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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포스트모던 작가들

by Frais Study 2020. 8. 16.

서 론

 

- 뒤샹의 생애와 영향

 

미학이나 미술사 강의를 들어오면서 마르쉘 뒤샹이라는 이름을 몇 번이가 들은 적이 있었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변기를 미술관에 갖다놓아, ‘예술의 고상함을 깨뜨린 인물’, ‘혹은 포스트모던의 선구자이다정도밖에 없었다. 또한 미술이라곤 전혀 모르던 중학교 시절에 교회의 미술을 하시던 목사님께서 뒤샹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하는 자신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다. 확실히 그 그림은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처럼 투명성을 가지고 시간이 중첩되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이번 레포트를 위해 인터넷을 뒤지면서 몇 개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위와 같은 정도로밖에 뒤샹을 정의하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뒤샹의 두 형제들 또한 모두 예술가이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샹은 파리의 화 쥘이아 아카데미에 입학한다. 1907년에는 유머리스트 작가전에 참가하였고, 1910년까지 신인상주의, 나비파,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초상화와 풍경화를 그린다. 1908년작인 사과밭의 빨간 집,검은 스타킹을 신은 나체의 여인등이 그 예이다. 퓌토그룸의 토론을 통해 입체주의 원칙을 받아들이게 되나, 1911년작인 체스를 두는 사람들에서 볼 수 있듯이 입체주의 미학에 형태와 투명성을 첨가시키며, 1911년작 사과나무 위에 부는 바람에서처럼 움직임을 표현하는데 역점을 둔다. 1912년 살롱 데 엥데팡당에 출품한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로 뒤샹은 고심하고 있던 입체파, 미래파 등 당대의 미술경향에 결별을 고하게 되며 왕과 왕비,쵸콜릿 분쇄기,홈통등의 작품을 계속 발표한다.

1913년 뉴욕의 아머리 쇼에 계단을 내려오는 나부를 출품하여 큰 물의를 빚었다. 같은 해에 최초의 레디 메이드작품을 발표했는데 이는 자전거 바퀴를 등없는 작은 의자에 고정해 놓은 것으로 그는 이런 일상용품을 예술작품으로 선보였다.

참고작자미상, 뒤샹(Marcel Duchamp)-(1887~1955), http://www.liberta.pe.kr/art/duc.html

 

1923년부터 '에탕 돈네'를 완성한 1946년까지의 23년간은 뒤샹이 아무런 작업도 하지 않은채 체스에 몰두한 기간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 기간 동안에 그는 '회전유리판'과 같은 몇 가지의 광학적 현상을 이용한 장치들과 '가방상자' (Bolteen-valise)5) 등의 작업을 진행함과 동시에 자신과 다른 예술가들에 대한 강연 전시 조직, 간단한 비평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역시 이 시기의 뒤샹은 자신의 맡은시간을 체스와 '말장난'에 대한 연구로 보냈다. 뒤샹은 체스경기에 참여하기 위해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였으며, 특히 19328월에는 프랑스 체스 토너먼트에서 우승 까지 하였다. 그는 그 후로도 프랑스 체스협회 대표위원으로 갖가지 공식행사에 모습을 나타낸 바 있다.

'큰 유리'를 제작한 8년여 남짓한 기간이나 그 이후에 그가 빈둥거리며 지낸 것 으로 되어있는 23년간의 공백기 말고도 그의 마지막 작품인 '에탕 돈네'의 작업기 간과 그 경과는 더 극적이다. 뒤샹은 1944년경에 이 작품에 대한 드로잉을 시작하여 1946년부터 뉴욕 14번가에 있던 그의 작업실에서 실제제작에 들어갔다. 결국 1968년 그가 사망한 뒤에 발견된 이 작품은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채 약 22년간이나 그의 작업실 밀실에서 제작되어 왔던 것이다. '에탕 돈네' (Etant donnees: 1"la chute d'eau, 2"le gaz d'eclairage)는 뒤샹이 죽은 뒤에 그의 스튜디오 구석에 은밀하게 마련되어 있었던 밀실에서 발견되었다.

참고유진상, 마르셀 뒤샹 - 독신자의 역사,

http://art.moca.go.kr/media_data/books/periodical/study/study08/study8-2.html#f-1

 

위와 같이 기복이 심하고 베일에 가려진 삶을 살았던 그는 현대의 많은 사조들의 모태가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그의 사상의 심오함과 포스트모던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는 건축에서의 루이스 칸이 모더니즘의 결정체라 불리기도 하고, 포스트 모던의 선구자라 불리기도 하는 것과 비슷하다.

 

60년대 미국의 팝아티스트들이 자신들의 예술적 선배들인 추상표현주의자들에 대한 도전 과정에서 뒤샹을 자신들의 선구자로 선택함으로 구체화되었다. 그후 팝 아트,해프닝,옵 아트,미니멀 아트,플럭서스,개념미술,포스트모더니즘의 예술가들은 모두 뒤샹이 자신들에게 속해 있으며, 그를 자신들의 원형으로 인식했다. 또한 그에 대한 많은 주석자들과 연구자들이 나타났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또한 그는 당시의 어떠한 사조와의 연관도 거부하였는데 이것은 더욱 그의 영향력을 크게한 요인으로 보인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또한 누구나 벽이 없이 접근할 수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아마 하나의 고착된 사조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한 그의 전략이 아닌가 싶다. 일관된 하나의 주사상이 사회를 점령하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그의 바램중 하나였다면, 그 자신의 사상이 일관된 사상이 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예를 들자면 무정부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은 그 스스로 큰 권력을 갖지 않도록 자신을 제어해야만 한다. 그것을 못하면 그는 결국 또다른 중심권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강의때에 들은 뒤샹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사진이나 자료를 미술관 밖으로 유출시키지 않으려고 했다는 것이 이런 맥락에서 이해되진 않을까 생각한다. 위에서 그가 어떤 사조와의 연관도 원치 않아서 더욱 영향력이 커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하나의 큰 사조보다는 숫적으로 많은 사조를 양산했다는 것!! 다시말해서 그의 큰 영향력은 미술계의 다핵구조를 만들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아래의 글에서 아직까지도 그에 대한 해석에 많은 논란이 있다고 하는데 그것으로 그는 성공한 것이 아닐까?

