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근대 국어의 특징
① 16세기 후반부터 동요를 보이던 성조가 사라짐, 상성(上聲)은 현대 장음(長音)으로 변화함
② 문자 ‘ᅌ,ᅙ,ᅀ’등이 사라지는 등 문자 체계에 변화가 옴
③ 음운 ‘ㆍ’가 완전히 소실됨. 중세 후기 둘째 음절부터 소실되기 시작한 ‘ㆍ’가 이 시기에 들어 첫 음절에서도 소실됨. 단, 표기법 상에는 그대로 남아 있어 한글 맞춤법 통일안(1933년)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쓰임
④ 한글로 쓴 소설 문학이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으고, 한글을 사용하는 계층의 사회 참여가 활발해지면서 한글 사용의 폭이 확대됨
⑤ 개화기에 이르러 한글 사용이 확대되면서 문장의 구성 방식이 현대와 거의 비슷해짐
⑥ 개화기 서구 문물의 도입으로 신문물어가 많이 도입됨
※ 표기법과 운용법
(1) 종성법 - 7종성법
16세기 이후 종성의 ‘ㄷ’과 ‘ㅅ’은 뒤바뀌어 쓰이다가 점차 ‘ㅅ’으로 통일되어 종성으로 ‘ㄱ,ㄴ,ㄹ,ㅁ,ㅂ,ㅅ,ㅇ’의 7가지만 쓰게 됨
(2) 거듭적기
앞말의 종성을 적고 뒷말의 초성에도 내려적는 것으로 17~19세기 문헌에서만 종종 그 표기가 보임 (예)사이→ 사미
※ 주요 문법 용어와 개념
(1) 재음소화
근대 국어에 쓰인 표기법으로 ‘ㅊ, ㅋ, ㅌ, ㅍ'을 ‘ㅈ+ㅎ’, ‘ㄱ+ㅎ’, ‘ㄷ+ㅎ’, ‘ㅂ+ㅎ’으로 2차 분석하는 것을 재음소화라고 함.
(예) 깊은→깁흔, 불어→붇허
(2) 원순 모음화
18세기 영․정조대에 대폭적으로 일어난 현상으로 평순 모음‘ㅡ’가 자음‘ㅁ,ㅂ,ㅍ’과 만났을 때 원순 모음 ‘ㅜ’로 바뀌는 현상을 말함
(예) 믈>물, 블>불, 므겁다>무겁다
(3) 구개음화
‘ㄷ,ㅌ,ㅎ,ᅘ’이 모음 ‘ㅣ,ㅑ,ㅕ,ㅛ,ㅠ,ㅖ’와 만났을 때 ‘ㅈ,ㅊ,ㅅ,ㅆ’으로 바뀌는 현상으로 17,18세기에 보편화됨
(예) 졍딕>졍직, 맛디>맛지, 물>썰물, 힘힘하다>심심하다
○ - 해
□ - 붉은 기운
1. 동명일긔
홍이 거룩야 븕은 긔운이 하을 노더니 이랑이 소 놉히야 나를 불러
홍색(紅色) 매우 아름다워 원순모음화(X) 기생 이름 재음소화 모음조화 파괴←나
거듭적기(중철), 7종성법, 원순모음화(X)
헤치고
‘ㆁ’음 소실 높이→놉히
져긔 믈밋 보라 웨거 급히 눈을 드러 보니 믈밋 홍운을 헤앗고 큰 실오리
‘이랑’의 대사 인용 외치거늘 (모음조화 파괴 ← 웨거늘) 7종성법 ‘(다)+→→’- 재음소화, 7종성법
줄이 븕기 더옥 긔이며 긔운이 진홍 한 것이 나 손바닥 너 것이 그믐
명사형 어미 ‘기’ 사용, 원순모음화(X) 진홍 같은 것이
색채 대비 - 선명한 시각적 이미지 형성
밤의 보는 숫불빗 더라. 나오더니 그 우흐로 젹은 회오리밤 한 것이 븕기
보(모음조화 파괴) 원순모음화(O) - 블>불 시간의 경과 우ㅎ+으로(처소부사격 조사) 밤송이 속에 외톨로 들어 있는 동그란 밤
▶
호박 구 고 고 통낭기 호박도곤 더 곱더라.
