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타/팔만대장경 이야기

왕의 환생

by Frais Study 2020. 6. 22.

  아주 오랜 옛날 설두라건녕이라는 왕이 대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팔만사천의 소국과 팔십억 개
에 이르는 마을을 통치하였으며, 이만 명의 부인과 시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는 자비심으로 모든 백
성들을 보살피는 어진 왕이었다. 백성들 역시 그러한 왕을 마치 친아버지처럼 따르고 존경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 혜성이 출현하자 천문관이 국왕을 찾아와 말했다.
  "옛부터 혜성이 출현하면 십이년 간 큰 가뭄이 든다고 하는데,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천문관의 보고를 받은 국왕은 수심에 잠겼다.
  '정말 그렇게 큰 가뭄이 들면 어쩌나? 그렇게 되면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려 죽을 텐데...'
  곧이어 국왕은 여러 대신들을 소집하여 대책을 세웠다. 그때 회의에 참석한 한 대신이 이렇게 말했다.
  "대왕이시여, 우선 시급히 전국의 인구와 비축되어 있는 양식의 양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해봐야 합니
다 .그래야 얼마나 버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국왕은 그 대신의 말에 따라 조사를 진행시켰다. 그  결과 아무리 최소 수준으로 배급량을 줄인다 할
지라도 몇 년 버티지 못한다는 참담한 계산이 나왔다.
  얼마 지나지않아 천문관의 예측대로 전국은 큰 가뭄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어 몇 년이 흐르자 마을마
다 굶어죽은 백성의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었다. 평소에 백성들을 끔찍히 아끼던  국왕은 이 일로 잠을 
편히 이룰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국왕은 수심에 잠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부인과  몇몇 시녀들을 데리고 근
처에 있는 강을 찾았다. 국왕은 그녀들과 함께 강변을 거닐다가 홀로 조용한 곳을 찾아 생각에 잠겼다.
  '백성들이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이다지도 참담한 지경에 이른 것은 모두 내가 부덕한 탓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이상 가뭄에 희생되는 백성이 없도록 해야 한다.'
  생각을 마친 국왕은 강변의 한 언덕 위로 올라가 천지신명에게 기원했다.
  "만 백성이 굶주려 죽는 모습을 차마 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제 몸을 버리나니 원컨대 
커다란 물고기로 다시 태어나 그 살로 굶주리는 백성들의 배를 채워주게 하소서."
  국왕은 기원을 끝내자 시퍼런 강물로 뛰어들었다. 잠시  후 국왕은 커다란 물고기로 환생하게 되었는
데, 그 길이는 무려 오백 유순(유순은 인도의 거리 개념으로 멍에를 황소 수레에 걸고 하루에 갈 수  있
는 거리를 말한다)이나 되었다. 그때 나무껍질을 벗겨 주린 배를 채우고 있던 다섯 사람이  물을 마시기 
위해 강변으로 왔다가 큰 물고기를 보게 되었다. 큰 물고기는 그들에게 말했다.
  "배가 고프면 어서 내 살을 먹도록 하시오.  그리고 살을 베어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 다른이들에게도 
나누어주도록 하시오. 또 이이야기를 뭇 사람들에게 알려 배고픈 자는 모두 내게 오도록 하시오."
  다섯 사람은 큰 물고기의 말을 듣고  무척 기뻐하며 허겁지겁 배를 채우고선 각기  물고기의 살을 한 
덩이씩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전했다.  이윽고 소문은 급속도로 퍼져 
그 나라 모든 백성들이 큰 물고기의 살을 먹고 부지하게 되었다. 이 물고기의 살은 신기하게도 한 덩이
를 베어내면 금방 다시 새 살이 돋아났다. 큰 물고기는 살점이 뜯겨나가 피를 흘리는 고통 속에서 가뭄
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굶주린 백성들의 유일한 먹거리가 돼주었다.
  곤경에 처한 백성들을 차마 그냥두고 볼  수 없어 자신의 몸을 버리면서 까지  커다란 서원을 세웠던 
설두라건녕왕, 그의 환생인 그 신비롭고 커다란 물고기를 먹은 백성들은 마침내 천수를 다한 뒤에도 천
상에 태어나는 복을 얻었다.

'기타 > 팔만대장경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왕후가 된 계집종  (0) 2020.06.22
뱃속의 아이  (0) 2020.06.22
백 개의 손가락  (0) 2020.06.22
제바보살과 바라문의 대화  (0) 2020.06.22
태워야 할 것  (0) 2020.06.2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