 

또 하나의 중요한 문제는 바로 전위 (前衛), 즉 아방가르드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 뒤샹의 회화성에 대한 부정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동시에 그가 낭만주의 이후 부정의 역사로 점철하는 '현대성' (modernity)도 함께 극복하려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아방가르드의 제반 노력들을 그 극단에까지몰고간 뒤 그것을 '긍정의 아이러니' (irony of affirmation)로 전도시켜 놓았다. 누구나 뒤샹을 아방가르드로 분류하지만 그가 1913년 이후 회화를 그만두었을 때 당대의 가장 첨예한 아방가르드였던 앙드레 브르통 (Andre Breton)은 그에게 신랄한 비난을 퍼부은 바 있었다. '에탕 돈네'를 만들기 시작한 1946년까지의 23년간의그의 이러한 '무위'(無爲) '작업의 부재'는 아직까지도 많은 비평적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여하튼 뒤샹은 부인할 수 없는 당대의 아방가르드였던 다다와 초현실주의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으며 그로 인하여 완전히 독보적인 입장을 취하였던 것이다.

참고유진상, 마르셀 뒤샹 - 독신자의 역사,

http://art.moca.go.kr/media_data/books/periodical/study/study08/study8-2.html#f-1

 

물론 이러한 생각은 나의 짧은 견해에서 온 억측일 수도 있다. 단순히 그가 당시의 사조중 몸을 담을 만한 마음에 드는 사조가 없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로 하고 본론에서는 그의 작품에 나타난 몇 가지의 요점들을 정리해 보았다.

 

오랫동안 뒤샹의 예술세계를 ?하나의 총체성?으로 간주하고자 했던 여러가지 시도들이 거부되고 있다. 진드리치 샤루페키( Jindrich Chalupecky)에 따르면 뒤샹의 예술은 ?체계, 예컨데 예술법칙의 사회적 시스템, 이라고 부를 수 있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벗어나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프랑소와 리오타르(Jean-Francois Lyotard) 또한 뒤샹의 예술에 있어 의미를 회복시키려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했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본 론

 

- 주요전략 - 말장난, 에로티즘, 우연, 의사과학, 오브제

 

뒤샹은 타자(alter ego),말장난,4차원, 연금술, 비유클리트 기하학, 에로티시즘을 사용하되 그것 자체를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전략으로만 사용했다. 그는 새로운 과학이나 연금술적 가정을 제공하지 않았지만 그것들은 문화적 구조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 기준을 해체시키기 위한 고안물로 사용했으며 새로운 기능의 고안 및 새로운 가능성의 무한함을 제안하기 위해 사용했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1) 말장난

뒤샹에 대해 자료를 찾으면서 가장 당황스러웠던 것은 각각의 작품에 대한 명칭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given', ’Etant donnes‘, ’가정: 1폭포, 2발광개스(1la chute d'eau, 2le gaz d'eclairage/ Given:1. The Waterfall, 2.The Illuminating Gas)2)‘가 하나의 작품에 대한 명칭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는데만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아래의 글은 그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은 불어를 영어로 또는 한글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명칭을 가지기도 하지만 뒤샹 스스로도 이런 말장난을 즐겨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나중에 '녹색상자' (Bolte verte)'부정형으로'(a l'infinitif-'횐색상자'[Bolte blanche]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등으로 불리게 된 그의 자필원고들이다. 이 두 개의 상자는 마르셀뒤샹의 두 개의 대표작인 '심지어, 자신의 구혼자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La mariee mise a nue Par ses celibataires, mene/The Bride stripped by her bachelors, even) '가정: 1폭포, 2발광개스'(Etant donnes: : 1la chute d'eau, 2le gaz d'eclairage/ Given:1. The Waterfall, 2.The Illuminating Gas)2) 의 숨겨진은유적 의미체계에 대한 중요한 단서들이 되어주고 있다.

참고유진상, 마르셀 뒤샹 - 독신자의 역사,

http://art.moca.go.kr/media_data/books/periodical/study/study08/study8-2.html#f-1

Marcel Duchamp(1887~1955)

Etant donnes(1la chute d'eau, 2le gaz d'eclairage/ Given:1. The Waterfall, 2.The Illuminating Gas)2)

http://art.moca.go.kr/media_data/books/periodical/study/study08/study8-2.html#f-1

 

이러한 말장난을 보면 쟈크 데리다의 해체가 떠오르는데 데리다의 책을 보고있어도 전혀 이해가 가진 않고 있는 상황이라 안타까울 뿐이다.

 

뒤샹이 근본주의를 해체시키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전략, 혹은 그가 근본주의를 사용하여 형식을 해체시키거나 재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또다른 전략은 말장난(puns)의 사용이다. 불어를 같은 같은 알파벳의 영어발음으로 자주 연결시키는 것을 포함한 뒤샹의 낱말활용은 어떠한 고정관념도 해체시키며, 문화적으로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며, 한정된 불가능에 대한 이해를 설정하려는 시도를 제공한다. 그에게 있어 말장난은 운문(韻文)과 같다. 단어들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며, 실제적인 소리와 서로 무관한 단어들의 상호관계에 따라다니는 예기치 못한 의미라는 이유로 인해 하나의 자극요소로 간주된다. 그리고 그것은 무한한 즐거움의 영역으로서 때로는 4개 혹은 5개의 상이한 의미차원을 수행하기도 한다. 모든 단어들에 있어서의 의미의 다중성을 발생시키기 위해 동일한 발음들을 사용한다. 그래서 단일한 의미론적 정체성을 해체시키며 확장시킨다. 사회적으로 고정화된 단어의 의미들을 신랄하게 거부하면서 뒤샹은 비의미,넌센스를 창조한다. 단어들을 가지고 즐기는 뒤샹의 ?무한한 즐거움의 영역?은 어쨌든 그의 글쓰기에 제한되지 않았다. 로버트 핀커스 위튼( Robert Pincus Witten)에 의하면 말장난은 '뒤샹의 예술을 구성하는 중심원리'이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아래의 글에서 ‘rrose’라는 명칭이 재미있어 보였는데 어떤 사람은 르로즈라고 불어식으로 발음하기도 하고, ‘로즈라고 영어식으로 발음하는 사람도 있었다. ‘roseeros라고 뒤샹이 말했다고 하는데 여기에서 rose‘e'를 단어의 앞으로 보내면 eros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생각일 뿐 뒤샹이 실재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의 사상중 하나인 차원의 전이와도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로즈 셀라비는 적어도 레디메이드라고 볼 수 있다. 그녀는 <>과 마찬가지로 뒤샹의 ?명칭주의 name-ism?의 법칙을 따라 기능을 수행한다. 그는 후일 자신이 여성이름인 ?Rrose?를 사용하기로 한 결정은 부분적으로 Lloyd라는 이름으로 즐거움을 얻기 위해 촉발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양자의 이름에서 알파벳을 중복사용한 것은 일종의 메아리(반향),이것은 그것들의 다른 차원으로의 전환을 암시하기 시작하는 ?기본적인 평행주의?를 설정하기 위한 것-중략-?rose?는 중심으로부터 외부로 펼쳐나가는 형상이다. ?장미?는 물론 역시 꽃이며 여성의 이름이다. ?開花?라는 의미-불어로 epanouissement-<Large Glass>의 도상에서 강력하게 형상화된다. 이 의미는 밖을 향해 확산된다는 뜻 뿐만 아니라 성적으로 깨어남을 의미...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만 레이

