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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푸코의 하이데거 비판

by Frais Study 2020. 8. 16.

푸코의 초기 '고고학적' 연구는 전체적으로 볼때 ≪존재와 시간≫을 중심적인 비판 대상의 하나로 삼고 있는 듯하다. 많은 핵심적인 구절들을 통해서 우리는 푸코가 '우리 시대의 철학', 또는 근대철학을 넘어서려 함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가 언급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철학'에는 현상학과 실존주의는 물론이고 구조주의까지도 총 망라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우리는 하이데거에 대한 푸코의 다음 언급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저는 50년대에 니체를 읽었습니다. 그러나 니체 자신은 저에게 아무런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니체와 하이데거 ― 바로 이것이 철학적인 충격이었습니다." 이 문구는 <계보학>이라는 논문을 통해 알려진 니체주의자로서의 푸코와는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푸코는 이처럼 자신이 하이데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바로 이 때문에 자신이 비록 니체에 관해서는 글을 썼지만 하이데거에 관해서는 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하이데거로부터, 하이데거와 더불어서, 하이데거를 전유함으로써 사유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저는 하이데거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쓰지 않았습니다. 저는 우리가 생각하고 우리가 활동하는 소수의 저자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 대해 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1) 


물론 이 글의 목적은 푸코의 글에서 니체의 영향력이 무엇이고 하이데거의 영향력은 그것과 관련해서 볼 때 어떤 관계에 놓이는가를 따지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이 글은 니체가 아니라 하이데거의 철학이 푸코에게 끼친 영향이 어떤 것인지를 따지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대부분 부정적인 측면, 전복의 측면을 가진다는 것이 이 글의 논점이다. 그럼에도 한가지 지적해 두어야 할 것은 계보학자로서의 푸코에게는 니체의 영향력이 매우 명시적으로 보인다고 한다면 고고학자로서의 푸코에게는 바슐라르, 깡기옘 등의 과학철학자나 과학사가는 물론이고 하이데거의 영향력이 매우 커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그 하이데거가 하이데거로서의 하이데거인지 아니면 메를로뽕띠를 경유한 하이데거인지는 명식적으로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많은 비평가들이 다루었듯이 후자에 더 가깝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이 글에서 보여주겠지만 피상적인 독해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이 글은 단순히 하이데거가 푸코에게 끼친 영향만을 문제삼는 것이 아니라 푸코와 하이데거가 근본적으로 갈라지는 지점이 무엇인가를 지적하려 할 것이다. 이러한 갈라짐은 언어 문제와 관련된 해석의 문제는 물론이고 모던에 대한 입장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선 하이데거와의 관련성을 시사하는 푸코의 초기 저작을 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무엇보다도 ≪임상의학의 탄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이데거의 경우 현상학자, 해석학자, 실존주의자 등의 여러가지 면모를 보이지만 이 중에서 특히 해석학에 대한 그의 언급으로부터 유추해 볼 때 푸코가 '주석달기'라고 부르면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하이데거를 표적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언어가 해왔던 '주석달기' 말고 다른 기능으로 언어를 포착할 수는 없을까?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주석달기'란 솔직히 말해 언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담화에게 되물어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하여 '주석달기'는 발화된 것의 깊은 의미를 찾으려 몸부림치며 아직 말해지지 않은 것을 되풀이하려고 했으니, 그 까닭은 하나의 고정된 의미부여를 통해 진리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붙잡혀 있는 언어, 낡은 시대의 언어, 그리고 침묵하고 있는 언어를 보다 자유롭게 하고 보다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며 수다스럽게 만들려고 했던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해왔던 '주석달기'의 본색이다. 또한 '주석달기'는 기본적으로 시니피앙에 대한 시니피에의 과잉을 인정하여, 언어가 그늘 속에 내버려 두어 정제되지 못한 사고의 나머지들을 내팽개쳐 두어 왔던 것이다. 이와 같은 '주석달기'의 횡포가 가능할 수 있었던 기본적인 전제는 '말해지지 않은 것'도 역시 언어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기에, 불러주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엄청난 시니피앙의 창고 속에서 비록 명쾌하게 말해지지 않은 대상의 내용을 표현할 수 있는 목소리를 언제든지 찾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지시체와 의미의 과잉은 우리에게 끝날 수 없는 과업을 안겨주었으니, 그 하나는 잠자고 있는 시니피에를 깨워 말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니피앙이 우리에게 '대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묻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는 그동안 자신의 존재론적 자율성을 만끽하고 있었던 까닭으로 각자가 잠재된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고 오만을 떨며, 서로가 상대를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저 자신에게 자신의 얘기만을 해왔다. 이것이 그 잘난 '주석달기'가 자신의 거처를 마련한 언어적 지평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다. '주석달기'는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의 시적 표현에 대한 아주 복잡한 연결망을 갖고 있다. 즉 시니피앙은 시니피에를 풍부한 언어의 저장고에 내러벼 둔 채 '해석하기'의 작업을 수행할 수 없다. 시니피에가 드러나는 계기에는 반드시 시니피앙이 완전히 정복하지 못한, 의미로 가득찬 현존의 세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주석달기란 발화가 시도하는 하나의 해석이며, 현존에 대한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다는 사뭇 위험스러운 가정과 함께 끊임없이 반복되는 담화 속에서 자기 자신의 모습이 변화될 수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요약하자면, '주석달기'의 기본 가정은 자신의 역사적 기원을 명쾌하게 담지하고 있는 언어를 해석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주석달기'는 금기시된 것을 통해 상징들과 감각적 이미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들을 수 있으며, 하늘의 계시를 통해 신의 생각과 그 밖의 모든 비밀스러운 일들이 어떤 목소리를 갖게 되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바로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문화가 가지는 독특한 언어에 '주석달기'를 해왔으며, 발화가 명쾌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줄 것이는 허망한 기대 속에 그 오랜 세월을 허비해 왔던 것이다."(2) 



