법칙'입니다.

셸링과 헤겔 사이에는 좀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셸링에게는 자연과 정신이 무차별

적으로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대로 두고 등호를 붙이면 되는 관계였지요. 그러나 헤겔은

동일성과 함께 '차이'를 포착하려고 합니다. 자연과 정신의 차이, 정신의 발전에서 나타나는

단계상의 차이, 나아가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차이를 자기 사상의 틀 안에 포섭하려고 합

니다.

하지만 오늘날 푸코(M.Foucault)나 들뢰즈 등의 철학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헤겔의 사상

에서 차이란 오직 동일화하는 힘('동일자'라고 합니다)인 절대정신에 포섭되기 위해 존재하

는 것이며, 여기에 포섭되지 않는 것은 배제되고 억압됩니다. 이런 점에선 '차이'가 차이로

서 인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헤겔에게 차이란 사실상 동일자의 포섭 능력을 과시하는

요소일 뿐이며 '변장한 동일자'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이는 그들이 계몽주의적 이성

을 비판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요컨대 헤겔 철학에서 절대자란 주관과 객관의 통일이지만, 이는 셸링 철학에서와는 달리

'외화''자기 내 복귀'라는 변증법적 운동을 통해 통일되어 가는 목적론적 과정입니다.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

그러면 이러한 관점에서 헤겔은 진리의 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까요? 이와 관련된 헤

겔이 말하는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헤겔에게 현실은 주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지요? 다시 말해 인식의 대상은 주체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이를 의식 내부에 있는 거라고 표현하지요. 이러한 사고법은 피히테

에게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합니다. 모르는 것을 먹을 대상이라고 생각하기는 불가능하기 때

문입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먹을 수 있고,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을 읽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헤겔은 지식을 '대상에 대한 주체의 연관'이라고 정의합니다. 물론 이것은

의식 내에서 만들어지는 연관입니다. 그렇지만 피히테와 달리 헤겔은 대상을 정립하는 게

곧 진리는 아니며, 따라서 지식이 진리는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 이 지식이 진리인지 아닌

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칸트라면 여기에 개개의 지식이나 인식 이전에 존재하는

선험적 인식 능력을 기준으로 제시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헤겔은 인식

이전에 (진리의) 인식 능력을 안다는 것은 물에 들어가기 전에 수영을 할 줄 안다는 것처럼

어불성설이라고 했습니다. 헤겔에 따르면 지식에 대한 평가 기준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의식

(시대의식)에 의해서만 마련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로써 헤겔은 지식에 대한 역사적 평가의

장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 역사적 의식 속에서 진리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이 되겠습니까? 예를 들

어 지구의 운동에 대한 물리학자의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무엇으로 평가하겠습니까? 헤겔

이 살던 19세기라면 당연히 뉴턴의 고전물리학이 그 기준이 될 것입니다. 반면 중세 초기였

다면 천동설이란 지식이 그 평가 기준이 되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진리의 기준은 이미

성립한 하나의 지식이 제공하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이미 옳다고 간주되는 지식 말입니다.

헤겔은 스피노자의 말을 빌려 진리는 이미 가지고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지식은 진리와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적어도 중세는 천동설이 진리였

, 19세기에는 고전물리학이 진리였다고 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악순환에

접하게 됩니다. 지식의 평가는 진리를 기준으로 하는데, 이 기준은 지식이 제공한다는 악순

환 말입니다. 이 악순환은 앞서 우리가 근대적 문제 설정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에서 연유하

는 것입니다. 대상과 개념의 일치(진리됨)를 확인하고 보장해 줄 '믿을 만한' 재판관이 있을

수 없다는 딜레마 말입니다. 그런데 헤겔은 이 딜레마에서 빠져 나갈 묘책을 강구합니다.

진리는 분명히 지식과 다르기에 대상-지식 관계의 외부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

나 대상 자체가 의식 내부에 있는 거라면, 대상과 개념의 일치로 정의되는 진리 또한 의식

내부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상도 개념도 모두 의식 내부에 있기 때문이지요. 요컨대 진

리는 지식의 외부에 있지만, 의식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식 내부에 지식과 자식

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두 들어 있는 셈입니다. 의식은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바로 의식이 이 기준으로 지식을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그 지식은 대개 그 시대에는

진리로 간주되던 지식이 되겠지요. 결국 의식이 발전함에 따라, 진리의 기준이 되었던 지식

자체도 의식이 스스로 검사하고 다시 평가한다는 말이지요.

이는 의식이 갖고 있는 기준을 의식 스스로 다시 검사한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

식입니다('자기의식'). 결국 진리란 이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 자체를 돌이켜 검사하고

정정해 가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리란 의식 또는 '정신 자신의 내적

인 관계'라고 말합니다.

헤겔에게 이 의식이나 정신이란 어떤 개인의 의식이나 정신이 아님은 앞서 말했지요.

것은 스스로 운동하는 절대자요 절대정신입니다. 따라서 헤겔은 진리란 절대정신의 자기의

식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절대정신이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진리의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란 뜻입니다. 그렇다면 진리를 확인하고 보증해 주는 것은 발전해가는 절대 정

신 자신인 것입니다.

 

철학의 종말, 근대 철학의 종말

눈치 빠른 분들은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이러한 헤겔의 사상은 스피노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입니다. 우선 셸링의 자연철학 자체가 그렇습니다. 자연을 정신으로 간주하는 관점은

자연을 실체의 양태로 보는 스피노자의 관점에서 유추한 것입니다. 헤겔에게 절대자(절대정

)란 스피노자식으로 표현하면 '실체'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외화되어 만들어 내는 자연이

나 사회, 역사는 스피노자 개념의 '양태'에 해당하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스피노자의 실체/

양태 개념을 주체와 객체의 동일성을 이루어 가는 목적론적 과정에 적용한 것입니다.

다른 한편 지식과 진리에 대한 변증법도 마찬가지입니다. 헤겔은 진리에 대한 판단에 앞

서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스피노자의 명제를 받아들여 의식이

자기 내부에 진리의 기준을 미리 갖고 있어야 한다는 명제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절

대정신의 자기의식이란 개념으로 전환합니다. 따라서 이제 진리는 절대정신이 자기의식에

도달하는 과정과 동일한 것이 됩니다. 이래서인지 셸링은 물론 헤겔도 스스로 스피노자주의

자로 자처했습니다.

이러한 '적용'은 사실 스피노자의 근본적 문제의식에서 벗어나는 '변형'입니다. 스피노자

가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만든다고 보아 거부했던 주체와 객체라는 근대적 범

주의 통일과 화해를 위해 실체와 양태란 개념이 복무하게 된 셈입니다. 연장과 사유라는 속

성의 일치란 면제 역시 주체와 대상의 일치란 명제로 전환합니다. 나아가 헤겔은 이를 '

대정신의 자기 실현'이라는 목적론적 과정에 포섭했는데, 이러한 목적론은 스피노자가 <

티카>에서 명시적으로 비판하며 거부했던 것입니다. 진리의 문제도 그렇습니다. 주체와 대

상을 분할한 근대 철학이 이 양자를 통일할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하는 데 스피노자의 명제가

변형되어 사용된 것입니다.

스피노자의 사상이 근대적 문제 설정에 포섭되어 근대적 딜레마의 해결에 봉사하게 된 것

입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 근대화한 스피노자주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근대적 문제

설정에서 처음부터 벗어나 있던 스피노자가 예전에는 이해되지 못하고 외면당했다면('죽은

' 취급을 당했지요), 절정에 오른 근대 철학자들에 의해 비로소 주목되고 그 영향력을 발

휘하기 시작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는 스피노자의 사상이 근대적 문제 설정 안에 포섭되지

않는 한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기에, '근대화'라는 비용을 치러야 했던 것입니다.

헤겔 철학이 칸트가 부흥의 가치를 높이 든 근대 철학을 정점에 올려 놓았다는 것은 일반

적인 평가입니다. 좋은 의미에서든 나쁜 의미에서든 저도 그런 평가에 동의합니다. 이런 의

미에서 헤겔 철학을 '절정에 선 근대 철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또한 근대 철

학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매우 정교하고 복잡한 개념과 장치 들을 개발해 냈습니다.

히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은, 그것이 목적론적 과정으로 간주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난점이 있는데도 지식의 역사적 정정 과정에서 진리를 파악함으로써 진리에 대한 이전의 독

단주의를 비판하는 적극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근대적 문제 설정 안에 있던 헤겔로선 또 다른 딜레마를 절감하게 됩니다. 진리

란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가 갖고 있는 기준을 계속 정정해 가는 과정이라는 헤겔의 주장이

타당하다면, 헤겔이 생각해 낸 진리 기준 역시 이후 정정되고 폐기될 수 있다는 결론을 피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헤겔 자신이 제시한 진리 기준이 초역사적으로 타당하다고 하는

순간, 진리 기준의 정정 과정을 통찰한 헤겔 자신의 진리 개념은 장벽에 부딪힙니다.

이는 논리적인 난점이지만, 사실 진리 개념에 대한 입론을 제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하는 난점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진리 기준 자체의 정정 과정을 파악하는 입론의 현실성

이요 효과니까요. 그러나 확고한 진리를 추구하는 근대적 문제 설정 속에 있던 헤겔에게 이

난점은 결코 방치해선 안될 것으로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는 진리의 정정 과정이라는 자신

의 진리 기준만은 절대적 진리의 자리에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 방법은 어떤 것일까요? 헤겔에게 그건 매우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진리와 지식의 변증

법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라는 절대적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목적론적 과정입니다. 그렇

다면 그런 헤겔 자신의 주장이야말로 절대정신의 실현을 목격한 지식이라면, 즉 그 과정의

종착점에 이른 지식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정정될 이유가 없는 절대적 진리가 됩니다.

절대정신이 실현되는 과정을 다 목격한 사상, 따라서 절대적 진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려면 하나의 전제가 필요했습니다. 즉 헤겔의 지식이 형성된 당시야말로 절대

정신이 실현되는, 역사의 종착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절대정신의 실현을 목격한 지

식이란 주장이 통할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이제 그는 자기가 살던 시대를 절대정신이 완

성되는 시대라고 정의하며, 프로이센 국가를 그 실현을 책임 지는 국가로 간주합니다. 따라

서 이제 더 이상 어떤 철학도 절대정신 완성 과정의 '증인'인 헤겔의 사상을 뛰어넘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철학은 '종말'을 고하게 된 것입니다.-, 헤겔의 사상 안에서만 말

입니다.

그 결과 근대적 독단론의 비판인 '진리의 지속적인 정정 과정'이란 명제는 헤겔 자신의

주장에 이르러서는 정반대의 독단적 명제로 전환됩니다. 자신의 주장을 절대적 진리로 정립

하기 위해 그는 역사마저도 완성해 버린 것이고, "프로이센 국가 만세"를 외치게 된 것입니

. 이는 헤겔 자신에게 이르러선 자신의 명제가 반전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역사 속에서 진

리의 기준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지식이 검사되는 게 아니라 헤겔의 진리 기준을 위해 역사

가 완성이란 이름을 얻고 지식의 정정도 중지하는 사태가 그것입니다.

지식과 진리의 변증법이라는 헤겔의 명제는 사실 두 가지 선택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종결된 지식, 완전한 진리란 없고 지속적인 정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

는 절대정신 실현의 목적론적 과정을 토해 절대적 진리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중

전자가 갖는 비판적인 효과가 긍정적인 만큼 후자가 갖는 독단적인 효과는 부정적입니다.

그러나 근대적 문제 설정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헤겔로선 절대적 진리란 목적을 포기할 수

없었으며, 따라서 목적론과 독단론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엥겔스는 헤겔 철학에

서 완성된 '체계'와 혁명적인 '변증법'이 서로 모순되고 충돌하며, 결국은 체계의 완성을 위

해 변증법을 굴복시킨다고 비판했던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선택지는 근대 철학이 갖고 있는 근본적 딜레마를 다른 형태로 보여주는 것

입니다. 대상과 일치하는 지식이란 결코 확인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런 진리란 궁극적으로

는 불가능한 것으로 인정해야 하거나(첫번째 선택지), 아니면 "내가 곧 진리니라"는 확인할

수 없는 선언을 반복하는 것(두번째 선택지)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절대정신

의 철학은 어떤 철학적 효과를 가져왔을까요? 차이가 동일성으로 환원된다는 것은 앞에서

보았습니다. 차이가 그처럼 환원되는 한 모든 개체는 이제 그것이 갖는 보편성을 통해서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즉 개별성은 보편성으로 환원됩니다. 또한 모든 변화는 절대정신의 목

적론적 운동에 포섭되며,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집니다. 변화는 목적으로 환원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자연과 사회 또는 역사를 절대정신의 소외로 파악함으로써, 그것은 이제

관념으로 환원됩니다. 헤겔 철학은 절대정신의 자기의식이기에 그 안의 어떠한 내용도 절대

적인 게 됩니다. 따라서 이러한 환원 전체가 절대적인 것이 됩니다. 완성된 근대 철학, 절정

에 선 근대 철학은, 자신이 포섭할 수 없는 것은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 전능한 이성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엥겔스의 말처럼, 이로써 철학은, 아니 최소한 근대 철학은 '

종말'의 길로 접어듭니다.

 

4. 근대 철학의 해체-맑스, 프로이트, 니체 지금까지 대륙의 이성주의 철학과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 그리고 독일 고전철학을 보았습니다. 그 속에서 근대 철학의 문제 설

정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그것이 야기하는 딜레마는 무엇이며 그로 인해 어떠한 난점들이

생기는지, 그리고 그것과 연관해서 근대 철학자들이 어떻게 대처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리고 근대 철학이 그 근본적인 딜레마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과정과 위기를 극복하려

는 노력에 의해 새로운 사고방식들이 출현하는 과정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역동적 과정을

통해 근대 철학의 역사가 어떻게 풍부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말했듯이 근대 철학 내부에 있는 딜레마는 근대적 문제 설정 안에서는

해결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좀더 근본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이라면 딜레마를 야기

하는 근대적 문제 설정 자체에 대해 의심하고 그것을 벗어나려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가

능한 일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고하고 의심할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의심의 대가'

라고 불리는 맑스, 프로이트, 니체가 바로 그들입니다. 어떠한 자명한 것이나 당연시된 판단,

가치도 의문에 부치고 그 의심을 극한까지 밀고 나가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사상가란 점에

서 그렇게 불리지요. 이러한 명칭에 토를 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현대 철학에 관한 책을 썼던 데콩브(V.Decombe)에 따르면 (Modern French

philosophy; 국역본 <동일자와 타자>는 번역이 매우 나쁩니다), 1950년대까지 유럽의 지적

풍토는 3H에 의해 지배되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3H란 헤겔(Hegel), 후설(Husserl), 하이데거

(Heidegger)를 가리키는데, 프랑스에서 이들 세 사람은 특히 현상학과 실존주의를 통해 막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1960년대에 들어와 실존주의나 현상학 또는 역사

주의를 비판하게 되면서 좀더 근본적으로 인간이나 주체를 출발점으로 삼는 '주체철학'

넘어서려는 시도들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시도들은 흔히 '구조주의'라고 불리는 흐름의 출현

으로 강력한 힘을 갖고 가시화됩니다. 앞서 말한 의심의 대가들이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은,

그리하여 3H의 시대를 마감하고 그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는 것은 이런 흐름의 형성

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검토하고 있는 근대 철학과 관련해서, 특히 그것을 넘어서는 데 가장 결정적

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 이 세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후 근대 철학을 넘어서는 데 긴요한 디

딤돌을 확고하게 마련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사람이 어떤 식으로 근대 철학을 해체하고

넘어서려 했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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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맑스-역사유물론과 근대 철학

맑스 유물론 비판

맑스의 관념론 비판은 그가 유물론자였다는 사실만큼이나 유명합니다. 그러나 '유물론자'

맑스가 사실은 유물론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비판을 수행했다는 주장을 여기서 한다면 어떨

까요? 그리고 이것이 맑스가 근대 철학과 근본적인 구획선을 그으면서 달라지는 출발점이라

고 한다면 어떨까요? 맑스는 '실천'이란 개념을 철학에 끌어들인 장본인입니다. 또한 근대

철학을 해체하는 데서 맑스가 사용하는 결정적인 개념 역시 '실천'입니다. 다시 말해 실천이

란 개념을 통해 맑스는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을 넘어섭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을 당장 반

박하실 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천의 개념을 철학에 끌어들인 게 어째서 맑스인가라고 말

입니다. "바로 앞 장에 나온 칸트는 <실천이성 비판>이란 제목의 철학 책을 쓰지 않았는가,

근대의 윤리학이란 바로 근대인들의 실천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반박

말입니다.

그러나 근대 철학자들이 사용하는 '실천'이란 말은 인간의 행동을 다루는 영역이란 의미

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칸트의 <실천이성 비판>, '윤리학'이란 이름도 마찬가지지요. 실천

이란 말은 다만 서술적인 의미로, 그것도 윤리학이란 영역에 제한해서 사용되고 있을 뿐입

니다. 이런 말을 아직 '개념'이라고 하긴 곤란합니다. 개념이란 대상을 파악하거나, 그 파악

방법과 관련해 다른 개념들을 조직해 내고, 그것들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특별한 용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데카르트의 '본유관념'이나 '연장' '사유'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칸트의 '선험

' '경험적'은 물론이고, '감성'이니 '범주'니 하는 말들이 그렇고, 헤겔의 '모순' '본질' '

생성' 등등이 그렇습니다. 개념이 이처럼 특별한 의미와 기능을 갖는 것이라면 '분명한

(clare)' '뚜렷한(distincte)'처럼 평범한 형용사도 개념이 되지만(데카르트 철학에서), 심오해

보이는 어려운 단어도 그런 특징이 없다면 개념이 되지 않습니다. 맑스가 실천을 개념으로

도입한다는 것은 그 말에 바로 이런 기능과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이라고 하겠습니다.

맑스가 실천이라는 개념을 철학 개념으로 본격적으로 사용한 저작은 <독일 이데올로기>

와 그 책에 부록으로 실린 <포이어바흐에 관한 테제>였습니다. 여기서 맑스는 '포이어바흐

비판'이라는 형식으로 '실천'에 관한 몇 개의 핵심적인 명제를 제출합니다. 그것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지요.

첫째는 '대상'으로서의 실천입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첫번째 테제에서 맑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까지 모든 유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포함하여-의 주요한 결함은 대상, 현실을 객체의 형식으로만 파

악했고 그것을 실천으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제는 대상, 현실을 실천이

란 형태로 파악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포이어바흐는 "인간이란

자기가 먹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합니다. 즉 인간이란 단백질 덩어리라는 거죠. 이 극단적

인 문장에서 포이어바흐가 생각하는 유물론을 엿볼 수 있는데, 그걸 흔히 '기계적 유물론'

라고 하지요. 맑스가 보기에 이런 유물론은 대상이나 현실을 단백질처럼, 그 자체만으로 존

재하는 고정적인 객체로 파악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맑스 말대로 대상이나 현실을 실천으로 파악한다는 것은 대체 무얼 뜻할까요?

좋은 예가 하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시 <비지터>란 영화를 보신 분이 있나 모르겠

습니다. 약간 앞선 과거로 가려던 중세의 영주가 마술사의 실수로 수백 년 후인 20세기에

떨어집니다. 그의 시종과 함께. 20세기에 떨어진 중세인의 행동은 돈키호테를 연상하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겁니다. 그들이 20세기로 날아와 처음 한 행동은 지나가던 자동차를 괴물로

알고 두들겨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떨어진 곳에는 영주의 후손이 살고 있었지요. 치과 의사의 부인으로 말입니다.

종의 후손 역시 그 주위에 살고 있었는데, 호텔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호텔은

바로 영주가 원래 갖고 있던 성이었습니다. 영주는 놀라고 분노하지요. 자기의 성을 시종의

후손이 갖고 있고 호텔로 사용하고 있으며, 자기 후손은 그 밖에서 살고 있으니 말입니다.

, 이쯤 하고 다시 돌아갑시다. 벽돌로 높은 담을 치고, 그 안에는 좋은 방과 정원이 있

는 성은 그대로입니다. 물론 약간 수리도 하고 개축도 했겠지만, 그거야 대세에 지장 없으니

무시합시다. 포이어바흐가 본다면 20세기에 남아 있는 성은 영주가 소유한 성에서 크게 달

라진 게 없습니다. 중세의 영주도 단백질이요, 그 후손도 단백질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두 성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중세에는 영주의 권력이 나오며 어떤 돈을 치

르고도 살 수 없는 성이었다면, 20세기의 성은 아무나 돈만 내면 먹고 잘 수 있는 호텔이

되었고, 돈만 있다면 누구나 살 수 있지만 그게 없다면 아무리 잘난 기사가 창을 들고 설쳐

도 뺏을 수 없는 건물이 된 것입니다. 돈과 관계없는 어떤 권력도 그 성 안에는 없습니다.

이처럼 완전히 다르기에 우스운 일이 생기고, 또 그래서 영화가 되는 거지요.

이 성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그 성의 본질은 달라지는 겁니다.

한 이러한 변화는 시민혁명이나 산업혁명 같은 변화에 의해 생긴 것입니다. 이 모두가 바로

실천에 의해 이루어진 변화고, 따라서 성의 본질은 실천의 개입 없이는 올바로 이해될 수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포이어바흐처럼 관조한다면 성은 성일 뿐이지요.

결국 포이어바흐는 대상을 정태적인 것, 지각에 의해 관조하기만 하면 올바로 파악할 수

있는 정적인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대상 자체가 인간의 생활 과정, 실천 과정에서 바뀌고 변

혁된다는 것을 보지 못했지요. 성이란 대상을 단지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귀족들이 사는

'으로만 파악할 뿐입니다.

반면 맑스는 대상 개념 자체를 바꾸려고 합니다. 맑스는 대상을 활동적인 생활 과정, 실천

과정으로서 파악하려 합니다. 즉 의식과 대비되는 물질, 주체와 대비되는 대상이란 개념에서

벗어나, 물질 또는 대상 자체를 물질적 생산 방식으로 전환시킵니다. 이것은 대상을 이해하

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이로써 대상은 사회적 맥락과 역사 속에서 정

의될 수 있게 됩니다.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하면, "성은 성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것

은 호텔이 된다."는 것입니다.

두번째로, 맑스는 포이어바흐를 비롯한 유물론자들이 "지각이나 감성, 즉 대상을 단순히

지각, 직관, 감각으로만 파악했다"고 비판합니다. 어떤 대상에 대한 지각을 단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관조하는 행위로 간주한다는 겁니다. 이러한 포이어바흐의 생각은 헤겔의 관념론을

비판하면서 나온 것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관념론자들은 대상을 주체의 관념 속에서 정의

합니다. 이에 대해 포이어바흐는 "관념론자들은 사물을 더욱더 잘 보기 위해 인간의 육체에

서 눈을 빼 버렸다"고 비판합니다. 그리고 그 말을 그대로 뒤집어 "좀더 잘 보기 위해서라

면 차라리 눈을 갖고 개념을 없애는 편이 훨씬 낫다"고 말합니다. 그는 대상을 눈에 비치는

대상, 직관되는 대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맑스에 따르면 지각이나 감성은 대상과 목적을 갖는 '활동'이요 '실천'입니다.

각은 대상을 수동적으로 그저 비추기만 하는 '거울'이 아니라는 겁니다. 다시 말해 실천적

맥락에 따라 대상은 다르게 파악될 수 있다는 거죠.

<비지터>의 예를 들어 봅시다. 중세의 영주와 시종이 20세기로 날아와서 처음 한 행동이

자동차를 악마가 보낸 괴물로 알고 처치하는 것이었다고 했지요? 처음엔 시종이 덤벼들었다

가 폭발음에 놀라서 도망칩니다. 그러나 영주는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어서인지 용감하게

싸워서 그 괴물을 무찌릅니다. 운전사는 도망을 가고, 시종은 영주의 빛나는 용기와 힘에 다

시 한번 감복하게 됩니다.

물론 이는 극단적인 예지요. 그러나 이 예를 통해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중세인들

로선 그것이 자동차라고 인식하는 게 불가능하리란 겁니다. 하늘에서 떨어진 서양인을 신의

사자라고 생각하는 <인디아나 존스>에 나오는 원주민들도 마찬가집니다. 부시맨이 발견한

콜라병이 과연 콜라병이었겠습니까? 중세의 성직자들이 보기에 해는 아침에 떠서 저녁에 지

는 거지요. 지구가 돈다는 건 머리가 돈 사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거고 말입니다.

요컨대 실천적 맥락과 무관하게 어떤 대상을 지각하는 일은 없다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

신의 생활양식이나 일상적인 실천 혹은 목적을 갖는 실천 속에서 사물을 지각하게 마련이라

는 거지요.

세번째로, 진리의 문제입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두번째 테제에서 "인간이 대상적 진리를

가질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오해가 많이 되는 구절입니다. 이를테면 "길고 짧은 것은 대보면 안다"

말처럼, 참인가 아닌가는 실천해 보면 안다는 식으로 해석되어 버립니다. 이것이 유물론에서

진리를 검증하는 방법으로 간주된다는 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 개념은

사실 실증주의자들이 말하는 '검증' 개념과 별로 다르지 않지요.

그러나 맑스 말대로 대상이나 지각이 '실천'으로 파악되어야 한다면, 어떻게 실천하느냐에

따라, 혹은 어떻게 생활하느냐에 따라 사물을 다른 것을 경험할 것이며, 따라서 문제는 길고

짧은 걸 대보는 것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부시맨의 콜라병 얘기를 했지요? 부시맨에게 그가 들고 있는 게 콜라

병이란 걸 말만으로,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그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아리스토

텔레스에게 사람을 노예로 다루어선 안 된다는 걸 설득하기 위해 휴머니즘이니 뭐니 하는

갖은 이론적 수단을 동원한들 그를 설득할 순 없을 겁니다. 그건 마치 농부에게 소를 노예

처럼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이론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만약 부시맨 A가 콜라 먹는 행위를 자주 보고, 또 자기도 따라 마셔 본다면, 그게

콜라병이란 걸 이해하는 건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콜라병이란 판단을 확

인하고 '검증'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부시맨 B가 있었는데, 그는 그 물건을 호두를

까 먹는 데 사용했다고 합시다. 그럼 그는 그 병을 호두 까는 도구로 파악할 겁니다. 즉 그

는 실천적으로 그 물건이 호두 까는 도구라는 걸 증명할 수 있겠지요. 또 다른 부시맨 C

그 병에 입을 대고 불었더니 소리가 났다고 합시다. 그럼 그는 물소 뿔피리와 비슷한 걸로

생각할 겁니다. 그걸 실천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매우 쉬운 일입니다.

이는 앞에 나온 맑스의 테제에 비추어 본다면 당연한 일입니다. A, B, C 세 부시맨은 각

각 나름의 '실천' 속에서 그것이 콜라병인지, 호두까기인지, 뿔피리인지 검증합니다. 따라서

이 세 사람의 부시맨이 모여서 이 물건은 무엇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인다면 아마 끝없는 논

쟁이 시작될 겁니다. 그게 어째서 콜라병인지를 이론적으로 증명하려는 노력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겁니다. 각자는 자기 식의 실천을 통해 자기 주장을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여기서

콜라병이라는 판단이 진리임을 실천을 통해 검증할 수 있다는 생각처럼 순진한 게 또 어디

있겠습니까).

따라서 맑스는 이제 진리의 문제를 현실성과 힘, 차안성을 입증하는 문제로 바꿔 버립니

. 그 물건에 대해 '영원한 진리'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어떤

판단이나 지식의 현실성과 타당성(옳음)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앞의 예에서 부시맨 B가 호

두까기로 그 물건을 계속 사용한다면, 그리고 그게 매우 훌륭한 도구임을 입증한다면 그 판

단은 현실성과 힘을 입증한 셈이지요. 뿔피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옳음'을 입증할 수 있습

니다.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들이 자주 나타난다면, 그리고 그 문제들이 심각한 것이라면 옳

다는 판단은 유지되기 힘들 것입니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이는 대상에 대한 새로운 개

념과 함께, 근대적인 진리 개념으로부터의 근본적인 전환을 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이는

뒤에 살펴볼 비트겐슈타인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네번째로 계몽주의 비판입니다. 포이어바흐에 관한 세번째 테제에서 그는 '교육과 환경'

의해 인간이 바뀐다는 생각(이게 바로 '계몽주의'지요)을 비판합니다. '사회를 우월한 부분

과 열등한 부분으로 양분'하는 것, 가르치는 부분과 가르침을 받아야 할 부분으로 나누는

, 이성적인 것과 비이성적인 것으로 나누는 것을 비판함으로써 계몽주의의 근본 관점인

이분법 자체를 비판합니다. 이는 계몽주의의 지반을 해체하는 비판입니다. 전위와 대중을 갈

라 놓고, 전위는 교육하는 자, 대중은 그 교육을 따라가면 디는 자로 파악하는 전통적인 간

념에 대해, 이미 맑스는 계몽주의적 윤리학이라며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맑스의 이러한

비판은 계몽주의와 반계몽주의 모두를 떠나 계몽주의적 이분법 자체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극히 근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맑스는 "환경이 인간에 의해 변화하며 교육자 자신도 교육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교육자도 교육받아야 한다면 교육자는 누구에게 교육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대중에게?

것은 단순히 계몽주의를 뒤집어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에도 계몽주의적인 이

분법이 그대로 잔존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로써 그는 근대적 윤리학 자체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이 해체된 자리에 맑스는 '혁명적

실천'이란 개념을 도입합니다. 그는 혁명적 실천 속에서 교육자 자신도 교육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혁명적 실천의 상황에서 교육자-피교육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

중과 전위를 나누어 얘기하자면) 대중에 의해서 전위가 교육받고 교육자 자신이 바뀌는 경

우가 이 혁명적 실천 과정에서 나타나는데, 이것은 대중이 전위를 가르친다는 의미보다는

혁명적 실천 속에서 교육자-피교육자 전체가 다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점에서 계몽

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윤리학을, 아니 정치학을 열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상은 포이어바흐 비판이란 형태로 제출되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헤겔 비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맑스는 포이어바흐와 헤겔에 대한 이중적 비판을 수행하는 가운데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 전체를 비판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그는 '유물론' 자체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근대적 문제 설정과 개념에 사로잡혀 있는

유물론에 대한 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비판을 통해 맑스는 유물론 자체를 다른 것

으로 치환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유물론'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유물론이 이 기초 위

에서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역사유물론과 주체철학

맑스가 실천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야기된 철학적 지반의 변경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

'라는 근대 철학의 목표는 물론, 대상 자체도 그냥 두지 않습니다. 그러나 단지 파괴하는

데 머무는 것만은 아닙니다. 물질 개념 자체를 역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 역사

유물론이 성립하게 되는 거지요. 이처럼 역사유물론으로 진전함에 따라 이제 맑스는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었던 주체(또는 인간) 개념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이 사고할 수 있게 됩니

.

맑스는 '인간'이란 개념 자체를 해체합니다. '인간'이란 포이어바흐처럼 사랑이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존재로 정의할 수 없으며, 데카르트처럼 '이성''정념'을 가진 존재라고 정의

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갖는 수많은 특성 중 몇 가지를 추출해서

인간의 본질이 그거라고 선언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사람마다 인간

을 다르게 정의할 수 있을 겁니다. 맑스가 보기에 정말로 중요한 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개

인들이 어떤 사회적인 특징을 갖고 있으며, 그것이 어떻게 변하는 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단적으로 말합니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말입니다.

앞서 <비지터>란 영화 얘기를 했지요? 거길 보면 영주의 후손과 시종의 후손이 나오지

. 영주는 중세의 한 지방을 지배하던 귀족이요 지배자입니다. 시종은 그에게 딸린 노예 같

은 존재고 말입니다. 한편 20세기에 사는 영주의 후손은 더 이상 귀족도 영주도 아니며 지

배자도 아닙니다. 시종의 후손은 호텔을 경영하는 부르주아지요.

맑스에게는 이들이 갖는 (생물학적인) 공통성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인종

적 공통성으로 말한다면 영주와 시종 간에도 별다른 차이가 없는 셈이니 말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건 똑같은 생물인 그들이 누구는 영주로서 지배하고, 누구는 시종으로서 지배당한다

는 사실입니다. 또 같은 핏줄을 타고난 후손이 20세기에는 더 이상 귀족이 아니라는 것입니

. 그 개인들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것은 바로 이 차이들입니다.