로즈 셀라비로 분장한 마르셀 뒤샹(1920-1921)

http://www.moca.go.kr/media_data/books/periodical/news/n25/25-f.html

 

 

뒤샹의 리도그래프의 하단에는 매(falcon:불어로 faucon, faux con의 동음어인)의 형상이 추가되어 있는데,비록 우리의 시각상 그것이 더 가까이 있는 것이지만 전경에 있는 매가 더 작기 때문에 우리의 시각적인 원근법을 전복시킨다. faux con(번역하면 잘못된 성 false sex)이라는 명문은 그녀의 드러난 생식기인 여성으로서의 ?진정한 성?에 대한 우리의 주의를 바꾸어놓는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그의 원고들은 나름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함축적 단어들과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것들이 지시하는 내용들은 너무도 엉뚱하고 모순에 가득 차 있어 마치암호문 (crytogramme)과도 같다. 실제로 그것들은 뒤샹에 의해 의도적으로 암호화되어 있다. 그 암호들은 2차적, 3차적 의미수준으로 재해석될 것을 요구하며 그럼으로써 흡사 제임스 (Henry James)'카페트 속의 그림('Figure in the Carpet) 처럼 뒤샹의 작품세계 전체를 재구성하는데 필요한 낱개의 날실과 씨실들이 된다.

참고유진상, 마르셀 뒤샹 - 독신자의 역사,

http://art.moca.go.kr/media_data/books/periodical/study/study08/study8-2.html#f-1

 

'말장난' 또는 '유머 문집'에 대한 관심에 있어서도 1939년에 그는 '르로즈 셀라비,정확성의 안과기술,,온갖가지 발차기 (Rrose Selavy, oculisme de precision, poils, coups de pied en touts genres)' 라는 말장난 모음집을 파리에서 출판하였으며 자신의 많은 글과 여러 작품제목들에 말장난을 수시로 사용 하였다. 그의 말장난들은 '녹색상자''흰색상자''암호문'들을 어떤 방식으로 이해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되어준다.

참고유진상, 마르셀 뒤샹 - 독신자의 역사,

http://art.moca.go.kr/media_data/books/periodical/study/study08/study8-2.html#f-1

 

그의 말장난에 대해 더욱 체계적으로 알고 싶지만 위의 인용글에서조차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있어 답답할 뿐이다.

 

2)에로티즘

 

유일하게 그가 동의하고 싶어했던 이즘인 뒤샹의 에로티시즘은 실제에 대한 사회적 해석을 질문하기 위한 또다른 전략적 고안물이다. 그는 에로티시즘을 ?계속 숨겨진 사물들을 백일하에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하는데-그것들은 카톨릭 종교, 사회적 루울 때문에 에로틱해서는 안되는 것들이다....중략.... 에로티시즘은 기존의 원리, 미학 혹은 기타 다른 것들로 되돌리기 위해 강요된 존재들로부터 나 자신을 유지시킨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다른 그의 전략들과는 달리 에로티즘에 대해서 그는 확고한 믿음을 보인다. 이것은 억눌린 에로티즘이 전 세계에 걸쳐 공통적이고 누구나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위의 인용글의 제목에서 성적 자기동일성의 화해억눌린 성적본질에 대한 대화라고 나름대로 해석해 보았는데 이것이 치유가 아닌 대화에서 그친 것은 그의 작품에서 지금의 상황을 표현했을뿐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한 것으로 보여서이다. 그의 많은 작품에서 에로티즘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혹시 기존의 원리에서 벗어날 대안이 확실치 않다는 그의 안타까움을 비유한 것을 아닐까?

Marcel Duchamp(1887~1955)

Large Glass(La mariee mise a nue Par ses celibataires, mene/The Bride stripped by her bachelors, even), (1917-1925)

http://www.liberta.pe.kr/art/duc.html

 

 

 

 

 

 

3)우연

 

마르셀 뒤샹, 표준정지장치의 회로, 1914

http://my.dreamwiz.com/mijk/dada.htm

 

뒤샹은 <세개의 표준정지장치>를 이용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세개의 자를 각각 세번씩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치 철도 지도같은 이 그림은 사실상 전적으로 뒤샹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이 그림이 만들어진 과정을 생각해 봅시다. 표준정지장치라는 자의 형태는 어디까지나 아주 우연히 얻어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할 때, 이 표준정지장치의 회로도 뒤샹의 의도뿐 아니라 우연한 힘에도 의존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죠. 사실 미술작품이라는 것은 작가의 창조적 능력의 구현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선 뒤샹 자신이 결정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부분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되고 있습니다. , 뒤샹은 자신의 작업에 우연 혹은 자연력을 개입시킴으로써 예술가의 독창성이라는 신화에 일격을 가하고 있는 셈입니다.