푸코는 계속해서 이 접근방법(주석달기)이 기표와 기의를 암묵적으로 대조한다는 것, 다시 말해서 해석된 원본의 '텍스트'는 기표만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기의를 고갈시켜버리진 않는다는 생각에 의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주석달기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기의를 비우고 쫓아내고 고갈시키는 것을 과제로 삼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주석달기는 하이데거가 시도했던 '해석학적 이해'의 과제와 비교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존재와 시간≫의 서론에서 하이데거는 현상이 '묻혀질' 수 있기 때문에 현상이 스스로를 직관에 직접적으로 표현할 수 없을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가능성을 통상적으로 '현상'이라고 이해되고 있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시켜서 논의한다.(3) 이러한 통상적인 이해의 원천은 아마도 선천적인a priori 직관에 있을 것이나, 현상이 언어학적으로 부적절하게 특징화되는 한 '현상은 공허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연후에는 그것의 본래적인 성격을 잃어버리고 제멋대로 떠돌아다니는 테제인 양 간과될 것이다.'(4) 이로부터, 적합한 현상학(5)은 "우연적이고 '직접적'이며, 비반성적인 '보게 함beholding'이 갖는 소박함과 직접적으로 대립할"(6) 것이다.(7) 이런 소박함을 피하기 위해, 현상학은 '해석'에 다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존재의 분석은 텍스트가 말해야만 하는 모든 것을 '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의미하는'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식의 '텍스트' 독해가 된다. 즉 존재와 현존재에 관한 우리의 선-존재론적 이해가 이런 현상들을 실제로는 드러내지만, 그것은 주석자/현상학자 - 우리의 일상적인 해석을 적합하게 '번역하는' 것이 바로 이들의 해석인 것이다. - 를 요구하는 부적절하고, 비본래적 방식으로만 그렇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하이데거가 '해석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슐라이어마흐적인 '해석학'의 의미, 즉 성서의 표현적인 의미에 대립하여 성서의 실제적인 의미를 생산하려고 하는 성서해석을 즉각 떠오르게 한다. (물론, 슐라이어마흐적인 해석학과 하이데거적인 해석학의 차이에 대해서 이 글이 무시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동일한 해석학적인 지반에 서 있다는 점에서 이들의 근본적인 상동성을 무시할 수는 결코 없는 노릇이다.) 


사실 하이데거가 보여준 읽기 행위들은 언제나 텍스트 속에 있는 진리를 듣기 위한 시도였으며 이 텍스트들의 진리는 '독자들에게 텍스트를 통해 부과된 하나의 요청' 속에 있다. 그리하여 진리는 직접적으로 고전적 학식에 접근할 수 있는 어떤 것처럼 '텍스트 내부의 분명히 말해져 있는 어떤 것'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텍스트와의 의문에 찬 대화 속에서 출현하는 '말해지지 않은 것' 속에 놓여 있게 된다. 바로 이러한 진리를 하이데거는 '존재의 진리'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처럼 하이데거가 진리의 전통적인 개념, 즉 지성과 대상의 일치(adequatio intellectus et rei)라는 이해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면서 진리를 항상 은폐와 비은폐의 (대립이 아닌)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했음에도, 또 '존재의 진리'라는 표현도 '철학의 종말이 들리기 전까지는 은폐된 상태로 머물러 있을 뿐인 존재가 자신의 역사적 특성들 중 하나 속에서 여전히 그렇게 은폐된 채 언어로 표현될 때의 경우들'을 가리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말해지지 않는 것'을 듣기 위해서는 또 다시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8) 그러므로 위에서 인용했던 푸코의 글이 공격하고 있는 대상은 바로 이와 같은 방법론인 것이다. 


이러한 해석학적인 해석방법론과 달리 푸코가 주장하는 것은 어떤 기의도 기표를 초과하지 못하며, 그것은 결코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텍스트, 실천, 또는 문제로 되는 것 전반에 걸쳐 명백하게 현존하는 것을 넘어서는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대상을 적절하게 이해하려면 그것을 대상, 구조로서 그리고 가능한 선택 대상이 철저하게 주어져 있으며 공개되어 있는 구조 내에서 치환(permutation)으로서 주어진 가능한 대상으로 보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벗겨지기를 기다리는 그 어떤 심오한 진리도 없는 셈이다. 


이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듯이 푸코는 하이데거의 방법론이 몇 가지 난점을 갖고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하이데거가 비록 반대의 것을 주장했다고 하더라도, 심오한 진리의 해석으로서의 해석학은 역사적으로 볼 때 나이브한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와 시간≫ 2부에서 하이데거는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현존재가 실제로 존재하는 그대로를 해석하라고, 즉 현존재란 죽음을-향한-존재라는 해석으로 나아가라고 (심지어 현존재가 이러한 지식으로부터 도주하려고 시도한다하더라도 말이다) 주장한다. 우리 존재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핵심적인 측면은 어떤 것이든 간에 어떤 행동을, 태도를 취해야만 하는 현존재의 反역사적 특징을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심지어 죽음을-향한-존재는 인간 경험을 위한 유일한 선험적 조건이기도 하다. 