호박, 누런색 광물 통랑(通郞)하기는, 속까지 비치어 환하기는 ‘-보다’(비교부사격 조사)
(명사형 어미 ‘기’ 사용)
그 븕은 우흐로 흘흘 움여 도 처엄 낫던 븕은 긔운이 지 반 쟝 너만치 반
생동감, 사실감 손바닥 너 것 백지
시 비최며 밤 던 긔운이 되야 커 가며 큰 반만 여 븕웃븕웃 번듯번듯
반듯이 ★회오리 밤, 큰 반, 수레박희의 원관념 생동감, 사실감
놀며 젹이 왼 바다희 치며 몬져 븕은 기운이 가며 흔들며 놀기 더욱
적색(赤色) 온[全] 퍼지며 지 반 쟝 너 없어지며
로 며 항 고 독 것이 좌우로 놀며 황홀이 번득여 냥목이 어즐며 븕은
자주 항아리 양목(兩目), 두 눈(두음법칙X)
긔운이 명낭야 첫 홍을 혜앗고 텬듕의 반 것이 수레박희 야 믈 속
명랑(明朗), 흐린데 없이 밝고 환함 천중(天中)의, 하늘의 한 가운데(구개음화X) 수레바퀴
오르(다)+아 → 올나
으로셔 치미러 밧치시 올나 븟흐며 항독 긔운이 스러디고 처엄 븕어 것 빗
‘븥+으며→븓흐며→ 븟흐며’ - 재음소화, 7종성법 없어지고 ‘겉+’ - 거듭적기(중철)
7종성법, 구개음화(O)
최던 거 모혀 소혀텨로 드리워 믈 속의 풍덩 디 듯 시브더라 일이 됴요며
모여 소의 혀처럼 빠지는 듯 - 구개음화(X) 조요(照耀), 밝게 비쳐서 빛남
※텨로:-처럼(비교부사격 조사) 구개음화(X)
믈결의 븕은 긔운이 가며 일광이 쳥낭하니 『만고 텬하의 그런 장관은 두
청랑(晴朗), 맑고 밝음 천하 - 구개음화(X) 대두(對頭), 비교함
▶
할 업슬 더라』⇒ 『 』: 글쓴이의 주관적 감정 표현
-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 영조 48년 (1722년)
1 . 이 글에서 중세 국어와 달라진 점을 눈에 띄는 대로 찾아보자.
|
달 라 진 점 |
음운 |
- 'ㅿ' 소멸로 '처'이 '처엄'으로 바뀌었다. - 성조가 소실되어 방점이 나타나지 않는다. - 모음조화파괴가 매우 심하게 나타나 '나를, 보는, 거' 등의 예를 볼 수 있다. |
문법 |
- 명사형 어미 '-기'가 매우 활발하게 쓰여 '븕기, 통낭기'와 같은 예를 볼 수 있다. |
어휘 |
- 감각이나 색채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매우 활발하게 쓰였으며 순 한글 어휘가 많이 나타난다. 어휘의 형식면에서도 약간의 차이를 보여 중세 국어의 '그몸'이 '그믐'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표기법 |
- 분철(끊어적기)가 확대된 모습을 보인다. (예: 한 것이, 물 속으로셔, 긔운이) - 중철(거듭적기) 표기가 나타난다. (예: 것) - 어중의 'ㄹㄹ'이 'ㄹㄴ'으로 표기된 예가 있다. (예 : 올나) - 'ㆁ'이 쓰이지 않는다. (예: 반) - 재음소화 표기가 나타난다. (예: 붓흐며) 재음소화란 'ㅊ, ㅋ, ㅌ, ㅍ'을 'ㅈ+ㅎ, ㄱ+ㅎ, ㄷ+ㅎ, ㅂ+ㅎ'으로 2차 분석하는 것임 |
2. 여성들이 한글로 문자 생활을 한 이유를 조사하고, 그 의의를 토론해 보자.