이런 뜻에서 맑스는 말합니다. "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가 된

." 다시 말하면, "톰은 톰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시종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겁

니다. 바로 이 말이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란 명제의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란 선천적이고 항구적인 어떤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관계에 따

라 만들어지는 것이며, 따라서 관계가 달라지면 다른 존재로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예컨

<비지터>의 끝 부분에서 영주는 시종을 데리고 다시 중세 시절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자유로운 공기를 맛본 시종은 돌아가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 후손인 호텔

주인을 옷을 바꿔 입혀 대신 중세로 돌려보냅니다. 중세로 '끌려간' 시종의 후손은 그를 부

리는 영주에 대해 어이없어하지만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그

가 명령에 따르는 것을 당연시하고 그걸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때는 비난과 징벌이 날아드

니까 말입니다. 그는 이제 싫으나 좋으나 시종으로 살아가게 된 겁니다.

결국 그는 상이한 사회관계 속으로 밀려 들어감에 따라 시종으로서 살아가게 됩니다.

치 아프리카의 자유인이 백인 손에 잡혀 미국으로 옮겨지는 순간 좋든 싫든 노예가 되듯이

말입니다. 요컨대 인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정의된다면, 사회관계가 달라지면 그 본질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맑스는 순수한 '인간', 항구적이고 불변적인 '인간' 개념을 해

체해 버립니다. 사회적 관계에서 동떨어져 인간을 정의하거나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근대 철학의 출발점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집어엎는 것입니다. 자명하고 확

실한 출발점, 항구적인 기초인 '주체'가 따로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주체''

인간'이 그렇듯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구성물이요 결과물이란 겁니다. 같은 사

람이 20세기엔 호텔을 경영하는 주체로서 존재하지만, 중세로 가선 시종이란 주체로 존재하

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 주체가 사고하는 내용이나 방식 역시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영주의

성을 사서 호텔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중세로 날아간 시종의 후손에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

? 반면 20세기의 자유로운 공기를 맛본 시종은 이제 더 이상 영주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되돌아가자는 영주의 명령에도 따르지 않지요.

래서 맑스는 개인들이 갖고 있는 의식이나 관념은 사회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

니다. 데카르트 말처럼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에 속하느냐에 따

라 사고 자체도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사회적 존재가 사회적 의식을 규정한다

"고 말합니다.

이러한 철학적 전환의 결과 근대 철학의 출발점을 이루던 주체 개념은 해체되고, 근대적

문제 설정에서 연유하는 '주체철학'은 전복되고 맙니다. 이는 맑스가 근대적 문제 설정을 넘

어서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편 주체철학의 지반을 떠나자마자 역사 개념 또한 변하게 됩니다. 역사는 더 이상 어떤

주체-그게 절대정신이든 인간이든 간에-가 자신의 목적에 따라 만들어 내는 무엇이 아닙니

. 역사 역시 이젠 사회적 관계에 의해 정의되고, 그것의 변화와 대체 과정에 불과한 게 됩

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란 "주체도 목적도 없는 과정"(알튀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

.

헤겔과는 달리 맑스에게는 소외되거나 실현되어야 할 목적이나 정신 같은 것은 없습니다.

물론 초기의 소외론적 저작에는 소외의 해체라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으로 역사를 이

해한다는 점에서 목적론적 관점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자본>과 같은 '맑스적' 저작

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는 다만 자본주의에서 자본 축적의 역사적 경향만을 도출

하고 보여 줄 뿐입니다.

흔히 이러한 입론을 공산주의라는 이상적 상태를 목적으로 가정하는 '목적론'이라고 비판

합니다만, 이는 목적론의 개념을 남용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경향을 말하는 것, 혹은

어떤 상태로 되리라는 서술 자체가 목적론은 아닙니다. 목적론은 그러한 경향이 어떤 이념

이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입니다. 스피노자 말마따나 원인을 목

적으로 대체하는 것, 즉 어떤 일의 원인을 정해진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거로 간주하는 것

이 목적론이지, 어떤 경향을 갖는다는 게 모두 목적론은 아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맑스 철학의 근대성과 탈근대성

요약합시다. 맑스는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철학적 사고의 틀을 변환합니다. 우선 주체와

대상에 대한 근대적 개념을 해체합니다. 주체도 대상도 인식도 진리도 모두 실천이란 개념

에 의거해 새로이 정의합니다. 진리 개념의 변환을 통해서 그는 근대 철학이 추구하던 확고

하고 불변적인 진리라는 목적 자체를 해체합니다. 또한 근대 철학의 출발점이던 자명한 주

체 역시 해체해 버립니다. 이제 주체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임을 분명히 합니

. 주체는 출발점이 아니라 결과물이란 것이 명확하게 되고, 그 결과 주체/진리라는 짝에

의해 형성되었던 근대적 문제 설정 자체가 해체됩니다. 나아가 인간을 특정한 주체로 만들

어 내는 사회 역사적 요인을 다루는 새로운 이론적 틀을 제시합니다. '역사유물론'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맑스의 이러한 해체는 근대적 문제 설정 내부에서 그 딜레마와 모순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행해진 게 아니라, 외부에서 새로운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란 점에서

흄의 그것과 성격을 크게 달리합니다. 이처럼 해체가 다른 차원의 개입으로 이루어짐으로써

해체는 파괴(회의주의)에 머물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새로운 개념과 문제 설정의 구성

을 통해 예전의 문제 설정을 해체하는 식으로 행해진 것입니다.

이 새로운 문제 설정은 지식과 주체, 역사 등을 다루는 새로운 방법을 포함합니다. '진리

'(영원한 진리)의 문제를 벗어나 현실성과 힘이란 차원에서 지식을 다루는 방법을 담고 있

습니다. 그것은 지식을 형성하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조건 속에서 지식의 형성과 기능을

다루는 방법이었습니다. 이 점에서 맑스는 진리를 극단의 회의에 몰아넣고 스스로 당황했던

흄과 달랐습니다.

다른 한편 주체에 대한 새로운 방법 또한 포함하고 있습니다. 주체는 사회 역사적 조건

속에서 상이한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테제를 통해, 그러한 조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분

석적으로 파악되어야 할 대상이 됩니다. 이것은 인간이란 주체를 이해하기 위해선 심리학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발상(흄조차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지요)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법을

내포합니다.

요컨대 맑스는 실천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근대적인 문제 설정 자체를 해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근대 철학을 벗어나는 개념들과 사고 방법을 포함하는 새로운 문제 설정을 만들어

내는 것이기도 했습니다. 이것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철학적 혁신을 가능하게 한 탈근대적

요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상 경주가 아니라면, 대열에서 벗어나 너무 앞서 나간 사람은 본대를 찾아 뒤돌

아오게 됩니다. 앞서 나간 사람은 언제나 외로움과 고통에 시달리다 미쳐 버리거나 죽었지

. 아니면 다시 후퇴하거나. 철학자도 여기서 예외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맑스 역시 그런 것

처럼 보입니다.

맑스는 헤겔의 영향이 독일 전체를 지배하고 있던 시대, 산업혁명이 독일에서 아직 본격

화하지도 않았던 시대에 살고 있었죠. 그러니 근대가 만개하기도 전에 근대를 넘어서 사고

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힘든 것이었을지는 우리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맑스는 세인들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은 탁월한 사상가가 되기를

거부했지요. 그에게 사상이란 대중 자신의 것으로 되어야 할 혁명의 무기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는 자신의 철학을 대중과 결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심지어 <정치경제학 비판> 시리즈를

계획했다가 1권을 내고는 포기하고 말았지 않았습니까? 아마 그것은 엥겔스말고는 그 책을

이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자본> 1권의 서문에서 우리는 자신의 이론

을 대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가공하려는 맑스의 힘겨운 노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맑스의

사상을 더더욱 대중화하려는 노력은 이후 엥겔스 자신이 필생의 사업으로 삼았던 것이기도

하지요.

이러기 위해선 근대적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자신의 사상을 '번역'해 주어야 했습

니다. 그것은 근대적 개념을 통해 자신의 새로운 사고 방법을 설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맑스 자신이 자신의 사상을 근대화해야 하는 역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

이 정말 그대로 '번역'이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그 속에 자신의 사고가 포섭되지 않는 그

'순수한 번역'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맑스 철학이 근본적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

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적인 요소들을 포함하는 것은 이런 점에서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습

니다. 예를 들면 맑스는 진리에 대한 근대적 개념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이론이 '과학'

것이라는, 혹은 과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즉 과학주의라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스스로 갇혀 있었습니다. 어떤 이론도 과학일 때만 정당할 수 있다고 누구나 생

각하는 시대에, 자신의 이론은 과학이 안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습니

? 더구나 대중과의 결합을 추구한 사상가라면 말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실천의 개념 역시 '근대화'됩니다. 즉 진리를 실천의 문제로 파악하는 맑스

의 명제는, 물질적 대상과 지식의 일치 여부를 실천을 통해 검증한다는 지극히 근대적인 의

미로 해석되게 됩니다. 이 점에서는 레닌이나 엥겔스 역시 벗어나지 못합니다. 과학주의 안

에서 실천 개념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거기말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후에는 유물론

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철학적 유물론'-이는 근대적인 대상, 물질 개념에 기초를 둔 근대적

유물론이지요-으로 복귀하게 됩니다(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레닌의 <유물론과

경험비판론>입니다).

반면 이러한 과학주의에 반대하면서 인간의 존재론적 본질로서 '실천'이란 개념을 중심에

두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흔히 '실천철학'이라고 불리는 흐름이 바로 그것입니다. 루카치

(G.Lukacs)나 그람시(A.Gramsci), 코지크(K.Kosik) 등의 철학자가 대표적인 사람들이지요.

그러나 그런 흐름 역시 어떤 불변적인 본질(존재론적 본질)을 갖는 주체로 인간을 파악한다

는 점에서, 근대적인 주체철학으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오히려 맑스의 이 탈근대적인 실천 개념을 좀더 탈근대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킨 사람

은 맑스주의자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맑스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한 적이 없는 비트겐슈

타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철학적 탐구>로 대표되는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인데, 이에 대해선 나중에 다시 얘기하겠습니다.

 

2.프로이트-정신분석학과 근대 철학

철학자 프로이트?

아시다시피 프로이트는 철학자가 아닙니다. 그를 철학자로 다루는 철학사 책을 만나기도

그다지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철학에 대해, 특히 근대 철학에 대해 매

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임엔 틀림없습니다. 그것은 어찌 보면 매우 간단한 단 하나의

개념 때문입니다. '무의식'이라는 너무도 유명한 개념 말입니다. 이 개념은 근대 철학의 기

초였던 '주체', 그리하여 '주체철학' 전제를 해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물론

이는 프로이트가 전혀 의식하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강력한 파괴 효과는 사실 무의식이란 개념 하나만으론 이루기 힘든 것이었

습니다. 그건 어쩌면 다양한 증거와 임상적 사례들, 그리고 정신분석학이란 독자적인 학문을

창출해 낸 체계적이고 강력한 개념들과 이론이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을 겁니다.

여기서 프로이트의 이론을 자세히 소개할 수는 없으며, 그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

서 저는 무의식 개념의 변화와 발전만을 간략히 다루려고 합니다. 그것은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단계, '무의식'을 발견합니다.

그는 대학을 마친 뒤 프랑스의 유명한 생리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샤르코(J.M.Charcot)

밑에서 공부를 합니다. 샤르코는 최면술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그 당시에 베르네임

(H.Berheim)이라는 의사가 최면술 요법을 통해 아주 주목할 만한 발견을 합니다. 그는 어떤

여자에게 최면술을 걸었는데, 최면이 깬 후에 우산을 펴도록 시켰답니다. 그랬더니 최면에서

깬 그 여자는 우산을 들고 펴더라는 것입니다. 베르네임이 시치미를 떼며 왜 우산을 폈냐고

물었더니 그 여자는 그 우산이 자기 것인지 보려고 했다는 겁니다(물론 집요하게 계속 캐물

은 결과 누군가가 시킨 것 같다는 대답에 이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최면 상태에서

암시받은 행동을 최면이 깬 이후에도 하게 되는 현상을 '후최면 효과'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기가 왜 하는지 모른 채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여자는

물론 나름대로 이유를 대지만, 실제로 그것은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라 핑계에 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식되지 않지만 사고하고 행동하는 일이, 곧 의식과는 전혀 다른 차

원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다시 말해 전혀 의식되지 않은 채 판단하는 영역이

사람의 정신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정신 안에 있지만 의식되지 않은 영역을 프로이

트는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그 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J.Breuer)라는 동료 의사와 함께 히스테리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런 현상이 히스테리에서도 나타난다는 걸 알게 됩니다. 브로이어의 환자 중에 안나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이 여자는 히스테리 발작 증세를 보이고 있었는데, 그 원인을 자신도 몰

랐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을 그 여자에게 말해 주었더니 히스테리 증상이 없어졌다고 합니

. 이처럼 모르던 원인을 알아내서 그걸 알려 줌으로써 증상을 치료하는 방법을 '카타르시

스 요법'이라고 합니다.

그는 여기서 '무의식'이 존재한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때까지는 무의식이 최면술

이나 히스테리 증상처럼 특별한 경우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무의식의 존재를 일

반적인 게 아니라 우연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둘째 단계, 무의식이 우연적인 게 아니라 보편적인 것임을 발견합니다.

프로이트는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그는 브로이어와 싸우고 독립적으로 연구를 하게 되는

, 그가 선택한 주제는 꿈이었습니다. 그 결과물이 <꿈의 해석>이라는 책이지요. 그는 이

연구를 통해 무의식이 최면이나 히스테리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거라는 결론에 이릅니다. 왜냐하면 꿈을 안 꾸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꿈에는 잠재몽과 현재몽이 있는데, 현재몽은 흔히 우리가 꿈이라고 부르는 것을 말합니다.

잠재몽은 그 꿈에 왜곡된 모습으로 잠재해 있는 내용을 말합니다. '꿈의 작업'을 통해 변형

되고 왜곡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왜곡되어 나타나는 이유는, 잠재몽이 도덕적으로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어서 그대로 나타났을 때는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

이 수면을 방해하지 않도록 검열하고 왜곡하는 거지요. 히스테리나 신경증에서 나타나는 증

상처럼 꿈 역시 자신이 의식하지는 못하는 어떤 생각이나 욕망 등이 표현되는 것입니다.

한편 프로이트는 농담이나 실수, 일상 생활에서도 무의식의 징후들을 찾아냅니다. 신경증

역시 이런 징후를 잘 보여 주는 예라고 하지요. 이 예들은 한결같이 우리가 자신도 모르는

사고와 행동을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걸 뜻합니다. 즉 무의식이 항상, 그리고 보편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옵니다. 인간은, 혹은 인간의 정신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

할되어 있으며, 의식과 무의식은 벽으로 단절되어 있어 의식은 무의식이 어떠한 상태인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이 특히 성욕과 연관되어 있으

, 특히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욕망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억압되고 감추어진다고 합니

.

여기서 핵심적인 것이 바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입니다. 한마디로 말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성교하고 싶다는 끔찍한, 그래서 억압된 욕망이 모든 인간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거쳐야만, 즉 용납될 수 없는 이 욕망을 억압하고 통제함으로써만 어린아이는 비로소

인간의 질서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고 하지요. 이 관문을 통과해야만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셋째 단계, 무의식 자체 내에 분열이 있다는 것을 인식합니다.

프로이트는 의식/무의식이라는 이론적 틀(위상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무

의식 개념은 두 가지 상반되는 것으로 분할됩니다. 왜냐하면 성적인 욕망이나 통제되지 않

는 충동이 무의식을 이룬다고 했는데, 이것을 억압하는 것 또한 의식된 행동은 아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의식은 그것이 억압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억압되

는 욕망이나 억압하는 기제 모두 무의식이란 것입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두 가지 개념으로 분할합니다. 억압되는 욕망과 충동을 '

시기(id)'라고 하며, 억압하는 기제를 '초자아(superego)'라고 합니다. 거시기는 '쾌락원칙'

따라 움직입니다. 초자아는 그것을 통제하려는 사회적 질서, 도덕적 질서가 내면화한 것입니

. 양자는 언제나 충돌합니다. 거시기는 쾌락을 찾아서 움직일 걸 요구하고, 초자아는 그러

면 안 된다고 금지합니다. 이 충돌을 화해시키고 조절하는 것을 자아(ego)라고 합니다. 이것

은 금지된 것을 따라 움직이는 거지요. 거시기와 초자아가 무의식인 반면, 자아는 대략적으

로 의식과 일치합니다. 결국 이전에 프로이트의 이론적 틀이 '의식/무의식'이었다면, 이젠 '

거시기/초자아/자아'로 전환된 것입니다.

 

무의식과 주체철학

무의식의 발견은 정신분석학 최대의 업적이고 정신분석학이 존재하게 되는 근거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이트의 발견이 근대 철학과 어떠한 관련이 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

면 무의식이란 개념은 철학의 영역에 들어오자마자 근대 철학의 기초를 해체하는 강력한 작

용을 합니다. 근대 철학에서 주체는 의식과 동일시되었고('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

'를 보세요), 통일성을 갖고 있었으며, 따라서 당연히 투명한 존재였지요. 또한 주체가 모

든 대상에 대해 판단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지배하는 중심이었습니다. 요컨대 근대적 주체는

의식적 주체며, 통일성과 투명성, 중심성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데카르트나 칸트에게서 아주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데카르트에게 세계가 확실한 것

''가 사고할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칸트에게 세계나 진리는 (선험적) 주체 안에 있는

것이었지요. 이런 특징은 흄에게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납니다. 그가 '자아'를 지각의 다발로

해체할 때조차도 그것은 지각이나 인상 또는 관념으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것들이 아

무리 변덕을 부린다 해도 판단의 중심이 '자아'인건 분명했지요. 그것들이 얼마나 지속적으

로 확실하게 반복될지는 모르지만, '자아'가 볼 수 없는 어떤 영역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

았습니다.

그런데 무의식이란 개념이 끼어들자마자 난감한 일들이 발생합니다. 첫째로, 이제 주체는

의식과 동일시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인간 정신의 커다란 부분은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

각하는 나' 이외에 '생각하는 나'가 알지 못하는 ''가 인간 내부에 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는 더 이상 투명한 존재가 아닙니다. 신경증 환자의 행동이나 꿈을 생각해

보세요. 내가 왜 하는지도 모르는 행동을 하고, 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장면이 의식이

잠든 사이에 눈앞을 스쳐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알지 못하는 내가 하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욕망을 내가 갖고 있다면, 그래서 무의식에 의식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이 처

져 있다면, ''는 나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게 됩니다. 무의식이란 의식의

접근이 봉쇄되어 있는 일종의 블랙박스인 셈이지요.

또 앞서도 말했지만, 인간의 정신 활동에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무의식이라고

합니다. 무의식은 의식에 영향을 끼치며 의식이 사고할 수 있게 하는 가이드라인이기도 합

니다. 즉 자아는 거시기와 초자아가 만들어 놓은 경계선 안에서 작동할 뿐입니다. 때로는 자

(의식)가 손을 미칠 수 없는 행동을 야기하기도 하고, 때로는 의식이 몰두할 자리를 만들

어 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자아(의식)가 중심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중심성을

상실하게 된 겁니다.

더 나아가 초자아는 내 욕망이 아닌, 그러나 내가 따라야 할 무엇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것은 분명히 '타자'입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으며, 내 의사나 욕망

과 무관하게 만들어진 것, 그리고 내가 받아들이도록 설득되거나 강제되는 것이 바로 초자

아로서 내 안에 장착됩니다. 나의 성과 이름이 그렇고, 또 내가 해선 안 될 ''들이 그렇고,

내가 남들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기 위해 받아들여야 할 도덕과 가치가 그렇습니다. 사회

적 질서를 의미하는 이 '타자'가 오히려 내 안에 장착되어 나를 움직이는 중심의 자리를 차

지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 혹은 '자아'라고 부르는 존재는 단일하고 일관된 성격을 통일성을 갖지 않는다

는 게 분명해집니다. '주체'는 서로 대립하며 상충하는 부분들로 분열되어 있다는 겁니다.

최소한 서로 대면하지 못하는 의식과 무의식, 서로 충돌하며 싸우는 거시기와 초자아로 나

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체란 통일적인 중심이 아니라 매우 이질적인 '복합체'이고, 자명한 출발점이 아니

라 하나의 '결과물'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인간'이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며, '주체'(초자아라는) '타자'가 요구하는 규칙으로 받아들여 행동함으

로써 구성되는 결과물이란 것입니다. 이로써 근대 철학의 지반이 해체되는 또 하나의 경로

가 그려지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프로이트의 발견은 애시당초 철학의 영역 외부에서 행해진 것이었고 철학적

주제와 관련된 것도 아니었지만, '주체철학'이라는 근대 철학의 지반을 철저하게 허물고 깨

뜨리는 발견이었습니다. 더구나 그가 제공하는 대양한 임상적 사례와 문헌적인 분석들은,

체가 일단 시작되면 끝까지 밀고 가도록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3.니체-계보학과 근대철학

계보학의 문제설정

니체만큼 극단적인 평가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니체 지지자

들은 그의 사상이야말로 이제까지의 모든 철학적 사고와 단절하면서 새로운 사고 영역을 여

는 위대한 사상이라고 합니다. 니체를 잘 모르긴 해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의 신랄하며

시적인 경구들에서 새로운 사상의 징후를 느끼고 찬탄합니다. 반면 니체 비판가들은 반동적

이고 파쇼적인 사상의 원천이요 집약이라는 극단적인 비난을 퍼붓습니다. 니체를 잘 모르긴

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공격적인 문구들이 만들어 내는 '초인'의 사상에서 파시즘

의 심증을 굳히곤 합니다.

물론 극단적인 평가가 어떤 것이 가진 장점과 단점을 증폭해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것의

모습을 정확히 아는 데 도움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만, 니체에게 가해지는 평가들은

이런 미덕을 전혀 갖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니체의 독특한 사상이 대체

무엇을 새로 제기하고 어떤 사고의 대지를 개척하는지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런 점

에서 니체에게서 예언자도 악마적 파시스트도 아닌 '철학자'의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근대 철학과 관련해서 니체를 다루는 것은 이런 목적에 매우 적합하리라고 생각

합니다. 그것은 니체가 말하는 '계보학'을 비판철학의 한 형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이러한

관점에서 니체를 해석한 것으로는, 니체 철학에 대한 탁월한 연구서인 들뢰즈의 Nietsche

and philosophy가 있습니다. 국역은 <니체, 철학의 주사위>, 인간사랑. 이하의 논의는 들뢰

즈의 이 책에 크게 빚지고 있습니다).

저는 '니체의 문제 설정은 무엇인가'라는 차원에서 그의 사상에 접근해 보고 싶습니다.

렇지 않으면 니체의 철학은 하나의 명구집이나 아포리즘 정도로 읽히거나, 문학적 수사에

가려 그의 고유한 문제의식이 드러나지 않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니

체 저작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니체의 철학에는 체계가 없다" "그는 어떠한 체계를 만들려

고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떠한 철학에 체계가 없다는 것은 앞뒤 안 맞

는 얘기를 이것저것 횡설수설한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물론 체계가 완결되어야 한다고 생

각하여 완결적이고 폐쇄적인 체계를 만들려는 발상과는 전혀 다른 것임을 전제한 위에서 말

입니다만. 이런 점에서 저는 좋은 의미든 아니든 간에 니체 철학에 체계가 없다는 말은 철

저하게 잘못된 오해라는 들뢰즈의 비판에 동의하고 싶습니다.

니체의 고유한 문제 설정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니체의 '질문 방식'에서 출발하는 것이 효

율적일 것 같습니다. 니체는 다음과 같은 질문 방식을 비판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식의 질문이 그것입니다. 그에 대해 누군가가 "이른 봄 거리를

화려하게 수놓는 벚꽃이나 저녁에 곱게 지는 노을, 늘씬하게 빠진 젊은 여인의 몸매가 아름

답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합시다. 만약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라면 이렇게 대꾸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이네. 그것을 모두 아름답다고 한다면 거기에 공통된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바로 그게 무어냐는 걸세." 이는 아름다움의 '본질'이 무엇이냐

는 질문입니다. 즉 꽃이나 노을, 몸매 같은 것들은 가상이고 그 근저에는 그것을 아름답게

만드는 본질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은 플라톤 이래 서양 철학 전체의 주된 흐름이

되어 왔던 질문 방식입니다. 흔히 서구 형이상학의 뿌리로 간주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니체는 이러한 질문을 바꾸어 버립니다.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

떤 것이 아름다운가'라고 질문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는 '진리란 무엇인가'를 묻는 게 아니라

'진리란 어떤 것인가'를 묻습니다. 이는 진리의 예를 들라는 요구는 아닙니다. 핵심은 '진리

'를 포괄적으로 정의할 걸 요구하는 플라톤식 질문과 달리, 이는 '진리라는 것을 사로잡고

있는 힘은 대체 어떤 것인가, 진리를 점령하고 있는 의지는 어떤 것인가, 진리라는 것 속에

는 어떤 것이 표현되거나 숨어 있는가'를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미'를 발견하는 것은 주어진 대상을 점령하고 있는 '(force)'을 아는 것입니다. 그리

고 어떤 것이든 지배적인 힘과 피지배적인 힘이 결합해 있습니다. 어떤 힘이 지배적인가 아

닌가를 구별해 주는 것이 '의지'라고 합니다. 역으로 이러한 의지는 힘들간의 관계에 의해서

정의되는 셈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이 의지가 힘들간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니체는 이 의지를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라고 합니다. 줄여서

'권력의지'라고 하겠습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의미에서 권력을 추구하는 의지나 욕망하는 의

지와는 별로 상관이 없음에 유의해야 합니다.

한편 ''에는 능동적인(active) 힘과 반동적인(reactive) 힘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반동

적이라는 것은 진보에 반대되는 말인 '반동'이란 뜻이 아니라 active에 대한 반대를 말합니

. active'작용적인 힘'이고 reactive'반작용적인 힘'이라는 뜻입니다. 후자는 자기

에게 가해지는 어떤 힘에 대해 반응하여 반작용하는 힘을 말합니다.

다른 한편 의지에는 긍정적인 의지와 부정적인 의지가 있다고 합니다. 작용적인 힘에 대

응하는 것이 긍정적인 의지고 반작용적인 힘에 대응하는 것이 부정적인 의지지요. 대상 속

에서 작동하고 있는 '의지'를 인식하는 것이 바로 가치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긍정적인

의지와 부정적인 의지의 관계를 파악하는 것이 '가치 평가(evaluation)'입니다.

요컨대 니체는 철학에 '의미''가치'를 새로이 도입하는 것입니다. 더불어 '''의지'

란 개념을 도입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는 이러한 의미나 가치를 파악하는 새로운 사고 방

법을 도입합니다. 그것은 개념이나 사물들을 의지의 '징후'로 보는 것이고, 어떤 사물이나

개념을 권력의지에 연루시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칸트가 '선험적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연구하는데, 니체는 왜 칸트는

그런걸 연구하는가 질문하는 것입니다. 즉 칸트에게 선험적 종합판단이 왜 필요한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로써 '선험적 종합판단'을 통해 칸트가 무엇을 하려고 (의지)하는지 드러나리라

는 것입니다. 이로써 드러나는 게 바로 칸트 철학에 내장되어 있는 가치요 권력의지라는 겁

니다.

계보학이 정의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지요. 그는 진정한 '비판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그가 보기에 칸트의 비판철학은 진정한 비판철학이 아닙니다. 가치와 의지에 대

해 묻지 않고 '순수한' 인식 능력만을 '순수하게' 인식하려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질문

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진정한 비판철학은 어떤 대상의 가치와 그것이 의미하는 의지를 파

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니체는 진정한 비판철학으로서 '계보학'을 제시합니다. 계보학이란 어떤

대상이나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 '

선하다' '악하다' 혹은 '' '거짓'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봄으로써, 그것이

어떤 의지의 산물인지를 보려고 합니다. '' '거짓' 같은 자명해 보이는 개념을 권력의

지에 연루시켜 어떤 권력의지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밝혀 내는 것이 바로 계보학의 과제란

겁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필수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가치에 연결하는 것입니

. 다른 하나는 그것을 더 밀고 나가 가치 자체를 만들어 내는 것, 따라서 가치를 이해하려

면 그것에 조회해야 하는 기준점으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권력의지지요. 이런 점

에서 계보학이란 '가치의 철학'이요 '권력의지의 철학'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약하면, 니체는 힘과 권력의지란 개념을 핵심 개념으로 도입함으로써, 주어진 대상의 의

미와 가치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평가할 수 있는 새로운 '비판철학'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이것이 니체의 새로운 질문 방식, 새로운 문제 설정이 도달한 창조적인 귀착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근대적 비판철학

가치의 철학, 권력의지의 비판철학으로서 계보학은 '자명하고 확실한 것'을 추구하려는 근

대 철학에 대해 근원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왜 그들은 자명한 것을 추구하는가, 자명하고

확실한 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명하고 확실한 것을 통해 그들은 무엇을 하려

고 하는가"라는 질문을 말입니다.

니체가 보기에 '자명한 것'이나 '확실한 것', '절대이성' 등은 모두 어불성설(contradictio

in adjecto)입니다. '자명한 것'이란 말이 결코 자명하지 않은데, 그 자명하지 않은 말로써

어떻게 자명한 것에 도달하겠느냐는 겁니다. 확실하지 않은 말로 확실한 것에 어떻게 도달

하겠느냐는 것이고, 절대적이지 않은 말로 이루어진 '절대이성'이 과연 절대적이겠냐는 겁니

. 마치 '사물 자체'에 대해 이미 말하고 있으면서, 사물 자체에 대해 아무것도 인식할 수

없다는 말이 어불성설이듯이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명한 것'을 찾아 나선다면,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자명하고 확실하

"고 말한다면, '자명한 것'을 통해 무언가 하려는 바가 있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자신의

주장이 자명하고 확실하다는 주장을 통해 자기 주장을 정당화하려 하거나(데카르트도, 칸트

도 모두 그렇습니다), 당신 주장은 자명하지 않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고 아무 소용없다고

거부하고 반박하려 하겠지요. 혹은 자명한 것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면 어떤 사상도, 지식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효과를 갖겠지요. 그렇지 않으면 '자명한 것'을 추구하는 자신의 사

상이야말로, 심지어 아직 자명한 데에 이르지 못했다 해도, 최고의 가치를 갖는 것이고,

를 위해선 다른 어떤 방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확신을 주겠지요. 이런 걸 니체는 '진리의지

(진리에의 의지)'라고 합니다.

니체는 근대 철학의 창시자와 재건자인 데카르트와 칸트를 명시적으로 비판합니다. 이를

테면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자명하고 확실하다고 했는데, 이는 '

법의 환상'이라고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고 하려면 '생각하는'이라는 말의 주어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생각한다'의 주어인 ''는 존재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저기 깔려 있다는 겁니

. 이는 동사를 사용하려면 주어가 있어야 한다는 문법이 만들어 낸 환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결코 자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각'이라는 것은 내가 원해

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이 원해서 나오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 무엇이란

당연히 권력의지겠지요. 이러한 관점에서 니체는 이제까지 정당성이 보증된 어떠한 철학자

도 없다고 합니다. 자명한 확실성은 없는 것이고 모든 것은 애초에 의지가 작동하는 가치만

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자명한 것'을 추구하려는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 자체는 애시당초 잘못된 것이며

어불성설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되었던 ''란 주체는 문법의

환상에 불과하며, 반대로 '내가 하는 생각'이란 권력의지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한편 니체는

의식되지 않은 것, 무의식적이고 능동적인 힘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자아(Self)'를 구성한

다고 합니다.

이러한 비판은 근대 철학의 자명한 출발점이었던 주체 개념에 대한 해체 작용을 합니다.

즉 근대적인 주체 개념은 더 이상 자명하지 않으며, 또한 출발점이 아니라 권력의지가 구성

해 내는 결과물이란 것입니다.

