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랜 옛날 기로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런데 그 나라 법은 사람이 늙으면 멀리 내다버리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그 나라에는 효심이 깊은 한 대신이 있었다. 그의 아버지도 늙게 되자 어쩔 수 없이 국법에 따라 멀
리 내다버려질 처지에 놓였다. 그러나 그 대신은 감히 아버지를 내다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땅굴을 파
밀실을 만든 다음 아버지를 그곳에 모셔놓고 계속해서 봉양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천신이 똑같이 생긴 뱀 두 마리를 들고 궁궐에 나타나 국왕에게 말했다.
"이 뱀들의 암수를 구별할 수 있다면 내가 너희 나라를 잘 보살필 것이요, 그렇지 못하면 일주일 내에
너희 나라를 멸하리라."
이 말을 들은 국왕은 너무나도 두려워 여러 신하들과 상의를 해보았지만 천신이 낸 문제에 답할 자가
아무도 없었다. 그러자 국왕은 방을 내걸어 그 문제를 맞출 수 있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노라고
발표했다.
효심이 지극한 그 대신은 집에 돌아와 밀실에 있는 아버지를 찾아 뵙고 나라에 생긴 커다란 우환을
전했다. 그러자 대신의 아버지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구별하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란다. 아주 가늘고 부드러운 실을 뱀 위에 올려놓으면
조급하게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수놈이고, 가만히 있는 것은 암놈이란다."
대신이 아버지의 말을 그대로 천신에게 하자 천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나 천신은 거기서 그치
지 않고 계속해서 문제를 냈다.
"어떤 이가 잠들어 있는 이 중에서 깨어난 자요, 또 어떤 이가 깨어난 이 중에서 잠들어 있는 자인
가?"
이번에도 국왕과 여러 신하들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그래서 대신은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것은 학인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학인은 범부에 비하자면 깨어난 사람이지만, 아라한에 비하자면 잠
들어 있는 사람이란다."
이렇게 해서 대신은 천신이 낸 두 번째 문제에 답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천신은 커다란 코끼리를 몰고 와서는 말했다.
"이 코끼리의 무게는 얼마인가?"
국왕에서 일개 백성에 이르기까지 온 나라 사람들은 이 문제에 속수무책이었다. 그래서 대신은 다시
아버지에게 답을 구했다.
"코끼리를 배에 태우고 배가 가라앉은 만큼 배 옆에 선을 그은 다음 코끼리를 내리게 한다. 그리고 코
끼리 대신 돌을 실어 배가 처음에 그었던 선만큼 가라앉으면 그 돌들을 들어내서 돌들의 무게를 합산하
면 될 것이다. 그러면 바로 그게 코끼리의 무게가 된단다."
천신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내 손 안에 있는 한 줌의 물은 저 바다의 물보다 많다. 이 말 속에 깃든 뜻을 알겠느냐?"
국왕은 방방곡곡에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는 자를 찾아보았지만 허사였다. 그래서 대신은 또 아버지에
게 사정을 말할 수 밖에 없었고, 이런 대답을 듣게 되었다.
"별로 어려운 얘기는 아니구나. 어떤 이가 깨끗한 마음으로 한 줌의 물을 부처님이나 부모 또는 가난
한 이 내지 병든 이에게 보시한다면 그 공덕은 수만 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바닷물이 많기
는 하지만 한 사람의 목숨도 구할 수 없으니, 이렇게 따진다면 한 줌의 물이 저 바닷물보다 천만 배는
많다고 할 수 있지."
대신의 답을 들은 천신은 그 자리에서 피골이 상접한 사람으로 변신한 채 물었다.
"이 세상에 나보다 더 배고프고 빈궁한 자가 있는가?"
이번에도 대신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와서 이렇게 대답했다.
"욕심 많고 성격이 못된 탓에 부처님의 바른 법을 믿지 않고, 부모와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자가 있다
면, 그 자는 장차 내세에 아귀로 태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수만 년 동안 먹을 것이라곤 구경도 못하게
될 것이오. 태산만한 몸뚱아리에 뱃속은 커다란 계곡처럼 텅 비어 있고, 목구멍은 바늘구멍만큼 작고 송
곳처럼 날카로운 머리카락이 온몸을 칭칭 감아 조금이라도 움직이려 하면 마치 온몸에서 불꽃이 튀는
듯한 고통을 받게 될 것이오. 이런 사람은 당신에 비한다면 천만 배는 더 배고프고 빈궁한 사람이 아니
겠소?"