참고강미정, 현대미술 강의록 중

http://my.dreamwiz.com/mijk/dada.htm

 

한 단적인 예로 큰 유리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유리의 중간부분 그러니까 신부를 상징하는 부분과 독신자들을 상징하는 부분의 경계선에 미묘한 금이 갔는데 뒤샹은 이 우연히 생긴 작품의 상처에 대해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연의 도움을 통해 관습적인 계량단위에 대한 임의성을 연출하며, 상이한 단위들의 무제한성을 제안한다. 비록 1미터 높이로부터 떨어진 1미터 길이의 현()들은 바닥 위에 아직도 1미터들일지라도, 선을 계측하는 일이란 현들의 우연한 배치에 의해 항상 동일하지 않다. 우연은 말장난과 같이 기능한다. 그것은 자기동일성, 표준화를 ?정지?시키며 그것들을 다중적으로 변화시킨다. 그는 <오류 뮤지컬 Erratum Musical>(1913)에서 음악에 있어 새로운 자유를 가진 음악적 구성의 법칙을 위해 재차 우연을 사용하였으며, <Large Glass>위에 쌓인 먼지나 1926년 그 작품을 이동할 때 발생한 균열과 같은 우연성을 뒤샹은 의미의 부가적 차원으로서 환영하였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우연성.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이같은 생각은 기상학에서부터 시작한 카오스이론을 떠오르게 한다. 모든 것이 계산가능하고 제어가능하다고 믿던 뉴튼적 세계관에 빠져있던 근대의 세계에 유럽에서 나비의 날갯짓이 태평양에서는 태풍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실재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가장 큰 영향력은 우연성이다라고 말하는 카오스이론과 결국 예술을 결정하는 것은 예술가의 계획된 정신이 아니라 우연성임을 보여주는 뒤샹의 생각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연성에 대한 그의 환영이다. 자신이 심혈을 기울인 작품에 생긴 파열을 기뻐한다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뭐라고 꼭 집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공감할 수는 있다. 만약 내가 주택을 짓는데 마감을 동으로 하고 벽돌사이에 약간의 틈을 주었다고 가정해보자. 언제가 이 주택을 보았을 때 동이 청록색으로 녹슬어 하얀벽위에 우연히 흘러내린 녹의 흔적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벽돌 사이로 비집고 나온 조그만 풀을 보게 된다면 기쁨의 환호를 지르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까지나 지을 때와 똑같이 서 있는 집은 그야말로 생명이 없는 집이다. !! 생명! 뒤샹은 예측할 수 없는 변화를 겪어가는 그의 작품에서 생명을 느낀 것은 아닐까? 단순한 물질이 아닌 영혼을 간직한 생명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을 가진 것이다.

 

4) 의사과학

 

먼저 그의 주요전략 중 하나였다고 하는 의사과학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겠다. 아래의 글은 의사과학이란 것의 정의를 잘 보여주고 있는데 뒤샹이 사용한 n차원과 n+1차원, 혹은 그런차원을 경험한 다음 물질의 속성이 바뀌었다라는 표현들은 확인되지 않은 그리고 증명불가능한 과학 즉 의사과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가 이런 의사과학을 사용한 것은 이전의 눈에 보이는 그리고 자로 재거나 저울에 달아볼수 있는 물질에만 관심을 기울여 온 과학과 그에 의지해 발전한 기술 혹은 산업문명에 대한 불신이라고 생각된다.

 

반모던을 규정할 때에는 반드시 그 세계관에 비인간화의 용인, 다시 말해서 인간 믿음을 배제한 객관성의 중요성 그리고 앞서 언급한 과학에 대한 가치부여와 같은 현대성(modernity)의 기준과 상반된 요소를 갖고 있어야 한다.

철학적인 관점에서 모던세계관은 예를 들어 "객관성과 정량성을 중시하며, 의인화에서 탈피하며, 반개인주의적 사고를 갖는다. 이지적이며 난해하다. 합리성을 중시한다. 문제 지향적, 증명 지향적이다. 논쟁과 새로운 경험은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으나 증명되었을 때에만 반대견해를 수용한다" 등을 포함한다.

이렇게 보면 반모던 세계관은 "객관적이 아니라 주관적이며 정량적이기보다는 정성적이다. 탈의인화가 아니라 의인화되어 있다. 자아 중심적이다. 이지적이며 난해한 것이 아니라 감각적이며 구체적이다. 도구적 합리성보다는 도덕적이다. 일반화가 아니라 독특성을 높이 평가한다. 문제 지향적이 아니라 목적 또는 미스터리 지향적이다. 반증성 시험에 흥미가 없다.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를 포함한다.

이와 같은 홀턴의 분석으로 보아 우리는 반모던이 지향하는 세계를 분명히 할 수 있다. 과학의 객관성, 인과론과 예측성, 합리성을 기초로 한 세계를 떠나 주관적, 믿음적, 자아 중심적, 도덕적 세계를 지향한다. 반모던 세계에서는 일상 문제의 해결과 미래의 예측에 흥미가 없으며 목적 추구 또는 미스터리의 추구가 관심의 대상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신과학(초정상 과학)이 강조하

는 대목에는 이 모든 반모던(반과학) 요소가 망라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한국의사과학연수소, 하버드의 홀턴이 본 반과학 문제

http://www.kopsa.or.kr/ko2.html

 

그의 의사과학을 통해 본 관점은 그의 거의 모든 작품에 걸쳐 나타난다고 보아도 될 정도이다.