다른 한편 자명하고 확실한 것에 대해 퍼붓는 니체의 공격에는 '진리'라는 목적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카르트 이래 진리란 자명하고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자명한 주체뿐만 아니라 자명한 판단, 자명한 지식이 불가능하다면 대체 진리란 게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도 그는 질문을 다른 방식으로 던집니다. 즉 계보학적

방법으로 질문합니다. "어째서 진리가 필요한가, 어째서 진리를 가지려 하는가"라고 질문

하는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왜 지식은 꼭 진리여야 하는가"라고 묻는 것입니다. 진리의 '

의미''가치'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물음에 대해 니체는 "진리는 없고 진리의지만이 있다"고 말합니다. 진리를 욕망하

게 하고 추구하게 하는 의지가 바로 진리의지입니다. 더불어 그는 이러한 진리의지가 어떤

가공할 효과를 야기할 것인지도 분석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것은 '유혹'입니다. 내가 찾

고 있는 것은 진리라는 환상으로의 유혹이고, 내가 추구하고 있는 진리에 다른 거짓된 지식

을 복종시켜야 한다는 의지로의 유혹이며, 또한 거짓으로부터 사수되어야 한다는 착각으로

의 유혹이며, 이걸 사수하기 위해선 다른 거짓을 전파하는 자들과 결연히 싸워야 한다는 신

념으로의 유혹입니다.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바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그것은 호르케 수도사의 진리에 대한 신념과 의지가 빚어 낸 것입니다. 그가 보

기엔 '코미디'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거짓이었습니다. 다만 난감한 것은 중세 철학이 의존

하고 있는 대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코미디에 대한 철학적 문헌을 남겼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더 나쁜 것은 감추어 둔 그 문헌을 찾아서 읽으려는 사람들이었고, 이들에 대해 호

르케 수도사는 진리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으로 죽음이란 저주를 내리는 것입니다. 윌리엄

수도사(중세 후기의 대표적인 유명론자 오컴의 이름이 윌리엄이었지요)가 그 사건의 주범이

호르케임을 찾아냈을 때, 호르케는 수도원과 함께 그 책을 불살라 버립니다. 자신의 '죄 많

' 육신도 함께 말입니다.

또한 니체는 "진리란 반박되지 않는 그러한 종류의 오류"라고 말합니다. 참이냐 거짓이냐

하는 판단은 그것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진리의지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윌리엄 수도사가 아무리 설득한들 호르케 수도사가 결연히 지키려고 하는 신념을 반박할 수

는 없을 것이며, 그것이 거짓임을 믿게 할 수도 없으리란 것입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

가지겠지요. 그렇다면 진리만큼이나 많은 거짓이 우리들 삶의 조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리하여 지식에 대한 질문 자체가 바뀝니다. 근대 철학에서는 오직 진리일 때만 지식이

정당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즉 진리(과학)가 아니라면, 더군다나 진리(과학)을 추구하지

않는다면 어떤 지식도 있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거기선 어떤 지식이 참이냐 거

짓이냐란 반박되지 않는 종류의 거짓이라면 대체 이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체처럼 진리가 아니라 진리의지만이 존재한다고 하면, 그래서 지식이나 판단을 진리의지란

차원에서 파악하게 되면, 어떤 지식이 진리인가를 여부가 아니라 그 지식이 어떤 가치를 지

향하고 있는가, 어떤 효과를 의지하고(willing) 있는가 하는 게 중요하게 됩니다. 결국 이 질

문을 통해 지식의 문제는 그것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며, 어떠한 효

과를 야기하는가 하는 문제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니체는 칸트가 완성한 근대적 윤리학에 대해, 즉 계몽주의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비판의 망치를 휘두릅니다. 칸트는 우리가 더 이상 누군가를 따르기를 원치 않을 때, 신이나

국가, 아버지를 따르려 하지 않을 때, 우리 자신을 따르도록 요구한다고 합니다. (실천)이성

이 바로 이 새로운 복종을 지휘하는 새로운 군주인 셈이지요. 칸트가 말하는 계몽주의적 이

성은 외부의 강력한 권위들이 무너지게 되자 새로이 권위를 내부로 옮겨 놓은 것이란 겁니

. 니체에 따르면 이는 결국 우리를 유순하게 복종하도록 설득하는 작용을 할 뿐이라고 합

니다. 따라서 복종 속에서만 인간을 합리적 존재로 나타나게 하는 계몽주의적 이성은 인간

의 삶을 지배하고 통제하려는 권력의지를 표현하는 것인 셈입니다.

 

4.근대 철학 해체의 양상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합시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니체는 의미와 가치, 힘과 권력의지란

개념을 통해 근대 철학의 출발점과 목적지를 해체합니다. 근대적 문제 설정의 지반이었던

주체와 진리를, 그리고 그에 기반을 둔 윤리학을 철저하게 해체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 결과

새로운 비판 철학으로서 계보학을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해체 작업은 맑스나 프로이트의 그것과 달리 지극히 공격적인 것이었습니

. 맑스에게 중요한 것은 혁명적 실천의 문제였고 그것을 철학적으로, 이론적으로 사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포이어바흐나 헤겔에 대한 비판은 그런 한에서 필요한 최소한으로 제한된 것

이었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는 근대 철학 전반에 대한 비판은 시도하지 않습니다. 오히

려 그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근대 사회에 대한 이론으로서, 또한 이데올로기로서 정치경제

학에 대한 비판이었으며, 근대 사회 자체에 대한 실천적 비판(혁명)이었습니다. 따라서 근대

철학에 대한 맑스의 철학적 비판은 근본적이지만 광범하거나 전면적이진 않습니다. 어찌 보

면 근대적 문제 설정에 대한 그의 비판은 매우 조용하고 '절약적'입니다.

프로이트의 '비판' 역시 근대 철학에 대한 비판은 전혀 의식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성식하고 탁월한 정신과 의사로서 자신의 작업에 충실했던 셈입니다. 다만 그가 던진

돌멩이가 바로 근대 철학의 머리에 떨어졌던 것뿐이지요. 그는 철학의 영역에서 자기가 해

체한 게 무엇인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반면 니체의 비판은 극히 명시적일 뿐 아니라 매우 공격적입니다. 그가 겨냥하고 있는 목

표는 바로 근대 철학 전체, 아니 좀더 확대해서 말한다면 플라톤 이래의 서양 철학 전체입

니다. 그는 이 타깃을 향해 강력한 포탄을 화려하고 요란스럽게 쏘아 댑니다. 이런 의미에서

니체는 자기가 해체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즉 자기의 철학적 작업이 야기하는 결과가 어

떤 것인지 매우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는 그것이 근대 철학

비판이라기보다는 소크라테스 이래 서양 철학 전반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했지만 말입니

. 바로 이런 점에서 근대의 경계를 넘어서려는 많은 탈근대적 철학자들에게 니체는 가장

유용하고도 훌륭한 벗이 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들 세 사람이 근대적 문제 설정을 해

체하는 방식의 공통성과 차이를 간략히 일별해 보는 것도 무용하진 않을 것 같군요. 한마디

로 말하면, 공통성은 주체와 진리라는 개념을 기둥으로 만들어진 근대적 문제 설정 자체를

해체한다는 점입니다. 정도의 차이가 적지 않지만 거기 내재한 근대적 사고방식인 주체철학

과 과학주의, 그리고 계몽주의에 대한 비판과 거부 역시 공통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주체의 개념과 관련해서 이들이 보여 주는 공통성은 별도로 지적될 만한데, 그것은

주체란 자명한 출발점도 아니며 통일성을 갖는 확고한 중심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반대로

그것은 주체 외부의 관계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며, 이질적인 복합체라는 것입니

. 이런 결론을 통해 이제 주체는, 그리고 그 주체의 사고와 행동은 그것을 만들어 내는 요

소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동태적으로 파악해야 할 대상이 됩니다.

반면 차이는 한마디로 해체를 수행하는 데 사용한 개념이 다르다는 것이며, 그 결과 창출

해 내는 새로운 문제 설정 역시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맑스의 경우 핵심적으로는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대상과 주체, 진리와 정치의 문제 전반을 해체하고 다시 정의합니다. 그 결과

역사유물론이라는 새로운 문제 설정을 형성합니다. 프로이트의 경우는 무의식이란 개념을

통해 특히 주체 개념을 철저하고 강력하게 해체합니다. 그리고 이 무의식을 대상으로 하는

이론으로서 정신분석학을 만들어 냅니다. 니체는 의미와 가치, 힘과 권력의지란 개념을 통해

근대 철학의 뿌리를 드러내고 해체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해체의 사고 방법을 좀더 발전시

켜 계보학이라는 또 하나의 비판철학을 만들어 냅니다.

이들이 보여 주는 공통성은 이들이 서 있던 근대적 지반의 공통성에서 기인하는 것입니

. 즉 이들이 사용하는 개념과 방법은 달랐지만, 그들이 서 있던 지반은 공통된 것이었고,

따라서 해체의 결과는 공통성을 강하게 갖게 됩니다. 반면 이들이 보여 주는 차이는 근대적

지반에 대한 입장과 태도의 차이에서, 그리고 그것을 해체하는 데 사용한 방법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차이는 각자가 집중적으로 착목하고 있던 지점, 그리고 힘을 모

아 돌파해야 할 지점이 달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은 이후 현대 철학자나 이론가들에 의해 근대 철학의 경계를 넘어서는 데

강력한 도구로 사용됩니다. 이들의 차이는 그 도구의 다양성과 돌파 지점의 다수성을 의미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리하여 근대 철학이라는, 서양 철학의 거대한 흐름을 넘어서는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5. 언어학과 철학혁명-근대와 탈근대 사이 1.언어학과 철학

서구의 현대 철학은 언어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C.Levi-Strauss)

라캉(J. Lacan) 등을 위시한 프랑스 현대 철학자들은 물론, 비트겐슈타인이나 러셀, 프레게

(G. Frege), 오스틴(J. Austine) 등 분석철학으로 묶이는, 하지만 다소 이질적인 게 분명한

여러 철학자들도 그렇고, 하이데거와 그의 사상에 의존하는 해석학도 언어에 대한 분

석과 사고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철학에 대한 강의에서 언어학을 언급하는

것은 심정적으로 충분히 정당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정적 동조'만으로 충분히 정당화할 만큼 철학은 너그럽지 못한 것 같습니다.

부분의 사람이 자명하다고 생각한 것조차 결코 그대로 놔두는 법이 없는 게 철학이고 보면

말입니다. 또한 언어학과 철학이 이처럼 밀접한 이유는 단지 정당화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후 언어학을 통해 철학이 새로이 사고하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따로 언급할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아마 여러분 가운데도 고등학교 시절, 특히 봄날 점심 먹고 난 직후인 5교시에 꾸벅꾸벅

졸다가 야단맞은 경험이 있는 분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수학이나 국민윤리처럼 건조하고

재미없는 시간이라면 더 그렇지요. 수업을 하던 선생님은 학생을 불러 묻습니다. "너 왜 잤

?" 하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자고싶어 잔 것은 분명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의가 재미없거나 식곤증 때문에 잠이 든 거겠지요. 그래서 이런 사정을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 게 아닙니다. 저는 '자진' 겁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백이면 백 한결같이 말할겁니다. "변명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자지긴 뭘 자져. 넌 한글

도 몰라?" 맞는 말입니다. 우리말에는 '자다'의 수동형이 없습니다. '자지다'란 말은 없

습니다. 그러나 자다 불려 나간 친구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없습니다. 자기가 자려고

해서 잔 게 아니라 오는 잠을 어쩔 수 없어서 자게 된 거라는 거지요.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는 '잤다'는 말을 써야만 합니다. 마치 자기가 선택해서 잔 것처럼 말입니다. 이는 매우

아이러니한 사실을 보여 줍니다. 즉 내가 선택해서 자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는 내가 잔 거

"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는 우리말에 '자지다' 란 말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봅시다. 저는 가끔 내 삶을 내가 '사는' 건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될 때

가 있습니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숨 돌릴 틈 없이 꽉 짜여 있고, 그걸 제때 하지 못하

면 여기저기서 당장에 전화가 오거나 욕을 먹지요. 또 좋으나 싫으나 맡겨진 일을 할 수밖

에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저는 "이건 내가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살아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비슷한 사태가 발생합니다. 우리말에서 '산다'는 말은 자동이지요. 따라

'살아진다' '살아졌다'는 식의 수동형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가끔 '살아진다' '살아졌다'

는 말이 눈에 띄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이는 일본식 표현을 잘못 번역한 것입니다. '문법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것이죠. 영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I am lived'라고 쓰지는 않지

. 우리는 남과 이야기를 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혼자 생각할 때조차도 언어를 통해야만

합니다. 언어 없인 사고하는 것도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그 언어 자체에 '살아진다' '자지다

'라는 말이 없으니 어쩌겠습니까? 항상 '내가 산다' '내가 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요.

'내가 산다'는 것이나 '내가 잔다'는 것은 모두 ''라는 주체가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잠의 주체, 삶의 주체는 ''라는 말입니다. ''가 아니라면 대체 누가 자고 누가 사는 것

이냐는 질문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마치 ''가 없는 '생각한다'라는 게 어떻게 가능하겠

느냐는 질문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데카르트처럼 "내가 산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언어 자체에 '내가 그 삶의 주체요 주인이다'라는 내용이 내장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말하다' '생각하다'란 말도 마찬가집니다. 말은 애가 하는 것이고, 생각

역시 내가 하는 것이지요. 이것은, 우리가 사용하려면 지켜야만 하는 문법에 이미 내장되어

있어서 거기에 따라야만 하는 규칙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원칙이 확실한 것은 사실

문법적인 규칙 때문이란 말도 가능합니다. 다른 식으로 말할 수 없고, 그래서 다른 식으로

사고할 수 없는 겁니다. 확실한 것은 다른 식으로 사고할 수 없는 것이란 뜻이나 말입니다.

주어 없는 문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주체'의 존재는 확실하다고 할 수 있지요. 여기서

언어와 철학의 관계를 바라보는 하나의 입장이 나타납니다. 하나는 니체나 (초기의) 비트겐

슈타인이 지적하듯이 철학적 확실성이란 문법의 환상이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나아가 분석

철학자들이나 논리실증주의자들이 극단적으로 주장하듯이 모든 철학적 문제는 언어의 문제

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철학적 문제란 바로 확실한 것을 찾는 문제거나, 주체와 대상 간의

관계 등에 대한 문제인데, 이는 모두 언어가 제공하는 것(일종의 환상)이며, 따라서 언어적

인 문제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문제가 모두 언어에서 야기되는 거라

면 언어상의 혼란을 제거하고 일관되게 만들면 모든 철학적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생각합니

. 심지어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일상 언어가 구제불능이라면, 어떤 편견도 배제된 일관되

고 명확한 언어를 만들고자 합니다. 수학적인 기호들로 말입니다. 다른 한편 언어가 내장하

고 있는 이런 특징은 언어마다 상이합니다. 다시 말해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할 수 있

는 것도 달라지고, '확실한 것'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번역을

할 때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 지바고>로 유명한 파스테르나크의 작품 가운데 My sister life라는 시집

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나의 누이의 인생'이 되고, 약간 먹을 부려 번역하

'삶이여, 나의 누이여'가 됩니다. 그런데 이 시집을 체코 말로 번역을 하려 하자마자 문

제가 생깁니다. 러시아어에서 life의 성은 여성입니다. 그러니 'My sister'와 동격이 될 수

있었지요. 그러나 체코어에서는 life가 남성이랍니다. 그러니 'My sister'와 동격이 되는 건

문법상 불가능합니다. 굳이 옮기려면 'My brother life'로 번역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애초의 시집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가지리란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여성으로

표현되는 삶에 대한 글과 남성으로 표현되는 삶에 대한 글은 최소한 누이와 형제가 다른 만

큼은 다를 게 틀림없으니 말입니다.

만약 작문 시험에 '삶이여, 나의 누이여'란 제목으로 글을 쓰라는 문제가 나왔다면, 그건

당연히 '삶이여, 나의 형제여'란 제목이 나왔을 때와 전혀 다르게 써야 할 것입니다. 첫 번

째 것에서는 삶이 가지고 있는 여성적인 이미지, 여성적인 메타포를 주로 사용하겠지만,

번째 것에서는 역동적이고 박력 있는 남성적인 이미지로 삶을 사용해야 하겠지요. 마찬가지

, 삶을 남성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체코인)과 여성으로 표현하는 사람들(러시아인)이 다르

게 사고하리란 건 쉽게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언어마다 사고를 제한하는 나름의 규칙이 서로 다르게 내장되어 있다면, 각각의

언어는 세상을 나름대로 파악하는 방법이기도 하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러한 사고 방법은

이전 사람들이 세상을 보던 방식이 언어에 새겨진 채 남아 있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

. 어차피 언어에 새겨진 규칙과 사고법에 따라 사고할 수밖에 없다면, 언어가 확실한 것을

제공해 주니 못하니 하는 것은 부차적인 존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사람들이 어떻

게 사고하고 판단하는지를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통해 파악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가능하

게 됩니다.

여기서 언어와 사고, 언어와 인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또 하나의 입장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언어 속에서 사고할 수밖에 없다면, 결국 이 언어를 연구함으로써, 또는 사람

들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의 삶과 사고에 대해 알 수 있다는 입

장입니다. 소쉬르(F. Saussure)나 촘스키(N. Chomsky)의 언어학이 이런 방향에 크게 영향

을 미쳤는데, 그 영향 아래서 자신의 사고를 형성한 구조주의자들은 언어를 통해 인간에 대

해 다시 사고하려고 합니다. 이와는 다른 흐름으로,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언어적 실천을

바탕으로 새로운 문제 설정을 만들어 냅니다. 또한 오스틴과 같이 의미를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으로 환원해서 파악하려는 입장도 있습니다.

이제부터 주로 주목할 것은 이 두번째 입장과 연관된 견해들입니다. 이는 언어와 의미뿐

만 아니라, '주체'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가르쳐 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근대

철학을 해체하는 또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2.훔볼트-언어학적 칸트주의

선험적 주체의 언어학

언어학과 철학이, 언어와 사고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그에 대한 이

론을 가장 먼저 체계화한 사람은 훔볼트(W. von Humboldt)입니다. 외교관이었던 그는 언어

에 대한 관심에 덧붙여 직업적인 이유로 다수의 외국어를 비교 연구할 수 있었고, 그걸 통

해 민족마다 고유한 사고방식이 각 언어에 새겨져 있으며, 그것이 개인들의 사고를 제약한

다는 사실에 일찍 주목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의 이론을 몇 가지로 요약하며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언어는 통일적인 유기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단어는 다른 단어를 전제로

하며, 또한 단어를 결합하여 문장을 만드는 규칙 전체를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아까

말했던 ''이란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러시아어에서 그것은 남성명사와 함께 사용할 수 없

습니다. 나아가 남성적인 이미지를 갖는 다른 단어들과도 함께 사용할 수 없습니다. 혹은 '

자다' '먹다' 같은 단어와도, '길쭉한' '모자' 같은 단어와도 결합할 수 없지요. '살다' '고통

스럽다' '아름답다' 등 특정한 단어와만 결합할 수 있지요. 즉 그것은 다른 단어들과 이마

하나의 유기적인 그물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나의 단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 의미망 속에서

만 가능하지요.

둘째, 그는 "언어는 정신적 활동"이라고 말합니다. 즉 언어는 활동의 결과물(Ergon)이 아

니라 "분절된 음으로서 인간의 사상을 표현하는 영원한 활동(Energeia)"이라는 겁니다. 따라

서 언어는 인간이 하는 활동 없인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는 전체적으로 언어가

사유 활동에서 독립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유하는 인간의 활동 없이도 언어가 존재

할 수 있는 실체라는 (그 당시의) 주장을 비판합니다. 즉 언어는 사유로부터 독립해 있지만,

동시에 사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언어는 활동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소쉬르나 구조주의자들의 견해에 대한 비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라틴

어를 예로 들어봅시다. 라틴어는 지금 사어(死語)지요. 즉 라틴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

들은 없습니다. 여기서 실체론자나 구조주의자들은 말할 겁니다."그래도 라틴어는 의연히,

그리고 예전대로 남아 있지 않은가" 하고 말입니다. 이에 비해 훔볼트는 이렇게 대답할 것

입니다. "예전대로 남아 있는 건 분명하다. 그건 언어가 사유로부터 독립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도 의연히 남아 있는 것은 고문서나 예전에 라틴어로 쓰인 문헌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라틴어를 읽을 필요마저 사라진다면 누가 라틴어를 배우겠는가? 더 이상 아무

도 그걸 배우지 않는다면 라틴어가 어떻게 존재할 수 있겠는가?" 셋째, 그는 "모든 언어는

하나의 세계관"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을 빌리면 "모든 언어는 현실 세계를 사고로 전환하

는 각각의 고유한 방법이 있다. 그것은 세계를 고유한 범주의 망으로 포섭하며, 판단을 만들

어 주는 고유한 문장형식을 제공한다. 누구나 모국어라는 자신의 안경을 통해 일정한 색

조 속에서 세계를 바라본다"고 합니다.(<카비어어 연구 서설>). 쉽게 말해 모국어는 세상

을 바라보는 안경이라는 겁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우리는 보통 무지개가 일곱 가지 색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진짜 무지개

색깔이 일곱 개일까요? 사실 정확히 보면 색과 색 사이의 경계선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약 주황과 빨강 사이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은 빨강과 주황 사이에 주홍이라는

색을 더 넣어서 무지개 색깔은 여덟 개라는 말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무지개 색깔이 더

적은 경우도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쇼나족은 무지개 색을 네 가지로 표현한다고 합니다.

지개 색이 4개라는 말이죠. 또 라이베리아의 바사족은 무지개 색을 딱 두 가지로 본다고 합

니다. 아프리카가 아니더라도 19세기까지 독일에서는 주황색과 보라색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독일어란 안경을 통해서 독일인이 본 무지개는 분명 다섯 가지 색깔이었

던 것입니다.

넷째, 동일한 국민의 언어 또는 한 민족의 언어에는 비슷한 종류의 주관성이 새겨져 있다

고 합니다. 따라서 각각의 언어는 나름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이나 국민은 각각 고유한 색깔의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죠. 모국어

라는 안경 색깔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그 눈에 들어오는 세상도 국민/민족마다 다르다는 것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외국어를 습득하는 것은 상이한 세계관을 흡수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컨대 우리말에서 '결혼하다'라는 말은 목적어를 갖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어에서

marry라는 말은 목적어를 갖지요. "He married me"란 문장을 직역하면 "그는 나를 결혼

시켰다"지요. 우리말에선, ''가 강제로 결혼하도록 한 아버지를 지칭한다면 모를까, 이런

문장을 사용 할 수 없습니다. "그는 나와 결혼했다"가 정상적인 말이지요. 이처럼 언어가

다르다는 것은 결혼에 대한 사고방식이 다름을 보여 줍니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각각의 모국어에 새겨져 있는 사고구조는 각 민족정신에 고유한 개성

을 갖는다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언어는 '민족정신의 외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민족언어는 민족정신이며, 민족정신은 민족언어"라고 합니다. 이런 얘기는 일제 시

대의 조선어 정책을 두고 종종 들어 본 말일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일본어에서 '~()레루''~함을 당하다'란 의미를 갖는 수동의 조동

사지요. 그런데 일본어에는 이 수동의 조동사가 매우 광범하게 사용됩니다. '오다' '가다' '

되다' 같은 자동사에도 수동을 붙여 사용하고 '(전화를) 걸다' 같은 동사에도 붙여 (전화가

걸려와) 귀찮거나 불리한 경우를 표현하며, 심지어 사역동사에도 붙여 사용합니다. 우리 같

으면 '했다'고 할 것도 '하도록 함을 당했다'는 식으로 표현합니다.

반면 우리말의 '하게 하다''시키다'라는 말에는 수동의 의미를 갖는 어미를 붙일 수

없습니다. '하도록 함을 당했다''시켜지다'라는 표현은 어법에 안 맞습니다. 물론 한

국어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일어 책을 번역하면 이런 문장을 그대로 직역하지요. '되어지다'

마찬가집니다. '시켜진다'라는 말에는 내가 누구를 시킨다는 것 자체가 내가 한 것이 아니

라 누군가 나에게 강요해서 할 수 없이 하게 된 것이라는 뉘앙스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

니다. 이는 내가 시키는 행위조차도 다른 요인에 귀속하는 태도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시키

는 건 시키는 것일 뿐이라는 식의 사고방식이 새겨진 언어와 크게 대조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섯째, 그는 "주체(subject)의 활동은 사유 속에서 대상을 형성한다"고 합니

. 나아가 훔볼트는 "이 사유는 언어를 통해서 행해지기 때문에 결국 대상이란 언어를 통

해서만 형성된다"는 것을 추가합니다.

예컨대 치즈의 종류를 들어 봅시다. 요리를 즐기는 프랑스에는 치즈의 종류가 700가지나

된다고 합니다. 용도와 맛, 만드는 방법 등에 따라 극도로 자세한 치즈의 이름이 다 있는 것

입니다. 이는 아마 치즈의 맛을 즐기는 그들의 생활에서 기인하는 거겠지요. 반면 우리가 알

고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일반 치즈와 피자용 치즈 등이 전부고, 더 나아간다 해도 해태 치즈,

매일 치즈 등과 같은 고유명사 이상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그 700가지의 치즈를 맛보고

이름을 배운다 해도 실제로 치즈 맛에 둔한 우리로서는 미세한 차이를 별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민감한 민족일수록 미세하고 많은 대상들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바로 언어를 통해서 말입니다.

주체의 활동이 대상을 형성한다는 이 명제는 "주관은 대상이 형성하는 것이고 판단은 주

관의 작용"이라는 칸트의 견해를 그대로 빌려 온 것입니다. 즉 훔볼트가 칸트의 견해에 크

게 영향받았음을 보여 줍니다. 훔볼트는 선험적 주체가 사고의 기초라는 칸트의 견해에 명

시적으로 동조합니다. 그리고 바로 언어(모국어)야말로 주체들이 그 위에서 사고하는 일종의

'선험적 구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어떠한 사고도 언어(모국어)를 빌리지 않으면

불가능하며, 따라서 모든 사고는 모국어에 내장된 세계관 속에서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적 활동과 언어는 결합될 필요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후 훔볼트의 사

상을 계속 발전시킨 바이스게르버(L. Weisgerber)는 위의 말과 관련하여 언어(모국어)"

세계를 변화시켜 인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세계를 영유하고 전유하는 방식이며 내적 조

"이라고 말합니다.(<모국어의 정신 형성>).

따라서 만약 칸트가 훔볼트의 연구를 참조할 수 있었다면 순수오성의 선험적 형식을 '

'라고 하지 않고 '언어'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사실 그게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훔볼트의 칸트주의는 매우 생산적인 보충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반면 훔볼트처럼

언어구조 속에서 사고와 행동을 이해하려는 노력도 또한 정확하게 칸트적인(근대적인) 선험

적 주체를 구성하는 결과로 귀착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훔볼트는 언어(모국어)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사고구조를 제약

하며, 그래서 세계를 파악하는 관점을 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써 언어와 사고구

조 간의 긴밀한 관계가, 그리고 사고에 대한 언어의 선차성과 우위성이 분명해집니다. 이러

한 명제를 훔볼트는 칸트의 선험적 주체라는 개념에 이어 붙입니다. 즉 언어란 그걸 사용하

는 주체들 모두에게 공통된 사고의 기반이며, 선험적인 구조라는 것입니다.

종종 '구조주의의 선구자'로 지칭되는 훔볼트는 칸트적인 선험적 주체를, 결국 새로운 주

체철학을 언어를 통해 재건하고 있는 셈입니다. 더불어 훔볼트 역시 칸트와 마찬가지로 선

험적 구조로서 언어의 연구가 바로 진리에 이르는 길이란 확신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언어학은 인간에 대한 과학, 인간이 어떻게 사고하고 어떻게 질서를 만들어 내는가를

연구하는 과학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훔볼트의 언어학은 칸트적인 의미에서 본 근대성

안에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문법의 논리학, 논리학의 문법

지금까지 언어와 사고의 관계에 대해 말했는데, 이것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재미있는,

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가 언어에 의해, 언어적

규칙에 의해 제약되는 것을 보았지요? 언어적 규칙을 대략 '문법'이란 말로 대표해서 씁시

. 그때 문법적 규칙이 다르다면 사고 규칙도, 사고 내용도 달라진다는 것은 앞서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점을 잊고 데카르트처럼 문법적 규칙에 불과한 것을 자명하고 확실한 진리라

고 생각하는 순간, 문법의 환상에 빠져 버린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논리학에 대해서도 이제는 달리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어느 경우나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사고의 법칙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논리학 역시 결코 문법

적 규칙과 무관한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 오히려 문법적 규칙을 일반화하여 사고 규칙

으로 정립한 것이 바로 논리학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논리학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발전했는가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해킹(I.

Hacking)<철학에서 언어가 왜 중요한가>라는 책에서, 서구의 논리학과 철학 분야에 가

장 큰 영향을 끼친 중요한 책으로서 <포르 루아얄 논리학>을 꼽습니다. 포르 루아얄

(Porr-Royal)은 프랑스의 수도원이 있던 있던 지명이고, <포르 루아얄 논리학>16세기에

이 수도원에 있던 수도사들이 저술한 책입니다. 이 책은 이후 논리학의 발전은 물론이고,

대에 와서도 언어학(특히 촘스키)의 발전에 큰 영향을 끼친 책입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갖고 있는 기본 발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논리학이란 사고의 규칙입니

. 사고란 개개의 표상들, 예를 들면 '토끼' '' '길다'와 같은 표상들을 질서정연하게 하

고 결합하는 것이며, 그래서 "토끼는 귀가 길다"와 같은 판단을 만들어 내는 규칙이 바로

논리지요. 그런데 이 논리는 언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표상들에 질서를 부여하는

사고 규칙을 언어를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다시 말해 논리학은 언어가 표상들을 결

합하는 일반적인 규칙과 동일하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논리학의 법칙은 문법적 규칙으로 환

원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책은 역설적이게도 논리학의 법칙이란 문법 규칙을 추상화하고 일반화한 것이라

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는 말을 바꾸면, 문법적 규칙이 다르다면, 즉 표상들을 결합하는

언어적 규칙이 다르다면, 전혀 다른 논리학을 가질 수도 있음을 뜻한다고 하겠습니다. 더구

나 서구의 논리학적 규칙이 성립되는 데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도, 참조되지도 못한 언어라

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이는 언어가 다르면 사고방식도 달라질 것이라는 훔볼트의 주장과

도 일치합니다.

단적인 예가 있습니다. 영어든 독일어든, 아니면 프랑스어든 가장 중요한 단어를 하나 꼽

으라면 공통적으로 꼽힐 것이 있습니다. 영어의 be동사, 독일어의 sein동사, 프랑스어의 etre

동사가 그것입니다. 알다시피 이것들은 우리말로 하면 '있다''이다'란 뜻을 동시에 가지

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동사가 주어와 서술어를 관계짓고, 문장 전체를 연결합니다.

또한 서구어에서 모든 동사는 etre동사로 환원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르 루아얄

논리학>의 한 부를 차지하고 있는 동사의 이론이 바로 etre동사에 대한 이론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있다''이다'는 분명 다른 단어고, 중국어에서도 그것은 ''''

라는 다른 단어며, 일본어에서도 그것은 '아루'/'이루''데아루'라는 다른 단어입니다(오히

려 이 점에서 동양의 언어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하이데거는 자신에게

존재론에 대해 질문한 일본인 철학자에게 sein동사도 없는 언어로 어떻게 '존재론'을 연구

하겠느냐고 했다 합니다. '있다''이다'를 동시에 의미하는 단어가 없다면 존재론을 연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태도는 또 다른 의미에서 일종의 '문법의

환상'을 보여 주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히려 이 말에서 sein동사(be동사)

사고하는 사람들과 '있다'/'이다'를 구분해서 사고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고구조를 가질 수밖

에 없으리란 결론을 입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동사의 이론이 같아질 순 없습니다. 예컨대 푸코에 따르면, be(etre)

사는 무언가를 긍정하는 기능을 한다고 합니다. The tree is green이라면 나무(tree)와 푸르

(green)가 동등한 관계에 있음을 표시한다는 것입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tree = green이란

거고, =의 기능을 be동사 (etre동사)가 한다는 것입니다. 이게 동사의 이론에서 가장 중심

되는 내용입니다. 논리학의 동일률이 이러한 동사의 기능과 무관하지 않으리란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말은 "나무가 푸른 상태에 있다"가 아니라 "나무는 푸르다"일 뿐입니다. 물론

'나무 = 푸름'이란 등식은 여기서도 보이지만 우리말에선 '='을 위해 어떤 동사도 동원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형용사 자체가 용언으로서 술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동사

없는 어떤 문장도 생각할 수 없는 서구어와 매우 다른 특징을 갖습니다. 푸코가 <포르 루아

얄 논리학>을 인용해 언어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서 강조한 '동사의 이론'은 이 문장에서

빗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동사의 동일화 기능에 기초를 둔 논리학의 동일률 역시 다르게

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실제로 서구 논리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법칙조차도 결코 진리

이거나 자명한 게 아니란 점은 자주 지적되어 왔습니다. 니체는 동일률이나 모순율이 진리

란 것을, 또는 그것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대체 누가 증명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합

니다. 아무도 그것의 보편타당성을 입증할 수 없으면서도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논리학의

규칙에는 진리를 향한 의지조차 없으며, 단지 단순하게 모든 걸 동일한 틀에 끼워 맞추고는

지배하려는 권력 의지만이 있을 뿐이라고 니체는 갈파합니다.

