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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y 3/정신분석

급진적 계몽주의자로서의 프로이트

by FraisGout 2020. 6. 28.

  <나는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지성을 사용할 때 제한을 받게 되는 많
은 편견들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또 나 자신이 그 같은 상황에 처해 있었음을  알고 있었
습니다. 나는 유태인으로서 사회의 주된  흐름에 반대하는 입자에 서서, <<집단으로 뭉쳐 있
는 대다수 사람들>>의 동의를 구해야만 한다는 생각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좀
처럼 자기 자신의 내밀한 세계를  드러내지 않는 프로이트로서는 자신의 심경을 상당히 솔직
하게 토로하고 있는  셈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모임에서 유태인으로
서의 체험이 정신분석학애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학이 직면했던 편견은  단지 그 창시자인 프로이트가 유태인이었다는 사실
에만 근거해서 설명될  수는 없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오해는 무엇보다 당시의 사회가  성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기시했다는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바꾸어 말하면 성을 공개적으로, 그리
고 무엇보다 유아기의 성을 담론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시도는 일종의 사회적 스캔들로 받아
들여졌던 것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한 겁주 반응은  트고히 1905년 발표된 '성욕에 관한 세 편
의 에서이'를 계기로 더욱 거세진다.  물론 요즘에는 심리학자나 정신의학자의 저술에서 프로
이트에 대한 더욱 정돈된 입장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
했다. 당시의 의학계는  정신분석의 방법론이나 전제들에 대해서  배타적일 수밖에 없었는데, 
그 이유의 상당한 부분은 정신분석학의 학문적 정체성이 모호하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대한 편견은  우선 정신분석학을 좁은 의미의  실증 과학으로 규정하려는 데서 
발생한다. 즉  프로이트를 둘러싼 논란들 가운데  상당 부분은 <정신분석>을 기존의  학문적 
분류체계에 의해서  손쉽게 정리하려는 관습적 태도에서  비롯했다. 반면에 정신분석학은  그 
전개 과정에서 생리학과 심리학, 문화 과학, 종교, 신화학 등을  포괄하는 연구 성과들에 의해
서-혹은 라캉에 따르면  당연히 언어학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다양하게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자연과학>대 <정신과학>의 구별과  같은 이분법적인 학문의 분류  방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무의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힘들 사이의 생리학적이며 
역학적인 관계를 중심으로  하는 설명들과 사변적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해석학적 개념들이 
동시에 동원되어야 한다.  굳이 정신분석학의 학문적 성격을 규정한다면 그것은  지속적인 비
판과 연구에 의해서 재구성되어  가는 <경험적 과학>에 오히려 가깝다. 여기서  경험이란 개
념은 시행 착오를  통해서 이론 자체의 수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경험적  학문은 
완결된 이론으로서의 형이상학과 구별되는 개념이며, 새로운 이론의  재구성이 가능한 정신분
석학의 개방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프로이트 자신이 '정신분석과  리비도 이론'이란 짧은 글에
서 언급한 '경험적  과학'이 개념은 경험할 수 있는 사실  자체를 모든 지식의 궁극적인 검증 
기준으로 설정한 '실증주의'의 개념과 동일시될 수 없다.
  바로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서 프로이트의 사상은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
니라, 무엇보다 인문학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로이트는 좁은 의미의 
자연 과학적 시각을 넘어서는  인문적 해석을 요구하며, 이는 그 자신의  <정신분석학>에 대
한 이해와도 배치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언젠가  <정신분석학 대학>을 구상하면서 임문학
적 전통과 정신분석학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다. 정신분석가를 양성하기 위한  가상 
대학의 교과목에는 의과대학에서  일반적으로 가르치는 과목들이나 심층심리학외에도, <문화
사, 신화학, 종교심리학, 문학>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제안이다. 물론 이러한 교
육기관이나 제도는 그 자신이 말한 대로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인 부담과 같은 이유들로 인해
서 실현 불가능한  환상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가가 이상의 분야들에 대한 사전 지식을 지니지 않고 있다면 노이로제 환자들을 이해하고 치
료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예컨대 꿈에서 나타나는 상징들을  해석하기 위
해서는 이를 유추할 수 있는 신화나 민속학, 언어 습관의 역사 등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분명히  분석가들이 꿈의 상징들을 번역할  때, 심리적 충동들의 역학관계나,  단순한 
자극과 반응의 이론 모형에만  의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처럼 과제 자체의 특성에  근거하
는 방법적 요구에 의해서 정신분석학은  과학주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 강의'를  탈고한 이후에도 문화와 신화 등의 영역으로  연구의 폭을 
확장시켜 나갔는데, 이는 그 자신의 주관적인 결단이라기보다 그가  추구한 주제 자체의 특성
에서 연유한 것으로 간주된다.