이와는 정반대로 푸코는 서구 의학에서 나타난 표면상의 담론을 분석하면서 죽음이란 우리 본성의 은폐된 진리라고 하는 하이데거의 해석은 그 자체로 역사적으로 조건지워진 사건(9)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푸코에 따르면, 19세기 이전에 죽음 개념은 일종의 대항적 힘으로서의 생명과 자연 개념에서 전적으로 배제되어 있었으며, 이러한 개념적 구조가 의학적 병리학(pathology)을 난해한 모험으로 만들었다. "죽음이 대항-자연으로부터 이탈하고 개인의 살아있는 신체들에 각인되었던 것은 죽음이 의학적 경험의 구체적인 아프리오리가 되었을 때였다."(10) 일단 이러한 구조적 변동이 일어나자, 병리학을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지식, 즉 임상의학, 유한한 개인으로서의 인간에 관한 학이 수립될 수 있었다. 푸코가 주장하는 것은 신체와 신체의 죽음에 대한 능력이라는 이러한 새로운 경험이 의학 내에서 기원했고 이후에 문화의 다른 영역에 퍼져나갔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학적 경험이 서구문화 전반에서 일어난 지각의 변화를 대표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관한 근대적 경험은 단지 겨우 2백년 전에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결론짓고 있는 푸코의 주장이 올바르다면, 이것은 두가지 방식으로 제2편에서 행한 하이데거의 분석을 공격한다. 



"19세기 말 이래로 [실증주의]를 탈피했다고 믿었던 당대의 사유는 [실증주의]가 가능케 했던 것을 조금씩 다시 발견하고 있을 뿐이다. 18세기의 마지막에, 유럽 문화는 아직은 완전히 해명되지 못한 구조의 윤곽을 그리고 있었다. : 우리는 단지 몇개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을 뿐이다. 이 실마리는 우리가 즉각 그것들을 매우 새롭거나 전적으로 고대적이라고 가정하는 우리에게는 그토록 알려지지 않았던 것들이다. 반면 2백여년 동안 (이보다는 덜되었지 오래되지는 않았다) 그것들은 우리 경험의 어둡지만 단단한 그물을 구성했던 것이다."(11) 



다시 말해 하이데거가 보여주고 있는 죽음에 관한 특이한 해석은 ≪존재와 시간≫에서 명시적으로 논의되기에 앞서 이미 이전에, 적어도 한 세기 동안 우리의 자기-이해에 함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로 역사적으로 우연한 이러한 죽음의 경험은 '18세기 말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물론 우리는 이 지점에서 푸코 분석의 특정 결과에 의문을 품을 수는 있다. 특히 죽음에 관한 근대적 경험의 뿌리는 푸코가 인정하는 것보다도 훨씬 오래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뿌리들은 중요한 방식으로, 기독교와 관련되어 나타났다. 하지만 이럴 때도 하이데거의 분석은 여전히 그것이 반역사적인 한에 있어서는 문제될 수 있다.(12) 그럼에도 우리는 역사적으로 상대화된 형태 속에서이긴 하지만 푸코가 죽음의 특정한 경험은 적어도 지식의 특정한 유형의 선험적 조건이다라고 한 하이데거의 주장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주장 자체를 문제삼을 수도 있고. 


이처럼 주석달기와 죽음문제를 둘러싼 하이데거에 대한 비판, 아니 오히려 실존적 현상학에 대한 비판이 다소 암묵적이라고 한다면 다음 저작인 ≪말과 사물≫에서의 하이데거 비판은 더욱 확장되고 심화되며 철저해 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도 ≪존재와 시간≫은 칸트와 더불어 시작된 우리의 근대적 자기-해석을 대표하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취급된다. 그러나 ≪임상의학의 탄생≫에서의 논의가 주로 죽음의 경험에 놓여 있다고 한다면 여기서 분석의 폭은 매우 넓어진다. 그리고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근대적인 자기-해석은 역사적으로 우연적인 것으로 상정된다. 


이러한 푸코의 비판을 논의하기에 앞서 우리는 ≪말과 사물≫의 제 9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푸코의 논의를 길게 우회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9장에서 푸코가 다루는 부분이 메를로-뽕띠와 후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식의 피상적 독해에 머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13) 


하이데거와 관련해서 ≪말과 사물≫에서 푸코의 논의를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그는 근대 철학적 패러다임이 '표상의 분석'에서 '유한성의 분석'으로의 변화했다고 본다.(14) 푸코는 표상의 분석에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기 전까지의 철학이 속한다고 지적하면서 이러한 분석하에서 담론은 표상의 투명한 매개체를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한다. 드레퓌스와 레비노우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신은 존재의 사슬을 배열하고, 그것과의 예정된 상응속에서 언어를 배열했다. 인간 존재자는 어쩌다 언어적 기호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으나 합리적으로 말하는 동물로서의 인간 존재자는 또 하나의 피조물이 되었을 따름이다. 이 피조물의 성질은 단지 그 고유의 규정으로부터 이해될 수 있는 본성을 가진 창조물이기에, 그것은 존재자의 표 위에서 자신의 적합한 장소에 배열될 수 있다."(15) 



하지만 이를 위해 존재하는 표상은 결코 '표' 자체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칸트와 더불어 지식의 주체이자 대상으로서의 인간이 최초로 등장한다.('계몽'에 대한 푸코의 나중의 비판은 바로 이런 점에서 계속 반칸트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칸트 이후의 철학의 근본 과제는 어떻게 유한한 개인, 인간이 모든 지식의 가능성을 위한 기반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과제는 선험적인 종합판단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것에 있다는 점을 상기하길 바란다.) 그러나 과학으로부터 유래한 이러한 지식은 인간이란 무릇 모든 종류의 경험적 요소들에 의해 조건지워진다는 것을 드러냈다. 역사적 문헌학을 통해 드러난 언어는 표상의 매개로서의 투명성을 상실한다. 이처럼 표상하는 기능 그 자체가 문제점 있다고 간주됨에 따라 이를 가능하게 만들 수 있는 임무는 언어에서 인간으로 변동했다. 