한편 동일률, 모순율과 함께 가장 기본적인 규칙으로 간주되어 온 '배중률'은 직관주의의

대표적인 브로베르(L. Brower)라는 수학자에 의해 부정되었습니다. 배중률이란 어떤 게 A

가 아니면 ~A(not A)지 그 중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거칠게 말해 "기면 기, 아니면 아니지

중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배중률은 왜 부정되었을까요? 원주율인 파이의 값을 컴

퓨터로 계산하면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파이=3.1415926535897932384626...13499999983...

아시다시피 무리수여서 불규칙하게 수가 이어집니다. 그런데 소수점 아래 762자리부터 9

연속해서 6개 나옵니다. 그런데 무한히 계속되는 이 수의 배열에서 9가 연속해서 다시 6

나올 경우가 있을까요? 혹은 이 수의 배열에서 910개 이어서 나올 수 있을까요? 확률상

으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지만 수가 무한히 계속되는데, 안 나온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런 수가 나올 수 '있다'고도, '없다'고도 하기 곤란합니다. 배중률은 여

기서 난파하고 맙니다.

이처럼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면 이제 모순율도 유지되기

어렵습니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는 주장도 모두 거짓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법을

달리하는 우리의 언어와 사고구조를, 단지 서구의 논리학적 규칙에 끼워 맞추려는 시도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한 건 아닐까요? 좀더 나아간다면 우리의 언어에 대한 면밀한 연

구를 통해 우리의 논리학적 규칙조차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건 아닐까요?

3.소쉬르의 언어학적 혁명

소쉬르 언어학의 기본 명제

언어나 기호가 갖는 가장 일반적인 특징은 그게 어떤 사물이나 기호 사용자의 의도를 대

신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기호를 통해 어떤 사물을 지시하거나 어떤 의도를 표현한다

는 거지요. 예컨대 '송아지'라는 기호는 실제 송아지의 '이름'이란 것입니다. '먹는다'는 말

은 먹는 행위를 가리키고, 그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먹는 것과 관계된 어떤 의도를 표현하

기 위해서라고 하지요.

여기서 기호가 지시하는 대상(예를 들면 실제 송아지)을 흔히 '지시체(referent)'라고 합니

. 기호나 언어에 대해 흔히 갖는 생각은 '송아지'라는 기호와 실제 송아지(지시체) 간에

상응, 일치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즉 기호는 지시체를 반영한다는 거지요. 이러한 사고방

식이 언어나 기호에 대한 전통적 사고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쉬르의 언어학은 이러한 사고방식에 전면적으로 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기호와

지시체 간에는 어떤 유사관계나 일치관계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호들의 의미는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정해질까요? 소쉬르의 견해를 이 책의 주제와 관련해서 몇 가지로 요약해

봅시다.

첫째, 언어학의 대상과 특징입니다. 그에 따르면, 언어 활동에는 랑그(langue, 언어)와 파

(parole, 화언)이 있는데, 언어학은 랑그를 대상으로 한다고 말합니다. 파롤은 화언 또는

발화로 번역되는데,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이 말들이 예가 되겠습니다. "나는 주스를 한 컵

마셨다", 제 성대를 울려 나오는 이 소리가 바로 파롤이지요. 그런데 이걸 경상도 사투리

로 저기 앉아 있는 분이 말했다 합니다. 그건 분명히 다른 음색과 음량, 음파를 가질 겁니

. 사투리를 안 섞어도 마찬가지지요. 사람마다 말하는 게 다르니까요. 이 경우 같은 문장

이지만, 모두 다른 파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시간이 좀 흐른 뒤에 다시 제가 말한

다 해도 다른 파롤이 됩니다. 이처럼 말하는 사람과 시간에 따라 오직 일회성만 갖는 게 파

롤의 특징입니다.

반면 랑그는 누가 어떤 목소리로 말해도 "나는 주스를 마셨다"란 말은 동일한 규칙에 따

라 동일한 순서로 말한 거지요. 만약 "주스는 나를 마셨다"라든가, "마셨다 나 주스는 를"

란 식으로 말한다면 누구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말할 수는 없

습니다. 이처럼 말을 하려면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할 규칙이 있는데, 바로 이 규칙 전체를

랑그라고 합니다. '문법'이란 랑그의 일부지요.

비교하자면, 500명의 학생들에게 이 말을 반복하도록 한다면 500개의 파롤이 행해지지만,

그 모두에서 우리는 오직 하나의 랑그만을 찾을 수 있지요. 그런데 누군가 심술궂은 사람이

있어서 "I drank a cup of juice"라고 했다고 합시다. 앞의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는 문장이

지만, 다른 문자로 된 다른 기호를 다른 규칙에 따라 만들어 낸 것이지요. 그렇다면 두 개의

랑그가 사용된 것입니다.

그런데 규칙이라는 것은 본래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 따를 때 성립하는 것이죠. 자기만의

규칙을 따른다는 것은 자기 멋대로 한다는 것과 다를 바 없고 그것은 규칙이 없는 것과 같

지요. 따라서 랑그는 사회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있든 없든, 내가 쓰든 안 쓰든 그

것은 나와 무관하게 존재하는 것이죠.

언어학에서 가장 자주 쓰는 비유는 바로 장기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말 하나를 병 뚜껑

으로 바꾼다고 해도 장기 두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랑그란 장기에서 말들을 움직

이고 잡아먹는 게임 규칙 전체를 가리킵니다. 말들이 다른 걸로 바뀌어도 장기 규칙에는 아

무런 변화가 없듯이, 우리가 쓰는 말이 다른 걸로 바뀌어도 언어사용 규칙인 랑그는 변하지

않습니다. 소쉬르는 이 랑그야말로 언어학이 다루는 대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든 언어

활동(language)'사회적 규범'이며, 하나의 사회적 제도입니다.(<일반언어학 강의>).

둘째, 기호와 지시체의 관계입니다. 그는 기호란 자의적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기호와 그

것이 담고 있는 의미의 관계가 자의적이란 말도 됩니다. 소쉬르는 기호를 기표(signature,

시피니앙)와 기의(signifie, 시니피에)로 나누지요. 기표는 '표시하는 것'이고, 기의는 '표시되

는 것'이란 뜻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 시계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발음하는 '시계'라는 소리는 이 시계

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물건을 가리키기 위해 '티계''치계'란 말을 사용

해선 안 될 이유는 없습니다. 시계라고 발음하기로 한 건 사회적인 약속일 따름이지요. 새로

약속을 바꾸어 '티계'라고 부르기로 한다면 이제 우리는 사전에서 '티계'란 철자를 찾으면

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표는 그 대상과 무관하게 사용되거나 바뀌거나 할 수 있습니다.

즉 기호는 자의적인 것이죠. 또한 이것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자의적이란 뜻이기도 합니

. 다만 예외가 있다면 욕할 때는 주로 격한 소리의 기표를 쓴다든가, 어두운 느낌을 표현

할 때는 어두운 소리의 기표를 사용한다든가 하는, 의성어나 의태어 등입니다.

셋째, 공시성(synchrony)과 통시성(diachrony)에 관련된 것입니다. 예컨대 주어는 동사와

함께 쓰이며, 타동사는 목적어를 갖습니다. 이런 경우 주어는 동사와, 타동사는 목적어와 '

공시적'이라고 합니다. 공시성이란 이처럼 어떤 기호를 사용하는 데 동시적으로 갖추어야

할 조건들을 말합니다. 반면 통시성이란 것은 예를 들면 '셔블'이란 말이 역사적으로 '서울'

이란 말이 되기까지 겪은 역사적 변화를 가리킵니다. 흔히 역사성이라고 하는 것과 유사한

말입니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언어학에는 공시언어학과 통시언어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시언어학은 언어의 변화를 연구하는 것이고, 공시언어학은 언어의 규칙과 체계를 연구하는

것입니다. 소쉬르는 이 둘 중에서 언어학의 중심 영역은 공시언어학이라고 말합니다.

넷째, 문장을 엮어 가는 형식으로서, '결합관계''계열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결합관계

란 프랑스어로 생타금(syntagme)이라고 하고 계열관계는 파라디금(paradigme)이라고 합니

. 다음의 예를 봅시다.

문장이란 '나는 밥을 먹는다'라는 식으로 단어들이 일정한 법칙에 의해 결합되어야 합니

. 이처럼 단어들이 공존하며 연쇄를 이루는 관계를, 그리하여 서로 연관되어 결합될 수 있

는 관계를 '결합관계'라고 합니다. 이 그림에서 가로축이 바로 결합관계의 축이지요.

한편 그림에서 보듯이 '' 대신에 '''우리'라는 단어, 또는 그밖에 주어가 될 수 있

는 건 아무 단어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나 '먹는다'도 다른 단어로 대체될 수 있습니

. 이처럼 어떤 단어가 다른 것으로 선택되어 대체될 수 있는 관계를 '계열관계'라고 합니

. 즉 앞 그림에서 세로축이 바로 계열관계의 축이지요. 이 두 개의 축이 단어들을 문장으

로 만들고 언어로 조직하는 틀을 제공합니다.

다섯째, 소쉬르는 기호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말은 '좋다'/'나쁘다'를 말하는

'가치'가 아닙니다. '의미'라는 말과 유사한데, 사실은 의미라는 말과 달라지는 내용을 표시

하기 위해 끌어들인 용어입니다.

이와 관련해 소쉬르는 ''이란 단어를 예로 들고 있습니다. 프랑스어의 mouton''

란 뜻인데, 알다시피 영어에서 ''sheep입니다. 이런 점에서 '의미'가 같다고 할 수 있

지요. 그런데 프랑스어의 mouton은 산 양이든 죽은 양이든 양고기든 모든 종류의 양을 가

리킵니다. 반면 영어에서 sheep은 살아 있는 양만을 가리킵니다. 이런 점에서 '가치'는 다

른 거지요. 영어에는 프랑스어의 mouton에 해당하는 mutton이 있지요. 이 말은 mouton

영어화한 말입니다. 알다시피 mutton도 양이란 뜻이지요. 그러나 영어에서는 살아 있는 양

을 가리킬 때 mutton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죽은 양, 양고기 등을 가리킬 때만 씁

니다. 이런 점에서 moutonmutton'가치'가 다르다고 할 수 있지요.

여기서 잠시 상상력을 발동해 봅시다. 영국인이 프랑스어를 배웁니다. 프랑스인이 양을 가

리키면서 mouton이라고 하겠지요. 그러면 영국인은 "! moutonsheep이란 뜻이군" 하겠

지요. 그런데 또 양고기 요리를 보면서 mouton이라고 합니다. 거기에는 상응하는 영어가 없

, ", mouton이란 양고기를 가리키는 거군" 하겠지요. 그런데 살아있는 양에 대해서는 계

sheep을 사용할 테니 별 문제가 없겠지만, 양고기를 보고선 프랑스인에게 배운 단어를

쓸 수밖에 없겠지요. 그러다 보니 영어의 mutton은 원래 프랑스 말과 달리 양고기란 뜻이

되었겠지요. 이는 mouton이란 기호의 가치가 영어에 들어오면서 달라진 거라고 할 수 있겠

습니다. 달라진 이유는 알다시피 sheep이란 단어가 이미 있었기 때문이지요. 아마 양고기를

뜻하는 다른 기호가 있었다면 그 말은 안 쓰이거나 다른 뜻으로 쓰였겠지요.

이는 기호의 가치가 다른 기호들과의 관계 속에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moutonsheep

이 가리키는 것과 '다른(different)', 그러나 아직 별도의 기호가 없는 대상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것입니다. 같은 말이지만 mouton(mutton)의 가치는 sheep이나 영어의 다른 기호들

에 의해, 즉 그 기호들과 '다름'을 표시하고 있지요. 소쉬르에 따르면 외래어만이 아니라 모

든 기호들이 다 그렇다고 합니다. '강아지''개새끼'는 모두 '개의 새끼'를 뜻합니다. 그러

나 누가 봐도 그건 다른 가치를 갖지요. 뒤의 말은 주로 욕을 할 때 사용하지요. 만약 이게

'강아지'와 같은 뜻이라면 이 단어를 별도로 사용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어떤

단어가 쓰이는 것은 다른 단어와 가치가 다르기 때문이고, 또 다를 때만 그렇습니다. '개새

'란 기호의 가치는 '''강아지'란 기호와의 차이에 의해 정해진다고 할 수 있지요.

라서 기호의 가치는 '차이(difference)'에 의해 결정된다고 소쉬르는 말합니다. 이는 뒤에 큰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명제니 꼭 기억해 두십시오.

 

소쉬르의 혁명의 효과

소쉬르의 언어학은 종종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에 비유됩니다. 다만 소쉬르 자신이 그런 '

혁명'임을 주장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칸트와 달랐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어학자의 주

장이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철학적 혁명에 비유되었던 것일까요? 다시 말해 소쉬르가 언어

학에 새로 제기한 명제들은 대체 어떤 의미와 효과를 갖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로 나누

어 요약합시다. 첫째는 체계적인 구조를 이루는 언어와 그 언어를 사용하는 개개의 주체 사

이의 관계에 대한 것입니다.

앞서 본 것처럼, 랑그는 개인에 의해 좌우되는 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속된 규칙체계입

니다. 개인들이 말을 하기 위해선 그 규칙에 따라야 하고, 그 규칙의 체계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의미는 개인이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언어체계 안에서 랑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것

이며, 개인들은 그 규칙에 따라 의미를 말하고 또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옳다' '그르다'는 판단은 물론 '좋다' '나쁘다'는 판단 역시 언어의 구조 속에

있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것을 가져다 쓸 수 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사고나 판단은 개개의

'주체'가 하는 게 아니라, 언어의 의미체계(구조) 속에 있는 것이며, 개인들은 그것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이런 점에서 의미나 판단 또는 사고가 '주체'에 의존

하는 게 아니라 언어구조에 내장되어 있다는 말이고, 거꾸로 '주체'들이 사고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이 언어구조에 따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언어를 통해 의미나 사고, 판단을 객관화하

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주체'는 더 이상 자기가 말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의 중심이 아니며,

그 중심은 오히려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라는 객관적 구조에 있다는 게 분명해진 셈입니다.

이래서 소쉬르를, 그 자신은 구조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구조주의의 창시자라고 하지

.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소쉬르의 언어학은 주체를 중심으로 회전하던 근대 철학을, 그 중

심을 해체함으로써 궤도에서 벗어나게 할 가능성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

것은 세계의 중심을 다시 주체 외부로 옮겨 놓은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라고 할 요소를

갖고 있습니다. 이것이 소쉬르 언어학의 탈근대적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론 아직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자체만으론 분명히 언어구조를

하나의 단일하고 자기완결적인 체계로 간주하게 될 위험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경

우 주체는 그 단일한 언어구조가 빚어 내는 '구조의 효과'로 정의되게 됩니다. 이 경우 구조

는 언어를 사용하는 다수의 주체들이 동일하게 사용하는 기초를 제공하는 게 되며, 모든 인

간이 동일하게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게 됩니다. 즉 칸트적인 의미에서 일

종의 '선험적 구조'가 되는 것이지요. 그것이 주체 외부에 있다는 점에서 칸트와 다르지만

(이래서 탈근대적이지만), 그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판단의 단일하고 통일적

인 구조란 점에서 칸트와 유사합니다(이래서 근대적입니다). 말하자면 주체 외부의 선험적

구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는 선험적 구조를 주체 외부로 잠시 끄집어냈다가 다시 주체 내부에 옮겨 놓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이런 점에서 훔볼트의 칸트주의와 매우 유사함에 주목합시다. 결국 소쉬르의 '

구조주의'는 근대적인 성격 또한 갖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소쉬르 언어학의 내적인 모순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소쉬르가 기호의 의미

에 대해 설명하는 데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표''기의'라는 짝에 의해서

입니다.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자의적이라고 이미 말했지요? 12개의 숫자 사이를 규칙적으

로 도는 저 물건을 굳이 '시계'라고 할 이유는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시계'라고 쓰자고

일단 약속이 되면, '시계'라는 기호의 의미는 저런 종류의 물건으로 고정됩니다. 즉 기호(

)와 의미(기의) 사이의 관계는 약속에 따라 고정된 것으로 간주됩니다. 이제 '시계'라는

기호를 보면 세 개의 바늘이 하루 종일 도는 저런 종류의 물건을 언제나 떠올리게 됩니다.

저 물건이 있는 한 '시계'란 기호는 계속 존재할 겁니다.

반면 기호의 '가치'란 개념을 앞서 보았지요? 거기서 '개새끼'란 기호의 가치는 '강아지'

란 기호와의 차이(다름)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지요? 이 차이가 바로 '개새끼'란 기호의 존

재를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고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또한 기호들 사이의 관계가 달라지

면 어떤 하나의 기호가 다른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이는 소쉬르에게선

그다지 명시적으로 읽히진 않습니다).

예를 들면 "사랑은/가을을 끝낸 들녘에 서서/사과 하나 둘로 쪼개/나눠 가질 줄 안다"(

남주, <사랑은>)에 나오는 '사과'라는 기호와 "빌헬름 텔은 총독이 아들의 머리 위에 얹어

놓은 사과를 향해 떨리는 가슴으로 활시위를 놓았다"에 나오는 '사과'라는 기호를 비교해

봅시다. 앞의 것은 '사랑', 열매 맺는 '가을', '나눠 갖다'와 같은 기호들 속에 자리 잡고 있

습니다. 거기에는 사랑과 결실과 나눠 가짐, 그리고 그것이 주는 정감과 온기가 잘 익은 사

과 빛깔처럼 스며들어 있습니다. 반면 뒤의 것은 '총독', '아들의 머리 위', 거길 겨누고 있

'(화살)' 등의 기호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총독의 억압, 아들의 머리를

겨냥해야 하는 명사수 아버지의 고뇌, 그것이 주는 긴장이 팽팽하게 압축되어 있습니다.

이 두 개의 '사과'는 말 그대로 기호들간의 관계에 의해 각각 가치를 갖게 됩니다. 다시

말해 '사과'라는 동일한 기호에 새겨진 다른 기호의 흔적이 '다른' 것입니다. 위의 두 문장

이 나름의 소중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이러한 '차이'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기호

는 일단 약속이 성립된 후에는 언제나 동일한 의미를 가질 거라는 앞의 명제와 모순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앞의 명제는, 언어구조 자체 내에서 기호의 의미를 언제나 고

정된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주체가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언제나 그 고정된 의미를

갖다 쓰는 것이라고 본다는 점에서, 구조주의적 입장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즉 기호의 의미

는 구조 안에서 고정된 것이고, 개인이 사용하는 의미나 받아들이는 의미는 이러한 구조의

효과라는 것입니다. 반면 뒤의 명제는 이런 구조주의적 명제를 흔들고 있으며, 체계화된 기

호의 망 속에서도 기호의 의미(가치)가 얼마나 가변적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점은

나중에 구조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예를 들면 데리다 J.Derrida)에 의해 강조되고 부각됩니

(소쉬르에게 이러한 측면은 사실 매우 미약합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모순 역시 앞서처럼 근대적 측면과 탈근대적 측면이 소쉬르 언어학에

공존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하겠습니다.

 

구조언어학의 기착지

소쉬르의 언어학을 가장 적극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흔히 '프라하학파'라고 불리는 언

어학자들입니다. 야콥슨(R. Jakobson)과 트루베츠코이(N. Troubetzkoy)를 필두로 하는 이들

의 이론은 대개 '구조주의언어학'이라고 불립니다. 특히 야콥슨은 2차대전으로 인해 미국에

망명해 있던 레비스트로스와 같은 학교(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지내면서,

비스트로스에게 매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나중에 다시 다루겠지만, 바로 레비스트

로스를 통해 구조주의 언어학의 방법론과 사고방식은 언어학을 넘어 인문 사회과학의 다양

한 분야로 흘러 들어갑니다. 여기서는 일단 우리 주제와 관련해 야콥슨의 이론적 입장을 간

략히 살펴보고, 그 특징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첫째, 기호의 구조를 인간의 기호사용 능력으로 환원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소쉬르를 다루

면서 결합관계와 계열관계를 얘기했지요? 거기서 우리는 '먹었다'란 말을 예로 사용했지요.

이때 '먹었다'라는 하나의 단어는 단지 하나의 단어만이 아닙니다. 먹었다면 뭔가를 먹었을

거고, 또 누군가가 먹었다는 게 함축되어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 '먹었다'라는 말에는 '

가 무엇을'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먹었다'라는 말이 그와 인접한 다른 단어들을

대표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이처럼 '인접성'을 갖는 기호들이 하나의 기호로 표현되는 경우

를 야콥슨은 '환유(metonymy)'라고 합니다.

연기를 보면 불을 떠올리듯이, 서로 가까운(인접한) 관계여서 하나를 보면 다른 것을 알

수 있을 때 단어는 생략될 수 있는 거지요.

한편 '먹었다'라는 말은 '무엇을'이란 목적어를 갖습니다. '무엇'의 자리에는 밥이 올 수

도 있고, 빵이 올 수도 있고, 물이 올 수도 있습니다. 즉 유사성을 갖는 다른 단어들이 선택

되고 대체되어 사용될 수 있다는 겁니다. 이처럼 '유사성'을 갖는 기호들이 선택되고 대체되

는 관계를 야콥슨은 '은유(metaphor)'라고 부릅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언어의 두 가지 측면

을 요약하고 있습니다(<언어의 두 측면과 실어증의 두 유형>, <일반언어학 이론>). '사과'

라는 말로 '사랑'이란 기호를 표시하는 것 역시 은유의 예지요.

소쉬르의 결합관계와 계열관계가 언어의 구조를 뜻하는 것이었다면, 야콥슨의 은유와 환

유는 기호를 사용하여 문장을 구성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이는 실어증에 대한 그의 분석을

보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언어의 두 측면과 실어증의 두 유형>에서 야콥슨은 은유와 환

유라는 두 축을 따라 실어증을 두 가지로 나누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여러분들은 무엇을 떠올립니까? 칼을 보고 '죽음' '

공포' 또는 '강도' 등을 연상하시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이는 ''이란 말에서 칼과 '인접'

해 있는 다른 것들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접성 연관입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의 사

고 구조가 환유적이라고 보면 됩니다. 한편 ''이란 말을 듣고는 ''이나 '송곳' '포크'

칼과 '유사'한 것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유사성 연관입니다. 이런 분들은

은유적인 방식으로 사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어증에도 이런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유사성 연관이 파괴되는 것이고 또 다

른 하나는 인접성 연관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유사성 연관이 깨진 사람은 예컨대

'남편 없는 여자'를 표현하기 위해 '과부'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합니다. "네 말대로라면 저

여자는 과부란 말이지?"라고 물으면, "아니, 그 여자는 남편 없는 여자야"라고 대답하는 경

우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겁니다. 이런 유형의 실어증 환자는 유사한 단어를 찾아내 설

명하거나 치환할 줄 모릅니다. 그리고 이 증상이 심해지면 환유적인 문법구조만 남게 되어

다른 단어는 다 잊어버리고 접속사만 남습니다.

반면 인접성 연관이 깨진 사람이 있다면, 그는 명제를 구성해 내지 못합니다. 그는 단지

한 단어를 비슷한 다른 단어로 대체하는 것만 할 수 있지요. 예컨대 "'과부'는 밤에 외롭다"

같은 명제를 못 만듭니다. 특히 접속사를 잘 사용하지 못합니다. 다만 유사한 다른 단어를

찾거나 비유를 할 뿐이지요. '과부''미망인'이고, '남편 없는 여자'고 등등. 이것은 언어

를 구성하는 능력이 인간의 사고 안에, 즉 인간의 뇌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쉬르

가 생각했던 언어의 구조가 야콥슨에 이르면 인간의 선험적인 언어사용 능력이 됩니다.

것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며, 언어를 사용하기 이전부터 갖고 있는 것이고, 그것이 깨

지면 사고하거나 판단하는 게 불가능해지는 그런 능력이지요.

이것은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기호나 기호의 망을 인간이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 가를 보

여 준다는 점에선 적극적인 측면을 갖습니다만, 동시에 또 하나의 선험적 주체를 가정-물론

주체라는 말을 쓰지는 않지만-하는 효과를 갖습니다. 즉 소쉬르의 언어학이 갖고 있"는 칸

트주의적 요소를 더욱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야콥슨은 훔볼트의 칸트주의에 근접

하는 셈입니다. '주체 없는 주체철학'이 되는 것이죠. 이는 나중에 레비스트로스에게서도 마

찬가지로 발견되는 특징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소쉬르조차 야콥슨을 통해 받아들였기 때문

, 그리고 야콥슨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기에 이런 측면은 결코 사소하지 않은 특징

이 됩니다.

둘째, 야콥슨은 소통(communication)학자였던 부친의 영향으로, 소통이론의 관점에서 언

어학과 시학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킵니다. <언어학과 시학>이란 논문에 나오는 다음 도식

은 매우 유명합니다.

이 그림을 바탕으로 그는 언어의 여섯 가지 기능을 정의하지요(이건 그냥 넘어갑시다).

기서 주목할 것은 소통이론에 따르면,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고, 전해야 할 메시지(전언)

있습니다. 이런 도식에서 언어는 어떤 의미를 있는 그대로 전해 주는 수단이며, 그로 인해

메시지는 수신자에게 전달됩니다. 코드는 그런 전달 가능성을 미리 확보해주는 조건입니다.

결국 이런 요소들은 소통을 가능하게 해주는 보편적인 요인들이고, 언어학은 이런 보편적,

과학적인 지식을 추구하는 학문이 됩니다. 여기서 진리는 메시지의 참뜻, 즉 발신자가 수신

자에게 보내려 하는 의미고, 그걸 받아 보는 수신자는 진리를 읽어 내는 자가 됩니다. 코드

는 메시지에서 진리를 읽어 내는 수단이며, 결국 진리가 소통구조 전체에서 목적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이 드러납니다. 이러한 이론적 구조에서 진리 주위를 맴도는 근대적 과학주의

를 읽어 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요컨대 야콥슨의 언어학은 특이한 방식으로지만, 근대적인 주체철학과 과학주의의 방향으

로 소쉬르 언어학을 끌고 나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소쉬르 안에 있는 근대적 요소

와 탈근대적 요소 가운데 전자를 확대하면서 후자를 약화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4.비트겐슈타인-언어게임과 언어적 실천

구조언어학의 난점

소쉬르의 구조언어학은 언어와 인간에 대한, 그리고 구조와 주체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었습니다. 즉 새로운 사고 영역을 개척한 것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또 언어학

으로 설명해야 할, 그러나 구조주의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점

에서 언어와 대상(지시체) 사이에 어떤 실제적 연관을 상징하는 실증주의적 입장과 비교됩

니다.

예컨대 논리실증주의와 유사한 언어관을 갖고 있던 러셀은, 만약 치즈에 대한 비언어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어떤 사람도 '치즈'라는 낱말을 이해할 수 없으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지시체와 기호 사이의 관계는 자의적이며, 기호는 서로 긴밀하게 엮인 하나의 체계

(랑그)를 이루고 있다고 보는 입장에선 생각을 달리합니다. 그 낱말은 다른 기호에 의해 정

의되며, 관계된 다른 기호들(예를 들면 우유, 버터 등)과의 차이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

다고 합니다. 야콥슨에 따르면, 치즈라는 말은 영어로 '커드로 만들어진 음식(food made of

pressed curd)'입니다. 여기서 커드는 응유(응결된 우유)라는 뜻이니, 치즈는 응결된 우유로

만든 음식이란 말입니다. 야콥슨은 우리가 '응유'라는 말만 알고 있어도 치즈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러셀을 비판합니다.

그러나 사태는 야콥슨의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응유'라는 말을 모른다면

어쩌겠습니까? '응유'를 알려면 우유를 알아야 하고, 응결이란 말을 알아야 합니다. 또 우유

를 알려면 소를 알아야, 젖을 알아야 합니다. 소나 젖을 알려면 또 무엇을 알아야 하고 등

. 결국 한 단어의 의미를 알기 위해선 사전 전체를 뒤져야 할 판입니다. 물론 그러다 보면

다시 '치즈''우유'로 돌아올 게 뻔하지만 말입니다.

이래서 라캉은, 뒤에 다시 보겠지만, 기표가 기의에 닿지 못하고 끊임없이 미끄러진다고

합니다. 라캉의 명제와 '가치'는 달라지지만, 우리는 다른 기호를 통해서 기호의 의미에 닿

기 힘들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식으로 러셀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다는 야

콥슨의 주장은 환상입니다. 이를 좀더 근본적으로 살펴보면 구조주의 언어학의 가장 큰 난

점의 하나에 이를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언어를 어떻게 배우는가 하는 것입니다. 말을 바

꾸면 외국어를 어떻게 배울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구조언어학에 따르면 기호의 의미는 기호사용 규칙과 다른 기호들을 알아야 정해집니다.

기호의 의미를 배우는 것도 마찬가집니다. 이미 아는 다른 기호가 없다면, 어떠한 기호의 의

미도 알 수 없습니다. 조선 시대에 최초로 영어를 배우려 한 사람을 생각해 봅시다. 그가

mother란 단어를 알려 한다 합시다. 그게 어머니란 뜻인지 다른 조선인은 가르쳐 주지 못합

니다. 영국인도 거기 해당하는 조선어를 모르니 못 가르쳐 주지요. 사전을 찾으면 "a female

parent of a child or animal"이라고 나옵니다. mother보다 더 난감한 단어들이 죽 이어져

나오니 이걸 어찌 알겠습니까? female을 뒤지고, parent를 찾아내고 childanimal을 찾아

본다고 해서 이 말을 알 수 있겠습니까? 결국 언어사용 규칙과 다른 단어들을 '이미' 알고

있지 않다면 언어의 의미를 이해하는 것도, 그것을 배워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구조주의자들 생각대로라면, 마치 성문을 찾아 성 주변만 배회하다 마는 카프카 소설의 주

인공처럼, 그 조선인은 영어의 주위만 빙빙 돌다 말게 될 겁니다.

요컨대 구조언어학에 따르면, 약속된 기호의 체계를 모르면 기호의 의미는 알 수 없는 것

이고 사용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영어의 랑그를 모르는 사람이 mother란 기호를 어떻게 사

용할 수 있겠습니까? 조그만 기호의 의미도 모르면서 기호의 체계를 알 수는 없습니다.

mother도 모르면서 영어라는 언어(랑그)를 알 순 없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언어를 배우는

데 닭(랑그)이 먼저인지, 달걀(개별 기호)이 먼저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런 때 실증주의자라면 신이 나서 끼어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니를 가리키면서

mother라고 말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이를 '지시적 정의'라고 합니다. 간편한 방법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영국인이 뛰어가는 흰 토끼 한 마리를 보고 "rabbit"이라고 말했다

합시다. 그럼 영어를 배우는 조선인은 그게 'rabbit=토끼'라고 생각할까요? 혹시 'rabbit=

, 달아나다'라고 생각할 순 없을까요? 아니면 그 말을 '한 마리'란 뜻이나, '희다'란 뜻으

로 볼 순 없을까요? 심지어 '귀가 길다'는 말을 가르쳐 주려는 걸로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

까요? 너무 고지식하게 군다고 할지도 모르니 좀 양보하여, '토끼'라고 알아듣는다고 합시

. 그런데 만약 nowwhen, general이란 말이라면 어떨까요? 이 역시 실증주의자처럼 '

지시적 정의'를 사용하면 될까요? 이제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의 문제의식으로 넘어갈 수 있

겠습니다.