대신이 문제를 맞추자 천신은 다시 한 사람의 죄수로 변신했다. 그는 수갑과 족쇄를 차고 목덜미에는
칼을 두르고 있었다. 또 방금 화형이라도 당한 듯 온몸에 불에 그을린 흔적이 있었다. 그 천신이 물었
다.
"세상에 나보다 더 고통스러운 사람이 있는가?"
대신은 또 집에 돌아가 아버지에게 물었고 아버지는 이렇게 대답했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스승을 공경하지 않으며 또 주인을 배반하고 부처님을 비방한 자는 죽은 후 칼산
지옥에 떨어져 온몸이 갈갈이 찢기고, 화탕 지옥에 들어가 온몸이 마치 석탄처럼 벌겋게 타오를 것이며,
똥물에 빠져 기약없이 무수한 고난을 당할 것이다. 그러한 자가 받는 고통은 죄수에 비한다면 천만 배
나 더한 것이지."
그러자 이번에 천신은 화려한 옷을 걸치고 이 세상에서 비할 바 없이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신했다.
그리고 이렇게 물었다.
"세상에 나처럼 아름다운 이가 있을까?"
이번에도 대신은 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대답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고 부모에게 효성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집을 보시하고 굴욕을 참아내며 계
율에 의지하여 일신을 잘 지키는 사람은 내세에 천상에 태어나 당신보다 훨씬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게
될 것이오. 그 모습에 비한다면 당신은 애꾸눈 원숭이에 불과하오."
천신은 상하가 똑같이 생긴 각목을 꺼내들고 또 하나의 수수께끼를 냈다.
"어느 쪽이 머리인가?"
간단한 것 같으면서도 실로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대신을 또 아버지의 도움을 요청해서 천신에
게 답했다.
"각목을 물에 담그면 뿌리 쪽은 물밑으로 가라앉을 것이요, 머리 쪽은 물 위에 뜰 것이오."
또 천신은 똑같이 생긴 백마 두 마리를 끌고와서 물었다.
"어느 쪽이 어미 말이고, 또 어느 쪽이 새끼 말인가?"
역시 궁궐 안에는 대답할 이가 없었다. 대신은 아버지에게 조언을 들은 후 천신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풀을 먹여보면 될 것이오. 어미 말은 반드시 풀을 새끼 말 쪽으로 밀어줄 터이오."
이렇게 해서 대신은 천신이 낸 문제를 모두 맞힐 수 있었다. 천신은 매우 기뻐하며 국왕에게 수많은
보물을 주면서 말했다.
"너희 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총명하구나! 이후로 내가 너희 나라를 도와 아무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리라."
이 말을 들은 국왕은 기뻐서 어쩔 줄 몰라했다. 그리고 국왕은 그 대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경이 천신의 문제에 대답한 것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요, 아니면 다른 사람이 가르쳐준 것이오? 어
쨌든 경의 지혜 덕분에 우리 나라는 안녕을 누릴 수 있게 되었고, 또 많은 보물을 얻게 되었소. 이 일은
모두 경이 세운 공로라 할 수 있을 것이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저 스스로 생각해낸 것이 아닙니다. 제 죄를 용서해주신다면 감히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경이 세운 공로가 크니 설사 만 가지 죽을 죄를 저질렀다고 해도 용서할 생각이오. 그래, 어디 말해
보시오."
"우리 나라 법은 노인을 봉양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소신에게는 늙은 아버님이 계시는데
차마 내다버릴 수 없어서 국법을 무릅쓰고 땅굴에 아버님을 숨겨두고 봉양해왔습니다. 제가 천신의 물
음에 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제 아버님의 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바로 아버님이 일러주신 대로
대답한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백성들로 하여금 노인을 봉양하게 하옵소서!"
대신의 이야기를 들은 국왕은 매우 기뻐하며 대신의 아버지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리고 국왕은 이렇
게 포고령을 내렸다.
"지금부터 절대로 노인을 버려서는 안 된다. 효순으로 노인을 봉양하고 그들이 편안한 만년을 보내도
록 하라. 만일 부모에게 불효하고 노인을 버리며 스승을 공경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엄벌에 처하리라."
'기타 > 팔만대장경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닷가 사람들이 고동을 부는 이유 (0) | 2020.06.22 |
---|---|
원한 대 원한 (0) | 2020.06.22 |
모두 다른 대답 (0) | 2020.06.22 |
물거품으로 만든 장신구 (0) | 2020.06.22 |
하늘의 감동 (0) | 2020.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