"19세기 이래로 발전된 인간의 존재 양태에 대한 분석은 표상 이론 내에서는 갖추어져 있지 않다. 반대로 이 분석의 임무는 어떻게 사물일반에 표상이 주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데 있다." 


"인간이란 그 본질에 있어서 무엇인가를 분석한 비판철학 이전의 분석론[예: 데카르트의 사유하는 것 a thinking thing]은 인간 경험 일반에 제시될 수 있는 모든 것에 관한 분석론[예: 선험적 주관성으로서의 인간]으로 된다."(17) 



칸트와 더불어 시작된 유한성의 분석은 푸코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가장 완전하게 표현된다. 이 점은 칸트를 근대철학의 기점으로 삼으면서 그 후일의 철학이 무엇을 중심으로 사고하고 있는가를 지적하는 8장의 목차에서 잘 드러난다. 기실 하이데거에 따르면 기존의 철학자들은 철학, 즉 형이상학이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학문임을 진지하게 사유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하이데거의 주장은 진리론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따라서 다소 우회하더라도 하이데거의 진리론에서 일치가 갖는 의미를 이전의 진리관에 대한 하이데거의 파악과 그 극복의 시도를 살피면서 유한성이 하이데거에게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자.(이하의 진리에 관련된 하이데거의 논의는 박찬국이 ≪니체와 니힐리즘≫의 '역자후기'에서 분석한 것을 참고로 한다.) 


하이데거는 "현존재는 진리 안에 있다"고 말한다. 기존의 인식론에서는 특히, 플라톤 식의 사유에서는 망치를 망치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망치는 그것이 망치이기 위해서 망치 자체라는 보편적 실재성(이데아)에 속해야 한다(참여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비로소 그 망치는 망치의 존재성을 지닐 수 있다. 둘째, 앞에 놓인 망치를 망치로 파악하기 위해 주관은 망치의 보편적 실재성(이데아)을 미리 보아야만 한다. 망치의 보편적 실재성을 보지 못하고는 앞에 놓인 것을 '망치'으로 볼 수 없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데아로의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셋째, 이데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주관과 앞에 놓인 감각적 망치는 망치의 이데아를 통해서 올바로 연결되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이제 주관은 망치의 이데아를 통해 앞에 놓인 사물을 망치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진리이다. 물론 이 때의 진리관은 진리의 근거가 앞에 놓여 있는 것, 즉 기체(subjectum)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런 사유의 방식은 그 근거가 주체의 순수 의식으로 옮겨진 후에도 동일하다. 즉 주관은 어떤 경우에도 동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순수 의식을 확보해야 하며, 감각적 대상은 의식의 표상 작용을 통해 보편적 대상성으로 재구성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동일성을 유지하는 순수 의식을 지닌 주체와 앞에 놓인 감각적 대상은 주체의 순수 의식을 통해 올바로 연결되어야 하고, 올바로 연결된다면 그것은 진리이다. 이 두 경우, 즉 진리의 근거가 외적인 실재인 이데아이든 혹은 내적인 실재인 주체의 순수의식이든 간에 진리는 모두 실재성을 지니는 초월적 근거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하이데거의 진리론은 이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된다. 그는 이 두 입장이 주체와 객체를 엄격히 분리하고, 앞에 놓인 객체를 이론적으로만 파악하는 경우에만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진리는 오히려 이런 식의 이론적 태도의 배후에서 찾아져야만 한다. 가령 망치에 대한 진리 여부는 망치를 하나의 앞에 놓인 대상으로 놓고 범주적으로 파악함을 통해서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치의 망치임은 그것의 사용방식 즉 작업을 통해서 드러난다. 


사실 우리는 사물 자체, 즉 길가의 돌이나 나무 등등에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오늘날 사물은 사물 자체의 고유성을 상실하였으며, 단지 사물은 그것이 하나의 재료로 되는 경우에만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존재자에 대한 이론적 범주적 진리규정은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나아가 주위를 돌아볼 때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사물적 존재자를 대하지 못한다.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더 이상 자연적 존재자의 소리가 아니라 비행기 소음, 자동차 소리, 굴착기 소리 등등이다. 즉 존재자에 대한 대상적 범주적 진리 규정이 더 이상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존재자 자체가 기술의 재료로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역시 이미 자연적 존재자가 아니라 인간화된 존재자의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18) 


여기서 다시 망치를 예로 들자면, 망치는 더 이상 범주적으로 파악된 망치의 사물적 고유성에 의해 의미를 갖지 않는다. 또 망치의 공간은 망치가 위치한 그 크기만큼의 사물적 공간을 갖는 것도 아니다. 목공이 의자를 만들기 위해 망치로 작업을 하고 있다면, 망치의 공간은 망치의 크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망치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 전체를 포함한다. 즉 망치의 공간은 망치에 대한 이론적-범주적 공간이 아니라 실천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망치 작업은 바로 인간 현존재의 목적을 위해서 행해진다. 그렇다고 한다면 망치에 대한 진리 규정은 망치로 작업을 하고 있는 인간 현존재의 공간에서 찾아져야 한다. 즉 망치의 공간은 망치 자체가 갖는 공간, 망치 작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을 넘어서, 인간 현존재의 공간 즉 완성되어 제품화된 상품을 진열하고 매매가 이루어지고 구매자에 의해 사용되는 그러한 공간에 의해 비로소 그 진리성이 규정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간을 하이데거는 일상적 현존재가 존재자들과 관계하는 공간으로 파악한다. 그러나 존재자와 관계하는 현존재의 공간은 현존재 자체의 공간으로 더욱 소급되어야 하며, 이것을 하이데거는 세계-내-존재로서 현존재의 '현(거기Da)'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현'은 인간 현존재가 소유하고 있는 개인적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각각의 개인적 현존재가 그 안에 던져져 있고 그 안에서 자신의 실존을 기투하며, 또한 대부분의 경우 일상적 존재자에 빠져 있는 그러한 공간, 즉 존재 일반의 드러남의 공간을 뜻한다. 


