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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행복은

인생은 살 만한 것이다 카네기 데일

by Frais Study 2020. 7. 27.

  미국의 교육가. 대학 졸업 이후 세일즈맨을 비롯해 
수많은 작업을 전전하다 마침내 변론교사로
성공한 인간관계 전문가. 주요 저서로 아이아코카 
비롯해서 코카 콜라, 코닥, 포드 등 미국 내 1천여
대기업에 큰 영향을 준 "인생지침서"가 있음.

     마음을 다스려라

  우리들은 이 세상의 시작을 커다란 울음으로 
대신한다. 매우 불안정한 상태에서 인생을 출발하는
것이다. 기분 좋게 웃는가 하면, 갑자기 앙앙 울어대는 
짓을 되풀이한다. 그리고는 역시 불안정한
시기인 어린이 시절에 돌입한다. 어린이들은 복잡한 
경제적, 정서적, 사회적인 상황에 아직 스스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다음의 사춘기는 더더욱 불안정하다.
나는 어린아이일까, 어른일까? 섹스란 무엇일까?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누구한테 물어 보면
알 수 있게 될까? 이런 끝없는 의문 속에서 불안정한 
삶을 보내게 되는 것이다.
  성인기에는 수많은 새로운 문제에 부닥침으로써 
더욱더 불안정하게 된다. 배우자를 선택하는 결혼
문제에서부터 애를 갖는 일, 성생활에 대한 결정, 
직업의 선택, 그리고 직장에서의 문제뿐만 아니라
생명보험이라든가 휴가지를 결정하는 일 등, 책임 있는 
성인이 직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갈등은 무수히
많다. 은퇴 후의 생활에도 역시 문제가 있다. 모든 일에 
있어서 게을러지기가 일쑤이고, 죽음의 공포에
떨기도 한다.
  우리들은 언제나 우리의 삶이 비극으로 전개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산다. 실직됨으로써 생활에
곤란을 받게 되지는 않을까? 가족 중의 누가 나쁜 
상황에 처하지는 않을까? 이와 같은 뜻하지 않은
재난은 모래 속에 머리를 틀어박고 숨어 살지 않는 한, 
언제 현실로 일어나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에 대한 이러한 걱정은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대답은 매우 간단하다. 살아 있는
동안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생활하고, 더 나은 
생활을 추구하면서 부단히 노력하면 된다.
다시 말해 건강한 자아상을 확립해 나가는 것이다. 
건강한 자아상은 우리들이 안정감을 갖는 데
크나큰 도움을 준다. 인간은 어느 누구나 언젠가는 
죽는다. 그것은 신이 정한 법칙이며, 그것에
대해서는 달리 손을 쓸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죽을 것이 두렵고 짜증나니까
우울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웃으면서 즐겁게 살 
것인가? 아마도 거의 누구나 이 물음에 후자의 대답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즐겁게 사는 것도 여러 가지다. 
즐겁게 산다고 해서, 어차피 죽을 목숨이니까
되는 대로 죽겠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매사에 최대한 
노력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 옳고 바람직한 삶의 태도일까? 
경험해 본 사람이면 주구나 후자라고 대답할 것이다.
즐거운 일이라고 해서, 매일같이 술을 마시고, 파티를 
즐기고, 놀러만 다닌다면 어떨까? 과연 우리는
그렇게 살다 죽을 때 뿌듯한 인생, 즐거운 인생을 
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대답은
물론 "아니다"이다. 우리는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보람된 
성취감을 맛보게 되며, 부차적으로 경제적인
윤택함도 같이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항상 일해야 하며 항상 어려운 일에만
매달리라는 것은 아니다. 푸르른 나무들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꽃의 향기를 맡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기도 하면서 일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것이다.