이것이 가장 뚜렷이 나타나는 것은 아래의 인용구에는 없지만 계단을 내려가는 나부일 것이다. 공간에 시간의 개념을 더해 움직이는 나부의 시간이 하나의 화면 속에 겹쳐나타나는 것은 4차원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 4차원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궁극의 목표이다. 그리고 이것은 단독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에로티즘, 반예술, 말장난 등과 결부되어 사용된 것을 볼수 있다. 앞에서 roseeros가 되는 것도 4차원에 의한 전환을 말장난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의 기하학적 중심 요소는 배수관으로부터 그것을 샘으로 변화시키는 회전인 그것의 전환이다. 그러한 4차원적 회전을 거치면 전술한 바처럼 좌우와 내외가 바뀌게 된다.<>과 같은 오브제를 4차원적으로 회전시키면, 메타포적 차원에서 요철(凹凸)의 전환이 이루어지게 된다. 오목한 형태란 일반적으로 여성스러움을 암시하는 데 3차원적 존재인 <>4차원적으로 회전시키면 여성적인 오목한 형태는 남성적인 볼록한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 좀더 메타포적인 표현을 사용한다면 <>이 차지하는 지위는 뒤샹이 레디메이드를 사용하는 일반적 전략 속에 내포된 미학적 전환의 참고물로 간주될 수있을 것이다. 그의 오브제 선택은 회전과 반발로부터 비롯되어 전환되고 변화된 예술세계를 창출한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뒤샹은 그의 노트에서 이 < Large Glass>의 상단에 무정형의 구름모양으로 표상화된 ?映畵的 開花?가 몇 가지 차원의 기능을 수행함을 기록하고 있다. , 꽃피우는 일, 그리고 4차원으로의 확산이 그것이다. epanouissement는 개화 또는 확산으로 번역되는데 꽃이 개화될 때 그것은 중심으로부터 벌어지며 외부로 확산된다. 마치 뒤샹이 트릭사진에서 꽃처럼 외부로 확산되며,중심부로부터 다중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처럼 매우 복잡한 개화처럼 4차원의 연속체는 보통의 3차원 공간을 3차원 내에는 포함되지 않는 축들을 따라서 확산시킨다. < Large Glass> 상단의 ?영화적 개화?는 새색시의 4차원적 성격을 나타낸다. 그녀는 중심으로부터 일상적인 공간에 존재하는 어떠한 방향으로부터 90도 회전한 영역의 외부로 확산된다. 그것은 구름과 같은 개념이다 실제로 이러한 종류의 불확실한 영토 내에서 4차원의 개화는 뒤샹이 로즈 셀라비의 성격을 차용함으로써 메타포적으로 접근한 기본적인 성적 변화를 포함하게 된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rrose’ 혹은 큰 유리에서의 꽃의 이미지 혹은 개화의 의미는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보았던 쟝 꼭또의 영화 오르페의 유언의 한 장면을 떠오르게 한다. ‘오르페의 유언에서의 주인공(꼭또 자신이 주연으로 나왔었다.)은 시간을 초월하여 시공간을 자유롭게 여행하는데 이중 갈기갈기 찢어진 꽃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다시 피어내는 장면이 있다. 차원을 초월한 주인공에 의해 살아나 활짝 핀 꽃은 곧 차원의 변이를 통한 확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아래의 인용구에서처럼 이러한 4차원의 세계는 곧 새색시이며 3차원 곧 남성들이 갈구하는 동경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에로티즘과도 결부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궁금한 것은 왜 여성은 4차원이고 남성은 3차원인가 하는 것이다. 이것은 뒤샹의 성별에 대한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는 여성을 경쟁과 생계보다는 미와 사랑, 가족에의 보살핌에 관심이 있는 치열한 사회와는 무관한 존재로 인식하였고 그래서 여성을 4차원의 영역에 둔 것 같다. 이에 비해 남성은 언제나 생계를 위해 생산현장에 속임수와 투쟁의 사회에 매여 자유롭지 못한 존재, 중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3차원의 존재로 본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남성들의 여성에 대한 삐뚤어진 동경의 모습이 큰 유리작품에서 표현된 것이다.

이 외에도 아래와 같은 의사과학적 접근에 대한 많은 예들이 있다.

 

뒤샹의 이러한 방법론은 로즈 셀라비와 관련된 다른 작품을 살펴보면 좀더 이해할 수 있다. <왜 재채기를 하지 않나?>( 9 )는 작은 새장 안에 작은 대리석 조각들이 채워져 있는데 작품은 로즈의 사인이 되어있다. 이 타이틀은 일견 넌센스적으로 보이지만 부분적으로 아마도 심리적 연상의 패턴을 설정하고있다고 보여진다. 재채기란 생리적으로 오르가즘과 유사하다. 재채기는 따라서 함축적 차원에서 개화라는 하나의 의미에 상응한다. 불규칙하게 기하학적 단위들의 분산으로 구성된 새장은 역시 수학적 의미를 제시한다. 입방체들은 4차원의 다양한 방위들을 상기시키도록 배열되어있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죠프레의 책에 실린 다이어그램과 뒤샹이 제작한 1925년 니스에서 개최되었던 체스 챔피온쉽의 포스터(10 )에 동시에 나타나고 있는데, 체스의 말판을 3차원적 입방체의 형태로 적용시키고 있으며 아마도 후에 일종의 4차원적 개화를 수행하게될 여지를 가지고 있다. 회전이란 n차원의 사물을 n+1차원의 사물로 전환시키는 변환의 방식이다. 뒤샹은 포스터를 통해 3차원의 체스를 4차원의 체스로 전환시킨 것이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그는 그의 ?풍경들은 다빈치의 종착점으로부터 시작된다.?라고 말한 바 있는데, 기하학적 의미에서 본다면 그의 이 언급은 레오나르도의 과학적 원근법에 대한 연구,부분적으로는 그 자신의 것과 매우 흡사한,는 시각적으로 관찰 가능한 3차원적인 평범한 풍경과만 관련이 있는 반면 그것을 뛰어넘는 4차원의 그것과는 무관함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뒤샹이 죠프레의 복잡한 다이어그램에서 보았던 4차원적 원근법의 투사는 일상적인 3차원적 공간 내에서 다양한 회전과 전환을 요구한다. 사람들은 다중적 시각으로부터 계속하여 4차원의 사물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투사와 회전은 사물들의 내부를 외부로 전환시킨다. 이러한 기하학적 전환의 이벤트를 설명하기 위하여 뒤샹은 즉시 신랄하게 변형된 자아를 창조했다. 로즈 셀라비가 되는 일에 내포된 성적 전환은 볼록함을 오목함으로 전환하는 것의 메타포적인 예시로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모나리자의 수염은 레오나르도의 원근법이 4차원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을 표시하는 것이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근대미술의 원근법과 관련하여 뒤샹에게 있어 ?유리의 면?은 평범한 공간의 원근법에 관해 열려진 르네상스 창 이상이다. 그것은 3차원의 세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넘어선 4차원의 세계를 투사하는 것을 내포한 ?초박편 infra-thin slice?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Large Glass>의 새색시는 4차원적이다. 그녀는 ?유리 안에 유예된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의 裏面(envers)에 관한 말장난 ,표현대로 ?내부가 밖으로 나온 것?, 그녀가 4차원적으로부터의 동결된 투사라는 사실을 내포한, 은 죠프레의 다이어그램에서의 사면체처럼 고정된 면 주변을 회전한다. <Large Glass>의 투과성은 4차원적 회전을 적어도 이론적으로 시각적이게 한다. 우리가 <유리>주변을 걸으면서 반대방향인 이면으로부터 그것을 들여다보는 동안 내부의 다양한 요소들이 드러나는 기능을 한다.

참고김 찬 동, 뒤샹의 작품에 나타난 性的 자기동일성의 화해,

http://art.centerworld.net/discourse/1/1-34.htm

 

5) 오브제의 사용

마르셀 뒤샹, 자전거 바퀴, 자전거 바퀴(Bicycle Wheel), 1913, 아쌍블라쥬,

채색된 나무의자, 쇠바퀴, 높이 127cm. 뉴욕 근대 미술관

http://my.dreamwiz.com/mijk/dada.htm

 

그에게 있어 에로티즘과 의사과학의 전략만큼 지속적으로 사용었다. 기존에 만들어진 물체를 그저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의미를 가진 표현수단으로 본 것이다.