이처럼 하이데거의 관심은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관심 모두가 궁극적으로는 인간 현존재의 실존에 이바지 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망치를 통한 작업은 현존재의 목적에 부합되는 한에서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이데거는 진리의 장소를 인간 실존으로 옮겨 놓는다. 그리고 이런 의미에서 "진리는 단지 현존재가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존재자가 있으며 오히려 무가 아닌가?'(라이프니츠 - '왜 있는 것은 있고 없지 않은가?' - 의 차용) 이 질문에 대해 형이상학은 많은 대답을 제시했다. 그런데 대답된 것은 상이하더라도 그들의 대답은 일단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바로 철학이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학문임을 진지하게 사고하지 않았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왜 망치가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망치라는 존재자보다 유적으로 상위 개념, 그리고 그러한 유적 개념들에 대한 또 다른 상위개념으로 소급하여 올라감으로써 하나의 대답을 제시할 수 있었다. 플라톤은 망치라는 감각적 존재자로부터 망치의 이데아로, 망치의 이데아로부터 선의 이데아로 올라감으로써 그 대답을 발견했던 것이다. (물론 이런 주장은 플라톤에 대한 일반화된 해석, 또는 특정한 해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러한 플라톤의 노력에 의해, 아니 어쩌면 형이상학 전체의 노력에 의해 망치라는 존재자의 참된 근거, 즉 망치라는 존재자의 존재는 망치의 이데아로 대체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는 '이데아의 멍에'에 둘러싸이게 된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존재자의 근거를 찾는 것에 우리가 진지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철학은 유한성의 철학이고 그 근거는 유한한 근거에서 찾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존재자가 존재하는 까닭은 존재는 무가 아니라 존재를 사랑하며, 사랑의 은밀한 힘으로써 존재자를 통해 존재자가 존재하도록 지킨다는 점에 놓여 있다. 이렇다고 한다면 존재자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실체성에 의해서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자신의 존재야말로 자신의 실체성과 속성을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하이데거에 의하면 이제 진리의 자리는 존재자의 '있음(존재)'에 놓이게 되며, 이러한 존재가 존재자의 실체성과 속성을 보존함에 따라 진리는 이제 존재자의 실체성과 속성이 아니라 존재자를 존재자로 드러내는 비은폐성으로 파악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진리는 일치가 아니라 존재자의 존재의 비은폐성으로 파악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진리의 기준은 존재가 자신의 은밀한 사랑의 힘으로 각각의 존재자를 통해 자신의 '있음'을 부여하는 사건, 즉 존재의 사건(Ereignis)(19)에 놓여져야 한다. 그런데 형이상학의 역사를 통해 진리의 자리가 존재의 '있음' 즉 존재가 자신의 있음을 드러내려는 '존재 사건'으로부터 존재자적인 것에로 전이되었고, 따라서 존재는 망각되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근대철학에 대한 하이데거의 비판이다. 이렇게 진리의 자리가 바뀜에 따라 인간도 '존재의 목자'로부터 '존재자의 지배자'로 바뀌게 된다.(20) 


이러한 '인간학적' 가정에 함축된 하이데거의 기획은 ≪존재와 시간≫의 첫부분에서 명료해진다. 



"따라서 언제든지 존재론은 현존재의 성격을 가졌다기 보다는 존재Being의 성격을 가진 존재자들(entities)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존재론은 현존재 자체의 존재적인 구조 내에서 그 기초가 설정되고 동기가 마련되어 있으며, 이러한 그 자신의 기초와 동기 속에서 존재의 선-존재론적 이해는 명확한 특징으로서 구성된다. 


그러므로 기초존재론은, 다른 존재론들은 이로부터 생겨날 수 있는 바, '현존재의 실존적 분석'에서 구해져야만 한다. 현존재는 또한 그 자신과는 다른 성격의 모든 존재자들의 존재의 이해를 - 실존에 대한 현존재의 이해의 구성요소로서 -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현존재는 모든 존재론의 가능성을 위한 존재적-존재론적 조건으로서 간주되는 세번째 우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존재는 다른 어떤 존재자보다도 더 존재론적으로 일차적으로 심문을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판명되었던 것이다."(21) 



그런데 푸코에게 오면 현존재의 일차성이라는 이러한 가정은 현대 철학의 해결할 수 없는 역설을 낳는다. 하이데거는 한계로서의 유한성과 모든 사실들의 원천으로서의 유한성 사이의 동일성과 차이를 주장할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세가지 역설(이중체)로 이끈다. 



1.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 인간은 경험적으로 탐구되어야할 '존재적' 사실이지만, 모든 '존재적' 지식을 위한 선험적 조건이다. 


2. 코기토와 비사유: 인간은 스스로에 대해서는 모호하지만, 모든 이해가능성의 원천이다. 


3. 기원의 후퇴와 회귀: 인간은 역사의 산물이지만, 그 역사의 원천이다. 



푸코에 의하면 칸트의 경우 인간을 경험적 자아와 선험적 자아로 본질적으로 분리시킴으로써 이 문제를 회피한다. 그럼에도 칸트는 왜 이것이 분리되는지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다. 또 헤겔은 세계를 하나의 신적인 선험적 자아와 동일시함으로써 이 난점을 극복하려고 시도한다. 그리고 하이데거의 방법은 두가지 차원이 사실상은 하나가 가진 여러 측면들, 분리불가능한 존재, 즉 현존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알 수 있듯이 푸코의 주장에 따르면 칸트 이후의 근대철학의 일차적이고 긴요한 과제는 위의 세 가지 '이중체' 각각의 앞뒤 용어를 서로 일치하게끔 만드는 것이며, 따라서 주체로서의 인간과 객체로서의 인간이라는 칸트적인 구별을 제거하는 것이다. 