  개는 인간에게 최고의 벗이라고 흔히 말한다, 나는 이 
머저리 같은 격언을 그냥 받아들이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 나는 개를 매우 좋아하지만, 개라는 
동물은 길을 잘 들려 놓지 않으면 절대로 좋은
벗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가장 
좋은 벗은 누구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 자신을 훌륭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면 
만족을 얻게 되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스스로 자기 자신을 쓸모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의 친구인 존이나 톰이나 엘리스나 엘리너는
당신에게 정말 가치 있는 친구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위기에 빠진 당신을 구출해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당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다. 어떤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그들은 당신에게 중요한 조언을 해주거나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해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그 주인공은 당신이며 책임져야 
하는 것도 당신인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기쁨이나 슬픔을 나누어 가질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당신만큼은 가질 수 없을 것이며, 당신이 직업을
선택하는 데 조언을 해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실패에 
대한 책임까지는 져주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당신의 최고의 벗인 자신을 잘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상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확립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아상이 
확고해야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안정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자신을 호감이 
가는 바람직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거나 자기 자신의
모습에 만족을 얻을 수 있다면, 당신은 안정감을 갖고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써는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문제라든가, 당신의 희망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당신은 자신을
지탱해 낼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매일같이 수염을 깎거나, 입술 연지를 바르고, 
이를 닦고, 얼굴을 씻으면서 얼굴을 거울에
비추어볼 기회가 하루에도 몇 번씩 있을 것이다. 이 때 
거울은 깨진 것이든 흐린 것이든, 큰것이든
값싼 것이든 상관이 없다. 당신이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기만 하면 된다. 우선 당신의 얼굴을 차분히
보아라. 바쁜 일이 당신 뒤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하더라도, 거울 앞에 잠시 우두커니 서서 당신의
몸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라고 무시하지 
말라. 머리를 빗는다든지 손을 씻은 다음, 길게도
말고 딱 3분 동안이면 된다.
  당신은 거울 속의 당신을 
보면서 당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만일 당신이 좋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면, 처음에 당신은
아마도 거울 속에서 당신을 위협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의 웃어른일 수도
있고, 당신을 제치려고 하는 경쟁 상대, 또는 주차 위반 
같은 사소한 교통법 위반 때문에 당신에게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경찰관의 얼굴일 수도 있다. 
그것은 당신이 공포나 불안이나 절망 때문에
자아상을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횟수가 
늘어갈수록 당신은 거울 속에 나타난 당신의 모습
안에 자리하고 있는 당신의 참모습을 점차로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해두고 넘어가야 할
문제는, 이것은 자기애를 키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것은 자기
도취 강화에서 지나지 않는 것이고, 그것은 자기를 
상처 내게 하는 일이 될 뿐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거울 속의 당신을 향해 "나는 완전하고, 다른 
사람보다 훌륭하다"고 들려주어서는 안 된다.
그런 행동은 당신 자신을 삐뚤어지게 만들어, 
남으로부터 비웃음을 살 뿐이다.
  이 경면주시는 구조수술의 하나로서, 이것저것 
정신없는 생활의 흐름 속에서 당신의 육체상을
구출하는 방법이다. 당신은 육체상을 되찾음으로써 
당신의 정서상을 소생케 하고, 그것들을 현실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당신 자기의 합성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당신은 창조적 생활을 통해 당신
자신이라든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인간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여 자기
도취와 정반대되는 것에도 빠져서는 안 된다. 즉, 
파괴적인 자기 비판에 빠져들어가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신의 생김새는 당신을 완전히 만족시키지는 
못하겠지만, 완전함 같은 것은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그냥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경면주시의 목적은 자기 발견, 혹은 자기 재발견이다. 
짓누르는 불안과 긴장으로부터 당신을
해방시키고 유아적인 공포를 떨쳐버린 다음, 당신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는 것이다. 당신의 얼굴이 비록
경험 많고 성공한 사람의 얼굴이 아닐지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성공으로 가는 길 위에 첫발을 내디디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거울에 비친 당신의 얼굴 뒤에 
있는 인간을 보고, 그의 진면목을 간파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당신은 생동감 있는 당신의 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지구 궤도에 쏘아 올려진 우주비행기는 며칠이고 
계속해서 지구의 둘레를 돌고 있다. 그런 것처럼,
당신의 생활 궤도는 자아상의 인력에 묶여 있다. 그래서 
당신이 새로운 사람들과 접하게 된다든지
새로운 상황 속에 빠져 위험해졌다 하더라도, 당신의 
자아상이 강력하다면 그곳은 당신의 집같이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당신의 자아상이 빈약한 
것이라면, 당신은 사람들의 의견에 그저 순응만 하게
됨으로써 맥없이 물러서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하나의 우주이다. 그리고 당신의 마음은 '내우주'이다.
이 내우주를 탐험하고 파악해야 하는 것은 당연히 
당신의 임무이다. 그것은 당신 자신을 현실적이고
육체적이며 정서적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제까지 실생활에서 가졌던 성공의 체험을
꺼내어, 그것이 당신 몸과 마음의 일부가 될 때까지 
수없이 되풀이하여 회상하는 일이다. 매일 당신의
몸을 바라보고,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당신의 자아상을 
강화시킴으로써, 향상 마음속의 '내우주'를
강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당신은 10부터 0까지 거꾸로 센 다음, 당신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이렇게 물어보라.