한글 창제는 지배 계층의 주요한 관심사가 못 되었습니다. 특히 한글 창제가 우리 나라 문화사에 길이 남을 업적이었음에도 '조선 왕조 실록' 등에 매우 간단하게만 언급되었다는 점, 이후 한글이 사용된 분야는 한문으로 된 유교나 불교 경전 등의 언해본을 중심으로 한 협소한 부분 등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잘 알 수 있습니다.
한글이 상당히 경시되었다는 점은 언문, 암클, 아햇글과 같이 한글이 불리기도 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말을 자유로이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은 지배 계층에 편입될 수 없었던 여자들, 특히 궁중을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편지, 일기 등에 많이 사용되게 되었습니다. 여성들의 섬세한 감정과 소회를 적기에 우리말을 자유로이 적을 수 있는 한글은 안성맞춤이었던 듯 싶습니다. 옛 여성들의 활발한 한글 사용은 지금 남아 있는 한글 자료의 질과 양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있습니다.
2. 독립 신문 창간사
[가] 국문만 사용하고 띄어쓰기를 하는 의의
모음조화 파괴 ‘-다’형이 아닌 ‘-라’형으로 문장 종결↰
우리신문이 한문은 아니쓰고 다만 국문으로만 쓰거슨 샹하귀쳔이 다보게 홈이라
한문 구절 ‘不用’을 그대로 번역한 문투 개화기 이후 한글의 명칭 이어적기 만민 평등 사상 의고적 문어체(+옴+이라)
국문을 이러케 귀졀을 여 쓴즉 『아모라도 이신문 보기가 쉽고 신문속에 잇말을
띄어쓰기 적용 ‘-ㄴ 즉’ : 의고적 표현
자세이 알어 보게 이라』『 』: 전 국민을 독자층으로 확보하려 함
하는 것이다(의고적 문어체 ‘+ㅁ+이라’)
[나] 조선 국문이 한문보다 우월한 점
※ ⓐ
각국에셔 사들이 남녀 무론고 본국 국문을 몬저 화 능통 후에야 외국 글을
ⓐ
막론하고, 가릴 것 없이 자국의 문자
오 법인 죠션셔 죠션 국문은 아니 오드도 한문만 공부 에 국문을
→동일 단어를 같은 글에서 다르게 씀 주체성이 결여된 사대주의적 태도 비판
잘아 사이 드물미라 죠션 국문고 한문고 비교여 보면 죠션국문이 한문 보다
ⓑ
ⓒ
얼마가 나흔거시 무어신고니 『첫 호기가 쉬흔이 됴흔 글이요 둘 이글이
문맥상 불필요 현대 국어와 다른 의문형 종결 어미 사용 (인고→인가) 학습의 용이성
죠션글이니 죠션 인민 들이 알어셔 을 한문신 국문으로 써야 샹하 귀쳔이 모도보
백사(百事) : 모든 일 - 를(목적격 조사 혼란) 해독의 용이성
고 알어보기가 쉬흘터이라』 한문만 늘써 버릇고 국문은 폐 에 『국문만쓴
★『 』: 국문의 우월성 ①배우기기 쉬움 ②알아보기가 쉬움 사용하지 않은
글을 죠선 인민이 도로혀 잘 아러보지 못고 한문을 잘알아보니』 그게 엇지 한심치
오히려 『 』: 주객전도(主客顚倒)
아니리요
국문 미사용에 대한 비판적 태도(설의적 표현)
ⓓ
[다] 국문이 어려운 이유와 한문 사용의 폐해
어절 단위의 띄어쓰기가 안됨
국문을 알아보기가 어려운건 다름이 아니라『 쳣 말마을 이지 아니고
ⓔ
말마를(목적격 조사 혼란)
그져 줄줄려 쓰 에』 글가 우희 부터지 아 부터지 몰나셔 몃번 일거
세로쓰기 ★『 』: 국문을 알아보기 어려운 이유 ① - 띄어쓰기를 안 함 ‘모르(다)+아셔’ → 몰나셔(‘ㄹㄴ’형 활용)