우선 경험적인 것과 선험적인 것이라는 이중체의 경우. 이 경우 푸코에 따르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꽁트와 맑스의 역사적 환원주의적 전략이 있으며 하이데거적인 전략이 또 한편으로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허나 이 글의 목적이 하이데거적인 전략과 관련된 것인만큼 여기서는 이 부분에만 주목하기로 한다. 



"[하이데거의 기획]은 복잡한 성격을 띤 담론이다. 즉 그것은 특정하지만 양의적인 지층으로 향하고 있다. 그 지층은 분석에 세심한 기술적 언어를 적용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지층이기도 하지만, 그 출발점에서부터 실증성이라는 소박함을 벗어나 그 소박함에 질문을 제기하며 그 소박함의 토대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만큼 충분하게 사물의 실증이 제거된 지층인 것이다."(22) 



바로 이런 '지층'의 양의성, 즉 주어진 것의 경험과 경험을 가능하게 만든 것의 경험이 이런 담론을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상학적 경험의 무한한 개방성은 우리가 경험 속에서 현상학적 기반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경험과 끊임없이 만나게 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따라서 현상학적 기획은 그 성격에 있어서 중성화된 인식론과 유사하며 - 마치 (가령 뇌에 관한) 과학적 지식의 새로운 유형이 이용가능하게 되듯이 - 이것의 인식론적 기반과 다른 모든 지식은 그에 따라 끊임없이 개조될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에게는 다행히도, 현존재의 구성의 反역사적이고 아프리오리한 성격이 이런 난점을 제거할 것처럼 보인다. 나아가 현상학적 경험의 '징표'가 무한히 열려진 계열을 형성할지라도 현상학적 경험의 '유형들'이 유한하지 않을 것이라고, 따라서 유한하게 기술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하등의 이유도 없다. 


두 번째 이중쌍은 코기토와 비사유의 문제이다. 이것이 지닌 문제는 다음에서 나온다. 즉 인간이 유한하다고 인식되는 한 인간은 인간의 과학이 발견하는 이런 힘들에 의해서 그리고 이 힘들에 사로잡혀 옴짝달싹 못하게 된다. 아직까지도 비판적인 검토의 주제가 되지 못했던 힘들이 과학을 통제하는 한 이러한 과학들의 객관성은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 결과 우리는 지식의 객관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우리 지식의 '무의식'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러한 지식을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탈신비화, 주술에서 깨어남, 계몽은 근대적 사유에 있어 인지활동의 근본적 양태인 것이다. 사유를 왜곡시키는 정신생물학적 힘들을 파악하려는 프로이트의 노력과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생산하는 경제적인 힘들을 드러내려는 맑스의 기획을 예로 들어보자.(23) 푸코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모두 종말론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즉 자기-지식의 분석적 '치료'의 경우 치료의 종국에는 진리와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혁명적인 계급의식의 승리의 경우에도 역사의 종말에는 진리와 행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이데거는 어떠한가? 그에게 있어 이와 유사한 종말론적 사건은 불안의 순간인데, 이 속에서 우리는 이런 불투명한 '힘'을 우리의 탈주 - 우리 자신으로부터 세계와의 경건하지 못한 상호작용으로의 탈주 - 의 원천으로 인식한다. 이런 불안과 대면할 때 우리는 비본래성을 '치유'해야만 하며, 동시에 완전한 우리의 형이상학적 이해를 치유해야만 한다. 


이런 사유방식에 대한 푸코의 비판은 일차적으로 윤리적이다. 두 번째 '이중체'는 우리에게 두 가지로 행동할 수 있는 원천을 남겨둔다. 그 원천은 다름 아닌 무의식 속에 숨겨져 있어 보여지 않는 힘(이 경우에, 불안은 그 자체로서 이해되지 않는다)이거나 명확한 사변적 반성의 대상일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것에 완전히 사로잡힐 운명에 처해지길 원하지 않기에 최선의 해방적 행동 양태인 자기-명료화에 착수한다. 그러나 일단 우리가 이런 자기-명료화에 도달하게 되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된다. 이미 도달된 것이기에 가능성은 비록 열려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가능성들 속에서 행위할 동인을 찾지 못하게 된다. 결국 우리는 자율적인 선택 행위자가 되지만 왜 그러한 행동을 선택했는가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유도 댈 수 없는 그러한 행위자가 되는 것이다. 이때 하이데거라는 구세주가 나타난 결과 우리는 우리의 기획이 단지 니힐리즘이자 행동의 붕괴인 무로부터의 불안한 탈주에 근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제 대안은 자기-명료화를 말소해 버리고 '세인(Das Man)'의 포로로 남아있도록 선택하는 것뿐이다. 따라서 푸코에 따르면, 하이데거에게 있어서는 '어떤 도덕성도 불가능하다.'(24) 


기원의 후퇴와 회귀라는 이 마지막 쌍은 사실상 역사주의적인 역설이다. 여기서 또다시 프로이트와의 비교하는 것이 매우 유용할 것이다. 다른 근대적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는 인간의 경험적 본성의 불투명성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은 그것의 발생을 이해하는데 있다고 보았다. 위에서 언급된 무의식적 힘은 개인의 역사(그의 어린시절)를 통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은 우리의 발전과정을 명료하게 할 때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푸코는 이러한 똑같은 이해방법이 근대적 사유 전체에 만연되어 있다고 보았다. 가령 우리는 문학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텍스트의 전개를 저자의 이전 저작과 그 저작의 초안을 통해서 바라본다.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과학사를 본다(토마스 쿤의 경우). 그리하여 역사는 인간의 자기-이해의 일차적인 경험적 양태가 된다. 그러나 여기서 또다시 선험적 질문이 발생한다. 즉 모든 역사적 이해의 가능성의 조건으로 간주되는 인간 본성에는 무엇이 있을까? 인간 본성이 본래적으로 역사적이라고 여겨진다면, 답 자체는 우리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에 놓여있을 것이다. 