  " o o o씨, 오늘은 기분이 어떻습니까?"
  당신은 과거로 되돌아가면 안 된다. 특히 당신의 
과거의 실수라든가 실패를 자꾸 떠올리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그런 과거는 가차없이 잘라서 시간의 궤도에 
던져 버리도록 하라. 
  거울을 들여다보면서
당신은 자신에게 이렇게 타일러라. "전진하자. 
소극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질질 끌려다니는
바보짓은 안 할 것이다." 이렇게 매일 거울 앞에서 몇 
분 동안 자기 자신에게 접근하는 방법을
계속한다면, 당신은 풍요로운 생활을 가꾸는 데 필요한 
자아상을 키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념을 가져라

  여러분에게 묻는다
  "우리나라는 온갖 기회가 넘쳐 흐르는 나라인가? 이 
나라에서는 누구든 능력과 지구력만 가지고 
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믿는가?" 
  그러면 여러분은 입을 모아 "물론" 하고 대답할
것이다. 글로 쓴다면 끝에다 "!"표를 붙이지 않으면 안 
될 만큼 큰소리로 말이다. 
  그러나 당신이 실직중인데다가 돈도 한 푼 없고,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희망 또한 전혀 없는 처지에 있다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그래도 당신은 그런 씩씩한 신념을 
바꾸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 신념에 의해서 행동할
수 있겠는가?
  다음 이야기는 그런 사람에 관한 것이다.

  미국 미주리 주의 인디펜던스에 사는 레로나드 A. 
트렌처드는 1928년에 돌아가신 부친으로부터 10만
달러 상당의 유산을 상속 받았다. 그런데 겨우 1년이 
지난 뒤, 그는 한 푼도 없는 파산 상태에 처하고
말았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을까?
  "제 아버지는 부자셨습니다. 그리고 인자하셨죠. 
아버지는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아버지 수표를
사용하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벌써 그때부터 
언제든지 돈이 필요할 때마다 아버지의 거래은행
구좌 수표에 서명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고, 일리노이 
주립대학에 다닐 즈음에는 말할 것도 없었죠.
저는 돈이라는 것의 가치는 물론이고, 제 손으로 어떻게 
벌어야 하는 지도 알지 못한 채 어물어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었던 것은 아버지 
은행 구좌의 수표에 서명하는 것뿐이었죠. 그런데
아버지는 미주리 주의 렉싱턴 부근에 있는 제법 넓은 
토지를 저에게 남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기로 했습니다."
  그는 서툴게나마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때 무서운 
불경기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래서 그는 큰
적자를 보았다. 갈수록 빚이 늘어만 갔다. 그는 토지의 
일부를 저당 잡혀 밀린 빚을 갚고 수표 구좌의
예금을 보충했다. 그러나 농사일은 갈수록 실패만 
거듭했고, 그는 저당 잡힌 토지를 아주 헐값에
팔아 넘겼다. 그 돈은 밀린 빚을 겨우 갚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일은 그 뒤로도 되풀이됐다. 돈이
필요해질 때마다 그는 이것저것을 저당 잡히든가 
팔아 치워서 급한 불을 껐다.
  그렇게 그는 아버지가
남겨 준 유산으로 살았다. 드디어 최후 심판의 날이 
찾아왔다. 그에게는 이제 돈도, 팔아 치울 토지도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생명을 유지하려면, 
일자리를 얻으러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그건 그가 그때까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었다. 
그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잡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수표에 서명하는 습관'이라는, 지금껏 그가 
의지하고 있던 낡은 지팡이가 뚝 부러지는 소리를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처한 곤경에 대해서, 그리고
그때까지 자기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었던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에 미국에 대해서 이렇게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것이다. "성공을 목표로 열심히 노력하기만
하면, 미국은 누구에게나 똑같은 기회가 주어진 
나라다," 그런 신념으로 그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불경기가 계속되고 있어서 일자리는 쉽사리 찾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었다. 그는 건강하며, 대학 교육을 받았고, 실무 
훈련도 몇 가지 받았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에게는 그때까지의 실패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을 몸에 
간직하고 있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즉시 행동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생활과 사물에
대하여 생각하는 방법을 완전히 새로 정리하여 고쳤다. 
