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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생각의 힘

언뜻 보기에 모순된 것 같지만

by FraisGout 2020. 7. 28.

동양 철학을 접해 본 적이 있거나 정신 세계가 어느 정도 성장 괘도에 올라 있는 사람
들은 흔히 시각화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활용 여부를 놓고 망설이는 경향이 있다. 이
런 갈등의 이유는 모든 집착과 욕망을 버리고 '지금  여기'의 삶을 소중히 해야 한다는 
가르침과 삶에서 진정으로 소원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그려 보라는 가르침이 '언뜻 보기
에' 서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좀더 깊이 있게 들여다 
보면, 둘 사이에는 사실 아무런  모순점도 없다. '언뜻 보기에'란 말을  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두 개의 가르침 모두 깨어 있는 사람으로 살기 위해선 꼭 이해하고 실천
해야 할 중요한 원리들인 것이다. 두 개의 가르침이 서로 어떻게 부합되는지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내면의 성장 과정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먼저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현대인의 대부분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단절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일
시적으로나마 보다 높은 자아와의 의식적은 소통고리를 상실함으로써  삶에 대한 주인
의식과 책임감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삶이나 세상을 변화
시킬 힘이 근본적으로 자기에게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무력감을 상쇄시
키기 위해 세상에 대한 지배력과 통제력을 조금이라도 더 확보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들이 목적만을 바라보며 맹목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자연히 
사람들은 외부의 것들, 행복하다는 착각을 얻는데 필요한 외부의 사물이나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점점더 단단하게 얽매여 가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내면의 소중한 무
언가를 '잃어버리고'있는 것 같은 허전함에 시달리고 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외부 
세계를 조정하려고 애쓰는 것도 모두 이런 허전함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억지로 애
쓰는 만큼 신경만 점점 더 날카로워지고 불안과 압박감만 커질 뿐이다. 삶에서 진정으
로 바라는 것을 마음으로 그려 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처해 있는 의식 상황도 대부분 
이와 비슷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의식 상태에서는 시각화의 방법이 전혀  효과가 
없다. 스스로 너무 많은 장애물들을 설치해 놓아서 아예 바라던 것을 이룰 수 없게 되
거나, 설사 이룬다 하더라도 결국엔 그것들이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진 않는다
는 사실을 깨닫게 될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 이런 딜레마를 깨닫기 시작하는 순
간, 우리는 영적인 성장의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삶에서 보다 중요한 무언가가 있
으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그것을 찾아가는 순례의 길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이
런 탐색의 과정에서 저마다 서로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엔 서서히 
자기 자신에게로 되돌아 가게 되어 있다. 우리의 본질, 모든 사람들 속에 들어 있는 에
너지의 실체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경험은 우리에게 영적인 힘에 의지할 수 있
게 해주고, 내면의 공허감도 안으로부터 채워나갈 수 있게 해준다.
다시 앞에서 이야기한 역설의 문제로  되돌아가 보자. 그 공허롭고 답답하며  억압적인 
상황에서 벗어나는 순간, 가장 먼저  깨닫게 되는 교훈은 바로 모든  것들을자연스럽게 
내버려두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고, 억지로 애쓰지 말며, 자신에게  필요하
거나 원하는 것들을 얻기 위해 주변 상황이나 타인들을  교묘히 조정하려 들지도 말라
는 것이다. 억지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려 애쓰지 말고, 얼마간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체험해 보는 것이다. 잠시라도 이렇게 해보면 이런 상태로 있는 것이 얼마나 홀
가분하고 즐거운지 깨닫게 될 것이다. 억지로 변화시키려는 욕심 없이 자기 자신을, 세
상을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내버려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얼마나  평온해지는지, 
'지금, 여기'의 삶을 소중히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집착을  버리
라'는 불교의 가르침이나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 것이다'는 기독교의 말씀 모두 다 
이런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 주는 이런 체험은 자각의 과정
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도 한다. 이런 체험이 빈번해지면서 우리는 보다 차원 높
은 또 다른 자아에게로 이르는 길에 발을 내딛게 된다. 그러면 곧 엄청난 양의 에너지
가 자연스럽게 자신을 관통해 흐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처럼 스스로가 이미 자
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주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자
신은 물론 타인들을 위해 보다 의미 있는 일들을 만들어내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다. 어떤 순간에도 진실로 느낄 수 있는 보다 숭고하고 뜻깊은 목적에 에너지를 쏟아붓
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삶이란 근본적으로 행복하고 관대하며 때론 유쾌할 수도 있
다는 것을, 억지로 밀고 나가거나 긴장하지 않으면서도 진실로 소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이 그저 살아 있음으로 해서 자연적으로 얻게 되는 권리의 일부라는 사실도 깨
닫게 된다. 시각화가 가장 중요한 도구의  하나로서 제 구실을 다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런 깨달음의 순간부터이다. 이런 사실을 보다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가지 이
야기를 들려주겠다. 
흘러가는 강물과도 같은 우리네 인생,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둑에 착 달라붙은 채 손을 
놓으려 하지 않는다. 혹여 강물에 휩쓸려가 버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흘
러 때가 무르익게 되면, 홀가분하게 탁 두 손을 놓고 싶어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강
물이 어딘가로 자신을 안전하게 데려가 주리라 믿으면서, 바로 이 순간, '자연스럽게 흐
름을 타게' 되고, 그것이 얼마나 즐겁고 편안한지 깨닫게 된다. 차츰 강물의 흐름에  익
숙해지면서, 앞을 내다보며 자신이 가고자 했던 방향을 잡아가게 된다. 차츰 강물의 흐
름에 익숙해지면서, 앞을 내다보며 자신이 가고자 했던 방향을 잡아가게 된다. 가장 안
전해 보이는 코스를 찾은 뒤, 뾰족한 돌이나 불거진 나뭇가지들을 피해 강물을 따라 흘
러간다. 숱하게 뻗어 있는 지류와 운하들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알맞은 길을 선택해 가
면서도, 내내 '강물과 함께 강물을 타고' 안전하게 흘러가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지금 여기의 삶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가르쳐 주고 
있다. 현재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되, 스스로의 삶은 스스로가  만들어 간다는 
책임감으로 목표를 향해 의식적으로 자신을 인도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시각화는 영혼
의 성숙은 물론 다른 목표들을 위한 도구로도 활용할 수 있다. 보다 환하게 열린 편안
한 마음으로, 지금 이곳의 삶을 소중히 생각하며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자신의 모습, 언
제든 자신의 본질과 소통할 수 있는 모습을 그리는 데에도 시각화는 큰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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