소쉬르의 기표와 기의에 대한 언어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붓칠에 의한 대상의 기호화 즉 기표는 실질적인 기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이다. 실질적인 전달은 실존하는 물체를 직접 보여주는 것이며, 그런 맥락에서 오브제란 곧 기의인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생각일 뿐이고 실제로 뒤샹이 소쉬르의 영향을 받아 오브제를 사용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어딜 찾아보아도 뒤샹의 오브제에 대해서는 에 쓰인 비꼬기 위한 오브제만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러한 의미보다는 뒤샹의 여러작품을 통해 본 오브제의 원래 의미는 예술가에 의해 표현되고 변형되지 않은 바로 그 물체 그리고 그 내면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 큰유리 : 녹색상자

큰유리에 대한 각부 명칭

http://gumnuri.kookmin.ac.kr/

 

먼저 위의 그림에서 각부의 명칭을 알고 그에 대한 작동을 알아야 한다. 아래의 인용문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의 순서로 각 부분을 설명한 글이다. 여기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뒤샹의 녹색상자에 언급만 되어 있는 부분도 있다.

 

1. 욕망-자석 : 맨 위에는 모자와 베일을 쓴 여성의 형상처럼 보여지는 '신부'가갈고리에 매달려 있고 그녀의 왼쪽을 보면 좀 더 아래에 약간 패인 곳 아랫쪽에'욕망-자석' (magneto-desire)이 있다. 그것은 다시 금속 막대 혹은 대궁같은 것과연결된다. 이 욕망-자석은 새장같이 생긴 것 안에 보이지 않는 '가는 물질'(matiere a filament)을 담고있다. 이 물질은 신부의 분비물로서 그녀의 '개화'(florissement)' 가 이루어지는 순간 형체가 나타난다. '녹색상자'에는 이것이 "단단한 불꽃과도 같으며‥‥ 이것이 '중력의 조련사'가 가진 공을 핥으면서 마음대로 그것의 위치를 바꾸는 역할을 한다"l6)라고 적혀 있다. 이 욕망-자석의 전기적 방전은 스파크의 형태로 '에로스의 모태'에 이르러 구혼자들을 깨우게 된다.

 

2.말벌 : 욕망-자석에 달린 막대는 일종의 축으로서 그 때문에 '목형' (arbre-type)으로 불리기도 한다. 목형-축 혹은 등뼈 모양의 이것은 일종의 주사기나 피침같은 것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이 '말벌'(Guepe) 이다. 이 말벌은 다음과 같은비정상적인 특성들을 가지고 있다 : a.삼투압에 의해 '사랑의 연료'(gasoline d' amour)를 분비한다; b.'중력의 마법사'의 검은 공에서 발산되는 '불균형의 파장'(ondes d'inbalance)을 감지하는 후각을 지니고 있다; c.'바늘'과 환기시스템에서발생하는 박동을 확인하게 해주는 진동기능을 지니고 있다. 결국 이것이 '매달린암컷'으로 하여금 그것의 부속들과 함께 앞뒤로 흔들리도록 만들어 준다.

 

3. 사랑의 연료 : 말벌 아래 있는 것은 '사랑의 연료탱크 혹은 숫기 없는 힘'이다. 이 에로틱한 연료는 "매우 연약한 실린더에 의해 모터에 분배된 후 신부의 일상적 삶 (욕망-자석)이 만들어내는 스파크에 닿아 폭발을 일으키며, 자신의 욕망을 채운 이 처녀로 하여금 활짝 피어나게 만든다."l7) 이 연료탱크는 다른 말로 '깜박임의 욕조'(baignoir d'oscillation)라고도 하며 이것 덕분에 '신부의 청결함'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보다 아래에는 '맥박 침'이 매달려 있다. 이것은 "떠돌아 다니는 끈위에 세워져 있으며, 우리에 갇힌 동물들만큼의 자유를 지니고 있다." 맥박 침은다소 위협적인 진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허공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 허공이바로 신부의 '수평선-겉옷'이다.

 

4.'구혼자-기계'"벽돌 바닥으로 된 단단한 기초에 미장으로 하부구조를 만든후 그 위에 농인 증기엔진이다."19) 이 기계는 "고통스런 기어장치"(rouage tourmente)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이 '욕망-부속'이 생겨날 수 있게 한다. 후자 덕택에 증기엔진은 '욕망-모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터는 '투명유리 냉각균에 의해 신부로부터 분리되어 있으며, 이 냉각기는 '수평선-겉옷'과 뒤섞여있다. '큰 유리'에서 이 개개의 항목들은 알아보기가 어렵게 되어 있으며 '신부'의건축적 벽돌 하부도 그려져 있지 않다. '에탕 돈네'에서는 이 벽돌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벽돌 사이의 문에 나있는 구멍의 공간으로 3차원의 형태로 제시된 신부를 볼 수 있다. 그녀는 금발의 벌거벗은 상태로 나뭇가지들로 만들어진 침대 위에서 램프를 들고 누워 있다. 구혼자들은 신부의 전기적 명령에 동요되면 자신들의 마비상태에서 벗어나 잠을 깬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나는지 모를 발광개스가 그들을 부풀린다. 압력이 그들을 모세관을 통해 윗쪽으로 벗어나도록 밀어붙이고 "길이단위의 연장현상에 의해" 이들은 "가늘고 단단한 바늘들로 바뀐다"

 

5. 은하수 : 은하수는 이 그림 윗부분의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그것은 위로부터매달려있는 회색의 구름모양으로서 오른쪽 끝이 살짝 분홍색을 띠고 있다 (뒤샹은이것을 '살색'이라고 부른다). 이 구름은 '매달린 암컷'의 머리라고 부르는 부분으로 부터 솟아나오는 것처럼 보인다. "은하수의 '살색'은 고르진 않지만 높은 밀도로 '3개의 피스톤'을 둘러싸고 있다. 이 피스톤들은 위로부터 3개의 못에 각각걸려있다. 그것들의 다른 이름은 '그물'(filets)이다. 뒤샹은 열린 창문 위에 사각형의 흰색 천 조각을 걸어 놓았다:'그물'은 이 물건을 찍은 3개의 사진이다 : "환기 피스톤 (piston du courant d'air).말하자면 그것은 바람에 의해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된 천조각이다.'그물'이나'피스톤'들은'상단 표기'(Top Inscripption)라고도 불린다. 왜냐하면 그것들의 기능이 구혼자들과 중력의 마술사들에게 신부가 방출하는 것들 - 그녀의 기분, 명령 따위 - 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로셰는 이것을 "근원적 '비밀', '원인 중의 원인', '텅 빈 상자들의 성삼위 (聖三位)'라고 부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상단이 하단의 투사가 아니라, 하단이 상단의 투사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의 욕망은 상단에 대한 향수인 것이다.