  그는 어떤 일이든 해낼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자리를 찾아내는 일은 무척 어려워서 그는 
깊은 실망에 빠져들곤 했다. 그러나 실망이 그를
무너뜨리려고 할 때마다 그는 마음 속에서 피어오르는 
의구심과 공포를 굳은 신념으로써 극복하려고
애썼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확고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길이 열린다'는 신념!
적당히 단념해 버리고 싶은 그를 다져 준 것은 바로 그 
신념이었다.
  결국 그의 신념이 옳았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는 캔자스시티의 유니언 금융회사에 
취직할 수가 있었다. 거기서 그는 4년 동안 아주
유쾌하게 일했다. 그후, 그는 사직하고 첫사랑의 상대에 
다시 대들기로 했다. 그것은 땅과
농사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농사일에 
달라붙었다. 이번에는 모든 일이 잘 되어 갔다.
그는 서서히 신용이 늘어감에 따라 사업을 확장하기로 
하고 농장을 좋은 값으로 팔아 넘겼다. 그리고
다른 일에도 손을 뻗쳐 마침내 성공을 거두었다. 빚을 
다 갚고 잃었던 재산도 다시 찾았다.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일들이 벌어졌죠. 저는 
확실히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제 노력은
헛되지 않았고, 이제는 그동안의 실패와 성공을 통해 
얻은 교훈 덕분에 다시는 실패하지 않을 능력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제 자신의 노력으로 돈을 
되찾았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 
고통의 세월을 통해서 두 아들 녀석들에게 물려줄
더욱 귀중한 것, 말하자면 어떤 커다란 진리를 배운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신념을 갖지 않으면 아무
소용도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겁니다."
  트렌처드 씨의 이야기는 무책임하고 응석받이로 
자라난 아이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 주는 아주
좋은 예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자각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신념을 행동으로 옮길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정신적으로 놀랄 만한 성장을 이룩할 수가
있는 것이다.
  "365일을 어떻게 살 것인가"의 저자 존 A. 
신드라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뭐든지 스스로 배워서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어떤 것에 대해
신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인간적인 성숙을 꾀하기에 부족하다.
용기를 신념으로 삼고 있는 것이 겁장이보다는 
낫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막상 어떤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꽁지를 빼고 달아나 버렸다면 그까짓 
신념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신념이라는 것은
그 위에 자신의 생활과 행동을 쌓아 올리지 않으면 
아무런 값어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는 자기 신념에 위배되는 행동을 하곤 한다.
  언젠가 어떤 부인이 내게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었다. 어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셈을 치렀는데,
점원으로부터 거스름돈 50센트를 더 받은 적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이야기를 하면서 웃고
있었다. 그래서 돌려주었느냐고 물었더니 그녀는 불쾌한 
얼굴로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 돌려주긴 왜 돌려줘요? 그 쪽에서 잘못한 
거지, 내가 더 달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자기
멋대로 틀렸으니까, 그건 틀린 사람 책임이죠. 계산이 
그렇게 되었기에 망정이지, 잘못했더라면 내가
손해볼 수도 있었던 일이잖아요?"
  아마도 더 이상 추궁을 했더라면 그녀는 몹시 화를 내든가 창피를
느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결과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그것은 아주 미인인 데다가 선한
용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으로는 부정직하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내가 아는 어떤 회사에서는
경리사원 선발시 면접을 할 때 심리학자를 참석시킨다. 
성격과 성실도를 시험하려는 것인데, 심리학자는
선발 대상자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는 것이다.
  "당신을 영화광이라고 칩시다. 그래서 극장에 갔는데, 
표를 구입하지 않고도 공짜로 들어갈 수 있는
기회를 잡았습니다. 그럴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이런 질문에는 맹점이 있다. 거의 누구나 그런 
기회에 부닥치면 움켜잡게 되는 것이 상식인데,
그런 질문에 어느 누가 "잡겠다"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러나 어쨌든 이 질문에는, 작은 일에서 부정직한
사람은 벌을 안 받을 수도 있다는 승산만 서면 틀림없이 
큰일에서도 부정을 저지를 것이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신념은 그 사람의 행동을 통해 명확히 
나타난다. 예수는 "그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느니라" 하셨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행위이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맞춰 살지 않는다면 어떠한 이득도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우리의 열매는 시고,
생활은 위선에 가득 차게 될 것이다. 일단 강한 신념을 
가지고 확고한 신조를 세웠으면 거기에 따라
행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상에 모든 일은 기한이 있고, 이뤄지는 때가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로울 때가 
있다."
  아름답고 슬기로움이 넘치는 이 말에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생각할 때가 있고 행동할 때가 있다."