역사적 이해의 선험적 조건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하이데거의 답변은 그의 시간성 분석에서 발견할 수 있다. ① 우리 자신, ② 세계적인 상황 (우리는 실천적 반응을 요구하는 이 세계적인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③ 도구(우리는 이런 반응을 실행하기 위해 '이미 거기에' [있]거나 과거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서의 도구에 도달한다)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바로 실천적 기투에의 우리의 참여이다. 우리의 실천적 태도로 인해 시간이 있으며, 따라서 역사를 회복시킨다. 



"우리는 이제 언제나 파악하기 어려운 '기원'을 생각하려 하는 노력을, 인간의 존재가 인간 자신과의 관계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소원함과 거리 안에서 항상 유지되고 있는 그러한 장소를 향하여 전진하려는 노력을 발견한다."(336/384) 



이처럼 유한성의 분석론이 인간의 존재양태와 인간과학 모두에서 만들어 내는 마지막 중복지점은 역사와 기원에 대한 두 개의 "연결된, 그러나 대립된" 이야기이다. 이 중복된 이야기는 앞의 두 개의 이중쌍과 마찬가지로 언어가 그 투명성을 잃고 따라서 언어의 기원과 접촉하지 못하게 될 때 나타나는 것이다. 언어의 기원은 의성어 이론에서와 같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역사적인 문제가 된다. 언어의 기원은 신비에 쌓여 경험적 연구의 눈 앞에서 자꾸만 자꾸만 과거로 후퇴한다.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끝도 없는 무한한 기대만을 가지고서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언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극히 일반적인 현상이다. "항상 이미 시작된 것을 배경으로해서만 인간은 자신에게 기원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반성을 할 수 있는 것이다."(330/378) 그러므로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은 자신이 '언제나 이미' 세계 안에, 언어 안에, 사회 안에, 그리고 자연 안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원적인 것에서 즉각적으로 도출되는 사실은 인간이란 자신을 자신의 실존과 동시대적으로 만드는 기원으로부터 단절된 존재라는 사실이다. 즉 인간은 시간 속에서 태어나 틀림없이 시간 속에서 사멸하는 모든 사물들의 한가운데에서 모든 기원과 단절된 채 이미 거기에 있는 것이다." (332/379) 


그러나 언어는 또한 기원의 후퇴가 어떻게 극복될 수 있는지를 암시해준다. 인간은 자신의 언어 뒤로 들어가 그것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을 대략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며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는 이미 언어를 이해하고 있어야만 한다. 인간은 자신의 중립적인 언어를 알지 못한 채 받아들여서 구사하기도 하지만, "중립적인 언어를 어떤 방법으로든 알고 있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의사소통으로 들어가 이미 구성된 이해의 망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수단에 의거할 때 뿐이기 때문이다."(331/378) 


언어는 언제나 이미 일종의 비결, 노하우이기에 객관적으로 알려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부터 일반화하여, 유한성의 분석론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다시 전체 역사를 점거하려고 한다. 즉 인간의 사회적 실재가 인간으로 하여금 모든 사건을 역사적으로 조직할 수 있게 하는 한 인간은 언제나 이미 하나의 역사를 갖는다는 것. 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유한성의 분석론은 인간 자신과 그 객체(대상)를 이해하는 인간의 능력이 과거, 현재, 미래에 대응하는 삼중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밝혀낸다. 그리하여 인간의 비결은 시간과 역사가 가능하게 되는 시간의 장을 연다. "사물들 (특히 인간 위에 드리워져 있는 사물들)이 자신들의 단초를 발견하는 곳은 지속 가운데 어떤 주어진 순간에 이루어진 단절에서라기 보다는 바로 인간 속에서이다. 따라서 인간은 시간일반이 재구성되고 지속이 흐를 수 있으며, 적당한 순간에 사물이 자신의 외모를 드러낼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다."(332/379) 


이러한 전략이 잘 보여지고 있는 것이 ≪존재와 시간≫에서 분석되고 있는 시간성의 기원 또는 원천에 관해 논하고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하이데거는 이러한 시간성의 기원은 참된 현존재의 구조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해서만 이해될 수 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또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에서 그는 현존재가 개방성, 즉 사건의 연쇄로서의 역사가 일어나고 대상들이 조우할 수 있는 개방성이기 때문에 순수한 초월로서의 모든 존재자들 중에서 돋보여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인간은 모든 개별적 실체들을 품고 그것들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장 또는 빛이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의 실재에 의해 확립되는 빛 안에서 나타나는 대상과는 다르게 된다. 즉 '존재자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다. 푸코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경험적 질서에서 사물들은 항상 인간 자신과 등을 대고 있으므로, 그것들의 원점(zero-point)을 발견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등진 사물과의 관계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자신이 등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로써 사물들의 지속적이고 견고한 선재성은 근원적 경험의 직접성을 압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332/379-380) 