 

6. 상단의 보이지 않는 것들 : '큰 유리'에는 중요한 기능을 지니면서도 그려져있지 않은 부분들이 있다. 먼저 위쪽 왼편, 은하수 아래쪽은 구혼자들의 아홉 개의포탄에 의해 움푹 들어간 곳들이다. '아홉 개의 포탄' 아랫쪽으로 '그림자 드리우기'(Ombres Portees)가 있고 그 아래로는 '물방울 조각의 이미지' (Image de la sculpture de gouttes) 이 있다. '아홉 발의 포탄'은 각각 다른 각도에서 세 번씩 아홉 번의 발사로 얻어지며, 이 발사는 새 화약을 적신 성냥들로 장전한 장난감 대포들로 한다. 더 오른편에는 수평선 위로 신부의 떨어뜨린, 투명한 겉옷이 있다. 더 아래쪽 구혼자들의 영역에 투명한 유리로 된 '공기(또는 물) 냉각기'가 나타난다.그것 역시 눈에 보이지는 않는다. 수평선 바로 위 왼편으로는 '윌슨-링컨 시스템'이 있다.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이것은 프리즘의 착시현상을 지시하는 것으로 하나의 얼굴이 두 개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즉 한 면에서는 윌슨처럼 보이는 것이 다른 면에선 링컨처럼 보이는 현상을 가리킨다. 더 왼쪽으로 가면 마찬가지로 수평선 위에 그려지지 않은 또 하나의 인물이 있는데 그것이 '중력의 마법사'이다. 만약 그려지게 된다면 그 모습은 작은 삼발이 탁자 위에 놓인 나선형의 스프링 모양으로 되어있을 것이며 그 위에 공이 굴러다니는 쟁반 같은 것이 올려져 있을 것이다 ('녹색상자'에는 그것이 검은 색 공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중력의 마법사'는 신부의 겉옷인 수평선 위에서 춤을 추고 있을 것이다. 그는 스프링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탄성을 이용하여 늘어나 '아홉 개의 포탄'이 있는 지역에 가서 부딪히게 되며 이 때 그의 검은 공을 신부에게, 그녀의 혓바닥에서 나오는 단단한 불꽃에 바치게 된다.

 

7. 구혼자들 : 원래 '녹색상자'에는 '8개의 제복과 작업복'들로 표기되어 있으나뒤샹이 나중에 하나를 추가하여 9개로 만들었다. 따라서 그것들에 딸린 각각 3개씩의 모세관들 역시 '녹색상자'에는 '24개의 모세관'으로 표기되어 있다. 9라는 숫자로 바뀐 이유는 절대적 수인 3의 배수라는 점에 의미를 둔 것이라고 본다. '큰 유리'의 하반부 왼쪽에는 '아홉 개의 수컷 주형', 또는 '제복과 작업복들의 무덤', 또다른 말로는 '에로스의 모태'가 있다. 세 가지 이름이 모두 적당할 수 있는 이유는이 구혼자들에겐 아무런 진짜 개성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빈 옷가지에 불과하며, 발광 개스에 의해 부풀려진 공허한 천조가리들일 뿐이다. "구혼자들은 신부의 건축학적 기초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처녀성에 대한 신격화로 화한다." 신부와 구혼자들의 세계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구혼자-기계의 기본 형태는 불완전하다. 그것은 다시 말해 측량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반대로) 신부의 기본형태는 다소 크거나 작으며, 그것의 방향과 관련해 본다고 해도 아무런 가측성 (可測性)도 갖지 않는다." 구혼자들의 영역은 고전적인 원근법의 법칙에의해 지배되고 있으나 신부의 영역은 '다소'라는 말이 규칙으로 적용되는 자유로운 기하학에 속한다. 그곳은 일상성이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이 아랫쪽의 법이나 원칙과는 다른 것들에 종속된 불확정적 영역이다. 구혼자들의 영역은 측량과 일상성의 영역이며 우리의 2차원 그리고 3차원의 기하학으로 이루어진, 그러므로 불완전한 기하학의 영역이다. 신부와 구혼자들의 차이를 말해주는 또 다른 것이 있다 : 신부에겐 생명중추 (life-center) 가 있지만 구혼자들에겐 없다. 이들은 단지 석탄이나 그 밖의 다른 원료로 살아가며, 이것도 그들로부터 얻어진 것이 아닌 그들의 그들 아닌 것 (their not them) 에서 얻어진 것이다.25) 자유로운 형태를 가진 신부는자기-충족적 존재이다; 기하학과 원근법에 종속되어 있는 구혼자들은 발광개스로채워진 텅 빈 주형들이다. 그들은 또한 제복과 작업복들이다 : "이렇게 얻어진 여러 개의 개스 주물들은 수레 옆에서 찬송과 구혼자-기계 전체로부터 울려 퍼지는 송가 (litanie)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절대로 '가면' (Mask)을 넘어설 수가 없다...참회에도 아랑곳없이 마치 무엇엔가 억눌려있는 것처럼, 거의 수음과도 같은 혼미상태에 빠진 그들의 존재를 까발릴 때까지 자신들의 복잡성을 스스로에게 비추어주는 거울 옆에서?"

 

8. : '아홉 개의 수컷 주형'''에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위에 기술된 방법에 따라 계산된 '변덕스러운 길이 미터단위'로 되어있는 모세관 튜브 시스템이다. ''"구멍이 많은 것의 뒤집은 이미지"이며 반원형으로 배열된 7개의 파라솔로 이루어져 있다. '먼지'는 파라솔 안에서 "일종의 물감 (투명한 파스텔)"처럼 쓰인다. 뒤샹은 "각각 4개월 동안의 먼지, 6개월 동안의 먼지가 쌓인 후 완전히 밀봉할 유리 위에서 먼지를 기르는 양육의 땅" 을만들었다. 체에는 진공청소기 펌프가 부착되어 있으며 각각의 파라솔은 순환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구멍들이 뚫려있다. 그것이 지닌 기능과 그것의 안 쪽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변형으로 인해 ''는 일종의 '변형의 방' (Chamber of Metamorphosis)이 된다.