 

언어게임과 인식론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크게 두 가지의 시기로 나누어집니다. 초기의 사상은 <논리 철학

논고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라는 책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나중에 논리실

증주의자들이 성전처럼 떠받드는 고전이 됩니다. 한편 후기의 사상은 사후에 출판된 <철학

적 탐구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에 집약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초기에 자신

이 만들어 놓은 이론과 생각들을 해체하고 부정하며 전혀 다른 입장으로 선회합니다. 우리

가 주목하려는 것은 이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초기 사상은 반영론과 비슷합니다. '그림이론'이라고도 하는데, 단어는 사

물의 '이름'이고, 문장은 어떤 상황에 대한 '그림'이라고 합니다. 명제들은 물질이 원자로

나뉘듯이 요소명제로 나뉘며, 이 요소명제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검증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명제 전체의 참 거짓은 요소 명제들의 진리함수라고 합니다. 즉 고등학교 수학 책에

나오는 진리표를 통해 어떤 명제가 참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다는 거지요.

반면 후기의 비트겐슈타인은 단어가 사물의 '이름'이라는 것부터 부정합니다. 예를 들어 '

그리고''언제'처럼 이름 아닌 것이 대부분이란 거지요. 그렇다면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

? 그것은 그 단어의 용법(use)이라고 합니다. 즉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가에 따라 의미

는 결정된다는 겁니다. 어떤 단어의 의미를 안다는 것은 그 단어를 사용하는 법(용법)을 배

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아까 말한 mothernow, when, general 등 모든 단어의 의

미를 영국인이 사용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고, 그걸 어떤 경우에 어떻게 사용하는 가를 배움

으로써 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구조언어학과 실증주의의 간극을 가볍게 뛰어넘어

버리는 새로운 견해입니다.

잠시 water라는 단어를 생각해 봅시다. 알다시피 ''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똑같은 이 말

이 그게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물병을 가리키면서 "water"라고 했다면 여기서 water'이건 물이야'라는 뜻일 겁니다.

런데 이렇게 water라는 단어를 배운 꼬마가 밥을 먹다가 "water"라고 말한다면 그건 '물 줘

'라는 뜻이겠지요. 또 낙타를 타고 사막을 가던 어떤 대상이 "water"라고 말하는 것은 '물이

! 이젠 살았다'라는 뜻입니다. 반면 홍수가 나 지붕 위까지 피신했던 사람이 "water"라고

소리 친다면 그건 아마 '물이 여기까지 왔다. 이젠 죽었구나!'라는 뜻일 겁니다. 또 공사장

에서 "water"라고 외치는 것은 '여기 물 좀 부어 줘'라는 뜻이겠지요.

이런 의미의 차이는 동일한 단어가 상이한 맥락에서, 상이한 방식으로 사용된다는 사실에

서 기인합니다. 물론 구조주의자라면 단어들의 응축이 이루어지는 경우라고 말하겠지만,

요한 것은 어떻게 동일한 단어에 상이한 단어들이 응축되고, 또 그 동일한 단어를 통해서

사람들이 어떻게 응축된 상이한 단어를 읽어 내고 이해하는가 하는 점입니다. 언어를 어떻

게 습득하는가 하는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언어를 배우려면 최소한 두 가지 요소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는 단어들입니다. 다른 하나는 언어를 사용하는 규칙입니다. 구조주의자 입장에

선 단어의 의미는 랑그라는 전체적 규칙을 알고 다른 단어들을 알아야 알 수 있기 때문에,

이것 먼저 배우는 건 불가능합니다. 반면 기본적인 단어들도 모르면서 랑그를 습득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랑그를 배우려면 단어들의 의미부터 먼저 배워야 합니다. 소쉬르의 언어학

이나 구조언어학에선 이 악순환을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반면 비트겐슈타인은 단어를 몰라도 규칙을 배울 수 있으며, 규칙을 몰라도 단어를 배울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의 용법이기 때문에, 그것은 언어를 사용

하는 실천을 반복함으로써 배울 수 있습니다. 규칙 역시 마찬가집니다. 소쉬르가 말하는 랑

그처럼 항상-이미 존재하는 통일적이고 완결적인 규칙의 체계가 있는 게 아니라, 언어적 실

천 속에서 사용되는 부분적인 규칙들이 있는 것입니다. 전체 규칙의 체계를 몰라도 이 부분

적인 언어사용 규칙은 그것을 사용하는 실천을 통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말의 랑그 전체를 알고 있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가 언어사용 규칙을 모른 채 언어를 사용한다고 할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두드러진

예를 들어 보면, 미국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한국인은 영어의 문법을 거의 모르지만 슈

퍼마켓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말 정도는 배워서 장사를 합니다. 우리도 한국어에 서툰 외국

인의 말을 대략 이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집니다. 문법 책을 붙들고 20년 공부한 사

람보다 차라리 과감하게 뛰어들어 되든 안 되든 영어를 사용해 본 회사원이 영어를 잘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 실천이란 어떤 것이든 특정한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 규칙이 관

습적인 것이든, 도덕적인 것이든, 아니면 단지 언어적인 것이든 간에 말입니다. 예컨대 슈퍼

마켓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것 역시 이런 규칙에 따른 것입니다. 물건을 사는 데 사용되는

언어사용 규칙이 있을 것이고, 그런 행동을 훔치는 행동과 구별해 주는 행동 규칙이 있을

것입니다. 이 규칙은 모두 사회적인 성격을 가질 겁니다. 이 규칙은 미국이면 미국, 한국이

면 한국, 나라마다 고유한 '생활방식'(비트겐슈타인의 개념을 빌리면 '생활형태')을 보여 줍

니다. 어떤 규칙도 이런 생활방식 속에서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것이며, 또한 반대로 이 규칙

들이 모여 특정한 생활방식을 구성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생활방식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형

, 즉 행동이나 실천의 형태인데, 이는 대개 언어적 실천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비트겐슈타인은 '언어게임(Sprachspiel)'이란 개념을 제시합니다. 특정한 규칙을 따

라는 언어적 실천과 비언어적 실천이 서로 교차하는 영역이 바로 언어게임이라고 합니다.

즉 언어게임이란 언어와 행동의 결합체요 언어적 활동과 비언어적 활동이 교차하는 지점입

니다. 이는 언어적 활동이나 비언어적 활동 모두가 따라야 할 규칙들의 집합이며, 또한 그

규칙에 따른 행동의 집합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유독 '언어게임'이란 개념을 사용하는 것은

말을 하는 행위가 더 큰 행위의 일부분임을 표시하기 위해, 즉 생활형태의 일부분임을 표시

하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언어게임은 의미나 행동을 이해하거나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맥락(context)을 제공

합니다. 앞서 water란 말이 그토록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은 상이한 맥락 속에서, 즉 다양한

언어게임 속에서 다양하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언어를 배울 수 있는 것은 이처럼

맥락 속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해하거나 생각할 수 있으며, 그대로 따라하거나

응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거기에는 수많은 실수가 따르겠지만 말입니다.

언어게임은 동의나 합의, 실천이나 이해, 의사소통에 기준을 제공합니다. 반대로 언어게임

이 다르다는 말은 언어적 실천이나 비언어적 실천이 기준으로 삼는 규칙이 다르다는 것을

뜻하며, 이 경우 합의나 동의 또는 공통된 실천은 힘들어지고, 이해나 소통도 쉽지 않습니

. 예컨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은 단지 문법이나 사전을 외우는 게 아니라, 그 나라의 생활

형태(흔히 '문화'라고 부르지요)를 배우는 것이고 거기서 사용되는 규칙(언어게임)을 배우는

것입니다.

 

한편 언어사용 규칙을 언어게임이란 개념을 통해 이해하는 한, 그것은 더 이상 랑그처럼

완결되고 불변적인 체계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생활형태에 의해 규정되는 것인 만큼,

아니 생활형태의 일부분인 만큼 가변적입니다. 즉 규칙이 불변적인 전체로 있고, 그것이 언

제나 동일하게 작동하는 게 아니라 규칙 자체가 가변적이란 겁니다. 강의실에서 사용하는

언어사용 규칙과 술집에서 사용하는 규칙, 어린애와 놀면서 사용하는 규칙은 결코 같지 않

습니다. 일상적인 언어 생활과 문법 간에 매우 다양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이것을 보여

줍니다. 이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은 구조언어학과 매우 다른 길을 걷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

. 또한 의미를 단지 기호가 사용되는 상황으로 환원하는 입장과도 다르다는 걸 알 수 있

습니다(이를 흔히 '화용론'이라고 하는데, 영국의 오스틴이 대표적입니다). 결국 언어게임은

생활형태에 따라 가변적이며, 그 말은 언어사용 규칙까지도 가변적임을 뜻한다고 하겠습니

.

저는 여기서 생활형태라는 개념이 맑스의 '생활양식(Lebensweise)'(<독일 이데올로기>)

이라는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습니다. 이는 실천이란 개념으로 언어나

철학의 문제를 다시 사고하려는 두 사람의 공통성 때문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유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동일한 하나의 단어도 생활형태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비

트겐슈타인의 명제를 맑스식으로 해석해 봅시다.

'일하다'란 낱말을 생각해 봅시다. 고대 노예제에서 이 말은 말하는 도구인 노예가 채찍과

족쇄, 제도 등에 의해 강제로 주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한 대가는 아무것도

주어지지 않지요. 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것은 직원이 사장과 계약을 맺고 그 계약에 따

라 자의로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일의 대가는 임금으로 받고 말이지요. 싫으면 안 해도

그만입니다. 생계를 유지할 돈을 구할 수 없게 되지만 말입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예에

게 하듯 채찍을 들고 강제로 일을 시키거나 노예들에게 "자발적으로 좀 일해"라고 하면서

일을 시킨다면 전자는 큰 저항에 직면할 것이고, 후자는 우스운 말이 될 것입니다.

또한 여성들은 대개 집에서 가사일을 하는데, 만약 그런 주부들이 노동의 대가를 달라고

요구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 사회에선 아무도 그것을 '노동'으로 인정하지 않지요.

심지어 남편조차도 아내와 생활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즉 자신이 사무실에 앉아 하는 것만

을 노동으로 알기 때문에 그 요구를 묵살할 것입니다. 사실은 사무실에서 하는 노동은 임금

을 지불받기 때문에 '노동'으로 인정되고, 가사노동은 지불받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이지요.

비트겐슈타인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는 이러한 생활형태의 차이 때문에 언어

게임 사이에 싸움이 나타난다고 합니다(<확실성에 관하여>). 공동의 상황에서 언어를 상충

되는 방식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자주 접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흔히 나타나는 언어게임의

싸움, 상이한 의미들이 충돌하는 사태는 '생활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

니다. 그는 이러한 싸움에서 공통의 실천 혹은 상황의 공유가 가능하다면 의미나 규칙을 확

인하고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유''평등' 같은 단어들에 대해서

는 합의에 도달하기 힘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상반되게 사용하는 두 집단의 생활형

태는 완전히 다르며 공통의 실천이 존재하기 힘들고, 따라서 공통의 의미를 형성하기 힘들

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충돌과 대립이 주로 나타나게 됩니다.

또한 그는 진리나 지식에 대해서도 진리를 요소명제의 함수로 정의하던(쉽게 말해 진리값

을 계산하려던) 초기의 입장을 버리고 전혀 다른 방향에 섭니다. 그에 따르면 무얼 '안다'

것은 '안다는 믿음'이고, 진리란 '확실하다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데카르트처럼 끝

없이 의심하는 것도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합니다. 의심 끝에 뭔가 확실한 것에 이를 것이라

는 믿음, 아무리 의심해도 의심할 수 없는 게 있을 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확실성이라는 것은 실천적 목적을 위한 결단 즉 믿음에서 출발하는 것인

, 그 믿음은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되기 마련이라고 합니다. '정당화'란 자신이 옳다는

근거를 세우려는 노력인데, 그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옳다고 생각하는 다른

지식이나 명제와 연루시킴으로써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실재와 일치한다고 가

정함으로써 정당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정당화가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고 합니다. 즉 정당화에는 끝이 있다는 거지요. 그럼 그 끝은 무엇인가? 그것은 행

(activity)이요 실천입니다. 요컨대 실천적 목적을 위한 결단에서 믿음은 출발하며, 이 믿

음에서 모든 지식은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진리 개념 역시 언어게임과 생활형태란 개념 속에서 다시 파악되어야 합니

. 왜냐하면 실천이란 '특정한 규칙을 따르는 것'이기에, 어떤 실천도 규칙을 제공하는 특

정한 언어게임에 의해 행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언어게임이 생활형태의 일부라는 것

을 잊지 않았다면, 실천이란 특정한 생활형태 속에서 행해지는 것임을 이해하기는 쉬울 것

입니다.

결국 진리란 특정한 생활형태 속에서, 같은 말이지만 특정한 언어게임 속에서 정의되는

실천을 위한 믿음에서 출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특정한 생활형태에 의해 만

들어지고 특정한 언어게임에 의해 정당화되는 믿음이 진리의 출발점이란 것입니다. 그렇다

면 진리에 대해 이렇게 다시 정의해도 좋지 않을까요? 진리란 특정한 언어게임 내부에서 진

리효과에 의해 정당화되는 지식이라고 말입니다.

 

근대 철학과 비트겐슈타인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은 구조언어학의 그것과 몇 가지 점에서 크게 다릅니다. 기호의

의미를 용법으로 정의하는 것도 그렇고, 실천이란 개념을 통해 언어의 문제를 사고하는 것

, 생활형태 속에서 언어활동을 이해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특히 두드러진 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에선 구조언어학과 달리 항상-이미 정해진,

완결된 체계를 이루는 의미구조 같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규칙 자체가 소쉬르가 생각

했던 랑그처럼 하나의 단일한 체계로서 항상-이미 존재하고 있는 게 아니라, 언어적 실천에

의해 가변화하는 (게임의) 규칙으로서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랑그'는 불변적인 실체

가 아니라, 어쩌면 일종의 가족유사성을 갖는 규칙들의 집합인 셈입니다. 따라서 소쉬르와

달리 비트겐슈타인으로선 상황과 무관하게,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선험적 구조를 상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기표의 의미가 용법이라면, 그것이 도달해야

할 어떤 본래적 지점이 따로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기표의 미끄러짐'과 같은 문제는 나타

나지 않습니다.

다른 한편 소쉬르와 달리 언어의 의미가 별도로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언

어게임 속에서 기호의 용법으로 의미를 정의함으로써 차라리 그것을 규정하는 상황과 규칙,

그리고 실천에 주목하게 합니다. 이런 차이로 인해 구조언어학으로는 설명하기 난감한, 언어

를 가르치고 배우는 문제에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언어를 실천이나 상황

과 같은 언어 외적인 것에 결부해 파악하기 때문에, 즉 생활형태라는 좀더 포괄적인 것의

일부분으로 다루기 때문에, 소쉬르처럼 언어 자체만을 독립시켰을 때와는 달리 언어의 변화

를 이해할 수 있는 개념적 공간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이는 언어적 실천과 비언어적 실천,

언어와 언어 외적인 것 간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해줄 고리가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진리는 이렇게 정의된 언어 및 언어게임의 개념을 통해 형성되는 믿음의 문제로 파

악됩니다. 그 믿음은 물론 실천과 생활형태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만 말입니다. 지식을

이런 관점에서 파악함으로써 대상과 개념의 일치, 또는 대상과 주관의 일치라는 근대적 진

리 개념에서 완전히 벗어납니다. 저는 이러한 관점을 좀더 밀도 나간다면 '진리란 특정한

언어게임 내부에서 진리효과에 의해 정당화되는 지식'으로 다시 정의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

합니다. 즉 옳은 지식으로서 갖는 효과(진리효과)에 의해서, 특정한 언어게임 내부에서 진리

라는 믿음을 지속시킬 수 있는 지식이 바로 진리일 거라는 생각입니다. 그게 공학에 의한

것이든 다른 이론적 명제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집단이나 개인의 실천에 의한 것이든 간에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실천은 실증주의자의 생각처럼 진리를 '검증'해주는 기능을 하는 게

아니라, 진리 효과에 의해 어떤 지식을 정당화하거나 부정하는 기능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

니다.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믿음'이란, 단순히 주관적인 신앙이라기보다는 이처럼 실천에

의해 유지되거나 파괴되는 것이고, 따라서 진리란 '믿음의 함수'이자 '실천의 함수'인 셈입

니다. 그리고 '주체'란 언어게임을 통해 활동하는 개개인을 가리킨다고 하면, 그것은 결국

생활형태와 언어게임 속에서, 그리고 그 언어게임을 통해 형성되는 믿음에 의거해 만들어지

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게임과 '주체' 간의 교호적 작동은 실천(언어적/

언어적)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비트겐슈타인에게 '실천'의 개념이란 맑

스에게서처럼 근본적이고 중심적인 축임에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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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근대 너머의 철학을 위하여

1.구조주의와 철학

현대 철학에는 다양한 흐름이 있고, 이 흐름은 이제까지 얘기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기도 합니다만, 이 자리는 어차피 한정된 것이기에 그걸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일단 구조주의자 혹은 포스트구조주의자라고 불

리는 사람들의 사상 가운데 대표적인 것만을 간략히 다루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현대 철학을 대변하는 것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건 옳은

말입니다. 현상학이나 하이데거, 거기서 이어지는 해석학적 흐름도, 혹은 좀 다른 방향으로

현상학을 발전시킨 실존주의도, 영미권의 철학도 나름의 분명한 정통을 형성하고 있는 게

사실이며, 독일에서는 비판이론이라 불리는 철학적 전통이 독일 너머까지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근대 철학의 문제 설정과 그 경계선을 드러내려고 한 시도가 명확

하면 할수록 주제에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구조주의나 포스트구조주의는 근

대 철학과의 관계를 명시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근대 철학의 한계를 의식적으로

넘어서려 한다는 점에서 이 자리를 빌려 이야기할 이유가 충분합니다.

그런데 구조주의의 흐름에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적잖이 당혹스런 사태에 부딪히게 됩니

. 그것은 우리가 흔히 구조주의자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자신이 '구조주의자'

임을 부정하고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만이 에외일 따름입니다. 이런 사정은 포

스트구조주의라고 불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집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는 무엇 때문이며,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건 그들을 직접 만나 본 일

이 없는 저로선 감 잡기조차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이게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도 의문

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정의 원인이든 결과이든 간에, '구조주의'라는 말 자체가 매우 애매

하게 사용된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구조'라는 말은 인문과학이나 사회과학에

서 가장 흔히 사용하는 개념 중의 하나입니다. 언어 구조니 사회구조니 경제구조, 정치구조

니 하는 말들이 그거지요. 구조주의란 말을 가장 넓게 사용하는 경우는 이처럼 구조를 가정

하고, 그것이 반복적으로 다양한 현상들을 만들어 낸다는 전제 아래 다수의 현상들 근저에

서 구조를 찾아내려고 하는 시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지시하는 내용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이 말만으로 어떤 철학적 태도나 사상적 흐름을 변별하기에는 곤란합니다.

반면 가장 좁게는 언어의 일반적이고 공통된 구조를 찾으려고 한 구조언어학을 가리키며,

그 영향을 받아 구조언어학의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이들은 어떤 하나의 항

은 다른 항과의 대립적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고, 각각의 요소들은 전체 체계를 이루며 이

체계 속에서만 의미나 기능이 정해진다고 합니다. 이런 의미로 쓴다면 아마 구조언어학자와

레비스트로스 정도만이 구조주의란 이름에 적당하다는 결론에 이를 것 같습니다.

다른 한편 이들의 영향 아래, 다양한 것들의 근저에 있는 구조를 보편적이고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찾으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들 역시 요소가 아니라 관계를 강조하고 그 관

계 속에서 요소를 이해했지요. 예컨대 다양한 지식이나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무의식적인

(사고)구조를 찾으려는 시도(푸코의 에피스테메), 모든 인간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무의

식의 구조를 규명하려는 시도(라캉의 '타자Other'), 혹은 다양한 사회의 공통된 요소들을 찾

아내고, 그 요소들의 결합관계로써 사회의 본질적 구조를 찾아내려는 시도(알튀세/발리바

E.Balibar의 생산양식) 들이 이런 관점에서는 '구조주의'로 간주됩니다. 제가 지금 '구조주의

'란 말을 사용한다면 세번째 의미로 사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을 단순히 '구조주의자'

하나의 이름만으로는 충분히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그들은 이후 구조주의가 가지고 있는

주요한 가정을 해체하고 파괴했습니다. 예컨대 모든 인간에 공통된 무의식적 조건을 찾으려

는 시도나, 모든 경우를 포괄하며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구조'를 찾으려는 시도를 말입니

. 이런 점에서 그들은 '구조주의자'로 불리기를 거부합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해체도 역시

구조주의를 통해 개척한 새로운 지반 위에서 행해진 것이며, 구조주의와 연속성을 갖고 있

다는 것만은 완전히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포스트구조주의라는 말은 그것이 대개(

부는 아니란 의미에서) 구조주의의 연속성 위에 있음을 뜻하지만, 동시에 그 한계를 해체하

고 넘어선다는 점에서 구조주의를 벗어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알다시피 '포스트'라는 말

은 무엇의 ''라는 의미인데, 그것을 벗어난다는 것인지, 그것에 이어진 부분이란 뜻인지

애매합니다. 이 애매함이 차라리 이 흐름이 갖는 이중적인 위치를 잘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

. 그래서 저는 그냥 '포스트'라고 음독해서 쓰겠습니다.

 

2.레비스트로스와 구조주의

구조언어학에서 구조주의로

레비스트로스는 구조주의란 이름과 가장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제2

세계대전 당시 망명지 미국에서 구조언어학자인 야콥슨과 함께 지내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구조언어학의 영향을 매우 강하게 받습니다. 이후 그가 개척한 구조주의라는 흐름과 연구

방법은 이때 야콥슨을 통해서 배운 것이었습니다. 그는 <구조인류학>이란 책에서 <음운학

원론>으로 유명한 트루베츠코이를 언급하면서 자기의 연구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첫째로, "음운론은 의식적인 언어 현상의 연구에서 무의식적인 하부 구조로 옮아간다"

합니다. 음운을 구별하는 것은 의식적인 게 아니라 무의식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음

운론의 연구 대상은 의식적 현상이 아니라 무의식적인 하부구조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레

비스트로스 자신 역시 친족관계나 신화 등에 대해 무의식의 차원에서 연구합니다.

둘째로, "각각의 항을 하나의 독립된 실체로 연구하는 것을 거부하며 항과 항의 '관계'

분석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음소들 하나하나는 그 자체로는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다른 것과의 관계, 대비 속에서 구별된다고 합니다. 예컨대 ''이란 말에서

이나 , 과의 관계 속에서 자기의 소리를 얻으며, 실제 소리도 다른 소리와의 대비를

통해서 구별됩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개개의 항이 아니라 그 항들간의 관계인 것입니다.

셋째로, "음운론은 체계의 개념을 도입"합니다. 음소들은 체계를 이루며, 결국 음운이란

음소들의 체계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러한 체계의 개념은 나중에 '구조'란 개념으로 이어

집니다.

넷째로, "음운론은 일반적인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합니다. 이것이 귀납에 위한 것이든

연역적인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물론 어느 경우든 단순히 경험을 일반화하는 식으로 수행하

는 게 아니라 경험적인 것 속에서 일반 법칙의 징후를 찾아내고, 그것들을 하나의 체계로

구성함으로써 법칙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언어학적 방법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점에서 구조주의의 형성에 기여한다고 합니

. 첫째, 언어학은 어떠한 인간 집단도 예외가 될 수 없는 대상을, 즉 분절화된 언어 활동

이란 보편적인 대상을 갖고 있습니다. 둘째, 언어학의 연구 방법은 야만인이든 문명인이든

현대인이든 고대인이든 동질적인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셋째, 언어학의 방법은 다른 인문 사

회과학에 비해 훨씬 폭넓은 보편성과 엄격한 과학성을 지닙니다. 이제 레비스트로스는 보편

적이며 동질적인, 그리고 정밀하고 과학적인 것을 자기의 연구 영역에서 추구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이런 방법을 통해 연구하려는 대상은 대체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그것은 모든

문화에 공통된 질서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동양 문화든 서양 문화든, 현대 사회든 고대 사회

든 인간이 존재하는 모든 문화에 공통된 보편적 질서를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마치 야콥슨

이 모든 언어에 공통된 어떤 보편적 구조(이를 그는 '메타구조'라고 합니다)를 발견하려고

했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인간의 삶에 공통된 질서를 발견하려는 것입니다. 이것

을 위해 그는 다양한 종족의 문화를 연구하는 사회인류학을 택했습니다. 다시 말해 '모든

문화에 공통된 질서'가 바로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 연구 대상입니다. 이를 흔히 '심층구

'라고 합니다.

다른 한편 그는 이러한 공통된 사회적 문화적 질서를 찾으려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만약 그러한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질서가 존재한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통된

보편적 사고구조가 인간에게 있으리란 생각을 끌어내는 건 차라리 쉬운 일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는 그는 <날것과 구운 것><서곡>에서, 데카르트처럼 인간 이성의 보편적 형태

에 대한 가정을 할 게 아니라 이성의 집합적인 형태에 대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서 그것을

찾아내고자 합니다. 그럼으로써 상이란 주체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줄 그런 무의

식적인 조건을 찾아낼 수 있을 거라고 합니다. 이를 그는 '사회적 무의식' 혹은 '구조적 무

의식' 이라고 합니다.

결국 그는 사회인류학이란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이성을,

리하여 인간이 진리에 도달할 수 있게 해줄 무의식적 기초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것은 레비

스트로스의 철학적 연구 대상이라고 라겠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경험적 연구를 통해 이성의

선험적인 구조를 찾아내려고 하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선험적 주체를 구성하려는 칸트의

노력과 유사합니다. 그래서인지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연구가 "선험적 주체 없는 칸트주의

"라는 리쾨르(P.Ricoeur)의 비판을 흔쾌히 받아들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철학적 작업을

정신의 보편적이고 불편적인 기초를 찾아내려는 칸트 철학적인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 합니

. 그의 연구가 인류학에 머물지 않고 사상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의 작업이 갖는 철

학적 의미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한마디 덧붙이자면, 레비스트로스는 이제 인문과학의 목표가 인간이나 주체를 구

성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근대 철학에서 그러하듯이 주

체나 인간이란 개념 혹은 보편적 이성을 출발점으로 가정할 게 아니라 차라리 그것을 해체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경험적 연구를 통해 정말 진리의 기초, 인간들이 하는 사고의

보편적 기초를 찾아내자는 거지요. 이러한 그의 입론으로 인해, 구조주의 이후 대부분의 사

상가들은 '반인간주의''반주체철학'을 받아들이고 공유하게 됩니다. 이후 '인간의 죽음' '

주체의 죽음'이 여러 사람에 의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선포되지요.

더불어 그는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으로도 유명합니다. <야성적 사유>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사르트르의 역사주의를 비판합니다. 역사란 그것을 사고하고 쓰는 사람들에 의해 취사

선택된 것이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인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반면 구조주의는 어떤 대상이

갖는 요소들을, 상호관계 속에서 체계화한다는 점에서(공시적으로 연구한다는 점에서) 객관

적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반역사주의 역시 한동안 프랑스 사상가들에겐 중요한 '철학'이 됩

니다.

 

두 개의 보편적 질서

그렇다면 그가 경험적 연구를 통해 도달한 곳은 어디일까여? 모든 인간의 공통된 무의식

적 기초는 무엇일까요? 한마디로 그것은 '근친상간 금지(incest taboo)'라는 규칙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연과 문화가 만나는 지점을 주목합니다.

인간이란 생물학적 존재면서 동시에 사회적 존재지요. 그런데 인간이 편입된 곳이 자연인

지 사회인지, 자연인지 문화인지를 구별해 주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합니다. 자연이 끝

나고 문화가 시작되는 곳이 어디냐는 겁니다. 그것은 또한 동물과 달리 어떤 규칙이나 질서

가 안정성과 지속성을 갖도록 하는 것은 무엇이냐는 물음입니다.<친족관계의 기본 구조>

첫 번째 장은 바로 이 '자연과 문화'란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규칙(rule)''보편성(universality)'을 대비하여 정의합니다. 규칙은 문화에

해당하는 특징이고, 보편성은 모든 인간이 자연적 존재로서 갖는 특징을 가리킵니다. 다라서

규칙은 특수적이며 상대적이지만, 보편성은 자연발생적이고 절대적입나다. 그런데 어떤 규칙

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보편성을 갖는다고 합니다. '근친상간 금지'가 바로 그

것입니다. 즉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분명하게 규칙과 보편성이란 양자를 함께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모든 사회적 집단에서 예외 없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는 자연적 존

재로서의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연결하는 축인 셈입니다. 근친상간 금지라는 선

을 통과하면서 자연적 존재는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존재가 됩니다. 따라서 그것은 문화의

출발점이자 모든 문화의 기초인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근친상간 금지는 우리를 안팎으로 둘러싼 이중의 질서를 기초짓는 것입니다.

먼저 보편적인 사회 질서를 정립하는 것입니다. 근친상간 금지는 그 자체가 허용과 금지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일정한 범위 내에서는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한편, 그 이외의 범위에

대해서는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성적인 결합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근친상간을 금지하

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특정한 방식의 결합을 안정적으로 '허용'하지도 않는 동물적 세계와

는 대비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주시해야 할 것은 결혼을 매개로 이루어진 인간관계가 어떤 보편적

특징을 갖고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는 결혼이란 근친혼 금지의 기초 위에서,

여자의 교환으로 맺는 인간관계로 파악합니다. 즉 두 개의 집단이 여자를 주고받음으로써

친족관계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이 친족관계가 사회구조의 기초이며, 사회구조는 이러한 친

족관계와 동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친족관계의 기본 구조는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친족구조의 기본 단위는 아버지

와 어머니, 그 자식, 그리고 외삼촌이란 네 항이 맺는 관계입니다. (1)아버지-어머니 관

, (2)아버지-자식 관계, (3)어머니-외삼촌 관계, (4)외삼촌-조카 관계가 그것인데, 이를 그

림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에 대비되는 두 가지 친족관계의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트로브리얀드족이고, 다른

하나는 체르케스족입니다. 트로브리얀드족은 모계사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

들은, 살기는 아버지의 마을에서 살지만 나중에 외삼촌의 재산을 물려받습니다. 부부간의 관

계계는 매우 친밀하며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친밀합니다. 이처럼 친밀한 관계를 레비스트

로스는 (+)로 표시합니다. 반면에 남매간의 관계(이는 어머니와 외삼촌의 곤계를 포함하지

)는 매우 엄격하며, 또한 외삼촌과 조카의 관계도 엄격합니다 이를 (-)로 표현합니다.

약하면 (1)(2)(+), (3)(4)(-)지요.

체르케스족은 이와 정반대입니다. 부부간의 관계는 엄격하며, 대신 남매(외삼촌-어머니)

의 관계는 매우 친밀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아들관계는 매우 엄격하며, 외삼촌과 조카 사이

는 매우 친밀합니다. 요약하면 (1)(2)(-), (3)(4)(+)인 겁니다. 이를 그림으로 표

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부부간의 관계가 친밀하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친밀하며, 반대

로 남매 관계나 외삼촌-조카의 관계는 엄격합니다. 그 반대로 부부간의 관계가 엄격하면 아

버지와 아들의 관계도 엄격하고, 남매관계나 외삼촌-조카 관계는 친밀합니다. 요컨대 부부

관계와 부자관계는 서로 같고, 남매관계와 외삼촌-조카 관계도 서로 같습니다. 그리고 전자

와 후자는 서로 반대입니다. 따라서 어느 한 가지 관계가 나오면 다른 나머지 관계들은 자

동적으로 연역됩니다. 이는 (+)(-)라는 두 개의 대립되는 기호로 친족간의 보편적 관계를

표시할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대립자질로 음운론 전반을 설명하려는 구조 언어학의 방법론

이 여기서도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레비스트로스는 인간의 보편적이고 '선험적인'

의식을 기초로 친족관계의 보편적 구조를 찾아내며, 이로써 사회구조 전반을 관통하는 보편

적인 사회 질서를 찾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그는 자연과 사회, 자연과 문화, 인간을 관통하는 선험적 무의식을 통해 보편적

인 사고 질서를 파악하려고 합니다. 즉 그가 말하는 근친상간 금지는 보편적인 사고의 무의

식적 기초요, 보편적인 사고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문화의 자연, 그리고 정신

의 동성형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가 주목하는 것은 원주민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사유방식입니다. 흔히 마술적, 주술적이라고 불리는 이 사고방식은 자연을 기초로 전개되는

, 이를 '야성적 사유(la pensee sauvage, savage mind)'라고 합니다. 이는 오랜 세월에 걸

쳐 반복적,지속적으로 자연을 관찰한 결과라고 합니다.

