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나이라는 나이지리아 중앙은행이 발행·통제하는 디지털 화폐(CBDC)로, 실물 화폐를 디지털 형태로 구현한 것이다. e나이라와 나이라 화폐 가치는 같다. CBDC는 비트코인 등 기존 암호화폐와 같이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지만 발행 주체와 변동성 면에서 다르다. CBDC는 민간기업이나 개인이 발행 주체인 기존 암호화폐와는 달리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공식 통화다. 국가가 가치를 보증하므로 변동성도 적다. 나이지리아는 앞서 암호화폐가 금융 시스템을 위협한다며 지난 2월 암호화폐 거래를 불법화하고 CBDC 개발에 돌입했다. 세계 최대 개발도상국을 자처하는 중국이 암호화폐를 불법화하고 CBDC 실험을 진행 중인 것과 같다.
모하마두 부하리 대통령은 이날 e나이라 출범 행사에서 “우리는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디지털 화폐를 국민에게 소개하는 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e나이라의 향후 10년 나이지리아 국내총생산(GDP) 증가 효과가 290억달러(약 34조740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나이지리아 은행 33개가 e나이라 시스템을 통합했으며 중앙은행은 이미 5억e나이라(120만달러·14억원)를 발행해 그중 2억e나이라를 금융기관에 배포했다. 나이지리아 내에서는 이미 e나이라를 보관할 수 있는 전자지갑 신청이 시작됐다.
개발도상국인 나이지리아와 디지털 화폐 정책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이지리아의 e나이라 도입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나이지리아는 암호화폐 보급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나이지리아 국민은 나이라 가치 하락과 비싼 물가, 실업에 허덕이고 있었고 그중 신기술에 노출된 나이지리아 청년들은 암호화폐에 주목했다.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는 나이라의 급격한 환율 변동과 정부 통제를 피해 대체 화폐 역할을 했다. 나이라 현금을 보유하거나 정부 국채를 사다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산 가치가 떨어질 것 같으니 암호화폐에 자산을 묻어둔 것이다. 암호화폐 데이터 분석업체 체인애널리시스의 ‘2021년 글로벌 암호화폐 채택지수’에서 나이지리아는 전 세계 7위에 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실물 화폐인 나이라 가치가 올해 들어서만 5% 넘게 폭락하자 중앙은행은 직접 e나이라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개도국의 암호화폐 사랑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바하마는 2020년 10월 공식 디지털 화폐인 ‘샌드달러’를 출시하며 세계 최초로 CBDC를 상용화했다. 더 급진적인 나라도 있다. 엘살바도르는 지난 9월 7일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달러와 함께 법정 통화로 인정했다. 지난 6월에는 관련 법안을 통과시키고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의 주도 아래 비트코인 체제를 준비했다. 그는 비트코인을 사용하면 미국 등 해외 이민자의 본국 송금 수수료가 저렴해지며 경제도 활성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엘살바도르 이민자가 보내오는 송금액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의 23%에 달했다. 다만 비트코인의 높은 변동성과 비트코인이 돈세탁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어 엘살바도르 내 비트코인 논쟁은 이어지고 있다.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vs 비트코인 암호화폐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지만 민간 암호화폐와 다르게 발행 주체가 정부이므로 변동성이 적다. 또 화폐 발행까지 결정해야 하는 정책적 쟁점이 많다. 국제결제은행(BIS)의 2020년 조사 결과, 전 세계 중앙은행의 86%가 디지털 화폐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디지털 위안화(DCEP)를 공식 도입할 계획이다. 우리나라 한국은행도 2년 내 CBDC 발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으며 미국도 속도를 내고 있다. 만약 CBDC 발행이 본격화하면 민간 암호화폐 가격은 내려간다는 분석이 많다. CBDC가 암호화폐 대체재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CBDC 도입이 늘어나면 암호화폐 상용화가 빨라질 것이란 긍정적 분석도 있다. CBDC 인프라가 구축되면 암호화폐 활용도도 같이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법정 통화’ 두 달 엘살바도르, 논쟁은 현재 진행형
엘살바도르가 세계 최초로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한 지 두 달 가까이 됐지만 자국 내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10월 17일(현지시각) 수도 산살바도르에서는 비트코인을 법정 통화로 채택한 데 분노한 시민 4000여 명이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엘살바도르에서는 9월 초부터 반대 시위가 계속됐다. 시위대는 비트코인을 현금으로 환전할 수 있는 자동입출금기(ATM)를 부수며 “부자와 외국 투자자, 정부와 기업만 이득”이라고 주장했다. 엘살바도르 내에서 비트코인 사용도는 여전히 낮다. 지난 10월 엘살바도르 경제사회개발재단이 조사에 따르면 사업체 중 93%는 비트코인 거래가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서 비트코인 선물 ETF 등장
10월 19일(현지시각) 미국 ETF 운용사 ‘프로셰어즈’의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 ‘비토(BITO)’가 뉴욕 증시에 상장되면서 세계가 술렁거렸다. 다만 이번 ETF는 비트코인 현물 상품이 아닌 비트코인 가격 방향성에 투자하는 비트코인 ‘선물’ 상품이다.
2021년 3월 캐나다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세계 최초로 상장됐지만 BITO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그 어느 것보다 상징성이 크다. 글로벌 금융의 중심인 미국에서 비트코인 관련 ETF 출시가 승인된 건 그간 ‘투기’라는 인식이 있던 비트코인이 본격적으로 제도권에 편입이 돼 ‘투자’ 대상이 됐다는 의미가 있다. 월가에서는 미국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가능성도 커졌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10만달러(약 1억1700만원)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다만 아직도 비트코인 변동성이 커 BITO 상장 이후에도 암호화폐 가치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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