  행동할 때가 오면 절대 망설이지 말라. 주춤거리지 
말고, 핑계를 대지 말라. 허리띠를 졸라매고
단숨에 전진해야 하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미국 서부 쪽으로 강연을 간 적이 있다. 
그때 샌디에이고에서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를
탔을 때였다. 나는 86세의 노부인과 나란히 앉게 
되었고, 그녀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녀는 영국 태생인데, 얘기 그ㅌ에 그녀가 
캘리포니아의 패서디나 부근에 영국계 노인들을 위하여
"노인의 집"을 마련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녀는 
86세라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명예회장으로서 매일
"노인의 집"을 방문하여 봉사한다고 했다.
  "나는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
  "연세가 많으신데, 힘든 적은 없으십니까?"
  "나이 같은 것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아요. 나는 나 
스스로 즐기고 있는 거지. 그저 마음을 쓴다면,
매일매일을 굉장히 좋은 날로 만들려고 하는 
것뿐이라우."
  "그래서 그렇게 젊어 보이시는군요?"
  "재미있게 살아서 그럴 게야. 나는 하루하루가 여간 
재미나는 게 아니거든."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눈빛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뒤, 나는 샌이데이고로 
돌아가기 위하여 비행기를 탔다. 도중에서
비행기는 샌타바버라에 착륙했는데, 거기에서 10대 
초반의 애들 50명 정도가 배행기에 올라탔다.
그들을 인솔하는 어른들이 몇 명 있어서 알아보니, 
그들은 가출을 했거나 경미한 범죄를 범한 9세에서
15세까지의 청소년들로서 현재 보호감독하에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 중에 한 소년이 내 옆좌석에
앉았다. 12세 정도로 보이는 그애의 눈은 지나온 과거를 
말해 주듯 총기가 없어 보였다. 눈동자는
불안에 떨며 쉴새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두 눈은 어두운 
그림자에 싸여 있는 듯했다. 소년은 비행 도중
내내 몸을 돌려 말없이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비행기가 샌디에이고 상고에 도착해서 착륙
준비를 시작했을 때, 혼자말처럼 이렇게 내뱉었다.
  "와, 사람들이 되게 많다! 꼭 벌레 같네."
  그게 하늘로부터 관찰한 그 애의 감상이었다.
  나는 그 소년의 말에 이상스럽게 가슴이 떨렸다. 다른
누군가가 그런 말을 했더라면 아마도 안 그랬을 
것이었다. 그런데 침울한 눈을 보이고 있던 소년의
입으로부터 그런 말이 나오다니... 나는 사람들을 
벌레에 비유한 그 소년이 측은해졌다. 그에게 딴
사람들은 아무 가치도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년의 자아상은 너무나 나약한 것이었다.
산다는 것 자체가 그 애에게는 쓸데없는 짓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 감독 교사들이 소년을 잘 이끌어 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리고 소년이 자기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향을
발견할 수 있게 되기를 충심으로 빌었다.
  나는 86세 고령의 노부인과 12세 소년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많은 쪽의 적극성과 어린
소년의 무기력함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거기에서 나는 
사람들의 기력을 떨어뜨리는 것은 나이가
아니라 정서적 장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신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또 어떤 
것은 할 수 있고 어떤 것은 할 줄 모르는
사람인지 알고 있는가?
  그것을 잘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생활에 반영하는 것은 더더욱 중대한
일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태도에 따라 향상의 기회가 
올 수도 있고 절망의 구렁텅이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자아상은, 당신이 일을 즐겁게 
하거나 여가를 유쾌하게 보낼 수 있도록 힘을
빌려 준다. 무엇을 하든지 간에 당신의 행동에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이
즐거워지면 당신의 자기 평가는 높아진다. 당신의 
최고의 상태에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당신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건설적인 자아상을 갖고 있는 사람은 유쾌한 생활 
조성을 위해 일부러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런
건전한 자아상을 유지만 할 수 있다면, 그에게 생활은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 때문이다. 그는 어떠한
고통이나 고난에도 꺾이지 않는다. 극복의 차원을 
넘어서 그것까지 즐기는 차원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자아상은 더욱 강화된다. 끊임없이 
전진하고, 자신의 한계를 파악하여 자아상 강화에
힘쓰면서 무슨 일이나 즐겁게 붙들고 해나간다면 그는 
어떠한 난관도 뚫고 나갈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몇 가지 교훈이 필요하다.
  매일매일 목표를 가져라.
  현실로부터 절대로 도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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