이러한 야성적 사고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획득하는 방법에서, 그리고 세계의 현상들을

바라보는 관심의 차이에서 과학과 구별될 뿐, 혼돈을 넘어서 나름의 질서를 파악하는 방법

이란 점에서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이래서 레비스트로스는 야성적 사고를 '구체적인 것의

과학'이라고 부릅니다. 이러한 야성적 사고는 원시인이나 미개인의 사고방식이 아니라 오늘

날의 우리도 공유하고 있는 근원적이고 무의식적인 사고방식, 일차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합

니다. 그래서 그는 '야성적'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인데, 이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고의 보편적 기초인 셈입니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토테미즘이나 카스트 제도, 신화 등을 분

석함으로써 토테미즘에도 나름의 논리와 체계가 있고, 보편화와 특수화라는 사고 메커니즘

이 작동함으로써 사물을 분석, 종합하는 사고구조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레비스트로스는 이러한 자연적 사고방식에 '주술'이나 '마술'이란 이름을 붙여 과학과 대

립시키고는, '비과학적'이기에 불합리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라고 비판합

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근대 과학혁명이 본격화한 15~16세기 이전의 자신들의 역사도

이해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힌다는 것입니다. 서구인들이 내세우는 과학적 사고방식 역시

이런 야성적 사고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면 어디 하늘에서 떨어진 거겠냐는 겁니다. 이런 점

에서 야성적 사고는 자연과 인간, 물질과 정신을 이어 주는 매듭이며, 자연에 기초를 둔 무

의식적 사유라고 합니다. 그것은 모든 인간에 공통된 선험적 사고구조요, 보편적 사고질서를

뜻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가 말하는 야성적 사고란 일종의 구조적 무의식

혹은 사회적 무의식인 셈이지요.

 

레비스트로스의 귀향

요약합시다. 레비스트로스는 앞서 본 것처럼 '인간의 해체' '주체의 해체'가 중요한 문제

라고 주장합니다. 즉 데카르트나 칸트처럼 주체나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거나 그것을 철학적

으로 규정하는 근대적 노력에 대해 명시적으로 반기를 드는 것입니다. 이로써 이후 '반인간

주의''반주체철학'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기초를 마련해 준 셈입니다. 사르트르와의 논쟁

을 통해 역사주위와 반대되는 과학으로서 구조주의를 정립한 것 역시 이후 반역사주의적 경

향의 모태가 됩니다.

한편 레비스트로스는 "중요한 것은 인간을 구성해 내는 게 아니라 인간을 해체하는 것이

"라고 주장하면서 근대적인 인간 개념을 해체하려고 합니다. 동시에 새로운 방식으로 인

간에게 공통된 보편적인 요소를 찾아내려고 합니다. 알다시피 그는 경험적인 연구를 통해

자연과 문화에, 자연적 질서와 시화적 질서에 공통된 보편적 사고구조를 발견하려고 했습니

. 이런 점에서 자신의 기획이 칸트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유사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바 있지요. 근친 상간 금지에 대한 지적에서 출발하는 그 이론은 의식과 사고의 무의식적

기초, 선험적 기초를 찾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것을 레비스트로스는 '야성적 사고'라고 했던

거지요.

따라서 그의 입론은 주체를 그러한 심층구조의 효과로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구조를

통해 만들어지는 것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명시적으로 탈근대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동시

에 그것을 모든 인간에 공통된 어떤 보편적이고 선험적 구조를 발견함으로써 구성하려 한다

는 점에서 철저하게 칸트적이며 근대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이는 야콥슨에게서도 마찬가

지로 나타나지요).이런 점에서 볼 때 '선험적 주체 없는 칸트주의'보다는 '야성적 주체의 칸

트주의'라고 하는 데 더 정확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탈근대적인 문제의식을 가지고 출발해서 근대적인 기획

으로 되돌아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가 제창한 구조주의는 두 개의 상반되는

얼굴을, 상충되는 요소를 갖고 있는 문제 설정으로 간주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사실상 그

의 출발이 어떠했든간에 그의 이론적 기획이나 문제 설정 전반에 걸쳐 지배적인 것은 스스

로도 인정했다시피 '칸트주의' 적인 측면입니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적 작업이 근대

철학의 경계선을 정신분석학과 사회인류학을 통해 넘으려 한 것이었다면, 그 결과는 오히려

칸트적인 방식으로 근대적 사고로 복귀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인

류학적 '성공'은 철학적 '실패'와 동전이 양면인 셈입니다.

다른 한편 과학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 이원적입니다. 원주민들에 대한 애정이 진하게 배

어 있는 그이 작업은 '야성적 사고'를 통해 주술과 과학의 대립을 깨려는 노력을 보여 줍니

. 그리고 서구적인 관점에서 토템이나 주술을 '과학'의 이름을 빌려 매도하려는 시도를 정

열적으로 반박합니다. 그의 입장은 서구적인 과학적 사고보다는 차라리 야성적 사고에 기울

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은 야성적 사고를 보편적 사고로 위치 지으려는 그의 태도에

서도 드러납니다. 이와 관련해 데리다는 그의 입장에서 "자연으로 돌아가라"라는 일종의 루

소주의적 반서구 적이고 반과학적인 경향을 읽어 내는 것은 그리 지나친 평가는 아닐 겁니

.

반면 사르트르의 역사주의에 대한 비판에서 그가 명시적으로 겨냥하고 있는 지점의 하나

는 바로 그것이 과학일 수 없으며, 해석하는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주관적인 것이란

점입니다. 다시 말해 역사주의 비판은 '과학'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간 모두에게 공통된 보편적 기초를 찾겠다는 시도 자체도,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어떤 것

을 진리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무의식적 기초를 찾겠다는 시도 자체도 어떤 초월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주의적 태도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가 다른 입론을 비

판하며 자신의 입론을 정당화하는 방식은 정확하게 근대적인 과학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문제 설정은 반과학(반서구)적인 태도를 과학주의적인 방식으로 정당화하

려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런 뜻에서 '반과학적 과학주의'라는 말로 요약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그의 작업 전체에 방향을 부여하고 움직이는 지배적 요소

는 과학주의적 동기임은 부정하기 힘들 것입니다. 따라서 인식론적 차원에서도 레비스트로

스의 문제 설정은 근대적인 것 안에 머물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간단히 덧붙이자면, 그가 보여 주는 반서구적이고 반문명적인 태도는 과학적

이성을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미개요 야만이며, 따라서 계몽되어야

할 것이라고 간주하던 계몽주의적 사고에 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는 이 이분법 자체를 넘어서서 공통된 하나의 기초로 찾아내려고 하는 셈이지요. 그러나 그

공통된 기초의 자리에 '야성적 사고'를 갖다 놓음으로써 '야성'의 입장, '반문명'의 입장을

우위에 두게 되고, 결국은 예전의 계몽주의적 도식을 거꾸로 뒤집은 입장을 취하는 것 같습

니다. 흔히 루소주의적 경향이라고 비판하는 점이 바로 여기일 텐데, 요컨대 계몽주의적 이

분법 자체를 깨고 넘어서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3.라캉-정신분석의 언어학

정신분석학의 대상

라캉은 직업적인 철학자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입니다. 그는 미국식 정신분석학에 커다란

반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국식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자아심리학적인 경향이 있는데,

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자아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이론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구순기, 항문기, 성기기 등을 거쳐 하나의 '표준적인' 자아를 향해 발전해 가는 과정에 대한

일종의 임상심리학으로 바꾸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라캉은 이것을 한편에선 생물학주의에

의해, 다른 한편에선 형태주의에 의해 프로이트 이론의 고유한 정신을 훼손한 것으로 간주

합니다.

이러한 나름의 비판적 입지점을 설정한 라캉은 프로이트 이론에서 생물학주의적 요소를

제거하고, 나아가 프로이트 이론이 갖는 철학적 의미를 새로이 부각하려고 합니다. 이 두 가

지 목적을 위해 그는 레비스트로스처럼 구조언어학을 끌어들입니다. 즉 구조언어학의 이론

과 방법론을 기초로 하여 프로이트 정신분석학 본래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프로이트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을 자신의 모토로 삼습니다. 이럼으로써 그는 일종

의 소쉬르적인 프로이트주의를 재구성하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돌아가야 할 프로이트란 '무의식'이란 새로운 개념을 발견한 프로이트요,

의식에 대한 풍부한 논의를 포함하고 있는 '성숙기'의 프로이트를 말합니다. 라캉이 말하는

성숙기의 프로이트는 결코 노년의 프로이트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꿈의 해석>을 쓴

1890연대 말부터 1914년 정도까지의, '중기의 프로이트'라고 불릴 수 있는 시기의 프로이트

입니다. 그가 프로이트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취급하는 것은 <꿈의 해석>외에 <일상 생

활의 정신분석학> <농담과 무의식의 관계> 1905년을 전후에 쓰인 것입니다(<무의식에

서 문자의 심급, 혹은 프로이트 이후의 이성>, <욕망 이론>). 이 시기 프로이트는 의식/

의식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됩니다(이처럼 어떤 이론 전체의 틀을 가장 포괄적이고 핵심적인

개념과의 관계, 곧 위상으로 요약하는 것을 '위상학'이라고 하지요). 그는 거시기/초자아/

아라는 후기의 위상학에서 '거시기'라는 개념이 생물학주의적 요소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

문에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단지 '그것(ca)'이란 말로 번역해 피해갑니다.

그러면 정신분석학의 대상은 무엇일까요? 다시 말해서 프로이트가 어떤 대상을 발견했기

때문에 정신분석학이란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을까요?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무의식'입니

. 그렇다면 무의식이란 무엇일까요? 라캉에게 그것은 하나의 생물학적 존재를 인간의 자

식으로 변환하는 메커니즘이며, 계속해서 인간이 아이로 살아가게 만드는 인간 내부의 메커

니즘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를 레비스트로스와 비교할 수 있습니다. 레비스트로스는 '근친상

간 금지'를 인간의 삶이 자연에서 문화로 넘어가는 고개요 문화 성립의 결정적인 계기로 봅

니다.

한편 라캉에게서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게 바로 오이디푸스기(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

하는 시기)지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고 싶다는 욕구, 그것은 인간이 되기 위해

억압해야 할 최초의 것입니다. 이건 또한 레비스트로스의 근친상간 금지요. 욕구에 대한 이

러한 금지란 사실 인간이 따라야 할 가장 원초적인 규칙이요 법인 것이고, 오이디푸스적 욕

망에 대한 금지를 통해 사회적 법과 규칙을 통해 욕구를 억압함으로써 무의식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라캉은 무의식이란 동물에겐 없으면 오직 인간에게만 있다고 하지요. 이렇듯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는 라캉의 체계에서 매우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함니다. 그것은 라캉에

겐 무의식 자체에 대한 정의를 뜻하는 것인 셈입니다. 이런 점에서 라캉의 무의식/오이디푸

스 개념은 레비스트로스의 근친상간 금지와 매우 유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타자의 담론,무의식의 담론

다른 한편 라캉이 무의식을 파악하는 데서 결정적인 전통적 개념과 달라지는 것은 소쉬르

등의 구조언어학의 개념들과 이론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조차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이 그대로 배어 있는 것입니다만, 그 개념들을 사용함으로써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나

기존 프로이트주의자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가장 기본적인 명제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정신분석

학에서는 신경증이든 실수든 농담이든 꿈이든 대개 어떤 무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간주합니

. 즉 그런 현상들은 무의식의 '징후'라고 합니다. 언어학 용어를 쓰면 개개의 징후란 무의

식상의 어떤 의미를 표시하는 '기표'(s)'를 뜻합니다. 무의식은 기의(s)인 셈이지요. 라캉은

이를 소쉬르와 유사하게 S/s로 표시합니다. 하지만 무의식의 기표는 기의를 그대로 보여 주

지 않습니다. 기의를 이해하려면 그 기표(징후)를 다른 기표(징후)들과의 연관 속에서 해석

하는 수박에 없습니다. 즉 기표들의 연쇄, 기표들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기표의 의미는 정해

지지요. 하지만 이것은 무의식에 있는 어떤 궁극적인 기의를 표시한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래서 라캉은 "기표가 기의에 닿지 못하고 계속 미끄러진다"고 하지요. 이래서 Ss를 가

르는 무의식의 장벽을 뜻한다고 합니다.

다른 한편 결합관계와 계열관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지요? 그게 바로 문장으로 언어가

조직되는 방식이라고 말입니다 '먹었어'라는 말은 '누가' '무엇을'이란 말과 결합되며,

말이 표시 되지 않은 경우에도 그것은 '먹었어'와 공존합니다. 이걸 야콥슨은 '환유'라고 하

지요. 반면 '무엇을' 자리에 빵 대신 밥이나 물처럼 유사성을 갖는 말들이 '대체'되며 선택

되는 관계를 은유라고 한다고 했지요? 이처럼 결합관계와 계열관계를 통해 단어들은 문장으

, 언어로 조직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직하는 규칙이 언어 규칙(소쉬르의 '랑그')입니다.

프로이트는 꿈을 분석하면서 꿈의 작업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 셋을 듭니다. 응축과 치환,

그리고 대리표상이 바로 그겁니다. '응축(con-densation)'A의 모자를 쓰고, B의 옷을 입

었으며, C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D의 이미지를 하고 있는 모습을 꿈속

에서 본 일이 있을 겁니다. 이처럼 여러 개의 이미지가 하나로 압축되어 나타나는 것이 바

로 응축입니다. '치환(displacement)'은 성교가 피 흘리는 모습으로 나타나거나 사정이 눈물

로 표현되는 경우를 예로 듭니다. 대리표상은 '싫다'는 뜻이 자기가 싫어하는 동물인 뱀으로

나타나거나 '소원감'이 멀리 떨어져 앉아야 하는 커다란 테이블로 나타나거나 하는 걸 예로

듭니다.

여기서 응축과 치환이라는 무의식의 메커니즘이 앞서 언어학에서 말하는 것과 동일한 방

식으로 꿈을 조직한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론 라캉에 따르면 꿈에서 응축은 유사한 여러

가지가 한테 뭉쳐 나타난다는 점에서 '은유'라고 하고, 치환은 인접한 다른 기표를 빌려 나

타나기에 '환유'라고 합니다. 이처럼 무의식이 표현되는 방식이나 그것이 조직되는 방식은

라캉이 보기에 언어적인 구조와 동일합니다. 이런 뜻에서 그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

되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언어학에서 보았듯이, 언어는 나름의 독자적인 의미망을 가지고 있고, 독자적인 질

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언어를 사용하려면 그 속으로 편입되어야 합니다. 무의식 역시 언어

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면, 그것은 나란 개인에게 독립적인 질서와 체계를 갖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무의식이란 타자(autre)의 담론이라고 합니다. 결국 무의식이란 '타자의 담론

'이라고 요약죄는 이 질서가 개개인에게 내면화되는 메커니즘을 의미하며, 개개인이 질서로

편입되는 메커니즘을 의미합니다(어머니와 자고 싶다는 오이디푸스적 욕구의 억압을 통해

형성되는 무의식은 이렇듯 사회적 질서와 연관됩니다).

 

타자의 욕망-도둑 맞은 편지

다음으로 라캉은 무의식은 다자의 욕망(desire)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이해하려면 몇 가

지 다른 개념을 함께 알아야 합니다. 그는 욕망을 욕구(need), 요구(demand)와 구별합니다.

'욕구'는 식욕, 성욕처럼 가장 일차적인 충동입니다. 이는 다른 사람에게 만족시켜 달라는 '

요구', 대개는 '사랑의 요구'로 나타납니다. 요구는 욕구를 표현한다고 말해도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이 요구는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것으로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어

머니와 자고 싶다는 욕구가 그대로 표현될 수는 없습니다. 즉 어머니에게 결혼을 '요구'하는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요구는 사회적 질서와 언어적(상징적) 질서가 허용

하는 범위 안에서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욕구는 언제나 요구를 통해서 표현되고 충

족되어야 하기에 그 충족은 언제나 불충분합니다. 즉 욕구와 요구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습니다. 욕구와 요구 사이의 이 격차로 인해 욕망이 생겨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욕

망은 '결핍' 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결핍을 메울 대상을 찾아 나서지만 결코 만족될 수 없는

것이기에 또 다른 대상으로 끊임없이 치환됩니다. 즉 대상이 끊임없이 치환되는 '욕망의 환

유연쇄'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여기서 욕망은 생물학적인 충족욕이 아닙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다른 사람으로부터 '

랑의 대상'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여, 다른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를 라캉은 음

penis과 구분하여 '남근phallus'라고 합니다)으로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인정 욕망'입니다.

예컨대 어머니를 '욕망'한다는 것은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남근'임을 인정받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망은 허용될 수 없으며, 계속 추구된다면 거세되리라는 위협 앞

에서 것이고 만다고 합니다. 거세 콤플렉스를 통한 이러한 억압과 그로 인해 야기되는 욕망

의 환유연쇄가 바로 인간의 무의식을 구성한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무의식이란 타자(다른

사람, 사회적 용인, 사회적 질서)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인정 욕망이란 거지요. "무의식은 타

자의 욕망"이란 말은 바로 이런 뜻입니다.

이상의 얘기를 포(E.A.Poe)의 소설 <도둑 맞은 편지>를 통해 다시 생각해 봅시다. 라캉

의 저작집이자 활동의 '기록(ecrit)'<에크리 Ecrit>는 바로 이 소설에 대한 세미나로 시

작하지요. 알다시피 그 소설의 주 스토리는 왕비가 왕이 있는 자리에서 왕이 봐선 안 될 중

요한 편지를 장관에게 도둑 맞음으로써 시작하지요. 경시청장이 탐정 뒤팽에게 전하는 바에

따르면, 왕비가 편지를 읽고 있을 때 왕이 갑자기 들어오고, 왕비는 약간 당황하지만 그걸

책상 위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서처럼 그냥 펼쳐 두지요. 물론 왕은 그걸 못 보지요.

방에 들어왔던 눈치 빠른 장관은 비슷한 문서를 하나 책상에 펼쳐 두고 설명하는 체하다가

그걸 두고 대신 왕비의 편지를 가져가지요. 그렇지만 왕비가 그걸 저지할 순 없는 상황입니

. 이 편지로 인해 장관은 왕비를 이용해 권력을 키웁니다. 왕비의 요청으로 이 편지를 찾

기 위해 경찰이 개입하여 장관의 집을 샅샅이 뒤지지만 편지는 못 찾고 결국 탐정 뒤팽에게

사건을 의뢰합니다. 결과는 뒤팽이 그 편지를 찾아주고 현상금을 받는 거지요.

여기서 왕은 눈이 있으되 아무것도 못 보고, 아무 눈치도 못 챕니다. 반면 왕비는 장관이

뻔뻔스레 편지를 가져오는 것을 보고도 전혀 저지하지 못합니다. 장관은 왕비에게 편지를

가져간다는 것을 오히려 분명하게 알리고, 그걸 자신이 갖고 있음을 아는 왕비를 이용해 자

신의 권력을 확장합니다.

우선 편지가 'letter'라는 점을 주목합시다. 즉 문자라는 뜻을 동시에 담고 있지요. 라캉이

보기에 이 letter는 언어적으로 짜여진 무의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 편지를 통해 각자는

서로 관계를 맺습니다. 이 편지에 대한 각자의 관계로 인해, 눈이 있어도 못 보는 왕, 편지

를 못 보리라 생각하는 왕비, 하지만 그걸 알아보고 유유히 가져가는 장관의 위치가 정의됩

니다. 각자가 서 있는 지점은 letter에 의해, letter에 대한 각자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것

입니다. 개인의 외부에 있는 이 관계가 바로 '타자', 그걸 전달하는 편지는 '타자의 담론'

인 것입니다. 이는, 못 찾는 경찰과 그걸 못 찾으리라 생각하는 장관, 하지만 그걸 유유히

찾아내 가져가는 뒤팽의 관계에서 동일하게 반복됩니다. 이러한 반복은 이 관계들이 우연적

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것임을 보여 줍니다.

왕비가 편지의 도난을 보고도 아무 말 못한 것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편지의 부재를

왕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장관이 그 편지를 눈에 보이게 도둑질한 것 역

, 자신이 왕비의 약점을 쥐고 있는 존재며 왕비가 되찾고자 욕망하는 것을 소유하고 있음

을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그것을 이용해 장관은 왕비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고, 그걸 이용해 자신의 권력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경찰이 별짓 다해 가며 장관의

집을 뒤지고 편지를 찾는 것은 왕비가 욕망하는 것을 자신이 가져다 줌으로써 왕비의 인정

을 받고자 하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각자는 타자가 욕망하는 것을 갖고자 하며, 타자의 욕망의 대상임을 인정

받고자 합니다. 즉 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이고 이런 점에서 letter'남근'과 동일한 기

능을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이런 점에서 언어적으로 구조화된 무의식을 '타자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 을 것입니다.

 

진리의 배달부,그리고 주체화

앞서 타자는 편지를 통해 나의 위치를 자정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좋으나 싫으

나 이미 지정된 '내 자리'인데, 이걸 굳이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즉 왕비가 도둑

질하는 장관을 그 자리에서 제지하고 질책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그런 편지가 왕

비에게 없으리라는 왕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없게 됨을 뜻합니다. 즉 왕비로서 인정받아야

할 중요한 것을 인정받지 못하고 맙니다.

따라서 이런 불행한 사태를 바라지 않는다면, 왕비는 편지로 인해 지정된 자리를 자기 자

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왕에게 '훌륭한 왕비로서' 계속 인정받고자 한다

, letter가 지정하는 자리를 자기 내부에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으며, 그것이 요구하는 바

에 따라 행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라캉은 에스(Es)라고 합니다. 독일어로, 흔히 이드로

번역되는 것이고 저는 '거시기'로 번역했던 게 이건데, 라캉은 그런 번역어들이 갖고 있는

생물학주의적 요소에 반대해 단지 '그것(ca)'을 지칭하는 말로 그냥 사용하며, 또한 주체

(subject)의 머리글자를 뜻하는 에스(S)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왕비가, 타자(관계)가 지정하는 위치를 '내 자리'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사실 왕비

로서 자신에 걸맞은 이상적인 상에 자신을 동일시(identification)한다는 걸 뜻합니다. 이처럼

왕비의 행동을 좌우하는 이상적인 상을 '자아의 이상(ego ideal)'이라고 합니다. 역으로 왕비

의 행동이란 이 자아의 이상에 동일시하는 것인 셈입니다. 즉 왕비가 소설 속에서 맡은 역

할을 하는 것은 바로 이 자아의 이상에 대한 동일시를 통해서지요.

앞서의 얘기로 도식을 설명하면, 대문자 타자(Other:이를 '큰 타자'라고 합시다)는 왕비

(me)의 자리를 지정합니다(me<-Other). 그리고 왕비는 왕비로서 자신을 인정받기 위해 이

큰 타자가 지정해 주는 자기 자리를 받아들입니다. 그 자리를 자기가 받아들임으로써 왕비

는 비로소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있는 겁니다(S<-Other). 에스가

주체의 약자인 S를 뜻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욕구가

소외되는 것을 뜻하며, 이런 의미에서 결핍(빈자리)을 이야기합니다(S->o). 작은 타자라고

불리는 object(o)는 바로 이런 근원적으로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지시합니다.

이 빈자리를 채우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빈자리를 메울 욕망의 대상들(이 역시

'작은 타자'라고 부릅니다)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근원적으로 채워질 수 없는

결핍이기 때문에, 어떤 하나의 대상을 통해 욕망이 충족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대

상의 끊임없는 환유연쇄가 나타나지요. 정확히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치명적인 도둑

질도 못 본 체해야 했고, 때로는 경찰을 시켜 장관의 집을 뒤지게 하기도 했고, 때로는 장관

의 요구를 싫어도 받아들여야만 했던 왕비의 태도를 이러한 관점에서 이해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결국 이런 다양한 모습들 각각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상상적으로 동일시함으로써

(o->me), 즉 그게 바로 ''라고 '오인'함으로써 타자에 의해 주어진 나의 자리(me)를 채워

가는 거지요.

큰 타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letter는 왕비를 주체화시킴으로써, 그리고 그것에 상응하는

다양한 대상들에 대한 왕비 자신의 동일시를 거쳐 큰 타자가 애초에 지정한 자리에 배달된

다고 합니다. So를 거쳐 이미 지정된 me의 자리에 배달된다는 거지요. 이로써 왕비는

전체 관계 속에서 자기에 배정된 역할을 자신의 일로 알고 수행하게 된다는 겁니다.

 

야누스 라캉-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라캉의 이론은 레비스트로스가 그렇듯이 주체나 인간이란 개념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습니

.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이 주체의 통일성이 나 중심성을 해체하는 효과에 대해선 예전

에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만, 라캉은 이런 해체 효과를 아주 멀리까지 밀고 갑니다.

지금까지 본 것처럼 왕비는 자신의 자아의 이상을 획득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본래의

모습이라고 상상적으로 동일시하는 과정을 통해, 사실은 타자가 지정한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내 자리'는 내가 아니라 '타자'가 지정하는 것이란 겁니다. 따라서 자아의 중

심성은 거꾸로 타자의 중심성으로 전환됩니다. 그래서 그는 데카르트를 겨냥해서 다음과 같

이 말합니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한다."

예컨대 왕비는 편지에 대한 관계 속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합니다. ''가 아니라

타자의 담론 속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서 있어야 할 곳, 즉 내가 존재해야 할

곳은 존재하는 게 아니라 타자가 '생각하는(지정하는), 즉 내가 생각하지 않은 곳(즉 타자

의 담론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라캉이 보기에 '' 혹은 '자아'라는 주체는 어

떤 중심성도 통일성도 갖지 않으며, 오히려 타자의 담론, 타자의 욕망으로서 무의식의 결과

물입니다. 즉 무의식이란 형태로 내면화된 체계와 구조의 결과요 효과인 것입니다. 이런 점

에서 라캉이 출발점은 레비스트로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근대적 문제 설정에서 벗어나 있습

니다.

나아가 주체의 구성을 '타자'라는 구조의 효과로, 그 결과물로 본다는 점에서도 레비스트

로스와 유사한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라캉 역시 구조주의자로서 분류되기도 합

니다. 하지만 라캉에게는 그처럼 단순히 평가하기 곤란하게 만드는 양면성이 있습니다.

즉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통해 형성되는 무의식을 통해, 그 질서의 체계 속에 편입

됨으로써 개개인은 주체로 구성된다고 하는 점에서 레비스트로스와 동형적입니다. 또한 그

결과 타자라는 이름의 체계가 지정하는 자리에 결국은 귀착될 수밖에 없다고 보는 점에서도

'구조주의적'입니다. 편지는 목적지에 배달되리라는 라캉의 말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의미는 기표들의 작용을 통해 형성됩니다.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란 기표들

의 관계를 통해 기표들이 기호(sign)로서 의미를 갖게되는 것-의미화signification-을 뜻합니

. 기표들간의 그러한 관계들이 성립되기 이전에 기표들이 의미(기이)는 어느 하나로 고정

되지 않으며, 이런 점에서 기표는 기의 밑으로 끊임없이 미끄러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계속

미끄러지기만 한다면 의미작용은 물론 기호를 통한 의사소통도 불가능하게 될 겁니다. 여기

서 라캉은 '고정점(point de capiton)'이란 개념을 도입합니다.

고정점이란 말 그대로 기의를 고정함으로써 기표의 미끄러짐을 준단 시키는 점을 말합니

. 원래는 의자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쿠션을 capiton이라 하고, 그걸 튀어나오도록 속을 넣

고 고정시킨 지점을 point de capiton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말을 하고 마침표를 찍음으로써

그 문장 안에 있는 기표들의 의미는 고정된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말이 고정점입

니다. 즉 마지막 기표와 마침표를 통해 기호들의 연쇄가 매듭되고 기호의 의미는 고정됩니

. 마치 배가 닻을 내림으로써 잠시나마 그 위치가 고정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이를 '

박점(anchoring point)'이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기호가 의미작용을 만들어

낸다기보다는 차라리 의미작용을 통해서 기호의 의미가 고정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고정점의 기능은 잠정적입니다. 그것은 고착된 것이 아니라 잠시 고정된

것이고, 따라서 뜯어서 다시 변경할 수도 있는 것이며, 기표연쇄의 항들을 변경시킴으로써

의미의 흐름이 다른 것으로 고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표의 의미작용이 갖는 이러한 잠

정성은, 의미를 언어(랑그) 전체에 고정된 것으로 간주하는 구조주의의 입장과 매우 상이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라캉은 분명히 말합니다. 언어에 대해, 다양한 기호연쇄들에 대해 하나의

잣대로 작용하는 기준은 없다고 말입니다. 어떤 기호연쇄에도 얽매이지 않으면서 그 기호연

쇄의 의미를 결정해 주는 '메타언어'(야콥슨)는 없다고 합니다. 이는 야콥슨의 개념을 받아

들이면서도. 모든 언어에 공통된 어떤 잣대를 찾아보려는 야콥슨의 시도와 분명하게 구분선

을 긋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런 점들로 인해 라캉은 '포스트구조주의자' '탈구조주의자'

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런 측면들은 구조주의가 가지고 있는 근대적 요소를 의식적으로

탈각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라캉이 타자란 개념을 통해 주체를 구성해 내는 방식에 특징적인 것을 간략히

언급하자면, 첫째는 주체를 구성하는 타자란 바로 질서를 의미하며 이는 언제나 단수/대문

(Other)로 쓰인다는 것, 그리고 이 타자(질서)의 외부는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이 질서를 벗어나 사고되기는 곤란하다는 것입니다. 둘째, 무의식의 형성 메커니즘이 질

서의 체계에 대한 동일시로만, 즉 타자가 지정한 자리를 자기 걸로 동일시하는 것으로만 이

해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앞의 것과 이를 합하면, 모든 사람이 결국은 기존의 질서를 받아들

여 자기 것으로 동일시한다는 것, 거기서 벗어날 수 없으리란 것을 뜻하는 것 같습니다.

나를 더 추가하자면 주체를 구성하는 타자가, 질서의 체계가 오직 '아버지-어머니-'라는

오이디푸스 삼각형 내부에서만 정의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라캉의 이론은 당시 프랑스의 지식인들에게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튀세나 크리스테바(J.Kristeva), 혹은 라클라우(E.Laclau)처럼 라캉의 개념이나 이론적 틀을

직접적으로 원용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보드리야르(J.Baudrulard)처럼 사회적 현상을 기호

적 현상으로 소급해서 파악하는 흐름 전체가 라캉의 영향 아래 형성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4.알튀세-맑스주의와 구조주의

알튀세의 사상은 모순적인 요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건 아마 다양한 사고의 영역을

과감하게 넘나들며 극한적으로 사고하려 했던 그의 철학적 삶이 남긴 흔적일 것입니다.

모든 모순적 요소를, 끊임없이 변화하는 이 사상가의 궤적을 여기서 충분히 쫓아갈 수는 없

을 것 같습니다. 다만 초기의 기획 자체에 내재해 있었으며, 이후 초기의 입장을 전환하는

계기로 작용하는, 따라서 후기 사상의 기초가 된 요소 정도를 간단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알튀세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평가는 구조주의와 맑스주의를 접합하려 했던 사람이란 것

입니다. 사실 초기의 이론에는 그가 스스로 '구조주의와의 불장난'이라고 불렀던 요소들이

매우 강하게 드러나며, 이후 이데올로기론으로 사고의 중심을 옮긴 이후에도 라캉의 영향이

결정적인 것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서로간에 매우 강한 긴장관계를 이

루고 있는 것이었고, 이로 인해 이 양자를 '접합'하려던 시도는 이 긴장과 대립으로 인해 끊

임없이 유동하며 모순적인 것이 됩니다.