본후에야 글가 어 부터지 비로소 알고 일그니 국문으로 쓴편지 쟝을 보자 면
ⓕ
이어적기(연철)
한문으로 쓴것보다 더듸 보고 『 그나마 국문을 자조 아니 쓴 고로 셔툴어셔 잘
거듭적기 까닭에 - 의고적 문어체
못봄이라』 그런고로 『졍부에셔 리 명녕과 국가 문젹을 한문으로만 쓴즉 한문못
★『 』: 국문을 알아보기 어려운 이유 ② 자주 쓰지 않아 서툶 명령(命令) 문서와 서적
인민은 나모 말만 듯고 무 명녕인줄 알고 이편이 친이 그글을 못 보니 그사은
남의 ‘듣고 → 듯고’ - 7종성법 자신 - 한문못 인민
무단이 병신이 됨이라』
아무 까닭 없이 『 』: 국문 미사용의 구체적 폐해
[라] 독립 신문 구독의 의의
『한문 못 다고 그사이 무식사이 아니라 국문만 잘고 다른 물졍과 학문이
잘하고도 물정(物情) : 세상 형편
잇스면 그사은 한문만고 다른 물졍과 학문이 업 사 보다 유식고 놉흔
높+은 → 놉흔 : 재음소화
사이 되 법이라 죠션 부인네도 국문을 잘고 각 물졍과 학문을 화 소견이
여러 가지 사물을 인식하는 생각
놉고 실이 졍직면 무론 빈부 귀쳔 간에 그부인이 한문은 잘고도 다른것 몰으
구개음화 (O)
귀죡 남 보다 놉흔 사이 되 법이라』『우리 신문은 빈부 귀쳔을 다름업시 이신문을
★『 』: 대조를 통한 신지식과 신학문의 중요성 강조 - 근대적 사고 반영
보고 외국 물졍과 지 졍을 알게 랴 시니 남녀 노소 샹하 귀쳔 간에 우리
내지(內地) : 국내 +이니 → 시니 - 거듭적기(중철), 7종성법
신문을 로 걸너 몃간 보면 새지각과 새학문이 길걸 미리 아노라.』
하루 걸러 - 격일간 발행 / 거르(다)+어 → 걸너(‘ㄹㄴ’형 활용) 의고적 문어체 ‘알++오+라’
★『 』: 독립신문 발간의 취지 - 국내외의 소식을 전함 / 독립 신문 구독의 의의 - 새지각․새학문의 습득
- ‘독립신문(1896)’
1. 이 글의 어법이나 표기법이 오늘날의 글과 다른 점을 정리하여 말해 보자.
[표기법]
- 현대 국어에서보다 띄어쓰기 의식이 덜 발달되어 있어 '우리신문, 아니쓰고, 쓰거슨' 등과 같이 어절 단위의 띄어쓰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 '여, 닭'과 같이 ㅅ계 합용 병서가 아직도 쓰이고 있어 현대 국어와 차이를 보인다.
- 음가가 소실된 ' ․ '가 '잇, 무론고'와 같이 여전히 쓰여 보수적인 모습을 보인다.
- '오'가 이미 소멸된 지 오랜 시기인데도 '홈이라, 아노라'와 같이 '오'가 쓰이는 보수적 표기를 보이고 있다.
- '놉흔'과 '시니'와 같이 근대 국어 시기에 많이 나타나는 재음소화 표기와 중철 표기가 남아 있다.
- '일그니'와 같이 부분적으로 아직 연철(이어적기)의 표기 방식이 남아 있다.
- '사을, 말마을'과 같이 목적격 조사의 혼란이 표기에 나타난다.
[어법]
- '샹하귀천이 다보게 홈이라' 등과 같이 문말에서 '-라' 형식이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데 '-다' 형으로 문장을 맺는 현대 국어와 차이를 보인다.
- '아니쓰고'는 한문의 구조(어순)를 그대로 직역한 문투를 반영하고 있어 문장 구조에 있어 아직 한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고로'. '-ㄴ즉'과 같이 한문의 영향을 받은 의고적 표현들이 많이 나타난다.