  한편 프로이트는 흔히 비합리주의나  반계몽주의를 지지하는 사상가로 각색되는 경향이 있
다. 지난 세기말에 등장했던 낭만주의자들이나 니체, 쇼펜하우어 등의 철학자들이 프로이트와 
함께 거론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비록 프로이트가 이성이나  의식을 토대로 자신의 
인격을 만족스럽게 이해할  수는 없다고 본 것을 사실이지만, 탈근대론자들이나  후기 구조주
의자들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주체와 이성 자체의  허구성을 주장하거나 아예 해체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단지 인간의 이성이나 사회적, 문화적 합리성이 어떠
한 <고고학적>,  <발생학적> 연원에서 비롯하는지 모여  줌으로써, 인간이 더욱  균형 잡힌, 
그리고 건강한 주체로서의 인격을  회복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계몽>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
는 특히 제 1차 세계대전의 야만성을 체험하면서 인간에 대해  회의하고, 인간과 문명의 폭력
성에 대해 고민했지만,  앞서 말한 학문적 관심 자체를  포기하지는 않았다. 의식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비본리적인 힘들의 기원을 분석, 서술한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비합리주의자나 반계
몽주의자, 혹은 성해방론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보면 프로이트는 니체,  아도르노 등
과 함께 계몽의 제 2단계에 속하는 후기 근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간주될  수 있다. 계몽의 제 
1단계를 중세 이후 지속된 전통의 권위나  화석화된 기독교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면, 계몽의 제  2단계는 그 같은 계몽적  이성이나 계몽주의적 주체의 비판이 과연  어떤 
근거에서 타당한지 자기  반성적으로 검증하는 작업이다. 물론 이서의 자기  반성이나 한계에 
대한 인식은 여러 형태로 모색되어 갔다.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이성이 알 수  있는 영역의 한
계를 설정함으로써 신앙과 도덕의 차원을 옹호하려는 입장도(칸트) 제시되었지만,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이성의 보편성은  결코 역사와 시간을 초월할 수 없으며  오직 역사 속에서 이성은 
단계적으로 실현된다는  역사주의적 견해도(헤겔) 나름대로 제기되었다.  프로이트는 이 같은 
자기 반성적인 서구 문화의  정점에 서 있다. 그는 무의식과 서의 일차적인 의미를  부각시킴
으로써 주체의 의식과 이성이 단지  이치적인 의미만을 지닌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
었다. 또 종래에 금기시  되었던 성적 체험에 대한 분석은 유아기의 체험으로 거슬러  올라간
다. 프로이트는 성을 특히  노이로제나 인간의 본성 및 문화의 공격성들을 이해하기 위해  연
구의 중심에 설정했지만, 성 자체를 미화하거나, 심지어 성의 해방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품
었던 것은 아니다.  이 점에서 우리사회의 일부 지식인들이나 사이비  문필가들이 성해방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혹은 자신들의 상업적인 이해  관계를 충족시키기 위해 프로이트(혹은 프로
이트주의)를 들먹이는 것은 천박한 태도에 불과하다.  사실상 무의식과 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이론은 <합리서의 심층적 의미론:Lohmann>에  가까우며 성에 대한 이론적 관심은 노이로제
와 같은 정신적 결함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여기서 소개한 '정신분석 강의'는 프로이트의  다른 텍스트들과 함께 인류의 중요한 문화적 
기록이자 고전으로 평가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프로이트의 텍스트들은  과연 어떠한 의미에서 
고전으로 평가될 수 있는가? 프로이트에  대해 보이는 일반인들의 관심은 일차적으로 정신분
석의 기술이나 요법 등을 지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살아 있는 고전들은  항상 인간과 사
회, 문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촉발시킨다. 프로이트의 이론을 배제한  채, 인간의 죄, 자유 
의지, 도덕 등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규명할 수 있을까? 고전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를 둘러
싸고 논란이 분분한 것은  사실이다. 일단 나는 고정이란 어떤 흠결이 없는 논리적으로  완전
무결한 일관성 있는 글이라기보다는 세계와 인간을 항상 달리보고 해석하도록 부추기는 글들
이 아닌가 생각한다. 논리적인 완결성이나, 이론적  체계성 등은 특히 일부 문학적 형식을 제
외한 모든 학술서의 저자들이 성실하게 축해야 할 방법적  원칙이기는 하지만, 고전을 고전으
로 만들어 주는  충분 조건이 될 수는 없다.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련해서 프로이트  이전과 
이후의 상황은 분명 달라졌다. 그의 텍스트는  문화적 사건이며, 그 파장은 다양한 형태로 20
세기 사상의 지평을 흔들어 놓았다.