지금 이 자리는 구조주의 이후 철학의 흐름을 다루는 자리인 만큼 알튀세에 내재해 있는

많은 모순적 요소 가운데 이것들로 제한해서 다루는 것은 불가피할 것 같습니다. 일단 알튀

세가 가지고 잇던 '이중적 기획'에서 얘기를 시작해 봅시다. 하나는 인식론적 기획으로서 과

학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이론적 기획으로서 이데올로기론에 관한 것입니다.

 

맑스를 위하여,과학을 위하여

첫째로는 그는 맑스주의 역사유물론을 '과학'으로 정립하고자 합니다. 이는 프롤레타리아

과학과 부르주아 과학이라는 이분법과 연관된 것입니다. 1940~1950년대 소련의 문화 전반에

대한 즈다노프(A.Zhdanov)의 독재와 과학 전반에 대한 리센코(T.D.Lysenko)의 독재는 한마

디로 부르주아 진영과 프롤레타리아 진영이란 두 개의 진영이 문화나 과학에도 존재한다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사회적 조건에 따라 생물체의 형질은 닮는 것이라는 이론이 리센코의

주도로 소련 생물학계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는 변증법적 유물론에 따라 구성된 프롤레타리

아적 생물학으로 간주되었고, 즈다노프의 권력을 통해, 궁극적으로는 스탈린의 권력을 통해,

유전을 주장한 멘델학파를 부르주아 생물학자로 몰아 축출하고 숙청합니다.

이는 물론 나중에 멘델의 유전학이 확고하게 확립되면서 아주 우스운 코미디로 끝나고 말

았지만, 이 과정에서 지식인들이 입은 상처는 매우 컸습니다. 부르주아지/프롤레타리아의 양

분법을 난도질당한 과학자들은 맑스주의 자체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됩니다. 이런 현상은

소련의 영향력이 미치던 모든 나라의 공산당 주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고,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알튀세는 과학을 두 개의 진영으로 분할하는 리센코 주의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맑스를 위하여>의 서문인 <오늘>에서 극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

학은 과학으로서 추구되어야하여, 이 점에선 맑스주의의 역사유물론 역시 마찬가지라고 합

니다. 맑스주의 이론이 과학이 아니라면 그건 프롤레타리아트의 이해에 걸맞은 것이어서가

아니라, 물리학이나 생물학, 수학 등이 그렇듯이 자신의 고유한 대상을 갖는, 여타 과학과

다름없는 과학(science among others)이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과학'에 대한 이처럼 강력한 문제의식은 다른 한편으론 레비스트로스의 역사주의 비판에

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역사주의가 객관적이거나 과학적일 수 없다는 레

비스트로스의 비판은 과학을 향한 강한 의지를 담고 있었지요. 알튀세 역시 이런 의지를 강

력하게 피력합니다. 그리고 맑스주의 진영에서도 하나의 대세를 이루고 있던 '역사주의'

비판합니다. 사르트르는 물론 루카치나 그람시 등은 맑스주의 내부에서 그가 비판하려고 했

던 대표적인 역사주의자들이었지요.

더불어 인간 개념을 해체하자고 주장하면서 주체를 구조의 효과로 정의하려 했던 레비스

트로스나 라캉의 테제 역시 알튀세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알튀세가 자신의 입

장을 요약하면서 가장 높이 들었던 깃발은 바로 '이론적 반인간주의'였습니다. 이는 맑스주

의 내부에 형성된 이론적 정세와도 긴밀하게 관련된 것인데, 당시에는 사르트르나 루카치

등은 물론 청년 맑스의 저작(특히<경제학 철학 초고>)을 기초로 제창된 '사회주의적 인가

주의'가 서구뿐 아니라 동구의 맑스주의 철학계를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알튀세가 보기엔 그것은 모두 엄격한 과학적 객관성을 갖춘 것이라기보다는 단지

이데올로기적 효과를 갖는, 이데올로기적 목적하에 만들어진 '이데올로기'(=비과학)에 불과

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맑스가 새로이 기반을 마련한 역사유물론은 엄격한 과학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하고 단지 프롤레타리아의 이해를 반영하는 계급적 이데올로기에 불과하게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역사유물론을, 즉 맑스주의를 명실상부한 '과학'으로 만들기 위해

선 이런 이데올로기들과의 '단절'이 필수적이라고 합니다. 이는 역사주의, 인간주의에서 역

사유물론을 떼어 내는 것이며, 인간이라는 범주에서 계급이란 범주를 떼어 내는 것이고,

국은 이데올로기란 허위에서 과학이란 진리를 떼어 내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알튀세는 "맑스로 돌아가자"라는 슬로건을 제창합니다. 물론 맑스주의자들

은 누구나 맑스에 의거하고 있으니 상당히 의아스런 슬로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알튀세가

여기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맑스는 성숙한 시기의 맑스요, <자본>이란 책으로 집약된 맑

스입니다. <경제학 철학 초고>에서 절정에 이른 청년 맑스는 헤겔과 포이어바흐의 손 안에

있는 맑스고,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한 맑스란 겁니다. 과학자 맑스, 과학으로서의 맑

스주의는 1845<독일 이데올로기>를 기점으로 시작된 그들과의 '단전'이후 맑스와 맑스

주의입니다.

이를 위해 그는 자신의 스승이었던 과학철학자 바슐라르(G.Bache-lard)'인식론적 단절

'이란 개념을 빌려 옵니다. 그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이전에 있었던 개념을 가지고 사고하며

그 이데올로기적 개념으로 작업합니다. 따라서 새로운 과학적 성과를 이룩하려면 이데올로

기적 개념과 단절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누구나 초기에는 이데올로기적 문제 설정

과 개념 속에서 사고하며, 이것과 '인식론적 단절'을 이룸으로써 과학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이는 맑스의 경우에도 그대로 해당한다고 봅니다. '인간' '소외'란 범주를 토대로 하는 인간

학적 문제 설정과 단절하여 "인간이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선언함으로써, '인간'이라는

환상적 대상과 단절하여 '생산양식'이라는 대상을 정립함으로써 맑스의 역사유물론은 역사

과학이란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알튀세는 헤겔적인 총체성 개념의 비판이 맑스주의에 중요한 성과라고 합니다. 헤겔

에게 전체(총체)'모순'이라고 하는 하나의 본질이 표현된 것(표현적 총체성)인데, 사실

역사과학이 다루는 역사적 사정과 정세는 이처럼 하나의 (근본)모순으로 환원할 수 없는 복

합성을 갖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모든 현상을 자본/노동 사이의

모순으로 환원하려는 태도를 그는 헤겔주의적이라고 봅니다. 러시아혁명을 예로 들면, 자본

과 노동의 모순분만 아니라 제국주의 나라간의 모순, 국내 지배세력과 다양한 피지배계급들

의 모순 등 여러 모순들이 중층적으로 혁명적 정세를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이를 그는 '

층적 결정(overdetermination)'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맑스주의 이론이 과학이 되도록 해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알튀세는 이전

에는 유물론과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던 '반영론'에서 거리를 둡니다. 반영론이란 알다시피

개념이나 이론은 실재의 반영이오 모사라고 보는 입장인데, 실재-이론이란 짝을 설정하고,

경험적인 '검증'에 의해 이 양자를 일치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경험주의, 실증주의와 유사

합니다. 그런데 경험주의와 실증주의는 바로 알튀세가 설정해 둔 또 하나의 중요한 타격 대

상이었습니다.

그에 다르면 예컨대 무의식이나 잉여가치는 경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며 또한

실증주의자들 말대로 검증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무의식은 무의식이 있다는 사

실조차 경험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도록 저항한다고 하지요. 잉여가치나 착취 역시 많이 당한

사람이 잘 알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임금이 노동의 대가로 나타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잉

여가치나 착취는 경험만으로는 결코 인식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점까지 지적하면서 자본주

의와 착취의 작동 메커니즘을 밝혀 놓은 게 바로 맑스의 업적이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맑스의 이론을 과학으로 정립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여기서 필요

한 게 바로 맑스주의 철학이라고 합니다. 알튀세에게 철학이란 대문자로 쓰는 '이론

(THEORY)'인데, 이는 '이론에 대한 이론(이론의 이론)'입니다. 즉 어떤 이론이 과학인가

아닌가, 내부적으로 올바른가 아닌가를 확인하는 활동이 '철학'이란 겁니다(이는 철학에 대

한 초기 비트켄슈타인의 정의와 유사합니다). 한마디로 '진리의 보증자' '과학의 보증자'

셈이지요.

그럼 철학은 무엇으로 보증해 줄까요? '검증'을 통해 실재와 일치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

다는 실증주의의 발상이 여기서 비판됩니다. 수학적 추론의 결과가 현실과 일치하는가 아닌

가는 수학적 지식의 진리성을 판단하는 데 하등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현실에서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을 그릴 수 있든 말든 유클리드 기하학은 그 자체로 과학이란

것입니다.

이는 근본적으로 현실대상과 지식대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라는 개념은 짖지 않는

"라는 스피노자의 말을 여기서 인용합니다. ''란 개념은 현대실상인 개와 어차피 다른

것이기에 일치하는지 아닌지를 비교해서 진리 여부를 가릴 순 없다는 것입니다. 즉 지식대

상과 현실대상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비교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진리란 지식대상인

개념들간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됩니다. ''라는 개념을 구성하는 다른 개념들간에

일관성이 있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를 알튀세는 '지식효과'라고 합니다. 지식으로 구성하

며 지식으로서 작용하게 하는 효과란 뜻이지요.

 

이데올로기와 표상체계

둘째로, 과학으로서 맑스주의를 정립하려는 기획과 동시에 알세튀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개념적 발전을 기획합니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의 무의식적 표상체계'로서

정의하는 것입니다.

'표상'representation을 번역한 말인데, 알다시피 represent'표상한다'는 뜻말고도 '

재현한다' '대표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표상한다는 말은 '눈앞에 떠올린다'는 뜻인

, '자동차'란 말을 듣고는 그에 상응하는 물건을 떠올리는 경우나, 거꾸로 어떤 물체를 보

'컴퓨터'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단어를 통해 사물을 눈 앞에 재현하거나,

사물을 보고 그에 상응하는 단어를 머리 속에 재현하는 것이지요.

표상체계란 무엇일까요? 예컨대 이 물건을 보고 ''이라고 판단함으로써 우리는 이 물건

에 대한 판단이나 조치를 취할 수 있습니다. '먹을 것/못 먹을 것'이란 개념만으로 판단하는

어린아이라면 그걸 입으로 가져가겠지요. 또 제가 지금 이렇게 강의하는 것은 여러분에 대

해 제가 강사라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않는다면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한편 어

떤 행동을 하거나 판단을 하는 것은 언제나 특정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제가 지금 이 자

리를 연극 무대라고 떠올린다면 또 잠시 후엔 선거 연단이라고 생각한다면 제 행동은 어떤

일관성도 동일성도 갖지 못한 채 뒤죽박죽되고 말 것입니다.

이처럼 무언가를 떠올리도록 해주는 개념이나 상상, 판단의 체계를 '표상체계'라고 합니

. 이러한 표상체계는 개인마다 약간의 편차는 있지만 대개 집단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갖

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영향을 받아서 만들어지거나 학

교나 교회 등 제도적 장치 속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지요. 예컨대 식당에서 흑인을 보고 등

을 돌리는 남부 미국인이나, 십자가를 보면 자세를 가 다듬는 기독교도들을 생각해 보세요.

남부 미국인이라면 대개 다 그럴거고, 기독교도라면 대가 다 그럴 거란 것을 알 수 있지요.

또한 이런 표상체계는 무의식적으로 작동합니다. 예컨대 방 청소를 한다고 합시다. 책을

보고 "이건 책이고, 책은 책장에 꽂혀 있어야 하니 이건 책장에 꽂아 두자"고 생각하진 않

을 겁니다. <미시시피 버닝>이란 영화를 보면 어린 꼬마들도 흑인은 하찮은 존재고 경멸받

아 마땅하다는 태도를 보여 줍니다. 이건 그 아이들이 사고하고 의식해서 하는 판단이 아닙

니다. 의식은 이 표상체계 안에서 일어나며 표상이 의식에 선행합니다. 즉 표상체계는 무의

식적으로 작동합니다.

알튀세는 이데올로기를 '대중적인 표상체계'라고 이해합니다. 이 이데올로기 속에서 대중

'나는 한국인이야' '나는 대학생이지' '나는 김씨 가문의 아들이지' 그러니 '나는 어떻게

해야 해'라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돈을 받았으니 그만큼 일을 해

주는 건 당연해'라는 판단도 그렇습니다. 맑스주의에서 이데올로기는 지배계급의 이념이며,

따라서 그것은 피지배계급에겐 '허위의식'이요 거짓이며, 지배계급이 없어지면서 사라질 것

으로 보았지요. 또한 그것은 의식적인 것으로서, 계급의식의 일종으로서 파악되었습니다.

러나 지금 본 것처럼 알튀세는 이것이 무위식적인 것임을 주장하며, 또 그것 없이는 이 사

회에서 내가 선 자리는 어디고 거기서 무얼 해야 하는 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어느 사회

(심지어 공산주의 사회)에서도 이데올로기는 없을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알튀세는 맑스주의에는 없는 무의식 개념을 프로이트에게서, 아니 좀더 정

확히라는 라캉에게서 끌어 옵니다. 그리고 대중적인 표상체계인 이데올로기 속에서 개개인

이 어떻게 주체로 만들어져 가는가를 분석합니다. 무의식(타자)를 통해 어떻게 개개인이 주

체로 되어 가는지를 라캉이 분석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요컨대 이데올로기 없는 주체는 없으며, 이데올로기 없는 실천도 없다는 것입니다. 표상체

계로서 이데올로기는 무의식과 마찬가지로, 언젠가 사라질 것이 아니라 영원할 것이라고 합

니다. 물론 이 이데올로기는 현실에 대한 상상적인 체험이기에, 현실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

라 변형하고 왜곡해서 보여 주지요. 이래서 알튀세는 현실은 결코 투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그의 말처럼 이데올로기가 영원하다면 이러한 변형과 왜곡 역시 영원하단 말이겠지요?

로 여기서 알튀세의 이중적 기획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앞서 첫 번째 기획은 맑스의 역사유

물론을 '과학'으로서, 진리로서 위치를 확고히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데올로기와

의 단절을 거치면서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에 도달하는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반면 지금

말한 이데올로기론의 기획에서 나온 결론은 어떤 대상도 결코 투명하지 않으며, 오직 이데

올로기 속에서만 인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대상에 대한 참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 됩니다. 따라서 어떠한 순수한 과학도 불가능하며, 과학 자체가 바

로 이데올로기 속에 있거나, 아니면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란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즉 두 가

지 동시적 기획이 서로 충동함에 따라 알튀세의 배는 난파하고 마는 것입니다.

 

이데올로기를 위한 변명

알튀세의 기획이 갖고 있는 이러한 모순적 요소 가운데 결국 그가 선택한다는 것은 후자

입니다. 애초에 그의 기획 가운데 중심의 자리에 있던 것은 전자, 즉 과학으로서 맑스주의를

새로이 정립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1968년의 5월혁명을 거치면서 그는 중심을 이데올로기

론으로 옮기며, 전자에 기울었던 자신의 입장에 대해 자기비판을 합니다.

첫째로 그는 자신이 진리/허위에 대한 이성주의적 이분법에 빠져 있었다고 비판합니다.

즉 과학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진리요, 이데올로기는 그렇지 못하기에 거짓이요

허위라고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데올로기를 단순히 허위의식으로 정의하는 전

통적인 맑스주의의 테제를 비판하고 이데올로기 자체가 있는 그대로 하나의 실재요 현실이

라고 생각했으나, 진리/허위의 이분법과 과학주의적 기획으로 인해 다시 '이데올로기=허위'

라는 이성주의적 도식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이후 그는 '진리'라는 보증자를 구하는

인식론 자체가 공정한 심판자를 구하려는 법적인 관념에 머물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부르

주아적 기획이라고 비판합니다. 과학은 이데올로기 속에 있는 과학, '당파적 과학'일 수

밖에 없다는 새로운 테제 역시 이러한 입장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둘째로 그는 자신이 철학을 어떤 지식이 진리임을 보증해 주는 '이론(Theory)'으로, 진리

의 보증자로 정의함으로써 실증주의적 입장에 머물렀다고 합니다(이와 관련해 철학에 대한

초기 비트겐슈타인의 정의와 유사함을 앞서 언급했습니다).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개념을 가

공해서 과학적 개념으로 바꾸는 이론적 실천'을 중심에 둠으로써 이론주의적 편향에 빠졌다

고 합니다. 이제 그는 철학에 대해 새로이 정의하려 합니다. 그것은 "철학은 정치에 이론을

대변하고 이론에서 정치를 대변한다"는 것이고, 이는 곧 "철학이 최종심급에서는 '이론에서

의 계급투쟁'이다"라는 것입니다. 이후 '계급투쟁'이 그의 이론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

게 됩니다.

이러한 자기비판은 사실 과학주의의 기각과 동시에 과학이 차지하고 있던 중심적인 자리

를 이데올로기에 넘겨줌을 의미합니다. 이런 뜻에서 알튀세의 이러한 전환을 과학에서 이데

올로기로라고 요약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론을 더욱 발전시킵니다. 이제 그는 '재생산'이란 관점에

서 이데올로기의 문제를 고찰합니다. 역사유물론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노동자의 계급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노동자들은 계급의식을 갖지 못할 뿐 아

니라 자본에 포섭된 하나의 생산수단, 착취당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기존 체제에 적응

해 사는 것을 당연시하는 그런 노동력으로 재생산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자본주의

사회는 그 동안 유지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즉 재생산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데올로기의

문제는 바로 이런 점에서 재생산의 문제라고 봅니다.

조금 전에 말했듯이 어떤 개인도 이데올로기 속에서만 주체로 구성됩니다. 다시 말해 부

르주아 사회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이것이 꼭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만을 뜻하는 건 아닙

니다-의 효과 속에서, 즉 기존의 사회 질서를 내포하고 있는 상징적 질서의 체계 속에서 개

인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겁니다(여기서 원래 subject라는 말에는 '주체'라는 뜻과 '신하'

'종속'이라는 뜻이 동시에 있음을 주목합시다). 요컨대 노동자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

로기 속에서 하나의 주체로, 기존 질서가 요구하는 '신하''주체화'되기 때문에, 사회의

질서는 계급 대립에도 불구하고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데올로기에 대한 알튀세의 중

요한 명제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그는 "이데올로기-이것은 '이데올로기 일반'을 뜻합니다-는 역사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는 말인데, 어떤 사회에서도 이데올로기는 있을 것이라는 말

입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에 비유합니다. 물론 개개의 이데올로기들이

야 역사를 갖겠지만 말입니다.

둘째, "이데올로기는 현실적 존재 조건에 대한 상상적 관계의 표상"이라고 합니다. 즉 이

데올로기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나 현실관계를 보여 주는 게 아니라, '이럴 것이다'라고 당

연시되어 있는 방향으로 변형된 관계를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가 아니

란 뜻에서 이러한 '비현실적' 관계를 마치 '있는 그대로의 현실적 관계'로 상상하고 오인하

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유럽에서 실업문제가 심각해져 취업문이 좁아지자, 노동들은

자신의 처지가 그렇게 된 게 외국인 노동자들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사실 자본가들이

노동력을 싼값에 풍부하게 구하기 위해 외국인 노동자들을 끌어들였고, 경기가 나빠지자 고

용을 줄인 탓이지요. 그러나 노동자들은 개인적으로 자본가와 계약하기 때문에 자신이 고용

되지 못하는 것을 다른 노동자, 특히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 때문이라고 오인하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고용되고 개인적으로 해고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표상체계'에 의해 상상된

관계요, 거기서 정해 놓은 허구적 관계를 인적하는 '오인'입니다.

셋째,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관념이 아니라 물질적인 효과를 갖는 물질적인 존재며, 물질

적인 장치를 통해서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는 결국 이데올로기가 물질적 장치를 통해 제도

화된 특정한 방식의 실천을 통해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말입니다. 그는 "무릎 꿇고 기도하라,

그러면 믿을 것이다"라는 파스칼의 말을 인용합니다. 종교적 이데올로기는 단순한 '믿음'

'관념'이 아니라, 매주 교회에 가서 무릎 꿇고 기도하는 실천을 통해서 작동하는 물질적

존재라는 겁니다. 이처럼 특정한 실천들을 지속화하는 장치를 알튀세는 '이데올로기적 국가

자치'라고 합니다. 학교나 교회, 가족 등이 그것입니다.

넷째, "이데올로기는 항상-이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interpellation)한다"고 합니다. 이는

그의 이데올로기론에서 매우 핵심적인 주장인데, 예컨대 "너는 신의 어린 양이다" "너는 누

구의 아들이다" 혹은 "너는 한국인이다" "어는 백인이다"와 같이 '너는 누구'라고 불러주는

것이 호명입니다. 그 뒤에는 이런 말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너는 (한국인이니) 이걸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한다"는 식의 말입니다. 성경에 보면 이런 장면이 매우 많지요? 신의 부

름을 박은 모세나 다른 선지자들이 그 부름에 따라 무언가를 합니다. 즉 신이라는 호명한

주체(이를 큰 주체Subject라고 합니다)에 복속되어 그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신의 백성'인 경우에도 마찬가집니다.

여기서 '항상-이미'라는 말을 쓴 것은, 예컨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나는 누구의 아들

이고 한국인이고 황인종이라는 등의 호명이 항상-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지요. 그에 대해 내

""하고 대답하는 순간 나는 큰 주체(예컨대 '한국인')의 부름을 내 것으로("나는 한국

인이야")하게 됩니다. 이로써 나는 '주체'가 되는 것이지요. 그게 말 잘 듣는 주체든, 말썽

피우는 주체든, 삐딱한 주체든 간에 말입니다. 이것을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서

S(큰 주체)에서 me로 이어지는 선은 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항상-이미 존재하는 호명,

내게 주어질 나의 자리요, 내가 호명에 답해 채워야 할 질서 속의 빈 자리입니다. 그리고 S

의 호명에 답함으로써 나는s(주체/신하)가 되고, 그것이 부르는 내 이름(예컨대 '한국이 말

하는 에스와 마찬가지로 그리고 그 주체의 부름에 답하는 다양한 방법, 형태가 other입니다.

'조국의 부름을 받은' 용감한 군인이 되기도 했다가, 힘든 생활을 견디지 못해 빠져 나가기

도 하고, 때로는 유혹에 넘어가기도 하는 것 등이 그것입니다.

이로써 알튀세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개인이 항상-이미 주체로 구성되어 가는 메니커즘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항상-이미 호령된 주체로 개개인이 '주체화'되어 가는 메커니즘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메커니즘 자체가 타자에 의해 개개인이 주체로 되어 가는 메커니

즘과 생기는 난점들이 제기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할 것입니다.

 

알튀세 철학의 모순들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비판은 '기능주의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의 이론은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가 호명함으로써 개개인을 항상-이미 존재하는 기존

질서 속에 포섭하고 개인은 거기서 요구되는 역할을 자신의 일로 '인정'/'오인'하고 수행한

다는 결과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데올로기란 개념은 기존의 지배적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고 기능하는가 하는 메커니즘만을 보여 줄 수 있을 뿐이며, 이 질서의 변화와

전복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비판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만

으로는 이러한 비판을 반박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는 아마도 이데올로기를 '재산'이란 관

점에서 정의하고 개념화하려는 문제 설정에서 근본적으로 연유하는 것 같습니다. 즉 이데올

로기가 어떤 식으로 기존 질서를 재생산하며, 그 속에서 개인들을 '주체'로서 재생산하는가

를 설명해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알튀세가 이런 비판에 대응하기 위해 제시하는 개념이 바로 '계급투쟁'입니다. 즉 그는 "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로 존립하고 작동하난 게 아니라 계급투쟁을 통해 변화하고 그것을 통

해서만 작동한다"는 테제를 제시합니다.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가 대중에 대한

계급투쟁이며, 대중의 투쟁을 포섭하여 수용 가능한 것으로 전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대중들

이 가진 이데올로기 역시 계급투쟁을 통해 가변화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는 또 다른 난점을 야기합니다. 다 접어 두고 근본적인 것만을 본다면, 알튀세의

이데올로기론에 따르면 "이데올로기 없이는 어떠한 실천도 불가능"합니다. 그건 표상체계

없는 판단이 불가능하고 무의식 없는 의식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지요. 그렇다면 이데올

로기 없이는 어떠한 계급투쟁(실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됩니다.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 외

부에 있지 않으며, 이데올로기에 의해 작동되고 설명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새로이

추가한 테제는 이 계급투쟁이 이데올로기의 성립과 변화를 설명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데올로기는 계급투쟁에 의해 그리고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설명되어야 한다는 악순

환에 빠지고 맙니다. 이는 "이데올로기의 외부는 없으며 이데올로기 없는 실천은 없다"

라캉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으로선 결코 잘라 낼 수 없는 테제와 계급투쟁을 중심에 두는 맑

스주의의 테제가, 서로 근본적인 모순에 처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커다란 주제와 관련하여 요약하면, 알튀세는 근대적인 주체철학과 인간주의에 대

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근대적인 출발점을 벗어납니다. 그리고 거꾸로 주체나 인

간이란 사회적 관계의 효과로써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란 점을 분명히 랍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는 명제를 이데올로기 개념의 발전을 통해 개개인이

주체화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으로 발전시켰습니다.

다른 한편 초기의 과학주의에 대한 자기비판을 통해 과학주의라는 근대적 정당화주의를

벗어납니다. 그는 심지어 인식론이란 분과 자체가 부르주아적이고 법적인 정당화주의임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데올로기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통해 진리/허위의 근대적 이분법을

깨뜨립니다. 이로써 어떤 지식이나 관념들을 하나의 현실적 실재로 간주하고 그 효과를 사

고하는 이론적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맑스주의를 과학으로서 추구하려는

태도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고, 그 결과 당파적 과학이라는 역설적 정의를 도입하게 되었지

만 말입니다.

결국 이러한 알튀세의 시도는 이데올로기 개념을 통해 근대적 문제설정의 한계를 넘어서

려는 노력으로 요약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재생산을 넘어 항상-이미 존

재하는 체계의 전복을 사고하기 곤란하다는 난점에 부딪힙니다. 그리고 보다시피 이 난점을

계급투쟁이란 개념을 통해 극복하려고 합니다. 마치 맑스가 '실천'이란 그가 발을 딛고 있는

라캉적인 이데올로기 개념은 계급투쟁 개념과 근본적으로 상충되는 요소였기에, 이러한 극

복의 시도는 해결하기 힘든 또 다른 난관에 봉착하는 셈입니다.

 

5.푸코-경계 허물기의 철학

세 명의 푸코

흔히 푸코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대부 중 한 사람으로 간주됩니다. 아니면 적어도

근대적 합리주의에 반대한 반합리주의자, 계몽적 이성의 독재에 항의하는 반계몽주의자로

간주됩니다. 이런 사정은 우리의 경우에 더욱 단순화되지만, 서구의 경우에도 일반적으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 대해 '구조주의자'라는 것만큼이나

'포스트모더니스트'라고 평가하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이런 사정은

그의 친한 친구였던 들뢰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텐데, 들뢰즈는 포스트모더니스트란 평

가에 대해 맹 적대적 입장을 명시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입장 가운데 그런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을 아전인

수식으로 해석하여 자신들의 근본적인 문제 설정을 가리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들로 하여금

시류에 의한 평가에 적대적 태도를 갖게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저는 제 나름

대로 철학자로서 푸코의 문제 설정이 대체 어떤 건지, 무엇을 하려고 그토록 복잡하고 '

한한' 역사를 썼는지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푸코가 근대적 문제 설정의

과 사이에 만드는 긴장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푸코의 사상은 크게 세 시기를 통해서 파악됩니다. 첫째는 흔히 '고고학'이란 이름으로 대

변되는 시기입니다. 이는 박사학위 논문이었던 <고전주의 시대 광기의 역사>에서 출발하여

출세작인 <말과 사물>을 통해 <지식의 고고학>에 이르는 시기지요. 이 시기는 정신병리학

(<광기의 역사>)이나 생리학(<병원의 탄생>), 또는 생물학, 정치경제학, 언어학 등의 인문

과학(<말과 사물>) 등 다양한 지식을 둘러싼 관계들의 역사를 연구합니다. 특히 당시 또는

지금 진리이자 과학이라고 평가되는 지식에 의해 가려진 '침묵'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가

어떻게 해서 침묵 속에 갇히게 되었나를 연구하려고 합니다. 침묵하는 소리의 흔적이 남아

있는 문학이나 미술 등 다양한 문화적 '유물'을 통해, 과학이나 역사 책에 나오지 않는 잊혀

진 과거를 드러내려고 한다는 점에서 그는 자신의 작업을 '고고학'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달론의 질서>에서 시작하여 <감시와 처벌><성의역사1>에 이르는 시기로,

흔히, '계보학'이란 이름으로 요약되는 시기지요. 앞서 니체에 관한 부분에서도 언급했지만,

'계보학'이란 모든 것들에서 가치와 권력의지를 찾아내는 작업이며 방법입니다. 형벌과 감

옥의 역사를 통해서(<감시와 처벌>), 또는 성이나 성욕에 관한 담론과 장치들을 통해서(<

성의 역사1>) 그것들 이면에서 작동하고 잇는 권력을 드러내고 그 권력의 효과를 분석하는

게 이 시기 푸코의 주된 일이었습니다.

셋째는 푸코의 말년으로서 <성의역사2> <성의역사3>에 집약되어 있는 시기입니다.

시기에는 권력과 자아의 관계가 중요한 문제가 됩니다. 예컨대 쾌락의 활용을 통해 어떻게

자아를 구성하는지, 양생술 같은 '자기 배려의 기술'을 통해 자아를 어떻게 구성하는지를 연

구합니다. 이는 권력을 통해 자아가 구성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침묵의 소리와 고고학

푸코의 사상 전반을 특징짓는 가장 커다란 기획은 정상과 비정상, 동일자와 타자, 내부와

외부 사이에 만들어진 경계를 허무는 것입니다. 예컨대 과학이라고 간주된 것과 비과학이라

고 비난받는 것 사이의 경계, 정상인과 '아직' 정상인이 아닌 자들 사이를 가르는 경계,

성과 비이성을 가르는 경계, 또는 이성의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경계 (정신이 '나간', 정신

'들어온'이란 말을 생각해 보세요)가 그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성의 내부이자정상과 동일

시될 수 있는 '동일자', 거기에 동일시될 수 없기에 배제되어야 할 '타자' 사이를 가르는

경계를 푸코는 허물려고 하는 것입니다(여기서 '타자'란 말은 라캉이 쓰는 것과는 정반대의

뜻입니다. 라캉에게 그것은 기존의 질서를 집약하고 있는, 자아 외부의 구조로서 차라리 푸

코가 말하는 '동일자' 에 가깝습니다) 이 경계를 이해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유용

합니다. '광인'이란 무엇인가? '정신병'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정상인과 어떻게 다르며,

자를 가르는 결정적인 구획선은 어디 있는가? 이런 질문은 영화를 볼 때 종종 하게 되는

질문입니다. 예컨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란 영화는 정신병원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떤 '환자' 는 자기가 '환자'일 거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해 병원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주인공 맥 머피로 분장한 배우 잭 니콜슨이 미친 사람인지 아닌지 병원에서

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합니다. 매우 사리에 맞게 행동하며, 그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생기

를 얻었지요. 심지어 인간에 대한 불신 속에서 귀머거리로 행세하던 인디언까지 말입니다.

도대체 이들 가운데 누가 '정말' 화자고 누가 '가짜' 환자인 걸까요? 이들이 퇴원하려면 전

혀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요? <터미네이터 2>에서 여주인공인 사라 코너는 정신병

원에 갇혀 있지요. 미래에서 터미네이터가 왔다느니, 또 올 거라느니 하는 얘기를 하다 그렇

게 된 걸 겁니다. 하지만 영화를 보는 우리는 답답하고 짜증이 납니다. 왜 저 사람들은 멀쩡

한 사람을 정신병자 취급하고 가두느냐고 말입니다.

