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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팔만대장경 이야기

원한 대 원한

by FraisGout 2020. 6. 22.

  옛날 어느 집안에 한 딸아이가 태어났다. 그런데 그  아이는 열일곱이 되자 매우 화사한 용모를 가진 
아리따운 처녀가 되었다. 노부부는 딸아이를 자신들의 목숨보다 귀중하게 여겼고,  딸아이 역시 일도 잘
하고 성격도 쾌활해서 온 가족이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녀는 어느 봄날 감기가 걸렸다. 노부부는 그저 지나가는 감기일 뿐이려니 하고 크게 걱정하지는 않
았다. 왜냐하면 딸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웬만한 작은 병은 치료하지 않고도 나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병세는 갈수록 심해졌다.
  어느덧 낙엽 떨어지는 가을이 되자 노부부는 마음이  다급해졌다. 그들은 딸아이가 지는 낙엽처럼 세
상을 떠나는 것이 아닌가해서 걱정이 태산 같았다.
  노부부는 의원을 불러 진맥을 해보고 딸아이에게 약도  먹여보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이에 노부
부는 용하다는 의원들을 모두 불러보았지만 허사였다. 딸아이의  병세는 날로 위중해져 몸이 마른 장작
나무처럼 여위어갔다. 노부부는 입술이 바싹 탈 정도로 다급해졌으나 탄식하며 눈물만 흘릴 뿐 다른 방
법이 없었다.
  온 집안 사람들이 거의 포기하려고 했을 때 어느 날 한 무당이 찾아와 자기는 귀신과 통하니 모든 액
난을 소멸할 수 있다고 떠들어댔다. 노부부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무당에게 제발 딸아이
의 목숨을 구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무당을 후하게 대접했다. 그러자  무당은 노부부에게 딸아이가 누워 
있는 침상으로 안내해달라고 했다. 곧이어 그녀의  방으로 간 무당은 잠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노부부가 무당 대신 침상의 휘장을 걷으려 하자 무당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소용없는 일이오. 당신의 딸은 귀신에게 홀린 것이오. 이제 곧 죽을 것 같소."
  노부부는 무당의 말을 듣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으며 눈물만 하염없이 흘렸다. 그리고 다시 불쌍한 딸
아이를 살려달라고 무당에게 간절히 부탁했다. 이에 무당이 말했다.
  "내가 귀신과 말을 해보리다."
  무당이 눈을 감고 잠시 주문을 외자 귀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당은 그 귀신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 때문에 이 여자에게 붙어 떠나지않느냐?"
  "이 여자는 전생의 오백세 동안 나를 죽여왔고, 나도 그 오백세 동안 이 여자를 죽였소. 우리 둘이 원
한을 원한으로 갚는 일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소. 만일 이 여자가 다시는 원한을 갚기 위해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하면 나도 더 이상 이 여자를 죽일 마음이 없소. 당신이 내 말을 그녀에게 전해주시오."
  무당은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여자에게 귀신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녀는 숨찬 목소리로 대답했
다.
  "다시는 앙심을 품지 않겠어요."
  무당은 그녀의 말을 귀신에게 전했지만 귀신은 쉽게  믿으려들지 않았다. 귀신이 자세히 그녀의 마음
속을 살펴보자, 그녀가 아직 앙심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단지 지금 목숨을 잃을 것이 
두려워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이에 귀신은 조금도 거리낌없이 그녀의 목숨을 끊어놓고 훌쩍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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