그러나 이런 해결책은 경험적인 것(역사의 현실적인 흐름)에서 선험적인 것(이 경우 이런 실천적이고 문화적인 실천들이 역사적 이해의 토대다)을 분리시키는 칸트적인 수준에 머무른다. 따라서 하이데거에게 제기되는 질문은 이런 선험적인 실천들이 역사의 현실적인 흐름 내에서 - 바로 그런 시간 '내'에서 시작했을 때, 역사의 선험적 측면과 경험적 측면은 동일한 것으로 되며, 따라서 주체와 객체를 구별하는 것을 제거하라는 기본적인 기획을 실행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만일 역사적 실천을 명료하게 하는 것이 이것에 선행하는 실천들에 앞서서 이루어져야 한다면,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시간 경험을 발견하는 그 실천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의 역사적 배경을 보기 위해서 시간적인 단계로 다시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이런 후치(background) 단계는 역사적 배경을 통해서 더욱 명료하게 되지 않는다면, 또 무한한 회귀에 종속되지 않게 된다면 결코 그 자체로는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푸코(와 니체)가 '기원의 후퇴'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러한 과정인 것이다. 기원점(전-소크라테스 철학의 출현)에서는 어떤 역사적인 배경도 기원의 이해가능성의 근거가 되지 못하기 때문에 시간의 기원은 존재 자체가 주는 일종의 신의 선물이 된다. 따라서 기원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해불가능한 것이다. - 우리는 단지 그것을 향한 제스처만 취할 수 있을 뿐이고 단순히 횔더린을 인용할 수 있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하이데거는 단지 우리가 아직은 우리의 기원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절망했을 뿐이고 우리의 기원에 대한 이해는 이제 무한정한 미래로 투사된다. 푸코에 따르면 이런 문제 구조는 후기 하이데거의 문체상의 특이성으로 이끄는데, 그것은 우리의 과거를 대담하게 발굴해 낼 것과 푸코가 결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미래의 계시를 향한 끈기있는 인내를 동시에 제안하는 것이다. 



"사유가 여전히 사유해야만 하는 기원은 결코 성취될 수는 없으나 항상 더욱 가까이 접근하려는 절박감 속에서 약속될 것이다. 이런 경우에 기원은 회귀하고 있는 어떤 것이며 그 회귀는 이미 항상 시작된 것이며, 빛의 근접은 시간이 시작된 이래 반짝거려 왔다. 따라서 기원은 시간을 통해 가시적이게 된다 ; 그러나 이 기원은 미래로의 후퇴이며, 비둘기같은 걸움걸이로 끊임없이 사유를 가능케 하는 것을 향해 전진하라는 명령을 사유가 스스로에게 주고 받는 것이다."(25) 



푸코가 볼 때 위에서 기술한 자기-명료화의 유형에 참여하는 주체/객체로서의 '자기'란 하이데거가 계속적으로 성격규정하려고 했던 실재적인 전체(entity, 존재자)가 아니라 칸트가 시작했고 하이데거가 종결시킨 패러다임의 변동 동안에 출현한 일종의 규제적 개념이다. 이 개념은 약 150여년 동안 서구 사유를 지배해왔던 존재론에 매우 긴요한 것이며, 이 존재론은 결코 끝날 수 없는 역설과 계속된 문제제기들에 시달려왔다. 푸코가 보여주려고 한 것은, 이러한 시도를 가장 최후에 대표한 위대한 하이데거의 '인간학적' 존재론이 스스로 발생시킨 문제들을 다루면서 자신의 자원을 다 고갈시켜버렸기 때문에 붕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인간학적 존재론이 붕괴한다면 '인간'이라는 개념도 아마도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을 것이며, 인간도 스스로에게 이런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의 존재론에서 무엇이 인간을 대체하게 될 것인가, 혹은 대체해야만 하는가는 아직 답해지지 않는 질문이다. 그 문제에 대한 답은, 푸코가 하이데거의 설명의 대체물로서 제안하고 있는 개념인 자아란 사실 없다는 것이다. 푸코는 그의 마지막 저서에서 존재하는 그대로의 우리를 인격(persons)으로 개별화시키지 않는 정치적 힘을 통해서, 소위 자아에의 배려를 통해서 설명하려고 시도하려 했다. 허나 이에 대한 논의는 이 글의 범위를 넘는 것이다. 푸코가 도전하려고 했던 것은 바로 이것, 즉 150여년 동안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자아들'로 이해하려고 시도해 왔으며 만족할만한 설명을 내놓는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포기해야만 할 때일까, 아니면 아직도 하지 말아야만 할 때일까? 그는 ≪말과 사물≫에서 이렇게 결론짓는다. 



"인간은 인간의 지식에 제기된 가장 오래된 문제도, 가장 영속적인 문제도 아니다. 하나의 제한된 지리적 영역에서 상대적으로 짧은 연대기적 사례 - 16세기 이래의 유럽 문화 - 를 보더라도, 우리는 인간이 이 속에서 생겨난 최근의 발명품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지식이 그렇게 오랫동안 어둠 속에서 방황했던 곳은 인간과 인간의 비밀 주변이 아닌 것이다. 사실 사물과 사물의 질서에 관한 지식에 영향을 미친 모든 진동mutation중에서 약 150여년 전에 시작되어서 지금은 아마도 종말로 다가가고 있는 단 하나만이 인간이라는 형상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출현은 오래된 불안을 해방시킨 것도, 오랫동안 신념과 철학 속에 갇혀 있었던 그 무엇을 자명한 의식으로 변화시킨 것도 아니었다 : 그것은 지식의 근본적인 배치가 변화된 결과였다. 우리 사유의 고고학이 잘 보여주듯이, 인간의 최근의 발명품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마도 종말로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배치가 나타날 때처럼 사라지게 된다면, 18세기 말에 고전주의적 사유의 근거처럼 우리가 가능성을 순간적으로 감지하는데 불과한 어떤 사건이 그 배치를 무너뜨리게 된다면, 그때 우리는 인간이 마치 해변의 모래 사장에 그려진 얼굴이 파도에 閏겨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이내 지워지게 되리라고 장담할 수 있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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