  프로이트 자신이 서문에서 밝힌 대로 '정신분석 강의'에는 제 1차 세계대전까지의 정신분석
학의 연구 성과가 집대성되어 있다. 일부 내용들은 후에 수정될 수밖에 없었지만, 노이로제에 
대한 해석과 무의식의  존재,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유아기의 성적  체험 등을 중심으로 하는 
근본적 입장들은 변함 없는 타당성을 지닌다. '정신분석 강의'는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학설이나 지시들을  정리해 놓은 교과서라기보다 정신분석학의  세계를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만들려는 <입문서> 같은 인상을 준다.  그래서 '정신분석 강의'의 원래 제목은 <정신분석 입
문을 위한 강의들>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한 <입문서>에 그치지 않고,  당시의 정신분석
학에서 연구된 내용들 자체를 직접  집대성해 놓은 것이기에 <입문>이란 표현을 누락시켜도 
무방할 것이다. <입문>을 누락시킨  한국어 판 제목은 프로이트 자신의 언급에  의해서 어느 
정도 뒷받침된다. 1930년 프로이트는  히브리 어 판 '정신분석 강의'의 서문에서  자신의 책이 
단순한 입문서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1920년 대에 걸쳐서 정신분석학은 더욱 풍부해
지고 본능과 불안 등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모색된다. 또한 자아와 초자아, 이드 등으로 인격
의 세 차원들이 새롭게  분류되고, 양심과 죄의식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통찰들이 후에  추가
되었던 것이다.  '정신분석 강의'의 기본적인 내용들은  지속적으로 중요한 성과로 남아  있기 
때문에 이 작품을 우회하면서 정신분석학을 이해하기는 곤란하다.
  만약 상징이나  불안, 실수, 꿈, 노이로제  등과 같은 주제들을 '정신분석  강의'를 고려하지 
않고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을 비록 무모하다고 평할 수는 없겠지만, 상당히 이론
적 손실을 그들이  감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인간에 대한 더욱 풍부한  이해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참고로 열 번째 강의에서 다루어진 상징의  문
제는 후에 정신분석가인  존스Ernest Jones, 리퀘르Paul Ricoeur 등에  의해서도 자세히 논의
된 바 있음을 밝힌다.  마찬가지로 독자들은 스물여섯 번째 강의의 불안에 대한 해석을  프로
이트가 1932년에 가사의  청중들을 대상으로 발표한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와 비교함으로써, 
인간의 감정에 대한 더욱 풍부한 이해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정신분석 강의'에서 
자세하게 전개된 불안, 실수, 꿈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인간적인 체험의 복잡한 지층의 구
조들이 드러날 것이라는  정당한 기대를 품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그 같은 해석  자체가 
타당한가의 여부를  떠나서 더욱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프로이트의 지적인  성실성이다. 
그는 지루할 정도로 자신의  해석에 대한 가능한 반론들에 대해 일일이 대응하고 있다.  가령 
제 1부의 실수행위들이나 제 2부의 꿈에  대한 분석은 얼핏 보기에 난삽하고 같은 내용을 반
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입체적인  설명들 통해서 강의를 듣는 사람이 스스로 그 내
용을 깨치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 점에서도 프로이트의  서술 방식은 철저하게 <반권위주의
적>이다. 이미 여러 사람들이 지적한  적이 있지만, '정신분석 강의'가 강의의 형식을 빈 <대
화체>의 구조로 짜여져 있다는  사실과 인간의 자기 성찰의 가능성에 대한  프로이트의 신념
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정신분석은 자기 분석을  전제하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프로이트는 
소크라테스적인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즉 대화체의 <민주주의적인> 방식의 
서술을 채택함으로써 프로이트는 일방적으로 강단에서 선포되는 교리나 학설로서 정신분석학
을 소개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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