 

9.수레 : '아홉 개의 수컷 주형''' 사이에 '수레'가 있다. 그것은 '썰매'라고도 알려진 활차 위의 작은 객실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사상 (Emancipation) 의옷차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의 바닥에'물레방아'의 풍경을 숨기고 있다."이 물레방아는 폭포에 의해 돌아간다. 그것은 보이지는 않지만 "수컷 주형 위로 반원을그리며 얼마 떨어진 곳으로부터 떨어지는 물줄기"라고 '녹색상자'에 설명되어 있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의 어셈블리지 작품 (에탕 돈네)에서는 폭포가 보이는 대신 아홉 개의 수컷 주형이 보이지 않는다) 수레의 활차는 지하 레일 위로 미끌어진다. 이 수레를 만든 금속은 "수평적으로 자유로운 사상을 지니고 있다. 즉 수평면 상에서의 모든 중력으로부터 자유롭다. "30) 물레방아는 이 객차의 프로펠러이다. 다른 여러 장치들과 특히 '베네딕티언(중세의 수도회의 이름) 유리병의 추락' (또는 다른 해석으론 '상표가 붙은 유리병 모양의 4개의 추')을 포함하고 있는 기막힌 메커니즘의 덕택으로 수레는 요동치는 듯한 움직임을 계속할 수 있게 된다 : "그것이 앞으로 가면 추 하나가 떨어지고 그것으로 다시 앞으로 가게된다. 오는 것은 활차의 마찰에 의해서이다..." 이 두 번째 운동이 "마찰 역전현상으로서 이것이 앞으로 가는 힘과 등가적인 돌아오는 힘으로 변형된다." 이것이 바로 이 조그만 수레가 왜 자유로운 사상을 지닌 금속으로 되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이다. 앞뒤로 왔다갔다하면서 수레는 끝없이 탄원의 기도를 읊조린다. 이 탄원들은 구혼자들의 테마이며 현세의 독신생활의 중심내용이다. 이 아홉 명은 자신들의 연도를 듣고는 스스로로부터 탈피하고 싶어하며 자신들의 가면 -자신들의 제복과 작업복 - 을 벗어 던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한다. 또 다른 이상한 속성이 있다. 베네딕티언 유리병 모양의 추는 "겸손 때문에_내려갈 때가 올라갈 때보다 비중이 높다." 그것의 비중은 "영원한 운동을 하고 있으며 전혀 금속처럼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이러한 베네딕티언 유리병의 속성을 '철학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 그것의 비중은 왔다갔다하며 그럼으로써 우리가 이 수평적 관계의 세계에서 추구할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인 '무관심의 자유'를 표현한다.

 

10. 초컬릿 분쇄기 :초컬릿 분쇄기는 구혼자들의 영역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그것의 위치와 크기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기능은 제한되어 있다. 그것은 루이15세 풍의 틀과 몇 개의 롤러, '사방에 매우 뾰족한 점이 박힌' 넥타이와 '큰 가위'를 받치고 있는 창으로 이루어져 있다. 롤러의 끊임없는 회전 운동은 '자발성의 원칙'에 의한 작용으로 설명되며 그것은 다음의 공식으로 요약할 수 있다 : "구혼자들은 자신들의 초컬릿을 스스로 갈아댄다." 이 초컬릿은 "어디서 오는지 아무도 모르며" 그것은 "분쇄가 끝나면 스스로 밀크 초컬릿이 되어 쌓인다 "35) 가위는 수레의 시소 운동에 의해 벌어졌다 닫혔다하며 그것의 노랫소리는 이 운동을 리드미컬하게 유지시켜 준다.

 

11. '안과의사 목격' : 초컬릿 분쇄기의 오른편에는 '안과의사의 목격'이 있다.이것은 개념들의 즉각적인 연관 작용을 통해 우리의 종교적, 법률적 간증(eyewitness)의 전통과 관련하여 또 다른 모호한 단서가 되어준다. '안과의사의 목격'은 시력검사를 할 때 사용되는 도표 위의 원반이나 도형들과 같은 모양을 한 세개의 원으로 표현되어 있다.

참고유진상, 마르셀 뒤샹 - 독신자의 역사,

http://art.moca.go.kr/media_data/books/periodical/study/study08/study8-2.html#f-1

 

여기에서 '큰유리'의 전체적인 구성을 볼 수 있는 것이 7번의 구혼자들에 대한 설명이다. ‘수컷주형들이라고도 불리는데, 실체는 없고 껍데기만 존재하며 스스로 존재하지 못하고 다른 여러 장치들에 의해 존재하는 그래서 자신들의 존재의 의의를 도달할수 없는 신부의 영역에 두고 있다. 4차원의 영역으로 이해되는 신부의 영역은 구혼자들의 영역이 존재함으로서 그 기반을 얻고 있는데 그래서 신부의 건축적 기초에 해당하는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이것은 포스트모던에서 자주 일컬어지는 신화의 개념과 연관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부는 욕망에 의해 주어진 신화이고 여성의 실체이기 이전에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분리된 도달할수 없는 영역인 것이다. 그렇다면 큰유리는 이러한 신화의 구조에 대한 폭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유리는 가려진 신화의 내부구조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에탕돈네(given)’큰유리를 가시화하고 구혼자들의 영역을 뚫린 구멍 밖의 실제 세계로 대체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given'은 큰유리에 대한 설명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 음식과 약, 약으로서 작용하는 뒤샹의 작품들

 

사람의 입에 들어가는 것에는 두가지가 있다. 하나는 음식이고 또 하나는 약이다. 음식이 사람의 몸을 이루는 것이라면, 약은 음식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거나, 몸에 생긴 병을 치료하거나 혹은 잘못 먹은 음식에 대한 해독작용을 목적으로 한다. 나는 뒤샹의 작품을 약이라고 보고 싶다. 그리고 약 중에서도 잘못된 음식에 대한 해독작용을 하는 약이라고 보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작품에서 잘못된 음식에 대한 분석은 볼수 있지만 해독은 볼 수가 없었다. 물론 뒤샹 한사람이 분석과 해독까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뒤샹은 약으로서의 미술을 시작했다는 것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 이러한 미술 내에서의 미술에 대한 분석과 논의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약만 먹으면서 살 수 없듯이 음식으로서의 미술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미술계에서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음식으로서의 미술이 시대’, ‘상업이라는 이름하에 거의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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