- '무어신고 니'에서 볼 수 있듯이 의문형 종결 어미에 있어 현대 국어의 의문형 종결 어미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2. 이 글을 한 사람이 낭독할 때 무슨 내용인지 주의 깊게 듣고 개요를 작성하여 발표해 보자. 이 때, 부주의하게 들었던 점, 놓쳤던 점은 무엇인지 친구들의 개요와 비교하여 말해 보자.
1) 독립 신문 국문 사용의 의의
① 넓은 독자층 확보 ② 띄어쓰기로 독해의 용이성 보장
2) 한문보다 우월한 조선 국문
① 학습의 용이성 ② 전 조선인의 사용과 그 혜택
3) 기존 국문 사용 방식의 난점과 국문 미사용의 폐해
① 띄어쓰기를 하지 않는 기존 국문의 사용 방식
② 국문 미사용과 공문서 해독의 난점
4) 유식하고 높은 사람 되기와 국문 신문의 의의
ㆍ지은이 : 의유당
ㆍ출전 : 의유당관북유람일기
ㆍ연대 : 영조 48년(1722년)
ㆍ표현 :
① 시간의 흐름에 따른 내용 전개
② 순수 우리말과 색채어의 다양한 사용
③ 섬세한 사실적 묘사와 비유적 표현 사용(직유법)
④ 주관적 감정 표현이 드러남
ㆍ갈래 : 고대 수필, 기행 수필
ㆍ문체 : 내간체(內簡體)
ㆍ성격 : 사실적, 묘사적, 비유적, 주관적
ㆍ주제 : 귀경대에서 본 일출의 장관
★1. 비유적 표현 이해
ㆍ해 : 회오리밤 → 큰 반 → 수레박희
ㆍ붉은 기운 : 큰 실오리 → 손바닥 너 → 지 반 쟝 너 → 항, 독 → 소혀
★2. 표기상의 특징
① ‘ㅿ,ㆁ’의 문자 소실, 음운 ‘ㆍ’의 음가 소실 (문자는 사용)
② 방점 소실 - 성조가 사라짐
③ 7종성법 적용
④ ‘ㅅ'계 합용 병서 사용
⑤ 모음 조화 파괴가 심함
⑥ 끊어적기(분철)의 확대와 거듭적기(중철)의 등장
⑦ 명사형 어미 ‘-기’의 활발한 사용
⑧ ‘ㄹㄹ’형 활용이 ‘ㄹㄴ'형으로 나타남
⑨ 재음소화 표기가 나타남
⑩ 원순 모음화, 구개음화가 부분적으로 일어남
★3. 섬세한 여성적 비유의 표현
실오리, 숫불빗, 회오리밤, 호박 구, 큰 반, 항, 독, 수레박희, 소혀 → 직유법을 통한 시각적 이미지 부각, 표현의 참신함 획득
ㆍ지은이 : 서재필
ㆍ주제 : 독립 신문의 창간 취지와 의의
ㆍ연대 : 1896년 4월 7일
ㆍ출전 : 독립 신문 창간호 제1면
ㆍ갈래 : 논설문, 신문 사설
ㆍ표현 :
① 한글로 표기함
② 띄어쓰기를 시도함
③ 언문 일치의 문체가 나타남
④ 종결 방식에 의고적 표현을 사용함
ㆍ성격 : 설명적, 계몽적
★1. 표기 방식의 의의 이해
ㆍ국문 전용 - 넓은 독자층 확보
ㆍ띄어쓰기 - 독해의 용이성 보장
★2. 표기상의 특징 파악
① 문자 ‘ㆍ’의 사용 - 음가는 소실
② 방점 소실 - 성조가 없음
③ 한글로 표기함
④ 7종성법 적용
⑤ ‘ㅅ계’ 합용병서 사용
⑥ 모음조화 파괴가 심함
⑦ 끊어적기(분철)의 확대와 부분적인 이어적기(연철)의 사용
⑧ 재음소화 표기와 거듭적기(중철) 표기가 남아 있음
⑨ 목적격 조사의 혼란이 나타남
⑩ 의고적 표현과 한문 문장을 번역한 문투가 많음
⑪ 종결 어미와 의문형 어미가 현대 국어와 차이를 보임
⑫ 현대 국어에 비해 띄어쓰기 의식이 부족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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