물론 판단은 병원과 의사가 하지요. 하지만 잭 니콜슨은 광기와 정신병을 고치려는 그들

'치료'를 받고는 구제불능의 '병자'가 되지요. 의사들이 정상인을 정신병자로 만든 거지

. 사라 코너를 가둔 의사들의 판단 역시 그걸 보는 우리에겐 아무런 신뢰도 주지 못합니

. 사실 그들이 환자를 병원에 수용하는 것과 퇴원시키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병원

에서 퇴원했다고 반드시 정상인인 것도 아니고, 병원에 있다고 반드시 환자인 것도 아닙니

. 심지어 정신병원 의사들도 정기적으로 다른 의사들에게 정상인지 아닌지 검사를 받는다

고 합니다.

요컨대 푸코는 이런 식의 매우 심술궂은 질문을 통해서 정상인과 광인 사이의 경계가 결

코 과학과 진리가 보증해 주는 확실한 게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경계를 허묾으로써

동일자의 외부, 정상인의 외부에 대해 사고하고자 합니다. 이는 정상인의 관점에서 광인을

사고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차라리 광인에 대해 올바로 사고하지 못하게 막고 있는 정상인

의 관점, 정상인이란 환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비로소 광인의 목소리를,

타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란 것입니다. 동일자에 의해 어둠 속에 갇혀 버린 침묵의

소리를 말입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노래인 <sound of silence>는 이 점에서 푸코적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경계를 허묾으로써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요? 배제된 타자에게 다시 '동일자'의 자

리를 주고 복권시키려는 것일까요? 병원에 수용당하길 거부한 광인이나 차별에 고개 숙이길

거부한 흑인, 혹은 규율에 따르길 거부한 범죄자를 새로운 정상인의 모텔로 승화하려는 것

일까요? 그건 물론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이처럼 경계를 허무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동일

자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영역, 비정상과 동일시되던 '외부'여서 생각할 가치도 없다고 간주

하던 영역을 다시 사고할 수 있을 것이며, 우리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동일자를 새로이 사

고할 수 있으리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경계를 허물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존에 정상적이라고 간주하던 것이 얼마나 일관되지 못하고 불안정한가를 보여 주

는 것입니다. '동일자' 내부의 균열을 드러냄으로써 동일자 자체를 해체하는 것입니다.

이는 주로 데리다가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하나는 동일자에 의해 배제된 타자, 그리하여 강요된 침묵 속에 갇혀 버린 타자의

목소리를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동일자와 타자 사이에 동일자 자신이 그어 놓은 경계선을

의문에 부침으로써 양자 사이에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일자와

타자 사이에 경계선이 어떤 식으로 그어졌나를 통해 타자와 동일자 간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푸코가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반합리주의자' '반계몽주의자' 라는 푸코에 대한 평가는 그의 사

상을 단지 합리주의나 계몽주의의 반대물로 만들고 있을 뿐이란 점에서 매우 잘못된 것입니

. 즉 이성과 비이성, 계몽과 몽매 사이의 아니 비이성, 계몽 아니 반계몽을 지지하는 반합

리주의자의 태도와 전혀 다른 것임이 분명합니다. 루자는 이성/비이성을 가르는 기존의 이

분법을 똑같이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합리주의나 계몽주의가 거울에 비친 모습이며, 그것

들의 소박한 보충물일 뿐 입니다. 마치 낭만주의가 이성주의나 계몽주의의 대칭적 보충물이

듯이 말입니다.

 

역사적 구조주의?

이와 같은 관점에서 푸코는 타자를 소통과 대화의 자리에 끌어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하나는 '타자의 역사'를 통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동일자의 역사'를 통한

것입니다. 전자는 <광기의 역사>에서 다루고 있는 것이고, 후자는<말과 사물>에서 쓰고 있

는 것입니다. 우선 타자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봅시다.

<광기의 역사>"미치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노력 자체에도 하나의 광기인지도 모른다"

는 파스칼의 말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푸코는 '광기'가 어떻게 해서 정상 사회에서

배제되고 감금되며 결국은 치료되어야 할 ''으로 되는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를 그는

'르네상스 시대, 고전주의 시대, 근대'라는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습니다(이 구분은

그의 저작에 가장 자주 쓰이는 시기 구분입니다).

영화 얘기가 만만하니, 다시 영화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안소니 퀸이 그 잘생긴 얼굴을 흉

측하게 일그러뜨리고 나와 더 유명한 영화<노트르담의 꼽추>를 보신 적이 있나 모르겠습니

. 혹은 위고의 소설로 직접 읽었다 해도 좋습니다. 거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의

하나가 파리 시내의 부랑자들이지요. 거지와 광대, 광인, 도둑, 집시 등등이 파리 시내의 일

부를 '차지'하고는 집단을 이루어 살고 있지요. 그들 사이에도 나름의 규율과 처벌이있고,

나름의 질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과 달리 그들은 파리 시내에서 다른 정상인들과 함게

살고 있으며, 때로는 구걸도 하고 때로는 거래도 합니다. 나중에 그들이 노트르담 성당을 습

격하는 것 역시 이런 거래를 통해서였지요.

반면 <아마데우스>를 보면 사정이 다릅니다. 처음에 살리에리가 자살을 기도하는 곳은

광인과 부랑자들이 수용되어 있는 수용소였습니다. 그 역시 한 사람의 광인으로서 수용되어

있었지요.

이 두 영화에서 부랑자나 광인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습니다. <노트르담의 꼽추>

의 배경은 아마 중세 말 르레상스 시기라고 보면 될 것입니다. 반면 <아마데우스>의 경우

는 모차르트의 죽음(1791)을 전후한 시기니 고전주의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입니다. <

트르담의 꼽추>에서 보이듯이, 르네상스 시대까지 광인은 정상인과 구별되어 감금되거나 병

자 취급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사람들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일 뿐이었지요. '광인 '이나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정상인과 공존하던 시기였고,

래서 그들과 대화하고 소통하며 때론 그들의 힘을 이용하기도 하고 때론 그들을 '물먹이기

'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16세기 이후 거리의 부랑자들은 예전에는 나병환자들을 가두던 수용소에 감금되기

시작합니다. 이성의 시대가 시작된 것인데, '로스피탈 제네랄'(L'hospital general, 종합병원

이란 뜻입니다)은 바로 그들을 이성의 타자로서 배제하고 감금하던 곳을 탄생합니다. 이게

바로 <노르트담의 꼽추><아마데우스>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따라서 <아마데우스>

대에 그들은 병원인지 수용소인지 모를 곳에 감금됩니다. 그곳에는 의사인지 신부인지 모호

한 사람들이 '환자'들을 통제합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광인은 다른 부랑자와 같이 취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용된 자들 가

운데 빈자와 거지, 범죄자들은 광인들과 함께 가두는 데 대한 공포와 저항을 갖고 있었고,

이후 산업이 발달하면서 일자리가 많이 생기게 되자 거지나 가난뱅이 등은 모두 풀려납니

. 그들은 이제 근대적 이성이란 동일자에 포섭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범죄자와 광

인만이 수용소에 남지요. 하지만 범죄자들 역시 광인과 분리 수용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근대는 '대개혁'이라 불리는 조치와 함께 시작됩니다. 이는 예전에는 차라리 동물로 취급

되던 광인들, 그래서 극히 가혹한 처우를 받던 광인들을 인간으로 취급하려고 합니다. 다만

광기로 인해 아직 이성의 품안에는 들어오지 모소한 미숙아, 혹은 불행하게도 병에 걸려 미

쳐 버린 환자로 취급합니다. 그들은 감금에서 '해방'됩니다. 대신 이제 그들은 자신에 대해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하는 존재가 됩니다. 종교나 도덕적 조치의 힘을 빌려 그들을 '치유'

어야 할 대상이 되는 겁니다. 물론 '책임을 못 지는' 자나 책임 지길 거부하는 자는 더욱 철

저하게 감금되지만 말입니다. 참을성 많고 인격이 '훌륭한' 사람들, 또는 광인들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나 사람들이 '의사'로서 그들을 '치료'하게 되지요. 결국 이런 역사적 과정을 거

쳐 한때는 인간의 내면에 들어 있는 어떤 특징으로 간주되거나, 유별난 행동과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던 광기는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가두어 둬야 할 대상으로, 치료되어

야 할 대상으로 간주되어 배제된다는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 정신병리학이란 광기를 배제함

으로써 정상인의 사화를 테두리짓고 정의하려 한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며, 그들을 다루는

기술을 체계화한 것입니다. 즉 그것은 '진리''과학'이라고 할 어떤 특징도 사실상 결여하

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그는 광기의 역사를 통해 광인이 타자로서 배제되고 침묵하게

된 과정을 드러내며, 광기와 이성 사이에 그어진 경계선을 허물고 있는 것입니다.

동일자의 역사를 다루는 <말과 사물>은 시인 보르헤스(J.Borges) 텍스트를 인용하면서

시작합니다. 서구와는 전혀 다른 동물 분류법이 그것입니다. 즉 사물들의 관계를 파악하는

상이한 사고방식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사물의 질서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사물에 대

해 판단하는 상이한 방식들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사실 의식적인 사고란 이런 기초 위에

서 진행되는 것이고, 이 기초는 사고를 가능하게 해주는 무의식적인 기초입니다. 이처럼 사

고를 가능하게 해주며, 특정한 방식으로 사물들을 정돈하도록 해주는 무의식적인 기초를 푸

코는 '에피스메(episteme,인식틀)'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그는 앞서의 세 시기를 나누어 살펴봅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유사성'의 에피스

테메로, 고전주의 시대는 '표상'의 에피스테메로, 근대는 '실체'(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독

립적 실재)의 에피스테메로 요약합니다.

푸코는 <돈키호테>를 통해 르네상스와 고전주의 시대의 에피스테메에 대해 이야기 합니

. 풍차를 거인으로 '생각'하는 돈키호테는 유사성에 따른 사고방식을 보여 줍니다. 반면

거인과 풍차의 동일성과 차이를 분명히 구분하는 고전주의 시대 사람들은 이런 돈키호테의

사고방식을 '미친 것'으로 이해합니다. 호박꽃과 배추꽃이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등을

분류하는 린네(C.von linne)의 분류학은 고전주의 시기 에피스테메를 대표합니다. 이들은 '

표상'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다고 믿었고, 따라서 표상들을 분류함으로써 사물들

의 질서를 파악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생각(표상)을 통해 직접 존재에 도전할 수 있다는 이런 사고방식을 잘 보여 줍니다.

다른 한편 근대의 에피스테메는 고전주의 시대와 달리 표상으로 환원되지 않는 실체를 인

정한다고 합니다. 예컨대 칸트의 '사물 자체'처럼 표상이 닿지 못하는 외부의 실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생물학도 예전에는 분류학에 그쳤지만, 이제는 생명이라는 실체를 중심으로, 그것

을 위해 기능하는 기관이나 특징을 근거로 새로 정리됩니다. 나이가 이 실체 자체가 진화한

다는 생각이 나타나며, 그로 인해 역사라는 개념이 나타난다고 하지요. 정치경제학에서는 노

동이라는 범주가 바로 그런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인간'이란 개념은 이 근대라는 시기

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이렇듯 푸코는 서로 상이한 사고의 무의식적 기초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가를 보여 줌으

로써, 지금은 '이성'이라 이름으로 동일하게 불리는 동일자가 사실은 역사적으로 상이하게

존재 했음을 보여 줍니다. 이는 동일자와 타자의 경계선이란 게 사실 동일자 자신의 역사를

본다고 하더라도 결코 하나로 고정할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이럼으로써 현재 포섭

과 배제의 선을 긋고 있는 '이성'이란 동일자를 상대화하는 것이고, 이성과 비이성의 경계가

역사적으로 달라질 수 있음을 주장하는 셈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확고하고 꿈쩍도 않

을 것 같은, 현존하는 서구적 이성의 지배를 균열시키고 뒤흔들려는 비판적 시도를 하고 있

는 것입니다. "서구 문화의 가장 깊은 심층을 드러내려는 시도를 통해서 나는 외관상 고요

하고 움직이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대지에 불안정성과 틈새를 회복하고자 한다. 대지는 우

리의 발 밑에서 다시 한번 불안하게 꿈틀거릴 것이다."(<말과 사물>의 서문) 이러한 사상

은 분명 레비스트로스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입니다. 사고 전반을 규정하는 무의식적 기초

를 문화의 가장 깊은 심층에서 찾아내려는 시도가 그렇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특정한 역사

적 시기마다, 모든 사고의 선험적 기초를 이루는 일종의 '선험적 구조'인 셈입니다. 이 점에

서 이 저작은 특히 '구조주의적'이라고 간주됩니다.

그러나 레비스트로스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그가 다양한 사고법들 전체를 특징짓는 가

장 심층적인 보편구조를 찾아내려 한 반면, 푸코는 반대로 이 다양함을 하나의 선험적 구조

('야성적 사고')로 포괄하려는 시도를, 동일화하려는 또 하나의 시도요 동일자의 논리라는

점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그의 사상을 단순히 '구조주의'라는 이름으로 부르

기엔 곤란한 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푸코의 이 시도를 관통하는 멘탤리티는 분명 사고 밑바

닥의 어떤 심층구조를 찾아내려는 것이란 점에서 구조주의적입니다. 그가 강조하는 역사적

변화를 고려한다면 이러한 특징을 '역사적 구조주의'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경계선의 계보학

앞서 우리는 푸코의 기획이 동일자와 타자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뒤집으면, 그 경계선을 만들어 내고 유지하려는 힘과 권력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은 분

명 동일자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입니다. 예컨대 광기와 이성 간의 경계선을 유지하려는 노

력이 없다면, 그래서 광인들을 가두거나 환자 취급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이 경계선은 결코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그은 경계선이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이성은 그 경계선을 유지하는 기술자들에게 '의사'란 직책을 주며,그것을 위한 담론

(discours:여기서는 정신병리학자란 지식을 말합니다)'과학'이란 이름을 제공합니다.

나아가 이 담론을 통해 정신병이나 광인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의사뿐이며,

광인은 그들이 판단하고 처리하는 대로 따라야 할 '대상'이라고 정해줍니다. 정신병원에서

하는 광인들의 얘기는 어떤 것도 미친 소리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

간 새>에서 잭 니콜슨이 간호사에게 여러 가지 항의도 하고 부탁도, 조언도 하지만 간호사

는 그 어느 것에도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건 '미친 소리'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의사가 취하는 조치는 심지어 그것이 '환자'를 다치게 하거나 얼빠진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해도 '치료'로 정당화됩니다.

그렇다면 정신병리학이란 담론이 의사와 광인(환자)을 각각 주체와 대상으로 정의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주체와 대상은 담론 안에서, 담론에 의해서 정의됩니다.

한 정신병리학이란 담론은 의사가 환자에게 취하는 모든 조치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의사에

게 그런 조치를 강제로라도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줍니다. 따라서 담론 안에는, 다시 말해

정신병리학이란 지식 안에는 '권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지식은 권력을, 권력

의 행사를 정당화해 줍니다. 반대로 지식 역시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한 권력

이 필요합니다. 필요한 조치를 강제로라도 취할 수 없다면 정신병리학이 환자들에게 어떻게

과학의 권위를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래서 푸코는 '지식-권력

(savoir-pouvoir)'이라고 합니다. 지식과 권력이 떨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란 뜻이지요. 결국

'담론의 질서'란 담론 자체에 권력이 내장되어 있다는 점 뿐만 아니라, 담론 자체가 권력에

의해 작동하며 정당화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한편 담론만으로는 이러한 권력을 우지할 수 없습니다. 정신병원이나 수용소라는 물

질적 장치들이 없다면, 그래서 환자들이 당연히 수용되어야 하고 수용된 환자들에 대해선

어떠한 조치도 '과학'의 이름으로 취할 수 있는 제도와 장치들이 없다면, 담론이 제공하는

권력은 무력하게 될 것입니다. 기존 질서를 가르치고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는가를 끊임없이

감시하며 거기서 벗어날 때면 어김없이 징벌을 가하는 학교하는 장치가 없다면 도덕 교과서

에서 나오는 지식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계보학' 이란 이처럼 동일자가 경계선을 긋고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권력의 존재를 드

러내고 그것이 미치는 효과에 대해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계보학은 또 하나의

비판적 문제 설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경계선이 만들어진 역사를 추적하고 침묵의 소리

를 들으려는 고고학적 시도와 구분되는 것이지만, 경계선을 찾아내고 허물려는 푸코의 전체

적 기획에서 보면 일관된 것이며, '고고학적' 시도를 보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감시와 처벌의 역사를 서술합니다. 애초에 지배적이던 것은 공개적

인 끔찍한 처형(신체형)이었습니다. 이는 낡은 군주권에 기반을 둔 것이었는데. 인민들에게

강렬한 공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범죄나 모반을 막으려는 일종의 '보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18세기 말을 거치면서 '보복'은 훈육(discipline)으로 바뀝니다. 범죄자 속에서 '인간'

발견한 것입니다. "범죄자도 인간"이란 생각이 대두하면서 이제 인간은 행형과 훈육의

새로운 대상으로 떠오르는 게 됩니다. 여기서는 죄를 범한 개인들을 법적인 주체로, 즉 자기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인간으로 다시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합니다.

나아가 이들의 신체 운용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하게 하고 신체를 항속 속박할 수 있

으며 효율적인 순종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감시'가 발전합니다. 더불어 시간표,

체와 동작의 상관화, 시간 철저 활용, 시험, 제재의 규격화 등등 다양한 훈육 기술들이 발전

합니다. 이로써 감옥은 단순한 처벌권력에서 규율에 의해 법적 주체로 훈련(교정)하는 권력

으로 전환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와 훈육의 기술은 이후 학교와 군대, 공장에서 개인들

을 길들이고(훈육하고) 통제하는 데 하나의 모델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뜻에서 그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감옥"이라는 섬뜩한 테제를 제시합니다.

감옥에 대한 연구를 통해 푸코는 이제 권력이 단지 지식-권력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접적으로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임을 분명히 하게 됩니다. 나아가 성이나 성욕, 성적인 제도

와 장치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관점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이처럼 신체에 직접 작용하

고 신체에 새겨지는 권력을 푸코는 '생체권력(bio-pouvoir)'이라고 합니다.

 

해체의 철학, 철학의 해체

결국 니체의 계보학은 푸코에게 새로운 두 권력 개념을 제공한 셈입니다. 지식-권력과 생

체권력. 그런데 여기서 생체권력 개념은 또 하나의 변환을 야기합니다. 감시와 처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푸코가 도달한 또 하나의 중요한 결론은 그것이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책임

있는 주체, 법적인 주체를 만들어 내는 기술이요 기능이란 겁니다. 다시 말해 하교에서,

장에서, 감옥과 군대에서 생체권력을 통해 개개인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체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권력은 '생산적인 권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푸

코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개개인이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주체가

되는데 권력의 작동이 필수적이라면, 이제 권력 없는 주체란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권력은 영원하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치 알튀세가 "이데올로기 없는

주체는 없고, 따라서 이데올로기는 영원하다"고 했듯이 말입니다.

여기서 푸코는 또 한번의 커다란 전환을 합니다. 권력 없는 주체가 있을 수 없다면, 그렇

다면 이제 그 권력을 통해서 각자가 어떻게 자아를 구성해 가는가가 문제되고, 권력을 통한

자기와의 관계가 중심에 놓이게 됩니다. 여기서 그는 권력을 통해 자아를 구성하는 기술에

관심을 돌리게 되고, 이러한 그의 작업은 '윤리학'이란 이름을 얻습니다.

이러한 전환은 이제까지 그의 작업 전체를 이끌어 온 비판적인 기획 자체가 중단되는 지

점을 보여 줍니다. 비판적 문제 설정 자체가 해체되고 마는 것입니다 듀스(P.Dews)는 이를

니체적인 권력 개념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라고 비판합니다(logic of disintegration). 니체에

게 권력은 지배/저항의 대립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개체들을 살아 있게 만드는 권력의

지로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일면 타당한 평가입니다. 그러나 사실 좀더 니체의 사상

에 충실했던 들뢰즈는 유사한 경로를 거치지만 푸코와는 다른 귀착점에 이른다는 것을 주목

해야 합니다. 즉 그는 철저하게 니체적인 출발점을 가지며, 또한 니체 니체의 입장에 지속적

으로 충실하지만, 동시에 스스로 맑스주의자라고 공언하는 비판적 지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푸코의 입장은 니체의 개념에 의존하나 결코 '충분히' 의존하지 않습니다.

체에게는 작용적 힘과 반작용적 힘, 긍정적 의지와 부정적 의지가 언제나 공존하며 대립 투

쟁합니다. 이는 '생성'을 중심에 두고 파악하는 그의 사상과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지만 푸코는 니체가 말하는 긍정적 의지나 작용적 힘이 생물학적인 권력의지로, 결국 형이

상학적 실체를 가정하는 결과에 빠질 위험에 주의했던 것 같습니다. 유명론적 입장이 강했

던 그로서는 이런 선택은 아마 불가피했을지도 모릅니다. 따라서 니체가 보기에는 반작용적

, 부정적 의지에 불과한 요인이 권력 개념이 바로 그렇습니다.

반면 들뢰즈에게는 일차적이고 작용적인 힘이, 긍정적 의지 개념이 '욕망하는 생산

(desiring production)'이란 개념으로 작동하며, 이것이 자신을 통제하려는 코드화한 힘과 권

(의지)에 저항하고 대립합니다. 따라서 주체는 단지 생체권력이 일방적으로 만드는 수동적

생산물로 전락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그것은 끊임없이 코드화하려는 힘에 저항하는 움직임

을 만들어 냅니다. 이는 근대 철학의 한계를 넘어 새롭게 '주체'의 생산을 파악하는 탁월한

유물론적 관점이라는 게 제 의견입니다.

마지막으로 푸코와 근대 철학의 연관이라는 우리의 본래 주제로 잠시 돌아갑시다. 동일자

와 타자 사이의 경계선을 허물려는 푸코의 기획은 사실 근대적인 이성의 경계를 허무는 것

이었고, 근대적인 문제 설정 자체를 상대화하고 넘어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이 푸코를

들뢰즈와 함께 포스트구조주의의 중심에 자리 잡게 한 요인일 것입니다. 그 경계선을 허무

는 작업을 통해 근대의 내부에서는 사고되기 힘들었던 새로운 영역이 나타났습니다. 푸코의

연구대상이 갖는 '특이함'이 바로 그 사례겠지요. 나아가 그 경계선에 작용하며 그것을 유지

하는 권력을 드러냄으로써, '진리'란 동일자 자신이 발행하는 동일자의 보증서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즉 그것은 지식에게 권력을 제공하고 권력을 통해 지식이 작동하도록

하는 지식-권력의 접착제인 셈이지요. 그럼으로 근대적인 진리 개념은 철저하고 파괴되고,

지식을 재는 '참된 지식'이란 잣대는 부러지고 맙니다. 정신병리학이나 임상의학에 대한 분

석을 통해, 결국은 지식에 대한 고고학적이고 계보학적인 비판을 통해 '과학'이라는 이름의

정당화주의도 해체됩니다.

한편 인간이란 범주가 근대라는 시기의 산물임을 밝힘으로써, 근대 철학의 지반을 근대

철학의 역사성 속에서 볼 수 있게 재배치합니다. 이로써 주체철학은 그 근대적 성격이 명확

해집니다. 주체를 파악하는 역사적이고 새로운 유물론적인 관점을 제시한 것 역시 이러한

작업의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그것이 윤리학으로 전환되는 아이러니와 한계는 망각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결론-근대 철학의 경계들

지금까지의 논의를 간략하게 요약합시다. 주체와 진리라는 두 개념으로 요약했던 데카르

트의 문제 설정은 신학과 교회의 지배 아래 있던 철학을, 그 중심을 ''라는 주체로 전환함

으로써 중세 전체와 구별되는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것은 하나의 새로운 철학적 '

시대'를 여는 새로운 사고방식의 출발을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로써 '철학적' 근대가 시작

되었다고 하겠습니다.

이 철학적 근대를 특징짓는 근대적 문제 설정은 주체의 통일성과 중심성을 가정하며,

것을 개념적인 연역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주체철학'이란 특징을 갖고 있었고,

든 지식을 오직 참된 지식과학이란 기준으로 판단하거나 정당화하는 '과학주의'란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성의 빛으로 만물을 비추어야 하며, 인간의 몽매한 삶과 실천 역

시 이 이성의 빛에 의해 계몽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점에서 '계몽주의'라는 특징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중세 철학과 단절하면서 근대 철학이 힘차게 그은 새로운 경계선이었습니다. 그런

데 이 문제 설정은 주체와 대상의 일치를 보증할 수 없다는 난관에 봉착하는데, 이는 주체

철학과 과학주의, 또 계몽주의라는 근대 철학의 입장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근본적 난점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근대 철학의 근본적 딜레마로서, 이로 인해 이후 근대 철학에

서는 다양한 흐름과 입장이 나타납니다.

한편 로크는 영국의 유명론적인 전통에 입각해 데카르트 철학을 새로이 변형합니다.

본유관념과 실체를 유명론의 입장에서 비판함으로써 흔히 '경험주의'라고 부르는 독자적인

흐름을 이루어 냈습니다. 이것은 분명 근대 철학의 경계 안에 있는 것이지만 데카르트적 흐

름과는 매우 다른 독자적이고 새로운 흐름임에 틀림없습니다. 한마디로 경험론을 통해 유명

론은 '근대화'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명론과 근대 철학은 해소하기 힘든 긴장을

갖고 있었고, 이 긴장은 흄에 이르러 극한에 다다릅니다. 즉 그것은 근대 철학의 딜레마를

극한까지 밀고 나가 근대 철학의 출발점과 목표 전체에 해체해 버립니다. 이로 인해 '근대

철학의 위기'가 나타납니다.

칸트는 위기에 처한 근대 철학에 '선험적 주체'라는 새로운 기초를 마련함으로써 그것을

재건합니다. 그 과정은 모든 주체들의 공통된 보편적 사고구조를 찾아냄으로써 그들이 보편

적 판단에 이를 수 있음을 밝히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여기서 그가 사용한 방법은 진

리를 주체 내부로 이전함으로써 주체를 객관함으로써 주체에 객관성을 주는 방법인데, 한마

디로 말하면 주체와 객체들 동일한 것으로 결합하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처럼 '주객 동일성'의 이념은 이후 독일 철학 전반의 매우 중요한 특징이 됩니다. 이런 의미

에서 칸트는 데카르트나 로크와 다른 새로운 또 하나의 철학적 흐름을 만들어 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선험적 주체' 혹은 '절대적 주체'(그걸 피히테처럼 '자아'라고 하든, 헤겔처럼 '절대

정신'이라고 하든)로 하여금 자기 스스로를 기초짓도록 함으로써 딜레마의 해소를 겨냥하지

, 그 결과는 딜레마의 이전과 자신의 입론에 대한 절대적 정당화였습니다. 즉 다른 입론이

나 목소리를, 자기 안에 포섭될 수 있는 것은 자기와 동일시하고 다른 것은 배제하는 메커

니즘을 작동함으로써, 사고할 수 있는 영역을 '지금 사고하고 있는 것'으로 제한하고 봉쇄하

는 효과를 가집니다. 이것은 후에 근대 철학의 근본적 결함이라는 비난의 요인이 됩니다.

결국 헤겔에게서 절정에 이른 근대 철학은 이제 새로이 근대적 경계 자체를 뛰어넘으려는

다양한 시도들에 부딪힙니다. 실천이란 개념으로 그 경계선을 허물고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맑스나, 무의식 개념으로 근대 철학의 지반을 해체한 프로이트, 그리고 가치와 권력의지 개

념으로 근대 철학을 공격함으로써 새로운 문제 설정을 정립하려 했던 니체가 지금 중요해지

는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입니다.

다른 한편 언어학을 경유해 근대 철학의 한계를 넘으려는 태도 역시 오늘날 매우 중요한

또 하나의 흐름입니다. 그것은 예전에는 주체의 작용으로 이해하던 의미나 판단이 사실은

주체 외부에 있는 언어구조에 속하는 것이란 명제에 기인합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소쉬르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1세기 전에 홈볼트는 칸트주의의 입장에서

구와 유사한 입론을 발전시키려고 했습니다. 이는 언어학적 구조주의가 사실은 칸트주의라

는 근대적 틀 속에 포섭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는 야콥슨이나 레비

스트로스의, 말 그대로 '구조주의'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음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근대적 문제 설정을 벗어나려는 흐름들을 전반적으로 특징짓는 '가족유사성'이 있

다면, 다음 두 가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하나는 근대 철학에서는 '주체'라는 범주가 선험

적인 출발점이었는데, 탈근대적 문제 설정들에서 주체는 여러 가지 요인들의 결과물로서 구

성되는 것으로 간주된다는 것입니다. 그 요인이 사회적 생산관계(맑스), '타코)이든, 이데

올로기(알튀세)든 간에 말입니다. 물론 이들이 이처럼 구성되는 주체에게 부여하는 기능이나

작용, 이론상의 위치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잊어선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아야 하지만 말

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식을 파악하는 방식입니다. 근대 철학에서 그것은 인간의 인식이 도

달해야 할 목표 지점이었고, 따라서 '참된 지식'으로만 다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탈근대적 문

제 설정들에서 지식은 주체를 구성하는데 영향을 미치는 '담론'으로 정의되며, 지식은 그게

참이든 거짓이든 간에 그게 야기하는 효과가 무엇인가를 통해 사고됩니다.

따라서 어찌 보면 주체와 지식의 관계가 근대의 그것과는 반대로 뒤바뀌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식이 효과를 야기하는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고, 주체는 그 결과 구성되는 것

이 된 셈이니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입지점에서 본다면 이 두 가지 요소가 근

대 철학의 문제 설정과 그것을 넘어서려는 문제 설정 사이에 경계를 긋는 특징이 아닌가 생

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근대 철학은 단순히 시간적인 자리를 가리키는 게 아니란 것입니

. 근대라는 말 자체가 시기적인 구분을 포함한 것이어서, 그 말과 동시에 '전근대->근대

->탈근대'의 계열을 연상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런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철학에서

지면 곤란합니다. 이를테면 그런 변화의 계열을 필연성을 갖는 '발전'으로 간주해선 곤란하

다는 말입니다.

아 도르노(T.Adorno)의 말을 빌리면, 근대는 시간적인 범주가 아니라 어떤 질적인 특징을

지칭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근대 철학'이라 말보다는 '근대적 문제 설정'이란 말이 좀더 잘

보여 주듯이, 근대 철학이란 문제를 설정하고, 그것에 대답하기 위한 나름의 개념적 지반을

마련하여 문제를 풀어 나가는 다양한 시도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어떤 질적인 특징입니다.

그것 역시 일종의 '가족유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근대에는 전근대적인 철학이

사라질 것이며, 탈근대의 시기에는 근대적인 철학을 찾아보기 힘들 거라는 생각처럼 소박한

것은 없는 셈입니다. 마치 자본주의가 되면 봉건적인 것이 모두 사라지고, 또 사회주의가 되

면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자연히 소멸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러한 살핌의 끝에서 우리는 새로운 방향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경계

선을 넘는 것은 새로운 사고의 영역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 새로운 영역은 새로운 개

념과 이론, 새로운 역사를 내부에 안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계를 넘어서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건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각 사회에 '필요한'

체로 만들었는지를 연구하는 것 같습니다. 이를 제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회적 생산양식과의

관계 속에서 주체 생산방식에 대한 개념적, 역사적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이미 근대를 넘어서려는 사람들에 의해 그 기초가 마련된 것이어서 이런 식으로 제기하는

게 좀 새삼스럽긴 합니다만. 하지만 드러난 모든 것을 반드시 볼 수 있는 건 아니란 점을

고려한다면 이런 식으로 매듭을 짓는 것도 단지 잉여적인 일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연구는 이미 철학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일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

떠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어떤 요인들에 의해 사람들이 주체로 생산되는지를 연구하는 것

이기 때문입니다. 근대 철학과 연관된 지금까지의 고찰이 지시하는 연구 방향은 바로 이것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는 또한 우리의 다음 연구 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

서 우리는 아마 다시 '근대성'의 문제로, 그리고 '맑스주의와 근대성'의 문제로 돌아가게 될

것 같습니다. 비록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맥락은 매우 달라질 거라 해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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